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사람의 창조. / 답, 죄인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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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창조

 

할렐루야!

김선생님 주님의 은혜안에서 평안하신지요?

김선생님의 말씀에 감사합니다.

이번주 부터 창세기를 새로 읽습니다.

창세기1장에 사람의 창조는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2장에는 흙으로 빗었는데

이 사람들이 틀린건가요?

울산의 정낙원 목사님은 틀리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침에 묵상을 해봐도 1장의 말씀을 풀어서 2장의

아담이 생긴것 같기도 하고요

이근호목사님도 정확히는 말씀을 안하시는데 설교중 듣다보면 틀린것같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면 예수님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다음에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였다는게 흐름상

문제는 없어보입니다만, 정확한 사실을 알고싶습니다.

제가 공부를 잘 못하는데 성경은 문체 자체가 넘 어려워서 읽기가 많이 제한됩니다.

그래도 은혜를 주시니 주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PS. 그리고 선생님 거기 회원 가입할려면 어케해야합니까?

잘안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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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공부 못하는 놈 중에 하나라서 기대하지 마시길 늘 학교다닐 때 뒤에서만 헤맸으니까 말이죠.

 

그리고 선생이라고 하지 마시고 그냥 대식씨 라고 부르세요

선생은 대부분 사기꾼이니까 저도 마찬가지 사기꾼 중에 하나일 뿐이니

사기꾼 이라고 부르시던지 아니면 대식씨 라고 하던지 둘 중에 하나만 부탁드릴께요.

 

참 어려운 것 물으셨네요 이목사 로도 충분하지 못했나 봅니다.

저야 더 더 모르죠.

(질문을 다시 보니 1장과 2장의 문제네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목사는 창세기를 1장부터 시작할게 아니라

2장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죄로 부터 출발이다는 이유 입니다. 

참 어려운 말인데 죄로 부터 라는 말이 ~~~

그런데 제가 오늘 답변을 단 내용들이 죄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이유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봅니다.

마침 제목도 저렇게 달았구요!!)

 

그냥 제가 그냥 생각한 무식한채 그대로 더더더 어렵게 생각해 보니

그냥 쉽게 이해한 저의 생각입니다. 저의 경험도 있기도 하구요.

 

1 일단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 단어에 우리는 일단 선입견이 있는 듯 해요.

 

2 그 다음 문제는 창세기를 보는 시선을 시작으로 본다는 자체죠.

그야 당연히 창조 라는 처음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고 보니까 말이죠.

 

3 그리고 위에 질문에서 예수님은 창조받은게 아니라 창조자 이지요.

그렇다면 숨어 있는 창조자로써

반대로 보여진 창조를 깨는 입장이다 라고 생각해 보시면

 

자 이 세가지 하나님의 형상

그 다음 창조 라는 시작 또는 아담 인간의 시작

그 다음 창조를 깨는 창조로 보시면

 

창세기로 출발할게 아니라

복음서로 진짜 창조를 시작해 봄이 어떨까 말이죠. 

즉 십자가사건으로 출발해서 보자 말이죠. 


어떻게 보면 창조로 출발이 아니라 종말로 시작하는 셈이죠. 

시작에서 시작하는게 아니라 끝에서 종말에서 시작하자 말이죠. 

복음서 라는 4복음서의 시대적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게 아니라 

십자가 사건으로, 사건으로 출발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창조를 만나는게 아니라 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좀 어려운 말로 창세기를 하나의 인물로 봐 버리자 말이죠.

그렇다면 창세기라는 인물 보다

실상인 예수님이라는 인물로 시작하자 말이죠.

시작 곧 관계성으로 출발하자 말이죠.

처음의 인물인 창세기가 아니라. 마지막 인물인 십자가의 예수라는 인물로 창세기를 보자 말이죠.

 

어찌보면 유대인들은 그래서 모세라는 인물로 출발한 셈이 되는 거죠.

그래서 모세의 제자 또는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우기는데 있어서

예수님의 시작은 오히려 돌들로 시작하는 거죠. 돌 ~~~~

 

(마 3:9, 개역)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아니 누가 돌들로 시작하는 창세기가 어디있겠습니까 ~~ 여러분 ~ (리얼사운드 = 개콘 코너)

 

창조 자체가 무에서 유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아닙니까?

