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6,21-23)
19-98 너희가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6,21-23)
여호와의 땅과 이름을 더럽힌 이스라엘심판과 주의 이름을 아낀 여호와 (겔 36,16-21)
에스겔 2019 2021. 5. 30. 09:28
19-97 여호와의 땅과 이름을 더럽힌 이스라엘심판과 주의 이름을 아낀 여호와 (겔 36,16-21)
〈에스겔 36:21-2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8쪽,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6:21, 현대어) 『이처럼 내 백성이 어디를 가든지 나만 더욱더 악명을 떨치게 되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내 거룩한 이름이 수치스럽게 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내 거룩한 이름때문에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겔 36:22, 현대어)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다시 고국땅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너희들의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다. 너희가 어디를 가나 더럽혀 놓은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
(겔 36:23, 현대어) 『세계 만민이 나의 위대한 이름을 다시 존숭하도록 내가 내 이름을 거룩하게 하겠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일을 보고 내가 여호와인 줄을 세계 만민이 깨닫게 만들겠다.』
(롬 2:24, 개역)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 2:24, 새번역) 『성경에 기록한 바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5(칠십인역); 겔 36:22』
(롬 10:15, 새번역)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7』
(롬 10:15, 공동) 『전도자로서 파견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 ㉠이사 52:7(나훔 1:15 참조).』
(롬 15:21,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 ㉨"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15(칠십인역)』
(고후 6:17, 새번역)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 그들과 떨어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라. 나 주가 말한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 ㉦사 52:11; 겔 20:34; 41』
(엡 6:15, 새번역)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 ㉣사 52:7; 나 1:15』
(사 52:5,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사 52:5,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 바빌로니아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의 백성이 까닭도 없이 여기로 사로잡혀 왔고, 지배자들은 ㉠그들을 조롱한다. 날마다 쉬지 않고 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으니,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여야 하겠느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 ㉠사해 사본과 불가타를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그들을 보고 울부짖는다'』
(사 52:5, 공동) 『그런데 내가 이러고만 있을 때가 아니지." 야훼의 말씀이시다. "나의 백성은 억울하게 붙들려가 고생하고, 그들을 마구 부려먹는 자들은 개가를 부르는데," 야훼의 말씀이시다. "나의 이름은 날이면 날마다 멸시당하고 있구나.』
(사 52:5, 쉬운)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기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보아라, 다른 민족이 내 백성을 까닭 없이 붙잡아 갔다. 그 다스리는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들이 하루 종일 내 이름을 욕되게 한다.』
(사 52:5, 현대인) 『그런데 지금 바빌로니아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너희는 이유 없이 잡혀갔으며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은 거만을 피우고 항상 내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사 52:5, 현대어) 『그런데 내 백성이 지금은 어떤 처지에 있느냐? 나 여호와가 이르는 말이다. 바벨론 족속이 그들을 노예처럼 잡아가고 몸값도 전혀 치르지 않았다. 오히려 바벨론의 통치자들은 자만해져서 끊임없이 나를 조롱하고 내가 무능하기 때문에 내 백성이 멸망하였다고 종일 내 이름을 더럽힌다.』
어쩔수 없이 제목을 저렇게 여지껏 제일 긴 제목이지 싶은데
줄여서 해 보면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로 할수 있겠군요
아무튼 주님 자신이 인간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으로 이렇게 하겠다 라는 겁니다
