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사 20, 1- 6)
발가벗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사 20, 1- 6)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사 20:1, 개역)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사 20:2, 개역)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사 20: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사 20:4, 개역)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 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사 20:5, 개역) 『그들이 그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을 인하여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사 20:6, 개역) 『그 날에 이 해변 거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사 20:1, 새번역) 『앗시리아 왕 사르곤이 보낸 다르단 장군이 아스돗으로 와서, 아스돗을 점령하였다.』
(사 20:2, 새번역) 『그 해에 주님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시켜서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허리에 두른 베 옷을 벗고,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씀대로, 옷을 벗고 맨발로 다녔다.』
(사 20:3, 새번역)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면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게 표징과 징조가 된 것처럼,』
(사 20:4, 새번역) 『앗시리아 왕이, 이집트에서 잡은 포로와 에티오피아에서 잡은 포로를, 젊은이나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벗은 몸과 맨발로 끌고 갈 것이니, 이집트 사람이 수치스럽게도 그들의 엉덩이까지 드러낸 채로 끌려갈 것이다."』
(사 20:5, 새번역) 『그리하여 에티오피아를 의지하던 자들과, 이집트를 그들의 자랑으로 여기던 자들이,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사 20:6,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이 해변에 사는 백성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의지하던 나라, 앗시리아 왕에게서 구해 달라고, 우리를 살려 달라고, 도움을 청한 나라가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어디로 피해야 한단 말이냐?"』
(사 20:1, 현대어) 『[삼 년 동안 벗고 다닌 이사야] 앗수르의 군대 총사령관이 사르곤왕의 명령을 받고 블레셋 족속의 성읍 아스돗으로 진격하여 단번에 쳐서 점령하였다.』
(사 20:2, 현대어) 『하마터면 유다도 그렇게 될 뻔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미리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보내어 이렇게 경고해 주셨다. `너는 가서 허리에 동인 베옷을 벗고 발에 신은 가죽신을 벗어라!' 이사야가 그대로 하여 ㄱ)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돌아다녔다. (ㄱ. `겉옷을 벗고 내복만 입고서)』
(사 20:3, 현대어) 『아스돗이 정복된 때에 주께서 이사야를 보내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종 이사야가 삼 년 전부터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돌아다니며 애굽과 구스가 당할 일을 미리 알려 주는 상징이 되었다.』
(사 20:4, 현대어) 『이와같이 애굽 사람과 구스 사람들이 잡혀갈 때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부끄러운 엉덩이까지 드러낸 채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러면 애굽 사람에게 얼마나 수치가 되겠느냐!』
(사 20:5, 현대어) 『그러면 구스에 희망을 걸던 유다 백성이 놀라고 실망하며 애굽을 찬양하여 존중하던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이 부끄러워할 것이다.'』
(사 20:6, 현대어) 『그렇게 되면 지중해 연안에 사는 블레셋 족속과 유다 사람들이 이렇게 탄식할 것이다. `우리는 애굽과 구스에 희망을 걸었다. 어려울 때마다 우리는 항상 그들에게 달려가서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였다. 우리는 앗수르 왕이 짓누를 때 보호해 달라고 그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어떤 신세가 되었는가? 이제에 우리가 어디로 가서 도움을 호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따 현대어 번역을 말을 길게 표현했네요
좀 더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말이죠
오늘은 발가벗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라고
그냥 이사야가 아니라
누구 누구의 아들 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속에 스알야숩 임마누엘 마할살렐하스바스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 세 아들을 구하라 라고 말이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는 말은
구한다? 안 구한다? 안 구하기 때문입니다.
찾는다? 안 찾는다? 안 찾기 때문입니다.
두드린다? 안 두드린가? 안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아 그럼 이제부터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되겠네 라고
행해보세요 행할 수 있다? 없다? 없다는 겁니다.
왜? 안 구하고, 왜? 안 찾고, 왜? 안 두드리느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왜? 못 구하고! 아니 아예 구할 마음조차 생길 수가 없고
왜? 못 찾고! 아니 아예 찾을 마음조차 생길수가 없도록 되어 있고
아니 물건을 잃어버려 보세요
마음이 애달찮아요
전혀 애달치 않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마음에 다른 것이 꽉 찼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우상입니다.
