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이 있는, 구름 타고 오신 이를 볼찌어다 (1: 7- 8)

계 03 행함이 있는, 구름 타고 오신 이를 볼찌어다 (계 1, 7-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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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11:2, 개역)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1:3, 개역)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1:36, 개역)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11:37, 개역)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11:38, 개역)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11:39, 개역)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11:40, 개역)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2:1, 개역)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2:2, 개역)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7, 개역)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8, 개역)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1:7, 새번역)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 7:13 12:10

(1:8, 새번역)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염두하고서

구름타고 오신 예수님을 나누고자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서 얼마나 사기를 치는고 하니

그 정도로 앵벌이처럼 인간의 행함과 실천을 요구하는

강요된 선택으로써

목사들의 탐심이 반영이 되어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졌기에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요 하는 겁니다.

문자로 말이죠

그런 존재가 되어라고

행함 곧 역사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번제와 제사를 추구하니까(역사)

인애와 자비를 거부하는 겁니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시 곧 기능을 거부하니까 말이죠.

믿음을 거부 예수님을 거부하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말이죠.

 

더 놀라운 점은 예수님은 제사와 번제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

곧 상한심령을 원한다고 했잖아요

아니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사기를 치는 목사들이

성도 중에 상한심령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피해볼려고 발악을 해요 글쎄 ㅋㅋㅋㅋ

강도만난 자를 피해버리는 제사장 레위인처럼 말입니다.

부정한 자를 만지면 안된다는 율법 지킬려고 말이죠. 번제와 제사를 지킬려고 말이죠.

 

아니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메?

 

부정함을 만져야 행함이 있는 믿음 아닙니까?

 

번제와 제사를 지키는 행함이, 그런 행함이

행함이 있는 믿음 에서의 행함 일 것 같으면 벌써 했다 말이죠.

욥이 그랬잖아요

회개 하라고 다구치는 세 친구들에게

그런 것이 회개일 것 같으면 벌써 했다고

다윗도 신하가 도저히 납득이 안되어서 질문할 정도였다 말이죠.

아니 좀 전까지만 해도 눈물 회개 금식 기도 4종 세트로 행하시더니

지금은 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시냐고?

? 예수 당신은 먹보에 술꾼에 세리 매국노와 죄인의 친구이냐고?

? 막 사냐고?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7:34,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11:19, 현대어) 나 인자가 잔치자리에 가서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는 `보라,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들과 돌아다니는 사람이다'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그 행한 일의 결과로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

 

 

누가 잔칫날에 우냐 말이죠?

혼인잔칫날에?

 

오히려 애곡하는 날에는 울지도 않고

또 피리는 부는 날에는 춤추지도 않는 것이

행함의 달인 유대인이다 말이죠.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7:32, 개역)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여러분 제발 막 사세요

물론 충분히 지금 막사시고 계시겠지만 ㅋㅋㅋ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거든요.

 

막살지 않으면, 막사는 (유대인, 성화론자, 개혁주의자) 인간들에게 치여 낙담하게 됩니다.

시편 저번에 언급했지요

밤낮으로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손씻고(73) 두루마기를 빨고 빨아도

그만 낙담하여서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고 앓아 눕게 되더라 말이죠

악인이 저렇게 하나님을 욕하고 주의 백성을 괴롭히며 살아도

죽어도 너무 너무 잘 죽어요 글쎄

그러니까 낙담해서 실족해 넘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22:14, 개역)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아 그런데 성소에 들어가게 되니까

예수 안에 들어가니까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성전이 없는 예수님이 참성전이신 그 진짜 성전 어린양 속에

참성전 속에 들어가게 되니까

물론 이 성소도 자기 발걸음으로 들어가거나 계단 올라가듯이 자기 걸음으로 가는게 아니라

스캐너처럼

엑스레이 촬영처럼

예수 라는 문이

그 성소가 뚜벅 뚜벅 걸어와서

나를 통과해 버리는 겁니다.

