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악어 애굽의 파라오 왕을 위한 슬픈노래를 하는 인자 (겔 32, 1- 8)
19-81 큰 악어 애굽 왕 바로를 위한 애가를 노래하는 인자 (겔 32, 1- 8)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애굽과 앗수르 (겔 31,15-18)
에스겔 2019 2021. 1. 30. 22:18
19-80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애굽과 앗수르 (겔 31,15-18)
〈에스겔 32: 1-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9 쪽, 찬송가 327장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1) 제십이년 십이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에 대하여 애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열국에서 젊은 사자에 비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강에서 뛰어 일어나 발로 물을 요동하여 그 강을 더럽혔도다
(3) 나 주 여호와의 말이여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 오리로다
(4)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로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으로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5) 내가 네 고기를 여러 산에 두며 네 시체를 여러 골짜기에 채울 것임이여
(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에 채우리로다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우며 달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겔 32:1, 현대어) 『[나일강의 괴물 바로의 죽음]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11년째 되는 해 12월 1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ㄱ. BC 586년 2-3월)』
(겔 32:2, 현대어) 『'너 사람아, 애굽 왕 바로에게 이렇게 조가를 지어서 불러 주어라. '너를 두고 세계의 왕들 가운데에서 가장 강한 자라 일렀더니 이제는 망하였구나.! 너는 다만 온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괴물일 뿐이었다! 너는 콧구멍으로 물을 뿜어 올리고 발로는 진흙을 이기고 다니며 요동을 칠 때마다 강물을 흐려 놓았다.』
(겔 32:3, 현대어)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넓은 그물을 던져서 너를 사로잡겠다. 내가 여러 민족의 군인들을 데려다가 너를 내 그물로 사로잡아 바다에서 육지로 끌어 올리게 하겠다.』
(겔 32:4, 현대어) 『그런 다음 내가 넓은 들판에 너를 내던져 공중의 사나운 새들과 온갖 들짐승들이 뜯어먹게 하겠다.』
(겔 32:5, 현대어) 『네 살이 온 산을 뒤덮고 네 시체가 골짜기들을 메워 놓을 것이다.』
(겔 32:6, 현대어) 『네 피가 대지를 물들이며 모든 산에서 시냇물처럼 흘러 내려 모든 개울에 가득찰 것이다.』
(겔 32:7, 현대어) 『네 피가 너를 심판하고 내가 네게 내린 형벌을 집행할 때에 하늘은 구름으로 캄캄해지고 해와 달과 별들이 사라져 네 나라는 온통 어둠에 휩싸일 것이다. 내가 세계의 주인으로서 말한 대로 실천하겠다.』
(겔 32:8, 현대어) 『(7절과 같음)』
항상 천국 또한 하나님의 언약인 말씀, 계시, 묵시, 약속을 말할때에 특히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 라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말씀하실때에
그 반대되는 한 세트를 구성하는 지옥 또는 선악, 가짜 계시, 약사, 마귀의 시험 등의 육의 소욕을 먼저 거쳐서 그 차이로 증거하십니다
즉 인간을 상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주님은 마귀만 상대한다는 겁니다
인간 구원은 성경에 없어요
그러나 모든 종교는 인간 구원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 인간 구원이 성경에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 즉 우상이다 라는 겁니다
(시 60:11, 개역)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인간이 자기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십자가든 뭐든지 끌어와서 믿고자 해본들 이것이 확증편향이지요
그 구원받고자 하는 자기 라는 자아가 없다는 겁니다
그 없는 자아 곧 우상을 왜 자꾸 구원할려고 하느냐 이것이 탐심이다 말이죠
(골 3:5,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잠 19:22, 현대인) 『탐심은 부끄러운 것이니 가난한 자가 거짓말장이보다 낫다.』
탐심은 부끄러움을 자꾸 추구해요 수치 말이죠
그래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 라고 상대적인 가난한자와 자꾸 대조를 시키시는 겁니다
(시 60:11, 개역)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그러니 대적 곧 마귀만 탐심만 우상만 상대하시는 겁니다
아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라고 해 놓고서는 이 다른 신만 상대하신다 라고 말이죠
네 맞아요 우상은 곧 인간입니다
잠언서를 언급했는데 잠언은 인간의 모든 일상들이 다 나타나는데 있어서
지혜와 수치를 대조 시키는 겁니다 지혜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도리어 탐심(수치)을 추구하게 되고
수치 밖에 드러남이 없는 헛됨 밖에 없음을 말이죠
왜 이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너튜브 메인 화면에 잘잘법 이라는 곳에서 전도서 11장을 가지고서
주식투자를 하라 라는 기독교채널을 보고
우와 이런 정신병자들이 목사를 하다니
댓글은 더 가관이더군요
인간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 왜 거짓선지자인지 항상 거꾸로 해석을 하더군요