이 우상을 짜르는 일이 바로 마음판의 할례 곧 요나의 표적입니다.
왜? 못 두드리고! 아니 아예 두드릴 마음조차 없는가 하면
도움을 구하고자 문을 두드려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밤새도록 아이를 업고서 병원 문을 두드려야 하듯이 말이죠
젖먹이가 배고프면 밥 달라고 응애 응애 라고
엄마의 마음 문을 마구 마구 사정없이 두드린다 말이죠
그런데 왜 안 두드릴까요?
네 맞습니다.
배부른 겁니다. 도대체 누가 아이의 울음을 멈추었습니까?
아이는 굶어 죽어가도 울부짖지 않는다면 헛배로 누가 채웠다는 거죠
마약을 먹으면 헛배 부르게 되니
아무것도 안 먹고도 배부른 척
잠을 안 자고서도 잔 척, 잤는척하고 싸돌아 다니겠지만
안 기뻐도 기쁜척하고 조증환자처럼 감정의 기복을 극대화 시키는 겁니다.
갑자기 우울했다가 갑자기 기뻐했다가 오락가락 말이죠
누가 그랬냐 말이죠? 주님은 마귀가 그랬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 우상을 짜르고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신다 말이죠
아니 모든 사람들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유대인들이 구하는 가운데에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기적이라는 마약이 아니라
마귀라는 우상을 제거하고자, 치료하고자 수술로 제거하시겠다고
칼로 구원의 뿔로
빵구멍을 뻥뻥 뚫고자 오셨다 말이죠
자 그러니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마약을 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말이죠
유대인은 모든 인간의 대표성이거든요
자 그렇기에 이 요나의 표적이 오늘 나오는 삼 년 동안 발가벗고 증거 되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인 겁니다.
요나 자체가 표적이 되어요 기적이 되어요
어떤 기적?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짤라버리는, 기적을 짜르는 기적,
기적을 깨뜨려 부수는 기적
기적을 없애는 기적인
부정의 부정이다 말이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악마적인데
그 악마적인 기적에 의해 더한 악마로 취급받는 기적이다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고향에서 미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왜? 사랑으로 골고루 평탄케 하는 불도저가 되거든요
정작 가버나움처럼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받아야 할 도시가
도리어 선지자를 심판이나 해대고 다니는
이 상황을 펼치는 것이 요나의 표적입니다.
선지자 (누구 누구의 아들) 자체가 표적이다 말이죠
사람은 자기가 표적 덩어리가 되기를 원치 않아요
표적이라는 기적은 도리어 내가 그 기적을 활용하고 사용하고 써먹어야 하는데
내가 기적이 되어버리면 나는 도리어 남으로부터 활용을 당하고 이용을 당하고
전적으로 남의 이로움을 위해서 사용되기에 나에게는 남는 것이 없다 말이죠
뭐 말로만 사랑하는 부부끼리 너는 나의 기적이다 라고
너는 나를 가장 이롭게 하는 것이다 라고
전적으로 내 기준에 의해서 상대방을 사용할 거리로
유익 거리로 보고 있기에
너는 나의 기적이다 라고 하지
이것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요 사랑이지
바로 자기를 위한 우상이다는 겁니다.
나는 너의 기적이다 라고 날 잡사먹으라 라고 하지는 않는다 말이죠
나는 너의 로또 라고 돈을 펑펑 마음껏 쓰고 싶도록 하고자
나를 마음껏 써 먹으세요 라고 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 반대죠 도리어 반대로 너는 나의 로또 라고 너를 마음껏 써 먹겠다고 나오는 겁니다.
바로 이 악마성 우상성을 깨뜨리고자
선지자는 나는 너의 요나의 표적이라고
고향사람 고향사람 예루살렘에 나타나면
너 선지자야 너는 나의 로또구나 라고 나올까요? 아니면
나쁜사람 나쁜사람 으로 취급 받을까요?
