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9

너희 열조의 풍속인 우상숭배를 국문 하리라 (겔 20,30-36)

김 대식 2020. 6. 28. 11:52

19-51 너희 열조의 풍속인 우상숭배를 국문 하리라 (겔 20,30-36)

죽은 자를 살리는 안식일(예수라는 인물) (겔 20,10-29)
에스겔 2019 2020. 6. 20. 16:03
19-50 죽은 자를 살리는 안식일(예수라는 인물) (겔 20,10-29)


(겔 20:30,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열조의 풍속을 따라 스스로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좇아 행음하느냐』
(겔 20:31, 개역) 『너희가 또 너희 아들로 화제를 삼아 예물로 드려 오늘날까지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겔 20:32, 개역)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열국 족속 같이 되어서 목석을 숭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겔 20:33,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단정코 다스릴지라』
(겔 20:34, 개역) 『능한 손과 편 팔로 본노를 쏟아 너희를 열국 중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의 흩어진 열방 중에서 모아내고』
(겔 20:35, 개역)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너희를 대면하여 국문하되』
(겔 20:36, 개역) 『내가 애굽 땅 광야에서 너희 열조를 국문한 것 같이 너희를 국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0:30, 현대어) 『그러니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너희는 여전히 조상들과 똑같이 그 지긋지긋한 우상들을 따라다니며 나를 거역하고 있다.』
(겔 20:31, 현대어) 『오늘날까지도 온갖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자식들까지 산 채로 불속에 집어 넣어 제물로 바치면서 스스로 자신을 더럽히고 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그런데도 내가 너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리라고 믿느냐? 나 여호와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하지만 나는 절대로 내게 문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겔 20:32, 현대어) 『[주께서 새롭게 시작하신다] 너희는 보나마나 우리도 다른 민족들과 똑같이 살고 싶다.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섬기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겔 20:33, 현대어) 『나 여호와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걸고 맹세하지만 내가 지금도 너희를 다스리듯이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 내가 얼마나 강한 능력으로 너희를 다스리며 얼마나 무섭게 분노를 터뜨리는지 너희가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겔 20:34, 현대어) 『지금 온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너희를 내가 무섭게 분노를 터뜨려 강한 손을 펴고 팔을 드높이 뻗쳐 세계 만민 중에서 데리고 나와』
(겔 20:35, 현대어) 『광야로 끌어 가겠다. 거기서 내가 너희를 내 심판대 앞에 세워 놓겠다.』
(겔 20:36, 현대어)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데리고 나와 책임 추궁을 하였던 것과 똑같이 이제는 내가 너희를 세계 만방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에 모아놓고 책임 추궁을 하겠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주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인간은 항상 무시 합니다.
물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겨우 주님의 살아계심을 그렇게 인식한다고 우길때는
자기의 존재성의 확대를 염두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따지지

정작 자신의 존재감이 없으면 하나님도 없다 라고 바로 취급해 버립니다.

바로 이런 동일성(합일성 연합성 개방성 일치성-선악과로 하나님과 같이 된)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선으로 여기고
마귀를 악으로 여겨서 악은 멀리하고
하나님은 가차이 두겠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이것이 우상 곧 선악입니다,
인간의 죄는 딱 하나 바로 선악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오니까 그 어떤 누구도 선으로 안 여겼습니다.
도리어 악으로 처단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이죠
그 정도로 인간은 어두운 눈 곧 바이러스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소경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고쳐 달라고 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선으로 여기지
악으로 여기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선악을 깨뜨리시고자
주님의 살아계심은 모든 인간을 죽음으로 곧 심판으로 몰고가시는 겁니다.

이런 우상성은 제사와 번제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즉 제사 예배 번제 말씀실천 율법 지키기 안식일 지키기 월삭 절기 등으로 말이죠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3, 개역)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바로 이런 동일성(곧 선악-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과 같이 되게)에
주님은 차이성(선악에 반대되는 죽는 하나님 심판 당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차이성은 동일성에 반대된 거죠
연합이 아닌 단절로써 말이죠

자 이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 존재성과 동일성으로 합일성으로 추구하던 모든 것이
무효로 돌아가 버리는 겁니다.
안식일 지키기 율법 지키기 모조리 다 소용이 없게 됩니다.