(전 11:1, 개역)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2, 개역)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물 위에 식물을 던지라 라는 말은
해상무역을 껍데기로 언급하시면서
인간은 항상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뭐를 하든지 신과 곧 하나님과 자기의 일을 연결시킴에 있어서 하나님을 거꾸로 해석한다는 겁니다
이웃사랑과 구제, 말씀실천 등등을 하면 언젠가는 그런 행함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라고 거꾸로 해석을 해요
그러니까 성전으로 맹세, 기도 하는 것은 지키지 말고 왜? 안 이루어지니까
성전에서 바친 금으로 맹세하고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라 왜? 이루어지니까 라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일 보다
자기 위주로 일하는 것에 하나님을 끌어오는 식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은 마귀 짓이고 왜? 거짓선지자가 다 이것을 외치니까
소경의 특징이 뭡니까
자기도 천국 안가고자 하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지 혼자 지옥에 안가요
왜 남을 7번 씩이나 용서할려고 할까요 네 맞아요 자기 구원을 위한 마일리지 쌓기 이거든요
언젠가는 주님이 보상해 주시겠지 구원을 해 주시겠지
그런데 주님은 아이고 적어라 적어 그깟 남 7번 용서로 누구 코에 붙일려고 하신다 말이죠
에헤헤헤헤헤 적어도 7에 70번 용서 정도는 되어야지 라고 큰 것을 구하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말이죠
인간 나라와 인간의 의는 구원이 없다 라는 겁니다
말로는 주님, 주, 하나님, 크신 여호와 라고 부르지만
결국 작은 자기에 같다붙여넣기를 해서 겨우 겨우 자기 개인 구원만 챙기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를 추구하더라 말이죠
이스라엘이 왜 망할까요 우상숭배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결국 이 우상숭배 때문에
인간은 천년전에 이미 멸망한 나라
멸망한 파라오 왕을
인간은 때려죽어도 끊어낼 방법 자체가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너뷰트 채널
잘잘법 잘 믿고 잘 살아가는 법
이 보세요 법을 끌어와요
개인 구원에 대한 정당성 이것이 지난주 이사야 서에서 소를 바친 것이 살인하는 것이다 라고
율법을 끌어와서 지키지만 이것이 개인구원을 목적으로 하기에 살인이다 라고
잘 믿는다 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믿음은 살인의지 이거든요
잘 믿는다 라는 말이 잘 남을 죽이겠다 라는 살인이다 말이죠
남을 잘 살인해서 잘 이용하자 라는 겁니다
방법, 방 법, 법 법을 아무리 끌어와도 방법 법 법이 없다니깐 ~~
그냥 주식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성경을 끌어와서 같다붙이냐 말이죠
선악을 반드시 끌고 오는 이유 입니다 성경을 거기에다가 반드시 끌어와서 같다붙여요
댓글은 그래서 그 죄책감을 벗겨해줘서 고맙다 라고 가관이예요 가관
죽은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크신 의를 구하지 않고
겨우 겨우 그 쪼매밖에 안되는 자기 의를 쌓자 라는 식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성전으로 기도하지 않고
성전에 바친 금으로
겨우 겨우 자기 구원만을 위한 목적으로 기도한다 라고 비판하시는 겁니다
(마 23:15,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7, 개역)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18, 개역)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9, 개역)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마 23:20, 개역)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마 23:21, 개역)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마 23:22, 개역)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4, 개역)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 23:25,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6, 개역)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그렇기에 반드시 큰 악어 곧 애굽을 반드시 1000년 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끄집어 와서 그 차이로 묵시를 증거하신다 라는 겁니다
에스겔 당시의 애굽나라 아닙니다 반드시 1000년 전에 죽은 바로 왕입니다
에스겔 당시의 애굽은 강한나라가 아닙니다
1000년 전의 애굽이 강한 나라였고 모든 국가는 이 애굽을 뒤따르는 식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때의 애굽이며 바로왕이냐
네 맞습니다
인자 때문입니다
에스겔 인자를 미리 예수님 이라는 인자를 담고서 증거하는 셈입니다
이 인자는 결국 구원자로써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어린양의 모습을 담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인자와 한 세트가 되는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과 한 세트가 되는 파라오 왕이 동원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그 사람 몰라요
그래 알려주마
어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가 누군지 몰라요
성전의 기능을 몰라요
성전으로 바친 금으로만 맹세할줄만 알아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해요
누군지 모르겠다 라고 말이죠
결국 파라오 왕을 소환한다는 말은 누구를 말하기 위함이다?
