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롬 8,28-30)
22-049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롬 8,28-30)
2024.11.17.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마땅히 빌바를 아시는 분의 죽음) (롬 8,26-27)
로마서 2022 2024. 10. 25. 19:33
22-048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마땅히 빌바를 아시는 분의 죽음) (롬 8,26-27)
〈롬 8,28-3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0쪽, 찬송가 349장 새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 찬송가 350장 새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찬송가 349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찬송가 214장〉
1.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2. 큰 죄에 빠져 영죽을 날 위해 피흘렸으니 /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3. 내힘과 결심 약하여 늘때어지기 쉬우니 /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4. 내 주님 서신 발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찬송가 35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새찬송가 320장〉
1. 나의 죄를 정케하사 주의 일꾼삼으신 /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2. 내게 부어 주시려고 은혜 예비하신주 / 그 은혜로 채워주시사 능력있게 합소서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3. 죄의 짐을 풀어주신 주의 능력 크도다 / 나를 피로사신 예수 내맘속에 옵소서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4.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채우사 /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 언제든지 주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롬 8,28-3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0쪽〉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8, 새번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 8:29,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8:30, 새번역)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먼저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아니] 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니까 100개 이상 검색이 되어서
다 생략하고 주로 새번역만 보태어서 중요한 것만 올려봅니다
(눅 24:31, 개역)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골 1:15, 개역)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 1:16, 개역)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현대어) [믿음]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롬 1:20, 새번역)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롬 8:25,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고후 4:18, 새번역)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골 1:15, 새번역)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골 1:16, 새번역)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 ㉨또는 '말미암아'
(히 11:1, 새번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 ㉠'실상, 실체, 보증'으로 번역할 수도 있음
(히 11:7, 새번역)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셨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그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히 11:27, 새번역) 믿음으로 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냈습니다.
(요일 4:20, 새번역)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 ㉡그, '형제'
(계 16:15, 새번역) ("보아라,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며, 자기의 부끄러운 데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 ㉠그, '자기 옷을 지키다’
(눅 24:31, 현대어) 그때에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예수는 그들 앞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눅 24:22, 새번역)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눅 24:23, 새번역)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눅 24:24, 새번역)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눅 24:25, 새번역)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눅 24:26, 새번역)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눅 24:27, 새번역)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눅 24:28, 새번역) 그 두 길손은 자기들이 가려고 하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는 척하셨다.
(눅 24:29, 새번역)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눅 24:30, 새번역)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눅 24:31, 새번역)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눅 24:32, 새번역)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눅 24:33, 새번역)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고전 2:9,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 현대어)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갔을 때 나는 어려운 말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전 2:6, 현대어) [하나님의 지혜] 그러나 우리는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뛰어난 지혜의 말을 합니다. 그렇다 해서 그것이 이 세상의 지혜나 또 이 세상에서 곧 망해 버릴 집권자들의 지혜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고전 2: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 2:2, 개역)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3, 개역)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전 2:4, 개역)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2:5, 개역)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6, 개역)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고전 2:7, 개역)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8, 개역)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9,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개역)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개역)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2, 개역)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3, 개역)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개역)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5, 개역)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6, 개역)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누가복음을 올린 이유는
예수님이 곁에 있었다가 다시 보이지 않게 샤라지는
소위 육과 혼의 차이로써의 보이지 않는 혼으로써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먹고 잡수신 내용입니다
자 이렇게 먼저 운을 떼는 이유는
이 아들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아들 이라는 의미는
인간의 아들 곧 장자 즉 맏아들을 소위 공백 빈터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두 언약을 한 세트로
하나는 육에 속한 맏아들 장자이고
또 하나는 하늘에 속한 맏아들 장자 이다 말이죠
새로운 아들로 인해서 새로 태어나는
본받아 라고 물론 주틀의 의미가 아니지만
닮는다 라고 했을때에
결국 아브라함 아버지는 아들 이삭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거죠
왜? 아들의 주틀로 인해 육의 차단을 당했응께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은 애굽의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장자 없는 가족을 구성한 겁니다
그런 개개인의 장자 없는 가정이 졸지에
하늘에 속한 장자 곧 아들로 인해서 이미 하늘에 있기에
이 땅에서는 빈터 공백 간극 빵구멍 뻥 뚫힌 장자 없는 가정이기에
개개인이 될 수가 없고 집단화 될 수밖에 없는
사적인 개인 구원도 없는 셈이 되는 거죠
예수 안 이라는 아들의 형상의 주틀에 찍혀 나온 자들 곧 그리스도의 몸 뿐이다는 겁니다
개인 개념 자체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그런 개인이 되어버린 한 몸이 될 수 없는
이 원수가 된
둘로 나누어진 관계를 육의 소욕이라고 합니다
그 육이 아무리 집단화 되어도
그것이 장자로 아들을 낳아도 역시나 육일 뿐이지
보이지 않는 형상이 될 수가 없지요
인간들이 하는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은 결붑 역시나 육이 육을 낳는
육의 이어짐 되물림 밖에 않되는 겁니다
마침 가스펠이나 찬송가를 살펴 봐도
아들의 형상으로 본받는 주틀에 새로 찍혀 나오는 그런 의미 보다
기존의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의 차원의 가사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니고데모가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냐 라는
여전히 육적인 방법만 생각한 거죠
이것이 플라톤 사상에도 나옵니다
영 또는 혼 과
육으로 나누어서 육을 아주 천한 것으로 보고
영을 좋게 해석을 합니다
문제는 새로 거듭나야 한다 라는 겁니다
육은 죽이고 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자체도
육을 죽이는 방법 조차도 육적으로 생각하고
영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조차도 육적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서양의 철학인 플라톤철학의 재해석인 거지요
더군다나 기독교랑 만나서
더더욱 육은 가치 없는 것으로
영적인 것은 고귀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대변해줄 뿐
누구든지 선과 악을 알기에
그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아무리 신을 업급하고 해도
역시나 자기자신을 배제할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육적이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호세아서나 에스겔서를 살펴보면서
이것이 다윗언약을 기준으로 삼았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두 언약의 한세트가 되는 것이 바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다윗언약은 필요가 없다 라는 사상이
이미 유대인들 속에 깔려 있었고
그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상황까지 가며
오늘날 성화론 사상 개혁주의 사상에 까지 갈 정도로
여전히 육적이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된 생각인 육의 생각이다는 거죠
그래서 율법 외에 한 의가
외부에서 나와야 하는데
무슨 수로 나옵니까
그 결핍을 채울 방법은 여전히 자기 숙제 뿐이다 라는 겁니다
율법의 행함으로는 의에 도달 할수 없다 라고 아무리 말해도 말이죠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물론 여기에 반박하는 자들은 야고보서의 행함을 주장합니다만
그 야보고서의 행함이란 보이지 않는 행함이기에 반드시 보이는 행함을 주장하는 자들에게서
부정한 행함으로 취급받는 그런 행함입니다 그 예로 3가지인 이유가
단절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것 이것은 어떤 목사 말 마따나 교인들이 따라할까봐 목사로써 그 성경내용을 의도적으로 뺄려고 하고 부정할려고 하듯이 말이죠
이게 플라톤사상과 기독교가 혼합된 서양철학이듯이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와 기독교의 짬뽕인 혼합종교인 거죠 또 하나는 기생라합의 거짓말입니다 뭐 하얀 거짓말이라고 사기를 쳐도 역시나 보이는 행함으로부터 부정당하는 하얀거짓말 행함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비오지 않기를 3년 반 동안 말이죠 기도하는 행함입니다 이런 행함이 있는 믿음을 하라고 가르치는 목사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교회 망하게 되는데 장사 망칠일 있겠냐 말이죠 철저한 단절인데 누가 그런 행함이 있는 믿음을 하라고 가르치겠습니까? 그저 남들이 보기에도 누구든지 다 따라할 수 잇는 보이는 행함을 가르칠려고 하겠지요 그래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모범사례로 삼을수 있거든요)
그런데 아주 아주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있어요
어린아이에게는 자아가 없기에 아주 쉽지만
어른에게는 불가능 합니다
물론 요즘 어린아이는 아이가 아닐 정도로 어른 뺨 칠 정도로
부처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까
신 위에 있는 신 보다 하나님 보다 더 높은 건물주가 되겠다 라고 할 정도이지요
뭐 우리 때도 마찬가지로 뭐 높은 사람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둥
장군 인기 연예인 등등 꿈을 말하곤 했지만
그때는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 자체를 모르고 그저 선한 이미지로 본 거죠
그런데 요즘은 진짜로 벌써 아이가 돈의 가치 기능을 아는냥
단순히 어른들이 아이에게 가스라이팅 해서
그 증상물로 나오는 차원이 아닐 정도로 너무 너무 세세하게 말하다가
또 갑자기 어린애 같이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그것은 천재 아이들 모습에서 가끔 보이는
대학수학문제를 막 그렇게 잘 풀다가
정작 1 더하기 1이 왜 2 인지 몰라서 갑자기 울어버리는
그런데 강제로 억지로 천재 영재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천재도 아니면서 말이죠
그들 부모들을 보면 물론 알겠지만 말이죠 증상물이기에 그 아비에 그 자식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놀 때 보면 소름이 끼친다 말이죠
이것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어린아이들을 암놈 곰을 보내서 갈기 갈기 찢어죽은 사건 말이죠
엘리사를 대머리 라고 놀리는 아이들 뭐 청소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철없는 애들인데 너무 하잖아 촉법소년인데 말이죠
그런데 애들이 그렇게 엘리사의 가치를 알 정도가 아니다 말이죠
어른들이 시켜서 어린아이들은 방패막으로 삼았다 라는 어떤 인터넷글도 본 적이 있는데
결국 어른들의 증상물이다 라는 거죠
아무튼 그렇게 하신 이유는
엘리야는 인정하지만 엘리사는 인정 못하겠다 라는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대변해 줌에 있어서
선지자란 그 시대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로써 하늘의 것을 외쳐야 하는데
인간들은 땅의 사정을 받아달라고 함에 있어서
어제까지 믿던 하나님 그리고 어제까지의 엘리야 선지자를 고집함에 있어서
뭐 정통성이 없다 라는 둥 이렇쿵 저렇쿵 궁시렁 거리면서
오늘의 하나님을 거부한다 라는 점에서 이들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비록 촉법소년 이라 할 지라도 말이죠
어제까지의 엘리야의 하나님은 믿겠는데 사실은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주님은 선지자를 보냈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메시아 기능을 한 겁니다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말이지요 예수님의 노선입니다 그렇게 죄 문제를 해결했거든요
땅의 문제는 죄 문제 말고는 없으니까요
그것도 약속의 땅에서만 벌어지는 죄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제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해서 없다 말이죠
그래서 엘리사가 대신 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엘리사를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수결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뽑지 않았다 라는 점입니다 토기장이 마음대로 뽑았다 말이죠 그것은 약속의 민족 또한 다른 민족들에게 다 물어보고 뽑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경은 전체적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이렇게 막혀 있다 라는 단절성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을 활용하시는 겁니다
우상을 믿는 이방민족은 뭐 당연히 다를바 없고요
심지어 이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 조차도 과거는 우상의 민족의 땅이였으니까 말이죠
그런 자들을 어떻게 거룩으로 옮기는 제사장 기능 곧 성전의 기능을 함에 있어서
선지자는 이 약속의 땅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자로써 등장하는 겁니다
땅의 문제는 곧 죄의 문제이고 그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낸 선지자로 인해서 해결되기에
선지자 존재 자체가 중간의 막힌 담을 허는
둘로 나누어진 원수된 관계를 한 몸으로 만드는 기능을 하는 겁니다
곧 은혜죠
선지자가 있다 라는 것은 저 우상숭배자들과 다를바 없이 저주받아도 마땅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왠 은헤인지 하늘에서 보낸 선지자로 인해서 이 죽은 자들을 살려주심을 받는 은혜를
심판 속에서 단절 속에서 누리는 겁니다
그런 선지자를 모독했다? 대머리 라고 엘리사를 저주했다 말이죠
이것은 주님의 용서를 스스로 거부하는
마치 일만달란트의 용서 탕감을 모욕하는 7에 70번의 용서를 거부하는
자기 의로 쌓은 남 7번 용서를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 안 갚는 자를 때리고 감옥에 쳐 넣는 모습처럼 말이지요
일만달란트의 용서의 가치를 역설적이게도
절대로 용서 못하는 용서 없음으로써 증거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은총 은혜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족히 비교 못하는
단절성이요 흉내내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소망이다입니다
1급 살인자 마저도 용서하는 그 용서 속에서는
절대로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 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의 선악사상이 담겨지 있는 겁니다
은혜를 모독하는 선악법 말이지요
정작 본인들은 이 율법과 선지자 덕분에 그 동안 살았는데
정통성 정통성 우기면서
엘리사의 모습이 외모가 저주 받은 흠모할 모양이 없다 라고
멋들어진 신사 나오신다 길을 비켜라 라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모세의 홍해 가르는 기적
남들이 누리면 뭐하노 내가 누려야지 라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어서 어서 기적을 보여달라 라는 식으로
사람들이 흠모할 모양
아름다운 모양이어야 하는데
어라 대머리이네 레위기에서는 저주 받은자와 같은 흠이 많은 자가
어떻게 거룩한 일을 할수 있는가? 날 때부터 소경이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가? 라는 식으로
다들 보이는 방식인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더라 말이죠
정작 사람들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다들 고개를 돌리는
저주 받은 새까만 태양빛에 그을린 검은 얼굴로 오시니까
다들 저주를 퍼붓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엘리사는 예수님 또한 이런식으로 은혜를 모독한다 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만 생각하신다면 그건 이미 반칙이다 말이죠
그럼 출애굽 때의 그 수많은 애굽인들의 더 몇십배나 되는 어린아이의 죽음
특히 장자가의 죽음은 왜 반발하는 자가 없을까요?
