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천사의 나팔과 회개치 아니하는 자들 (9:13-21)

계 27 여섯째 천사의 나팔과 회개치 아니하는 자들 (계 9,13-2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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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개역) 그 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3:2, 개역)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4:12, 개역)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4:13, 개역)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9:13, 개역)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9:14, 개역)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9:15, 개역)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9:16, 개역)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9:17, 개역)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9:18, 개역)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9:19, 개역)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9:20, 개역)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9:21, 개역)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9:13, 새번역)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있는 금제단의 네 뿔에서 울려 나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뿔들'

(9:14, 새번역) 그것은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큰 강 유프라테스에 매여 있는 네 천사를 풀어놓아 주어라"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9:15, 새번역) 그래서 그 네 천사가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기 위하여, 그 해, 그 달, 그 날, 그 때에 맞추어 예비된 이들입니다.

(9:16, 새번역) 내가 들은 바로는 그 천사들이 거느린 기마대의 수는 이억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9:17, 새번역) 나는 이러한 환상 가운데서 말들과 그 위에 탄 사람들을 보았는데, 사람들은 화홍색과 청색과 유황색 가슴막이를 둘렀고, 말들은 머리가 사자의 머리와 같으며,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9:18, 새번역) 그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 이 세 가지 재앙으로 사람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9:19, 새번역) 그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는데, 꼬리는 뱀과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달려 있어서, 그 머리로 사람을 해쳤습니다.

(9:20, 새번역) 이런 재앙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사람이 자기 손으로 한 일들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귀신들에게나, 또는 보거나 듣거나 걸어 다니지 못하는, 금이나 은이나 구리나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들에게, 절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9:21, 새번역) 그들은 또한 살인과 점치는 일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인간 쪽에서 천국으로 가는 방식은 이제 없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종교죠 결국 종교는 다 거짓이 되는 겁니다.

천국은 오로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펼쳐지는 겁니다.

 

주님 쪽에서 죽음을 타넘고 넘어오시는 방식이지

인간 쪽에서 죽어서 가는 게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천국은 인간이 오기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그 정반대로 천국이 쳐들어 오는 방식이 되는 겁니다.

 

즉 이사야서에서 이미 한 아기가 떳다 라는 이유로

절대산 시온이 떳다 라는 이유로

 

반드시 미디안의 날이 있어야 하듯이

반드시 절대산 시온산을 말하기 위한 소위 높은산

인간들이 찾는 답답할 때 그 답답함을 해결하고자 찾는

높은 산이 무너지기 위해서 있어줘야 하는 겁니다.

 

인간이 답답해서 종교를 만든게 아니라

종교가 먼저 있기에 인간이 답답해 지는 겁니다.

종교가 없으면 답답하지도 않는다 말이죠

우상이 있기 때문에 답답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럼 그 우상은 왜 생기느냐 바로 시온산이 먼저 있기에 생기는 겁니다.

아니 왜? 마치 미디안의 날이 있어야 구원이 무엇인지 보여주도록 되어 있고

지옥의 임금이 있어줘야 일찍 죽임 당한 어린양이 그 대조로써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긍휼의 그릇은 무엇을 담습니까? 바로 십자가의 피를 담는 그릇입니다.

반대로 진노의 그릇은 무엇을 담을까요? 종교를 담습니다. 바로 오늘 제일 끝에 나오는 구절

 

(9:20, 개역)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곧 우상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하는데 있어서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즉 사귐이 안된다는 거죠

이 말은 결국 답답한 쪽에서 찾아가는 식이 되는 것이 우상이다는 겁니다.

답답한 것 없으면 찾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자 그럼 하나는 정리가 된 겁니다.

인간 쪽에서의 출발은 모조리 다 우상이다는 겁니다. 거짓 모호하고 흐릿한 의문의 반복.

반대로 주님 쪽에서 출발해서 이 마귀를 타 넘어오는 것, 이 의문의 것을 타 넘어서 오는 것이 
바로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명료한 겁니다
.

바로 사랑인데 사귐인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입니다.

