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5 이스라엘의 교만과 그 얼굴의 증거 (호 7, 8-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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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5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이 증거 (돌아오지 않음-샛별) (호 7, 8-16)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음 즉 힘을 포기 못함 안 돌아옴 (얼굴과 얼굴을 마주안 봄, 원수임을 아는 자 만이 돌아옴 얼굴을 봄, 광야 목이 곧은 백성. 눈도장 보일려고 옴, 외세 곧 믿는 구석이 있음 힘 힘 힘 불의의 병기)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 (호 7, 1- 3)
호세아 2023 2024. 2. 29. 14:34
23-14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 (호 7, 1- 3)

〈호세아 7, 8-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3쪽, 찬송가 324장 새 534장 주님 찾아 오셨네, 가스펠; 왜 날 사랑하나〉 

〈찬송가 324장 주님 찾아 오셨네, 새찬송가 534장〉 

1.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2.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인자높이 들렸네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세 우리 구주 모시고 
   영원 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3. 겸손한 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하늘에서 부르네 모시어 들이세 
   좋은 자리 드리고 주실 은혜 구하세 
   하늘 나라 세우세 모시어 들이세

4.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 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 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호세아 7, 8-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3쪽〉 

(호 7:8, 개역)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호 7:9, 개역)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호 7:10, 개역)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호 7:11, 개역)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호 7:12, 개역)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 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호 7:13, 개역) 화 있을진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저희가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고
(호 7:14, 개역)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호 7:15, 개역)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호 7:16, 개역)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새찬송가 438장〉 

1.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2. 주의 어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 나라 
   내 맘속에 이뤼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3.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가스펠; 왜 날 사랑하나 (790) 〉

1. 사랑이 구주를 죽게 했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이 괄호 안의 가사가 오히려 전체랑 더 희미함)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2.  그 손과 발 날위해 찢기셨네, 왜 날 사랑하나
   고난을 당하여 구원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3. 내 대신 고통을 당하셨네, 왜 날 사랑하나
   죄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호 7:8, 현대어) [외세를 믿으니 망한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며 이리저리 헴에고 다니니, 그들은 뒤집지 않고 굽다가 한쪽이 다 타버린 떡처럼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호 7:9, 현대어) 그들은 강대국에게 힘을 다 빼앗겼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백발이 듬성해도 늙고 허약해진 것을 알지 못한다.
(호 7:10, 현대어) 외세에만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교만이 제 자신의 죄를 쌓는 근원인데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지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호 7:11, 현대어) 에브라임은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비둘기같이 어리석어서 애굽을 향해 도움을 부르짖는가 하면, 또 금방 앗수르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호 7:12, 현대어) 그러나 그들이 헤매고 다닐 때에 내가 그 위로 그물을 던져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겠다. 내가 공회에서 이미 말한 대로 에브라임이 저지른 모든 악행대로 벌을 내리겠다.
(호 7:13, 현대어) [배반과 형벌] 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도망하였으니 반드시 그 벌을 받을 것이다. 나를 배반하고 떠나갔으니 모조리 패망할 것이다. 내가 다시 구원해 주리라는 망상을 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거짓말만 늘어놓고 나의 진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호 7:14, 현대어) 그들은 근심으로 잠들지 못하면서도 나의 도움을 구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상들을 찾아가 곡식과 과일이 풍작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고 있다.
(호 7:15, 현대어) 내가 그들을 강하게 키워 주었더니 이제 나를 해칠 궁리나 하고 있다.
(호 7:16, 현대어) 그들은 사방을 기웃거리고 다니면서도 한없이 높으신 하나님께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한번도 표적을 맞히지 못하는 휜 활과 같은 자들이다. 내게 모진 욕을 함부로 내뱉던 그들의 지도자들은 원수의 칼에 찔려 망하리니 그러면 온 애굽에서 그들은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먼저 우리가 에스겔 말씀

다시는 애굽(인간구원) 기억 못하게 예수님만 구원하는 이름전쟁 (겔 23,25-27)
에스겔 2019 2024. 2. 2. 13:30

에스겔 23장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출애굽을 한 적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오늘 본문과 연관시켜서 보면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한 마디로 교만하다 라는 겁니다

절대로 네버 네버 결코 결코 완악한 수건을 벗을 리가 없다는 거죠
자금 가자 지구 이스라엘 보세요 나치한테 당한 것 고대로 퍼붓고 있는
유대인 말살 정책과 견주는 팔레스타인 말살까지 가는 거죠

이스라엘 역사가 이렇게 교만하다는 것은
인간 전체의 역사 또한 교만하다는 겁니다

즉 교만의 반대말인 겸손한 자
결국 겸손한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의인은 없나이 하나도 없으며
각기 제 길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사실은 찾아봐도 소용 없습니다
없으니까 말이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딱 한 사람 바로 예수님만이 겸손한 분이셨고
예수님만이 우발적으로 겸손한 자를 새로 발생 시키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겸손함을 겉모양으로 갖추겠다 라고 행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야말로 가장 교만한 자 였습니다
심지어 바알세불 대마왕 귀신이 씌인 마귀 중의 마귀인 대마왕 이단 중의 이단
교만한 자 중에 가장 교만한 자 로 취급 받으셨습니다

네 맞습니ㅏ 반드시 그리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일한 샛별이거든요
그런데 샛별의 자리에 앉은 자들에게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에게
교만한 자 라고 취급 받지 않으신다면
과연 샛별을 주시고자 오신 샛별 맞으시겠느냐 말이죠

인간들은 물론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들은 교만한 바벨론 왕 계명성 샛별의 자리에 앉아버린 입장에서

자기가 이미 샛별인데 제일 높은 자리인 교만한 자리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아버렸는데

예수님이 샛별로 오심 자체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샛별을 주시겠다 계시록 일곱교회에 두아디라 교회에 샛별을 주시겠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계 2:24, 개역)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계 2:25, 개역)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계 2:26, 개역)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2:27, 개역)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2:28, 개역)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 2:29, 개역)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즉 이것은 일곱교회 다 해당된다 라는 겁니다
딱 한 교회 두아디라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어떤 목사는 이단에서 합동으로 옮겨서 안그런척 하지만
일곱교회에서 책망이 하나도 없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추종하던 이단인데
지금은 사라졌는지 잘 안보이네요

아는 분에게 복음을 나눌려고 하는데 빌라델비아 이단에 소속된 자가 얼마나 방해를 하던지

아무튼 특정 교회 하나를 딱 떼어와서 자기에게 결합 시켜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이 말 할려고 예를 든 겁니다

바로 사적인 구원 사적인 교회가 없다 라는 겁니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개인구원을 추구하겠지만
성경에는 그런 존재로써의 구원은 없어요

그러니까 일곱 교회죠 이 일곱이 절대저주 절대죽음을 거쳐서 나온 일곱이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 된 겁니다
네 맞습니다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인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야단 덜 맞은 빌라델비아를 끌어온다고 해서
그 원하는 바로 대로 될까요?
일곱교회가 격는 상황은 개인 사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그러니 골라 골라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닌 거죠
일곱 교회가 격는 상황 전부가 우리가 지금 처해져 있는 상황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때 일곱교회의 때 이니까 종말의 교회인 거죠
종말을 외치는
5대 제사 라는 공간 장소에서 어린양의 죽음이 처참하게 벌어지고
7대 절기를 3일의 간극을 거쳐서 5 6 7 이거 숫자 개념으로 볼게 아니라
기능이기 때문에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
뉴스 사건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이 벌린 일 곧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바로 인자입니다 인자가 3일이라는 절대죽음 정녕죽으리라를 거쳐서 나온
일곱 이라는 성령의 때 성령을 부어주시는
그래서 주어진 결과물이 바로 일곱교회이니 매를 안 대시는게 아니라
도리어 매를 징계를 하심으로써 더더욱 사랑 안에 거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목이 곧은 백성
각기 제 길로 가는 양같은 자
즉 교만하기 때문에
이 일곱교회의 의미 마저도 개인 사적인 구원 사적인 교회로 자꾸 땅겨서
불순물 즉 교만이죠 이 불순물 찌끼를 막 썩더라 말이죠

가마 솥에 녹이 쓴 떼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자꾸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해석아니까
개인 구원 개인 사적인 겸손을 주장하더라 말이죠

일곱교회를 각각 따로 따로 다루시는게 아니라
일곱 자체로 다 묶어서 집단적으로 다루신다는 의미에서 일곱교회인데
그 속에서 또 따로 따로 골라 골라 취사선택할려고 하니
다들 칭찬만 듣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취사선택할려고만 한다는 겁니다
그카이 이단집단이 나오는 거죠

아니 빨갱이 집단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자유 라는 단어
민주주의 라는 단어 즉 좋은 단더 다 집어넣어서 사기를 치지
부정적인 단어 집어넣어 보세요 아무도 세뇌 당하지 않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적인 개인구원이 아닌 즉 개인구원을 사적으로 추구한다는 자체가
자기자신 자아를 이미 집어넣었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그 속에서
부정적이고 삐딱한 집단구원으로써의 참선지자 곧 율법과 선지자는 논개처럼 나를 껴안고 자폭하듯이 빠져죽고
예수님 또한 참선지자의 주장처럼 저들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평강이다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도와주신다 라는 주장에 가장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삐딱한 소리만을 하시는 그 기능이 바로 겸손 유일하게 겸손하신 분으로써
우리의 거짓된 겸손을 깨뜨리시는 즉 교만을 깨뜨리시는
도리어 교만으로 취급받는 겸손이 되시는 겁니다

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자 오셨거든요

바로 그 주님을 보고 모세가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겸손한 말을 하게 됩니다
아니 교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 아닙니까?