나를 스캔 하더라 말이죠.

공항에서 몸 수색할때에 지뢰 탐지하듯이 탐지기를 몸 구석 구석에 스캔하면

갑자기 띠 띠 띠 거리면 통과 못하는 물건을 걸러낸다 말이죠.

 

그런데 예수 라는 문이 나를 통과 해버리면

내가 예수 라는 문에 들어가면 띠 띠 띠 거리면서 통과를 못하는데

예수님이 나를 통과 해 버리면

띠띠 소리가 안나요 글쎄

 

통과할 자격이 있나요?

없잖아요

거룩하지도 못하거든요.

단 한 개라도 걸리면 띠 띠 거린다 말이죠.

 

완벽한 거룩이 아니면 안되요

일곱이라는 완벽한 거룩이 아니면 안된다 말이죠.

 

십계명은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안 걸리는 인간이 없도록 한 거다 말이죠.

뭐 하나가 반드시 걸리도록 된다 말이죠.

1 계명부터 이방인 우리는 탈락이다 말이죠.

그럼 유일하게 유대인만 이스라엘만 이 1 계명부터 안 걸려야 하는데

이스라엘 11지파 다 탈락

나머지 유다 지파만 유일하게 남았는데

1 계명 부터가 유대인도 안되는 판국이더라 말이죠.

 

예수님을 죽였으니 뭐 말 다 했죠 뭐

 

자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반칙을 벌립니다.

부정한 행동을 해요 글쎄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 코 앞에서

매국노 세리를 용서하고

창녀 강도 죄인을 영접하더라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처럼 불의한 재물에 충성을 해요 글쎄

 

십자가라는 부정한 저주에 충성을 해요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이 부정성 자체가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는 겁니다.

예수님 자체가 행함이 있는 믿음이예요

예수님 자체가 믿음이다 말이죠.

 

불의한 것에 충성치 않는데 누가 정결한 것에 충성하겠냐 말이죠.

 

(16:10, 개역)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6:11, 개역)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부정함을 만지지 않는데 누가 인애와 자비를 증거하겠냐 말이죠?

강도만난 자를 냅뚜고 정결한 율법을 지키겠다고 도망치는데?? 제사장 레위인처럼???

 

이 불의한 재물이라는 십자가에 충성하시는 분이

사랑의 예수님 이다는 겁니다.

이 성소 이 예수님 속에 들어가 보니

 

죽음을 너끈히 이기시는 분이다 말이죠.

? 사랑이니까

 

죽음을 못 이기는 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다 말이죠.

 

우리가 다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쳐다본 자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덮혀씌기를 당해서

완벽한 거룩이라는 일곱이 오른손으로 붙잡아서

거룩한 옷, 그리스도의 흰 옷을. 피 옷을 뒤집어 씌어서

덮혀씌기는 한글 문서 hwp 작업 해 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똑같은 제목의 파일이 있는데

내용을 수정해서 덧씌우기를 하는 거거든요.

 

우리는 행함이 없어요.

완벽한 거룩이 없어요.

1 계명부터 벌써 브레이크 걸려서 넘어서질 못해요

바리새인을 넘어설 자가 없어요.

그런데 반칙으로 주님 쪽에서 바리새인을 넘어서 오시더라 말이죠.

이 불의함에 충성하시는 겁니다.

 

이것만을 행함이라고 하는데

그 행함을 예수님이 하셔놓고서는

우리 보고 했다고 덮혀씌기를 하는데

반칙을

불법을 저지르시는데

이 부조리가 이 십자가가 옳았다는 겁니다.

 

그 예가 바로 야고보서에 나오는 세 사람

아브라함이 이삭 바치는 행함

그리고 기생 라합의 거짓말로 정탐꾼을 숨겨주는 행함

그리고 엘리야가 비오지 않기를 36개월 동안 비오지 않도록 기도하는 행함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그 예로 들었다 말이죠.

