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와 지성소와 골방들 측량 (겔 41, 1-26)
19-116 성소와 지성소와 골방들 측량 (겔 41, 1-26)
새 성전 완성의 목적 (겔 40, 5-49)
에스겔 2019 2021. 11. 27. 13:22
19-115 새 성전 완성의 목적 (겔 40, 5-49)
〈에스겔 41, 1-2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8쪽, 찬송가 097장 위에 계신 나의 친구, 223장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찬송가 097장 위에 계신 나의 친구〉
1. 위에 계신 나의 친구 그의 사랑 지극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주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2.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셨으니
기쁨으로 경배하며 찬양하리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3. 내 맘 속에 늘 계시고 영원토록 함께하네
가지된자 하나되리 포도나무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4. 그 날이 와 황금길에 그의 영광 바라보며
그의 팔로 날 안을 때 만나보리 나의 친구
사랑하는 나의 친구 늘 가까이 계시도다
그의 사랑 놀랍도다 변함없는 나의 친구
〈찬송가 223장 세상 모든 수고 끝나〉
1.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우리 장막 벗고서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진 뒤에
주를 뵙고 성도 함께 면류관을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2. 가는 길이 외로와도 주 날 붙드시리니 시험 환난 근심 걱정 없으며
주를 믿고 따라가면 주의 뜻을 알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3. 내가 세상 작별하고 눈물 흔적 거둔 뒤 주의 찬란하신 영광 비칠 때
나를 구속하신 주를 기쁨으로 뵈오리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4. 아름다운 그 곳에서 구속받은 성도와 사랑하는 주를 만나 뵈올 때
주의 영광 노래하며 영원토록 살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함께 올 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요 15: 4- 7, 개역한글, 신약성경 174쪽〉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에스겔 41, 1-2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8쪽〉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벽을 척량하니 이편 두께도 육 척이요 저편 두께도 육 척이라 두께가 이와 같으며
(2) 그 문통의 광이 십 척이요 문통 이편 벽의 광이 오 척이요 저편 벽의 광이 오 척이며 그가 성소를 척량하니 그 장이 사십 척이요 그 광이 이십 척이며
(3)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통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이 척이요 문통이 육 척이요 문통의 벽의 광이 각기 칠 척이며
(4) 그가 내전을 척량하니 장이 이십 척이요 광이 이십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5) 전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육 척이며 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사 척이며
(6) 골방은 삼 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
(7) 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워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랫층에서 중층으로 윗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
(8) 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육 척인데
(9) 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벽 두께는 오 척이요 그 외에 빈 터가 남았으며
(10) 전 골방 삼면에 광이 이십 척 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11) 그 골방 문은 다 빈 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 터의 광은 오 척이더라
(12) 서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광이 칠십 척이요 장이 구십 척이며 그 사면 벽의 두께가 오 척이더라
(13) 그가 전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장이 일백 척이요
(14) 전 전면의 광이 일백 척이요 그 앞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
(15) 그가 뒷뜰 뒤에 있는 건물을 척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 일백 척이더라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
(16) 문통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통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 (창은 이미 닫히었더라)
(17) 문통 위와 내전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척량한 대소대로며
(18)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19)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20)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벽이 다 그러하더라
(21) 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식양은 이러하니
(22) 곧 나무 제단의 고가 삼 척이요 장이 이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
(23)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24)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25) 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26)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더라
(겔 41:1, 현대어) [성전]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성전의 내부로 들어가서 재어 보았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대문의 폭은 10자였다. 문 옆의 사이벽 길이는 좌우로 똑같이 5자였고 그 두께는 6자였다. 성전 내부의 길이는 40자, 폭은 20자였다.
(겔 41:2, 현대어) (1절과 같음)
(겔 41:3, 현대어) [지성소] 그 다음에 그 사람이 혼자 성전의 맨 뒤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재어 보니, 대문의 폭이 6자였고 양편의 사이벽 길이는 각각 7자였다. 또 그 벽의 두께는 2자였다.
(겔 41:4, 현대어) 그 내부 자체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다 같이 20자였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하던 사람이 바로 그곳이 지성소라고 알려 주었다.
(겔 41:5, 현대어) [성전과 지성소의 곁방들] 나를 안내하던 그 사람이 성전의 안벽을 재어 보니 두께가 6자였다. 이 성전의 건물 삼면에는 곁방들이 있었고 그 너비가 모두 4자였다.
(겔 41:6, 현대어) 이 곁방들은 삼층으로 지어져 있었는데 층마다 방이 30개씩 있었다. 이 삼층 건물의 들보는 안쪽에서 벽을 뚫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성전이 손상되거나 흠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층과 삼층을 성전의 벽에 계단식으로 돋아 있는 턱에 걸쳐서 지은 것이었다.
(겔 41:7, 현대어) 그 계단식의 턱은 밑층에서 시작되어 이층과 삼층에서 턱을 이루고 사라지기 때문에 골방의 내면은 올라갈수록 더 넓어졌다 그래서 맨 아래층이 가장 좁고 맨 위층이 가장 넓었다. 계단의 통로는 맨 밑층에서 중간층을 거쳐 맨 위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겔 41:8, 현대어) 이 곁방들의 외부에도 벽이 있었는데 이 외벽의 두께는 5자요 이 곁방 건물의 외부에는 또 높이가 6자, 폭이 5자인 노대가 사방으로 나 있었다. 그 곁방 건물의 문들은 이 노대 쪽으로 열렸는데 한 문은 북쪽에 있고 한 문은 남쪽에 있었다. 이 노대 밖으로는 사방으로 공지인데 그 폭은 20자였다.
(겔 41:9, 현대어) (8절과 같음)
(겔 41:10, 현대어) (8절과 같음)
(겔 41:11, 현대어) (8절과 같음)
(겔 41:12, 현대어) [성전 서쪽 성벽에 있는 건물] 성전의 서쪽에는 성전의 공지와 성벽 사이에 상당히 큰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 내부의 폭은 90자요 길이는 70자였다. 그 벽의 두께는 5자였다.