심지에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는 겸손한 행동을 합니다

이 겸손을 제자나 예수님을 식사대접하고자 자기집으로 초대한 바리새인이나 해석을 못 합니다
왜? 이미 자기들의 가까 겸손이 있으니까 말이죠

도리어 이 창녀 마리아 그것도 싸가지 없이 무례하게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지를 않나
땅에 비싼 향유를 다 부어 허비를 하지 않나

도리어 겸손하지 못하다 라고 제자들에게 책망 받잖아요 왜? 아무리 봐도 교만하고
그 아까운 비싼 향유를 휘발성으로 소비할게 아니라 차라리 휘발시킬려며는
가난한 자에게 주지 왜 버리냐 말이죠 아깝게
다들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끼는 판국에
그것도 창녀 주제에 그것도 전재산을 1분도 안 걸리게 다 허비하는
자기 분수도 모르는 이 얼마나 교만하기 짝이 없냐 말이죠
대노를 하면서 제자들이 나무랩니다 더더욱 가룟유다는 회개 담당이라
얼마나 예수님의 먹을꺼리 하나 챙긴다 라고 헉헉 거리는 판국에
얼마나 예민해 져 있는데 거기에다가 기름을 얹어 부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바리새인은 선지자라면서 왜 저 더러운 창녀를 받아주시는 것일까 라고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의심을
도리어 예수님은 책망하듯이 교만한 자 취급하고
바리새인도 안 지지요 예수님을 아무리 식사대접한다고 간극을 좁힐려고 해도
기괴한 행동만 골라서 하니까 말이죠 좁힐 방법이 없는 겁니다

자 이런 판국에 예수님은 더더욱 더 간극을 벌리시는 거룩을 하나님의 의를 펼치십니다
이 창녀의 하는 행동을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기념하겠끔 말이죠

마치 가장 더러운 창녀의 기념비를 하나의 모범 사례인냥 따라하라고 기념비 세우듯이 말이죠

그러면 제자들이나 분노한 제자들이나
겸손하게 예수님을 식사대접할려는 바리새인이나
이 창녀 기념비를 사람들이 보고 본받아 따라하도록 기념비 세우듯이 하시는
그 칭찬에 동의를 하면서 반가워 할까요 아니면 기겁을 하면서
안될소리 안될소리 아니 이 상황을 도리어 사람들에게 본받으라 라고 하라굽쇼 ~~~~~~~

왜? 이 창녀 마리아의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기는 종말의 행동
곧 행함이 있는 믿음 곧 제가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여야 한다 라고 해서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했거든요

과연 이 창녀 마리아의 겸손을 겸손으로 수용을 할까요 아니면
이 마리아의 종말의 행동과 더불어 예수님까지 반드시 죽여야만 할까요

인간의 믿음은 다 사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복수심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 구원에 하나도 보탬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이스라엘 독립운동에 하나도 보탬이 안된다 라고 팔아넘긴 겁니다
살인할 거죠

이게 개인구원의 탐심 곧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반박할 수가 없는 이유가
우상조각가였던 아브라함이 직접 이 개인구원이 주님에게 안 먹혀든다 라는 것을 알았어요

주여 의인 50명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 안 멸망 시키실 겁니까

아브라함은 인간의 초코파이 정으로 하나님도 너무 나쁜 이미지가 되면 안되고
저들도 돌아올수 있는 기회도 주고 
좋은게 좋은거다 싶어서 50명을 제안했다 말이죠
설마 의인 50명 없을 까봐
오늘 본문으로 치면 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자 50명이 없을까봐
나 아브라함처럼 이런 좋게 좋게 하자 라고 하는 
겸손한 개인 50명 없을까봐

그런데 분위기가 보니 아 50명은 좀 그런가 라고 컷트라인을 낮추는 겁니다
아 그럼 40명이면 되겠네

자꾸 개인 50에서 개인 40명 이렇게 개인의 숙제로 개인의 문제로 보더라 말이죠
그러다 30
20
10
5명

심지어 이렇게 개인의 의인
사적인 의인 하나 속에 마저도
아브라함 자기 자신도 속하지 못한다 라는 것을 알고
아 이것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전체 집단의 문제이구나
판대기 구조 판
지구 전체
역사 전체 판대기 문제임을 알고
다시는 인간 숫자 언급을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아니 모든 육체 판대기 전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러 오셨는데
왜? 겸손한 자가 없기에
모두다 다 치우쳐 져서 교만한 자 밖에 없는데

그 증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교만 뿐이다 말이죠
애굽에서 한 발짝도 탈출한 적이 없어요
도리어 한 발짝 내 믿는 곳 장소 몸
만나는 사람 마다 모조리 애굽 우상숭배자로 도로 만들어 버리고 있어요
교만한 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어요

왜? 자기가 교만한 자인줄 모르고 자꾸 겸손한 자라고
겸손을 지켰다 라고 우기니까
그게 바로 교만한 자 이다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다 이렇게 교만한 자 못 만들어서 안달이 났어요
모든 인간의 역사는 교만 밖에 없었어요
그럼 교회의 역사는 묵시의 시간 종말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사적인 개인 시간을 자꾸 집어넣으니까
교회가 더 더 더 세상보다 교만한 자들의 소굴 곧 강도의 소굴이 된 겁니다
돈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맨말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를 하면서도
그 기도를 엎어버리더라 말이죠
일용할 양식 먹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의 피 없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이다 라는
기능 곧 함께 동행하는 한 몸이다는 겁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왜 찾아오셨습니까? 아니 우리가 찾아가는 것을 거부하시고 왜 찾아오셨지요
3절 겸손한 자 찾도다 
겸손한 자 찾을려고
바로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를 찾으러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 치르는
누가 봐도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가 겸손한 자 라고

그 순간에 우발적으로 다이나믹하게 신부된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발생시켜서 주님이 자기자신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숫자 1 2 3 4 사람의 손으로 세는 숫자가 아닌 묵시 곧 종말의 사건을 일이키고요
시간 우리 몸이 행동할 때 마다 쩨깍 쩨깍 흘러가는 그런 사람이 셀수 있는 시간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으로써의 끝시간 끝 때 끝을 미리 앞당겨서 미래표절 그냥 미래가 아닙니다
완료로써의 미래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시간 개념에서는 완료의 미래는 없는 거지요
계속 미완료상태의 미래일 뿐이지요 그러니 묵시의 시간인 인물이 아니라
역사의 시간인 숫자 장난질만 할 뿐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한계이니 어쩔수 없어요
그러니 겸손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무조건 교만한 자 일 뿐인
하나님의 원수 될 뿐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 교만한 몸 이 지옥의 몸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여기서 누가 라고 누구를 부르짖잖아요 그 분이 바로 마지막 아담 곧 살려주는 영이신
살려주세요 라고 부르짖도록 만드시는 유일한 겸손한 자 이시다는 겁니다
이러니 모조리 사건 개념인데
인간은 도리어 확장 합니다
언약의 바깥으로 더더더더 확장 확대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더더 큰 별이 새벽별 교만한 계명성이 되겠노라 라고 말이조

정작 진짜 겸손하신 샛별 되신 예수님은
바로 새벽이 오기 전의
주의 성실하심으로 밤에 갈기 갈기 찢는 그 잃어버림을 격으신
겸손함을 배우셨는데
순종을 배우셨는데

인간은 지가 뭐 대단하다고 겸손도 안 배우고 샛별이 될려고 하니
교만한 자가 따로 없는 거죠
갈기 갈기 찢겨지는 십자가의 죽음도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도 거치지도 않고
겸손도 배우지도 않고서 교만한 새벽별 모닝 스타 아침을 맞이할려고 하니

과연 징계를 거쳤는지 보자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라

어 못하겠습니다
등돌리고 다시는 안보겠다 라고 얼굴을 돌리는 겁니다
즉 싫어버린바 되기 싫다는 겁니다

멋들어진 구원 곧 사적인 구원을 챙기겠다 즉 우상을 챙기겠다
그게 교만한 부자청년인 거지요
왜 이런 교만한 자를 성화론자 교회는 앞다투어서 맹글어낼려고 하는지
아 그래서 자기 교회는 남들교화에 다르다를 자랑하더라 말이죠

겸손을 배울려고 하지도 않아요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지도 않아요
교만한 몸 지옥의 몸이라고 건져달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저 건간항 자다 의인이다 라고
아브라함은 접었는데 배설물로 버렸는데
저들은 버린 똥덩어리를 온 얼굴에 쳐바르고 주님께 보일려고 눈도장 찍을려고 하니
제발 오지마라 내 마당만 밟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눈 가리고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리겠다 라고

정작 예수님이 우리의 교만함을 대신 지시고 오시니까
싫어버린바 되시고 고개를 다 돌리고
아름다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병든자 같이 얼굴이 새까맣게 되다 보니
아무도 귀히 귀히 여기지 않는 겁니다

얼마나 우리가 병들었으면 얼마나 우리가 어두운 눈이였으면
세상에 유일한 겸손한자를 가장 교만한 자로 하나님의 저주를 퍼부어가면서
십자가의 저주로 죽였겠느냐 말이죠
이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겸손한 자가 되었다고 하는 행동들
곧 행함을 쫓아서 의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는커녕 서로 서로 지옥 보낼려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하게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는
광명한 천사 노릇하는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니냐 말이죠

겸손힌 입을 열지 않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을
늑대들이 다 달려들어서 이 겸손한 어린양 하나 잡아먹을려고 갈기 갈기 찢는
우리들이 다 이런 늑대들 아니냐 말이죠


오늘 본문 보십시오

(호 7:8, 개역)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호 7:9, 개역)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호 7:10, 개역)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아니 이 충고가 이 간섭이 귀에 들려오겠습니까
들으라 이스라엘 캐 놓고 들으라 라는 소리 입니까?
듣도록 만들시려면
북이스라엘읗 황폐케 만드는 광야로 만들어야 들을까 말까 한데
지금 북이스라엘이 가장 강성할때에 가장 부요할때에 가장 부패가 심각하다 라고

