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얼굴을 이스라엘에게서 가리우고 돌려 버리심 (겔 39,21-24)
19-112 여호와의 얼굴을 이스라엘에게서 가리우고 돌려 버리심 (겔 39,21-24)
장례반과 하나님의 정결작업 (침노하는 천국) (겔 39, 9-20)
에스겔 2019 2021. 10. 9. 11:18
19-111 장례반과 하나님의 의, 정결작업 (침노하는 천국) (겔 39, 9-20)
〈에스겔 39,21-2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4쪽, 찬송가 168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488장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찬송가 168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1.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 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2. 무덤 속에 잠자던 자 그 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 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3.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 서도록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나팔 불 때 주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에스겔 39,21-2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4쪽〉
(21) 내가 내 영광을 열국 중에 나타내어 열국으로 나의 행한 심판과 내가 그 위에 나타낸 권능을 보게 하리니
(22) 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겠고
(23) 열국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죄악으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던줄 알지라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으므로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고 그들을 그 대적의 손에 붙여 다 칼에 엎드러지게 하였으되
(24) 내가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 대로 행하여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가리웠었느니라
(겔 39:21, 현대어) [이스라엘의 회복] 네가 강대국인 마곡과 그 왕인 곡을 이렇게 심판하고, 그에게 내린 벌을 집행하면 세계 만민이 나의 권능과 영광을 똑똑히 볼 것이다.
(겔 39:22, 현대어)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인 줄을 깨달아 그 뒤로 다시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겔 39:23, 현대어)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 때문이라는 것을 세계 만민이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를 배반하였기 때문에 나도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떠나서 그들이 모조리 칼에 찔려 죽도록 원수들의 손에 넘겨 주고
(겔 39:24, 현대어) 그들의 더러움과 범죄에 대한 죄값을 치르도록 내버려 두며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려 버렸다.
〈찬송가 488장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1.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2. 내 영혼에 노래 있으니 주 찬양합니다
주 귀를 기울이시사 다 듣고 계시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3. 내 영혼에 봄날 되어서 주 함께 하실 때
그 평화 내게 깃들고 주 은혜 꽃피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4. 내 영혼에 희락이있고 큰 소망 넘치네
주 예수 복을 주시고 또 내려 주시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소제목을 단 번역이 현대어 뿐이던데
(겔 39:21, 현대어) [이스라엘의 회복] 네가 강대국인 마곡과 그 왕인 곡을 이렇게 심판하고, 그에게 내린 벌을 집행하면 세계 만민이 나의 권능과 영광을 똑똑히 볼 것이다.
제목만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했지만
정작 24절까지의 내용은 회복은커녕 도리어 버리시겠다
얼굴을 돌려버리시겠다 얼굴을 가리우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그러시는 것을까요?
마치 이사야 1장처럼 말이죠
(사 1:15, 개역)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 1:10, 개역)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1,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개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개역)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개역)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개역)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아니 이사야 1장 출발 부터가 이렇게 살벌한데
오늘 본문 에스겔 39장은 오죽 더 하겠습니까
분면 지지난 주에 마곡의 왕 연합군들과의 최후의 전쟁을 통해서
7개월 동안 시체를 치우는 장례반과 그들 마곡연합군의 활과 화살 등등의 무기들이
도리어 7년 동안 땔감으로 쓰고도 남을 정도로
확실하게 찢으셨고 얼마나 또렷하면
7개월 동안 시체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심판과 그리고 7년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풍족한 잉여 찌끄래기를
누리게 되는 7년 완벽한 거룩을 누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결작업 거룩작업이다 라고 참성전 새성전의 기능과 같다 라고
네 천사의 기능과 함께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 확실한 완벽한 심판 속에
사실은 누구도 함께 들어가야 하는고 하니
이스라엘 조차도 이 이방민족 마곡연합군 심판 속에 들어가야 한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거룩이다 라고 하니까
저들은 심판이고 우리는 심판안받는다 가 아니라
저들의 심판 속에 같이 이스라엘도 들어감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 라는 겁니다
저들은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유이고
우리는 율법이 있어서 안망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망하는 이유는 우상숭배 때문이지만
그 우상숭배로 인해 불뱀에게 물려서 당연히 죽어마땅하지만
정작 여호와의 이름을 안 쳐다봐서 망하게 되는
특별한 기능이 이스라엘로써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즉 불뱀에게 물려서 죽고 지옥가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만큼은 특별기능이 뭔고 하니
불뱀에게 물려서 죽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봐서 죽는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이다는 거죠
아 그럼 그 기능을 보여주면 구원되나요?
