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전쟁 아마겟돈과 도망치는 큰 성 바벨론 (16: 8-21)


 

(16:8, 개역)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16:9, 개역)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6:10, 개역)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6:11, 개역)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16:12, 개역)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6:13, 개역)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6:14, 개역)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6:15, 개역)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16, 개역)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16:17, 개역)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16:18, 개역)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6:19, 개역)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16:20, 개역)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16:21, 개역)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16:8, 새번역)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다 쏟았습니다. 해는 불로 사람을 태우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16:9, 새번역) 그래서 사람들은 몹시 뜨거운 열에 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재앙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고,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16:10, 새번역)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괴로움을 못 이겨서 자기들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16:11, 새번역) 그들은 아픔과 부스럼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16:12, 새번역)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프라테스에 쏟으니, 강물이 말라 버려서,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마련되었습니다.

(16:13, 새번역) 나는 또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와 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6:14, 새번역) 그들은 귀신의 영으로서, 기이한 일을 행하면서 온 세계의 왕들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 대비하여 왕들을 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6:15, 새번역) ("보아라,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며, 자기의 부끄러운 데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 , '자기 옷을 지키다'

(16:16, 새번역) 그 세 영은 히브리 말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습니다.

(16:17, 새번역)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니,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다 되었다" 하는 큰 음성이 울려 나왔습니다.

(16:18, 새번역) 또 번개가 치고, 음성들이 나고, 천둥이 울리고,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이런 큰 지진은 사람이 땅 위에 생겨난 뒤로 일찍이 없었던 것입니다.

(16:19, 새번역) 그리고 그 큰 도시가 세 조각이 나고, 민족들의 도시들도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큰 도시 바빌론을 기억하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독한 포도주의 잔을 그 도시에 내리시니,

(16:20, 새번역) 모든 섬들이 사라지고, 산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6:21, 새번역) 그리고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 위에 떨어지니, 사람들은 우박의 재앙이 너무도 심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일곱 인으로 비밀을 공개하고

일곱 나팔로 공격대상을 정한후 일제 공격 ~~~~

그리고 일곱 대접에서는 심판을 퍼붓습니다.

 

증거궤(십계명 두돌판, 아론의 싹난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메고
여리고성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들과 싸우는 이스라엘 말이죠.

 

(32:2, 개역)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2:28, 개역)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32:28, 새번역)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 , '그가' '하나님과 겨루다' 또는 '하나님이 겨루시다'

 


바로 이 일곱이 바로 주의 인자하심입니다
.

곧 예수님이 바로 일곱이신 창조주로써

이 창조된 세계를 허물어 버리시는 주체자로써 일곱으로 나타나시는 겁니다.

이미 다 이루신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헌 것을 허무시는 겁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첫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심판을 퍼붓고, 모든 인간의 출처인 땅을 심판

둘째는 바다, 바다 재는 왜 저럴까앙

셋째는 강과 물

 

(114:3, 개역)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114:4, 개역) 산들은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 같이 뛰었도다

(114:5, 개역)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114:6, 개역) 너희 산들아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 같이 뛰놂은 어찜인고

(114:7, 개역)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114:8, 개역)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오늘 나오는 넷째는 해 곧 태양에게 눈 코 입 다 ~~~ 심판을 퍼붓습니다 ㅋㅋ

다섯째는 짐승의 보좌, 국가 나라죠

여섯째는 큰 강 유브라데(유프라테스)에 대접을 부으니까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튀어나오더라 말이죠. 국가의 왕을 모으는 정치죠.

광야에서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인 모든 영광을 주겠다는 이유가 바로 이 이유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시험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인간은 다 마귀의 유혹에 끌려 예수님을 대적하도록 평생이 각본대로 짜여져 있습니다.

탕자를 미워한 맏아들이 바로 금가락지 곧 예수님의 피 발라주심이라는 긍휼에 대해 공격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일곱째 천사는 공기 공중에 대접을 부음으로써 다 되었다 라고 아 이제 다 대접을 다 부었네 라고 한다 말이죠.