그러니 엉터리로 말하는 자에게 속지 말라고 하신 예를 든 것인데

결국 다 속고 있지요.

 

행함이 있는 믿음을 사기치는 자는

놀랍게도 행함이 있는 믿음을 추구하는 자들이 사기를 치지

관심도 없는 자들은 사기를 안 친다 말이죠.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 환장하거든요.

 

어떤 유명한 목사는 아브라함이 이삭 바치는 것을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서

혹시나 따라 할까봐 원본을 고쳐버립니다.

이해가 되면 그게 성경입니까?

목사도 안되어야 그게 정상적인 성경이다 말이죠.

 

교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교인들이 따라할까봐 ㅋㅋㅋㅋ

 

인신 제사 바칠까봐?

이게 아브라함으로 끝나지 않고

입다가 이름 없는 자기 딸도 그렇게 하거든요.

그러니 골치 아파요

교인들을 잘 인도해야 하는 지도자 이니까

그것에 대한 책임을 가졌으니까 말이죠.

 

실제로 이런 행동 하는 자들이 무지 많거든요. 종교성이 강한 한국인이라서

 

그 목사가 누구나 다 아는 속물 목사가 아니다 말이죠.

오히려 그런 자들을 가장 앞장서서 비판하는

소위 요즘 말로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의식있는 목사가 말이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말이죠.

 

그러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이 이해가 될 리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되거든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다 말이죠.

 

말 되게 할려고 하니까 막히더라 말이죠.

모순을 넘어설수가 없어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바로 이 모순이 바로 행함이 있다 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완벽한 거룩이 아니면 다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그 모순, [행함이 있음]이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데 바로

 

구름입니다.

 

구름이란 심판자를 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증상입니다.

구름이 깔리면 하나님이 오신다 라는 겁니다.

심판자의 증상물로써 구름이 사라지는 매개자 아니 매개물로 동원이 되는 겁니다.

 

마치 모세 앞에 가시떨기 나무에 불 붙은 여호와의 불의 증상물이

가시떨기 나무이듯이

구름이 그런 증상물입니다. 기능입니다. 존재가 아니라.

 

자 그럼 구름 타고 오시면 아 심판주가 왔구나 라고

이 구름이라는 선발대를 통해서

아 곧 오시구나 라고 알고 준비를 할꺼다 말이죠.

 

그런데 졸지에 구름이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닌

비존재처럼 비일까 말까 보일까 말까

듣낄라 말라 하는 미세한 음성, 세미한 소리

 

 

(왕상 19:9, 개역)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10, 개역)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 19:11,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 19:12, 개역)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 19:13, 개역)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14, 개역)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아주 아주 작은 비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미량으로 왔다 라는 겁니다.

다들 무시하는

잉여로 말이죠.

어린아이의 찬양으로 왔다는 겁니다.

그게 구름이다 말이죠.

 

그럼 사람들은 준비를 할까요?

심지어 구름이 증상물이니까

그 실상이신 예수님 마저 심판주로 볼까요?

 

 

시편에서 길거리 지나가다가 아들을 만나거든

입 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진노가 덮친다고 합니다.

녹음파일에는 14절이라고 했는데 시편 212절입니다.

12절 까지 밖에 없습니다. 수정합니다.

 

(7:36, 개역)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7:37, 개역)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7:38, 개역)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7:39, 개역)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7:40,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7:41, 개역)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7:42, 개역)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7:43, 개역)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7:44, 개역)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7:45, 개역)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7:45, 새번역)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7:45, 공동) 너는 내 얼굴에도 입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맞추고 있다.

(7:45, 쉬운) 너는 내게 입맞추지도 않았지만, 이 여인은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쉬지 않았다.

(7:45, 킹흠정)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였고

(7:45, 현대인) 너는 나에게 입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계속 내 발에 입을 맞췄다.

(7:45, 현대어) 너는 내 얼굴에도 입맞추며 인사하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거듭거듭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2:11, 개역)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아니 뭘 보고 아들인지 아닌지를 볼수 있겠냐 말이죠.