한쪽으로 다 치우쳐져서 찌짐 전 부칠때에 한쪽만 후라이 팬에 데우면 다 타버려서
다른 한 쪽도 역시나 못 먹잖아요
전병을 뒤집지 않을 정도로 다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주변나라와 연합국을 형성하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약할때에는 아무도 손 안 잡아줍니다
강하니까 손 잡아주면서 상대방을 노예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누가 연합하면서 서로 서로 이용해 먹지 않을려고 순수하게 손 잡겠냐 말이죠
그것도 개같은 이방인 우상숭배자들인데 손 왜 잡겠냐 말이죠
힘자랑 아닙니까
또 그 힘이 가장 번성할때에 가장 범죄가 가득하다 라고
그 힘을 차지할려고 마지막 북이스라엘 왕 까지 끝까지 쿠테타가 멈추지 않고 벌어지는 겁니다
두 세사람만 있어도 정치가 있다 무당이 생기고 우상이 없는 우상이 생기는 겁니다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고 하듯이

왜? 서로 서로 자기 유일을 따라 이용해 먹는 가정부 노예로 만들고파 하기에
즉 정치는 무조건 나는 옳아야 한다 라는 거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라는 놈이 무당에게는 충성하잖아요
왜? 사람은 자기에게 가치가 없거든요 돈이 안된다 라는 겁니다
자기는 사람 수준은 아니고 사람을 넘어서는 수준이다는 거죠
왜? 노예에게 충성하냐 말이죠
그런데 무당은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 준다 말이죠
손에 왕 자나 그리고 말이죠 애도 아니고

애도 아닌 놈이 애들을 다 죽인다 말이죠 무당이 할게 뭐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라고 하니까
제가 다녔던 공장의 공장장 말이 또 생각나네요
그 공장장 말이 나는 절대로 사람을 믿지 않는다 라고 말이죠
그럼 뭘 믿을까요 항상 믿는 구석이 있어서 강조하거든요
자기는 기계를 믿는데요
기계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니까 말이죠
AI 인공지능도 자기가 알아서 거짓말을 하던데 말이죠
아무튼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싫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 자체가 거짓말이지요 하루에 평균 100번 이상 넘어가는 것이 인간의 거짓말인데 말이죠

결국 거짓말을 하지 않는 기계랑 살꺼냐 말이죠 그런 그림자랑 살아서 뭐하게요
이미 죽어 있는데 말이죠

주의 산에 오를자 손 깨끗한 자

(시 24:3, 개역)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개역)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1, 개역) [다윗의 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2, 개역)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 24:3, 개역)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 24:4, 개역)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5, 개역)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6, 개역)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시 24:7,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8, 개역)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 24:9, 개역)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10, 개역)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그래서 손 깨끗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 아닙니까

손 깨끗하게 살아라 깨끗하게 하라 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해도 내 손은 더럽기 짝이 없는 더러운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정직한 영을 달라고 부르짖는 자 아닙니까

그럼 정직한 영을 주시면 자신이 더럽기 짝이 없는 자 임을 아는 자가 되거든요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임을 아는 자가 성령이 임한 자로써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의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심에 복종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이 겸손을 이 순종을 이 복종을 배우신 분이
본이 되신 주틀이 되신 예수님 곧 유일하신 겸손하신 분입니다

모든 인간의 대표성인 실천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교만하다 라고 평가가 만장일치가 된 분이
유일하게 겸손하신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유일하게 여호와의 산에 오를자 이십니다

그 입 다물게 모든 입을 잠잠하게 만드시는 여호와의 산에 
시온에 오를자 유일한 겸손한 자

잠잠히 입을 다무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잠잠히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시 11:4, 개역)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합 2:20, 개역)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인간의 겸손은 절대로 죽은자를 다시 살릴수 없습니다 부자청년은 도리어 자기가 죽을까봐 등돌리고 얼굴 돌렸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사적인 개인 구원을 바라는 가짜 겸손이 주님의 겸손에 부서진 겁니다

아냐 나는 반드시 하고야 말 거야 라는 놈도 교만한 자입니다
즉 자기가 교만한 자임을 고백하지 못하는 자는 다 교만하다 라는 겁니다
겸손도 즉 정직한 영이 없기에 외부에서 넘어오기를 바래야 하듯이
겸손도 외부에서 넘어와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겸손한 자입니다

자 그러면 인간이 겸손을 겉모양으로 갖춘 자와
정직한 영이 없어서 외부에서 넘어와 주기를 바라는 자를
두 언약으로써 예수님은 항상 충돌 시켰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와 자칭 빛의 아들들 이라고 고소 고발하는 자들

그리고 창녀 마리아와 제자들과 바리새인들

항상 주님은 그 시대의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누가봐도 더러운 자를
도리어 겸손한 기능을 심어서
자칭 겸손함을 갖추었다 라고 조건을 갖춘자들과 일부러 충돌시켜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겸손을 나타내셨다 말이죠

이것이 종말에만 나타나는 겸손한 자의 부정한 행함이 있는 믿음인 거죠
그러나 보편적 진리에서 집단의 다수들에게서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겸손인 겁니다

아니 성정을 헐라 3일 만에 다시 짖겠다 가 아무리 봐도 교만한 자의 말이지
누가 겸손한 자의 말이 되겠습니까

하여튼 그 겸손에 내가 포함이 되면 겸손이요
내가 아무리 간극을 좁힐려고 나를 포함 시킬려고 해도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내가 포함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철저한 단절이 되는 것이라면 도저히 겸손은커녕
도리어 최고의 교만이 되기에 반드시 심판해야 하고 거부하고 제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안그러면 바이러스 코로나처럼 전염병 급속도로 퍼지듯이 퍼진다 말이죠

뭐 악에 대한 방관은 뭐뭐 그단새 단절이 되어서 다 까먹었네요
그렇게 히틀러 나치에 대한 반성적인 역사적 해석을 해 놓고서는
지금 그 나치 히틀러 짓을 누가 합니까?

계시록의 음녀가 돈이 없을때는 국가 라는 짐승에게 짖밟히다가
돈만 생기면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서 짐승을 다룰려고 하거든요
그 음녀가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고자 하듯이
자기 쪽에서 사랑하겠다고 나서듯이
이 음녀가 제사장 딸 아닙니까
제사의 원리 거룩의 원리를 다 안다는 겁니다
다 알면 정작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는 다윗언약을 쳐다봐야 하는데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화목제물 필요가 없다 라는
제사장의 실패인 그 의문의 반복을 계속 우려먹으면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얼굴을 가리우는 식입니다

얼굴이란 외부에게 닥친 해외뉴스와
내부의 몸에서 올라오는 뉴스 곧 사건이 기록된

뉴스 신문지가 얼굴이다 라는 겁니다
아 간밤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라는 것을 그 얼굴을 보면서 읽는 것이지요
신문 읽듯이 포털사이트 뉴스게시판 읽듯이 읽는 겁니다

부시맨 이라는 영화를 보면
부시맨이 땅을 살펴보면서 간밤에 누가 다녀갔는지를 신문 읽듯이 읽잖아요
누구와 누가 싸웠는지를 누가 자기영역을 표시했는지 다 살펴보는데
인디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서부영화에서 봤듯이 말이죠
그것이 바로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겁니다

특히 여자는 외부에서 사랑받는 그것도 남자에게 신랑에게 사랑받는 입장에 놓이면
그 얼굴에서 도미노 현상처럼 외부인들이 다 감지가 될 정도로
아무리 못난 여자도 이쁨이 확 피어나서 시샘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타나는 겁니다

아가서의 합창이 그런 상황임을 잘 나타내지요

(아 8:6, 개역)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인간이 겸손하다면 죽음을 깨뜨려 보라 말이죠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니 말이죠

(아 8:1, 현대인) 여자: 만일 당신이 우리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오빠라면 내가 길거리에서 당신을 만나 입을 맞추어도 나를 비웃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아 8:2, 현대인) 내가 당신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요. 나는 당신에게 석류즙으로 만든 향기로운 술을 갖다드리고
(아 8:3, 현대인) 당신은 나를 왼팔에 눕혀 오른손으로 껴안아 준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 8:4, 현대인)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는 제발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아 8:5, 현대인) 예루살렘 여자들: 사랑하는 님의 팔을 끼고 사막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남자: 그대의 어머니가 산통을 겪으며 그대를 해산한 그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그대를 깨웠노라.
(아 8:6, 현대인) 여자: 당신은 나를 인장 반지처럼 당신의 마음에 간직하고 도장처럼 당신의 팔에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며 질투는 무덤처럼 잔인하여 맹렬한 불처럼 타오릅니다.
(아 8:7, 현대인) 많은 물도 사랑의 불을 끌 수 없고 홍수라도 그것을 소멸할 수 없으니 사람이 자기 재산을 다 주고 사랑을 사려고 해도 오히려 비웃음만 살 것입니다.
(아 8:8, 현대인) 여자의 오빠들: 우리 어린 누이동생은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동생이 청혼을 받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 8:9, 현대인) 만일 동생이 성벽이라면 우리는 동생에게 은망대를 세워 줄 것이며 만일 동생이 문이라면 우리가 백향목 판자를 둘러 주리라.
(아 8:10, 현대인) 여자: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와 같으므로 내가 님의 보기에 평안을 얻은 사람처럼 되었구나.
(아 8:11, 현대인) 바알-하몬이라는 곳에 포도원이 있어서 솔로몬이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내어주고 한 사람 앞에 은화 1,000개씩 바치게 하였네.
(아 8:12, 현대인) 그러나 내 포도원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솔로몬 당신은 은화 1,000개를 가질 것이며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에게는 내가 은화 200개를 주리라.
(아 8:13, 현대인) 남자: 동산에 앉아 있는 사랑하는 님이여, 그대의 음성을 들려 주시오. 내 친구들이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기다리고 있다오.
(아 8:14, 현대인) 여자: 나의 사랑하는 님이시여, 노루처럼 달려오세요. 향기로운 산의 어린 사슴처럼 속히 달려오세요.

