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않느냐? (마 17,24-27)
18-81 왜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않느냐? (마 17,24-27)
(마 17:24, 개역)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마 17:25, 개역)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마 17:26, 개역)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마 17:27, 개역)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 17:24, 새번역)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여러분의 선생은 성전세를 바치지 않습니까?" / ㉥그, '디드라크마(두 드라크마)'』
(마 17:25, 새번역)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바칩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주민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들이느냐? 자기 자녀한테서냐? 아니면, 남들한테서냐?"』
(마 17:26, 새번역)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남들한테서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자녀들은 면제받는다.』
(마 17:27,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서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전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 / ㉦또는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그, '스타테르'. 두 디드라크마, 곧 네 드라크마에 해당함』
유대인이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창녀가 아닌 증거가 없어요
날 때부터 창녀 임을 대 놓고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만은 몰라요
날 때부터 소경이기에
그러니 고쳐 달라고 하는 자가 없습니다.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까
오늘날 교회가 다 이래요
아무도 고쳐 달라고 부르짖지 않아요
다들 의인들만, 잘난 인간들 밖에 없기에
모요적인 구원 보다 멋들어진 구원만을 노리고 있는 탐욕만을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베드로가 세금 징수원 곧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로부터 추궁을 당합니다.
너의 선생은 성전세 왜 안내냐 라고
그래서 낼 것이다 라고 하고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도리어 먼저 질문을 하십니다.
세상 임금이 세금을 받을때에 누구로부터 받느냐
임금의 자기 자식한테 받냐 아니면 남으로부터 받냐
남에게 받습니다.
그러면 자기 아들은 세금 내냐 아니면 면제냐 안 내느냐
안 낸다 말이죠
그러나 오해 할꺼 뻔하니까 내도록 하자
물고기 잡아서 입 안에 있는 한 세겔을 내어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한 세겔 곧 베드로와 예수님 두 명의 세금을 말이죠
반 세겔의 의미는
(출 30:11,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출 30:12, 개역)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출 30:13, 개역)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출 30:14, 개역)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출 30:15, 개역)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출 30:16, 개역)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
에 나옵니다.
생명의 속전 이라고 나오는데
반세겔은 곧 목숨 값이 되는 겁니다.
죄악을 씻어주는 성전을 통해서
생명을 보존하라 곧 죄사람을 받는 구원을 받으라 라는 겁니다.
곧 생명의 보존은 성전의 보존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문자적인 해석에 머물러 버리니까
주객이 뒤 바뀌게 되어버리니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이 있어야 하는데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이 있어야 하는 식으로 뒤바뀌게 됩니다.
(사람을 위한다고 하니까 자꾸 인권존중과 연관 시키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인권존중 조차도 주객이 뒤바뀐거죠
몸을 위하여 의복이 있는데 의복을 위하여 몸이 있어야 하는 식의
인권존중이 되어버린 인권존중 운동을 펼치는 놈들을 위하여 사람이 있어야 하는 식이 된)
그 정도로 사람에게 맡기면 다 이래요
멋들어진 배불러 터진 구원을 바라니까 말이죠
하나님과 우상을 섞은 해석 외에는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헐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백날 성전세 바쳐 본들
죄를 씻어서 생명을 보존 하기는커녕
도리어 강도의 소굴이 되어서
생명을 갈취하는 집단이 되어버렸거든요
물론 아직까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라서
성전세를 내라고 물고기 입 속에서 가져오라고 하신다 말이죠
율법을 부수심으로써 폐하심으로써 완성하시는게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심으로써 다 이루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내는 성전세는
이런 죄사함으로 인한 생명보존
생명의 속전을 생각할까요? 아니면
죄사함을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함으로써
성전세 또한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 할까요?
죄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까지는
죄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앞의 글 에스겔 서에서 언급했듯이
왜 독수리 수수께끼를 내시는지 몰라요
수수께끼 풀면 대비할 수 있을까요?
성전세 내면 죄가 뭔지를 알까요? 모릅니다.