없습니다
지금 그 기능을 보여주면 구원되냐 라고 묻는다는 자체가
개인구원을 염두하고 있지
집단구원을 역시나 모르는
여호와의 이름을 여전히 모르는 거죠
바로 이 여호와의 이름이 담겨진 법궤의 기능을
네 천사가 어깨에 메고 마차를 몰 듯이
참성전의 기능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지상의 성전인 이스라엘인데 못 보여주니까
거꾸로 우상의 터전이 되고
강도의 터전이 되어버리니까
그거 부서버리시고
새성전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시는데 있어서
이방인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
은밀한 처소의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도록 막아버림에 있어서
그런 더렵힌 성전 속에서 아껴둔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시고자
이방인을 통해서 성전을 파괴 시키시는 겁니다
성전을 더렵혀서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못 나타내도록
여호와의 거룩 곧 하나님의 의로움 곧 거룩 곧 인애와 자비를 못 나타내도록
번제와 제사를 드리는 꼴을 못 보시겠다 라고
이방인을 통해서 성전을 불태워 버리시더라 말이죠
(겔 7:22, 개역)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7:19, 개역)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겔 7:20, 개역)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내가 그것으로 그들에게 오예물이 되게 하여
(겔 7:21, 개역) 외인의 손에 붙여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붙여 그들로 약탈하여 더럽히게 하고
(겔 7:22, 개역)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겔 7:23, 개역)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강포가 그 성읍에 찼음이라
(겔 7:24, 개역)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으로 이르러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악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겔 7:25, 개역)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겔 7:26, 개역)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
(겔 7:27, 개역)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옷 입듯하며 거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국문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자 그럼 이 여호와의 이름이 바로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시는 거룩한 이름으로써
이름 기호만으로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름과 함께 동행 동반 동시성으로써 나타나시는 것이 바로
얼굴입니다 얼굴
얼굴을 본다 라는 것은 곧 나의 얼굴도 함께 대면한다 라는 거죠
요즘 비대면 대면 이라는 용어가 코로나 때문에 자주 사용이 되잖아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 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웃끼게도 성전에 갈때에
감히 부를수 없는 불가능한 이름을 부르고자 가게 되고
곧 여호와의 이름
창조주의 이름
내가 창조주인 줄 알리라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 라고 자꾸 주님께서 반복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조차도 단 한번도 주의 이름을 부른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즉 단 한번도 주의 얼굴을 뵈러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대면할려고 가는 자들이 없고
자기 얼굴을 빼꼼히 얼굴도장 찍고
내 출근했으니까 출근도장찍었으니까 구원해 달라 라고
자기 구원을 목적으로 교회에 간다 라는 거죠
아니 심판을 받고자 주의 얼굴을 뵈어야 하는데 말이죠
간밤에 주의 얼굴을 보고도 안 타죽고 살아남았다 라는 뜻이 바로 샬롬 아닙니까
심지어 이슬람교도들 중에 어떤 민족의 인사말이 앗살라무 알라이쿰 라고 하던데
알라의 자비가 당신과 함께 하기를 라는 뜻인데
이것을 줄여서 살라암 라고 하더라 말이죠
구약에 나오는 다윗의 아들 이름도 압샬롬 이다 말이죠 압 아버지, 샬롬 평화
나의 아버지는 평화다 라는 뜻 아니냐 말이죠
우리 때에 갑자기 갓 브레이스 유 라는 당신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라는 말이 유행했었고
스타워즈에 포스가 함께 하기를 라고 선한 영혼이 함께 하기를 뭐 그런 뜻으로
다들 좋게 사용하는데
평강 평강 이라고 거짓선지자들이 외치나 평강이 없다 말이죠
왜 이름만, 말만, 기호, 단어만 외칠줄 알았지
오늘 본문처럼 함께 동시적으로 등장하는 얼굴은 안 볼란다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너만 얼굴 안 볼란다 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작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너에게 여호와의 얼굴을 가리우시겠다 안볼란다 라고 돌려버리시겠다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됨으로써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이 잃어버림 속에
찢으심 속에
완벽한 심판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곡을 강퍅케 하듯이 최후의 전쟁을 하라꼬 깨작 깨작 시비를 걸 듯이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고자
애굽왕 바로왕을 강팍케 하심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미끼를 덮썩 물도록 하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미 죽었던 애굽왕을 1000년 만에 지옥에서 끄집어 내시는 겁니다
천년 이라고 나오면 역사가 아닌 묵시의 세계이다는 거죠
그 묵시의 활동 배경으로써 역사가 카페트로써 무대장치가 되는 거죠
에스겔이 BC 600년 쯤이니까 3-400년 뒤에 중간기를 거쳐서 예수님이 등장하시니까
예수님 당시로 치면 1300년 만에 애굽왕을 끄집어 내시는 거죠
계시록에서 지옥 벌레를 끄집어 소환하여 내시듯이 말이죠
여기에 모세가 변화산에서 1300년 만에 나타나서
주여 어서 별세해 주세요 라고 하듯이
지금 모세는 심판의 자리에서 주님의 피 흘리심만을 쳐다보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은 왜 자기쪽에서 금을 바쳐서 성전에 기도하는 것이
왜 우상숭배인지
오늘날 성화론이 왜 우상숭배인데
모 목사처럼 구국운동으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것이 왜 우상숭배인지를
이미 새성전이 떠 버린이상
이 새성전 참성전의 기능으로서 새이스라엘은
마른뼈로써 하나님의 군대로써
참성전의 기능을 외치고자
심판의 자리에서
잃어버림의 자리에서
찢으셨으나 의 자리에서
예수님이라는 참성전의 기능을 외치고자
죄인으로 삼으셨다 말이죠
죄인만이 자기의 옳았음을(욥처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베드로처럼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노라 라고 말이죠
그게 아니라
환자의 자리에서
죄인 곧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자리에서 의사를 구원자를 외치고자
