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9

이스라엘 호적에서 쫓아내리라 (겔 13, 9-16)

김 대식 2022. 2. 20. 11:57

037 이스라엘 호적에서 쫓아내리라 (겔 13, 9-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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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7 이스라엘 호적에서 쫓아내리라 (겔 13, 9-16)

화 있을진저!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거짓선지자들아! (겔 13, 1- 8)
에스겔 2019 2022. 1. 30. 10:28
21-036 화 있을진저!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독사의 자식들아! (겔 13, 1- 8)

〈에스겔 13, 9-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6 쪽, 찬송가 246장 내 주의 나라와, 500장 주 음성 외에는〉

〈찬송가 246장 내 주의 나라와〉

1.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2.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 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3.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4.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생활과 
   구주와 맺은 언약을 늘 좋아합니다

5.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축복이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치네 아멘


〈에스겔 13, 9-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6 쪽〉

(9)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0)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11)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열파하리니
(12) 그 담이 무너진즉 혹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겠느냐
(1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으로 열파하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이로 훼멸하리라
(14)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5)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16)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고린도전서 15,54-58 개역한글, 신약성경 284 쪽〉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찬송가 500장 주 음성 외에는〉

1.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서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피 주옵소서

2. 나 주께 왔으니 피 주시옵소서 
   주 함께 계시면 큰 시험이기네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피 주옵소서

3.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피 주옵소서

4. 그 귀한 언약을 이루어 주시고 
   주 명령 따를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피 주옵소서 아멘


(겔 13:9, 새번역) 헛된 환상을 보고 속이는 점괘를 말하는 그 예언자들을 내가 직접 치겠다. 그들은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올 수도 없고,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 등록될 수도 없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 하나님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13:10, 새번역) 내가 이렇게 그들을 치는 까닭은, 그들이 내 백성을 잘못 인도하였기 때문이다. 무엇하나 잘 되는 것이 없는데도 잘 되어 간다고 하여 백성을 속였기 때문이다. 내 백성이 담을 세우면, 그들은 그 위에 회칠이나 하는 자들이다.
(겔 13:11, 새번역)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들에게, 그 담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여라. 내가 소나기를 퍼붓고, 우박을 쏟아내리고, 폭풍을 일으킬 것이니,
(겔 13:12, 새번역) 그 담이 무너질 때에, 그들이 발랐던 그 회칠이 다 어찌되었느냐고, 비난하여 추궁할 것이라고 하여라.
(겔 13:13,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일으키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퍼붓고, 내가 분노하여 우박을 쏟으면, 그 담이 무너질 것이다.
(겔 13:14, 새번역) 너희가 회칠한 그 담을, 내가 허물어서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그 기초가 드러나게 하겠다. 그 담이 무너지면, 너희가 그 밑에 깔려서 죽을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겔 13:15, 새번역) 내가 이렇게 그 담과 그것을 회칠한 자들에게 내 분노를 다 쏟고 나서,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그 담은 사라졌고, 그것을 회칠한 자들도 사라졌다.
(겔 13:16, 새번역) 예루살렘을 두고 예언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전혀 평화가 없는데도 예루살렘에 대하여 평화의 환상을 본 사람들이 사라졌다' 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13:1, 쉬운) <에스겔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말하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13:1, 현대어) [거짓 예언자들은 죽는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13:17, 현대어) [미신적인 행위의 종말] 너 사람아, 너는 이제 네 백성 가운데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지어내서 예언하는 여인들에게 내가 내리는 형벌을 선포하여라!

겔13:1 <거짓 선지자의 종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겔13:17 <거짓말로 예언하는 여자들>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 경고하며 예언하여


인간 쪽에서 나오는 믿음은 가짜다 라고 했습니다
즉 인간은 자기 살아있음을 주장하기 마련이고
그 살아있기에 그 살아있음에 맞는 시다바리로 축복이라든지 구원이라든지
(살아있음에 걸맞는 구원과 복을 바라는, 구원이 구원이라서가 아니라
구원이 선이요 복이 선이기에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선악의 법을 곧 죄의 소원을 주장하는 셈, 왜? 난 살아있으니까 ~~)
하나님이 동원이 되어야 한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로 인간 쪽에서 믿는 하나님이란 다 가짜 하나님이다 라는 거죠

정작 하나님 본인 당사자는 인간이 그렇게 나올줄 알고서
죽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믿음을 출발하시는데 있어서
버림받는 아들의 죽음에서 나온 믿음만을 펼치시는 이유는
이 인자의 죽음 앞에서
사람의 구원이라든이
인생을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다 헛된 
수에 칠 가치도 없는 허구 곧 우상이다 라는 겁니다
(우상을 섬긴다는 자체가 살아있는 나를 어떻게 해서든 잘 되는 방향으로 인생을 펼치고자 하기에)

