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아 너희가 여호와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겔 11, 5-13)
21-029 이스라엘아 너희가 여호와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겔 11, 5-13)
주의 신 ; 인자야 백성의 지도자를 쳐서 예언하고 예언하라 (겔 11, 1- 4)
에스겔 2019 2021. 10. 17. 08:54
21-028 주의 신이 인자야 백성의 지도자를 쳐서 예언하고 예언하라 (겔 11, 1- 4)
〈겔 11, 5-13,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3 쪽, 찬송가 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542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찬송가 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1. 구주와 함께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2. 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때도 같이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3.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 때도 같이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4.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롬 6:4,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7,55-61 개역한글, 신약성경 51쪽〉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겔 11, 5-13,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3 쪽〉
(5)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6)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살륙하여 그 시체로 거리에 채웠도다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살륙한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려니와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끌려 나오리라
(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고
(9) 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붙여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10)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국문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1)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12)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13)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겔 11:5, 새번역) 그 때에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셔서,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일러라.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하는 말과 너희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나는 잘 안다.
(겔 11:6, 새번역) 너희는 이 성읍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여서, 그 모든 거리를 시체로 가득히 채워 놓았다' 하여라.
(겔 11:7,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할 말은 바로 이것이다. 너희가 이 성읍 가운데서 죽인 시체들은 고기요, 이 성읍은 가마솥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를 이 성읍에서 내쫓겠다.
(겔 11:8, 새번역)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이 칼이므로, 내가 너희에게 칼을 보내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11:9, 새번역) 내가 너희를 이 성읍 가운데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넘겨 주어서, 너희에게 온갖 형벌을 내릴 것이니,
(겔 11:10, 새번역) 너희가 칼에 쓰러질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심판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11:11, 새번역) 이 성읍은 너희를 보호하는 가마솥이 되지 않을 것이며, 너희도 그 속에서 보호받는 고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심판하겠다.
(겔 11:12, 새번역)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정하여 둔 율례대로 생활하지 않았으며, 내가 정하여 준 규례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너희의 주위에 있는 이방 사람들의 규례를 따라 행동하였다."
(겔 11:13, 새번역) 내가 예언하는 동안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었다. 그래서 내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큰소리로 부르짖어 아뢰었다. "주 하나님,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마저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하십니까?"
〈찬송가 542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1. 주여 지난 밤 내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2.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3. 세상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에스겔 8장에서 11장 까지는
바벨론 포로 잡혀가서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이 환상을 보는 내용들입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칼이 이스라엘을 엎드러지게 하시는 환상입니다
왜? 6년 전에 예루살렘성전을 더럽혔다 라고
이것이 이스라엘이 해체되는 결정적인 결과로써
예루살렘성전을 파괴시키시는 이유인 거죠
곧 우상숭배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 쪽에서의 성전청결작업이 바로 신앙이다는 겁니다
