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3:13-26)

 


(
21:33, 개역)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1:34, 개역)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21:35, 개역)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21:36,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21:37, 개역)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21:38, 개역)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21:39, 개역)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21:40, 개역)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21:41, 개역)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21:42,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21:43,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21:44, 개역)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21:45, 개역)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21:46, 개역)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21:33, 공동)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 이사 5:1-2.

 

(21:42,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 118:22;23

(21:42, 공동)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 시편 118:22-23.

 

 

(3:12, 개역)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3:13, 개역)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3:14, 개역)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3:15, 개역)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3:16, 개역)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3:17, 개역)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3:18, 개역)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3:19, 개역)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3:20, 개역)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3:21, 개역) 지환과 코 고리와

(3:22, 개역)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3:23, 개역)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3:24, 개역)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3:25, 개역)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3:26, 개역)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3:12, 새번역) "아이들이 내 백성을 억누르며, 여인들이 백성을 다스린다. 내 백성아, 네 지도자들이 길을 잘못 들게 하며,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구나." / 칠십인역에는 '채권자들이'

(3:13, 새번역) 주님께서 재판하시려고 법정에 앉으신다.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들어오신다.

(3:14, 새번역) 주님께서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세워 놓고, 재판을 시작하신다. "나의 포도원을 망쳐 놓은 자들이 바로 너희다.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해서, 너희 집을 가득 채웠다.

(3:15, 새번역) 어찌하여 너희는 나의 백성을 짓밟으며, 어찌하여 너희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맷돌질하듯 짓뭉갰느냐?" 만군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이다.

(3:16,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목을 길게 빼고 다니며, 호리는 눈짓을 하고 다니며, 꼬리를 치고 걸으며, 발목에서 잘랑잘랑 소리를 내는구나.

(3:17, 새번역) 그러므로 주님께서 시온의 딸들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주님께서 그들의 하체를 드러내실 것이다."

(3:18,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는 여인들에게서, 발목 장식, 머리 망사, 반달 장식,

(3:19, 새번역) 귀고리, 팔찌, 머리 쓰개,

(3:20, 새번역) 머리 장식, 발찌, 허리띠, 향수병, 부적,

(3:21, 새번역) 가락지, 코걸이,

(3:22, 새번역) 고운 옷, 겉옷, 외투, 손지갑,

(3:23, 새번역) 손거울, 모시 옷, 머릿수건, 너울 들을 다 벗기실 것이다.

(3:24, 새번역) 그들에게서는 향수 내음 대신에 썩는 냄새가 나고, 고운 허리띠를 띠던 허리에는 새끼줄이 감기고, 곱게 빗어 넘기던 머리는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되고, 고운 옷을 걸치던 몸에는 상복을 걸치고, 고운 얼굴 대신에 수치의 자국만 남을 것이다. / 사해 사본을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수치'가 없음

(3:25, 새번역) 너를 따르던 남자들이 칼에 쓰러지며, 너를 따르던 용사들이 전쟁터에서 쓰러질 것이다.

(3:26, 새번역) 시온의 성문들이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황폐된 시온은 땅바닥에 주저앉을 것이다.

 

 

몇 달 전에 어머니께서 이사야 55장을 읽으시고 기쁘게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사야 55장에 주님이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너라 내가 마실 것을 줄 것이다 라고

목마른 자들아 오라 라고 하신다 참 주님도 고맙게도 또 주시고

뭘 했다고 자꾸 주시는 지 호호호호 라고 기뻐 즐거워 하시면서

저에게 알려 주시더라 말이죠.

 

그런데 제가 어머니 그게 아닙니다. 그 뒤에 더 깊은 것이 있습니다 라고

 

탕자 만들어 구원하지

맏아들처럼 성화 되어서 구원되는게 아니다 말이죠.

죄인 환자 만들어 구원자를 보여주는 기능이지 약속이지

의인 되어 건강한 자 되어서 구원받는 그 존재는 우상이지 언약이 아닙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인생을 구원시킬려고 하지 말라

수에 칠 가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이 탕자 개념이 사실상 성경 전체에 다 해당되는 의미이거든요.

 

(55:1, 개역)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55:2, 개역)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55:3, 개역)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55:4, 개역)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55:5, 개역)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55:6, 개역)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55:7, 개역)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어머니께 그때 뭐라고 이야기 했는고 하니

어머니 그게 아니라 목마른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마실 것을 주겠다 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대로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입니다.

문제는 주여 저 목 마릅니다. 물 주세요 라고 하는 인간이 없다는 겁니다.

 

마치 하나님의 집인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하는 자가 없어요.

다들 저 세리와 같이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 밖에 안하더라 말이죠.

 

즉 구원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주님 만의 아이디어인 약속이요 구원이거든요.

그러니 인간이 원하는 구원의 방식을 일부러 피해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영생 얻습니까? 라고 묻는 자들은

일부러 도망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임금삼고자 하니까 도망치시듯이

먹고 배부른 까닭에 자기 배를 위한 예수가 아니다는 겁니다.

자기를 위한 예수는 우상이니까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55장은 아무도 목 말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럼 목 마른자 있을까요? 없어요. 다들 배 불러 있다는 겁니다.

 

아니 글쎄 목 마른 자들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딴데가세요 라고 인간은 반응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이 맞아요.

목 마르지 않아요.

목이 말라야 먹지 목 마르지 않는데 어떻게 목마릅니다 마실 것 좀 주세요 라고

부르짖을수 있겠냐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은 무슨 조건 갖추면 얻냐 라는 자를 피해서

일부러 개같은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영생수 주겠다고 안달이 난 모습으로

정반대의 모습을 취하시는 겁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도망치시더니

안주겠다고 피하시고 단절시키시더니

이제는 안달이나서 주고파서 막 달려가 직진하시더라 말이죠.

 

주님이 이스라엘이라는 기능의 의미를 포기하지 않으시듯이

개같은 이방여인 사마리아인을 이스라엘의 기능을 넣어서라도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겁니다.

 

어 그래? 안 목말라?

그럼 내가 목마르게 해 줄게 라고

광야 오늘 본문에 나오는 황무지로 집어 넣는 겁니다.

시온이 글쎄 애굽왕처럼 여호와가 누군데? 라고 하더라 말이죠.

어 그래? 나 여호와가 누군지 애굽왕아 내가 너에게 분명히 알려주마 라고 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부르짖겠끔 만드는 겁니다.

목마르지 않으면 안 부르짖으니까

애굽왕 바로를 강퍅케 만들어서라도 안 부르짖고는 못배기도록 만드시더라 말이죠.

오 그래 이제야 목 마르구나 그래 물 줄게

영생수 줄게 라고

 

기도는 주님의 아이디어 이지

인간이 기도 하거나 안하거나 라는 그런 의미 아닙니다.

구원은 주님이 주고파 하시는 주님의 원하심이지

인간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죠.

인간의 구원은 개인이라는 존재 구원 밖에 몰라요

인생을 의지하는 그 허구인 인생

곧 우상의 구원 밖에 모른다 말이죠.

 

구원은 주님만의 아이디어 이다 말이죠.

 

만약 그렇게 기도 하거나 또는 구원 받거나 하면 그것이 선이 되고,

기도 안 하거나 또는 구원 못 받거나 하면 악이 되는 그런 개념이 되면.

자꾸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둥

그게 바로 종교이다 말이죠. 666 국가가 바로 이런 성전으로 구성된 겁니다.

사단의 회요. 하나님의 깊은 것을 거부하는

곧 십자가를 거부하는 사단의 깊은 것이다 말이죠.

 

(고전 2:7, 개역)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8, 개역)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9,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개역)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2:24, 개역)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25, 개역)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26, 개역)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27, 개역)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28, 개역)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29, 개역)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럼 기도는, 부르짖음은, 구원은, 약속은, 십자가는,

바로 이런 종교 이런 국가 이런 종교성전을 깨고 부수고 발가벗기는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이 종교와 국가가 신체화 된 것이 육체 아닙니까?

육체의 손으로 다 지었거든요. 건설했다 말이죠.

그 육체를 발가벗기는 겁니다. 껍데기를 벗겨요.