 

그럼 무 상태가 바로 예수님 오시기 전 까지의 유대인의 신앙과

예수님 당시의 무 질서 그 상태를(마귀에게 장악당한 유대인)

어떻게 질서로

무를 깨뜨려서 창조를 하시느냐로 보신다면

 

나의 출발에서 출발하는 시선인 창세기를

왜? 나도 인간이니까

인간의 처음이 창세기 이니까

 

나의 출발에서 보시지 말고

예수님의 출발에서 본다면

오히려 마지막 아담이 처음아담을 어떻게 살리는지를

거꾸로 역순으로 보자 말이죠.

 

자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활동을 거치지 않고 창세기를 본다면

유대인이랑 다를바 없는 시선이다는 겁니다.

어떤 시선이길래?

예수님을 못 알아봐요.

성경 전체를 다 아는데 단 하나 한 인물만 못 보는 겁니다.

이래야 복음입니다. 못알아먹도록 하는 복음.

 

아무리 들따 봐도 그 창세기의 창조자로 에수님이 보이겠습니까?

나랑 별 다를바 없는 그저 하나의 인간이겠습니까?

그것이 복음서에서는

요셉의 아들 아니냐?

 

아 나 요셉 잘 아는데! 

가 ~~~ 아 네 !

가(그 요셉)~~~ 아(아들) 네(이네)!


가가 가가

응 요셉의 아들 가다.

 

즉 지나 개나 다 안다는 식이다는 거죠.

 

이래야 창조가 제대로 개시되는 배경이 되는 거죠.

 

무에서 유 이니까

 

물질로 땅과 흙과 물질이 생겨났다고 창조로 볼게 아니라

나를 깨뜨리는

인간을 깨뜨리는

요셉의 아들 아니가? 나 요셉 잘 알지 라는 그런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것이 창조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존재 합니다 나는 존재 입니다 라고 우기는 그 존재를 깨뜨리는 비존재를 들이대는 것이 창조이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경험한 성화론자들이 늘 입버릇처럼 우려먹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라는 용어인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용어로 사람 기를 팍 죽여요 ~~~ 이거 모르면 천하의 죄인이 따로 없어 ~~~)


하나님의 형상이 과연 그들의 인식에서는 예수님이냐 하는 점입니다.


(빌 2:5, 개역)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개역)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개역)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개역)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개역)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개역)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고후 4:4, 개역)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개역)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7, 개역)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8, 개역)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 1:19, 개역)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 1:20, 개역)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당연히 아니지요.

그 증거가 바로 바리새인(모든 인간의 신앙의 대표자이며 유대인의 대표자)을 통해서 이미 밝혀진 바입니다.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 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절대 하나님의 형상 되면 안된다는 의식에서 십자가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그런 의식이 아니면 십자가라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죠. 반드시 그런 의식이 맞물려야 합니다.

딴 사람은 몰라도 절대 예수라는 죄인은 안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 개념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은 되는데 예수는 절대 안된다는 이 의식이 맞물려서

맞물려야 진짜 하나님의 형상 개념이 등장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창세기를 다시 본다면

 

님의 말대로 또는 하나님의 형상 우려먹는 자들 말대로

첫 아담은 예수님이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을 먼저 창조하셨기에

 

왜 마지막 아담이 예수님이라고 하셨냐 말이죠.

 

아마 이거 질문하면 대답할 자 거의 없을 겁니다.

물론 저도 방금 생각난 거라 모르겠습니다.

 

언어를 기존의 언어를 깨면서 등장하지

보충해 줄려고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첫아담을 보충할려고가 아닙니다.

보충할려고 마지막 아담이 등장하는게 아닙니다.

첫아담의 개념을 깨야

마지막 아담의 사고방식에서 첫아담은 그저 건짐받아야 할 판국에 놓여진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의인(자칭 하나님의 형상)을 부르러 온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거죠.
뭐뭐 아니다 를 반드시 앞에 언급해야 부정의 부정인 거죠. 종말의 종말.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님입니다. 즉 마지막은 예수님이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사고방식이 순서대로 해야 이해가 되지

순서를 거꾸로 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거죠.