(겔 41:13, 현대어) [성전의 총 면적]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성전 터 전체를 재어 보았다. 성전의 길이는 곁방 건물까지 합쳐서 100자였고 폭도 양편에 있는 금지 구역까지 합해서 100자였다. 성전의 서쪽에 있는 건물도 재어 보니 그 폭이 100자였고 길이도 앞에 있는 금지 구역까지 합해서 100자였다. 또 이 서편 건물의 양쪽으로 층층이 노대 모양으로 건축된 건물의 길이도 100자였다. [성전의 장식과 시설] 성전과 지성소와 현관에는
(겔 41:14, 현대어) (13절과 같음)
(겔 41:15, 현대어) (13절과 같음)
(겔 41:16, 현대어) 모두 삼면에 붙박이 창문과 빙 둘러서 사람이 다니는 낭하가 있었고 창문을 제외한 모든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대패질한 나무판자가 대어 있었다.
(겔 41:17, 현대어) 출입구의 양쪽 벽에서부터 성전의 내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현관의 바깥벽까지 합하여 안팎의 모두 벽에 빙 돌아가며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님을 경호하는 천사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가 하나씩 서 있는 이 그림에는 그룹마다 얼굴이 둘씩 그려져 있었는데
(겔 41:18, 현대어) (17절과 같음)
(겔 41:19, 현대어) 사람의 얼굴을 한 그룹은 이쪽 편에 있는 종려나무를 바라보고 사자의 얼굴을 한 그룹은 그 반대편에 있는 종려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전의 내부 벽 전체가 이런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겔 41:20, 현대어) 성전의 바닥에서 출입구의 윗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벽에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이 새겨져 있었다.
(겔 41:21, 현대어) 성전 출입구의 문설주는 네모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제단] 지성소 앞에는 나무로 만든 제단과 비슷한 것이 서 있었는데 그 높이는 3자요, 그 길이의 폭은 2자였다. 네모지게 생긴 이것의 받침대와 몸통 부분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그것이 여호와 앞에 놓인 상이라고 알려 주었다.
(겔 41:22, 현대어) (21절과 같음)
(겔 41:23, 현대어) [성전의 문들] 성전의 문과 지성소의 문은 다같이 이중 문으로 되어 있고 좌우로 접을 수 있는 문짝이 하나씩 더 붙어 있었다.
(겔 41:24, 현대어) (23절과 같음)
(겔 41:25, 현대어) 이 모든 문에도 성전의 모든 벽에 장식된 그림과 같은 모양의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이 새겨져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바깥쪽 입구에는 나무로 만든 지붕이 있었다.
(겔 41:26, 현대어) 현관의 좌우 벽에는 곳곳에 붙박이 창문이 나 있었고 현관과 골방과 차양의 모든 내부에도 종려나무 모양을 새겨 놓은 장식이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소제목이 달린 번역서를 오려 봅니다
(겔 41:1, 쉬운) <성전의 지성소>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바깥 성소로 가서 그 벽을 재니 두께가 양쪽 모두 3미터였다.
(겔 41:1, 현대어) [성전]
(겔 41:3, 현대어) [지성소]
(겔 41:5, 현대어) [성전과 지성소의 곁방들]
(겔 41:12, 현대어) [성전 서쪽 성벽에 있는 건물]
(겔 41:13, 현대어) [성전의 총 면적]
(겔 41:21, 현대어) 성전 출입구의 문설주는 네모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제단]
(겔 41:23, 현대어) [성전의 문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본게 이게 아니였는데 싶어서 태블릿에 깔아둔 번역서를 보니
어라 조금 다른 수정번역들이였더군요
개역개정한글판이라고~~~
뭐가 이리 복잡한가 싶어서 보니 개역판이나 개정판이나 소제목이 잘 안 달리는데
이 수정번역판은 달려있더군요
겔41:1 <성소와 지성소와 골방들>
겔41:12 <서쪽 건물과 성전의 넓이>
겔41:21 <나무 제단과 성전의 문들>
이 소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제목으로 삼아야 겠다 했거든요
아무튼 검색하다가 찾은 TXT 파일로써 그냥 편리성으로써 참고할 따를 뿐입니다
표준새번역도 소제목이 비슷하게 달렸고
표준새번역개정판도 똑같은데 뭔가 수정보완을 했겠죠앞으로도 더 많은 번역본이 나올수 있겠지요표준새번역개정판의 소제목도 한번 올려보면
겔 41:1 그런 다음에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으로 들어가서 벽을 재니, 그 벽 두께가 양쪽이 각각 여섯 자였다.a(a 히브리어 본문에는 절 끝에 '장막의 두께가 이러하였다'라는 말이 더 있음)
겔 41:5 [성전과 지성소의 골방들] ○또 사람이 성전의 벽을 재니, 두께가 여섯 자였다. 성전에는 삼면으로 돌아가며 방들이 있는데, 너비가 각각 넉 자였다.
겔 41:12 [성전의 서쪽 건물] ○또 성전의 서쪽 뜰 뒤로 건물이 있는데, 그 너비가 일흔 자였다. 그 건물의 벽은 사방으로 두께가 다섯 자였다. 그 건물 자체의 길이는 아흔 자였다.
겔 41:13 [성전의 총면적과 내부시설] ○그가 성전을 재는데, 그 길이가 백 자이고, 서쪽 뜰과 건물과 그 양쪽 벽까지 합해서 또 길이가 백 자였다.
겔 41:23 [성전의 문들] ○성전 본당과 지성소 사이에는 문을 두 번 열고 들어가야 하는 겹문이 있었다.