우리는 그런 기도는 원치 않아 하기 때문에 그런 기능의 기도는 안해요

그저 존재를 위한 기도를 하니까 그것은 종교에서 가르치는 기도이지

성령의 놀라운 탄식은 아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 조차도

구원 조차도

무엇을 해야 구원 영생 얻습니까 라고

졸지에 기도로 도배를 하고

구원으로 도배를 하듯이

치장을 해요 글쎄

 

치장을 했다는 것은 민둥산 벌거숭이처럼 벗은 몸을 보게 된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는 겁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거죠.

 

(3:7, 개역)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3:21,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눈이 안 밝았다면 벗은 줄도 모르고

벗은 줄도 모르면

가리울려고 하지도 않았다 말이죠.

 

자 여기서 주님은 항상 마귀 곧 원수만을 의식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은 항상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는 방식이다 말이죠.

그러니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시는 것이고

고로 인해서 부르짖게끔 만드시는데

 

이런 마귀라는 원수를 겨냥한 구원은 관심 없고

그저 보험하나 들 듯이 어떻게 하면 구원 얻냐 라고

존재를 구원

우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피라미드 또는 바벨탑을 쌓는 저들과 똑같은 식으로 구원의 문을 열고자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인간에게는 원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의 원수도 아닌

오로지 예수님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로써 주님은 구원을 펼치시는데

그 구원전쟁에 그 십자가전쟁에

인간은 관심이 없어요.

약속에 관심 없습니다.

오로지 내 구원 내 구원 밖에 몰라요.

그래서 임금삼고자 예수님을 쫏겠다고 하니까

예수님은 도망치시는 겁니다.

구원 안 주겠다고

 

오히려 목마른 자에게 주시겠다고

안달이 나서 우물가의 여인을 찾으시더라 말이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말이죠.

건강한 자 부르러 오신게 아니라

 

죄인이 뭡니까?

원수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말이죠.

그런 자에게 희년이 의미있다 말이죠.

포로된 자 갇힌자 억눌린자 에게만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유대인 곧 사단의 회에게는 이 십자가가 전혀 기쁘지 않아요

오히려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다리 걸려 넘어지게 하니까 뽑아서 버리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고 위험한 돌부리이다 말이죠.

그래서 건축자들이 버리는 돌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어 있네 그려?

 

그러면 더더욱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거죠.

 

자신들의 기존의 것이 다 엉터리 였음이 드러나니까 말이죠.

배설물로 인정하지 못하면

저 머릿돌을 인정 못하게 되니까 말이죠.

 

썩어버리는 배설물로 치장한 줄도 모르고
졸지에 벗은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세계가

졸지에 벗은 것을 부끄러워 하는 선악에 눈을 떠버린 세계가 되다 보니

이제는 그것을 가리우는데 평생을 허비하는 치장을 하는 헛된 인생이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헛된 인생을 의지해야만 하고 있으니 원 ~~

 

돈 벌고 공부하고 지식을 쌓고 운동을 하고 심지어 신앙을 가지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리우는데 목적을 두게 되더라 말이죠.

 

선악으로 눈 뜬 허무한 인생을 어떻게 해서든 치장하여 벗은 몸을 가리우는데

평생을 허비하도록 되어버린 겁니다.

 

남이 입은 치장은 안돼

더 나은 것으로 치장해야 하고

더 좋은 것으로 치장해야

더 잘 가렸다고

그래서 높아지고

 

그런데 오히려 더더욱 헐벗은 결과 밖에 없더라 말이죠.

원인을 아무리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해도

결과는 전재산 하나도 가난한 자에게 못 주는

헐벗은 자로 들통이 나는 겁니다.

 

박그네 보세요 철부지처럼 공주짖만 하는

치장하는 것이 대통령의 일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내가 화장이나 할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자괴감이 든다고

 

헛된 인생을 치장하는데 MB가 대통령이 된 목적이다 말이죠.

 

우리 모두가 구원을 어떻게 얻습니까? 영생 어떻게 하면 얻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헛된 인생인 우상을 구원시키고자

치장하는데 헛된 세월을 다 보내는 겁니다.

 

안그래도 오늘 본문을 보니까

바로 생각하는 것이 아 자본주의 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이죠.

 

아니 자본주의가 20세기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참선지자의 시대에서 벌써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장한다는 것은

 

벌것벗은 것을 가리우면 가리울수록 가려지는게 아니라

더더욱 발가벗겨지더라 말이죠.

 

자본주의가 뭐냐? 돈을 벌면 벌수록 더더욱 빚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풍요는커녕 더더욱 피폐해져 버린다 말이죠.

풍요 속의 빈곤이다 말이죠.

그래서 부자가 천국 당연히 가야 하는데

당연히 풍요해야 하는데

오히려 가장 빈곤한 자임이 드러나는 겁니다.

 

즉 더더욱 빚지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의 구조이다는 겁니다.

원수로부터의 구원인데

그래서 십자가 라는 약속이 개입했는데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십자가를 거치지도 않고

곧 원수도 거치지도 않고

뭐 말씀을 지켰다고?

과연 지켰냐 말이죠.

말씀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더욱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를 봐야 하는데

과연 봤는지 보자 말이죠.

거봐 거봐

그럼 왜 말씀을 지켰을까요? 주님이 가려주시는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라는 피 옷이 아닌

되도 않는 훤히 다 비치는 비닐옷 입으나 마나 한 그 비닐옷을 겹겹이 말씀을 지켜서

몸에 도배를 해서 가렸다고 우기나

가리우면 가리울수록 임금님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다는 겁니다.

율법 4배나 갚으라 라고 정의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악함이 더더욱 드러나더라 말이죠.

 

그러니 빚진 벌거벗은 몸을 더더욱 가리우는데

부자도 속아 넘어가고

가난한 자도 속아 넘어가는

벌거벗은 임금님도 속아 넘아가는

자본주의를 기가막히게 풀어버린 겁니다.

 

자본을 많이 가지면 선이 되는 세계고

자본을 많이 가지지 못하면 악이 되는

그래서 어린아이가 자생적으로 눈이 밝아져서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는 꿈을 꾸어야만 살수 있다고 여기는

이미 죽어버린 세계이다는 겁니다.

새 것이 없어요.

 

어린아이도 장난감 병거로 대장놀이하듯이 대통령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로

주께서 의도적으로 만드셨다 말이죠.

무슨 수로 빠져 나오겠냐 말이죠.

 

전갈을 먹어야만 살수 있는 세상

뱀을 먹어야만 살수 있는 세상

 

아무도 성령을 구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목마르게 해도 아무도 구하지도 찾지도 두드리지도 않아요 글쎄

 

평생을 이 짖만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구원 달래요 글쎄

영생 달래요 글쎄

 

받고자하는 구원, 달라는 구원과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구원이 달라요

주님은 십자가를 주시러 왔다 말이죠.

검을 주러 왔다 말이죠.

화평을 주러 온게 아니다 말이죠.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이다고

싸움 붙이러 왔다는 겁니다.

?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

곧 기생라합이 자기민족 자기국가를 배신하고

땅문서 국가문거 다 팔아버리는 겁니다.

간담이 녹아버렸거든요.

십자가가 밝히 보였거든요.

 

자 구원 달라는 사람들이 이 십자가를 받고파 할까요?

안 받아요.

오냐 배부르구나

목마르지 않구나

 

목마르게 해 줄께

 

즉 이스라엘이라는 기능 곧 약속을 절대로 포기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고프게 해서 목마르게 해서 광야에 집어넣어서

베드로를 세 번 부인케 만들어서 구원하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자꾸 사단의 일 즉 사람의 일만 생각하니까 말이죠.

성령을 구하지 않고

자기가 자꾸 할려고 한다 말이죠.

부자청년처럼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그런데 이 십자가의 피 용서라는 사랑을 곧 구원을 받을 줄 베드로가 상상도 못했다 말이죠.

자기가 이미 구상한 구원이 따로 있었거든요.

그거 마귀에게 작살이 나서

뭘 해도 죄인 임이 들통나는 탈탈 털려서야 비로소

선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예상치 못한 선물에

비로소 기뻐 뛰는 겁니다.

 

마귀는 헌 옷 벗기는 몽둥이 역할인데

더 까불다가 또 작살나구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자꾸 치장을 한다 말이죠. 사치를 부린다 말이죠.

화장을 해요

여자의 화장 보다 더 심한게 남자의 체면 명예 외식 회칠한 무덤인 줄도 모르고

더더욱 칠해요 칠해

가면을 써요

이스라엘 왕의 가면을 자꾸 다윗이 쓸려고 하고 사울왕처럼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왕 답게 할까 라고

그 가면 벗겨 버리는 겁니다.

