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사 10, 1-14)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사 10, 1-14)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사 10:1, 공동)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악법을 제정하는 자들아,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만드는 자들아!』
(사 10:1, 쉬운) 『악한 법을 만들어 내는 사람, 백성을 괴롭히는 법을 만들어 내는 사람에게 재앙이 닥친다.』
(사 10:1, 한글킹) 『불의한 법령을 반포하는 자들과 자기들이 제정한 억압을 기록하는 자들과』
(사 10:1, 현대인) 『악법을 만들어 내고 부정한 판결을 내리며』
(사 10:1, 현대어) 『[치부한 지도자들의 멸망] 주께서 말씀하신다. `백성을 탄압하기 위하여 흉악한 법률을 제정하는 자들과 그런 법에 따라 재판하여 빈민과 과부와 고아들이 살길을 찾지 못하게 만드는 불의한 재판관들아, 저주를 받아 죽어라! 과부와 고아들의 재산이 얼마나 된다고 법이라는 이름으로 강탈해 가다니!』
(롬 9:27, 새번역)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사 10:22; 23』
(사 10:1, 개역)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사 10:2, 개역)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사 10:3, 개역)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사 10:4, 개역) 『포로 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사 10:5, 개역)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사 10:6, 개역)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사 10:7, 개역)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
(사 10:8, 개역)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사 10:9, 개역)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사 10:10, 개역)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그 조각한 신상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보다 우승하였느니라』
(사 10:11, 개역) 『내가 사마리아와 그 신상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 하도다』
(사 10:12, 개역)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사 10:13, 개역)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를 옮겼고 그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 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사 10:14, 개역) 『나의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사 10:1, 새번역)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사 10:2, 새번역)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불쌍한 나의 백성에게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하였다.』
(사 10:3, 새번역) 『주님께서 징벌하시는 날에, 먼 곳으로부터 재앙을 끌어들이시는 날에, 너희는 어찌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청할 것이며, 너희의 재산을 어디에 감추어 두려느냐?』
(사 10:4, 새번역) 『너희는 포로들 밑에 깔려 밟혀 죽거나, 시체 더미 밑에 깔려 질식할 것이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
(사 10:5, 새번역) 『앗시리아에게 재앙이 닥쳐라! 그는 나의 진노의 몽둥이요, 그의 손에 있는 몽둥이는 바로 나의 분노다.』
(사 10:6, 새번역) 『내가 그를 경건하지 않은 민족에게 보내며, 그에게 명하여 나를 분노하게 한 백성을 치게 하며 그들을 닥치는 대로 노략하고 약탈하게 하며, 거리의 진흙같이 짓밟도록 하였다.』
(사 10:7, 새번역) 『앗시리아 왕은 그렇게 할 뜻이 없었고, 마음에 그럴 생각도 품지 않았다. 오직 그의 마음 속에는, '어떻게 하면 많은 민족들을 파괴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멸망하게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사 10:8, 새번역) 『그는 이런 말도 하였다. "나의 지휘관들은 어디다 내놓아도 다 왕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
(사 10:9, 새번역) 『갈로는 갈그미스처럼 망하지 않았느냐? 하맛도 아르밧처럼 망하지 않았느냐? 사마리아도 다마스쿠스처럼 망하지 않았느냐?』
(사 10:10, 새번역) 『내가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을 장악하였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가진 우상보다 더 많은 우상을 섬기는 왕국들을 장악하였다.』
(사 10:11, 새번역) 『내가 사마리아와 그 조각한 우상들을 손에 넣었거늘, 예루살렘과 그 우상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겠느냐?"』
(사 10:12, 새번역) 『그러므로 주님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하실 일을 다 이루시고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앗시리아 왕을 벌하겠다. 멋대로 거드름을 피우며,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그 교만을 벌하겠다."』
(사 10:13, 새번역) 『그는 말한다. "내가 민족들의 경계선을 옮겼고, 그들의 재물도 탈취하였으며, ㉠용맹스럽게 주민을 진압하였다.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것을 하였다. 참으로 나는 현명한 사람이다. / ㉠또는 '용맹스러운 자들을 진압하였다'』
(사 10:14, 새번역) 『내 손이 민족들의 재물을 새의 보금자리를 움키듯 움켰고, 온 땅을 버려진 알들을 모으듯 차지하였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소리를 내는 자가 없었다."』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개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6, 개역)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8,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마 7:29, 개역)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리아의 기도와 한나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높은자 낮추시고 낮은자를 높이시겠다는
이 의를 이 하나님의 맹세 곧 약속을 이미 이룬채로써 벌어진다는 겁니다.
앞의 글에서 이것을 숭고라고 했습니다.
거룩은 거룩인데 불편한 거룩
곧 폭력적이고 공포스러운 거룩이다고 말이죠
인간의 거룩개념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흠모할 모양을 갖추고
사람들에게 싫어버리지 않은바 되고
고운 모양에
다들 절대로 고개를 돌려 외면할리가 없는
그런 거룩을 갖추는데 이것을
오히려 오늘 본문에서는 불의한 법령이다고 합니다.
의로운 모양새만 갖추었지 함량미달의 짐승의 수 666이다는 거죠
그러니 의로 안보이는게 아닙니다.
의로 보여요 그런데 껍데기만 의로움이고 속 알맹이는 불의하다는 겁니다.
성경의 거룩은 곧 숭고인데
불편하기 짝이 없어요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마치 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 자신의 마음도 아름다워 지는듯한 힐링이 되는데
하필이면 그 아름다운 그림에 검은 얼룩자국이 생기면 모든 시선은 그리로 꼿히게 된다 말이죠
왜? 그림을 망치기 때문에 얼룩을 제거하고픈 마음에 온 신경이 다 가버리는 겁니다.
