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022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 (롬 1,17)

김 대식 2022. 3. 6. 10:59

22-004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 (롬 1,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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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4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 (롬 1,17)

어서와~ 복음에 빚진자는 처음이지? (롬 1,13-16)
로마서 2022 2022. 2. 13. 10:32
22-003 어서와~ 복음에 빚진자는 처음이지? (롬 1,13-16)

〈로마서 1,17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찬송가 213장 먹보다도 더 검은,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찬송가 213장 먹보다도 더 검은〉

1.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2. 모든 의심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져  
   슬픈 탄식 변하여 기쁜 찬송되었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3. 세상 부귀 영화와 즐겨 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4.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로마서 1,17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합 2:4, 개역)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갈 3:11, 개역)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로마서 10, 1- 4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찬송가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찬송가 344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1.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증거 없어도

2.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 없이 살아갈 때에 우리 소원 주안에서 이루리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증거 없어도

3.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증거 없어도


(롬 1:17, 새번역)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또는 '이것은 믿음에서 출발하며 믿음을 목표로 합니다.' ㉦합 2:4

(합 2:4, 개역)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새번역)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갈 3:11, 개역)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 3:11, 새번역)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 ㉥또는 '믿음으로 의인이 된 사람은 살 것이다'(합 2:4)
(갈 3:11, 공동) 그러니 율법을 통해서는 아무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살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 ㉠하바 2:4.

(합 2:4, 공동)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합 2:4, 현대어) 이 사실을 깨달아라. ㄱ) 악한 사람들은 제멋대로 허풍을 떨다가 멸망하지만,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가 있다. (ㄱ. '그(저 갈대아 사람)의 마음은(교만으로 가득 차서) 부풀어 있고 그 속에 성실함이 없다. 그러나 의인은 자신의 진실함으로써 살 수가 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더 가깝다)


먼저 인간의 믿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 단절성을 제대로 보여주고자
율법이 개입한 겁니다
즉 죄를 죄 되게
단절을 단절 되게 보여준

도리어 율법은 고맙게도 인간의 한계치를 확 땡겨서
도리어 사망의 몸에 이른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는
거룩이라는 것이 눈꼽만치도 없음을
정직한 영이 겨자씨 만큼도 없음을 보여주는 종말을 확 땡기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어서 어서 빨리 너의 한계치를 다다르도록
끝을 확 땡겨 버리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믿음이 있다 라고 우기고 싶어 하는데
그런 믿음은 뭐냐 믿음이 아니라 행함인데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곧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로부터 출발한 믿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믿음은 일종의 소속감입니다
평준화를 흉내낸 거죠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봐주고 넘어가고
가난하고 공부못하는 머리 나쁘고 거지라고 해서 코로나가 덮치는 것이 아니라
신분격차나 선한자 악한자 가리지 않고서 누구든지 다 차별하지 않고서
걸리도록 하는 이 평준화
이것은 자연세계라고 하는데요
그런 자연 세계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새삼스럽게 다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믿음 곧 종교성이다는 겁니다
고로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예수님의 죽음에서 출발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의로움 나는 이렇게 자연의 평준화 앞에서 겸허한 마음을 가질랍니다
그리고 실천하겠습니다 라는(자기의 의를 쌓는)
자기가 살아 있군요 살았응께 겸손함을 잃지 않을렵니다 라는
일종의 반성의 차원에서의 회개의 달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회개는 결국 야야야 옷 좀 그만 찢고 마음을 찢어라 라고 했듯이
육체의 옷을 찢는 행위를 갖춤으로써
자연과 화해를 추구하고자 하는
자연의 세계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고자
그래 그래 너는 인간 됐구나 라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겁니다
그런 놈들끼리 모여서 그런 놈들에게서 인정받는 거다 말이죠

이것이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는 거짓선지자 이다 라는 거죠
자연을 달래고자 화를 풀어라꼬 
자연 앞에서 화해의 제사를 드리고자
아비아달은 비록 개차반이지만 조금이라도 좀 깨끗한 놈을 왕으로 뽑겠다 라는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안 속아요
어디 한 두 번 인간에게 속아봤냐 말이죠
실상이 밝히 보였으면
이제는 그림자에게는 안 속는다 말이죠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가 나타나 버렸다 말이죠

죽일 자를 죽이시고 살 영혼을 살리시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
곧 찢으셨다가 다시 살리시는 이사야 258
처음자리

반대로 거짓선지자는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있음에서 있음으로, 가능성에서 가능성을 주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겔 13:19, 개역)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왜냐하면 인간에게서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를 능력이 없거든요

그래서 믿음을 모든 인간들은 자기의 살아있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그 자체가 불가능성이다는 거죠
즉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겁니다

누가 율법대로 자기의 죽음을 자기의 종말 곧 끝을 확 땅기겠습니까
육은 육일 뿐이기 때문에
영을 성령의 소욕인 절대심판을 못 땡기는 겁니다
누가 껍데기를 확 벗기고자 하겠냐 말이죠
내 속에 그리스도를 나타내고자
나의 죽음을 유익으로 삼는자가 누가 있겠냐 말이죠

도리어 죄를 죄 되게 하는 율법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에 의해서
불도져에 밀려 다리미질 당해야 할 판국이다는 겁니다
내 죽음도 죽음 축에도 못 드는
창세기 1장 2장 3장의 처음자리인
절대죽음인 정녕 죽으리라를 당해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이게 믿음입니다 즉 인간은 안 된다 라는 거죠
누가 정녕 죽으리라를 땡기는 겁니다
누가 자기의 한계치를 땡깁니까

