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러한가 싶어? 1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으로 이곳을 사랑합니다?
2008-12-15 12:51:17 조회 : 371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으로 이곳을 사랑합니다.
이름 : 성재필
아주 많은 비상식 적인 사건들(개혁노회, 절차없는 장로안수,신학 전문생만을 위한 수련회,자기 비판능력 부족, 녹취록 발간...등)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오직 십자가에서 피흘린 분의 공로만을 자랑하고 인정하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으로 동의하며 저와 한 형제임을 고백합니다.
이근호 08-12-15 13:28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식의 틀'을 버려야 합니다. '기존의 것'이란 기독교 문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기독교 문화'란 사람이 모여서 움직이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도 없앨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인식의 틀'이란 자기 조직의 정당성에 근원이 있기에 늘 십자가 앞애서 부정당해야 합니다. 즉 "나는 이러이러한 식으로 세상을 보기에 '나'라는 존재와 그 판단력은 정당하다"는 인식은 십자가 앞에서 저주받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도 그 주신 것을 간직하려는 자아를 정당화 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 만큼이나 차이나는 겁니다. 십자가 마을의 모임은 그냥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같이 십자가 앞에서 자아를 부정당하는 의미에서 모이는 모임이기에 그 자체가 외부 관찰자에게 예수님 공로만을 증거하게 됩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십자가 마을' 존재의 정당성이 십자가 마을 자체에서 비쳐나온다고 한다면 십자가로 모이는 것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모든 자들과 동일하게 이단입니다.
성재필 08-12-15 15:54
긍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십자가 마을을 오가는 모든 분들이 먼저 개혁노회와 십자가 마을과 자신에게로만 십자가의 칼을 먼저 휘두른 다면 그것을 보는 저 자신도 목사님의 사고를 이해하고 그와 똑같이 않음을 한계로 고백하지 아니할까 생각됩니다.
이근호 08-12-15 17:18
그리스도에 대한 긍정은 필히 자기 부정을(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내용으로 할 때만 성사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에서 눈 돌리면 자기를 부정할 근거에서 눈 돌리는 것이 되기에 남는 것은 결국 '자기 긍정'뿐입니다. "내 놓아봐라.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잘 난 자들인 것을!"라는 구호가 우렁찰 때, 그곳에는 십자가가 반토막난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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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 시간대로 보면 성우교회 카페에서 복사
성재필 08.12.15 19:32
crossvillage.org/ 십자가 마을 사이트 입니다. 대구동부 교회 사이트등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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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득영 08-12-15 22:57
비정상적인 사건들 중에서 '자기 비판능력 부족'이 눈에 띄는 군요. 이미 죽은 자들인데 비판은 무슨 비판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자기 일을 마치 남의 일처럼 떠벌리고 칼을 마구 휘두르는 이 재미(?), 이미 죽은 사람만 즐기는 재미입니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
강구만 08-12-17 22:06
똥통옆에서 냄새만 맡은자와 똥통속에 빠진자는 넘나들 수 없는 단절이 있다.
성재필 08-12-18 01:21
그 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앞에 내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그들은 이 말씀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한가운데 서 있던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그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
신자의 위치는 항상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자리이어야 할것입니다. 십자가는 타인을 향한 칼이 아니라 용서받은 창녀와 같은 우리 신자에게로 항상 다가오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럴때에만 "다같이 십자가 앞에서 자아를 부정당하는 의미에서 모이는 모임이기에 그 자체가 외부 관찰자에게 예수님 공로만을 증거하게 됩니다"가 비상식인 사건이 아니라 정상적인 은혜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성재필 08-12-18 01:25
제가 비상식적인 사건으로 나열한 일들이 결코 "만약에 조금이라도 '십자가 마을' 존재의 정당성이 십자가 마을 자체에서 비쳐나온다고 한다면 십자가로 모이는 것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모든 자들과 동일하게 이단입니다."라는 이근호 목사님의 글과 정반대의 자리에 배치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강구만 08-12-18 10:30
덮쳐진 결과로 인해 원인이 삭제되버린 사람드리 모인곳이 십자가마을 입니다. 상식 비상식의잣대는 질문하시는 하나님앞에서 책망 받아야할 인식의 틀 임니다. 상식의 틀에 갇혀 있는한 뒤에 어떠한 성경 말씀을 갇다 붙혀도 그틀 안에서 못 벗어 납니다. 아주 신중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한 상식으로 예수님을 판단한 자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단이라고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이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령 받기전에는.
