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17

심판의 기준이자 구원의 기준, 장자 VS 아들 (사 54, 1-17)

김 대식 2019. 3. 28. 16:10

심판의 기준이자 구원의 기준, 장자 VS 아들 (사 54, 1-17)

(사 54:1, 개역)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2, 개역)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사 54:3, 개역)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사 54:4, 개역)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니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사 54:5, 개역)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사 54:6, 개역)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 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사 54:7, 개역)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사 54:8, 개역)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9, 개역)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사 54:10, 개역)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11, 개역)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사 54:12, 개역)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사 54:13, 개역)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사 54:14, 개역)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사 54:15, 개역) 『그들이 모일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사 54:16, 개역)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사 54:17, 개역)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 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1, 새번역)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한 너는 노래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너는 환성을 올리며 소리를 높여라. 아이를 못 낳아 버림받은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는 여인보다 더 많은 자녀를 볼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 54:2, 새번역) 『너의 장막 터를 넓혀라. 장막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펴라. 너의 장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사 54:3, 새번역)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너의 자손이 이방 나라들을 차지할 것이며, 황폐한 성읍들마다 주민들이 가득할 것이다.』

(사 54:4, 새번역)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이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당황하지 말아라! 네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수치를 잊으며, 과부 시절의 치욕을 네가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사 54:5, 새번역)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사 54:6, 새번역) 『버림을 받아서 마음이 아픈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젊은 나이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받은 너를, 주님께서 부르신다. 너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사 54:7, 새번역)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불러들이겠다.』

(사 54:8, 새번역)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

(사 54:9, 새번역) 『노아 때에,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내가 약속하였다. 이제, 나는 너에게 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너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

(사 54:10, 새번역) 『비록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은총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지 않겠다." 너를 가엾게 여기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사 54:11, 새번역) 『너, 고난을 당하고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를 받지 못한 예루살렘아, 이제 내가 홍옥으로 벽을 쌓고, 청옥으로 성벽 기초를 놓겠다.』

(사 54:12, 새번역) 『홍보석으로 흉벽을 만들고, 석류석으로 성문을 만들고, 보석으로 성벽 둘레를 꾸미겠다.』

(사 54:13, 새번역) 『나 주가 너의 모든 아이를 제자로 삼아 가르치겠고, 너의 아이들은 번영과 평화를 누릴 것이다.』

(사 54:14, 새번역) 『네가 공의의 터 위에 굳게 설 것이며, 억압이 너에게서 멀어질 것이니 너에게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공포 또한 사라져, 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사 54:15, 새번역) 『㉠너를 공격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허락한 것이 아니다. ㉡너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너에게 패할 것이다. / ㉠또는 '그들이 분쟁을 일으키겠지만' 또는 '그들이 모이겠지만' ㉡또는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사 54:16, 새번역) 『"나는 대장장이를 창조하였다. 그는 숯불을 피워서 자기가 쓸 연장을 만든다. 군인도 내가 창조하였다. 그는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다."』

(사 54:17, 새번역) 『그러나 어떤 무기도 너를 상하게 하지 못하고, 너에게 맞서서 송사하려고 일어나 혀를 놀리는 자를 네가 모두 논박할 것이다. "나의 종들을 내가 이렇게 막아 주고, 그들이 승리를 차지하도록 하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요 6:45, 새번역) 『예언서에 기록하기를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은 다 내게로 온다. / ㉪사 54:13』

(갈 4:27, 새번역)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사 54:1』

 

 

지난주에 심판의 기준이 바로 고난 받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모든 인간의 믿음은 거짓으로 드러납니다.

 

이 심판의 기준을 못 보고, 즉 눈이 어두 었다는 거죠

그리고 그 심판의 기준을 눈이 어두워서 못 봤기 때문에

몸이 성하지 못하기에

몸이 밝아지는 구원의 기준도 역시

다른 것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했다 말이죠

 

즉 우상입니다.

 

오늘 본문과 지난주의 고난의 종 53장을 통해서

출애굽의 구원 사건

곧 애굽에 대한 심판이자 그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의 사건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결국 10가지 재앙은 인간의 손으로 세운 우상으로 10가지 재앙을 퍼붓는 데 있어서

왜 우상으로 심판할까요?

 

예를 들어

개구리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이
왜 하필이면 개구리 재앙을 퍼부어서 심판하실까요?

 

즉 어두운 눈을 뜨라는 것일까요? 절대로 못 뜨라 라는 것일까요?