안그러면 세 번 부인한 그 부분만 오려낼려는 가룟유다의 하나님나라 운동
양심 도덕 스스로 깨우침의 운동을 펼칠테니까 말이죠
그럼 베드로가 세 번 부인 하기 전에는 그럼 그 모든 것이 죄가 아니였단 말입니까
그것도 모두다 죄였고
오로지 주님 쪽에서 살려주심
7에 70번 용서해 주심으로만
그 동안 살아왔는데
이것이 인애와 자비 인데
자꾸 번제와 제사를 바쳤기에 살아왔다 라는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거 무너뜨리고자
지금 주님께서는 얼굴을 돌려버리심으로 인해서
무조건 이스라엘은 잃어버림의 자리에 놓여지는 겁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찢으심으로써
저들 마곡의 연합군 7개월 동안 시체를 채워도
지옥 골까지
하몬곡 해골 골짜기 언덕 과 다를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주님의 용서로 참성전의 기능
곧 주님 쪽에서 죄를 거룩으로 옮기신 이 이름의 기능
얼굴을 보고도 안 타죽도록 배려해주심 봐 주심
억수로 억수로 많이 봐주시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이 관계로써만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도록 하신 것인데
인간은 자꾸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마귀의 얼굴
멋들어진 얼굴
광명한 천사의 얼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얼굴
번제와 제사를 바치는 얼굴로써
예수님의 얼굴을 대할려고 하니까
예수님의 얼굴이 우리의 죄악을 담은 얼굴이라서
싫어버린 바 되고
아름다운 풍채도 없고 질고 전염병에 걸린 얼굴이라서
태양빛이 거슬려서 새까만 얼굴이라서 다들 고개를 돌려버리시는데
사실은 거울로써 너희들 곧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얼굴을 돌려버리시는 겁니다
그 정도로 강도의 얼굴을 한 줄도 모르고 뭐 잘난 얼굴이라고
주님의 마당을 밟느냐 말이죠
이사야가 3년 동안 발가벗은게 아니라
3년 완벽한 심판 말이죠
사실은 이스라엘이 완벽한 심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발가벗었고
발가벗은 이집트와 손 잡더라 말이죠
그거 하지 말라꼬 이사야가 거울로써 보여준 것인데
거꾸로 누워서 침 뱉기 하듯이
남의 눈에 티끌을 빼겠다 라고 하니
자신의 눈에 대들보를 못 본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잃어버림 속에 집어 넣어야지
왜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특이성 곧 약속의 정신
십자가의 정신인 7에 70번의 용서와 왜 안 맞는지를
이 사탄의 깊은 것을 거쳐서
거짓평안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나 평강이 없는 그 이유를 알게 하시는 것이
그 이름이요 그 얼굴이다 라는 겁니다
얼굴 보면 타 죽어야 하는데도 말이죠
성전이 뭡니까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다 타죽어버리더라 말이죠 대제사장이 말이죠
어딜 감히 더러운 주제에 법궤를 쥐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여호와의 얼굴을 볼려고 겁도 없이 들어오느냐 말이죠
멋들어진 구원이 다 무너지는 겁니다
이렇게도 모욕적인 구원이 없도록 하시는데 말이죠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냐 라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손 깨끗하니?
아뇨 더럽습니다
이 더러움 자기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치를
죽음을 가릴 방법이 있니?
없습니다
주님 쪽에서 씻겨주시는 정결 작업이 없으면
이것이 제사장이 성전에서 펼치는 주의 이름의 기능이요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기능인데
선지자의 계시와 제사장의 율법과 장로들의 지혜 곧 모략 조차도
모조리 다 우상숭배로 치우지다 보니
주의 이름을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막고자
자기들 쪽에서 바치는 거룩한 것으로 참성전의 기능을 막을려고 하니
십자가의 피 정신을 방해하고
인간 쪽에서 오늘날처럼 성화운동을 펼쳐서
자기들의 거룩한 말씀을 지킨 거룩한 행함을 드려서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막을려고 하니
십자가의 기능을 막을려고 하니
선지자의 계시
제사장이 율법
장로들의 묘략이
다 인간구원을 위한 우상숭배로 이용이 되더라 말이죠
아까 올린 구절 다시 올릴께요
(겔 7:19, 개역)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예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
(겔 7:20, 개역)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하여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내가 그것으로 그들에게 오예물이 되게 하여
(겔 7:21, 개역) 외인의 손에 붙여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붙여 그들로 약탈하여 더럽히게 하고
(겔 7:22, 개역)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겔 7:23, 개역)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강포가 그 성읍에 찼음이라
(겔 7:24, 개역)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으로 이르러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악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겔 7:25, 개역)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겔 7:26, 개역)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
(겔 7:27, 개역)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옷 입듯하며 거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국문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어딜 감히 오예물을 가지고 오느냐
이사야 1장으로 치면 너희들의 기도 안들을란다
내 마당만 밟고
내 한테 잘 보일려고 오니
나는 고개를 얼굴을 돌려버리겠다
안볼란다 라고 눈을 가리고
안 들을란다 라고 귀를 가리고
인간은 자기따나 가장 거룩하다 라고 가지고 오는데
주님은 정작 똥 덩 어 리 배설물을 가지고 왔다 라고
냄새난다 라고 치워라 이것들아 하시는 겁니다
그럼 뭘 원하시는데요?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심으로 인해서
이 인애를 구하도록 만드시고자
잃어버리게 만드시고
주여 살려주세요 라고 긍휼을 부르짖도록 죄인 환자 만드시고
자기를 구하도록 만드시고자
애굽왕을 강퍅케 만들어서 포로잡히게 하시고
마른뼈 만들어서 하나님의 군대로써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십자가의 지혜를 펼치시는 겁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인애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이죠
이것이 목자 라는 막대기 이고
죽은 자를 대신 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는
화목제물로써의 주 되심과
포로 된 자에게 주의 성실하심으로 인해
자유를 주시고자 자유하는 여자로 만드시고자
원수들을 끌여들여서 혼인잔치를 베푸시는
왕
