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던지러 오신 임마누엘(함께하심) (사 33, 1-24)
18-43 불 지르러 오신 임마누엘(함께하심) (검을 주러 왔노라) (사 33, 1-24)
심판 속에서 구원을 펼치는 여호와의 불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사 33:1, 개역)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사 33:2, 개역)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사 33:3, 개역) 『진동 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시므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사 33:4, 개역) 『황충의 모임 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 오름 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 오르리라』
(사 33:5, 개역)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니 이는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
(사 33:6, 개역)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사 33:7, 개역) 『보라 그들의 용사가 밖에서 부르짖으며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곡하며』
(사 33:8, 개역)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 33:9, 개역)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 갈멜은 목엽을 떨어치는도다』
(사 33:10,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니』
(사 33:11, 개역)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사 33:12, 개역)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사 33:13, 개역) 『너희 먼 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사 33:14, 개역)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사 33:15, 개역)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사 33:16, 개역)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사 33:17, 개역) 『너의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사 33:18, 개역) 『너의 마음에는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여 내리라 계산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공세를 칭량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망대를 계수하던 자가 어디 있느냐』
(사 33:19, 개역) 『네가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그 백성은 방언이 어려워서 네가 알아 듣지 못하며 말이 이상하여 네가 깨닫지 못하는 자니라』
(사 33:20, 개역)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사 33:21, 개역)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
(사 33:22, 개역)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사 33:23, 개역)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하였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사 33:24, 개역)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사 33:1, 새번역) 『약탈 한 번 당하지 않고, 남을 약탈하기만 한 자야, 너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배반 한 번 당하지 않고, 남을 배반하기만 한 자야, 너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너의 약탈이 끝나면, 이제 네가 약탈을 당할 것이며, 너의 배반이 끝나면, 이제 네가 배반을 당할 것이다.』
(사 33:2, 새번역) 『주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립니다. 아침마다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시고, 어려울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어 주십시오.』
(사 33:3, 새번역) 『주님의 우렁찬 소리에 백성이 도망 치며,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우리편이 되어 싸우시니, 민족들이 흩어집니다.』
(사 33:4, 새번역) 『민족들아, 사람들이 황충이 떼처럼 몰려들어서, 너희가 약탈한 전리품을 빼앗을 것이다. 메뚜기 떼가 뛰어오르듯, 사람들이 그 탈취물 위에 달려들 것이다.』
(사 33:5, 새번역)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저 높은 곳에 계시면서도, 시온을 공평과 의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사 33:6, 새번역) 『주님께서 너로 안정된 시대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늘 백성을 구원하시고, 지혜와 지식을 주신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귀중한 보배다.』
(사 33:7, 새번역) 『용사들이 거리에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평화협상에 나섰던 사절이 슬피 운다.』
(사 33:8, 새번역) 『큰길마다 위험하여 행인이 끊기며, 적이 평화조약을 파기하며, ㉠증인들이 경멸을 받으며, 아무도 존경을 받지 못한다. / ㉠사해 사본을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그 성읍들이'』
(사 33:9, 새번역) 『땅이 ㉡통곡하고 고달파 하며, 레바논이 부끄러워하고 메마르며, 샤론은 아라바 사막과 같으며, 바산과 갈멜은 나뭇잎이 모조리 떨어진다. / ㉡또는 '마르고'』
(사 33:10,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는 내가 활동을 시작하겠다. 이제는 내가 일어나서, 나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 보이겠다.』