차라리 괴물의 가면을 씌워버리는 겁니다.

평생 죄수복을 씌우듯이

평생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배신자 베드로처럼 만드는

사단의 가시를 푹 찔러서 너나 구원받으세요 라고 사도바울에게 찌르듯이

그래야 자꾸 위선의 가면을 못 쓰도록 하신다 말이죠.

 

안그러면 자꾸 바리새인처럼 십의 이조 이레에 두 번 금식으로 치장을 하고

부자청년처럼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치장을 해요

자꾸 기능보다 존재

곧 막살지 않았다는 나 라는 존재를 자꾸 내세울려고 하니까 말이죠.

차라리 괴물

막사는 놈이라고

누구든지 무시해 버리는 기능

막사는 자의 말을 누가 듣겠냐 말이죠 ㅋㅋㅋㅋ

누가 발가벗겨진 자의 말을 듣겠냐 말이죠.

치장한 자의 말을 듣지

누가 무시받는 자의 말을 듣냐 말이죠.

아무도 흠모 하지 않는데, 싫어버린바 되었는데.

아무도 안 듣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이 발가벗기기 용도인데

어떻게 재주도 좋아 오히려 발가벗기는 용도를 뒤바꿔서

덧입히고 가리우는데 사용했을까잉

 

단절이 아닌 소통 꺼리를 주니까 그런거다 말이죠.

 

그런데 소통 이 되면 될수록 더더욱 단절이 되었네 그려

풍요 속의 빈곤이다 말이죠.

그렇게 sns 친구 팔로워가 그렇게 많으면 많을수록 더더욱 대화할 사람이 없네

 

바리새인이 그래요 성화론자들이 그래요 개혁주의자들이 그래요

언제 서로의 허물이 실수나 잘못으로 들통날까봐 전전긍긍

그래서 소속감을 강화 해도 소용이 없더라 말이죠.

현대인의 신앙이란 조직의 소속감이지

믿음이 아니거든요.

 

치장을 많이 하면 할수록 친구가 많지만

탕자가 재산을 다 탕진하니까 다 떨어져 나가듯이 다 떨어져 나가요

 

다행히도 비닐옷을 입어서 다 비추이는 겁니다. 발가벗겨졌다는 것이 말이죠.

벌거벗은 것 여전히 다 보여요

 

인간만이 못 봐요

이미 보고픈 것만 보도록

그래서 치장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발가벗었다 말이죠.

 

나는 전부 다 가렸지롱

부자청년이 율법을 어리적부터 다 지켜서 나 가렸지롱

부끄러운 것 가렸지롱 이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오냐 가렸는지 보자 확 벗겨버리는 겁니다.

 

그냥 차라리 나는 발가벗겨진 자입니다.

저에게 입을 것 먹을 것 마실 것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하시면 된다 말이죠.

 

가죽옷을 외부에서 입히지 않는 이상

긍휼을 입혀주지 않는 이상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아무리 번제와 제사를 내부에서 도배를 하고

겹겹으로 무장을 해도 소용없다 말이죠.

 

예수님이 피 흘리셔서

피 옷을 입히시지 않는 이상

마귀가 잡아 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 버리신 겁니다.

 

이것이 이사야의 때의 모습이고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막장 까지 갔다 말이죠.

 

이게 종말이지 곧 기능이지

시간적으로 999가 되어야 종말이 아니다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인다면 종말입니다.

십자가가 떳다면

다 이루셨다가 떳다면

남겨진 씨가 떳다면

 

기존의 것은 사라져야 하고 삭제 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남겨진 씨가 떠 버리는 바람에

무조건 이유없이 시온은 황무지가 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언제 벗겨질지 모르는 그 의문의 옷을 왜 꾸역 꾸역 덧 입어 본들

종말을 막을 수가 없어요.

 

픙요 속의 빈곤 즉 불 타 버릴 것이다 말이죠.

차라릴 불 속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말이죠.

ㅋㅋㅋ 말도 안되죠 불에 들어가면 타 버리는데

바로 그겁니다.

성령의 불

화평이 아닌 검 속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안전해요

유일한 구원의 길 이다 말이죠.

종말 속에 들어가는 것이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가 그래서 지혜로운 거다 말이죠.

종말 속에 들어가니까 지혜로운 겁니다.

남겨진 씨가 떠버렸기에

남겨진 씨를 대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바닥을 뜯고

시온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누굴 보라꼬?

남겨진 씨를 보라고

? 다 이루었거든요.

 

의문의 미완인 이스라엘 붙잡지 말고

새이스라엘을 보라꼬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 죠.

주인의 재산을 허비해요 글쎄

기생라합처럼 자기 재산도 아닌데

남의 땅문서 집문서 토지문서 국가문서를 다 팔아넘겨요 글쎄

가정 파괴범이죠.

가족을 원수지간으로 만든다니깐요.

 

이사야 본인도 이스라엘의 원수로써 활동해요

화평이 아닌 검으로

그래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검을 봤다고 외쳐요 글쎄

 

거짓선지자는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고 하나

더더욱 빚지거든요. 더더욱 발가벗겨집니다. 더더욱 빈곤해 지듯이

저 이사야 미꾸라지 하나가 흙탕물로 만드는 황무지로 만드는 것을 막지를 못해요

미꾸라지가 흐려놓아야 그 물이 사는데 말이죠.

 

되도 않는 언제 썩어 사라질지 모르는 의문의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그 첫 아담을

그 처음 것을

그 이전 것을

 

외부에서 가죽옷으로 입히시지 않는 이상

피 옷 아니면 다 가짜다 말이죠 거짓이다 말이죠.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값없이 사라 라고 한다 말이죠.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은

구원자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외부인이다 율법 외의 한 의 이다 라는 겁니다.

불로 연단한 금아요

거룩한 흰 옷 이다는 겁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다는 말은

의인이 되어버리면 자꾸 의미를 의인인 자신에게 두거든요

내부에 가치를 둬요.

그러면 막 살면 절대로 안되죠.

 

나 바깥의 외부인 구원자에게 의미를 안 둬요

자꾸 나만 의식을 해요

그 의로움 챙기겠다고

그 의로움 언제 벗겨질지 누가 압니까?

 

그게 곤고함입니다. 사망의 몸이다 말이죠.

사라질 안개요 처음 아담이다 말이죠.

그 처음 것 다 지나간다니깐요

사라진다니깐요.

 

사도바울도 그 의로움이 배설물로 도배했던 자신을 고백하는 판국에 ~~~~

 

자기 스스로 치장한다는 것은 더더욱 발가벗겨질 뿐이지

제대로 가린게 못 된다 말이죠.

처음 것은 안 됩니다. 못 가립니다.

사라지거든요.

 

새것으로만 가려야 되요

그 새것은 역사나 과거의 사간에서

축적시켜서 나오는게 아닙니다.

다 지나가는 겁니다.

 

새것은 미래완료에서 현재로 쳐들어와서 덮쳐지는 겁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만 나타내시는 겁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감추시고요.

 

어린아이는 막 사는 자이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는 절대로 막살수가 없는 늘 남을 의식해야 발가벗겨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사야는 남겨진 씨 때문에

마음껏 신나게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곧 현재의 이스라엘을 바닥 뜯어내는 겁니다.

발가벗겨 버려요.

허물어요

 

예수님이 막 성전을 헐라 라고 막 말해요 글쎄

이미 새 것이 떳다 말이죠.

그 새것이 바로 3일 만에 짖는 성전이거든요.

 

아니 46년 만에 짖는 성전을 무슨 수로 3일만에?????

3D 삼디 프린터로 짖는가?

 

여기에 반발하는 자가 거짓선지자 이다는 거죠.

반드시 자신들을 선에 두고

참선지자는 악에 두는

대세의 흐름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러니 마귀에게 잡혀 오는 베드로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베드로는 악으로 잡혀 와야 하는 겁니다.

그 악을 잡은 마귀는 선을 광명한 천사 노릇을 해야만 하구요.

이것이 거짓이다 말이죠.

 

거짓은 반드시 선을 행하구요. 광면한 천사이구요,

 

참 곧 정직한 영이 들어간 자는 종말을 행해요 곧 악을 행해요

마귀가 악하다고 잡을 정도로 말이죠. 부정의 부정을 행해요.

