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9

지성소를 보호하는 방탄복 보디가드 제사장 방 (겔 42, 1-20)

김 대식 2021. 12. 18. 16:44

19-117 지성소를 보호하는 방탄소년단 제사장 방 (성전마당 측량) (겔 42, 1-2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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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Bibleimages :: Ezekiel's vision of the Temple: Part 3 :: Ezekiel's vision of the temple in which he sees the outer courts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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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에스겔 42장 너튜브 https://youtu.be/k99K-1A_ths

19-117 지성소를 보호하는 방탄소년단 보디가드 제사장 방 (겔 42, 1-20)


성소와 지성소와 골방들 측량 (겔 41, 1-26)
에스겔 2019 2021. 12. 4. 14:25
19-116 성소와 지성소와 골방들 측량 (겔 41, 1-26)

〈에스겔 42, 1-20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9쪽,  찬송가 078장 참 아름다워라, 382장 허락하신 새 땅에,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찬송가 078장 참 아름다워라〉

1.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3.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들리니 
   주 하나님 큰 뜻을 내 알듯하도다.  아멘


〈찬송가 382장 허락하신 새 땅에〉

1. 허락하신 새 땅에 들어가려면 
   맘에 준비 다하여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2. 시험환난 당해도 낙심 말고서 
   맘에 걱정 버리고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3. 앞서가신 예수님 바라보면서 
   모두 맘을 합하여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4. 일할 곳이 아직도 많이 있는 데 
   담대하게 나가서 힘써 일하세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가세 
   우리 거할 처소는 주님 품일세


〈에스겔 12, 8-13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4 쪽〉

(8)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패역한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10)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하셨다 하고
(11)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갈지라
(12)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
(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에스겔 42, 1-20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9쪽,〉