너희는 못하나 주님은 하십니다
자유란 막사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막살기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이듯이

생명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생명이다 말이죠
아 그렇다고 자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살하는 생명을 포기할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생명이 없는데 뭘 자살해요
생명이 있어야 자살을 하든지 말든지 할 껀데
정직한 영이 없는데
생령이 없는데

(창 2: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8,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창 2:9,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 6: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5, 개역)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6, 개역)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7, 개역)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8, 개역)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육체 흙일 뿐인데 흙 보고 자살하라는 말 자체가 안 통하잖아요
흙은 선악이 없는데 뭘 선한 흙은 취하고 악한 흙은 버린다? 말이 안되잖아요

예수님께서 생명을 버리심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는
생령이 되듯이
예수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 이다 말이죠
여기에 데칼코마니처럼 이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
두 언약의 한 세트로써 등장해 줘야만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일 곧 자기 의로움이다 말이죠

아까 말한 자연세계에 나는 순응했노라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노라 라는
나는 당신 시키는대로 했기 때문에 옳지 않은가 라는 자기 의로움이다 말이죠
바리새인이 다 구약에 시키는 대로 했다 말이죠
그것이 바로 마귀 자식이다는 겁니다
맏아들이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다 말이죠

그런데 어라 새로운 하나님의 의가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니까
이 하나님의 의가 동생 탕자 이 개차반인 인간
지난 주에는 불륜녀 밧세바가 낳은 아들 솔로몬 아니냐 말이죠

이 새로 나타난 새언약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사독 제사장은 율법의 마침인
더 이상 이룰 율법이 없는
새언약으로써의 다윗언약의 정신
곧 십자가의 정신을 보여주는 인애와 자비를 보여주는 산 제사를
산 자의 하나님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사독 제사장이다 말이죠 존재가 아닌 기능

이것이 율법의 완성인 율법 껍데기가 아닌 율법 속 알맹이 이다 말이죠
그러니 이 불륜녀 밧세바

도대체 현장에서 간음 하다 잡힌 이 여자를 누가 돌로 치냐 말이죠
죄 없으면 치라 말이죠

나도 예수님도 정죄치 않노라 했거든요

그런데 어떤 목사 사모가 더 이상 죄 짖지 말라 라고 하지 않앗느냐 라고
뻘건 글씨로 점저점 크게 확대하면서 화를 표출하는데
우와 ~~~~~~~~ 깡패다  우와 여고괴담이다

정작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지 혼자 간음할 수 있냐 말이죠
손뼉은 지 혼자 짝 소리 낼수 있냐 말이죠

그럼 율법 대로 돌삐든 놈들은 이 같이 간음한 머슴아 남자도 같이 돌삐 쳐 죽이고자
이 여자랑 같이 잡아와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비유에서 정작 강도는 없어요
그리고 강도 당한 자가 피를 흘리고 있어요
정작 사독제사장이 아닌
그냥 엘리가문의 제사장 계열은 더럽다 라고
율법을 지킬려면
마치 제사장만 먹는 진설병을 다윗에게 주지 않아야 하듯이
진설병을 줘 버렸으니까 그 제사장들을 율법대로 다 죽어야 하는 사울왕의 율법지키기처럼 말이죠

그래서 다 피하고 가버린다 말이죠

그런데 율법의 바깥의 인물인 사마리아 개같은 이방인이
율법의 정신을 정작 제대로 보여주고 있더라 말이죠

누가 계명을 지키게 된 겁니까
어쩌다 말이죠

우짜다가 말이죠

이렇게 지극히 작은 
부분이 전체와 연관이 되어 있는데
정작 인간의 믿음 곧 인간의 율법 지키기 말씀 지키기는
큰 것을 지키고자
작고 미세한 것을 다 버리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 불륜녀 밧세바와 불륜 저지른 자 누굽니까~~~~~~~~~~~

오늘도 철수한 철수의 달인 누굽니까 ~~~~~~~~~~~~~~

밧세바를 불륜녀로 만든 그 당사자 말이죠

다윗 아닙니까 이 다윗을 율법 쥔 놈들이 돌삐로 쳐 죽이고자 하겠냐 말이죠
강도를 잡고자 하겠냐 말이죠

그런데 다윗을 쳐 죽인거나 마찬가지 이지요
사울왕을 왕으로 세운 것 자체가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겠다 라고 버린거나 마찬가지 이듯이
참선지자를 죽인 것 자체가
예수님도 죽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믿음을 더더욱 가지면 가질수록 믿으면 믿을수록 말이죠

그러니 율법 외애 한 의가 나타났는데
사독 제사장이 율법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죄를 죄 되게 했으니까
그 율법 대로 죽은 절대죽음 속에 들어간
이 불륜녀 밧세바를 다시 살리는 자유를 생명을
예수님의 생명 버리심으로
대신 매맞으심으로 다시 살리는
이 간극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간극 이라는 공백을
사독 제사장은 보여주도록 되어 있기에

이것이 바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
곧 시형제 결혼법에서 나타났듯이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이웃환대법 약자보호법 이것이 율법의 정신이다 말이죠

그냥 세례 연합이 아니라
끊어짐 속에서 연결이요
단절 속에서 연합이니까
마음 판의 할례 라는 절대죽음 절대단절 속에서 절대거룩을 입히심은

이 죽은자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긍휼 불쌍히 여겨주심이다 말이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다 말이죠
그러니 사독 제사장은 시형제결홉법처럼
이웃환대법 약자보호법처럼