 

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 때문에

건짐을 받아야 할 자로써 첫아담이 되는 겁니다.

즉 죄인이 되는 겁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

 

흔히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잘못으로 인해 깨져서

회복할 수가 없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회복함으로써

이 하나님의 형상을 잘못하지 않는 의인의 삶 성화된 삶을 살아감으로 인해

하나님이 형상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식입니다.

 

원인 있는 결과의 해석인 마귀해석입니다.

인간 구원해 주고파서 난리인

 

그러나 복음은 거꾸로 예수님의 형상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어야만 하고

그 선악과를 따먹은 하나님의 형상을 실패한 자에게

전혀 다른 예수님의 형상으로 오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회 하고자 함이 아니라

깨진 도자기 본드 백날 붙여도 처음것이 안됩니다.

원래의 가치가 회복되지 않아요.

 

이미 깨진 것은 깨진 겁니다.

 

또 그 하나님 형상 회복해 본들

선악과에서는 역시나 다시 무너지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결국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은 깨지라고 부어진 겁니다.

율법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저의 일방적인 주장이요 저만의 표현인데

하나님의 형상은 그림자 이다는 겁니다. 의문의 증서처럼

 

오늘 글 올렸는데

진짜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이지 법이 아니다 말이죠.

그럼 하나님 형상 자체는 자신이 깨져서 라도 법이 아닌 사랑을 말하고자 함인데

율법을 어길 생각 안하고 다들 지킬려고 한다는 거죠,

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말씀을 자꾸 지킬려고

안식일을 자꾸 지킬려고 한다 말이죠.

진짜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을 안 쳐다보고

사랑을 보기 싫어하고

 

자기 사랑으로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이나 하고 있더라 말이죠.

자기 사랑으로 우에 우에 해보겠다는 자기성애자들 밖에 안되더라 말이죠. 나르시즘

말씀을 잘 지키는 자기가 미운게 아니라 자기가 넘 이뻐 ~~~~~

하나님 형상 회복운동을 하고 있는 기특하기 짝이 없는 자기가 넘 사랑스러워 ~~~~

안식일을 꼬박 꼬박 어렵게 지키는 자기자신이 대견해 ~~~~

즉 상대적인 그렇지 않은 자는 미운 거죠.

 

그 미움의 1순위가 졸지에 예수님 형상이 되고 말았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사모할수록 예수님의 형상을 삼키더라 말이죠.

 

이 모순점 풀수 있는 수학 박사 있으면 나와보라 말이죠.

없어요.

 

그러니 골치아프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원인 없는 결과로써

예수님의 형상 = 원인 없는 결과 로 출발합니다.

골치아픈 하나님의 형상 = 원인 있는 결과 로 출발하지 말고

 

그래서 마귀는 왜 하나님의 형상 도자기를 왜 깨뜨렸냐고 따지는 겁니다.

그 말에 속아서 겨우 백날 되도 않는 짖인 본드 붙이기를 하더라 말이죠.

 

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어? 이것을 따지는 놈들이 바로 하나님 형상 운운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거 일체 안 묻고

너 나 사랑 하니? 라고 세 번 묻죠.

이것이 예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묻는 물음입니다. 질문 자체가 다릅니다.

 

창세기에서 벌어진 사태를 창세기 자체에서 해결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이 말을 또 오해하던 성화론자는 예수님이 다시 재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다.

첫 번째는 실패했지만 이제는 성공 할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라고 말이죠.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라는 말은

이미 무시험 합격이다는 겁니다.

결과가 온 겁니다.

본드 칠 손때라 말이죠.

인간 숙제 없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원인 없는 결과가 오셔서

 

그 시선에서 창세기를 다시 보니

내(아담) 숙제요

나(아담)의 실수요

나(아담)의 실패

라는 것은 일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 나는 망해야만 했었던 것임을

세례요한은

그는 뭘 해도 흥하고

나는 뭘해도 망해야 한다고 표현된 겁니다.

 

백날 창세기로 리셋해도 재부팅해도 타임머신 타고 가도

절대 수정 회복 원상복귀 불가입니다.