여전히 선악으로 모든 것을 해석해요
다른 해석을 할 줄을 모르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들은 죄 사함이라는 성전 보존을 어떻게 해석하는고 하니
자기 의를 쌓는 것이 죄를 사함 받는 원리로 보는 겁니다,
죄 사함 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이단들 있잖아요
구원파
이들 또한 이런 해석이고
다른 정통 이라고 우려 먹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과연 생명 보존을 할까요? 아니면 도리어 생명을 갈취 할까요?
그래서 성전세금 조차도 한 인물로써 와야 합니다.
목숨 값
생명 값이 따로 와야 해요
인간들은 도리어 생명을 갈취하지만
그래서 생명이 없지만
목숨은 없고 껍데기 소유의 넉넉함만 추구하니까 강도의 소굴이 될 수 밖에요
그러니 목숨 값이 오셔서
이 성전을 헐라 라고
삼일 만에 짖겠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왜? 아무도 생명이 없으니까
성전세 바치면 뭐 합니까?
정작 생명이 없는데
그럼 그 동안 뭐 했냐?
문자만 지킨 겁니다 문자만 ~~~~
(딤전 2:6, 개역)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딤전 2:6, 새번역)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대속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꼭 적절한 때에 그 증거를 주셨습니다.』
(딤전 2:6, 쉬운)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증거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는데, 이는 때가 되어 이루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딤전 2:6, 한글킹)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
예수님만이 대속제물로써 목숨값을 바치지 않았다면
아무도 생명이 없어요
남겨둔 한 씨가 아니였다면 벌써 소돔과 고모라 곧 죽은자였다는 겁니다.
그저 좀비이다 말이죠
음식이 목숨 보다 중요치 아니하며
소유의 넉넉함이 생명 보다 중요치 아니하며
의복이 몸 보다 중요치 않는데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16, 개역)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 12:17, 개역)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 12:18, 개역)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 12:19, 개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24, 개역)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5, 개역)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눅 12:26, 개역)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8,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눅 12:29, 개역)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눅 12:30, 개역)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눅 12:31, 개역)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좀비는 거꾸로 되었다 말이죠
그 정도로 배불러 터져 있는 겁니다.
지난 주 녹음에 인생은 슬픔과 탄식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즉 생명이 없어요
생명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간 세상은 죽음 밖에 없다 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말이죠
인간 자체가 바이러스이고 죽음입니다.
죽다 살아본들
또 생명 없는 소유의 넉넉함만 따질거 아니냐 말이죠
트럼프가 갑자기 겸손해 지더라 말이죠
코로나 앞에서 말이죠
그래서 밤에 몰래 진단키트 보내 달라고 문재인에게 연락하더라 말이죠
아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또 배불러 터지니까
방위비를 압박한다 말이죠
자기가 각 주지사들에게 알아서 해라 라고 해 놓고서는
메릴랜드 주지사가 한국의 진단키트를 구입했다고
오로지 자기 만이 칭찬 받아야 하는데
왜 쓸데 없이 돈 들이냐 라고 시비 건다 말이죠
모든 것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왜 내 중심으로 안 돌아가도록 하냐 라고 따진다 말이죠
이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없어요
모든 것이 다 짜증나는 겁니다.
슬픔과 탄식 뿐인 인생에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자신의 목숨 값을 주시는 분이 없기에
죄를 사하시는 외부의 화목제물이 없다 보니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즐거움을 만들어 내어야 하다 보니
돈을 더 끌어 모으는 겁니다.
돈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즐거움 조작했으니 말이죠
그래서 더더욱 힘만 추구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다들 뭐라고 하냐 하면
속담 곧 원인 없는 결과가 되는 겁니다.
천국도 아무나 못가듯이
지옥도 아무나 못 갑니다.
지옥도 원인 없는 결과 이다 말이죠
속담에 트럼프도 대통령 이였더냐?
그 아비에 그 자식 이라는 속담처럼
트럼프가 죽게 되면 다들 잘 죽었다 라고
속담화 된다 말이죠
즉 이 말은
누구 하나 울어 주는 자가 없다는 겁니다.
