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의 노래 가삿말의 주인공이 된 두로 (사 23; 1-18)
창녀의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 된 두로 (사 23; 1-18)
(사 23:15, 새번역) 『그 날이 오면, 한 왕의 수명과 같은 칠십 년 동안 두로가 잊혀지겠으나, 칠십 년이 지난 뒤에는, 두로가 창녀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될 것이다.』
(사 23:16, 새번역) 『망각 속으로 사라졌던 너 가련한 창녀야, 수금을 들고 성읍을 두루 다니며, 감미롭게 수금을 타고 노래나 실컷 불러라. 남자들마다 네 노랫소리를 듣고, 다시 너를 기억하여 모여들게 하여라.』
(사 23:17, 새번역) 『칠십 년이 지나가면, 주님께서 두로를 돌보아 주셔서 옛날처럼 다시 해상무역을 하게 하실 것이다. 그 때에 두로는 다시 제 몸을 팔아서, 땅 위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의 돈을 끌어들일 것이다.』
(사 23:18, 새번역) 『그러나 두로가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소득은 주님의 몫이 될 것이다. 두로가 제 몫으로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두로가 벌어 놓은 것으로, 배불리 먹을 양식과 좋은 옷감을 살 것이다.』
(사 23:1, 개역)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니라』
(사 23:2, 개역)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거민들아 잠잠하라』
(사 23:3, 개역)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운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었도다』
(사 23:4, 개역)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보장이 말하기를 나는 구로하지 못하였으며 생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 남자들을 양육하지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니라』
(사 23:5, 개역)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을 인하여 통도하리로다』
(사 23:6, 개역)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거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사 23:7, 개역)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유하던 성이냐』
(사 23:8, 개역)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이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사 23:9, 개역)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23:10, 개역)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사 23:11, 개역)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훼파하게 하시고』
(사 23:12, 개역) 『가라사대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 23:13, 개역)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
(사 23:14, 개역)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사 23:15, 개역)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칠십 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사 23:16, 개역) 『잊어버린바 되었던 기생 너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행하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케 하라 하였느니라』
(사 23:17, 개역) 『칠십 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그가 다시 취리하여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사 23:18, 개역)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사 23:1, 새번역) 『이것은 두로를 두고 하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울어라. 두로가 파멸되었으니, 들어갈 집도 없고, 닻을 내릴 항구도 없다. ㉠키프로스에서 너희가 이 소식을 들었다. / ㉠히, '깃딤'』
(사 23:2, 새번역) 『항해자들이 부유하게 만들어 준 너희 섬 백성들아, 시돈의 상인들아, 잠잠하여라!』
(사 23:3, 새번역)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수확을 배로 실어 들였으니, 두로는 곧 뭇 나라의 시장이 되었다.』
(사 23:4, 새번역) 『그러나 너 시돈아, 너 바다의 요새야, 네가 수치를 당하였다. 너의 어머니인 바다가 너를 버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산고를 겪지도 않았고, 아이를 낳지도 못하였다. 아들들을 기른 일도 없고, 딸들을 키운 일도 없다."』
(사 23:5, 새번역) 『두로가 파멸되었다는 소식이 이집트에 전해지면, 이집트마저도 충격을 받고 낙심할 것이다.』
