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내려간 키가 높았던 앗수르 (겔 31,10-14)
19-79 지옥으로 내려간 키가 높았던 앗수르 (겔 31,10-14)
하나님의 의 (높은 자 낮추시고 낮은자 높이시는 공백)
(눅 1:52, 개역)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 1:53, 개역)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사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 2:11, 개역)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사 2:1, 개역)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사 2:2, 개역)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사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 2:4, 개역)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 2:5, 개역)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사 2:6, 개역)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 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사 2:7, 개역)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사 2:8, 개역)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사 2:9, 개역)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사 2:10, 개역)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사 2:11, 개역)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사 2:12, 개역)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앗수르(몽둥이)의 영광(들에 핀 백합화 보다 못한) (겔 31, 1- 9)
에스겔 2019 2021. 1. 10. 10:54
19-78 앗수르(몽둥이)의 영광(들에 핀 백합화 보다 못한) (겔 31, 1- 9)
〈에스겔 31:10-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9 쪽, 찬송가 253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10)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11)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지라 그가 임의로 대접할 것은 내가 그의 악을 인하여 쫓아내었음이라
(12) 열국의 강포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 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서 떠나매
(13)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14)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
(겔 31:10, 현대어)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그런데도 그 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더 크고 아름다워지자 저 혼자 잘난 듯이 교만해졌다.』
(겔 31:11, 현대어) 『그래서 내가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도 가장 포학한 군인들만을 데려다가 그들의 손에 넘겨 주었다. 그 나무의 교만한 것을 모조리 잘라 버리고 부러뜨리게 하였다.』
(겔 31:12, 현대어) 『그러자 먼 곳에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백성들이 몰려와서 그 나무를 찍어 내 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 나무가 이 산 저 산에 널려 있고 그 장엄하던 굵은 가지들이 잘려 모든 계곡을 메웠으며 부러진 잔가지들이 그 나라의 시냇물 속에 떠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 나무 아래서 평안을 누리며 살던 세계 만민도 잘리고 버려진 그 나무의 그늘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겔 31:13, 현대어) 『이제는 멋모르는 새들이나 그 쓰러진 나무 위에 와서 앉고 들짐승들이나 그 나뭇가지들을 뛰어넘으며 그 가지들 위에서 산다.』
(겔 31:14, 현대어) 『이는 물가에 사는 나무들에게 주는 경고였다. 나무란 물을 먹어야 사는 것이므로 어떤 나무도 다시는 세계를 혼자 독차지한듯이 굴어서는 안되며, 그 우듬지가 구름에 닿을 만큼 뻗어 올라도 하나님보다 더 높이 올랐다고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물을 마시며 사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높고 크고 아름다운 것만을 믿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못하도록 경고한 것이다. 모든 나무는 아무리 높고 장엄해도 잘려 썩기 마련이다. 물을 마시며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도 죽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갈 신세요 아무리 큰 나라도 멸망해서 이미 사라진 나라들의 대열에 끼기 마련이다.』
(겔 31:17, 새번역) 『나무들도 그 나무와 함께 ㉢스올로 내려가서, 이미 거기에 먼저 와 있던 나무들, 곧 칼에 찔려서 살해된 자들, 살아 생전에 그 나무의 그늘 밑에서 살다가 스올로 들어온 자들에게로 갈 것이다. / ㉢또는 '무덤' 또는 '죽음'』
(겔 31:18, 새번역) 『에덴의 나무들 가운데서 어떤 나무가 너처럼 화려하고 컸더냐? 그러나 너도 이제는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스올로 끌려가서,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섞여, 칼에 찔려 죽은 사람들과 함께 누울 것이다. 바로와 그의 백성 모두가 이렇게 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또는 '무덤' 또는 '죽음'』
[새번역]은 신약에 인용된 구절이 있나 싶어서 검색해 보니 없더군요
주로 신약에서는 구약을 인용한 구절이 잘 검색이 되던데 말이죠
그러나 오늘 본문의 결론을 내려주는 표현이 있어서 17, 18절을 올려봤습니다
물론 다음주 할 본문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그리고 또 오늘 본문을 보니
지난주 예배때 어머니께서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말씀을 예배 전에 이야기 하셔서
우리가 아는 순종은 그게 아니다 라고
먼저 왜 그럼 [순종 보다 못한 제사]는 왜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순종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오히려 거꾸로 아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실 순종 또는 복종은 인간 속에 없습니다
로마서처럼 인간 속에는 선함이 없듯이
지난 주 글에서도 또 음성파일에서도 나오지만
가인의 제사를 모르는데 어떻게 아벨의 제사를 알겠습니까?