그냥 표준새번역판과의 차이는 눈안으로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는 것인데
아무튼 오늘 본문이 어려워서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수 있는 방법을 접근할려다 보니
서두설명이 좀 길었는데
성전 안의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골방의 측량에 대해서 에스겔 41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40장부터 성전 측량을 천사들이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측령 결과가 치수로 숫자로 표기 됨에 있어서
정작 신약의 계시록에서는 그 숫자가 안나온다는 겁니다
숫자가 당연히 나오지 않는 이유는 놀랍게도 이런 건물 성전 자체가 없다 라는 거예요
신약의 계시록에서 말이죠
아 그럼 말라꼬 이런 나오지도 않는 성전을 왜 짖냐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주목하지 않는 주목처럼
막살기를 포기하는 막살기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부정의 부정으로써
기존의 사람의 손으로 짖는 성전을 허물어 버리겠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왕으로써 오신 분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승리로써
평화가 왔다 라는 완료 완성으로써 성전을 주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성전을 막고 거부하는 것이
사람의 손으로 짖는 성전 이다는 거죠
그 가짜성전을 허물어버리겠다는 취지로써
무슨 근거로 허무느냐 바로 이 근거이다 라고 제시하는 것이 성전측량이다는 겁니다
고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표본으로써 이 기준에 안 맞는 이스라엘은 가짜인셈이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인간의 육체는 죽은 것이고
모든 인간의 성전은 곧 인간의 몸은 허물어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무슨 근거로 무슨 기준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이죠
그 어떤 누구도 힐문할 자가 없도록 만들어 버렸으니
지옥가도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성전측량의 치수를 정확하게 제시하시는 겁니다
결국 사람의 성전짖기는 지 마음대로이고 지 마음대로의 치수인
함량미달인 짐승의 수 666일 뿐이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개혁주의나 성화론 이 놈들 다 마귀이다는 거죠
결국 지도 못 지키고 남도 못 지키는 것 제시해서
종교장사하는 놈 강도의 소굴로 만들뿐이다는 겁니다
안 그러는 놈이 없다 말이죠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모조리 다 함량미달이다는 겁니다
그것을 찢어줘야 그 죽음을 거쳐서 생명을 제시하시는 겁니다
엉터리 성전이 무너지지 않으면 새성전의 의미도 없으니까 말이죠
그것이 바로 구약은 그림자로 신약은 실상으로써
계시록에서는 어린양되신 그리스도가 바로 참성전이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신약으로 넘어가면 모조리 다 종말적인 언어입니다
성령의 언어이다 말이죠
즉 바벨탑언어가 아니고 역사적인 언어가 아니다 라는 거죠
마치 과학으로 따지면 양자역학의 언어가 되는 거죠
성전이 건물이 아니라 한 인물이 되어버리고
십일조도 10개 중에 맏물이 아니라 한 인물이 십일조이고
안식일도 날짜 요일이 아니라 한 인물이 되어야
완성 완료가 되는데
이 한 인물이 오기전까지는 의문의 반복으로써
선악의 법칙 밖에 안되는
죽은 자의 하나님만 섬기는 우상숭배일 뿐이다는 거죠
인자 라는 종말적인 인물이 와야
이 모든 의미들이 법칙이 아니라 사랑의 인물로써
비로써 화목 화해 원수 되어서 둘로 나누어진 것이 하나가 되는
한 몸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 지킨 나 외에 한 인물인
나 라는 가짜거룩 외에 한 인물 진짜 거룩이 와야
이 종말의 언어가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것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스겔 인자입니다
에스겔이 아니라 인자로써
종말적 인물로써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서
이스라엘에게 내던져지는 겁니다
느닷없이 아무도 관심도 가지지도 않는 판국에
성전측량한 그것도 사람이 아닌
천사가 측량한 성전측량의 세밀한 치수
한마디로 말해서 설계도를 이스라엘에게 하나 하나 다 알려줘라????
이게 말이 되냐 말이죠
인간은 자기가 직접 만들지 않는 것은 아예 손도 안 대는
아예 관심 자체가 1도 없어요
종말의 잔치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벌리는
전쟁승리 평화완성이라는
다 이루었도다 잔치가 이렇게 세밀하게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때려붓는 만개가 꽃피워지고
퍼부어지는 노아 홍수가 벌어져도
나는 시집 장가 가야 하고 소도 사야 하고 밭에나가 농사도 지어야 하고
자기 사적인 일이 있는 이상은
이런 천사의 성전측량 하나 하나 세밀한 정확한 치수와 설계도는
나와 상관이 없다 라는 식입니다
나발이 다윗 나 그 사람 모른다처럼
애굽왕 바로왕이 나 여호와 누군지 모르겠는데 라고 하는 것과 똑같이
이 성전측량 뭐 어쩌라고 내 하고 무슨 상관있는데 라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금을 바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외칠 뿐이다는 거죠
즉 사적인 영역으로써의 거주지
집
사회
국가
땅
토지
영역이 있다 라는 거죠
지금 그 거주지
토지
땅
영역을 지금 없애버렸어요
주님 혼자 신났어요
영역을 없애버려야 주님이 주시겠다 라는 영역이 거주지가 또렷히 보이는데
거주지를 토대로한 먹고살기가 바쁜판국에
무슨 놈의 종말의 잔치며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벌리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며
내 살과 피를 먹어라 라는 것이 무슨 상관이며
이 설계도 치수가 무슨 상관이냐 라는 겁니다
(심지어 인간의 신앙생활 믿음에서조차도 무슨 상관이냐 라는 거죠
인간은 그저 종교를 통해서 종교오락 즉 자기위안만을 찾고자 할 뿐이지
누구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거든요
예수 믿는 자기를 믿을 뿐이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말이죠
예수를 이용해서 천국가는 좋은 곳 잔칫집을 소망하고 있을 뿐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통하는 소통되는 짐승 666의 믿음이다는 겁니다
정작 외부에서 주어지는 예수님의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면
졸지에 소통이 되기는커녕 단절이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복음 아니냐 말이죠
오늘날로 치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복음이다 말이죠
기독교는 세상에서 통해서
그런데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믿음은 세상에서 통하지를 않으니까
기독교에서도 반발하는 믿음이다는 겁니다
유대교에서도 그랬는데 기독교에서도 통할까요?
