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가지 , 남겨진 씨,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녹명된 자, 거룩하다 칭함을 얻는 자 (4: 1- 6)

 

아브라함 품에 안겨진 거지나사로 라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
 15:5, 개역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15, 개역)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15:16, 개역)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4:3, 개역)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1, 개역)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4:2, 개역)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4:3, 개역)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4:4, 개역)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4:5, 개역)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4:6, 개역)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4:1,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애원할 것이다.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챙기고, 우리가 입을 옷도 우리가 마련할 터이니, 다만 우리가 당신을 우리의 남편이라고 부르게만 해주세요. 시집도 못갔다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4:2,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돋게 하신 싹이 아름다워지고 영화롭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 안에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 땅의 열매가 자랑거리가 되고 영광이 될 것이다.

(4:3, 새번역) 또한 그 때에는, 시온에 남아 있는 사람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곧 예루살렘에 살아 있다고 명단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거룩하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4:4, 새번역) 그리고 주님께서 딸 시온의 부정을 씻어 주시고, 심판의 영과 불의 영을 보내셔서, 예루살렘의 피를 말끔히 닦아 주실 것이다.

(4:5, 새번역)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는, 시온 산의 모든 지역과 거기에 모인 회중 위에, 낮에는 연기와 구름을 만드시고, 밤에는 타오르는 불길로 빛을 만드셔서, 예루살렘을 닫집처럼 덮어서 보호하실 것이다.

(4:6,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그의 영광으로 덮으셔서, 한낮의 더위를 막는 그늘을 만드시고, 예루살렘으로 폭풍과 비를 피하는 피신처가 되게 하실 것이다.

 

(4:2, 공동) 그 날에는 야훼께서 돋게 하신 싹이 살아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영예로울 것이며 땅에서 나는 열매가 자랑스럽고 소중하리라.

(4:2, 쉬운) <여호와의 가지> 그 때가 되면, 여호와의 가지가 매우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서 나는 열매가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에게 자랑과 영광이 될 것이다.

(4:2, 킹흠정) 그 날에 주의 가지가 아름답고 영화롭게 되며 또 땅의 열매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들을 위하여 심히 좋고 아름답게 되리라.

(4:2, 현대인) 그 날에 여호와의 가지가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며 그 땅의 열매는 살아 남은 이스라엘 백성의 자랑과 영광이 될 것이다.

(4:2, 현대어) [남은 자들이 누릴 미래의 영광] 그날이 오면 여호와의 새싹이 아름답고 영광스러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살아 남은 자들에게는 그 땅의 열매가 자랑스럽고 아름다울 것이다.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26:29,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나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절대로 마시지 않을 것이다."

(14:25,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15:1, 개역)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15:2, 개역)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5:3, 개역)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개역)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개역)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7, 개역)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8, 개역)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5:9,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10, 개역)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11,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5:12, 개역)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3, 개역)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5:14, 개역)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15, 개역)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15:16, 개역)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17,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15:18, 개역)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5:19, 개역)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15:20, 개역)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15:21, 개역)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15:22, 개역)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15:23, 개역)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15:24, 개역)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15:25, 개역)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15:26, 개역)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5:27, 개역)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라고 요한계시록이 출발합니다.

문제는 기존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 말씀 새 계시가 등장하게 되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대 충돌로써 그 자체가 싫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즉 기존의 익숙한 입장을 원하지

새로운 것이 등장해 버리면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할 입장이고

그 새로움 때문에 기존의 것에 의해서 죽임까지 당해야 할 입장으로 몰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기존의 것(역사-행함)을 우상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

새 것(묵시-믿음)을 외칠수가 없도록 되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새 것은 인간이 싫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것을 잇고 잇는 식의 새것은 인간은 신상이라고 좋아라 하지만

진짜 새것은 뚝뚝 끊어진 단절로서의 새 것은

자기 목숨을 내어놓지 않는 이상

새 것을 원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여 나에게는 정직한 영이 없습니다. 새 영을 달라고 하는 것은

이 정직한 영이 없음으로 인해 죽게 되었다는 겁니다.