그냥 이단 그냥 악함을 하는게 아니라

악 보다 더한 악

이단 보다 더한 이단 말이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니깐 ~~

이것 보다 더한 악한 짖이 어디있겠습니까?

가룟유다는 그냥 악이고

악 보다 더 나은 악을 못해요.

 

참선지자 이사야 보세요

이스라엘을 바닥 뜯어요.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이스라엘 절대로 망할리 없다고 하잖아요.

 

자 이렇게 참선지자는 종말을 댕겨 버립니다. 불의한 청지기 노릇을 해요

막산다는 것은 끝을 종말을 땡겨버리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막살지 않는다는 것은 종말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막살면 안된다고 주장 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어요.

끝을 땡기는 자가 막 살수 밖에요.

살아가는 인생 또는 삶 자체가 없으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뭘 해도 막사는 거죠. 삶이란 없으니까 말이죠.

 

자기 인생

자기 국가

자기 민족이 있는 자는

막 살면 안되죠.

오히려 치장을 해야 합니다.

더더욱 회칠로 덧때우기를 해야 한다 말이죠..

 

상대적으로 한 쪽이 선을 추구하면 다른 한 쪽은 악으로 취급받게 된다 말이죠.

즉 유교나 성화론이나 모든 종교나 사상 곧 윤리 도덕 등등은

자기자신을 제대로 가리우면 선이 되고

제대로 부끄러운 것을 가리우지 못하면 악이 되는

그래서 모든 인간을 율법 아래에 가두었다 말이죠.

죄 아래 팔리도록 말이죠.

 

그 율법이

그 죄 아래 가둠이

자본주의 아래 가둠으로 나타나니까

다들 빚지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자본이 많으면 부자라 하지 않고 선하다 라고 하고

자본이 없으면 악하다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러니 막살면 안되니까

악하면 안되니까

치장을 한다 말이죠.

그 자본주의의 증상이 치장입니다. 가리우는데 평생을 허비하는

우상의 증상이 치장

인생을 의지하는 증상이 치장이다 말이죠.

자유가 없어요.

막살기가 없어요.

돈 갚기 바쁜데

누가 놀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겠냐 말이죠.

 

그래서 다른 한 쪽을 노예로 만들지 못하면

자기가 부요함에 선함에 놓여지질 못하는 겁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그래요 국가 시스템 곧 종교시스템이지요.

 

저 세리 매국노를 악하다고 해야

내가 십의 이조 드린 내가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내가 챔피언 곧 선하다가 된다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이 대장놀이에 자본주의 간극벌리기 거리두기 놀이에 빠져있어요 글쎄

 

자기가 선이 될려면 남을 악으로 만들어야 해요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말이죠.

이것이 율법이 가입한 이유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더욱 이 짖을 해요,

죄 아래 갇힌 몸을 보게 되더라 말이죠.

얼마나 인간이 헐벗었는지를

율법으로 자신의 몸에 도배를 하면 할 수록

말씀으로 자신의 신체에 도배를 하고 새기면 새길수록

그러면 그럴수록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가 되어 있도록 되어 있는데

오히려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하니

거짓의 영이 들어가버리는 겁니다.

 

세리와 창기와 죄인의 친구인 예수님에게 까지 결국

자신의 치장한 몸을 예수님에게까지 들이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무시할 만한 몸이 결국 천하디 천한 몸인 예수님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21장을 처음에 언급했는데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인간의 치장한 신체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몸과

결국 충돌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선함이 되기 위해서는 남을 악으로 몰아야 한다 말이죠.

내가 7번 남을 용서할려면

남은 나에게 7번 용서 받아야만 하는 헐벗은자 곧 가난한 자, 부정한자. 용서받아야만 하는.

악이 되어야 하는 거다 말이죠.

 

그 악에 더 나은 악으로써 그것도 악이냐 라고 770번 용서나 받는

헐벗은자 되어볼래? 라고 하신다 말이죠.

 

남을 일곱 번 용서하는 메시아 되어볼래?

아니면 도리어 770번 용서 받아야 하는 발가벗겨진 자 될래?

 

어차피 메시아 될 꺼면???

남을 7번 용서하는 자가 되세요 라고 메시지를 던지는자 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도리어 남으로부터 770번 용서 받으셔야만 합니다 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메시아냐?

 

이것이 두 번째 마귀의 시험이 그렇거든요.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천사들이 두 손으로 발이 상처입지 않게 딱 받쳐줄 것이다 라고 했다 말이죠.

한 쪽이 그렇게 기적같은 구원을 받으면 곧 사랑(선택)받는 자가 될려면 (종교 666, 모든 종교)

다른 한 쪽은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움(버림)받는 자가 될 것 아니냐 말이죠.

 

예수님은 결국 버림받는 자가 되거든요. 싫어버린자

 

세 번째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천하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받으면

원수가 나에게 부서지는

악을 심판하는 정의의 사도로써

악을 심판하는 원수갚기를 하던가

아니면 원수를 용서하는 선한 위치에 있던가?

그것을 노리고 있더라 말이죠.

그래서 온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라는 옷을 입게 해 줄게 내게 절하라 라는 겁니다.

그 옷을 입으면 입을수록 더더욱 발가벗겨지는

자본주의의 옷이 되는

의문의 옷이 되는

의문의 증서인 율법으로 도배한 신체가 된다 말이죠.

 

더더욱 자본주의의 원수인 가난을 향한 철퇴를 던져서 부서버릴려고 한다 말이죠.

원수 갚기를 자기가 직접 말이죠.

 

주님에게 못 맡겨요

주님에게 맡긴다는 것은

도리어 원수로 십자가에 당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죽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원수로써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자이니까 말이죠.

 

다윗은 그렇게 시편 91편에서 이스라엘의 기능이 그렇다 라고 약속을 언급하지만

마귀는 반대로 기능이 아닌 그런 존재가 되어라,

그런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니 라고 한다 말이죠.

 

불쌍히 여김을 받는 인애와 자비라는 약속으로 다윗은 보고 있는데

오히려 의문의 번제와 제사로 해석하는 마귀이다는 겁니다.

그것 번제와 제사를 힘으로 보더라 말이죠.

 

기드온이 이기고 오니까 힘으로 해석해서 너 때문에 승리했다 라고

너 같은 구원자가 어디있냐?

인기연예인으로 만들어 줄게 너가 우리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까


기드온은 반발하는 겁니다. 하도 하도 그 기세를 꺽을 수가 없어서

에봇 때문에 승리했다고 저들에게 던져 주니까

그 에봇을 우상숭배하더라 말이죠.

 

왕이 될 수 있는 권세를 줄게 라고 마귀는 해석하는 겁니다.

 

성경을 봐도 거꾸로 봐요

 

하나는 죄인의 기능으로

다른 하나는 의인의 존재가 될려고

 

하나는 막살 수 밖에 없구나!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기능으로

다른 하나는 절대로 막 살수 없는, 막살지 않아야 한다, 주여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는 존재로 말이죠.

 

자 이렇게 마귀가 이 세상의 구조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 놨는데

누가 빠져나갈수 있겠냐 말이죠

이미 유대인들을 다 장악한 3가지 시험이

사실상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구원자가 이런 모습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기다려도 안오니까 본인들 자신들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제사장 나라이니까 말이죠.

 

여기에 예수님은 거부 하시는 겁니다.

 

구원자를 우상화 했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는 빚진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입니다.

치장하고 사치를 부린다는 것은

한 쪽을 빚진자로 만들어 버린

고리대업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철부지 어린아이를 왕으로 세웠다 라는 것은

부녀자를 채권자로 삼아버렸다는 것은

그들의 갑질에 휘둘리도록 한다는 것은

 

국가 자체가 고리대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모든 종교를 보시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십일조가 제 블로그 검색 1위이니까 말이죠. 요즘 말로 실검 1.

 

이자놀이를 해요

대장놀이를 해요

 

이 잉여 놀이에 더 나은 잉여가 바로 일만달란트 탕감이라는 십자가의 또렷함입니다.

갑질 보다 더 나은 갑질 말이죠.

 

구조가 그래요 부자청년이 백날 가난한 자에게 다 전재산을 팔아 나누어주어도

도저히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빚진자로 만들거거든요.

