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찬양)가 누구에게 보내심을 받는가? (12: 1- 6)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찢으셨으나), 이제는 나를 안위하시오니(싸매이 주실 것이라) (12: 1- 6)

 

감사 측량, 거룩 측량
(10번 이상 원망한 자에게 감사가 덮쳐지다? 도저히 찬양(시편)할수 없는 찬송 자체를 모르는 열방에게 찬송의 옷이 입혀지다? )

 

(57:9, 개역)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8:3, 개역)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6:1, 개역)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12:1, 개역)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12:2, 개역)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12:3,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12:4, 개역)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12:5, 개역)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12:6, 개역)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12:1, 새번역) 그 날이 오면, 너는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 전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12:2, 새번역)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 , ''

(12:3, 새번역)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12:4, 새번역)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12:5, 새번역)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12:6, 새번역)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57:1, 개역)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57:2, 개역)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57:3, 개역)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57:4, 개역)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7:5, 개역)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57:6, 개역)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

(57:7, 개역)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57:8, 개역)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7:9, 개역)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57:10, 개역)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57:11, 개역)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108:1, 개역) [다윗의 찬송 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108:2, 개역)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108:3, 개역)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108:4, 개역)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108:5, 개역)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108:6, 개역) 주의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108:7, 개역)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108:8, 개역)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108:9, 개역)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108:10, 개역)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108:11, 개역)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8:12, 개역)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08:13, 개역)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감사란 구원의 의미처럼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듯이

감사란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는

마른 뼈를 다시 살리심이기에

 

도저히 감사의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이 덮쳐지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곧 찬송의 옷이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구원, 사람의 구원이 헛되듯이

사람의 감사는 항상 조건이 맞아야 하기에 사람의 감사 또한 헛것입니다.

 

감사의 조건이 많은 자에게서 나오는 감사가 아닌

도저히 감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나온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나올수 있는 감사가 아닌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감사이기에

주님 쪽에서 덮어 씌우는 감사인 겁니다

 

곧 성도에게서의 감사는 딱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다는 것 이거 하나입니다.

그래서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를 치르는 겁니다. ? 너무 너무 감사해서 말이죠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이 여인이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 기념이 된다고 말이죠

 

(26:13,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14:9,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즉 여러분도 복음인지 복음 아닌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과연 복음 아닌 것이 뭔지를 들어봐야 합니다.

그 차이로써

복음 아닌 것과 복음인 것의 차이가 분명해 지니까 말이죠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이 복음이다 라고 하십니다.

그랬을때에 제자들이 기분 나쁠까요 좋을까요?

제자들의 주장은

그 여인에게 화를 내면서 그 땅에 허비한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더욱더 효율적인데 왜 한방에 순간적을 돈을 낭비하냐 라고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가난한 자를 생각해서 일까요?

아니면 그런 바른 소리를 할 줄 아는 본인들이 제자 다움을 펼치는데 있어서

상대적인 이 여인이 걸려든 겁니다.

 

그러니 덮썩 물었지요 좋은 기회죠 뭐

자신들이 스승의 가르침에 맞는 행동을 했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이 바로 소돔이라고 했지요

 

주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 숨 까지 바치겠다는 자세 이것이 글쎄 소돔이래요

종교라는 짐승의 수 666의 매매가 뭡니까 바로 이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소통시키는 겁니다. 이것으로 수요 공급의 매매가 이루어진다 말이죠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매매 소통한다 말이죠

 

율법사가 그랬지요 큰 계명 두 계명이 예수님 뭐지요?

첫째는 하나님 사랑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그런데 선한 사마리아 비유를 통해서

그 매매 소통 개방이 졸지에 뚝뚝 끊어지더라 말이죠

왜 하필이면 철천지 원수인 사마리아인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고

왜 대제사장 레위인은 이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못 되는 가를 보여주신다 말이죠

 

네 맞습니다. 거룩 측량입니다.

당신이 거룩에 종사하는 기능을 지녔다면

건강한 자

의인을 찾을게 아니라

도리어 가장 더러운 자

가장 죄인 중의 괴수인 원수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진짜 거룩이 아니겠냐 말이죠

 

그래서 오늘 제목을 생뚱맞게 거룩 측량 감사측량이라고 했습니다.

 

거룩은 도리어 가장 더러운 자에게 보내심을 받습니다.

