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9

유다(사자) 나라의 애가(슬픈노래) (겔 19, 1-14)

김 대식 2020. 6. 7. 08:19

19-48 유다(사자)나라의 애가(슬픈노래) (겔 19, 1-14)

이스라엘아,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18,19-32)
에스겔 2019 2020. 5. 30. 07:45
19-47 이스라엘아,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18,19-32)

(겔 19:1, 개역)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겔 19:2, 개역)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겔 19:3, 개역)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겔 19:4, 개역)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겔 19:5, 개역)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
(겔 19:6, 개역)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며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겔 19:7, 개역)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니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땅과 그 가득한 것이 황무한지라』
(겔 19:8, 개역)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겔 19:9, 개역)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서 그 소리로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겔 19:10, 개역) 『네 피의 어미는 물 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겔 19:11, 개역)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서 뛰어나서 보이다가』
(겔 19:12, 개역)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 그 견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겔 19:13, 개역)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바 되고』
(겔 19:14, 개역)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서 그 실과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만한 견강한 가지가 없도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겔 19:1, 현대어) 『[사자의 비유] 너는 이스라엘 왕들의 죽음을 탄식하는 노래를 이렇게 지어 불러라.』
(겔 19:2, 현대어) 『`슬프다 너희 왕들아! 너희 어머니인 이스라엘은 사자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암사자가 아니더냐? 그가 젊은 사자들 가운데 엎드려 제 새끼들을 키우더니』
(겔 19:3, 현대어) 『그 새끼들 가운데 하나가 자라 젊은 사자가 되어 사냥을 배우며 날로 힘이 더해 가더니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었다.』
(겔 19:4, 현대어) 『그러자 여러 민족들이 그 소식을 듣고 몰려들어 깊은 함정에 그 사자를 몰아넣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애굽 땅으로 끌고 갔다.』
(겔 19:5, 현대어) 『그 어미 사자는 다른 제 새끼에게 희망을 걸고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젊은 사자가 되게 하였다.』
(겔 19:6, 현대어) 『그러나 이 사자도 큰 사자들과 어울려 몰려다니며 사냥하는 것을 배우더니 도성으로 들어가서 민가를 덮치고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그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에 온 백성이 벌벌 떨었다.』
(겔 19:7, 현대어) 『(6절과 같음)』
(겔 19:8, 현대어) 『사방의 여러 민족들이 이 사자를 잡으려고 온갖 올가미를 설치해 두고 그의 몸 위로 온갖 그물을 펴 던지고 깊은 웅덩이를 파놓아 마침내 그를 사로잡았다.』
(겔 19:9, 현대어) 『그들은 그를 코뚜레로 꿰고 쇠사슬로 목을 묶어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갔다. 그가 그곳에 영영 갇히는 신세가 되자 이스라엘의 모든 산속에서 다시는 그의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겔 19:10, 현대어) 『[포도나무 가지 비유] 슬프다, 너희 왕들아! 너희 어머니는 물가에 서 있는 포도나무와 같았다. 물이 넉넉한 곳에 심어져서 햇가지가 무성하고 많은 열매가 열렸다.』
(겔 19:11, 현대어) 『튼튼하게 자란 가지들은 왕의 지팡이를 만들 만한 재목이 되었다. 우듬지가 치솟아 올라서 구름사이로 뻗어 올랐다. 그 나무의 가지들이 무성하고 그 나무의 키가 높아서 그 우듬지가 더욱 눈에 띄었다.』
(겔 19:12, 현대어) 『그러나 어느 성난 손길이 그 포도나무를 움켜 잡아 뿌리째 뽑아내어 땅바닥에 내던지니 그 나무가 뜨거운 동풍에 금방 말라 비틀어졌다. 그 나무가 뽑히자 하늘 높이 치솟던 우듬지도 말라 비틀어지고 불꽃에 타버리고 말았다.』
(겔 19:13, 현대어) 『이제 그 나무가 다시 사막에 심어져서 물도 없는 뜨거운 땅에 서 있었다.』
(겔 19:14, 현대어) 『그러자 그 타던 가지에서 불꽃이 솟아 가지와 열매를 모조리 삼켜 버렸다. 다시는 왕의 지팡이가 될 만한 튼튼한 가지 하나도 남겨 두지 않았다.' 이 탄식의 노래는 이스라엘 왕가를 두고 읊은 것이다. 이제 그 왕조가 끝이 났으니 계속 이 조가를 부르는 수밖에 없다.』