이 합창을 각각의 번역에서는 예루살렘 여자들 또는 합창단 또는 신부의 친구들 즉 아이고 배아파라 라는 시샘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라고 증상물로 동원이 되는 동네 여자들, 여인네들

그래서 신랑의 노래(선창), 신부의 노래(화답가로써), 그리고 합창단 예루살렘 여자들의 노래(시샘 곧 질투의 사랑의 증상물로써의 합창, 마치 천사들도 부러워 하듯이 천사의 합창처럼) 로 등장인물의 노래로 나옵니다

그카이 유대인 탈무드에서 사람이 감출수 없는 새가지
곧 경제에 해당되는 빈지갑
그리고 미움과 사랑 곧 자기가 좋아라 하는 것과 때려죽어도 싫은 것은 감출수 없다 라는 거지요
이게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인 종교죠

그리고 건강 곧 기침을 감출수가 없지요
이 건강함 자체가 정치가 되거든요 평강 평강을 외치는 이유이다 말이죠
자기 병도 못 해결하는 자가 남의 병을 무슨수로 고치냐 말이죠

이 세가지를 인간은 그 얼굴에서 감출수가 없어요
이 세가지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 하는 겁니다
시험 점수 결과는 예수는 가장 교만한 자 였습니다
겸손이라는 시험점수결과는 나올수가 없어요

네 맞아요 이것이 시험으 쳐서 나온 결과인 원인 있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 없는 결과로써 오셨기에 겸손 그 자체로 오셨기에
인간의 겸손 가짜겸손을 모조리 깨뜨리시는
교만한 자로만 보이는 모습으로 오셨기에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땡 탈락 하듯이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
싸가지 없는 마리아를 편들어 주지를 않나
창녀 마리아를 부정적인 행동을 마음판의 기념비로 세우질 않나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롭다 라고 교만한 말을 하지 않나

인간의 겸손 개념과 어쩌면 그렇게도 교집합 겹쳐지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이
단절 단절 철저한 단절 그 자체로 오신
원인 없는 결과로써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보아도 겸손한 자는커녕 악한 자 교만한 자 더러운 창녀 세리 강도를
먼저 천국에 보내시는 자로만 보이는 겁니다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단절로써 더더더 점점점 벌어지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해석으로만 일관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겸손을 우리가 아는 방식의 반대로 해석하심은
마치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군대를 의의 병기로 사용하심에 있어서 힘을 빼시는 모습과 같습니다
꼬추 할례를 단 한 사람이라도 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지는 전쟁
희한한 전쟁 곧 저들 불의의 병기와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힘을 쥐기만 하면 지는 전쟁
도리어 약함으로만 하는 전쟁
젖먹이 어린아이의 권능으로 하는 전쟁
곧 절대로 믿음 싱뢰 신념이 가지 않는 전쟁만 골라 하는 겁니다
엘리야가 저들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제사장과 싸울때에
저들은 힘을 노력을 모으고자 결집할때에
딸랑 한명이 그것도 불을 붙일려는 징조로써 불 잘 붙도록 하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를 위한 반대로 물을 뿌림으로써 저들의 비웃음을 일부러 유도하는
저들의 교만함을 일부러 유도 하는 저들의 거짓된 겸손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ㄷ 라는 거짓평강을 일부러 유도하는 불의한 행동
물 뿌리는 부정한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치시는 겁니다
이 단절성을 아무리 소유할려고 해도 소용이 없는 단회성 일회성 이였으면
엘리야 본인도 그 행동을 해 놓고서도 무슨 의미인줄 몰라서
나만 남았다니다 열심이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왜 주님 시켰는대로 했는데
주님은 왜 나를 배신합니까 라고
본인이 또 의의 병기가 될려고 스스로 접든 간극좁히기가 안됨을
도리어 불의의 병기로써 주님께 반항하는 교만함을 보여주는 겁니다

즉 여기에서도 엘리야 개인이 개인의 신앙 개인의 구원이 들어갈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집단적으로 다룬다 라는 것은
지금 호세아서가 북이스라엘을 이렇게 치신다 라는 것은
남유다 그 다음 차례이다 뭐 저들은 하나님께 범죄해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 여덟 18명이 죽었다 라는
해석 자체를 할 수가 없도록 하신 겁니다 그런 해석은 아무리 들어도 교만하게만 듣기거든요
정작 겸손한 자 유일한 겸손하신 예수님은 
그래 그렇게 해석하는 너가 그 다음 차례이다 라고 해석한
겸손한 해석을 듣는 그 다음 차례이다 라는 그 사람 곧 우리 모두죠 모든 인간이
과연 겸손한 분의 해석을 옳게 들을까요 아니면 교만하다고 죽여버릴까요

그러니 예수님의 사복음서에서 하신 말씀은 그 어떤 인간의 해석도 접촉점
근접
간극좁힐수 있는 해석 자체가 아예 없어요
불일치 밖에 없어요
해석 불가입니다
즉 이 말은 성경 전체가 접근 불가 간극좁히기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고 학문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바른해석이 좁혀질 것이다
정 그러면 인공지능 인간의 인지능력인 응용력까지 다 완벽하게 완비하여서
수천억배나 높은 지능으로 활성화 시켜서 백날 해석해도
역시나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더더더 벌어지는 겁니다
지금 현재에는 부족해서 미래에는 발달한 상황에서는 가능할 것이다
아닙니다 불가능 합니다
불가능하다 라는 그 결과를 도리어 미래표절 해서 미리 우는 것이 도리어 겸손한 자 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임한 자입니다

우리는 뭘 해도 죄 밖에 없고
뭘해도 교만한 자이고
뭘 해도 하나님의 원수 짓만 할 뿐인
죄인 중의 괴수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종말때에만 나오는 기도입니다
성전의 두 사람의 기도 중에
매국노 세리의 기도입니다

다른 한 사람의 기도인 바리새인의 기도는
인간 중에서 가장 겸손한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자의 기도였고
그가 교만하다 라고 저 매국노 세리처럼 삥 뜯는 세금 뜯어대는 토색을 하지 않았다 라고
저 교만한 자처럼 되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하다 라고
저 교만한 세리를 도리어 주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
곧 성전에서의 기도에 딱 맞는 자로 새로 맹글어 버리시는 겁니다

아니 과거의 빼도 박도 못하는 행동들이 있는데 그거 부정하고
백날 지금 새롭게 주님에게 딱 맞는 기도를 했다고 해서
그 과거의 행동을 부정할 수가 있느냐 말이죠
바로 그것이 교만한 자의 해석 이다는 겁니다
어제까지 백날 잘 믿어도 오늘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듯이
어제까지 백날 안 믿어도 오늘 예수님을 믿으면 그거 주님이 하신 일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느냐 말이죠

인간은 원인 있는 결과를 따집니다
아니 요셉의 아들
목수의 아들이
무슨 놈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냐 말이죠
그카이 과거가 있는 것 그거 볼모로 잡아서
교만하다 라고 해석함에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주님은 교만하다 라고
너거들이 부정하다고 한 그 이방민족 니느웨 백성으로부터 심판받고
남방 여왕으로부터 심판받는다 라고 도리어 역으로 해석
반대를 위한 반대의 해석을 하십니다

여기서 아뿔사 그가 나 보다 옳도다 라고 반드시 고백을 부르짖음을 겸손을 받아내고야 마심 앞에서
항복을 해야할 입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 1번 타자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 라고
1번 타자 매맞는자로 이스라엘을 세우셨다 말이죠

이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교만함 그 자체
애굽 이라는 음녀 그 자체인 자를 어떻게 이 목이 곧은 백성을 어떻게 겸손한 자로 만드시는지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은 간단 합니다
용광로 속에 집어넣으면 불순물 찌기로 금방 분리 되는 겁니다

이 분리 되는 이 간극
이 갭
이 사이가

이 사이 간극으로 만드시는 것이 용광로의 기능입니다
겸손한 하신 예수님이 부으시는 성령 이십니다

즉 아무것도 아닌 간극 되기입니다
무능 되기
하나님의 원수로 우는자 만들기
정직한 영이 없어서 상한심령 만들기입니다

그런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교만한 자의 자리에서
음녀의 자리에서 신부의 자리로 옮기시우는

하나님의 중심인 성전의 기능입니다
곧 예수님이 흘리신 피 기능입니다

이미 하늘에 새이스라엘은 완공이 되었습니다
그 증상으로 눈에 보이는 과거물인 우리 육체를 삭제
과거 삭제
죄 삭제를 하시는 것이
바로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으로써
우리를 날마나 날마다 찢으시는 겁니다
늘 우리 속에서 올라오는 엉터리 해석
교만한 해석

겸손한 자기를 형성할려는 반드시 자기를 포함시킬려는 그 해석을
날마다 날마다 찢으시고자 오시는 겸손한 성령을 집어넣으시는 해석을

내가 내 스스로 종말의 집단이 될 수 없는
이 간극의 더 더 더 벌어짐 앞에서 우는 자 만드시는
이 간극 자체가 바로 종말에만 나오는

인자의
무능한 누구 누구의 아들의 죽음이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써 부어지는 겁니다

이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않고서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그 정도로 모욕적이고 그 정도로 살인자인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한
주님의 죽음 보다 강한 질투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자신들이 겸손함을 갖추었다 라고 모세의 자리에 앉음으로
샛별을 주신다 라는 분의 기능이 필요없다 라고
의원이 의사가 필요없는 건강한 자 의인 겸손한 자리에 앉아버린
교만한 새벽별 계명성이 된 바벨론 왕의 교만을 개인 바벨론이 아닌
모든 인간들의 모습이다 라고 규정하시면서

그 교만을 꺠뜨리고자 하시는 겸손
즉 겸손은 교만을 못 깨뜨린다 라면 그거 겸손이 아닌 거죠

그러니 교만으로부터 겸손은 반드시 교만하다 라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써
집주인을 결박하지 않고서는 그 세간을 늑탈할수 없듯이
반드시 도둑놈으로 오셔야 하시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속의 늑탈당하는 세간인 전리품이다는 겁니다