기독교는 말이 기독교이지 돈벌레이거든요
예수님은 어떤 교리에도 갇히질 않습니다
심지어 기독교 교리에도 말이죠
아무리 가둘려고 해도 안 돼요
그런데 인간은 교리를 형성하지 않으면
마치 성벽을 형성하지 않으면 보호할 방법이 없이
이단들에게 다 무너지게 될 판국이다 말이죠
정작 예수님은 교리 라는 성벽을 형성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깨부수고 깨부수고 깨부수시는 식으로 쳐들어오고 침노 침략해서
무너뜨릴 판국이다 말이죠
졸지에 교리를 형성 하자 마자 인간은 교단을 만들고
교파를 형성해서 그제서야 돈벌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거든요
오늘 본문도 그런식으로 이용합니다
거봐라 성전 내부 섥계도를 측량하고 치수를 정확하게 재고 있지 않느냐
교리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정성이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해야 할 것 아니냐 라고 말이죠
이 정확한 치수 알아서 뭐하게요???
집 짖게?
성전짖게?
과거 또 저의 신학교 같은과 친구가
군대가기 전에는 완전 순둥이라서 집에 초대받아 밥도 먹고 했는데
군대 다녀오고 난 뒤에 깡패가 되어서리 건들 건들 거리면서
자기들은 황금성전을 성전 그대로 짖고 있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오늘 본문을 참고했을거 아니겠습니까?
그 유명한 장막회
과거 이름이지만 이단들은 분열이 너무 너무 자주 일어나서
그 계보가 바로 형성이 되어요
오늘날 신천지 아닙니까 한국기독교 정치꾼들이 이 신천지에게 다 넘어갔다 말이죠
정치꾼들이 다 이러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게 되듯이 말이죠
딴나라당 신천지당 아니냐 말이죠 신천지 뒷대변인 곽땡땡 5땡 게임)
이 설계도 치수가 무슨 상관이냐 라는 겁니다
이 정확한 치수 알아서 뭐하게요???
집 짖게?
성전짖게?
있는 집도 지금 빚에 쪼들려서 내놓아야 할 판국인데
왜 이런 우리 사정과는 전혀 무관한
이런 치수를 제시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기존의 성전을 불태워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몸이 아닌 이상
모든 인간의 몸도 즉 성전에 해당되는
인간의 몸의 투사가 성전이니까 말이죠
인자의 기능이 바로 새성전 이니까 말이죠
이 두 소욕을 충돌 시키는 겁니다
둘 다 죽여놓고서 어느것이 다시 일어나느냐 라는 겁니다
의인만이 믿음으로 사니까 말이죠 예수님 뿐이다는 겁니다
나머지는 불타는 성전이고
예수닌만이 붙타지 않는 성전이다는 거죠
즉 다윗은 성전을 허락받고자 하는 마음이
주님과 함께 사는 거주지로써만 집으로만 보고 있는 한계점에
주님은 이것을 약속의 차원에서
사람의 뜻으로나 햘통 육정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서 난 성전으로 뒤바꿔치기를 하시는 겁니다
(요 1:13, 개역)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러니 창세기의 두 나무를 인간들은 벌써 잊어버렸거나
그게 지금 이 성소측량과 무슨상관이냐 라고 무관하게 여기겠지만
인간 최초의 거주지 곧 집이다 말이죠
인간의 몸 자체도 영혼의 집이다 말이죠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나길 바랄 정도로
바울은 육체를 몸을 일종의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야할 이사 이주해야할 집으로
거주지로 본다 말이죠 다른 거주지로 이동하기 위해서 잠시 머문 숙박집처럼 말이죠
그 최초의 거주지 에덴동산에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있는데
죽음과 생명이 연관된 두 나무가 있다 말이죠
선악나무는 죽음을 생명나무는 생명을 알게 한다 말이죠
이 두 나무가 함께 있음으로써
하나님이 생각하는 죽음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생명이 주관함으로써 인간은 참인간이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거주지가 되는 겁니다 집 몸이다는 거죠
지 몸 뚱아리 하나만 생명이 있다 라고 우길수 없는 것이
그럼 너가 거주하는 그 장소 그 집은 과연 생명이 넘치니?
난 모르겠는데 ~~~~~~~~ 이래 나오면 안된다 라는 거죠
어디 생명만 넘치겠습니까?
죽음도 넘치는 곳이니? 라고 하면
또 모르겠다 라고 언제까지 회피할수 있겠냐 말이죠
crosslamb.tistory.com/2502
바퀴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불을 취하라 (겔 10, 1- 8)
에스겔 10장을 할때에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당하시는 모습을 했거든요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라고 비웃는 인간의 악함 (마 27,33-44)
이것이 진짜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할머니 냄새가 스멀 스멀 죽음의 냄새가 올라와요
십자가는 인간은 원래 죽었단다 라고 말이죠
마른뼈도 이것이 너희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처음사랑의 자리였단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런 인간에게 주님의 숙제로써
산 소망이 딱 달라붙으니까
마치 가시떨기 나무에 여호와의 불이 붙으니까
비로소 인간이 발 딛일수 있는 거주지로 인정하시겠다 라고
신발을 벗으라 라고 했다 말이죠
자 이처럼 죽음과 생명을 보여주지 못하는 거주지는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 거주지로써
이것이 새성전의 의미에서도 나타나는 겁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두 사람의 기도 속에서
세리의 기도는 자신은 죽어 마땅한 자이다 라고 하고 생명이 없다 라고 하고
이런 죽은 자에게 생명을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한다 말이죠
그런데 바리새인의 기도는 마치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된냥
저 세리처럼 악하게 되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하고
선한 행동을 주님께 바쳤다 라고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 라고 하는 겁니다
누가 주님이 인정한 인간입니까?