사탄의 깊은 것을 모르면 하나님의 깊은 것도 모르고
양쪽 다 그저 앝은 것만 알고서 대충 넘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중고등부 학생회와 청년부 대학부에서 말하는
심지어 표어로까지 삼았던
가인의 제사 보다 더 나은 제사 아벨의 제사 드리자 라는 내용이 오히려 거꾸로 였다 라는 거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자 라고
온갖 정성을 모아서 예배 드리자 라는 것이 아벨의 제사가 아니라 오히려 가인의 제사였다 라는 거죠
유대인들이 그래서 절대로 우리가 조상때에 있었다면 선지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했듯이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자 라는 그 선악적인 사고방식이
이것이 바로 독사의 자식들의 가르침이다는 겁니다
선악을 벗어나서 더 나은 제사를 드릴수 인간은 없거든요
그러니 모든 인간은 거꾸로 해석해서 더 나은 제사를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식으로
선악으로 드리는 제사로 보고 있는데
그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기존의 교회에서 말하는 더 나은 제사에 대한 해석이 다 틀렸다 말이죠
틀린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인의 제사를 장려하고 교육시키고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못 벗어나요
못 벗어난다고 누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될려고 하겠냐 말이죠
특히 성화론자들이 개혁주의론자들이 다 이래요
더 나은 제사란 부정의 부정입니다
즉 앞의 부정은 물론 가인의 제사입니다
그런데 사단의 깊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식으로 부정으로 딱 보이느냐?
아니다 라는 거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선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단의 깊은 것이다 라는 거죠
유대인이 바보가 아닙니다
천재 중의 천재이다는 거죠
그런 자들이 괜히 거짓선지자를 따른게 아니거든요
긍정으로 도배를 했기 때문에 거짓선지자를 광명한 천사로 본 겁니다
즉 아무리 봐도 선으로 긍정으로 보이지
부정으로 안 보여요
오히려 그들의 손에서 부정함을 당하는 것이
우리 또한 다 부정해 버리고 있다는데 있어서
보편성을 띄고 있다 라는 겁니다.
보편성만 교육이 되지
특수적인 것을 교육이 안 됩니다 일반화 못 시켜요
특수한 것은 특수한 사람 몇몇에게만 해당 되요
전체로 확대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개인 과외를 하면 가만히 못 있어요 부모들이 말이죠
신고 합니다 신고
과거에 그랬거든요 그래서 정치란 보편성이거든요
정치가 개입을 하는 거죠
그래놓고 정치꾼 자기 자식들은 몰래 개인과외를 시켰지만요 기생충이 생각나넹 ㅋㅋㅋ
오히려 참선지자는 그야말로 삐딱한 부정적인 자들이다는 거죠
보편성으로부터 부정 당하는 특수성은 부정의 부정, 반칙의 반칙이 되는 거죠
자 그런 의미에서 거짓선지자처럼 선함(보편성)으로 도배한 그 모습에
반대를 위한 반대인 참선지자의 삐딱한 부정성
그러니 선함으로 위장한 자들로부터 부정 당하는 것이 바로 더 나은 제사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부정 보다 더 더 더 부정한 것이 더 나은 제사이다는 거죠
그것은 교육이 불가능해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은 교육이 가능해요
바벨론 여자들이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안 되겠다
그 구절에서 중요한 의미를 또 말씀을 나누다가 또 발견했는데
왜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되지 않겠다 라고 우상을 섬기느냐
바로 내가 선이 되어야 하고 악이 되면 안되기에
잃어버리지 않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이 잃어버림을 말이죠
사 47:8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9, 개역)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전히 네게 임하리라』
(사 47:10, 개역)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또 구절을 복사하다가 또 발견한 것이
다다음글 이사야 66장 마지막장에서
본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 직접적인 단어는 안 나오고 권고 하심 이라는 표현으로 나오는데
본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본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돌아 보신다 긍휼히 여겨주심을 바라다 도 있지만
사 47:10절 에서는 반대로 본다 라고 나오죠
즉 아무도 안 보기 때문에 나 뿐이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라고 한다 말이죠
아무도 지적하는 자
권고 하는 자
보는 자가 없기에
자기 밖에 모르는 겁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다 라는 거죠
사실 이것이 모든 교육의 목표입니다
곧 우상 숭배입니다
세상에 홀로 서기입니다.