왜 예수님을 도둑이라고 표현하실까요
즉 우리 또한 세간 가구품으로 취급하는 이 부정함이 아니면
자기가 잘난줄 아는 손 깨끗한 자인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자는 바로 그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그 선악 이전에 선악을 알기 전의 아기로써
선악의 해석에서는 해석불가로써

스알야숩 남은자만 돌아오고
마할살랄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너거와 함께 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신다 라고

다들 이 의미들도 부정적인 의미를 다 빼고 낱말뜻을 가르치다 보니
남은자 운동이나 렘넌트 운동이나 해 쌋고 말이죠
남은자만 돌아온다 라는 것은 다 죽여버리고
이것도 죽여야 하는데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주님의 온유 때문에
억수로 억수로 봐줘서 우는 자만 돌아오게 했다 라는 겁니다
이런 부정적인 의미 다 빼버리고 젊은아이들 다 세뇌시키고 있으니
남은자 운동을 하다가 우리 때에 결국은 운동권 시위하는데 까지 하더라 말이죠

다행히 전두환때 였다면 다 죽었을텐데
다행히 노태우 때라서 억수로 봐줬는데
그러니 운동권 다 실패 했는데 뭘 또 부활시켜서 따라 할려고 하는지

더 웃기는 것은 그 운동권을 그 실패한 운동권을 잡겠다 라고
한동땡 깐족이가 또 설쳐대더라 말이죠
실패한 것 가만히 놔둬도 되는데 왜 쓸데없이 저 교만한 민주당 따라하겠다 라고
독립운동 건국전쟁운동을 하냐 말이죠 영화보면 돈 준다 라고 해서
흥행을 올리는 이 무당짓을 멈추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지옥의 몸이다 라는 증거를 아무리 티를 안내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그 정도로 우리 모두는 교만한 자 이다 라는 겁니다

누가 마지막 때에
종말 때에
성령의 시대에
자신이 교만하다고 우는 자를 보겠느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유일한 겸손한 자의 음성은
아무리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는

비유로만 언약으로만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음 꺼리요

그저 자기들의 교만을 서로 서로 창찬하면서 사는
어두운 눈인 소경의 세상이 되었다 라는 사실에

주여 고쳐 주소서 라고 부르짖는 자를 찾으러 오신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바로 자기가 교만하다고 고쳐달라고 우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체를 소경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새로운 죄인의 자리에서
주께만 범죄한 죄인으로써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부르짖는 겸손한 자를 찾으시러
겸손한 영을 심으신 자기 피 바른자를 찾으러 오셨씁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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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8 율법이 죄냐? 죄를 죄 되게 하는 기능(곧 사망의 몸으로 들추심) (롬 7, 7-11)

율법과 이혼, 새언약(율법 외에 한 의)와 결혼 (롬 7, 1- 6)
로마서 2022 2024. 3. 9. 11:28
22-037 율법이라는 전남편과의 이혼 그리고 새신랑과의 결혼  (롬 7, 1- 6)

〈로마서 7, 7-11, 신약성경 247쪽, 찬송가 379장 새 204 주의 말씀 듣고서, 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찬송가 235장 새 200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115)
(딤후 1:14, 개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 235) 새찬송가 20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찬 231) 새찬송가 240장
예수께서 오실 때에 (찬 299) 새찬송가 564장
예수께로 가면 (찬 300) 새찬송가 565장
사랑의 하나님 (찬 301) 새찬송가 566장
주의 주실 화평 (찬 361) 새찬송가 327장
예수 따라가며 (찬 377) 새찬송가 449장
주의 말씀 듣고서 (찬 379) 새찬송가 204장

〈찬송가 379장 주의 말씀 듣고서, 새찬송가 204장〉 

1.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터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 나며 바람 부딪쳐도 반석위에 세운 집 넘어지지 않네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2. 주의 말씀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모래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 나며 바람 부딪칠 때 모래위에 세운 집 크게 무너지네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3.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반석위가 아니면 모래위에 짓네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줄 때  세운 공력 따라서 영영 상벌 주리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로마서 7, 7-11, 신약성경 247쪽〉 

(롬 7:7,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8, 개역)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롬 7:9, 개역)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롬 7:10, 개역)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7:11, 개역)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가스펠;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115)

1.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2. 이 계명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이 계명을 너는 지키라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네게 부탁한
   이 계명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께서 네게 부탁한 
   이 계명을 너는 지키라


〈찬송가 235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찬송가 200장〉 

1.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 주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2. 귀한 그 말씀 내 노래 제목이 되도다 
   모든 사람에 복주는 생명의 말씀을 
   값도 없이 받아 생명길을 가니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3. 널리 울리고 퍼지는 생명의 말씀은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다만 예수 말씀 들어 복을 받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멘


(롬 7:7,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비추어 보지 않았다면,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에 ㉣"탐 내지 말아라"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 ㉢여기서부터 7장 전체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나'는, 바울이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인간 일반을 대표해서 지칭하는 수사학적 대명사로 사용된 것임 ㉣출 20:7; 신 5:21
(롬 7:8, 새번역) 그러나 죄는 이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내 속에서 온갖 탐욕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
(롬 7:9, 새번역)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롬 7:10, 새번역)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롬 7:11, 새번역)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무인도 섬에 홀로 있게 되면
그곳에는 법도 윤리도 없다 라고

그러나 두 사람 이상 있게 되면
그때부터 규칙을 만들지 아니하면 무법천지가 된다 라고 말이죠
즉 윤리나 법이란 결국 인간이 지옥의 몸이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억누르지 않으면
즉 규칙을 세우지 않으면 무법천지가 되는 거지요
아니다 나는 혼자 있어도 화장실을 따로 만들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등등등
그러나 이것도 남의 눈을 의식하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지
아무도 보지 않으면 그 규칙성도 얼마가지 않는
작심 3일 밖에 안된다 라는 거지요

만약 영화 캐스트 어웨이 곧 톰행크스 주연의 영화처럼
무인도 섬을 벗어나 외부로 나갈려고 한다면
그때부터는 규칙을 만들고
배구공에다가 타인을 심어서 종교화 해야
외부로 나갈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겁니다
만약 무인도가 전부이다 외부가 없다
과거에 타인을 만난 경험이 없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죠
그렇다면 법이고 규칙이고 윤리이고 뭐고 없는 겁니다
좋고 나쁘고 라는 선악도 없는 거죠
타인과 부딧힘으로써 좋고 나쁘고가 생기고
그에 따른 규칙을 정하는 거죠
규칙이 고정적이면 몰라도
우리가 전세계의 윤리 문화 도덕 법이 다 다른 이유는
부딧히는 그 상황에 따라
오히려 그 쪽에서는 좋은 의미가 다른나라에서는 나쁜의미가 되는 거죠
딱 하나 예를 들면 동양문화의 용은 환상의 동물 용은 아주 좋은 의미인 거죠
그러나 서양의 용은 사탄 완전 정반대인 거지요 기독교문화의 서양인 것이고
동양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승천의 성공의 의미를 두는 거지요
이런 의미에서 동얀은 집단적으로 왕에게 복종하겠끔하는 무의식을 심는 거지요
집단세뇌 말이죠 유독 미국에서만 그것도 대선 때에만 UFO 논쟁이 있는 이유는
전세계에 집단세뇌를 시키는 것이지요 최강국 왕의 나라 넘보지 말고
꿇어 엎드리라 라고 말이죠 무의식을 자극하는 겁니다

그러니 두 사람 이상만 생겨도
종교가 생겨나고 그런 윤리 선악의식이 바로 죄의 소원 곧 정치가 되는 겁니다
두 사람이상만 있어도 정치가 있다 즉 무당이 생기는 겁니다
누구는 하늘의 접촉자 매개자 곧 왕이, 정치가 있는 겁니다

자 그런 점에서
지난 번에 전남편 율법이 죽으면 그 아내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서
새남편에게 시집을 가도 죄가 안된다 라고 하는데 있어서

오늘 본문 그럼 율법이 죄냐 라고 우리가 묻고픈 것을 도리어 먼저 문제시 하면서
운을 띄우고 있습니다

율법이 죄가 아니라 죄를 겨냥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율법은 죄의 소원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의 죄만 상대하고 있다 라는 거지요
인간 상대하는게 아니라

왜? 인간의 주인은 죄 이니까
인간은 죄의 숙주인 거지요

그래서 율법은 논개처럼 죄를 껴 앉고 자폭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율법이 아니면 죄를 알지 못하고요
율법이 아니면 내 속의 죄가 살아 있고
정작 나는 그 죄의 주인 됨에 의한 종노릇으로써 죽어 있는 좀비일 뿐이다 라고
율법이 알려주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몽학선생으로서 누구를 쳐다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화살표입니다
왜 못 지키는가 그래서 몽학선생 이전에 율법은 나를 죽은자 취급하고
오로지 죄만 살아 있다고 증명해 보입니다
비로소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사망의 몸으로써
그 사망의 몸 이라는 처음자리에 몰아넣어서 몽학선생으로써
첫사랑을 쳐다보라 라고 화살표로 가리키고
그림자로써 실상을 제시하고 뒤로 퇴장하는 누락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은 전남편으로써 나를 껴안고 죽는 논개가 되고
그 죽는 요나의 표적인 큰물고기 뱃속 어두운 스올 무저갱 지옥 사망의 몸된 자리에서
이제 죄의 소원의 내막을 들추어내어서 죄의 소원인 죄의 문턱을 넘어서는
멋들어진 구원을 받을 만한 몸이 아니라
도리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사망의 몸으로써 그 처음자리에서
아들의 소원을 곧 환자의 소망이 아니라 의사의 소망을 비로소 보여주고 뒤로 빠지는 겁니다
그림자는 실상을 말하기 위함 인데
그림자를 껴안고 살려고 하니까 실상을 도리어 죽이는
사망의 몸임을 빼도박도 못하게 들통당하는 수치가 드러나는데 있어서