그건은 매우 분명한 심판성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 놓고 반발하는 애굽왕 바로와의 강퍅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거죠
그러나 이스라엘이 설마 하나님을 반발할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설마?
자 그런 점에서 갭 간극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평상시 간극을 좁히고 좁히고 아주 가깝게 좁혔다 라고 생각하지만
특히 성화론자들을 보면 기가막혀요
그런 악마짓 마저도 자기들 모습을 배우라고 막 가르치고 막 자랑질을 하는데
속이 다 울렁 거리더라 말이죠 똥을 온 몸에 쳐바르고서는 그것을 자랑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죠
성령의 단절성 곧 하늘에서 출발한 은혜가 없이
땅에서의 연합성을 추구하다 보니
선 줄 로 알더라 말이죠
이미 다 넘어졌는데 넘어진 줄도 모르고 말이지요
그런 자들에게 엘리사가 대머리로 와야 한다 라는 것은
거울로 비춰주는데
율법과 선지자는 거울로 비춰주는데 자기 망상의 가치에
자신들의 저질스러운 모습을 할 줄도 모르고 저질스럽다 라고 모독을 하니
갈기 갈기 찢겨 죽는 겁니다
반대로 높이 우대를 해도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고자 하는 것을 염두해 두고서 높여주는 그런 여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은혜가 아닌
땅에서 출발하고 땅에서 만들어는 그런 우대는 언제든지 이 새로 교체되는 새선지자 앞에서
그 한계점이 드러나는 겁니다 어제 먹혀들던 엘리야에 높이 대우한 것이
지금 새로 보내신 엘리사의 대머리 모습 앞에
탁 걸려서 걸림돌에 넘어지는 겁니다
여전히 오늘 새롭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헤가 아니면
매일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용서가 아니면
암논과 다말의 사건에서처럼
자기 한계에 부딧히게 되고
엘리야처럼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고 왜 배신 때리냐 라고 나오게 되는
우리는 언제든지 각기 제 갈길로 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아시고
늘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으면 안되는 자 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땅에 아직까지 하늘에 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이상
내가 알아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말이죠
오직 하늘에서 시작한 이 은혜의 십자가의 피 용서가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는 땅의 사람 곧 첫아담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시작한 아들의 형상이 매일 매일 진흙을 빗듯이 빚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빚다 라는 표기가 맞나요? 빚다 라고 하니까 바로 생각나는 것이
어린 여자아이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달라고 아니면 엄마가 매일 매일 해 준다 말이죠
그런데 홀로 살게 된 아빠가
뭐 이혼이라든가 아니면 아내가 죽게 되었다든가 그렇게 혼자가 되면
세상에서 갑자기 제일 어려워지는 것이 바로
초등학생 여자 아이의 머리 빗겨줘서 단정하게 모습을 갖추는 것이 제일 어렵더라 라고 하더라 말이죠
초반에 너무 어렵다 보니 몇십번 아예 따로 시간을 내어서 반복 학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거지요
마치 우영우 변호사처럼 아빠가 언제 제일 어려웠나요?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맨발로 발아 아파서 뗴굴 떼굴 구를때에
아빠가 왜 저러지 라고 봐줄십상 한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그 어떤 공감
연합 터치 만지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봄이 없을 때 가장 서럽더라 라고 하잖아요
각자 따로 놀 때 말이지요 외 롭 습 니 다
라고
자 그래서 주님은 철저한 단절을 통해서 이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늘에서 율법과 선지자를 보내신 겁니다
제발 개인 구원 따위를 바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지 말고
둘이 하나가 되는 이 동행을 하늘에서 이루시고자 말이죠
그렇다면 땅에서 시작한 동생을 차단 철저하게 차단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화목제가 되는 겁니다
화목이 뭡니까?
화해 하는 것 아닙니까
즉 둘이 떨어지는 이혼을
이 원수된 둘로 나누어진 관계를 하나가 되는 결혼 아닙니까
그런데 땅에서 출발하는 모든 구원은 음녀처럼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고 자기 쪽에서 결혼을 할려고 하니
그 가짜 구원 가짜 결혼의 결과는
결국은 혼자가 되고픈 겁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결혼하는 척 했지만
자기 자아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결혼 해도 외로운 겁니다
서로가 서로 상대방에게 녹아져 없어져 버리면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는 열매가 되고 선물이 되는데
혼자가 될려고 하니
그저 상대방을 이용해 먹을려고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죽기 살기로 따라잡는 겁니다
예수님은 계속 도망치시구여
너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것이 아니라
먹고 배불러서 자기 배를 위하여 날 임금 삼는다 라고 나는 너의 임금이 되기 싫다 라고 도망치시는 겁니다
자 그래서 엘리사를 선지자를 곧 율법과 선지자인 이 은혜를 모독함에 있어서
주님께서 암곰을 보내어 갈기 갈기 찢어죽이시는 겁니다
네 너무 너무 충격적인 사건 맞습니다 도저히 못 받아들일 정도 맞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 사건을 이해 못한다 라는 것은
선악적이거나 윤리 도덕 유교를 따지는 이게 다
행함과 은혜의 차이 이다는 거죠
얼마나 울가 행함으로 살고 있지 곧 우상 육신의 생각
육의 소욕대로 하나님의 원수가 된 육신의 생각 말이죠
절대로 은혜로 살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다 라는 것의 반증입니다
행함은 과거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마치 통장에 임급한 돈으로 은행창고 있다 라는
땅의 사고방식의 시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바로 그런 부자의 창고 늘린 것에
오늘밤 이라는 새로운 시간 앞에서
니 영혼 취하면 그 은행에 저금한 돈으로 희죽 희죽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내 영혼아 오늘밤 편히 쉬자 라는 그거 한 순간에 다 날려버린다 라는 겁니다
내 시간 내 행함 내 통장 내 창고를 따로 챙겼다 라는 자체가
구약의 약속의 땅에서는 허용이 되지 않거든요
약속의 땅 만큼은 늘 매일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처럼
오늘 새롭게 내려오는 그 은혜로만 살도록 되어 있지
무슨 수로 땅에서 올라오는 그 지옥
그 죄악
그 배고픔 그 목마름을 늘 매일 매일 올라오는 그 지옥을 무슨 수로 삼시세끼
늘 억누리고자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고자 무슨 수로 버티냐 말이죠
삼시세끼 10여년 만에 다시 하던데 ㅋㅋㅋ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난다
전쟁을 아무리 억누를려고 막고 막아도
오히려 남의 전쟁에 끼어들어서 총알받이가 되겟다고 하는
우리 오빠 무식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ㅋㅋㅋ
참 무당들끼리 참 잘 논다 말이죠
이런 지옥인 세상에 이런 지옥이 늘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스멀 스멀 올라오는 이 지옥에서
다들 선지자 필요없다 새하늘과 새땅 필요 없다
우리가 알아서 할께 약이나 다오
약 주면 뱀이 인간으로 변합니까?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이 바로 우리 모습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더더군다나 뭐 장자제단 장자민족 말만 번드르 할게 아니라
장자 답게 맏이된 민족이 저 맏아들 되신 아들의 형상을 따라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사는 것 보여주던가 아니라
다들 예수 이용해 먹고 누가 누가 더 자랑꺼리 많은가 그것을 자랑하는 자들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라고 하면 뭐 합니까?
그 정도로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기 때문에
매일 매일 성령의 놀라운 탄식이 없으면
그저 보이는 소망을 따라 혼자 되는 것이 편하거든요
내가 사라지는 신랑안에 나를 녹여들어 내가 사라지는 그런 사랑은 없는 겁니다
사랑만이 나를 그 속에 녹여 오로지 상대방에게 다 줄수 있거든요
이런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허구인데
우리는 나 혼자 라는 허구만을 위해 사는 겁니다
그것 역시나 사라지고 없어질 옛것일 뿐인데 말이죠
내 목숨 바칠 데가 없다 라는 것이 가장 불행한 자입니다
다윗의 행복은
뭐 행복하십니까 요즘 사람들은 모든 관심사는 행복이다 말이죠
행복의 빈부 격차이지 돈과는 상관없더라 말이죠
좀 머리 굴릴줄 아는 놈들은 행복하십니까 라고 접근해서 사기를 치는 거지요
다윗이 말하는 유일한 행복은 나 다윗을 위해
이 아무것도 아닌 죄인 중의 괴수를 위해
온전히 자기 목숨을 다 녹이신 이 사랑 앞에서
비로소 무릎 꿇었다 라는 것
이제 드디어 내가 사라질 내 목숨을 버릴 바칠 가치를 드디어 발견했다 라고
드디어 씹고 뜯고 먹고 마시는 겁니다
삯꾼 목자는 양을 등쳐먹을려고 회개해라 눈물 흘려라 기도해라 금식해라 하고
자꾸 법 법 법 행함을 강조하지만
정작 나의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준 그 사랑 앞에서
드디어 해방 되었다 라고 죄인의 노예의 자리에서
나팔을 불며 자유를 외치는 다시는 노예짓 하지 않는거다 말이죠
도라어 저 놈들은 나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여전히 땅에서 시작하는 에덴동산 만드는 애굽나라
잔칫집 만드는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우리는 도리어 광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겁니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아니 다시 배고프면 다시 먹어야 하는 그래서 그 가짜 천국을 잔칫짖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전히 남의 것을 빼앗아 등쳐먹는 그것도 힘 있는 자는 못 하고 아부하고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는 그 의문의 반복을 언제까지 할렵니까?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는 아예 배고픔이 없는 뱃구멍 빵구멍 내는
여호와의 뿔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 빵구멍 내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 이다 말이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인을 율법을 쥔 남정네들이 정죄하면서 돌삐를 들었다 말이죠
그런데 정작 진짜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님은 사랑이 없는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경건의 껍데기 모양만 갖춘 그들에게 도리어 거울로써 비추시니까
돌을 던진 것이 도로 자기들 눈에 던지는 눈티 반티 되는
자기가 누워서 침 뱉기를 하더라 말이죠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차원입니까? 아니면
정죄로써만 끝날 문제입니까?