마치 하얀 치아의 활짝 웃는 미소에 빨간 꼬추가루 덩어리가 붙어있으면
한순간에 비웃음으로 변하듯이 피식 피식 거린다 말이죠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숭고한 거룩이다 말이죠 구체적 보편적 거룩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죽으면 죽으리라입니다.
아름다움 때문에 왕비가 된 에스더의 뛰어난 아름다운 미모가
단순히 거룩에만 단순히 아름다움에만 머물지 않고 곧 불의한 법령에만 머물지 않고
그 아름다움마저도 아무것도 아닌냥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오히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죽으면 죽으리라 로 나올때에
아름다움에 반해서 아내로 왕비로 삼은 것이
오히려 아름다움이라는 편안함 곧 우상성이
졸지에 편안함이 불편함으로 변하는
우상의 상대적인 약속 사건이 발생하는
졸지에 죽으면 죽으리라 로 나오게 되면
이 얼룩을 제거할려고 다들 미친 듯이 죽기 살기로 다 달려들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만이 그래서 죽기살기로 달려듯었다 말이죠 맹세까정 하면서 우상이 드디어 튀어나오는 겁니다.
자기민족의 복수와 구원을 위해서 말이죠
마치 가룟유다의 로마 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위해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듯이 자신들의 역사성을 담고서
죽기살기로 덤벼들수 밖에 없다 말이죠
그런데 한 낮 여자가 브레이크를 걸줄,
결국 예수님의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하나님의 맹세가 브레이크를 걸줄 몰랐다 말이죠.
사도바울을 죽일려고 맹세하는 40명이 사도바울을 죽이지 못하면 밥도 잠도 안먹고 안자겠다고 맹세하듯이
이 거짓맹세인 우상과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약속이 한 세트를 구성하는 겁니다.
이게 숭고다 말이죠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인 불현하기 짝이 없는 거룩 말이죠
놀랍게도 불의한재판관 질문하신 분 덕분에
오늘 또 우려먹는 재탕 삼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너무 놀랍거든요
이사야서를 예수님이 의외로 많이 인용하십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상황이거든요
방금 언급한 죽으면 죽으리라 도 아름다움으로 구원이 벌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불의한 법령이구요
정반대인 죽으면 죽으리라로 구원을 이루는
흠모할 모양이 없는 풍채도 없는 아름다움 모양이 없는
싫어버린바 됨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자기 맹세인 돌아오지 않는 다 이룬바 된 맹세이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구원이 된다 말이죠
누가 대신 매 맞지 않으면 나음을 입을수 없는 것이 구원이다는 겁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것을 바로 숭고 라고 하고 거룩 곧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입니다.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고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이것이 일곱이다 말이죠
놀랍게도 성화론자들의 입에서는 이런 거룩을 들어본적이 없어요
그러니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거룩처럼
바리새인은 오히려 거룩을 지키기를 함으로 인해서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고 있다는 것이 들통이 납니다.
마리아와 한나의 기도는 그런 의미에서 부르짖는 고아 과부 나그네의 부르짖음이 되는 거죠 기도가 말이죠
상대적으로써 차이로써 말이죠
그럼 여기 오늘 본문에서도 과부를 이사야가 언급했는데
누가 생각이 납니까?
네 맞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생각이 납니다.
즉 이 말은 정결한 재판관은 과부를 신원하지 않는 사회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는 거죠
이것을 우리가 그동안 못 봐서 그동안 너무 어렵게 여겼던 겁니다.그러다 보니
가만히 보니 선한사마리아 비유와 또 모든 예수님의 천국비유가 다 같은 의미였다는 거죠
불의한 재판관 비유와 딱 맞아 떨어져요 글쎄
즉 정결한 재판관은 과부를 신원하지 한다 안한다 왜?
마치 대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만난자를 그냥 지나쳐 가듯이
개같은 이방인인 사마리아인 곧 이스라엘의 철천지 원수죠
그 원수가 글쎄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고
하나님도 두려워 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그 원수 같은 불의한 재판관이 바로 과부를 신원하는 유일한 자이다는 겁니다.
왜? 다들 정결한 재판관이면 일수록 과부를 신원하기 원치 않으니까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서 경계를 쳐서 안 들어가기 때문에 말이죠
마치 똥 묻을까봐 대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하듯이
이것이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는 자 이다는 겁니다.
마치 맹세를 지킬려고 하는 이 헛맹세
결국 성경을 아예 떼어놓고 하는게 아니라
성경 자체를 엉터리로 해석해서 모든 사람들을 이 가짜믿음 속에 집어넣어서
불의한 법령, 엉터리 율법 해석, 헛맹세로 성경 지키도록 강요하는 짖을
그러니 산상수훈은 성화론자들이 좋아라 할 수 밖에 없는
율법해석을 엉터리로 했던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듯이
오늘날도 미끼를 확 물고 있더라 말이죠
산상수훈을 지키라고 엉터리 율법을 해석했던 자들이 또 산상수훈을 강요해요 글쎄
누가? 정결한 재판관이 하듯이
그 당시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인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과 그 아이돌들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한 치도 벗어날수가 없어요
얼마나 성경말씀이 딱딱 맞아 떨어집니까?
역사가 아닙니다 그 당시가 아니예요
오늘날도 똑같아요
그러니 인간의 맹세는 헛 되다 말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맹세로 도배를 합니다.
이것을 바로 불의한 법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미 다 이룬 하나님의 맹세를 쳐다보지 않고
마치 이루어야 할 것이 아직 남아있는냥 이미와 아직의 긴장관계라는 둥
그 남아있는 것을 지켜야 한다는 둥 남은 숙제가 있는냥 자신의 맹세를 이루고자 한다는 자체가
믿음을 안 쳐다보고 행함을 쫏는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하시는 겁니다.