(사 23:6, 새번역) 『베니게의 주민아, ㉡스페인으로 건너가거라. 섬나라 백성아, 슬피 울어라. / ㉡히, '다시스'』
(사 23:7, 새번역) 『이것이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던 도성 두로냐? 그토록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저 먼 곳에까지 가서 식민지를 세우던 도성이냐?』
(사 23:8, 새번역) 『빛나는 왕관을 쓰고 있던 두로, 그 상인들은 귀족들이요, 그 무역상들은 세상이 우러러보던 사람들이었는데, 두로를 두고 누가 이런 일을 계획하였겠느냐?』
(사 23:9, 새번역) 『그 일을 계획하신 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온갖 영화를 누리며 으스대던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만드시고, 이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자들을 보잘 것 없이 만드시려고, 이런 계획을 세우셨다.』
(사 23:10, 새번역) 『㉢스페인의 ㉣딸아, ㉤너의 땅으로 돌아가서 땅이나 갈아라. 이제 너에게는 항구가 없다. / ㉢히, '다시스' ㉣또는 '주민아' ㉤사해 사본과 칠십인역 사본들을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다시스의 딸아, 나일 강처럼 땅 위에 넘쳐 흘러라. 너를 속박하던 것은 이미 없어졌다'』
(사 23:11, 새번역) 『주님께서 바다 위에 팔을 펴셔서, 왕국들을 뒤흔드시고, ㉥베니게의 요새들을 허물라고 명하셨다. / ㉥히, '가나안'』
(사 23:12, 새번역)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녀, 딸 시돈아, 너는 망했다. 네가 다시는 우쭐대지 못할 것이다. 일어나서 ㉦키프로스로 건너가 보아라. 그러나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하지 못할 것이다." / ㉦히, '깃딤'』
(사 23:13, 새번역) 『㉧(바빌로니아 사람의 땅을 보아라. 백성이 없어졌다. 앗시리아 사람이 그 곳을 들짐승이 사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도성 바깥에 흙 언덕을 쌓고, 성을 공격하여, 궁전을 헐어 황폐하게 하였다.) / ㉧또는 '갈대아'』
(사 23:14, 새번역)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울어라. 너희의 요새가 파괴되었다.』
(사 23:15, 새번역) 『그 날이 오면, 한 왕의 수명과 같은 칠십 년 동안 두로가 잊혀지겠으나, 칠십 년이 지난 뒤에는, 두로가 창녀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될 것이다.』
(사 23:16, 새번역) 『망각 속으로 사라졌던 너 가련한 창녀야, 수금을 들고 성읍을 두루 다니며, 감미롭게 수금을 타고 노래나 실컷 불러라. 남자들마다 네 노랫소리를 듣고, 다시 너를 기억하여 모여들게 하여라.』
(사 23:17, 새번역) 『칠십 년이 지나가면, 주님께서 두로를 돌보아 주셔서 옛날처럼 다시 해상무역을 하게 하실 것이다. 그 때에 두로는 다시 제 몸을 팔아서, 땅 위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의 돈을 끌어들일 것이다.』
(사 23:18, 새번역) 『그러나 두로가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소득은 주님의 몫이 될 것이다. 두로가 제 몫으로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두로가 벌어 놓은 것으로, 배불리 먹을 양식과 좋은 옷감을 살 것이다.』
성경말씀은 참으로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번주 내내
요엘서의 성령을 부어주신다 라는 말씀이 떠나지 않아서
계속해서 생각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상황을 당하게 되었는데
성령 곧 묵시가 부어지게 되면
반드시 한 세트가 되는 역사와의 충돌로써의 상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즉 성령 받았다는 사건은 독자적으로 될 수가 없다는 거지요
반드시 역사가 이런 상황일때에 그 상황의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벌어지는 것이
성령이 부어지는 것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믿음을 소유하듯이 성령을 소유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인거죠
오히려 성령으로부터 소유 당하고
믿음에 의해 소유 당함으로써
졸지에 구체적 보편성 곧 보편적인 역사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는 겁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반드시 주변 이방나라와 반드시 역여져서
그 특이성이 차이로써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 차이성을 거룩이라고 한다 말이죠
깔끔증처럼 결벽주의자들처럼
거룩을 성화론자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충분히 행할수 있는 문제이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아니라 두 패거리에서 둘의 차이로써 나타나는 문제이기에
전혀 개인의 문제 또는 숙제와 무관하게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요엘서의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말씀이 계속생각났던 겁니다.