(사 2:22, 개역)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지난 주에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즉 자기 목숨을 걸때가 졸지에 생겨버렸고
고로 복음에 빚진자 로써
누구 갈래? 맹구처럼 저요 저요 라고 제가 가겠습니다
저는 많이 탕감받았기에 많이 사랑하오니
이 사랑의 빚진자로써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하는 자의 아들로써 이 자유

이 막 죽어나가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막사는 자유를
이 복음에 빚진자로써 사랑의 승리를
이 십자가의 피 용서로 사람들을 실족케
복음으로 다리를 걸어서 복음으로 실족케 하겠습니다 라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 말이죠

어떤 철학자 말마따나
인간이 왜 꿈을 꾸지 않을려고 하는가?
꿈의 세계는 혹독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즉 참현실은 참혹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그 참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고자
허구인 눈에 보이는 세계에 안주하면서
오늘 본문처럼 거짓선지자들 말마따나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치면서
참현실을 피해서 가짜현실에 만족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더군요

네 맞아요 거짓말쟁이의 역설의 그레데 사람 중의 어떤 선지자도 그렇게 말했거든요
에피메니데스 곧 거짓선지자의 역설인 셈이지요

 그래서 나온 것이 빨간약 줄까 파란약 줄까 인거죠 (메트릭스)

진짜현실인 이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처참하기 짝이 없는
절대저주 절대심판 절대죽음이였으면 그랬겠냐 말이죠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은 자 될 수 밖에요

고로 인간이 믿는 하나님이란
자기를 구원시켜주는 우상인 자아를 축복해주는 가짜 하나님
곧 거짓선지자들이 외치는 평강이다 평강이다로 좋으신 하나님이 되는 거죠

그러나 진짜현실은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심판이기에
이 심판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겁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 라는 현실을 꾸미는 그 허구에 맞서 (모든 현대인은 니체의 후예)
지젝은 죽은 신을 위하여 라고 신은 죽었다를 전복, 뒤집어엎어 가로지르기를 해서
진짜현실은 이 죽는 신 곧 예수는 괴물이다 라는 것만이 진짜현실이라 라고 했다 말이죠
그러나 이런 지젝이라는 거짓선지자 또한 그 예수와 같이 우리도 괴물이 되자 라고
괴물이 되어 괴물과 맞서자 라고 할 뿐이지
예수처럼 우리 또한 괴물이 되자 라고 따라할 대상물로 삼을 뿐이지
여전히 대상으로 삼는다는 자체가 진짜현실인 십자가의 죽음을 모르는 셈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또 허구로써 자기 의를 쌓는 예수 흉내내자 라는 식이니까 말이죠 
니체처럼 예수님을 경쟁상대로 삼듯이 지젝은 경쟁상대로 삼은 니체보다 한수 더 떠서 
모범인간 참인간으로 삼아서 예수님을 따라하면 허구의 세계를 뚫을 수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빨간약으로 삼자 라고 
그저 모범인간으로 보고 있지 그 모범인간을 삼고자 하는 
자기자신을 죄인으로 보는 십자가의 절대심판은 여전히 못 보는
이 절대심판 조차도 대상으로 삼을 뿐인 
절대심판인 괴물을 흉내내고 따라하자 라고 할 뿐이다 말이죠 
손에 지우개를 쥐고서도 지우개 어디 있냐 라고 찾는 식입니다
지우개 손에 있네 라고 알려줘도 이거 지우개 아닌데 라는 식입니다)

만약 주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라면
거짓선지자처럼 평강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검을 칼을 주신다 라는 겁니다 심판을 말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이스라엘로 만드심이다는 겁니다
이 의가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심이거든요

이것이 처음사랑 곧 복음에 빚진자가 우리를 처음자리로 몰아가고자
좋은 옷 부드러운 옷을 입고 궁전에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광야 사막 죽음 심판 멸망이라는 초상집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보라 라고 이 심판 속으로 몰아가는 자가
선지자 곧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선지자이다는 겁니다

아니 광야에 뭐가 있는데
선지자를 보러 갔더냐? 옳도다
이 선지자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외치는 자 이거든요
즉 본 것이 있다 라고 했을때에
주님이 보여주는 계시 곧 예정된 것은 딱 하나 밖에 없다고 했지요
우와 오랜만에 예정 이라는 용어를 쓰게 되었네요
하도 하도 엉터리 예정론을 외치는 한국교회이다 보니
한국교회도 아니지요 무당들이지요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 딱 하나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이 십자가 밖에 예정된 것이 없어요
곧 하나님의 절대저주 절대심판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회역사는 이 예정론을 인간의 구원론으로 바꾸어야만
장사가 되어요
돈을 벌어요
(니체와 지젝과 똑같은 놈들이다 말이죠 서로 상반된 논리를 주장하지만
바리새인과 빌라도(로마) 또한 같은 놈들이듯이 말이죠
유대인에게서는 어리석은 걸림돌이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미련한 것이
십자가의 지혜이니까 말이죠)