신앙 곧 믿음은 외부 작업입니다
반대로 우상숭배는 인간 쪽에서 신앙을 펼쳐보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보겠다 라는
내부작업이 되는 것이겠지요 내부작업이니까 기껏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 으로 땜빵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이 최선이니까 말이죠
바로 그런 선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런 번제와 제사를 받는 분이 아니라
주님은 도리어 주시는 분입니다
인애와 자비를 말이죠
이 사랑을 알려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을 아는 사랑을 곧 지식이지요 알게되고
그래야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게 되지 순종하게 되지
안그러면 자꾸 제사를 바칠려고 달려들 것이다 말이죠
바로 그런 자꾸 순종은 하지 않고 제사를 바칠려고 하는 모습을 들추어내심으로써
여호와의 칼
징계
매를 치심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즉 인간은 자기 쪽에서 알아낸 이름과 자기 쪽에서 여호와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서
선악을 지켜서 율법을 지켜서 나오는 것을
모조리 다 깡그리 그 실체를 들추어내심으로써
바로 이것이 우상숭배다 라고 수술칼 메스로 들추어내시면서
이 암덩어리를 보여주심으로써
우와 나를 드디어 고치시는 군요 라고
외부의 의사의 수술작업으로써 언약을 이루심에 있어서
우리는 환자로써 무엇이 내 속에 들어있는 병덩어리 암덩어리인가
이 선악 이라는 사망이 왕노릇하는
죽기를 무서워 칼을 두려워 하는 것에
하나님의 칼을 찌르심으로 인해서
마귀가 칼로 시체 만들기 전에
나를 여호와의 칼로써 시체로 만들어서 고치시는
마른뼈 만들어서 하나님의 군대로써
저들 이방인 곧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먼저 율법으로 망하게 해 놓고서
율법의 완성으로 다시 살려내시는
새 이스라엘을 새언약으로 새창조 하시는
이 이름 여호와의 이름과 그 이름에 걸맞는 얼굴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의에 순종 복종케 만드시는
사망의 종노릇에서 은혜의 왕노릇으로 옮기시는 참성전의 기능을 직접 하시는
왕의 모습으로 사망을 멸하시고자 말이죠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새번역)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봐도 봐도 또 새롭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올려 보네요
수치를 가려주시는 자신의 피로 새꽃단장 화관을 입히시는
나를 새신부로 만드시는 분을 왕이라고 하고
반드시 사망의 권세를 멸하심으로써
왕
왕노릇 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왕은
인간의 제사장은
인간의 선지자 인간의 관원 지도자들은
반대로 백성을 신원치 않고 변호치 않고
반대로 등쳐먹는
도리어 백성을 제물로 삼는
오늘 본문에 백성들을 꼬드겨서
참성전의 기능을 못하도록 만들고자
백성들을 꼬드겨서
안전한 피난처와 같은 가마솥으로써 예루살렘성전을 이용하고
그 안전한 가마솥 든든한 보호막에 담겨진 고기 덩어리처럼 가마솥의 보호아래에 있는 고기처럼 해주겠다 라고
지도 천국 안들어가고 남도 천국 못들어가도록 예루살렘성전을 이용해서
오늘날 교회처럼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서
백성들을 등쳐먹는
그래서 자기들이 복 받고자 효험있는 황금제물을 바치듯이
이제는 백성들을 자기 고기로 밥풀떼기로 삼아서
빨대 꽃아서 등쳐먹고 피 빨아먹는 흡혈귀 좀비로써의
이스라엘의 속내를 다 보여주시는 겁니다
환상으로 말이죠
6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말이죠
에스겔이 6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 알고 다 본 것이 아니잖아요
신체가 한계가 있다 보니
어느 장소에 있게 되면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모르는 겁니다
뉴스가 퍼쳐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듯이
빨리 빨리 뉴스가 퍼져도
모든 내막들을 다 못보고
도리어 요즘처럼 취사선택해서
소문도 뉴스도 보고픈 것만 보고
듣고든 것만 듣고 믿고픈 것만 믿는
확증편향의 소식만 골라 골라 보고 듣고 있지
누가 그 모든 소문들을 다 알겠냐 말이죠
심지어 그때는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았고
해체가 되지도 않았고
포로 잡히지도 않았던
그 전의 일인 6년 전이니까 말이죠
환상 속에서
(겔 11:13, 공동) 내가 이 야훼의 말씀을 전하자 브나야의 아들 블라티야가 죽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땅에 엎드려 큰소리로 외쳐 호소하였다. "아! 주 야훼여, 이스라엘에서 얼마 안 남은 이 사람들마저 전멸시키셔야 하겠습니까?"
(겔 11:13, 쉬운) 내가 예언하는 사이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었다. 그래서 내가 땅에 엎드려 큰 소리로 외쳤다.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살아 남은 자마저 완전히 없애시렵니까?”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죽이시니까
11장 1절에 나왔던 그 블라댜 말이죠
(겔 11:1, 개역) 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그 문에 이십오 인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방백이라
에스겔이 예언하는 중에 죽이시니까
그와 연관된 사람들을 죽이시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때 6년 전에 죽이셨다 라는 것인지
시차적 시간적으로 볼 때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뒤섞여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말이죠
문제는 에스겔은 예언하는 중에 블라댜가 죽었으니 이미 죽었으니까 그것을 막고자 함이 아니라
그렇게 다 죽어서 겨우 남은 겨우 겨우 남은 이 얼마남지 않은 남은자 마저도 완전히 다 멸절 하시겠습니까 라고
이 완벽한 절대저주 절대심판을 보게 되는 겁니다
마치 베드로가 깜짝 놀라서 주여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라고 나오듯이 말이죠
(눅 13:6, 현대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예수께서 또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러고는 그 나무에 열매가 열렸나 하고 여러 번 가보았지만 그때마다 실망을 했다.
(마 21:18, 현대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막11:12-14,20-24]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시던 예수께서는 매우 시장하셨다.