성도의 인생에 남는것은 성도의 삶을 어떻게 사랏느냐가 아니라 간음한여인 같은 용서 뿐입니다. 용서도 필요하지만 성도의 삶도 중요하다고 물타기를 하는자가 있다면 다른 복음임니다. 예수님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 입니다 인간이 사수해야할 필요도 능력도없고 관리할 내용도 없어야 합니다.예수님은 십자가만 지고 놀고 계신분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온 나 나의 수고가 담긴 내교회에서 눈 돌릴때 지금도 피 흘리시는 예수님이 보입니다. 불안합니까? 예수 믿으세요.
성재필 08-12-18 10:59
덮쳐진 결과로 인해 원인이 삭제되버린 사람은 예수님이 만든 공간(교회)속에만 존재합니다. 바로 이곳이 그렇게 도 외치는 십자가의 피 아래입니다. 장로님! 십자가 마을이 곧 예수님의 몸이 라는 환상은 버려야만 그것을 결정하는 능력이 주님께만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재필 08-12-18 11:09
물론 십자가 지신 주님 앞에서는 어떠한 잣대도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희생일지라도 예수님의 피앞에서는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 은혜로 덥쳐오시는 것을 볼 뿐입니다.
강구만 08-12-18 11:16
십자가에 못 박힌채 세상과 나를 보는 시선이 없으면 세상도 나도 죽어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산자에게만 너와 나가 있지요(니것 내것) 그러나 주님의 분리 작업엔 실수가없습니다.십자가마을이나 우리교회나 성우교회까지도 없어져야할 대상 입니다. 이목사님의 댓글이나 나의댓글까지 내용을 잘읽고 반박해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십자가 복음이아닌지를. 복음 이외의 상식을 논하고 싶으면 잘못 찾은겁니다.
강구만 08-12-18 11:32
이곳은 누가 크냐를 논쟁하느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린아이 처럼 빈그릇을 자랑하고 약함을 감사 할수 있어야 공감이 됩니다. 십자가를 통과 해버린 사람은 오지 안아도 되겠지요. 십자가가 영원한 현실이라는 것을 아는자는 쓸데없는 것에 시비 걸지 않습니다.
성재필 08-12-18 13:09
지금의 댓글속에 있는 이근호 목사님의 댓글에 100% 동감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엇이 십자가 복음이아닌지를. 복음 이외의 상식을 논하고 싶으면 잘못 찾은겁니다"라는 장로님의 글에는 동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성도에게 덮치므로 그인간됨이 비복음을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음을 고발함과 동시에 복음에 항복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듣고 느끼는 설교와 대화와 작은 사건들 속에서도 무엇이 십자가 복음인지 아닌지를 내가 숨쉬는 동안을 계속 고민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결과로 설사 장로님의 말대로 제가 십자가를 아예 통과해 버릴지라도...
김을수 08-12-18 19:24
대구 성우교회 주일예배
2008년 12월 14일 - 에베소서 2:1-3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 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아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과거에는 본질상 지노의 자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우리 속에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 -중략-
못되고 교만한 본성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드는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고 있다. -중략-
‘사람의 능력이 바뀌지 않는다.’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 바뀐다는 것도 맞습니다.
