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17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사 45:20-25)

김 대식 2020. 1. 19. 11:00

18-69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여호와의 되돌아오지 않는 맹세 (사 45:20-25)

69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사 45,20-2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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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오라 내게 오라 쉬게 하리라

(사 45:20, 개역)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가지로 가까이 나아 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사 45:21, 개역)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 45:22, 개역)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며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사 45:23, 개역)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사 45:24, 개역) 『어떤 자의 내게 대한 말에 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사람들은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를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마는』
(사 45:25, 개역)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하셨느니라』

(사 45:20, 새번역) 『이방 나라에서 살아 남은 자들아, 모여 오너라. 다 함께 가까이 오너라. "나무 우상을 들고 다니는 자들과, 구원하지도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다.』
(사 45:21, 새번역) 『너희는 앞 일을 말하고 진술하여 보아라. 함께 의논하여 보아라. 누가 예로부터 이 일을 들려주었으며, 누가 이전부터 이 일을 알려 주었느냐? 나 주가 아니고 누구냐?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나는 공의와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니,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사 45:22, 새번역)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사람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서 구원을 받아라. "내가 하나님이며, 나 밖에 다른 신은 없기 때문이다.』
(사 45:23, 새번역)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한다. 나의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이 거저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모두가 내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모두들 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사 45:24, 새번역) 『'참으로 주님께만 공의와 능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나에게 고백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올 것이나, 그에게 대항하던 자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사 45:25, 새번역)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모두 주 안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영예를 얻을 것이다.』
(빌 2:10, 새번역)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 ㉡사 45:23(칠십인역)』
(롬 14:11,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 ㉥사 49:18; 45:23(칠십인역)』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 11:20, 개역)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마 11:21, 개역)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2,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개역)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인간에게는 자기 마다 자기만이 현실이 있습니다.
그 현실에 목이 매이고 갈급해 하면서 살다 죽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전혀 다른 현실이 있다 라고 말을 걸어 오십니다.
즉 인간 저마다의 현실은 소경의 길이다 라고 하시면서

오로지 자신 만이 길이다 라고 외치십니다.
참으로 당돌하기 짝이 없는 건방진 말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어떤 인간 치고 그런 말을 태어날 때부터 하는 자는 없습니다.
갑자기 궁핍해져서 어쩔수 없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여 조금이나마 벗어나서 조금 나은 현실이 되고자 사기를 치는 경우 외에는 내가 길이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모든 인간은 압니다 자신이 올바른 길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마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소경으로써 어두운 현실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여기에다가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다 라고 아무도 감히 할 수 없는 말을 하시면서 또 하나를 보태십니다.
곧 내가 길이요 그리고 생명이다 라고 말이죠

(요 14: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무도 자기자신을 생명이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에 더 말이 안되고
나의 살과 피를 먹으라 라고 하십니다.

왜? 생명의 떡이니까

즉 이 말은 아까 내가 곧 길이다 라고 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모든 인간은 길을 모르는 소경이다는 거죠
길치 수준이 아니라 잠깐의 길치가 아니라
아예 날 때부터 소경이다는 거죠
즉 자기가 마땅히 갈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자기가 자기의 목숨을 어디에 바칠지 모른다는 거죠.
그러니 기쁨이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기쁜소식 복음이 뭡니까?
드디어 내 목숨을 바칠 것이 생겼다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다가 자신을 생명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은 그저 산 영 곧 처음아담이다는 겁니다.
좀비일 뿐이다는 거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나를 꾀냐 라고 했듯이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것이 없는 자가 처음 아담인 그저 살아있으나 산 것이 아닌
처음 아담 이전 것은 지나가는 삭제되어야할 처음아담이다는 겁니다.

흐릿하고 의문의 것 밖에 없어서 다람쥐 챗바퀴처럼 계속해서 빙빙빙 맴도는 제자리 뛰기만 할 뿐이다는 거죠

그런 모든 인간에게 자신을 생명이다 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고
더군다나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더더욱 말도 안되는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되면 죽잖아요
죽는다 말이죠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죽음이 먼저 걱정이 되어서 죽는다 라는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내가 살인마가 되고
내가 식인종이 되는 나부터 먼저 걱정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아니 누가 [죽는다] 생각을 먼저 하지
아 그렇군요 그래야 비로소 살게 되군요 라고 생각하냐 말이죠
완전 정반대의 극과 극인 하늘과 땅 차이의 생각 아닙니까

야들아 너희들이 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너 죽어
나의 살과 피를 먹어야 비로소 살게 돼 라는
예수님의 취지를 전혀 알수가 없는 겁니다.
세상의 법칙을 벗어나는 소리 이다 말이죠