 

자 그럼 천국을 가는게 아니라

천국이 넘어옴에 있어서

천국이 찾는자가 있는데 바로 회개의 사람 이라는 겁니다.

곧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입니다.

 

천국을 회개의 사람이 담는게 아니라 그릇처럼 담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천국이 회개의 사람을 찾아서 그릇으로 삼는데 여기서 좀 다들 오해하시는 것이

 

그릇이 일반적으로 크고 반대로 담겨지는 것이 작다고 본다 말이죠

그래서 이 그릇을 도 닦듯이 딱아서 유리그릇으로 투명하게 만들어야

그 속 내부의 보배를 비추이게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

대부분 종교가 그런 식이거든요

 

아닙니다.

 

커다란 보배에 그릇이 더덕 더덕 마치 우렁이 양식장의 미역줄기나 아니면 벽이나 상추 등등에 더덕 더덕 붙어있는 것처럼 보잘 것 없는 그릇들이 큰 보배에 박혀 있는 겁니다.

 

(고후 4:6, 개역)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보배와 그릇의 관계를 마치 내 죽고 너 살아라 라는 또렷한 사귐의 사랑이듯이

사도들은 예수의 죽음에 넘기우고 생명은 그 덕분에 성도에게 거하는 것이

바로 우상과의 차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만질수 볼수 들을 수 없는 우상 곧 종교와의 차이가 된다는 겁니다.

이 예수님을 보여주고자 사도라는 그릇들은 접시 깨지듯이 깨어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상의 세계에는 이것이 없이 그냥 의문의 반복일 뿐이다는 겁니다.

 

이 우상의 세계와 반대되는 곳을 주님께서 따로 마련하셨는데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니 이 우상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시는 방식이 바로

천국이 떳다 라는 이유로

미디안의 날을 격어서

마귀 지옥 임금을 격어서 거기서 빼내심으로써 탈취물을 나누는 관계를

회개자 라고 하는 겁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신 분이 없다면

베드로는 회개 지키기의 달인, 또는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는 달인,

남들은 다 버려도 저는 절대 안 버리겠다고 장 지지겠다는 달인이 되어

다윗처럼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라는 4종 세트로 이 이름없는 아기를 살려 보겠다고 할 것이다 말이죠

바로 이것이 회개치 않는 완악한 자의 모습이다고 했습니다.

 

따로 마련하신 이미 완료하신 천국이 떳기에

미디안의 날을 거치지 않고서 구원을 어떻게 하면 얻느냐 라고 묻는 회개치 않는 완악함이 들통나는 겁니다.

내가 하는 회개란 다 거짓이다는 겁니다.

회개 자체가 압도적으로 덮쳐지면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뭐 구원 구원 선민 선택받은 민족 그거 다 허구이더라

나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면서도 이렇게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인줄 그 동안 몰랐는데

이제야 알았다

내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할수도 없는데

어떻게 무슨 수로 구원받으랴

도리어 심판 받아 마땅할 정도로

여섯날개로 천사라 가려도 감당이 안되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무슨 수로

감당하랴 지금 그 영광의 빛에 녹아져 버릴정도로

태양도 달도 사라지는 판국인데

부정한 나 이면, 더더욱 구원은 말도 안된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불뱀 물린 자로써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쳐다보는 자이다는 겁니다.

안 쳐다 보는 자는 쳐다볼 이유가 없다 말이죠.

즉 어떻게 하면 구원얻냐 라는 회개 할까요? 뭘 할까요? 에이 쳐다보라고요?

그건 절대로 구원이 안된답니다 라고 무시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즉 이 말은 장대높이 달린 인자가 못보도록 막아버렸다는 겁니다.

 

? 어차피 회개의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회개를 지킬줄 알았지

당장이라도 회개 할 수 있다고 우기지

 

회개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제가 이 회개를 기생라합의 거짓말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또는 미디안의 날 속에서의 기드온의 칼이여 라는 외침 곧 이것도 거짓말인데

이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불뱀에게 물렸는데 쳐다보기만 하면 고개만 돌리면 낫는다굽쇼? 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

 

이게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니깐요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상대적인 회개치 않는

회개자로 태어나지 않은 자를 가려내기 위한 거짓말처럼 들리는 소리에 걸려 넘어지는

채에 걸려지는 겁니다.