공중권세의 세력에 예속된 자가 삶이 나아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속에 큰 능력이 역사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중략-
지극히 큰 능력이 그때그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능력이 나타남으로 우리는 공중권세 잡은 자를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코드가 맞지 않게 된다. -중략-
이 본문의 내용은 예수 믿는 사람이 과거에 메여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질책하고 있는 말씀이다. -중략-
사람의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연약해 진다. 그러나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근육은 사용하는 만큼 강해진다. 새로운 능력이 아니라 근육 속에 있는 능력을 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큰 능력을 늘 잊지 말고 행함으로써 우리 속에 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자. -중략-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 답답하게 과거에 얽메어 있는가. -중략-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 이 설교의 취지를 어떻게 보십니까?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 앞에 우리가 과연 끼여들 여지가 있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교회를 말하는 것이지, 위의 설교내용 처럼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목사, 장로, 집사, 권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과거는 어떻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큰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등 괘변을 쏟아내면서 본인이 정작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한는데, 구체적으로 성도의 삶이 무어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 잡소리를 분별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오직 십자가에서 피흘린 분의 공로만을 자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으로 동의하며 저와 한 형제임을 고백합니다.’라는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강구만 08-12-18 19:59
누가 누구애게 동의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안습니다. '복음'에 동의 되는자가 성도 입니다. 성재필씨는 처음부터 복음아닌 본질과 상관없는 문화로(노회가 있으면 비복음인가요? 어떤 절차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절차있는 장로안수는 복음적이고 상식적인가요 십자가마을 수련회가 언제 신학생만위한 모임인가요 우리교회 80넘은 장로님도 손꼽아 기다리는데 녹취록 발간이 기분 나쁘게 했나요 복음 전하는 일이 비상식은 맞는데..)십자가 마을을 상식없는 집단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사실 상식없는것 맞습니다 누가 제정신으로 복음전할자 잇겠습니까. 그러면서 복음안에서는 한형제라고 애매모호한 글을 올렸지요. 그러고는 이근호 목사의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긍정해 주어서 고맙다고하고.. 나중에는 이목사님의 글에 100% 공감 한다고하고.도데체 글의 내용이나 알고 하는 소린지 그냥 들어와서 작대기 한번 흔드는게 목적인지 모르겠네요. 이목사님은 십자가 앞에서 자기부정이 않된 자기긍정의 인식틀을 버리지 못하고 상식의 잣대로 남의 신앙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비웃기나하면서 자신의 신앙없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모습을 책망하고 있는데(성도의 칼럼 신앙없는 신앙생활) 도데체 무엇을 긍정해주고 동의해줘 감사하다는건지 .. 내가 이런 댓글을 달아야하는지 조차 씁쓸합니다. 복음은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성령으로 주어지면 강원도 감자 케는 할머니도 고민없이 천국 갑니다. 그러나 주어지지 안으면 죽었다 깨나도 모르고 믿기지 않는게 복음입니다. 고민할것이 아니라 주신것의 깊이와 넓이를 알게 해달라고 구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억지로 알라고 강요 하지도 않지요 그냥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러이러한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할뿐입니다.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똥통(절망)에 빠진자 만이 예수님 죽인 가해자로서 감사함으로 복음에 이용당하는 삶을 살고, 이런자는 사람 누구에게도 인정받거나 동의 받을 필요가 없는자 입니다 .