이게 말이 안되는 이유는
물론 주님은 하나님이니까 뭐든지 다 가능하겠지요만
정작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선악을 알 고 난 뒤에 우리 또한 하나님이다 라고
믿어주마 이해해 주마 그래 그래 실천해 주마 라고 설교해주면 전도해 주면 될꺼 아니겠냐 라고 나오지만
바로 이렇게 인간이 대상물로 삼아서 믿어주겠다 라는 자체가
바로 이런 선악을 아는 신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바로 우상이다는 점에서
반드이 이 우상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첫계명이 바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거죠
마치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는 명제를
북유럽의 신화에서 차용해 와서
신들이 있는 곳에 어떤 한 신이 나타나서 나 외에 다른 신은 다 죽는다
신은 죽었다
나만 신이다
네 맞아요 나만 가수다 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만 사도다 나만 참선지자다 나만 성도다 나만 교회다 라는 의식은
기존의 신을 가지고 와서 반드시 그 신들과의 차이로서
나만 신이다 라고 할때에
선악과를 따먹고 나만 신이다 라고 외치는 인간에게서
더 더 더 부조리한 뭐 너만 신이다 라고? 그럼 더더더더 나만 신이다 라고
나오시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는 겁니다
이미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사실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선악과가 인간을 따먹어 버린 입장이다 보니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사로잡혀 살다 보니
(바로 그런 점에서 마귀는 이런 하나님과 같이 된 동일성 합일성 말이죠
이런 인간을 고소하기에 바쁩니다 자기는 피조물이라꼬 절대로 하나님의 자리에 안 앉았다고
오로지 인간만이 보세요 저놈의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다고 고소를 한다 말이죠)
선악에 집착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선악이라는 죄가 인간을 장악하고 있지
인간이 죄를 짖는 것이 아닌데 말이죠
바로 이런 점에서 주님은 이 마귀만을 상대로 한 활동을 하시는데 있어서
오늘 본문에 하나님 자신을 알리시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 우상을 거치도록 하시고자
이 우상과 이름을 한 세트로 구성하시는데
여기에 이스라엘과 이방인도 동원이 되는 겁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렵혔다 말이죠
그래서 바벨론 포로 속에
쉽게 말해서
마귀 입 속에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마귀가 이스라엘을 잡아먹은 것이 아닌
주님이 마귀 입 속에 이스라엘을 집어 넣어버리시는 겁니다
우리가 파수꾼 인자 에스겔을 벙어리 만드시는 과정을 에스겔 3장을 통해서 살펴봤다 말이죠
(겔 3:26, 개역)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아 여기서도 제가 잘못 봤네요 그들이 책망자가 되지 못하도록으로 말이죠
여호와께서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내용의 의미가 전혀 손상이 안되는 이유는
비록 처음에는 오독 나중에는 정독처럼
원인 없는 결과로 이야기 했기에 앞의 처음 오독은 뭘해도 오독일 수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이미 떳기에 정답이 이미 떳기에 정독이 이미 떳기에
저의 안면인식장애나 저의 난독증이 하등 문제꺼리가 될 수가 없다는 거죠
이미 알아먹을 사람은 다 알아먹도록 되어 있으니까 말이죠
오히려 이런 장애들이 사건을 충돌을 일으키는데 동원이 되는 것처럼
벙어리로 만드심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미 결과가 떳기에 원인을 없애는데
바로 이 원인이 없다 라고 마귀는 고소를 하도록 되어 있고
포로 잡혀 오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아니 언제는 경고를 하지 않으면 파수꾼에게 죄를 묻겠다 책임을 묻겠다 라고 하시고서는
(겔 3:17, 개역)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8, 개역)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겔 3:19, 개역)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겔 3:20, 개역)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겔 3:21, 개역)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도리어 입을 막아서 벙어리가 되게 만들어 버리면
무슨 수로 경고를 하냐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바로
(겔 3:27, 개역)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깨달아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스스로 뉘우친 가룟유다와 다를바 없지요
그게 아니고
뭐 회개를 한다 기도해서 우는 자가 되면 된다 회개 눈물 금식 기도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원인 있는 결과 이다 말이죠 행함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원인 없는 결과로써
못 깨닫도록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는데
돌아올 자는 돌아온다 라는 겁니다
원인을 갖추어서?