(왕상 18:17, 개역)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왕상 18:17, 새번역)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요?"』
(왕상 18:17, 공동)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말을 건넸다. "그대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장본인인가?"』
(왕상 18:17, 쉬운) 『아합이 엘리야를 보고 말했습니다. “바로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냐?”』
(왕상 18:17, 우리말)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말했습니다. “네가 바로 이스라엘에 문제를 일으키는 자로구나!”』
(왕상 18:17, 킹흠정) 『아합이 엘리야를 볼 때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냐? 하매』
(왕상 18:17, 한글킹) 『아합이 엘리야를 보자 그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그 사람이냐?" 하니』
(왕상 18:17, 현대인)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네가 왔느냐?' 하였다.』
(왕상 18:17, 현대어) 『그는 엘리야 예언자를 보자마자 이렇게 호통을 쳤다. `네가 바로 이 나라를 재앙에 빠뜨린 장본인이냐?'』
(왕상 18:18, 개역)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왕상 18:18, 새번역)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과 임금님 아버지의 가문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주님의 계명을 내버리고, 바알을 섬기십니다.』
(왕상 18:18, 공동)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왕 자신과 왕의 가문입니다. 왕께서는 야훼의 계명을 버리고 바알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왕상 18:18, 쉬운)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왕과 왕의 집안이오. 왕은 여호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바알 신을 따랐소.』
(왕상 18:18, 우리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소.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집안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오. 당신은 여호와의 명령을 저버리고 바알을 따랐소.』
(왕상 18:18, 킹흠정)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 아니하고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집이 괴롭게 하였나니 곧 당신들이 주의 명령들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나이다.』
(왕상 18:18, 한글킹)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집이 한 것이니, 즉 당신들이 주의 계명들을 버린 것과 당신이 바알들을 따른 것이니이다.』
(왕상 18:18, 현대인)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요. 당신은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바알 우상들을 섬겼소.』
(왕상 18:18, 현대어) 『그러나 엘리야는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이 나라를 재앙에 빠뜨린 것은 내가 아니라 임금과 임금의 가문입니다. 임금과 임금의 아버지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바알우상을 섬겼습니다.』
여기에 또 희한하게 거짓 선지자까지 주님이 배치시키셨다 말이죠
거짓 선지자는 바로 이렇게 참선지자가 외치는 것에 반대로
두 소욕의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하는 그 차이로써 배치되었다 말이죠
(갈 5:17, 개역)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 거짓 선지자는 참선지자와는 반대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소리만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너의 기적이라고 자신을 내어주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너는 나의 기적이라고 상대방을 이용하여 잡아먹도록 한다 말이죠
그러면 세뇌를 시켜야 할꺼 아니겠느냐 말이죠
마약을 먹이는 겁니다.
오늘날 모든 종교가 바로 이 마약을 먹이는 겁니다.
성당에 불이 났는데 얼마나 그 동안 세뇌를 시켰으면
문화재를 복원시켜야 한다고
무너진 역사를 복원시켜야 한다고
하루 만에 기부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말이죠
그와 대비가 된 브라질은 도리어 욕먹고 있으니
누가 누가 기부 잘하나 라는 그 기준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오냐 말이죠
정작 심판의 불 앞에서 곧 있으면 [그 날에] 가 닥치는데
서로 서로 그 앞에서 누가 잘났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 말이죠
그 심판의 날을 미리 앞당겨서
[그 날에]를 신체에 담아 증거하는 표적물로써
요나의 표적 곧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표적 덩어리로써
거울을 보라고
거울로 자신의 꼬라지를 보라고 거울로써 비추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표적 덩어리인 증상물 자체인 표적 그 자체인 참선지자를 죽이게 되면
그것으로 잔소리 끝이 아니라
누워서 침 뱉기 하듯이
그 조상의 유전을 그대로 이어받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까정 죽이는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그대로 받는다 말이죠
아하스 왕처럼 내가 아니면 그만 이다 라는 사고방식이
놀랍게도 오늘날 유대인 현대 현재의 유대인에게도 동일한 것을 보고
우와 이 자들은 그야말로 사단의 회 맞구나를 보게 되더라 말이죠
그걸 또 한국교회가 따라하구요
따라 할 것이 없어서 마귀짖만 골라서 따라하고 있으니 원
참선지자는 표적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이 표적 덩어리를 아무도 쳐다 볼려고 하지 않습니다.
