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17

탕자 야곱아 돌아오라! (사 44,21-28)

김 대식 2019. 12. 22. 12:43

18-65 야곱아 돌아오라! 이스라엘을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1-28)

65 탕자야 돌아오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부르시는 목자) (사 44,21-2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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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4:21, 개역)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를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사 44:22, 개역)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3, 개역)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사 44:24, 개역)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사 44:25, 개역) 『거짓말 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점 치는 자를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사 44:26, 개역)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사 44:27, 개역)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사 44:28, 개역)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 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사 44:21, 새번역) 『"야곱아, 이런 일들을 기억하여 두어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종이다. 내가 너를 지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사 44:22, 새번역) 『내가 너의 죄를, 짙은 구름을 거두듯 없애 버렸으며, 너의 죄를 안개처럼 사라지게 하였으니,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내가 너를 구원하였다."』
(사 44:23, 새번역) 『주님께서 이런 일을 하셨으니, 하늘아, 기쁘게 노래하여라. 땅의 깊은 곳들아, 함성을 올려라. 산들아, 숲아,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모든 나무들아, 소리를 높여 노래하여라. 주님께서 야곱을 구원하심으로써,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써, 영광을 나타내셨다.』
(사 44:24, 새번역) 『너의 구원자, 너를 모태에서 만드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바로 만물을 창조한 주다. 나와 함께 한 이가 없이, 나 혼자서 하늘을 폈으며, 땅도 나 홀로 넓혔다."』
(사 44:25,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들의 징조를 쓸모 없게 하시며, 점쟁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드시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서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신다.』
(사 44:26,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 한 말을 이루어지게 하시며, 당신의 사자들이 계획한 것을 이루어지게 하시며, 예루살렘을 보시고는 '여기에 사람이 살 것이다' 하시며, 유다의 성읍들을 보시고는 '이 성읍들이 재건될 것이다. 내가 그 허물어진 곳들을 다시 세우겠다' 하신다.』
(사 44:27,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깊은 물을 보시고는 '말라라. 내가 너의 강물을 모두 마르게 하겠다' 하시며,』
(사 44:28, 새번역) 『고레스를 보시고는 '너는 내가 세운 목자다. 나의 뜻을 모두 네가 이룰 것이다' 하시며, 예루살렘을 보시고는 '네가 재건될 것이다' 하시며, 성전을 보시고는 '너의 기초가 놓일 것이다' 하신다.』


구속, 구원 하시겠다는 말은 심판 즉 쫄딱 망하게 하겠다는 겁니다.
돌아오면 구원해 주는게 아니라

이미 구원했기에
탕자 만들어서, 돌아오는 탕자가 된다는 겁니다.
쫄딱 망하게 해서 돌아오도록 하시겠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고레스를 메시아로 삼으시는 겁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구원자로 삼듯이 말이죠
모욕적인 구원이 되도록 말이죠

안 그러면 자꾸 에스겔 11장의 25명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자꾸 움직이지 못하는 성전에 거룩을, 또는 자기 의로움을 까까득 채울려고 한다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을 괴롭히는 일이요
예수님을 넘어뜨릴려고 하는 짓이 되는 겁니다.

소위 우리 신체 중심으로 생각한 거룩이나 의로움 윤리 도덕 선함 정의를
성전에 꽉꽉 채울려고 하지만
이런 인간의 선하디 선한 의도에 주님은 말려들지 않습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인간의 속임수로 꾀로 사기를 치냐 말이죠

이런 옛 것의 반복은 의문의 반복일 뿐인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유대인의 모습인 겁니다.
바로 처음 아담의 사라지는 삭제 될 것을
지나가는 것을 반복한다 말이죠
이것이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바로
육체의 소욕인 역사 라고 합니다.
시공간을 이런 식으로 채웁니다.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들로 말이죠
자기가 거룩하다고 여기는 것을
주님도 거룩으로 받아 달라는 식이지요