 

놀랍게도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대부분의 목사들이 어떻게 해석하는 고 보니

행함을 누가 제일 아쉬워 하는고 하니 목사들이다 말이죠

교인들이 이 행함을 무시할까봐

안 행할까봐 발을 동동 굴려요

특히 헌금 ㅋㅋㅋㅋ 목사들은 애가 타들어 갑니다. 애가타 ~~ 답답해 미쳐요

 

그냥 나는 삯꾼입니다 돈 좀 주세요 라고 하면 될 것을

뭐 헌금이 어떻고 저떻고

돈을 탐내는 모습을 들키면 안되고

그러니 점점 종교로 사람을 조져요 꽈아악 눌러요 눌러

 

제가 아이디어를 이렇게 내니까 저를 마귀 취급을 해요 글쎄

결국은 저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자기가 했다고 자랑해놓고서는

그래도 끝까지 돈 욕심 없는 척 하고

저는 교회 돈 훔쳤다고 도둑놈으로 몰아버리고

 

기가막힌 타이밍에 하필이면 누가 성경책에 돈을 놔두웠는데

교회에 제일 늦게 나가는 사람이 저 밖에 없으니

얼마나 시야가 좁아지겠냐 말이죠

이미 소문이 다 퍼졌으니

아 이것이 이미 주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먼저 떳기 때문에 벌어졌구나를

누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내가 회개 한 적도 없는데 회개가 막 덮쳐요 글쎄 ㅋㅋㅋㅋㅋ

어디를 가도 난 가짜요

무엇을 해도 다 죄 뿐이요

가만히 있으도 도둑놈이 될 수 밖에 없는

이게 말이 아니라 실제로 막 덮치는구나

이 은혜를 감당할 길이 없더라 감당이 불감당이다 말이죠

 

아무튼 그래서 교회에 덕이 안될까봐

늘 안절부절의 모습을 대부분의 목사들로부터 봤다 말이죠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아예 씨알도 안 먹힐소리라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들은 손도 없고 듣고 보도 만지지도 못하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기에

 

탕자에게만 들려오는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그래서 인간이 행하는 행함을 행함이라고 대부분 해석을 하고

실제로 교인에게 강요를 하더라 말이죠

 

즉 행함을 인간의 시공간의 역사적인 해석으로 하더라 라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 행함의 달인들인 부자청년 곧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또 맏아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대부분의 아버지는 이런 아들 좋아라 한다 말이죠

누가 탕자 를 아버지가 좋아라 하냐 말이죠

탕자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다른 세계의 아버지 일 뿐이다는 겁니다.

또 율법사가 어떻게 하면 구원 얻냐 라고 큰 계명 두 계명을 지켰다고 나온다 말이죠

 

자 이들이 주장하는 행함과

오늘날 교회 목사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 이 행함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믿음이라고 하는 이 행함과

똑같이 보고 있는데

 

놀랍게도 저의 글들 중에 어떤 글을 보고서 동의한다고 주장해 놓고서는

행함을 저렇게 해석하는 목사들이 결국 태반이더라 말이죠

그냥 모르겠다 하면 될 것을 동의한다고 하고서는 사기를 쳐요 글쎄

행해야 한다고 ~~~ 그래야 죽은 믿음이 안된다고 협박 공갈을 쳐요

 

회개와 행함을 해석할 줄 아는 목사를 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회개 아닌 것

행함이 있는 믿음의 행함 이 아닌 것 결국 믿음도 아닌 것을

해석할 줄 아는 목사도 없을뿐더러 거기에다 상대적인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회개나 행함이나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해석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

물론 앞으로도 없다는 겁니다.