도로 돌삐를 던질려는 율법을 쥔 남정네들을 쫓아내는 것이
죄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이지
언제까지 돌삐 던지면서 그 의문의 반복을 하냐 말이죠
지도 해결 할 마음이 없고 남도 해결하지 못하도록
중간에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어내는
그카이 어떤 사모가 뻘건 글씨러 여고괴담처럼 귀신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고 하지 않았냐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라고
선악의 법의 언어로 따지더라 말이죠
아니 남편에게 얼마나 사랑을 못 받았으면 그것을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법의 언어로써 조건과 원인을 갖추는 선악의 언어로 보고 있으니
더더욱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을려는 사탄의 회가 되더라 말이죠
오늘 나오는 아들의 형상 본받자를 법의 언어로
하라 하지 말라 언어로 보게 되면
땅에서 출발한 육들이 이거 행할려고 얼마나 바르게 살자 운동 할꺼 아니겠습니까?
또 이카이 나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운동을 하겠다 라고 또 막살자 운동을 하겠다 라고 나서요
둘다 운동이기는 맹 마찬가지인 땅의 일인데 말이죠
하늘에서 시작한 은혜는 그런 운동들의 한계를 이미 다 알기에
아예 원천 차단하시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되심으로만
다 이루시는 완료를 이루시지
미완료로만 남게 되는 그 의문의 반복을 왜 하냐 말이죠
어차피 바르게 살자 운동 하는 놈들은 막살기 운동을 하는 놈들이고
막살기 운동을 하는 놈들은 바로 또 자세를 바꿔서 바르게 살자 운동을 할 놈이거든요
막살자 라는 자유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율법 외에
행함 행위라는 내 내부에서 출발이 아닌
내 외부
땅의 바깥
하늘에서 출발한
외부에서 덮쳐지는 자유입니다
자기가 운동을 해 버리면 그것은 또 법에 갇혀서 심심하면 햇냐 안했냐 그것만 따져요
성경은 하라 하지 말라가 없어요
모든 것은 다 사랑의 언어 뿐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구약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막혀있다 라는 단절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단절을 거쳐서 자유이니까 처음부터 은혜가 먼저 떳기에 사랑하는 자에게 매를 먼저 대신
저 우상숭배자들과의 차이와
또 우리가 시편을 통해서 살펴봤듯이
다윗언약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물론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맞아요 맞는데
졸지에 지금 이스라엘 혈통 육정 사람의 뜻처럼
유대인만 구원받을려고 하는 사적 개인적은 그 따위 가짜 구원을 노리는 놈들이더라 말이죠
그 빈자리 티오 남은 자리 마저도 주님이 손수 직접 채우셔야 한다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이 할려고 하겠냐 말이죠
그렇다고 내가 가겠습니다 보내주소서 라고 한다 라고 되느냐 말이죠
철저한 단절성을 모르면서 내가 죽겠습니다?
아니 그것이 다윗이 말한 행복이라메 ~~~
네 맞습니다 그런 순교 조차도 개인의 죽음이지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게 아니잖아요
좋다 싶으면 자꾸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려고 하지 말아라 말이죠
매일 매일 새로 주어지는 용서나 본인 먼저 받으라 말이죠
주님이 알아서 시키면 다 하게 될 것을 왜 나대냐 말이죠
아까 올란 구절에도 있었는데
(롬 8:25, 새번역)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롬 8:25, 공동)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히 11:1, 현대어) [믿음]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어 히브리서 11장 1절에 왜 기다림 이라는 의미가 있지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새번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 ㉠'실상, 실체, 보증'으로 번역할 수도 있음
아 또렷하기에 기다리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라는 말이구나 말이죠
즉 내가 기다리는게 아니라 기다림이 나를 대상물로 삼았기에 안 기다리고는 못 배긴다
즉 이미 다 이루어 졌다 라는 완료의 뜻인데
성질 급한 나 같은 사람은 간따나 난독증에 앞면 인식장애 이다 보니
더더군다나 이제는 오래전에 귀가 한 쪽은 가졌다 말이죠 그 카이 더더욱 문해력이 없는데다가 성질급하게 후딱 한번 읽어버리고 치워버리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어중이 떠중이 아니냐 말이죠
가제트 형사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잖아여 그 멍멍이 개와 조카가 사건을 다 해결한다 말이죠
도리어 가제트는 대상물이 될 뿐입니다 매일 매일 7에 70번의 용서를 퍼부어야만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은헤 받은 자로 말이죠
그런데 법을 손에 쥐어버리고 돌삐를 잡고자 완악함을 잡고자
원인 조건을 갖추게 되면
또 바로 자기 한계에 부딪혀서 엘리야처럼 하나님에게 따지게 되는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고 목숨 바쳤잖아요 왜 안 데리고 가십니까?
이 보세요 벌써 언어가 법의 언어이지 사랑의 언어
은혜의 언어
감사의 언어가 아니잖아요
주님의 눈믈로 나온 언어가 아니다 말이죠
그 정도로 우라는 늘 결핍을 채우고자 미완료인 그 의문의 반복인
선악의 언어
법의 언어를 쥘려고 그래야 무시 안 받는다 라고
꼴에 판사도 아니면서 하나님과 같이 된 티를 팍팍 낼려고 선악을 쥐어야만
내가 먹음직 보암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하나님을 잡아먹는 하나님이 될 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내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나와 상관 없다 라고 묵으라 묵어
무라카이 라고 떠먹여줘도
그때는 또 남의 눈을 의식해서 선악의 법 따라 안 묵을려고 해요 글쎄
주님은 너가 내 살과 피를 먹어봐야 그 선악이 너에게는 헛됨을 아는 우상이라는
사탄의 깊이를 알게 되는데
그래야 하나님의 깊이인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데
자꾸 나는 아간이 아닙니다 나는 구리놋뱀이 아닙니다
나는 주와 함께 못 박힐 자가 아닙니다 주님혼자 정 박히시던가요 라고 말하고픈데
또 남들의 시선 때문에 같이 죽겠습니다 십자가에 끝꺼지 따라 가겠습니다
에라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사탄의 깊이도 모르면서 선을 알겠다 라고 선을 행하겠다 라고?
불의한 돈에 충성도 안하면서 정결한 돈에 충성하겠다 라고?
(눅 16: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눅 16:10, 개역)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1, 개역)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고자 목숨을 거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였다면
누가 제대로 살 자가 어디있느냐 말이죠
의사가 기껏 돈만 벌려고 의사가 되었냐 말이죠
그렇다고 건강한 자만 오너라 의인만 오너라 라고 하면 말라고 의사가 되느냐 말이죠
의사는 오로지 환자를 위해서 의사가 되었고
구원자는 오로지 죄인을 부르로 온 것이지 의인이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만약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의사가 되었다면 언제든지 더 많은 돈을 주는 기술직으로 옮겨갈꺼다 말이죠
갑자기 시골의사 라는 유튜버가 생각나네요
자기는 솔로몬의 잠언 뭐 전도서 그거 못 믿겠다는 둥 글쎄요 라고 하더라 말이죠
솔로몬이 그렇게 더러운 짓을 많이 했는데 과연 지혜자 맡기는 맞은지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야 목사들이 공부를 할 껀데
돈만 밝히는 놈들이라서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 시골 의사는 자기를 제대로 인도해줄 목사를 못 만나니까 아직도 헤매는 거죠
마치 본인이 의사라서 공감할 것이
환자가 돌파리 의사를 만나게 되면 헤메게 되듯이 말이죠
그러니 환자 내부의 숙제가 아닌
하늘에서 출발한 땅 바깥 외부에서 벌리시는 은혜사건이 아니면
우리는 엘리사를 놀려먹는 외모지적이나 하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들처럼 이미 죽은 상태에서 찢겨죽는 겁니다
새삼스럽게 찢어죽인게 아니라
이미 약속이 없으면 이미 죽은 상태이기에
원래 죽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 단절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어딜 인간의 생각을
사람의 일을 하늘의 일에 자꾸 섰을려고 하느냐 라고 말이죠
자 그래서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에 의해
우리는 새로 찍혀 나오는 붕어빵처럼
아들의 형상에 찍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죽음으로 새로 태어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보이고 포작이 되고 이해하는 식이 아니라
그 반대인 보이지 않고 포착불가이고 이해되지 않기에 기다림의 대상물이 되는
이것을 다 합쳐서 그리스도의 능욕 고난이라고 합니다
고난이라고 하니까 고생
집나가면 개고생 뭐 그런 것을 말하는데 아닙니다
그런거 없어도 엘리사선지자처럼 거울로 비춰줘야 하는 것과
그카면 누가 좋아라 하겠습니까 다들 미워하지
가는 곳 마다 환영을 받지 못하는 거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는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가는 곳 마다 박대를 당하는 거죠
요즘으로 치면 교회를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음꺼리 무시꺼리가 되는 거죠
그럼 저들은 무엇을 주장하기에 박대 하느냐
무시하고 거부하느냐
우리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즉 내가 행한 것 내가 믿은 것 내가 실천한 것
이거 무너뜨리지 말라 라는 겁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보면 되느냐
바로 보이는 형상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플라톤이 육이라는 더러움을 버리고 영(영혼)이라는 고귀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이것이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이데올로기 이다 말이죠 초등학문이다 말이죠
결국 뭐냐 선악이다 라는 겁니다
영혼을 추구하는 것이 육을 버리고 말이죠 악을 버리고
선윽 추구하는 것이 바로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서 결혼하는 것이다 말이죠 이에 음녀죠
이런 사상이 깔려서 국가 라는 짐승을 추구하는 겁니다
음녀는 신랑을 자기 쪽에서 찾아 헤메이듯이
어떻게 하면 짐승 등 위에 올라타서 짐승을 부려먹을수 있느냐만 꿈꾸는 겁니다
종교 라는 음녀는 늘 국가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타야만 비로소 복수를 달성한다 말이죠
여자의 한 풀이는 그 결핍은 내가 더 많이 희생했다 이거 알아달라는 복수심이다 말이죠
그래서 과거에 하나의 종교가 국가를 다 장악하는 국교가 되었을때에
왕은 졸지에 허수아비가 되는 거죠
그때 단물을 쪽쪽 다 빨아먹는 겁니다
차라리 분리가 되면 종교는 음녀 짓이 티가 팍팍 나고
국가는 짐승 짓이 티가 팍팍 나는 거죠
그런데 서로의 유익을 추구해야만 하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저 예지력이 있는 무당 보살을 찾는 거죠
미륵 보살에서 미륵 이라는 뜻이 뭡니까? 메시아 라는 뜻 아니냐 말이죠
메시아란 구원자 라는 뜻이고요
그러니 이 메시아의 뜻도 모르고 무식한 오빠가 지가 뭘 안다고 말이죠
음녀는 이렇게 국가 라는 메시아의 등 위에 올라타서
통일대박통령이 되어야 하니까요
자 이렇게 선지자는 바로 그런 돈 곧 에덴동산 같았더라를 계속 유지하고파 하는
그 애굽을 단절 시키는 광야를 싫어버린바를 추구하는 겁니다
물론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어야 하니까 거짓선지자도 투입시켜서
그 반대인 성령론을 개방으로 증거게 만들어서참선지자의 소욕을 반대로 추구하도록 하는 거죠
그래야 육의 소욕을 대변하는 철학자들과 선각자들 그리고 거짓선지자들과
