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의 멸망 (15; 1- 9)

 

(15:1, 개역)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루 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15:2, 개역)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털을 없이 하였고 수염을 깎았으며

(15:3, 개역)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15:4, 개역)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전사가 크게 부르짖으며 그 혼이 속에서 떨도다

(15:5, 개역)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귀인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로 도망하여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부르짖으니

(15:6, 개역)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15:7, 개역)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15:8, 개역) 이는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 슬피 부르짖음이 에글라임에 이르며 부르짖음이 브엘엘림에 미치며

(15:9, 개역)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 그럴지라도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 내리되 모압에 도피한 자와 그 땅의 남은 자에게 사자를 보내리라

 

(15:1, 새번역) 이것은 모압을 두고 내리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알이 망하는 그 밤에 모압이 망한다. 길이 망하는 그 밤에 모압이 망한다.

(15:2, 새번역) 바잇과 디본 사람들이 산당에 올라가 통곡하고, 모압 사람들이 느보와 메드바의 멸망을 보고 통곡한다. 모두 머리를 밀고, 수염을 깎는다.

(15:3, 새번역)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길거리에 나앉아 울고, 지붕 위에 올라가 통곡하며, 광장에서도 통곡하니, 볼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15:4, 새번역) 헤스본과 엘르알레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저 멀리 야하스에까지 들리니, 모압의 용사들이 두려워 떨며 넋을 잃는다.

(15:5, 새번역) 가련한 모압아, 너를 보니, 나의 마음까지 아프구나. 사람들이 저 멀리 소알과 에글랏슬리시야까지 도망 치고, 그들이 슬피 울면서 루힛 고개로 오르는 비탈길을 올라가고, 호로나임 길에서 소리 높여 통곡하니, 그들이 이렇게 망하는구나.

(15:6, 새번역) 니므림 샘들이 말라서 메마른 땅으로 바뀌고, 풀이 시들고, 초목이 모조리 사라지고,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가 없구나.

(15:7, 새번역) 그러므로 그들이 남겨 놓은 것과 쌓아 놓은 재물을 가지고, 버드나무 개울을 건넌다.

(15:8, 새번역) 그 곡하는 소리가 모압 땅 사방에 울려 퍼지고, 그 슬피 우는 소리가 에글라임에까지 들리며, 그 울부짖는 소리가 브엘엘림에까지 이른다.

(15:9, 새번역) 『㉠디몬의 물이 피로 변하였다. "내가 또 다른 재앙 하나를 더 내리겠다. 모압에서 도피한 자들과 그 땅의 남은 자들에게 사자를 보내어서, 그들을 찢게 하겠다." / 마소라 본문을 따름. 사해 사본과 몇몇 칠십인역 사본과 불가타에는 '디본'

 

 

오늘 본문은 모압에 대한 멸망입니다.

아무리 내어버려 둔 이방민족이지만

이들 조차도 약속에 의해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멸망하는 법은 없습니다.

절대로 독자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의 흥함도 곧 몽둥이를 쥐도록 되어 있는 것도 주님의 뜻이고

이들의 패함도 곧 시체더미로 만들어 죽인 그 이스라엘의 시체에 다시 깔려 죽는 시체가 되는 것도 주님의 뜻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요 취할이도 여호와이다는 겁니다.

 

(1:21, 개역)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1:21, 새번역) 이렇게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 또는 '떠날 것입니다'

(1:21, 쉬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어머니 태에서 벌거벗은 채로 나왔으니, 벌거벗은 채로 그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21, 현대어)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뱃속에서 빈몸으로 나온 이 몸 다시 빈몸으로 돌아갈지라. 여호와께서 주셨으니 가져가지는 분도 여호와시라. 오직 여호와만이 찬양받으실지라.'

 

(51:5, 개역)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51:5, 새번역)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51:5, 쉬운) 그렇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투성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부터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51:5, 현대어) 이 몸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업고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죄를 지고 있었습니다.

 

즉 회개전쟁입니다.