시편 달달 외우는 유대인은 못 하는데

누가복음 7장에서 그런 유대인들로부터 정죄 당하는 향유를 부은 여인은 하더라 말이죠.

이게 행함이 있는 믿음인데

바로 그 분이 무엇을 하는가를 보고서 나오는 겁니다.

즉 행함을 본 겁니다.

믿음을 본 겁니다.

 

어떤 믿음 어떤 행함

 

바로 전쟁입니다.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14:32, 개역)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14:23, 개역)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14: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14:25, 개역)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14:26, 개역)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14:27, 개역)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4:28, 개역)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14:29, 개역)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14:30,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14:32, 개역)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14:33, 개역)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4:34, 개역)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14:35, 개역)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화평케 하는 자만이 전쟁을 종식 시킵니다.

의문의 반복을 마치게 합니다. 끝 장 내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화평 평화가 없어요.

막힌 담을 헐지 못해요

 

(2:12, 개역)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3, 개역)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2:14, 개역)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

 

안 그러면 역사, 역사 우겨요 1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다 라고만 우려먹는다 말이죠.

날 때부터 소경인 나의 어두운 눈도 못 지키는 의문의 모세를 주장해 버리는 겁니다.

 

 

아기 예수님을 높이면서 이 아기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흥함과 패함의 비방받는 표적이 된다고 외쳤다 말이죠.

그러니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볼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2:25, 개역)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26, 개역)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27, 개역)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28, 개역)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29, 개역)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2:30, 개역)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2:31, 개역)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2:32, 개역)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2:33, 개역)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2:35, 개역)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심지어 마리아가 기도할때도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시는 전쟁을 벌리시는 분이라고 기도했다 말이죠.

 

(1:46, 개역)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1:47, 개역)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1:48, 개역)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1:49, 개역)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1:50, 개역)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1:51, 개역)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1:52, 개역)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1:53, 개역)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1:54, 개역)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1:55, 개역)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이게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곧 진짜 전쟁을 벌리는 자를 외치는 겁니다.

전쟁 벌려주세요 라고

혈과 육의 전쟁 말고

십의 이조 드렸다는 둥 그딴 심판 말고

제발 불쌍히 여겨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제대로 된 심판을 벌려달라고

기생라합처럼 마리아가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니 먼저 그 전쟁이라는 심판의 주, 심판자의 증상물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누구처럼? 무엇처럼? 바로 구름처럼

어 없는데? 안 보이는데

그래서 다들 무시하잖아요.

짐승 밥통에서 났는데

구름은 무슨 놈의 구름????

구름으로 타고 오시면

바리새인도 다 영접하지요.

마귀도 말이죠.

 

그런데 구름이 안 보이네?

? 심판주? 웃끼고 있네 심판은 무슨 놈의 심판

입 맞추기는커녕

심판주라고 우기고 다닐까봐 정신병원에 보낼려고

친척들이 다 달려드는 겁니다.

 

(3:21, 개역)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3:21, 새번역)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3:21, 공동) 이 소식을 들은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러 나섰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판 주는 무슨 ~~~~

친척도 안되는 판국에 ~~~~~

 

십자가를 마귀가 바리새인이 거부해 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기생라합에게 덮쳐진 십자가의 피로 인한 시선은

전쟁을 벌리시는 심판주로 봤기 때문에

유일하게 이 원수들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전쟁자로 보고 있으니

얼마나 기쁘냐 말이죠.

 

전쟁만이 유일한 구원이거든요.

 

그것을 전능자 라고 한다 말이죠

 

(1:8, 개역)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존재가 아닌 기능

전쟁을 벌리신다는 자체가 이미 승리했다는 겁니다.

이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이 바로 전능자

계시록 22장에서는 새벽별

 

(22:16, 개역)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어두운 밤을 통과한

아침의 주의 인자하심이다는 겁니다.

