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17

말도 안되는 놀라운 구원과 허무한 우상 과의 차이 (사 41,14-29)

김 대식 2019. 10. 6. 19:07

말도 안되는 놀라운 구원과 허무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우상 (사 41,14-29)

18-54 시온에게 보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54 말도 안되는 놀라운 구원과 허무한 우상 (사 41,14-2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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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1:27, 현대인) 『도울 자가 온다고 예루살렘에 제일 처음으로 기쁜 소식을 전한 자는 바로 나 여호와이다.』
(사 41:27, 현대어) 『내가 맨 먼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고 나 혼자만이 시온성으로 예언자를 보내어 이 기쁜 해방의 소식을 전하였다.』

(사 41:14, 개역)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사 41:15, 개역)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사 41:16, 개역)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사 41:17, 개역)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사 41:18, 개역)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사 41:19, 개역)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사 41:20, 개역)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사 41:21,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사 41:22, 개역)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사 41:23, 개역)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사 41:24, 개역) 『과연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사 41:25, 개역)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방백들을 회삼물 같이, 토기장이의 진흙을 밟음 같이 밟을 것이니』
(사 41:26, 개역)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사 41:27, 개역)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
(사 41:28, 개역) 『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 한 말도 능히 대답할 모사가 없도다』
(사 41:29, 개역) 『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며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뿐이니라』

(사 41:14, 새번역)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
(사 41:15, 새번역) 『"내가 너를 날이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만들 터이니, 네가 산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언덕을 겨로 만들 것이다.』
(사 41:16, 새번역) 『네가 산들을 까불면, 바람이 그 가루를 날려 버릴 것이며, 회오리바람이 그것들을 흩을 것이다. 그러나 너만은 나 주와 더불어 기뻐할 것이며,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사 41:17, 새번역) 『가련하고 빈궁한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하여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탈 때에, 나 주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
(사 41:18, 새번역) 『내가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겠다. 내가 광야를 못으로 바꿀 것이며,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들겠다.』
(사 41:19, 새번역)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아카시아와 화석류와 들올리브 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을 함께 심겠다."』
(사 41:20, 새번역)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주님께서 이 일을 몸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 41:21,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민족의 신들아, 소송을 제기하여 보아라."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여 보아라." 야곱의 왕께서 말씀하신다.』
(사 41:22, 새번역) 『이리 와서,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보아라.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그것들을 살펴 그 결과를 알아보겠다. 아니면, 앞으로 올 일들을 우리에게 말하여 보아라.』
(사 41:23, 새번역) 『장차 올 일들을 말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들이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을 내리든 화를 내리든, 좀 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모두 놀라며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사 41:24, 새번역) 『참으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가 하는 일도 헛것이니, 너희를 섬겨 예배하는 자도 혐오스러울 뿐이다.』
(사 41:25, 새번역) 『"내가 북쪽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오게 하였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 사람을 해 뜨는 곳에서 오게 하였다. 그가 와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아 이기듯, 통치자들을 진흙처럼 밟을 것이다."』
(사 41:26, 새번역) 『너희 우상들 가운데서, 어떤 우상이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일러주어 알게 하였느냐?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일러주어서, 우리가 '그것이 옳다' 하고 말하게 한 일이 있느냐? 일러준 자도 없고, 들려준 자도 없었다. 우리는 너희 말을 들어본 일이 전혀 없다.』
(사 41:27, 새번역) 『"나 주가 비로소 처음부터 시온에게 알렸다. '이런 일들을 보아라' 하고 말하였다.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냈다.』
(사 41:28, 새번역) 『내가 우상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가운데 말을 하는 우상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우상도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사 41:29, 새번역) 『보아라, 이 모든 우상은 쓸모가 없으며, 그것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일 뿐이요, 헛것일 뿐이다."』
(약 2:23, 새번역)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 / ㉧창 15:6; 사 41:8; 대하 20:7』


내가 여호와인줄 알도록 하겠다 하셨다는 것은
주님 쪽에서 우상과의 차이로써 자신을 나타내겠다는 겁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여호와가 누구인 줄 모른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즉 어느 정도로 모르냐 하면 차라리 모른다 라고 하면
알려 주실텐데
안다고 하니까 더더욱 모르는 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너희는 허락 되었지만 저희는 허락이 되지 않았다 라고 구분해 버리시는 겁니다.

(마 13:11,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즉 방금 어느 정도로 모르냐 라고 했듯이
너희와 저희로 구분했다면
인간 어떤 인간 치고 자기 스스로를 너희 속에 집어넣지 저희 속에 집어넣을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그 어떤 누구도 자기 구원만을 위해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행복해야 한다 라고
말도 안되는 것을 말이 되겠끔 하고자 말이죠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되는 신은 자기를 구원하는 신입니다.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신은 신도 아니지요

그렇게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뿌리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사기에 주님이 넘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실려고
바로 그런 우상성을 노골적으로 끄집어 내어서 한 세트로 삼아서 자신을 그 차이로 나타내십니다.