못 뜨라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도록

듣고 깨달아 고침이 될까 봐 예수님은 두려워 떤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만약 뜨게 되면

이유가 있게 됩니다. 이유

원인이 있게 돼요

 

그리고 그 이유를 쫓아서 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갑니다.
유대인 문둥병자 9명이 말이죠 그 이유와 원인을 찾고 거기에 올인하고자 말이죠

 

마찬가지로 그럼 인간은 개구리 우상을 앞으로 다시는 안 섬기면

개구리 재앙은 다시는 없는 피할 수가 있게 된다 말이죠

이유가 있기에

그 이유를 통해서 조건을 갖추면 되니까 말이죠

 

아 그런데 이유가 없어요

즉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을 뭐라고 하냐 하면

 

인간의 꾀 라고 합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느냐 라고

이 꾀란

 

인간이 절대로 꾀인 줄 모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 꾀 가

인간을 구원해 줄 철저한 구원의 조건으로 작용해야

구원의 원인, 구원이 될 이유로 자리 잡아야

그들의 눈이 어두운 소경 됨에서 스스로 고칠 길이 없도록 하신 거다 말이죠

 

소경이 소경의 길을 인도할 정도로 몰라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자 그럼 모든 우상 특히 출애굽 때 나온 10가지의 재앙을 통한 10가지의 우상은

곧 최종적인 무엇을 보호하고 방어하고 구원하려고 동원이 된 겁니까?

 

네 맞습니다. 오늘 이야기 하고픈게 바로 이겁니다.

 

바로 장자입니다. 인간의 아들입니다 아들

 

이것 때문에 이것을 방어하고자 인간들은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그 당시에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자손이 끊어졌다 라는 것은 저주 중에 최고의 저주입니다.

 

(딤전 2:11, 개역)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딤전 2:12, 개역)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딤전 2:13, 개역)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딤전 2:14, 개역)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 2:15, 개역)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1, 새번역) 『㉡여자는 조용히, 언제나 순종하는 가운데 배워야 합니다. / ㉡또는 '아내'』

(딤전 2:12, 새번역)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 ㉢또는 '아내' ㉣또는 '자기 남편을'』

(딤전 2:13, 새번역) 『사실,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딤전 2:14, 새번역) 『아담이 속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

(딤전 2:15, 새번역)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음으로 여자는 구원을 얻는다 말이죠

그럼 그 아이가 과연 육체 덩어리일까요? 아니면 영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열매일까요?

 

한국만 해도 여자가 딸이 아니라 아들을 못 낳으면

제 구실을 못했다고 쫓겨났지 않습니까?

 

모든 우상 나라가 모든 인간 나라의 공통된 법입니다.

이 법을 못 지키면 여자는 쫓겨나는 거죠

아니 국가를 지키려면 군인을 낳아야 하는데

군사가 될 자를 못 낳으면

이 소는 누가

이 국가는 누가 지키냐 말이죠

 

그래서 가화만하성 수신제가 치국평천하가 되거든요

 

그러니 왕도 아들 못 낳으면 쫓겨나고

왕비도 아들 못 낳으면 쫓겨나고

아들 놓으면 그 국가는 유지하고

방어가 되는

구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딱 하나입니다.

여자든 남자든

아들 낳기입니다.

아들을 낳아야 정결한 거룩이 유지가 되고
딸을 놓으면 부정한 전리품이 되어 마녀사냥이나 당하게 된다 말이죠

 

즉 모든 종교의 기도는 딱 하나요 예배도 딱 하나입니다.

아들 낳아서 기업을 잇고 가문을 잇고

국가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이 구원을 달성하는 겁니다.

성화론도 이런 카스트 신분제도의 변형이듯이

축복의 변형이다 말이죠 가인의 성인 에녹 성 쌓기의 변형 바벨탑입니다.

국가란 에덴동산의 잔상이니까

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에 대한 유사 에덴동산 유사 천국이거든요

 

갑자기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그 가사처럼

 

이 애굽 나라를 사랑하리라 ~~~~~~

이 유사 에덴동산을 사랑하리라 ~~~~~

유사 천국을 사랑하리라 ~~~~

하늘에 조각구름 떠 있고 ㅋㅋㅋ

바로 여기에 대한 주님의 약속은

바로 유월절 어린양이 기준이 됩니다.

 

저 우상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말이죠

마귀의 세 가지 문제 말이죠

오로지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모든 인간 심지어 이스라엘조차도 아들 아들 외치는 판국에
마치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왕을 세울 때에

사울 왕을 세울 때의 모습처럼

저마다의 모든 지혜를 짜서 천재들처럼 왕을 세울 때의 아들 아들 외칠때에
다들 마귀를 대통령으로 왕으로 구하고 있는 판국에

유월절 어린양을 구하라?