참선지자가

엘리야는 이스라엘도 아니요

이스라엘의 많은 과부도 아니요

이방인도 아니요

이방인의 많은 과부도 아니요

이방인의 많은 과부 중에 단 한 사람 사랩다 여인에게 보내심을 받았고

 

엘리사는 이스라엘도 아니요

이스라엘의 많은 문둥병자도 아니요

이방인도 아니요

이방인의 많은 문둥병자도 아니요

이방인의 많은 문둥병자 둥에 단 한사람 나아만 장군에게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거룩한 영인 성령을 받은 참선지자가 말이죠

 

그럼 상대적인 거짓선지자는 그 반대이겠죠

 

마찬가지로 오늘 나오는 감사는 누구에게 보내심을 받겠냐 말이죠

다윗이 자신이 드리는 회개 눈물 기도 금식이 먹혀 들지 않자

드디어 씹고 뜯고 먹고 마시고 감사함이 덮쳐버리더라 말이죠

 

아니 왜? 자기의 눈물 회개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릴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말이죠

이 멀쩡한 아이가 죽음으로써

죽은 다윗을 살리니까

도저히 감사 할수 없는 죽은 다윗이 드디어 감사가 덮쳐져서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말도 안되는 이 단절 속에서 감사가 덮쳐지더라 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디디야 여디디야 여디디야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주님이 대신 눈물 흘리심으로써 내가 나음을 입었다고

니 날 사랑하냐 니 날 사랑하냐 니 날 사랑하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즉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감사가 아니라

그 정반대인 불 속에 들어가서 감사가 주님쪽에서 허물치 않겠다고 덮어씌워주시는 것이 감사이다 말이죠 찬송의 옷이다 말이죠

 

여디디야 라는 뜻이 여호와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이라는 뜻 아닙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아 라는 가요 속에서의 수 많은 가사처럼

내가 주님을 사랑 한 것이 아니요

주께서 나를 사랑하사 화목제물을 보내셨다 말이죠

 

자 그렇다면 다윗은 의인의 자리에 놓여져야 합니까 아니면

죄인 곧 원수의 자리에 놓여져야 합니까

 

거룩 측량이

감사 측량이

찬송의 옷 측량이

 

누구를 부르러 왔겠냐 말이죠

 

그래서 참선지자는 이 십자가의 삼일이라는 간극 속에 우리를 모두 집어넣습니다.

엘리야는 비오지 않기를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도록 기도해서 죽음 속에 다 집어넣습니다.

모세는 10가지 재앙 속에 애굽만이 아닌 이스라엘 조차도 집어넣습니다.

 

과연 누가 모세의 노래

유리바다의 노래를 부를까요?

안 부르고는 못 배기는 자는

호흡이 있는 자입니다.

심지어 열방 조차도 찬송을 해요

 

감사의 조건

찬송의 조건을 갖추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덮쳐져서

감사가 덮쳐지고

찬송이 덮쳐지고

거룩이 덮쳐져서입니다.

 

분명 홍해 바다 속에서 다 죽었거든요

다 죽었는데

그 심판 속에서

그 물 속에서 다시 살더라 말이죠

세례를 받아요 글쎄

 

할례 라는 표식은, 기호는 이런 사건이 덮쳐져서 그 속에서 구원받았다 라는

저요 저요 손들고서 저 그 사건 격었어요 그 사건에 대해서 잘 알아요

그 사건이 덮쳐졌거든요 라고 깃발을 들 듯이

사건에 의해 표식이 쭈우욱 칼자국처럼 몸에 문신처럼 새겨지듯이 홈패이는 흔적이 있거든요

예수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처럼 말이죠

나 예수 그 양반 만나서 죽었다가 다시 삼일만에 살아난 흔적 있어?

그것이 바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표식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시는 십자가의 흔적이다 말이죠

 

아니 십자가가 무슨 감사가 되겠냐 말이죠?

하나님의 저주인데?

 

그래서 다들 십자가의 그 정반대인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원할때에

 

지혜란 무엇입니까? 잔칫집에 가지 말고 초상집에 가라고 하셨다 말이죠

 

(7:1, 개역)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7:2, 개역)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7:3, 개역)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7:4, 개역)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7:5, 개역)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7:6, 개역)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뭐뭐 보다 낫다 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미 장악당한 상태에서 강요된 선택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자유의지라는 것이 성경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만들어 조작을 해 놓아야

편하게 신학을 교리를 종교를 구성하고 조직할수 있다 말이죠

그래야 가르치고 복종을 강요할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이 진짜 강요된 선택이다 말이죠

말이 선택이지 이미 강요 속에 놓여졌기에

선택권이 있다고 착각하도록 하는 것이 강요성이다는 겁니다.

 

오히려 저런 능동성(자율성)이 아니라 수동성(비자율)이 훨 씬 더 낫다 라고

뭐뭐 보다 낫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 보다 낫다

 

이게 지혜라는 겁니다

 

그럼 지혜란 반드시 복음아닌 것을 가지고 와서 그 차이로써 복음 아닌 것과 복음인 것을 구분 시키듯이

 

복음 아닌 것이 바로 대제사장처럼 거룩에 가장 가까운 직분에 놓여진것인데

막상 거룩측량 성전측량 감사측량 찬송측량을 해보니

 

예수님에 대해서 거룩에 대해서 전혀 노래를 할 줄 모르더라 말이죠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을 노래를 못해요 알지도 못해요

성경박사요 신학자요 실로암소경에게 죄인 이라고 규정하는 자가 말이죠

 

그럼 그 상대적인 복음은 뭐냐

거룩측량 성전측량 감사측량 찬송측량을 재어 보니

벙어리가 찬양을 하지를 않나

실로암 소경이 예수님을 가장 잘 알아보고 있지를 않나

가장 더러운 문둥병자 나아만이 깨끗해 지는 거룩이 덮쳐지질 않나

 

그 차이로 또렷하고 분명하고 명료하게 보이더라 말이죠

 

이것이 바로 감사측량하는 방법입니다.