왕이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는 분이시거든요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내 낭군이시군요
지옥에서 마귀의 손에서 끄집어 내어 주신 분이 왕
적 원수를 이기는 자 이시군요
이것이 유다지파의 왕 막대기로써
목자와 왕 이라는 두 막대기의 기능을 펼치심에 있어서
우리 성도는
이 이스라엘의 기능은 이 목자의 기능과 왕의 기능을 다 이루신
말씀성취의 증상물로써 누리도록 되어 있는 전리품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죄악 때문에 우상숭배 때문에 포로잡혀가야지요 뭐
나는 절대로 우상숭배 안하겠다 라고 해도
솔로몬이 수입해 버리니까
윗물이 더러우니까 아랫물도 다 더러워지는
전체 구조 속에 갇혀버린 상태가 되는
율법의 기능에 의해서
한 사람이 범죄 함으로써 모두가 다 범죄케 되는
항아리 속에 쥐가 된 겁니다
아무리 저 한 사람이 중국의 우한에 갖다오는 바람에
바이러스가 전국에 다 퍼져서
저 한 사람을 죽여본들 바이러스가 사라지냐 말이죠
다 헛짖이지요
그런데 한 사람 곧 다윗이 용서 받으니까 다 용서받는
이 말도 안되는 이 율법의 기능을 무시하고
자기가 율법 지켜서 수치를 가리우고 거룩한 자가 되어서
구원을 얻겠다 라는
이 평상시의 우상숭배사상을 끄집어 내시는 겁니다
전 뭘 해도 우상숭배에서 빠져나올 능력이 없다 라고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야 하는 판국에
주여 저는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고 삥뜯어서 로마에게 세금으로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했을때에
나는 그런 하나님이 되기 싫다 라고 도망치시듯이
그런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어딜 감히 우상과 하나님을 썩으냐 라고 하신다 말이죠
오늘날 목사들이 외치는 설교내용이 다 이런 내용 아닙니까
최고의 성화론자 목사도
결국 십일조 했구요 했구요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가룟유다처럼 하나님 나라 운동 했구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아하스 왕이나 시드기야 왕이나
다들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뭔가 거룩한 행실을 보여야 한다 라는 그 중심에
주님은 바로 그런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그 시선을
끌어와서 왜 그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님을 더더욱 죽이는 일인가를 보여주심으로써
주님 쪽에서 준비하신 거룩작업 정결작업을
인간 쪽에서 준비한 것이 우상숭배로써
마귀를 이길수 없음을 도리어 포로 잡혀버림을 보여주시고자
지금 포로 잡혀서
얼굴을 가리우시고
돌려버림으로 인해서
마른뼈가 되고
무능자가 되고
어린아이처럼 되게 하셔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우는 아이처럼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는
그 처음사랑의 자리에서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얼굴로써 거룩을 입히심으로써
참성전의 기능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자 그렇기에 이름만 있고 얼굴이 없다면
이것은 망상이 되는 허구일 뿐입니다
마치 모든 사물에는 곧 형상에는 이름을 붙인다 말이죠
그 이름이 소위 언어로 구성이 되어 있다 말이죠
그 언어란 결국 인간의 자아에서 나온 겁니다
선악의 언어요 바벨탑 언어이다 말이죠
(마침 제가 중학교를 불교재단의 학교를 다녔는데
밀교에 해당되는 불교였다 말이죠
강제배치이니까 원해서가 아니라 집 근처에 있다 보니 말이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였으니 어쩔수 없었는데
그 밀교가 소위 기존의 불교와 달리 형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밀교 비밀의 종교로써 불상을 만들지 않는다는 거죠
어쩌면 불상을 만들고 거기에다가 절하고 의미를 둔다는 자체를 우상으로 보는 듯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밀교시간에 도덕선생이 인도하더라 말이죠
또 웃끼게도 고등학교는 기독교재단이였구요)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얼굴인데 ? 이름을 깨뜨리는 것 말이죠
단어 문자 언어를 말이죠
그 얼굴 또한 얼굴만 있고 이름은 없다 라면 소위 귀신에 해당 되는 것이겠죠
이것 역시나 망상과 같은 허구 허상이 되는 겁니다
포착이 되어야 하는데 포착이 되지 않으면 인간은 뜬구름잡기에 허덕일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종교는 반드시 이름으로써 신을 규정하는 겁니다
모세가 당신 이름이 뭡니까 와 얼굴을 보고 싶다 라는 내용으로써
(출 3:14, 개역)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10:28, 개역)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출 3:4, 개역)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 3:5,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6, 개역)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출 3:7,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출 3:8, 개역)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출 3:9, 개역)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출 3:10, 개역)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 3:11, 개역)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2,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13, 개역)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4, 개역)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5, 개역)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나의 표호니라] 라는 표현을 다른 번역에서는 어떻게 했나 보니
개정번역은 [칭호]로
(출 3:15, 개정)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출 3:15, 改訂)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子孫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祖上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永遠한 이름이요 代代로 記憶할 나의 稱號니라
한문개역성경은 [표호]로
(출 3:15, 改譯)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子孫)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祖上)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永遠)한 이름이요 대대(代代)로 기억(記憶)할 나의 표호(表號)니라
쉬운번역 은 [표] 라고
(출 3:15, 쉬운)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그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여호와께서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시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이것이 영원히 내 이름이 될 것이다. 또 대대로 나를 기억할 표가 될 것이다.