네 맞아요 예수님
곧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를 말하기 위함이다는 거죠
파라오 왕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라고 그래 알려주마 기다려봐 ~~~~ (우비남매)
어쭈 이스라엘 너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그래 알려주마 기 ~ 다 ~ 려 ~ 봐 ~~~~~~~
그리고 마치 놀려먹듯이 슬픈노래 애가를 부르는 인자 이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아 ~~~~ 예루살렘아 ~~~~~~
(마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마 23:38, 개역)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 23:39,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왜 찬송할까요 다 무너뜨리는 성전을 무너뜨림으로써 수치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곧 십자가를 부를때까지 찬송할 때 까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는 이 크나큰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야 하니까 말이죠
겨우 겨우 쪼매난 남 7번 용서는 안 이루어 지거든요
인간은 거꾸로 이루어 지기를 바랬거든요
말씀이 이루어져야 찬송이 나와요
네 맞아요 마태복음 24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는 겁니다
(마 24:1,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마 24: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이 슬픈 노래는 애굽에게만 해당되는 겁니까?
마치 놀려먹는듯한 느낌 안 드냐 말이죠
그 애굽을 향한 노래가
마태복음 23장 부터는 예루살렘을 겨냥하고 있어요
오늘날 교회를 겨냥하고 있다 는 겁니다
아니 언제는
아니 원수가 주렸을때에 먹을 것을 주라 라고 했던 예수님 아닙니까
(롬 12:20, 개역)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그런데 놀려먹듯이 애가를 부른다는 것은
이거 뭐 세월호 가족이 금식 투쟁하는 곳 앞에서
치킨을 시켜먹는 일베나 하는 짖거리 아닙니까?
왜 이런 놀려먹는 노래를 하실까요
그런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놀려먹을려면 일베처럼 신나게 노래 해야 겠지요
그런데 슬픈 노래를 불러요
누가?
인자가
누가? 주님 곧 여호와가 말이죠
그러면 오히려 누가 안 슬프고 누가 애통하지 않는 겁니까?
네 맞아요 악어가 애굽이 파라오왕이 안 슬퍼한다는 점입니다
성전의 아름다운 비석 곧 벽돌과 웅장함 때문에 누가 슬퍼서 웁니까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주님 주님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입니까 라고 자랑하고 기뻐하고 있지
누가 웁니까
예수님이 울어요
누가복음에서는 과부가 울어요
(눅 21:1, 현대어) 『[과부의 헌금;막12:41-44] 예수께서 성전에 서서 부자들이 헌금궤에 돈 넣는 것을 지켜 보고 계셨다.』
(눅 21:2, 현대어) 『그때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렙돈 두 닢을 넣었다.』
(눅 21:3, 현대어)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이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넣었다.』
(눅 21:4, 현대어) 『그들은 쓰고 남은 것 중에서 얼마를 넣었으나 이 여자는 가난한 중에서도 가진 것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
(눅 21:5, 현대어)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마24:1-2,막13:1-2] 제자 몇 사람이 성전 건물의 아름답게 조각된 돌과 기념할 만한 사건들이 새겨진 벽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눅 21:6, 현대어)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때가 오면 너희가 칭찬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고 돌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않을 것이다.'』
(종말의 단체 이스라엘은 개인구원 따위나 빌고 있고 성전에 바친 금으로 우상숭배 라는 살인이나 하고 있고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 까지
정작 그들이 지옥갈자 라고 하는 개같은 이방인은 누가복음에서 종말의 헌금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있는 자기를 잃어버림을 추구하고 있고 전재산 전목숨을 바치는...