곧 인생을 의지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사람의 손으로 조작하는 하나님은 바로
놀랍지 않은 구원
말이 되는 구원
그런 구원을 펼치는데 있어서

주님의 구원은 바로 놀라서 기절초풍 하는 말도 안되는 구원을 펼치십니다.
불가능한 구원만 펼쳐요

구원 자체가 불가능한데
다들 말이 되겠끔 사기를 쳐 놓으니까 다들 말이 되는 구원이 당연한 줄 알아요

이스라엘은 그럼 다르냐? 세상에 이스라엘은 다를 줄 알았는데
이 놈들은 이방인 보다 더 못할 정도로 더 심하게 이방화 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더 그래요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 할 정도로
부패와 타락이 더 심하다는 돈에 미쳐 날뛰는 강도의 소굴이다고 걱정을 해요

그것이 오늘 나오는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우상으로 도배를 해 버린 그 시온에서
기쁜소식을 전하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기쁜소식은 단순히 한번 기쁘고 치워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기쁨이 마음 판에 새겨져 버려서
평생을 기뻐서 어쩔줄 몰라 하는 사람으로
누가 보면 계속 히죽 히죽 웃고 기뻐서 춤추는 모습에 다들 돌았구나 라고 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기쁨을 아예 새겨 버리는 식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꺾으신 뼈로 기뻐하는 겁니다.
놀라 자빠질 정도이다는 겁니다.
마음판에 새겨져 버렸으니
지우고 싶어도 못 지워요

이것이 기뻐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바로 남은자입니다.

그래서 이 기쁨 곧 꺾으신 뼈로 기뻐하는
벌써 모순 되잖아요
꺾여졌는데 어떻게 기쁘냐 말이죠
말도 안되잖아요

말이 되는 기쁨이 될려면 안꺽으신 뼈로 기뻐해야 그게 말이 되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우상이라고 단정 하는 겁니다.
마귀를 안 거쳐서 그래요

어떻게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영광이 되냐 말이죠
저주인데? 어떻게 영광입니까
말이 되냐 말이죠

구원은 구원인데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이래요
그럼 그게 무슨 놈의 구원이냐 말이죠
공포이지

(빌 2:12,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이 안 되잖아요?
또 이 말씀을 어떤 목사는 말이 되게 할려고
조심 조심해서 나대지 말고 구원을 이루래요 글쎄
절대로 막살지 않도록 해서 구원을 이루래요

그게 말이 되어야 결국 돈이 헌금이 떨어져요
말이 되게 한다는 것은 돈으로 입금이 된다는 것이거든요
노동의 댓가 이니까 말이죠

구원을 하나의 보상으로 알려주는 식입니다.
믿어 줬으니까 옛따 보상이다 받아라 라는 식의 구원 말이죠
이게 마약입니다. 못 끊어요

길가에 뿌려진 겁니다.

길가 돌짝밭 가시밭은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서도 나오듯이
단 한 개도 인간은 통과 할 수가 없어요

돌짝밭의 부자청년은 근심하고 뒤돌아 갔잖아요
뿌리를 예수님 쪽에 둔 게 아니라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킨 자기 자신에게 두니까
부자청년처럼 어떤 인간도 돌짝밭 아닌 인간이 없는 겁니다.

다들 말이 되는 구원을 이루고자
자기가 자신을 선택하는 식으로 나서지 않는 인간이 없을 정도로
허무 그 자체인 인생을 그 인생을 의지하는 겁니다

아니 인생을 구원시켜서 뭐하게요?
허무를 구원 시키고 싶나요? 허무개그 그 자체죠
안개를 구원 시키고 싶나요? 안개인데 신기루 후 하고 날라가는데?
우상 곧 자아 라는 우상을 구원 시켜서 뭐 하게요? 어차피 이전 것은 다 사라지는데

의문을 구원해서 뭐 하게요 계속 의문의 반복만 하고 마침도 없이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계속해서 돌을 굴려서 뭐하게요?

아브라함 자손 이라고 우기는 유대인을 구원해 본들
의미가 없어요
왜? 의사가 누구인줄 모르는데 백날 건강한 자 구원해 본들 안개를 구원하는 식이다 말이죠

차라리 돌들을 통해서 아브라함 자손을 만들면 그 돌이 예수님의 때를
의사의 때를
희년 곧 꺾으신 뼈로 기뻐하는 기쁨의 때를
두렵고 놀라 자빠지는 기절초풍 하는 때를 
차라리 돌들을 통해서 바라게 하실 것 아니냐 말이죠

돌 보다 더 허무한게 인생이다는 겁니다. 즉 허구 우상이다는 겁니다.
돌 보다 더 못해요
안개를 아까전에 무시했는데 안개보다 더 더 못한 게 인생이다는 겁니다.
개 같은 이방인 이라고 개를 무시했는데 그 정도로 개님 보다 못한 더러운 이방인일 정도로
유대인 곧 이스라엘 도 마찬가지로 돌 보다 못해요

그 인생 의지해서 뭐하게요? 구원해서 뭐 하게요?
절대로 막살지 않으면 그때는 의지 해 볼만 할까요? 구원해볼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을까요?