(욜 2:27, 개역)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0, 개역)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31, 개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마 12:18, 공동) 『"㉠보아라, 내가 택한 나의 종 내 사랑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 그에게 내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는 이방인들에게 정의를 선포하리라. / ㉠이사 42:1-4.』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행 2:17, 공동)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요엘 3:1-5.』
(행 2:17, 현대어) 『ㄱ)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 나의 비를 부어 준 다음에, 너희 모두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을 할 것이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여러 가지 꿈을 꿀 것이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온갖 환상을 볼 것이다. (ㄱ. 70인역 욜3:1-5)』
(행 2:18, 공동)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욜 2:29, 현대인) 『그 때에 내가 또 나의 남녀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줄 것이며』
즉 누가 봐도 더러운 자인데 오히려 예수님은 깨끗하다고 하시고
반대로 누가 봐도 거룩하고 청결한 자인데 오히려 예수님은 더럽다고 하신다 말이죠
이 예수님의 선언에 그 어떤 인간도 동의를 단 한 사람도 못한다 라는 점에서
보편적인게 아니라
구체적 보편적이다는 겁니다.
즉 보편성을 깨었는데 깨뜨렸는데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객관성을 깨뜨렸는데
그럼 주관적인게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주관적인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이 더 더 더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는
당위
동의를 안하고는 못배기는 더 나은 보편성이다는 겁니다.
즉 반대자 가장 반대했는 가장 최전방의 열성자가
그 반대한 것을 오히려 동의를 하고
반대로 전에도 반대해서 목숨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해서 목숨 건 것에 더 나은 목숨을 걸 정도로
찬성자가 되었을때에 구체적 보편성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써의 대표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예수님의 저런 말도 안되는 선언에 가장 반대하는 자로써
예수님을 죽이는데 성공을 했고
곧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선언하고
예수 자신만이 참성전이다고 46년된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짖겠다고
보편적인 예루살렘성전을 헐고 3일된 자기가 성전이라는 말도 안되는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니
이 예수를 보편성으로써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이 일당들 다 잡아 죽입니다.
그래서 스데반도 죽였고요
아 그런데 그 구체적보편성을 죽였던 사도바울이
오히려 예수 당신이 옳았다고
나는 틀렸다고
아니 예수를 죽였잖아요 자기가 주도해서 죽였다 말이죠
그런데 자기 손으로 죽인 예수를 자기가 도리어 믿어요
가장 앞장 서서 반대를 했는데
그 반대자가 반대를 위한 반대인 예수님을 가장 앞장 서서 증거하는 증인이 되다니?
보편성은 틀렸고 모두가 인정하는 보편성은 틀렸고 강도의 소굴인 예루살렘성전은 틀렸고
그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는 뜨인돌 예수님이 옳았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언어란 소통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방언이 터져버리는 겁니다.
방언은 말도 안되는 소리로써 단절이 된다는 겁니다.