바로 다음 글 이사야 51장에 나오는 내용이거든요
(사 51:19, 개역)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사 51:19, 새번역)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은 굶주려 죽었다. 이 두 가지 재난이 너에게 닥쳤으나, 누가 너를 두고 슬퍼하겠느냐? 폐허와 파괴, 기근과 칼뿐이니,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 ㉡사해 사본과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과 불가타를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겠느냐?'』
슬픔과 탄식 뿐인 인생에
누가 나를 두고 슬퍼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즉 누가 나를 대신 해서 십자가의 저주를 받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자 이다는 거죠
예수님은 그래서 우리를 의도적으로 망하게 하십니다.
왜? 너를 위해서 우는 자가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죠
의도적으로 탕자 만드십니다 원수
원수 보다 더 쎈 웬수
베드로를 반드시 웬수 만들지 않으면
베드로를 위해서 우는 자를 베드로는 볼 턱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은 성정세 내었다 지켰다 행했다 말씀지켰다만 우길 뿐이지
정작 상한 심령을 못 쳐다 볼 것이다 말이죠
주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출발해서
온 유대와 사라미라와 땅끝까지 주님의 진노가 펼쳐지면
누가 이 심판의 주를 외치면서
너희들 발가벗었다 라고 수치를 가리우라 라고
너를 위해 우는 자를 증거하겠냐 말이죠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나서
이 주의 팔을 구원의 오른손을 누가 외치겠습니까?
많이 탕감 받은 자 아닙니까
웬수입니다.
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은 창녀입니다.
이 창녀로 만들지 않으면
십자가의 복음을 누가 외치겠습니까?
거리끼는 걸림돌을
주의 심판을 누가 증거하겠냐 말이죠
심판 속에서 건짐 받은 자 만이 실감 날것 아니겠냐 말이죠
안 그러면 그 외의 사람들은 다 장사꾼 돈 버는 사기꾼 밖에 안되는 겁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그저 돈 버는 자 밖에 안되요
주의 심판을 증거하는 자가 아닙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 생명의 목숨값을 증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강도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요하다 보니
하나님에 대하여는 부요치 못한 겁니다.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러니 이미 벌써 심판 받았기에 내어버려두사
징계가 없이 그저 돈 벌이에만 몰두하도록 냅뚜신다 말이죠
심판이 없어요 심판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이라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시지만
왜? 성전의 기능은 바로 죄사함입니다.
그러니 그 성전을 유지하는 것이 죄용서를 받은 유일한 구원이 되지만
이제 예수님이 직접 참성전 되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목숨값은 예수님에 의해 다루어지는 겁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목숨이 없는 자 인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는 자 곧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죄 용서를 받는 자입니다.
이 참성전 되신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우리의 목숨은 저 분의 손에 달린 겁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에게 성전세 내듯이 낼 필요는 없습니다.
도리어 주님은 자신의 목숨 값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또 성전세 내라고 사기치는 놈들이 많을 겁니다.
결국 이 말은 아무도 목숨 값을 내는 자는 없습니다.
곧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전 16:22, 개역)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이 목숨 값인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기고자
향유를 부은 여인은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는데 있어서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자인
가룟유다는 왜 땅에
하나님 나라 운동 자금을 쏟아서 허비하냐 라고 대분노를 하고 저주합니다.
(요 12:3, 개역)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4, 개역)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 12:5, 개역)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 12:6, 개역)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요 12:7,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요 12:8, 개역)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 12:9, 개역)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함이러라』
(요 12:10, 개역)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요 12:11, 개역)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한 쪽이 믿게 되면 다른 한 쪽은 그 반대로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 것이
성전세를 통해서도 나타나는 겁니다.
이 성전세로 인해 오늘 본문에는 오해치 않도록 하시고자
세금을 내시지만
이 세금 문제 곧 돈 문제죠 힘 문제 우상 문제는
결국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는
세 가지 죄목으로 인해 십자가의 처형을 이끌어내는데 이용이 됩니다.