천국이 땡기는 자는 회개가 이미 덮쳐지고

반대로 지옥이 땡기는 자는 번제와 제사에 목숨 거는 겁니다. 곧 우상입니다.
회개를 해야만 그 뒤에 천국이 오는게 아니다 말이죠.

 

결국 이들 이방국가도, 모압도 여호와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맞습니다. 마귀도 그렇게 동원이 되는 겁니다.

부정적인 도구 곧 진노의 그릇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말이죠

 

자 그렇다면 이들의 등장은 곧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것을 말하고자 동원이 되는 겁니다.

형 에서는 미워하기로 작정이 되었고

동생 야곱은 사랑하기로 작정이 된 겁니다.

 

그럼 왜 형 에서는 미움을 받아야 하는가

! 동생 야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동원이 된다는거고

 

동시에 왜 동생 야곱은 왜 사랑 받아야만 하는가를 말하기 위해

! 그래서 형 에서가 미움을 받는구나를 말하기 위해 동원이 되는 겁니다

 

즉 미래완료에서 원인 없는 결과가 덮쳐져서 이지

이들이 뭔가의 행동 여부로 달라지는게 아니다는 거죠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전에 작정된 겁니다.

 

하나는 지옥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는 천국 곧 예수님의 인애와 자비를 찬양하기 위해서 말이죠

 

결국 모압의 멸망은 동시에 바로 이런 이스라엘 특이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이렇게 인애와 자비로만 인도하시는가 철저하게 징계를 하시는가입니다 

사생아 이다는 거죠

반대로 자녀가 아닌 자는 번제와 제사로만 살도록 내어버려 두시는 겁니다. 징계가 없죠.
.

즉 번제와 제사를 싫어하시기에 절대로 번제와 제사로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번제와 제사를 추구하는 오늘 나오는 모압

그리고 주변의 이방국가들은 이미 미움받기로 작정된 바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괜히 이스라엘 주변 국가를 삥 둘러서 이런 국가민족을 배치 시킨게 아닙니다.

 

김정은 보세요 혹시나 싶어서 아무리 미운 중국이라도

미국을 만날 때 마다 보험들 듯이 쪼로록 달려가서

미국이 딴 소리하면 중국의 도움을 받을려고 하듯이 말이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서로가 패씽 안 당하고자 말이죠

이게 국가요 종교입니다.

인정 못 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말이죠

이것이 종교 666이요 국가 라는 짐승입니다. 이것만이 유통 매매가 된다 말이죠.

마귀의 두 번째 시험 종교죠.

 

그러나 인간의 움직임, 노동, 행함이라는, 활동으로 역사가 굴러가는게 아니라

괜히 주변 국가를 그런 저런 민족을 주변에 깐게 아닙니다

평상시 으르렁 원수 같이 굴어도

자기유익에 따라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이것이 우상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말이죠

 

마귀의 세가지 시험은 따로 따로가 아닙니다.

동시다발입니다.

종교에 안 빠졌다고 정치, 경제에서 벗어나는 초월이 될 수 없다 말이죠

한 가지 걸렸으면 다 걸린 겁니다.

우리는 이 마귀에게서 못 벗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가지 시험을 이겨 놓고 복음을 시작하시는 겁니다.

세가지 라고 하니까,  3이라고 하니까, 숫자 3이 아니라

방금 위에서 언급했듯이 동시다발이니까 결국 하나죠 뭐

숫자 3이 아니라 사건의 단락입니다.

매듭? 꺽어짐? 주름과 펼침?

대나무를 보면 마디가 있잖아요

아! 마디가 가장 적당한 표현이네

한 마디 두 마디

 

마디 라는 표현이 맞나? 뭐라고 하나? 싶어서 검색해 보니

대나무 에게는 마디 라는 말이 맞다고 하네요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다른 나무와 달리 대나무를 나이테가 없다고 하네요

시간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마디가 생긴다는 겁니다. 마디가 생기면 휴식기간이다는 거죠

 

뭘 말할려고 했는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3은 사건의 단락 곧 창조 사건처럼 창조하시고 쉬었더라

1일에서 3일까지 그리고 다시 4일째는 1일째의 배경에 내용물을 채워서

4-1 5-2 6-3로 일하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러니 엘리야는 36개월이지만

이사야는 3년이라고 시간이 틀리다고 하지만

시간으로 보시지 마시고 한 단락 한 마디 라는 사건으로 보시면 됩니다.