즉 소통이 깨어지는 소통을 깨뜨리는 것이죠
그런데 그럼 소통이 깨어졌으니 단절이 되어서
서로 서로가 외국말로써 말이 안통할 줄 알았는데
외국말도 모르면서
단 한번도 외국말을 배운적도 없는데
어찌된 심판인지 오히려 모국어로 말할 때 보다 더 잘 소통하게 되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말을 하고서도 기가 막혀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 될 정도이다 말이죠
누가 봐도 외국어라는 방언이 튀어나오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모국어로 말하는 소통성은 깨어지고 단절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단절이 소통 보다 더 잘 소통이 되는 비소통인 단절로써의 소통이다 말이죠
에잇 ㅋㅋㅋ 더 이상 말 안 할래요 내 입만 아프지 ㅋㅋㅋ
이게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데 더 잘 알아먹어 ~~~~~ ㅋㅋㅋ
즉 묵시 곧 계시의 말씀이라는 언어는 그냥 증거 되는게 아니라
역사의 언어를 파괴하고 깨뜨리고 단절 시키면서 증거 되는데
자국어 모국어가 단절 되고
소통이 깨어지고 박살이 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단절이 더 기쁘고 더 신나고 더 즐겁고
이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는데
자국어 사람은 예를들어 한국인이 5천만명이다 라고 치면
이 소통의 한계가 5천만 명에서 탁 걸린다 말이죠
이게 역사다 말이죠
각 나라 마다 다 그런식이다 말이죠 경계선에 걸리면 탁 걸려 넘을수가 없다 말이죠
그때서야 단절이지 우물 안에서는 소통이니까 다 소통되는 줄 알았다 말이죠
그래서 역사는
모잘라요
무게를 재니까 함량미달이다 말이죠
종교를 예를들면 교리가 기독교라면 기독교에서 탁 걸려요
그 바깥은 불교 교리 따로 있고, 이슬람교리 따로 자기 영역이 있고 해서
그 속에 들어갈수 없고 기독교 밖은 넘어 갈수가 없다 말이죠
이건 오늘 나오는 표현으로 하자면
만군의 여호와가 아닌 셈이 된다 말이죠
겨우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나님 밖에 안되지
이방 나라는 손도 못 되는 하나님 밖에 안되니
이게 무슨 하나님입니까?
제가 며칠 동안 소름이 끼쳤는데
어쩌면 이 이사야 말씀이 지금 하고 있는 계시록과 너무 너무 찰떡궁합처럼 짝짝 들어맞는지
닭살이 돋을 정도이다 말이죠
오늘 나오는 두로는 창녀이지만
창녀가 먼저 천국간다 라는 의미에서
(마 21:31, 개역)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두로를 심판하시고 다시 두로를 회복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이 가진 특이성을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두로를 다루듯이 이스라엘을 다루시겠다고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이번주에 할 계시록의 음녀의 비밀 짐승의 비밀은 오히려
제사장의 딸로써 거룩의 의미를 알면서도
이 거룩을 훼방하는 방식이 거룩을 지켜버리는 식으로써
이 이스라엘 이 유대인이 마치
만군의 주 되심을 방해하고자
음녀의 활동이 거룩을 지켜버려서 자꾸 원인을 만들어 냄으로써
결과를 없애버리는 식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두로라는 창녀와 반대로
거룩을 지켜서 음녀 창녀 노릇으로써 만군의 주가 되심을 방해하는 목적으로
음녀의 비밀을 계시록이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창녀 아닌 자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룩은 인간의 손에서 떠난 문제이다는 거죠
그런데 이 두 창녀 속에서
거룩이 개입하게 되니까
하나는 거룩을 지켜서 거룩을 방해하고
하나는 거룩을 지킨 적이 없는데 거룩이 입혀지더라 라는 겁니다.
누가 봐도 거룩한 자는 유대인 이스라엘 맏이 맏아들 장남 이다 말이죠
그런데 그들의 음녀의 속성이 거룩을 지켜서 거룩을 못 쳐다보도록 한다는 점이다는 겁니다.