이렇게 한 세트를 구성하는 겁니다 마귀와 예수님의 차이로써 말이죠)
과부의 종말의 헌금은 도리어 이 성전 무너뜨려 달라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라고 종말의 헌금을 드려요
암행어사 출도요 라고
성전의 기능을 모조리 다 우상숭배용으로 개인구원용으로 개인의 가치를 높이는데 이용하니까 말이죠
잘잘법 잘믿고 잘살아가는 법처럼 말이죠
그런 점에서 이 노래를 얼마나 정당하냐 라는 겁니다
그것도 이미 지옥간 자를 끄집어 와서 말이죠
문제는 지금 에스겔 당시나 지금 현재의 모든 나라 모든 인간들이
이 파라오 왕을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파라오왕 애굽왕 바로왕입니다 바로 라는 단어에 제가 헷갈려서 ㅋㅋㅋ)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점이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갈때에
아낙네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고 청년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라고
여성 특유의 공감능력 때문에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울더라 말이죠
얼마전에 정인이 죽음으로 인해 대성통곡하면서
차를 가로 막고서 들어눕는 여인들처럼 말이죠
(남자는 이런 행동을 이해 못해요
여자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구원 즉 창조주의 마음을 그 순간 느꼈으니까
그 창조주의 눈물을 그 순간 공감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 곧 인자는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울고 있는 아낙네를 향해
뒤를 싹돌아보시면서 참으로 냉소적인 발언을 하시는 겁니다
나를 위해 울 시간이 있더냐
나 보다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라고 말이죠
더 큰 것을 구하라 라는 겁니다
(눅 23:26, 개역)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눅 23:27, 개역)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8, 개역)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30, 개역)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눅 23:31, 개역)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런 점에서 수태치 못한 여자가 복 되도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왜 자식이 없는 여자가 복 되죠?
자체적으로 또 따로국밥처럼 독자적으로써 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자식이 있는 여자들이 저주를, 심판을, 종말을 기정사실화 한다는 점에서
자식이 없는 여자가 복이 된다는 겁니다
네 맞아요 계시록에서 부자가 거지가 되고
상거지가 부요한 자가 된다는 종말성을 보여준다는 거죠
그래서 부자 애굽왕 큰 악어를 1000년 만에 소환하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쫄딱 망한 이스라엘 작고 작은 이스라엘을 대조 시킬려고 말이죠
그런데 막상 안그렇더라 말이죠
아삽의 시처럼 시편 73편
부자는 죽을때도 잘 죽고
여호와를 욕하는 자도 잘만 죽더라 말이죠
역사 속에서의 존재를 보면 안그렇더라 말이죠 종말성이 없는 것 같더라 말이죠
오죽 하면 성전으로 맹세 또는 기도 해 봤자 안 이루어진다 라고
성전에 바친 금으로 맹세해야 이루어진다 라고 하겠냐 말이죠
즉 우상만이 구체화 되지
여전히 약속은 안 이루어진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사야 46장을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은 속히 다급히 긴박하게 급히 이루어진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그 반대로 안이루어진다 라는 속담까지 보편화 된 상황이였다 말이죠
얼마나 그 당시의 현실이 그랬으면 오죽하면 속담까정 ~~~~)
(사 46:13, 개역)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겔 12:22, 개정)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하는 너희의 이 속담이 어찌 됨이냐』
(겔 12:22, 새번역) 『"사람아, 이스라엘 땅에서 너희가 말하는 '세월이 이만큼 흐르는 동안, 환상으로 본 것치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 있더냐' 하는 속담이 어찌 된 일이냐?』
(겔 12:22, 공동) 『"너 사람아, '이 이스라엘 땅에서 세월이 이만큼 흐르는 동안, 환상으로 본 것치고 그대로 된 것이 있더냐?' 하는 속담이 너희 입에 오르내리다니 어찌 된 일이냐?』
(겔 12:22, 쉬운) 『“사람아, 이스라엘 땅에서 사용되고 있는 속담, 곧 ‘세월은 흐르지만 환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어떻게 된 것이냐?』
(겔 12:22, 킹흠정)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땅에서 너희에게 있는 그 속담 곧, 날들이 연기되고 모든 환상 계시가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하는 속담이 무엇이냐?』
(겔 12:22, 한글킹) 『인자야, 그 날들이 길어지고 모든 환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말하는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서 지닌 잠언이 어찌된 것이냐?』