(마 21:19, 현대어) 그때 마침 길가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리로 가까이 가보셨다. 그러나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는 보이지 않자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버렸다.
(마 21:20, 현대어)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금방 말라버렸습니까?' 하고 물었다.
(마 21:21, 현대어)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만일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이와 같은 일뿐만 아니라 더 큰일도 할 수 있다. 너희가 이 산더러 `땅에서 들려 바다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마 21:22, 현대어) 너희가 믿고 기도하면 너희가 기도한 것은 무엇이나 다 얻을 수 있다.‘
마침 잘못 검색해서
누가복음에서 다른 내용의 무화과 나무를 뽑으라 라는 내용인데
제가 찾고자 했던 것은 마태복음 21장이구요
그런데 오히려 더 잘 된 것이
바로 그 누가복음 13장의 소제목을 쭈욱 살펴보니
물론 마태복음 21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종말적이구요
(눅 13:1, 현대어) [회개하지 않으면] 이 무렵 예수께서는 갈릴리 출신의 유대 사람 몇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다가 빌라도에게 학살되었다는 말을 들으셨다.
(눅 13:6, 현대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예수께서 또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러고는 그 나무에 열매가 열렸나 하고 여러 번 가보았지만 그때마다 실망을 했다.
(눅 13:10, 현대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눅 13:18, 현대어) [겨자씨 비유;마13:31-32,막4:30-32]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눅 13:20, 현대어) [누룩 비유;마13:33] 하나님 나라를 또 무엇으로 비유할까?
(눅 13:22, 현대어) [좁은 문;마7:13-14,21-23]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 가르치셨다.
(눅 13:31, 현대어) [여우 같은 헤롯] 얼마 후에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만일 목숨을 부지하고 싶거든 이곳을 떠나시오. 헤롯왕이 당신을 죽이려 벼르고 있습니다.'
(눅 13:34, 현대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마23:37-39] 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인 도시야, 너를 도우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돌로 치는 도시야,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소제목 하나 하나가 다 종말적이다 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의미로
종말적으로
인자 라는 새성전 새마음으로써
하나님의 의 곧 거룩으로써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작업을 주님이 직접 펼치심으로써
내 누군지 아니? 나 여호와야 라고 내가 누군지 알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그 이전에는 인간들은 특히 이스라엘은 여호와에 대해서 관심도 없구요
그저 기도 할 때 주문을 필수적으로 외울때에 하나의 필수암호처럼 주문 외우듯이 외워서
이름을 같다 붙였지
정작 기념이름으로써 내 이름을 갈아버리는 홈파고 죽이시는 이름인줄 몰랐다 라는 겁니다
기념이름은 여러분 팔뚝에 이름을 새긴다 라고 해서
그 이름에 맞는 사건이 안 벌어집니다
그런 새겨짐이 아니예요
아예 죽여버리시고자 다가오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 보세요 여호와의 칼이 왜 칼로써 여호와가 다가오십니까
칼로 새기면 볼펜으로 새기는 것과의 차이성이 확 드러나겠지요
웃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타죽어야 하듯이
떨어지는 법궤를 만지자 마자 죽어야 하는
그런 이름이요
그런 얼굴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 얼굴을 뵈올려고 성전에 교회에 이스라엘이 될려고 하는 자는 아무도 없잖아요
그저 예수도 하나님도 여호와도 성전도 교회도 말씀도 묵시도 계시도 기도 등등
이 모든 것을
나 잘 되기 위한 용도로써
죽을때는 내가 천국 갈수 있는 구원받는 용도로써 사용하기 위한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주님 중심대로 나는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할 자
곧 아까 말한 누가복음 13장의 소제목의 종말성을 단 하나도 모르고
단 하나도 보여줄수 없더라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 어딜 더러운 주제에
법궤를 만지고
여호와의 얼굴을 볼려고 다가오느냐 말이죠
타 죽기를 각오하고 오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다 아는데
어딜 속일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려면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함께 장사치르고 함께 다시 사는
가면을 찢고 새얼굴로 창조하시는
그 방법 외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법은 없다 라는 겁니다
다들 고개를 돌릴 뿐이다 라는 거죠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안볼란다
그래서 잔칫집을 구성하는 겁니다 건설해요 예루살렘성전도 잔칫집으로 구성을 했다 말이죠
다들 고개를 돌려요
초상집에 왜 갑니까?