즉 바벨론 여자들은-우상숭배를 왜 인간이 하는지를 대표성으로써 바벨론 여자를 언급한 겁니다 아무리 약자 라고 해도 약자일수록 더더욱 그 결핍을 자기 스스로 채우고자 하는 속내를 보여주는 겁니다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즉 교육 곧 인간의 교육은 절대로 잃어버림을 당하면 안된다 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말이죠
누가 꼴찌가 되자 라고 교육 합니까?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는 되지 말자 라고 교육하잖아요
처음 교회에 갔을때에 학생회의 학생들이 마취 세뇌 된 냥 중얼거리는 표현들이
머리는 될지언정 꼬리는 되지 말자 라는 성경구절이더라 말이죠
목사가 그러니까 다 따라해요
진짜로 그 목사가 최근에 이단잡는 총회 임원이 되었더군요
제가 이단으로 출교당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발판으로 삼았나 싶더군요
다락방 잡기는커녕 도리어 다락방이 되어버린 거죠
신천지 잡기는커녕 도리어 신천지 보다 더한 정치 집단이 되었다 말이죠 빤스목사랑 ㅋㅋㅋ
그러니 더 나은 제사는 부정의 부정으로써
탕자를 선과 악 중에 악으로 규정한 그 사고방식이 도리어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부정의 부정 곧 더 나은 제사 이다는 겁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인간에게서는 선이 없습니다
내 속에 선이 거하지 않는다 라고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 8장을 거쳐서 이야기 했습니다
(롬 7:18, 새번역)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롬 7:18, 공동)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고로 순종이 없어요
그럼 순종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에게 있다는 겁니다
네 맞아요 잃어버림을 또 지킬려는 놈들이 있어요
잃어버림도 인간 쪽에는 없어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는 이유도
높은과 낮음을 평준화 시키는 불도져가 율법이다는 겁니다
낮음 조차도 지킬려는 놈들이 있기에 말이죠
지난주 이사야 서에서
사자가 소처럼 짚은 먹고
이리가 양과 함께 먹는다 라고 했잖아요
강한 사자가 아니라 약한 소가 될려는 것을 지킬려는 자들이 있어요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7에 70번 용서를 의도적으로 받을려고 하는 자가 있어요
그럼 말라꼬 성령이 있는 겁니까
지가 다 알아서 하는데
성화론자들 중에 이런 놈이 무지 많아요
약함을 의도적으로 지킬려는 놈들 말이죠
그것 또한 자기 의를 쌓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겁니다
순종치 않는 겁니다
높은 자든 낮은 자든 말이죠
하나님의 의가 낮추실때만이 낮아지는 겁니다
지 스스로가 낮아지고 지 스스로가 약해지는 것은
그것 또한 교만한 거죠
둘 다 불도져로 밀어버리니까
평준화 되는 겁니다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듯이 말이죠
왜 상극을 언급할까요
소라는 표현을 빼버리면 되는데 왜 안 빼고서 말이죠
사자가 짚은 먹는다 라고 안하고요
반즈시 사자가 소를 보더라고 나는 소 보다 강하다 라는 의식 자체가 없고
또 소도 사자를 보더라고 두려워하거나 겁냄을 가지는 그 의식 자체가 없는 상태가 새하늘과 새 땅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에게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죠
자 보세요 내가 7에 70번 용서 받아야 한다 라는 의식 자체는
선악이 없는 상태이어야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남을 7번 용서하는게 아니다 라고 했을때에
나의 순종을 거부 당하면서
예수님이 몰고온 순종의 세계 곧 빌립보서 2장이지요
그 복종의 세계가 불도져로 밀고 들어오는 거지
나의 순종이 첨가되면서 예수님의 순종 세계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라는 거죠
왜? 인간에게서는 순종이 없거든요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것은 주로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어린아이는 이미 복종 상태로 태어났다 말이죠
그런데 이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를 가르치는 선생들이 오히려 때려죽어도 복종 안하거든요
그래서 선악으로 가르쳐요
즉 불가능하니까 말이죠
더 나은 제사는 예수님이 다 이루셔서 우리에게 덮어 씌우는 겁니다
순종도 더나은 제사도 우리는 못해요