그러나 사실상 구약 처음때부터 이스라엘은 이 세상의 법칙을 벗어나는 법칙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성화론자나 바리새인이 말하는 율법이 아닙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율법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은 율법을 알 것이다 라고 착각하는데
나 보다 말씀을 더 잘 지키고 행한다 라는 그 약점을 파고 들었기 때문에 속는 겁니다.
그들은 그것을 노리고
마치 법과 법의 틈 새를 노리고 마귀가 독사의 자식들이 말씀을 더 잘 지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껍데기 외에는 갖출 것이 없어여
속 알맹이가 없다 라는 것을 안 들키고자 그 동안 행함의 달인들이 된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행함의 달인이면 일수록 더더욱 의심하셔야 합니다.

믿음 좋기는 뭐가 좋아요 다 사기치는 구라인데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우리 본인이 그런 사기를 쳐 봤던 자들이라서 잘 알잖아요
사도바울 본인이 그 사기꾼의 대가였거든요

그러니 모든 인간이 죽음이다 라는 전제를 깔고서
그 배경 위에서 예수님 자신은 생명이다 라고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안 그러면 너 죽어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다 말이죠

내가 죽음이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고
죽어가는 나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으라 라고는 소식이 얼마나 기쁜소식이냐 말이죠

그러나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막으시는 자에게는
어찌 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저렇게 천연덕 스럽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
어찌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먹으라고 하지?

누가 다 죽어가는 환자인가?
누가 다 심판받는 사형 당하는 죄수인가?

우리 중에 그런자가 없는데 어떻게 자기 살과 피를 먹으라 라고 하지

저 마다의 현실이 있는데 즉 시간과 공간 이라는 역사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몸이 있는데

전혀 이 몸이 알아먹을수 없는 
전혀 다른 현실을 침략하듯이
시공간을 깨뜨리면서
그 동안 얼마나 안식일 지켰냐 말이죠 마치 안식일 지키는 것이
비행기를 타서 마일리지 쌓은 것처럼
시간을 꽉꽉 채웠는데
그렇게 공간을 꽉꽉 채웠는데
그것이 말씀을 지킨 나의 신체인데

아니 전혀 다른 몸을 보라고?
진짜 현실의 몸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는 저 인자를 쳐다보라고?

안 그러면 내가 소경인줄 모르고 옆길로 빠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내가 죽음인줄도 모르고 살아 있다 라고 우길 뿐이지
안식일날 물에 빠진 자를 건질려고 하는 마음이 있냐 말이죠?
강도 만난 자를 도와 줄수가 있겠냐 말이죠

어두움 이니까 소경 이니까 없어서 생명을 못 주는 겁니다.

또 여기에다가 또 하나를 더 보태서
자기자신을 진리 이다 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진리 이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땅의 현실에서는 진리를 문서화 했기에
진리는 가만히 있고
그 문서에 적힌 것을 인간은 진리를 펼쳐 보고 습득해서 실천하는 방식이
이 땅에서 통용되는 진리요 뭐 법 또는 윤리 도덕 등등이 되겠지요 특히 종교라는 짐슴 말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진리 이다 라고
누구 누구의 아들이 
즉 인물이 그 인물 자체가 진리 이다 라고 해 버리면
문제는 그 사람이 시간히 흘러 죽고 난 뒤에는
그럼 진리를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니냐 말이죠

결국 이 말은 인간에게서의 진리란 죽음의 문턱을 못 넘어서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뻔히 알면서 자기자신은 영원히 사는냥 죽지 않고 사는냥
내가 진리 이다 라고 해 버리면

기존의 모든 현실 곧 처음 아담이 형성한 기존의 모든 법칙들은 다 깨어지는 겁니다.
마치 의문의 증서를 책걸이 하듯이 도말해야 하는
쓸모 없게 되는 것이다 말이죠

왜냐하면 더 나은 것이 와 버렸으니까
문서를 찾는게 아니라
그렇게 인간이 움직이고 실천하고 습득하는게 아니라
정반대로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곧 예수님 자신이
인간을 찾아 나서시는 방식인데
그 방식이 바로
진리의 방식이 바로(인간이 진리를 찾는게 아니라
진리가 인간을 찾는 방식이 바로)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겁니다.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 하나님 자신이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라는 주장은
다시 출애굽의 그 사건인
구원사건을 펼치시는데 있어서

우상 곧 애굽왕이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의지하는
심지어 이스라엘 히브리 잡족들도 다들 의지하는