하나님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집에서까지 인간들은 자신만의 거주지를 꿈꾸더라 말이죠
그러니 불타는 성전이 되어야 할까요 말까요?
과연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서 불타지 않는 성전의 의미가 나올수 있겠냐 말이죠
인간 좋으라 라고 만든 사적인 거주지가 아니였던 에덴동산이였듯이
성전도 사적인 기도 바치라고 주신 성전이 아니다 말이죠
그저 인간들은 종교의 터전으로써 일주일에 한번 바치면 된다 라는
그 수천년의 습관 습관이 되어버리면 이것은 우상숭배이다고 했지요
46년 동안 지어도 여전히 성전을 다 못 짖듯이
의문의 반복 뿐이지
다 이루었다가 없어요
하나님 나라를 다 이루었데요 글쎄
오늘 성소측량 다 이루었데요 글쎄
인간들의 국가를 보세요
에덴동산의 잔상으로 인해 에덴동산처럼 만들려고 해도
수천년이 걸려도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어요
헬조선처럼 헬지구로 변한 거주지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말이죠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말이죠
바벨탑 만들어서 협동 단결하자 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혹 몰라서 윤리 도덕 예절을 만들면 되지 않나 싶어도 소용없어요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도 안 되는 판국인데요 뭘 ~~
에덴동산 추방 이후에 인간들은 주님이 생각하는 죽음과 생명을 상실한 채로
그런 거주지만을 형성하다 보니 지금도 그 무너졌던 바벨탑을 또 형성해요 글쎄
아니 무너진 것 보고서도 또 짖는다는 것은
그 어떤 국가도 언젠가는 다 무너짐을 전제로 깔고서 짖는 것이니까
달리 다른 방도가 없더라 말이죠
말만 후손에게 물려준다 라고 하지만
무너지는 것을 왜 물려주냐 말이죠 말이 안되잖아요
무너지지 않는 것을 물려줭야 물려준다는 것이 말이 되는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 후손들아 너거들 알아서 하라 라는 말을
괜히 있는척 하면서 멋들어진 말로 회피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만큼은 달리 다른민족에게 없는 율법을 줌으로써
율법 준 이유가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비로소 뭘 해도 나는 죽음 뿐이구나 라는
우리가 다 잊어버린 에덴동산의 두 나무에 처촉받고 있음을 비로소 아는 겁니다
네 맞아요 율법을 주신 이유는 망하라꼬 죽으라고 아니 이미 죽은자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오호라 나여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미 병들어 죽은 채로 태어났구나
이 사망의 몸
죽음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우는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율법의 완성인 사랑에 의해서
십자가에 의해서 비로소 나는 죽은자로 규정이 되었고
그런 죽은자 원수를 사랑하신
다시 살리신
이 진짜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진짜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진짜죽음과 진짜생명을 통해서
절대저주와 절대용서를 통해서
이미 다 이루었다 라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런 취지로 율법을 준 것인데
도리어 지켜버리니까
진짜죽음과 진짜생명을 쳐다볼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니까
사적은 구원의 장소
구원된 사적인 몸뚱아리 그런 성전
그것을 투사시킨 것이 부자 아닙니까
그 부자의 옷 또는 몸에다가 불을 붙여보자 말이죠
불타지 않는 옷을 사렴 이라고 값없이 돈주고 사보렴 이라고 백날 캐도
이 불타지 않는 옷이 없어서 불타는 몸뚱아리가 되는 것이 부자들이다 라고
계시록은 대놓고서 깡그리 부자를 무시해 버리더라 말이죠
부자란 인간에게 각인이 된 것이 일단은 존경의 대상이거든요
마치 바리새인을 전국민의 선생으로써 존경의 대상이듯이
그런 부자들을 아이고 발가벗었구나
뭐 바리새인이 신학박사라꼬? 단 한 개도 모르던데 라고 개무시하듯이 말이죠
인간들는 이 부자가 못 되어서 원망스럽고 한스러워 하고
바리새인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만물박사가 되고픈데
그래서 동경의 대상이다 말이죠
설문조사를 해 보니 무엇이 가장 후회 되냐 라고
연령층으로 다 해보니
결국은 공부 곧 지혜이다 말이죠
공부를 더 하지 않은 것이 후회 1등으로 말이죠
즉 조금이라도 지금의 그때의 나 보다 더 나았을거라고 생각한다 라는 거죠
그래서 바리새인이 동경의 대상이였거든요
그런 공부의 달인 조차도 개무시해 버렸으니
뭘 믿고 그랬겠냐 말이죠
그 어떤 인간도 죽음과 생명을 보여주는 자도 없고
그런 곳으로 인도해 줄 자도 없다 라는 겁니다
그저 인간은 쓰레기 장에만 옮겨 다닐 뿐이다 말이죠
강남부자 땅이 동경의 대상인데
주님은 거기에 죽음이 있더니 라고 물으시고
생명이 있더니 이 두 나무가 있더니 라고 물으시면
모르겠는데요~~~~
아 그래? 그럼 강남 쓰레기 장이야 라고 하신다 말이죠
서로 그 강남 부동산을 못 사서 안달인데
쓰레기 장이다 라고 취급해 버리시니
율법이 흘러 흘러 넘쳐서
뭘 해도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라고 저절로 고백하는 우는 자가 절대로 나오지가 않으니까
쓰레기 장이 맞다 라고
그런 율법이 몽학선생으로써 화살표로써 저 분을 보라 라꼬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쳐다보라 라꼬
불뱀에게 물려 사막에서 죽음에서 죽는 그런 가짜죽음 쳐다보지 말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을 쳐다보라 라꼬
종말의 인물의 죽음을 쳐다 보라 라꼬
종말도 아닌 것들의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드는데 그거 쳐다봐서 뭐하게요
진짜죽음을 몰고오신 참현실을 보라 라꼬 말이죠
죽음 속에서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어두운 캄캄한 바다 깊은 스올 무저갱 지옥속에서
내 죽음은 죽은 축에도 못 드는 진짜 죽음을 만나니
이것이 참 생명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 만이 생명이요 길이요 부활이요 진리이다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말이죠
바로소 죽음 속에서 저주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어 마땅한 죄인 사망의 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절대용서 절대생명을 부어넣으심으로써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 생명이 되었도다 라는
절대용서가 강남 쓰레기 장에서 울려 퍼지 겠느냐 말이죠
인간의 그 어떤 고급 쓰레기 장이라고 해도 쓰레기장은 쓰레기 장일 뿐
거주지가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너희가 거할 처소를 마련하시고자
주님은 죽으셔야만 했었었었던 것이였던 것이였던 것이였섰섰섰섰습니다
(요 14:2, 개역)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개역)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 처소가 신약에서는 예수 안이고