주님 쪽에서 넘어와서 덮어 씌우는 겁니다
고로 그 반대인 가인의 제사나
순종 보다 못한 제사나
더 나은 제사 보다 못한 가인의 제사나
인애와 자비 보다 못한 번제와 제사 등등은 바로
인간 쪽에서 출발해서 주님 쪽으로 나아가는 것들인 겁니다
반대로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것만이 순종이요 더 나은 제사입니다
순종 복종 바로 빌립보서 2장
하늘 보좌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죄가 되신 겁니다
죽은 신을 위하여 라는 책에서는 약간 비틀어서 사탄이 되셨다 라고 표현 했더군요
즉 의도적으로 인간이 선을 택하기 때문에 그 반대의 급부로 표현한 거죠
(죽은 신을 위하여 라는 책은 니체의 신은 죽었다 라는 니체 당시와 그 이전의 철학과 접목이 된 신학이 서양의 사상으로 자리잡은 것을 전복 시킨 것인데
그것을 다시 책 제목부터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거꾸로 죽은 신을 위하여 라고 다시 전복 시키는 겁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은 바로
누구라도 선 이라고 봤던
그 솔로몬의 영광의 자리
모세의 자리 라는 높은 자리와 같은
앗수르의 영광이
그 높은 자의 자리가(이방인에게서는 지혜로움이 선이였고 어리석음을 악으로 봤고,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을 돕는자 가 선이였고 훼방하는 자가 악이였는데
도리어 십자가는 거꾸로 거리끼는 걸림돌과 어리석고 미려한 지혜로써 하나님의 지혜였다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도리어 낮추어 지고
반대로 탕자와 같은 잃어버린 자인 낮은자
그리고 특이한 표현
(눅 1:30, 개역)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 1:31, 개역)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 1:32, 개역)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 1:33, 개역)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 1:46, 개역)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 개역)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8, 개역)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 1:49, 개역)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눅 1:50, 개역)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 1:51, 개역)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눅 1:52, 개역)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 1:53, 개역)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 1:54, 개역)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 1:55, 개역)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눅 1:56, 개역)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바로 비천 이라는 표현입니다
물론 천하다 라는 뜻이다는 것은 다 알지만
비천이라는 표현은 잘 안 쓰는 표현이라서
혹시나 다른 용어는 어떤가 싶어서 다른 번역을 살펴보니
다른 표현은 없더군요
그래서 성경 전체에서 비천의 의미를 검색해 봤습니다
왜 이렇게 제가 구차하게 이렇게 설명하느냐
이것이 바로 더 나은 제사 라는 의미 이다 라는 겁니다
순종이다 라는 겁니다
비천이
잃어버림이
부정함이 더 나은 제사 라는 겁니다
교회에서 한 번도 가르쳐준 것이 없는 오히려 거꾸로 가르치는 곳 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그것을 주님이 알려주셔서 신나서 이러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더 나은 제사는 좀 머리 컷다고 중고등부때부터 운운하지만
손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표어는
주로 초등학생부 유치원부에서 주로 사용하잖아요
애들이 말 안 들으면 안되잖아요
그러니 용어를 따온 겁니다
그런데 따와도 반대로 따온 거지요
그냥 예수님 사랑해요 라고 하면 될 것을 ㅋㅋㅋ
비천을 성경전체에서 검색하니
잃어버림 인데
정작 인간 언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신분이나 직위 위상의 의미를 말하더라 말이죠
한마디로 없는 자 죽은자 무기치한 자 어린아이 등등의
계급적인 의미이다는 거죠
무엇의?