(1)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는데
(2) 그 방들의 자리의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오십 척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고
(3) 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는데 한 방의 툇마루는 이십 척 되는 안 뜰과 마주 대하였고 한 방의 툇마루는 바깥 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4)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일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을 향하였으며
(5) 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으니 이는 툇마루를 인하여 하층과 중층보다 상층이 더 줄어짐이라
(6) 그 방이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7)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장이 오십 척이니
(8) 바깥 뜰로 향한 방의 장이 오십 척임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일백 척이며
(9) 이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 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10) 남편 골방 뜰 맞은편과 남편 건물 맞은편에도 방 둘이 있는데
(11)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장광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12) 남편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편 길머리에 있더라
(13)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이는 거룩한 곳이라
(14)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 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15) 그가 안에 있는 전 척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향한 문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척량하는데
(16) 그가 척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7) 그 장대로 북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8) 그 장대로 남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9) 서편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척량하니 오백 척이라
(20)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겔 42:1, 현대어) [제사장들이 쓰는 큰 준비실들] 그 사람이 다시 나를 데리고 바깥 마당의 북쪽으로 나가 성전 뒤쪽에 있는 건물과 그 건물 앞의 금지 구역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는데 이 건물에는 방이 많이 있었다.
(겔 42:2, 현대어) 이 건물의 길이는 100자였고 폭은 50자였다. 이 건물로 들어가는 통로는 북쪽에 있는 동서로 길게 난 복도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겔 42:3, 현대어) 노대 형식으로 층층이 올라가는 이 삼층 건물의 한쪽은 성전 뒤쪽의 금지 구역을 향하고 다른 한쪽은 돌을 깐 바깥 마당의 뜰을 향하고 있었다.
(겔 42:4, 현대어) 건물 북쪽에는 길이가 100자요, 폭이 10자인 통로가 있었는데 건물로 들어오는 입구도 이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 건물의 서쪽에도 그와 똑같은 통로가 있었다.
(겔 42:5, 현대어) 이 건물은 노대 형식으로 건설된 것이었기 때문에 층층이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졌다. 이 건물에는 바깥 마당을 빙 둘러싸고 있는 행랑들처럼 지붕을 댄 복도가 없었다.
(겔 42:6, 현대어) (5절과 같음)
(겔 42:7, 현대어) 이 건물의 북쪽에는 통로와 바깥 마당 사이에 담이 하나 있었다. 이 담은 바깥 마당 안으로 들어간 길이가 50자요, 이 담이 서쪽으로 성소의 큰 담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다가 여기서 다른 건물의 벽과 맞이어져 있는 길이도 50자였으므로 전체 길이가 100자나 되었다.
(겔 42:8, 현대어) (7절과 같음)
(겔 42:9, 현대어) 바깥 마당에서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이 건물의 동쪽끝 오른쪽에만 있었다.
(겔 42:10, 현대어) 성전의 서쪽 건물 남쪽에도 이와 똑같은 건물 한 채가 성전의 바깥 마당에 있는 큰 담에 잇대어 지어져 있었다.
(겔 42:11, 현대어) 이 건물의 앞쪽에도 길이가 100자 되는 통로가 있었고 건물 구조 역시 북쪽에 마주 서 있는 건물과 같았다.
(겔 42:12, 현대어) 출입구도 마찬가지였다. 바깥 마당에서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동쪽 끝에서부터 보호벽을 갖춘 통로를 이용하여 각 층의 방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겔 42:13, 현대어)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내게 일러주었다. '성전 뒤에 있는 금지 구역을 통하여 격리된 이 두 건물의 모든 방들은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섬길 수 있는 제사장들만 드나들 수 있는 거룩한 곳이다. 제사장들은 여기서 희생제물로 바친 거룩한 제물들 가운데 특별히 거룩한 제물을 먹도록 되어 있다. 모든 종류의 곡식제물과 속죄제물과 화목제물 중에서 제사장들의 몫이 되는 부분은 특별히 거룩하기 때문에 그것도 모두 이곳에 가져다 두어야 한다. 여기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다.
(겔 42:14, 현대어)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한 뒤에 그대로 직접 바깥 마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나가서는 안 된다. 그들은 먼저 성전에 들어가 여호와를 섬겼던 예복을 이 건물 안에 있는 방에 들어와 벗어 놓아야 한다. 이때 다른 사람은 함부로 이 예복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제사장들은 이렇게 예복을 벗어 놓고 평복을 입은 다음에 비로소 일반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
(겔 42:15, 현대어) [성전 구역의 전체 넓이]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마침내 성전과 현관의 안팎을 모두 잰 다음에 나를 데리고 동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와서 성소의 외곽 전역을 재었다.
(겔 42:16, 현대어) 성전의 구역은 사면이 똑같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가 들고 다니던 장대로 맨 먼저 동쪽 담을 재어 보니 그 길이가 500자였다. 그는 또 나머지 세 담도 재었는데 모두가 다 각각 500자였다. 성전 구역의 이 네모 반듯한 총 2천 자에 이르는 담이 거룩한 장소와 세속의 땅을 갈라놓는 벽이 되었다.
(겔 42:17, 현대어) (16절과 같음)
(겔 42:18, 현대어) (16절과 같음)
(겔 42:19, 현대어) (16절과 같음)
(겔 42:20, 현대어) (16절과 같음)


(겔 42:1, 쉬운) <제사장들의 방>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북쪽 바깥뜰로 나가 성전 뜰 맞은편에 있는 방들로 갔다.
(겔 42:15, 쉬운) <성전 주변> 그 사람이 성전 안쪽을 다 잰 다음에 나를 데리고 동쪽 문으로 나가서 성전 주변 지역을 쟀다.
(겔 42:1, 현대어) [제사장들이 쓰는 큰 준비실들] 그 사람이 다시 나를 데리고 바깥 마당의 북쪽으로 나가 성전 뒤쪽에 있는 건물과 그 건물 앞의 금지 구역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는데 이 건물에는 방이 많이 있었다.
(겔 42:15, 현대어) [성전 구역의 전체 넓이]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마침내 성전과 현관의 안팎을 모두 잰 다음에 나를 데리고 동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와서 성소의 외곽 전역을 재었다.