 

바로 이 심판 속에서, 철거작업 속에서 긍휼을 얻은 자가 바로 새노래를 부르는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명인데

 

이 십사만 사천명 외에는 짐승의 표를 받았기에
원망 할 수 밖에 없도록 내어버려둠을 당하는 겁니다.

 

(롬 1:16, 개역)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7, 개역)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8, 개역)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9, 개역)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개역)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1, 개역)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개역)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개역)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4, 개역)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1:25, 개역)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 1:26, 개역)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개역)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8, 개역)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9, 개역)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롬 1:30, 개역)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 1:31, 개역)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32, 개역)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오늘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이 나오는데

바로 세 영 곧 용 짐승 거짓선지자가

아마겟돈 이라는 장소에 왕들을 모은다고 합니다.

 

바로 용 짐승 거짓선지라 라는 세 더러운 영이

모든 인간의 인생을 예수님을 훼방 하도록 만들어서

그들의 삶의 방향을 아마겟돈으로 맞추도록 한다는 겁니다.

 

인간은 그저 진리가 무엇인지 관심도 없습니다.

조금 찾아나선 때도 있었지만 그단새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 일상은 오로지 생존에 달려 있습니다.

평생을 그들의 근원인 땅만 갈구어 살도록 말이죠.

하늘에 본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괜히 마귀가 이스라엘 유대인을 세가지 시험으로 장악한게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방향을 아마겟돈이라는 장소로 모으듯이


돌이 떡 덩이 되게 하고 곧 경제
, 땅에서 흙에서 돌에서 못 벗어나도록 말이죠.

그 의문을 반복케 만듭니다.

 

또 거룩한 성전에 뛰어 내려 천사가 손으로 받쳐주도록 하게 하는 곧 기적, 종교죠

오로지 인간들에게 소통되는 것은 666이라는 종교와 국가 곧 짐승의 수만 소통케 하는 거죠.


또 온 천하 만국의 영광을 받아 절하게 하는 곧 정치

이 땅을 하늘의 천사들의 공격으로부터 사수하라 라는 겁니다.


이 세가지로 인간을 장악한 이유가

짐승의 표 666으로 의문의 것을 반복케 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그리고 아마겟돈으로 모읍니다.


괜히 사울왕이 이스라엘을 장악한게 아니다 말이죠
.

이 이스라엘을 저 예수로부터 사수하라 라는 겁니다.

예루살렘을 예수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라 라는 겁니다.

천국이 침노 당한다 라는 거죠.

 

그들의 에너지가 바로 경제요 종교 곧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이것으로 소통되는 나라가 사울왕이 장악한 이스라엘

마귀가 장악한 유대인이라는 겁니다.

그 마귀가 다시 예수님을 이 세가지로 시험하는 거죠.

 

아히멜렉 제사장이 사울왕에 무릎꿇어 절하지 않음으로써

졸지에 이 한 사람 때문에 가족들 그리도 동료 제사장

그리고 그에게 배우는 레위인? 신학생들? 제자들? 다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다윗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말이죠.

 

왜 이 사건을 기록하신 것일까요?

 

인간은 이런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방향이 메트릭스처럼

어디로 질질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이 한 사람 사울왕이 뭐 그리 대단해서?

그런데 이 사울왕이 괜히 뽑힌게 아니다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뽑은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 됨을 원치 않아서

결국 인간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눈에 보이는 자기자신과 같은 인간 왕 말이죠.

 

사울왕이 처음에는 성령을 받았다가 다시 악령을 받아서 그의 삶의 방향은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삶의 방향으로써
그 장소 아마겟돈으로 향하게 되더라 말이죠
.
괜히 다윗을 죽일려고 달려드는게 아니다 말이죠.

곧 예수님과의 전쟁입니다.

 

아니 왜? 예수님께서 세상을 악하다고 하셨다 말이죠.

인간의 원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원수입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훼방하고 회개치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탕자를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에 반기를 들기 때문에

전쟁을 벌리는 것이다 말이죠.
그래서 인간 왕들을 집결 시키는 겁니다. 아마겟돈에 말이죠
.

 

맏아들이 탕자를 미워한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발림의 증거인 금가락지 라는 긍휼에 돌아버리는 겁니다.