선악에서 악의 자리라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자리는 선의 자리인 거죠
자 그럼 [더 나은 제사] 또는 [순종] 또는 [인애와 자비]란
아 맞다 한 세트를 구성한 차이로써죠
[가인의 제사 보다] 와 [제사 보다] 와 [번제와 제사] 와의 차이 말이죠
자 그러고보니 선악에서 선을 추구하는 자로써 인간의 인생 목적이 되는 셈입니다
그럼 자연히 악으로 취급받으면서 손사례 치며 거부하는 것은 더 나은 제사 그리고 순종 그리고 인애와 자비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것은 당연한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서는 없거든요
인애와 자비 자체가 없어요 인간에게
없기에 이 잃어버린 마음을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합니다
주님 쪽에서 그것도 바리새인을 타 넘어서 오셔야 한다는 겁니다
왜 바리새인 입니까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라고 더 나은 제사를 언급했다 말이죠
즉 바리새인 타 넘을 생각 하 덜덜 말아라
그럴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라고 상한 마음이 될꺼 아니겠냐 말이죠
오늘날로 치면 성화론자 개혁주의자 보다 더 나은 인간 될 하덜덜 말아라
그 반대죠 막사는 인간 되어라 라는 겁니다
왜?
아니 무식하게 또 막사는 인간 지킬려고 해요
저를 끌고서 막사는 것 한수 가르쳐주겠다고 디스코텍에 데리고 가요
아니 거기서 저에게 술 사주고 맥주 마시고 사람들과 함께 춤 춰야지
아무도 없는 직원도 없는 문도 열지 않은 그 시간에 잠깐 데리고 가서는
너는 막살지 않지
나는 막살아 라고
제가 갸우뚱했어요
왜 막사는 상황을 연출하지?
나는 높은자 아니다 나는 낮은자 이다 라고 낮은자를 지킬려고 해요
둘 다 불도져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연출을 하냐 말이죠
그게 그 사람의 운명이였던 겁니다 기존의 이름대로 사는 것
증상물인거죠
그렇게 부자가 되었기에
상거지가 따로 없었던 거죠
인간 쪽에서의 출발은 높음이든 낮음이든 다 교만이요 가인의 제사이지
더 나은 제사가 아니기는 맹 마찬가지이다 라는 겁니다.
뭘 해도 지옥으로 내려갈 뿐인데
너는 지옥갈 인간이지
난 천국갈 인간이야 라고 나오니 참 나
7에 70번 용서받는 인간임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구로부터 출발한 거냐 말이죠
주님 쪽에서 넘어오심이 아닌 것은 맹 마찬가지 인데
자기 쪽에서 출발해 놓고서는 ㅋㅋㅋㅋ 딱 봐도 사기치는 것인데 ㅋㅋㅋ
주님 쪽에서 넘어와서 비천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스스로 자기 쪽에서 출발하는 잃어버린 자가 되니가
오히려 더 더 더 높은 자가 되는
일곱귀신이 씌인 자가 되더라 라는 겁니다
지난 주에 앗수르가 에덴동산의 나무 보다 더 크게 하나님이 만드시니까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투기를 할 정도이다 라는 거죠
(겔 31:5, 개역)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
(겔 31:6, 개역)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겔 31:7, 개역) 『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겔 31:8, 개역)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우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아무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겔 31:9, 개역) 『내가 그 가지로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지가 다 투기하였느니라』
그렇다 보니 힘이 있는 자들에게 모두 빌이붙어 살고자 모여들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무슨 놈의 잃어버림이 있겠습니까?
