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이 안식일을 범하여도 죄 없음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 1- 8)
18-49 제사장이 안식일을 범하여도 죄 없음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 1- 8)
(마 12:1,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마 12:2, 개역)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 12:3,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4, 개역)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마 12:5, 개역)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마 12:6,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7, 개역)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마 12:8, 개역)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2:1, 새번역) 『그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마 12:2, 새번역)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 12:3,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삼상 21:6』
(마 12:4, 새번역)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오직 제사장들 밖에는, 자기도 그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마 12:5, 새번역) 『㉡또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민 28:9』
(마 12:6,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마 12:7, 새번역)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호 6:6』
(마 12:8, 새번역)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인간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
마찬가지로 인간이 말씀을 지킨다는 것을 보면
그야 말로 악마의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런 위선이 따로 없거든요
종교를 보면 그야 말로 악마들 단체예요
그게 국가 아닙니까
조국을 중심으로가 아니라
국가를 두고 서로 서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모습을 보면
다들 미친갱이들만 모여들었다 말이죠
우파나 좌파나 똑같은 놈들인데
아니다 정반대이다 라고 자기들만 몰라요 남들은 다 아는데 말이죠
이런 마귀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면
우리가 왜 이런 마귀들에게 잡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지금 로마 포로 아닙니까
그 속에서 신앙을 지켜보겠노라고
마귀를 이겨 보겠노라꼬
자기 따나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주일성수이다 말이죠
그리고 성전 사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성전을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을 허물자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 되심으로써 새로 출발하자 라고
안식의 주인이 어떻게 안식을 완성하시는지를 보라 라는 겁니다.
안식의 주인은 인자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인자입니다.
자신을 왜 인자 라고 하느냐 하면
저들의 부정함을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에스겔이 인자로써
누구누구의 아들로서
저들의 죄악을 담아야 합니다.
좌로 390일 우로 40일 누워 있어야 하듯이 말이죠
이사야는 발가벗고 3년을 돌아다녀야 하듯이
이들은 바로 예수님이 이런 인자의 모습으로써 행하심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예고편 맛배기 샘플입니다. 실상이 바로 예수님이다 말이죠
누구누구의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란
모든 인간의 부정함을 담아서 인애와 자비로써 예루살렘 성을 완성하시는 겁니다.
즉 안식 곧 온유를 완성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의로 안식일을 지킬려고 하니까
인애와 자비가 나오는게 아니라
도리어 번제와 제사가 나오더라 말이죠
살인이 나와요
이 인애와 자비가 어디서 나오느냐?
예루살렘 성에서 나와야 하는데
거꾸로 번제와 제사가 나오니까
강도의 소굴이 즐비하고
산당이 까가득 차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탈을 쓴 산당이다 말이죠 절간이에요
우상숭배 집단들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번제와 제사입니다
즉 돈입니다. 우상은 돈이 되거든요
하나님과 제물을 동시에 섬기니까 말이죠
자 그럼 오늘은 지난 주에 하나 빠뜨린 느낌이 있어서
나중에 생각이 난 것이 중요하다 싶어서
같은 구절로써 다시 한번 하고자 합니다.
바로 사울왕과 다윗왕 사이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이거든요
(마 12:1, 현대어) 『[안식일의 주인;막2:23-28,눅6:1-5] 그 무렵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날은 마침 안식일이었지만 배가 몹시 고팠던 제자들은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
(막 2:23, 현대어) 『[안식일의 주인;마12:1-8,눅6:1-5] 안식일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가면서 밀이삭을 잘라 먹자』
(막 2:24, 현대어)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막 2:25, 현대어)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ㄱ) 너희는 다윗왕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 어떻게 했는지 읽어보지도 못했느냐? (ㄱ. 삼상21:3-6)』
(막 2:26, 현대어) 『아비아달이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떡을 수 없는 진설병을 먹었다. 그것도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냐?』
(막 2:27, 현대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막 2:28, 현대어) 『그러므로 인자가 곧 안식일의 주인이다.'』
(눅 6:1, 현대어) 『[안식일의 주인;마12:1-8,막2:23-28] 어느 안식일에 예수와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다.』
(눅 6:2, 현대어)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 몇이 말하였다. `선생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거두다니 그건 불법이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유대의 법을 어겼단 말입니다.'』
(눅 6:3, 현대어)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ㄱ) `너희는 성경에서 다윗왕과 그의 신하가 시장하였을 때 한 일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ㄱ. 삼상21:1-6)』
(눅 6:4, 현대어) 『그는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가져다가 먹고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이 역시 불법이 아니었느냐?'』
(눅 6:5, 현대어)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눅 6:6, 현대어) 『[오그라든 손을 펴주시다;마12:9-14,막3:1-6]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그 자리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 하나가 있었다.』
(마 12:3,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삼상 21:6』
(마 12:4, 새번역)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오직 제사장들 밖에는, 자기도 그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마 12:5, 새번역) 『㉡또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민 28:9』
(삼상 21:1, 개역)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삼상 21:2, 개역)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 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삼상 21:3, 개역)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삼상 21:4, 개역)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삼상 21:5, 개역)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삼상 21:6, 개역)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왜 안식일 지키는 것이 살인으로 이어질까요?