교회교리는 역사를 통해서 예정론을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그 동안 거짓선지자들의 외침인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외쳐왔던 겁니다

여기에 비해 주님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마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참선지자는
복음에 빚진자로써 복음으로 우리를 다리걸어 실족케 만드시는
넘어뜨리는 자로써 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름을 갈아버리지요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즉 이삭이 먼저 태어나고 그 이삭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는 자가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는 이삭의 증상물
희생제물의 증상물이 아버지 아브라함이다는 겁니다
인자 곧 누구 누구의 아들의 중상물
웃음의 증상물인 비웃은 자의 허물을 덮는 비웃음을 들추어내어서 덮는
웃음의 은혜의 증상물 믿음의 증상물 믿은의 조상이니까 말이죠

이것이 언약인데
생명책에 너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해야지 (이름 갈아 엎음 당한)
사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말라고 했어요
도리어 주여 주여 주의 이름으로 사탄도 물리쳤나이다 라고 했을때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했다 말이죠

애굽왕 바로왕이 여호와가 누군데? 라고 나 여호와 누군지 모르겠는데 라는 
육의 소욕에 반대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그래야 언약이 성사 되는
서로 서로 반대되는 상황을 형성하는 겁니다

나는 그 이름 알지 못하겠는데 ~~~~~~~~
다윗이 누군데 난 모르겠는데 라고 했던 남편 나발과
한 세트 한 짝을 이루는 언약성사 아내 아비가일

여기서 또 [안다] 라는 남녀간의 관계성인 [야다] 가 나오는데
에로스적인 사랑을 말하거든요
즉 사랑은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처음자리 곧 남은자로써 심판 속에서 그루터기로 남은 것이다 말이죠

지금 에스겔이 마치 계시록처럼
신랑 신부의 결혼식 하이라이트 라는 기쁨의 최절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사랑이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심이거든요
(주의 오른손이 검을 쥐고서 하나님의 원수를 훼파 훼멸을 해서
참성전은 평화 곧 전쟁의 승리로써 세워지기 때문에
그 주의 오른손이 칼로 원수를 멸망시킴으로써 구원의 손이 되기에
심판 속에서 칼 검 멸망 속에서 구원을 이루기에)

나야 말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이요 거짓선지자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자가
성전에 딱 맞는
참성전에 딱 맞는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 곧 자기 피로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절대저주 절대심판으로
대신 심판 받으심으로써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남은자로써 구원
즉 심판 속에서의 구원인 피 바른 신부이거든요

성전에 두 사람이 기도하는 내용 속에도 나오지요
세리 매국노의 기도가 그렇구요

거짓선지자와 똑같은 사고방식의 바리새인의 기도는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길이 없으니 
그 비유를 하시는 예수님을 그저 죽이고픈 마음 밖에 없었다 말이죠

그럼 이 피가 어디서 왜 무엇 때문에 흘렸냐 말이죠
우리가 지지난 시간에 번제단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결국 바리새인이나 우리는 동물을 제물로 번제단에 바치듯이
그런다고 죄가 사해지기는커녕 더더욱 또렷해 지는데도 불구하고
(죄의 권능을 율법이기에 고전 15:56)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4, 현대어) 이런 일이 일어날 때 ㄴ) `승리가 죽음을 삼키리라'는 성경의 말씀이 사실이 될 것입니다. (ㄴ. 사25:8)
(고전 15:55, 현대어) ㄷ) 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있느냐?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죄, 곧 죽음을 가져오는 독침은 없어지고 우리의 죄를 폭로하는 율법도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재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ㄷ. 70인역 호13:14)
(고전 15:56, 현대어) (55절과 같음)

(롬 5:19, 개역)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1, 개역)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으시는데도 불구하고
기여이 바쳐서 복 달라 구원해 달라 라는 식으로
주님의 번제단의 본래취지를 가로막는 속임수를
십자가가 밝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꾀더라 말이죠
왜 그런 의문의 반복을 드리냐 말이죠
울리는 꽹과리일 뿐인데

주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심령 곧 통회하는 마음인
남은자의 심정 곧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아는
인애와 자비를 구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제사인데