성령의 소욕인 참선지자의 단절성
이렇게 이 간극을 벌리시는 겁니다
종교라는 음녀는 국가를 장악해서 짐승 등 위에 올라타서 그 동안의 설움을 돈으로 권력을 누리는 것이고
반대로 국가 라는 짐승은 종교의 힘 하늘의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하늘의 뭇 별 보다 더 높은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그 하나님의 자리를 빨리 잡아먹어야 온 천하 만국을 다스려야 하나님 보다 더 높게 된다 말이죠
하나님이 뭡니까 유일하다 보니 더 이상 오를데가 없는 최상의 위치요 자리 아닙니까
그 높은 자리를 늘 마귀가 호시탐탐 노렷듯이 말이죠
이것이 보암직 하거든요 보이는 형상 이다는 겁니다
이것을 글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사기를 치면서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 하자 라고 해요
또 운동을 해요 운동
구호를 외치고 개인들을 모아서 집단화 하지만 역시나 개개인들 밖에 안되요
그리스도의 몸 만이 집단이요 그 집단만 구원해요
외부에서 구원이 안되는 것들은 아무리 집단화 해도
내부의 숙제 밖에 안되고 내부의 숙제로 내부 분열로 스스로 망하는
누워서 침뱉는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본문도 자기의 시간으로 해석하지
주님의 시간으오 못 보는 겁니다
시간이란 결국 영원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영원을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소망이 담긴 예수님의 몸을
그리고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이눈 사랑을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것인데
시계가 발명이 되고서 더더욱 결집할수 있다고 착각하니까
인간이 드디어 시간을 의식하는 근대가 되니까
창새전 창세후 라고 전과 후 라고 언어를 붙이더라 말이죠
아무리 붙여도 창세전 자체가 시간이 없기에 전이라고 못 붙이고
창세후의 시간의 의식으로 둘로 나누고자 시간 개념을 끌어온 것이지
정작 창세전과 창세후 라고 붙일수 있는 인간은 사실상 아무도 없어요
창세와 무관한 창세 바깥에서 그것을 붙이고 나누고 의미를 두면 또 몰라
창세 속에 들어간 이상 이것은 내가 명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
창세자 에게만 해당 되는 언어가 되는 거죠
결국 선악의 판단 조차도 주님을 말하기 위한 것인데
다들 자기를 말하고자 선악의 언어로 다루다 보니
육은 악으로
영혼은 선으로
창세 전후 라고 명명하고 말하고 의식하는 나는 고 순간만큼은 선이고
이것 조차도 의식하지 않는 자는 무지한 자이다 라고
그 순간 순간의 것을 모아 모아 영원으로 영혼으로 나아가는
육을 버리면서
자 이런 생각들이 이미 사회적으로 공간 시간 역사에 다 깔려서 그것을 답습하는 이 환경애소 못 벗어나다 보니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하시고
그 미리 정한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또 의롭다 하시고
그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신다 라고
마치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성화론자들과 같은 성숙도 성화도의 계급 카스트 제도 이다 말이죠
이런 성숙도가 도리어 주님에게서 걸려 넘어지는 꼴이 뭔고 하니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 천한 계집의 신분인 그 계급이
자극히 높은 왕비의 자리에 앉혀지게 되는 이 지혜 앞에
졸지에 걸려 넘어져서 세상이 격동하며 견디지 못하게 되더라 말이죠
그래서 베드로를 탈탈 털어서 아무것도 없는 죽은 자의 자리에서
원수들이 서로 고소를 할 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는 신부의 자리에 높여버리니까
배아파 죽는 겁니다
주님의 시간은 10달 동안 배아파서 낳은 고행 고통 수행 숙련이 아닌
단 하루 만에 단 번에
자 이렇게 되면 인간의 숫자 개념이 다 뒤틀려 지는 거죠
공간 곧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목사사모 말 마따나 신부가 될려면 신부수업을 미리 가급적 어릴 때부터 해서
조신 조신 하계 귀족문화의 예의 범절을 배워서 차근 차근 쌓아가야 하는데
갑자기 천한 잡것이 생선 팔다가 불쑥 나타나서 생선 비린내를 온데 다 풍기면서 새노래를 부른다 고라 고라 고라고잉 ~~~~~~
잉여의 세계 곧 선물의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처럼
뒤죽박죽이다 말이죠
전기가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흐르는 그 법칙을 다 깨고
지멋대로 뒤죽박죽 흘러버린다 말이죠
모든 법칙을 다 깬다 라는 법칙 하나만 있을 뿐이다 말이죠
즉 잉여 라는 선물 곧 은혜 공짜 사랑 하나만 남길 뿐이고 다 사라지는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하자마자 쭐꾸덕 쪼르르르르르르르 내려갔뿌서야 ~~~~~~~ 했다께롱
선 줄로 아는 자 넘어질까 두려워 하라
결국 이스라엘 유대인이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사자 앞에 비둘기처럼 온 사지가 떨리는
머리 쳐박고 고개를 못 들고 연탄잿더미를 뒤짚어 씌면서
생일을 저주하면서 가슴을 치며 통회하고 상한 마음으로
모든 무릎을 다 꿇어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이 사망의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울면서 구원이 되는 거지
기생라합처럼 40년 동안 기다림으로 간담이 녹으면서 말이지요
그 천한신분이 높여져야 더더욱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지
높은 신분이 구원받으면 하나도 두려움도 없고 떨림도 없이
비둘기가 아닌
사자로써 구원받으면 아무도 격동치 않고 견디지 못해서 발악하지 않는다 말이죠
도리어 박수를 칠 뿐이다 말이죠
너는 타고 났응께 ~~~~~
출생의 비밀잉께
진짜 비밀이라면 말도 안되어야 하는데
다들 말 되는 출생의 비밀이 되니
기생라합이 예수님의 족보에
쫄딱 망했다 하나님이 나를 괴롭혔다 라고 우는 나오미가 예수님의 족보에
무태한 여자가 예수님의 족보에
처녀가 감히 임신을 해서 예수님의 족보에
정작 자기 남편을 죽인 자의 아내가 되어서 예수님의 족보에
이것은 세상의 선악 개념을 뛰어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덕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선악으로도 안 통하는
오히려 뛰어넘는다 라고 하니까 높아진 것이 아니라
도저히 그 낮은 곳으로 더 이상 내려 갈려고 아무도 하지 않는
그 불의한 자에게 하나님의 의
세상에서 출발한 가장 높은 의가 아닌
땅 바깥의 하늘에서 출발한 하나님의 의가 은혜가
바로 이런 불의한 자에게 덮쳐졌다 라고
에이 그럼 우리가 불의하면 하나님이 선해지겠넹
그 카이 이미 너거들은 저주 받았다 라고
이미 보이는 소망 보이는 형상만을 쫏았다고 정죄하더라 마리죠
하나님의 선하심이 의로움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욕 곧 대신 저주 받는 몽둥이 심판이다 말이죠
즉 대신 매 맞으심이 저들 여자 5명의 불의함에 대신 죄값을 치르고자
대신 심판받았기에
의사는 환자에게 딱 맞기에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기에
결국 선악의 판단은 주님의 몫인데
주님의 선하심이 원래 정직원 아침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일하는 농부의 주인으로써
놀고 있는 자 12시부터 투입시켜서 오후 두시 세시 네시 심지어 마지막 딸랑 30분 일한 자에게
동일한 허루 품삯은 주심에 있어서
만땅을 다 채운 정직원이 왜 우리는 더 많이 더 많은 시간
여기서 시간이 나오지요 공간 몸도 나옵니다 더 수고 더 고생했다 라고
그런데 딸랑 30분 일한 비정규직이나 12시간 다 채운 정규직원이나 왜 똑같이 줍니까
형편성이 없잖아요 보편적 윤리가 안 맞잖아요 라고 선악을 주장할때에
예수님의 선하심은 과연 의인이 있기는 있냐?
오히려 주님이 긍휼을 베푸는 탕자의 용서 앞에서 그 사랑 앞에서
옳았습니다 라고 나와야 하는데
뭐 우리의 불의함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 라고?
이게 내 놓고 선악을 유발하고 있지
행함 곧 시간을 때려부은 나의 몸 공간을 의식하게 되지
누가 주님의 시간으로써의 주님의 선하심으로 보겠느냐 말이죠
사실은 정작 벌써 심판 받아 죽어 사라졌어야 하는 우리인데 ~~~~~~
주님의 시간을 보는 자 곧 보이지 않는 소망
보이지 않는 형상을 소망하는 자는
내 시간이 따로 필요가 없응께
주님의 선하심으로 만 밖에 안보이는
긍휼을 바라는데
비둘기처럼 벌벌벌 두려움과 떨림으로 긍휼을 바라는
매국노 세리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집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의 기능인데
먼저 심판 받았기에 장자 이기에 먼저 된 자이기에 빵구멍이 먼저 뚫힌 자들인데
자기 가정에 장자가 없이 빈공백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상태인
하늘에 장자가 있는데
정작 자기의 장자가 자기 개인의 집에 꽉꽉 차 있고
그 장자가 있으니 재산을 유업을 물려 줄수가 있고
그렇게 역사를 이루어서 족보 육의 혈통을 계속 이어 갈수가 있는
가문 공간 집을 형성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다윗이 바랬던 보이는 형상이요 보이는 소망의 성전인데
그거 홀라당 다 불타버리고
보이지 않는 형상에 도리어 다윗 본인이 찍혀나와야 하는
본은 다윗의 자손으로 두셨으니
그 뽄에 그 주틀에 그 아들 장자 맏아들 되신 예수님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이죠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우기는 보이는 형상들이 첫아담의 형상들이
마지막 아담으로부터 다시 살려줌을 당해야 하는 겁니다
아 우리는 하나님 형상으로 충분하다 아들의 형상 필요 없다 라는 자들일수록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사라질 영광에 목 매는 겁니다
그카이 저 시간순으로 성숙도를 높일려고 해요 그렇게 되면 출발 자체가 틀린
왕족이나 부자나 경제적으로 나은 사람이 유리한 출발이겠지요
그런데 주님은 뒤집어 엎어 밭갈아버립니다
밭 갈때에 가까운 흙이 제일 많이 뒤집어 지고 제일 끝에 있는 흙이 제일 적게 뒤집어지나요? 그런거 없지요 무조건 양쪽다 아예 지근 지근 밟아서 보들 보들 부들 부들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딱딱한 놈이든 덜 딱딱한 흙이든 다 뒤죽박죽 갈아엎어서
그냥 불도져로 평평하게 만들어서 새생명 새싹
남겨둔 한 씨를 뿌린후에 의의 비를 늦은비 이른비를 뿌려서
그 공백이라는 장자의 본을 본받아서
이 땅에서 오로지 은혜로만 용서로만 사는 자로 만드시는 것이다 말이죠
그카이 철저하게 단절 곧 용서가 아닌
내 돈 띠 먹은 백데나리온 자 용서치 않는 자는
은혜를 무시했다 라고 채로 걸러내시는 겁니다
엘리사 대머리 사건으로 약속을 무시하는 자는 걸러내시듯이
또 그렇다고 맨날 사기당하기만 하며 살아라가 아닙니다
그 사기친 놈을 철저하게 응징할때에는 그 동안 주님께서 공짜로 살려준 것도 모르고
남의 것을 빼앗았냐 라고 자기 죄로 울도록 하는 징계의 매를 아들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대듯이
철저하게 세상과의 단절성으로써의 은혜를 보여주는
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도록 알려주시면 된다 말이죠
복수심이 아니라 너 세상 따라 가면 지옥가 라는 애타는 마음으로 매를 대듯 말이죠
사생아 같으면 내버려 두시고요
자 그렇기 때문에 내 쪽에서 시간을 억수로 들여서 사람을 개조 시키겠다는 둥 그런 헛짓 그런 배불러 터진 소리 하지 마시고
본인이나 더더더 용서 받아야 할 죄인으로서 매일 매일 퍼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시면
고소해도 은혜요 사기 당해도 은혜요 사기친자 감옥소에 보내는 것도 은혜요
왜? 은혜를 되게 만들자 라는 저런 위선적인 성화론자가 아니라
이미 다 받았기에 다 이루어진 완료에서 벌어진 사건이기에
이미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하신 것도 이미 다 이룬 상태이고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신 것도 이미 다 부르림을 완료로써 누리는 것이고
내 시간에 안 맞다고 주님의 시간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요 도리어 누릴 판국에 놓여지는
주님의 시간이 덮쳐지니까 말이죠 매일 매일
그 부르심이 덮쳐지는 것이지 내가 나를 부르는 연기를 왜 하냐 말이죠
성화론은 결국 연기자들 양성소 일 뿐입니다
또 그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신 그 이미 의로움을 누리는 겁니다
어라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왜 내가 나를 보기에도 말도 안되는 의가 왜 나오지?
