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왕의 점괘와 유다백성 그리고 거짓선지자 (겔 21,18-23)
19-56 바벨론 왕의 유다 침략 점괘와 유다의 거짓선지자 (겔 21,18-23)
성전을 치시는 여호와의 진노의 칼 (겔 21, 1-17)
에스겔 2019 2020. 7. 26. 09:28
19-55 성전을 치시는 여호와의 진노의 칼 (겔 21, 1-17)
(겔 21:18,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1:19, 개역) 『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곧 성으로 들어가는 길 머리에다가 길이 나뉘는 지시표를 하여』
(겔 21:20, 개역) 『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에 이르는 길과 유다 견고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을 그리라』
(겔 21:21, 개역)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 점을 치되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겔 21:22, 개역)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으므로 공성퇴를 베풀며 입을 벌리고 살륙하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베풀고 토성을 쌓고 운제를 세우게 되었나니』
(겔 21:23, 개역) 『전에 그들에게 맹약한 자들은 그것을 헛점으로 여길 것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겔 21:18, 현대어) 『[바벨론 왕의 칼]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겔 21:19, 현대어) 『`너 사람아, 바벨론 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올 만한 두 길을 그려 보아라. 다같이 바벨론에서 시작되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다 방향 표지판을 각각 만들어 세워라.』
(겔 21:20, 현대어) 『한 길은 암몬 백성의 수도 랍바로 가는 길이요 다른 길은 유다의 한가운데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다.』
(겔 21:21, 현대어) 『바벨론 왕은 이 갈림길에 이르러 점을 쳐서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그는 전동에 화살들을 담아 흔들고 수호신 드라빔에게 물어 보고 희생제물의 간을 잘라 그 형태와 무늬를 살펴보면서 점을 쳐서』
(겔 21:22, 현대어) 『자기의 오른편 길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가라는 점쾌를 얻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진군할 결심을 세우고,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진격의 함성을 외치며 쳐들어와 예루살렘 도성 둘레에 장벽을 쌓고 그 성벽을 향하여 공격 진지를 구축하고 성문마다 공성추를 설치할 것이다.』
(겔 21:23, 현대어) 『그런데도 예루살렘 사람들은 망상에 빠져서 그런 점괘를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장담하는 거짓 예언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벨론 왕의 점괘는 옳다. 예루살렘의 죄악을 폭로하여 그 백성이 모두 잡혀 죽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겔 21:23, 새번역)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이것이 헛된 점괘로 보이겠지만, 이 점괘는 예루살렘 주민에게 자신들의 죄를 상기시킬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잡혀 갈 것임을 경고할 것이다.』
(겔 21:23, 공동) 『예루살렘 주민은 나의 맹세만 믿고 그 점괘가 틀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주민이 죄가 있으므로 잡히게 되리라는 점괘이다.』
(겔 21:23, 쉬운) 『바빌로니아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자들에게는 이것이 헛된 점괘로 보이겠지만 바빌로니아 왕은 그들의 죄를 기억나게 해 줄 것이며 그들을 포로로 잡아갈 것이다.』
(겔 21:23, 킹흠정) 『그것이 그들 곧 전에 서약을 맹세한 자들에게는 눈으로 보기에 거짓 점괘 같을 터이나 그는 그 불법을 기억하리니 이로써 그들이 사로잡히리라.』
(겔 21:23, 한글킹) 『그것이 맹세를 서원한 자들에게는 그들의 목전에서 거짓 점괘가 될 것이라. 그러나 그는 그 죄악을 기억하여 그들을 잡으리라.』
(겔 21:23, 현대인) 『전에 그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한 자들은 그 점을 엉터리 점으로 생각할 것이나 그는 그들의 죄를 상기시켜 주고 그들을 사로잡아갈 것이다.』
23절에 현대어 번역이 특이해서 제목에 거짓선지자까지 언급했습니다
다른 번역들 보다 거짓선지자를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죠
거짓선지자란 인간의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로 이런 거짓선지자와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바벨론 왕의 점괘 또한 이 거짓선지자의 마음과 합하도록 되어 있는 거죠
그러니 거짓선지자와 바벨론 왕은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저런 거짓선지자와 바벨론과 다르다 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취지입니다
저들과 다른게 아니라 너무 너무 저들과 똑같다 라는 겁니다.