(사 33:11, 새번역) 『너희는 겨를 잉태하여 지푸라기를 낳는다. 너희는 제 꾀에 속아 넘어간다.』
(사 33:12, 새번역) 『뭇 민족은 불에 탄 석회같이 되며, 찍어다가 태우는 가시덤불같이 될 것이다.』
(사 33:13, 새번역) 『너희 먼 곳에 있는 자들아, 내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 들어 보아라! 너희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깨달아라!"』
(사 33:14, 새번역) 『시온에서는 죄인들이 공포에 떨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사르는 불을 견디어 내겠는가? 우리들 가운데 누가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견디어 내겠는가?" 하고 말한다.』
(사 33:15, 새번역)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
(사 33:16, 새번역)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산다. 돌로 쌓은 견고한 산성이 그의 은신처가 될 것이다.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고, 마실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 33:17, 새번역) 『네가 다시 한 번 왕의 장엄한 모습을 볼 것이며, 백성은 사방으로 확장된 영토를 볼 것이다.』
(사 33:18, 새번역) 『너는 지난날 무서웠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서슬이 시퍼렇던 이방인 총독, 가혹하게 세금을 물리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던 이방인 세금 징수관들, 늘 너의 뒤를 밟으며 감시하던 정보원들,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될 것이다.』
(사 33:19, 새번역) 『악한 백성, 곧 네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을 하며 이해할 수도 없는 언어로 말하던 그 악한 이방인을, 다시는 더 보지 않을 것이다.』
(사 33:20, 새번역) 『우리가 마음껏 절기를 지킬 수 있는 우리의 도성 시온을 보아라. 옮겨지지 않을 장막, 예루살렘을 보아라. 우리가 살기에 얼마나 안락한 곳인가? 다시는 옮겨지지 않을 장막과도 같다. 그 말뚝이 영원히 뽑히지 않을 것이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 33:21, 새번역) 『거기에서는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니, 그 곳은 마치 드넓은 강과 시내가 흐르는 곳 같겠지만, 대적의 배가 그리로 오지 못하고, 적군의 군함이 들어올 엄두도 못낼 것이다.』
(사 33:22, 새번역) 『주님께서는 우리의 재판관이시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세워 주시는 분이시며, 주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시다.』
(사 33:23, 새번역) 『그리로 들어오는 배마다, 돛대 줄이 느슨하여 돛대를 똑바로 세우지 못하고, 돛을 펴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탈취물을 얻을 것이다. 다리를 저는 사람들까지도 많이 탈취할 것이다.』
(사 33:24, 새번역) 『거기에서는 아무도 "내가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겠고, 거기에서 사는 백성은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40, 개역)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개역)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눅 12:52, 개역)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눅 12:53, 개역)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앞의 글 마태복음 12제자와 네 생물에서
12제자를 예수님에 세울때에 권세를 주셨다 라고 했습니다.
즉 권세를 받지 않은 자는 성도가 될수 없습니다.
그 권세는 사망을 멸하는 여호와의 불이라고 했습니다.
이 여호와의 불을 받은 자가 열두제자이고
이 사랑이라는 폭력성이 (네 천사의 폭력성 - 불지르러 왔다)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저들 네 짐승의 무기인 죽음 보다 더 강함으로써
저들의 사망이라는 무기는 무기 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저 울리는 꽹과리(에디오피아 전쟁무기)일 뿐이다는 겁니다.
(사 18:1, 현대어) 『[유다에 온 구스 사절단] 나일강 상류의 ㄴ) 구스는 군인들이 가득 찬 나라이지만 그 시끄러운 무기 소리는 그 나라에 들리는 상엿소리에 불과하다. (ㄴ. BC 701년에 유다를 반앗수르의 동맹에 가입시키기 위하여 구스 사절단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사 18:6, 현대어) 『이제 곧 앗수르와 구스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다. 여름에는 독수리들이 그들의 시체를 먹고 살며 겨울에는 들짐승들이 그들의 시체를 먹고 살 것이다.'』
(사 18:7, 현대어) 『그때에는 구스 백성이 만유의 주인이신 여호와께 예물을 드릴 것이다. 그 키가 크고 피부가 반들거리는 백성, 멀고 가까운 나라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백성, 너무 힘이 강해서 폭행을 일삼는 백성, 강줄기들이 이리저리 흘러 나가는 땅의 백성이 여호와를 섬기는 시온산으로 와서 경배할 것이다.』
(사 18:1, 개역)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사 18:1, 새번역) 『㉠에티오피아의 강 건너편, 벌레들이 날개 치는 소리가 나는 땅에 재앙이 닥칠 것이다. / ㉠히, '구스', '나일' 강 상류지역』
(사 18:1, 공동) 『아, 에티오피아의 강 건너편, 날벌레가 우글거리는 나라여!』
(사 18:1, 우리말) 『에티오피아 강 너머 날벌레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땅에 재앙이 있을 것이다.』
(사 18:1, 킹흠정) 『이디오피아의 강들 건너편에서 날개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땅에 화가 있을지어다!』
(사 18:1, 한글킹) 『에디오피아 강 건너에 있는 날개로 보호받는 땅에 화로다.』
(사 18:1, 현대인) 『나일 강 상류에 날개치는 소리가 들리는 땅이 있으니』
아 맞다 서두를 이렇게 적고 싶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처음 1절에서 나오는 내용들이 바로
우리가 부러워 하는 부자들, 잘된자들, 뭐 그런 모습들의 사람들입니다.