심지어 예수님을 죽여놓고서도 예수님이 그 살인자의 죄악을 가려주는
이 실상으로 안내하는 화살표 안내양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존재를 우선시 하고 자기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기에
율법을 존재화 하고 즉 우상화 하고 이 말은 곧 녹쓴때를 썩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맞아요 썩어라 라고 존재로만 보이도록 합니다
기능이 아니라
의사를 자기의 친구로 두면 자기가 더더더 건강하고 의인인자로 타인에게 자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의사의 존재가 아니라 기능은 오로지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기능을 펼칩니다
즉 오로지 수술칼을 들이대면서 자꾸 죽일려고 달려드는 거지요
사실은 내 속 어두운 뱃속에 있는 죄를 건드릴려고 수술칼로 찢는줄도 모르고
죽일려고 보고 있으니 이 기능이 아니라(무능한 젖먹이와 어린아이의 기능인 의의 병기가 아니라) 어쭈 율법의 존재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면 의사를 내 편으로 만들면
이 권력을(불의의 병기 곧 힘 칼과 방패로 전쟁 곧 정치를 하면 되겠네 라고 다들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올무에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는) 율법 존재와 자기를 합치 동일시 하더라 말이죠 이게 바로 율법이 더더더 죄를 죄 되게 율법이 탐하지 말라 라고 명령어를 주면 그 명령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율법이전의 탐한다 라는 것을 몰랐다가 졸지에 탐하는게 뭔가를 알게 되어서 탐하지 말라 라는 명령어로 인해서 탐하지 않게 지킬수가 있는게 아니라
탐할 수밖에 없는 몸으로 몰아가는 율법의 기능에 말려들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율법의 기능 의사의 기능에 관심없고
율법과 즉 의사와 자꾸 합칠려고 하다 보니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는 겁니다
그 인간 꾀를 더더욱 촉발케 하는 유도를 하는 거지요
한 예로 예수님이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 까지 농부일을 다 채운 자들 보란 듯이
딸랑 늦게 차출되어서 딸랑 30분 일한 자에게도 하루 일당을 다 주니까
자기들은 적어도 두배 이상 줄꺼라 라고 생각했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율법 또는 규칙 또는 윤리 또는 선악이 어떻게 발동하는고 하니
인간 속의 깊은 생각지도 못한 죄 곧 악을 들추어낸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의 방어기제는 내가 악이 아니라 너 예수가 악이다 라는
이 보편성을 이 집단성을 드러낸다 라는 점입니다

아니 규칙대로 정당하게 일당을 똑같이 줬다 말이죠
문제는 법을 지킨자들이 더 많이 일을 했기에 거기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많이 일 했다 라는 것은 상대적인 딸랑 30분 일한자와의 비교입니다

진짜로 더 많이 일했다 라면 12시간 더해서 13시간 했다면 1시간 초과수당을 암묵적으로 요구할수 있다 말이죠 그런데 더 많이 일을 했다 라는 것이 없어요

더더더 문제는 점심때 1시에 차출된 사람 놀던 사람을 불러 일하라 라고 해서
그 사람은 6시간 일했다 말이죠 딸랑 30분 일한 사람에 12배나 일했다 말이죠
그리고 오후 3시에 일한 사람도 있어요
이들 중간 중간에 들어온 자가 없었다면 전체 다 일한자가 빡빡 우길수가 있어요
그런데 중간 중간에 들어온자도 똑같이 하루 일당을 똑같이 다 받았다 말이죠

오후 3시에 들어온 자는 6배나 더 일했기에 거기에 따른 보상이 더 늘어났느냐? 아니다 말이죠
똑같이 받았다 말이죠

그런데 12시간 다 일한 자는 반발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1년치 계산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딸랑 하루에서 벌어진 선악사건이다 말이죠

정당한 대로 안 준게 아니라 정당한 대로 정당한 값을 다 주어도
갑자기 하루일당 계산으로 준 주인이 졸지에 악하다 라고 취급당해 버리는 겁니다

왜 갑자기 악이 튀어나올까요
정당한 12시간 다 일한 자신의 선함에 비해서 악하다 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악할려면 12시간 품삯을 안 줬으면 모르겠는데
다 줘도 악하다 주인은 악하다 라고 나온다 라는 겁니다

지난 주에 누가 세상에서 가장 교만하다 라고 인간들 모든 인간들의 평가가 나옵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가장 미움을 받는
가장 교만한 자이다 말이죠
맞아요 가장 교만한 예수쟁이들이 예수님을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 라고 몰아서 죽였거든요

이 뫼비우스의 띠를 풀려고 이 의문의 반복을 풀려고
이 율법의 완성을 풀려고 해 보라 말이죠
과연 누가 있을지

네 맞아요 율법이 논개처럼 나를 껴안고 죽는 길 만이
실상인 새남편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말이죠

그러니 율법은 애초부터 내 속의 죄가 살아나도록 부추기는 겁니다
왜? 율법은 나를 겨냥한게 아니라 내 속의 죄를 겨냥했기에
죄가 살아나니까 나는 그 죄에 죽은 죄의 소원이 질질질 끌려다니면서
좀비 노릇을 해 왔다 라는 거죠 세뇌당한 조종당하는 로봇 라는 거지요

죄가 살아남으로써 나는 죽은 거죠

이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광야로 몰아갑니다
광야 광야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몰아가니까
자기는 살아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한번도 애굽을 탈출한적이 없는 이 내 속의 죄가
출애굽한척 하면서 따라왔던 겁니다
그 죄를 겨냥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커녕

광야 광야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몰아가니까
이 사망의 몸이 구원받을 몸이라고 착각한 그 착각을
그 속임수를 그 꾀가

이 십자가의 죽음에 다다다 들통나더라 말이죠

십자가는 그렇게 죽음 덩어리인 나를 토해내는 겁니다

그렇게 토해 내침을 당하는
세 번 부인한 자
하나님을 원망한 자
하나님의 원수
그 증거가 꼬끼오 세 번
그 증거가 증거궤에 담긴 세가지 
곧 아론의 싹난 지팡이(니만 대통령하냐 나도 대통령이 될란다 정치-임마누엘),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이미 모세 곧 제사장의 실패를 염두한 거죠. 화가 나사 십계명 두 돌판을 깨뜨렸으니까, 종교 곧 모세의 온유의 한계, 인간 초코파이의 한계 가짜믿음 살인의지), 
그리고 만나는 담은 항아리(하늘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도 없는 자아로 자기유익으로 만드는 사망의 몸 우상의 몸,으로 들추어낸 만나 이것이 사랑없는 몸으로 들추어낸 사랑이다 곧 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로 그림자는 실상을 말하고 있음)

그러니 율법이 죄가 아니라 
율법은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었음으로 몰아가는(논개)
죄를 죄 되게 해서
올무 곧 미끼를 물은 것이여 율법을 지킨 나가 반드시 예수님을 악으로 몰아 죽이는
살인의 몸으로 반드시 만들어 버린다 라는 것

아냐 나는 절대로 살인하지 않을꺼야가 아니라
그건 잠시 보류할 뿐이지
날 때부터 잠재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태어날 때부터 가진채로 태어난 사생아 이다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마귀가 몽둥이 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율법을 통해서 몽둥이를 대심으로써

살인자의 자리에서 그 살인의 죄악 마저도 씻기시는
선악을 묻는 것이 아닌
사랑을 묻는

이 사랑으로 창조한 창조주를 내 반드시 너에게 내가 누군지 알려주겠다 라고
토해 내친 자리에서 
(왜? 율법 지키면 토해내치지 않을줄 알았는데
정작 율법 자체가 무조건 이유없이 토해내칠 수밖에 없는 자로 만드심 앞에서
그 어떤 반박 힐문을 할수 없도록 예수님을 가장 교마한 자
농부들처럼 악한 주인으로 몰아간 그 빼도박도 못한 증거물 곧 십자가에 탁 걸려 넘어졌으니 말이죠 마치 율법을 쥔 머슴아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돌삐 쳐죽이고자 하는
그 정당성 마저도 살인의지로 들추어내듯이 말이죠
아니 부자청년이 정말로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면 죽은자 곧 가난한 자를 살려보라 말이죠
행함으로 안되는 사랑으로 살려 보라 말이죠 율법의 완성은 사랑 아닙니까
그래놓고 왜 율법을 다 지켰다 라고 혹시 부족하다면 당장 채우겠다
이것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부족분 채우겠다 라는 탐심이다 말이죠 우상숭배이다 말이죠
탐심하지 말라가 도리어 탐심하게 만들도록 부추기는 율법에 걸려 넘어진거다 말이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신 예수님에게 탁 걸려 넘어진 것이다 말이죠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되도다

(눅 7:23, 개역)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것을 오늘날 한국교회는 진짜로 실족치 않을려고 가르치는 성화론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닙니다 제발 넘어지라 라는 겁니다
넘어져야 자신이 지옥의 몸임을 알거 아니겠습니까 넘어져야
누가 일으키는 그 요나의 표적을 십자가를 볼거 아니겠습니까
전부다 자기의 숙제로 가르치게 되니 그게 또 계급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모세의 자리에 앉은 법이 되어서 정죄하기 바빠요
그 정죄에 예수님이 걸려들어서 죽였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모든 인간이 십자가에 걸려든 겁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사망의 몸으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사랑이 또렷한데
어딜 감히 사람의 꾀로 속임수로
율법을 그림자로 이용해서 실상을 가릴려고 하느냐 말이죠
그람자로 사람을 온전케 해 보라 말이죠 전재산을 가난한 자 죽은자 살려보라 말이죠
도리어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지 않으면 다행이게
예수님을 안 죽이면 다행이게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살인자들로 그 증거가 십자가 아니냐 말이죠

토해 내침을 당해도 마땅한 자 임의 그 증거가 십자가 아니냐 말이죠

이 십자가가 아니면 절대로 인간은 그림자 율법을 놓을 리가 없어요
율법은 정작 그런 인간임을 알고 도리어 인간을 죽이고자 죄를 살리고 있는데 말이죠