구약에서는 에스겔이 환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소 이다는 겁니다
단 바벨론 포로 잡혀간 상황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서 없어진 상황에서 불타지 않는 성전입니다
거룩한 성전인지
더러운 성전인 강도의 소굴인지
불 붙여 보면 안다 라는 겁니다
성전의 기능이 뭐라꼬 했습니까
더러운 죄악을 거룩한 의로움으로 이동시키는 기능을 한다 라고 했지요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런데 인간들은 죄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자기의 옳았음을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고 오더라 말이죠
그런데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완악한 수건을 안벗는 모습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엉터리 하나님으로써 우상숭배를 하더라 말이죠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에까지
자기의 의로움을 가지고 오고 (저 세리 같지 않게 해 주신 것 하나님 감사합니다)세리를 탕자를 용서하신 금가락지 새신발 새 옷 살진소를 베푸신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반발
아버지의 사랑에 반발하더라 말이죠 아니 어떻게 저런 탕자 원수를 용서하십니까 안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고 오니까(십의 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세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십자가의 지혜 지식를 거부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주님이 마련하신 거주지 처소 이다 말이죠
새 마음 새 신 부드러운 마음이 재료가 된 새성전
자 그렇기 때문에 죽음과 생명으로써
제사장기능 곧 성전의 기능은
어린양을 6조각 냄으로써 처참하기 짝이 없는 화목제물 만드시고자
죄를 사하고자 처차한 죽음을 펼치시는 것이 바로 성전 아니냐 말이죠
온 몸에 제사장 온 몸에 피가 가득 묻힐정도로 피가 튀겨져서
이마에 땀방울처럼 어린양의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온 몸을 다 적실 정도로
처참한 죽음 아니냐 말이죠
인간의 죽음이 왜 죽음 축에도 못 드냐 하면
흠 없는 어린양처럼 흠이 없어야 하는데
흠이 너무 너무 많으니까
거룩은커녕 흠 아닌 곳이 없어요
제물의 가치가 없는 거예요
선교해서 순교하겠다? 더러운데 무슨 가치가 있다 라고 죽음이라고 우기냐 말이죠
뭔물교회처럼 돈선교나 할 뿐이지
바로 이렇게 절대죽음을 절대저주 절대심판을 통해서
절대용서를 절대거룩을 입히시겠다 라는 성소의 취지를 무시하고
인간들 쪽에서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맹세하고 기도하고 있으니까
그 성전
더 이상 성전의 기능을 못하도록 인간들이 막아버렸으니
불태워 버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인간들 손 못대도록
천사들이 짖고
또 특별히 오늘 성소 지성소 라는 성전 바깥 외부가 아닌
내부의 설계 내부 공사로써
이 성소의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비로소 거주지가 된다 말이죠
함께 동행하는 한 몸이 된다 말이죠
한 몸이 아닌데 어떻게 거주지를 운운하냐 말이죠
인간들은 이제 거주지를 솔로 혼자 사는 공간으로 마련하고자 해요
부동상 정책이 실패하니까 더더욱 함께 한 몸을 이룰 공간을 더더더 마련 못할 정도로
척박한 땅이 되었다 말이죠
어쩌다가 그 에덴동산에서 살던 한 몸이 각각의 따로 국밥처럼 그런 독자적인 몸이 되었냐 말이죠
결혼해도 혼자서 산다 가 되니까 얼마나 척박하냐 말이죠
심지도 거두지도 않을 정도로 그렇게 풍요했던 약속의 땅이
그곳에서 자란 특급 상품의 포도였던 이스라엘이
척박한 땅이 되어서 화살과 활이 없으면 못 살 정도로
이스라엘이 들포도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이게 성소의 기능을 무시해버렸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싹 다 ~~~~~~~~~~~~~
어 그 다음 가사 뭐였지
저거만 생각나네
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예 뒤집어 엎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다시는 인간이 손댈수 없는
아껴둔 은밀한 처소를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이방인들을 통해서 성전을 불태워서
새로 갈아버리는 겁니다
(겔 7:22, 개역)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강포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겔 7:23, 개역)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강포가 그 성읍에 찼음이라
(겔 7:24, 개역)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으로 이르러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악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겔 7:25, 개역)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인간들이 이거 곧 은미한 처소의 기능을 막을려고 자기들 쪽에서 바쳤다 말이죠
이런 것만 봐도 성화론자들이 얼마나 악마들인지 말이죠
바리새인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겁니다
(바쳤다 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의 것을 빼앗아서 바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내가 남을 7번 용서할려면 도리어 그 사람은 죄를 지어줘야 하듯이 말이죠
7번의 남들의 죄악이 남 7명이 저질러 줘야 하니가 이 얼마나 모순이냐 말이죠
결국 바칠려면 이 의문의 반복 때문에 나중에는 자식까지 부모까지 잡아먹는다 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말이죠 에이 설마요 그래서 오늘은 내 자식 내일은 니 자식 잡아먹자 라고 나오는 겁니다 성전이 무너지들이 내 몸이 무너지면 안 잡아먹는게 없다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제대로 된 교회
참 성전의 기능을 단 한번도 맛 본적이 없어요
그 동안 강도의 소굴만 돌아다녀 놓고서는 교회 다닌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았다 말이죠
뭐 하긴 이미 죽었으니까 좀비들이 강도의 소굴에 다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
자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만 아시는 죽음과 생명을 우연히
사건으로써 사건 자체가 우연이지 필연이 아닙니다 즉 존재가 아닌 기능이다 말이죠
하나님만 아시는 죽음과 생명을 인간들이 자기들의 거주지 이다고 우기는
그 속에서 우발적으로 터트리심으로써 죽음과 생명이 튀어나오도록 하십니다
교통사건 나서 죽음 속을 헤매이는 거요?