자기자신을 지킬려고 잃어버리지 않을려고 다 모여든다 말이죠
나오미의 남편이
(룻 1:2, 개역)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룻 1:1, 개역)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왜 약속의 땅을 버리고 모압이라는 이방인의 땅에 갔을까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인데 흉년이 들었다 라는 것은
먼저 약속의 땅의 기능이 약속의 민족의 범죄로 인해서 제 기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그 징후 증상으로써 흉년으로 인해
먹고 살려고 모압땅에 모여든 겁니다
매마른 가지에 어떻게 산새들이 모여들겠습니까 물로 다 말라버려서 가뭄으로 사막처럼 변해버렸는데 지옥처럼 말이죠
그럼 큰 나무가 있고 산새들도 모여들고 물이 있는 곳으로 모이기 마련이다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기존의 이름 값 대로
엘리멜렉
나오미의 남편 곧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고 해놓고서는 약속의 땅을 버립니다
아니 하나님의 왕 되심을 말하기 위해서
나는 죽으면 안 되고 살아야 하나님의 왕 되심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이죠
내가 구원 못 받게 되면 하나님의 왕 되심에 있어서 부정적인 시선을 흔적을 남기게 된다
고로 나는 무조건 이유 없이 살아남아야 한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개인 구원이다 말이죠
마침 앗수르를 하나님께서 영광 스럽게 하셨기에 모든 생명들이 그리로 모여들 듯이
약속의 땅이고 뭐고 다 그리로 모여들어야 한다 말이죠
바벨론 여자들처럼 자기를 잃어버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를 지키고 찾고 사수하기 위해서 말이죠
자 이렇게 넓은 길로 가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라는 겁니다
영국속담에도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라고 합니다
(마 7:13, 현대어) 『[좁은 문;눅13:24] 하늘나라는 좁은 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넓고 그 문도 커서 쉬운 길을 택한 많은 사람이 다 그리로 들어간다.』
(마 7:13, 개역)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개역)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5, 개역)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개역)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개역)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좋은 나무 악한 나무 라고 하니까 두 나무 비유 예레미야서의 여고냐와 그의 삼촌 남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이 생각나네요
힘과 손 잡은 자는 악한 나무요(선한 의도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독립군 저항정신)
반대로 포로 잡혀가서 매국노처럼 된 여고냐 어린아이는 좋은 나무(자기를 잃어버림 당함)
새이름을 주는 자가 없기에
기존의 자기이름 값 대로 운명대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나를 보는 자가 없기에 (바라보다 돌봐주다 측은히 여겨주다)
권고해 주는 자가 없기에
내 구원 내가 이룬다 라는 식입니다
마침 권고 곧 돌봐주는 자 기업을 대신 물어주는 자 가 다다음 글 이사야 66장에서 나오고
바로 다음 글 마태복음에서
오늘 본문 앗수르 키 큰 나무의 모습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한탄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바로 예루살렘이 바로 앗수르나무처럼
주님의 권고 해 주심
봐 주심을 거부하고
자기 쪽에서 구원의 조건을 갖추겠다 라는 그 마음으로 인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그 사고방식인 선악 때문에
우상숭배 때문에
선지자를 아무리 보내도 죽이고
누구처럼 지난 주 녹음에서 요시아 왕을 사가랴 선지자를 죽였다 말이죠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말이죠
주의 전에서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와요
그런데 다들 주의 전 여호와의 전으로 기도하지 않고
더 큰 것은 구하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구하지 않고
7에 70번 용서를 구하지 않고
겨우 7번 겨우 작은 것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맹세하는 것을 지키더라 말이죠
성전으로 맹세하며 구하는 것은 지키지 않는다 왜 안 이루어 지니까 말이죠
그래서 여고냐의 삼촌 시드기야 왕은
우상 곧 이방나라의 권력과 손 잡는 겁니다.