 

거기에 복음은 그 빚진자를 탕감하는

다윗이 그런 섬기는 왕을 언급하는 시편 91편의 인애와 자비의 약속 성취인데

 

마귀는 반대로 왕놀이 구원자놀이 채권자 되기 놀이를 666 놀이를 한다 말이죠.

사망이 왕노릇하는 놀이로써

메시아의 조건을 내세웠다 말이죠.

 

마귀의 그 짖에 더더욱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못 지게 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빚진자를 아예 자기 아내로 삼아버리는

제대로 된 빚진자 만들기를 주님이 하시는 겁니다.

그것도 빚이냐? 적어도 더 나은 빚을 지게 해야지??? 라고

빚진자를 더더욱 빚지게

 

마귀의 빚진자만들기 놀이에

그것도 빚이냐 라고 아예 일만달란트로 피용서인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겁니다.

마귀가 못하는 방향만 골라서 말이죠.

자기 목숨 값을 내어놓아버렸으니

누구에게 빚 지고 싶으십니까?

십자가가 또렷하게 밝히 보이지 않습니까?

십자가의 피 용서의 빚진자로 만들어 버리니까

마귀가 손을 못대더라 말이죠.

 

7번 남 용서? 그것도 용서가? 용서 꼬라지 하고는

적어도 770번 용서나 받아라 말이죠.

부정의 부정이다는 겁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부정의 부정

이것이 구체적 보편성으로써의 진리이다는 겁니다.

 

종교 자체가 이단인 666이고

국가 자체가 우상인 666인 이유는

꼴에 그것도 빚지게 만든 꼬라지가 겨우 그거냐 라고

제대로 빚지게 못한다는 점이다는 겁니다.

 

죽이는 척만 하지 제대로 못 죽이더라 말이죠.

? 권리가 없거든요.

제대로 심판도 못해요

제대로 된 거룩을 못 보여주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면 제대로 된 심판과 제대로 된 거룩을 보여주시는 것이 일곱이라고 했지요?

계시록의 일곱 말이죠.

그 일곱이 글쎄 교회를 오른손으로 붙잡았어요

그래서 일곱 교회입니다.

이 일곱이 어떻게 했느냐??? 창조주 예수님이 어떻게 했느냐?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게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피로 사셨다 라는 의미입니다.

피로 사신 교회 가 되는 겁니다.

피로 모든 허물 모든 빚을 다 갚아버렸기 때문에

뻔뻔하게 사랑만 하는 겁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시지 않습니까 라고 말이죠.

 

이것이 새 것입니다.

회개의 달인들에게서는 도저히 못 쳐다보는

더 나은 회개가

바로 이 일곱이 떳다

남겨진 씨가 떳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를 쳐다보는 것이 새 것이다는 겁니다.

회개란 눈물 짜고 과거 반성하고 하는게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고 유턴하는게 아니라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이

새것을 쳐다보는 것이 회개입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완료만을 쳐다보는 거다 말이죠.

 

그 이유로 오늘 본문에 황무지로 만드는 겁니다.

발가벗기시는 겁니다.

탈탈탈 털어버리시는 겁니다.

 

? 새 옷이 떳거든요.

 

아무리 치장을 해도

치장하면 할수록 더더욱 빈곤해지고 더더욱 발가벗겨지는

그런 부끄러움을 가릴수 없는

그 어떤 허물도 가릴수 없는

의문의 번제와 제사를 입지 말고

 

값없이 피 옷을 사라 라는 겁니다.

 

666이 도저히 넘어갈수가 없는

이 일곱이 떳기에

남겨진 씨가 떳기에

새 것이

다 이루셨다가 떳기에

 

제대로 된 심판 받아 마땅한 빚진자 되어도 상관이 없게 만드는 피 옷을 입으라 라는 겁니다.

이미 마귀에게 빚진자로 추궁당하는 그 구조 속에서 뭘해도 발가벗겨지기 때문에

 

졸지에 남겨진 씨를 외치는

제대로 된 빚진자

일만달란트 용서받은자

770번 용서받는 자로써 이사야 선지자가 외친다 말이죠.

 

적어도 천년 만년 16만년 억억년 갚아도 못 갚는 빚을 빚지게 해야

이것이 새 피조물이다는 겁니다.

겨우 세 번 부인한 것으로 빚진놈 잡아 왔다고 마귀가 까부는

그 밀까부듯이 까부는 시험에 다 넘어가는 판국에

 

그것도 빚이냐 라고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적어도 770번 부인해도 용서받는 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떳다 라는 겁니다.

 

즉 나쁜 채권자 마귀

철딱서니 없는 철부지 마귀의 채권 보다

더 나쁜 채권자 예수님이

770번의 용서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도둑놈이지요 집주인을 결박해 버리는

 

그러니 마귀가 백데나리온 갚으라고 멱살 잡을 때

그것도 빚이냐 라고 더 당당하고 뻔뻔스럽게

일만달란트 빚진자 임을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ㅋㅋㅋㅋ

오랜만데 또 복음을 기쁜소식을 전하는데

 

이것이 또렷한데

어딜 감히 되도않는 흐릿한 채무관계를 맺을려고 협박하냐 말이죠.,

우리에게는 십자가라는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채무관계가 있어서

돌려막기를 할 수가 있는데

 

이건 뭐 부자 보다 더 해요 글쎄 ㅋㅋㅋㅋㅋ

이것을 다윗을 행복이라고 로마서 4장에 ㅋㅋㅋ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이 땅의 썩어질 재물이 아예 없는데도 불구하고 생명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한다 말이죠.

정말 말도 안되요

 

(6:19, 현대어)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12:33-34] 이 땅위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 땅에서는 좀이 먹어 없어지거나 도둑을 맞기 쉽다.

(6:20, 현대어) 그러므로 그것들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서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고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갈 염려도 없다.

(6:21, 현대어)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12:33, 개역)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12:34, 개역)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예수님의 목숨을 내어주셨으니까 말이죠.

 

(8:32, 개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한 쪽 강도가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진냥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예수님에게 구하니까

모든 것을 주시면서 오냐 오늘밤 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옆의 강도가 펄쩍 뛰면서 반발할 수밖에 없지요.

말이 되어야지

 

예수님의 목숨을 받았으면 이미 모든 것을 받은거다 말이죠.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막산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의 빚

자유케 하는 복음 앞에서의 의미이지

그런 기능이지

? 뭘 해도 죄인이요 뭘 해도 막산 것 밖에 안되니까

종말을 확 땡겨 버리는 겁니다.

끝을 확 땡기고

심판을 확 땡기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땡기는 겁니다.

뭘 해도 죄이기에 말이죠.

원인 없는 결과를 땡기는데

독자적인 막사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성으로써 누구를 말하는 기능으로써의 막사는 자 곧 더 나은 빚진자 인데

 

존재로써의 막사는 자는

또는 존재로써 막살지 않는 자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야다(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기에, 결혼이 없기에)가 없기 때문에

야다 히브리어 결혼 또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예문으로써

안다 라는 뜻

똑같이 선 악 선 악 이나 따지면서 자신의 신체를 가리우더라 말이죠.

막살기를 지키질 않나

막살지 않기를 지키질 않나

그 의문을 왜?

 

독자적이기에

혼자 뿐이기에

누구를 말 할수 없기에

 

주여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주를 말할수 없기에

내 남편을 말 할수 없기에

 

자꾸 지킬려고 한다 말이죠.

 

채권자 마귀가 채무자로 만든 고리대업 세계에서

십자가의 피 용서는

그래서 세상에 통용이 안되니까

절대로 막 살면 안된다고 나온다 말이죠.

? 빚 갚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빚질까봐 싶어서 채권자로 나설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막살지 않아야 하는 겁니다. 지켜야 한다 말이죠.

 

채무자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그 의문의 반복에 답이 없어서

더더욱 헐벗은 채권자가 되기로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기로 작심하는 겁니다.

갚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밑빠진 장독대에 물 붓기 이라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독자적으로 채권자가 되어버리는

그렇게 강퍅케 되는

 

그런 자기 노예를

자기의 빚진자를

하루 아침에 예수님이 강탈해 가니까

부자청년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피라미드 몇 개 쌓으면 구원 얻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질문하다가

모조리 강탈 당하는 겁니다.