(겔 12:22, 현대인)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땅에서 사람들이 `날은 지나가고 환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는데 이 속담이 어찌된 것이냐?』
(겔 12:22, 현대어) 『`너 사람아, 이스라엘 땅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세월은 여전히 흐르고 예언의 말씀이 맞은 적은 한번도 없더라!' 하는 말이 유행하고 있으니, 그게 어찌된 일이냐?』
네 맞아요 이것이 바로 비존재(종말)인 이스라엘을 존재로 거꾸로 본 것이다 말이죠
유대인이 바보 이겠습니까? 다 겪어 보고 하는 말이거든요 속담화 즉 보편화 되었다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더디 온다 라고
성전으로 맹세하는 것은 안 이루어진다 라고 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급하게 이루어졌고
성전으로 기도한 것이 이미 이루어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비존재 이니까 말이죠
즉 하나님의 언약인 약속은 존재에게는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 말 마따나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만 이루어져요
그것이 우상이니까 말이죠
그리고 참 하나님은 절대로 안 이루어 지는 겁니다
이미 그들의 하나님은 가짜이다 보니
십자가에 달려 죽는 하나님을 믿을 리가
믿음 자체가 안 가고요
믿음 조차도 존재의 믿음의 아니라
존재가 뿜어내는 믿음이 아니라 그것은 우상숭배이고
그래서 오늘 본문이 애굽왕을 끄집어 오는 겁니다
울 리가 없잖아요
운다는 것은 비존재에게만 해당 되요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런 내막을 알 턱이 없죠 그저 존재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지
어떻게 주변나라들 조차도 즉 시선이 넓어졌어요 포로잡혀 가면서 약속의 땅에만 있던 우물안의 개구리가 바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게 되었으니 더더욱 안믿는 겁니다 히틀러 나치의 만행을 겪은 유대인들이 비로소 무신론자가 되어서 지금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가장 무신론자가 많은 국가가 된 것처럼 말이죠 시선이 넓어진 겁니다 겨우 남을 7번 용서하는 시선으로 말이죠 더 넓어져야 해요 지옥까지 사탄의 깊은 것까지 말이죠 남 7번 용서가 아닌 7에 70번 까지 더 넓어져야 하는데 겨우 7번 넓어져놓고서 무신론이라꼬 ㅋㅋㅋ
그렇다고 유신론자는 우상숭배 아닌게 아니거든요 그것도 시선이 좁아서 그래요
누가 자기와 자기자식에게 덮쳐질 종말을 심판을 보는 시선으로 인해 울겠냐 말이죠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되는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이유 이거든요 찬송하라고 애가를 부르라꼬, 미리 앞당기라꼬)
비존재 만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울지
누가 자기와 자기자식을 위해서 울겠냐 말이죠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즉 존재는 바로 이 존재의 보편성을 보여준
바로 바로왕 파라오왕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보편성 곧 넓은 길이다 말이죠
(반대로 이스라엘은 좁은길 즉 없는 길을 보여주는 종말성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 놈의 믿음 때문에 말이죠
인간의 믿음은 보편성 곧 종교성입니다 우상숭배예요
비존재의 믿음은 예수님 뿐이거든요
인자입니다
그 인자가 웁니다
우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이스라엘을 우는 자리
황무지, 광야의 자리
잃어버린 자의 자리에 놓는 이유입니다
그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가 이스라엘이 태어난 처음자리 처음사랑의 자리이거든요
인자만이 울어요
애가를 불러요
정작 심판 받는 당사자 애굽이 울겠냐 말이죠
그럼 이스라엘이 우냐
애굽처럼 안 울어요
같이 망할려고 환장해 있어요
심판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심판 받지도 않는 자인데도 불구하고
이사야처럼 인자처럼 발가벗고 3년 동안 우는 자리의 자리에 놓는 이유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되는 이유는
이미 새언약이라는 계시가 묵시가 십자가가 떳기에 이미 완료가 되었기에
눈에 보이는 것들은 지나기고 삭제되고 사라질 것들이라고 외치기 위해서
심판 이라는 이 종말을 미리 앞당겨서 외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 곧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큰 것을 구하는 겁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인간은 그저 자기 개인 구원을 위한
우상숭배를 구하는 식이다는 거죠
그거 이미 1000년 전에 애굽왕 바로왕이 그렇게 하다가 쫄딱 망했단다
유월절 어린양을 구할래 큰 것 7에 70번 용서라는 피 흘림을 구할래 하나님의 의를 구할래
아니면 자기 의를 구하는 저 애굽처럼 망할래 겨우 남 7번 용서 구할래
불뱀에게 물려서 죽는게 아닙니다 지옥에 가는게 아니다 말이죠