구득영 08-12-18 21:35
대구성우교회라니, 혹시 여의도 성우교회가 아닌가요? MB정권이 되면, 교회든 뭐든 다 따라가나요? 말은 녹색 저탄소가 어쩌구 하면서, 하는 짓은 시멘트로 온 나라를 쳐바를려고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어디 병아리 감별사보다 못하겠습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성재필 08-12-18 23:45
오늘 전 우물을 찾다가 오히려 똥통에 빠진 기분이 듭니다. 지금의 성우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지금의 대화속 주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언제 이렇게 십자가마을에 십자가를 꺼구로 박아놓았나요, 자기부인이 아니라 타인과 타교회가 거짓임을 고발하기 바쁘군요. 언제부터 김을수씨가 저의 판단자가 되었나요,구득영은 또 누구인가요.전 이근호목사님신학과 십자가 마을의 행사가 어떻게 병행될수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고, 한때 같은교회 집사이셨던 강구만 장로님과 대화 중이었습니다. 누구든 오직 십자가 지신 주님앞에서 죄인이지 타인들에게 자신의신앙을 판단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신학은 이근호 목사님의 신학의 자리와 다르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삶의 모양까지야 같을 수 없겠지요. 더 많은 이야기는 일대일로 얼굴을 맞대며 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줄이며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을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이근호 08-12-19 09:35
오늘날 시대는 영적 전쟁중입니다. 개인의 자존심이나 건드리기 위해 십자가 마을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개혁주의를 전하는 이단들, 한 때 십자가 알았다고 주장하면서 지금은 은둔생활을 즐기는 이단들, 십자가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 고객들 편에서 서서 그들이 원하는 희망을 돈받고 제공하고 한풀이 해소에 진력을 다하는 이단들, 십자가 복음에 충실하다고 하면서 교회를 밥벌이로 생각하는 이단들, 이런 이단들과 전쟁하다 보니 생겨난 곳이 십자가 마을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마을 자체도 영적 전쟁에서 자연적으로 십자가 복음편에 서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늘 똥통에 빠져 있어야 합니다. 즉 똥통에서 빠져나왔기에 비로소 주님의 용서와 의로우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똥통에 계속 빠져 있기에 오로지 주님의 긍휼과 예수님의 피 공로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점에 감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똥통에서 빠져나왔다고 좋아하는 것은 주님 자체에 대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똥통에서 빠져나온 자기 자아의 정당함에 좋아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제대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자신을 부인하지 않게 된 자기 자신의 월등함에 감격하는 셈이 됩니다. 곧 '자기를 증거하는 희열로 살아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됩니다. 이것이 모든 이단의 근본심성입니다.
'이근호 목사 신학에 동의한다'는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는 십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뭇매마저 똥퉁에 빠졌지만 내가 이 가운데서 감사하는 것은 이근호 신학도 아니요 이근호라는 작자에 동의도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려지는 피 뿐입니다"라는 고백을 한다면 마귀라고 할지라도 참된 그리스도의 종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마을 사람들도 그런 성도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성재필 08-12-19 10:27
강구만장로께서 문화로 여기시는 것 역시 똥통입니다. 어떠한 이유를 같다붙이던 똥통은 그시대 인간들이 움직인 결과물 입니다. 결코 복음의 매개체가 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화하려는 시도처럼 보입니다. 이근호목사님이 말하는 똥똥이 하나님의 의해 내버려진 인간의 죄악과 절망이라면 일부러 저를 다시 십자가마을사람들이라는 똥통에 던질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현실이 똥통이라는 것은 십자가앞에서는 늘 명확해 지는것 아닙니까?
복음(예수님의 흘리시는 피)은 인간들에게 독점되어진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며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을 어떻게 제가 감히 감당할 수 있겠습까? "내가 이 가운데서 감사하는 것은 이근호 신학도 아니요 이근호라는 작자에 동의도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려지는 피 뿐입니다"라는 고백을 한다해도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간주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심판때에는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주이심으로),악한 종과 선한 종으로 구분해 내시고 있음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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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교회 홈피에서 복사
김동현 08.12.19 10:43
이곳저곳 돌아보니 "나 죄인"씨와 "나 거룩"씨가 보이네요. 그런데 이상한점은 두사람을 향해 "어이~ 죄인씨!"라고 부르니 "나거룩" 보다 "나죄인"이 더 뒤집어지네요. 코메디다. 코메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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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12-19 11:19
탕자가 고마워하고 감사는 근거는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만유의 주라는 개념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됨'을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자기 성도를 죄인이라고 규정짓는 작업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십자가 없이 심판하면 그만이요, 십자가로 고백하는 성도의 모임도 필요없이 그냥 최종적으로 일방적으로 심판을 감행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권사상과 다릅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자기 부인을 야기시키면서 움직이십니다. 즉 십자가 사건은 판단 대상으로 멈춰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내부에 침투해서 휘져어버립니다. 그렇게 될 때 나오는 것은, 기이어 자기 것을 잃지 않으려는 지독한 집념같은 것이 자아의 전부를 휘감고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점을 고백하는 것이 예수님을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냥 주권사상을 늘어놓는 것은 지난 기독교 2000년 역사동안 신학자나 목사들이 지겁도록 되풀이하고 오늘날 개혁주의 자들이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단골 메뉴입니다. 실은 그 속에 악마가 뙈리를 틀고 누워있는 법입니다.