아니지요 그 반대죠
원인을 아예 도리어 못 갖추었어요
어 그런데 어떻게 돌아왔죠
사실은 돌아온게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 버리는데
이 아껴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비록 이스라엘이 더럽혀 버린 이름이지만
아껴둔 남겨둔 한 씨가 떳기에
그 이름에 걸맞게 새롭게 만들어진 자들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돌아온다 라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 이름에 한 세트가 되는 우상의 기능은
바로 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렵혔다 라는 말은
우상을 쫒았기 때문이다는 것을 염두한 것이다 말이죠
네 맞아요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모를턱이 있나
몰라요
왜냐하면 그들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요
그들은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금송아지를 섞었다 라는 겁니다
이런 원조의 출애굽 이후의 광야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는 그 빈공간을
우상으로 채우는 그 버릇대로 금송아지에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새겼기에
에스겔 당시 아니지 실제로는 이사야 당시 포로 직전에
주변나라의 신들이 더 부럽도록 되어 있고
그 부러움에 의해서 망하도록 되어 있기에
부러워 하는 신 우상에게 망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한 세트가 되는 겁니다
마치 베드로가 선악으로 절대로 예수님은 죽으시면 안됩니다 라고
십자가에 잡혀 사형 당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선악을 습관대로 예의상 기존의 질서를 인간들이 그렇게 구성했기에
너무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써 스승 예수님을 생각해서
대상화 해서 그런 말을 당연히 했다 말이죠
아 그런데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는 자 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정답이 떳기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곧 남을 7번 용서하면 구원된다 라는 개인 구원만 생각하느냐
구원자가 죽으면 내 구원이 날라가 버린다 는 것만 생각하느냐
내가 성전에 바친 금으로 기도하고 맹세한 것들이 날라가 버린다 라는 것만 생각하느냐
사탄아 썩 물러가라
라고 베드로가 바로 이 사단이라는 선악 곧 우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거죠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금송아지에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새긴것처럼
베드로 또한 선악이라는 우상성에다가 예수님의 이름을 새기듯이 말이죠
존재가 죽어버리면 이름으로 믄 구원이 되겠냐
내 구원 내가 챙길려면 예수님의 존재가 죽으면 안된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비싼 삐~~~~~~싼 향유를 부은 여인이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
장례를 치른 것은 그럼 뭐가 되냐 말이죠
느닷없이 변화산에서 모세가 나타나서 어서 어서 별세해 주세요 라고 한 것은 뭐가 되냐 말이죠
이것을 베드로가 모르는 겁니다 알리도 없구요
원인 없는 결과이기에
알 리가 없어요
그저 원인 있는 결과 라는 기존의 진리를 구성한 것만 따지겠다는 차원에서
그거 가짜야 사탄적이야 사람의 일이야 라고 규정을 하시고자
이 차이로써 하나님의 일이기에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 본인이 하나님 본인의 거룩한 이름이 뭔가를
즉 상대적인 우상과의 차이로써 증거하심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찢겨지는 자로써 동원이 되고
사실은 하나님이 찢겨지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심판 받을 자격 조차도 없어요
심판 받아본들 그 심판 조차도 제대로 보여줄 입장도 권리도 의미도 없거든요
제대로 된 심판은 주님 자신이 심판주로써 주님 자신이 심판 당하시는 겁니다
그 목격자로써 쪼매 쪼매 아주 쪼끔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입장에서
이 찢겨지심에 동참하는 목격자로써 이스라엘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찢겨지고
다시 싸매어 주심을
이방인의 목전에서
원수의 목전에서 보여주신다 라는 거죠
이것을 거룩 이라고 하고
이것을 이름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신의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또 힘이고 또 우상이고
또 우상에다가 하나님 여호와 예수 십자가 성령 뭘 붙여도
결국 나는 구원 받아 마땅함이고 거기에다가 투자한 나의 믿음 곧
나의 행함과 실천은 그 행한 것에 대한 그 믿어준 것에 대한
교리를 실천한 말씀을 실천한 댓가로써 보상을 받아야 하는
구원에 대한 당연성을 주장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에서