정 그러면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해 보라 말이죠
죽은자를 살려 보라 말이죠
살려내기는커녕
오히려 두번째 아담 살려주는 영을 방해하고 있더라 말이죠
오히려 살려내시고자 일부러 죽은자, 날때 부터 소경인 실로암소경, 손마른자를 살려내실 때 마다
이 하나님의 맹세를 실현하시는 예수님을 훼방하고 방해하고 돌삐 던질려고 하고
심지어 죽이고자 혈맹하여 피로써 맹세하면서 죽일려고 달려들어서 성공시키고야 만다 말이죠
그렇게 십자가에 하나님의 저주에 매달아 죽여야
자신들은 맹세를 지킨 셈이 되고
예수님의 맹세는 거짓이 되니까 말이죠
이것이 십자가라는 예수님의 자작극
즉 자기가 매달아 죽인 예수님이 죽는게 아니라
시체가 되는게 아니라
그 시체에 깔려 죽는 우리가 되는
우리를 십자가에 매 달아 죽이는 기묘와 모사이다는 겁니다.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거룩이 숭고한 거룩이다 말이죠 구체적 보편적 거룩
사도바울도 그렇게 죽이고자 밥도 안먹겠다고 맹세하고 금식한다고
또 잠도 안자겠노라 깨어있겠다고 맹세를 하더라 말이죠
즉 이 정도로 유대사회가 이런 불의한 법령으로 다 장악이 되어있다는 상태이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요
성화론이 다 장악한 것만 봐도 그렇구요
천박하게 기복신앙처럼 축복 축복 이런 이단들은 그들도 비판하면서
천박하게 굴지 않거든요
매사에 모범생이다 말이죠
저들이 천박한 이단들처럼 밥도 안먹겠다고 잠도 안자겠다고 맹세하는게 아닙니다.
최대의 위기로 보고서 이단 예수를 퍼트리는그것도 가말리엘 문하 생 출신이 이단에 빠졌으니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곧 거룩 중의 거룩이 이단에게 빠졌으니
이거 밥안먹겠다 잠 안자겠다 맹세하는 것도 모자랄 판국으로
그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공포 폭력으로 다가왔기에 나타나는 상황이다는 겁니다. 증상인거죠
지옥 보다 강하니까 말이죠 누가? 나사렛 이단 예수가
이게 진짜 숭고한 거룩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신천지 때문에 한국교회가 비상났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야단 축에도 못 끼인다 말이죠
자신들의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신흥이단이니 뭐 나중엔 어차피 다 손잡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불법이 일어난 것으로 야단난게 아니라
정반대로 불법 밖에 없는 불의한 곳에서
졸지에 참 빛이 비추었으니
어두움을 사랑하고 불의를 더 사랑하는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우기는
(요 1:5, 개역)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9, 개역)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개역)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개역)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개역)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개역)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3:13, 개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개역)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개역)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개역)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개역)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개역)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개역)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람에게서 난 자들은 비상 중의 최대의 비상이 걸린 겁니다.
이단 예수를 막아라
오죽하면 나사렛 이단 예수냐 말이죠
불의한 나사렛 이냐 말이죠
불의한 재판관이냐 말이죠
그럼 자신들이 과부를 신원하던가? 신원하지 않으니까
나사렛 이단 예수가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하니까 비상이 걸린 겁니다.
안식일날 손마른자를 고치니까 비상이 걸려요 국가적인 비상 민방위 훈련때 처럼 북한 비행기가 넘어왔다고 싸이렌 울리듯이 말이죠.
그러니 저번에도 말했듯이 그냥 이단은 가짜고 이단 중의 이단이 못 되면
다 지옥 간다 말이죠
부정의 부정이 바로 숭고이다는 겁니다.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말이죠
바리새인이 비상 걸어야 진짜 복음이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불편한 얼룩이
숭고한 거룩이
침략했으니 말이죠
그러니 구원은 생명으로 구원받는 법이 없어요
모든 종교가 외치는 것이 바로 그런 구원이지요 생명으로 구원 이게 종교라는 짐승이다 말이죠 666
그래서 법 지키기에 매달리는 겁니다.
이것을 오히려 성경말씀은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고 있다고 하신다 말이죠
헛맹세 하는 우상집단으로 본다 말이죠
성경은 저들과의 차이로써
구원을 죽음으로 이룹니다.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팔짝 끼고 구경하고서 그래 그 희생 믿어주마 가 아니라
날 위해서 그렇게 희생해 주니 그래 믿어줄게 라는게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그런 사고방식을 우상으로 취급하면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얼룩으로
내가 저 얼룩을 어떻게 해서든 빼낼꺼야 제거할꺼야 깨끗하게 청소하고야 말겠다 라고
밥도 안먹겠다고 맹세하고 잠도 안자겠다고 맹세하는 그 헛맹세를 유발해서
그것을 들추어내면서 다가오는 거룩이
숭고한 거룩인 불편한 거룩이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불편한 복음이지요 불편한 십자가요 거리끼는 십자가 이다 말이죠
안 그러면 나의 속에 있는 죄악이 맞물리지 않는다 말이죠
불의한 법령을 지켜서 천국 갈려고 해요 글쎄
그러니 거룩은 그냥 거룩이 아니라 일곱 곧 완벽한 심판(진노,저주)과 완벽한 거룩을 동시에 갖춘
계시록에서는 이것을 일곱이라고 표현하듯이
이 불편한 일곱이
불의한 재판관이
구원을 이루는 겁니다.
그러니 과부의 자리에 놓여지지 않는 이상 무슨소리인줄 모르는 비밀이 되는 거죠
비유 입니다 비유
그냥 과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이 과부를 신원하지 않는 그 상황에서의 과부 말이죠
한나가 그런 취급을 받았다 말이죠
아니 이스라엘인데 왜 우상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는 아이 가졌고 너는 아이를 못 가졌으니 너는 저주다 라고 갈새를 할까?
이런 불의한 법령이 도대체 왜 이스라엘 속에서 나오는가?