아니요 그건 죽음도 아니요 사건 축에도 못 든다 라고 했습니다
특이한 죽음사건으로써 아벨의 죽음은
인위적으로 메시아의 죽음과 엮을려고 해도 엮을수 없는 미래를 앞당겨 보여주는 우연성이다 말이죠 즉 사건이다 말이죠
필연적이면 이것은 사건이 아니니까
인위적으로 아벨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조작된 행동이 되겠지요
그래서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외부에서 붙이는 식이지
자신이 붙이게 되면
인간 쪽에서 붙이게 되면 이 부정성을 곧 죽음을 절대심판을 빼버리는 식의
필연성으로 만들어 조작하게 되는 거죠
사건 자체는 종말적이고 오로지 종말의 인물 한 분의 인물과 연관이 되지
지나 개나 다 사건 이라고 붙일수가 없다 말이죠
사건은 딱 하나 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이 말은 하늘 영광 버리시고 죽고자 오셨다 이것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사건이야 말로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말이 되면 사건이 아닌 거죠
아무리 수천년 수만년을 생각하고 되뇌이고 되뇌어도 이해할수 없는 것이
십자가 사건이지
비밀이 풀려 버리면 그것이 무슨 비밀이냐 말이죠
비밀 그 자체에 그냥 풍덩 빠져 빠져 (경림이) 빠져 버림 당할 뿐이다 말이죠
자 이렇게 특이한 죽음은 이삭의 죽음에서도 나오고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에서도 나옵니다
어린양의 죽음을 바른 자는 심판 속에서도 살고
어린양의 죽음을 바르지 않은 자는 죽더라 말이죠
광야 40년은 이 어린양의 죽음을 다시 반복하는 겁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속의 땅 들어감 자체가 전쟁이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이 주변의 이방나라와 줄기차게 전쟁을 하도록 주님이 [붙이시는 전쟁]을 펼치시는 이유 또한 죽음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거든요
물론 인간은 자기나름대로의 생존문제에 걸려있어요
돈 못 벌면 죽고 돈 벌면 살게 된다는
그런 생사가 있다고 우기지만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된 자를 성경은 도리어 생명이 없는 발가벗은 자로 취급해 버리시는 겁니다
생명과 죽음을 다르게 보신다는 거죠
바로 그런 우상숭배의 나라와 전쟁을 하는 이유 또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죽음과 생명이 따로 있다 라는 겁니다
자 그렇게 전쟁을 통해서
전쟁의 마침이 되는
성전건립을 다윗은 함께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사는 곳을 자신들의 거주지로 생각했지만
주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처음등장한 성전은 온전한 성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온전한 이스라엘의 왕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결국 다윗 너 땡 탈락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이 와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성전이 되며
전쟁을 종식 시키는 평화가
다 이루었다가 된다 라는 겁니다
마치 성전이라는 건물 공간 장소에서 벌어지던 그 기능들이
존재들이 행하는 행동들이
이제는 기능들만이 존재는 뒤로 빠지고 땡 탈락 누락 배제시키고
마치 유령처럼 임의로 부는 바람들이 제사장이 했던 성소의 기능을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제사장이 되시고
예수님이 어린양 화목제물이 되시듯이
단번에 다 이루시는 겁니다
다윗은 그저 죽음과 생명이 반복이 되는 그런 의문의 제사를 반복되는
온전하지 못한 성전만 꿈꾸었던 거죠
베드로는 거주지를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했지만
주님은 정작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죽읍에 대해서
별세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겁니다
성전이 나타났다는 자체가 전쟁 끝 빨래 끝 인데
평화가 완성된 다 이루었다 인데
빨래 하지도 않고 빨래가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빨래 끝 외치게 되면 그거 온전한 승리가 아닌 성전인 거죠
온전한 승리로써의 성전이어야 하니까
다윗의 자손이 와서 성전을 완성하시는 겁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은
누구 누구의 아들 곧 인자가 먼저 있고
아버지는 그 뒤에 태어나는 겁니다
다윗의 자손이 먼저 있고
다윗이 다윗의 자손을 말하기 위해서 그 증상물로써 태어나야만 하듯이 말이죠
그렇게 그 다윗의 자손이 제대로 된 죽음 곧 절대심판과
제대로 된 생명 곧 절대용서를 보여주는 온전한 왕으로써
전쟁을 종식 시키는
사망 권세를 멸하는 하나님의 의를 펼치시는 겁니다
이사야 25팔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새번역)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결국 다윗은 새언약 곧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기 위해서 태어난 증인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의 증상물이다는 거죠
다윗 자체는 최종적인 왕이 못 되거든요
왕은커녕 쭐꾸덕 미끄러져서 냉큼 얼른 내려까내려지는
죄인 중의 괴수가 됨으로써
오홀리바가 됨으로써
창녀 중에 창녀가 됨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피발림으로써 예수님의 생명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결국 주님은 다윗과 약속한게 아니라
죽게 되는 다윗과 약속하셨다 말이죠
죽음 속에서만 예수님의 죽음과 생명을 조우 만나게 되니까 말이죠
그러니 다윗 속에 있는 진짜 다윗과 약속하셨고 다 이루셨다 라는 겁니다
마른 뼈가 된 이스라엘과 약속하셨지
처음자리 처음사랑이 아닌 이스라엘과는 약속 자체를 맺은 적이 없어요
태어나자 마자 무당의 딸로써 시장바닥에 내던져진 버림받은 무녀의 딸과 약속을 하셨다 말이죠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볼 수가 없고
고로 예수님의 생명을 볼 수가 없는데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죽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죽음이 비로소 만나는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믿었던 베드로 너 마저
하나님의 죽음사건의 증상물
하나님의 죽음이 너 베드로를 너 다윗을 낳았다 라는 겁니다
새 피조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왜? 바로 앞에 로마서 7장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율법에 의해서 죽었으니까 말이죠
마귀가 시체 만들기 전에
율법이 우리를 먼저 사망의 몸으로 만들어버렸거든요
그리고 그 전남편이 죽어버렸어요
의문의 증서를 찢어버렸어요
다 이루었기 때문에
책걸이 해 버린 겁니다
새남편의 증상물이 되기 위해서 말이죠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기에 말이죠
그리고 다시는 인간들이 최고의 건축물 거주지
최고의 집 여리고성
요즘으로 치면 강남 빌딩 곧 잔칫집 다시는 세우지 말라
(수 6:25, 개역)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수 6:26, 개역)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수 6:27, 개역)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세우고자 기촛돌 세우면 니 맏아들 죽여버리겠다 애굽 장자요 애굽심판이지요
문짝을 달면 니 막내아들 죽여버리겠다 (막내아들 카니까 시아버지 유다가 생각나지요
어떻게 해서든 듣든지 아니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며느리 다말의 죽음 그 불속에서 그 저주 그 심판 속에서 약속을 다 이루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반드시 예수님의 죽음을 다 이루시는 성소의 은밀한 기능을 밀어붙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다시는 동침하지 않았다처럼 (여인아 다시는 죄 짖지 말라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하셨듯이- 양무리 권사모가 말한 것과 정반대입니다)