킹제임스흠정은 [기념물] 이라고
(출 3:15, 킹흠정)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너희 조상들의 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이것은 영원토록 나의 이름이요, 이것은 모든 세대에 이르는 나의 기념물이니라.
한글킹제임스는 [기념]으로
(출 3:15, 한글킹)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말할기를 '너희 조상의 주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느니라.' 하라. 이것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이것이 모든 세대에게 줄 나의 기념이 되리라.
현대어는 그냥 [기려야 할 이름]의 의미로
(출 3:15, 현대어) [모세에게 할 일을 이르시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이것이 영원토록 나의 이름이 되리라. 이 이름을 자자손손 잊지 않고 불러 나를 기려야 하리라.
카톨릭 성경은 [칭호] 로 나오고
(출 3:15, 가톨릭)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나머지 번역은 다 그냥 [이름]으로 표현되었더라 말이죠
결국 단어나 문자나 언어에 담겨질수 없는 언어 너머의
언어를 넘어서는 기호가 된다 라는 거죠
즉 단어로 이방인들이 중언부언으로 부를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라는 거죠
즉각적으로 살아있다 라는 겁니다
부르는 자에 의해서 불려지는 칭호 표호가 아니라
아니부르고는 못배기는 도리어 기호가 응시해 버리니까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있는 자 라고 한 거죠
피조물에게 붙이는 이름이 아니다 라는 거죠
내가 누구인지 알 리라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고 했을때에
불리워지는게 아니라
안 부르고는 못 배기게 하겠다 라는 거죠
이 의미가 뭔지를 살리게 설명을 할려면
질투의 사랑으로 표현하면 참으로 딱 맞는데
사랑받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사랑 안하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주마 라고 질투로써 다가오는 사랑처럼
그런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즉 애굽왕이 여호와가 누구관대 라고 나 그 신의 이름 관심 없어 라고 했을때에
오냐 내가 누구인줄 제대로 알려주마 라고
각인 시키는 이름
즉 홈을 파는 이름이다는 겁니다
몸에 상처를 내면
몸서리 칠 정도로 트라우마로 그 이름에 벌벌벌 떨게 만들어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마치 팔 하나를 짤리게 되면
그 이름만 들으면 짤린 팔이 자꾸 쓰라리겠끔
신체에 각인되는 것처럼
질투가 시기가 이름으로써 나타날때에
그 질투의 증상으로써 짤린 상처를 입은 몸 신체는 벌벌벌 떨게 된다는 거죠
없는데 이름만 듣고도 말이죠
그러니 나의 언어 나의 선악의 신체를 넘어서는
기호가 되는 겁니다 메타 언어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가 되는 기호이다는 거죠 비언어로써의 기호 말이죠
나는 그 이름만 들어도 이성적으로 안 떨겠다 라고 마음 먹어도
신체는 질투의 이름으로부터 상처입은 것을 기억해서 자꾸 벌벌 떠는 겁니다
이성적인 마음과 따로 몸은 벌벌떨고 몸이 땀이 삐질 삐질 흐르고
자꾸 쓰라린 상처가 다시 스멀 스멀 일어나듯이 말이죠
몸 따로 마음 따로 각각 따로국밥으로 놀겠끔 만드는 칭호 표호 기호가 된다는 거죠
기념이름도 딱 맞고요
기념비가 땅에 박히듯이 세워지듯이
육체 신체에 박히듯이 세워지는 기념비가 되니까 말이죠
각인이 되는 홈패임을 당하게 되는 이름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이름에 부합이 되는 얼굴이 이름과 함께 나타나야 살아있다 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살아있다 산자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문제는 인간들은 신의 형상 곧 얼굴을 그려놓고 만들어 제작해 놓고서
그 얼굴을 인간 중에 가장 자비롭게 인자한 모습으로 형상화 하는데
그 신의 얼굴이 바로 인간의 얼굴을 배끼는 식이 되는 신의 얼굴의 원본이 인간의 얼굴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표호 라는 기념이름에 맞는 얼굴은
전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는 얼굴이기 때문에
얼굴이 있기는 있는데 봤다가는 타 죽어야 하는 얼굴로써 등장하는
그 이름
곧 스스로 있는 자
곧 창조주 라는 이름에 맞는 얼굴로써
여호와 라는 이름에 맞는 얼굴로써 등장하시는 겁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이 뭡니까 전쟁의 신이요 거룩한 전쟁을 벌리시는 신이거든요
구세주 라는 의미로써 예수 라는 이름은 구원자 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자 곧 죄인을 구원하시는 자로써 왔다 라는 거죠
포로 된자 잃어버린 자에게 자유케 하시고 되찾게 하시는 구세주가 되는 이름이다는 거죠
즉 포로 된 적도 없고
죄인도 아닌 의인이요
환자가 아닌 건강한 자에게는
예수 라는 구원자 구세주 라는 이름의 의미가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언어에 갇히지 않는
소통 불가의 단절로써의 이름이 되는 거죠
인간은 죽어 있는
첫아담에 속해 있기에 죽어있는데 아무리 단어로써 예수 라는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는 이유인 거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자입니다 라는 것이 깔려있지 않은 자에게는
그저 주문 주술의 주문 외우기 밖에 안되는 겁니다
산 자의 하나님인데 말이죠