(시 51:10, 개역)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기존의 것으로는 도저히 살아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회개 입니다. 새 것 때문에 저절로 나오는 회개 입니다.
역사의 반성, 시간에 의한 잘못으로 인한 것은 회개가 아니라 반성이지요.
그것은 역사 곧 행함을 쌓는 겁니다.
그런 자들은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회개를 도저히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뭘 해도 죄인이요 뭘 해도 막사는 자이다는 것을 고백 못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시 51: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2, 개역)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개역)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 개역)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 개역)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 51:7, 개역)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 개역)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 개역)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시 51:10, 개역)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개역)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개역)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 개역)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14, 개역)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51:15, 개역)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 개역)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개역)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개역)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9, 개역)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자기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어버리는 식으로써

이스라엘의 원수로써 이스라엘을 바닥을 뜯어냅니다.
예수님의 원수인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회개를 외칩니다.

아무리 잘 믿어도 이사야의 눈에는 우상숭배이니까요.

가장 잘 믿는 자의 대표로써 부자청년이 천국에 못 간다고 하니까

다들 깜짝 놀라면서 그럼 누가 구원얻느냐 라고 반응할 정도로

우상숭배했던 것이 들통나 버렸다 말이죠.

그래서 나를 뭘 해도 우상숭배자로 몰고가는 이 계시 환상 묵시가 싫은 겁니다.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말이죠.

이것이 계시요, 환상이요, 묵시요, 예언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곧 남은 씨가 등장했다는 자체가 말이죠.

 

그럼 이 계시의 반대, 약속의 반대가 뭡니까?

우상인데

이 우상을 바로 앞부분 3장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성이 바로 옆의 이방나라가 아닌
이스라엘을 두고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
마치 예수님께서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통해서 이미 이스라엘이 마귀에게 장악당한 자로써 들추어내듯이

부자청년이나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이 실천하고 행했던 자들과

바리새인을 예를 들고서 우상숭배자로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잠시 떠났던 마귀가 그들에게서 나타나더라 말이죠.

 

이 우상에서 우리는 사로잡혀 있다고

이사야 본인도 우상숭배자 임을 고백하는 식입니다.
마치 믿음이란 아브라함처럼 우상조각가였던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삭의 죽음으로 인해서
희생제물로 인해서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인지?를

믿어서 믿는게 아니라 그건 종교이고(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한 행함이고)
불가능한 예수님의 때를 바라봤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덮쳐져서
오늘 나오는 여호와의 남겨진 씨앗이 새싹이 떳기에
이제 더 이상 기존의 것을 쳐다볼 이유가 없는

자기 것이 없는
자유자가 된
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라는 결과가 원인 없으 덮쳐져서 말이죠.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된
그야 말로 말도 안되는
이 상한 심령 때문에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의 자리에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남겨진 씨 때문에 원인을 모조리 제거하는 식으로

자신이 소돔과 고모라의 자리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즉 날 때부터 소경이였던 실로암소경의 자리에서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는 소경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외친다 말이죠.

 

결과만 있으면 되거든요.

예수님만 있으면 되거든요.

 

그래서 죄수복을 입고 죄수복에 빨간도장 찍힌 특별사면 이라는 도장을 외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인애와 자비를 외치고 있다 말이죠.

그런데 다들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이 싫어하는 번제와 제사를 외치더라 말이죠.

 

그래서 일까요? 환상이, 계시가 덮쳐진 이사야에게는

3장까지 그렇게 심판 심판 우상 심판을 외치다가

갑자기 4장은 짧게 거룩하다 라고 외친다 말이죠.

 

어디서 많이 본 오마주 같지 않습니까?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27:46, 개역)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5:34, 개역)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9:30, 개역)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또 로마서 7장에서 8장으로 넘어가는 부분 같지 않나요?

