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자 컴플렉스
중보자 컴플렉스
목사님들은 반드시 숙제 해 주시길 (불교영화 감상평) 2008-08-20 19:17:34
목사님들과 성도님들께 내는 문제 (적극적으로 참여 바랍니다.)
불교영화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이번 수련회 강의 잠언과 연관된 가난에 대한 것이고
또한 반드시 지금의 현실로 닥쳐진 문제들 입니다.
짧게 나마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다 댓글에 도전도 해 보는 겸 ^^
( 2년 전에 우연히 중간에 스쳐 보던 2006년 단편영화인데 그동안 찾아도 없던 것이
다행히 최근에 올려져서 혹시나 있나 싶었는데 검색이 되었고 이렇게 생각해 볼 좋은 기회가 된다 싶어서 적극추천합니다.)
아래 사이트를 클릭 하셔서 감상하시고 평을 올려 주십시요.
각자의 홈피나 블로그 교회홈페이지 에 올려서 평을 댓글로 남기고
서로가 이 문제를 놓고 토론도 해 보면 좋을듯 싶네요
잘 안 보이면 다음 사이트에 검색 단어 [작은것도 아름답다]를 검색 하시거나
[동영상] 에나, 다음tv 팟 등에서 같은 단어를 검색 하셔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9577910&searchType=0&page=1&rowNum=1&sort=wtime&svctype=1&q=%EC%9E%91%EC%9D%80+%EA%B2%83%EB%8F%84+%EC%95%84%EB%A6%84%EB%8B%B5%EB%8B%A4
같은 주소 입니다.
==============================
김을수 08-08-20 21:13
“목회에 도움이 되려니 하면서 택시 운전을 했는데 전혀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라는 독백은 복음이 없는 세상 교회의 현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궁상떨고 노는 것에 길들여진 애완견의 하루를 보는 것 같네요.
일주에 이틀은 점심을 얻어먹는 재미에 길들여진 놈이나, 짜장면 같다가 바치는 놈이나 그 시간 맞춰 짜장면을 구걸하고자 하는 놈이나, 허리가 휘도록 무겁게 머리에 이고서 김밥 장사하는 할머니가 찾아와서 마지막 거룩한 놈에게 건네주는 김밥 몇 줄에 위안을 받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쓰는 것이나 직장에서 상사 눈치 봐 가며 발줄 지키기에 급급한 놈? 저나 영 다를 것이 없고, 그저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 가운데 목사라는 사기꾼이 중심이 되어 노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작은 일상입니다.
예수님에게 반대급부를 원하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것 “내가 당신을 믿으면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해주겠소?” 그 가운데 가난을 내세우는 목사의 자존심이 클로즈업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서경수 08-08-20 23:45
영화에 나오는 목사가 너무 불쌍하다.
그가 월세도 제대로 못내는 가난한 교회 목사여서 불쌍한 것이 아니다.
교인 수가 겨우 3명뿐이어서 불쌍한 것도 아니다.
그가 참으로 불쌍한 것은 복음 전하는 목사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없다는 점이다.
월세 못 낼 형편이면 예배당 없애면 된다.
우리 주위에는 월세 낼 예배당마저 없는 목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교인이 3명도 안 되는 목사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 십자가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가 있기에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가난이야 육신이 살아 있을 동안에만 고통을 주지만
십자가 은혜가 없으면 그는 영원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목사가 진짜 불쌍하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게 깨끗하게 하실 것”(요일1:7)이라는 복음 앞에
‘나는 왜 예배당 월세도 못내는 교회 목사인가?’
‘이렇게 양심껏 충실하게 목회했는데 왜 교인은 겨우 3명뿐인가?’ 이런 소리는 나올 수 없다.
지옥 갈 죄인이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영생을 얻었으면 더 이상 뭘 바래.
이창섭 08-08-21 00:29
1. 내 속에 있는 나만의 비밀스런 모습을 영상이라는 매체로 비주얼화해서 세상에 공개해버렸네요.
2. 아내가 매우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보험계약 ~~" "사모가 무슨 죄냐구요~~~~"
3. 일을 하므로 남편으로서의 자부심(?)과 목사로서 복음을 안다는 것이 여유로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4. 히브리서의 혼에 나온 그목사의 잘못은 간단하다가 생각나군요.
5. "목사님도 사모님 솔찮게 무서워 하시쟌아요~~~" ㅋㅋㅋㅋ
강구만 08-08-21 01:01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감동을 강요하는 드라마네요. 그러나 이땅에서 '죽으신' 하나님과 전혀 관련없는 '산'사람들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불교영화라고 하지마세요 불교인들이 화냅니다.