나만의 착각인가? 어 남들도 이건 의로움이다 라고 하네
어 말도 안돼
분명 나는 누가 발로 차는 바람에 화가 나서 씩씩 거리고 있는데
살려고 몸부림 만부림 쳤을 뿐인데 누가 내 발을 붙잡고 나오다 보니
졸지에 내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낸 자가 되었뿐네
저 아니예요 누가 나를 등 떠밀었어요 저는 지금 화가 난다니깐요
이런 사건들을 이미 누리겠끔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의롭게 하신 자를 영화 롭게 하시고
카 여기서 마귀가 격분하지요 사실 모든 부분이 마귀가 격분하겠지만요
이제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앉히는 겁니다
창녀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부은 것에 다들 화를 내는데
주님은 도리어 가장 기념하는 왕비의 자리에 앉히듯이 하니까
세상이 격동하면서 견디지 못해 발악을 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아들의 형상을 찍어내시겠다 새창조 하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아니 말라꼬 왜? 가만히 보니 골치 아프게 될텐데
엘리사 대머리 트집 사건처럼 암곰이 나타나서 갈기 갈기 사건이 수시로 벌어진다면
얼마나 세상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네 바로 그겁니다
그게 보이지 않는 형상입니다
아무도 볼려고도 하지 않는
안 볼란다 하는 형상 이다 말이죠
왜냐? 이미 믿는 구석이 있는
보이는 형상이 있거든요
이미 마음에 우상이
중심에 우상이
삶의 가운데 우상이 빼곡이 꽉꽉 차 있는데
아들의 형상을 따로 또 채우라고요?
아니 아들의 형상이 알아서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 재건축 하니까
너는 가만히 서서 재건축 아파트 누리기만 해
내가 이미 다 이루었거든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거든
자 이제 아파트 입주하고 누리기만 해
너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라
바라 보기만 하라 말이죠
땅을 쳐다 보지 맣고
하늘에서 시작해 벌어진 사건을 누려라 말이죠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이 구름같이 허다한 주남의 증인들이 모세가 든 구리놋뱀을 쳐다본 것처럼 우리 또한 그 실상인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오직 은혜만을 용서만을 바라보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의 도움을 바라보는
하늘에서 시작한 사건을 보시면 됩니다
땅의 문제들은 늘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해결해 봤자 또 반복할 뿐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서 벌어진 사건은 하늘에서 시작한 도움을 은혜를 긍휼을 바라보라고 벌리신 사건입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것은
더 이상 의문인 나의 형상을 쳐다보지 않는 겁니다
어차피 속을 뿐일테니 말이죠
무엇이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것입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용서 그 사랑
이 보다 더 또렷한 사랑은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흐릿한 보이는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은
땅에서 만들어 낼수 없는
하늘에서 손수 직접 만들어낸 화목제물 사건 이 하나 뿐입니다
다른 또렷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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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5 에덴동산 나뭇가지들도 다 투기하는 앗수르의 영광 (겔 31, 1- 9)
2024.11.24.
솔로몬의 영광이냐? VS 내일 아궁이에 던질 광야 사막 들판에 핀 백합화냐?
솔로몬의 입은 옷도 이 꽃만 못하였네 새찬송가 588장(통307)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백합화 새찬송가 478장(통78) 참 아름다워라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어 주지 않으심 (겔 30,20-26)
에스겔 2019 2024. 11. 2. 18:27
21-084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주지 않으심 (겔 30,20-26)
〈에스겔 31, 1-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8쪽, 찬송가 78장 새 478 참 아름다와라, 찬송가 307장 새 588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새찬송가 478장(통78) 참 아름다워라
새찬송가 588장(통307)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찬송가 078장 참 아름다와라, 새찬송가 478장〉
1.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3.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들리니
주 하나님 큰 뜻을 내 알듯하도다. 아멘
〈찬송가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새찬송가 478장〉
1. 공중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할 것 무어냐
2.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수고 안해도
솔로몬의 입은 옷도 이 꽃만 못하였네
아궁속에 던질 풀도 귀히 입히시거든
사랑하는 자녀들을 입히시지 않으랴
3. 너희들은 세상에서 무엇 먹고 마시며
무슨 옷을 입고 살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는 이방 사람들이 간구하는 것이요
너희 하늘 아버지는 너희 쓸 것 아신다
4. 너는 먼저 주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
내일 일을 위하여 미리 염려말지니
내일 염려 내일하라 오늘 고생 족하다
〈에스겔 31, 1-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8쪽〉
(겔 31:1, 개역) 제십일년 삼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1:2, 개역)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뉘게 비하랴
(겔 31:3, 개역)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겔 31:4, 개역)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겔 31:5, 개역)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
(겔 31:6, 개역)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겔 31:7, 개역) 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겔 31:8, 개역)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우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아무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겔 31:9, 개역) 내가 그 가지로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지가 다 투기하였느니라
(겔 31:1, 새번역) 제 십일년 셋째 달 초하루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31: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이집트 왕 바로와 그의 무리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위엄찬 모습을 누구와 비할 수 있겠느냐?
(겔 31:3, 새번역) 앗시리아는 한 때 레바논의 백향목이었다. 그 가지가 아름답고, 그 그늘도 숲의 그늘과 같았다. 그 나무의 키가 크고, 그 꼭대기는 구름 속으로 뻗어 있었다.
(겔 31:4, 새번역) 너는 물을 넉넉히 먹고 큰 나무가 되었다. 깊은 물줄기에서 물을 빨며 크게 자랐다. 네가 서 있는 사방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개울물이 흘러, 들의 모든 나무가 물을 마셨다.
(겔 31:5, 새번역) 너는 들의 모든 나무보다 더 높게 자랐다. 흐르는 물이 넉넉하여 굵은 가지도 무수하게 많아지고, 가는 가지도 길게 뻗어 나갔다.
(겔 31:6, 새번역) 너의 큰 가지 속에서는 공중의 모든 새가 보금자리를 만들고, 가는 가지 밑에서는 들의 모든 짐승이 새끼를 낳고, 그 나무의 그늘 밑에서는 모든 큰 민족이 자리잡고 살았다.
(겔 31:7, 새번역) 네가 크게 자라서 아름다워지고, 그 가지들이 길게 자라 뻗친 것은, 네가 물 많은 곳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겔 31:8, 새번역)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백향목들도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잣나무들도 네 굵은 가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단풍나무들도 네 가는 가지들만 못하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도 너처럼 아름답지는 못하였다.
(겔 31:9, 새번역) 내가 네 가지들을 많게 하고, 너를 아름답게 키웠더니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이 모두 너를 부러워하였다.
자 이전에 했던 내용들의 제목을 나열하면서 요약을 해 봅시다
19장부터 시작해 보면
2023.02.11 [사자의 애가] 비유(수수께끼) (겔 19, 1-14) 1
에스겔 19장에 마지막 남 유다 네 마리 사자 곧 남유다 마지막 네 명의 왕 그 왕들의 죽음을 예언하심으로써 이제 20장부터 이스라엘의 심판을 본격적으로 실행하십니다 곧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입니다
왜?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처음자리 곧 다시 처음 자리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 20장의 여호와의 날 첫맹세의 날입니다
2023.03.03 옛날에, 애굽의 종에서 택하여 맹세한 그날에 (겔 20, 1-12)
2023.03.25 내 안식일을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으로 삼았었노라 (겔 20,12-26)
2023.04.15 열조의 풍속(장로의 유전)을 따라 스스로 더럽히며 (겔 20,24-36) 1
2023.05.06 막대기와 언약의 줄로 심판 속에서 여호와를 알게하심 (겔 20,37-39) 1
2023.06.17 거룩함(상 주심)을 열국(원수)의 목전에서 ; 은혜로만 들어가는 중심 (겔 20,40-44)
2023.07.08 불 지르러 온 여호와와 비유로만 외치는 인자야 또 너냐? (겔 20,45-49)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듯이 애굽화 된 이스라엘로부터 출이스라엘 출교회 출세상 하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날이 먼저 떳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에스겔 20장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됨의 스타트입니다 시작 입니다
정년이 버전 국악풍으로
아니 찢어졌어야 다시 싸매어 주실꺼 아닌겨라우
이것이 여호와의 맹세 이니께잉 암 그렇구 말구지
2023.07.29 의인과 악인을 살륙하는 여호와의 칼이여 칼이여 (겔 21, 1-17)
2023.08.19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하심 (겔 21,18-23)
2023.09.09 왕관을 제거하고 면류관 벗겨 낮은자 높이고 높은 자 낮춰라 (겔 21,23-27)
2023.09.30 암몬의 구원의 날이 곧 암몬의 심판의 날 (겔 21,28-32) 1
에스겔 21장은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함으로써 이방인도 이 심판 속에 들어가야 함을 끄트머리에 보여주심으로써
제일 먼저 의인인 하나님의 자녀의 심판이 시작 되고 악인인 이방인의 심판이 암몬으로 확대됩니다
이 여호와의 날이 먼저 떳기에 이스라엘을 모조리 실패케 만드시고자
철저하게 그들이 죄악을 낱낱이 들추어내십니다
여호와의 날 곧 칼이지요
지금 우리가 여호와의 뿔에 대해서 요즘은 언급하듯이 이제 또 여호와의 팔에 대해서 언급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징계의 매 인 겁니다. 이것이 첫사랑이니까 이 첫사랑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처음자리이 이스라엘의 본래자리를 주님이 마련하시는 겁니다