역시나 우리 또한 저런 거짓선지자와 바벨론 왕의 사고방식과 똑같다 라는 것을 말이죠.
다음글 마태복음도 똑같습니다.
(마 20:20, 개역)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5, 개역)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5, 현대어) 『그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방인이 왕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을 내리누른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두 아들의 어미가 예수님께 하나는 좌편 하나는 우편의 자리를 청하면서 절을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을 섬긴다 라고 했나요?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8, 새번역) 『그러나, 방탕한 여인아, 이제 너는 이 말을 들어 보아라. 네가 평안히 앉아서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나는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식을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였지만,』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우리 두 아들이 높은 자리에 앉을수 있다면
어미는 목숨까지 바치겠다 라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
쓴잔을 마시겠따 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오늘날 교회 목사들이 얼마나 칭찬을 하면서 설교하겠냐 말이죠
그런데 이런 마음들이 바로 우상에서 비롯된다 라는 겁니다.
선악 곧 하나님과 우상(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인데)을 섞은
우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라는 겁니다.
바벨론 왕의 점괘를 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알려주시는 겁니까
아무상관도 없는 남의 일인데
다들 저런 마귀들도 주님이 일일이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벌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준다 라고 해석을 합니다만
바로 그런 해석이 우상적이다 라는 겁니다.
나의 쓴잔을 마실수 있느냐 네네 마실수 있습니다 라고 어미가 답을 해요
(마 20:22,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 20:23, 개역)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4, 개역)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 20:22, 새번역)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마실 수 있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또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가 첨가되어 있음』
(마 20:23,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마 20:24, 새번역)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에게 분개하였다.』
우리들 현재 우리
이글을 읽는 분 곧 저를 포함한 여러분 또한 네 마실수 있다 라고 답을 할 겁니다.
그렇게 답변을 해 놓고 우리 또한 제자들이 두 형제에게 분개하듯이
우리 또한 분개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두 아들의 어미처럼 무엇을 구하는 지도 모르는 어미처럼 뭘 구하는지도 모르고
또 쓴잔이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네 마실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고
또 분개를 한다는 점에서
우리 또한 이들과 한치도 벗어난 모습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을 지적하시는 것이 비유요 하늘나라요 예수님 곧 주의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침략하는 자의 것이다 라고
우리가 가나안 땅 점령하듯이 점령하는게 아니라
천국이 우리를 침략해서 정복해서 나라는 자아를 없애는 것이 천국이다는 거죠
바로 예수님이 지금 우리 인간을 정복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침략하고 있다 말이죠
바벨론 왕의 점괘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정복하는 새 일, 주의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침략이 뭡니까? 이스라엘 없애는 겁니다.
그 그릇 속에 보배 곧 약속이라는 언약만 뽑아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으로 피 발라 놓은 그 피만 뽑아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자 이런 입장이 우리의 입장과 동일하다면
여기에 동의할 인간 즉 이스라엘 즉 오늘날 교회는 없어요
바로 이렇게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첫사랑의 자리를 마련하고자(성령이라는 처소)
마귀 바벨론 왕을 동원 시키는 겁니다.
베드로가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 라는 배불러 터진 멋들어진 구원인 우상을 깨뜨리기 위해
마귀를 동원해서 예수님을 세 번 닭 울기전에 부인토록 만드시는 겁니다.
만약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다
끝까지 예수님의 죽음에 끝까지 따라갔다
이것이 인간들의 신앙이라고 우기는 성화론이거든요
이래 되면 지옥 갑니다.
제발 죽지 말라고 제발 속지 말라고
누가 십자가가 이렇게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속이냐 라고
제발 지옥가지 말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이런 십자가의 피 흘리심 이라는 새 일 새로움을 무시하고
헌 마음으로 십자가 필요 없이 주를 위해 죽겠다 라는 사고방식이 바로
속임수 임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바벨론 왕을 동원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런 사고방식을 유다도 똑같이 가지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거짓선지자들까지 너희들이 잘도 용납하고 있구나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바로 앞부분에서 주님은 이스라엘 장로들의 기도를 막으신다 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현재 지금 어려운 상황을 보다 좋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옛언약을 기억하시는 겁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는 겁니다.