정식 아내가 아닌 야메 부인
이 불륜녀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치 않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심처럼
개같은 이방여자 사마리아 여자에게 너의 여섯 남편 데리고 오라
없슴돠 맞다 다 도망쳤제 내가 너의 일곱 번째 남편이 되어주마 라고
책임져 주는 율법의 완성으로써
이웃환대법을 이루더라 말이죠

바로 이 율법의 정신을 사독제사장이 펼치더라 말이죠
번제와 제사를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고
인애와 자비 곧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원하신다 말이죠
야들아 함량미달의 짐승의 수 사람의 수 666 종교성 좀 가지고 오지 말고
하나님의 의 좀 가지고 오라

아무도 못 와요
주님 쪽에서 반드시 마귀 저 함량미달의 거룩을 타넘어서
주님 쪽에서 완벽한 거룩을 뒤짚어 씌워 줘야 합니다
그래야 원인 없는 결과으로 원인 없는 결과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로만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복음의 완성 사랑의 완성이다 말이죠
누구 하나 인간 쪽에서 성공하게 되면
울리는 꽹과리 때문에 이 육의 자랑 때문에 온세상이 지옥이다 말이죠
안그래도 이 지옥에서 기쁜소식이 없어서
다 망하는 판국인데 말이죠

이 하나님의 의 때문에 우리는 정작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 앞에서
비언약자로써 대칭점에 써 있는
환자
죄인
세 번 원망하는 자로써 들통당해야 의사가 드러나지
안 그러면 자꾸 의사를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말이죠

그 목사사모처럼 자꾸 죄 않짖고자 죄를 대상으로 삼아요
그게 죄에게 속아넘어간 죄의 대상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죄가 큽니까 인간이 큽니까

율법은 죄가 크다고 알려주는데
도리어 율법을 지켰으니까 나는 죄 보다 크다 라고 나온다 말이죠
그게 죄에게 넘어간 자가
나는 죄를 못 이깁니다 주님 율법 대로 저를 이 죄악에서 건져주세요 라고
주님의 숙제에 맡기는 것이 율법이 알려준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바라는
긍휼히 여겨 달라고 상한심령을 구하는 자 이다 말이죠

지난 주에
베드로야 네가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내가(예수님) 기도했단다 라고
지난 주에 사독제사장과 소금언약에 이야기 했잖아요
그 소금이 바로 주님 쪽에서 팍팍치시는 종말의 기도요 예수님의 믿음이다는 겁니다


결국 인간의 믿음은 소금이 아니올시다 ㅋㅋㅋ
그저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 조직에 소속감을 나타내는 평준화된 제복 단체복
나는 나를 안 나타냅니다 라는 연기죠 속임수이다 말이죠
단체복을 똑같은 유니폼으로 입어도 소용이 없어요
자기 성깔을 그대로 다 드러내더라 말이죠

성질 안 죽습니다 얼마나 썩어 빠졌는지
소금을 팍팍 쳐야돼 글쎄

인간의 믿음은 짜기는커녕 너무 너무 달아요 속임수이다 보이
다들 거기에 다 속아 넘어가요 인기 좋아요

짜지 않아요

도리어 설탕처럼 달아서 벌레들이 우글우글 달려들어요
탕자에게 돈 빼먹을려고 다 달려들잖아요

빈털터리가 되어서야 현실을 직시 합니다

그게 바로 모든 인간을 대표로 해서 보여주는 베드로의 한계치입니다
마귀가 다 달려들어서 고맙게도 인간에게서 나올수 있는 가장 좋은 믿음을
다 들추어내도록 베드로에게 달려들도록 하십니다

그게 사람의 일
그 동안 사람들에게 멋들어진 믿음이다 라고 인정받는 그 믿음을 다 쏟아내었다 말이죠
알고보니 사탄아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사람의 일이였다 말이죠

결국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보다
율법을 껍데기로 지켜서 저거들끼리 좋은 것이다 라고 모아 모아온 것들로
자기자신을 포장해온 자기 의로움을
다 쏟아내었는데
정작 그것이 꺽으신 뼈를 살리더냐
죽고자 십자가로 달려가시는 예수님을 살릴수 있더냐
회개 눈물 금식 기도 이 4종 세트 인간의 믿음의 최종결정판으로
예수님을 살릴수 있더냐 말이죠

정작 하나님의 믿음은 예수님을 죽이시기로 작정 하셨다 말이죠
이것이 기쁜소식이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 안하는 것이
인간이 자기 의로움을 쌓고자 하는 마음이다 말이죠

사독제사장은 너희가 죽인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믿음이 뭔가를 보여주고
그래서 끊어졌다 다시 건지시는 이 단절의 공백을 말이죠

반대로 아비아달 제사장은 이 공백은 견디지 못해서
온갖 자기의 의로움을 꽉꽉 채우고자 한다 라는 겁니다

즉 인간의 믿음은 한계치가 있다 라는 겁니다
남을 7번 용서하는 그 7번이 베드로의 한계치였다 라는 거죠
눈에 보이는 행함들을 꽉꽉 채웠는데

그러나 예수님의 믿음 곧 소금은 반대방향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한계치가 없어요
그냥 다 비워 버려서 어이구 이 쓰레기 배설물들을 
싹 다 갈아 엎어 주세요 라고
텅텅 빈통으로 만들어버렸다 말이죠
7의 70번의 긍휼로써

수치를 가려주니까 안 보여요

니 죄가 어디있니
사망아 너가 쏠려고 하는 것 어디있니?