 

이것을 신약식으로 표현하자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즉 아무도 안 구하는 것을 구하라고 합니다.

불가능한 소리이다 말이죠

 

이스라엘은 참 특이한 민족입니다.

 

다른 민족들은 다 아들을 구하는데

장자를 구하는데

사울 왕을 구하는데

살고자 자기 목숨을 구하는데


이스라엘은 도리어 유월절 어린양을 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 이스라엘만은 유월절 어린양을 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만약 안 구하면 구하도록 반드시 만들어 버립니다.

베드로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 말이죠

즉 그 믿음이 뭡니까? 유월절 어린양을 쳐다보는 믿음

유월절 어린양을 구하는 기도를 주님이 대신하심으로써 까지

베드로에게 뒤집어 씌우시는 겁니다.


베드로는 정작 구한 적도 없는 그 어린양을 구하는데

오히려 베드로는 금방 의문으로 바닥칠 자기 믿음 자기 맹세 헛된 맹세를 구하고 있으니

그 성냥불 아무리 불 붙여 본들 10초 만에 꺼지는 불이다 말이죠

그러나 주님은 떨기나무의 불꽃으로 나타나신다 말이죠

아무리 베드로가 꺼지지 않는 두꺼운 장작나무가 되려고 해도

주님을 물 부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기로 작정이 되어버렸으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원인과 이유 갖추기가 아니라

주님께서 베드로를 사랑하는 결과로 무조건적으로 용서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유가 있어서?

의미가 있어서?

원인이 있어서?

 

아닙니다.

 

구원 잔치의 기준은 바로 이사야 53장인 고난의 종인 화목 제물입니다.

 

이유가 없어요 의미도 없어요 원인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다 이루셔서 미래완료로

원인 없는 결과만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유 없이 용서하셨다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는 이유를 갖추면 안 됩니다.

7에 70번 용서하신 이유 없는 결과로써만의 용서인 겁니다.

 

아무리 세 번 부인해도

즉 이유 조건 원인 의미를 갖추는데 실패했어도 말이죠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사랑인

이유 없는 사랑

이유 없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인간 쪽에서 우싸 우싸 힘써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바로 1절에 나옵니다.

해산치 못한 자여

임신치 못한 여자여

 

(사 54:1, 공동) 『환성을 올려라, 아기를 낳아보지 못한 여인들아! 기뻐 목청껏 소리쳐라, 산고를 겪어본 적이 없는 여자야! 너 소박맞은 여인의 아들이 유부녀의 아들보다 더 많구나. 야훼의 말씀이시다.』

(사 54:1, 쉬운)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같은 예루살렘아, 노래하여라. 노래를 부르고 큰 소리로 기뻐하여라. 네가 한 번도 아기를 낳는 아픔을 겪지 못했으나, 남편을 둔 여자보다 더 많은 자녀를 가질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사 54:1, 킹흠정) 『오 수태하지 못하는 자여, 노래할지어다. 아이를 배지 못해 산고를 치르지 못한 자여, 너는 소리 내어 노래하고 크게 외칠지어다. 황폐한 자의 아이가 결혼한 아내의 아이보다 더 많으니라. 주가 말하노라.』

(사 54:1, 현대어)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예루살렘아, 너는 임신을 하지 못하여 자식을 낳아 본 적이 없는 여인과 비슷하였다. 그러나 너는 이제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러라! `네가 버림받은 여인의 신세와 비슷하지만, 오히려 남편이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자식을 둘 것이다.' 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인간의 나라

인간의 사회

인간의 의쌓기 법 지키기 세계에서

곧 우상의 나라에서는 최고의 저주인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도리어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 세계에서는

노래할지어다 찬양할지어다 라고

최고의 축복이라고 합니다.

 

아니 죽은 자인데?

죽은 태인데?

 

죽은 태 되고 싶어서 죽은 태가 되는 게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때문에 죽은 태가 된 거다 라는 겁니다.

 

즉 육과 곧 우상인 혈통의 방식의 반대로써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않는 그 반대인

 

남편이 있는 여자가 낳은 자식이 많은 인간의 축복을

도리어 남편 없이 여자가 낳은 자식이 더 많다 라고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특이한 민족

 

남자 없이 태어난 자들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두 언약

계집종 하갈과 자유하는 하늘의 여자의 차이이다 말이죠

 

그러니 전쟁할 때도

남자 있는 여자가 낳은 자식의 군대인 그 대표성인 애굽과

남자 없이 여자가 낳은 자식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전쟁 또한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저들은 오히려 무기를 많이 끌어 모으면 모을수록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을

 

도리어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면 지도록 되어 있고

도리어 이스라엘은 있던 힘 마저 잘라서

고추를 자르지 않으면 전쟁에 지도록 되어 있는

할례 전쟁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할례를 이 사랑의 전쟁을 법으로 변형시킵니다.