바로 이런 우상과 한 세트로써
자신의 이름을 거룩을 보여주시고자
이 우상을 깨뜨리시고자
마귀의 세력을 끌여들여서
이 바벨론 포로 된 입장
바벨론 입 속에서
음부의 권세 속에서
거룩을 펼치시는 겁니다
곧 이름의 기능은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심으로써
존재는 찢어지고
비존재로써 이 이름을 외치는 자로써 다시 태어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부활이지요
곧 부활을 붕어빵 주틀을 형성한 겁니다
이렇게 죽으라 라꼬
다른 주틀은 없어요 오로지 십자가라는 주틀 말이죠
언약의 완성이요
산자의 하나님을 외치도록 새노래 꾼으로 창조하시는 주틀이거든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주틀은 원인 있는 결과요
그것은 사탄의 일 곧 자기 육체의 자랑이다 말이죠
여전히 죄문제 우상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겁니다
행함문제 선악문제를 해결하지 못한거다 말이죠
이것을 해결한 척 하는 자들이 바로 성화론자 아닙니까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는
그런데 그 가짜 금으로 도금한 것 주님처럼 속을 빡빡 긁어보면
금방 벗겨져요 금종이로 입힌 것 금방 탄로가 난다 말이죠
그 탄로날 것
시체를 마귀가 늘 호시탐탐 독수리가 노리듯이 주검을 말이죠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들 듯이 말이죠
차라리 그럴빠에 벗어날 수 없을 빠에
주님이 우리를 시체 취급해 버리심이
부정의 부정이
바로 이것이 베드로에게 우는자 만드심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공백 빈털터리 만드심
황무지로 지옥으로 만드심이다 말이죠
그러니 그저 울 것 밖에 없지요
우는 자가 복 되도다 라고 하니까
우는 연기를 하는 놈이 있어요 글쎄
죽은자를 찾습니다 라고 외치고서는 자신이 죽은척을 해요 글쎄
너는 죄인 될줄 모르지 나는 죄인 될줄 알아 라고 죄인인척 해요 글쎄
아니 그럼 주님이 울게 만드시는 것은 뭐가 되냐 말이죠
요즘 말로 주님이 호구가 되어버린 거죠
지가 알아서 다 우는 자가 되어버리니까 말이죠
베드로도 안 웁니다
대신 울어야 하는 닭만 죽으라고 울 뿐이지
안 운다는 것을 아시니까 대신 울도록 하신거다 말이죠
왜 울게 하십니까
내세울게 없도록 빈공백 빈털터리
믿음도 다 털어버리시고 행함도 정결은커녕 부정한 행함만 나왔으니
어디 내세울 꺼리가 없어요
이것이 주님이 제대로 베드로에게 손 대신 겁니다
그것이 마귀의 목전에서
자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다 털어버립니다
아무것도 내세울꺼리가 없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알 턱이 없어요 여호와의 이름을 주는 줘버리는 쪽쪽
우상과 썩어버리는
금송아지에 새기듯이
자기 구원
자기 사랑
남들은 다 예수님 버려도 나 만큼은 절대로 예수님 버리지 않겠다 라는
그 없는 나
그 없는 자아
그 허구인 자아만을 위하여
오조리 자기만을 내세우도록 되어 있음에 있어서
바로 그것을 주님이 해결해 주겠다 라고
이방인이 보는 앞에서
원수의 목전에서
마귀의 목전에서
아니 이스라엘도 여호와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우상화 하는 판국에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는 판국에
주님의 믿음은
곧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은
이방인에게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이방인에게 열국에게 알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사실은 이것이 이스라엘의 기능이지요
이방나라와 전쟁을 해서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이 주의 이름을 높이 세우는 것 말이죠
그런데 이것도 존재로써는 못하는 겁니다
비존재 곧 없음으로써 해야 하는데
누구 말 마따나 없음은 없는 것인데 무슨 수로 하느냐
그래서 원인을 갖추는 있음으로써 끌어 끌어 모아 모아서
겨우 건지는 것이 개인구원 밖에 안되는
도리어 우상숭배 곧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더라 말이죠
뭘 해도 그래서 죄 밖에 안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너희들 못하제
그래 내가 하마 라고 이방인에게 어떻게 전도를 하고
이방인의 우상을 어떻게 파괴하시는고 하니
자신의 죽음으로써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증인으로써 이스라엘을 세웠고요
그 이스라엘이 못하니까
원수로써 지목이 된 이방인들이
이 이스라엘 자리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이름을 원인을 갖추어서 아는 방법은 아예 없습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냥 결과만이 덮쳐져서
믿음을 선물로 받아버린 기생 라합
거짓말이라는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이 이름 이 여호와의 이름을 듣고 간담이 녹아서 벌벌벌 떨었으니
얼마나 떨었으면 냅따 자기나라 신 자기나라 땅 토지 국가
모조리 다 팔아넘겨버리더라 말이죠
자국민에게 있어서 자기 국가만이 현실이지
해외국가는 긍정적인 입장에서는 꿈의 나라요
그러나 돈 없으면 해외국가는 여행을 커녕 나그네로써 나가자 마자 바로 개취급
시체취급해 버린다 말이죠
며칠전 무슨 프로그램이였더라?