사자나라인 유다나라에 대한 애가 곧 슬픔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증거하십니다.
슬프다 이스라엘이여 라고 표현한다는 자체가

(겔 19:2, 현대어) 『`슬프다 너희 왕들아! 너희 어머니인 이스라엘은 사자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암사자가 아니더냐? 그가 젊은 사자들 가운데 엎드려 제 새끼들을 키우더니』

이스라엘이 언약과 무관하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사 암사자란 다윗언약을 기준으로 한 이스라엘 지도자를 두고 말합니다.
즉 다윗 왕 계열을 말하고 있고
젊은 사자란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리고 시드기야 
이 네 명의 왕을 두고 말합니다.

여호아하스 왕은 애굽에 끌려가서 죽게 되고
여호야김은 애굽을 의지하다 바벨론에게 죽게 되고
여호야긴 곧 여고냐는 8살?(역대하) 18살?(열왕기하)에 곧 BC 597년에 바벨론에 포로잡혀가서 평안하게 살게 되고 

(왕하 24:8, 새번역) 『여호야긴은 왕이 되었을 때에 열여덟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느후스다는 예루살렘 출신인 엘라단의 딸이다.』
(왕하 24:9, 새번역) 『여호야긴은 조상이 하였던 것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대하 36:9, 새번역)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여덟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다스렸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에는 '열여덟 살'(왕하 24:8)』

(렘 24:1, 쉬운) 『<좋은 무화과, 나쁜 무화과>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 와 유다의 신하들과 기술자들과 대장장이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잡아 간 뒤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여 있는 무화과 광주리 두 개를 나에게 보여 주셨다.』
(렘 24:1, 현대어) 『[쫓겨난 자들이 더 낫다] 여호와께서 내게 무화과 두 광주리를 환상 중에 보여 주셨다. 그것들은 주님의 성전 앞에 놓여 있었다. 내가 이런 환상을 보게 된 때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곧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유다의 고관들과 대장장이들과 요새를 구축하는 기능공들과 함께 사로잡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어 간 다음이었다.』
(렘 24:2, 현대어) 『그런데 한 광주리에 담긴 무화과는 모두 일년 중에서 맨 처음에 익은 것과 같이 아주 좋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광주리의 무화과는 모두 사람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쁜 것들이었다.』
(렘 24:3, 현대어) 『이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물으셨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무화과 광주리입니다. 한 광주리의 무화과는 아주 좋은 것들이고, 다른 광주리의 무화과는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렘 24:4, 현대어) 『그러자 여호와께서 내게 설명해 주셨다.』
(더 2:6, 현대어) 『모르드개의 선조들은 ㄱ) 120년 전쯤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나라 사람들을 여고냐왕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아갈 때 함께 끌려갔었다. (ㄱ. BC 597년)』

그 다음 왕인 시드기야는 두 아들의 죽음을 보게 되고 다시 자신의 두 눈도 뽑힘 당하고
죽을 때 까지 감옥에 갇혀 살게 됩니다.

이처럼 사자의 자리 곧 다윗 왕 계열의 자리는
다윗 언약에 의해서만 그 의미가 있는 특급 특별한 자리이다 말이죠

세상 왕은 죄악을 저질러도 매가 없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사생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매를 맞음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왕이라는 제도는 인간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 싫어해서 도입해온 이방나라의 왕 제도입니다.

그러니 언약의 사고방식이 아닌
이방나라 곧 우상적인 선악의 사고방식이
이 왕들에게 자리잡게 됩니다.