안 보여요

마귀가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옷 에봇을 더렵혔다 라고 잡아왔는데

어라 잘 잡아왔다 안그래도 새옷으로 갈아입혀 줄려고 했는데 말야 라고
새옷을 입혔는데

옛날 법 율법이라는 전남편에 속한 법으로 송사를 하니까
어라 그 더러운 옷이 없어요
새 옷을 입혀서 새 남편의 법으로 바뀐지가 언젠데

송사가 고소가 먹혀든다 안먹혀든다 더러운 옷이 있어야 먹혀들든지 말든지 할 껀데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버렸으니 안 먹히더라 말이죠

분명 내가 봐도 더러운 쓰레기통에 꽉꽉차서 한도치가 넘어서
처치곤란이라서 마귀에게 딱 걸려들었는데 말이죠

여기요 라고 쓰레기통을 꽉꽉 채웠는데 이 쓰레기 다 어디 갔죠
왜 안 보이죠

쓰레기차가 다 비우고 텅텅 비워버리더라 말이죠
그래야 또 버리거든요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자가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믿음 곧 종교성은 종말성이 없어요 소금이 없어요
남을 썩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 없을 뿐만 아니다
자기자신도 썩지 못하도록 하는 소금의 짠 기능이 없다 라는 거죠
즉 인간의 믿음은 이미 썩었다 부패하고 썩었다 라는 겁니다

정의당의 정의
하여튼 정의 외치는 놈들은 이미 마귀라고 보시면 되요
정의당에 속한적 있다는 놈들
유땡민 진중땡 이런 놈들이 거짓선지자 노릇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인간이 외치는 정의란 이미 부패하고 썩었기 때문에
짠기능이 없어요
종말성이 없다 라는 겁니다

결국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라는 말은
원인 없는 결과로 원인 없는 결과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이다 라는 겁니다

종말로 종말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 이다는 겁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겁니다

정의를 외치면 죽어요
그런데 안 죽는 방향으로 정의를 외치겠다 라는 발상 자체가
이미 썩은 겁니다
종말성이 없어요
미래가 없어요

여성 자체가 이미 종말성이어야 하는데
정의당의 여성은 남자를 자꾸 흉내내고 있더라 말이죠

남자 보다 더 더러운 여성성(진리, 정의)가 되어야 하는데
남자 보다 더 깨끗한 남자가 될려고 하니까
결과가 의 거룩이 아니라 고맙게도 부패와 썩은 모습 뿐이다 말이죠

외부에서 소금을 쳐줘서 다행이지
그것을 또 내부의 정의감으로 다시 살아난줄 알아요
과거에 안초딩이 그랬는데 지금은 아예 본색을 드러내줬다 말이죠
국민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한테 인정 받을려고만 하니까 대통령깜이 아니지요
여전히 오이디푸스에 헤매는 겁니다
결국 안초딩의 개인적인 믿음이 자기를 망치는 겁니다
심심하면 실망입니다 ~~~~~~~~~~ 라고 하는 이유가
실망받는 자기자신이 안될려고 하니까
남에게 까지 요구하는 거다 말이죠
그카다가 남에게 실망만 주는 거죠
실망입니다 안초딩 ~~~~~~ 남자닭그네 공주병 아니 왕자병이다 말이죠
왕도 아닌 왕자병

아들러가 말했나요? 3대 심리학 거장 프로이트(정신분석) 칼 융(분석신리) 아들러(개인심리학)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 사랑 받을려고 하기 때문이다

언니 마르다가 생각나지요
동생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했다 말이죠

내 손님은 내가 대접한다 가 아니라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대접 받겠다 라는 좋은 것을 택했고

이 싸가지 없는 마리아가
많은 일로 근심하는 언니 마르다 보다
싸가지 없게 예수님 무릎에 앉아서 일도 안하고 말이죠 
말씀을 듣는 것을 택했다 라는 겁니다

남을 7번 용서하는 악한 무화과 나무가 아니라 그 나무에 그 열매가 아니라
도리어 남으로부터 7에 70번 용서 받는 좋은 무화과 나무가 되는
예수님의 열매 그 나무에 그 열매가 되는

이것이 사독 제사장이 저 아비아달 제사장과 반대되는
번제와 제사의 반대가 되는
인애와 자비를 보여주는 제사의 기능을 해야할 자가
바로 율법의 껍데기가 아닌
율법 외에 한 의가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다는 겁니다

고로 율법은 인간의 한계치를 보여주는 종말성을 담고 있는
죄를 죄 되게
한계치를 한계치 답게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율법 몽학선생이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화살표가 가리키는

선지자와 율법이 가리키는 저분 화살표의 방향
방향을 제시한다는 자체가 넌 틀렸다 라는 겁니다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말이죠
이것을 제시하는 자가 바로 율법과 선지자 이다 말이죠

즉 무조건 너의 방향은 무조건 틀렸다
죄야! 사망아! 누굴 쏘고 있니를 보여주고 있는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호 13:14, 새번역)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 ㉢또는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갚아 주고 그들을 스올의 세력에서 빼내란 말이냐?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란 말이냐?‘