그러나 새 것은 마지막 아담인 살려주는 영으로써
의사로써 환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바로 주의 신 곧 성령 또는 예수님의 마음인 예수님의 영은
우리는 인자로 만들어서 성령을 부으셔서 새성전 곧 움직이는 성전으로써
구원을 펼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 되고 허물어져야 합니다.
곧 인간의 신체입니다.
이런 인간은 주님이 만드시지 창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이 새로 창조하신 몸은 
남은자 곧 인자입니다.
누구 누구의 아들 말이죠

고정적인 과거의 인간이 아니라
비고정적인 새로운 인간상인 인자 곧 
의사 만이 찾아 부르는 환자입니다.

유일한 구원자 이신 예수님만이 부르시는 죄인이 곧 인자입니다.
모든 허물을 그 신체에 담아서
부정에서 심판에서 거룩으로 구원으로 이동 변이 시키는 작업이
이 창조, 이 새 일이 펼쳐지는 것이 인자 플러스 성령이라는 성령의 전인 새 성전입니다.

그래서 야곱아 돌아오라 탕자야 돌아오라 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부르시는 분에게 맞는 야곱입니다.

곧 탕자입니다.

기쁜소식 복음은 오로지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서만 희년입니다.

금가락지 살진소 새신발은 오로지 탕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곧 피 용서입니다.
오로지 도장 도장끈 지팡이만이 이 피용서만이
시아버지 유다에게 딱 맞는
구원의 도장인 겁니다.

그래야 육체의 자랑을 할 수가 없는
멋들어진 구원을 소유했다 라고 자랑을 할 수 없는
오로지 피 용서만 자랑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십자가 라는 심판 만이 구원이다 라니
이 모욕적인 구원을 우리 입술로 자랑케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속임수는 그 대포성이 바로 사단의 회 유대인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교회인 거죠
특히 개혁주의 성화론 뭐 정의사제실천운동본부? 뉴라이트 등등
아 빼먹으면 안되지 촛불 집회 태극기 집회 다 해당됩니다.
속임수입니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꼬시냐 말이죠
속임수 집단인 겁니다.

우리는 또 늘 엉터리 해석을 하기 마련입니다.
왜 앞에서는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라고
억수로 멋들어진 말을 해 놓고서는
왜 이제 와서 탕자로 만들어서 부르겠다니? 이게 말이 되냐 라고 말이죠

그럼 탕자 아닌 놈 나와보세요
도대체 얼마나 성화가 되었길래 성화 성화 외치는지?

마침 세계는 지금 입니까 월드뉴스를 다루는 프로그램이였는데
율법이 강한 이슬람 사회에서
어떻게 해서든 금기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누려볼려고 발악을 하고
또 어떻게 해서든 그 자유를 막을려고 사형까지 집행할려고 발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웃끼지도 않더라 말이죠
이슬람만 그런게 아닙니다
자본주의를 그렇게 욕하는 이슬람 지도자들이
자신들은 자본주의에 쩔어 있어서 돈에 환장해 있다 말이죠
다른 종교 모든 종교 심지어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기는 무슨 놈의 금기 웃끼지도 않지요
지도 못 지키면서 남 보고 지키라니 말이죠

홍콩 시위를 통해서
젊은 청년들이 갑자기 자살을 많이 하더라 말이죠
지래 겁먹은 겁니다.
공산화 되면 어떻게 하냐 라고
공산당도 자본주의 그렇게 욕하면서
자신들은 늘 돈잔치를 벌리는 돈에 미친놈들이거든요

특히 유대교는 유대인들 전체가 돈을 아예 신으로 섬기고 있다 말이죠

그래서 지래 겁먹고 자살을 하고
트럼프 공화당이 집건을 하게 되면
자살율이 높아진다 말이죠
실제로 심리학자가 통계를 수집했다 말이죠

아니 홍콩사람들이 미국 미국 외쳐도
미국 사람들 조차도 
자유의 나라 아닙니까
공산당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공화당이 대통령 당선 되면 자살율이 높아진다는 말은

때려죽어도 나는 모욕적인 구원 받기 싫다 라는 식과 같은거다 말이죠

오늘 본문 다음 내용이 고레스를 메시아로 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구원 시킨다 말이죠
얼마나 모욕적입니까

고레스는 메대 파사의 왕으로써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짐승 중에 두 번째 은신상에 해당되는 우상숭배자요
짐승입니다.