광야에 죽음에 왜 갑니까
그것도 광야 삼일길 그것도 어린양의 피 희생제물이 있는 피 흘리심에 왜 갑니까
그 피 흘리심에만 주의 얼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을 주었다 라는 겁니다
이 사랑이 없어서 망하지 말고
이 사랑을 쳐다보라 라꼬 말이죠
어린아이는 자기가 바칠 것 하나 없이
그저 엄마의 얼굴만 바라보는 자입니다
아까 누가복음 13장도 그랬는데
마태복음 21장의 소제목은 어떤지 볼까요???
(마 21:44, 새번역)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어떤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마 21:1, 현대어) [예루살렘 입성;막11:1-11,눅19:28-38,요12:12-19] 예수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감람산 위에 있는 벳바게 동네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예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마 21:12, 현대어) [성전 정화;막11:15-19,눅19:45-48,요2:13-22] 예수께서는 성전뜰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곳에 있던 장사꾼들을 다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마 21:18, 현대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막11:12-14,20-24]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시던 예수께서는 매우 시장하셨다.
(마 21:23, 현대어) [권위에 대한 질문;막11:27-33,눅20:1-8] 예수께서 성전에 되돌아오셔서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와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며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는지 알려 달라고 추궁하였다.
(마 21:28, 현대어) [두 아들의 비유]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두 아들을 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기서 `얘야, 오늘은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거라' 하고 말하였다.
(마 21:33, 현대어)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막12:1-12,눅20:9-19] 이제 이 비유를 들어라.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쳤다. 그러고는 포도즙을 짤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운 뒤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다른 나라로 갔다.
이건 뭐 더 했으면 더했지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누가복음 보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마태복음은
이 종말성을 갖춘자들이 유대인이어야 하는데
완전히 이방인 보다 더 못하게 더더더 이방인 스러운 우상숭배자로써
율법 지키기 조차도 모조리 우상숭배로 활용을 하니까
이 종말의 예수님의 말씀들이 무슨 소리인줄을 모르는 겁니다
끝을 땡기는 것만이 종말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인자로써 종말로써
종말 자체가 한 인물로써
마치 불에 활활 타는 얼굴로써
너희들 다들 고개 돌렸지 얼굴돌렸지? 소용없어
내 얼굴을 바라봐 ~~~~~~~ 라고
자신이 얼굴을 내 비칠때에
이 얼굴을 마주 대할 자 과연 있는가 라고
종말의 사건으로써 얼굴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과연 안 타죽을 자신이 있는
여호와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손 깨끗한 거룩한 자 있느냐
거룩할 자신이 있느냐 라고 다가오시는 식입니다
백이면 백 머리 쳐 박고
내 옳았지 않습니까 당신 시키는대로 다 했잖아요 라고 따지는 욥처럼
정작 하나님의 얼굴을 보니
이 기념 얼굴
상처를 정작 내시는 기념이름이요 기념얼굴이어야 하는데
도리어 상처입은 얼굴을 보니
입이 잠잠해 져 버리는
입을 막고 생일을 저주하면서
머리를 쳐 박고 잿더미를
타다남은 찌끄래기 새까만 숯덩어리 그 깜한 어두컴컴한 그 재를 머리에 뿌리니
이것이 생일을 저주하는
날 때부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새해 저주 많이 받으세요는 약과죠
아예 태어나지를 말았어야 했다 라는 생일을 저주해요 생일을
모친의 죄 붕에 태어났다 라고 나의 처음을 저주해 버려요
이런 자 만이 이 종말을 끌어오는
내 죽음 말고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새로 출발하기 위해서
이전 것을 삭제시키는 종말로써
이런 자 만이 주의 얼굴을 뵈오리가 되는 거다 말이죠
바로 이런 자가
(시 131:1, 개역)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2, 개역)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 131:3, 개역)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젖 뗀 아이처럼 어미 품에 들어가는
성전에 들어가는
참성전의 기능을 마음껏 누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참성전 되신 예수님의 절대저주와 절대축복이라는
하나님의 거룩 완성을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어린아이와 같은자 이다는 겁니다
무능하니까 주시는 것만 받는 겁니다
참성전의 기능을 누리는 겁니다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는 참성전의 기능을 말이죠
그런데 자꾸 인간이 성전에 바치겠다 라는 것은
자기 중심으로 제발 좀 흘러다오 라고
소원을 비는 식입니다
다 이루었는데 뭘 또 바라냐 말이죠
다 줬는데
예수님의 죽음을 주셨거든요
이것이 믿음 이라는 선물이다 말이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준 사랑을 다 주었거든요
그런데 자꾸 독을 달라
뱀을 달라
전갈을 달라 라고 하니
구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두드리지도 않는 겁니다
그저 다 이방인처럼 독 달라 뱀달라 전갈을 달라 라고만 할 뿐이다 말이죠
이게 무슨 젖 뗀 아이가 어미에 품에 들어가는 모습입니까??