왕은 어떻게 하면 나라 곧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는 왕 다운 왕이 되는가에만 몰두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여기에 소홀하게 되면 자기 하나만 죽는게 아니라
백성 모두가 몰살하게 된다 말이죠

그러니 오히려 사울왕은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왕 답게 행동하느냐에만 몰두 합니다.
마치 시드기야처럼 말이죠 여호아하스처럼 여호야김 곧 엘리야김처럼 말이죠

어떻게 하면 저 바벨론을 이기지? 왜? 그것이 이스라엘 왕 다운 모습이니까
그래서 애굽과 손을 잡아서 바벨론을 이기든지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 말이죠

여고냐(여호야긴-고니야)도 바로 그런 아비의 악행을 그대로 닮습니다
그런데 3개월 100일 만에 손 때도록 만들어 버리신다 말이죠

여고냐는 사울왕처럼 만드는게 아니라
다윗처럼 왕 자리에서 짤려서 죄인의 자리
곧 요나가 스올의 자리인 바다 깊은 물고기 뱃속의 자리에 놓으심으로써
여호와의 성전을 노래하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그러니 여고냐와 함께 포로잡혀간 모르드개를 통한 에스더를 통해서
새성전을 보고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고자
언약의 완성인 성전(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는)을 보고자
2차 포로 귀환을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를 통해서 펼쳐지는 겁니다.

왜 니가 왕이냐? 나 외엔 다른 신이 없다
곧 나(여호와) 외엔 다른 왕이 없다를 다윗이 비로소 왕 자리에서 내려와서
죄인의 괴수인 자리에서
지난 주 녹음에서 언급했듯이
요나처럼 도망치는 각기 제길로 가는 양 같은 자리에서
예레미야처럼 너가 징벌을 받는 것이 아니니까 옆길로 빠져서
오로지 주님 홀로 징벌을 받는
우리의 죄악을 그가 홀로 대신 감당하심을 보라 라꼬
옆길로 빠지는
각기 제 길로 가는

진짜 왕은 일만달란트 용서의 왕인 당신 뿐이지
7번 남 용서하는 다윗은 왕 축에도 못 낀다 라꼬
옆으로 빠져서 당신만이 옳았다를 외치는 자리가 바로

사자의 자리 이다는 겁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다말을 통해서 알게된 요나의 표적 이라는 정답을
요셉의 뺑뺑이 시험 테스트의 정답으로써 내밀게 된

무엇이든지 땅에서도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 말이죠

(마 18:1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정답은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피 용서
곧 일만달란트의 용서가 해답이다는 겁니다.

율법의 완성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거든요

(롬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9, 개역)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10, 개역)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런데 자꾸 율법을 지키게 되니까
지킨 내가 주체가 되니
또 의문의 반복만 되더라 말이죠

답이 나왔는데
내가 시드기야처럼 저 바벨론을 이길려고 하니
또 의문의 반복으로 뺑뺑이 돌아요
언제 멈출껍니까

답을 못 제시하니까
땅에서 매이니까 하늘에서도 매여서 계속해서 뺑뺑이 돌더라 말이죠

차라리 그냥 여고냐처럼 잡혀가라 말이죠
탁란 하라 말이죠
그게 사울왕처럼 이스라엘 왕 답게 되고자 함이 아닌
다윗왕처럼 이스라엘 왕 자리 주님에게 내어주고 나는 죄인입니다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입니다 라고
요나처럼 저 스올의 자리에서
주의 성전인 답을 외치라 말이죠
니가 언약을 완성하는게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게 아니라
주님이 이미 벌써 다 완성하셨다 말이죠
그 완성을 스올의 자리에서
지옥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에서

너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자
이 죽음의 자리에까지 내려오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이 기쁜소식을 보라 라꼬

다윗 왕이 내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모아 내 눈물 모아 (서지원)이 아니라
오히려 꺽으신 뼈로 기뻐하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이 기쁜소식을 통해서
누가 이스라엘의 왕인지를 외치는
죄인의 자리
용서 받는 자리에서 외치라 라고

언약을 보여주는 왕으로 세운 겁니다.