성재필 08-12-19 13:16
처음으로 돌아가서 정리해보겠습니다. 제가 비상식이라고 한것은 이근호목사님의 십자가 신학과 십자가마을에서 벌이는 행사와 사건들이 외부의 눈으로 보면 동일한 사고방식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또한 자기성도(모든 성도는 주께 매여있다는 의미에서는 동의 할수없지만?)를 죄인으로 규정짓는 작업은 성령이 벌이시는 일이지 목사의 가르침으로 되지않음을 압니다. 계속 말꼬리 잡는 개념 장난이 풀이되는 것 같습니다만 십자가 사건을 대하는 죄인에게는 더욱 세상의 창조하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살아나신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임을 더욱 분명히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우 교인 이기 전에 한 죄인으로서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는 한 성도이고 싶고 이곳 십자가마을도 그런 사람들이 찾는 곳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근호 08-12-19 16:13
정말로 그런 마음이라면 처음에 이런 식으로 글을 남겨야 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너희 십자가 마음 사람들은 왜 그리 게으르고 나태한가? 나는 성우교회 목숨 바쳐가면서 복음을 사랑하는데 외부에서 보기에 십자가 마을 사람들은 그 귀한 복음을 그냥 방치하는 것 같아 안타깝구나. 정말 너희들이 성령을 받은 자라면 지금보다 더욱 더 귀한 복음 전하는데 진력을 하고 매진해야 되지 않는가. 만약에 진정 십자가 마을이 복음 증거에 열심을 낸다면 나도 어떤 식으로 한 몫 거들어 희생할 수 있는 용의가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 마을 사람들이 결코 십자가 마을 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기에 그러하다"고 말입니다.
강구만 08-12-19 16:40
성우교회 교인이기전에 한죄인으로 십자가 은헤에 감격하는 성도이고 싶고 이곳 십자가 마을도 그런 사람이 찾는곳 인줄 알고 있었다 는 사람이 글 올리자 마자 성우교회 사이트에 십자가 마을에 들어가서 대구 동부교회 같은데와 비교해 보세요 재미잇습니다 라고 합니까 ? 그냥 솔직히 너희들은 얼마나 잘나서 녹취록 만들고 남의 교인 읽어라고 주는 오만한 짓을 하느냐 라고 하는게 낫겠네 내가 그래서 건방진 너희들의 정체를 밝혀주겠다 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무시해도 좋을 글을 성실하게 반박해 주는것은 설득하려 함도 아니요 뒤집어 짐도 아니요 이것이 내것 내교회 내교인 내신학의 칸막이를 쳐놓은 한국교회 아니 이땅의 기독교 역사에 반복 되어온 인간교요 자기학의 한 단면 이기에 어떠하든지 복음이 증거 되는 장으로 삼고자 함 입니다. 게속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성재필 08-12-19 16:59
장로님!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 십자가마을의 믿음과 성우교인의 믿음이 최근 까지도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던 참 큰일을 하시려고 애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근호 목사님! 정말 난데없는 낯선 주장을 펼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주님의 능력을 팔없고 다리없는 이상한 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어떠한 절망가운데 있더라도 반드시 자랑스런 예수님 피의 능력이 더 강력한 힘으로 알아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더 이상 저를 시험하지 마시고 차라리 악마의 하수인으로 낙인을 찍어주세요.그러면 알아서 더 이상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강구만 08-12-19 17:34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을때 몸은 머리되신 주님으로 인해 최종 삭제되는 몸 입니다. 교회는 자아실현의 장이 아닙니다. 성우교회 교인들은 십자가마을과 믿음을 비교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성도는 주님앞애서 날마다 자신에게서 솟아나는 이단성을(얼마나 주님을 싫어하고 나를 사랑하는 나에 갇혀있음을) 폭로 당하고 주님의 거룩앞에 홀로 심각해야 합니다. 다음, 하나님의 일에 사람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복음전함 역시 어떠한 매개의 가치도 주님이 용납치 안습니다 복음전도는 완료된 상태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만남을 통해서만 이루어 집니다 .성령께서 하신다는 말이지요. 사람의 일로 주체가 바뀌면 하나님 일이 아닙니다. 이목사의 주장이 낯설기 전에 하나님은 언제나 낯선 하나님으로 다가오십니다. 나를 죽이시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입니다. 계속 귀찬게 함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이 될것입니다.
