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를 누리기 (섬기심으로 막 즐기기)


내가 성경 말씀을 읽는게 아니다
성경 말씀이 나를 읽는 것이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은 모호하고 미흡하며 흐릿하고 의문만이 맴돌 뿐이다. 소용없다. 목숨을 걸고 읽은 적도 없고, 대충 대충 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눈을 잃어버린다거나? 문맹인이라면 어찌되나? 날때 부터이던 아니면 나중이든
어차피 모호한 것들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 부터 단 한 사람도 말씀을 읽은 자는 없다는 뜻이다.
고로 말씀을 지킨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앞으로도 없다.
이것이 기쁜 소식의 진수이다.

얼마나 기쁜가?

도리어 말씀이 나를 읽을때는 또렷하고 명료하고 완료뿐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죄악을 매일 매일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용서하시고자 모조리 덮어주시겠다고 말이다.
매일 매일 쳐들어 오는 값없는 용서요 모든 허물을 덮는 사랑이다.

그야말로 매일 매일 새롭고, 날로 날로 새롭다.


십자가만 드러내시고자 지독스럽게 악착같이 죄인 중의 죄인으로 만드시는 복음이다.

내가 말씀을 읽겠다는 외설성에
더 나은 외설성인 나의 죄악(예수 믿고 구원받겠다는 탐욕까지)을 낱낱이 까발리겠다는 그 섬기심이


나 보다 옳았다.

이런 비밀(단절, 구별, 차이, 차단, 거룩) 있으면 나와 보라그래????


그는 나 보다 옳았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