죄를 살려야
독수리를 살려야 내 종 느부갓세살을 살려야
이스라엘이 죽어요

이스라엘이 죽지 않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리가 없지요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임을 
그 죽은자 의 그 당사자가 되도록 말이죠

내가 살아있으면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인간은 자꾸 자기가 살아있다 라고 보니까
하나님을 막 상대할려고 해요
대상물로 삼아요 웃끼죠

인간이 불을 상대로 막 만질려고 해요 웃사 꼴을 보고서도 불을 막 만질려고 해요
정작 웃사가 상대하는게 아니라
법궤가 거룩이 웃사를 상대합니다 웃사를 죽여서 웃사 속의 죄를 살려냅니다
사망의 몸을 살려냅니다
말이 안되죠 사망의 살려내요 죽음을 죄를 살려내요

즉 이 말은 인간은 하나님 상대할 입장이 못 됩니다 타 죽어요
얼굴 봤다가는 죽어요
왜?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손 깨끗한 자
얼굴이 그 증거입니다

음란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죽음이 가득해요
안그러는 인간이 없어요
소위 가장 거룩된 성화된자의 얼굴을 보니
광명한 천사의 얼굴로 위장했을 뿐 음란이 까까득 해요

그 음란을 감추기 위해서 그 교만한 얼굴 
완악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 곧 율법 지키기
곧 목이 곧은 백성임을 자기 스스로 수치를 얼굴을 가리우기
백날 해봐도 소용 없음을 들추어내는 것이 정작 율법의 기능인데

율법의 존재에 거룩의 존재에 자기 존재를 썩어서 합체 할려고 하다 보니
녹슨 찌끄기 녹이 포함 되어 있는줄 모르는 겁니다
그 녹을 주님을 살리는 겁니다 율법은 그 녹슨 찌끼만 상대하시는데
인간은 그 녹을 거치지 않고 건너뛰고 갈려고 하니
웃사처럼 법궤를 만져서 즉사 하는 겁니다
거 보세요 율법은 법궤는 나를 죽인다니깐요
그리고 사망을 죄를 살리더라 말이죠

다윗은 그 죄가 살아난 것을 보고
죄를 주님이 해결하실 때 까지 가만히 두다가
법궤가 들어올 때 너무 기뻐서 춤추다가 바지 내려가는 바람에
미갈이 다윗왕이여 체통을 지키고서 라고 비웃다가
불임여성이 되는 겁니다

즉 미갈은 법궤의 대상물이 된 다윗죄인을 다윗 토해야 할 죄인을 부르러 오셨는데
반대로 법궤를 상대할려고 또 웃사처럼 거룩을 잡을려고 하는
이스라엘 교만을 보여줌으로써 그 얼굴이 증거가 됨으로써
도리어 다윗을 교만하다 라고 몰아세운 겁니다

이렇게 언약은 두언약으로 율법은 두 언약으로
토해야 할 자로 수태치 못할 자로 화로다 나여 지옥의 몸임을 알고 우는 자로
그 수치를 가려주시는 눈물을 씻겨주심을 받은 자로
모세의 자리에서 정죄하는 완악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로 계집종 가정부로

둘로 갈라버리는 법궤요 율법이다 말이죠

율법은 우리를 무조건 눈물 흘리는 사망의 몸으로 몰아버리는데
다들 가정부가 되다 보니
왜 나의 정당한 품삯을 안 주냐 라고만 따지는
교만 그 얼굴의 분노 곧 예수님을 악한 주인으로 교만한자로 몰아가더라 말이죠

마침 놀랍게도 우리가 앞서

세가지 비유를 접했습니다

화덕 비유
녹슨 가마솥 비유
전병 비유

다들 한결같이 착각하기를 아 주님은 내편으로 상대할려고 하니까
좋게 좋게 해석합니다

즉 다들 건강한 자요 의인이라고 자기자신을 해석 합니다
그러니 의사가 의원이 필요없다 라는 의식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니 안 아픈데 왜 의사가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아프면 당장 의사가 필요하니 구할수 밖에요

율법은 넌 평생 웬수 평생 환자 이다 라고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다 라고
비로소 율법의 알맹이를 접하고서 다윗은 웁니다
자신은 토해 내쳐야 할 자임을 알게 하시는
정직한 영이 없다고 울게 만드시는 정직한 영에 의해서 말이죠

죄가 살아았는데 우찌 속에 정직한 영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는 자들은
집단으로 몰아가는 율법과 선지자 그리고 십자가를 무시하고
다윗언약을 무시하고
개인 사적인 구원을 위한 사적인 개인의 숙제로 해석하다 보니
저런 화덕비유 녹슨 가마솥비유 뒤집지 않은 전병비유를
다들 좋게 좋게 해석하는 겁니다
집단적으로 못 봅니다 
집단적으로 본다 라는 말 자체가 이미 모순 되죠
내 개인의 시선 뿐인 가운데 무슨 수로 남의 시선으로 해석하겠습니까

그래서 집단적인 시선으로 보라고 율법을 줬는데
아 모든 인간은 죽었고 죄가 살아났구나
죄가 죄 되게 하셨구나 로 봐야 하는데
율법의 껍데기만 취하다 보니
자꾸 존재가 될려는
개인숙제하기만을 바라는 겁니다 율법 잘 지키는 존재와 거룩한 율법의 만나
합체 연합 일치 동일시 
그러니 성화론자들의 성령론은 존재론인 무당개념이지
기능인 단절로 해석하는 놈들이 아무도 없어요

날 죽이는 성령론을 외치는 자가 없어요
다들 저 화덕비유(호 7장) 녹슨 가마솥 비유(겔 24장) 뒤집지 않는 전병비유 호세아 7장에 전병비유와 함께 어리석은 비둘기 비유도 나와요 물론 같은 의미입니다

아니 비둘기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지혜로운 성령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이 같이 순결하라 라고 했는데
왜 닭둘기처럼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 왜 순결한지
왜 뱀같이 사악하기 짝이 없어서 악마취급하는데 지혜롭다 라고 하는지

존재론에서는 해석이 안됩니다 
(즉 해석하겠다 라고 나서는 것 자체가 안됩니다 해석포기 해석차단 단절
도리어 해석 당해야 한다 라는 거죠)
왜 내 존재와 결부 곧 나를 개입시킬려고 하니까
이질적인 거부반응으로 인해 합체 할 수가 없어요

존재로만 보고 기능으로 못 본다 라는 말은
기능은 그때 그때 달라요 자꾸 움직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듯이
고정적이지 않다 말이죠
반대로 존재는 고정적입니다 고정적이면 가만히 있기에 보편적진리로 만들 수 있어요
개인이라는 내 존재도 개입시키고 합체 시킬수가 있어요
자꾸 움직여봐요 미꾸라지처럼 가물치처럼 미끌미끌 장어처럼 펄떡 펄떡 뛰어봐요 
얼마나 힘센지 잡는데 얼마나 힘드냐 말이죠 식겁한다 말이죠
돼지 잡는데 그 비린내와 고함소리에 저절로 토를 할정도로 역겹습니다
처참해요 온 사방에 피가 튀기니 말이죠
움직이지 않아야 나의 행함을 가미 시킬수가 있어요
뭐 가미 시키는 것은 오로지 자기유익을 위해서 잡아죽이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반대로 기능은 해석당해야 하기에
내 유익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이 지옥의 몸으로 들통당하는 겁니다

어리석은 비둘기 비유는
애굽과 괜히 손 잡는 바람에 앗수르에게 잡혀간다 라고
이사야선지자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는 그 비유의 수수께끼 행동과 연관된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냐 말이죠

신약에 나오는 비둘기 곧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한다 라는 그 비둘기의 기능은 존재가 아닌 기능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정도로 비둘기가 가장 흔하게 하늘에서 땅에 착지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카이 왠지 어러석을 정도로 순수하게 사람의 손에 잡혀 죽어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율법과 선지자가 마치 사람의 손에 잡혀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작 그 반대로 사람을 잡는 올무요 그물이다 사람잡는 어부 이다는 겁니다


(마 10:16, 개역)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그런 의미에서 뱀은 낚아 채는데 지혜롭고
비둘기는 바보처럼 잡혀줄 정도로 공짜로 날 잡아잡수세요 라고 할 정도로 온순하다 말이죠

자 그러면 이 기능 존재가 아닌 기능은 사건이 됩니다
뱀처럼 지혜로운 법궤는 인간의 접촉을 차단하는 지혜로써 웃사를 즉사시켜버립니다
먹이를 낚아채는데 한치 오차도 없습니다 어딜 감히 세 번의 부인을 건너뛰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 장지지겠다 함께 죽겠다 뭐 율법 네 배나 갚으라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정확하게 낚아챕니다 안 속습니다 모조리 차단 합니다
법궤 스스로 발이 발통이 달린냥 모든 우상의 손모가지 발모가지 다 짜르고 다닙니다
그런데 웃사는 사적으로 잡을려고 하니 아무리 본능이라고 해도
사적이 아닌 더더더 본능적인 집단성으로 웃사를 즉사 시키는 겁니다
어딜 감히 더러운 손으로 불을 잡을려고 해
그리고 순결한 법궤가 다윗성에 들어올때는 다윗을 발가벗겨버릴 정도로 기쁘게 만드는 거죠
그것을 비웃음 꺼리로 만들어 버리는 미갈로
이렇게 둘로 두 언약으로 갈라놓듯이 말이죠 그러니 내 쪽으로 끌어올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어요

자 이렇게 반드시 한 쌍으로써 율법은 찢고 선지자는 싸매는
우리는 존재로 보니 반대로 보이지요 율법은 지키면 날 좋게 해 주고
선지자는 그냥 선지자 아니지요 다윗언약의 선지자 즉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거짓선지자 북이스라엘의 신학과 상대적인 다윗언약의 선지자는
오히려 싸매어 주기는커녕 더더더 찢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완성된 십자가의 사랑이 있기에
눈에 보이는 존재는 그림자는 모조리 누락 시키고자 마구 마구 찢고
단절 시키는 기능으로써 작동하는 겁니다