이근호 08-08-21 10:18
두 가지 시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등장한 목사의 입장과 그 목사를 보는 관객들의 입장 이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입장 모두 다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가 아니라 기존의 한국 땅에서 '교회' 혹은 '교계'라고 지칭되는 현실관을 가지고 이 영화에 등장되는 교회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적이 생각납니다. "교회가 있다는 것이 곧 교회를 망치다"고 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도통 관심이 관심이 없으면서, 현재 다른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교회상을 배경으로 해서 그것을 의식하면서 자신에게도 '교회 있음'을 챙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선지자의 자유로운 '유동성적 임무'를 알지 모르고 그 대신 악마의 일꾼들이 외치는 '땅 위의 고정성'을 본받고 싶어 내심이 안달이 난 증거입니다. 김을수 집사님의 말씀대로, 구조조정 당하는 일반 직장 사정이나 조류독감에 사태 안에서 키친 집 문닫는거나, 50년 구멍가게가 새로 들어선 대형마트에 밀러 하루 아침에 "임대합니다"라는 종이 쪼가리 붙이는 거나, 주지 권력 싸움에서 밀려서 도시 주택가에서 따로 참선 서원을 열었던 중이 가게세조차 못내어 시장 바닥에 목탁치며 구걸하는 경우나 도무지 다를 게 없는 인식입니다. 우편배달부가 택배받은 고객과 그저 인간대 인간의 정으로 노닥거릴 때부터 맛이 간 겁니다. (그 고객이 지질이 생활보호 대상자든, 장애자이든, 불량인이든, 재벌이든 상관없이 그들과 복음 외의 관계로 다가서면 이미 '하나님의 종'의 자리로부터 탈선한 것입니다.) 어떤 노래가사처럼 "복음받을 자 없으면 복음 안 전하면 돼고, 복음 받고 싶은 자 있으면 다시 복음 전하면 돼지~" 본 영화에서 내세운 주제, 즉 '자기 자리의 소중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불분명합니다. 목사의 자리가 소중하다는 말인지, 교회 자리가 소중하다는 말인지 아니면 복음의 자리가 소중하다는 말인지 모호합니다. 저 같으면 300명 교회에서 오라 하면 얼른 갑니다. 한 달을 못채우고 내침을 당해서 그것은 그 때가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또 한가지, 어떻게 월세도 못내는 교회가 그 이후에 무슨 수로 월세 을 채우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도 신기합니다. 사모님의 영업실적이 우수했다는 조건이 붙어있으면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보험 영업직의 자리는 소중하다, 심지어 목사자리 보다 ...."
이미아 08-08-21 13:07
요즘말로 "토할것 같애"(자기 자신감이나 잘난 척이 분수에 넘칠 때 상대방을 야유하면서 하는 말)
그러나 쑥쓰러움과 부끄러움과 어색함이...왠지 모르게 밀려옵니다.
자기의 과거를 정리하듯 자기의 소중한 삶의 때가 묻어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앨범을 펼쳐볼 때의 당황스러움처럼... 사진의 발전사....촌스럽기 그지없고 멀뚱하기 짝이없게 박혀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 누구라도 볼까봐 그 흔적들을 감추고 지금의 나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마디로 2008년에 70년대 개그를 보고 있는것 같지만 이 개그는 오늘도 여전히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치면 믿음이 약해진다" = "지치면 본색이 나온다"(믿음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그런데 이상한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지친 사람들인데 본색은 나오지 않고 여전히 자기들은 착하다는 것을 끝까지 내세우는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만큼은", "나만큼은" 착하다는 인식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음을 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서도-이 세상은 소경된 자들 외에는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보고 있다는 거짓속에서, 그 세력속에서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이 처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도 어찌할 수 없이 도와주시리라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만든 우상이 곧 자기가 찾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지치면 지칠수록 인간의지는 더 힘을 받아 일어서는 것입니다. 불굴의 정신입니다.
"믿음이 좋으면 성격도 좋아진다" 몇 년 전에 어떤 전도사에게 "어떤 목사님은 타고난 인품이 너무 좋아서 믿음생활하는데 우리들보다 한발 더 앞서서 갈 수 있다"는 이론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분과 함께사는 사모님한테 직접 들으니 집에서는 개판이었답니다.
그 전도사는 개같은 이론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목사님은 도대체 왜!!! 강원도에 사택도 마련되어 있고 자동차도 준비되어 있고 교인도 300명이나 되는데 도대체 왜!!! 마음이 40% 60%가 되어서 가지 않았는지.......도대체 왜 지지리도 궁상을 떨고 있을까요???
라고 물으면서 이 영화는 끝마쳐져야 할 것 같습니다.
율법외에 한 의를...그냥 값없이 선물로 주신 그 의를 절감하고 또 절감할 뿐입니다.
김대식 08-08-24 10:08
중보자 컴플렉스
주님이 이런 가짜 중보자를 깔아 놓으시는 이유는, 예수님 자신만이 참 중보자임을 가짜 중보자들과의 차이성으로써 증거하심이겠지요.
중보자 자리 곧 인간의 종교 장사는 예수님이 벌리시는 자기 목숨 버리심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지를....