(마치 부자 청년과 만난 뒤에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라고
부자가 구원 못 받으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냐 라고 보편적 기준인 천국갈자 답다는 것이 다 깨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부러워 죽어요
자 그런데 제가 문뜩 들었던 생각이 뭔고 하니
이들이 그냥 부요한게 되는게 아니라
사실상 한 세트
상대적인 대조를 갖추기 위해서 그들이 그렇게 부요하게 된 것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세상사람들이 성경말씀을 거부하는 그 대표적인 예죠. 도저히 인정할수 없거든요.)
그럼 상대적인 자는 뭡니까?
저들의 반대의 모습이겠지요
곧 압제당하는 자
핍박당하는자
(사 33:1, 개역)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사 33:2, 개역)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저들의 긍정적인 부요함은 상대적인 대조적인 부류와 맞물려 있는 한 세트이다는 겁니다.
너는 학대 당하지 않았고
이거 좋은 의미 아닙니까?
그런데 학대 안당했다고 너 학대 당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거 너무 너무 부조리한 것 아니냐 말이죠
아니 학대 안당한 것이 어떻게 너는 학대자이기에 학대 당해야 한다는
이 말도 안되는 것이 어디있냐 말이죠
갑질 안당했기에 너는 갑질자라고 너도 갑질 당해 보라고 하니
이거 너무 한 거 아니냐 말이죠
너무 흑백논리의 궤변만 늘어놓지 말고
갑질 안당했다는 것은 그 만큼 제대로 잘 살았다는
열심히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잘 살았다는 그 중간태
중동태의 모습 아니냐 라고 따질수 있다 말이죠
제 3의 영역이 없이
그냥 이분법으로 압제자 아니면 피해자 이 둘로만 나누어 버린다는 것은 너무 하잖아 말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이라는 것이 있으면
자아라는 것이 있으면 억울해요
자아란 우상 일 때 자아가 있거든요
인간이 자기자신을 우상화 했기에 개인 이라는 의미가 생긴다 말이죠
아 그런데 개인이라는 의미가 없다면
제 3 영역이 필요가 없어요
집단으로 다루십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부요한 자로써 성실히 일했기에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 라고
남들이 다 부러워 하는 그런 의식을 성경말씀은 깨뜨리면서
먼저 구원이 떴기에
여호와의 팔이 먼저 떴기에
오늘 나오는 불
여호와의 불
삼키는 불이 먼저 떴기에
이 불에 의해서 졸지에 평평하게 평탄케 된 입장에서 보면
학대당하는 자가 먼저 생겼고
벌써 말이 안되지요
학대하는 자가 생겨야 그 뒤에 학대당하는 자가 뒤에 나타나는데
먼저 학대당하는 자가 생기고 그 뒤에 학대 하는 자가 생겨버리면
우리는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길이 없다 말이죠
다윗의 자손이 다윗의 주 이다 라고
앞뒤가 똑같은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언어와 의식이라서
앞뒤가 안 똑같아요
이 말도 안되는 소리 밖에 성경에 기록이 된 겁니다
자 인자가 먼저 떴고요
그 증상물로 불뱀 물린 자가 나타났구요
그 뒤에 불뱀이 나오는 겁니다.