싫어버린바 되었거든요
자신들의 적나라한 민낯을, 발가벗은 모습을 그대로 거울 보여주듯이 비추어 보여주거든요
(요 1:5, 개역)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6, 개역)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요 1:7, 개역)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
(요 1:8, 개역)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요 1:9, 개역)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개역)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개역)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개역)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개역)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도 예수님도 어두운 자기백성에게 비추어지니까
어두운 백성이 이 빛으로 인해 자신의 어두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어두움 취급해서 죽여버리고
자신들이 그런일로써 더더욱 빛 답잖아 라고 주장하더라 말이죠
그 주장이 바로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인
사람의 일이다 말이죠
모든 인간은 바로 이 사람의 일 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을 당최 볼 수가 없는 그야말로 어두운 눈이다는 거죠
오늘날 성도는
누구 누구의 아들인 선지자(인자야~~~)처럼
발가벗은 채로 증거 되는 표적물이다는 겁니다.
이 표적물에게 빨리 입 맞추라 안 그러면 진노가 급하게 일어난다고 말이죠
눈에 보이는 교회가 입 맞추어야 할 의가 아니라 이 발가벗은 아들에게 입맞추어야 하고
도리어 그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다시 세우는 이 예수님이 참성전이거든요
눈에 보이는 목사가 아니라, 이 싫어버린바 된 아들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 말이죠
목사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바 된 표적물이 아니거든요
요나가 죽다 살아났다 말이죠
이 3일의 간극을 외치는 자는
3년 동안 발가벗고 다니는 비방받는 표적인 예수님 뿐이다는 겁니다.
이 예수님을 가려버리고 못 보게 하는 자들이 바로 목사요 교회다 말이죠
그들은 자신들은 스스로 누락시킬 수 있는 복음을 못 외치는 겁니다.
포항에 있는 목사인데
자신이 스스로 대견해서 올린 글을 보았는데
교인들이 힘들어하더라 말이죠
왜? 이 어려운 상황에서 복음을 얼마나 제대로 외쳤으면
교인이 힘들어 죽겠는데
자기가 그 상황 속에서도 성화해야 한다고 다그치면서 바른길로 인도하고 있으니
정작 교인은 힘들지만 목사 자신은 이 세상의 흐름에 따르지 않도록 인도하니
얼마나 다행이냐 라고 말이죠
꼭 이슬람교와 똑같아요
정작 지도층들은 자본주의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백성들은 자본주의를 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식이다 말이죠
과거 중국 공산당도 그랬고
북한도 그런 식으로 해야
그동안 체재를 유지할 수 있었거든요
자 이렇게 목사와 눈에 보이는 공동체는 도리어 이 요나의 표적을 못 보게 하는
눈을 가리는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자꾸 예수님을 못 보도록 해요
예수님과 차이가 나거든요
예수님은 발가벗었다 말이죠
머리 둘 곳도 없었다 말이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다 말이죠
그런데 이 예수님을 못 보도록 만들지 않으면
자신들이 발가벗어야 할 선지자의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것이 들통날꺼 아니겠냐 말이죠
목사가 과연 교회를 보고 울겠냐 말이죠
머리 둘 곳 없었냐 말이죠
공적인 자유를 외치는 공무원이라면 사적인 영역이 없어야 하는데
사적인 영역뿐 공적인 영역이 없다 말이죠
그러니 이 눈에 보이는 교회를 솔로몬이 입은 영광의 옷으로 입혀줄려고 환장을 해요
성화하라고
또 저 신땡지처럼 과거 대한기독교장막회가 얼마나 솔로몬황금성전 만든다고 환장했냐 말이죠 이름도 왜 그리 자꾸 바꾸는지 돈싸움 벌어지니까 자꾸 갈라지거든요
군대 다녀와 신학교 복학하니까 그렇게 순하던 순딩이 동기가
대한기독교장막회에 빠져 버렸다 말이죠
다짜고짜 이 솔로몬 황금성전만 계속 외쳐요 글쎄
이게 오늘날 신땡지 이거든요
또 다락방은 왜 그렇게도 유행을 하는지?