한국 국군 포로가 중국을 통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왜 그렇게 안 잡힐려고 하느냐
주권이 없거든요
아 꼬꼬무2에서 봤구나
우리는 이 땅에 시민권이 없는 자들이다 말이죠 잡히면 죽어요
하늘에 시민권이 있으니까 말이죠
666 이라는 사람의 수가 없으면 소통 매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뭐 사도바울처럼 이중국적 있으면 되잖아??
그것은 육체의 장막을 어서 떠나고 싶은데
남겨진 우리 땜에 잠시 머물 뿐이지
땅의 국적 버리고 어차피 떠날꺼다 말이죠
자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
이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렇다고 기회를 주면 성공할수 있느냐 아예 없어요
아예 기대할 필요가 없구요 주님에게 그렇기 때문에 뻔뻔스럽게 베드로처럼
숙제를 떠 넘기면 됩니다
물론 그것도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 이지
주님이 사랑치 않는 자는 아예 관심도 없겠지만 말이죠
그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기능을 주님이 지금 홀로 어떻게 다 완성을 하시는고 하니
바로 이방인에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그 거룩한 이름을 알리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비웃겠죠
아니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판국에
이방인이 어떻게 주님의 이름을 알겠습니까
진작 이렇게 믿음 없음을 실토하지
왜 그동안 숨겼냐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상대적인 한 세트를 붙여야
우리 본색이 늘 들통당하는 겁니다
자기는 안 믿는 것 들통나 버렸고
또 개같은 이방인 원수가 믿는 꼴을 못 보겠고
주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것은 또 못 봐주겠고
이것이 인간의 모든 심뽀입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아예 기대를 걸지 않는 겁니다
그저 개인 구원 밖에 모르는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이거든요
자 이런 모든 인간의 해석과 시선이 바로
원인 있는 결과 만을
선을 취하고 악을 버려야
이런 원인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에
주님은
바로 그런 사고방식이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렵혔지 않았느냐 라고 하시면서
주의 이름을 부른 적 없던 이방인에게 부르신바 되고
원인이 없어야 결과가 온다 라는 겁니다
또 원인이 없는 것을 원인으로 갖추는 또 저 멍청한 강씨처럼 생각하면 안되고요
결과가 덮쳐지게 되면 원인을 갖추어도 다 날라가요
아예 하덜덜 말라 라는 겁니다
또 하덜덜 말라 조차도 원인을 어떻게든 갖출려고
말귀를 그렇게 듣는 자들이 한 둘이가 아닙니다
막살아 라고 하니까 막살기를 원인으로 자꾸 갖추더라 말이죠
성화론자들을 비판하니까 그 성화론자의 반대의 모습을 원인으로 또 갖출려고 해요
믄 말을 해도 자기 숙제로 받아들이는 자가 많아요
왜? 결국 구원은 자기숙제이니까 라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으니까 말이죠
그것을 날려버리는 것이 결과 이다는 겁니다
원인을 자꾸 날려 버려요
자 그래서 이 심판받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역시나 이방인 또한 심판받는 와중에서
왜? 심판 받습니까 맞아요 거룩한 여호와의 이름이 떳기에 말이죠
이방인 역시나 심판 속에 놓여짐으로써
이 심판이 바로 거룩한 이름에서 왔다 라는 것을
원인 없는 결과가 덮쳐져서
즉 거룩한 이름이 떠버렸기에
그 증상물로써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이스라엘의 기능이 나오게 되면
아무리 개같은 이방인이여도
그 사람은 이스라엘이다는 겁니다
선물이 믿음이 외부에서 덮쳐졌기에
거룩이 덮쳐져 버렸기에
졸지에 동행 함께하심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죠
자기가 동행할려고 다가간 것도 아닌
주님이 다가오시고 찾아와 주셨다 라는 겁니다
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로써
누가복음 4장에서 오직 사렙다 과부에게만 오직 나아만 장군에게만
즉 이 말은 기존의 질서 기존의 진리로 형성이 된
많은 이스라엘도 아니요 많은 이스라엘 과부도 아니요
또 그렇다고 많은 이방인도 아니요 많은 이방인 과부도 아닌 오직 단 한 사람
많은 이스라엘도 아니요 많은 이스라엘 문둥병자도 아니요
또 그렇다고 많은 이방인도 아니요 많은 이방인 문둥병자도 아닌 오직 단 한 사람
(눅 4:24, 개역)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눅 4:25, 개역)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눅 4:26, 개역)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눅 4:27, 개역)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눅 4:28, 개역)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눅 4:29, 개역)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어딜 감히 개인구원을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그 우상을 붙일려고 하느냐
단절이다 라는 겁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이 직접 피 흘려서 직접 발라주심 외에는
다른 길이 없도록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우상을 십자가에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함인데
거기에서도 마저 우리는 개인의 구원을 곧 우상숭배를 외침에 있어서
이 거룩한 이름이 그런 우리를 찢으시고
바로 그렇게 죽여놓고 다시 살리시는
이 거룩한 이름의 기능을 주님이 직접 펼치심에 있어서
(자기가 죽은자 라고 주님의 거룩한 이름이 주님이 직접 펼치는게 아니라
인간이 너는 없지? 나는 있지롱 이라는 또 사기를 침에 있어서
악령이 걸려버리더라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있어서 어딜 속일려고 선을 취하고 악을 버렸다 라꼬???)