이방민족이면 또 몰라
왜 이스라엘 속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불의한 법령이 이스라엘을 다 장악했기 때문이다 말이죠
이스라엘 선생이 바리새인이다는 것은
불의한 법령이 곧 우상이 곧 헛맹세가 다 유대인을 장악했다는 겁니다.
약속이 그들에게 없다는 거다 말이죠.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죽으면 죽으리라 로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변했다고
이 애굽화 된 이스라엘로부터 건져달라고
출애굽의 부르짖음처럼
출이스라엘을 브로큰애로우로 외치더라 말이죠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교회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구원자로부터 구원을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듯이 말이죠
이 불편한 기도가 바로 숭고한 거룩이 덮쳐진 자에게서
곧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희년이 덮쳐진
기쁜소식이 덮쳐진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의 부르짖음이 되는
한나의 기도 마리아의 기도가 되는 겁니다.
저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는 바리새인으로부터 건져내 달라고
오죽하면 아무도 그런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를 구하라 라고 하시겠냐 말이죠
힌트를 팍팍 아예 정답을 손에 쥐어줘요
아예 정답을 꼭 찍어서 답을 알려줘요
알려줘도 왜 못 먹냐 말이죠
바리새인이라는 소경에게 인도를 받는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것 따를려고 하냐 말이죠
정작 이 심각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못 보면
바리새인이 뭐가 심각하냐 라고
과연 누가 마리아처럼 저렇게 다급하게 부르짖겠냐 말이죠
오늘날도 성화론자들 때문에, 성화론자들처럼 다급하게 부르짖는자 있던가요?
오히려 정반대죠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는 바리새인들이 글쎄 신천지가 심각하다고 외쳐요
마치 사마리아인이 철천지 원수로써 심각한 자들이다고
거기에다가 사마리아인을 자꾸 구원해 주는 나사렛 이단 예수는
급이 달라서
맹세의 차원을 달리해야 할 정도로
급이 달라도 너무 달라
오죽하면 잠도 안자고 밥도 끊을 정도로 목숨 걸고 막아야 하는
붎편하기 짝이 없는 숭고한 거룩이다는 겁니다.
왜? 알고보니 자신들의 얼굴에 광채나는 이 사라지는 광채를 막고자 함이였지
진짜 율법을 파괴하는 자라고 율법을 너무 너무 사랑해서 방어에 나서는것이 아니였다는 겁니다.
조직신학처럼 마찬가지도 성경신학이라는 둥 뭐 구속사 신학이라는 둥
이것들이 모조리 교리화 된다는 차제가 바로 불의한 법령을 발호하는 것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모양만 그랬지 속은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을려고 말이죠
불의한 재판관을 해석하는 우리들의 자세들이 다 이런 선악적으로 보고 있기에
완악한 수건을 안 벗으니까 못해석 하듯이 말이죠
역사도 손놓지 않고 붙잡고 묵시도 손 놓지 않고 붙잡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는 이것을
오히려 신학이 부추기고 교리가 부추기는 불의한 법령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이 완악함이 글쎄 그들에게는 최고의 믿음이라고 심지어 닮고자 존경을 해요
그러나 이런 바리새인의 누룩을 삼가라 라고 하십니다.
(행 23:14, 개역)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행 23:21, 개역)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마치 대제사장에 예수님께서 내가 그로다 라고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라고 묻는 그 물음에 답하니까
대제사장이 옷을 찢고 마치 밥도 안먹듯이 잠도 안자고 깨어있다는 티를 팍팍 내듯이
안들은 귀 안 본 눈이 되겠다고 정결의식을 벌리겠데요 글쎄
그래서 자신의 신체를 찟듯이 옷을 찢으면서 회개를 해요 글쎄
금식을 해요 글쎄
맹세를 해요 글쎄
이것이 이사야 때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나 지금 현대의 교회 조직이나 다 똑같다는 겁니다.
(마 26:63, 개역)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마 26:6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 26:65, 개역)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마 26:66, 개역)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마 26:67, 개역)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마 26:68, 개역)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막 14:61, 개역)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막 14:6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막 14:63, 개역)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막 14:64, 개역)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막 14:65, 개역)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자 보세요 진짜 증거는 바로 이런 우리의 완악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불법을 행하는 모습을
이 하나님의 의로운 맹세가 낱낱이 밝혀 주고 있는
우리의 속임수를 밝혀 주고 있는 십자가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알게 되겠냐 말이죠
이 불편한 십자가의 숭고한 거룩 의로움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보라 세상 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겁니다.
우리는 이 어린양 앞에 우리의 죄악을 가져와서 맞물릴 수밖에 없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환자이어야 합니다.
요즘 환자복은 병원 이름이 새겨져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아무 병원의 환자복은 안된다 말이죠
오로지 십자가의 저주, 진노, 심판 이라는 병원에서만 나온 환자복만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의사로써 준 환자복이다는 겁니다.
다른 환자복은 가짜 병원이다 말이죠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는 헛맹세 우상숭배자들인 바리새인들은
반드시 예수님이 불의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는 증인을 찾듯이
예수님을 불법으로 몰고가는 이 불법인
이 우리의 맹세
우리의 옷 찢기의 달인의 모습
회개의 달인의 모습이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저 사마리아 철천지 원수와 같지 않음을
저 불의한 재판관 같지 않음을
(안 같다고 하면 뭐합니까?
아치피 과부를 신원하지 않고 방관하는데????
과부를 신원하지 않는 정결한 재판관이 되어본들
그 정결한 재판관 자체가 불의한 법령을 세우는 자인 우상숭배자인데???)