 

황무지가 되더라 말이죠.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그 강퍅한 애굽왕이 되었기에

모조리 다 빼앗아 버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바닥을 뜯어내면서

약속이 떳다

남겨진 씨가 떳다

그래서 광야로 몰아가는 겁니다.

 

막사는 철부지 어린아이 왕에게

장난감 철병거 창과 칼을 의지하는 철딱서니에게

딸 빼앗기고 농장 밭 빼앗기고

그래서 왕을 세우지 말라고 말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여이 세워가지고

 

섬기는 왕이 없어 모조리 강도들 뿐이다 말이죠.

채무자나 되어가 노예로 전락해서

죽기를 두려워 평생 사망의 종노릇 한다 말이죠

 

그런데 더 나쁜 은혜의 왕노릇에 의해

남겨진 씨가 떠 버림으로 인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로 인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없음이 떠 버림으로 인해

더 나은 빚, 일만달란트 탕감하는 용서의 왕이 떠 버림으로 인해

 

저 따위 사망의 채무 빚에

그 공갈 협박에

그 속임수에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고

십자가의 심판을 증거하는 겁니다.

더 나은 심판

제대로 된 심판을 말이죠.

 

그 정도로 막사는 죄인을 용서하는 이 십자가의 피

그 어떤 허물도 다 용서하시는 피를 안 쳐다보고

 

결국 믿을 것은 자신의 행함

그렇게 행하는 자기의 인생만 의지하겠다고

의를 쌓겠다고 똥을 먹더라 말이죠.

 

철부지가 철병거 장난감을 의지하면서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 왕이나

그런 철딱서니를 상대로 하는

독립운동을 펼치는 거짓선지자

곧 정직한 영이 없는 거짓선지자 바리새인 이나

도진개진 도토리 키 재기인데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오늘 이사야 3장 보세요 가관입니다.

어린아이가 대통령을 하고 MB가 그랬지요? 그 하수들은

지금도 딴나라당으로써 활동하고 있지요.

부녀자가 대장질 하고 박그네 꼭두각시가 그렇잖아요.

 

자본주의 놀이를 하고 있어요

채권자 놀이

고리대업 놀이

 

반면에 거짓선지자는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어요

저들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더라 말이죠.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고

민주화 놀이

거짓선지자 놀이

 

자 이런 두 놀이에 모든 인간이 다 말려듭니다.

안 말려 드는 인간이 없어요.

죄 아래 가두었거든요.

 

부자청년 보세요. 말씀을 다 지켰다고 보고 있다 말이죠.

저런 저주와 발가벗기는 채무자 만드는 고리대업 속에서

말씀을 다 지키고 부자 까정 되었으니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더더욱 말씀 지키고자 어떻게 하면 구원 받냐고 영생 얻냐고 한다 말이죠.

그럼 너가 사랑의 빚을 지우게 해 보라는 겁니다.

그것이 말씀 지킨게 아니냐 말이죠.

 

바로 이런 마귀를 거쳐서 주님의 빚

사랑의 빚을 지는 자가

새피조물 새것이 되지

빚 안졌다고

그럼 그 구조 그 시스템에서 어떻게 자본을 가지게 되었냐 말이죠?

뭐 하나님이 그렇게 했다고?

오냐 좋다

그럼 하나님 것이니까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줘 보라 말이죠

못 줘요

하나님 것이라메?????

 

본인이 율법 4배나 지켜서 가리울 것 다 가렸는데

뭐 목마른자 주라꼬?

헐 벗은자 주라꼬?

배고픈 자 주라꼬?

 

못 줍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주라꼬 지금 이야기 하는게 아닙니다.

주지 마세요

평생을 가난한 자를 위해 살던 테레사 수녀가

과연 하나님 있는 것 맞냐 라고 했다 말이죠.

얼마나 솔직합니까?

나이 들어서 치매끼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변인들은 그 옥의 티를 가리울려고 실수인냥 하지만

그래야 보기좋게 치장한 것이 아름답게 남는다고 보겠지만

오히려 그 사람의 핵심 포인트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다 헛짓이라고 ~~~


의문의 번제와 제사만을 지켰을 뿐이지

인애와 자비를 본게 아니다 말이죠.

자기에게는 사랑이 없다 라고 한거다 말이죠.


그러니 존재를 따지는 겁니다.

과연 하나님 존재가 있을까?

하나님이 존재할까? 있기는 있을까? 혹시 없다면?

결국 자기는 또렷하니까 내가 헛짖한 거 아니냐 라는

자기자신에게로 회귀하더라 말이죠.

? 평생을 그 일을 실천했다는 것이 또렷하거든요.

생생하거든요.

지울수가 없어요.

삭제가 안돼요

 

외부에서 가줏옷을 입혀주는 자가 없으니까

자기 손으로 직접 가리고자 만든 무화과 나뭇잎 치마는

그런 자기를 제대로 가려주었다고 착각했거든요. 아름답게 치장해 주었거든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 대답 없는 너 로만 남냐 말이죠.

있기는 있는거니

나는 분명 있는데

존재하는데

 

자 이것이 가리우면 가리울수록 더더욱 헐 벗은 거다 말이죠.

 

그래서 값없이 돈 주고 사라 라고 합니다.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벌거벗은 부자에게 흰 옷을 사라 라고 합니다.

소경 아니다고 하는 자에게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자에게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합니다.

 

갑자기 무신론자가 되어 버렸어요.

원래 무신론자 였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했거든요.

그제서야 눈을 떳다 말이죠.

존재로 평생 따지니까 그런 겁니다.

 

남 도와줄려고 하지 말고

너나 770번 도움 받으세요.

 

이 모습 속에서 어디 목말라 하는 모습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백성들은 다 따라하는 겁니다.

 

난 목마르지 않다고

난 헐벗었지 않았다고

오 그래? 내가 철부지 어린아이를 왕으로 세우마

과연 목 안 마른지 보자

광야 황무지 속에 집어 넣어버린다 말이죠.

 

요즘 한국의 어린아이들에게 꿈이 뭐니 라고 하면

글쎄 웃끼게도

조물주 위의 건물주 라는 사회현상의 증상으로써

건물주가 되는 것이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되었데요 글쎄

 

하나님도 건물주 보다 못하데요 글쎄

맞잖아요

호모 데우스 이다 말이죠.

 

하나님이 있으면 가난한 인생이라는 결핍을 만들어 낼 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건물주가 되어서 하나님에게 복수하겠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건물주 부자가 되어서 구원받겠다

바벨탑 구원의 문을 만들어서 천국가겠다

피라미드 몇 개 만들면 구원 얻습니까?

 

아니 이제는 천국 따위도 없으니까

천국의 삶을 지금 살겠다고 이유없이 자본을 끌어모은다 말이죠.

한 쪽은 더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애들도 글쎄 벌써부터 결핍을 가리우는 헛된 인생을 의지하고

우상을 쫏아요 글쎄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 몇 푼 던져줘서

자기 무릎에 꿇토록 하겠다고

벌써부터 복수심

가난이라는 원수를 갚겠다고 ㅋㅋㅋ

그 가난이라는 악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어린아이라는 무능이라는 기능을 원수로 보고

원수 갚겠다고 존재가 딱딱한 존재

부들부들한 무능한 어린아이가 아닌

 

그래서 행함이 있는 믿음은 이 부들부들한 난지 팔일된 어린양을 잡듯이

이삭을 잡아서 부정한 우상조각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그런데 마귀가 글쎄 아브라함 자손이 되겠데요 글쎄

 

(3:9, 개역)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3:7, 개역)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침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3:8, 개역)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왜 광야에서 외칠까요?

황무지 즉 헐벗었다는 겁니다.

쫄딱 망했다는 겁니다.

심판을 증거해요 글쎄

 

이 심판이 아니면 헐벗은 줄 모르고

헐벗은 줄 모르면 피 옷을 쳐다도 안 볼꺼다 말이죠.

새 것을 볼 리가 없다 말이죠.

회개를 할 리가 없다 말이죠.

 

그래서 참선지자가 심판을 자신의 신체에 담아서 증거하니까

도리어 다들 너나 그 심판에서 벗어나라고 비아냥 거리더라 말이죠.

미끼를 확 물어버린 거죠.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은 다 가렸지만

참선지자는 광야에서 헐벗은 모습으로 있으니까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못 보고

도리어 딱딱한 존재로 보게 되니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랜다고 들보를 뺄 생각하지 않고

티를 뺄려고 달려들더라 말이죠.