개정개역한글
겔42:1 <제사장 방>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
겔42:15 <성전의 사면 담을 측량하다> 그가 안에 있는 성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쪽을 향한 문의 길로 나가서 사방 담을 측량하는데


먼저 측량 치수를 나타내는 단위가 자, 척, 규빗(큐빗)으로 표기된 번역본이
저도 생소하지만 미터 M 로 표기된 번역본은 쉬운성경번역과 현대인의 성경번역본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본문은 성전 뜰 마당의 측량치수입니다

다시 한번더 강조하지만
치수 라는 숫자를 나타낸다 라는 것은
반드시 인간이 바라고 있는 그 소망을 담아서
즉 함정을 파서 미끼를 물도록 해서
그것을 깨뜨리면서 증거하는 의미에서 숫자를 나타내는 겁니다

철학자와 수학자들이 말한대로 수는 진리이다 라고 그들은 주장하거든요
왜냐하면 숫자는 논리성이라서 원인에 따른 결과이기에
요행을 바라지 않는 정직성을 담고 있다 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숫자는 바로 이런 역사성처럼 진리성처럼 기록이 가능하다 말이죠

아무리 사기를 쳐 본들 그때 그 순간을 넘어갈수 있어도
언젠가는 기록된 숫자에 의해서 그것이 다 탄로가 되어버리고
진실만이 기록이 된다 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인간은 숫자에 무지 무지 집착합니다

뭐 행운이라는 숫자 7이라는 둥
불운의 죽을 사 4 는 아마 한국 엘리베이트에는 기록이 안 되었죠?
중화권이 그렇구

성경컴플랙스가 있는 서양권은 13과 6이 재수없는 숫자로 통하고 있다 말이죠

하도 각인이 되어서 오래 기억이 남은 것이
수능칠때에 실기시험날에 어떤 젊은 권사가 차타고 오면서 자녀를 바래다 주면서 실기시험치게 했다고 하는데
하필이면 타고온 차 넘버에 666이 들어가 있었더라 라고 하더라 말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재수없다 라는 거죠

자 이렇게 인간은 숫자에다가 진리성과 비진리성을 집어넣는 이유가
성경을 흉내내듯이
144000이라는 수와 666이라는 수가 서로 대비가 되듯이
인간들이 사는 공간 속에서도 이런 대비의 숫자를 집어넣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숫자개념이 결국 인간은 수에 칠 가치가 없다 라는 의미로써
수에 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기여이 인간은 수를 셈하고 있다 라는 말 자체가
늘 자기라는 가치성에 목매달고 산다 라는 거죠

자기 목을 자기가 목 조르면서 살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이주하는 행구를 보여주는 인자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주듯이

인자야 와카노 왜 그런 행동을 하고있니

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주라

나는 너희들을 비추는 거울이라 라고
즉 반사

아이들이 요즘 애들은 모르겠습니다 만은
우리 어릴적에 서로 이겨먹을려고 욕을 해댄다 말이죠

욕을 하면 그냥 합니까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마구 마구 화내면서 씩씩 거린다 말이죠

그러면 상대방이 난 아무렇지도 않아 반사 ~~~~~ 라고 두 단어만 외치면
간단하게 이겨버린다 말이죠
말라꼬 목에 힘주고 열받아서 씩씩 거리냐 말이죠
웃으면서 반사 라고 얄밉게 웃어넘겨버리면 되거든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00명과 여기서도 800 이라는 숫자가 나오죠
그리고 딸랑 한 명의 선지자 엘리야와 여기서도 숫자 1이 나옵니다

백이면 백 인간은 숫자가 큰 쪽과 자기에게 유리한 쪽에 줄을 서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이미 인간 속에는 선악이 장악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렇게 800명의 선지자는 제단의 불을 붙이기 위해서
힘들게 힘들게 정성과 열심을 바쳐서 신의 마음을 움직일려고 할때에

엘리야는 반사 얄밉게 반사 아이고 그렇게 모기만한 소리로 신이 잠에게 잘도 깨어서
잘도 기도 들어주시겠다 라고 놀려먹는다 말이죠
즉 그들의 신은 숫자처럼 큰 자로 여겨질테니 작은 인간이 큰 신을 깨울려면 그렇게 모기만한 소리로는 택도 없다 라는 겁니다 

마치 작은 개미가 큰 코끼리 귀에 듣기도록 기도할려면 얼마나 큰 소리를 외쳐야 듣낀둥 만둥 하겠냐 말이죠

자 이렇게 인간은 숫자를 통해서 진리성을 주장할때에
동시에 비진리성에 놓인 불운한 숫자를 버리는 방식으로써 진리를 외치도록
숫자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데 바로 그것을 알고서