왜 주님이 원치 않는 제사를 왜 드리냐 말이죠
돈 때문이요 우상때문이요 생존 때문이다 말이죠

그럼 간단해요
성령은 돈과 우상과 생존을 단절 시키시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빚진자인 참선지자들이 
광야에 광야삼일길에 유월절어린양의 희생죽음으로 몰아가는 처음자리이다는 겁니다
매일 매일 리셋시켜서 처음자리로 되돌려 놓는 이 심판이 나 보다 옳았다 라고 말이죠
남은자는 바로 그 절대심판이라는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이거든요

이것을 거치지 않고 구원 축복 받겠다?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들어가겠다?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 기록되겠다?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겠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겠다?
생명책에 기록 되겠다? 라는 것이 엉터리가 된다 말이죠

계시록에 24장로들이 예수님을 죽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친자들이라서
면류관을 반납하잖아요
벌벌벌 떨어요
구원을 받아서 면륜관을 주시는데 왜 기뻐하지 않고 떱니까

대신 심판 받으신 심판주를 만났거든요

그러니 구원의 주의 공로로만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심판의 주의 공로로만 심판 속에서 구원을 얻었다 라는 고백으로써 면류관을 반납하는 겁니다

마침 어머니께서 어제 저녁 식사시간에 기도를 이렇게 갑자기 하시더라 말이죠
주님 이렇게 먹을 것 입을 것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 주님이 주신 먹을 것과 입을 것 마실 것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 돌

영광 돌 돌 돌

갑자기 여기서 어머니께서 기도를 유턴하시더라 말이죠
갑자기 말이죠
주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게 해 주세요 라고 평상시 그렇게 기도하셨는데

갑자기 주님께 영광 돌
이라고 끊어버리시고

말이 나와서 망정이지 우리가 언제 주님께 영광 돌린 적이 있습니까 라고
거꾸로 전복시키시더라 말이죠
본인이 늘 했던 기도를 아니 왜 갑자기 반대로?

우리는 주님께 영광 돌린 적이 없다 라고 고백하시더라 말이죠
그저 주님의 공로로만 들어가는
우리는 그야 말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은 것 뿐이다 라는 의미에서
기도를 하시길래

제가 은혜를 받아버렸어요 ㅋㅋㅋㅋ

자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평강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검을 주시는 겁니다
졸지에 가족이 원수지간이 되어요

저는 이번 이사야와 에스겔을 통해서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다 라는 의미가

다윗의 가문 이라는 다윗의 집안 식구 로써
낱낱이 밝혀 지도록 들통나도록 되어 있음을 보게되었다 말이죠

그러니 다윗의 가문은 그야말로 죄인 중의 괴수로 들통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바로
다윗언약이다는 겁니다

아니 다윗의 가문과 언약하셨는데 정작 그 언약이 성사 되기 위해서는
다윗이 가문이 비언약으로써 짝을 이루는 겁니다

분명 다윗의 가문과 언약을 하셨거든요
그럼 다윗의 집안은 평강이다 평강이다 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다윗 가문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즉 남유다 왕국이지요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될 정도로 말이죠
그럼 그들이 아주 아주 성화된 그것도 높은 수준의 성화된 모습으로써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더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들통난 모습으로써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이 되더라
생명책에 기록이 되더라
그래서 이름을 갈아버림당하게 되듯이 말이죠

다윗이 하나님의 원수로싸 들통나듯이
이 개인 다윗에게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 확산 되어서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이 다윗의 운명화 되어서
탕자 만들어서
죄인 만들어서
원망 3가지, 세 번 부인케 만들어서 구원하시는
그야말로 바리새인 만들어서 구원이 아니라
세리 매국노 하나님의 원수 만들어서 그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한 십자가의 피 만을 나타내더라 말이죠

인간 다윗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그 반대로 창조주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다윗 곧 죄인으로써
이 죄인 만드심이 심판 멸망 쫄딱 망하게 하심으로 인해서
구원자 의사가 바로 저 분이십니다 라고 외치도록 만드시겠다 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거짓선지자처럼 평강이다 평강이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이라고
또 사기를 치고 또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속임수를 또 펼쳐요

다윗도 하나님의 원수로 밝혀지듯이 아브라함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창 21:9, 개역)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창 21:10, 개역)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하나님이라는 기업
기업 되신 하나님을 얻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호적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못하도록 [내어쫓으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내어 쫓으라 가 없으면 언약은 성사가 되지 못하고
구원도 성사가 되지 못하며
기업 곧 생명책에 기록이 된다 라는 유무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처음제목을 데칼코마니 였다고 하죠
서로 대칭이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인간이 선악이라는 것을 쥐고서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하면서 구원을 따낼려고 할때에
주님은 이런 육의 소욕에 대칭이 되는 성령의 소욕으로써
선악에 반대되는
죽은 자의 하나님에 반대되는
산자의 하나님으로써 아브라함 언약을