주님의 이름을 여전히 더럽히더라 말이죠
그럼 너는 뭔데 듣자하니 우리가 이 주의 이름을 안 더럽힐 방법이
인간 쪽에서는 없다는 말이가
네 맞아요 없어요
없으니까 막살아라 라는 말이 아니라
없으니까 심판도 당연하고 죽음도 저주도 당연하고
당연하니까 울 수밖에 없는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
이 몸 자체가 지옥이다는 겁니다
못 벗어난다는 겁니다
지금 다들 벗어날려고 몸부림 만부림 아닙니까
없어요 없어
이 없음을 주님께서 알려주시지
또 연기해본들 소용없어요
또 찾아와요 무한반복의 의문의 반복입니다
천사의 말을 해도
지식적으로 성경박사가 되어서 성경을 다 알아도
소용이 없어요
사랑이 없으면
주님의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심으로써 자신의 피를 직접 이마에 발라주지 않는 이상
수치를 가려주시는 희생제물 되심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울리는 꽹과리 일 뿐입니다
이데오피아 그 당시 최고의 키큰 군대 군인들의 달가닥 거리는 무기가 서로 부딧히는 소리 이다 말이죠
즉 성경을 다 아는 지식 마저도 자기 구원용으로 밖에 쓰일질 않는
살인무기 힘 권력으로써 육의 자랑으로 빠진다 라는 겁니다
사랑은 곧 산자는
이 거룩한 이름이 기능으로써 죽음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는 길 밖에 없어요
다른 복음이 없어요
그가 죽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다 라는 겁니다
이게 복음 기쁜소식 희년이다 말이죠
다른 기쁨은 없어요 다른 행복은 없어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함 받은 것 밖에 없어요
지금 한국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
청년 자살률 세계 1위 라고 하잖아요
아니 자기 아들 자식 미래의 꿈나무들이 죽어나가는 판국에
뭐 행복??????????????
너튜브만 틀면 행복하십니까 그래 개인이 행복하다 칩시다
주변의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
그게 믄 소용이 있냐 말이죠
철학자 인문학자 심리학자 모든 달변가들이 방법과 온갖 지식으로 알려줘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현실은 처참해요
그것을 외면하고서 행복을 따져서 뭐하게요??
꼭 성화론자들을 보는 것 같아요
얼굴들은 다들 천사의 얼굴들이더라 말이죠 얼마나 연습이 되었으면 말이죠
그런데 주변 전체가 모조리 다 썩어들어가고 있는데
지 혼자서 성화되었다가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자기 자식이 성화됐다 치더라도
자기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는 그럼?