반대로 오늘 두로와 같은 창녀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이 심판 속에서 말도 안되는 구원을 쳐다보더라 말이죠
두 강도가 두 창녀가 십자가에 달려 아주 당연하고도 당연한 죄에 대한 형벌을 받고 있다 말이죠
그런데 그 죽음 속에서 그 심판 속에 놀랍게도 거룩이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것은 이사야 23장의 표현이고
(사 23:9, 개역)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23:9, 새번역) 『그 일을 계획하신 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온갖 영화를 누리며 으스대던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만드시고, 이 세상에서 유명하다는 자들을 보잘 것 없이 만드시려고, 이런 계획을 세우셨다.』
(사 23:9, 공동) 『이 결정을 내리신 분은 만군의 야훼, 뽐내던 온갖 사치를 짓밟으시고 세상이 우러르던 자들을 천대받게 하셨다.』
(사 23:9, 쉬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일을 계획하셨다. 주께서 이 교만한 사람들을 낮추시고, 땅에서 존경받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기로 결정하셨다.』
(사 23:9, 현대인)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그들의 교만을 꺾고 세상의 존귀한 자들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사 23:9, 현대어) 『그분은 바로 온 세계의 주인이신 여호와이시다! 그분이 거만한 부자들을 모두 부끄럽게 하고 세상의 존귀한 이들을 모두 천대받게 하셨다.』
계시록에서는 만군의 주 께서
(계 17:14, 개역)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 17:14, 개역)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 17:14, 새번역) 『그들이 어린 양에게 싸움을 걸 터인데, 어린 양이 그들을 이길 것이다. 그것은, 어린 양이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기 때문이며,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계 17:14, 공동) 『그들은 어린 양에게 싸움을 걸겠지만 마침내 모든 군주의 군주이시며 모든 왕의 왕이신 어린 양이 이기실 것이며, 그의 부르심을 받고 뽑혀서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도 함께 승리할 것이다."』
(계 17:14, 쉬운) 『그들은 어린양을 대적해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님이신 어린양이 승리를 거두고 부름받아 선택된 충성된 주님의 병사들도 승리할 것이다.”』
(계 17:14, 현대인) 『어린 양을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그러나 어린 양은 주들의 주이시며 왕들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길 것이며 또 부름을 받고 선택된 진실한 신자들은 그와 함께 이길 것이다.'』
(계 17:14, 현대어) 『그리고 한패가 되어 어린양을 대적해서 싸울 것이다. 그러나 결국 모든 군주들의 주님이요, 왕 중 왕이신 어린양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분의 신하들은 부르심 받은 자요, 선택받은 자요, 충성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두 강도의 죽음 속에서까지 만군의 주로써 개입하시고자 뛰어드실때에
하나는 말도 안되게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소리를 하고 (즉 단절의 소리를 하고, 곧 방언이지요)
하나는 우리도 이해할수 있는 말귀 알아먹는 소리를 하더라 말이죠 (즉 소통의 소리인
역사의 언어를 펼치더라 말이죠)
만군이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역사 곧 시간과 공간에서 해석되는 만명의 군대?처럼 모든 수의 가장 최고의 수 숫자
또 그런 의미로 만물 온천하만물 모든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보시면 된다 말이죠
그런데 묵시에서 다루는 만군 곧 방언에서 다루는 만군은
바로 저런 역사의 한계에 부딧힌 수 보다 더 많은 수의 등장으로 인해
비로소 최고의 수가 아니다 임이 드러나겠죠
그러니 묵시는 항상 역사를 카페트로 깔고서 그 위를 지근 지근 밟으면서 등장하는 겁니다.
마치 두로처럼
두로를 깔고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듯이 말이죠
그러니 역사의 해석인 만군을 깨뜨리면서 등장하는 묵시의 방언으로서 만군의 여호와가 된다 말이죠
누구든지 알마먹는 만군이라는 뜻을 가지고와서
그것을 바닥 카페트로 깔고서 그 위를 지근 지근 밟아서
만군의 뜻을 깨뜨리면서 만군의 의미를 증거하더라 말이죠
마치 건축자들이 세우는 건물에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는 이 구체적 보편성으로써의 머릿돌 말이죠
역사는 분명 그를 쓸모없다고 버렸는데 전혀 만군의 주 같지 않아서 버렸는데
아니 글쎄 우주에서는 그가 만군의 주였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5천만명의 범위에서는 복음이라는 성경말씀은 쓸모없는
소통이 안되는 방언이라서 외국말이라서 버렸는데
우주에서는 이 단절의 외국말이 우주의 모국어로써 소통이 되더라 라는 겁니다.
그럼 역사 바깥을 봐야 할까요 아니면 역사 속의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쓸모없다고 버릴까요?