더 좋은 원본이 있거든요.

 

그냥 예수님 보고 기뻐하시면 됩니다.

 

그런 시선으로 보시면

창세기는 모조리 성공 뿐입니다.

실패는 없습니다.

참 좋았더라 라고 지었던 것이 졸지에 인간 때문에 실패했다가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것으로만 점점점 보여줄 뿐이다는 겁니다.

 

그것이 초장부터 개죽음을 당했던 아벨이 봤던 예수님입니다.

아니 창세기의 하나님 형상을 안 보고

왜 예수님을 보냐 말이죠.

 

모세도 자기가 모세오경 창세기를 말해놓고 창세기 볼려고 안하고

예수님을 볼려고 했냐 말이죠.

하나님 형상 자기가 말해 놓고

 

그 이유는 마지막 아담만이 유일한 답이니까

 

아니 지금도 막 전율이 일어납니다.

무슨 수로 어떻게 모세가 예수님을 봤을까요?

그 어떤 연결 고리 없잖아요

모세 오경 백날 들따 봐요

예수님 없어요.

 

아벨은 도대체 어떻게 예수님을 봤죠.

저는 지금 창세기 안 보고 있고 시편을 보고 있는데

창세기를 지금 이 순간 생각만 해 봐도

시편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그렇게 시편 달달 외운 유대인도 못 봤던 예수님을

창세기를 보면 볼수록 예수님 이야기 밖에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이죠.

예수님이 안 보이는 자가 정작 하나님 형상 운운하듯이

백날 들따 봐도 예수님이 안 보여야 하는데

구약 어디를 봐도 예수님 이야기만 나와요

 

이 시선의 간극을 무슨 수로 성화론자와 좁히겠습니까?

오히려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힐수가 없다 말이죠.

  

그래서 창세기는 정작 기록된 하나님 형상 이야기 없어요

그러나 창세기는 정작 문자 단어로 예수님 이야기 단 하나 없어도

오로지 예수님 이야기 밖에 없다 말이죠.

끝에서 역순으로 보니 그렇다는 겁니다.

종말의 종말의 시선에서 보니 말이죠.

 

성경 박사들도, 유대인도 해결 못한 것을 이어받아서 붙잡을게 아니라

미리 답을 보고 창세기를 보시면

온통 십자가의 용서와 피흘리신 예수님 이야기 밖에 없고

그 십자가만 반복이 되더라 말이죠. 사건의 반복 뿐입니다.

 

마치 음악에서 원곡은 사 복음에 있고

변주곡은 구약과 신약에 있다 말이죠.

그래서 원곡 변주곡 모조리 구분 없이

십자가만 무한반복 되듯이 말이죠. 사건으로서 말입니다.

 

그것이 사랑이지

불법에 뛰어드는 사랑이지

 

법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는 자기숙제 밖에 안보이는 겁니다.

그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지 라고 ~~~~

 

심지어 사랑은

성경 단 한번도 본적 없고 지킨적 없고

봐도 모르는 자일지라도

이런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넉넉한 사랑이다는 겁니다.

 

인간과 무관하게 일방적인 선포요 편파 불법 판정 편애입니다.

 

다 이루었다 ~~~~~~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새번역) 『성경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고 기록한 바와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 ㉭창 2:7(칠십인역)』

 

(창 2: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새번역)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히, '아다마' ㉢히, '아담'』

 

늘 저의 답변은 동문서답하듯이 이것이 제가 아는바 본바 느낀 바를 즉흥적으로 그냥 내뱉을 뿐이니

더 좋은 답변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도움 받으시길 ~~~

 

회원가입은 티스토리가 초대장을 10장을 개인에게 제한되게 하더군요

아마 입소문의 방식처럼 홍보를 그렇게 하는듯 한데

누구 도움으로 저도 그렇게 만들게 되었는데

그 양반이 그 초대장을 남들에게 다 뿌렸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없는데

초대장을 소유한 티스토리 주인장들에게 구걸을 해야 합니다.

티스토리 홈에 가면 수시로 초대장을 뿌리는 자들이 있으니

거기서 도움을 받으시길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걸로 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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