오히려 이것이 진짜 불법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방인에게서 찾아야 할 불법이 아니라 이스라엘 속에서 말이죠
오늘날 교회 속에서 말이죠
과부를 신원해 주지 않는 정결한 재판관이다면
결국 불의한 재판관이고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과부를 신원했다면
정결한 재판관인 불의한 것에 충성한 자이다는 겁니다. 부정의 부정,
팔을 어긋맞게 하는 십자가의 지혜이다 말이죠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죽으면(부정의) 죽으리라(부정)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불편한 구체적 보편적 거룩
곧 얼룩 곧 숭고 곧 일곱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이다는 겁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 말이죠 폭력 공포
사랑 깡패
이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기 싫으면
그럼 말씀을 제대로 한번 실천해 보라 말이죠
이 죽은 예수님을 어떻게 살려내시겠습니까?
이웃도 못살려내서 안되는 판국이고
심지어 자기 가족이였던 죽은 가족도 안되는 판국에
우리가 죽인
죽은 예수님을 무슨 수로 살려내는지 ....
자기가 죽인 이 예수님을 살려내 보라 말이죠???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개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그래 그래 고마캐라 불법을 행하지 않으면 되는것 아니가! 그럼 됐제?
불법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 될수 있겠냐 말이죠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못하면
가짜 열매 아니냐 말이죠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런데 나에게서 나오는 행함은 나올 때 마다 모조리 쪽쪽 불법 밖에 없는데??
오죽하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했겠냐 말이죠
이 사망의 몸
이 광야의 몸
이 사막의 몸
이 흑암의 백성된 몸
이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 몸이라고
나는 때려죽어도 자수를 안하는데
저 눈치 없는 저 사도바울은 글쎄 바로 바로 자수를 해 버렸다 말이죠
다들 함구하는데 무언의 약속을 깨뜨리는 배신을 해요 글쎄
배신이야 배신
사도바울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스카이 캐슬의 가장 최상위 그 1인자가
이 사망의 몸이 되겠다고 내려 앉고자 하겠냐 말이죠
아무도 이런 맹세는 안합니다.
그런데 졸지에 하나님의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성취가 되어버린 마침이 된 맹세 때문에
졸지에 사도바울은 그 다들 부러워 하는 상위 0.1%를 똥 중의 똥 배설물이라고 더럽다고 벗어버리더라 말이죠
베드로가 수제자로써 절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없도록
설사 그런다 해도 끝까지 따라 가서 예수님과 함께 죽겠는다고 한
그 고귀하기 짝이 없는 맹세가
사단아 썩 물러가라 불법을 행하는 자여 썩 내게서 떠나라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맹세를 생각지 않고
사람의 맹세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구나 라고
홀라당 발가벗겨지고, 쭐꾸덕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커녕
소돔과 고모라 가 벌써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말이죠
세 번 부인케 만들어서 수제자를 커녕
저 성전측량 예수님이 참성전되시는 그 거룩측량에서 가장 끄트머리로 까내려 버렸을때에
과연 자신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난 이게 맞어 딱 나에게 맞는 몸은 사망의 몸 맞구나 라고 인정하겠냐 말이죠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의 몸이 맞구나 할거 아니겠냐 말이죠
그래야 그 죄인의 몸을 지나가게 하는 새 것 새 일을 외치는 증인이 된다 말이죠
지나가는 것, 삭제당하는 것, 이전 것, 처음 것, 첫아담의 것
사라질 것이 없는데
기존의 것으로 계속 이어볼려고 시도할테니
그 의문의 반복을 마침이 없는 헛맹세를 주장하니
그야말로 불의한 법령을 대놓고
배설물을 대놓고 주장하는
그 정도로 우리는 어두운 눈이 아니고 뭐겠냐 말이죠
과부도 신원도 못하면서 구원받겠데요 글쎄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나누어 주지도 못하면서 구원 받겠데요 글쎄
그랬다가는 자기가 가난해 질텐데? 축복받은 자가 아닌 저주받은 가난한 자가 될텐데?
차라리 제가 그 과부요 아무도 신원해 주지 않는 그 과부요
아무도 자기 목숨을 내어주지 않는 전재산을 나누어 주지 않는 그 외면당하는 그 가난한 자일때에
그 자리에서 누가 신원자로 나서며 누가 구원자로 나서는지를 보라는 겁니다.
당연히 본인도 가난한 자의 위치에 있던 바리새인의 위치에 본인이 있어도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알면 뭐합니까?
마침이 되는 맹세가 없이
그저 헛맹세만 돌고 도는 물레방아 허구 인생이다 말이죠
누가 옵니까?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나사렛 이단 예수 불의한 재판관이 글쎄
신원하겠다고 변론하겠다고 나오시는 겁니다.
우리를 과부의 자리에 앉혀서
죄인의 자리 환자의 자리에 앉혀서 말이죠
그 변론자를 글쎄 대법관에서 기자회견해서 만나는게 아니라
범죄자만 가는 검찰소에서 변론자를 만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어딜 감히 우상을 헛맹세를 불의한 법령을 들고 오냐 말이져
좀전까지 대법관이였고 은퇴했다고 해서
대법원장으로 취급 안합니다.
그저 한 낱 범죄자일 뿐이다 말이죠
뭐 스카이캐슬 중의 스카이~~~ 캐~~~ 슬~~~~~~~~~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 말이죠
아예 사도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스카이 캐슬에서 완전정반대인
죄인 중의 괴수가 된 것을 기뻐하고 있으니
죄수 복을 입고서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십자가라는 숭고한 거룩을 무슨 수로 막겠냐 말이죠
아 그래서 불의한 재판관 비유가 누가복음에 있군요 누가복음 18장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복음이고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으니
누가복음은 결국 고아 과부 나그네에 해당되니까 말이죠
죽은자(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자)를 대상으로 했기에
반드시 불의한 재판관으로 오시는 예수님이요
반드시 개같은 이방인 철천지 원수인 사마리아인으로 오시는
곧 유일한 이웃은 예수님 뿐이다는 겁니다.