계시록에 나오는 용어 곧 언어는 역사 바깥의 언어들이라서
역사 속에서 소통이 되기는커녕 뚝뚝 끊어지는 단절이 됩니다.
음녀 짐승 이라는 단어는 백날 역사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려고 해도
알수 없는 단절의 용어다 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23장에 나오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정하신 바 때문에
계시록으로 치면 생명책에 기록된 바 됨 때문에
음녀는 반드시 나타나도록 자신의 역할 소임을 다 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듯이
두로 도 마찬가지
만군의 여호와께서 정하신 바 때문에
졸지에 창녀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어떤 목사의 동생분이 왜 예수님께서 자본주의를 허락하셨는가 라고
모든 사람이 이 자본주의의 유혹에 다 빠져 넘어감에 있어서 안타까워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더라 말이죠
맞습니다 그 어떤 누구도 이 자본주의의 유혹을 이길자 없습니다.
즉 다 빠져버리도록 하신 겁니다
모든 인간이 불뱀에게 물려 죽도록 심판 속에 다 집어넣은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불뱀에게 물려서
자본주의의 유혹에 빠져서
돈의 유혹에 빠져서
지옥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못 쳐다봐서 지옥가는 겁니다.
두로나 즉 이방인의 대표성으로써 오늘 두로가 나오는데 두로나
이스라엘 곧 유대인이나
주님 보시기에 둘 다 창녀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시선은 이런 묵시의 시선을 예수님의 시선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고유성을 주장합니다.
마치 예수님 앞에서 나는 모세의 제자이다 라고
수천년의 역사성을 지닌 모세라는 역사성을 전통성을 주장하는 반면에
실로암 소경은 그런 것 자체를 따지지도 않는데
너 예수 제자 이지? 겨우 3년짜리 역사의 제자?
정통성이 있기나 하나? 이단이라고 소문난 자인데
너 실로암소경 안됐다 쯧쯧쯧 하더라 말이죠
그런데 모세가 변화산에 갑자기 나타나서 주여 별세 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주여 라고 했다 말이죠
졸지에 족보가 꼬여버리는 겁니다.
역사 시간과 공간이 꼬여버리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묵시입니다.
묵시를 역사처럼 봐 버리면
꼬이는 일을 하지 않는 역사의 시선으로 묵시 조차도 그렇게 해석할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묵시이기 때문에 역사의 기능에 반대로 행동합니다.
족보를 뒤죽박죽 바꿔 버립니다.
계시록이 그렇잖아요
그래서 시간으로 해석하는 자들이 답이 안나와요
음녀도 비밀이요 짐승도 비밀이라고 했다 말이죠
수수께끼 비밀이란
비밀 자체가 답이 되는데
비밀을 풀어버리면 오히려 답이 안되는 것이 비밀 곧 수수께끼다 말이죠
원인이 있어야 답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역사인데
묵시는 그 반대로 원인 없이 답 밖에 없다 말이죠
오히려 원인이 생겨 버리면 답 곧 결과가 없어요
그러니 두로는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심 때문에
원인 없이 창녀가 되어서
만군의 여호와 되심을 만군의 주 되심을 외치는데
오히려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 되신 어린양 때문에
음녀가 되어서
자꾸 원인을 갖추고자 함으로써 음녀가 아니다고 하니 오히려 음녀 짖만 골라 하더라 라는 겁니다.
이 두로는 수로보니게 여인 곧 수로 지방의 베니게 사람으로 나오는
귀신 들린 딸의 어미로 나오는 유명한 사건의 공간입니다.