죽은 태에서 낳은 자식을 기업으로 삼으셨다 말이죠
심지어 비웃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 죽은태에서 심판 속에서 낳은 자식 이삭을 희롱하는 
육이 낳은 자식 이스마엘을 이스라엘 호적에서 파듯이
내어 쫓아 버리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만 언약이 성사가 된다 말이죠

두 언약
하나는 계집종이 낳은 자식
또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낳은 자식 말이죠

자 지금 에스겔 때에
오늘날 현재처럼 거짓선지자들이 만연하고 있다 말이죠

그럼 에스겔을 투입한다는 말은
이 거짓선지자와 대칭 구도를 만드신다는 겁니다
데칼코마니

그럼 백이면 백 우리는 참선지자의 편에 서고 싶어하겠으나
정작 참선지자는 삐딱 하다 말이죠

오히려 거짓선지자가 우리의 구미에 딱 맞는 소리를 해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말이죠

이사야 때를 거쳐서 에스겔 때로 가면
이제 거짓선지자는 일송정 푸른 솔은 선구자는 어디있냐 말이죠
거의 다 죽었겠지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로 속에서도 거짓백성들은 여전히 거짓선지자의 부활을 꿈꾸면서
여전히 거짓선지자의 평강을 쫓더라 라는 겁니다
아무리 바벨론 포로 속에
심판 속에 집어넣어도 말이죠

에스겔을 죽일려고 달려드는 모습은 여전하구요

딱 예수님 때에
바리새인들이 로마 식민지 속에 놓여저도
심판 속에 놓여져도 그러하잖아요

자 이렇게 거짓선지자 거짓백성이 만연하는 가운데에
에스겔을 투입한다는 자체가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여
(
(눅 10:1, 개역)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눅 10:2, 개역)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눅 10:3, 개역)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도의 목적이 아니라 포교활동이 아니라
대칭을 이루는 언약을 성사시키는데 있더라 말이죠
저들은 역사를 자랑할려고 할때에
반대로 역사를 찢는 종말을 대칭으로 성사시키고 있더라 말이죠

양을 늑대 소굴에 보내는 것이
양과 늑대를 대칭시키는 데칼코마니)

에스겔이라는 미끼를 말이죠

아니 이스라엘을 미끼로 삼아 바벨론이 확 물어버린 것인데
도리어 거꾸로 이스라엘이 에스겔을 미끼로 확 물어분 것이 되었다 말이죠

땅의 계집종 하갈의 자식 이스마엘이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 이삭을 희롱하듯이 
비판하고 있더라 말이죠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1, 개역)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2, 개역)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3, 개역)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 7:4, 개역)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 7:5, 개역)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6, 개역)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 7:7, 개역)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개역)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9,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마 7:10, 개역)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 개역)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2, 개역)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3, 개역)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개역)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5, 개역)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개역)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개역)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개역)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개역)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개역)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개역)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개역)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개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6, 개역)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개역)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8,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마 7:29, 개역)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우와 닭살 ~~~~~~~ 핵소름 ~~~~~

그 동안

(마 7:21, 개역)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라고 이 행하는 자 라는 의미가 뭔가 싶어서
늘 궁금했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제목 [행하는 자라야] 의 책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 알고 보니 앞뒤 다 짤라내고 요 부분을 딱 떼어서 말하니까
그 동안 다 속아 넘어간 것이더군요

마태복음은 종말적인 이스라엘이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외치는 식이니까

순엉터리로 해석한 바리새인의 시편과 이사야(선지서) 중심의 해석을
예수님은 정반대로 
반대를 위한 반대
부정의 부정으로써 해석하신 식이니까

이 [행하는 자라야] 라는 의미가
얼마나 그 동안 성화론자들이 이 봐라 말씀에 기록이 되어 있잖아 라고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 라고 협박했었는데
알고보니 아니였다 말이죠

마태복음 7장(누가복음 13장도) 자체가 바로 그런 거짓선지자를 삼가라 라고 하시면서
거짓선지자와 거짓백성들이 팽배한 가운데
예수님이 투입이 되듯이
데칼코마니 즉 대칭을 이루어서 한 세트를 이루어서
언약을 성사 시키시더라 말이죠

즉 거짓선지자의 사고방식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그럼 우리 또한 들추임 당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 를 보게 되지

거짓선지자처럼 자기 의를 쌓는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에 복종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심판에 복종하겠냐 말이죠

자 그렇기 때문에 매국노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내용이
바리새인의 기도와 대칭을 이루는 겁니다

저는 성화론자들에게서 이런 대칭성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결과적으로 바리새인의 악함도 아니다 라고 하고
그렇다고 매국노 세리도 틀렸다 라고 하고
바로 이겁니다 매국노 세리를 틀렸다 라고 보는 시선을
무지 심어서 세뇌를 시켜요 글쎄
가스라이팅 시켜요
결국 목사 말 들어라 밖에 없더라 말이죠
나는 목사고 너는 교인이고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고
뭐 어쩌자는 건지 원 ~~~~~