(고전 15:51, 개역)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2, 개역)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3, 개역)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4, 개역)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7,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8, 개역)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고전 15:56, 새번역)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율법은 미리 앞당겨 
한계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고전 15:56, 개역)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죄의 권능은 율법인 이유가 그 한계치를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심판성이 율법이다는 거죠
그래서 율법이 시온에서 나와서 모조리 다 불도져로 밀어버리는 겁니다
다 죽여요
모조리 다 죽음 아래에 곧 세례요 홍해바다에 다 빠뜨려 죽여요
물에 빠뜨려 죽였는데 어라 물에 빠져 깊은 바다 어두운 그 음부의 권세 속에 집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 민족이 있더라 말이죠 이것이 소금이 팍팍 쳐진 이스라엘
썩지 않도록 미리 예수님의 피가 발려진 자가 신부된 교회로써
이 피를 보고 율법과 선지자는 우와 모조리 다 참 잘 죽였다 라고 패쓰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불칼 들고 천사들이 애굽의 마지막 장자재앙을 펼칠때에
장자 곧 하늘에 속한 깨끗한 장자의 피 맏물의 피가 발리지 않은 곳은 다 죽이는데
이스라엘은 어 죽었네 다 죽었으니 다른 곳으로 패쓰 하고 넘어간다 말이죠
소금을 미리 쳤고
피를 미리 발랐다 말이죠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고전 15:54, 공동)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 ㉠이사 25:8.

그래서 그 눈물을 그 심판을 그 수치를 그 죽음을 그 썩을 것을 씻겨주니까
사망아 너 누구 쏠려고 왔니 
쏘아 죽일 놈이 여기는 없네 자 그럼 패쓰 하고 딴동네에 가는 겁니다
총알 독침을 쏘다 쏘다 결국 예수님까지 죽였지만
심지어 마귀의 사망권세 뿐만 아니라
율법에 의한 절대저주 절대심판 마져도 말이죠
죄의 권능은 율법이니까 말이죠
정녕죽으리라 아니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끈히 다시 살아나셨거든요
이제 쏠 자가 없어요
모조리 다 빈무덤이라카이 )


그러면 쉽게 두 언약처럼 차이가 드러나죠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의 차이를 말이죠

이 차이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의 이니까 말이죠

도리어 차이를 알았으면 무지 무지 쉬워요

손 놓는 겁니다

비로소 나는 의가 없습니다 손 떼면 되고요
왜? 아무리 인간 쪽에서 차이두기 차별 구분 구별
거리두기 구별짓기(피에르 부르디외)
(어떤 부자의 딸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옷을 예를들어 빨간색의 드레스를 구입헤 입었다 말이죠 어라 그런데 누가 자기랑 똑같은 옷을 입었다 그 다음부터 안 입어요
부자의 사고방식이 그래서 마음이 피폐한 지옥이다는 겁니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불가능하다는 거죠)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으로 최대치 인간의 한계치 모든 것을 다 쥐어짜내어도
구별짓기가 안되는 겁니다 도토리 키재기로 고만고만한 짓꺼리를 한 거죠
주님 쪽에서 넘어와야
우리 연변에서는 7에 70번 용서를 용서 축에 두는감따 하지
남 7번 용서는 용서 축에도 끼이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사망의 몸 죽을 몸 썩을 몸
한계치가 겨우 남 7번 용서 밖에 안되는 하루치 하루살이 밖에 안되는
지옥의 몸임을

생명의 몸을 만나게 되면 비로소 보인다 말이죠

네 맞아요 두 언약에서 자기자신이 비언약의 자리에 서게 되면
저절로 생명의 주가 됩니다

왜 예수님처럼 물 위로 걸을려고 합니까
백번 천번 만번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죄인인데

비로소 죄인이 되니까 예수님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풍랑도 잠잠케 되고
썩을 죽음으로 잠잠케 되고
수치도 물러가고
썩는 허구도 허상도 안개도 거두어지면서 
또렷한 햇빛보다 영광스러운 실상을 보여주시는 겁니까?

얼마나 실상을 허구인 주제에 얍잡아봤으면
허구의 물 위를 세 번 걷기에 예수님을 이용할려고 했느냐 말이죠

네 맞아요 허상이 허상이라는 죽음을 사망을 총알로 삼아서 총쏘고 있으니까

이것이 세상에 먹혀드니까

실상에게 까지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는 생명 뿐인 그 세계에 까지
총쏘고 있더라 말이죠

허구가 허상을 쏘고 있어요

율법에 의해서 그 한계치가 다 드러났어요

절대저주 절대죽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보여줬다 말이죠
이것이 사독제사장의 제사입니다

절대죽음 축에도 못 드는 것들이
허상인 죽음을 총알로 삼아서 총쏘고 있더라 말이죠

총알 안 맞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안 죽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안 죽으면 내가 썩지 않는 한계치도 없는 우상인줄도 모르게 된다 말이죠
썩었음을 비로소 알았고
한계치도 비로소 드러났고
총알에 맞아 죽게 되는 줄도 알아요

그런데 앞 뒤 모순 되게 안 죽도록 누가 더 이상 피 흐르지 않도록
지혈을 하듯이
더 이상 썩지 않도록 소금을 팍팍 치듯이
누가 내가 더 더 더 흘려야 피를 누가 대신 더더더 흘리더라 말이죠

그것도 아주 모욕적으로 수치를 덮어주면서
너의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든다 라고 예수님의 죽음을 죽어가면서 외치라고 말이죠

그러니 사도바울은 어서 어서 육신의 장막에서 어서 벗어나고자 해도
안 되요 ~~~~~~~

예수님의 죽음이 더 급하거든요

소금치는 것이 더 급해요

어두운 세상에 빛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더 급해요
내 먹고 사는 것은 하나도 급한 것 하나 없어요

먹고 사는 문제로 죽어가는 것이 죽음 축에도 못 드는 죽음이니
허구이니 하나도 급하지 않아요

불뱀에게 물려서 죽는 것은 하나도 급하지 않아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것이 더 급해요

지금 장난하냐 지금 죽는 이 다급한 상황에
빨리 빨리 약을 주는 것이 더 급한데
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꼬?