우리 보고 기억하라 제발 좀 기억해 달라고 요구 안하십니다
기억에 없으니 기억해 본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태어날 때 무녀의 자식으로 태어나(바로 저런 어미의 마음처럼, 오늘날 모든 어미처럼)
바로 길가에 버려진 핏덩어리를
주워와서 맹세 언약을 맺으셨다 라는 겁니다.
태어난지 하루도 안 된 아기때를 기억하는 자 없어요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말이죠
기억한다고 우기는 놈이 가끔 있던데
주님의 약속을 말하는 놈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자기 밖에 몰라요
아무리 교회 다녀도
나를 삭제 해 달라 나를 깨뜨려 달라 라고 기도하는 자가 없듯이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집에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 와서까지도
내 아들을 높여 달라 라는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지
오호라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하는 자
목마른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을 붙이시는 겁니다.
바벨론 왕이 점괘를 보고 이스라엘을 치도록 말이죠
(겔 21: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 쪽으로 돌리고, 그 곳의 성전을 규탄하여 외치고, 이스라엘 땅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겔 21:20, 새번역) 『칼이 암몬 자손의 랍바로 갈 수 있는 길과, 유다의 견고한 성읍인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그려라.』
(겔 21:21, 새번역) 『바빌로니아 왕이 그 두 길이 시작되는 갈림길에 이르러서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아보려고 점을 칠 것이다. 화살들을 흔들거나, 드라빔 우상에게 묻거나, 희생제물의 간을 살펴보고, 점을 칠 것이다.』
(겔 21:22, 새번역) 『점괘는 오른쪽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을 허무는 쇠망치를 설치하고, 입을 열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며, 전투의 함성을 드높이고, 성문마다 성벽을 허무는 쇠망치를 설치하고, 흙 언덕을 쌓고, 높은 사다리를 세우라고 나올 것이다.』
(겔 21:23, 새번역)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이것이 헛된 점괘로 보이겠지만, 이 점괘는 예루살렘 주민에게 자신들의 죄를 상기시킬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잡혀 갈 것임을 경고할 것이다.』
예루살렘 주민이 이것이 거짓된 점괘 라는 것을 알아요
왜 하나님을 믿는 자신들의 신앙을 내세우니까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런 신앙 또한 바벨론 왕의 점괘와 뭐가 다르냐 라는 겁니다
이단들을 흔히들 잘 비판해요
이단 끝이 다르다 라고
바로 그런 사고방식이 역시나 이단이거든요
끝이 다른게 아니라 처음이 달라요
처음이 나로 출발하지 않고 예수님으로 출발하거든요
끝이 다르다 라고 자기가 그 끝을 마련할려고 해요
손떼라 성령 곧 종말의 영 끝의 영이 마련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라고
모든 인간의 손을 떼게 하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시나 성화론자들처럼
바벨론 왕 점괘를 보듯이
하나님을 점괘 보듯이 찾아오고 충성봉사하고 말씀실천하는 방식에서
손 떼게 하는 처음자리로 몰아가시는 겁니다.
바벨론 여자들이
세배대의 두 아들의 어미처럼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모욕적인
저런 저주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하는 마음이 우상이기에
주님은 반대로
주의 이름은 반대로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에서
이 자리에 가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누구 누구의 죽음 이라는 새로움을 보라 라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로마의 식민지 자리에 있습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어린아이 자리 곧 죽은자의 자리에 있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조건을 갖추었다 라고 자동적으로 새로움을 알까요?
그것 조차도 또 조건이 되어버린 겁니다.
마치 지난주? 지지난주의 베드로가 부자청년이 못 버린 전재산을 나는 버렸따
그리고 남도 아닌 예수님을 따랐다
뭘 주시겠습니까 라고 보상을 바래요
보상
아직도 배불러 터졌구나
전재산을 부자청년은 못 버렸지만
나는 부자도 아니면서도 다 버렸다
이것이 졸지에 우상적인
자기 의를 세울려고 하지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에 복종하냐 말이죠
하나님께 열심은 있다고 우기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사랑, 십자가의 피 용서=모욕적인 구원)을 싫어하더라 말이죠
처음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잃어버린 자리는
내가 만들면 그거 자기 의를 세우는 것 밖에 안되요
여전히 하나님의 의에 복종 안 할려는 완악한 마음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다들 그런 마음에서 보상을 바라고 있으니 말이죠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라?