그것도 한국 최고의 수준 높은 성화론자 목사 한테서 말이죠
박땡선 같은 수준낮은 성화론자는 아예 취급도 하지 않는 곳에서 말이죠

결국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행하는 자라야 라는 의미는
바리새인이 말하는 행함과 같은 사고방식이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행하는 자라야 라는 의미는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의 행함이기에
종말적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위의 내용과 아래의 내용을 보니
결국 바리새인의 행함 곧 성전의 기도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식의
내 구원은 내가 따낸다 라는 식이다 말이죠 이것이
악한 무화과 나무이다 말이죠 마침 7장에 나오죠

반대로 좋은 무화과 나무는
도리어 바리새인이 정죄하고 있는
비판하고 있는
이삭을 희롱하는 이스마엘처럼
내어쫖겨남을 당해야만 하는 이스마엘처럼
이스마엘이 희롱하고 있는
저 세리 저 이삭 저 예수님이

심판 속에서
포로 속에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는 자

이 우는 세리가 바로 좋은 무화과 나무로써

언약을 성사 시키는
반대를 위한 반대
부정의 부정으로써
대칭을 이루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안 내어쫓겨날려고 누구를 죽이겠습니까?

죽은다 라고 해서 이스라엘 호적에서 파 낼수 있겠냐 말이죠

없애버린다 라고 해서 생명책에 이스마엘이 기록이 되겠냐 말이죠
이름이 갈리지 않았는데 말이죠

(눅 10:17, 개역)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8,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20, 개역)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21, 개역)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여기서도 똑같습니다
사탄을 떨어뜨리는 주의 이름을 마치 권세 권능으로 힘 파워로 보는데
그 반대로 약하게 만드시는 그의 나라와 그의 권세이다 라는 거죠

그래서 갑자기 어린아이 라는 무능한 자를 언급하시더라 말이죠

즉 대칭 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언약의 성사입니다

저쪽이 반대로 약한 척 하면 또 반대를 위한 반대로
가난한 척 하면 또 반대를 위한 반대로
무조건 반대로 말이죠

그래야 대칭을 이루는 언약을 성사 시키더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에스겔의 투입은
거짓선지자와 거짓백성을 색출해 내어 쫓아내는

이스라엘의 호적이 먼저 있었고 즉 생명책이 먼저 있었고
그 증상으로써 왜 내어쫓겨나야 하는지를 증상물로써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의 대립이 말이죠

원함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닌
아브라함 조차도 자기가 구원받을 조건이 아예 없다 라는 것이
이스라엘 호적이 먼저 있었다 라는 거죠
생명책 말이죠

결국 거짓선지자가 왜 허탄한 묵시와 거짓된 점괘를 하느냐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 호적에
생명책에 기록이 되고파서 그런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더 허탄한 묵시
본 것이 없이 예언하고
자기 마음대로 말이죠

또 거짓 된 것을 보고 예언할 수 밖에 없도록

주님께서 천상회의에서 악령을 보내듯이 말이죠
그렇게 배경을 깔고서 그 위에 참선지자가 대칭되고자 투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악한 무화과 나무와 그 열매는
아이고 포로 잡혀 가는 것 보니 하나님한테 저주 받았구나 라고
정작 자신들은 포로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되었다 라고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깔려 죽은 18명은 하나님한테 저주 받아서 죽은
자기 죄로 죽은 거죠 맞죠 예수님????

(눅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눅 13: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3,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6, 개역)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눅 13:7, 개역)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 13:8, 개역)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눅 13:9, 개역)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아까 마태복음 7장에서 언급된 것이 이방인을 위한 누가복음에서는 13장에 언급이 되네요

(눅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이 본문을 보고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게
건진법사가 소가죽을 벗겨 제사 드린 일로 비판을 하지만
정작 한국교회는 맹 같은 무당짓을 하는데 있어서 똑같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하나님한테 저주 받아서 자기 죄로 망대에 깔려 죽은 거죠
그 다음 니 차례이다 라고