뭐 소금에 팍팍 쳐서 썩어짐을 지옥감을 방지하라꼬?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이 더 급하다니?

아니 지금 촌각을 다투는 1초가 급한 긴급한 상황에
내 죽음 보다 더 급한 죽음이 있다니?

누가 내 죽음을 안 쳐다보고 남의 죽음을 보겠냐 말이죠
그것도 내 죽음이 이렇게 심각하고 급하디 급한 상황에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비로소
나는 원해 망했었었었 했했했었었었다 말이죠

이미 망했는데 뭐가 급하냐 말이죠

사망의 몸인데 말이죠

도리어 사망의 몸임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율법이 있는 이스라엘 삼아주심에 감사하고
또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써 긍휼을 베풀어 주심을 감사하다 말이죠

그러니 피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이 바로

찢으시는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으로 심판 하시고
심판도 그냥 심판이 아닌
니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드는 절대죽음
절대 사망을 비로소 율법 덕분에
선지자 덕분에 보게 되는 겁니다

당신은 저주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을 율법과 선지자 덕분에 비로소 알게 되죠

이렇게 찢으셨다가

아니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데

또 고맙게도
절대용서를
다시 싸매어 주시는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나서 절대거룩으로 입히시는

우리가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내시가 주 라고 부르도록

괜히 주님 주님 주인님 이라고 하는 말 반복이 아니라

내가 죽인 주님이다는 겁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주의 자리에 높여야
이것이 지혜 앞에 비로소 무릎 꿇는 경배가 된다 말이죠

괜히 찬양이 아닙니다 찬양이란 항상 입으로는 찬양하나 속으로는 저주하고 있는
우리의 본색을 다 들통내는 찬양이가 되기 때문에
새노래가 되기 때문에
찬양이(의인화)가 말이죠 주어 (누가, ~~ 가, 찬양이 가)주어란 결국 나의 주어됨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의인화란 나의 대상물이 못 되도록 쭐꾸덕 미끄러지는 리마리오 빠다 버터를 발라서
아무리 대상물로 삼아 포착할려고 해도
아따 포착 오랜만데 써보네
내 믿음에 포착이 되지 않고 쭐꾸덕 미끄러져 자빠뜨리게 만들정도로
집착과 함께 실족케 넘어지게 만들도록 유도하는 치토스 꼭먹고야 말겠다 라고
올무를 치는
나를 제대로 넘어뜨리고(실족)
나를 제대로 죽이고 절망케 하는

의인화 즉 움직인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결국 움직이지 못하는 우상을 붙잡고 구원해 달라고

이런 종교성을 다 까발리는
나를 원수 만드시는 분이 바로 나의 주이시다 라는 겁니다
그 원수에게서 경배 받으시는 분이 주 이시다 라는 거죠
나를 무릎 꿇게 만드시니까
나를 이기시니까 말이죠

(시편에서 중요한 것이 원수가 누구냐 라는 겁니다
이 원수가 밝혀지지 않으면 시편을 해석할 수가 없다 말이죠
그 동안 다윗은 자기 주변에 있는 친구와 친인척들 등등의 가까운 벗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작용하는 것을 못 봤다 말이죠
그런데 총명이 성령이 상한마음이 새마음이 인자의 마음이 덮쳐지니까
비로소 짐승의 수 666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장악한 짐승을 말이죠
이것을 좀 더 확대시킨 것이 바벨론 포로를 거쳐 세계에 확대시켰다 말이죠
이 세상의 배후세력이 누구인가를 말이죠
이 마귀가 보이지 않는 이상은 시편을 해석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시편대로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시편을 달달달 외운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또렷한 원수로써 드러나더라 말이죠
도리어 이방나라 로마는 유대인의 시다바리였구요
짐승 보다 짐승에 올라탄 짐승을 조정하는 음녀가 자꾸 제사장 나라이다 라고 우기면서
제사장의 딸로써 짐승에게 돈이 없고 힘이 없을때는 짖밟히다가
돈 있고 힘 파워 있을때는 오히려 더 더 더 짐승보다 더 심하더라 말이죠
고로 내가 하나님의 원수인줄 모르는 자는 다 하나님의 적이다 말이죠
이 적이 이 원수가
이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이름에 의해서 비로소 드러나는 겁니다
기독교는 정작 하나님의 원수로써 들추임 받아서 용서해달라고 상한심령이 되어야 하는데
기독교나 불교나 천주교나 정교회나 이슬람이나 모든 종교가 
하나님의 원수로써
세상의 배후의 자리잡은 줄도 모르니까
늘 자기 숙제를 할려는 아비아달 제사장의 제사를 드리더라 말이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믿음은 내가 , 내 구원도 내가, 시드기야 왕 가룟유다 등등