그러니 누구 누구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죽은 아버지를 살리는 산 자의 하나님이기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그 이름에 맞는 얼굴로써 보면 죽어 라고 나타나는 얼굴이니
본 자는 다 죽는다 라는 겁니다
안 죽는 방법은 얼굴을 보이시고서 안 죽도록 조치를 해 주심으로써 살게 되지
인간 쪽에서는 그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얼굴이 아예 없게 된다 라는
이 단절을 역시나 보여주는 얼굴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까 올린 구절
(출 10:28, 개역)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어 잘못 올린 것 같은데
그래도 도리어 이 실수가 도리어 잘 된 입장인데
출애굽기 3장에 이름과 얼굴이 다 나오고요
10장은 애굽왕 바로왕이 모세에게 말하기는 너 모세는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일이 없도록 만들어 버리겠다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을줄 알아라 라고 협박하는데
이것이 여호와 라는 기념이름의 거룩한 전쟁의 신이
바로왕을 강퍅케 해서 나오게 한 말이다 말이죠
바로왕은 지가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여호와께서 하게 만든 말이 되는 거죠
그리고 결국 바로왕이 다시는 모세의 얼굴을 못보게 되는 상황이 거꾸로 벌어지게 되는 거죠
아들의 죽음 곧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
한 쪽은 아버지의 아들이 죽음으로 인해 구원 곧 부활이 단절이 되고
다른 한 쪽은 어린양의 죽음으로써 아들의 죽음으로써 아버지를 살리는
기념이름의 기능을 보게 되는 겁니다
자 다시 에스겔로 돌아와서
성전에 있는 법궤에 담긴 여호와의 이름과 하나님의 얼굴의 등장으로 인해서
타 죽어야 할 자들이 안타죽게 된 것은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부정한 입술을 제반숫불로 부정함을 제거함으로써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하나님의 얼굴을 봐 버렸구나 (이사야)처럼
바벨론 포로 속에서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봐버렸구나
불뱀에게 물린게 심각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봐버린 경험을 하게 되는
요나의 표적 기호 싸인 홈패임을 격게 됨으로써
불뱀에게 물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의미 없고
내 죽음은 의미 없고 말이죠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의미가 없고
율법 지킨 육체는 의미가 없고
예수님의 죽음만 의미가 있다 라고 외치는 자로써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의 죽음만을 외치는 자로써
이것만 의미를 두는 새피조물 새언약의 증상물로써 새로 내어나는 겁니다
이것이 마른뼈 라는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이요
율법의 완성을 다 이루신 말씀성취를 입혀짐을 당한 문제아
정답이 찾아낸 문제아 탕자로써 죽은자로써 마른뼈로써
고아 과부 나그네로써 하나님의 군대로
거룩한 여호와의 전쟁을 목격하고 그 승리의 증인으로 세워지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과 곧 스스로 있는 자 창조주의 이름 여호와 라는 이름과
그 이름에 걸맞는 얼굴 곧 보는 타 죽어야 하는 거룩한 얼굴을 보고서도 안 타죽도록 배려하신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문제아로써 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로써
내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요 주님의 얼굴만 옳았다 라고 외치는 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죄는 결국 우상숭배로 귀결된다 말이죠
자기자신을 위한 탐심으로 귀결되는 결과이기에
그 자아의 얼굴을 투사한 신 곧 우상과의 싸움에 놓여지는 자가
주님의 얼굴을 보고 밀어붙이는 겁니다
우상의 얼굴과 하나님의 얼굴 싸움이다는 거죠
두 성전의 싸움처럼 인간의 신체와 새 몸 곧 예수님 몸과의 싸움, 전쟁
마찬가지로 두 얼굴의 싸움이 되는 겁니다
얼굴이란 모든 정보가 얼굴로 표출이 되는 최전방이거든요
몸의 상태도
무엇을 생각하는 지도
무엇을 목적으로 행동하는지도 모든 것이 나타나는 것이 얼굴이거든요
인간의 얼굴은 모조리 자기 구원이라는 우상 세우기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주님의 얼굴은 바로 그것을 꺽어버리고자 전쟁을 벌리시는 얼굴이 되는 겁니다
두 성전 두 소욕의 충돌과 똑같죠
계시록에 24장로들이 면류관이라는 영광을 주님으로부터 받아서 하나님의 보좌 옆에 24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계 4:4, 개역)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 4:9, 개역)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계 4:10, 개역)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네 천사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돌릴때에
24장로들도 면류관을 보좌 앞에 반납하더라 말이죠
이 24장로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
죄인이였다 라는 겁니다
즉 빛이 비추이면 나는 빛이다 라고 나오는게 아니라
나는 어두움인 것을 빛이 비추어주심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런 죄인만이 이 기념이름을 부르짖게 되는
죄인이 주체가 되어 이름을 부르는 겁니까
이름이 죄인에게만 불리워지도록 하시는 기념이름이 주체(주인공)이다 라는 겁니까?