그 현실 외에는 없다 말이죠

그런데 그런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겠다 라고
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라고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라고

그 상황을 다시 만들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물론 똑같이 애굽왕 세우고 똑같이 애굽군사를 깔고
똑같이 홍해 바다를 갈라서 구원하시는게 아니라

앞의 글 에스겔이 갑자기 이삿짐을 챙기고
급히 급히 식물을 먹고
이스라엘 성벽을 뚫고서 포로로 잡혀가는 식으로
출애굽을 재현하듯이
심판을 우상타파를 재현하듯이
그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더라 말이죠

우리만 딸안 구원이 있는게 아니라
우상이 파괴되는 심판이 펼쳐지는 그 속에서 구원이 펼쳐지는 겁니다.
이 구원에 어떤 보탬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는 그 속에서도 원망만 했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여호와의 구원을 안 쳐다 보았고

다시는 저들을 볼수 없게 만들겠다 라고 하시는 말씀은 안 듣고
도리어 저들 애굽군사를 보고서 애굽군사의 창과 칼만 크게 보았지
정작 여호와의 구원을 본적도 없이 구원 받는
그 정도로 아무런 보탬이나
원인 조건을 갖춘 것이 단 하나도
일도 없었음을 보여주시는

(출 14:13, 개역)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사 53:7, 공동)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삼상 12:16, 쉬운)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여러분 앞에서 행하실 큰 일을 잘 보시오.』
(시 91:8, 쉬운) 『오직 여러분은 가만히 서서 악인들이 벌받는 것을 쳐다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 혼자 하셨다는 겁니다 어떻게?
대신 우리의 허물을 담당 하시면서 말이죠

그러니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주님이 죽는 방식이 아니면
우리는 길도 진리도 생명도 없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주님의 죽음을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거든요

십자가를 먹고 마시는 겁니다.
그렇다고 십자가 목걸이 먹지 마시고
십자가 나무를 짤라서 차로 끓여 마시지 말고 말이죠

그것은 또 하나의 우상인 거죠

의미입니다.

인간의 손에 포착이 되고 붙잡히는 십자가는 없어요
그런 진리는 없어요
그러니 모든 종교는 다 거짓인 거죠
인간의 손에 붙잡혀서 종이 문서에 기록이 되어서
인간이 펼쳐지 않는 이상
인간이 그 문서화된 교리를 실천해 주지 않는 이상
손도 발도 없는 멍청이가 되는 겁니다. 그게 우상이다 말이죠
결국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신 인거죠

인간의 손에 절대로 포착 불가능해요
그래서 속을 빡빡 긁어댑니다.
내가 곧 길이요 라고 하신 말씀은
너희는 어두움 곧 소경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은 예수님이 길임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뭐 너가 생명이라고? 요셉의 아들 주제에 자기 살과 피를 먹으라고?
전혀 구약에 없는 표현과 단어가 나오니

받아들일수가 없는 겁니다.
정작 구약은 모조리 다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데
문자 단어가 맞는 것이 없어요

의미만 맞지
단어 문자 껍데기는 단 하나도 맞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단절 그 자체
숨어 계신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나타난 하나님만 믿었지
즉 인간이 믿음 가능한 것만 믿은 우상 플러스 하나님
교리 플러스 실천 만 믿었지

숨어계신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겁니다.

오죽 하면 제자들이 아이고 예수님 그렇게도 눈치 없습니까
그런 말이 바리새인 귓구멍에 들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바리새인을 더더욱 화나게만 할 뿐인줄 모르십니까?

이 말은 예수님 걱정이 먼저 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 먼저 걱정되어서 하는 말입니까?

결국 모든 판단 기준은 자기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그렇게 구성된 것이 바리새인들의 전통 곧 장로들의 유전이고
그런 교리로 길을 인도하니
소경이 아니고 뭡니까

즉 반드시 소경을 들추어내심으로써 그 차이로
자신을 길로 증거하시는 겁니다.
나 밖에 다른 길은 없다
나 밖에 다른 신은 없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리 밖에 없습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라고
즉 이 말은 인간이 믿을 수 있는 모든 우상이라는 우상은 다 끄집어 내겠다
그리고 그 끄집어 들추어낸 우상 하나 하나를 깨뜨리시면서
이제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겠지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현실에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내 숙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우상입니다.
여전히 우상 개념을 모르는 겁니다.
할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깨지는 것 밖에 없어요

뭐 이 소리 듣고도 너가 할 것이 있다고?
너가 할 숙제가 있다고?
오냐 그럼 나 예수가 너의 숙제를 어떻게 깨뜨리는지 보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결국 인간에게서의 다른 신 곧 우상은
자기 자신 밖에 없어요
모든 우상이 인간의 손에서 나온 것이니까 말이죠
그 버릇이 하나님에게 까지 손 대고
그래서 우상과 하나님을 섞는 참으로 대단한 믿음 확증편향의 믿음 아닙니까
또 그 버릇이 예수님에게 까지 손 대고
몸에 좋다 싶으면 뭐든지 몸에 붙여서 도배를 하는 겁니다.