여기에 상대적인 한 세트로써 좋은 무화과 나무로써 여고냐

사독제사장은 이 배후세력인 원수까지 까발리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냄으로써
동행 곧 임마누엘 이름을 앞장세운다 말이죠
누가 동행하느냐 원수의 반대
막사는 싸가지 없는 마리아처럼 잃어버린 자
나는 썩었습니다 소금 쳐 주세요 사망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마른뼈가 되는
가시떨기나무에 여호와의 불이 붙은 동행자 즉 사탄의 가시에 찔려 약한 자
와 동행하는 이 이름
동행 당하는 자가 주체가 아닌 주체를 말해야 하기 때문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자
주체가 삭제 당했기에 자아가 삭제 당했기에
더 이상 자기 것이 없는 자
결국 자기 것이 있는 자는 모조리 다 하나님의 원수
시편이 비로소 나 하나님의 원수인 나를 향한 예수님의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소금을 팍팍 치는 울부짖는 기도 원수 갚아 달라고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

(눅 23:34, 개역)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눅 23:35, 개역)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눅 23:36, 개역)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눅 23:37, 개역)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시 22:18, 새번역)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
(마 27:35, 새번역)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서, 그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 ㉧그, '그를' ㉨시 22:18
(요 19:24, 새번역)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것은 찢지 말고, 누가 차지할지 제비를 뽑자" 하였다. 이는 ㉥'그들이 나의 겉옷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다' 하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병정들이 이런 일을 하였다. / ㉥시 22:18


결국 
지혜는 솔로몬의 재판 속에서

사망이 예수님을 생명이 아닌 사망으로 만들려고 할때에
허구야 허구를 쏜 그 허구가 어디있고 도대체 누굴 쏘았길래 안 죽었니
너 사망 
사망 맞기는 맞니 ~~~~~~~

라고 지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품으로써
죽음을 허구를 허상을 손에 쥔 자의 손에서 나간 총알 독침 사망이

도대체 뭘 겨누고 쐈고 도대체 누굴 겨누고 쏵니 라고
총 쏜거 맞기는 맞니 라고
지혜는 죽음의 허구성을 밝혀버리는

더 나은 죽음 
더 더 더 절대적인 죽음이 또렷하다 라고 
종말의 종말
부정의 부정

죽음의 죽음
사망을 종결 시키는
율법의 완성이자 율법의 마침이 되는
이 사독 제사장의 제사를 펼치신다
이 아껴둔 기념 이름으로써 
인간의 이름은 갈아져 버림 당해야 할 판국인
이 이름 앞에 무릎 꿇는 자로써 먼저 세웠다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 되는 이유이다 말이죠
매일 매일 나를 하나님의 원수로 밝혀 들추어내시는 주의 이름인데
도리어 이 주의 이름을 통해서 여점쟁이들처럼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추구하고
잔칫집 넓은길로 갈려고 하니까 이미 심판 받았으니 내버려두시는 거다 말이죠


결국 시편에서 원수는 누구인가
이것이 신학자들이 해석을 못할 정도로 난제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신학자 본인들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모르기 때문에
백날 해석해도 안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바로  바로 ~~~~~~~~~ 바 로 ~~~~~~~~~~~

나입니다
자기 자신 김성주가 아니라

나입니다 라고 나오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의 원수이다 말이죠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가
누가 가장 똑똑한가
뭐 나 라꼬
아냐 아냐 나야 말로 쥐 뿔도 아는 것이 없음을 알아 라고
니 자신을 알라 니 꼬라지를 알라 자기의 무지함을 알라를 아는 놈이다 라고

적어도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안다 라고 했다 말이죠
그러니까 신전 입구에 니 꼬라지를 알라 라고
이 문구에 맞는 놈이 소크라테스 너 다 너 라고 하는 겁니다

인간의 지혜
인간의 믿음
인간의 정의가

다 더럽다 라는 거죠

하나님의 원수가 할매 내네 내

이것이 하나님의 의가 덮쳐진 자의 고백이다는 겁니다
그카이 더더욱 또 연기를 해야 하는 거죠
죽은 자를 찾습니다 라고 하니까 내가 죽은자입니다 라고
내가 막사는 놈입니다 라고
나는 죄 지을 줄 아는 놈이고 저놈은 죄 지을줄 모른다 라고
또 구분짓기 도토리 키 재기를 말이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필요 없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낼 필요가 없이
인간 지들끼리 다 해먹어요

이게 무슨 놈의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원수란 죄인이란

하나님의 의가 규정짓는

사랑의 대상물
7에 70번의 대상물인데

도리어 또 남을 7번 용서하듯이
사랑을 자기의 대상물로 삼아서
나 죄인은 의사를 대상물로 삼겠다 라고
나일론 환자가 되어서 보험금을 노리더라 말이죠
구원을 탐하더라 말이죠

아니 원인이 없어야 텅텅 비어야 할 빈자리를
또 인간의 노림수 속임수 꾀로
꽉꽉 채워넣고 있으니

졸지에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없더라 말이죠

종말성이 없어요
믿음이란 종말을 미리 앞당기는 것인데
나는 쥐 뿔도 아는 것도 없고
나는 쥐 뿔도 믿음도 없는

그래서 예수님이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소금쳐 주시고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안되는

왜? 소금친다는 말은 원수에게만
죄인에게만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빈자에게만 뿌려지거든요
거룩은 눈꼽만치도 없는

이것이 불륜이요 스캔들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다 말이죠

졸지에 하나님의 의가
율법의 쥐고 있는 돌삐 쥔 머슴아에게
돌삐 맞아 죽어야 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말이죠