 

무조건 이유 없이 이미 승리했다는 겁니다.

평화 화평케 했다는 겁니다.

 

새벽을 맞이하게 해 주시는 분

그것이 시편에서는 인애하심 인자하심이고

성실하심은 전쟁을 벌리는 밤에

출애굽 애굽을 작살내는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는

그 빛을 밤에 또렷하게 밝히 보이는 빛을 보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이 말이죠.

그 밤을 통과해서

아침은 인자하심 곧 새벽을 아침을 맞게 해주시는 분이다는 겁니다.

 

이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을 펼치는 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곧 전쟁이라는 부정성 또는 심판성을 펼치는 분이다는 겁니다.

 

그 분을 보고 입맞추래요 글쎄

 

그런데 구름을 안 탓네???

구름이 안 보이는네?

 

그런데 그 구름이

그 심판주의 증상물이 글쎄

비이지도 보이지도 듣기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소경 문둥병자 귀머거리 앉은뱅이 이들에게만 나타난 희년처럼

실로암 소경 문둥병자 창녀 세리 강도 기생라합이 글쎄 구름으로써

그들 등 위에 타시고 등장하시는 겁니다.

 

과연 누가 심판주로 보겠냐 말이죠.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 구름들이 외쳐요 글쎄

 

허다한 구름

 

허다한 증인들이 말이죠

 

(12:1, 개역)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2:2, 개역)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죽하면 말릴수가 없다 말이죠

세상이 감당 못해요

새상이 견디질 못해요.

막을 길이 없어요.

이 다 이루었다는 십자가를 막을 수가 없어요.

감당이 불 감당이다 말이죠.

 

(11:38, 개역)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11:39, 개역)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11:40, 개역)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더라 말이죠.

죽여도 뽁아도 삶아도 톱으로 짤라도

막을수가 없어서 그 찌르는 팔이 떨어져 나간다 말이죠.

찌른 자도 볼 정도로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감당 못한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외치는 자들인

허다한 구름이다는 겁니다. 심판 주의 증상물

완벽한 거룩 곧 다 이루었다의 증상물이다는 겁니다. 누가 막겠습니까?

 

그러니 그 세 명 아브라함 기생라합 엘리야는

예수님을 쳐다봤던 겁니다.

심판주를 쳐다봤던 겁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쳐다 봤다 말이죠.

그러니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부터 덮혀씌기를 당해서

그들이 외치는 겁니다.

 

그야말로 이상한 행동,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더라 말이죠.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마치 기생라합이

이 나라 이 민족은 당신의 여호와가 심판해서 다 죽을 자들이니

이 땅은 너희 것이라 라고 말이죠.

종말을, 끝을, 곧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 버립니다.

인물, 곧 신체를 말이죠. 예수님의 몸을 말이죠. 새 몸을 말이죠.

이게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의 몸 앞에서 모든 인간의 몸은 거짓이다는 겁니다.

허물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처음 것은 다 지나가고 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심판의 주를 봤기에

제대로 심판 하시는 분이 제대로 구원하실자 아닙니까?

나의 어두운 눈도 이 사망의 몸도 심판도 못하는데 어떻게 구원자가 되겠냐 말이죠.

 

그래서 40년 전에 그 심판을 보고 40년 동안 간담이 녹았다 말이죠.

얼마나 설레냐 말이죠.

 

그 분이 지금 이 땅에 오니까 땅이 요동하는

 

볼찌어다 구름타고 오시니까

남들은 못 보는 심판자를

기생라합은 구름을 보고 심판자가 구름타고 오심을 보고

본인이 구름이 되어서

심판의 주를 영접하더라 말이죠.

 

땅을 요동케 만드는 그 심판주를 보고

 

디스코 팡팡을 누려야 하니

이 땅 당신 겁니다 라고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그야말로 거짓말까정 하면서 매국노가 되어 나라 팔아 먹는

그야말로 막 살고 있지요.

불의한 청지기죠.