너희가 버릴려고 하는 그 숫자를 가지고서
주님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반사 ~~~ 라고 하듯이
숫자를 제시하시는 겁니다

측량할 때에 쓰는 도구 자 를 동원하듯이 바로 이런 자가 저마다의 자가 아니라
보편적 진리로써의 자 규격 측량수 아닙니까
저마다의 측량자가 틀리면 누가 진리로 받아들이겠느냐 말이죠
바로 이런 것이 확대되어서 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항상 숫자를 주님에게 들이댈 때 마다
주님은 다른 수를 들이대시는 겁니다

너의 측량줄자와 내가 측량하는 줄자의 기준이 다르다 라는 겁니다

너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이 진리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본 것이고
나는 도리어 남으로부터 7에 70번 용서 받는 것이 진리에 가가운 행동이라고 본다 라고 말이죠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준 자체가 정반대 극과 극인 거죠

자 그래서 오늘 본문도 그런 식입니다
마당 뜰을 측량함으로써 숫자로 표기가 됩니다

(겔 42:1, 쉬운) <제사장들의 방>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북쪽 바깥뜰로 나가 성전 뜰 맞은편에 있는 방들로 갔다.
(겔 42:2, 쉬운) 북쪽으로 문이 난 건물을 재니 길이가 50미터, 너비가 25미터였다.
(겔 42:3, 쉬운) 성전 안뜰에서 10미터쯤 되는 지역과 바깥뜰 돌을 깔아 놓은 반대편에는 각각 삼층으로 된 복도들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겔 42:4, 쉬운) 방 북쪽으로는 통로가 있는데 너비는 5미터, 길이는 50미터였으며, 문들은 모두 북쪽을 향해 나 있었다.

(겔 42:1, 현대인) 다음으로 그는 나를 데리고 안뜰로 가서 성전 북쪽에 있는 건물로 갔다.
(겔 42:2, 현대인) 그 건물 길이는 52.5미터이고 폭은 26.3미터이며 문은 북쪽을 향하였다.
(겔 42:3, 현대인) 그 건물에는 두 줄의 방들이 있었는데 한 줄은 성소 뜰을 향하였고 또 다른 한 줄은 바깥뜰의 돌이 깔린 곳을 향하였으며 그 건물은 3층으로 되어 있었다.
(겔 42:4, 현대인) 그리고 그 두 줄의 방들 사이에는 폭 5.3미터, 길이 52.5미터 되는 통로가 있었으며 그 방들의 문들은 북쪽을 향하였다.

미터로 표기된 번역서도 서로가 조금 틀리네요

이미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버렸다 말이죠
지금 에스겔 42장의 성전은
40장부터 나오는 치수가 숫자로 기록되는 성전은 천사가 짖는 성전이기에
이들 숫자를 인간 쪽으로 끌어올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반드시 자기구원을 이미 전제로 하기 때문이며
그런 성전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불타버렸다 말이죠

즉 예수님 당시의 헤롯성전은 바로 이 에스겔성전을 따라 만든 겁니다
문제는 정확하냐? 치수가?
천사가 짖는 성전은 정확하게 한치 오차도 없어요
이것을 거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헤롯성전은 부동산이 훨씬 적습니다
얼추 비슷하게 만드는 흉내내는 식입니다

그렇게 46년 동안 짖고 있지만 미완성이다 말이죠
나중에는 무너져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되죠

그런데 현대 지금 이스라엘이 제3의 성전 곧 에스겔성전대로
이제는 헤롯때처럼 부동산이 모자르게 하는게 아니라
이 치수 그래도 하겠다 라고 나서고 있다 말이죠

과연 그 치수를 인간 쪽으로 끌어올수가 있을까요?
14만 4천을 인간 쪽으로 끌어오겠다 라는 발상을 한 이단이
여호와증인이였죠

안식일 7일을 인간 쪽으로 끌어오는 이단도 안식교이구요 유대교도 그렇구요

모든 날이 주의 날인데 주일성수를 안식교처럼 따로 특정날을 규정하는
지금의 개신교나 천주교 모조리 다 이단이다는 겁니다

(갈 4:8, 개역)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9, 개역)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 4:10, 개역)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개역)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결국 돈 헌금 받겠다 라는 심뽀 뿐인 거죠 강도의 소굴입니다