? 천국이 떳기에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십자가가 떳기 때문에

앞으로도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은 의외로 간단하고 쉽습니다

답을 다 알려줘도 목사들은 절대로 못 봐요

알려줘도 못 봅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말이죠

왜 이미 우상에게 속했기에

빠져나올수가 없어서 무시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무시할 수 밖에 없는 그 간단하고 쉬운 답은 이겁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시지만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더라 말이죠.

절대로 안 보여줍니다.

눈이 천개 만개 달려도 말이죠.

 

(10:21, 개역)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행함이 있는 믿음에서의 행함과 믿음 또는 회개를 한마디로 정리해서 표현하면

바로 마음판의 할례입니다.

 

자 그럼 그 상대적인 것은 손 할례입니다.

 

목사들은 마음판의 할례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겁니다.

본인도 압니다. 자기도 안된다는 것을

그러나 혹 누구 하나 걸리는 놈 있을 것이다 라고 던진다 말이죠.

 

마치 바리새인들이 손할례를 자신들은 행하고

개같은 이방인들은 손할례를 하지 않았기에

행하지 않았기에 심판받는다고 알았듯이

손할례의 유무로 봤는데

예수님의 해석은 더 깊게 들어가서

꼬추가 아니라 마음판을 그럼 무슨 수로 짜르르냐 가 된다 말이죠

손이 들어갈 수가 없는 영역이다 말이죠 행함의 영역이 아니예요

 

의사가 되어서 수술대에 가슴이나 배를 갈라 열여서 짜르겠다고요?

의사 안되면? 또 마음이라는 장기는 눈에 안 보인다 말이죠

그리고 마음이 꼬추처럼 짜를수 있는 뭔가가 있던가

얼마나 막연하냐 말이죠

그러니 손 할례는 하면 할수록 더더욱 막연하고 답답한

종교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우상이죠.

 

이 말은 그 정도로 상대적인 손할례가 저들에게서는 또렷한 행함인줄 알았는데

도리어 손할례가 또렷하기는커녕 의문과 흐릿함과 미흡하기 짝이 없다는 겁니다.

 

도리어 손할례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 자체를 회개를 해야 하는데

나는 손할례를 했다 곧 회개를 했다고 여기니까 회개를 안 한거다 라는 겁니다

본다고 하니 소경이다는 겁니다.

차라리 저 소경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하지 않으니까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봐서 다 죽더라 말이죠

 

에이 안 쳐다 본다고 설마 죽겠냐

 

바로 그것 때문에 오늘 여섯째 천사를 통해서

이 땅이 얼마나 살기가 불가능 세계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뱀을 풀어버리듯이 말이죠

 

(9:13, 새번역)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있는 금제단의 네 뿔에서 울려 나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뿔들'

(9:14, 새번역) 그것은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큰 강 유프라테스에 매여 있는 네 천사를 풀어놓아 주어라"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9:15, 새번역) 그래서 그 네 천사가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기 위하여, 그 해, 그 달, 그 날, 그 때에 맞추어 예비된 이들입니다.

(9:16, 새번역) 내가 들은 바로는 그 천사들이 거느린 기마대의 수는 이억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9:17, 새번역) 나는 이러한 환상 가운데서 말들과 그 위에 탄 사람들을 보았는데, 사람들은 화홍색과 청색과 유황색 가슴막이를 둘렀고, 말들은 머리가 사자의 머리와 같으며,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9:18, 새번역) 그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 이 세 가지 재앙으로 사람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9:19, 새번역) 그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는데, 꼬리는 뱀과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달려 있어서, 그 머리로 사람을 해쳤습니다.

 

얼마나 이 세상은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세계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만 만 이라고 표현한 것을 구지 2억이라고 다른 번역이 다 그렇게 하는데

이것은 이중성 곧 이중반복이라는 배가 의미를 담고 있어야지

구지 풀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 숫자조차도 상대적인 의미로 대조를 이루기에

770이라고 하지 490번이라고 하지 않는다 말이죠

그래야 상대적인 남을 7번 용서가 왜 우상적인가를 드러내는 겁니다

부정의 부정이다 말이죠.