세례요한 너나 구원받으세요

예수 너나 구원받으라 구원자 꼬라지 하고는 비웃어 버린다 말이죠.

얼마나 눈이 밝았으면 티를 발견해요

들보는 못 보는 역설적인 눈 밝음

이것이 인생을 의지하는 허구인데

 

어린아이를 졸지에 조물주 위의 건물주로 다 만들어 놨네 그려????

 

어린아이들은 꿈꾸면서 자라거든요

꿈을 먹고 자라요, 모든게 선물인데,

그런데 꿈이 없어

오죽하면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겠다고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가 될 정도로

아이들에게 독을 똥을 먹이고 있다 말이죠.

 

인생을 자기가 꾸려나가겠데요 글쎄

 

우상을 먹이고 있어요 글쎄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는 부모가 졸지에 유다가 되어버렸어요

 

(7:7, 현대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11:9-13] 구하라, 받게 될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7:8, 현대어) 누구든지 구하면 받을 것이고, 찾으면 얻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7:9, 현대어)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하는데 그 아버지가 떡 대신에 돌을 주겠느냐?

(7:10, 현대어) 또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그 아버지가 뱀을 주겠느냐?

(7:11, 현대어) 악한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쓰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더욱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11:8, 현대어) 그러나 내 말을 잘들으라.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그 간곡히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11:9, 현대어)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1:10, 현대어)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11, 현대어)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1:12, 현대어)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1:13, 현대어)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즉 성령을 줄 줄 모르는 부모는 모조리 다 가짜가 되는 셈이다 말이죠.

 

성령을 무슨 수로 줍니까? 이 불가능성을 줄 줄 모르면

부모 라는 선지자가 아니라

모조리 다 거짓선지자 였음이 드러나는 겁니다.

 

나는 저 세리

저 박그네

MB

저 고리대업자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아니 아이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가르칠려고 해요 글쎄

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고

자신들을 광명한 천사라꼬 그런 빛을 저 어둠인 저 세리 저 박그네 저 MB는 이길수 없다고

벌써부터 복수심을 가르쳐요.

 

성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왜? 홍해를 건넌 선지자 이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죽었다가 3일만에 살아난 경험

세례 할례 십자가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 부모이다 말이죠.

 

유교에서의 부모는 거짓선지자이고요. 윤리 도덕이나 가르쳐요 글쎄.

? 성령을 줄 줄 모르거든요.

아니 본인이 성령이 없는데 어떻게 주겠습니까?

금 과 은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를 못 줘요

놀랍게도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가 성령 주는 목사 있던가요?

심판을 주는 자 없어요.

돈 때문에 협박 공갈이나 하지

 

성화는 잘 줘요

그런데 성령은 못 줘요 불가능하거든요

 

독과 뱀과 돌, 전갈은 목사들이 잘 줘요

고리대업자처럼 사채놀이하는 자들처럼

 

또는 반대로 나는 그런 자와 다르다 라고 절대로 이스라엘 망할 리가 없다고

외치는 거짓선지자처럼

성화론자나 개혁주의자들처럼

그런 것은 잘 주지만

가능하거든요.

정작 성령을 못 주면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불가능을 주는 자는 없어요.

초등학생도 부모나 학교나 심지어 교회에서도 못 받는 성령을?

그래서 바로 이런 부모 이런 선생 이런 거짓선지자를 타 넘고 오시는 예수님을

저들과의 차이성으로써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증거하시는 희년의 완성자로 말이죠.

 

계시전달자 언약전수자 약속전파자 로써의 부모를 말하고 있지

결국 예수님 뿐입니다.

다른 부모는 없어요.

홍해를 건넌

죽음을 넘어선 분은 예수님 단 한 분 뿐이다 말이죠.

 

십자가를 보여주는 부모는 딱 한 분 뿐

도리어 육의 부모에게 이삭이 십자가의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아브라함이 태어나는 겁니다. 그것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처음태어난 자이다는 겁니다.

 

고아와 같은 우리에게 유일한 부모는 딱 한 분이요 다른 기업(고엘-기업 무를 자)은 없어요.

과부와 같은 우리에게 유일한 남편은 딱 한 분이요 다른 시형제결혼법(이웃환대법) 이웃사랑 없어요

나그네 같은 우리에게 유일한 임금은 딱 한 분이요 다른 죽기까지 섬기는 분(너희가 죽인 예수를 3일 만에 다시 살리사 주가 되게 하셨다) 은 없다 다른 주는 없다 말이죠.

 

그냥 태어나게 했다고 해서 부모인 것은 아니다 말이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태어나게 한 자는 오히려 이삭의 죽음이다 말이죠.

그냥 이삭이 아니라, 존재가 아니라,

[이삭의 죽음] 이라는 기능이다 말이죠.

존재로써의 부모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 노릇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만이 새 것이지
다른 것은 나의 부모가 될 수가 없어요.
나의 아버지 나의 남편 나의 임금이 될 수 없다 말이죠.

 

다 이루었다가 아니면 될 수 없어요.

그저 의문의 반복일 뿐이다 말이죠.

 

아무튼 지금 한국의 부모들은 자기자식에게 조차도 글쎄 전갈을 뱀을 독을 돌을 먹이고 있는

살인자들이다는 겁니다.

결혼한 부모만이 아니라 미혼자인 저도 해당되는

모든 어른들은 다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살인자들 이다는 거죠.

 

도리어 내가 죽인 그 꺽으신 뼈로 인해서 태어나야 하는 겁니다.

날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기쁜소식을 이루시는 겁니다.

 

존재에게는 나쁜 소식이지만 이 보다 더 나쁜 소식이 없지만

십자가의 영광이 덮쳐진 자에게는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는 거죠.

 

증상물로써 나타난 사건이 세월호 였듯이

계속해서 나타날 증상들입니다.

 

그것을 봐도 몰라요 글쎄

여전히 MB 닭그네 없애버리고 탄핵하면 되는줄 알지만

더한 더심한 거짓선지자는 그럼 우짤려고?

그들 박그네를 탄핵한 자들이 거짓선지자인데?

로마압제로부터 독립운동을 펼치는 자들이 거짓선지자인데?

민주주의 운동을 펼치는 자들이 거짓선지자 인데

십자가를 못 보도록 하는 자들이 거짓말을 단 한번도 하지 않는 거짓영이 들어간 거짓선지자 인데????

 

이 의문의 반복인 쳇바퀴에서 무슨 수로 벗어나냐 말이죠.

새것을 못 쳐다 보게 하는 의문의 반복인데???

 

그 잘난 의인들을 타 넘어서 오시는 십자가의 피 흘리심입니다.

 

다윗이 율법 4배나 갚으라 라고 한 것이

아이까지 죽어야 하는 결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겁니다.

결국 십자가의 어린양까지 죽어야 하는 증상까지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렇게 밝혀져야만 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들통나지 않는다 말이죠.

발가벗겨지지 않는 겁니다.

 

들통을 내어도 오히려 십자가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거리껴 하는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뭘해도 마귀 짖인데

 

결국 이 결과

이 원인 없는 결과를 막아보고자 인간들은 자꾸 덧입고 치장을 히는 겁니다.

믿음을 갖추고 말씀을 지키고 율법을 어릴적부터 지키는 겁니다.

성경 지식으로 온 몸에 도배를 하고 덧 입히고

자꾸 자꾸 가릴려고 자꾸 껍질을 곤고히 할려고

에녹성을 쌓는 가인처럼

더더욱 높게 높이 높이 성전을 더더욱 두껍게 한다 말이죠.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치장하는 모습입니다.

결핍의 골이 너무 너무 크기 때문에 미친 듯이 치장을 해서

아름답게 꾸밀려고 하더라 말이죠.

가난할수록 더더욱 부자가 되고픈 복수심이 크더라 말이죠.

 

마침 어머니께서 며칠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말이죠.

원래 부자였던 자 한테는 얻어 먹을 것이 있지만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면 얻어 먹을 것이 없다고

MB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하시더라 말이죠.

 

제가 거기에다가 덧 붙였습니다.

한때 그 사람이 노예 또는 종살이를 했던 집안이였던가?