 

갑자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이 심판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절망을 외쳤는데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나니

사망의 몸에서 구원되었다고 외치더라 말이죠.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갑자기 자유를 외쳐요

갑자기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외쳐요

 

아니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철저하게 갇혀서 못 빠져나온다고 했잖아요.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망의 종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철저하게 갇혔는데

갑자기 자유자가 되었고

은혜의 왕 노릇함의 증상물이 되었다고

갑자기 원인 없는 결과로

앞 뒤 모순되는

중간에 어떤 경과가 없이 그 자체가 경과가 되어서

원인이 없이 결과가 덮쳐버렸다고 외치더라 말이죠.

 

그 사도바울의 복선으로써 이사야가 지금 외치고 있습니다.

또 조금 뒤의 이사야 6장에서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여호와의 영광을 이스라엘 중에 거하면서 봐버렸다고 외치고서는

제단 숯불에 의해서 부정한 입술이 제거가 되었다고 외치는 모습이

또 다시 반복이 됩니다. 십자가의 무한반복처럼 말이죠.

 

이것이 창조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이 십자가를 싫어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계시 말씀 예언을 싫어합니다.

안 싫어하는 자가 없다 말이죠.

그럼 무엇을 좋아하느냐

우상을 좋아라 하는데

그 우상이 바로 자기자신이다 말이죠.

그 우상에게서 나오는 것이 바로 행함이거든요.

 

이 행함이 무엇과 같냐 하면

몸에 말씀을 칭칭 감으면 감을수록

자유하기는커녕 막살기는커녕

자꾸 원인을 쌓더라 말이죠.

그럼 원인을 쌓으면 결과가 올줄 알았는데

결과가 없어요.

그래서 의문의 반복 뿐이더라 말이죠.

 

그런데 누가 봐도 막사는 자를 보면 욕이 저절로 나오는데

그래서 개같은 이방인

거룩하지 못한 자에게 가까이 가기 싫어서

피해서 삥둘러서 가고 있는데

 

문제는 예수님이 아예 종이 아닌 친구로써 다가가더라 말이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말이죠.

 

자신의 독자적인 자유란 없어요.

누구만이 진정한 자유자 입니다를 말하기 위한

막살기를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복종으로써 막사는 겁니다.

그러니 존재가 아닌 기능이지요.

 

그래서 기능으로써 이사야가 소돔과 고모라의 자리에서

남겨진 씨를 외치는 겁니다.

? 남겨진 씨가 떳기 때문에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긍휼을 먹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씀을 다 지켰다는 거짓선지자는 십의 이조드렸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저 더러운 세리 매국노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자가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부자청년이 바로 우상숭배자였음을 드러내고 있더라 말이죠.

 

진정한 자유자는 남겨진 씨인 예수님을 외치는 자 였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한명의 남자에게 여자 7명이 달라 붙었다고 합니다.

 

(4:1, 개역)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여자라는 기능은 남편을 말하기 위한 기능이다 말이죠.

머리를 말하기 위한 기능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 예수그리스도가 교회의 곧 신부의 머리를 말하기 위한 기능으로써

남자로 태어나 그 기능을 수행한다 말이죠.

여자에게는 머리로써 기능하고 내가 머리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다 라고 말하는 선지자기능 예언자 기능이다 말이죠. 마치 부모가 선지자가의 기능이였듯이

부모를 떠나 여자가 남자에게 오게되면 그 남자가 그런 기능이다 말이죠.

 

그런데 좀전에도 말했듯이 그 어떤 누구도

이 계시를 싫어합니다.

고멜과 같이 딴 남자를 찾아요

꼴에 딴 남자를 찾는 것이 그저 율법이라는 전남편을 찾더라 말이죠.

그 고멜에게 예수님은 새 남편이다는 겁니다.

그 고멜은 즉 이스라엘은 오늘날 교회는

그저 이방나라의 우상과 다를바 없는 왕제도를 쫏고

그것이 이스라엘 내부로 들어와서

우상과 여호와를 합쳐버려서

썩여있는지도 모를정도로

각자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더라 말이죠.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몸 자체가 마치 자본주의처럼

스스로 빚진자로써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빚쟁이로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오죽하면 얼마나 빚졌으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자기 숙제로 볼까요?