결국 인간은 나 가짜 중보자요 예수님만이 참 중보자임을 실제로 본인이 누락 당하는 단절을 통해서 영의 낯선 세계인 십자가를 보게 될 겁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리 입니다. 그 처음의 자리로 돌려놓는 사랑이 없다면 그저 자기 자리에 갇혀 살 뿐일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조현창 08-08-24 23:54
영화 제목으로 내세운 ‘작은 것은 아름답다’와 영화주제로 내세운 ‘자기 자리의 소중함을 지키는 것’이 서로 연결이 잘 안된다는 느낌입니다. 비록 작지만 그것을 자기의 자리로 여기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자는 거겠지요?
영화 초반에 도심의 수많은 십자가 사인과 약국과 모텔을 보여주는데, 감독의 의도가 아리송합니다. 가난한 목회자의 발생 이유가 공급과잉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에 선점당한 도심에서도 자본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참된 목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포석인지...
아무튼 영화는 그 가운데 어렵게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는 어느 목사와 그 가족의 애로사항을 ‘아름답게!’ 그려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감동을, 가난한 목사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목표로 하는 <새마을 영화>라고나 할까요....
현재 한국 기독교 종교 마켓의 저변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경쟁에 승리한 소수를 뺀 나머지 대다수 실패자들(?)은 <작지만 자기 자리의 소중함을 지키기>를 다짐하면서 오늘도 버티기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내일의 대박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치킨으로 단백질 보충도 하고...
결국, 가난, 작은 것, 아름다움, 자기 자리, 소중함... 등은 핑계거리들입니다. 목사, 사모, 딸이 각각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듯이... 결국 예수 믿기 싫었는데 잘 된 것이죠.
---------------------------
이근호 08-08-26 08:26
'예수 믿기 싫었는데 잘 된 것이죠" 조현창 성도님의 이 말은 표구해서 평생 집에 걸어놓고 싶습니다. 아니, 우리교회에다 걸어놓을까...
----------------------------
정낙원 08-08-26 21:50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전형적인 한국식 기독교입니다.
이런 교회들은 지천에 깔려 있어서 낳설지 않고 너무도 낳이 익습니다.
목사라는 직이 무슨 거룩을 생산해 내는 능력이라도 되는냥 끝까지 고수하는 건달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답니다.
성과 속을 이원화 시켜서 호객행위로 종교 장사를 하는 이 시대 교회의 참 모습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목사가 교회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것은 교회가 무슨 거룩이라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큰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을 팔고 사는 대형마트이고, 작은 교회는 동네 구멍가게일 뿐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크다고 흉한 것도 아닙니다.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작은 교회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마지막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사람마다 자기가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고 하는 목사의 설교는 자기 합리화이지 복음은 아닙니다.
영화의 구도 자체가 큰 교회와 작은 교회로 비교하는 것이 감독의 신앙에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목사는 작은 것을 지킴으로서 대형교회를 하는 목사들에게 난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식으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적 잣대로 판단하는 자기 위선입니다.
교회란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판단이 되어지는 곳입니다.
작더라도 복음이 증거되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지만 작더라도 복음이 없으면 절간이나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목사나 사모나 아이 역시 복음에 가치를 두지 않고 난 너희들과 다르다는 식으로 기성교회와 구별하는 것이 새로운 자기 의가 되어서 자리 잡고 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의가 비집고 들아갈 틈이 없어 보입니다.
사모님의 "그래도 사기치지 않고 목회를 하쟎아요" 라는 말은 이 시대 개척교회를 하는 분들을 대변하고 있는 말 같기도 합니다.
개척교회 목사들이 붙잡고 있는 것이 "그래도 난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핑계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면 적개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남에게 원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차라리 사기를 치고 목회를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더 정직하지 않을까요.
목사님 역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교회로 옮겨서 나도 별수 없는 속물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더 인간다운 것입니다.
목사나 사모나 아이 모두 자기 의를 마일리지 쌓듯이 채워가는 모습이야 말로 가장 역겨워 보입니다.
앞으로 이분들에게 남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 뿐입니다.
결국엔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차라리 사기 치시고 차라리 큰 교회로 가셔서 나도 별수 없이 돈을 좋아하는 인간 버리지임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기의 추함이 드러날 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억지로 참지 마세요. 화가 날 땐 화를 내고 원망 하고 싶을 땐 원망하세요.
하나님이 화를 내라고 그 환경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원망하라고 그 환경을 주셨는데 왜? 참습니까?
하나님께 욕을 하고 싶으면 하세요.
참지 마시고 하나님과 맞짱 뜨자고 하십시요.
이스라엘을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광야로 몰고 가신 것은 하나님께 대적하라는 것임을 왜? 모르십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원망하고 욕하라고 광야로 끌고 갔는데 왜? 원망 안하십니까?
원망안한다고 하나님이 믿음 있다고 신앙 좋다고 이쁘게 봐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위선이고 자기 기만일 뿐입니다.
솔직함이 하나님 앞에서 더 아름 답답니다.
영화 속의 교회와 여기 십자가 마을 목사님들의 교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 다른 것은 십자가 마을 목사님들은 언제든지 교회를 문닫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과,
영화 속의 목사님은 끝까지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아집에 사로잡힙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