주님께서 언약을 성사 시키시는 데칼코마니 대칭을 이루신다 말이죠
이것을 분리 거룩 갈라짐 구분 구별이라고 했지요

인간들은 선악으로 경계선을 치는데 있어서
주님은 그 경계선을 지우신다 라고 했는데
아 그럼 중간치 하듯이 재산을 골고루 똑같이 공산주의처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아이고 그것도 경계선이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라고
아이고 그것도 사망이가 
사망아 너가 쏘려고 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고전 15:55, 현대어) ㄷ) 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있느냐?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죄, 곧 죽음을 가져오는 독침은 없어지고 우리의 죄를 폭로하는 율법도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재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ㄷ. 70인역 호13:14)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 13:14, 새번역)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 ㉢또는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갚아 주고 그들을 스올의 세력에서 빼내란 말이냐?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란 말이냐?'
(호 13:14, 현대어) 내가 지옥에서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살려내야 되겠느냐? 내가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져내야 옳겠느냐? 오, 죽음아, 네 재앙을 모조리 풀어 놓아 그들이 맛보게 하여라! 오, 무덤아, 네 가시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어라! 내가 절대로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아이고 죽음 것지도 않은 것이 죽음 흉내를 내고 있네
절대죽음 앞에서는 
곧 십자가의 피 흘리신 사랑(죽음 보다 더 강한) 앞에서
어딜 감히 속일려고 ~~~~~~~
뻔데기 앞에 주름 잡기 밖에 안된다 라는 겁니다

뭐 엽기적이다 굽쇼? 건진법사 소가죽 벗긴 것이?
한국 교회는 더 엽기적입니다

그러나 진짜 참 현실
환상과 꿈을 피해고자
젊은이들은 환상을 안 볼려고 하고
늙은이들은 꿈을 안 꿀려고 하는
진짜 제대로 엽기적인 이 십자가의 죽음을
이 절대심판을
이스라엘 호적에 기록된자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반드시 이 십자가의 피를 발리움 당하도록 되어 있는
이 심판 속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요나의 표적 아닙니까

반대로 데칼코마니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과 대칭을 이룸으로써
언약이 성사 되듯이 말이죠

까짓꺼 죽으면 죽으리라
죽음 것지도 않은 내 죽음을 끌어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애초부터 인간은 죽어 있응께
엽기적 축에도 못 끼여요

예수님의 죽음을 끌어오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절대죽음
이 종말성으로써
이미 벌써 너끈히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여고냐는
시드기야처럼 예루살렘 거주민으로 남는게 아니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가룟유다의 하나님나라 독립운동을 하는게 아니라

이 좋은 무화과 나무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쫄딱 망해서
마귀에게 포로 잡혀가서

요나의 표적 캄캄한 바다 깊은 그 스올 지옥 무저갱 속에서
말도 안되는 그 죽음에 뛰어드신 예수님을 보고서
졸지에 소망이 안 생기고는 못 배기는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십자가의 처형되는 그 장소에 예수님을 만날줄 누가 알았겠냐 말이죠
이 남겨둔 한 씨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되었을 것이다 라고

내가 억지로 소망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절망 밖에 없어서
울 수밖에 없는 상하고 썩어버린 마음 뿐인 그 절망 속에서
심판 속에서
아이고 그것도 심판이냐 라고
심판의 주가 심판을 날리신 그 심판에 심판 받는 분으로써 오셨기에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거룩 이 구별 이 구분 이 제대로 된 데칼코마니 대칭선을 통해서

포로 잡혀가서 다시 리셋하듯이
출애굽 이라는 이스라엘의 처음자리로 리셋되듯이
포로 속에서 
사망 속에서

사망아 나를 죽여보렴 이라고 이 종말성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십자가를 못 보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거짓선지자요
허탄한 묵시 곧 평강이다 평강이다 거짓점괘를 외치고

반대로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대칭 데칼코마니
두 소욕의 싸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싸움성사를 위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심판 속에서
초상집 속에서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또렷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결국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라는 외침과
사람의 구원은 헛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요구하는 탐심을 펼치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는 이 거짓백성의 우상숭배는

우리를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린 부자의 옷
솔로몬의 황금옷 불타는 옷 불타는 성전이 안되도록
수치가 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된 겁니다
거짓선지자의 사고방식이 말이죠

그럼 언약은 우리를 수치가 드러나서
바로 그 사망을 그 거짓을 그 거짓선지자와 거짓백성을
의인의 회중
이스라엘의 호적에서 제거하고
율법도 못 지키면서 지켰다고 껍데기를 자랑하는 그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불타는 옷을 벗겨버리고

수치를 들통나게 하시고(그래서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시작하듯이
이런 식으로 심판 하시는 심판의 주가 누구신가
암덩어리를 수술하여 제거하시는 의사가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한
환자로써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이스라엘을 세웠기에)
사망을 멸하고 거짓선지자를 멸하고 바리새인과 회칠한 무덤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을 훼파하시고
가죽옷 피 흘리신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그 원수의 자리에 정작 이스라엘이 놓여져서
마귀는 정작 도망치거든요
그리고서는 베드로를 잡아와서 고소 고발 송사 한다 말이죠