삼일의 간극 속에 집어넣고

천이백육십일 3년반 동안 비오지 않는 죽음 속에 집어넣고

홍해 속에 집어넣는 것이 바로

측량방법이다 말이죠

 

심판 속에 집어넣어 보니

그 동안 얼마나 거룩했는지를 저울질 해보게 됩니다.

해보니 거룩은커녕 모조리 배설물만 잔뜩 모았더라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율법의 4배나 갚으라 라고 하지를 않나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고 하지를 않나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고 하지를 않나

십일조를 이레에 두 번 금식을 했다고 하지를 않나

 

그 속에서는 도무지 원수의 모습이 전혀 없어요 너무 너무 깨끗한 의인인데

왜 사랑이 오겠냐 말이죠

왜 화목제물이 오겠냐 말이죠

올 필요 없지요

 

사랑은 원수에게만 해당 되거든요

그래야 말도 안되요

 

말이 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요

 

사랑측량은 도저히 저 사람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라고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칠때에 사랑은 그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말이죠

 

탕자 보세요

누가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룩측량 하면

성전측량하면

사랑측량하면

아마 제일 끝에 설 자 아니겠습니까?

 

누가 찬송을 할 수 있겠냐 말이죠

찬송측량을 하면 아마 벙어리를 제일 끝에 설꺼다 말이죠

그 사람에게 찬송의 옷이 입혀지는 겁니다. 이게 진짜 찬송의 옷이 입혀지는 것이다 말이죠

 

그래서 울어라 라고 하는 겁니다.

웃는 것 보다 더 낫다 라고 우는 자는 노래 부른다는 겁니다.

 

잔칫집에 가지 말고 초상집에 가라고 합니다

끝을 미리 당기라 라는 겁니다.

 

그래서 향유를 부은 여인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치르듯이 향유를 붓는 겁니다.

머리카락으로 내 죄 대신 죽으시는 예수님을 감사하다고 말이죠

 

멀쩡히 살아있는 예수님을 아예 보내버려요 글쎄

제자들이 달려들 수 밖에 없죠

 

자 그럼 오늘 이사야가

자기가 감사를 해서 감사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원인 있는 결과이고

 

이미 감사가 덮쳐져버렸기에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라는 화목제물이 덮쳐져서 말이죠

 

그래서 화목 곧 원수 됨에서 화목이니까

원수의 자리에 놓여져서

심판의 자리에 놓여져서

화목이라는 더 나은

보다 나은 감사를 노래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탕자에게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곧 금가락지

살진소

좋은 신발이 주어지듯이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라는

 

나 보다 옳도다 가 덮쳐졌기에

신나게 이 삼일의 간극을 보여주고서

신나게 주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는 겁니다.

 

아이고 그것도 아픔이가? 나의 주님이 격으신 아픔은

그것 보다 더 낫다 라고

 

더 나은 것을 외치고자

이전 것을 지나갈것이라고 시시하게 취급해 버리더라 말이죠

 

새이스라엘이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 다 이루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헌이스라엘을

이전 것으로 취급하고 지나가고 사라질 것으로 여기고 시시하게 취급해 버리는데

 

반대로 거짓선지자들은 안된다 절대로 이스라엘 망할 리가 없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바로 복음 아닌 것으로써 등장해 줌으로써

그 차이로 복음인 것과 대조를 이루면서

복음이 증거 되는 겁니다.

 

이 두 충돌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감사하게도

이 차이를

보다 더 나은 것을 보게 되는 겁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시는

듣고 봄으로써 깨달아 돌이켜 고침을 받을까봐 두려워 떠시는 예수님

곧 복음의 등장으로 말이죠

 

찢으심 없이는 나음을 모르고

치심이 없이는 싸매어 주심을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잃어버림이 없이는 되찾음이 없듯이

 

주님의 노하심이 없이는 그 심판이 없이는

구원도 감사함도 없는 겁니다.

 

뭘 해도 우리는 함량미달입니다. 다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심으로 인해

우리는 뭘 해도 감사 밖에 없습니다.


이미 그 날이(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났기에) 덮쳐졌기에 말이죠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뇨?

 

(15:12, 새번역) 그리고 이사야가 말하기를 "이새의 뿌리에서 싹이 나서 이방 사람을 다스릴 이가 일어날 것이니, 이방 사람은 그에게 소망을 둘 것이다" 하였습니다. / 11:10(칠십인역)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 53:2, 개역)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개역)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4, 개역)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개역)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개역)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7, 개역)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8, 개역)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 53:9, 개역)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 53:10, 개역)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 53:11, 개역)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사 53:12, 개역)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눅 22:31, 개역)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 22:32, 개역)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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