우리 마음은 그렇게 호락 호락하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은 티를 팍팍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선악을 아는 일에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이것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그 속내를 나타낸 바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합니다
곧 메시아 다워라 라는 거죠
아니 이미 메시아 인데 메사아 다움이 뭔 필요가 있습니까?
인간에게 검증 받아야 메시아 다 울까?
마귀에게 검증 받을 필요도 없으신 예수님이 왜 시험을 받을까요?
네 맞습니다. 예수님이 검증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마귀가 검증 받는 겁니다.
조국 교수가 검증 받는게 아니라
기레기들이 도리어 검증받은 거죠
이런 메시아가 되어 달라고 하면서
인간들이 요구하는 메시아는 이렇다 라고 하는 겁니다.
곧 인간들의 모든 행동은 바로 이렇다는 겁니다.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주님은 바로 이런 인간의 모습을 깨뜨려 버리시겠다는 겁니다.
경제 속에 주님은 자신의 계시를 집어넣습니다. 곧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말이죠
그리고 종교적인 인간의 악마성에 주님은 자신의 계시를 집어넣습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는 겁니다.
즉 기적 없음 구원 없음입니다.
도리어 심판 뿐임을 아는 자가 도리어 구원받는 겁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인간 속에 주님은 십자가 라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십자가의 정치를 집어넣습니다.
그것이 요번 이사야 서에서 언급될 내용인데
도리어 이번 에스겔이 딱 맞아 떨어집니다.
정치란 간택의 문제요 곧 사랑이죠
그리고 분배의 문제인데 사실상 첩경을 평탄케 하는 제로로 만드는
더러운 자 갇힌자 포로 된 자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정치 곧 거룩한 제사장과 더러운 창녀를 일반화시키는 작업이 바로
인애와 자비인 지난 주였던가요? 지지난주 였던가요 바로 온유입니다.
바로 모세와 구스 여인과의 결혼입니다.
이 온유가 없으면 인간은 쉼을 못 얻고
무한반복의 의문의 반복만 할 뿐이다 말이죠
살인이라는 결과 밖에 안 나와도
또 살인하지 안을려고 또 해요
또 안식일을 지킬려고 해요
(창 4:7, 개역)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왜? 죄를 다스려 보겠다고 나서니까 말이죠
죄가 인간에게 다스려질 죄 이면 그게 죄 이겠습니까?
죄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죄가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이 바로
죄의 소원이 덮쳐지니까
미친 듯이 성화를 할려고 하고
미친 듯이 안식일을 지킬려고 하고
미친 듯이 십의 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죄의 소원이 덮쳐진 줄도 모르고
자기가 깨끗한 줄 알더라 말이죠
그게 바로 사울 왕입니다.
율법을 어긴 다윗을 도와준 아히멜렉 제사장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여 버립니다.
그 동네 사람들
제사장 가족이고 뭐고 다 죽여 버려요
아니 골리앗에게 좀 그렇게 하지?
율법을 어긴 제사장을 도저히 용납을 못하는 겁니다.
어머니께서 조국 청문회와 기자 간담회를 보시고서는
우와 세상이 완전히 미쳤구나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네 맞아요 사울왕은 저 다윗 하나 죽이는데 모든 것을 다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어머니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랬던 다윗이 나중에 사울 왕이 죽고 없으니까
아니 자기가 그렇게 당해 놓고서는 결국 자기가 사울 왕이 되어서
우리야 장군을 죽였잖습니까?
지금은 모르지요 인간은 몰라요
나중에는 다윗 역시나 악마였다 말이죠
망해야 마땅한 죄인이였다는 겁니다.
