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소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는 말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목숨과 소유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예수님만 심각하디 심각하다 못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시면서
인간이 소유한 목숨을 목숨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소유화된 목숨이라고 모두 가짜로 취급하시겠다는 의미에서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정작 소유 보다 귀한 생명은 모두 거세당했다는 시선을
예수님 혼자 펼치신다.


아무도 생명의 부재에 대해서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는데
예수님 혼자 오바를 하시면서


생명이 거세 당했다고 한탄하신다.


너희 조상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다고 한다.

내가 주는 만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이미 목숨이 붙어있고
거기에다 상호보완적인 말씀이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따로 예수님의 살과 피 까지 먹어야 하나?


생명이 있는데
목숨이 붙어있는데

더군다나 목숨을 보완시켜 주는 말씀 까지 있는데

도대체 왜 예수는 오바를 하면서 다 죽었다고 취급하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혼자 잘난척을 할까?


아 ~~~ 얄미워 ~~~~


자기 생명이 없으면 또 몰라
다들 자기 목숨이 지숨 지숨 다 붙어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생명을 달라고 구할수 있겠는가?
차라리 소유를 달라고 하는 것이 뭐가 틀렸는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리가 없지 않는가?


이미 목숨은 충분한데 ~~~~


그런데 끝까지 고집스럽게 예수님은
인간을 죽은자 취급해 생명이 없다고 하신다.


너거들은 목숨은 없는채 소유만 가득하구나 라고
혼자 삐딱하게 보신다.


자기가 주는 생명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서 부어주시겠다는 그 생명만을
생명으로 취급하겠다고 하니


누가 받을려고 하겠는가?
주여 저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그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오~~~ 너는 내가 주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구나

그런데 왜 내 백성 이스라엘은 생명을 원치도 받을려고도 하지 않네 ~~~


우리 목숨은 그야말로 쓰레기 취급하시겠다는 취지이다.


그래서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재물을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섬기지 말라고


오로지 예수님의 시선에서만
예수님의 하나님이 거세된냥 외치신다.


그리고 인간 자기 목숨 마저도 재물로 취급하는 그 강박증을
지적하신다.


마귀만을 상대하시기 때문이다.


(요 6:48, 개역)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9, 개역)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개역)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51, 개역)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 6:52, 개역)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개역)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개역)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개역)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7, 개역)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8, 개역)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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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하는 또는 들뢰즈가 말하는 반작용의 힘 보다

더 나은 반작용의 힘을 방금 형님네 누나네 온 가족들과 나누었는데요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기에

내 영혼아 창고를 늘려서 나의 노후를 평안하고 든든히 즐기자 라고 할때

오늘밤 너 영혼 취하면 그 창고 누구것이 되겠니?

남 좋은 일만 했구나

라고 반작용으로써 코너에 몰아 버립니다.

주여 주여 빌라도 손에서 저희가 죽어갑니다 저희들 유대인좀 구원해 주세요

어? 우짜지? 나도 빌라도 손에 죽으러 왔는데?

실로암 망대 무너져 몇명이 죽었는데
하나님께 죄 지어서 벌 받은거 맞죠?

우짜지? 그 다음 차례가 너 인데?

베드로 7번까지 용서 했는데 얼마나 더 할까요?

에라이 꿀밤 7x70 이다
너는 남 용서 할게 아니라, 용서 받아야 할 판국인거 모르니?

이런 반작용(역전의 힘, 거짓의 역량)이야 말로
인간의 원천 근본자리를 상기 시킵니다.

인간은 신앙도 의도 예수도 십자가도 다 소유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작용은 자기 목숨 마저도 소유로 생각해서 소유가치로 따져
목숨 취급도 하지 않는 자기 목숨을

예수님은 자기 목숨 버려
나 보다 더 나의 목숨을 건질려고 십자가에 지셨습니다.

나도 귀하게 취급하지 않는 목숨을
오로지 내 목숨도 소유로만 취급할려고 하는 목숨을

위해 

십자가(도저히 불가능한 믿음-역전)에 달리셨습니다.

이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수 있을까요?

이것이 반작용이지 또 무엇이겠습니까?

나도 내 목숨 귀하게 안여겨 소유로만 취급하면 목숨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시면서 까지 용서를 다 이루십니다.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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