(창 38:25, 개역)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창 38:26, 개역)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요 8:11, 개역)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날 건드리지 말아라 고만 좀 찔러라 마이 무따 아이가 처럼
바울은 십자가의 흔적이 자기 신체게 새김박혀짐을 당했다 라고 하는 겁니다
(갈 6:17, 개역)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 6:13, 개역)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갈 6:14, 개역)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5, 개역)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갈 6:16, 개역)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 6:17, 개역)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 6:18, 개역)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할례 무할례 논쟁 이미 다 이루었는데 말라꼬? 괴롭힐려는 목적 밖에 없다 라는 거죠
자 이렇게 강남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하나님의 사건이 덮친 거주지는 다시는 원초적인 하나님의 죽음과 생명이 펼쳐진 장소이기에
인간의 거주지로 허용하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아 그럼 강남은 안 되고 난지도는 된다?
불 타지 않는 곳만 되요 쓰레기 장 아닌 곳이 없다 말이죠 그런 곳 없어요
그래서 주님이 직접 세우시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죽으심인 십자가와 다시사심만을 증거하는 자로 삼겠다 라는 겁니다
진짜 성전은 계시록에 이렇게 완공되었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계 11:1, 개역)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 11:2, 개역)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 11:3, 개역)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 11:4, 개역)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계 11:5, 개역)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계 11:6, 개역)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 11:7, 개역)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 11:8, 개역)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성전측량이 수치 치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써 나오는데
성전의 장소가 8절에 영적으로는 소돔이요 애굽이요
동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다 라고
동일한 장소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마치 중첩되었다 말이죠
이것은 이 세상 모두가 주님의 새성전 되심을 알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생명이 튀어나오는 장소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런 예수님의 죽음과 생명을 터트리는 지뢰로써 증상물로써 나타난다 라는 거죠
곧 예수님이 본으로써 붕어빵 주틀로써 보여주신 그 길을 졸졸졸 따라가는
그의 죽으심과 다시사심을 재현하는 자로써 말이죠
즉 불타는 성전이 아니라 불타지 않는 새성전을 보여주도록 말이죠
지금 바벨론 포로 속에서 새성전을 인자 에스겔이 하나 하나 세세히 자세하게
이스라엘에게 알려주는 이유 또한
우리가 거주할 곳을 주님께서 마련했다 라는 겁니다
그저 솔로몬 성전만을 회상할 수밖에 없겠지만
솔로몬의 영광과 족히 비교도 되지 않는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의
빈무덤의 자유를 다 이루신 진짜 왕의 등장으로 인해
다윗의 자손으로 인해
그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포로잡혀갔던 자들이 희년
은혜의 날을 누리게 됨으로써
(눅 4:18, 개역)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새번역)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 ㉤사 61:1; 2
(사 61:1, 개역)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 쪽에서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쪽에서 거주지를 마련하심으로 인해서
반석 곧 불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진정으로 한 몸을 이루는
자유하는 한 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성전 곧 신부를 만드시는 겁니다
왕의 숙제로써 이룬 거주지로 다들 모여들게 하시는 겁니다
(요 15:4, 개역)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개역)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7, 개역)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8, 개역)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9,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10, 개역)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1,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동서남북 333 333 주먹 손으로 333 333 나팔 붑니다
144000명의 새노래꾼으로써 말이죠
참 성전 되신 어린양 예수님의 죽음과 생명의 증상물로써
다 이루심을 누리는 겁니다
따따따 따따따 ~~~~~~~~ 나팔 붑니다 뿌 뿌 뿌 뿌~~~~~~~~~~웅
(요 15:12, 개역)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3, 개역)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개역)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개역)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6, 개역)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7,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 15:18, 개역)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9, 개역)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0, 개역)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요 15:21, 개역)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 15:22, 개역)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요 15:23, 개역)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4, 개역)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요 15:25, 개역)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26, 개역)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7, 개역)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