내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 이름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인다 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비로소 어두움으로써 빛을 비추어 주시는 주님께
면류관을 반납하는 겁니다
이것이 얼굴을 보고도 안 타죽는
뭐가 잘 나서 안타죽는게 아니라
주의 영광의 얼굴이 억수로 봐주시는
인애와 자비를 베푸셔서 안 죽이시고 살려주시는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나는 올해도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어두움 임을
빛의 얼굴이 비추어 주심으로써 새록 새록 알게 하심으로써
매일 매일 남을 7번 용서함으로써
성전의 기능을 하는게 아니라
거꾸로 매일 매일 주님으로부터 7에 70번 용서를 받음으로써
참성전의 기능을 받게 되는 거룩을 입히시는
여호와의 정결작업을 당하는 거룩을 누리는 겁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말씀을 성취하심을 누리는 증상물이 되더라 말이죠
그런데 거꾸로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다들 우상숭배로 빠지는 겁니다
그들과 싸우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주님의 거룩작업 정결작업을 모독하니까 말이죠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니까 말이죠
자꾸 자기 쪽에서 거룩을 바칠려고 해요
주님의 참성전 기능을 거부하면서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막을려고 말이죠
그것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는 겁니다
주께서 아껴둔 이름을 못 나타내게 할려고 막아서는 거다 말이죠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에서 자꾸 부정한 자를 높이시고
거룩하다 자칭 빛의 아들들 이다 라는 행동은 거부하시는 식으로
팔을 어긋맞게 하시더라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질 않나
창기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간다 라고 하지를 않나
선악의 법과 반대되는 것이 은혜의 법이다 라는 겁니다
빛을 비추면
얼굴을 나타내시면
나는 타 죽어 마땅한 죄인이요
어두움입니다 라고 나와야 하는데
자꾸 십일조 냈다 거룩한 행동했다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 거룩한 말씀 지켰다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절대로 타 죽어 마땅한 죄임임을
상한심령임을 이 얼굴을 무시하니까 자기가 옳은일 했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얼굴 보라니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니깐
너희들이 가지고 온 거룩과
주님 쪽에서 다 이룬 거룩 곧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라는 거룩과
곧 영광의 얼굴과 비교해 보라 말이죠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안 볼려고 자기 얼굴을 들이내밀때에
누구의 얼굴이 옳았냐 말이죠
인간 자기의 형상을 따라 만든 우상의 얼굴을 들이내밀어야 하겠습니까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얼굴을
싫어버린바 된 얼굴을
참성전의 기능으로써 보여주시는 겁니까
정작 누가 싫어버린바 되어야 하는 얼굴이냐 말이죠
온갖 아름답고 풍채있고 흠모할 아름다운 모양으로 꾸민 얼굴인 우상이냐
아니면 싫어버린바 되고 새까맣게 태양빛에 어두 컴컴하게 타버린 얼굴이냐 말이죠
누가 저는 어두움입니다 라고 나오겠냐 말이죠
주의 얼굴을 보고서 입니까
우상의 얼굴을 보고서 입니까
누가 나를 제대로 불태우는
상한심령으로 만드는 얼굴이냐 말이죠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주여 인애와 자비를 베푸셔서 제발 용서해 주시고
제발 이 죽은자를 살려주세요 라고 안부르짖고는 못배기는 얼굴이냐 말이죠
지금 에스겔 오늘 본문 39장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심판의 불 속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서는 고개를 얼굴을 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다음 주에 할 오늘 본문 다음 구절에서는
심판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이스라엘에게
그것도 마른뼈 이스라엘
포로 속의 이스라엘
심판의 불 속의 이스라엘 속에 나타내시는 겁니다
잔칫집에 간 이스라엘에게서는 주님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안 보이시고
초상집에 간 이스라엘에게서는 주님의 얼굴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아무리 이 세상 전부가 어두움으로 가득찬 우상숭배의 터가 되어도
주의 이름만을 부르고 주의 얼굴을 보고도 안 타죽은 주님의 7에 70번의 용서를 받은
이스라엘 만큼은 빛을 비추는 자로써
새 몸 새언약을 외치는 자 곧 새이스라엘이다는 겁니다
곧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써
성령의 전으로써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장소 곧 걸어다니는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 빛의 얼굴을 모세처럼 영광을 받아서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을 가려야 할 정도로
백성들이 무서워 떤 것처럼
우리 성도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성령의 전으로써
백성의 죄로써 흠없으신 분이 피 흘리신 살해 당한 장소가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장소요 성전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겁니다
누가 살해했습니까? 우리입니다 나입니다 나
24장로가 그래서 면류관을 반납하는 겁니다
나 같은 원수도 용서하신 그 말씀성취에
나의 말씀실천은 거부당하고
거부당한 것 뿐만 아니라 단절 뿐만 아니라
아주 아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써 예수님을 죽인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킨
그 정도로 문제아요
하나님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원수 된 것을 하나로 만드신 이 십자가라는 화목제물이
피 흘리신 장소가
주의 이름이 제대로 불리워지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게 되는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을
저 원수들의 목전에서 펼치시니
원수들은 자기들이 잡은 원수라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하나님의 원수 베드로를 잡아왔거늘
정작 정결작업인 십자가의 피로써 거룩케 하고
도리어 결혼까지 하나님의 원수의 목전에서 펼치시니