이근호 08-12-19 18:07
성재필씨 개인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에 있어, 예수님의 피와 죽으심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피의 복음만 전하겠다는 성도들을 공격하는 방식에 있어 성재필와 같은 방식으로 공격하는 겁니다. 즉 "너희들만 예수 믿냐 우리도 예수 믿느냐" 하는 겁니다. 이것은 복음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대한 모욕이요 조롱입니다. 참으로 복음을 사랑한다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도와줄 방도가 없겠는가 후원할 방도가 없겠는가 를 하는 식으로 나와야지 "너희들만 돛대냐"하는 식의 비난은 악마만 좋아할 멘트며 누가 봐도 그 저의가 수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를 하고 노회를 하는 것이 복음 전파에 있어 왜 해서는 안되는 비정상적인 방식인지를 성재필씨는 필히 밝혀야 예의상 옳은 일입니다.
성재필 08-12-19 18:53
복음전파는 어떤 방법을 동원을 해도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에 속해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에게만 속한 것이니까요. 녹취한 한다고 욕하지 않습니다(다만 강사로서 한번더 정리해서 책을 만드는 것이 예의겠지만). 노회한다고 욕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의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노래라고 할지라도, 다만 그것을 복음전파의 도구로 착각하는 것을 경계할 뿐입니다.
이근호 08-12-19 19:07
1. '복음으로 착각'하는 것과 '복음 전파의 도구로 착각'하는 것과 지금 혼동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2. '비정상'이라는 말은 '정상'이 따로 있는데 십자가 마을은 '비정상적으로 움직였기에 그 비정상적으로 움직인 것에 대해서는 복음과 무관함을 주장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상적인 복음 전파의 도구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정상적으로 여긴 복음 전파 방식'은 과연 귀하의 주장처럼 복음전파의 도구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요? 없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 뿐입니다. 십자가 마을에서 전하는 내용이 과연 십자가 복음과 합치되느냐 하는 문제만 남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고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십자가 앞에 나서서 예수님의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있다고 칩시다. 그 십자가 앞에서의 대화 주제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녹취로 할 때에, 예수님, 과연 그것이 과연 정상적인 방식입니까 아니면 비정상적인 방식입니까"를 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 무슨 수를 쓰든지 저 피를 살아생전에 전하겠습니까"라는 고백이 나와야 할까요? 도대체 귀하의 관심사가 뭡니까?
성재필 08-12-19 19:28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다 타죽게 되었는 데 소방관이 와서 불을 꺼고 사람을 살립니다. 불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소방관님! 어떻게 해야 제가 불꺼는 것에 도움이 되겠습니까?"라고 묻는 다면 "저리가 있어!"라고 하지 않을까요! 다시 한번 더 반복합니다.제가 비상식(비정상이 아니라)이라고 한것은 이근호목사님의 십자가 신학과 십자가마을에서 벌이는 행사와 사건들이 외부의 눈으로 보면 동일한 사고방식으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구만 08-12-19 21:35
'비 상식적인 일들' 이라고 했을때 그 비상식적인 일은 저절로 발생 되지 안기에 반드시 사건의 주체가 된 사람에 대한 비판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그렇다면 그러한 사건의 동기가 되는 십자가 마을의 신학, 복음 내용에 대한 비판과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과정도 그러하고 또 그러한 비판을 기대하고 토론의 장을 만들기를 원했는데 알맹이는 비켜가고 결국 변명만 남네요. 글은 글쓴 사람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되고 나에게서 말씀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귀한 기회가 되어야합니다. 이 사이트가 존재하는 이유중에 하나인줄 압니다.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질문 답변란을 통해 이곳 목사님들께 문의 하는것이 상식 같네요. 본인의 상식이 아닌 나누고 싶은 복음의 비밀이나 사랑이 있을때 자주 들러주십시요.