만군의 주 되신 어린양 예수님께서 차갑게
귀한 복음을 개 에게 던질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때 이 수로보니게 여인이 맞습니다 저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개같은 이방인도 만군의 주 여호와께서 던져주시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고
오늘 나오는 두로가 한 명의 왕 통치 기간인 70년동안 그 어떤 자도 섬기는 왕이 없음으로 인해
나그네가 되었듯이
창녀가 되어서 자력으로 이 고아됨 과부됨 나그네됨을 잊고자 망각케 하고자
돈으로 자신들의 수치 곧 고아 과부 나그네됨을 가리고자 왕창 돈 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헛되다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창녀가 되어서라도 몸을 팔아서라도
그 돈을 주님께 바칠 것이고
주의 백성을 배불리는데 사용될 것이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사 23:17, 새번역) 『칠십 년이 지나가면, 주님께서 두로를 돌보아 주셔서 옛날처럼 다시 해상무역을 하게 하실 것이다. 그 때에 두로는 다시 제 몸을 팔아서, 땅 위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의 돈을 끌어들일 것이다.』
(사 23:18, 새번역) 『그러나 두로가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소득은 주님의 몫이 될 것이다. 두로가 제 몫으로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못할 것이다. 주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두로가 벌어 놓은 것으로, 배불리 먹을 양식과 좋은 옷감을 살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여기서 또 의문이 듭니다.
이야 너무하네 그 코 묻은 돈을 빼앗나?
그리고 그 더러운 돈을 구지 꼭 받으셔야만 하는가?
자 그런데 위에서도 반복해서 언급했듯이
원인을 따지게 되면 이건 답이 없게 되요
왜냐하면 원인만 대따 많이 의문으로 남겨놓는 사건들 곧 묵시이기 때문이니까 말이죠
아니 불뱀에게 물려 죽게 해 놓고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쳐다보라니 말이 되냐 말이죠
원인을 백날 따져보세요 답이 나오나
끝 종말 결과를 땅겨 보자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니까
불뱀에게 물려 죽게된 원인이 사라졌어요
이건 더 더 더 말이 안되요
바로 이겁니다
말이 안되는 것에 더 더 더 말이 안되는 것을 땡겨버리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연찮게 지난 주 이번주였죠
말씀을 나누는 중에 언급하게 되었는데
예배 끝나고 난 뒤에 계속 여운이 남아서
더 놀라운 것을 주시던데 소름이 끼쳤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는 것을
마귀는 원인으로 계속 물고 늘어져요
원인만 따져요
그런데 예수님은 결과만 따져요
내가 너를 사랑했단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단다
모든 허물을 다 덮었단다
그리고 지지난주에 어머니께 이런 대화를 나누었지요
예수님을 세 번 부인케 만든 것은 누구냐 라는 겁니다.
1번 베드로
2번 마귀
3번 예수님
자 이게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말이죠
처음부터 원인은 아예 없어요
결과 밖에 없어요
생명책에 기록된 결과 만 나타날 뿐이다 말이죠
(계 13:8, 개역)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7:8, 개역)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자 그러니 생명책에 기록된 바 대로 기록된 결과 때문에
음녀는 음녀짖을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뿔이 처음부터 끝까지 박혀서 고정되어서 그 기능을 다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음녀의 등장도
짐승의 등장도
만군의 주께서 만군의 주 되심 때문에 나타나는 거지
그들의 독자적인 행보에서 나오는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결과 밖에 없다 말이죠
그러니 이 만군의 주 되심을 훼방하는 기능을 그들은 하는데 있어서
이 결과를 없애고자
원인을 따지는 겁니다.
그 원인을 따지는 행동들이 바로
음녀 곧 제사장 딸이
곧 유대인들이 거룩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다 말이죠
이게 음녀의 비밀이다 말이죠
거룩을 행하고 지키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옳다고 선으로 보이겠지만
이것이 비밀이다 말이죠
거룩을 행하고 말씀을 지키고 이게 선으로써 행하고 지키면
음녀에서 벗어나는게 아니라 그게 비밀로써 더더욱 안 풀리는 겁니다.