이 짐승으로부터 구원 받는다니 이게 말이 되냐 말이죠

적어도 이스라엘 자기 손으로 독립을 이루고
적어도 자신들의 손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짖고 싶지
이것이 멋들어진 메시아를 맞이하는 제대로 된 신앙이지

어떻게 고레스가 모든 재료 모든 기술자를 다 동원해서
성전을 짖는단 말이냐 말이죠
정작 탕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도록 하시면서 말이죠

이런 구원을 주님은 요나의 표적으로써 보여줄게 없는데
인간들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구원만을 바라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 잎이 무성한 구원을 바라고 있지
무화과 나무 잎이 없으면 나는 여호와를 즐거워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인간의 구원관인 탐욕과 우상숭배이다 말이죠
이것이 성령의 9가지 열매와 원수지간인 육체의 소욕인 음행이다 말이죠

정작 음행은 바람난 아내와 이혼하여서 새장가를 가서
저 더러운 여자와 살지 않겠다는 것이 음행이다 말이죠
아니 음란한 여자와 헤어지겠다는데
앞으로 제대로 된 정결한 여자와 함께 살면서
말씀만을 제대로 지키면서 살겠다는데 왜 이것이 음란이냐 말이죠

문제는 예수님입니다.
베드로를 기여이 탕자 만들어서
소위 고멜과 같은 창녀 만들어서 구원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이것이 싫어서
주님의 부르심에 거부하는 겁니다.
차라리 내 자신이 구원받을 만은 조건들을 아예 갖추어서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키는 식이 되는거다 말이죠

아 그런데 예수님이 전재산을 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서
저 가난한 자와 너 부자가 하나의 몸이 되어라 라고 했을때에

때려죽어도 둘 로 나누어진 몸이 되고 싶지
하나가 되기 싫어서
등돌리고 근심하며 돌아서 가는 겁니다.

이것을 지킬려고 하니 감당이 안 되는 거죠

지킬게 아니라
이 불가능한 율법을 다 완성하신
사랑의 주님과 하나가 되는
탕자로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저 가난한 자와 하나가 되고자
죽기까지 복종하시고자 이 땅에 왔다 라는
이 예수의 마음을 품도록
성령을 부어 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러 왔지
99마리 양은 예수님에게는 필요가 없는 겁니다.

주님 자신이 구원자 되심을 말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 구원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니까 말이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간극 단절을 벌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죽였다가 다시 살리시는 이 간극에 의해

맏아들도 미끄러지고
부자청년도 미끄러지고
다윗도 미끄러졌었고
베드로도 미끄러졌었다 말이죠

안 그러면 예수님을 넘어뜨릴려고자 괴롭게 할 꺼니까 말이죠

고레스를 메시아로 삼지 않아 보세요
하나님을 괴롭게 할꺼 아니겠습니까?
이 십자가의 지혜가
인간의 지혜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불의한 자의 지혜가
하나님의 아들들 이라고 자부하는 자들 보다 더 지혜로우니까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거죠

원수와 한 몸이 될려고 할 턱이 없을테니 말이죠

그러나 저 원수 이방인 여자 그것도 우리 집안을 말아먹을려는
저 며느리 다말과 더러운 이방여자와 한 몸이 되지 않으면
시아버지 유다는 구원 받을 길이 없는 겁니다.