한번은 크리스마스 행사를 해서 그걸 동영상으로 찍은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목사가 있더라 말이죠

왜 행사를 하냐 라꼬 ~~~~~~

아니 교회가 했지 내가 했남???? ㅋㅋㅋ
여집사들의 성화에 어쩔수 없이 했지만
해도 소용없다 라는 것을 알았기에 다시는 안하더라 말이죠

그런데 더 웃끼는 것은 그 목사 놈은
정작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행사를 기념하더라 말이죠

아니 내 보고는 왜 지키냐 라고 해놓고서는 지는 왜 지키남???

종교개혁주일 지키는 놈들 성화론자들 아니냐 말이죠
이땡땡목사의 뒤를 쫓고 있다 라는 일종의 정치운동은 왜 여기와서 운동하는지?

그 목사를 무지 비판을 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정작 다른 질문 성경의 333 333 333 333에 대해서 물었더니
정작 목사이면서도 답을 못하더라 말이죠
시스템 갖추기 교회냐? 비시스템이냐 라고 물으니 말이죠

자꾸 조건 즉 시스템을 갖추자 라는 자신의 목회 스타일이 들통나니까
물론 바른성경해석으로써 바른 바른 올바른 ~~~~~~

크리스마스 행사를 하는 비진리를 쫓는 자를 처단할려더가
도리어 자신이 비진리자임을 들통나니까
바로 꼬리내리더라 말이죠

그렇게 흥분하면서 크리스마스 행사 지킨 것에 흥분하더니
이 질문에는 답을 못해서 바로 사그라들더라 말이죠
지 혼자 성질 내고 지 혼자 화를 삭히고 ㅋㅋㅋㅋ꼴에 온순하기 짝이 없는 목사 라고 소문이 났지만
정작 속에 마귀가 들어 있었던 거죠

눈빛에 살기가 넘치는 놈이 무슨 놈의 목사를 하는 지 원 ~~~~~~~~~

바로 이런 인간 쪽에서의 사람의 손으로 짖는 
46년 동안 짖는 그런 시선으로는 이 에스겔 성전에는 들어올 생각하지 말아라 라는 겁니다

이것은 성전 바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말이죠

정작 여호와의 불 곧 심판 속에서 바라보는
예수 밖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써

이런 예수 밖의 시선을 모조리 다 차단 시키는 의미로써 
사람이 아닌 천사가 성전을 짖고
인간 쪽의 함량 미달인 숫자개념인 사람의 수 666이 아닌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으로써 치수를 재는 14만 4천의 우리가 거할 처소는 주님 뿐임을 제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시점에서 말이죠

그러니 이 하나님의 불 속에서의 시선이기에

우리는 이 새 일을 이 새성전을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이사야서에서 언급했잖아요

에게게게 ~~ 에게 ~~~~ 겨우 겨우
새일 새성전이 겨우 이겁니까????????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겨우 내만 남았는게 이게 겨우 이룬
이사야 서에서 보라 내가 새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입니까???

겨우 ~~~~~~~~~~~~~~

새 일 새 성전 새 마음 이것이 바로
마른뼈로 만들어서 새언약과 새성전과 만나게 하시겠다 동행하시겠다
약할때에 강함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주님은 성도의 죽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라고 했듯이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서 주님과 만나는 지점 처소 장소를 마련하신 겁니다

그것이 오늘 에스겔 새성전입니다

아삽의 시 시편 73편에 성소에 들어와 보니
시선이
보는 관점이 뒤바뀌어 지더라 말이죠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7, 새번역)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약하게 되고 실패자가 되고
쫄딱 망하는 그 자리
거기서 주와 만나는 지점 곧 새성전의 의미 속에 들어가게 되니
성소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종말적으로 변하더라 라는 겁니다

이미 망한 자를 보고 배아파 했으니 얼마나 부끄 부끄냐 말이죠

주의 기도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바로
마른뼈 만들기 실패자 만들기 죽읁자만들기 죄인 환자 만들기였다 말이죠