사랑을 법으로 행함으로 말이죠

그래서 사랑으로 전쟁하는 게 아니라

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것을 법으로 울리는 꽹과리 전쟁으로 변형을 시키는데

손 할례를 미리 지키는 식이다 말이죠

이거 뭐 계집종 하갈의 땅의 여자가 전쟁을 하는 방식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자유하는 여자가 아니면서 자유하는 척할 뿐이다 말이죠

 

오로지 사랑만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전쟁만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손 할례를 지키면 지킬수록 저 더러운 세리와 같지 않다고
긍휼을 바라는 세리 보다 더 완악한 울리는 꽹과리를 많이 모았다고

또 장자 전쟁을 펼친다 말이죠

자식 놓으면 여자기 갑자기 드세지는 겁니다.

아들은 정작 우리의 죄악을 대신해서 화목 제물을 보여주는데 말이죠

그 꺾으신 뼈로 기뻐하는 겁니다.

 

나 이렇게 용서받았노라 라는 회개 전쟁을 말이지요

 

아니 저쪽은 칼 들고 목을 치려고 하는데

도리어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화목 제물을 보고서 우는 겁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보고 운다 말이죠

 

이 그의 나라의 긍휼과 그의 의의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전쟁의 상황에서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이죠

 

저쪽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안 그러면 자기 자녀들이 다 죽고 국가가 무너지니까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기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법을 지키고 의를 쌓아야 하는 반면에

 

이쪽 이스라엘은 전쟁에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미 이겼는데 뭘 또 이기냐 말이죠

이미 이겼기 때문에

이기신 주님이 옳았습니다 라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의인의 자리 건강한 자의 자리에서가 아닌 그게 우상이니까

그 반대인 죄인의 자리에서 환자의 자리에서

심판의 자리에서 도리어 저 분이 구원하실 분이다 라는 것을 외치는

 

듣도 보도 못한 새노래를 외치는 자로 태어났기에

이 새노래만 부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어린양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말이죠

 

즉 모든 인간의 장자는 다 죽은 셈이다 라는 것을 미리 외치는 겁니다.

진짜 아들은

기업을 이을 자는 저 어린양 밖에 없음을 오로지 저 분만이 기업이을 분이다 라고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에서 비로소 기뻐 노래하는 겁니다

 

자기 자식을 보고서가 아니라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기뻐하시는 자를 보고서 말이죠

 

나의 아이는 도리어 저 아들을 죽이도록 되어 있는 역시나 육이다 말이죠

육은 백날 이어봤자 역시나 살인자일 뿐입니다.

이런 원수도 사랑하시는 분

나 같은 원수도

내가 낳은 자식인 내 자식이라는 원수조차도

용서하실 분은 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밖에 없다 말이죠

 

이 아이를 앞장 세우고 전쟁하는 것이 회개 전쟁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무슨 소리인 줄 모르는 겁니다.

 

잉태지 못한 자여 기뻐하라

 

아니 왜?

 

우상의 세계는 개인의 숙제이기에

개인이 자식을 낳아서 국가를 유지해야 합니다.

개인의 숙제가 없으면

법을 지키기 못하면 국가가 무너진다 말이죠


방금 뉴스에서 한국에 2029년? 태어나는 아이보다 죽는 사람의 수가 뒤 바뀌어지는

4천만 명에서 3천만 명 대로 진입하게 된다고

왜 이것이 뉴스인가? 국가 존립이 흔들린다는 거죠

우상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예수님의 세계는

내 개인의 자식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도리어 내가 태어나는 식으로써

내 자녀가 목적이 아닌

주님의 자녀 낳으심으로써 개인 개념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 구원도 없는 거죠

자 이렇게 되면 또 불평합니다.

 

에이 그럼 개인 천국도 없으니

천국 가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겠네

그럼 사람들이 개판으로 살 텐데 라고

 

국가 존립이 위태로워질 텐데 라고

 

이것 때문에 저들의 사기술이 한국교회를 다 장악하는 겁니다.

괜히 천상 회의에서 악한 영을 집어넣은 게 아니다 말이죠

반드시 그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개인 천국이 없으니까

예수님의 천국만 있으면 됩니다.

이 예수님이 바로 잉태지 못한 자입니다.