그 정도로도 심판을 제대로 본 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본 겁니다.

 

우리가 아는 그런 행함이 있는 믿음이 아니였던 겁니다.

지키기가 아니라

덮쳐지는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로 말이죠.

 

그런데 목사들이 사기치고 있더라 말이죠.

자기 말에 순종하라고

그런 차원과 차원이 다릅니다.

아예 민족과 국가와 민족의 신을 팔아 넘기는 겁니다.

 

자기 땅도 아닌데 땅 통째로 넘기는 겁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행함이 있다 라고 하는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자기재산도 아닌데 말이죠.

그것을 오히려 행함이 있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목사들 소위 자칭 빛의 아들들이라고 주장하는 놈들이

주인에게 고자질 하더라 말이죠.

그 주인은 니 맘이 내 맘이라고 ㅋㅋㅋㅋ

그 기능이 나 주인의 기능이라고 ~~~~

빛의 아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특급칭찬이야 라고 볼을 쭈욱 잡아 땡기면서

마귀들 보란 듯이 말이죠 약을 바짝 놀리는 겁니다 ~~

 

너는 이미 금가락지야 ~~~

너는 왕같은 제사장이야 ~~~

 

특급 칭찬이야 ~~~~

 

(16:1, 개역)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6:2, 개역)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16:3, 개역)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16:4, 개역)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16:5, 개역)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16:6, 개역)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16:7, 개역)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16:8, 개역)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16: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6:10, 개역)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6:11, 개역)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6:12, 개역)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그런데 오죽하면 그 목사가 아브라함의 이삭 바친 것을 따라할까봐

개입해야 할 정도가 되어야

행함이 있는 믿음이 진짜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는 겁니다.

 

도저히 납득이 안되니까 말이죠.

 

안 개입하고는 못 배기거든요.

 

자식 바치지 말라꼬

원본 까정 수정할 정도로 말이죠.

성경이 잘 못 되었다고

 

다른 것은 지켜도 이것만큼은 지키지 말라꼬

취사선택 잘못하면 큰일 난다고 ㅋㅋㅋ

 

그러나 정작 이것은 인간 쪽의 행함이 아닙니다.

주님 쪽입니다.

인간의 행함이 있는 믿음은 받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회개도 안 받는다고 했지요?

주님의 회개 곧 유턴 뿐입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님을 원수들에게 내어주신

죄 값을 치르심입니다.

인간의 행함이 있는 믿음은 죄 값을 치르지 못합니다.

단번에 못 해요

 

그런데 그 목사는 인간의 행함을 강조하다가

이것만큼은 안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주님이 직접 피 흘리셔서

피로 사셔서

주님이 직접 의문의 증서를 찢는 것 뿐입니다. 이 행함 뿐입니다.

반칙 불법 불의 부조리만이

이 십자가라는 부조리를 다 이루심 만이 행함이다 말이죠.

부정함을 만지시는 겁니다.

대신 감당하시는 겁니다.

죄 값을 치르시는 겁니다.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될려고 말이죠.

 

이게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바치라는 겁니다.

딴 아들은 안 되요

인간의 아들 안되요

난지 팔일 만의 거룩한 어린양이 아니면 바쳐도 소용이 없어요.

 

심판주가 되시는 아들 만이 화목제물이 되는 겁니다.

이 아들을 입맞추는 겁니다.

 

인간의 행함이 있는 믿음은

원수가 된 것을 하나 되게 못해요

인간은 원수도 없는데 뭘 ~~~

예수님의 원수만이 원수다 말이죠.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하나되게 하시는 겁니다.

막힌 담을 헐어요.

제대로된 완벽한 일곱의 거룩만이 제대로된 심판을 하시는 겁니다.

인간의 행함이 있는 믿음은

심판도 못하니까 사랑도 못하는 겁니다.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5:10, 개역)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2:13, 개역)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2:14, 개역)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2:15, 개역)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개역)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행함 곧 예수님 만이 진짜 살아 있는 분이고

나머지는 다 죽은 자들이다는 ~~~~

 

피 흘리심 만이 화목케 합니다.