그렇게 망해야 할
그런데 좌파나 우파나 결국 같은 놈이다 말이죠
선과 악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선을 깨드려야 해요
위선을 깨뜨리면 악이 동시에 나옵니다 곧 살인이다 말이죠
죄를 짖지 않겠다는 그 선한 마음이 도리어 악이다는 겁니다.
그 악을 들통 내지 못하는 의로움은 가짜 거룩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귀 손아귀에 사로잡혀
망하게 된 자를 아무 값없이 용서하시는 그 사랑을 이미 완성했기에
이미 하늘의 예루살렘 성을 완성했기에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는 이 말씀이 떴기에
그 증상으로써
가짜 예루살렘 성전 곧 진짜로 착각했던 그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허물고
삼일 만에 다시 짖는 의로운 예루살렘 성전을 완성하심으로써
이 말씀으로 사는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겠다는 겁니다.
성화론을 지켜서
자기가 말씀을 지켜서
자기가 안식일을 지켜서 사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손 마른 부정한 자 망해야 할 자로 만들어서
그 손 마른자를 고치시는 주님의 인애와 자비로만 사는 자를
안식일의 주인인 인자가 완성하심으로써
어떻게? 안식일을 깨뜨림으로써
왜?
주 종, 주 객이 뒤 바뀌었거든요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즉 주님은 안식일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점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더욱더 견고하게 하러 왔다는 겁니다.
너희는 안식일의 정신 보다 껍데기에 미쳐있다는 겁니다.
주객이 뒤 바뀌었다는 겁니다.
의복을 몸 보다 더 중요시 하고
소유의 넉넉함을 생명 보다 더 중요시하고
음식을 목숨 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번제와 제사를 인애와 자비 보다 더 중요시하더라 라는 겁니다.
(요 5:1, 개역)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요 5:2, 개역)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 5:3, 개역)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요 5:4, 개역)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 5:5, 개역)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요 5:6, 개역)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7, 개역)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8,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 5:9, 개역)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 5:10, 개역)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요 5:11, 개역)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요 5:12, 개역)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요 5:13, 개역)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요 5:14, 개역)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요 5:15, 개역)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요 5:16, 개역)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요 5:17,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5:18, 개역)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5:19, 개역)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20, 개역)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요 5:21, 개역)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한복음은 그야말로 빛과 어두움의 대조 인데
오히려 빛이라고 우기는 자들이 어두움이였고
어두움 취급 받으며 핍박받는 분이 바로 빛인데
이것을 인자 라고
아들 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에서는 아들 이라고 표현된 인자 개념이다 말이죠
똑같은 의미로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절대로 될 수 없는 자가
거룩한 제사장 이였고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바로 철천지 원수인 개같은 이방인 사마리아인 이었다는 거죠
한쪽은 껍데기 지키는데 미쳐 있고
다른 한쪽은 아무리 더러운 자 사마리아인 이더라도
도리어 십계명의 정신인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인애와 자비를 나타내더라 라는 겁니다.
주 객 이 뒤바뀐 거죠
니느웨 백성이 도리어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종말을 구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종말을 구하지 않더라 라는 겁니다.
남방 여왕이 도리어 종말을 구하고
이스라엘은 종말을 구하지 않아요
인자를 구하지 않아요
벌써 와 버리면 안식일 지키는 마일리지를 쌓을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허물어 버리는
종말의 행동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인자가 하시는 겁니다.
이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저들 안식일을 지키는데 미쳐 있는 살인자의 소굴
강도의 소굴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거다 말이죠
이 남겨둔 한 씨
곧 누구 누구의 아들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입니다.
즉 이 누구 누구의 아들에 달려있지
나의 말씀 지키기
안식일 지키기
나의 믿음
나의 신앙 실천 등등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관한 겁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다윗은 알았다 말이죠
그러니 뭘 해도 망해야 마땅한
이유 없이 무조건 심판받아 마땅한 망해야 할 자이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의 처음사랑이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어지는 겁니다.
이 알맹이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이 처음사랑
아름다운 것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라고
주님은 일부러 안식일 날만 골라서 병자를 고치시는 겁니다.
껍데기가 아닌
속 알맹이 곧 처음 사랑을
안식일 지키는 나 라는 종 보다
안식일을 주신
구원해 주신
그 값없이 주신
자유케 해 주신
처음사랑으로 비로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겨주신
안식을 주신 그 예수님의 인애와 자비를 보라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인자의 대신 매 맞으심을 보라꼬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