그렇게 한 다리 한 다리 걸치면
지 혼자 행복하다는 것이 믄 소용이 있겠냐 말이죠
엘리야를 우리 한번 이해해 봅시다
얼마나 허망했으면
지 혼자 남아본들 믄 소용이 있겠냐 라고 하나님께 따지더라 말이죠
자기 혼자 살아남고 다들 죽어버렸다 말이죠
얼마나 얼마나 허망하냐 말이죠
우리가 살펴 봤잖아요
네 바로 앞에 욥 노아 다니엘이 있어본들
니 자식이 구원 못 받는데 있어서 니 개인 구원이 무슨 소용이 있냐 라는 겁니다
(겔 14:14, 새번역) 『비록 그 나라 가운데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 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세 사람은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자신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히, '다넬'. 히브리어의 자음 표기가 예언자 다니엘과는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음』
(겔 14:20, 새번역)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그들은 아들이나 딸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마저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그들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히, '다넬'. 히브리어의 자음 표기가 예언자 다니엘과는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음』
이 허망 이 절망에서 유일한 산 소망은 딱 하나 뿐입니다
안 죽었다 라는 소식 밖에 없어요
아 아니다 안 죽었다가 아니라 죽긴 죽었는데 다시 살았다 라는 것 밖에 없어요
칠천명 안죽었다 남겨뒀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요 아무리 죽음 속에 있어도 기쁘기 한량 없어요
마치 죽은 뼈 마른뼈에 살이 붙고 핏줄이 흐르고
아무리 죽어라 라고 해도 살아날 수 밖에 없는 기쁨이다 말이죠
다윗에게서 유일한 기쁨은
자기의 눈물 회개 금식 기도로 살릴수가 없는 그 꺾으신 뼈가
내 대신 심판받아 죽는
이름 없는 아기가
네 맞아요 거룩한 이름이라는 기능은 바로
우리가 선악 곧 우상 땜에 금송아지에 이름을 새기는 바람에
이름이 삭제된 이름 이다는 겁니다
더렵혀진 이름과 거룩한 이름은
반드시 너희 손에 더럽혀진 이름으로써의 거룩한 이름이다는 겁니다
주님의 이름을 우리가 삭제 시킨 이 이름을 다시 외치시는 것이
주의 이름의 기능 곧 거룩이라는 이름은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것이 거룩이기에
아무리 다윗이 왕이 되어 본들 허망하고요
개인이 구원을 받아도 아무런 의미 없는 허구 허상 우상일 뿐이다 말이죠
오로지 다윗에게서의 산 소망은
기쁜소식은
비록 자신의 손으로 죽였지만
자신의 손으로 죽인 그 우리야장군과 이 이름없는 아기 꺽으신 뼈가
살아 있다 라는 겁니다
나의 살인이라는 무기가 안먹혀들었다 라는 것만이 유일한 산 소망이다 라는 거죠
그런데 뭘 번제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인애와 자비 곧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사랑만이 그들을 다시 살리는 겁니다
나의 죄마저도 안 통하는
아이고 그것도 살인이가
더 큰 살인 더 큰 죽음 더 큰 심판을 제대로 보여주마 라고
그들이 곧 우리야 장군 그리고 꺽으신 뼈가
제대로 된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이 종말의 행함이 있는 믿음만이
죽은 다윗을 살리는 겁니다
네 맞아요 십자가는 우리가 이미 죽은자라고 보여주는 겁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입니다
살아있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
예수님은 죽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런 행동이 아예 안나오고
존재가 사라졌다 라고 봤는데
바로 그것이 너다 라고 보여준 것이 십자가 이다 말이죠
니는 이것을 저주라꼬 퍼부었지?
아니야 이것이 유일한 산 소망이야 라고
제대로 뒤바뀌어서
팔을 어긋맞게 해서 거울로 보여준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거다 말이죠
누워서 침뱉기 한 거다 말이죠
이제 개인 구원은 다 차단 된 것을
우리 손으로 개인구원을 철회 철패
폐지 시켜버렸다 라는 거죠
거룩한 이름에게 제대로 걸려든 거죠
미끼를 확 물어버린 것이여
미끼를 통해서 물고기를 잡아 낚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에게 우리가 잡혀버린 거다 말이죠
이 물고기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면서
우리 입속으로 들어가는데 말이죠
주여 주여 원수 갚아 달라고 외치는데 말이죠
모든 것이 주의 살이고 피인데
이런 은혜를 선악으로 다 바꿔버린 인간을 향해서
원수 갚아 달라고 외치는데 말이죠
왜 마귀를 향한 전쟁에
왜 인간이 거기에 편드냐 말이죠
뭐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꼬요?
선지자의 무덤을 아름답게 회칠하면서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도록 가르치겠노라 라꼬요?
