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 아시죠? (시편 132)

 

주의 발등상에 놓여진 원수는 수치로~~ 주의 오른팔에 붙잡힌 다윗은 면류관을 ~~~

 


(
132:18, 개역)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2:30, 공동) 다윗은 예언자로서 하느님께서 자기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주시겠다고 하신 맹세를 알고 있었습니다. / 시편 132:11(시편 89:3-4; 2사무 7:12-13 참조).


(2:25, 개역)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26, 개역)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27, 개역)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28, 개역)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2:29, 개역)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2:30, 개역)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2:31, 개역)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2:32,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2:33, 개역)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2:36, 개역)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132:1, 개역)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132:2, 개역)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132:3, 개역)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132:4, 개역)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132:5, 개역)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132:6, 개역)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132:7, 개역)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132:8, 개역)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132:9, 개역)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132:10, 개역)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132:11, 개역)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132:12, 개역)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2:13, 개역)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32:14, 개역)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32:15, 개역)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132:16, 개역)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132:17, 개역)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132:18, 개역)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서 다윗에 대해 언급합니다.

다윗이 주의 얼굴을 항상 뵈었다 라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예수님의 얼굴을 봤을까요?

시차를 무슨 수로 극복했냐 말이죠.

 

극복한게 아닙니다.

그냥 보이니까 본 겁니다.

마치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도 그랬듯이

시차가 1400년이나 나는 모세를 봤고

시차가 900년 이나 되는 엘리야를 봤듯이 말이죠.

이것이 묵시의 세계 곧 예수님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무시 당하기 때문에

천년이 하루 같이 하루 만에 다 봤다 말이죠.

 

그러니 다윗이 예수님의 얼굴을 항상 봤다고

역사적 시선으로 언급하는게 아니라

성령를 받아서 외치고 있는 겁니다.

역사에서는 불가능한 소리이니까 말이죠.

 

그럼 그 주의 얼굴 이라는 기능이 무슨 기능이냐 무슨일을 하시느냐

바로 원수를 발등상으로 즉 짖밟아 버리고

다윗을 오른손으로 붙들어 면류관을 씌우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에서는 나기도 전에 미워하기로 작정된 것을 구체화 시키고
야곱은 나기도 전에 사랑하기로 작정된 것을 구체화 시키는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말이죠.

 

그러니 가인,에서, 사울왕 등등은 예수님의 이 십자가 사건에 반발하도록 되어 있는

마귀의 세계를 보여주고

야곱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떻게 자신에게 밀려들어왔는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즉 죄인을 부르러 오신 구원자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제가 제목을 주님 저 아시지요 라고 했을때에

사실상 시편 139편의 제목이기도 한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어머니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주님 저 아시지요?

인정해 달라 라는 뜻이 아니라 그 정반대인 기능이다는 겁니다.

존재가 아닌 기능이다 말이죠. 기능 곧 사건이다 말이죠.

사건은 십자가만을 말하거든요.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십자가 뿐이니까요

 

인정해 달라는 것은 존재 개념이고요

그 정반대인 기능은

 

태어나기도 전에 당신이 두 패로 가르신 그 십자가의 일을 나타내소서 라는 뜻입니다.

한나의 기도가 그랬거든요. 이스라엘 속에서 이스라엘을 뽑아달라고
마리아의 기도가 그랬습니다. 하늘이 전쟁을 이 땅에 가시화 시켜달라고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비천한 자를 높여달라는 구원전쟁을 요청하는 겁니다.

또 마치 모세가 느닷없이 천년을 하루 같이 천년을 뛰어넘어서 나타나

기껏 한다는 말이 주여 죽어주세요 라고 별세해 주세요 하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니 도덕과 윤리 또는 선함에서는 도저히 나올수 없는 말이다 말이죠.

그 말 딱 한마디만 하는 겁니다.

 

모세가 주여 저 아세요 라고 한다 말이죠.

십자가를 나타내소서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강도의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와

베드로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는 것은

저 죄인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즉 십자가를 나타내소서

주의 십자가의 피를 나타내소서 라는 겁니다.

 

얼마나 뻔뻔하냐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예수님이 듣고픈 말이였습니다.

 

왜 나의 남자다 나의 낭군이다 나의 구세주다 나의 신랑이다 나의 의사다

말을 못해 말을

 

말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말이죠.

예수님 세 번 부인했으니까 더더욱 그 말을 하라고

예수님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말이죠.