아니 순서가 반대잖아요
불뱀이 나타나고 그 뒤에 불뱀 물린자가 불뱀에게 물려서 나타나고
그 뒤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고 나온다 말이죠
아 그런데 여호와의 삼키는 불은 시공간인 역사를 홀라당 불태워 버려서
손서배치를 뒤죽박죽 해 버리시는 겁니다.
자 그래서 여호와의 불이 먼저 떴기에
즉 구원이 먼저 떴기에
부르짖는 자가 생겨나듯이 학대받는자가 생겨나고
그 뒤에 학대자가 나오는 겁니다.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셨다는 겁니다.
이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겠다고
여호와의 불 곧 구원이 이들을 움직이시더라 말이죠
그 대표적인 또 한 예가 바로 부자청년입니다.
부자청년은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 라고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면 구원받냐 라고 부족한 것 있으면 말씀만 하소서 당장 실행하겠다 라고
순종하겠다 라고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고 나옵니다.
자 그렇다면 너가 말씀 지킬게 아니라
얼마나 가난한자를 압제했는지에 대해서 밝혀 버리시는 겁니다.
곧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라고 말이죠
자 이렇게 되면 우리는 뭘 해도 죄인이요 뭘해도 가해자이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숨겨놓으신 학대당한자는 일방적으로 느닷없이 내밀어 버리면
우리는 당황하셨어요 가 되는 거죠
바로 이것이 여호와의 불이고 에스겔1장의 네 생물인 네 천사가 던지는 불입니다.
불을 막 질러요 불을
불만이 살아 있고
불 아닌 것은 살아 있지 않다고 보시는 겁니다.
이 역동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써
이들을 불 속에서 이동시켰다는 겁니다.
심판 속에 집어 넣어서 다시 살려냈다는 겁니다.
그 의미를 담아서 출애굽때에 애굽을 불지르고 불검을 든 천사들이 장자를 다 죽이더라 말이죠
이것이 구원 곧 살아있는 역동성이다는 겁니다,
진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좀비 인지 생명인지 알려면
불 질러 보면 안다 말이죠
의인인지 아닌지 죽여보면 안다 말이죠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666 짐승 보다
네 짐승(다니엘 7장 금신상 바벨론, 은 메데 파사, 동 헬라제국, 철 로마제국)의 폭력성 보다
이세벨의 모든 선지자를 다 죽이는 것보다 더 폭력적인 것은
바로 은혜가 왕노릇하는 7천명을 남겨놨다는 겁니다.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새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의 찬양군대 14만 4천명이 동서남북 우주까지 다 덮어버리더라 말이죠
아무리 죽여도 다시 사는
산자의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임마누엘 곧 함께 하심입니다.
단순히 죽였다가 다시 사는 바리새인의 부활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 졸지에
환난 받는 자리에 놓음으로써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으로 만드시고
그 죄인을 부르러 오신 구원자이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여호와의 불이라는 권세 곧 사망을 멸하시는 사랑이라는 뜨인돌
시온에서 나오는 뜨인돌의 권세를 받지 않은 자는
임마누엘을 구하는 권세가 없는 자는
상대적인 한 세트로써 부자청년처럼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학대하는
학대 당한 적이 없기에 학대자 라는
일방적인 주님의 일하심의 시선에서
졸지에 핍박자로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완전히 독재죠 독재
곧 예수님의 일하심 곧 은혜가 왕노릇함의 시선에서만 나오는 시선이고
그 외의 것은 사망이 왕노릇하는 시선에서 나오기에
압제한적도 없고 그렇다고 학대 당한 적도 없는
뜨겁든지 차든지도 아닌 중간치는 없다 라는 겁니다.