여호와의 팔이 떳응께잉 암 고로케 허야지
이것이 암몬 심판 개시 전인 24장까지 예루살렘의 죄악이 나열이 됩니다
2023.10.20 부모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해쳐 피 흘린 예루살렘의 죄악을 국문하라 (겔 22, 1-12)
2023.11.11 지옥된 세상과 수치를 당함 (겔 22,13-16) 1
2023.12.02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과 풀무불 심판 (겔 22,17-31) 4
2023.12.22 두 음녀 오홀라 오홀리바 (겔 23, 1-10)
2024.01.11 그 형보다 더 부패한 오홀리바 (겔 23,11-24) 1
2024.02.02 다시는 애굽(인간구원) 기억 못하게 예수님만 구원하는 이름전쟁 (겔 23,25-27) 2
2024.02.24 음란죄 살인죄를 담당할지라 (겔 23,45-49) 1
2024.03.16 녹슨 가마솥 비유 (겔 24, 1-14)
2024.04.06 인자 에스겔 아내의 죽음 (겔 24,15-27) 1
자 25장 부터는 이방나라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의 멸망입니다
암몬부터 시작 해서 모압 그리고 에돔 시날 그리고 두로와 시돈 심판 입니다
2024.04.27 암몬족속을 향한 심판 예언 (겔 25, 1- 7) 3
2024.05.18 이스라엘 특이성 오독으로 저주 받는 모압 (겔 25, 8-11) 2
2024.06.08 에돔의 복수심, 원수갚는 범죄를 심판 (겔 25,12-17) 1
2024.06.29 두로 심판과 언약이라는 진짜현실 (겔 26, 1- 7, 26장- 27장) 1
2024.07.20 나는 신이다 내가 하나님이다 라는 두로 왕의 교만 (겔 28, 1-10, 28장) 1
암몬의 죄악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점괘에 맞게 심판 당하니까
자동적으로 자기들의 구원이라고 본 그것이 도리어 죄악이 됨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의 죄악의 속성을 이스라엘부터 이방나라의 죄악까지 들추어내시면서 심판하심으로써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이런 것들이 심판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겁니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는 의미 인데
성화론자들은 또 그것을 가려내어서 심판 안 받는 조건을 갖추겠다 라고 하니
이것이 암몬 족속의 자기가치가 높아졌다 라는 것을
저 이스라엘의 심판을 보고 졸지에 남의 멸망은 곧 나의 기쁨이 되는 이 보편적인 인간의 속물근성이 다 내재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뭘 해도 지옥의 몸 맞음을 말이지요
자기의 가치를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 라는 안정감을 꼭 남이 못 되는 상황 속에서만 발견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 라는 것이 특히 한국인의 속성이요
이것이 다른 민족에게서는 없는 주변 강대국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력이다 라고 역사가가 말하더군요 (딴지일보 기자 출신인 작가 홍대선이 인문학 컨텐츠에 나와 자주 주장하더군요 인간의 사상은 다 개인 주체 확립입니다 특히 동양의 집단주의에서는 더더욱 강조해야 할 사상이 된 거죠, 딴지 일보라 ㅋㅋㅋ 그카이 겸손은 힘든거죠 개인이 주체가 될려면 겸손 때문에 한 없에 보류하고 뒤로 미루어야 항께롱 없는 자아를 구름 먹듯이 바람 먹듯이 해야하는게 더 급한디 겸손은 힘들다꼬 트릭을 쓰는 거죠 가스라이팅하는 겁니다 힘든 정도가 아니까 거부하는 마음을 거부감 안들겠끔 트릭으로 말이죠 적개심을 들통당하면 바로 적개심을 받으니까 말이죠)
유럽인이 한국인을 이해할려면 라고 눈치를 잘 이해 해야 한다 라고 그런 책이 유행한다더군요
그러데 유럽인 치고 눈치 보는 자가 없거든요 그러니 눈치가 뭔지를 이해를 잘 못하다 보니 이런 책들이 필요한 거죠
진짜 배려해야만 하기 위함이 아닌 남의 눈을 의식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니까 보상의 힘을 믿는
결국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서양버전의 느린 버전인 대기만성 버전
성질 급한 자는 안되니까 경상도는 바로 정치로 빠지듯이 말이죠
눈치
그 다음 모압의 죄는 세일 나라 세일 족속의 죄는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 심판 받는지에 대한 그 이유를 몰라서 망하는 겁니다
마치 망하는 이유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망하는 것처럼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분명한 이유를 보여줘도 못 알아먹는
심판 자체도 비유 이니까 말이죠
아니 자기 민족의 신인 여호와가 자기 나라 백성을 심판해서 모조리 다 없애 버리면
그 신은 도대체 누구를 통해서 증거되느냐 말이죠
그러니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보편적진리를 도입해 옵니다 소위 요즘식으로 말하면 통계학 이것도 점괘 토정비결인거죠
빅데이터로 자료를 수집해서 패턴을 읽고 해석하는 거죠
그 상가에 누가 어떤 직업군이 몇시에 얼마나 물건을 사가는지 통계를 내어서
거기에 맞는 상품을 파는 이런 데이터 분석을 하는 겁니다
주로 여자들이 점괘를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정치적인 분석을 평상시 잘 안하거든요
주식하는 분들 중에 여자분들 요즘에 남녀구분이 없어서 그렇지
10년 전만 해도 잘 없었으니 그 이전에는 거의 없는 이유죠
이런 토정비결이나 데이터분석은 남들 하는치 만치 하는 것 뿐이지
더 할것이 없습니다 점쟁이 본인이 고만 고만한 장사로 먹고사니까요
으리 으리한 점쟁이 집에 가는 놈이 없잖아요 다 고만 고만한 잔챙이들 뿐이지
교회 삯꾼목사도 마찬가지 다 서민들만 등쳐먹고 사는 것들인 겁니다
그카이 예기치 못한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이익은 보장되는 거죠
바로 이런 분석이 일반이라 라는 표현으로
딴나라 이방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뭐 똑같네 하나님 믿어본들 믄 소용이고 망하는 것은 역시나 같은 죄로 망하는데 뭘 이라는 일반 동질화로 해석했다 라는 이유로 망하는 겁니다
특별하게 망하는 것으로는 해석이 안되니까 말이죠 해석 못한다 라는 평가를 내린 그 평가로
즉 자기 죄로 망하는 겁니다 너도 그 일반 평가 속에 집어넣을께 라고 말이죠
참 말도 안되는 식으로 뒤짚어 씌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맞습니다 뒤짚어 씌우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지옥 보내는 겁니다
이유 있는 지옥 보냄이 아닌 거죠
이유 없이 지옥 가는 겁니다
나중에 그 원인을 뒤짚어 씌우는 거죠 평가 엉터리 했응께 라고
자 그렇게 모압과 세일이 망하고
그 다음 에돔족속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 답게
그 아비에 그 자식 답게 복수심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아니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족속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됐거든요
누가 이것을 수용하겠습니까?
애굽나라 바로왕이 아무리 모든 사람이 다 부러워 하는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살기좋은 나라 우리 힘으로 만드세 라고 살기좋은 나라 만들어도
오늘 본문 앗수르 나라 영광스럽게 만들어 버리면 갑자기 불행해 지는 겁니다
못 사는게 됩니다 세계 1등이 못 되는 이상 말이죠
다른 나라야 2등도 살기 좋은 나라 아니냐 라고 해도
1등을 맛보다가 2등으로 내려오면 그거 억울해서 못 사는 겁니다
그렇기 떄문에 망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라는 겁니다
결국 자기의 특이성만 되기를 바랬지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일반으로 보는 해석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망함을 반드시 이스라엘에게 뒤짚어 씌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심뽀로 태어났기에
자기 눈을 자기가 찌르는 식으로 가는 거죠
그카이 이스라엘 망하는 것에 누가 더더욱 즐거워 하겠습니까?
당연히 천년 이상 그것도 2 천년 가깝게 복수심으로 가득차 있는데
망하니까 그 누구 보다 더 기뻐하겠지요
그 복수심이 너 에돔을 망하게 하고
그 기쁨이 너 에돔을 망하게 한다 라는 겁니다
다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인 겁니다
어딜 이 십자가 라는 예언의 언약이 있는데 어딜 사람의 뜻 일로 취급하느냐 말이죠
도리어 미끼를 물어 버린 것이여가 되는 거죠 공포영화처럼
그리고 블레셋 또한 에스겔 25장 15절에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으로 망한다 라고 하십니다
에돔과 같은 이유인 거죠 자 이렇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축복하심을 이스라엘이 망할때에 그 기능이 발휘가 됩니다
살아 있을때에는 안나타나는 기능이
존재가 상실 되었을때에 비로소 그 복의 근원이 됨의 기능이 말이지요
사실은 그것은 그림자 이고 실상은 예수님이 바로 복의 근원으로써
이스라엘을 통해서 미리 맛배기 샘플로 보여주신 겁니다
이스라엘은 때려죽어도 동의를 안하지만 말이지만 말이죠 ㅋㅋㅋ
그리고 단락 끊어서 올린 구절의 마지막 두로와 시돈
이 두로는 특이하게도 이스라엘이 특이성을 눈치챘다 말이죠
그리고 그 혜택도 누렸다 말이죠
그렇다고 이 두로가 주변의 더 큰 나라의 활동에 다 같이 왕따 시키고 있는데 있어서
가만히 있겠냐 말이죠
자진해서 알아서 나서서 왕따 시키는 겁니다
그 작은 나라가 말이죠
그렇게 과거에 히람 왕이 다윗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살려줌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 성전 짓는데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장 좋게 성경이 취급했는데
그 백향목을 성전 짓는데 사용했으니
이제 그 성전 내놔라 라고
물에 떠내려가는 놈 살려 줬더니만 이제는 보따리 도로 내놔라 라고 강도로 변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다른 이방나라의 멸망과 달리 길게 석 장 씩이나 할애하면서까지
이 두로 나라의 교만과 그 심판에 대해서 나열하십니다
부자도 아니면서 교만하고 가난한 자라서 도둑질 할까봐 걱정이라서
중간치 하고 있는데 정작 부자 아니면서 늘 부자 같이 꿈꾸다 보니 교만하게
세상의 중심 시온의 예루살렘을 차지 했다 라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니까 내가 신이다 라고
저쪽 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조그마한 여우 주제에 자기가 사자 노릇하면서 다른 들 짐승의 삥을 뜯어내는 식이다 라는거죠
오늘날 교회들이 얼마나 그러 정치 짓을 하는지 말이죠
부자 앞에서는 아부하고 가난한자는 등쳐먹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이카니까 자기는 중간치 하겠데요 글쎄
중간치 하는 놈이 더 해요 그 놈이 두로 왕이다 말이죠
이 놈은 숨어서 하는 놈이기 떄문에 더더욱 세세히 기록하면서
아예 아작 아작 잘근 잘근 작살을 내시는 겁니다
2024.08.10 큰 악어 애굽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겔 29, 1- 7)
2024.08.30 애굽과 이스라엘의 두 언약의 푯대(위치, 입장) (겔 29,12-16) 1
2024.09.19 이스라엘에게서 난 한 뿔 (겔 29,17-21) 4
2024.10.12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애굽나라 (모든나라 애굽화) (겔 30, 1-21) 5
2024.11.02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어 주지 않으심 (겔 30,20-26)
자 그리고 이제 삼인방 애굽 앗수르 바벨론 남았지요
애굽은 지난번까지 다루었구요
생략하고요
이들 3인방은 저들 잔챙이를 흡수통합하면서 그들의 죄악의 속성을 다 담음과 동시에
그들만의 죄악성을 더 깊게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물론 그 원조는 애굽이고 그 원조는 바벨탑 구원의 탑(꿈의 실현잉께 그래요 난 꿈이있어요 ? 거위의 꿈 그려 비록 내가 정년이 미운오리 새끼이지만 반드시 거위가 될꺼랑께!!) 이였듯이 말이죠
(그래서 영적으로는 애굽이다 라고 표현했더군요 그 당시 애굽나라는 잔챙이에 불과했으니 말이죠 바로왕떄가 진짜 애굽잉께)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겠다 이것이 노아방주 홍수심판의 잔상으로 남았으니
더더욱 저런 강대국 요즘으로 치면 선진국을 더더욱 꿈꿀꺼 아니겠습니까?
트럼프 누구나 다 아는 똘아이 정신병자를 왜 뽑겠습니까?