그런 지옥은 사람들이 조작해낸 겨우 작고 작은 지옥에 불과해요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망하는게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대 높이 달린 하나님의 의를 안 쳐다 봐서 망하는 겁니다
즉 자기 의를 쌓고자 해서 망하는 겁니다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 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무식하냐 똑똑하냐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똑똑한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겁니다
야다 라는 히브리어 알다 라는 의미는 남녀간의 사랑 에로스를 말해요 아가페 아닙니다
사랑은 반드시 울리는 꽹과리와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즉 애굽왕을 대표로 세운 이유는 그 뒤를 모든 인간이 따르고 있다는 넓은 길로써
상대적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 곧 인애와 자비가 인간에게 없음을 알고 울어라 라는 겁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 바로 성령이요
그 정직한 영이 없어서 통회하고 우는 썩어 뭉개지는
화로다 나여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하나님의 의를 못쳐다보고 있는
십자가의 피 용서 더 큰 7에 70번의 큰 용서를 못 쳐다보는
이 하나님의 의를 안 쳐다보고 나 자신의 의에 매여있는 것에 대해서 우는 자가
그 자기를 잃어버린 자가 복된 자 라고
상대적인 큰 악어를 불러드리시는 겁니다
베드로가 이 악어에게 잡혀야지만
자기를 잃어버려야지만
예수님의 그 부드러운 음성을 듣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확증된 사랑에
7에 70번 용서에 당첨이 된 것에 화답하고 찬송할꺼 아니겠습니까
마침 어머니께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라는 말씀이 무슨 뜻이냐 라고 물으셨다 말이죠
(요 21:15, 개역)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개역)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개역)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8, 개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9, 개역)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사실 질문은 다른 두 곳의 내용을 합친 겁니다
바요나 시몬아 라는 말은 마태복음 16장에 있는 표현이고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는 말씀은 요한복음 21장에 있다 말이죠
(마 16:13, 개역)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4, 개역)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개역)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개역)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개역)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개역)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개역)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 16:21, 개역)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2, 개역)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3, 개역)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4,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5,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7, 개역)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바요나 는 바 곧 누구누구의 아들
요나 요나의 아들 이라는 바요나
시몬은 히브리어 이고
베드로는 헬라어 이고
게바는 아람어 이고
요한의 아들 이라고 했을 때 요나와 요한은 같은 베드로의 아부지 이름이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것이 중요하지 않고요
그러나 존재들에게는 중요해요 문자를 따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비존재는 기능이 중요합니다
기능
누구 누구의 아들이라는 인자의 의미는
이미 떳기에 다 완료가 되었기에 죽어도 누락되어도 잃어버려도 상관없다 라는 겁니다
너가 태어난 것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다 봤다 권고하셨다 말이죠
그러니 두 구절 모두다 결과적으로 너는 죽어야만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사도요한이 어떻게 되는거 신경쓰지 말고
너나 잘 죽도록 하여라 라는 겁니다
바요나 시몬아 너 그거 알려준거 혈과 육이 아니야
너는 누구 누구의 아들로써
산자의 하나님이 알려준거야
그러니 이 살아계심 때문에 나는 죽어야만 한단다
안됩니다 아니 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고백 때문에
(마 16:16, 개역)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내 때문에 죽어야만 한다니요