예수님의 나의 의사가 나의 구세주다 라고 말 하라고

 

주여 저 아시지요 라고 하라고

 

그런데 마귀에게 속한 교회 속의 바리새인들 곧 사단의 회는

십의 이조 드렸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는 것을 내세우도록 되어 있지

저 세리처럼 주여 저 아시지요 라고 고백을 못 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러니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즉 성전 되신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십자가의 완료가

미래에서 현재로 쳐들어 올때에 반드시 벌어지는 사건이

 

다윗에게 나타남에 있어서

근심하게 된다는 겁니다.

 

(132:1, 개역)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즉 주의 십자가가 나타나야 한다는 근심이다는 겁니다. 즉 고난입니다.

한때 두때 반때

또 이 근심 때문에 공격 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주여 별세해 주세요 라는 외침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주님이 벌리시는 사건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리심입니다.

이 피가 바로 한때 두때 반때 라는 간극을 만드는 겁니다.

여기에 말려드는 것이 바로 애굽왕과 애굽군사들이기에

그들로 인해 영광 받으시는 겁니다.

 

그러니 십의 이조 드렸다는 둥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는 둥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껙 감사한다는둥 등의 고백을 하는 자가 반드시 나타나 주어야 합니다.

이들이 가인의 제사세계에 속한 자들이니까 말이죠.

 

그들과의 차이로 더 나은 제사 곧 십자가의 제사인 주의 인애와 자비를 나타내소서 라는

세리의 고백

세리의 제사

곧 주여 저 아시지요 라는 기능이 존재 보다 앞선 기능이

기능 곧 피를 말하기 위해서 세리가 될 수 밖에 없도록 창세전에 기록된 대로

그 기능을 펼치는 세리가

주여 어서 십자가의 피를 나타내소서 라고 더 나은 제사를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처소 곧 참성전이 나타날때까지

고난 속에 근심 속에 놓여진다는 겁니다.

한때 두때 반때 이다는 거죠.

 

(132:5, 개역)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성소에 들어가니까 악이 잘 되고 가인의 제사가 잘 되고

정작 본인은 하루 종일 손을 깨끗하게 해도 저 악마들이 잘되는 것에 실족해 버렸는데

성소에 들어가니까 경악스러울 정도로

악이 꼬꾸라 지는 것을 보고

본인이 더 놀라는 겁니다.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악이 꼬꾸라 지는 것에 기쁜게 아니라

본인도 마땅히 멸망당해야 하는데

안 죽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는 겁니다.

천사도 감당치 못하는 영광인데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내 쪽의 거룩과 무관하게 족히 비교도 안되는 영광 앞에서 왜 안 타죽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라는 겁니다.

 

도대체 이 무시무시한 심판 아래서 누가 구원 되겠냐 라는 겁니다

그러니 악의 번영의 실족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 주의 십자가의 은혜가 보통 보통이 아닌 경악 스러울 정도로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주심이다는 겁니다.

 

그 성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고난 받는 것은

참고 견디고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스러울 정도로 이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는

뻔데기 앞에서의 주름일 뿐이다는 겁니다.

족히 비교도 할 수 없다 라고 할 정도로

충격적인 십자가의 용서이다는 겁니다.

 

우리는 설렁 설렁 십자가의 피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용서를 외치지만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정도로 불편한 거룩이니

보통 잔인한게 아닌

갈기 갈기 찢으시는 내어주심이다는 거죠.

 

그것을 봤으니

베드로가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시잖습니까 라는 고백은

그야말로 약한 축에 해당된다 말이죠.

이 약한 고백도 감당 못하는 인간인데

오죽 하면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공격할까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주여 저 아시지요?

 

이것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는 고백입니다.

충격적인 십자가에 충격적인 증상인 고백이다 말이죠.

 

그러니 성소가 나타났으니

어두움을 빛을 이길수 없다 라는 모든 종교가 외치는 말을

박그네는 문재인을 이길수 없다 라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악은 선을 이길수 없다 정도가 아니라

 

(문재인: 바리새인; 민주주의)과 악(박그네: 독재: 로마)

이 둘이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꼬 할 정도로

 

이 예수님이 나타나야 이 하나님의 처소가 나타나야

번제와 제사 라는 의문의 마침으로써

 

인애와 자비 곧 주의 십자가가 나타남으로써

 

주의 발등상에 숨어있던 원수가 놓여지고

주의 오른팔에 다윗이 붙잡힌 바 됨으로써

 

주님 자신의 영광을 자신이 이루시는 겁니다.

창세전에 기록된 바를 말이죠.

 

다른 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록되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러니 주님 저 아시지요 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겁니다.

주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바를 나타내소서

그것만이 주의 책에 기록이 되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눈물 흘리면서 기쁘세 주의 병에 담아

주의 책에 기록된 것은 이 십자가 뿐이라고 외치는 겁니다.

 

(56:8, 개역)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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