지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그래서 망했다 라는 겁니다
독을 달라고 했으니 독 먹어서 죽었고
전갈을 뱀을 달라고 했으니 그거 먹어서 죽었다 라는 겁니다
칼을 의지하고
에디오피아 달그닥 거리는 무기
울리는 꽹과리를 달라고 했으니
그 무기에 다 죽어나가는 겁니다
무기를 칼을 달라고 했으니 칼에 찔려 죽는 겁니다
그렇게 막 죽어나갈때에
인자 에스겔은 마치 모세처럼
이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실겁니까 라고 하듯이
아니 이제 겨우 얼마 남지 않은 이들 마저도 다 죽이시겠습니까 라고 나오는 겁니다
정작 당사자가 울어야 하는데
우상숭배한 이스라엘이 말이죠
누가 다급하게 우는 자가 되는 겁니까?
베드로 안 울어요
닭이 대신 울고
예수님이 대신 기도하지
누가 상한심령이 되는 겁니까?
그래서 다음에 할 내용인데 미리 이야기 해 보면
14절 이후부터 그래 그래서 이스라엘을 울게 할려고
라샤 끼오 삐앙카 ~~~~~~~ 날 울게 하소서 만들려고
포로 잡혀가서 그발 강가에서 시온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슬픔으로 씨를 뿌리는 자로 만들어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자로 만드시는
축복산 예루살렘 시온이 아닌
저주산 바벨론 포로 속에서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바다 깊은 그 지옥
그 스올 그 무저갱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는
얼굴을 뵈옵기를 바라는
우는 자로 만드시고자
포로 잡혀 가게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겨우 겨우 남겨운 남은 자로써
자기 죄로 우는 자로 만드시는 남겨둔 씨에 딱 맞는
남은 자로 삼으시는 겁니다
우는 자로
회개하는 자로
종말을 보여주는 새마음을 부어주고자 하는 자로 말이죠
이 절대심판을 맛 못 보면
이 심판은 심판도 아니군요 진짜 절대심판은 주님이 당하셨군요 라고
주님의 죽음을 보기 위해서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에 넣으시는 겁니다 종말집에 말이죠
참성전 속에
왜? 새마음을 주시고자
상한심령을 보라꼬
주의 얼굴을 보라꼬
때려죽어도 안 구하던 주의 얼굴 뵈옵기를
포로 잡혀가서 비로소 구하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겔 11:18, 개역)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지라
(겔 11:19, 개역)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겔 11:20, 개역)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우상숭배의 마음인 완악한 마음
굳은 딱딱한 마음을 제거하심으로써
마음판의 할례 곧 고추 우상이라는 자아를 제거하심으로ㅓ써
부드러운 마음 새 마음 새 영을 주심으로써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도록
율법의 완성을 입히시겠다 라는 겁니다
젖 뗀 어린아기로 새피조물로
이전 것은 지나간 새것으로 말이죠
안그러면 자꾸 자기자신이라는 자아를 챙길려고 하는
어린아이의 반대의 모습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유대인의 귀족들처럼
방백 지도자들처럼
자꾸 불안해서
뭔가를 자꾸 바치는 겁니다
불안하니까
그 두려움이 바로 칼로 표현이 되는 겁니다
유대인 방백들이 칼을 두려워 한다 라는 것은
젖 뗀 아이가 어미 품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반대입니다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라는 바리새인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라고
자신을 예의상 한껏 낮추고 한가닥 배움을 지식을 달라고
구원 얻는 방법을 터득할려고 자신을 낮추더라 말이죠
이런 모습을 우리는 순종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순종으로 안 보십니다
그런 처세술에 안 넘어가신다 말이죠
도리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즉 다시 태어나라 라는 겁니다
(요 3:1, 개역)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유대인의 관원이 되었다 라는 자체가 이미 칼이 두려워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라는 거죠