그 몸이 바로 우상이다는 거죠

그 몸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오셨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게로 오라 쉬게 하리라
목 마른 자야 오너라 내가 마시울 것을 주리라
자 나를 마셔라 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에서 나올수 있는 표현입니까?
전혀 다른 현실의
곧 역사를 깨뜨리면서 오는 묵시 라는 현실에서만 나오는 표현이다 말이죠

그러니 선악의 언어로 
성경을 본들 하라 하지말라 밖에 안 보여요

그러나 은혜라는 선물의 언어로 보면
하라 하지 말라가 아예 없어요

먹고 마시는 것 밖에 없어요

어떤이는 먹는 것도 일이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저주 받은 몸이라서 그래요

먹는 것이 일이면 그 사람은 살아 있는게 아닙니다 이미 죽어 있는 거죠
그저 좀비죠
그 정도로 몸이 피곤할 정도로 쉴수가 없는 곤고한 사망의 몸이다는 겁니다.

먹는 것은 일이 아니라
즐거움입니다.

왜 당신의 제자는 손 씻지 않고 먹느냐 라는 자들은
그야말로 먹는 것도 지키는 숙제요 일꺼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먹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면 손 씻는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어요

그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남편이 가정부에게 하는 소리인 거죠

그러니 율법이라는 전남편과 이혼치 않으면
율법의 완성인 사랑과 
사랑이라는 새남편과 결혼치 않으면

매일 매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밖에 없는 겁니다.
지도 못 지는 짐을 남에게 지우고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겁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오히려 전남편과 이혼할 마음이 없어 보이고
정작 개같은 이방인이 새남편과 결혼하고자
돌아오고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정작 하나님의 맹세는 더디 오고 느려터져서 안온다 라고 하고
이 의문의 반복만을 억지로 지키고 말이죠
그러나 개같은 이방인은 즉각적인 한번 나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다 이루어지는 주님의 약속을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이미 이루어진 채로 온 새언약 하나님의 의를 보고 기쁘게 돌아오더라 말이죠

맏아들은 딱딱한 굳은 마음이고
탕자는 이 부드러운 아버지의 마음을 보고
아니 돌아오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즉각적인 사랑이더라 말이죠

하나님의 즉각적인 급하고 가까운 의로움은
바로 죽음이라는 사망 속에서 길을 내시는 겁니다.
과거 애굽때는 눈에 보이는 식의 홍해라는 길의 끊어짐을 바다를 갈라서 길을 내었다면

이제 그런 눈에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직접 사망 권세를 깨뜨려서 길을 내었다 라는 십자가의 죽음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게 된 겁니다.

그러니 출애굽때 보고 믿었던 자의 후손들이
이제는 전혀 그런 눈으로 보이는 기적 따위 하나 없이
믿으라 라고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보여줄때에

누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겠느냐 말이죠

누가 믿었으리요
주의 팔에 뉘게 나타나겠느냐 말이죠

오히려 과거의 그 보고 믿었던 것이 올무가 되어서
전남편이 올무가 되어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더더욱 못 보도록 하게 만들더라 말이죠

이런 이스라엘의 상황에
이런 맏아들의 상황에

그럼 아무도 안되어야 하는데
어라 개같은 이방인은 주님께 돌아오더라 말이죠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더라
곧 탕자가 말이죠

그러니 입이 있어도 유구무언이 되는
토기장이에게 힐문하고 따지고 댓꾸 악플댓글을 달던 것들이
부끄 부끄 부끄가 되도록 만들어 버리니

이 십자가의 지혜가 헬라인 지혜자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고
기적을 바라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맏아들 첫째에게는 십자가의 피 용서가 거리끼는 걸림돌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공든탑 곧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탑을 무너뜨리는
부드러운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탕자에게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겁니다.

바로 이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라는 이 현실을


우상 외에는 다른 현실이 없다고 여기는 인간들에게

밀어붙이심으로써

주님의 의를 펼치시는 겁니다.
아니 이미 다 이룬채로 말이죠

그 증상만 나타날 뿐이기에
이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우리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 외에는
다른 누릴 것이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