그것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내용입니다.
(눅 20:9, 개역)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눅 20:10, 개역)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 20:11, 개역)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눅 20:12, 개역) 『다시 세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눅 20:13, 개역)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눅 20:14, 개역)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눅 20:15, 개역)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눅 20:16, 개역)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눅 20:17, 개역)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눅 20:18, 개역)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눅 20:19, 개역)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눅 20:20, 개역)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눅 20:21, 개역)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눅 20:22, 개역)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눅 20:23, 개역)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눅 20:24, 개역)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눅 20:25, 개역)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눅 20:26, 개역)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곧 세금 거부 라는 세가지 죄목 중의 하나로 말이죠
첫 번째는 자칭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의 왕 이라는 참람죄
하나님의 아들이면 심판 주 이거든요
심판은커녕 도리어 심판 받잖아요
왜? 성전세 곧 목숨 값을 대신 내시니까
두 번째 가이사 에게 세금 거부 로 반란죄 죠
세 번째가 바로 성전 모독죄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짖겠다
성전을 삼일 만에 짖는 자여?
(막 15:29, 개역)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막 15:29, 현대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조롱하였다. `하하! 꼴 좋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막 15:30, 현대어) 『그런 이적을 보일 수 있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목숨이나 구해 보시지.'』
(막 15:31, 현대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도 둘러서서 예수를 조롱하며 `남은 구원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시 70:3, 개역)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
(시 40:15, 개역) 『나를 향하여 하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놀라게 하소서』
(시 40:16, 개역)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1, 개역) 『[다윗의 기념케 하는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 70:2, 개역) 『내 영혼을 찾는 자로 수치와 무안을 당케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로 물러가 욕을 받게 하소서』
(시 70:3, 개역)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
(시 70:4, 개역)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5, 개역)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막 15:29, 현대인) 『지나가던 사람들도 머리를 흔들며 `야! 성전을 헐고 3일만에 짓겠다는 자야.』
(막 15:29, 현대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조롱하였다. `하하! 꼴 좋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니!』
지나가는 사람들 조차도 모욕을 할 정도로
보편적인 죄를 뒤짚어 씌웠다 라는 겁니다.
사실은 자신들의 수치를 대신 거울로 비추어 주듯이
마치 이사야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듯이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꼬 그들은 발가벗은 수치덩어리 이다 라고
이게 수수께끼입니다.
수수께끼 곧 비유는 풀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원인 없는 결과로 그냥 닥치는 겁니다.
이 원인 없는 결과에 더 나은 원인 없는 결과가 뭡니까?
어릴적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을 적에 하신 약속 영원한 언약이다 말이죠
곧 십자가의 피 용서입니다.
이것을 당하는 겁니다.
성전세 조차도 엉터리로 가르쳐준 부모
너를 버린 부모 와는 달리
어릴적에 피투성이였을때에
버림받은 고아 적에 너에게 영원한 언약을 했다 라고
창세전에 말이죠
태어나기도 전에 말이죠
아무도 너를 위해 울어줄 자가 없는 너에게
(죄인이란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무조건 이유 없이 창녀 이다는 겁니다.)
울어줄 자가 나타났다는 겁니다.
(거기에 무조건 이유 없이 목숨 값을 대신 내신 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 울어줄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빠빠빠빠 밧세바 원
빠빠 빠 빠 빠빠빠 빠 우리야 투
빠빠 빠 빠 빠빠빠 빠 꺾으신 뼈 쓰리
이 상한심령을 보라고
쫄딱 망하게 하시는 겁니다.
주여 도대체 당신 누구십니까 라고
죽음 속에서 생명을 보게끔 말이죠
나의 죄를 대신해서 목숨 값을 내어주신 분이 예수님 이시기에
우리 또한 나의 목숨을 기꺼이 주님에게 드릴수가 있는
이 관계
십자가의 피 용서로 맺은 이 관계를
주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곧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지
선악으로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