오히여 중동태는 주님이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으신 주님의 의 공의로 인해
바리새인이라는 좌파(능동태)나 로마독재라는 우파(수동태)나 둘 다
마귀로 취급해 버리는 둘 다 심판해서 불로 삼켜버리는 것이
주님의 간극 벌리기 이다는 거죠
즉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네 짐승처럼 폭력을 행사해 왔다는 겁니다.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십일조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 라고 폭력을 행사했고
강도 만난자를 그냥 지나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율법지키기가 도리어 율법을 어기는
살인방조죄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뭘 해도 죄인이요 뭘 해도 가해자 이다는 거죠
주님 쪽에서 무엇이든지 같다대면 우리는 학대자로 밝혀지지
피해자로 나타나질 않습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주님 쪽에서 먼저 여호와의 불을 먼저 나타내시고 곧 여호와의 팔 이지요
구원이 먼저 떴고
그 뒤에 환난 당한 자를 곧 잃어버린 자를 나타내시고
그 뒤에 학대자를 만들어 내시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해요
율법이 가입된 이유요?
시온에서 왜 율법이 나올까요?
즉 우리는 뭘 해도 자기 의를 쌓는 산당 곧 우상숭배 밖에 안한다는 겁니다.
시온에서 뜨인돌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뜨인돌이 떴다
우리는 무조건 이유 없이 학대자요 가해자입니다.
예수님을 죽였잖아요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옵니다.
곧 의의 왕이
사망을 멸하시고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죽였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말이죠
이 간극
앞뒤 모순 되는 간극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의입니다.
그러니 의는 사망권세를 멸할 줄 모르면
그거 백날 해도 경건의 모양만 갖추지
경건의 능력을 안 믿는 또 하나의 우상숭배 곧 자기 의를 세우는 거다 말이죠
성화론자들처럼 백날 해 보세요 되는가?
도리어 의로움은 거룩은 바로 이 죽음을 흡집내어서
죽음에 삼키운바 된
큰 물고기 뱃속에 삼키운바 된 요나를 건져내는 것이 바로 의로움이다 말이죠
이 의로움이 먼저 떴기에
큰 물고기 뱃속에서 노래를 불러요 요나의 기도
내가 고난 받을 때 주께서 응답하셨고 룰루 랄라
주께서 나를 바다 깊은데 던지셨으며 큰 파도 나를 둘러싸 난 살수 없었네
구원은 여호와께로
가사 맞나 모르겠네
아무튼 주여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라고
하박국 선지자는 어서 불질러 주세요 라는 뜻인데
가짜교회인 사단의 회는 교회 성장의 축복을 달라고 또 여전히
학대자로 삥이나 뜯을려고 헌금내라고 강대상 옆에 큰 글씨 현수막으로
부적 붙이듯이
이게 무슨 교회냐 말이죠 산당이지
오히려 하박국 선지자는 무화과 나무 잎이 없어도 포도 나무 열매 그쳐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한다 라고 하잖아요
이게 부흥케 해 달라는 행함(구체적 보편성)이 있는 믿음 곧 불질러주세요 라는 뜻입니다.,
브로큰 애로우 (기생라합의 행함이 있는 믿음, 한나와 마리아의 기도)
적군 아군 뒤썩여 있을때에
식별이 불가능하기에
그냥 둘 다 불쌀라 버리라 라고 무전기로 폭격요청을 하는 군사용어 싸인입니다.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습니까? 아니 적군 보다 더 폭력적인 것이 아군일줄
하나님이 배신 때릴줄
내 열심이 특심인데 나만 남았다고 아무리 호소를 해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것이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고
여호와의 불로
네 천사로 다 불질러서
북방 바벨론부터 남방 이스라엘까지 다 폭격기로 불질러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평평하게 제로 0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온에서 나온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라는 뜨인돌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거니까 말이죠
이것이 네 짐승이라는 폭력성에 상대적인 더 나은 폭력성인 네 천사의 폭력성입니다.
어차피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사니까
은혜가 왕 노릇하기에 말이죠
우리는 이 정답을 모르고 그 동안 오해 했다 말이죠
이 오해를 거쳐서 나중엔 제대로 정독케 되는 겁니다.