부자청년에게 계명을 다 지켰는지 과연 보자 라고 했을때에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잖아요

피 흘려야 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라는 겁니다.

목숨같은 전 재산을 나누어 줄수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행함이 있는 믿음 하지 마세요

 

만약 할려면 제대로 하세요

기생라합처럼 나라 팔아먹고

진정한 매국노가 되시고

진정한 거짓말로 스파이 정탐꾼에게 국가 전체를 넘겨버리세요

 

3년 반 동안 한반도에 비오지 않도록 기도해서

가뭄이 들어서

경제파탄 나게 해 보세요

 

그러니 말이 안되잖아요

하지 마세요

 

심판주의 증상물의 의미이다는 거지

목사들 본인들이 믿음이 없어서

행함을 강조하는데 이용되는 겁니다.

 

목사들 사기치는 겁니다.

그냥 행함이 있는 믿음을 나타내신 주님으로부터

770번 용서 받으시면 됩니다.

 

졸지에 행함이 있는 믿음이 조건이 되어서

이 조건을 못 갖추면 안된다고 사기를 치는데

 

사랑은 헤아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조건을 따지는게 아닙니다.

목사들이 너무 너무 믿음이 없어서 조건을 엄청나게 따지는 겁니다.

사단의 회입니다.

성화론 또 개혁주의 등등 다 사단의 회입니다.

종교와 국가는

완벽한 거룩 일곱에 미치치 못하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모자라는 거룩을 유사거룩을 유통시키는 겁니다.

종교와 국가가 바로 666이다 말이죠.

 

모든 국가는 자본주의입니다. 자본 곧 에너지 축적하는

부활의 장치 영생불멸의 장치

구원의 장치

그 피라미드 창고를 늘리면서

내 영혼아 편히 쉬자 ~~~~

이 에너지 축적이 이 에너지 매매가 바로 짐승의 수 666이다 말이죠.

오늘날 모든 종교가 이렇거든요. 열가지 재앙의 열가지 신들

오늘날 교회들이 이 짖을 하고 있어요

짐승의 수를 매매 하는 겁니다.

자본 장사

돈 장사

에너지 장사

내 영혼아 창고에 쌓아두었으니 편히 쉬자

 

(12:19, 개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19, 현대인) 또 그의 영혼에게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이 많아 쌓여 있다. 이제 편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겨라.' 하였다.

 

그 창고 다 박살내는 겁니다.

누가 허물어요?

허다한 구름이~~~~

 

글쎄 기생라합이 불의한 청지기처럼

나라 전 재산을 팔아 넘기는 겁니다.

이게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말이죠.

 

부자청년에게 기생라합은 부자청년의 전재산을 다 팔아넘겨 버리는 겁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인데

헤아릴수 있는 사랑은 가난하다고 부요하지 못하다고 하더라 말이죠.

 

부자청년에게 딱 맞는 의미 아닙니까?

주여 주여 어릴적부터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쳤습니다.

그런 기능이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혹 부족한 것 있으면 말씀만 하소서 당장 실천하겠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치면 펼칠수록 더더욱 가난해 지는 겁니다.

부요하지 못해요

 

전재산을 나누어주면 줄수록 저 가난한 자들과 함께 더더욱 부요해지는데?

왜 율법을 지켰겠냐 말이죠?

저들과 구분짖기 구별짖기 했다 말이죠.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저 토색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구별짖기를 했는데

저들과 함께 저들처럼 점점 가난해 지는 것이 부요하기는커녕

더더욱 근심이 되는 겁니다. 걱정이 되더라 말이죠.

어어 이러면 안되는데 구별이 안되잖아

구분짖기가 안되잖아 ~~~~ 어 어

 

안돼 ~~~~~~ 내 재산 내 목숨 안 돼 ~~~~~~

 

남을 용서하는 것을 789번 점점점 높이면 높일수록

더더욱 근심하며 등돌리게 됩니다.