바로 주님의 새 일은 바로 이 허구와의 차이 곧 우상과의 차이로써
자신의 새 일 곧 자기자신이 정답임을 나타내시는 데 있어서
말도 안되는

두렵고 놀라 자빠지는
꺾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기쁨을
구원을
기쁜소식을 전하는 자를 하필이면 우상으로 가득 찬 시온산에서 보라 라고 소리가 나오고
그 소리가 향하는 예루살렘 곧 엉터리 로
이스라엘이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그 예루살렘에서 기쁜소식을 전하는 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곧 꺾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희년을 말이죠

그것도 우상이 쫘악 깔린 곳에서
그것도 남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으로 도배를 한 곳에서 말이죠

이 얼마나 하나 하나가 얼마나 말도 안되냐 말이죠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도배가 된 상태이질 않나

또 그 속에서 말이 되는 구원이 아닌
말도 안되는 구원을 펼치시겠다고 하지 않나

자기백성 이스라엘이라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말을 들으면 또 몰라
아무도 듣는 자가 없는 그 속에서
새롭게 듣는 귀를 새로 만들어 낸 남은자를 만들어 내어서 펼치시겠다고 하시지 않나
아무도 여호와인줄 모르는 상태로 만들어서 여호와인줄 알도록 하시겠다고 하시니

뭐 하나 이해가 가능한 것은 단 하나도 없는 식이다는 겁니다.

첩첩산중의 불가능 속의 불가능성 뿐입니다.

이것이 두렵고 떨리는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는 없습니다.
매일 매일 새롭게 남은자를 만들어 내시는 겁니다.
어제 전했으니 오늘은 그 자가 당연히 남은자가 되어서 증거할 거야? 그런 말 되는 소리 없어요

모든 보편성 절대성 필연성 동일성 합일성 연합성 다 없애 버리고

모조리 다 구체적보편성 우연성 차이성 단절성으로만 새 일을 펼치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을 거룩 곧 구분 구별 이라고 합니다
즉 성령으로만 하신다는 겁니다.
육의 도움 필요치 않다는 겁니다.

오로지 주님 홀로 자기 자신을 누구이신지를 새롭게 아는 식으로
어제 예수님 알았다 치더라도
오늘 모르면 말짱 도루묵 되겠끔

주님 쪽에서의 공급으로 달린 문제이지
즉 불가능성 
말도 안됨이지

인간 쪽에서 예수님을 믿어주는 식의
가능성
말이 되겠끔 하는 식이 아니다는 겁니다.

이 단절성을 인자가 보여주듯이

주님은 지난 주에 동방에서 나오는 한 왕 곧 고레스를 통해서
구원 곧 말도 안되는 구원을 펼치시는 데 있어서

너희가 짖지 않는 성전을 고레스를 통해서 짖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고레스가 다니엘서의 네 짐승 중의 두 번째 은신상에 해당 된다면
이게 모순 되잖아요
말이 안되잖아요

자 그럼 말이 되게
이스라엘은 그럼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보라 말이죠
본인들이 더렵혀서 파괴 시켰잖아요

이 모순의 간극을 무슨수로 좁히겠습니까?
좁히긴요 그 간극 즉 흔적 홈패임을 그대로 가지고서 기쁜소식을 펼쳐야

이게 말도 안되는 기쁜소식이 되지
말이 되는 기쁜소식이 되면 말이 되는 구원이 되면
자기가 우상(구원의 탐욕)이 되는 겁니다.

남은자는 심판 속에서 나온 자입니다.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나온 자입니다.

이래 이래서 우리는 마땅히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요
죽어 마땅한 자요
진노 당해도 싼 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라고 외치는 자가 남은자입니다.

남겨둔 한 씨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었다고 외치는 자 말이죠
아니 이런 자들이 절대로 막살면 안된다
또는 막살기를 지키자 라는 소리가 나오겠냐 말이죠

종말을 외치는데 지금 이 상황의 행동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 나오겠냐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화목제물이 이미 완료 되었는데?

어딜 속이냐 말이죠

얼마나 구원을 무시했으면 말이죠

꺾으신 뼈를 무시했으면

여전히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 보겠다고 하니

그래서 우상을 거쳐보라고
마귀를 거쳐 보라고

주의 성실하심으로 밤마다 마귀를 붙이시는 겁니다.

죽다 살아나봐야 주여 잘못했습니다 라고 나오듯이
죽다 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여서

땅끝에서 즉 죽음 속에서 끄집어 내시고
애굽왕을 강퍅케 하심으로써 그 갑질 속에서 부르짖도록 만들어서 불러 내시는

이 놀라운 구원
말도 안되는 구원을

탕자는 남은자로써 외치고

반대로 맏아들은 절대로 막살지 않았다 라고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 적 없다 라고
자기 쪽에서 우상성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펼쳤다 라고
자기 의를 쌓았다 라고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서
여전히 우상 곧 허무한 인생을 고수하는 가운데서 펼치심으로써 

이 우상과의 차이로써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시는
이 놀라운 말도 안되는 구원자이심을
오른손을 단독적으로 펼치시는게 아니라
상대적인 원수를 발등상에 올리는 한 세트를 구성해서 
오른손을 펼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