성재필 08-12-19 22:07
죄송합니다. 저혼자 미련해서 십자가 마을과 개혁노회가 이근호 목사님의 신학과는 괴리과 있다고 그렇게 느끼느 것 같습니다. 개혁노회는 이래서 복음적이고 십자가 마을은 이래서 복음적이고 장로안수는 이러하므로 복음적인 것이다라고 상세히 설명해 주시면 미련하지만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구만 08-12-19 22:31
위 이목사님의 댓글에 잘 나와 있습니다(1번 3번) 누구나 부정이나 비판의 색안경으로는 글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과연 그러한가하고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목사님의 신간 '피'를권하고 싶습니다. 인터넷 서점이나 시중 서점애 잇습니다.
구득영 08-12-19 22:55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혹시 압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인지도 말입니다. 전 성우교회의 설교가 갑자기 왜 나왔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다만 안타까워서 멏자 적었습니다. 제가 있는 원당에서 1002번이라고 여의도순복음 교회에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요즘은 장사도 안 되고 해서 거리를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 라고 적힌 버스를 볼 때마다, "내가 이렇게 멀리와서 사는가?" 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랫동네가 그리울 때가 많은데, 그런데 분위기가 영 아닙니다. 이차에 그냥 주님이 윗동네로 바로 데리고 가시려고 그러는지, 아무튼 나그네로, 장돌뱅이로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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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
다마네기와 양파
글쓴이: 김동현 조회수 : 1 08.12.20 00:24
http://cafe.daum.net/SeongwooChurch/8nFU/158
오래전에 실제로 있었던입니다.
대구실내체육관 밑에 대도시장 이라는 작은 시장이 있습니다.
그 시장안에 작은 분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옆 테이블의 손님이 주인에게
"아저씨 여기 다마네기 조금더 주세요."
"예? 아~ 양파요?"
"아니 다마네기 좀 더 달라고요."
"그러니까 양파 말하는게 아닙니까?'
"어허 다마네기 더 달라니까요."
"글세 양파 달란말 아닙니까?"
"에이 씨 다마네기 더 달라니까."
"허참 양파 달라면서 화는 왜 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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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점 주인은 양판지 다마네긴지를 식탁에 던졌고,
옆테이블의 손님은 젓가락을 던졌습니다.
아마 그후 10년동안은
옆테이블 손님에게 양파는 다마네기가 아니고,
분식점 주인에게 다마네기는 양파가 아닐것입니다.
한번 뒤틀린 것을 수긍하고 받아 들이는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왜 그런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때문입니다.
한번 벽이 쌓인 사람에겐
다마네기는 양파로 이해가 안되고
일제의 앞잡이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한번 감정이 쌓인 사람은
양파가 다마네기로 이해가 안되고
자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모는 기분 나쁜놈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자기의 마음을 남에게 바르게 전달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짧은 글을 통해서는 더욱 그런것 같습니다.
오지랖 넓은 주영이 아빠가 마실에 나갔다가
소통의 충돌로 식겁하고 있습니다.
개는 반가움에 꼬리를 드는데
고양이는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특별한 의도없이 친한척 하다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몰려가고
한발 더 나가 불신자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영아빠의 일을 보며
처음 올겨울이 춥다고 느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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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삽입 된 것 정리하면
이곳저곳 돌아보니 "나 죄인"씨와 "나 거룩"씨가 보이네요. 그런데 이상한점은 두사람을 향해 "어이~ 죄인씨!"라고 부르니 "나거룩" 보다 "나죄인"이 더 뒤집어지네요. 코메디다. 코메디. 호호호....

crossvillage.org/ 십자가 마을 사이트 입니다. 대구동부 교회 사이트등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