자기 숙제로 본다는 자체가

자기가 자기에게 빚졌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용납 못해요

 

아예 미우면 다행이지만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포기하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해 버리면 또 자기가 사랑스러워

철저하게 자기에게 갇혀버려서

주님이 문 열어주지 않는이상

자기에게 갇혀서 자기에게서 벗어날수가 없어요.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실수가 없는

외부의 인물이 없다 말이죠.

 

그렇게 빚진 채무관계를 끊을 수가 없어서

자꾸 자꾸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냐고 부자청년이 묻고

자꾸 자꾸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냐고 율법사가 묻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잡혀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잡고 있는 자본주의 상태이다 말이죠

자기를 위한 자기라는 우상에게 사로잡혀서 자유롭지를 못하더라 말이죠.

여기서 자유란 목숨 걸 곳이 없다 라는 겁니다.

자유자에게 목숨을 못 건다는 겁니다.

그 어떤 외부의 인물 말이죠.

 

이렇게 여자는 남편으로 인해 자신감을 얻고 당당해 하는데

남편이 없어 다 죽어버리는 바람에

남편이 없어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는

발가벗겨진 상태인 과부의 입장에 놓여졌다는 겁니다.

 

그런 일곱 과부에게

새 남편이 있다 라는 것은

모든 것을 가리우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새 것이 떳다 말이죠.

그럼 여자는 비로소 자유롭게 된다 말이죠.

 

교회에도 나와도 불안한 이유는 새 것을 안 봐요

남겨진 씨

여호와의 남은 가지를 안 쳐다 봐요

그러니까 불안해서 더더욱 가리우고자 교회가 가려줄줄 알았는데

오히려 교회가 더 발가벗겨서 등쳐먹더라 말이죠.

같은 놈들끼리 모였거든요.

 

서로 서로가 정죄하기 바쁘다 말이죠.

이스라엘이 그래서 온 몸에 치장을 하더라 말이죠.

빚내어서 라도 말이죠.

아니면 고리대업을 해서 라도 말이죠.

그러니 오히려 교회가 이스라엘이 더 우상숭배자인줄 모르고

그것을 안 들키고자

사마리아인을 공격하더라 말이죠.

거리두기를 하면서 말이죠.

 

그런 솔로몬의 영광의 옷을 아무리 덧떄우기 하듯이 덧입혀서 입어도

저 들에 핀 꽃 백합화 보다 못하더라 말이죠.

주님이 입혀주는 불에 달구운 금이 아닌

흰 옷이 아닌 이상은

입으면 입을수록 더더욱 발가벗겨진 모습이다는 겁니다.

여자가 남편 없이 과부로써 아무리 대통령이 되어도

내가 이럴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라고 자괴감을 느낀다 말이죠.

아무도 가려주지 않거든요.

 

나를 제대로 가려주는지 안그러고 도망치는 자인 거짓선지자인지를 알려면

내가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에 놓여져 보면

내가 과부의 입장에 놓여져 보면

고아의 입장

나그네의 입장에 놓여져 보면

 

누가 희년을 몰고오는지

누가 나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인지를 보게 된다 말이죠.

 

(15:16, 개역)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과연 나의 허물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한 자는

딱 한 분 뿐이더라 말이죠.

 

바로 내가 택한 적도 없는데

사랑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문을 막 열고 쳐들어온

나를 침략하시는 분

나를 빼앗는 분 천국을 빼앗듯이 나를 빼앗는 분이 그가 나를 그의 것으로 만든다 말이죠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로 왔다는 겁니다.

너무 너무 질투해서

너무 너무 시기하는 사랑이라서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꼴을

지옥에 갇혀 있는 꼴을 못 보겠다고

지옥에 뛰어들어서 건졌다는 겁니다.

화목제로 피로 값을 치르고 샀다는 겁니다.

