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노잉 (Knowing, 2009)
김 대식
2009. 4. 18. 13:34
노잉 (Knowing, 2009)
[종말 시장]의 틈새를 노려라?
참 쉽죠잉 ~~~ !! 종말 장사
종말의 이미지라는 Knowing 이미지 이냐? VS Persecuting 폭력 당한 폭력이미지 이냐?
케서방이 주연으로 나오는 노잉은 인간이 종말을 해석하는 그 기준이 항상 인간 기준의 사적인 기준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챙길 수 있는가? 정 안되면 자신의 분신이요 열매인 내 아이만이라도 빠져나갈수는 없는가?
마치 바리새인이 사조직으로써 하나님 나라, 묵시 종말 운동을 펼쳤듯이 말이다. (종말이 돈이 되기에. 개인 유익 - 우상)
오늘날 종교 영웅을 앞장세우면서(칼빈, 루터, 칼바르트, 기타등등) 성화론자들이나 개혁주의 자들 등등 그들이 건전한 기독교 문화 운동으로 세상정복을 꿈꾸는 허망한 목사 개인의 사조직으로써, 인간 구원을 위한 사조직이 된 고정된 우상 이미지로써 강도의 소굴이 된 집단처럼 교회를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처럼 말이다.
여기에 도저히 해석불가의 종말을 몰고온 예수님은
해석 못하는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종말을 몰고 오심으로써, 왜 인간이 납득할수 없고 해석불가, 이해 밖의 알수 없는 종말을 몰고 왔냐 라는 이유로 반드시 죽임 당하는 그런 종말로써 다가왔다. (철저하게 저들의 부재성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의 그 죽음에 그 종말에 같은 심판의 죽음을 함께 부여 받은자가 있다.
(마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그것이 바로 삭제 이미지로 종말 이미지로 새 창조 받은 자다. 집단 이스라엘 이다. 광야 이미지요. 십자가 이미지 이다.
남들이 다 아는 Knowing 종말인, 사적인 지식이 되어버린 종말을
도저히 모르도록 하는 그 지혜가 종말때에만 펼쳐진다. 그 단절성이 종말 때에만 벌어지는 잃어버린 자 찾으심이요 새창조 새이미지 이다.
모든 인간이 다 아는 지식을 가지고서 부재성으로써 단절 시킨다.
소통이 되었고 일치성이 된 Knowing 지식을
도통 모르도록 단절 시키는 분은 오로지 인자의 이미지 십자가에 달리신 인자의 이미지 뿐이다.
그 인자의 잃어버린 자기 양 찾으심 앞에서 그 인자를 보고 누구십니까 라고 묻는 질문자를 찾으신다.
자신의 지식을 그 인자 라는 종말의 이미지 앞에서 삭제당하였기 때문에 묻는 질문자 이다.
인자는 삭제와 소멸의 이미지다.
아무도 이 십자가에 높이 달린 인자의 이미지를 해석할 길이 없다. 노잉이 아니라, 디퍼엔스 dif·fer·ence 차이 이다.
(dis·tinc·tion 〔distŋkn〕구별, 다름 / dis·crep·an·cy 〔diskrpnsi〕불일치, 어긋남(크로싱), 모순)
주여 뉘 시이니까? 차이성 이질감 격차 분리 구별 나누어짐으로써 발생되는 질문이다.
누구신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not know
그 차이성의 답은
나는 너가 핍박 하는 예수 다.
종말 때에서만 주어지는 정답이다.
(행 9:1, 개역)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개역)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 9:3, 개역)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개역)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개역)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9:6, 개역)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7, 개역)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행 9:8, 개역)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 9:9, 개역)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잃어버린 경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험(이미지). (할례, 세례 쾅쾅 도장 찍은 마음 판대기에 쿡 낙인된 자, 도장 쿡 이미지 밖에 나가면 개고생이다.)
잃어버린 자(처음자리=무능자=한마리잃어버린양)에게 찾아 오심으로써 비로서 터져 나오는 고백
(행 22:8, 개역)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행 26:15, 개역)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핍박 받는 형상 persecuting 피해자 형상. 찢겨진 형상 적신(赤身) 형상 벌거벗은 알몸뚱이 핏덩어리
per·se·cute 〔p








가해자를 만들어 내는 피해자 형상 만이 가짜 종말이 판치는 형상과 차이나는 참 종말의 형상이다.
(행 9:5, NKJV) 『And he said, "Who are You, Lord?" Then the Lord said, "I am Jesus, whom you are persecuting. It is hard for you to kick against the goads."』
종말의 상황이란 이 두 형상의 차이성을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 VS 그리스도의 형상
가해자의 형상 VS 핍박받는 형상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그리스도를 삼키는 형상 VS 그 열심에 특심인 열심에 무능하게 죽는 형상이다.
이 전 것의 이미지 (헌 이미지)와 VS 더 나은 새 피조물 이미지의 간격을 더욱더 강화 하는 것이다. 미래 완료 로써 말이다.
사도들은 삭제 당하는 이미지(형상)를 기뻐했다. 얼마나 기쁘고 기뻣으면 불 속에 들어가서 그 노래의 진위가 비로소 밝혀지는 것이다.
(롬 8:32, 개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개역)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개역)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개역)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개역)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더 놀라운 것은 다른 모든 피조물은 삭제하는 이미지를 즐겁게 반기는데
(롬 8:19, 개역)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20, 개역)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개역)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2, 개역)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유독 인간만이 사적인 이미지를 챙기기 위해서 가짜 종말인 사조직종말을 퍼트리고
종말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늘 광야에서 벗어날려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공갈 협박하는 것처럼
자기가 원한 사조직 사적 구원 사적 천국 사적 은사 사적인 자아가 사적인 예수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
이미 고정화 된 우상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차이나는 이미지 때문이다.
바로 그것을 들추어내는 것이 종말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