미국 민주당은 백성들 배 곪는 것 그것이 우선이 아니라
자기들 위선을 즉 자기들 가치를 먼저 우선시 하거든요
그런데 배고프면 그것도 말짱 도루묵 아니냐 말이죠
남의 나라 전쟁에 왜 700조 가까이나 퍼 주고 있냐 말이죠
아무리 바이든이 공산당 하면 치를 떤다 라고 해도
지금 시대에 그런 냉전시대를 다시 불러 일으키느냐 말이죠
다 자기 개인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그 선함을 위한 것에
왜 우리가 함께 배고파 가며 동참하느냐 라는 거죠
(그래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독립운동하는 이런 위선자들은
성경대로 따지면 이런 아비아달 제사장 그리고 다윗의 조카 요압장군 이런 명분 찾는 것들은
하나님의 원수 라고 다 죽이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독재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자동적으로 선함이 되느냐 말이죠?
주님은 빌라도 에게 이런 민주주의도 아니요 독재도 아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라고 하시거든요 인간의 나라 이제 물 건너 간 겁니다 허깨비 바람 같은 안개를 왜 꿈꾸냐 말이죠 헛바람 집어넣는 것들을 하나님의 원수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시편에서 나오는 해석 불가의 원수 곧 다윗 자기자신 인 거죠 그 망상에서 주님이 다윗을 건져주시는 겁니다
솔로몬 이후로 헛도다 라고 이스라엘 철거 작업을 하시지 않으면 솔로몬은 건짐 못 받는 겁니다 솔로몬 영광에서 정작 솔로몬을 구출해서 들에 핀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로 만드셔서 구원했거든요 새로 아들의 영광으로 붕어빵을 찍어낸 겁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결국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음을 아는 겁니다 그래 다행이다 알아서 이제 그 화 불에 타야 할 것들인 솔로몬의 영광을 철거할게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게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요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심입니다
오늘 앗수르의 영광은 하루 아침에 망했건만 다시는 싸매어 주지 않는다는 것 이제 미움받기로 작정 됨이다 라는 거죠 오늘 말할 것 미리 다 말해버렷네요 이놈의 성질 급한 성질 으이구 ㅋㅋㅋㅋ)
우리 똘아이 무당 통도 대리 전쟁하겠다고 라고 나서니
아직도 배불러 터진 거죠
남들 다 발 뺄려고 하는데 지 혼자 돌격 앞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죠
자 이렇게 다들 꿈꾸는데 일반화 동질화 된 앗수르 선진문명을 꿈꾸지
누가 저 배고픈 가난한 나라를 꿈꾸겠냐 말이죠
이스라엘도 이런 판국에 쫄딱 망했는데
망해도 못 먹어도 고 라고 외치고 먹고 떠블로 가 라고 하는 판국에
누가 들에 핀 백합화를 꿈꾸냐 말이죠
그것도 내일 아궁이에 던져서 죽이시겠다 라는데
모두다 꿈꾸는 것은 앗수르입니다
대 환영을 받고 다들 그런 나라가 되고자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바람을 우상을 잔뜩 심었기에
안 꿈 꿀수가 없는 겁니다
자 그렇게 다들 실패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자에게만 말이죠
실패 없는 성공의 집인 잔칫집에 있으면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인생을 의지하기 마련이니
누가 예언을 환영하겠습니까?
다리 걸어 족족 넘어지게 실패케 만드시는 이 예언을 말이죠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교회 다니고 모태 신앙이라고 우겨도
모 태태태태태태태태태태태 신앙이라고 우겨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은 이유인 겁니다
예수님을 다들 싫어버린바 되었다 라고 다들 고개 돌렸거든요
즉 이 말은 반대로 앗수르는 환영했습니다
왜 솔로몬의 영광처럼 영광 스럽거든요
그러니 더더욱 완악한 수건을 못 벗는 거죠
이들 이방나라 또한 국가를 바벨탑은 구원의 성전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국가가 망한다 라는 것은 그야말로 치욕스럽기 짝이 없는 실패 땡 실패입니다
그 수치를 누가 싸매어주느냐로 달려있기에
잔칫집에서는 이 싸매어주심 자체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죠
광야에서 초상집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야히로의 딸을 단순히 맛배기로 그녀의 죽음을 되살린 것이 아닙니다
개인 구원으로 개인 목숨 끊어진 것 되살린 것이 아니라
나사로의 죽음 또한 말이죠
사망 권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사망권세 멸하심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인간들은 바벨탑 곧 자기들의 구원장치가 이미 있는데
그게 바벨밥이자 국가죠
유대인들은 국가를 비록 망해서 다른나라에 빼앗긴 치욕스러운 포로 상태요
국치(나라의 치욕) 상태라 어서 어서 자주 독립을 해야 하는 판국에
이 국가정신을 대변해 주는 이 성전이 있거든요 그것이 국가를 대신해 줌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다 말이죠
그런데 로마 국가도 무너뜨리시겠다 라고 하구요
유대인의 성전도 무너뜨리시겠다 라고 하면
(요 2:1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마 26:61,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마 27:40, 개역)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막 15:29, 개역)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아니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냐 말이죠이 황금소 금송아지 라는 국가 라는 짐승 곧 우상은 누가 키우냐 말이죠
이런 판국에 성전을 헐라??
아따 이 양반 한 국가의 민족을 말살하는거나 마찬가지인 위험한 발언을 허시네~~~~~~~~유
(뭐든지 유 만 붙이면 돼~~유??? 아 이건 충청도지유 아따 참내 전라도는 뭐여~~~)
어 그럼 3일만에 다시 싸매어주신다는 그 말 같지도 않은 말 믿고
다 디지면 책임질꺼유???
이 책임이라는 말이 웃끼는게
산 자 만이 책임을 지고 있지
살아있지도 않은 자는 책임 질 것이 없쥬
그렇쥬
이젠 쥬만 붙이면 다 돼쥬
그래서 인간은 책임 질 것이 없다 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태어나야만 한 거쥬
즉 인간은 자기 살아 있다에서 출발하기에
그것이 먼저 우선시 되기에 (인간 자기 일이 먼저이기에)
이것이 사람의 일이기에
예언(하나님의 언약 곧 새언약인 십자가 그 당시는 곧 다윗언약)을 무시하는데
정작 예언은 인간은 살아있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죄 아래 곧 이미 시체이다를 말하기 위해서 태어나야만 했다 라는 겁니다
왜? 선악과를 따먹었응께
곧 가짜 하나님이 된 인간 자기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그 죽음을 거치지 않았기에
어서어서 자기의 한계인 그 죽음을 거쳐서
그카이 왕은 나라와 백성의 대표로써 왕의 실패로 국가의 실패로
이 죽음 속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요나의 표적 곧 절망이라는 그 실패 속에서
결국 실패가 아니면 더 이상 내부에서 끊어지는 그 단절성을 못 느끼겠지요
실패 만이 드디어 율법 외에 한 의 라는
외부의 작업을 비로소 보는 겁니다
그렇기에 처음자리인 본향의 이름인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 새롭게 출발하는 그 의로 다시 싸매어주느냐 아니냐 로 달린 겁니다
달음박질 함으로도 아니요
원함으로도 아닌
긍휼히 여기실 자를 여기시는 주님의 죽음으로 달린 문제이다 라는 거죠 주님의 숙제 말이죠
근데 어라 안 디졌뿟네
사람의 일의 실패와 자기 자신의 한계인 그 죽음을 거치지 않게 되니
육의 생각 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이 반영이 되어서
어라 부활까지 장자까지 새끼를 낳는 겁니다 실패는커녕
오히려 생육하고 번성하라 다스리고 출만하라 가 졸지에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로써 혼합물 오예물 찌기로써 확장 되는
자식이라는 부활이 우상화 되는 겁니다
새끼까고 새끼까고 쑥국 쑥국 쑥쑥국 쑥구 쑥쑥 잘도 낳네 그려 라고
장자만 있으면 매번 부활하는디?
그런데 말라꼬 이 모세언약만으로도 충분한디
말라꼬 멋땀시 다윗언약까정 필요하당게~~~~~~~~~~
(창 6:8, 개역)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 언약 필요 없당께
창조 언약으로도 충분하당께롱
(창 6:1, 개역)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 6:2, 개역)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 6: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4, 개역)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 6:5, 개역)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6, 개역)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7, 개역)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은혜 라는 의미가 처음 나오는데 곧 심판하시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심판 곧 처음 나오는 의미인 거죠
(창 6:8, 개역)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 언약은 그래서 첫아담의 형상을 곧 육의 소욕을 모두다 십자가에 못 박고자
모든 육체를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 다 이루심이다 말이죠
무슨 수로 인간이 인간 스스로가 자기 인간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 따르겠다 하면서 육을 심판하겠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겠습니까? 그건 육이 육을 심판하는 짓이니 역시나 육의 일인데
누가 자기 스스로 노아언약을 이루고자
함 땅 애굽 땅에서 탈출해서 가나안 족속을 곧 우상숭배자들을 다 몰아내고 그들의 우상을 헐고 삼일만에 다시 아들의 형상을 세울수 있겠습니까?
출애굽도 할 줄 모르는 판국에
음부의 권세 곧 사망의 권세를 무슨 수로 멸하겠습니까?
불치병 고치고자 의사가 되면 사망 권세 이길수 있겠냐 말이죠?