부자청년처럼 말이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말이죠.

손가락으로 세지 말라 말이죠

행함이 인간이 아니라 주님 쪽에서 오는 겁니다.

 

무시험 합격

원인 없는 결과가

행함이 있는 믿음이더라 말이죠.

다 이루심이다 말이죠.

 

그 행함의 증상물이 바로 심판주가 몰고오는 구름이듯이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을 증거함으로써

믿음을 증거함으로써

믿음이 이 분입니다 라고 외침으로써

 

나라를 팔아먹는 라합이 되고

화목제물 되신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외치는 아브라함이 되고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게 기도하고 다시 기도함으로써

이 십자가라는 간극을 보여줌으로써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간극 이 흔적 이 증상

주의 인애와 자비만이 창세전에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다고

원인 없는 결과로써 십자가의 간극을 외치는 엘리야가 되는 겁니다.

 

이 구름인 증상물을 보시면 심판주가 왔다는 것을 기뻐하는 겁니다.

구름을 본다는 자체가 불가능한데

미약해서

무시할 수 밖에 없는

그 구름 뒤의 심판 주를

허다한 구름을 통해서 말이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외치는 겁니다.

심판주의 증상물인 구름처럼

구름이 되어 심판주를 미리 보고 외치는 겁니다.

참선지자가 그래서 등 떠밀어 물에 빠뜨린다고 했지요.

낮에 구름기둥으로 밤에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인도했듯이

낮에 구름기둥이 된 것이

이제 사람이 구름기둥이 되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증상물 징후인 구름을 통해서

 

참선지자가 구름기둥처럼 행동하는 겁니다. 저 심판주를 보라고

화목제물을 보라고

원수 된 것을 하나 되게 하는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신 저 분을 보라고

 

나라 국가 민족 인간의 몸 뚱아리

모조리 다 지나가는 것이고 사라지는 처음것 이전의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참선지자가 구름이 되어서

심판주의 증상물이 되어서 외치는 겁니다.

보라 새것을 보라고

 

보라 세상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라고

원인 없는 결과를 보라고

피로 너를 사시는 분을 보라고

 

그가 채찍질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된다고

 

그가 채찍질 맞는 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지

우리가 채찍질 맞는게 아닙니다.

원인 이 되면 안되요

원인을 만들려고 하면 안되요

 

슬픔으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면서 기쁨을 누렸듯이

운 적도 없다 말이죠.

나의 눈물이 아니였고

예수님의 눈물이였다는 겁니다.

그러니 원인 없는 결과로

우리는 나음을 입은 겁니다.

그가 채찍질 맞음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원인 없는 결과로 말이죠.

 

그러니 행함이 있는 믿음의 증상물이 바로

아브라함 이삭 바치기

기생라합의 거짓말로 정탐꾼 스파이를 숨겨 국가를 팔아넘기는 겁니다.

가룟유다와 정반대죠

그리고 엘리야의 3년 반 동안 비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의 증상물

심판주의 증상물인 구름의 기능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덮쳐져서 나타난 증상물 징후 흔적 기능 사건이다 말이죠.

사람 자체가 증거물이 되는 물건 이다 말이죠.

사건현장의 흔적물 징후물

아 사건이 덮쳤구나

행함이 있는 믿음이 덮쳤구나

심판주를 봐 버렸구나

 

예수님을 바라 보자

즉 이미 봐 버렸구나

 

볼찌어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라고

구름인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이 안되는 구름입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합니다 라고

구름인 세례요한의 외침이 구름이듯이

 

(1:7, 개역)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3:16, 개역)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27, 개역)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3:30, 개역)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1:29, 개역)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30, 개역)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1:31, 개역)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봐버린 그 증상 징후 흔적 원인 없는 결과 사건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는 겁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바라보자 ~~~~

 

(12:1, 개역)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2:2, 개역)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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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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