차이성은 존재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기능으로만 작용하게 되니까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그 믿음을 거부하시고
왜? 존재로만 따지니까
존재는 자신의 존재성을 염두한 자기 존재 투사 투영이니
항상 자기에게로 회귀 하니까
결국 자기를 위한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우상숭배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바벨론 포로가 된 이 시점
에스겔 때의 당시에서 조차도
인간의 우상숭배는 멈추어 지지가 않는 겁니다.
도저히 멈출 수 조차도 없습니다.

바벨론 포로가 되어도 자기 존재는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기 존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끌어들여서 자기를 위한 우상으로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의 존재로 그 우상의 하나 일 뿐이니까 말이죠

자기 존재가 멈추어지지 않는 이상
우상숭배도 멈출수가 없는 겁니다.

자 그럼
네 맞습니다 눈치 채셨군요
차이성으로써의 우상과 차이가 나는 복음은
이 우상문제
이 자기 존재성 문제를 멈추는 기능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따지는 방식을 피해서
주님 자신이 자신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시는 방식은 바로
우상과의 차이인

심판으로서만 주님은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지만
늘 성경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할때에
항상 대조가 되는 우상을 항상 한 세트로써 언급하시는 이유는

우리는 이 우상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기에
그런 하나님은 우상과 차이가 없는
결국은 인간 자기 존재성을 기반으로 한 하나님을 생각하기에
반드시 우상개념을 집어넣어서 그 차이로써
주님 자신의 살아계신 기능을 펼치시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성경해석이 다 틀리게 되는 거죠
인간은 항상 해석에 집착하면서 삽니다.
자기 숙제인 거죠.

마치 인간의 뇌는 스토리 텔링을 늘 뿜어내고 있듯이 말이죠
뇌가 계속해서 자기만의 묵시 자기만의 계시 자기만의 말씀을 늘 뿜어내고 있다 말이죠

그런 하나님과 같이 된 인간에 비해
주님은 그 차이로써 그 뇌가 뿜어내고 있는 해석을
곧 스토리 텔링을 늘 차단하는 방식인

심판을 펼치심으로써 자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주체이고 다른 이는 없어요
그런데 인간이 자꾸 자기 원수를 심판 할려고 해요
원수도 없는 것이 인간인데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데 그 하나님이 졸지에 자기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왜 인간에게는 원수가 없는가? 머리가 나빠서 라고 저번 녹음에 한번 언급했는데
그 정도로 다 잊어버리는 겁니다.

왜 주님은 옛날에 언약한 그 약속을 자꾸 언급하시느냐
너희는 잊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또 원수를 생각해 버리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소통을 못합니다.
빨리 잊어버릴 것은 다 잊어버리고
그래야 정신 건강에 좋고 사회 속에서 소통할 수가 있다 말이죠

졸지에 원수가 생겨 버리면
피곤해서 살수가 없어요

아무리 철천지 원수 라고 해도 3대를 못 가요
원수 끼리 또 사랑을 하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ㅋㅋㅋ
잉여는 자기 스스로 스토리 텔링을 늘 항상 만들어 내니 말이죠.
뇌는 늘 스토리 텔링을 뿜어낸다 그 뇌가 같은 나의 뇌이기에
결국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자꾸 과거를 옛날을 언급하면서 자꾸 자꾸 원수 이야기를 하십니다.
오늘 본문처럼 우상이야기를 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자꾸 마귀를 언급하시는 겁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고 있다 라고 말이죠.

그 마귀를 거쳐서 오라 라는 겁니다.
원수를 거쳐서 오라 라는 겁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가 그 원수 짖에 빠져 사는 줄
우상 숭배에 빠져 사는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번제와 제사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 라고 나오는 거죠
그것이 우상숭배요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에서와 같은 자들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너희 열조가 우상숭배했던 그것을
반드시 책임추궁, 국문 곧 심판하겠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인애와 자비입니다.
우상숭배를 멈출 길이 없는 것을 심판하시겠다 라는 거죠
이 심판이 옳았고 이 심판이 바로 인애와 자비가 되는 겁니다.

즉 나의 존재감을 없애 버리는 것이 바로 인애와 자비입니다.

내가 더 이상 없는데
나를 위한
자기를 위한 우상숭배는 이제 더 이상 없게 되는 거죠

그러니 우리는 이 우상숭배의 내막을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왜 이 우상이 곧 마귀가 나의 존재성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몸으로써 같이 동일시 합일시 일치가 되어 있는지
그 내막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이 마귀와 한 몸이 된 일치성을 둘로 나눌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의로
원수된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겁니다.
부정의 부정인 거죠.
종말의 종말

이 하나님의 의가 뭡니까?
인간의 거룩은 죽은 자를 살릴수 없어요
부자청년이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 전 재산을 나눌수가 없는 겁니다.
율법의 완성은 남을 사랑하는 것인데

율법을 지킨 이유가 남이 아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였다는 거죠
그러니 사랑이 없으면 다 울리는 꽹과리 곧 소음이다는 겁니다.