두려움이 없다면
사랑만 바란다면
아무리 낮은 젖뗀 아이의 자리에 놓여져도 상관이 없는 겁니다
죽는 자리에 놓고자 그래서 이스라엘을 포로 잡히게 하시는 겁니다
세 번 부인케 하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두려움 이라는 의문의 반복만 할 뿐이지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세 번씩이나 이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사랑의 얼굴을 못 본다 말이죠
결국 우상숭배의 깊은 바닥은 파고들어가 보면
다들 사랑이 없어서
울리는 꽹과리 곧 육의 자랑 때문에
허구 허상의 자랑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더라 라는 겁니다
단순히 돌 조각 나무 조각이 아니라
알수 없는 공포
죽기를 무서워 평생 사망의 종노릇하는
누가 사랑을 이 든든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내가 나를 책임질려고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는 질문을 심심하면 예수님께 하는 겁니다
그런 니고데모의 질문에
어린아이처럼 그냥 어미 품에 들어가라 라고
다시 태어나렴 어린아이가 되렴 이라고 하니
이것을 아니 이런 큰 무데기로 어떻게 다시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옵니까 라고 되묻는 겁니다
해답을 줘도
자기자신이 문제꺼리라 라는 것을 모르니까
삭제대상 처분대상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라는 지나가야 하는 대상으로 못 보니까
또 자기 숙제로 자기가 정답을 맞출려고 하니까
문제지가 더 늘어나는 겁니다
정답 하나 맞출려고 하다가 문제지 두장으로 두배나 늘어나니
정답을 두 배로 적어야 하는 질문이 나오는 겁니다
아니 젖 뗀 갓난 아기가 엄마 얼굴이라는 정답만 봐버릴 정도로
하나가 된 일체성을 누리는데 있는 반면에
예수 너는 너고 나 니고데모는 나는 나 이다
이 둘을 무슨 수로 하나가 되는 일체가 되느냐
다시 태어나렴
아니 어떻게 다시 뱃속에 들어갔다 나옵니까
아직 니고데모의 어머니가 살아있는 모양이지요
만약 이미 나이가 많아서 죽었다면
그 다시 되질문 하는 내용이 나오겠죠
이미 저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라고
나는 이제 영영 못 태어나는 겁니까 라고 말이죠
여전히 자기 숙제로
자기 실천 문제로 보고 있으니까
엄마의 얼굴
주님의 품이 덮쳐지지 않으니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겠다 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로 목숨을 걸겠다 라고
하나님께 열심이나 사랑을 쫓지 아니하니까
울리는 꽹과리 허상의 달그닥 거림 소음 시끄러운 잡소리 밖에 안되는 맹세이다는 겁니다
그런 기도를 이방인의 중언부언처럼 떠들어대는 소리 말이죠
허구죠 허구
안개 붙잡고 밤새도록 씨름 하는
사람의 구원은 헛됨을 모르는 겁니다
(시 60:11, 개역)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시 108:12, 개역)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칼이 두려워서 가마솥 속의 보호받는 고기가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또 다른 공포와 마주해야 하는 또 불안을 야기시키는 거죠
아무리 새 신상품 울리는 꽹과리 무기를 자랑해 본들
그 자체가 불안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부자는 천국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부자 나발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으면 두려울 뿐입니다
(요일 4:18, 개역)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래서 이 십자가의 죽음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고
십자가의 죽음 외에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아 맞다 중생
왜 괜히 어려운 단어를 썻지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 ㉢또는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요 3:3, 공동)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이라고 옮길 수도 있다.