 

맏아들인 이스라엘 유대인도 이런 판국인데

모든 인간의 대표성이 이런 판국인데

다른 민족은 어떨까요?

 

(14: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예수님이 외치셨을때에

모든 인간의 본색이 드러나는 겁니다.

 

예수! 너는 길이 아니야 그것을 증명해 줄게

예수! 너는 진리가 아니야 그래서 십자가에 죽임당하게 될 거야

예수! 너는 생명이 아니야 그래서 절대로 3일만에 다시 못 살 거야

그런 허망한 소리 집어치워

 

성전을 헐고 3일만에 짖는 자여

왜 너 자신을 구원 못하면서 남을 구원할려고 하니? 라고 비웃는다 말이죠.

 

이미 세상에 왕이 있고 그 왕들이 오로지 개구리처럼 자기 입만을 위해

먹고 먹고 또 먹고 선악과를 따먹었듯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면야 뭘 못 먹겠냐 말이죠.

먹는 것처럼 가장 쉬운게 어디있냐 말이죠.

먹음직 스럽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 까지 한 판국이니 뭐

 

그러니 예수님이 생명이 될 수 없다는 거죠. 진리가 될 수 없다 말이죠.

길은 무슨 길

그런 예수님의 길을 따라갔다가는 십자가 라는 개죽음만 당할 뿐인데?

 

에라이 그냥 예수도 죽음으로 삼켜 잡아 먹으면 된다 말이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먹은 판국에

하나님과 같이 된 판국에

선악과의 단점이 죽는다는 것 하나님은 되었지만 죽어야 하니 원

이 단점을 보완해 주는 영생

이제 영원한 생명까지 먹으면 되니 생명나무 따먹지 뭐

예수 까지 까짓꺼 잡아먹지 뭐

겉으로는 개구리가 아니지만 고상한 척하는 식인종이 아닌 존경받는 자로써 대로에서 기도하는 자 이지만

속으로는 다 개구리이다 말이죠. 그 개구리 입을 가진 용 짐승 거짓선지자가 다 삼켜버리고 장악해 버리는 겁니다.

개구리 하니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괴물 뭐든지 다 잡아먹는 개구리처럼 변하는

가짜 금으로 유혹해서 잡아먹는 그 개구리 입이 바로 용 짐승 거짓선지자의 입과 같다는 겁니다.

이들은 뭐든지 다 입으로 다 가지고 가서 다 삼켜 잡아먹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잡아 먹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말이죠.

더러운 세 영이 모든 인간의 삶의 방향을 이렇게 몰아간다 말이죠.

오로지 자기를 위하여(우상) 살아라 라고 말이죠. 자기 입 개구리 입

 

그러니 이 일곱 대접을 퍼붓는 천사들의 활동은

마치 사도행전 성령행전처럼 십자가 사건의 재반복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 전쟁입니다.

 

즉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았으니라

이미 받았다는 티를 팍팍 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래서 성도를 가지고 사건을 만드시는 겁니다.

바로 성도와 선지자의 피흘림 사건 말이죠.

십자가 사건의 확장 증폭이다 말이죠.

 

얼마나 영광 스럽습니까?

그 기쁨의 십자가가 매일 매일 펑펑 터지게 되니

불꽃놀이처럼 매일 매일 잔칫날이니까 말이죠.

 

그 확장 속에서 사도바울이 주께로 돌아왔다 말이죠.

얼마나 십자가가 밝히 보였으면 어두운 자식 바울도 주께로 돌아올정도로

너무 너무 또렷했다는 겁니다.

아마겟돈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이켰다 말이죠

너가 핍박하는 이단 나사렛 예수님을 만난 것 밖에 없는데 말이죠.

회개 했다 말입니다. 돌이켰다 말이죠.

 

어디 사도바울 뿐이였겠습니까?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을 돌이키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다 아마겟돈으로 향하는 삶 뿐이였다 말이죠.

 

그 정도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자 그럼

왜 이런 사건이 벌어져야만 하는 가

왜 십자가가 나에게 밝히 보이는 것일까?

그래서 눈이 가버렸거든요

 

혈과 육의 싸움이 보이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원수를 보게 되어버렸다 말이죠.