(마 6:13, 개역)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행 1:8, 개역)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 28:18, 개역)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개역)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개역)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한마디로 말해서 죽어라입니다

죽는 자는 살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
아니 이미 죽은자 이다는 거죠

성경을 보고 읽고 대하는 자세나
교회에 가는 태도가

다 나의 구원이나 내 잘 되라 라는 그런 시선을

예수 밖으로 규정해버리는 이 단절성을

새성전에서 펼치심으로 인해서 그 속임수 이제 안 통한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예수 안
성소 안
종말이 속에 들어와서 보는 시선으로써
이미 역사와 시공간은 끝났다 빨래끝 이라는 사고방식으로써
예수 안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다 내 잘 되라고 성경말씀이 있다 라는 그 시선은
여전히 예수 밖의 시선을 고집하고 있고
여전히 성경말씀을 문제지로 보고 숙제하듯이
답을 찾아내겠다 라는 식입니다

부자청년처럼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냐 라고 말이죠

그런데 정작 성경말씀은 정답으로써 종말로써 찾와왔기에
정답이 찾아내는 문제아 말썽꾼 골칫거리 탕자 죄인을 찾아내는 방식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성소 안에서의 시선입니다

성전 바깥에서 쳐다보는 시선인 예수 밖의 시선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바깥으로 쳐다보는 시선인 예수 안의 시선으로써

우리는 실패자 골치꺼리 말썽쟁이로써
정답이 찾아낸 문제아로써 들통당하는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였다 말이죠

새성전 곧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이룰 더 이상 지킬 율법이 없다 라는 완성의 차원에서
이 정답에 딱 맞는 문제아
의사에 딱 맞는 환자
구원자에게 딱 맞는 죄인을 찾아내시는 즉 새창조하시겠다 라는 의도가 담겨진 새성전이다는 거죠

즉 인간 쪽에서 가지고 오는 그 어떤 것도
사랑도 안 받겠다 라는 겁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7,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8, 개역)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9, 개역)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1, 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2, 개역)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러니 제발 사랑할 생각 말고 도리어 제발 좀 사랑 받아라
주님이라는 정답이 찾아내는 문제지가 되어라

남을 7번 용서하지 말고 도리어 정답이 찾아내는 7에 70번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 되어라 라꼬 말이죠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할거 아니냐 말이죠

네 말이 옳다

(눅 7:43, 현대어) `제 생각에는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입니다' 하고 시몬이 대답하자 예수께서 `네 말이 옳다' 하고 말씀하셨다.

(눅 7:41, 개역)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눅 7:42, 개역)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눅 7:43, 개역)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눅 7:44, 개역)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눅 7:45, 개역)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눅 7:46, 개역)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눅 7:47, 개역)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8, 개역)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눅 7:49, 개역)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충돌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자기의 의로움 이라는 성전 밖의 시선과
하나님의 의가 펼쳐지는 새성전 안의 시선과의 충돌이다는 겁니다

인간이 바치는 것과 인자가 섬기시는 것과의 충돌

46년 동난 짖는 성전 밖의 시선 안목과 그 성전 헐라 내가 3일만에 짖겠다 라는 성전 안의 안목

이 시선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예수 안에 못 들어가는 겁니다

안그러면 욥처럼 엘리야처럼 자기가 옳았다 당신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배신 때리냐 그것만 외치게 되는 겁니다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는 둥

인간 쪽에서 가지고 오는 사랑도 속임수가 있는
즉 뭔가 숙제를 했다 라는 행함의 차원이다 보니
마치 아직 덜 이룬 율법 덜 이룬 숙제가 있는냥
그 숙제를 비로소 다 이루었다 라고 다가오는 식이기 때문에
새성전과 안 맞는 겁니다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성전으로 맹세하는게 아니라 기도하는게 아니라
성전에 바치는 금으로
자기의 의로움으로
어릴적부터 율법 지켰다 라는 숙제로 맹세하겠다 라는 이런 시선이 바로 우상숭배이다 말이죠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천사가 에스겔 선지자를 북쪽 바깥 뜰로 데리고 갔다 말이죠
두 방이 있는데 방 하나는 성전 뜰을 향하고 있고 또 하나는 그 반대로 향하고 있더라 라는 겁니다