한 사건의 단락 그러니 사건은 주님의 일하심을 땡기는 거죠
확정적이다는 것이 세가지 사건이다는 겁니다.
이것 보다 더 또렷한것 있으면 나와보라 라는 거죠.

이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겁니다.

이 행함은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주님의 행하심을 땡기는 것을 말한다 말이죠
이 주님의 다 이루심을 확 잡아 땡기는 겁니다. 미래완료를 말이죠

 

그 주님의 행하심이 뭡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아닙니까

미래완료요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만약 원인 있는 결과가 되면

모압의 멸망

또 모압 뿐만 아니라 앞에서 바벨론 앗수르(앗시리아) 블레셋

그리고 뒤에 나오는 여러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

모호해 지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또한 모호해지지 또렷하지 않아요

성화론자들이 늘 모호한 소리하잖아요 밝히보이지 않고 늘 두루뭉실
희미하고 의문의 반복만 나열한다 말이죠

 

원인 있는 결과로 다들 해석하기를

모압이

아브라함 조카 롯이

부도덕하게 자기 딸이 아비가 잠 자는 사이에 아이를 가져서 낳은 자손이 바로

모압의 시초가 되니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말이죠

 

자 그렇게 원인 있는 결과로 보면

역시나 또한 이스라엘 구원도 그렇게 해석하게 된다 말이죠

 

아닙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을 통해서 왜 저런 해석이 엉터리인가를

그 다음은 니 차례인데 우짜노 라고 하시면

 

우리가 롯의 입장에 처해지면 우짤려고 하냐 말이죠

 

다윗은 그럼 뭐가 잘나서 남의 아내를 취하냐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유구무언이다 말이죠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를 모르게 된다 말이죠

 

그런 해석이 엉터리 임이 오늘 나오는 본문 내용에 밝혀지는 것이 바로

 

하루 아침에 망한다는 겁니다.

 

전혀 예상을 못했다는 거죠

 

 

허걱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로 보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개인구원이 되니까
자기 행동 유무를 따지게 되게 되는거죠


이스라엘은 무조건 구원인데 존재가 아닌 기능입니다
.

이 기능은 뭐뭐뭐 잘해서가 아니라

 

인애와 자비라는 원인 없는 결과가 미래에서 덮쳐져서 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못 받아들여요 이단들인거죠

롯의 구원을 설명을 못해요 아브라함 조카 말이죠


오히려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미리 왕따 시킬 준비를 하고 있더라 말이죠 

그렇게 방종할까봐 겁나는 겁니다.

 

그래서 원인을 갖추자 라고 다시 도루묵이 되더라 말이죠

 

이것은 역시나 왜 저 모압이 하루 아침에 멸망해야만 하는가를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압이 저 불손한 아브라함 조카 롯의 딸들의 부정적인 행동처럼 그런 것들이 원인이 되었다고

그래서 망한다고 보고 있지만

그것은 원래 망하는 것이고

 

마치 불뱀에게 물려 죽도록 되어 있는 것은

원래 당연한 것이고

진짜 저들의 심판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지옥 갈 자들이 왜 지옥에 가는지

왜 심판받는지를 모르고 심판받아 지옥가는 것과 같다 말이죠

 

원망했기에 불뱀에게 물려 죽는다고

음란해서 모압이 망한다고

 

이 음란만이 음란만 아니라
자기 배를 위하여 예수님을 임금 삼는 것 조차도

음란 죄 곧 우상숭배자이다 말이죠

 

여자를 보고 음욕을 안 품는 남자가 어디 있겠냐 말이죠

 

미우새에 김수미가 나이가 많아도 어린남자를 보면

밥 잘 사주는 누나 이고픈,
소녀감성이 갑자기 샘쏫아 소녀이고픈 마음은

여자나 남자나 다 똑같다 말이죠

 