구스 곧 에디오피아
이사야 18장에 언급했잖아요

(사 18:1, 개역)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사 18:1, 한글킹) 『에디오피아 강 건너에 있는 날개로 보호받는 땅에 화로다.』
(사 18:1, 현대어) 『[유다에 온 구스 사절단] 나일강 상류의 ㄴ) 구스는 군인들이 가득 찬 나라이지만 그 시끄러운 무기 소리는 그 나라에 들리는 상엿소리에 불과하다. (ㄴ. BC 701년에 유다를 반앗수르의 동맹에 가입시키기 위하여 구스 사절단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즉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남이 아니라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울리는 꽹과리 곧 무기 힘 권력으로써 네네 맞습니다 우상으로써
자기를 칭칭 감아 도배를 했던 겁니다.
그런 부자청년에게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묻는
어린아이는 절대로 묻지 않는 그 질문
이 우상숭배를 이스라엘 장로들은 자꾸 구원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주님은 자꾸 옛날의 그 언약
즉 심판 우상심판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겔 20:1, 개역) 『제칠년 오월 십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겔 14:3, 개역)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인간은 다 잊어버린

그 원수를 심판했던 그 옛날을 언급하시면서
자신의 살아계심을 언급하시는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인간은 모조리 다 우상을 들고서 자꾸 질문하고
자꾸 구원을 어떻게 하면 얻냐 라고
점쟁이에게 점치듯이
바로 제사죠
예배죠

자기를 지금 보다 어떻게 하면 더 확장하고
더 보다 잘 살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다가옴에 있어서

주님은 그들의 질문을 가로막고
옛날
그 처음자리를 이야기 하십니다.

결국 진짜 제사란

이 심판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양을 제물로 바침에 있어서
그 양의 죽음 속에 들어가는 것이 제사인데

그 양을 제물로 바친 뒤에 남는 그 고기를 탐하는 식으로
모든 인간은 제사에 빠져 있는 겁니다.
즉 우상에 빠진
자기 구원에 빠져 있다 말이죠
인간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는 자기 구원을 위한 행동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함이지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기 위함이 아닌 거죠
부자청년이 전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시는 그 사랑에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복종하지 않고
등 돌리고 근심하고 돌아서 가듯이 말이죠.

제사장 곧 오늘날 목사는 제사장과 다르지만
왜냐하면 더러운 죄악에서 거룩한 신부로 옮기는 기능을 못하거든요

구약 이스라엘도 제사장 기능을 실패했듯이
오늘날 목사는 죄인으로써 주님을 증거해야 하는데
도리어 의인으로써 주님을 증거 할려고
모범이 자꾸 될려고 하니
인애와 자비를 외치는 증인이 아니라
또 역시나 제물로 타다 남은 고기를 탐하고 있으니

마치 지난주 마태복음에서 고자 곧 천국을 위한 고자로써 외치는 은사를 받은 자가 목사인데
거꾸로 해석 집착에 사로잡혀서
자꾸 남근 곧 우상 곧 자기를 위한 구원을 펼칠려고 해요
자꾸 관통할려고 한다 말이죠
해석이란 관통이거든요.

예수님의 족보의 다섯여자가 될 생각이 아예 없고
도리어 남자가 되어서 여자들을 억지로 자기 소유물로 삼을려고 하더라 말이죠
네 맞습니다 교회가 졸지에 목사 개인의 사조직이 된
개인 소유물이 된 거죠.

책임 지면 또 몰라
책임 안 지거든요
이용해 먹고 이혼증서 써 달라고 나와요
얼마나 완악함을 퍼트리는 1호 감염자이거든요 우상숭배를 퍼트리는 자가 목사다 말이죠

고자 곧 천국을 위한 고자로써의 첫사람이였던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다 말이죠

즉 예수님을 위한 자로 태어났던 겁니다.

