오직 그대만 Always, 2011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오후 6:59:30  김대식



이번 주는 주님께서 일주일 내내 계류의 기술로써 날 부끄럽게 만드신다.

그냥 아무연고 없이 이 영화를 봤을 뿐인데
또 우연 찮게 계류의 기술에 말려들게 되었다.

언발란스 한 도저히 안어울리는 원수와의 사랑이(모순 - 호동왕자 낙랑공주/ 트리스탄 과 이졸데/ 로미오와 줄리엣),
계류자의 운명이 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져 나온다.

현대판, 한국판 시티 라이트 이라고나 할까?
찰리 채플린의 계류의 기술이 (주일에 버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또 우연으로 이 영화에도?)
(참으로 기가막힌 곤고함이 아무 원인과 결과 없이 이유없이 웃음이 되고 기쁨이 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없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래서 마리아가 두 세계를 싸움 붙이고 얍샵하게 자기는 뒤로 빠져버린다. 계류의 기술이다.  자기는 안 싸울거면서, 마귀와 아기 예수님을 싸움붙이고서 말이다. 마리아의 노래, 눅 1:46-55, 이것이 성령의 은사다. 한나의 기도로 인해 이스라엘 내부에 서로 서로 싸움을 붙인다. 그렇듯이 십자가의 용서를 알도록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

(요 16:4, 개역)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요 16:5, 개역)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개역)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이 영화는 뻔한 스토리 뻔한 내용 뻔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데도 불구하고,
턱하니 한숨만 나오는 절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보란 듯이 꽃 핀다.
그 꽃 향기가 이 따스한 봄날에 허드래지듯이 만개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온 세상에 피운다.

아 그래서 나에게도 그녀의 얼굴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일까?
일부러 그 천사의 얼굴을 가리우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이 꼬라지가 된 이상 누가 나 같은 놈을 건져주겠는가?
나의 눈은 이미 맛이 가버렸다. 누군지도 못 알아보는 눈으로 무슨놈의 사랑???

바비킴의 [사랑 그 놈]을 흥얼거리면서

아 ~ ~~~  이 영화 왜 이렇게 짠한거야 !!



영화 포스터를 보면
남자가 여자를 어부바 한 것이 아니다.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안은 것이다. (계류의 기술이다. 해를 품은 달 ; 해품달)
주여 나 같은 죄인도, 이 소경도, 용서가 되나요? 사랑하시나요?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올해 추운 겨울을 이 말씀에 취해 겨우 버텼다.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호건이가 생각나네 !! 요구르트 한잔 했습니다.
아니, 로고스에 한잔 아니, 삑사리(고난의 잔)에 한잔 했습니다. ㅋㅋㅋ

예수님도 죄인 중의 괴수 되셔서 죽임당했는데
무엇이 심각할게 있겠는가?
겨울 내내 밥상에서 어머니와 나누었던 이 말씀으로 넉넉한 사랑에 만취했다.

이미 주님의 사랑은 완료 되었다.

계류자의 운명은 곧 십자가의 운명이다.
(바벨론 유수 유수 곧 깊게 깊게 깊게 가두는 단절성 배재성 차단성이다. 마치 아들이라고 했던 이스라엘을 처녀 라고 하시며 다시 돌아올것을 염두해서 표시를 해 놓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할례다. 참성전을 말하기 위한 이스라엘을 거세함으로써 부정을 제거한다. 광야도 그래서 거세다. 곧은 목을 낮추시고자 부르뜨리는 것은 여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성전파괴도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부재의 자리 빈자리 빈공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렘 31:21, 개역)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일주일 내내 주님은 이 계류의 기술로
또 나를
부끄 부끄 부끄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로 만드신다.

목자의 삑사리 곱하기 3번 음성으로 다가오신다.
나는 그를 죽였는데 그는 나를 용서하신다. 어찌할꼬 형제들아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행 2:21-37)

저 년을 불에 태워죽여라 그러나 그 부정한 3가지 계류의 기술 도장 도장끈 지팡이가
도리어 나를 구원할 줄이야 아뿔샤 그는 나보다 옳도다 . 부끄 부끄 부끄
시아버지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 도리어 계류 당한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열매
곧 예수님의 족보이다.