이런 것 때문에 지옥 가는게 아니니까

밥 잘 사주는 여자 되세요 ㅋㅋㅋ

 

성화론자들이나 종교꾼들은 다 의에 대해 죄에 대해 심판에 대해 다 엉터리로 해석해요 글쎄

천박하든 고급스러운 논리든 매우 이성적이든 간에 다 똑같아요

원인을 따져요

원인이 없으면 말이 안되니까 말 되게 할려고 한다 말이죠

 

얼마나 설레일까요 소녀로 돌아가고픈

그렇게 좋아했던 프리티 우먼의 리차드 기어도

영화를 뚫어져라 수십번 봤다 말이죠

그러나

막상 직접 만나서 보니 늙은 모습을 보니 하루 아침에 꿈이 깨지는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꿈을 깨뜨리는 겁니다.

하루 아침에


예상도 상상도 못했다 말이죠

그렇게 좋아라 했는데

어찌된 심판인지 무지 무지 싫어하게 되더라 말이죠

자기도 왜 그런지 몰라 ~~~~

 

기대를 깨뜨리는 겁니다.

기대를 가지는 것 자체가 폭력이니까

기대한 폭력을 깨뜨리는 또 다른 폭력을 누리시면 됩니다.

폭력의 폭력

부정의 부정이 바로 원인 없는 결과이다 말이죠

 

그런 부도덕함으로 망하는게 아니라

그건 가짜 심판이고

마귀들이 저거들끼리 서열 잡기 위한 해석이고

그래서 수준높은 성화니 수준낮은 성화니 저거들끼리 계급을 매겨요 글쎄

 

그게 아니라

 

진짜 심판은 뒤에서 옵니다. 미래완료에서 와요

심판의 심판 입니다.


네 맞아요 불뱀에 물려 심판받아 마땅한 겁니다.

그런 불뱀에게 물린자를 아무 조건 없이

값없이 자기아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이 폭력은

그야말로 끝판왕 최고의 갑질이라서

게임이 갑자기 끝나버리는 겁니다.

불뱀에게 물려서 지옥가는게 아니라

원망해서 지옥가는게 아니라

그건 원래 지옥 처음부터 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마귀에게 포로 되었고 갇혔고 억눌린 상태를 알려주시는 식이고 여기도 3 이넹 ㅋㅋ

그게 아니라

 

그건 말이 되는 심판이고

 

말도 안되는 심판은 바로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 안 쳐다봐서 지옥간다는 겁니다.
더 나은 폭력 더 나은 심판을 안 쳐다봐서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 하루 아침에 모압이 망하는 겁니다.

천천히 망하는 시간이 개입하는게 아니라


한 마디 한 단락 이라는 쉼이 없어서

평안이 없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라는

말도 안되는 원인 없는 결과의 인애와 자비를 안 쳐다봐서 망한다 말이죠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두 강도입니다.

한 쪽 강도는 예수님이 마지막 순간에 봤다는 겁니다.

다른 강도는 죽는 판국에 무슨 놈의 구원이냐

너는 나는 우리는 평생을 강도 살인 짖만 해 왔는데

무슨 염치로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하느냐

그것도 죽는 사람에게 죽어가는 이 순간에

그 동안 믿지도 않았으면서 이 짧은 이 우연의 순간에 천국갈려는 수작을 부리는 짖에

예수님이 응해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응해주는 그 예수도 가짜이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치워라 라고 한다 말이죠

이게 오늘날 성화론자들 또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의 사고방식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쪽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주님을 쳐다보는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에 죄 없으신 분이 대신 죽는다는

인애와 자비를 봤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주님은 죽는 그 순간 까지도 구원받을자와 구원받지못할자를 가르신다 말이죠

이게 행함이 있는 믿음이요 즉 주님의 일하심이요

이 주님의 일하심이 미래완료에서 한 쪽 강도에게 덮쳐지니까

창세전게 사랑받기로 작정된자로 분류 분리가 되는 겁니다. 거룩이 미래완료에서 덮쳐진다 말이죠

 