숫자조차도 일곱을 말하기 위한 기능이지

존재가 아니다는 겁니다.

 

(9:16, 개역)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9:16, 새번역) 내가 들은 바로는 그 천사들이 거느린 기마대의 수는 이억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9:16, 현대인) 그 천사들이 거느릴 기병대의 수는 2억이나 된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천국이라는 본향을 쳐다보지 않는 이유는

즉 이미 덮쳤음을

다 이루심이라는 종말을 미리 앞당겨 누리지 않고자 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피 용서를 쳐다보지 않는 이유는

 

고개가 담이 걸려서 안 돌아가는게 아니라

 

천국이

곧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못 쳐다보도록 막아버렸기 때문에

 

이 미디안의 날에 탈취한 탈취물을 함께 먹고 씹고 뜯고 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저들에게는 다른 것이 자리잡아서 그것만 답답해 안달이 나 있는 겁니다.

애가타 있는 겁니다.

 

저들은 또 상대적인

이 말도 안되는 소리에 귀 기울일수 조차도 없고

 

말 되는 우상의 세계에 빠져 있기에

손 할례 보다 또렷한 행함 또는 회개가 어디있냐 라고 우긴다 말이죠

뭐 이 어려운 것을 해내지 말입니다 라고 겨우 겨우 회개의 달인이 된 것을 포기하고

저 꺾으신 뼈로 기뻐하라고?

 

저 기드온의 칼이여 그 거짓말을?

우리의 밥이다 보호자 싸움이다 라는 그 거짓말을?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 주라는 그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마음판의 할례를?

 

즉 저들 목사들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갖추겠다는 것 자체가 도리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주체가 절대로 못 보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마음판의 할례를 손 할례 갖추듯이 갖추겠다는 자체가

마음판의 할례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더라 라는 겁니다.

 

차라리 손할례도 안되는 판국의 개같은 이방인이요 흑암의 백성이라고 하면

소경이라고 고쳐달라고 하면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하면

고쳐주실 것인데

 

자꾸 본다고 하니

자꾸 소경 아니다고 하니

자꾸 손할례 하듯이 마음판의 할례도 할 줄 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할 줄 안다고 하니까

 

도리어 걸려 넘어지더라 라는 겁니다.

 

아니 불가능한 것을 줬는데 할 줄 안다고 하면

누구를 거짓말 쟁이로 만드는 셈이냐 말이죠

 

분명 어릴적부터 다 율법 다 지켰다고 했다 말이죠 부자청년이

어 그래? 이상하다 불가능하도록 율법을 줬는데

죄 아래 가두고자 줬는데 죄인 아니라고 하네 의인이라고 하네

오로지 율법의 완성은 사랑 곧 나 예수만이 이룬다고

몽학선생으로써 율법을 줬는데 지나개다 소나 다 지킨다고 하니

과연 그런지 이제 손할례가 아닌 마음판의 할례를 줘 보자

자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 주어라

 

갑자기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완벽함을 주장했던 자가

졸지에 턱 하고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더라 말이죠

십자가가 졸지에 걸림돌이 되었어요

왜 마귀자식이라서

완벽을 갖출려고 하기에

 

그런데 이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영광인 이유는

사랑이거든요

아무리 봐도 사랑이다 말이죠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랑을 저들은 그냥 받기만 하는 사랑을 그 사귐을

자꾸 누리지 못하고 턱 걸려 넘어져 자빠지기만 하더라 라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 십자가가 막아요 글쎄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고개를 못 돌리도록 으쌰 으쌰 절대로 고개 못들려 라고 막더라 말이죠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이 예수님을 보는 것은 아주 쉬웠어요

왜냐하면 나는 보는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주여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만 했을 뿐이예요 목사들 주장처럼 행한 것 없어요

 

너무 쉽게 본 예수님을

 

저들 바리새인들 성경 박사들 죄에 대해서 연구하고자 실로암소경을 날 때부터 소경이라서

자기 죄인지 부모의 유전적인 죄인지를 연구해서 논문 발표를 해야하는

저들은 아무리 봐도 봐도 봐도 또 봐도 예수님이 보입니까?