(겔 42:1, 새번역)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북쪽으로 길이 난 바깥 뜰로 나가서, 두 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는데, 방 하나는 성전 뜰을 마주하고 있고, 또 하나는 북쪽 건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즉 이 말은 제사장이 아닌 자는 들어올수 없다 라는 단절성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기능이 뭡니까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거든요
이 기능을 아무나 못한다 라는 겁니다

제사장 곧 하나님의 거룩이 이겁니다 라고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라는 겁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게 아니다 라는 거죠

하나님의 일이 뭡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라고 했습니다

(요 6:2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7, 개역)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28, 개역)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30, 개역)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 6:31, 개역)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 6:3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개역)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개역)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이루시는 분 곧 화목제물이 되시는 분 말이죠

네 맞습니다
새성전의 기능을 제사장처럼 펼칠수 있는 자는 예수님 뿐이다 라는 거죠

인간의 허물인 죄악 세가지를 증거궤에 담듯이
성전에
예수님의 몸에 담아서 피흘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림으로 인해서 출애굽한 원리요
약속의 땅에 들어간 원리이다 말이죠

주님이 마련하신 거주지 곧 처소입니다

(요 14:1, 개역)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개역)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개역)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4, 개역)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5, 개역)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요 14: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7, 개역)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아버지께서 보내주시지 않으면 그 어떤 누구도 내 안에 들어올수가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곧 피 흘리심의 사랑의 관계에서만 처소 거주지 안에 들어올수가 있다 라는 겁니다

(요 6:41, 개역)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2, 개역)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요 6:4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 6:44, 개역)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5, 개역)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65, 개역)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 6:66, 개역)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7, 개역)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8, 개역)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결국 주님의 살과 피 곧 정녕죽으리라 라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가 있는 처소를 마련하심으로써 다 걸러내시는 겁니다

자 이렇게 이스라엘을 새롭게 자신의 피로써 창조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자기 것이 없으니까 잃어버릴 것이 없는 거죠

이것이 애굽에서
포로된 마귀의 손에서 빼내신 출애굽의 원리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성전 안의 시선인데
자꾸 성전 바깥의 시선이기 때문에
두 나무가 없는 거주지로
46년 동안 짖는 성전 밖의 시선으로 성전을 짖고 성전에 충성하더라 말이죠

아것이 불타는 성전입니다

불타지 않는 성전이 이미 다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자 그 다음 본문에는

(겔 42:1, 쉬운) <제사장들의 방>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북쪽 바깥뜰로 나가 성전 뜰 맞은편에 있는 방들로 갔다.
(겔 42:2, 쉬운) 북쪽으로 문이 난 건물을 재니 길이가 50미터, 너비가 25미터였다.
(겔 42:3, 쉬운) 성전 안뜰에서 10미터쯤 되는 지역과 바깥뜰 돌을 깔아 놓은 반대편에는 각각 삼층으로 된 복도들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겔 42:4, 쉬운) 방 북쪽으로는 통로가 있는데 너비는 5미터, 길이는 50미터였으며, 문들은 모두 북쪽을 향해 나 있었다.
(겔 42:5, 쉬운) 맨 위층의 방들이 가장 좁았는데, 그것은 복도가 차지하는 면적이 일층과 이층보다 삼층이 더 넓기 때문이었다.
(겔 42:6, 쉬운) 이 방들은 삼층으로 되어 있는데, 뜰의 기둥과 같은 기둥이 없기 때문에 맨 위층의 방들은 아래층 방들보다 더 안쪽으로 물려서 좁게 지어졌다.
(겔 42:7, 쉬운) 이 방들과 함께 바깥뜰과도 나란히 쌓인 담이 있었는데 담의 길이는 25미터였다.