(창 38:26, 개역)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우리야를 죽였는데
도리어 여디디야 여디디야 여디디야 사랑의 선물을 주신다.

내가 주께만 범죄 했사오니 주께서 나를 깨끗케 하셨나이다.

입에 침도 안바르고 나는 매일 가짜 맞습니다 라고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람쥐 다람쥐 라고 응답할 뿐이다.
시몬아 시몬아 시몬아 라는 음성에 답한다 람쥐 공황상태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모순이요
비리요 뒤로 빼돌리기의 반칙 중의 반칙인데
그것이 순전히 옳다 함을 여김을 받는 십자가의 지혜 곧 스캔들이다.

편지(꽃:계류의 기술: 삑사리)는 반드시 도착한다.
(명령어(말씀)는 로고스가 아니라 삑사리다. 말씀이 말씀 스스로에게 명하셔서 이루신다. 로고스가 아닌 삑사리로써 ... 시티 라이트 꽃(편지)는 반드시 그 목적지에 도착한다.)

목자는 자기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에 ....

(요 10:1, 개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 10:2, 개역)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요 10:3, 개역)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4, 개역)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요 10:5, 개역)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고후 3:3, 개역)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고후 3:4, 개역)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고후 3:5, 개역)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고후 3:6, 개역)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후 3:7, 개역)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고후 3:8, 개역)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후 3:9, 개역)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고후 3:10, 개역)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고후 3:11, 개역)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PS
영화 보는 내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창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짹짹짹 거리는 조그마한 새와 대화중이다.

뭐라꼬 뭐라 뭐라 그러시는지? 응 그래? 오 그랬어. 그래 그래 알았어 ㅋㅋㅋ

방언으로만 들려오는 계류 언어이다.

어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나랑 대화했던 그 새, 그 같은 새인가 ?

응 그래? 오 그랬섰섰섰어. 그래 그래

모과나무 가지에 조그마한 새를 쳐다 보니 눈이 부셔서 어떤 새인지 모르겠으나
계속 며칠채 지저귄다.

저 비천하고 조그마한 작은 새의 지저귐이
곧바로 무너질듯한 허룸하고 낡은 집에 기쁨을 선사해 준다.

!! 아 맞다.
쉰들러 리스트 라는 영화와 정반대로
뭐가 심각한데? 심각한 것 하나도 없다 라는 식의 결론의 영화

페이트리스 (Fateless Sorstalansag, 2005)

어른들은 심각한대
청소년은 정작 별거 없네 라는 식이다.

원한을 품는 유대인 식의 방식과는 다르게
오히려 같은 유대인이더라도 정반대로 해석했다.

정작 계류자 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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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금요일 오늘은 댄스퀸을 봤다.
이것도 완전한 계류에 대한 영화다.
정치란 소수자를 위한다는 그 거짓이 그대로 반영이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정치란 속임수이다.
그 속임수를 폭로하는 웃음이 도리어 또 웃음꺼리가 되는 속임수가 된다.
매일 매일 가짜다.

민진당이라고 아예 대놓고 밀어줘도
총선에서 패한다.
그래도 웃겠단다.
이것보다 더 웃끼는 쇼가 어디있는가?
정치란 그래서 뻔히 속는줄을 알면서도 웃고자
그 쇼를 서로 볼려고 머리를 쭈욱 내밀고
나도 나도 좀 볼래 들을래 하는 것이다.

맘마미마 댄스퀸 댄스 아 ~~~ 라고
흥얼거리면서
물좀주이소 라는 한 대수의 실없어 보이는 그 웃음처럼
웃음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달리 길이 없다. 양사방으로 쪼여오는 막다른 길목에서
유일하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앗줄이다.
물론 썩은 동앗줄인지 참동앗줄인지
그 설정 자체도 너무 너무 웃기는
하늘에서 베푼 뭐든지 예가 되는 은혜다
이 은혜가 모든 막힌 담을 뻥뻥뻥 뚫어버리는 허물어 뜨리는
발가벗기는 기술 곧 계류의 기술이다.

날로 날로 후패해야 할 껍데기와
날로 날로 새로워 져야만 하는 속사람의 데칼코마니 이중분절이다.

헤 헤 헤 주님은 장난꾸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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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발란스를 잘 보여주는 영화와 ost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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