이 거룩이 미래완료에서 덮쳐지냐 안 덮쳐지냐로 지옥에 가냐 못 가냐 인데

 

이건 무슨놈의 한국교회가 불교와 다를바 없는 해석으로

그 동안 잘하면 천국 못하면 지옥 이런 식이니

종교라는 마약 666이 되고 말았다 말이죠

 

이것을 비판하는 철학자들 조차도 비판해 놓고서는 그 비판에 못 벗어나

나중에 지가 지 스스로 사랑이라는 모호한 헛소리를 하면서 말이죠

종교를 외쳐요 글쎄

종교죠 종교 666

 

즉 그들은 왜 모압이 하루 아침에 왜 멸망하는지를 몰라요

애굽도 그랬거든요

바벨론도 그래요

왜 하루 아침인가

 

여기에 이스라엘이 낑겨서 봐야 하는 겁니다.

 

저들이 부도덕해서 망하는게 아니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저들이 심판당하는 그 속에 놓여져서 봐야 하는 겁니다.

같이 심판 당하면서 말이죠

 

왜 하루 아침에 망하는가를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73:17, 새번역)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이것은 이스라엘이 저들과 반대로 도덕적으로 깨끗해서

완벽하지는 못해도 무지 노력했다는 것이 있으면 구원되고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는 해석이

엉터리 해석이다는 겁니다. 이런 해석에서 못 벗어나요

종교이거든요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이 되면 안된다고 목사들이 사기를 치고

쪽팔리면 안된다고 성화를 해야한다고 우긴다 말이죠

막살면 안되고 제대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막살면 안된다 라고 말이죠

 

그럼 제대로 살면 천국 갈까요 아닙니다 역시나 지옥입니다

제대로 살수 있는 판대기가 못되요

이미 마귀에게 장악당했다는 것을 모르는게 그게 죄악이다 말이죠

 

저들과 반대로 부도덕함의 반대로 천국가고

부도덕해서 지옥이 아니라

 

주의 인애와 자비가 덮치면

곧 주께서 화목제물로 인자를 장대 높이 달지 않으면

주여 죽어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으면

지옥이다는 겁니다.

다 소돔이다는 겁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를 남겨주지 않으면 우리는 다 소돔과 같았다 말이죠

 

그러니 저들의 멸망은 이 한 씨를 안 쳐다보기 때문에 지옥이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것을 알았어요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해서 지옥이 아니라

의인 단 한명이 없어서 망한 것이다는 것을

의인이 없으면 우리도 똑같다 말이죠 아무리 소돔과 고모라의 정반대인 동네에 살아도

청학동에 살아도

저 미국의 현대문명을 다 끊고 살아가는 아미쉬(Amish) 공동체에 살아도 지옥 어차피 결정된 바 이다 말이죠

이것이 오늘 본문에 하루 아침에 망한다는 표현으로 갑작스러운 심판이다 보니

시편 기자가 저들을 왜 심판 안하냐 라고 간구함에 있어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망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바랬던바 대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더 놀라서


심판이 그게 아니라

주의 성소에 들어오시게 하시는 주님의 일하심이 아니면

본인도 이스라엘도 다 망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글쎄 요나선지자가 엉터리로 생각한

회개 곧 심판을

 

심판을 심판하심으로써 요나 선지자가 생각한 심판을 그 엉터리 심판을 고쳐먹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마치 한 개인의 구원처럼 다루었다 말이죠

그런 의에 대해서 심판 당한 겁니다.

 

니느웨 백성은 어서 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심판성을 거꾸로 생각했다 말이죠

역시나 이스라엘 또한 어서 망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죄에 대해서 엉터리로 해석한 겁니다.

그 죄도 심판받는 겁니다.

 

니느웨야 어서 망했뿌라 라고 얼마나 빨리 하루만에 다 돌았냐 말이죠

그럼 이스라엘은?