이런 새 일을 도대체 누가 막겠냐 말이죠
이미 다 이룬채로 벌어지는 하나님의 의로운 맹세인 십자가의 의요 지혜요 거룩인데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아 버렸는데
칼로 막겠습니까?
죽음으로 막을수 있다굽쇼! 죽음에서 길을 내어버렸는데??
환란? 핍박? 곤고, 가뭄 기근 한파 적신 헐벗고 굶주린 가난이? 위협이?
이미 벌써 하루 종일 내내 매일 매일 주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고 있는데?
권세자들이 백날 넘겨보세요
도리어 불 속에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고 있어요 누구랑???
장래도 못 막고 현재도 못 막고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자 없다 말이죠
이전 것은 지나가 버렸는데
인간의 맹세는 지나가버렸다 말이죠
결코 정죄함이 없어요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개역)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개역)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개역)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 새번역)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롬 8:38, 공동)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천사도 못 막고 마귀도 못 막는 판국에
현세의 것들이 뭘 막겠다고 나서겠냐 말이죠
하나님의 맹세인 약속은 이미 다 이룬채로 나타나는데
이 새 일을 보라 말이죠
세상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말이죠
안 쳐다보는 자는 이유 없이 무조건 불법을 행하는 자이고
이유 없이 자꾸 자신의 맹세에 기대를 거는 자인 불법자이고
하나님의 맹세 다 이룬 맹세를 안 쳐다보는
하나님의 뜻을 행치 못하는 자이다는 겁니다.
뭘 새삼스럽게 이미 다 이룬 것을
선지자 노릇하면서 귀신을 내어 쫏았다고 새삼스럽게 주장하냐 말이죠
이미 끝난 게임에 자기가 따로 승리한
자기가 이룬 승리 업적들을 내세운다는 자체가 불법을 행하는 것 아니냐 말이죠
과연 그것이 귀신을 제대로 쫏아낸 것이 맞을까요?
선지자 노릇 제대로 한 것 맞을까요?
오히려 그것을 행한다는 이유로
강도만난자를 그냥 지나쳐가버린 살인방조자 곧 살인자 아닙니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인을 돌로 칠려는 간음한자 아니냐 말이죠
맞잖아요 왜? 내가 간음한 자를 잡았는데
예수님은 도리어 그 여인을 정죄치 않으니까
예수님을 피해 도망쳐 버렸으니
불법을 행한 것이 들통났잖아요
자신의 맹세를 지키겠다는 것이 하나 하나 쪽쪽 불법으로 들통나니까 말이죠
뭐 한 율법사가 큰 계명 두 계명이 뭐냐고요?
뭐 부자청년이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구요?
그럼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나누어주라 말이죠
죽은자를 살려봐라 말이죠
거봐 거봐 못하잖아요 불법을 행하는 자여 나에게서 썩 떠나거라
왜 죽은자를 방치하냐 말이죠
율법을 어릴적부터 지키기는커녕
수천년동안 하나님을 믿었기는커녕
도리어 살인방조자로 들통나니까
냅따 무신론자로 변하잖아요 1 초도 안 걸려요
수천년 동안 믿은게 뭔데 그럼?
1천 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가 되어서 뭐하게요?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의 제자가 되어서 뭐합니까? 우상숭배자인데
모세 뒤에 숨어본들 우상숭배자 곧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는자 임이 안 들통날까봐요?
그래놓고 실로암 소경의 죄가 누구 죄냐 라고 신학놀이를 해요 글쎄
종교놀이를 해요 발표논문이라??? 박사 딸려면 말이죠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1계명부터 첫단추부터 이미 어긋났는데
뭐 돌삐 우상을 안 섬겼다고요? 동물의 형상을 안 숭배했다굽쇼?
그럼 왜 자기자신의 탐욕은 왜 섬기냐 말이죠
구원을 왜 탐하냐 말이죠
자기구원을 탐하는 맹세로 똘똘똘 뭉쳐서 왜 강도의 소굴 사회, 강도의 국가, 강도의 민족으로
왜 만드냐 말이죠
안 만들 자신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해 보라 말이죠
과연 이 사망의 몸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라는 이 사망과 곤고함에서 지금이라도 벗어나보라 말이죠
빠져나올 재간이 인간에게 과연 있는지 말이죠
우리는 다니는 교회마다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데 도사들이다 말이죠
이미 내 몸 속에 장착이 되어 있어요 그런 기술에 달인들입니다.
본능적으로 말이죠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냅따 버린 그 버린돌이 아닌 이상은
방법이 없다 말이죠
우상문제 해결 할 길은 한 아기 외에는 없어요
그런데 때려죽어도 임마누엘을 구하기 싫은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말이죠
이 우상문제를 주님께서 앗수르 라는 몽둥이를 가지고서 우상을 깨뜨립니다.
왜? 이스라엘에게서는 방법 없어요
우리 자신에게서는 방법이 없어요
우상을 그럼 제거해 보라 말이죠
제거하면 할수록 더더욱 우상이 세워져요
이 앗수르를 보세요
몽둥이로써 우상을 제거하는데 주님이 들어 사용하셨지만
정작 이 앗수르가 또 교만하잖아요
꼭 우리 모습 아닙니까
남유다 아하스 왕의 모습 아니냐 말이죠
바리새인 모습 아니냐 말이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내게서 떠나가라
선지자 노릇했다고
귀신을 쫏아냈다고
많은 권능을 행사했다고 우기는 우상숭배자이다 말이죠 앗수르랑 똑같아요
아하스 왕과 똑같아요
그래놓고서 때려 죽어도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데요 글쎄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데요 글쎄
그것이 더더욱 시험하고 있으니
당췌 주님의 약속성취를 아예 볼 생각 자체가 우리에게는 없을 정도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 철저하게 갇혀 있다는 겁니다.