그런데 한결 같이 힘을 동경하다가 힘으로부터 멸망 당합니다
칼로 흥하는 자 칼로 망한다는 말씀인 거죠
자 이렇게 앗수르처럼
자기가 자기 스스로 구원을 챙기고 있는데
누가 외부에서 오는 구원자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는데
자 그래서 넓은 길로 가는 대표주자로써
지옥가는 대표주자로써 앗수르는 교만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주님 쪽에서 다 마련해 주시고 있는 겁니다
진노의 그릇은 나는 천번 만번 지옥 갈 자야 라고 해서
지 마음대로 진노의 그릇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창세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만 지옥 갑니다
아무나 지옥 못 가요
자 그럼 지옥에 넣기 위해서
앗수르를 비천한 신분에 놓아야 할까요
아니면 높디 높은 자리에 놓아야 할까요
이 비밀을 누구든지 다 알게 해야 할까요
때려죽어도 모르도록 비밀로써 감추시는 것일까요
다다음 글 이사야서에
발등상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발등상
즉 발을 땅에 꽝 하고 내딛으시면
감추인 비밀들이
모래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이
덜썩 하면서 다 드러납니다
자 그럼 발등상 하면 무조건 원수 개념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는 우리 조상처럼 그 당시에 있었더면
조상처럼 선지자를 안 죽였을텐데 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발등상 앞에서는 원수로 드러나서
무조건 나는 선지자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자로 원수로 들통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 자리에서
하나님의 발등상에 의해서 원수로 들추어집니다
비로소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어서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비로소 우는 자가 됩니다
상한 심령이 됩니다
내 속에 선한 것이 없는 주제에
도리어 악을 감추고자 율법으로 도배해서 덮어버린 그 껍집을
하나님의 발등상이 확 발가벗겨 버리니까
잃어버림 당하게 되니까
이스라엘의 왕이기는커녕
졸지에 비천한 자가 되는 겁니다
잃어버린 자
곧 원수가 됩니다
그 원수의 자리에서 우는 겁니다
원수가 안 되면
인간은 아무도 안 본다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책임 질려고
지킬려고 해요
그런데 원수가 되면 비소로 맡겨요
원수 주제에
물에 빠진 주제에
물에 안 빠질려고 하는게 아니라
비로소 맡겨버리는 겁니다
내 목숨을 내가 지킬려고 하는게 아니라
내 손에서 떠난 문제이다 라고 맡겨버리는
자기를 잃어버린 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게 자유 이다 말이다 막살기 이다 말이죠
내 숙제가 비로소 없어지게 된 겁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다 맡겨버리는 겁니다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님께 다 아뢰어라
다 아뢴다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도저히 이 숙제 못 풀겠다 라는 겁니다
제발 돌봐 주세요
숙제 좀 봐 주세요 라는 겁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저 좀 봐주세요 라고 소리치지
물에 안 빠진 자가 말라꼬 저 좀 봐주세요 라고 하겠습니까
의사에게 웃통을 까면서 저 좀 봐주세요 라고 청진기로 들따 봐 주세요 라고 배를 들추어내밀잖아요
건강한 사람에게서는 그것이 미친 짓입니다
그래서 강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니까 마스크 그 작은 것 하나 못해서 막 죽어나갔다 말이죠
아픈 환자 만이 저 좀 봐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의사가 시킨다 라고 해서 의사 말 지켜서 자기가 낫게 된 겁니까
그렇게 되면 의사가 말라꼬 필요해요 잘 지키는 자기 구원 자기가 자기 병 자기가 고치는 식이지
그런 환자는 의사를 말하기 위해서 있는 환자가 아닙니다
기능이란 비존재란
오히려 존재를 깨뜨려요
개인이 없어요
자아를 없애버려요
의사 말 잘 지키는 개인이 있어서 구원받은게 아니라
저 좀 봐 주세요 라고
봐 주시는 의사
얼굴과 얼굴로 마주 보시면서
권고
돌봐주심
선한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자를 돌봐주었잖아요
한번 환자는 영원한 환자입니다
20% 속건제를 붙여버렸다 말이죠