에이 나 식인종 아니다
그 정도로 나쁜놈 아니다 라고 우긴다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복종 안하잖아요
베드로 보세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반드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라고
절대화 했는데 바로 무너집니다 3초도 안되어서 말이죠
필연성 절대성은 너무 너무 허무하게 무너지기 쉬워요
바위처럼 단단한 것이면 것일수록 더더욱 완악해지는 겁니다.
차라리 나는 갈대처럼 수시로 움직이는 이랬다 저랬다 라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성령이 부서뜨려서 수시로 움직인다 라고 고백해야 할 판국입니다.
바벨론 왕이 점괘를 보는 것이나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러 오는 것이나
바리새인이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에서
나는 저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았다 라고 하나님 절대성을 붙잡았다 라고 감사하다고
십의 일조를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이 절대성을 우길때에
그 우기는 마음이 우상이듯이
그것을 막는 것이 바로 진짜 새로움 곧 하나님의 죽음인
하나님이 심판자 이자 하나님이 심판당하는
하나님의 이중분절 이동이
움직이는 사랑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니까
고정된 것은 썪거든요
이 새로움 앞에서
자신은 헌 것 마땅한 이전 것은 지나가야만 하는
헌 것임을 세리 매국노 세리는 이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다 무너지는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음을
심판주를 제대로 만나서 고백하더라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 심판 할려고 바벨론 왕의 점괘 까지 하나님의 뜻에 움직이듯이 말이죠
이스라엘도 알아요
거짓 점괘인 것을
주변의 모든 나라도 주님의 뜻대로 움직임을
그런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뭐 합니까
그런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바로 우상인데
그 하나님이
이 인자 에스겔의 하나님과 다른데
거짓 점괘 라는 것도 알고
주님의 뜻대로 주변나라가 움직인다 라는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알아도 소용없는 이유는
본인들이 바로 그런 점괘 보듯이 하나님을 찾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니까
우상의 주권사상을 믿었던 겁니다.
본인들이 거짓 점괘만을 본 겁니다.
교회 다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실천하는 성화를 추구하고
이웃사랑 실천하고 봉사하고 이 모든 것이 점괘 보는 것이다 말이죠
뭘 해도 우리는 죄 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이 이스라엘을 처음자리 라는
예수님의 죽음의 자리로 몰아가시는 이유는
주님 본인의 약속의 성취하기 위함인 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그 유명한 사건
유명하다고 해서 멋들어진 구원이 아닙니다.
다들 점괘치듯이 다 그렇게 해석을 해 놓고서는 다시는 안 봐요
다시를 돌아갈려고 하지 않는 이스라엘처럼 말이죠
오히려 모욕적인 구원이기 떄문인 겁니다.
에스더 라는 아름다움이 권력 보다 더 권력적인
죽음 보다 더 죽음인 제대로 된 죽음이거든요
아무도 안 구해요
자기 이쁜것만 추구할 뿐인
(마 20:25, 새번역)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마 20:25, 개역)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집권자의 갑질 깡패 짖을 하고픈 겁니다.
이런 속임수 속에 살다 보니
서로 권력을 추구하고픈 겁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권력으로 말이죠
마귀의 세 번째 속임수가 바로 정치 모든 세상을 무릎 꿇게 만드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처럼 말이죠
남자만 그런게 아니라 여자도 권력 욕 바로 아름다움으로 속임수를 펼치듯이 말이죠
그런데 진짜 아름다움은
바로 그런 죽음의 세계에 뛰어들어
그 죽음을 없애는
이사야 이오팔 바로 하나님의 의(거룩)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인 인간의 거룩 인간의 성화됨이 아니라 말이죠.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새번역)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사랑은 두려움이 없다 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자꾸 건드리고
죽음에 시비를 걸어서
죽음을 없애고자 죽는 하나님의 의 이거든요
이것 외에는 다 속임수 곧 사망입니다.
이 사망을 없애고자 죽음에 뛰어드는 죽음입니다.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래서 하만의 점괘에 의해서 죽는 날을 부림절을 마련하는 겁니다.
죽는 날이 사는 날입니다.
새로움
곧 하나님의 죽음을 보라꼬 말이죠
이 하나님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이전 것은 다 지나가는 새 것(예수 안)을 보는 겁니다.
(사 65:17, 개역)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