이 거리끼는 걸림돌인 십자가의 지혜가 실제상황인줄은 몰랐던 거죠

움직이는 사랑을
움직이지 않는 사랑 곧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라고
육의 자랑
곧 특별한 공간과 특별한 시간을 장악한
역사를 과시하는 것을

복음은 보란 듯이 깨뜨리시는 겁니다.

비록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 만드시는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들려오는 복음 희년 기쁜소식을

때려 죽어도 고아 안될련다 과부 안될련다 나그네 안될련다 라는 자들인
우상숭배자들과의 대조로써 차이로써
보란 듯이 저들의 허탄한 경영을 까발리시면서
그 심판 속에서 이 심판이 옳았다 라고 외치는

복음의 증인
곧 나의 종 이스라엘
내가 기억하는 야곱을 잊지 않았다

너는 비록 죽었다가 된 탕자가 되었지만
나는 너를 잊이 않았으니
다시 살려내겠다

남들은 다 너를 잊어버렸어도
나는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했다
너를 다시 불러내겠다 라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고
돌무덩에서 불러내시듯이

죽은 탕자야 돌아오라 라고 야곱을 죽여서 다시 불러내시는

이 의로운 목자의 음성을 펼치시겠다 라고

야곱을 탕자 만들어서 부르시는 겁니다.

네 제가 여기 있사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무화과 나무 잎이 없는 그 심판 속에서
진노 속에서
죽음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른 뼈로 고정적으로 남아 있을수 없는

창조주의 부름에 응답하는 피조물로써
움직이는 성전이 될 수 밖에 없도록 하신
그 부르심 앞에 응답할 수 밖에 없는
찬양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새노래꾼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이것이 에스겔 네 천사 네 얼굴 사람얼굴 사자얼굴 소얼굴 독수리 얼굴
곧 이것은 그 어떤 죽음도
사망권세도
음부의 권세도
다 밀어붙여서 평평하게 만드시는 이 주님의 의로운 불로써

아무리 빽빽한 숲의 허다한 죄악일 지라도
다 불태워서
너를 부르시겠다 라는

의의 간극을 펼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어떤 허물도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 앞에서
그 허다한 빽빽한 숲 나무와 같은 죄악도
다 흰눈 같이 말끔하게 다 덮어버리시는

이 십자가가 또렷하다 라는 것을
그래서 이 밀어붙이는 주님의 십자가의 의 앞에서
모든 무릎도 모든 입술도 다 찬양 하는데

귀신들린 딸의 어미도
비록 부르짖은적도 없이 부르신 바 되도록 했고
찾은적도 없는 이들에게 찾으신 바 되도록 하셨거늘

왜 이스라엘은 왜 안 부르짖고
왜 찾지 않냐 말이죠

그래서 주님이 직접 부르시는 겁니다.

야곱아
탕자야
죄인 중의 괴수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기에
내가 의사 됨을 말하기 위해서
내가 구원자 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너는 환자로써 부름 받고
너는 죄인으로써 부름 받아

이 십자가의 피 용서만을 외칠 수밖에 없는

탕자로 부르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부르심이
오직 건강한 자 의인에게는 듣기 싫는 잔소리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지만

구원 얻은 우리 탕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인 기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희년인 겁니다.

이 탕자야 라고 부르시는 이 음성을 성경 말씀 속에 빽빽하게 채워져 있지

번제와 제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성경에는 전혀 없는 ~~하라 ~~하지 말라 라는 고정적인 말을
그들은 그것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 라고

이것을 또 이슬람이 따라 하듯이
율법에 미쳐서
성전에 자기 의로움을 까까득 채우는 겁니다.
이 가짜 성전을 허물고
3일 만에 다시 짖는 참성전으로

이 세상을 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인간을
주님의 십자가의 의로 밀어붙이시고자
야곱을 부르시는 겁니다.

이 의의 전쟁에 이미 승리한 자로써
막 죽어 나가는 막사는 기쁨을 누리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