 

그렇게 전남편인 마귀가 우리를 예수님에게 피 값을 받고 팔아넘겨놓고서는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고 베드로 잡아왔다고 사기를 친다 말이죠.

아니 허물을 보시지 않겠다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데

지가 뭔데 자꾸 허물을 들추어보냐 말이죠.

 

마귀의 기능이 바로 이거거든요.

그러나 예수님의 기능은 오로지 십자가입니다.

마귀는 끝까지 선악을 우기고 있고

마귀를 잡을려고 올무친 것을 왜 인간이 쓸데없이 따먹어서 선악을 알고서 하나님이 되었냐 말이죠.

 

하나님 되어서 뭐하게?

사랑이 없는데

 

정작 창조의 근본은 사랑으로 창조했는데

십자가로 창조했는데

사랑 받기만 하면 된다 말이죠.

이게 믿음이다 말이죠.

 

얼마나 두려우면 하나님이 되었냐 말이죠.

그런데 문턱을 못 넘는 겁니다.

어벤져스 라는 영화나 아이언맨을 보면 본부가 나와요

가인의 성 에녹성이 영웅들이 나오죠.

얼마나 두려우면 성을 짖겟냐 말이죠.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가족이 필요없어요 성만 있으면 되요.

점점더 높이 점점더 큰 성 큰 국가

온천하 만국을 다스릴 권세

힘을 줄테니 절하라

악당을 물리칠수 있는 초능력을 주겠다

이것이 슈퍼맨의 탄생 아닙니까

유대인의 작품이다 말이죠.

 

인간의 손에서 나온 창작물이다 말이죠.

힘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자꾸 주변인들로부터 이방인 취급당하면서 청착민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보니

늘 약자의 편에서 강자를 꺽고 싶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선악이지 사랑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 찾고 슈퍼맨을 만든다 말이죠.

겸손한 자 위버맨스

기드온아 너가 우리의 왕이 되어다오 위버맨스 겸손도 해라

왕이 될수 없다고 그래 그래 그러니까 겸손한 너가 우리의 왕이 되어야 해 라고

늘 신을 찾더라 말이죠.

사랑을 찾는데 아니다 말이죠.

우상을 찾더라 말이죠.

 

그런 우상이 뻔히 있는데

그런 왕이 뻔히 있는데

그런 하나님이 뻔히 있는데

 

새 것이 왔다???

그럼 기존의 것을 무너뜨린다는 겁니다.

집 주인을 결박해서 새간을 빼앗는 도둑이 왔다는 겁니다.

천국은 침노 당하니 천국을 빼앗는 자는 천국이 그의 것이 된다 말이죠.

 

그것이 행함이 아닌 믿음이다 말이죠.

그래서 행함이 있는 믿음의 기생라합처럼

이스라엘을 바닥 뜯어내는 작업을 이사야가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로써 자기집안 식구가 이사야로써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왔다 말이죠.

 

? 과부 만들어서 새 남편을 보게 되고 (룻기)

고아 만들어서 새 아부지를 보게 하고 (고엘 기업무를자)

나그네 만들어서 섬기는 왕 새 임금을 보여주고

(우물가의 여인, 귀신들린 딸의 어미 맞습니다 저 개같은 이방인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그러니 참선지자에게는 자아를 상실당한자처럼

자아가 탈탈탈 털려 버려서 자기것이 없다 말이죠.

그 정도로 자유롭다 말이죠.

 

나 금과 은 없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어라

 

뭘 믿고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걷게 만든단 말입니까?

말이 되냐 말이죠.

앉은 뱅이 하나 고칠려면 금과 은을 엄청들여도 될까 말까

하다 안되면 로봇팔 로봇다리로 엄청난 비용을 들어서 될 정도인데

 

금도 없고

은도 없고

돈도 없이

 

아무 능력도 없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이 나사렛 이름

이미 죽고 없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이름만 딸랑 있을 뿐이지

존재가 지금 앉은뱅이에게는 없어요.