인간들이 예수님이 자식 놓기도 전에 죽여버린다 말이죠

왜냐하면 자식이란 기업을 물려줄 자 이거든요
아니 아예 예수님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아비도 없으니 자식도 없죠

그렇게 하나님을 죽이고자 하는 겁니다.

 

예수님 본인도 고아로 아버지 없는 자 취급받았고

예수님의 열매도 못 열리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는 데 성공했다 말이죠

 

예수님은 그야말로 인간사회에서는 가장 실패자인 겁니다.

 

이 예수님 앞에서 나는 실패자입니다 라고 명함도 못 내밀 판국이 된 자가 바로

욥이었다 말이죠

그러니 요나 선지자 엘리야 선지자 등등 심지어 다윗도

또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베드로도

나는 실패했습니다 라고 예수님 앞에서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나의 실패 따위를 내밀수 있겠냐 말이죠

 

예수님의 실패가 밝히 보이는데?

 

그런데 누가 봐도 이 예수님의 또렷한 실패가 과연 누구 때문이냐 말이죠

나는 실패자입니다 라고 벌써부터 내밀려고 나오는 자들을 위함이 아니냐 말이죠

 

그 따위 사망의 권세가 과연 예수님이라는 사랑 앞에 먹혀들 소리 이냐 말이죠

 

죽기를 무서워 사망이 왕 노릇하는 꼴을 보기 싫어서

예수님은 은혜가 왕 노릇하게 하시고자

대신 실패당하셨다 말이죠

 

이 사랑이 얼마나 죽음을 시기했으면

사망을 미워했으면

그 질투와 시기가 지옥, 곧 음부의 권세보다 더 강하더라 말이죠

 

자 그럼 베드로라는 개인이 언제 음부의 권세를 이긴 적이 있습디까?

 

없잖아요

 

아 그런데 예수님께서 대신 매 맞으심으로 다 이루셨다 말이죠

이 십자가가 또렷하니 이 인간의 꾀가 과연 속일 수 있을까요? 없지요

 

그럼 베드로는 이유 없이 음부의 권세를 이긴 자가 된 겁니다.

이유 없이

 

왜? 이유 없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기에

의를 구했기에 라는 구했다 기도했다 라는 조건을 갖추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구한 적도 없이 구했다 라고 무시험 합격 처리했다는 겁니다.

 

이미 하늘나라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합격 통지서를 날려버린 이상

게임 오버입니다.

 

그렇기에

 

육의 방식은 원인 있는 결과를 추구하려고 하나 원인만 있지 결과가 없고요

영의 방식은 원인 없는 결과라서 결과만 있을 뿐이지 원인이 없어요

아무리 원인을 따지고

이유를 따지고

왜?라고 찾아보세요 없어요

 

이유 없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아들의 나라요 아들의 의입니다.

 

육이 낳은 아들이 아닌

그것은 장자이고

 

이 장자라를 우상을 깨뜨리는

 

남자 없이 낳은 아들인 예수님이

곧 임마누엘이지요

 

유일하게 우상을 깨뜨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요 부활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미 인간들은 부활 우상을 믿고 있어요

그 우상을 깨뜨리는 유일한 길이다는 겁니다

 

(요 14: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다른 길은 없다는 겁니다.

 

만약 여기서 다른 길을 제시한다는 것은 곧 우상이다는 거죠 다른 복음입니다

 

예면 예고 아니오면 아니오 하라 말이죠 이 외에 다른 것에서 나는 것은 악에서 나온 거다 말이죠

 

(마 5:37, 개역)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 5:37, 새번역)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또는 '악한 자'』

(마 5:37, 공동)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 5:37, 킹흠정) 『오직 너희 의사 표시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 무엇이든지 이것들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느니라.』

(마 5:37, 현대어) 『다만 너희는 `예, 하겠습니다' 또는 `아니오, 하지 않겠습니다'라고만 하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는 이스라엘의 기능이고

아니오는 애굽이 여호와가 누구관데? 난 아니다 난 모른다 라고 했다 말이죠

그럼 뭐 당해야죠

 

그런데 예도 흐릿하고
아니오도 흐릿한 또 인간의 꾀를 취하면

그런다고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광야에서 다 걸러서 골라내시는 겁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또 이 말씀으로 협박 공갈을 쳐서 또 사기를 치는데 도사들이다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동질성 합일성을 추구하도록 말이죠

 

그러나 이 말씀조차도 단절입니다.

지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통보입니다.