 

어차피 심판 받아 마땅한 민족!! 삼일을 도나 하룻만에 도나 그게 그거다 라고

그런데 어라 안 망하고 회개를 했뿟다 말이죠

회개 곧 천국이 곧 인애와 자비가 덮쳐져서 회개가 증상물로 나타나니까

 

요나는 눈치 챈 겁니다.

눈치 채라고 하신 일입니다.


그렇게 원인 있는 결과로 따질 것 같으면 말라꼬
성령이 임한 자인 참선지자가 되었겠냐 말이죠


거짓선지자의 사고방식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요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채고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을 알고

주님에게 따집니다


내 열심이 특심인데 내한테 이러기요
?

그럼 처음부터 시키지를 말던가

시킨대로 했잖아요?
이렇게 배신 때릴수가 있습니까 라고 말이죠

 

주님은 인애와 자비로 다스리지

번제와 제사로 다스리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상이나 국가 또는 종교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바리새인과 뭐가 다르고

마귀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그것은 제대로 된 심판도 아니요 제대로된 거룩도 아닙니다.
제대로 된 일곱이 아니다 말이죠
마귀처럼 엉터리 창조자 이다 말이죠.


경제 종교 정치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는 메시아인 우상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요나가 그런 우상 곧 가짜 하나님을 요구하는데 있어서

그거 들어줘야 하냐 말이죠

 

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친구의 엘로힘 하나님과

욥에게 덮쳐진 여호와 하나님 곧 전쟁의 신

곧 회개전쟁을 하시는 주님과 차이가 나야하는데

우상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이 차이 때문에 욥은 중간에 낑겨서 경계인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주변국가가 힘을 서로 차지하고자 최고가 되면 또 미끄러지고 그 빈자리를 또 다른 나라가 차지하면
정작 앉자마자 또 미끄러지고 도대체 서로 서로 그 최후를 알면서도 또 기어 올라가서 기여이 차지할려고 한다 말이죠


시치프스 돌처럼 의문을 반복해요

그래서 이 힘도 없고 소수인 가장 약한 민족을 아무리 삼킬려고 해도

목에 탁 걸려서 안 넘어가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아무리 저주해도 안 통하더라 말이죠.

 

요나가 이 니느웨를 그렇게 며느리 다말 취급하다가

목에 탁 걸렸다 말이죠

 

그리고 따졌고

설복 당했고

요나는 찬양자가 되는 겁니다.

본인 자신이 그 니느웨의 자리에 놓여지더라 말이죠.
유다가 며느리 다말의 자리에 놓여져서
양육을 받더라 말이죠 한 때 두때 반때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조건 따지던가요?

 

마찬가지로 모압의 멸망 또한 하루 아침에 망하는 것은

 

(15:1, 개역)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루 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루 밤에 모압 길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우리가 생각한 그런 원인에 의한 심판이 아니라

원인 없는 결과로써

십자가의 다 이루심 때문에 진노의 그릇 역할을 하는 겁니다.

 

왜 가버나움을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한 심판으로 심판하겠다고 하실까요

그들은 부도덕하지 않아요

단지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이적을 보여주셨다 말이죠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11:23, 새번역) 화가 있다.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 , '하데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반응하지 않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동조하면 이단으로 몰리거든요

 

 

이 가버나움에 대한 정죄가 그럼 가버나움 아닌 동네는 괜찮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을 기점으로 한 사건이 또 있어요

 

(4:13, 개역)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4:14, 개역)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4:15, 개역)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4:16, 개역)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4:17, 개역)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9, 개역)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4:20, 개역)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4:21,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4:22, 개역)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4:23,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4:24, 개역)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4:25,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나사렛 회당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가버나움이 언급 되어요

4장이니까 시간적으로 오히려 앞의 과거에 해당되잖아요

11장은 뒤의 일이고

 

나사렛 동네면 예수님이 자란 곳이니까 자랐다는 시간적인 의미를 우리는 가진다고 우겨도

나사렛, 작은 동네, 비천한 동네, 가난한 동네 조차도

예수님을 거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요즘으로 치면 범죄도시 답이 없는 동네

대구를 고담도시라고 하던데 그런식이다 말이죠

 

(4:11, 개역)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4:12, 개역)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4:13, 개역)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가난한 자는 늘 부자 되기를 포기 못해요

 

결국 마음이 가난한 자는 없어요

없어야 원인 없는 결과로 그들이 불쑥 나타나는 겁니다.