제사장과 일반인을 구분 시켰듯이
제사장 방이 3층으로 구성된 모습이

마치 성소 지성소를 보호하듯이 삥둘어친 모습이다는 거죠
정작 귀한 것은 지성소 이니까 말이죠

출애굽때 애굽 왕의 장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10가지 재앙 곧 10가지 신들이
보디가드처럼 장자를 변호 하듯이
그래서 최종적인 마지막 재앙이 장자재앙이듯이

이제는 거꾸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10가지 신들 보디가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을 개무시하는
인간을 떠 받드는 우상숭배 곧 애굽 잔칫집 에덴동산 같았더라 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을 철저하게 죽이는 초상집 마른뼈 죽은자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이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한 보드가드처럼
제사장의 방이 보디가드로 배치되어 있다는 겁니다

제사장 방 자체가 바치 방탄복처럼 지성소를 감싸고 또 감싸고 또 감싸는
3중 구조의 방탄복처럼 방탄소년단처럼 말이죠
삥둘러서 이 중앙의 지성소를 보호하는 방어막을 보호벽으로 형성이 되는 겁니다

왜 이렇게 중앙의 지성소를 보호할려고 하는 겁니까?

(출 25:22, 개역)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바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소 이 지성소 이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못하게 할려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바쳤던 겁니다

그런데 이방인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워버림으로 인해서
비로소 아껴둔 기념 이름의 기능이 비로소 발휘가 됨으로써
비로소 거할 처소가 마련이 됨으로써
비로소 만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죽음으로 만나는 겁니다 정녕 죽으리라로 말이죠

에이 내가 죽는데 죽으면 못 만나는데 그게 무슨놈의 만남 입니까

네 맞아요 인간은 죽음도 더럽기 때문에 죽음 축에도 못 듭니다
바로 정념죽으리라 라는 예수님의 죽음으로서 비로소 만나는 겁니다
화목제물 되심 만이 사랑이지
인간 쪽에서의 사랑은 처소를 마련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요일 4장 10절 말이죠

성전 안에 두 사람 바리새인과 세리 중에
주님과 만난 자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더 이상 자기 것이 없는
죽음도 내 죽음이 아니요
생명도 내 생명이 아니기에
더 이상 자기 것이 없어서 잃어버릴 것이 없는

골칫꺼리 매국노
말썽쟁이 세리
탕자
죄인 만이

주님의 긍휼 곧 피와 만나는 겁니다

정념 죽으리라 를 비로소 본 겁니다

욥이 내 뭐 잘못 되었습니까? 당신 시키는대로 했는데 뭐가 잘못 되었냐 말이죠
나는 이렇게 옳은데 왜 하나님은 나를 배신 때리시는 겁니다

어라 그런데 정녕 죽으리라 앞에서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는

함구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너희는 잠잠할 지어다

즉 어린양의 죽음을 비로소 본 겁니다

그렇게 내 옳았다는 둥 따지는 욥 앞에서

더 이상 입을 열수가 없는 그 처참하기 짝이 없는 죽음 앞에서
도리어 생일을 저주하고
재를 머리에 뿌리고
머리를 땅에 쳐박고
저주하게 되니

더 이상 자기 것이 없기에
내세울 꺼리도 없게 되니

바로 이 성전 안의 두 사람 중
세리가 비로소 주님의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탕자 라는 저주
세리 라는 매국노 저주가
나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뱀에게 물려 죽는게 아니라
그것은 저주 축에도
심판 축에도
죽음 축에도 못드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
진짜배기 죽음
절대저주 절대죽음인
정녕 죽으리라를 장대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을 보고서

더 이상 잃어버릴것이 없게 되는 함구 ~~~~~~~~~~~~~

이 회개하는 자가 주님과 만나는 자요

그 장소가 바로 지성소 곧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은밀한 처소의 기능
너희들이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기념 이름의 기능이

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이 십자가 라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만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에 비하면 죽음 축에도 못드는
도리어 잃어버릴 것이 없는
목숨을 잃는 내 죽음이라는 두려움 조차도 감히 예수님의 진짜 죽음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판국이였던 것이였던 것이였던 것이였었었었습니다

이 사랑 앞에서 두려움은 내어쫓김을 당하는 겁니다

은혜가 왕 노릇했음을 직접 목격하는 증거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첫사랑이였던 것처럼 말이죠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도록
넉넉한 실패자로 확정시킨 이 정답자 예수님만이
 
나를 성령의 전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의 숙제로 인해서 매일 매일 실패자가 죄인으로 탕자로 막사는 자로
환자로 만드시는 이 주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임한 자가

주님이 찾아내신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는
자기 것이 없는 잃어버린 이스라엘입니다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눅 19:10, 개역)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