아무튼 좌파방송을 듣고 알게 되었는데

맹목적으로 이유없이 다 쓰지도 못하는 돈을 그렇게 끌어모으는 것은

일종의 복수심이라고

원수 갚기 이라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한 복수로

한우농가를 다 말살시키는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모조리 다 복수심이라고

 

그럼 그거 안한다고 복수심이 아닐까요? 민주화 운동도 복수심이거든요.

 

유대인들이 맹목적으로 전 세계의 돈을 다 끌어모으는 식 처럼

모든 성경지식으로 자신의 신체를 도배를 해요 글쎄

그러면 그럴수록 결핍이 매워지는게 아니라

더더욱 골이 패여서 더더욱 결핍이 심해져서

오로지 복수심이 불타 오르게 되더라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한 반대세력이라고 자청하는 좌파들은 거짓선지자이거든요.

이들 또한 역시나 복수심이다 말이죠.


그래서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저 매국노처럼 음행하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거짓을 추구하더라 말이죠.

발가벗겨 보니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못 나누어주는 사랑없는자

율법의 완성은 사랑인데

사랑이 없는 거짓으로 밝혀지는 겁니다.

차라리 나 거짓입니다. 고쳐주세요

정직한 영이 없습니다. 새 영을 달라고 했다면 줄 터인데 말이죠.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겠습니까?

손 깨끗한 자

맘 청결한 자

 

다윗이 정직한 영이 없어서 새 영을 달라고 했지요.

 

마귀의 세 번째 시험 온천하만국을 줄테니 절하라 원수에게 철퇴로 부수는 권력을 주겠다

그래서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 슈퍼 히어로 어벤져스처럼 말이죠.

이런 초인사상이 유대인에게서 나왔다 말이죠. 들뢰즈의 잠행자 되기처럼 말이죠.

결핍을 채울려고 이유없이

가인처럼 무조건 성쌓기를

? 불안하니까

그래서 더더욱 그 이마표가 마치 손오공의 머리에 씌우는 쇠고랑 테

긴고아(緊箍兒). 혹은 금고아(禁箍兒)

처럼 작용해서 마구 마구 쪼아대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결핍이 생겨

빵구멍이 생겨서 더더욱 매꾸어 넣을려고 하듯이

더더욱 복수심이 불타 오른다 말이죠.

 

좌파들이 다 이래요. 악을 감추고자 선으로 도배를 온 몸에 칭칭 감아요.

자기가 욕하는 우파나 매 마찬가지인데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다 이렇거든요.

이렇게 나는 악을 감추고자 선을 도배하고 있는데

저 세리는 너무 노골적으로 매국노 짖을 하고 있으니

내 눈 앞에 지나가고 있는

내 돈 백데나리온 띠 먹고 도망친 놈을

안 잡을래야 안 잡고는 못 배기는 인생을 의지하고 있는 허상임이 들통내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심판 받아 마땅한 구제불능인데

 

주님이 필요가 없어

건강한 자에게 무슨 놈의 의사가 필요하겠냐 말이죠.

 

아 잠시 옆길로 샛는데

다시 돌아와서

아무튼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마실 것을 주겠다고 하니까

다들 목 안 마르데

그래서 필요가 없데

그래서 주님께서 그래? 그럼 내가 목 마르게 해 주마 라고

광야로 집어넣어버린다 말이죠.

그럼 목 안 마르고는 못 배기더라 말이죠.

졸지에 환자가 되어버렸으니 의사를 안 찾고는 못배긴다 말이죠.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발가벗기시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13절 위의 1절부터 12절까지 보게 되면

 

(3:1, 새번역) 주 만군의 주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백성이 의지하는 것을 모두 없애실 것이다. 그들이 의지하는 모든 빵과 모든 물을 없애시며,

(3:2, 새번역) 용사와 군인과 재판관과 예언자, 점쟁이와 장로,

(3:3, 새번역) 오십부장과 귀족과 군 고문관, 능숙한 마술사와 능란한 요술쟁이를 없애실 것이다.

(3:4, 새번역) "내가 철부지들을 그들의 지배자로 세우고, 어린것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겠다.

(3:5, 새번역) 백성이 서로 억누르고, 사람이 서로 치고, 이웃이 서로 싸우고, 젊은이가 노인에게 대들고, 천한 자가 존귀한 사람에게 예의없이 대할 것이다."

(3:6, 새번역) 한 사람이 제 집안의 한 식구를 붙잡고 "너는 옷이라도 걸쳤으니,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다오. 이 폐허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다오" 하고 부탁을 하여도,

(3:7, 새번역) 바로 그 날에, 그가 큰소리로 부르짖을 것이다. "나에게는 묘안이 없다. 나의 집에는 빵도 없고 옷도 없다. 나를 이 백성의 통치자로 세우지 말아라."

(3:8, 새번역) 드디어 예루살렘이 넘어지고 유다는 쓰러진다. 그들이 말과 행동으로 주님께 대항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모독하였기 때문이다.

(3:9, 새번역) 그들의 안색이 자신들의 죄를 고발한다. 그들이 소돔과 같이 자기들의 죄를 드러내 놓고 말하며,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다.

(3:10, 새번역) 의로운 사람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복이 있고, 그들이 한 일에 보답을 받고,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말하여라.

(3:11, 새번역) 악한 자에게는 화가 미칠 것이다. 재난이 그들을 뒤덮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그대로 보복을 받을 것이다.

(3:12, 새번역) "아이들이 내 백성을 억누르며, 여인들이 백성을 다스린다. 내 백성아, 네 지도자들이 길을 잘못 들게 하며,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구나." / 칠십인역에는 '채권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빵구멍으로써 작용하다 보니

구멍이 뻥뻥 뚫혀져서 그 결핍을 채우고자

아름다움을, 사치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하듯이

 

이게 선악을 따먹은 결과이다는 겁니다.

뭘 해도 결핍 밖에 없다 말이죠.

더더욱 그래서 더더욱 가릴려고 채울려고

그 총맞은 구멍을 매꾸어 넣어 막을려고 해도

밑빠진 장독대와 같아서 아무리 물을 부어도 바닥이 없어요.

 

음부의 권세를 이기질 못해요

목마름을 해결 할 길이 없다 말이죠.

그래서 부르짖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목마르다 라고 외부에게 외쳐야 하는데

나의 바깥에서 찾아야 하는데

모조리 다 나 라는 우상의 욕망의 공통분모 속에 놓여져서

의문의 반복에 목숨 걸 수밖에 없더라 말이죠. 답이 없어요.

결과가 없어요. 그래서 원인에서 승부를 거는 겁니다.

 

율법 외에 한 의를 율법 바깥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데

다들 율법을 들고와서 율법 4배나 갚으라 라고 하질 않나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고 하질 않나

그러니 구원 어떻게 하면 받냐고 영생 얻냐고 하지 않나

 

도통 도통 새것을 쳐다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선악으로 선을 모아왔다고

성화됨을 모아왔다고 구원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모으지 못한 저 세리는 악한 놈이 되구요.

 

그 돼지저금통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 벗겨보면

확 깨뜨려 보면

사랑이 있는게 아니라

세상에 복수심이 가득하더라 말이죠.

사도바울이 그래서 배설물 똥덩어리를 가득 모아왔었다고

비로소 새것에서 거꾸로 시선을 미래완료에서 보게 되니까

그것이 사단의 회가 주장하는 거짓이였더라 라는 겁니다.

거짓을 모아와 놓고서는 구원해 달래

 

그래서 구원을 막아버리고

반대로 구원 추호도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구원 주고파서

영생수 주고파서 안달이 난 모습으로써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사랑을 아무 값없이

영생수를 값 없이 사도록 하시는

그 부정한 개같은 이방여자를 교회로 삼는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의 언약을 펼치시더라 말이죠.

 

율법 곧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구원 안줄려고 안줄려고

임금삼고자 아무리 쫏아와도 도망치고 도망치고

 

율법 단 한번도 지킨적 없고

주의 이름을 단 한번도 부른적 없는 자에게는

나는 그의 주가 되고 그의 구원자가 되겠다고

술람미 여인에게 안달이 난 솔로몬 왕처럼

왕비를 삼더라 말이죠.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이것이 시기하는 질투하는 사랑이다 말이죠.

죽음 보다 강한 사랑

죽음을 시기하는 사랑

불뱀에게 물리도록 해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는 사랑

시온을 황무지로 만들어서 목마르게 해서 목마른자 마시게 하시는 사랑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사랑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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