그런데 젊은 사자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그리고 시드기야는
왕 답게
백성을 구하는 왕 답게
메시야 이런 메시아가 되어다오
백성을 구해야 할꺼 아니가 라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경제 문제 해결사
종교 문화 문제 해결사 (구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정치 문제 해결사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아래 목숨을 건다)

이 마귀의 시험에 주님은 옆으로 빠지신다 말이죠

저거 해결하는 메시아는 멋들어진 배불러 터진 구원이요 메시아다 말이죠 곧 우상이다 말이죠

안식일의 주인은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의 주인이 아니라
안식일날만 골라서 손마른 자를 고치시는 주인으로써
손 마른 자에게만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이죠

배불러 터진 자들의 구원자가 아닌
죄인 중의 괴수에게만 구원자이다는 겁니다.

사자 자리 라는 왕 자리에서 그 배불러 터진 왕 자리에서
어떻게 죄인 중의 괴수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저 손마른자
저 문둥병자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해당 되는 희년
기쁜소식

흑암의 백성
사막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자
개같은 이방인 갈릴리 사람에게만 비추이는 빛을 보라꼬

그러니 왕 자리에서 내려와서 죄인의 자리에서
맏아들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탕자의 자리에서 외치는 자가
바로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써
나 같은 원수도 용서하시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꼬
빛을 외칠꺼 아니냐 말이죠

그것이 다윗언약에 의한 다윗 왕 계열의 사자 자리 라는 위치인데
그 기능을 거꾸로 수행하고 있더라 말이죠

(벧전 2:9, 개역)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새번역)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 ㉣사 43:20; 출 19:5-6; 사 43:21』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고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지 않고
절대로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 가서 십자가에 달려 예수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일, 사람의 일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일 곧 기쁜소식
죽이시기로 작정함을 기뻐하는 이 하나님의 기쁨을 알려고 하지 않겠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그러니 기쁨의 반대인 슬프다 라고 노래하는 겁니다.
예언하는 겁니다.
왜 거꾸로 가냐 말이죠

비록 네 놈다 네 젊은 사자 다 거꾸로 가고 있지만
베드로도 거꾸로 가고 있지만

다윗을 봐서 봐주듯이
한 놈 여고냐만 말이죠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을 건져주듯이

예수님을 생각해서
성도를 봐 주겠다 라꼬
돌이키시는 겁니다.

베드로야 내가 너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즉 이 말은 허구 허상에 속지 않도록
실상을 바라보도록 내 너를 위해 기도했따 아이가
냉큼 오시오 어서 냉큼 오너라
니 나를 사랑하냐 라고

주님이 땅에서 풀어주시는 겁니다.
답을 제시해서
율법이라는 문제의 해답
곧 율법은 우리를 문제 속에 다 가둡니다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이 우상을 이 선악에 시비를 거는 겁니다.
모조리 다 죄인으로 만들어요
거봐 너 못 풀잖아요
니 회개 금식 기도 눈물 백날 모아봐라 되나?

그래놓고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율법의 완성인 사랑-성전-언약완성 다 이루었도다)으로
해답을 주셔서
땅에서의 매임을 풀림으로 바꾸셔서
여고냐처럼 다윗을 봐서 용서해 주심으로써
하늘에서도 풀리게 하시는 겁니다.

그 용서가 어디서 오냐
바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그 사랑에서
값없이 용서하신

값없이 팔렸다가 다시 값없이 속량해주시는
이 사이
이 간극
여기에서 태어난 자가 이스라엘이라는 특이성으로써
이스라엘은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나를 꾀냐 라고
이 십자가의 사랑만을 외치는 자로써

가장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바로 다윗이다 말이죠
원수 중에 원수다 말이죠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 장군을 죽이고 이름없는 아이까지 죽게 만든
가정파괴범이다 말이죠

바로 이 십자가의 사랑을 다 이루셨다 라는 그 증상물로써
다윗은 그런 죄악을 저지를 수 밖에 없도록 했다 말이죠

다른 나라 이방나라 왕에게는 없는 매 징계를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해답이 떳기에
다 이루었다가 먼저 떳기에