그러니 나의 유익을 위한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어요
그런 사적인 구원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아니 보세요 우상숭배를 가장 잘 제거했다 우상를 타파했다 라고 자부하는
성화론자들을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교만하고 가장 우상숭배자이더라 말이죠
그게 부자청년
그게 바리새인 이다 말이다

항상 남들에게ㅔ 칭찬듣는 자들이지 절대로 악평 악플이 달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아니 그런 자를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함에 있어서
예수님이 도리어 악플달리고 교만하기 짝이 없다 라고 취급받지요
네 맞아요

비유란 수수께끼란 해석불가란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만 하면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가 만땅으로 나타나는 것을
실제로 그런 효과로 인해 사란들에게 충분히 대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반대로 해석하신다는 겁니다
화덕 비유 불에 달궈진 화덕 비유 완전 잔칫날이 졸지에 초상집이 되게 하는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푸는 임금비유 같아요
하나님 나라 비유가 다들 한결같이 부정적인데
반드시 긍정적으로 합체 녹슨 찌끼를 합체 시킬려는 노림수를 더더욱 부추기는 해석이
도리어 만연할때에 반대의 해석을 하게 되면
예수님 꼴 당하는 개죽음 당하게 되는 거지요
이게 성전 곧 교회에서 벌어지지
교회 다니지도 않는 사람에게서 벌어지겠냐 말이죠

뒤집지 않아서 한 쪽이 다 타버리면 결국 다 버린다 말이죠
왜 애굽과 손 잡아서 
왜 앗수르에게 포로 잡혀가냐 말이죠

자기 따나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나서는 것이 도리어
꺼져가는 심지 곧 애굽
상한 갈대 곧 애굽과 손잡았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 장로들의 대표기도는 반대로 역시나 긍정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잘못 기도한 줄도 모르고 도리어 은혜롭다 라고 칭찬받는 기도이지만 말이죠

아 맞다 하나 더 있죠 호세아 7장에 세가지 비유에 하나 더 [속이는 활 비유]
아니 활쏘는 팔을 주님이 강건케 훈련 시켰는데 도리어 그 활을 적에게 쏘는게 아니라 주님에게 쏘고 있더라 아까 위에서 언급한 악한 농부의 비유와 같죠
예수님을 도리어 악한 주인으로 활쏘고 십자가에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을 자기의 사망의 몸임을 쏘는데 활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남 정죄하는데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데 사용하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 그 자체가 교만 밖에 없어요
겸손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 얼굴이 그 중거가 되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할 수가 없어요
봤다가는 타 죽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보일려고 주님의 마당을 짖발고 있더라 말이죠
아니 내가 타 죽어야 할 장소인데
나를 더 높여주는 장소로 그런 걸어다니는 성전으로
그런 예수님으로 해석하더라 말이죠

나를 찢는 수술칼로써의 비유들인데
내가 건강한 자임을 의인임을 돋보이게 해 주며 높여주는 것으로 다들 해석을 하니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식이 되는 겁니다

고쳐달라고 부르짖으라 라고 울어라 라고 부르짖게 만드는 비유를
저 참 잘했지요 구원받을 만 하지요 아 겸손해야지 나대지 말고 촐랑거리지 않고
깐족대지 말아야지 그게 주님 보시기에 좋을 거야 라고
좋게 좋게 해석하면 되는줄 아는 거죠

알짜 없습니다 다 찢어버리시는 겁니다

무조건 이유 없이 논개처럼 함께 빠져죽자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그것이 운동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아니 죽은 죄가 나의 죄를 제대로 치료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게 할 수 없다은 것을 보여주고자 죄가 살아남으로써 죄로 죽은자 만드시는 겁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의 소원은 가인에게만 덮쳐진게 아닙니다 집단적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덮쳐진 겁니다
그러니 이미 죽은 거죠

그런데 살아있다 라고 내 존재에서 출발해 버리면
이게 바로 죄가 살아있다 라는 증거요 나는 그저 죄에 조종당하는 숙주일 뿐인거지요

그래서 율법이라는 에프킬라고 파리 모기 해충 십이지장충 아니다 이건 몸 속이다 잔딱
한 방에 다 뿌리는 겁니다 집단적으로 뿌리지 찔끔 한 마리 모기에게만 안 뿌리지요
방 안에 가두어서 죽이지요 한 구조 판대기 전체에

그러니 율법은 에프킬라 또는 잔탁 이지
율법이 죄를 죄 되게 드러내는 것인데
또 존재로 해석하니 내 존재랑 안 맞으면 우리는 무조건 선악으로 따지다 보니
율법이 죄냐 라고 묻는 거죠
예수님을 악한 주인이라고 몰아버리듯이
자기가 교만한 얼굴임을 완악한 수건인 율법으로 가리우기자 하니 말이죠
율법이 완악한 수건입니까?
여러분이 세수하고 얼굴 딱은 그 수건으로
계속 얼굴을 덮고 가리우고 1년 아니 딱 1개월 아니 딱 하루동안 지내보세요
얼굴과 얼굴을 마주 안 본다 라는 자체로 금방 교만한 자로 소문이 일파만파 퍼질 겁니다

일반 수건도 그런 판국인데 율법을 그렇게 활용할 정도였다면
율법을 이용햐서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라는 말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 정도로 극도로 교만하다 라는 거죠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얼마나 교만 합니까

처음 초창기 한국 환경운동가들 버스 매연 줄이자 라는 데모 집회를 한번은 과격하게 한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나중에 성추행범으로 잡혔다 말이죠
도둑질 하지 말자 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도리어 가르치는 학생의 목숨을 도둑질하는 이 간극을
인간은 그 어떤 방법도 좁힐 방법이 없습니다

도리어 간극이 더더더더 벌러진 그 사망의 몸에서
토해 내쳐야 할 그 심판의 자리에서

비로소 율법의 올바른 취지
내 속의 죄를 수술하는 칼로써 작동하는 겁니다
비로소

토해 내친 자리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교만 밖에 없는
그 처음 애굽
에굽의 종 되었던 너희는 끄집어 낸 나 여호와 라는
그 이름을

음녀의 자리에서 왜? 지금 호세아 우리가 살펴보고 있잖아요
아니 주님은 호세아 자녀 세 자녀처럼
이스라엘을 음녀 못 만들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몰아버려요

그 음녀의 자리 환자의 자리에서만
율법의 기능인 율법의 완성이신 이 십자가의 죽음을 보라 라고
그림자가 아닌 실상을 보라 라는 음성을 듣기 때문에 말이죠

귀머거리 자리에서만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율법의 기능입니다
거 보세요 이미 모순 되지요 귀머거리는 귀가 안 들리는 자입니다 
안들리는데 어찌 듣습니다
이게 비유입니다 수수께끼 곧 단절입니다

귀가 건강한 자에게서는 다른 것 다 들어도 율법의 기능은 못 듣십니다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외침을 못 듣습니다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 라는 부자청년과 같아요
그저 개인구원을 위한 자기유익을 위한 자기를 위한 우상숭배 곧 자기자신이 우상인
그 우상만을 위하기 때문에
들릴 리가 없지요 그 얼굴처럼 얼굴돌리고 등돌리고 다시는 안 보겠다 라고 돌아서 가는 겁니다

듣는다고 하니 못 듣고요
본다고 하니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
소경인 겁니다

나 소경
나 죄인
나 환자
나 심판받아 마땅한
나 사망의 몸
나 지옥의 몸
나 토해 내쳐야 마땅한 자
나 죽은 자 이다는 자이게만

이 비유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로소 소경된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 큰 물고기 바다 깊은 어두운 깜깜한 소경처럼 단하나도 안보이는
그 지옥 속에 뛰어드신 유일한 빛을 말이죠

내가 만들려고 했던 모든 가짜 빛들이 없는
사망의 음친한 그 무저갱 지옥의 몸인 심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겠끔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고

도저히 한 몸이 될 수 없는
원수된 둘로 나누어진
그 지옥 바닥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신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주님의 의사 된 기능 때문에

우리는 먼저 매맞는 겁니다
이스라엘 먼저 된 자도 실패한 것을 우리가 무슨 수로 성공하겠냐 말이죠
아뇨 실패하라고 매 맞는 겁니다

그 매 맞는 것을 보고 어머니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반대로 보고 이방인이 돌아왔듯이 말이죠

우리는 반대로 멋들어진 축복받은 모습으로 전도하고픈데
주님은 우리를 죽이시기로 작정되게 하심으로써
복음을 증거하십니다 인간의 전도와 주님의 전도는 정반대이듯이 말이죠

우리는 막 심으면 다 좋은게 좋은거다 라고 우기지만
주님은 주님이 심지 않은 것은 다 뽑겠다 라고

반드시 두 언약으로 가르시는겁니다

여기에 율법과 선지자를 페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온전케 하심으로써

율법의 완성인 사랑만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율법의 미완료 의문으로는
행함으로는
절대로 사람을 온전케 못하는
도리어 완악케 만드심의 차이로써

인간 쪽에서 아무리 거룩을 잡았다 그리고 실천했다 라고 해서
그 속임수에
속이는 활 비유 자기 눈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을 찌르는 예수님을 악으로 모는 그 의사를
도리어 거부하는 모습을 들추어내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해야 할 자임을
하나님의 의에 십자가에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심에 복종하지 않고
자기 의 쌓기에 하나님께 대한 열심 때문에 망해야 할 자임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없는
이 사망의 몸인
곤고한 자를 누가 건져낼 자인지를 보여주시고자

내가 끄나플로 붙잡고 있는 것 하나 하나를 모조리 다 제거함으로써
그림자가 아닌
유일한 산 소망
참 실상만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겁니다


이 심판의 주가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음을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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