비밀 자체가 답인데 비밀을 풀다니 말이 되냐 말이죠
그러니 음녀는 더더욱 자신들의 거룩이 옳다고 더더욱 믿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반면에 누가 봐도 음녀 딱 봐도 음녀인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졸지에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치 않겠다 라는 결과 때문에
그 어떤 이유 없이
원인 없이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게 된 겁니다.
어떤 성화론자들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심으로써
만약 다시 범죄하게 되면 예수님의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도 취소가 된다는 식으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따지는
원인을 갖추자 라는 식으로 해석하는데
그게 바로 음녀의 거룩 해석으로써
예수님의 만군의 주 되심을 훼방하는 모습이다 말이죠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용서에
맏아들은 결과에 동의하는게 아니라
자꾸 원인을 따지더라 말이죠
그리고 자신은 원인을 갖추었다고 우기는 겁니다.
이게 사랑이라는 결과 때문에 원인을 갖춘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결과 때문이라면 더더욱 원인을 갖출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자꾸 사랑이라는 결과를 안 쳐다보고
원인을 갖추었다는 것만 따지니까
만군의 주 되심에
우주의 십자가의 사랑을 피 용서를 퍼트리는데 있어서
반발을 하고 훼방을 하는 음녀의 노릇을 하더라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안식의 주인을 더더욱 미워하는 줄도 모르고
거룩을 지키면 지킬수록 예수님의 거룩의 주 되심을 더더욱 반발하는 줄 모르는
비밀 곧 결과가 덮친줄 모르는 겁니다.
끝까지 원인만 따지더라 말이죠 원인만
그 원인은 말씀을 지켰잖아
안식일을 지켰잖아
잖아 잖아 했잖아
그런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결과는 예수님을 살해 라는 살인이라는 결과로만 나타나니까
이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버리더라 말이죠
그러니 음녀 아니다고 하니 음녀인 비밀
소경 아니다고 하니 소경인 비밀
짐승 아니다고 하니 짐승인줄 때려 죽어도 모르는 비밀 이라는
결과를 그들은 없애 버리니까
없앤다고 생명책에 기록된 바가 지워지냐 말이죠
손으로 태양을 가린다고 가려지냐 말이죠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 봐도 피할수 있냐 말이죠
결과 인데?????????
반대로 누가 봐도 음녀 누가 봐도 창녀인 두로
개같은 수로보니게 여인 귀신들린 딸의 어미
누가 봐도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소경
이런 창기 세리 강도가 글쎄 만군의 주 어린양이 어떤 분인가를 말하도록 되어 있는
기능이 덮쳐진
곧 죄인인
의사를 말하기 위한 환자로써
심판의 자리에서
환자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고아의 자리에서 기업무를자 아버지를 외치고
과부의 자리에서 헌남편 율법과 이혼하고 새남편이신 율법 외에 한 의 예수님을 말하도록 되어 있고
나그네의 자리에서 만군의 주 임금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창녀 세리 강도의 자리에서 십자가의 피 용서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결과
결과가 덮쳐진
네 맞습니다 저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먹지 않습니까 라고
개같은 나그네가 글쎄 주인을 외쳐요
정작 이스라엘 잃어버린 자를 찾는
잃어버린 자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은 이 주인 예수님이
이스라엘로부터 단 한번도 주인으로 주여 주여
만군의 주여 라는 소리를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이 개같은 이방인 두로 여자가 이 예수님을 주여 라고
당신만이 나의 심판주요 만군의 주 라고
자신을 개의 자리에서 부스러기를 주인으로부터 얻어먹는
긍휼이 덮쳐진 자라고
당신이 주인이라는 결과로 떠 버린 이상
나는 개의 자리이든
창녀의 자리이든
심판의 자리이든
죽음의 자리이든
주인이 떠 버린 이상 저는 개 일 뿐입니다 라고
외치더라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거룩이 역사 속에 침투 함으로써
역사가 찢어지는 현상으로써 나타나는 사건인 묵시요 환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