절대로 건강한 자 못 되도록 계속해서 의사의 치료기능을 외칠 수밖에 없는 관계로 만들고자
20% 속건제와 같은 성령을 붙여 버렸다 말이죠
육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소욕으로 인해 매일 매일 주님의 피를 부여받는
선물 20% 라는 이 믿음의 관계
믿음 과의 관계
예수님과의 관계를 성령이라는 간호사 보혜사를 돌보미를 통해서
매일 매일 간호를 하시는 겁니다
돌봐 주시는 겁니다
권고 하시는 겁니다
매를 대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시는
인간의 의가 아닌 주님의 의로써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과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이 의의 관계로
찢으시는 율법와 다시 싸매시는 말씀으로
저들 지옥으로 가는 높은자가 아닌
낮추시는 하나님의 의로써만
인도하시겠다 라는 약속을 새 언약을 보여주시고 있는 겁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의 의가 먼저 떳기에
인간의 의로움 곧 앗수르의 영광
솔로몬의 영광
모세의 자리처럼
높은 자들의 교만이 등장 해야만 하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천국을 말씀 하시기 전에
먼저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통해서
마귀 나라의 속내를 들추어 내시고
그 마귀 나라를 거쳐서
그 차이로
천국을 비로소 증거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지옥으로 가는 넓은 길의 내막을 보여주심으로써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새하늘과 새 땅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부자청년처럼 인간의 조건
구원의 조건을 갖춘 개인 구원으로써 인간의 조건을 구상하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의 조건 곧 인간의 육체 라는 방
몸 박스 라는 공간은 바로 이렇게
지옥으로 가는 앗수르의 모습과 같다 라고 집단 멸망
개인 지옥이라는 것이 없듯이
집단 심판이라는 세상의 조건을 구상하셨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의 자질이 어떳니 저떳니 라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하나님의 일에는 아무런 염두 사항이 아닙니다
이미 마귀의 3가지 시험을 통해서 세상의 조건을 구체화 시켜버렸습니다
아무도 그것에서 벗어날 자는 없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우물 밖의 시선을 가질수가 없듯이 말이죠
즉 공간 신체 몸 방 박스 라는 것은 집이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했듯이
인간은 절대로 그 방에서 그 몸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폐쇄적인 공간 이요 신체입니다
승부는 그 몸 뚱아리로만 거는 겁니다
밖을 나올 생각을 아예 할 수가 없어요
율법을 지키는 것도 내 몸이냐 내 신체냐 가 중요하지
아! 오체불만족의 저자처럼 신체가 불편하다구요 그래서 내 정신이냐 아니냐 이다구요
네 그것도 결국 자아 인 거죠
율법 외에 한 의를 쳐다볼 마음이 아예 없는 겁니다
죽어도 내 숙제인 거죠
그것이 바로 자아 라는 방에 갇혀버린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찢는 겁니다
자아란 없다 라고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율법이 가입이 된 것을 죄를 더하게 하려 함 이다 말이죠
아이고 그것도 죄냐 라고
적어도 우리 연변에서는 이 정도의 죄가 되어야 죄 라고 할 정도로
동시 다발 적으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우리야 장군의 사망
꺾으신 뼈의 사망 까지 몰아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율법 이다는 겁니다
자아를 찢기 위해서
자아를 안 잃어버리고자
원수 안 되고자
죄인 안 되고자 하는 그 사단의 깊은 것을 거쳐서
사람의 일을 거쳐서
이 십자가가 옳았음을 찬양하는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새 노래
어디에서도 배울수도 없는 이 새노래 꾼으로 삼으시과
하나님의 의로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돌봐주심이라는 긍휼을 쳐다보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을 거쳐서
천국을 소개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