그래서 고자가 되어야만 했다 말이죠

안그러면 오늘 본문처럼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속에서도
여전히 고자 아님을
건강한 자임을 추구하는
지금은 건강이 안좋아도 언젠가는 건강하겠다는
마치 지금은 죄인이지만 언젠가는 의인이 되겠다는 성화론자들처럼 말이죠

자꾸 고자 아님을 추구할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상이다 말이죠

그러니 자꾸 물으러 와요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꼬

부자청년아 기특하구나 그래 구원자에게 구원 받고파서 묻는구나?
아닙니다.

자기 존재에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또 일치 합체 할려고 한다 말이죠

해석 집착 하듯이 구원집착 구원탐욕이다 말이죠.

도플갱어 쌍둥이(에서와 야곱) 옹고집전

이것을 한마디로 인자 라고 했지요
사람의 아들????????

이 인자는 나를 삭제 시킬려고 온 거다 말이죠
옹고집전에 나의 복사본이 나의 쌍둥이로 온 또 다른 나가
결국에는 나를 삭제 시키는 겁니다.

선지자의 기능도 동일합니다. 인자야 라고 누구 누구의 아들로 에스겔을 표현하잖아요
이사야 에게도 그랬듯이

이 심판만을 펼치는 것이 살아계심이다는 겁니다.

결국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이 주님의 살아계심을 모르는 거죠

죽으라꼬 포로 잡히라꼬 했는데
또 여기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구원은 내가 따 낸다 반드시 내가 이루겠다 라고 나오는데

이것이 시드기야 왕 마지막 20대 남유다왕 곧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럼 반대로 하나님의 의가 덮쳐진 즉 행함이, 다 이루었다가 덮쳐진
여고냐는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하나님의 의가 덮쳐지는 겁니다.

그렇기에 주의 살아계심은 그런 나를 없애버리는 것이

처음 사랑이다는 겁니다.

여고냐는 나를 삭제 당함을 당하게 되고
반대로 시드기야는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만 남게 되니
주의 살아계심으로 인해
우상숭배자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낙인이 찍히는 겁니다.

결국 두 사람 에서와 야곱은 이 쌍둥이
또 여고냐와 시드기야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인 기능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존재를 끝까지 주장하는 자는 진노의 그릇으로써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부정적인 도구가 되고

긍휼의 그릇은 존재를 우기다가 잃어버림 당해서
깨어짐을 당해서 존재에서 기능으로 옮겨져서
존재를 삭제 당하고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천국을 위한 고자
예수님의 족보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말하기 위한
부정적인 다섯 여자가 되는
기능이 되는 겁니다.
남편을 말하기 위한
머리를 말하기 위한 몸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존재를 삭제 당하는
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의 증상물이 되는 겁니다.
그게 인애와 자비 라는 더 나은 제사이다 말이죠

그래서 이 예수님의 제물 화목제물 되심을 보고서는

성전에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그 한 사람은 이 화목제물을 보고서(제사란 무엇인가?)

곧 세리는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하나님의 의(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하나님 본인이 심판당하시는)이 거룩 앞에서 그 영광 앞에서
나는 벌써 심판받아 마땅한 타 죽어 마땅한 자로구나
라꼬 세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야곱처럼 고백을 하는데

반대로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에서와 같은 
바리새인은 저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또 하나님과 자신을 일치 동일시 합체 연합을 하고 있으니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에서와 너무나 사고방식이 똑같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계시록에서는
행한 대로 갚겠다 라는 겁니다.
그냥 행위가 아니기에
여기서 성화론자들의 엉터리 해석을 봐야 합니다.
그들의 행함은 인간의 숙제를 두고 말하고
주님은 종말에서 나오는 행함이기에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즉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제 3일의 간극이 
계시록에서 말하는 행함이다 말이죠.
그 행함대로 갚겠다 라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그냥 신약 단독적으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인 구약에서 언급된 내용으로써 나온 겁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 에스겔에서
반드시 국문 책임추궁하겠다 라는 거죠
우상숭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행한대로 갚겠다 라꼬

(계 2:23, 개역)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계 22:11, 개역)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 22:12, 개역)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행함을 두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 중
바리새인의 기도가 옳아야 합니다.

십의 일조를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토색 삥뜯지 않고

이 바리새인의 일한 대로 갚아준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또 반대로 세리의 기도는 틀려야 합니다.
마치 불의한 청지기는 틀려야 하고
그것을 고자질 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빛의 아들들이 옳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말이죠

(눅 16:8, 개역)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눅 16: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눅 16:10, 개역)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1, 개역)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2, 개역)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 16:13, 개역)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4, 개역)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눅 16:15,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6, 개역)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16:17, 개역)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그런데 거꾸로 세리의 기도를 옳았다 라고 하시고
불의한 청지기를 옳았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들의 행함은 종말의 영에서 나온 행함입니다.
모든 인간이 일반적으로 하는 행함 수고스러움 실천 지키기 등등이 아닙니다.