(막 12:23, 개역)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저희가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막 12:2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막 12:25, 개역)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막 12:26, 개역)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막 12:27, 개역)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마 22:2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나면 땅이 요동하는 이유입니다.
산이 깍이고 바다가 다 불타버릴 정도로 말이죠
이 의가 아니면 우리는 네 짐승 곧 우상 숭배 문제를 해결 할 길이 없다 말이죠
죄인 곧 오늘 본문처럼 우리는 뭘 해도 죄인이고 가해자임을 해결할 길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 당하는 자의 자리에 놓는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세우니까
마태복음 후반부에는 졸지에 핍박과 환난 속에 들어가는 권세를 받더라 라는 겁니다.
계시록 일곱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적인 한 세트를 구성해요
가짜 일곱교회인 사단의 회는 뭔가 잘되요 긍정적(보편성)이다 말이죠
아 그런데 여기에 한 세트가 되는 진짜 일곱교회는 부정적(구체적 보편성)이다 말이죠
가난하지를 않나
핍박을 당하지를 않나
죽음에 넘겨지질 않나
이 두 부류의 속성이 교회 내에 둘 다 있다 라는 겁니다.
교회 속의 교회
오늘 본문으로 치면 심판 속에 구원으로써 말이죠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어느 자리에 놓아야 합니까?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안 되고자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섬기듯이
고아 안 되고
과부 안 되고
나그네 안 되는 자리에 놓는
오늘 본문처럼 학대 당하지 않고
속임수 당하지 않는 자리에 놓이는 것이
여호와의 구원일까요?
아니면 여호와의 불은 우리는
학대 당하는 자리
속임수 당하는 자리
환난의 자리에 일부러 일부러 놓으실까요?
이런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구원의 빛이
희년이 비추인다는 겁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고
찾은적도 없는데
이름도 몰라요
아 그런데 부르신바 되도록 하시고
찾은적도 없는데 찾은바 되도록
문제를 풀어서 정답을 내는게 아니라
아까 거꾸로 시간을 앞뒤 바꿔 버린다 했지요
정답이 이미 떴기에
문제지를 찾아 헤매이시는 겁니다.
이 여호와의 불꽃에 딱 맞는 가시떨기 나무
곧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곧 잃어버린 양
이런 자에게 주님의 공의가 덮쳐지는 겁니다.
죽은자 같으나 산자요
없는 자 같으니 있는자로써 말이죠
그래서 다 죽여놓고서 다 불질러 죽이고서
다시 살리시는 의를 펼치시는 겁니다.
이 여호와의 불로
난 즐거워 하리
난 즐거워 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라고
찬양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666의 함량미달의 상대적인 14만 4천명의 찬양자로 말이죠
많이 탕감 받았기에
얼마나 부를 새노래가 많겠습니까? ㅋㅋㅋ
천지삐깔이로 널려 있습니다.
온 우주 넘어서 까지 말이죠.
신나게 십자가의 피 용서만을 노래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지옥 갈자는 어차피 천국 와도 심심해서 미쳐버립니다.
나 돌아갈래 지옥으로
그래서 어차피 주의 나라
여호와의 불의 나라에 못 갑니다.
그 불꽃의 가시떨기 나무가 되기 싫어하니까 말이죠
목적이 다르니까 지 발로 지옥 가고 싶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의 목적성이 전혀 안 맞기에
지옥의 목적성과 딱 맞기에
천국 갈리도 없지만 가봤자
지옥 보내달라고 데모 시위 하니까 말이죠
지 발로 알아서 지금도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이 여호와의 불을 노래하는 자만 모으시는 겁니다.
(시 99:1, 개역)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시 46:1, 개역)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2, 개역)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시 46:3, 개역)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시 46:4, 개역)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시 46:5, 개역)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 46:6, 개역)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 녹았도다』
(시 46:7,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46:8, 개역)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시 46:9, 개역)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시 46:10, 개역)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 46:11,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