 

함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 말이죠

 

어떤 목사는 알지만 쪽팔리니까 함 막아보겠다고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완악함을 주장하더라 말이죠

기어이 개인 구원이라는 개인 숙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악마가 들어간 목사들이 바로 발람의 꾀

 

예도 흐릿하고 아니오도 흐릿한

영의 방식도 아니고 육의 방식도 아닌 물에 물탄 찹 지도 덥지도 않은

 

(계 3:14, 개역)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 3:15, 개역)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6, 개역)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개역)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20, 개역)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1, 개역)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2, 개역)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대표적인 것이 사단의 회인 유대인 아닙니까

차라리 하나님의 백성이면 하나님 백성이던가

아니면 우상을 섬기는 지옥 백성이던가

 

유대인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에 양다리를 걸쳐서

 

십자가는 거리끼는 걸림돌이라서 싫고

완악한 수건은 과거의 영광이라서 아무도 자기를 건드리지 못하게 광채를 유지해야 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 완악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 모습이 악이다는 겁니다.

 

목사들이 전형적인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자들이지요

 

이제는 용어도 다 까먹었네

 

직분이라고 하나요? 점점 섬기는 낮아지라고 주는 게 아니라

 

도리어 함부로 까불면 안 된다고 주는 직분인 계급이 되어버렸기에

 

교회가 아예 완악한 수건을 권장하고 벗으면 안 된다고

네가 나의 방패막이되어줘야지 너 무너지면 나도 무너진다고 이렇게 나오는

 

마치 애굽의 장자 아닙니까

 

그럼 어린양 에게 제대로 걸린 거다 말이죠

 

그런다고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자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주님은 신나게 전쟁 곧 구원 잔치를 벌이시는 겁니다.

 

이미 이겼으니 이 승리의 전쟁의 잔치를 말이죠

 

그리고 일부러 개미 같은 이스라엘을 일부러 코끼리 같은 강대국과 싸움 붙이시는 겁니다.

 

그래야 사랑이 옳았음이 또렷할 거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이스라엘은 싫은 겁니다.

 

전쟁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오히려 그 코끼리 강대국은 자신들이 부러워하는

마음 한 구석의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말이죠

괜히 우상이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아시니까 싸움 붙이시는 겁니다.

 

너 또한 그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지 않고

자꾸 썩을 것

썩는 재물

어두움을 쫏으니까

 

이 전쟁이 아니면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육체는 이미 죽었다 선언하는 게 맘 편하다 말이죠

살고자 하면 할수록 더 피곤해지는 겁니다.

 

겉사람은 날로 후패해 썩어 들어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로운 겁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식이라는 장자를 통해 축복의 기준을 삼고

구원의 기준을 삼을 때에

 

예수님은 대 놓고 그 장자를 죽이는

이 여자가 낳은 아들

남자 없이 태어난 아들을 가지고서

 

전쟁을 벌리시는 겁니다.

 

이 둘의 전쟁의 싸움에 끼인 겁니다,.

 

인생을 허락해 주신 것은 이 전쟁을 보라는 겁니다.

 

완전히 구원 잔치 혼인잔치의 하이라이트 인 거죠

 

그게 계시록이니까 말이죠

 

자 이런 맥락으로 보면 계시록은 어려운 게 아니라

도리어 너무 쉬워요

혼인잔치를 누가 어려워합니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 밖에 없는데

그러니 다니엘 에스겔 다 같은 맥락입니다.

 

용어 단어 문자에 얽매인 육체이다 보니

이놈의 육 때문에 안 보여서 그렇지

 

이유 없는

원인 없는

영으로 보면

결과로만 보면 모든 답은 인간의 아들인 장자라는 우상을 깨뜨리는

남자 없이 여자가 낳은 아들에게 모든 답이 가 있는 겁니다.

 

이유 없어요 이 아들만 돋보기처럼 들이대고 말씀을 보시면 답이 다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 의해서 우리는 무너지는 기쁨을 누리시면 되고요

 

앞의 글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가 우상으로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은 안식일 지키는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우상성을 볼 수 있다 말이죠

또 다니엘서의 네 신상을 뜨인돌이 나타나서 다리 걸어 넘어뜨리니까 그 넘어진 네 신상이 바로 인간의 역사가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다음으로 공간은 국가라는 바로 위의 시간을 담은 그릇으로써 보고

(물론 시 공간을 따로 분리해서 못 봅니다 항상 붙어 있는 한 몸 덩어리이니까)

가장 좋은 예로 바로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짖겠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46년 동안의 인간의 모든 정성이 다 축적이 된 것을 하루아침에 헐라 라굽쇼?

즉 아무도 이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으로 안 보고 있는데

마치 우상 취급하듯이 보신다 말이죠

 

우상이 뭡니까? 인간의 구원의 통로입니다. 바벨탑 말이죠 가인의 성인 에녹 성처럼

국가란 인간의 구원의 통로입니다.