마약이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니까 다들 표적, 기적에 빠지는 겁니다.
자꾸 자꾸 눈에 보이는 기적을 제시하더라 말이죠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 모든 종교가 다 이래요 심지어 기독교도 이래요
그 반대입니다.
본인 자체가 표적이 되어서
표적 덩어리로써 내던져집니다.
발가벗겨진 채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표적
요나 선지자 조차도 쳐다보기 싫다고 고개 돌린 표적
바로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 )입니다.
사람의 아들 이라는 표현보다 누구 누구의 아들이 딱 맞네요
신학자 말 따를 필요 없어요
나의 발가벗은 모습을 대신 거울로써 보여주는 이 누구 누구의 아들에게 입 맞추어라
스알야숩 임마누엘 마할살렐하스바스에게 입 맞추어라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베드로가 울어야 할 것을 닭이 대신 울고 있는 이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에게 입 맞추어라
왜? 진노가 급하니까
아이고 당신은 피 남편이구나 라고
십보라의 눈에만 진노가 급하게 일어나니까
아들의 꼬추 끝을 짤라 모세의 발에 던지운다 말이죠
수치가 물러가는 겁니다.
어딜 감히 육의 전쟁을 벌리느냐 말이죠
모세 개인의 전쟁이 아닌데 왜 뛰어드냐 말이죠
사람의 전쟁이 아니라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사망의 권세와 악한 영의 싸움이다 말이죠
(엡 6:12, 개역)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인간 개인의 사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닌 행함 곧 복수죠 원망, 한풀이, 원한, 살인의지 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오늘날로 치면 교회라는 사적인 영역에 충성하라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것 아니냐 말이죠
정사와 권세가 되는 국가라는 짐승 말이죠
참선지자는 이미 벌써 새 이스라엘이 벌써 다 이루어졌기에
선지자 본인 자체가 표적 덩어리로써
우상과의 반대의 길인 좁은 길로 좁은문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이 참선지자를 거짓선지자와 백성이 죽이는 겁니다.
자꾸 넓은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하니까 말이죠
두 소욕의 싸움이 벌어지는 겁니다.
참선지자 본인들도 이들의 행동을 다 했었기에
그것에 섭섭해 하거나, 낙망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랬었었었다 라고 (내 열심이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이렇게 배신 때리기요?)
이미 확정된 운명으로써 사적인 감정이 없이
오로지 이 공적인 자유를 외치고자
구체적 보편적 진리를 외치는 자로써
돌삐 맞아도 앗싸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끝까지 주의 사랑의 인애와 자비로써
발가벗은 채로 저들의 죄악을 신체에 담아서 보여주는
이 의 義
이 간극
이 젖먹이 전쟁 (유일하게 우상을 깨뜨리는 사망을 깨뜨리는 의)
곧 스알야숩 임마누엘 마할살렐하스바스 라는 아이를 앞장세우는
이 주님의 십자가만 옳았다를 외치는 겁니다.
이 어리석고 미련한 십자가만이 우리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해결하는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아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이고
이 거리끼는 걸림돌만이
우리의 엉터리 거짓된 의로움인 외식 가짜율법
사랑 없는 껍데기 율법
인과 신은 버린 껍데기 율법 지킴을 들추어내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자
거울이 아니었다면 진짜 내 발가벗은 모습을 못 보는
이 거리끼는 발가벗은 모습을 비추어 보여주는 거울이 옳았다 라고
선지자는 거울로써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발가벗은 자로써, 죄수 복을 입고서 빨간 피를 외치는 자로써
어리석고 미련한 무능한 젖먹이 아기로써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시 2:7, 개역)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행 13:33, 새번역)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2:7』
(히 1:5, 새번역)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시 2:7(칠십인역) ㉡삼하 7:14』
(히 5:5, 새번역)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 ㉠시 2:7(칠십인역)』
우리에게 내던져진 표적인 겁니다.