예수라는 존재는 몸뚱아리는 이미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렸다 말이져

그런데 뭘 믿고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하느냐 말이죠.

로봇 다리를 만들어 줘도 억수로 연습해서 재활훈련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바로 일어서서 걷는다?

말이 되냐 말이죠.

그런데 이것을 교회에서 말이 안되게 외치는게 아니라

말이 되겠끔 외치다 보니

눈치를 보니 다들 안 믿는데 믿는척을 해요

 

저요? 못 믿겠어요

말이 되어야지요.

혹시 본 적 있습니까?

저도 도마처럼 내가 직접 못 박힌 손을 만져보지 않으면 못 믿겠다고

왜 말을 못하냐 말이죠.

다들 믿는척 하면서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다들 속으로는 안 믿어요.

 

마치 죽어가면서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하는 말과 같아요.

앉은 뱅이? 일으킨다? 우리가 직접 체험하면 또 사람이 뿅가서

그런 기적만 추구하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는게 아니다 말이죠.

오히려 결과보다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십자가가 아닌

그렇게 고침받은 기적을 원인으로 자꾸 쌓고 싶어 하기 때문에 우상이 된다 말이죠.

 

얼마전에 아는 친구랑 만나서 성락집단 김땡동 목사 이야기가 나왔는데

처음에는 병고치는 기적을 통해서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기드온처럼 내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 라고

그래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우상숭배자 에브라임지파처럼

거기에 휘말려서 결국 이제는 기적도 안 나오고

그 버어버린 큰 구멍을 돈으로 때울려다가 도리어 돈으로부터 장악당하더라 말이져.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히려 그런 유혹을 젊을 때 보다 더 힘들어지니까

누가 이기겠습니까?

 

못 이깁니다.

다윗도 안 되는 판국에 누가 이겨요

그냥 처음부터 자기 것이 없다는 그 가벼움에

그 기적 내꺼 아니다 라고 에봇을 던져 주니까

바로 우상섬기잖아요

그것 까지 봐야 된다 말이죠.

늘 수시로 우리는 에봇이라는 제사장 옷까정 우상숭배할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들추어내주시는 것 감사하는 것이 회개이다 말이죠.

? 여호와의 가지 곧 남겨진 씨가 떳기 때문에

언제든지 들통나도 상관없는

이 지적하시는 사랑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말이죠

 

그러니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속에 집어넣어버림으로써

나는 뭘 해도 우상숭배자 이구나 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아닌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로 자기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다는

이 사랑만이

뭘 해도 3060100배 라는 원인 없는 결과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를 가지 라고

주님이 포도나무라는 이유로 무조건 이유 없이 열매맺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래 말하지 않고

 

그 동안 교회 다니면서 왜 3060100배의 열매를 내지 못하냐고 다구치는 목사들을 보면서

안 그러는 놈이 없던데

수준 높은 성화론자들 조차도 얌전을 떨든 누가 봐도 사기꾼 목사가 외치든

다들 그렇게 외치던데

그 눈빛들이 수상한 이유가

3060100배를 맺었다고 외치면서

왜 너희는 못 맺었냐고 다구치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을 보니까 다들 죄책감으로 듣고 있더라 말이죠.

 

아니 아무리 봐도 자기도 못 열매 맺었는데

그 순간 번드드 치장하듯이 옷을 잘 빼입고 와서는 다구치는 것 보고

놀랬고

대중을 보면 더 놀랬다 말이죠.

왜 저런 최면에 걸려들까?

아니 누가 봐도 목사 지는 못 열매 맺었다 말이죠.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가 어기고 있더라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다 속아 넘어가는 현장을 보면

소름이 끼쳐 오더라 말이죠.

 

예배 자체가 인애와 자비가 아닌 번제와 제사로 의문의 반복으로

최면을 다 걸어요

다들 마약 먹은 자들같이 눈빛이 다들 흐려요

 

차라리 초롱 초롱한 자는 설교시간에 조불고 잠자던 자가 제일 말똥말똥해 ㅋㅋㅋㅋ

 

우와 그 뻔한 사기에 너무 너무 뻔해서 어린아이도 다 알 수 있는 속임수에 다들 넘어가서

죄책감으로 억눌러 버린 것에

죄책감을 가지면서 왜 교회 다니는지?