 

곧 남자라는 아버지의 아들인 장자는 아버지의 부활인 겁니다.

이 의문을 반복하는 것이 남자가 낳은 장자이다 말이죠

 

그럼 진짜 복음이라면 이거 가만히 둬야겠습니까?

남자 없이 여자가 낳은 아들이 깨뜨려야 하는 겁니다.

바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전쟁 인 겁니다.

 

그러니 가인의 족보는 낳았더라 족보입니다.

잇고 잇고 이어도

결과가 없어요

 

그러나 아벨의 족보는 대신 족보라고 죽었더라 족보입니다.

죽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내려와요

단절인데 결과밖에 없어요

 

이유가 없이

원인도 없이

남자도 없이

조건도 없이

법도 없이

 

은혜로만 내려오는 족보입니다.

 

자 주님이 왜 지난주의 이사야 53장의 고난의 종과

오늘 잉태치 못한 여자여 기뻐하라 라고 왜 이렇게 말씀하시느냐

 

이 구원 잔치가 드디어 벌어졌다는 겁니다.

임마누엘이 떴다는 겁니다.

 

신나는 이 혼인잔치에

어떻게 육들이 배치당하며 육이 마치 46년 동안 지은 성전이 허물어지듯이 허물어지며

 

왜 삼일 만에 짖는 성전이 세워지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누가 봐도 그 뒤에 46년 동안 지은 성전이 안 무너졌어요

한 참 뒤에 무너졌지요

이것을 억지로 거 봐라 예언이 맞았잖아 라고 끼워 맞추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안 무너졌어요

 

도리어 먼저 무너진 것은

삼일 만에 짖겠다던 예수님이 먼저 무너졌다 말이죠

 

진짜 예언은 바로 삼일 만에 짖겠다던 예수님이 먼저 무너졌다는 것이

예언의 완성입니다.

 

예언의 완성 조차도 육의 인지에서 벗어나는 식입니다.

 

즉 육은 아무리 봐도 예수님은 틀렸다 라는 거죠

왜? 원인을 갖추어 버렸거든요

 

그러나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해 버린 겁니다.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즉 저들에게는 원인을 갖추어버림으로써 결과가 안 보이도록 하신

 

지혜 곧 결과이다는 겁니다.

 

안식일 지키는 자들에게 안식의 주인의 잔치를 펼치듯이

아무라 봐도 잔치에 못 참여합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원인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잔치라는 결과가 그들에게는 영원히 없는 겁니다.

 

모압은 그럼 잔치 참여했잖아

이방인인 모압이 잔치 참여해본들 예복을 입지 않기에

늘 우상 때를 그리워하면서

결과를 없애버리려고 해요

그때가 좋았다 라고 또 자꾸 원인을 갖추려고 한다 말이죠

 

은혜를 보는 게 아니라

여전히 우상을

자기의 구원을 추구하던 때를 구하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더라 말이죠

 

남자 없이 잉태치 못한 여자가 낳은 아이 곧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는 겁니다.

여전히 우상을 쫓으니 천국에 와본들 여전히 지옥을 찾고

저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래 라고 출애굽 해본들 소용이 없듯이 말이죠

 

장자를 구하더라 말이죠 우상을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는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구한다 안 구한다?

안쳐다 보는 겁니다.

그 정도로 어두운 눈인 우리들을

 

이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서

주님은 이런 단절의 방식으로써

 

우리에게 자꾸자꾸 우상과 약속의 차이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오늘날 성화론자들이 이 차이를 못 증거 하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들이 증거 했던 것들이 다 사기로 들통나고

또 무엇보다 돈이 안 들어온다 말이죠

 

성화론이 괜히 성화론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요

사람을 기쁘게 한다 말이죠

그렇게 되면 종교 곧 돈이 되는 겁니다.

 

대구에는 요즘도 그런지 몰라도

10년 전만 해도 여전히 새벽 특별기도회라고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말이죠

아들 낳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머슴아들 때문에 여자들이 죽어나가요 죽어나가

 

외국인들이 가장 안전한 나라가 상위에 한국이 놓였다고 합니다만

총기가 없으니까 말이죠

정작 유엔에서는 여자로서 가장 가장 폭력이 심한 나라로 여자가 살기 어려운 나라 상위에

한국이 있다 말이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총기 사고보다

음지에서 숨어서 폭력을 행사하는 나라로써 여자가 살기 힘든 국가의 상위권이라는 거죠

 

그 정도로 한국교회가 얼마나 성화론 등등으로 법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상이다 말이죠

 