자 율법 쥔 머슴아들아
누구를 돌삐 던질래 ~~~~~~~~~~~~~~~

갑자기 돌삐를 꽉 쥐고 던질려는 놈들이
하나 둘 씩 돌삐를 살포시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살포시 땅에 놓고서 냅따 도망치는 겁니다

절대심판을 당할까 싶어서 냅따 도망을 치고
그 여인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이 절대용서 앞애서

아무도 정죄 함이 없는
이전 것을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 라는

율법 외에 한 의가
한 남겨둔 씨가
나타남으로써

정죄함 없겠네 라는 수치를 가려주는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용서를 누리며 기뻐하더라 말이죠

주님이 넘어오시기 않았더면
언제 까지 이 율법의 의문의 반복을 언제까지 하겠냐 말이죠
언제까지 율법으로 돌삐 쳐 죽이겠냐 말이죠

하다 하다 자식도 돌삐 쳐 죽이고 명예살인처럼 아버지가 딸래니 총 쏘듯이 말이죠
남자친구는 총 못 쏘아요 가난한 놈은 당장 쏘겠지만
하필이면 아버지가 근무하는 사장의 아들이다 총 못 쏜다 말이죠
괜히 딸래미한테만 화풀이를 한다 말이죠

맞아요 인간의 믿음 인간의 율법지키기 말씀지키기는 화풀이입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명예살인을 한다 말이죠

예수님은 간단 합니다
금식한다 라고 회개 한다 라고 죄 없는 옷 찢기 말고
마음을 찢으라 라고
딸래미 총 쏘지 말고
아버지 너가 너 자신을 쏘라 라꼬

니 꼬라지를 알라 라고

율법은 죄를 죄 되게 합니다
니가 니 자신에게 쏘라 라꼬

그렇게 못하니까 이혼증서 써 내라 라꼬 모세를 협박했듯이
부모를 잡아먹고
자식을 잡아먹는

인간의 한계치를 적나라 하게 다 보여준다 말이죠

언제까지 할래 그렇게 하다 하다 다 죽고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우긴다 말이죠
유다 지파만 남았다 라고
다 더러운 자기 되었지만

남들은 다 버려도 나 만큼은 더러운 자가 안 되겠습니다 라고 

이 의문의 반복 언제까지 하냐 말이죠

그냥 손 놓자 말이죠

내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울어야 할 판국인데
애먼 엉뚱한 자를 도리어 울리고 있더라 말이죠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누가 깨끗하다 라고
죄 없다 라고 나올자 있냐 말이죠

도리어 모든 인간은 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판국으로써
종말을 확 땅긴
거울로써 다 비추어주고 있다 말이죠

이 종말을 끌여당여서
주여 제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저 같은 인간 말종의 환자를 고쳐 달라고 울어야 할 판국임을

자기의 종말을 봐야 할 판국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를 본 자 이다는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본 자입니다

내가 달려할 그 자리에
왜 인자가 달리셨는가를 보는 자입니다

바로 이런 원수에게만
사랑을 베푸시는

원수를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으로써
더 이상 이룰 율법이 없음을
율법의 마침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마침도 없이 언제까지 반복할지 모르는
저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시형제결혼법 약자보호법 이웃환대법의
율법의 정신의 완성으로써
사독제사장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심 앞에서
불륜녀가 낳은 자식 솔로몬을 왕으로 세움으로써

지혜는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독케 하는
천한 계집을 왕비로 삼는

자유케 하는 하늘에 속한 여자가 낳은 아들
곧 여자의 후손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뱀의 후손으로써
이 영적 전쟁
칼과 방패의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닌

악한 영의 내막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전쟁을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이 전쟁의 마침이 평화의 왕으로써 오신
어서 어서 그 분 앞에
어서 어서 급히 무릎 꿇고
제가 원수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어서 어서 화친을 청하여
무릎 꿇는 이 모욕적인 구원을 청하는 것이

(눅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눅 14:32, 개역)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눅 14:28, 개역)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눅 14:29, 개역)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눅 14:30,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눅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눅 14:32, 개역)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눅 14:33, 개역)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4, 개역)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눅 14:35, 개역)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지혜를 만난 자의 모습입니다
제가 어리석고 무지하오니
이 십자가의 지혜 앞에 무릎 꿇어 경배케 해 달라고 말이죠

나는 소금이 없으니 어서 어서 더 이상 썩지 않도록
지옥가지 않도록
더 이상 부패하지 않도록
이 소금 앞에 무릎 꿇어 경배하며
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시는 소금을 팍팍 쳐 달라고
소금과 화친을 청하는

나는 의가 없으니
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앞에서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아니 이 세상에
심지어 이 십자가의 사형틀 이 깊은 바닷 속 스올 무저갱
지옥 코 앞에까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줄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줄
이제 알았나이다 라고

이 당신의 의로운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모든 것을 손 놓고서
이 종말을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 
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주님 쪽에서 찾으시고 있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찾지도 구하지도 두드리지도 않는데

아무도 없는데
빈 터일 뿐인데
새롭게 마귀 보란 듯이
우리 보란 듯이
얄밉게
격동하며 견디지 못하도록
우리 보란 듯이

탕자를
저 천하의 인간 말종 더럽기 짝이 없는 탕자를
저 창녀 마리아를

예수님의 족보에 넉넉히 집어넣는 그 원수사랑을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율법의 마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는

이 꺽으신 뼈로만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만 기뻐하는 
복음을
기쁜소식을 다 이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