종말에서 나온 행함 곧 믿음이다 말이죠

이 믿음은 주님이 일방적으로 뒤짚어 씌워서 나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거룩)입니다.

이 거룩 대로 갚아 주겠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거룩이 없다 라고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세리는 비로소
화목제물을 보고서 자신의 죽음
자신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비로소 보게 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의 기도는 화목제물이 없어요
자기의 의를 쌓은 것을 바치는 겁니다.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러니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죽어 마땅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비로소 하나님의 의 되신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지혜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십자가가 옳았다 라고 긍휼히 여겨 달라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하나님의 거룩 십자가 앞에서 나는 마땅힌 죽어 마땅한 죄인이구나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인애와 자비를 쳐다보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고

자신은 죽어 마땅한 죄인
인자 쌍둥이 도플갱어
사라져 마땅한 죄인이고
저 분이 진짜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 이시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가 아니면 인간은 자기가 우상숭배자임을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살아계심 곧 언약 너희가 다 잊어버린 언약을 앞장세우신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한 세트가 되는 우리의 우상 됨이 낱낱이 들통당하는 식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은 건강한 자를 부르러 온게 아니다 말이죠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쳐주소서 저는 환자 병자입니다.
당신 만이 의사입니다 라고 나오는 거죠

그러니 행함 곧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특심이오니 즉 행함이 있다 말이죠
그런데 지식 곧 사랑이
불쌍히 여겨주심이 없다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이 정도로 여호와 자신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며
주님의 살아계심을 펼치심에 있어서 인간은 그 어떤 보탬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한 세트가 되는 우상숭배자로써 드러나는 겁니다.

그럼 그렇게 드러나면 될 것을
그래서 고쳐달라고 해야 될 것을

자꾸 내 손으로 숙제를 하겠다 라고 나서게 되니
도리어 말려드는 겁니다.

자꾸 배신감을 느끼게 되니
열심히 특심인데 나만 남았는데
자꾸 억울하다고 여기니 원망과 원한이 되어서
결국 살인의지를 펼치게 된다 말이죠

오죽 하면 열조의 풍속이라고 표현 되었냐 말이죠
이 말은 뼛속 까지 우상숭배로 도배가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이런 자에게 주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신다 라는 말은
오로지 주여 나 우상숭배자입니다 뼛속 까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
우상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제발 심판해 주소서 제발 긍휼히 여겨 주소서 제발 고쳐주소서 라는

주의 살아계심만을 외치고
상대적으로 나는 죽었구나 라는 말 외에는 외칠 것이 없다 말이죠

그런데 자꾸 자기가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고 다가갈려고 하니
막아버리는 이유를 모르는 겁니다.

자꾸 물 위를 걷게 해 달래요
요나의 표적을 구하는게 아니라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고 있다 말이죠
그러니 뼛속까지 우리는 우상숭배자
뭘해도 우상숭배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살아계신 분으로써
나를 죽이실려고 다가오시는 겁니다.

아니 좀비에 감염이 된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무슨 수로 좀비에서 벗어납니까?
백신은 십자가의 피 용서 뿐인데

피 곧 생명
다른 분의 목숨이 오지 않는 이상

내 목숨 내 감염된 목숨으로는 생명을 이을수 없어요
그저 죽음에서 죽음으로만 이을 뿐이다 말이죠
지 혼자만 죽이면 되지 남까지 감염시켜가면서 말이죠

남을 사랑하고자 율법 지키는 인간이 없잖아요
그저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하는 우상숭배 밖에 없어요
지만 지옥 가면 또 몰라

남까지 지옥에 갈려고
자기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게 가로막는 이것이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 아닙니까

마귀 자식이라고 아주 아주 심한 욕을 했는데
사실은 그 당시 가장 존경받는 자에게 했기에
욕 다운 욕의 기능이 되는 겁니다.

원래 욕 먹어도 싼 자에게 하는 독사의 자식이 아닙니다.
아무도 상상도 못했던 가장 존경 받는 자에게 한 욕이다는 거죠

그 정도로 우리는 뼛속까지 친마귀적인 친 우상적인
아예 벗어난다는 상상 조차도 못할 정도로

바로 그런 마귀만을 상대로 하시는
주의 살아계심이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