교회처럼 성도처럼 말이죠.

이런 성도인 교회는 원인을 따지겠습니까? 안 따져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거든요.

사랑 자체가 원인이 없는데 조건이 없는데

무슨놈의 종교는 왜 그리도 조건이 많은지

국가 보다 더 해요 더해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야 해요

그것도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

가장 반대했던 자를

예수의 증인으로 말이죠

 

그래야 원인이 없거든요

 

그러니 엘리야 요나

이들이 내 열심이 특심이라고 우겼던 것이

꼬꾸라져서 즉 회개해서

원인 없는 결과로써 천국이 이미 덮쳤기에 그 증상으로 회개가 덮쳐져서

그가 나 보다 옳았다고 그것이 찬양이라는 증상이니까

이들이 회개함으로써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

새롭게 태어난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그러니 이들 또한 거짓선지자임에서 못 벗어나요

원인을 따지면 우리는 뭘 해도 죄인이다 말이죠

그런 지옥에 갈 자를 주님께서

남겨두신 한 씨로 인해서 소돔과 같이 되지 않도록 내어버려두시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회개가 덮쳐져서 예수님의 증인이 된 거지

안 그러면 계속 저 의문

 

내 열심이 특심 이라고

저 의문을 반복할꺼다 말이죠 번제와 제사 라는 우상숭배를 말이죠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은 다른데

자꾸 니 하나님을 우길것이 뻔하기에 그 거짓선지자에서 빼내시는 겁니다.

 

그러니 주의 인애와 자비가 덮쳐지지 않으면

곧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다 이루셨다는 피 흘리심이 덮쳐지지 않으면

엘리야도 요나도 못 벗어난다 말이죠

 

그러니 지옥은 미래완료인 십자가가 안 덮쳐져서 지옥가는 거지

뭔가를 잘못을 행해서 라는 원인 있는 결과가 아니다는 겁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곧 원인 없이 천국

곧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모압의 멸망을 통해서 우리는 도리어 주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아 주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 구나 라고

마귀와의 차이나는 일을 하신다 말이죠

 

하루 아침에 망하는

원인 없는 심판

 

이들은 주의 인애와 자비가 땡겨주지 않는 그릇이다는 겁니다.

의인 한 명이 없어서 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입니다.

(창 18:20, 개역)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창 18:21, 개역)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창 18:22, 개역)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창 18:23, 개역)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창 18:24, 개역)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창 18:25, 개역)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 18:26,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창 18:27, 개역)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창 18:28, 개역)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29, 개역)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0, 개역)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1, 개역)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2, 개역)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3, 개역)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
이 씨를 남겨두지 않았더면 벌써 소돔이였다 말이죠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 1:9, 새번역)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될 뻔하였다.』

(롬 9:29, 새번역) 『그것은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1:9(칠십인역)』



그렇기 때문에 망하면서도 뭐 잘못했지?

정성이 부족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것이 먹혀들 순간도 없이

하루 아침에!!

그것도 아 나는 망하는 구나 라는 의식조차도 없도록 하시는 제대로 된 심판입니다.

 

이것은 반대로 구원받을 만한 그 어떤 조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아무리 봐도 죽은자요 죽은태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거룩한 왕비의 자리, 신부의 옷, 거룩한 흰옷,

피 옷을 입히신다는 것은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2, 개역)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면류관을 반납할 정도로 그 어떤 원인도 없는

주의 인애와 자비만을 찬양 아니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일곱 완벽한 심판주이시자 완벽한 거룩이신 주님을

찬양하는 찬양자로 삼으시고자

 

저들을 배치시키시는 겁니다.

그래야 저들이 격동하면서 견디질 못할것 아니겠냐 말이죠

이것이 심판 주 되시는 예수님의 지혜 입니다. 곧 그의 인애와 자비를 찬양 받으실만한 지혜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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