그 증상으로써 문제를 못 푸는 죄 아래 갇힌자로써

모든 권력을 다 쥐고 있는 배부른 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외치는게 아니라 기쁜소식을 외치는게 아니라

문둥병자의 자리에서 왕이 졸지에 모욕적인 저 매국노 세리의 자리에서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지옥에서 부르짖음으로써
그 탕자의 죄인의 자리에서 기쁜소식이 되도록 하심은

이미 먼저 기쁜소식이 먼저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죄인만을 부르러 왔다는 겁니다.
의인이 아니라

배불러 터진 자가 아니라

그러니 네 젊은 사자는 배불러 터진 구원을 바랄때에
한 놈은 옆길로 빠져 각기 제 길로 양같은 자로 만드셔서

즉 원인을 없애 버려서

원인 없는 결과로써

심판 하시는 하나님과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심판 당하시는 하나님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 
그 사이에 두셔서

죄인의 자리에 두셔서

주께서 내 주께

(마 22:44, 개역)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막 12:36, 개역)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눅 20:42, 개역)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4, 공동)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으나, 그는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 ㉠시편 110:1.』
(행 2:34, 쉬운) 『다윗은 하늘로 올라가 본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행 2:34, 현대어) 『다음에 내가 인용하는 이 말 역시 다윗이 그 자신에 대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그는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ㅁ) `여호와께서 나의 주 임금에게 이르신 말씀이라. 여기 내 오른쪽에 앉아라. (ㅁ. 시110:1)』
(시 110: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즉 이 원수의 자리에 다윗 본인이 원수로써 죄인의 자리에 놓여짐으로써
주의 구원의 팔을 보게 되는

이것이 요나의 표적
곧 죽음이 생명으로 옮겨지는

이것을 마귀가 거부하고자
십자가를 못 쳐다보도록 하는 거다 말이죠
어떻게 죽는데 어떻게 사냐 말이죠
죽는 것은 죽는 거지 살지 못한다 라꼬
마귀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에 비로소 반응하며 방해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것 말고는
모조리 다 인간 편에 서는 것이 바로 마귀다 말이죠
즉 인간이 믿는 하나님은 마귀 곧 우상입니다.

이 하나님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의 언약완성인 십자가의 사랑을
외치는 자가 바로

비록 껍데기는 왕이지만 속으로는 날로 새로운 죄인으로써
예수님이 진정한 만군의 주 이시다 라고 기쁨이시다 라고 외치도록 만드신 것이

사자 곧 유다 이다는 겁니다.

(창 49:9, 개역)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왕은 자신의 왕 됨을 왕 다움을 지킬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그것은 이방인도 다 한다 말이죠
오로지 저 분이 왕이십니다 라고 외치는 자로써

껍데기 사자가 아닌
진짜 사자 다운 내면을 예수님께서 반드시 만들고야 마시겠다는 겁니다.

그 표현이 히브리서 11장에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
바로 사자 아닙니까 밀림의 왕

(히 11:32, 개역)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 11:33, 개역)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히 11:34, 개역)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 11:35, 개역)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히 11:36, 개역)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히 11:37, 개역)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히 11:38, 개역)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 11:39, 개역)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 11:40, 개역)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분명히 가장 미약한 나라인데
가장 적은 수 였는데

가장 성전 측량의 가장 끄트머리 문둥병자 앉은뱅이 소경인데
세상이 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사자 이다는 겁니다.

이 기능을 우리는 기쁜소식 덕분에 외치도록 되어 있지
값없이 원인 없는 결과로써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하도록 되어 있지

내가 그 일을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나의 성도다움을 지킴으로써 되는
그런 배불러 터진 행함
곧 믿음이 아닌 행함은
오히려 슬프기 짝이 없는 노래가 되는 겁니다.

이미 답은 주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그 답을 우리는 기쁨만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주님 홀로 다 이루신 십자가의 피 용서를 받기만 할 뿐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