국민의 반 이상이 기독교(천주교 개신교)라고 우겨본들(과거 몇십 년의 통계)

법으로 꽉 눌러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못 보도록

쳐다볼 수 없도록 완악한 수건을 써야

 

돈이 된다니깐요 돈

 

자 그러다 보니 반작용으로써 그 반대쪽의 광명한 천사를 찾는 겁니다

부드러운 남자를 말이죠

왜? 그것이 또 돈이 돼요

양사방으로 다 막혔다 말이죠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방식

남자 없이 여자가 낳은 아이

단절된 방식

불가능한 방식을

말도 안 되는 방식을

 

오로지 원인 없이

이유 없이

조건 없이

 

결과밖에 없고 원인이 없는

 

성화론은 결국 원인을 갖추면 된다고 사기를 치거든요

원인 갖추면 다 말이 되죠

 

먹혀들죠

 

동질성 합일성을 인간은 얼마나 좋아라 합니까

싫어버린바 될 수 없다 말이죠

 

이질적인 민족인 이스라엘 하나 나타나 봐요

다들 달려든다 말이죠

 

동물농장이었던가? 오래전에 봤었는데

고슴도치가 여러 마리 새끼를 낳았는데

점점 자라면서 유독 한 마리가 털도 자꾸 빠지고 하니까

다른 새끼들이 그 한 마리를 계속 쪼아대면서 밀어내더라 말이죠

 

전문가가 하는 말이 모습이 다르게 이질적으로 보이면 적으로 간주하는 식으로

공격해 쪼아대니 털이 빠지더라 말이죠

 

고슴도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토끼였던가? 아무튼 거기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더라 말이죠

 

남자 없이 여자가 낳은 아이가 있어봐요

다들 쪼아대려고 달려들 거다 말이죠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서 구원인지 심판인지를 가려낼 때에

 

주님은 새로운 기준을 심판과 구원의 기준으로써 내놓으십니다.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로써

그가 바로 남자 없이 여자가 낳은 아들인

이 임마누엘이 유일하게 우상을 깨뜨리는

 

도리어 이 우상은 어떻게 해서든이 이 임마누엘을 막고자 달려들 수밖에 없는 기능으로써

 

하나는 원인을 갖추고자 법에 집착하도록 되어 있고(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게 완악한 수건을 쓰는)


다른 하나는 원인 없이 결과밖에 없는

이유 없는 용서함으로 인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이 사랑만을 노래하도록 되어 있는

 

아무리 남자 있는 여자가 아이를 많이 낳아도

원인을 갖추어서 아이가 많아도

그 아이들이 다 사라지도록 되어 있고

 

정작 남자 없이

원인 없이

 

여자가 낳은 아이

곧 잉태치 못한 여자여 (마리아 이지만 계시록에서는 교회를 두고 말합니다.

그것도 가짜 교회 속에서의 진짜 교회 말이죠)
구로치 못한 자여

젖을 물려 본 적 없는 자여 기뻐하라

 

원인 없이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라

 

사래가 죽은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다가 더 단절인

100세를 일부러 넘겨서

단절 단절로써 낳은 이 약속의 자녀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이유는

약속은 무조건 이유 없이 뭐든지 예가 되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자유 함이지

 

즉 남자 없이 낳은 아이를 말함이지

 

우리가 어떤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정작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자유가 되는 겁니다.

단절 단절을 자꾸 추구해요

거짓말 하는 기생 라합

거짓말로 정탐꾼을 숨겨서 구원을 얻었으니

성화론자들에게는 있을 수 없다 말이죠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치는 왜?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구원이다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는 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7에 70번 용서함을 받는 자의 구원이다 말이죠

 

또 자유한

행함이 있는 믿음은 아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또 삼 년 반 동안 비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 엘리야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자유라고 합니다.

 

성화론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들이겠지요

 

간극을 벌리고 있으니 말이죠

모조리 다 죄인 만들어 버리니

 

의인되라고 가르치고 행함으로 쌓으라고 가르치는 성화론과 완전 정반대이니까 말이죠

 

발로 뻥 차서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들어

거룩 측량, 성전 측량할 때 제일 끝 바깥에 간극을 멀리 떨어뜨리고 있으니

 

잉태치 못한 저주받은 여자로 만들어 버리니

 

누가 이 자유한

행함이 있는 믿음을 쫏겠습니까?

 

그 간극 속에서

그 단절 속에서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곧 장자를 우상을 깨뜨리는 아들을 보라고

 

이 말도 안 되는 혼인잔치를 구원 잔치를 벌이신다고

 

잉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노래하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다음 주는 네 남편은 만군의 여호와라 라는 내용으로 5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