바로 그 마귀
그냥 마귀가 아닌 원수가 아닌 거짓선지자가 아닌
베드로를 잡은 그 마귀만을 상대로 하셨기에

그 원수의 목전에서 펼치시는 주의 오른손 곧 심판의 검을 쥔 손이
베드로를 구원하는 구원의 손이 되듯이
우리를 심판 속에서 주의 오른손을 펼치시는 겁니다
그것도 주꼐서 내 주께 말이죠
심판의 검을 날리는 그 손이 나를 구원하는
심판의 주가 참혹한 심판을 날려놓고서는 그 심판에 자신이 대신 당하는
이 주께서 내 주께 라는 이 간극 속에서 이 공백 속에서 
이 저주 속에서
이 심판 속에서

이 십자가 속에서 구원을 펼치신다 말이죠

그러니 비밀일 수 밖에요
비유입니다
여전히 감추어졌다 라는 겁니다

이 열쇠를 누가 풀겠냐 말이죠
심판 속에 들어간 자만 즉 오로지 예수님만이 푸시고
그 증상물이 된 베드로 곧 교회가 풀 것 아니겠냐 말이죠

이 비밀을 지금 이스라엘에게
그것도 포로잡혀간
심판 속에
광야 속에 광야 삼일길 어린양의 죽음 속에 들어간
처음자리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펼치시겠다 라고 말이죠

이 남겨둔 씨가 아니였으면

이스라엘 회중이 뭡니까
의인의 회중이 뭡니까
예수님의 족보가 믄 말입니다
얼토당토 도 아닌

도리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가 벌써 되고도 남았을텐데

이 사망을 멸하고
이 바리새인을 멸하고
이 거짓선지자를 멸하고

사망아
바리새인아
거짓선지자야 

너가 지금 누구를 쏘고 있고 누구를 비판하고 있니?
실로암 망대 무너져 깔려죽은 18명을 쏘고 있니?
죽었으니까 죽은자에게 쏘는 것은

안전빵이 되는 짓이라고 안도의 마음을 가진 그 거짓을 내가 멸하마
그 다음 니 차례인줄 몰랐지

그래 예수님을 죽였다 라고 승리했다고?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모든 육체는 이 십자가에 못 박혀버렸는데 우짜노?
니가 너를 비추는(경계선이 없는 거울 = 참현실 = 데칼코마니) 거울에다가
총을 쏘고 있으니 그 독촉이 그 총알이 누구를 쏘고 있니

사망이 사망에게 쏘는
누워서 침뱉기 하게 하는

이 십자가의 지혜가 또렷한데
누가 꾀니?

백날 쏘아봐라 그 총알이 너에게만 날라갈 뿐이다

자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호적 바깥에 있던 이방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우는 자로써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 십자가의 또렷한 지혜를 보게 되고

먼저 되었다 라고 이스라엘 호적 안에 들어가 있다 라고 자부했던 자들은
도리어 호적 바깥으로 쫓겨나는

이 두 언약
땅의 계집종이 낳은 아들 곧 육의 소욕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낳은 아들 곧 성령의 소욕이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하는

이 언약을 성사 시키시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심판 속에 들어감으로써
미끼의 기능을 펼침으로써

자기 구원이 아닌

이 언약을 말하도록
이 의사를 말하도록 되어 있는 기는입니다

참선지자 에스겔은 그런 이유로
거짓선지자 거짓성도가 깔려있는
그 늑대들 속에 투입이 됨으로써

이스라엘 호적의 영광스러움
예수님의 족보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고자
거짓을 사망을 내어쫓아내고 쏙아내고자 투입이 되는 겁니다

99마리 양을 버리고 단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이스라엘 호적에 집어넣고자 말이죠

이 말도 안되는
아니 단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고자
99마리 양을 쏙아내고 있으니

전체를 다 버리고
딸랑 한 명 곧 잃어버린 이스라엘 양 하나 찾고자 말이죠

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찾는 넓은 곳 잔칫집은 멸망의 집이고
찾는이도 없고 아무도 가지 않는 좁은 길 곧 없는 길인 초상집은

이스라엘의 호적으로써
생명책이요
예수님의 족보로써

영광 스러움이 이루 말할수 없기에
얼마나 이 십자가가 영광스러우면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작용케 하셨냐 말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십자가가 영광 스럽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 되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라는 겁니다

아무나 받는 심판이 아니기에

이 심판 주가 나보다 옳았다

이 절대심판인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외치고자 남자요 그리고 시아버지요 그리고 유다 선민이라고 우기는 자가

다말 개같은 이방인 여자요 그리고 며느리요 그리고 부정한 여자로써

이 하나님의 원수인 시아버지 유다를 건지는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펼치시는 이 어리석고 미련한 거리끼는 걸림돌의 지혜를 펼침으로써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라는 새노래를 반드시 받아내시고야 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