어느세~~월에~~~~~~~~~~~~
그거 산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단 하루 만에 세워지는 주의 나라 곧 주의 거룩한 이름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방인 조차도 이 거룩한 이름을 알게 하실려고
단번에
단 하루 만에
주의 이름을 부른적도 없는 자들에게 부르신바 되고
찾으신 적도 없는 자들에게 찾으신바 되는
이 거룩한 이름으로만 곧 예수님의 숙제로만
다 이루시는 겁니다
구원 이후 라는 종교용어 따위를 만들지 마시고요
구원을 매일 매일 이런 죄도
주님의 숙제가 다 이루셨다는 이 종말을 누리는 것 뿐입니다
구원 이후 라는 것을 또 원인 있는 결과로써 보기 때문에
구원은 따 놓았으니까 이제 뭐 하지 라는
또 허무에 빠지더라 말이죠 얼마나 할 짖이 없으면 말이죠
자꾸 자기 숙제를 만들어낼 궁리를 해요 글쎄
구원을 따 놓은게 아니라 구원을 무한반복으로써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마치 원인을 갖추어서 결과를 정답을 찾아냈으니까 이제 뭐하지 라는 식이다 말이죠
네 맞아요 성화론은 배불러 터져서 나온 구원론이다는 거죠
모든 종교가 다 배불러 터진 겁니다
모욕적인 구원은 바로 그런 우리를 다시 시궁창에 집어 넣어서
또 아무것도 내세울것이 없는 빈털터리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다 라는 거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당신은 저주 받기 위해 너무 너무 합당한 사람임을
내 이름을 때려죽어도 못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은 반드시 이렇게 하신다 라는 겁니다
아니 누가 자신을 저주 받기에 합당하다 라고
이 거룩한 이름과 동행하냐 말이죠
그러니까 안 동행합니다
인간이 주님과 동행하겠다 라고 다가오는 방식을 다 차단하시고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겠다 라고 다가오심의 거꾸로된 방식으로써
주님은 마치 아까 말한 내 구원이 되었다 쳐본들
내 자식이 구원 못 받으면 믄 소용이 있냐 말이죠
그렇게 주님은 내가 내 이름을 구원하겠다 라는 심뽀에 의해
도리어 없어지는 이름
삭제되는 이름
이름 없는 아기로써
산 자로 오셨다 라는 겁니다
아니 죽는다메요 그게 믄 산 자 입니까
산 자란 바로 남이 아닌 너의 손에 죽음을 당함으로써
곧 나의 손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우리는 십자가에 말려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안그러면 마귀가 시체를 찾는 독수리처럼 마귀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선악에서 못 벗어나는 성화론자처럼 말이죠
철저하게 화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꾸나
뭐 율법의 달인이다는 내가 사실은 사망의 몸
지옥으로써 율법을 지켰다고 했으니
지옥이니까 율법을 지켰다고 우겼지
지옥이 아니였으면 율법을 지킬 리가 없을 텐데
완성하신 주님을 봤을텐데
우리의 어두운 눈은 주님을 못 보는 구나
화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바로 이것을 알려주는 알려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말이죠
그러니 주님이 이제 알았냐 라고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아니 이 판국에
이 최고의 죄책감
가룟유다 보다 더한 죄악 속에 갇혀 버린 빠져나올 구멍이 없는
사망의 몸
큰 물고기 뱃속 어두운 깊은 바라 스올 무저갱 지옥에까지
주님이 찾아오셔서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겁니까
율법 다 지켰느냐 라고 물으시는게 아니라
십계명 몇 개 지켰느냐 몇 개 숙제 했니 라고 물으시는게 아니라
바로 거룩한 이름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이 심판 속에 집어넣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우리 마음 판에 새기시는 겁니다
다른 의로움 다른 거룩이 없기에
거룩을 입히시고자
우리는 음부의 권세 속에
심지어 이방인은 그 음부 그 자체인 지옥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스라엘의 빈 자리를 채우심으로 인해서
주님 손해 볼 것 하나 없이
자신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 주시기로 사랑하시기로 작정된 자를 다 건지시는 겁니다
이 심판 속에 구원이라는 모욕적인 구원을 통해서 우리는
정금 같이 나오는 겁니다
이것이 천한 계집을 왕비로 높이시는
가정부가 아닌 아내로 삼는 신랑의 거룩한 이름이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