악한 영들에 대한 주님의 전쟁 말이죠.

 

(2:2, 개역)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2, 새번역)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6:12, 개역)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6:12, 새번역)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여러분의'

(6:12, 공동)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6:12, 쉬운) 우리의 싸움은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두운 세력들과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즉 너 도대체 뭘 보냐 라는 겁니다.

욥기서처럼 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알긴 아느냐?

모르지! 모르면서 왜 아는 척 하느냐 쥐뿔도 모르면서

이젠 눈까지 멀어버렸으니 더더욱 단절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이제 아는 것 다 까먹고 알아놓은 것 벌어놓은 것 까먹어가면서 살아가야 할 판국인

눈 먼 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아예 안 보인다 말이죠.

 

눈으로 봐야 길을 찾고 봐야 진리를 탐구하고 봐야 생명을 바라볼 것 아니냐 말이죠.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광명한 영광의 빛에 의해 천사도 여섯 날개로 가려야 할 판국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죽어야 함을 알게 되었듯이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죽어야 할 판국에 놓여진 겁니다.

눈이 멀어 주여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묻지만

옆의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안보인다 말이죠.

주여 도대체 당신 누구요?

 

? 너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22:8, 개역)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22:1, 개역)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22:2, 개역)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22:3, 개역)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22:4, 개역)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22:5, 개역)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22:6, 개역)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22:7, 개역)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22:8, 개역)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22:9, 개역)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22:10, 개역)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22:11, 개역)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아마겟돈으로 향하는 바울의 발걸음을 꺽어버리는 예수님의 피발림이 아니였다면

바울은 어떻게 되었겠냐 말이죠.

 

그래서 실로암소경처럼 만들어서

오로지 예수님만 보이도록 하게 하니까

이제 영의 싸움을 보게 되는 겁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말이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 말이죠.

 

이미 승리한 전쟁 아닙니까?

큰 성 바벨론이 도망칩니다.

 

시편 114편에 바다야 왜 도망치니?

산들아 왜 놀라 펄쩍 펄쩍 뛰니

땅들아 왜 벌벌벌 떠니

 

(114:1, 개역)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114:2, 개역)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114:3, 개역) 바다는 이를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며

(114:4, 개역) 산들은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 같이 뛰었도다

(114:5, 개역)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찜인고

(114:6, 개역) 너희 산들아 수양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 같이 뛰놂은 어찜인고

(114:7, 개역)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114:8, 개역)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시편
149편에서 승리의 노래 할렐루야 송 song

초반부는 애굽으로 부터의 전쟁 승리가로

후반부는 바벨론으로 부터의 전쟁 승전가로

그 승전가인 원수들로 부터 구원받은 새노래를 언급한다 말이죠.

 

자 그렇기 때문에 왜 자꾸 성도를

애굽의 전쟁 그 옛날에 끝난 전쟁을 자꾸 재현시키고

바벨론 전쟁 그 옛날에 이미 종식된 전쟁을 자꾸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터트리시는 이유는

곧 십자가의 피 용서의 재현입니다.

 

너가 잘 믿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피 흘리신 십자가를 말하기 위해서

다시 피 용서를 보여주시고자 말이죠.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잖아요

뭘 해도 죄도 뭘 해도 다 실패했지만
그래서 일곱 심판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주님의 십자가의 피 전쟁을 보여주심으로써
원수를 보여주심으로써
이 피만 자랑케 만드시는 겁니다.
이미 넉넉히 승리했기에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노래하는 
아무도 못 부르는 새노래를 말이죠.

 

그 정도로 넉넉하기에 주님은 이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이미 완료되었지만 다시 새록 새록 설레이는 그 사랑에 푹 젖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죠

 

너무 너무 또렷한 십자가 이기 때문에

또 밝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흐릿한 의문의 것에 빠질 때 마다

또렷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왜 유혹에 빠지냐고

또 건져주시는 출애굽 전쟁, 큰 성 바벨론이 도망치는 전쟁을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또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럴 때 마다 안보이던 원수가 보임으로써

주님의 활동을 그 피의 위력을 실감케 되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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