(요 3:3, 쉬운)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 3:3, 현대인)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요 3:3, 현대어)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새롭게 다시 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한자말 중생 보다
마치 불교용어처럼 멋들어진 용어 보다
그냥 무식하게
다시 내어나지 않으면
그러니 역사적 존재가
이 묵시적인 기념기호를 아무리 자기 존재에 끌어와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우상에게는 안 붙거든요 합체 연합이 안되요
이런 짖을 했으니
포로 잡혀가서 이미 죽은 자의 자리에서
묵시적인 종말적은 기념이름을 마음판에 새기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으로 인해
사망을 멸하는 하나님의 의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새피조물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죠
젖뗀 아기로 다시 태어나니까
이전 것은 사라지는 종말의 마른뼈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죠
책임 질 것이 없이
그저 엄마 품만
나사로처럼 주님의 품만
주의 얼굴만 볼 뿐입니다
타 죽어 마땅한데 살려주시는 그 긍휼
그 인애와 자비
그것만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얼굴을 보는 겁니다
이건 뭐 죽음도 안 두려울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불 속에서 나를 건지기는 분만 졸졸졸
환자를 고치신 그 의사만 졸졸졸
죄인을 부르시러 오신 구원자만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만 졸졸졸
목사 뒤를 졸졸졸 따라갈 필요가 없어요
목사말 왜 듣냐 말이죠
모조리 다 등쳐먹을 놈들 밖에 안 되는 겁니다
자기 죽으면 가족들 생계 책임져 달라는 이런 사기꾼이 세상에 어디있냐 말이죠
귀족들이 그래서 칼을 두려워 하는 겁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소유의 넉넉함이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오히려 자기 목을 스스로 목 조르는 겁니다
누워서 침 뱉기이다는 거죠
자기 생명을 지키겠다 라는 것이
도리어 자기 목숨을 목 조르고 앉아 있는 겁니다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자아 라는 우상의 세계는 이것이 뒤 바뀌게 되는 겁니다
목숨 보다 음식을 중요시 하고
몸 보다 의복을 중요시 하고
생명 보다 소유의 넉넉함 여부가 근심꺼리로 작용하고 싸움의 발단이 되는 거죠
그런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이 종말의 싸움을 우리는 마른뼈가 되어서 하나님의 군대로 세움을 받은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만방에 외치고자 하시는 주님의 계획입니다
아니 우리가 포로 잡혀갔는데 이것이 주님의 이름을 만방에 열굴에 알리고자 하시는
주님의 지혜라굽쇼
마치 기생 라합이 무슨 수로 여호와의 이름에 간담이 녹아서 벌벌벌 떨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말씀 백날 실천해 보세요 벌벌 떨어서 40년 동안 간담이 녹는지
안 녹아요
반드시 애굽이 무너지는
사망의 멸하는 하나님의 거룩전쟁으로써만 간담이 녹는다 말이죠
이 이름을 정작 이스라엘은 싫어하고 고개를 돌려버렸고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짖는 자여 라고
비웃는 이름이 되어버렸거든요
여호와갸 누구관데? 나 그 신 모른다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는지 보자 어디 보자 어디보자 하하하 호호호
얼마나 비웃었냐 말이죠
바로 이것이 인간의 신앙입니다
말씀을 지킬려고 하면 할수록
율법을 지킬려고 사수하면 할수록
예수님을 죽이는
이 살인의자 라는 공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지킬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까 율법 어겼다 라고 사울왕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떡을 줬다 라고
아히멜렉 제사장과 그 동네 사람 전체 다를 다 몰살시켜 버리는 겁니다
참 거룩 억수로 잘 지킨다 말이죠
어디 사울왕 뿐이겠습니까
다윗 보세요 율법 네 배나 갚으라
그 놈이 니다 니
베드로 보세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겠다 라고
사탄아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방해꾼이자 다리 걸어서 꽈당 넘길려는
나를 죽일려고 폭력을 행사하는 놈이구나 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바로 인간 쪽에서의 의로움이 다 모조리 사탄의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 사탄의 깊은 것을 들추어내시면서
하나님의 깊은 것인 십자가의 지혜를 펼치시는 겁니다
그거 너희들 옳았다 가 성공해 본들 또 내일 되면 또 공포로 또 불안으로 또 두려움으로
이번에는 실패하는 어떡하지 ~~~~ 라고
그것 밖에 안되는 또 의문의 반복이요 흐릿함이요 모호함이요 미완료이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급박하고 즉각적으로 단번에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명료한 미래완료이다는 겁니다
나를 대신 해서 죽는 사랑 보다 더 또렷한 것 있으면 나와보라 말이죠
내가 당해야 할 죄 값
하나님의 절대저주인 십자가의 죽음을 대신 당하는
이 사랑 보다 또렷한 것 아니면
다 울리는 꽹과리 일 뿐이다는 겁니다
이거 보여주실려고
주님이 지금 매를 대시는 겁니다
허구 허상을
대신 깨뜨려 주시는
명료한 사랑을 펼치시는 겁니다
이 종말에서만 보는 것이 주의 얼굴입니다
언제까지 주님의 얼굴을 회피하시겠습니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또렷한 사랑은
나를 죽음 속으로 몰아가서 생명을 길을 부활을 보여주시는
요나의 표적 십자가 밖에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