이게 누구 고백입니까?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사도바울을 고백 아니냐 말이죠
이런 스카이 캐슬 중의 스카이 캐슬을 죄인 중의 괴수로 안 만들면
임마누엘을 구할 턱이 없는 아하스 왕과 다를바가 없다 말이죠
그런데 다윗을 봐서 봐주는 겁니다.
아브라함 조카 롯을 아브라함을 봐서 롯을 건지십니다.
롯이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을 봐서 아브라함을 건져주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가 아니라
이삭이 아니였다면 아브라함은 벌써 소돔과 고모라였다 말이죠
십자가에 달린 이 예수님을 봐서 건져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이것을 남은자 라고
불에 다 태워 모조리 다 죽이고 다시 살려낸 것이 남은자 인데
자꾸 남은자 운동을 하겠데요 글쎄
또 불법을 행해요 글쎄
다 죽여서 다시 살려내지 않으면 롯처럼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은데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
남겨둔 한 씨 때문에 롯을 건져줬는데
이 주님의 맹세
십자가에 다 이루심을 안 쳐다보고
남은자 운동을 펼치겠데?
가룟유다처럼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겠데?
하지 마세요 자살하게 됩니다
아예 하지 말라 말이죠 맹세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럴수록 죄인 중의 괴수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죄인이 되는)
아니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스카이 캐슬 중의 스카이 캐슬이 되겠냐 말이죠
더더욱 살인 방조죄인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맹세가 아닌
사람의 맹세에 빠질텐데?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다고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는 것이
더더욱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인데?
왜 자기 기준의 법을 마음대로 들고 오냐 말이죠
엄연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법이 있는데
완성된 사랑의 법이 있는데!!!
뭐 아무리 대법원장 해도 그게 자기 법입니까 국가의 법입니까?
사적인 영역이 있을수 있냐 말이죠
그러니 처음부터 공무원이 아니였다 말이죠 양승태든 닭그네든 말이죠
법으로 사적인 영역을 추구했던 것이였다고 그 패거리들이 다 그랬다고
들통나 버린다 말이죠
세상 법이 이런 선악에 의해서 넘어설수 없는 판국에
오죽 은혜의 법 앞에서 뭐 자신은 깨끗하다고 내세울수가 있냐 말이죠
차라리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로 나오라 말이죠
불법에서 빠져 나올수가 없는 갇힌 자임을 인정하는
내 몸에서는 불법 밖에 안 나오는 자인 것을 인정하면
그 차이로써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맹세를 이루시는 지를 볼꺼 아니냐 말이죠
다윗이 그래서 주께서 내 주께를 봤다 말이죠
나 여호와의 맹세를 내가(여호와가) 지키는
(사 45:23, 개역)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마 22:44, 개역)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막 12:36, 개역)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눅 20:42, 개역)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시 110: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시 110:2, 개역)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시 110:3, 개역)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4, 개역)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 110:5, 개역)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시 110:6, 개역) 『열방 중에 판단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
(시 110:7, 개역)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인하여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시 110:1, 새번역)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 ㉠'여호와'를 가리킴 ㉡히, '아도니(내 주님)'』
(시 110:2, 새번역) 『㉢주님께서 ㉣임금님의 권능의 지팡이를 시온에서 하사해 주시니, ㉣임금님께서는 저 원수들을 통치하십시오. / ㉢'여호와'를 가리킴 ㉣글자대로는 1절의 '내 주님(아도니)'을 가리키는 2인칭 단수 대명사 '당신'』
(시 110:3, 새번역) 『㉥임금님께서 ㉦거룩한 산에서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시는 날에, ㉥임금님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고, ㉧아침 동이 틀 때에 ㉨새벽 이슬이 맺히듯이, 젊은이들이 임금님께로 모여들 것입니다. / ㉥글자대로는 1절의 '내 주님(아도니)'을 가리키는 2인칭 단수 대명사 '당신' ㉦또는 '거룩한 광채로' ㉧히, '아침 해' ㉨히, '당신의 젊음의 이슬이 당신께로……'』
(시 110:4, 새번역) 『㉪주님께서 맹세하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셨으니, 그 뜻을 바꾸지 않으실 것입니다. / ㉪'여호와'를 가리킴』
(시 110:5, 새번역) 『㉫주님께서 ㉬임금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그분께서 노하시는 심판의 날에, 그분께서 왕들을 다 쳐서 흩으실 것입니다. / ㉫히, '아도나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대신 부르는 칭호 ㉬글자대로는 1절의 '내 주님(아도니)'을 가리키는 2인칭 단수 대명사 '당신'』
(시 110:6, 새번역) 『그분께서 뭇 나라를 심판하실 때에, 그 통치자들을 치셔서, 그 주검을 이 땅 이곳 저곳에 가득하게 하실 것입니다.』
(시 110:7, 새번역) 『㉭임금님께서는 길가에 있는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높이 드실 것입니다. / ㉭히, '그는'』
(히 1:13, 새번역)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 가운데서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시 110:1(칠십인역)』
(히 5:6, 새번역) 『또 다른 곳에서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임명받은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시 110:4』
(히 7:17, 새번역) 『그를 두고서 말하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서, 영원히 제사장이다" 한 증언이 있습니다. / ㉤시 110:4』
(히 7:21, 새번역)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맹세하셨으니, 주님은 마음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 하셨습니다. / ㉥시 110:4』
(히 10:12, 새번역)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그, '이분께서는' ㉤또는 '오직 한 번 제사를 드리신 뒤에 영원히' ㉥시 110:1』