 

저들 말 마따나 날 때부터 소경인자가 볼 정도면

이들도 봐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이것이 반드시 한 세트로써 바리새인과 실로암소경으로써

약속이라는 복음을 구성한다 말이죠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늘상 벌어지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자에게 회개 하라고 가르쳐주는 바리새인이 있을까요?

없어요 왜? 죄부터 규정이 안되거든요

죄를 규정해야 회개를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욥과 욥의 세친구가 생각나죠

욥의 세친구는 회개하라고 욥을 다구치는데

회개를 할려면 죄를 규정을 해야하는데 이 욥의 세친구들이 죄 규정 조차도 못하더라 말이죠

그저 고난을 받는다는 자체로 죄인이다고 회개하라고 다구치더라 말이죠

 

바로 이 욥기에서의 고난을 욥기에서는 애매한 고난이라고 하는데

인간 쪽에서 규정을 못하고 있더라 라는 겁니다.

악을 죄를 제대로 규정을 못하면

의도 은혜도 다 엉터리 해석이 된다 말이죠

 

(벧전 2:19, 개역)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 2:19, 새번역)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벧전 2:20, 개역)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21, 개역)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2, 개역)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 2:23, 개역)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4, 개역)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5, 개역)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욥이 글쎄 장대 높이 달린 예수님을 보고서는

다시는 피부병 낫게 해 달라고 하지 않더라 말이죠

밤새도록 긁어 대면서 피부병 낫게 해달라는 그 외침을

더 심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대 높이 달린 예수님을 보고서는

도리어 재를 뿌리고 입을 막고 머리를 땅에 쳐박는

 

(42:1, 개역)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42:2, 개역)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42:3, 개역)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2:4, 개역)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42:5, 개역)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42:6, 개역)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42:7, 개역)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42:8, 개역)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42:9, 개역)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42:6, 개역)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42:6, 새번역)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42:6, 공동)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42:6, 바른) 그러므로 제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티끌과 재 위에서 회개합니다."

(42:6, 현대인) 그래서 내가 말한 모든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42:6, 쉬운말) 그러므로 저는 여태 제가 말한 모든 말들을 심히 부끄럽게 여기며, 스스로를 경멸하면서 티끌과 잿더미 가운데 앉아 회개합니다.”

(42:6, 쉬운) 이제 제 자신을 경멸합니다. 그리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42:6, 우리말) 그래서 내가 스스로 한탄하며 티끌과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합니다.”

(42:6, 킹흠정)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니라.

(42:6, 한글킹) 그러므로 내가 나를 미워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더라.


즉 회개란 나 회개 했으니까 회개 하라고 하신 것 회개했으니 됐지요가 아니라

회개란 뭘 해도 다 가짜이다는 겁니다.

회개를 해도 그 회개도 죄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만 나아간다는 겁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다윗자리 곧 한 아기가 앉는 자리이고

그 외의 것은 교만하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완벽을 추구하는

우상숭배자이다는 겁니다.

 

결국 우상숭배자는 세상에서 찾을게 아니라

도리어 교회 속에서 나 구원 받아야 해 라고 그 구원의 조건을 갖추는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서 우상숭배자가 또렷하게 나타나는 겁니다.

 

애매하고 모호하고 의문의

손도 없어서 만지지 못하고

귀도 없어서 듣지도 못하고

입이 없어서 말도 하지도 못하는 그 우상을 오늘날 누가 믿고있냐 말이죠

 

차라리 저는 죄인입니다, 우상숭배자입니다.

? 마음판의 할례를 아무리 할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손 없는 자요 귀 없는 자요 눈 없는 자라서 예수님을 내 자력으로는 볼 방법도

만질방법도 주의 음성을 들을 방법 조차도 아예 원천 차단 당한

죄인이기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회개자(회개의 사람으로 태어난)

곧 천국이 떳기에 반드시 천국의 증상으로써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증상물이

회개자 곧 종말을, 끝을,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미리 앞 당겨 쳐다보는 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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