이해가 안된다 말이죠.

다들 저 보다 아이큐 높고

똑똑하고

좋은 대학 다 나왔어도

 

소용이 없더라 말이죠.

 

그런데 알고보니 목사로부터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목사를 조종하고 있더라 말이죠.

듣고픈 이야기를 해 달라고 서로 서로가 최면 걸어요.

목사가 그런 이야기 안하면 자기 목 달아날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바울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귀신들린 여자처럼

귀신을 쫏아내어서 병고치니까

그 귀신들린 여자의 점치는 점술로써 포주 역할 했던 자즐이

사도바울을 고소해서 깜빵에 가두듯이

진짜 배후세력은 점쟁이를 등쳐먹었던 자들이였듯이

오늘날 목사들 뒤에서 조종하는 장로들처럼 유유상종으로 모였다 말이죠.

 

그런 교회 바닥 뜯어야 겠지요.

이사야가 드디어 새것이 떳다 라고

남겨진 씨 여호와의 가지가 떳다 라꼬

새 싹이 떳다 라는 그 결과만으로

원인 없는 결과 만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아주 아주 신나게 외치고 있는 겁니다.

멸망해야 사는 이스라엘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슬픔으로 씨를 뿌리는자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이스라엘 멸망 당했다고 바벨론으로 포로 당한다고 좋아라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막 춤을 추더라 말이죠.

? 기쁨으로 단을 거두니까

? 드디어 여호와의 구원이 벌어지니까 즉 새 것이 떳으니까 무조건 새이스라엘이 되니까

? 바벨론이라는 애굽의 입 속에 들어갔다가 삼일만에 다시 죽었다 살아나니까

이것이 약속이니까 참선지자만 신났다 말이죠.

 

이게 예언이고 묵시이고 계시인데

 

역사 속에서는 아무런 일들이 안 벌어지더라 말이죠.

 

묵시의 세계만 바빠요.

무지 무지 바빠요.

바벨론 입속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빼내는 구원이 벌어지지 않나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 보라고 하시지 않나

애굽을 강퍅케 해서 부르짖게 하듯이

바벨론 포로 속에 집어넣으면서 시온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말이죠.

 

그러나 역사에서는 예수님이 그 짧은 3년 간의 활동이 그저 하나의 점 밖에 안되는

아무런 일이 벌어진것도 아닌

역사상의 세계대전도 아닌

어떤 조그마한 촌 구석에서 벌어진 일이지

역사가 아니다 말이죠.

 

환상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그저 다 잊어버리는 그 묵시가

얼룩점처럼 박혀짐을 당한 자는

이 사건들이 매일 매일 격게 되더라 말이죠.

? 남겨진 씨 때문에

그 씨가 떳기 때문에

 

자유자가 되는 겁니다.

곧 회개하는 자입니다.

 

자유하지 못하는 자는 회개치 않는 자입니다.

여전히 자기 것이 많기 때문에

 

약대가 바늘 귀 통과 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자아를 가득 가득 쥐고 있어서

그 소유가 도리어 헐벗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자기 것이 없게 되어

모든 것을 다 가진 이 자유는

바로 다윗의 열쇠를 가진 예수님에 의해서

문이 열려고 닫히는 그 관계성(피로 사신바 됨)으로

생명책에 녹명 기록된 자로써 이 남은 씨에 의해서 기록되는 겁니다.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8:32, 개역)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33, 개역)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8:36, 개역)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7:3, 개역)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5:1, 개역)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25, 개역)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1:25, 쉬운) 그러나 사람을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법을 살피는 사람은 들은 것을 잊어 버리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1:5, 개역)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1:5, 쉬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님은 신실한 증인이십니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제일 먼저 부활한 분이시며, 이 세상 왕들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의 보혈로 모든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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