이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진노가 너무 너무 급하기에
(눅 7:38, 개역)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눅 7:38, 새번역)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눅 7:38, 공동)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눅 7:38, 쉬운) 『그는 예수님의 뒤쪽으로 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의 발을 씻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눅 7:38, 우리말)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그 발에 자신의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
(눅 7:38, 킹흠정) 『그분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분의 발 곁에 서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기 시작하여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고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발에 부으매』
(눅 7:38, 한글킹) 『주의 뒤로 와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주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며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내고, 또 주의 발에 입을 맞추며 향유를 붓더라.』
(눅 7:38, 현대인) 『예수님의 뒷발치에서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다. 그리고서 그 여자는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며 거기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눅 7:38, 현대어) 『그 여자는 방안에 들어와서 예수의 발 뒤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면서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셨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고전 11:9, 개역)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렘 31:22, 새번역) 『너 방종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주님께서 이 땅에 새 것을 창조하셨으니, 그것은 곧 여자가 남자를 ㉡안는 것이다." / ㉡또는 '보호하는'』
(고전 11:9, 새번역)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고전 11:7, 개역)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고전 11:7, 새번역)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니,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 ㉧또는 '반영'』
(고전 11:7, 공동) 『남자는 하느님의 모습과 영광을 지니고 있으니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고전 11:7, 쉬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 머리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고전 11:7, 우리말)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됩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고전 11:7, 킹흠정)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인즉 참으로 자기 머리를 덮지 않는 것이 마땅하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고전 11:7, 한글킹)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 마땅히 머리에 쓰면 아니되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고전 11:7, 현대인) 『남자는 하나님의 모습과 영광을 지녔기 때문에 머리에 아무것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고전 11:7, 현대어) 『하지만 남자는 머리에 아무 것도 쓰면 안 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지만 여자는 다만 남자의 영광의 표현입니다.』 ]
(눅 7:45, 개역)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시 2:1, 개역)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시 2:2, 개역)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 2:3, 개역)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시 2:4, 개역)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시 2:5, 개역)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시 2:6, 개역)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 2:7, 개역)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 2:8, 개역)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 2:9, 개역)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 2:10, 개역)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시 2:11, 개역)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 2:1, 새번역) 『어찌하여 뭇 나라가 ㉠술렁거리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 ㉠칠십인역에는 '격노하며'』
(시 2:2, 새번역)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함께 꾸며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시 2:3, 새번역)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
(시 2:4, 새번역)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웃으신다. 내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시 2:5, 새번역) 『마침내 주님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시 2:6, 새번역) 『"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 ㉡또는 '왕을'』
(시 2:7, 새번역) 『"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시 2:8, 새번역) 『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너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시 2:9, 새번역) 『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 하셨다." / ㉢또는 '철퇴로 다스릴 때에'』
(시 2:10, 새번역) 『그러므로 이제, 왕들아, 지혜롭게 행동하여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경고하는 이 말을 받아들여라.』
(시 2:11, 새번역)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시 2:12, 새번역)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진노하실 것이니, 너희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망할 것이다. 그의 진노하심이 지체없이 너희에게 이를 것이다.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행 4:25, 새번역)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우리의 조상 다윗의 입을 빌어서, 성령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민족이 날뛰며, 뭇 백성이 헛된 일을 꾀하였는가? / ㉣또는 '아이' ㉤시 2:1; 2』
(행 13:33, 새번역)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2:7』
(히 1:5, 새번역)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시 2:7(칠십인역) ㉡삼하 7:14』
(히 5:5, 새번역)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 ㉠시 2:7(칠십인역)』
(계 2:27, 새번역) 『㉦「그는 쇠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고, 민족들은 마치 질그릇이 부수어지듯 할 것이다.」/ ㉦시 2:9(칠십인역)』
(계 12:5, 새번역)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었습니다. 별안간 그 아기는 하나님께로, 곧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고, / ㉠시 2:9 ㉡또는 '보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