(히 10:13, 새번역) 『그리고서 그는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발 아래에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 ㉦시 110:1』
자기 숙제 하기 바쁜데 누가 예수님의 숙제를 보겠냐 말이죠
주께서 주께 이루시는 약속 곧 여호와 자신의 맹세를 보겠냐 말이죠
그 숙제를 실패 무조건 실패로 만들어 놓아야 손놓고서도
주님의 숙제를
하나님이 맹세를 스스로 이루시는 것을 볼 것 아니냐 말이죠
아뿔사
이 십자가가 옳았구나
며느리 다말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말이죠
숙제가 마침이 있어요
특히 수학 문제 풀 때 그렇잖아요
답이 안 나오면
나 수학 문제 풀고 있다가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풀고 있으니 나 옳았다가가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답을 내어야지
풀고 있는 중은 아무 의미가 없다 말이죠
풀고 있는 중이라고 의인 되는 것은 불의한 법령을 세우는 짖 아니냐 말이죠
나 맹세를 율법을 지키고 있다가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답도 없이 빙빙빙 챗바퀴 돌 듯이 계속 의문의 반복만 하고 있는데
다시는 돌아 오지 않도록 답을 내어야 하는데
다시 부메랑 처럼 되돌아 와요 글쎄
어차피 우리들 끼리 답은 없으니까 문제 풀고 있는 것만으로도 답인척 하자 라고
인간들 끼리의 속임수로 통용되는 그 짐승의 세계에서
답을 아예 풀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공짜로 답을 베드로에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불의한 청지기에게 공짜로 주시는 저 예수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저 사도바울 나사렛 이단 예수를 증거하는 이 사도바울을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더라도 반드시 죽이지 않으면
자기들이 답을 못 내고
수학 문제 풀기만 하고 있고 답을 못내고 있는 거짓이 들통날꺼 아니냐 말이죠
율법을 완성하지도 못하면서
남을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율법 지키기 이웃사랑실천하기 (율법사에게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누구냐)
그것이 무슨 놈의 소용이 있겠냐 말이죠
답을 가져오라 말이죠 답을
이제 이 답에서 끊을자 없다 라고
답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정답을 받은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말이죠
왜? 그 정답이 바로 정죄함과 정반대인 사랑이거든요
그런데 답도 못 내면서 율법을 지키고
맹세를 지킨다고 자기들은 수학 풀고 있잖아
너희들 개같은 이방인 우상숭배자들은 수학 문제 풀고 있지도 않고 있잖아 라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오로지 정죄 밖에 없어요
오늘날 성화론자들이 그렇잖아요 온갖 조건을 자기도 못 지키면서
잔뜩 퍼부어서 무거운 짐을 지키라고 못 지키면 정죄 밖에 없는
이것이 인간들이 맹세로 대동단결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를 막고자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없애버리고 죽이기 전 까지는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와 똑같은
유대인 곧 사단의 회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에게서는 답이 없어요
손 떼세요
주님의 숙제를 어떻게 이루셨는지를
나의 죄악과 맞물려서
나의 우상숭배와
나의 헛맹세외
나의 가짜 믿음과 반드시 맞물려 가면서
이런 죄도 용서했던
넉넉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새록 새록 느끼게 하시고자
지금 이스라엘을 모조리 다 바벨론 입 속으로 집어넣어서
다 죽여서
그 속에서 다시 살려낸 자를
남겨둔 한 씨로 인해 살려내서
이방의 세계에까지
우주 끝까지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혀로 주를 찬미케 만드시는
유대인들은 때려 죽어도 못 믿는
우리 유대인 에게서도 안 되는 그 찬미를
어떻게 열밤에게 까지 심지어 우주에게 까지 펼치겠냐 라고
오히려 유대인 방해자를 세우시면서 까지
엘리야도 방해꾼 노릇했고
요나 선지자도
지금 이사야 이 부분 남유다 아하스 왕도 그렇구
수제자 베드로도 그렇고
사도바울도 방해꾼으로써 세우고
시아버지 유다로 세워서 라도
너끈하게 넉넉히 이기시는 이 십자가의 사랑에 맞물리도록
원수로 삼아서
이 원수에게서 마저도
죄인 중의 괴수에게서 마저도
이 십자가가 옳았다 라고 밝히 보여주심으로써
인간의 속임수와 꾀들이 낱낱이 밝혀 주시는
이 십자가를 도리어 원수된 우리가 찬양케 만드시는
이 주님의 맹세를 스스로 이루심 앞에
그야말로 무릎 꿇는 것이 너무너무 기쁘고
벙어리 보다 못했던 찬양할수 없었던 입을 열어주셔서
내 입술의 부정함을 제거하심으로써
주를 드디어 찬미케 만드시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시잖습니까 라고
뻔뻔스럽기 짝이 없이
방금 3초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 놓고서도
주의 사랑에서 끊을자 없다 라고 외치는
구체적 보편적 찬양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이 놀라운 새 일에
고난이 아니였다면
진노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곤비한 손이요 왜? 우상이라는 헛 것에 미완료에 부메랑처럼 다시 되돌아 오는 무한반복하고 있으니까 마침없이
우리는 앉은뱅이로써 무릎이 펴지지 않는 왜? 헛맹세에 빠져 부자청년처럼 등돌리고 돌아서는
누가 과연 앉은뱅이냐 말이죠
(히 12:11, 개역)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12, 개역)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그런자를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듯이
피곤은커녕 독수리 날개로 아예 날라 올라 날개짖하게 만들고
뛰어가도 고단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새 일을
무화과 나무 잎이 말라도 즐겁고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어고 즐겁고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노래하는
이 새 일을
내가 해결 할수 없는 이 우상 문제
이 죄악 문제를 해결하시겠다고
남겨둔 한 아기 라는 한 씨로 오시겠다는 겁니다.
이미 벌써 벌어진 다 이루진 바 대로 말이죠
이 새 일
이 한 아기의 죽음이
이 실패가 우리를 새롭게 하는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가 째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는
독수리 날개를 펴도록 하는 새 힘임을 주의 맹세를 다 이루신 이 십자가를
앙망 하시길 바랍니다.
(사 43:18, 개역)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9, 개역)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20, 개역)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0:27, 개역)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사 40:28, 개역)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 40:29, 개역)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 40:30, 개역)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사 40:31, 개역)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