누가 격동하고 견디지 못하겠습니까
의인이라고
건강한 자라고
빛의 아들이라고 하는 광명한 천사가 견디질 못하는
이 새언약을
이 말씀성취를
이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바로 신랑과 신부가 한 몸이 되는 장소가
하나님의 거룩작업 정결작업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장소요
마치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 어두운 바다 깊은 그 캄캄한 스올 무저갱 지옥이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안 부르짖고는 못배기도록 만드시고자 마귀를 강퍅케
사망을 강퍅케 한 장소요
이 사망의 몸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이구나 몸이구나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망하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는 한 사람일 뿐이구나 라는 그 장소가
바로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부르짖는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흠 없는 죄 없는 분이 살해 당하고 피 흘리시는 장소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는
아무리 캄캄한 어두운 곳일지라도 빛이 비추어지는
생명의 장소로써
어린양이 죽는
대신 죽는 장소가 바로
인간 쪽의 바벨탑 구원의 탑 우상의 탑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거부하시고
주님이 친히 마련하신 구원의 장소가 되는 겁니다
가장 어두움의 극치의 장소인
음부의 권세가 활활 타오르는 장소에
교회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는 결혼 장소가 되는 거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예수님의 피 위에 세우시는
피로 사신 교회가 되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신들의 얼굴이 자기 잘남을 자랑질 할때에
즉 인간이지요
자기 얼굴의 빛남을 자랑할때에
그래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음을 겸손 떨면서 자랑질 할때에
정작 예수님의 얼굴은 바로 이런 인간의 자기 잘남을 신의 이름으로 자랑질 하면서
십의 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을 내세울때에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 적 없다는 둥
그렇게 내세울때에 (엉터리 성전개념을 추구하듯이)
바로 그런 인간의 우상숭배에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막고
참성전의 거룩을 막아서면서
예수님을 죽이고 살해하는 그 상처입은 모습으로써
최종적인 어두움의 극치를 보여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으로써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라고
하나님의 절대저주인 십자가를 완료했다 라고 선언하시는 겁니다
이런 말씀성취를 인간들은 거부했거든요
정작 이런 말씀성취였다면 우리가 이 하나님의 절대저주인 십자가라는 저주에
심판에
진노에 우리가 달렸어야 했는데
주님이 달렸으니
제대로 된 거울 아니냐 말이죠 거룩한 거울
그 거울을 비추이시는데
유대인들은 얼마나 거리끼는 걸림돌이겠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십자가를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따로 자기만의 거룩을 갖추니까
주님께서 비춰주는 거룩한 거울을 자꾸 깨뜨리는 겁니다
또 자기 쪽에서 성전에 바치는 잘난 얼굴을 들이내밀 때 마다
주님은 얼굴 돌리시고
정작 예수님의 새까맣게 타버린 어두움의 극치요
싫어버린바의 극치요
질병을 진 얼굴의 극리요
흠모할만 하고 아름다운 고운 모양이 없음의 극치인 그 얼굴을
우리는 다들 보기 싫다 라고 고개를 얼굴을 돌려버리는
이 두 얼굴의 두 소욕 전쟁에
누가 옳았다 라고 나와야 하냐 말이죠
이름이란 안 부르고는 못 배기는 이름으로써
상대방의 이름을 갈아야 비로소 부리게 되는 겁니다
신의 얼굴 신의 이름을 부를때에
신의 이름을 빙자해서 자기 이름을 자랑질 하는 그 속내를
이미 아시니까
그 이름도 못 부르겠고
그 얼굴도 안 쳐다 볼란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나의 이름을 나의 자랑질을 나 라는 우상을 제대로 무너뜨리는 진짜 죽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자만이
그 기념이름만이
나의 이름을 갈아버리고 새 이름으로 오신 분이시다 말이죠
나의 얼굴의 가면을 제대로 벗겨버리는 얼굴만이
내가 마주해야 할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얼굴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 얼굴을 갈아엎어버리지 못하는 얼굴은
나의 얼굴을 제대로 태워버리지 못하는 얼굴은 가짜이다 말이죠
어딜 감히 욥처럼 내가 옳았다를 내세울수가 있냐 말이죠
머리를 땅에 쳐 박고
잿더미를 머리에 뿌려 뒤집워 씌우고
생일 가장 잔치 중의 잔치인 혼인 그 다음의 가장 기쁜남을 저주의 날로 선언할 수밖에 없는
이 참얼굴을 봐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봐야
그리스도와 한 몸 아니냐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주님의 대신 피 흘리심
살해당하심이라는
가장 어두운 악마의 얼굴을 벗겨버리시는 비추시는 거울로써 말이죠
언제까지 죄 죄 죄 칼레 라고 비웃는 목사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이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외치는 것이
주의 얼굴을 제대로 본 타죽어 마땅한 자로써
문제아로써
문제아가 된 자아가 아니라
정답이 새롭게 만들어낸 문제아 탕자요
죄인이요
마른뼈로써
이 말도 안되는 십자가의 피 흘리신 말씀성취를 외치는 자이다는 겁니다
주님이 만드시겠다 라는데 누가 말릴수가 있겠습니다
나도 못 말리고 아무도 못 말립니다
문제덩어리 로써 저들을 부끄럽게 말이죠
죄인 중의 괴수로써, 어두움 중에 어두움으로써
(창기와 세리가 이 종말의 천국을 증거할 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다들 종말이 아닌 잔칫집에 우상이 가득한 에덴동산 같은 애굽 잔칫집을 주장하는 그 속에서)
이 십자가의 사랑을 넉넉한 사랑을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증거케 하시는 겁니다
극한의 망해야 할 자로써 이것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시는 이유입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곧 잔칫집 추구에
오로지 어린양의 피 흘리심의 주의 얼굴이 있는 초상집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기념이름만 앞장세우는 성령의 전
곧 우리이며 죄인 중의 괴수 로써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만 찬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