주여 죽어주시옵소서 가 되면 안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는 구나
뭐뭐뭐 아니요 뭐뭐이다를 말하는 것이 누구누구의 아들인 인자 이다 말이죠
혈과 육이 아니요 성령으로 고백한 것을
정작 본인이 모르기에
그야말로 성령으로 했기에
육의 본색이 확 드러나버림으로써 맞네 나도 모르게 성령으로 고백한 것이 맞았네 라고
존재는 아니요 비존재 이다 라고 그 비존재의 속성이
존재의 속성을 들추어내면서 존재 속에서 비존재가 튀어나오는 겁니다
아니야 안돼 라고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말이죠
존재 곧 육은 반대죠
예수님 죽으면 안돼 ~~~~~~~~~~~~ 라고 나오죠
그리고 먹이라 치라 먹이라 라고 해 놓고서는
너는 이래 이래 죽어야 한다 라고
그 사도의 피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럼 교회는 사람의 손에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으로써
인자 되신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짐으로서
인자의 속성을 나타내죠
곧 먹이고 치고 먹이는 헤쳐모여 라는 누락을 보여주는 겁니다 잃어버림이라는 종말성을 보여준다 말이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그 반대로 종말이라는 비존재 없음 좁은길(사실은 없는 길)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존재성을 주장함으로써 넓은 길을 보여주는 거죠
아니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쉽잖아요
그런데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해요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말이죠
그런데 베드로는 곧바로 비존재성을 자기 쪽으로 끌어와서 존재에게 끌어와서 붙이기를 하니까
마치 한글 문서 HWP 문서작성할 때 [복사하여 붙여넣기] 하듯이 말이죠
컨트롤 ctrl + C 해서 컨트롤 ctrl + V 하듯이 말이죠
그러니 사탄아 물러가라 라는 소리 즉
오늘 나오는 큰 악어의 속성이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슬픈노래를 부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활동무대인 역사라는 무대에서
왜 인간이 자기도 권리가 있느냥 자리잡고 있냐 라는 겁니다
썩 물러가라 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자체도 하나님의 활동 무대 스테이지가 되는 겁니다
지근 지근 짖밟히는 하나님의 발등상에 놓여지는 원수로써 말이죠
그래야 상대적인 주의 오른팔인 구원의 손이 의미가 있게 되니까 말이죠
그러니 원수로 밝혀져야 하는데
베드로처럼 안 밝혀질랍니다 라고 나오면 되겠냐 말이죠
그러니 이런 경과를 통해서 베드로전후서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이 된다 라고
이것 때문에 사도로 세워졌고
이것 때문에 비존재로써 기능으로써
선택받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로 선택하심도
주님의 자녀로 선택하심도 다 이런 종말
나의 죽음도 유익이 되는 비존재라는 기능으로써 말이죠
그 뭐뭐뭐 아닌 뭐뭐뭐 이다 라는 기능을 말하고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뭐뭐뭐 아닌
교회로써 뭐뭐뭐 이다 로
주님의 뜻을 드러내시는데 활용이 되는 소모품 잃어버림 받는 비존재로써 활용도구가 된다는 거죠
인애와 자비가 먼저 떳음을 외쳐야 하는 긍휼을 외치는 그릇으로써
주여 긍휼히 여겨주소서 라고 외쳐야 하기에 말이죠
여기에 상대적인 애굽왕도 1000년 전에 죽음으로 그냥 가만히 있도록 두지 않고
끄집어내어서 활용도구로써 진노의 그릇으로 활용이 되는 겁니다
왜 우는지 몰라요
긍휼을 전혀 바라지 않는 그릇임을 보여줘야 하기에 말이죠
큰 악어 라는 표현과
(겔 32:2, 개역)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에 대하여 애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열국에서 젊은 사자에 비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강에서 뛰어 일어나 발로 물을 요동하여 그 강을 더럽혔도다』
젊은 사자
그리고 바다 라는
소위 높고 크고 넓은 마치 에덴나무의 영광 보다 더 높은 영광을 앗수르가 취한 것처럼
아무리 높아도 아무리 크고 아무리 넓은 바다처럼 넓어도
저 들에 핀 백합화 보다 못하다
뭐뭐뭐 보다 못하다
즉 더 나은
더 큰 것이 있다 라는 것과 대조해서 그 한계점이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럼 무엇이 더 큰 것이며 더 나은 제사 입니까?
아무리 선을 취하고 악을 버려도
마치 바리새인처럼 손 씻는 것을 취하고 손씻지 않는 더러움을 버려도
그런 선악을 아무리 추구해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는
한계점이 드러나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 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심판 주이시자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당하시는 분으로써의
하나님의 의가 먼저 떳기 때문에
아무리 선악으로 도배한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높아져본들
그 한계점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것이 큰 악어 라는 표현입니다
괜히 넓은길 넓은 바다 젊은 사자 라는 크고 높고 힘센 것을 그들이 추구하는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의 라는 좁은길인 십자가에 죽음에 상대적인 길로 넓은 길로 가는 자로써 동원이 되거든요
아니 큰 악어인 애굽이 이 십자가라는 자작극에 걸려드는 진노의 그릇으로써 동원이 되는 줄 알 리가 있겠냐 말이죠
자기가 말하고 싶어서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그 신 모른다 라고 한게 아닙니다
앗수르가 몽둥이가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듯이 말이죠
(출 5:2, 개역)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이라는 미끼를 덮썩 문 거죠
베드로를 마귀가 괜히 덮썩 물었다 말이죠
남 좋은 일 해준 거예요
주선해 주고 결혼 맞선해 주는 바람에
정작 본인이 예수님과 결혼할려고 한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간 거다 말이죠
이 에로스 막장 드라마 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 말 마따나
목사는 마귀 역할을 해 줘야 합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짐승 역할을 해야 한다 말이죠
그동안 덕분에 박학땡목사 박영땡목사 이광땡목사 박무땡목사 박길땡목사 조땡땡목사 마땡땡목사 이명땡목사 정용땡목사 등등 그리고 소위 유명목사들 덕분에 심지어 저에게 복음을 처음 증거했던 학교 음악선생님까지 다 포함해서도 말이죠
뭐 수많은 장로 집사 전도사 강도사들은 두말할 것 없죠 뭐
자 이런 육이라는 거짓들이 보여준 한계점을 통해서
저들 속에서 탈출시키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탈출하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인해서
저들은 울어야 하는 슬픈 애가를 도리어 탈출하는 이스라엘이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물론 탈출 곧 뭐뭐로부터 탈출하여 뭐뭐로 입성한다는 의식은
이스라엘에게 없었던 의식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보여줄수가 없는 사고방식이다 말이죠
이 잃어버림을 통해서 종말을 통해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삭제되고 탈출해야 한다는 구원개념은
우리가 안정을 바라는 그 장소에서
없는 사고를 발생시키는 겁니다
누가 자손 대대로 안정을 누리고픈 에덴동산과 같은 애굽에서 탈출하고파 하겠습니까
그 반대죠
주님 혼자 부르짖는 겁니다 울부짖어요
탈출이라는 구원은 오로지 주님의 아이디어이지
인간에게는 없어요
모세를 따르는 백성들의 원망은 딱 하나 뿐입니다
왜 그 안정적인 에덴동산과 같은 애굽을 버리고
탈출시켜서 왜 있지도 않은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천국이 있다고 사기를 쳐서
이 광야에서 다 죽게 하느냐 라는 원망 밖에 없었다 말이죠
유월절 어린양의 피흘리심의 의미를 알때까지 뺑뺑이 돌립니다
다 죽을 때 까지
새로운 세대로 교체될 때 까지
왜 저 따위 한계점이 있는 겨우 7번 용서하는 나라 따위나 바라고 있냐
7에 70번 더 큰 용서의 나라를 구하라 부르짖어라 라고
에덴동산과 같은 안정적인 애굽의 나라를 탈출해서
저 솔로몬의 영광 보다 더 나은 들에 핀 백합화의 영광 속으로 들어갈때까지
탈탈탈 애굽의 사고방식을 털어버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만의 아이디어인 탈출인 구원입니다
심지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할 때
예수님은 도망치십니다
탈출하셔요
예수님 붙잡고 천년만년 잘 믿고 잘 살아가는 법을 추구하겠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 예수님은 우십니다
우리에게 슬픔을 주십니다
제발 좀 울어라 라고
그렇개 해서라도 저 슬픈 나라에서 탈출시키시겠다는 겁니다
복음이란 기쁜소식입니다
뭐가 기쁜 겁니까
우리가 부러워 하는 요소가 애굽 속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기쁨인줄 알았는데
앗수르가 교만해지고 싶어서 교만해진게 아니라
모든 영광
온 천하 만국을 다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라 그러면 모든 영광을 다 주겠다 라는 그 세 번째 마귀의 시험처럼
주님이 교만케 만드시고자 모든 영광을 다 주었습니다
이것이 도리어 슬픔이였다는 거죠
우리가 부러워 하는 앗수르가 하루 아침에 쫄딱 망했다 말이죠
바로 부러워 하는 그 부러워 하는 것에 의해 망하는 것이 슬픔이 아니고 뭐겠냐 말이죠
시드기야도 애굽의 힘을 부러워 했고
아하스 왕도 바벨론의 영광을 부러워 했고
그런데 그들로부터 다 망했다 말이죠
이것 보다 더 슬픈 소식이 어디 있냐 말이죠
슬픈 애가입니다
도리어 우리가 싫어버린바 다들 고개를 돌려버린 그것이
도리어 우리의 기쁨이 되기에
기쁜소식은 반드시 우리가 싫어했던 십자가가 우리의 영광이 되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애굽을 소환해야죠 뭐
큰 악어로 나타나줘야 합니다
우리 꾀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 속아넘어가야지만
이 십자가가 왜 밝히 보여주시는지 알게 되는 겁니다
결국 종말의 신앙이란
이렇게 우리가 좋아라 했던 것들과 하나 하나씩 손절 하는 겁니다 떠나고 탈출하고 버리는
잃어버림입니다
최종적으로 가장 좋아라 하고 있는 나 자신과의 이별을 고하는 것이
진짜 기쁜소식입니다
나로부터 탈출해서
내가 가장 싫어했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예수 안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