아니면 유전자를 조작해서 젊은 세포 곧 늙지 않는 세포로 만들면
그것이 사망 권세를 이길수 있겠냐 말이죠
어떤 영화를 보면 영생을 줘도 못 먹을 정도로
심심해서 자살하는 미래사회를 그리던데 말이죠
다 해보다 해보니 죽음이 궁금해서 마지막 권태로움 속에서 죽음이 졸지에
영생을 줘도 죽음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니 그 정도로 헛되고 헛된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인간은 가치가 있어야 뭐 영생을 하든 말든 의미가 있을 건데
껍데기 백날 천년 만년 영생을 해 본들 그 자체가 지옥이다 라는 겁니다
그 지옥 무슨 수로 이길거냐 말이죠
이미 벌써 시체로 취급하는 외부의 시선이 덮쳐졌는데 말이죠
그카이 이 언약 곧 예언의 말씀을 싫은 겁니다
가장 싫어하는 자들이 역설적이게도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믿고픈 하나님 보고픈 것만 보는 성경구절
그것 골라 골라 먹고 있는데
예수님이 와서 모조리 다 환전상 엎어버리듯이
닭 새들 비둘기 양들 소 다 회초리 들고 쫓아내시듯이
뒤짚어 엎어 밭갈이 기경을 해 버리시는데 말이죠
이런 주님은 아무도 좋아라 하지 않습니다
다들 싫어해요
걸림돌 나타났다 라고 다들 고개를 돌린다 말이죠
누가 아들의 형상을 원하겠습니까? 흠모할 모양 이미지 형상이 없다니깐요
아름다움도 고운모양도 없이 그저 병들어 있어요
우리의 죄악을 모두다 담은 얼굴이라서
아무도 안 쳐다 보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봐야 허는디
눈을 마주쳐야 허는디
다들 눈을 피하고 고개를 돌리기 바쁠정도로
그 정도로 싫어버린 바 되었어요
즉 이 말은 안 싫은 것이 있기에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렇거든요
그게 바로 첫아담의 형상이다 말이죠
말이 하나님의 형상 회복 운동이지 결국 첫아담 형상 회복 운동인거죠
이거 찢어지지 않는 이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 이상 자기 한계치가 아직 다다르지 않았다고
여전히 활개를 칠꺼다 말이죠
그러니 다 망하고 난 다음에
죽은 다음이 이런 에스겔을 통해서 하시는 예언이
비유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죽었는데 들려주심은
들을 귀가 있어야 하는데
다 죽어서 들을수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 말이죠
한계치를 꼭 넘어서 이야기 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내 열심히 특심일 때 카셔야징
내 귀가 죽어 귀머거리가 되었는데 무슨 수로 듣냐 말이죠
그카이 쓸데 없는 짓으로 취급하는 겁니다
또 살아있으면 살아있다는 이유로 모세언약으로 충분하다 라고
내가 알아서 할꺼당 이라고 하고
죽으면 죽은 뒤에 믄 소용인가 라고 또 거부를 하는
이 육의 일 소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라는 거지요
그래서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모두 다 못 박겠??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말은 인간의 언어 곧 선악체제에서는 무슨 소리인지 말도 안되는 소리일 뿐이고
노아가 은혜를 외부에서 주어셔서 받음을 당하니까
아 죽으라는 소리이군요 라고 이 죽음을 미리 종말을 미리 준비하는 방주를 시작하는 겁니다
말이 방주이지 죽음을 끝을 땡기는 반대인 거죠
은혜란 결국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게 아니라
죽기 위해서 태어났음을 보여줌에 있어서
그 죽음에 그 찢으심에 누구의 죽음이 덧 입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 내가 왜 안 죽고 주님이 내 땜에 왜 죽지 라고
내 죽음의 심각성이 아닌 주님의 죽음의 심각성을
죽음 속에서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스올 무저갱 지옥 죽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 지옥의 몸에서
죽기 위해서 태어난 몸에서 느끼는 겁니다
내 죽음 보다 예수님의 죽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은혜가
바로 육의 소욕 사람의 일의 반대인 성령의 소욕 곧 하나님의 일이다 말이죠
아니 말라꼬 하나님 형상인 첫아담의 형상으로도 충분헌디
말라꼬 아들의 형상인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까정 필요한닷께요잉
쓸데없는 소리 말라꼬랑 헌번만 더 씨부리싸면 디질줄 알어 ~~~~~~~
알어 몰러 ~~~~~
그렇게 인간은 성전을 교회를 종교를 구원의 장치를 국가를 우상을 사수하기 위해서
곧 자기 자신이지요 10가지 신들이 보디가드로 보호 캐어하고 있는 장자
곧 첫아담의 형상을 잇고자 태어난 장자를 깨뜨리는
다른 아들 곧 아들의 형상 그것도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
맞아요 안 보이도록 죽여버렸어요
어라 그런데 다시 살았데요 글쎄
이제 안 보이는 놈은 지옥이고
믿음으로 보이는 자는 천국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 아들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이 니고데모야
종교선생이니까 얼마나 성경지식이 박사급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소리 인줄 몰라요
지식도 내가 있어야 쌓든지 말든지 내 하기 나름인데
내 숙제에서 벗어나서 외부에서 다 이루어서 벌어진 사태를 믿으라고 하니
내 믿음은 행위에서 났기에 도저히 그 비밀 솏에 못 들어가는 겁니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합니까 라고
나 있음에서 다시 있음으로 외에는 방법이 없다 라고 보는 거죠
성령으로 거듭난다 라는 은혜의 의미는
노아가 이 종말 곧 자기 한계치인 인간의 한계치인 자기 죽음을 미리 앞당겨 누리는 겁니다
아 그럼 자살하라굽쇼? 아닙니다
인간이 이미 가족도 있고 자식도 있는 이상 종말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이 육의 단절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비로소
지옥의 몸인줄 알지 죄인인줄 알지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비로소 보게 되지
자살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 놈의 더러운 세상 날 안 알아주네 아닙니까
결국은 자아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자살하는거다 말이죠
믿는 구석이 있는 거죠 즉 날 알아주는 세계를 희망하면서 말이죠
자살할 자격 조차도 없다 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마치 자격이 생생하게 있다는 냥 적개심에 복수심으로 가득차서
이게 한풀이 아닙니까 인간의 믿음은 한 풀이입니다
모든 종교는 한 풀이 이다 말이죠
내 이렇게 까지 했는데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는데
좋은데 안 보내주기만 해 봐라 콱 죽여버리겠다 아니면 콱 디질뿔랑께 라고
자기 아니면 남을 보이는 족족 다 죽이겠다 라는 살인의지인 겁니다
거 보세요 굳이 목숨이 끊어지는 상태가 되어야 죽음이라고 명명하는게 아니라
이미 인간은 죽은 시체로 좀비처럼 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하루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공기를 마셔야 하는지
왜 어제 저녁에 잠을 잤는지 왜 또 오늘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지
마침 과학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간이 왜 잠을 자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아직까지도 못 풀었다 라고 하더군요https://youtu.be/F3F3TtEBuyY
과학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선악의 언어로 구성이 된 논리쳬계 아니냐 말이죠
원인을 모르면 결과를 알아낼수가 없어요
성경은 그 반대입니다 원인 없이 결과를 누리느 겁니다
왜? 그것이 사랑이니까요
즉 이유 없이 사랑하니까요
이유 없이 무조건 원인도 없이 결과적으로 누리는 사랑이다는 겁니다
사랑이 만약에 이유가 있으면 그것은 언제든지 변하는 것이 되겠지요
자 그렇게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나왔지만
사랑의 언어가 아닌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시지만)
선악의 언어에서는 보통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 (감추어진 비유 비밀 숨겨진 언어)
무지 무지 어려운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랑 안에서는 어린아이도 다 알아먹을 정도로 너무 너무 쉬워요
누리기만 할 뿐이거든요
사랑은 누리는 거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알아내서 찾아내는 것 하나 없어요
(시 127:2, 개역)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아니 사랑과 잠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백날 연구해 보세요 답이 나오나
더군다나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 주심이 상대적인 비언약인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고 수고의 떡음 먹음이 헛됨 이다는 것의 상대적인 의미로써
두 언약으로써의 차이로 사랑하는 자는 잠 이기에
왜 아침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고 수고의 떡 먹음이 왜 헛된 것인지 이거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해 답을 내어 보라 말이죠 이게 안 풀리면 사랑하??? 자에게 잠도 안 풀리는 겁니다
위의 눕는거랑
아래의 잠자는 거랑도 다르게 했지요
어쩌면 둘다 잠으로 볼수 있는데 일부러 구분 구별 차이를 내시면서 간극 벌리시는 겁니다
결국 사랑은 이 죽음을 종말을 미리 앞 당겨버리는 겁니다
죽음을 넘어서보는 자 만이 제대로 잠을 잘 거 아니냐, 참안식을 누릴 것 아니냐 말이죠
죽음 아래에서 애굽 포로 속에서 백날 먹고 자고 아침일찍 깨어 일어나는 것이 무슨 의미 가 있겠느냐 종살이일 뿐인데
그카이 과학적인 시선 자체가 아예 들어갈 틈이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과학 철학 이런 이성의 논리체계라는 선악의 언어로 사고방식이 갖추어진
육에게 이런 사랑의 언어인 성경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까가득 차 있는 겁니다
자기가 우선이 되어 있는데 무슨 수로 말이지요
아무리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우선시 하겠노라 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원함도 아니되고 달음박질 해도 아니되는
주님 본인이 사랑해서 피 흘려서 쳐들어와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박아버린 믿음을 심어서 벌리시기 때문에
그 분의 손에 달린 문제이니까 말이죠
이미 십자가에서 죽엇거든요 그것도 2천년 전에
그런데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그가 살아서 아직도 살아서 나에게 자신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을 박아버리겠느냐 말이죠
그러니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닌 그건 사람의 손으로 만든 만들어진 신이고
그 2천년이라는 인간의 숫자 개념이 하루 아침에 날라가 버리는
그 살아있는 양반이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으로써 찍어버리니까
붕어빵 찍혀 나오듯이 찍혔뿡승께
이것을 무슨 수로 말로 표현하겠느냐 말이죠
지금 너튜브에서 신앙을 말이 되겠끔 좀 이해가 되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하는데
그것을 맞차줄려고 설명하는 자들과
아예 개 구라 사기 이다 라는 컨텐츠와
또 그것을 둘다 반박하는 교회의 몸부림을 볼때에
워낙 시청 횟수가 많다 보니 말이죠
그거 다 헛 짓 헛 헛 헛 짓 쑥쑥꾹 쑥꾹
아니 주님의 숙제에 왠 인간들의 숙제들이 난무하는지 말이죠
뭘 해도 가짜요
뭘해도 실패 일 뿐인 겁니다
왜? 누가 자기의 죽음을 끌어당기는 그 종말의 성령의 일을 할 수 있겠냐 말이죠
성령의 일은 성령 본인이 하시겠다 라고 모조리 다 차단 단절 시키는데
그 단절을 당하는 그 실패 속에 놓여지면 또 몰라
저들 컨텐츠 다 배불러서 나오는 호기심일 뿐인 초등학문이다 말이죠
날과 절기를 지키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왜?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는 거지요
내가 살아야 말씀을 듣든 말든 내가 있어야 믿든지 말든지 하지 이게 미국의 실용주의 아닙니까 미쿡 청교도
그런 배부른 소리에 주님은 아예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겁니다
유대교는 오늘날 우리들의 욕망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써 돈을 가치 있게 보는데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다?
돈 문제 건드리니까 성전세금과 가이사 세금 문제로 십자가에 매 달아 죽였다 말이죠
(마 22:17, 개역)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마 22:21, 개역)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아니 성전에 그 성전 그 자체로 기도하면 그 성전 무슨 수로 유지를 할수 있느냐 말이죠
성전에 그냥 기도하지 말고 금을 돈을 바쳐야 속히 이루어 진다 말이죠
다 돈 문제 아닙니까?
자 그렇다고 광야에 자기가 모든 일을 만사 제쳐 놓고 광야로 그 죽음의 사막으로 갈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본심은 그저 내 살아 있음이 우선인데 생존 생존
누가 선지자를 볼려고 광야에 가겠습니까?
궁궐에 있어야 자극을 받아서 자기를 때리며서 조금이라고 계급을 올리고자 달음박질 할거 아니냐 말이죠
저 아무도 없는 광야에 누가 가며
누가 선지자의 말 듣겠노라 라고 누가 가겠습니까?
아무도 없잖아요
우리의 본색은 나 자신이 복권에 당첨이 되든 행운이 덮치든 오로지 부자 되는 것이다 말이죠
비록 가난해도 부자가 나타나서 교회의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면
그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기지
누가 바리새인은 돈을 사랑하는 자라 라고 옆에서 초 치는 이 말씀을 귀히 여길자가 누가 있겠냐 말이죠
그러니 이 사랑의 언어는 죽음이 아니면 들을수가 없는
한계치를 넘어선 자들에게만 들리는 소리이고
선악의 언어에선는 그저 나의 숙제로 하라 하지 말라 라고 밖에만 안 들리는 겁니다
백날 해 봐도 저 유대인 유대교처럼
살인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학생의 목숨을 도덕질하는 이 간극을 좁힐 수가 없듯이
돈을 사랑하지 말라 일만악의 뿌리 이다 라고 유대교의 배경에서 나온 그 바리새인을 향한 말씀은 아무리 돈을 안 사랑할꼬야 라고 나는 절대로 유대교도 아니고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처럼 안 살꼬야 백날 해도
주변 환경이 모조리 다 그렇게 깔려버린 이상
돈을 안 사랑하고서는 하루도 못 버티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오히려 나는 돈에 목숨 걸 정도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자 이군요 라는
자기의 한계치를 격도록 하시는 것이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이겠지요
자 그렇게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은 이 실패 속에
죽음 속에
포로 속에 놓여지면서
왜 남의 나라 부요함을 왜 봐야 하는지를 주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 그래 나 돈에 미쳤다 우짤낀데 라고 씩씩 거리지 마시고
왜 주님은 이 앗수르를 에덴동산 보다 더 부요케 만들고
모든 세들이 그 앗수르 나무에 기댈정도로 풍요롭게 하시는지에 대한 그 이유가 나오는 겁니다
아니 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자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죽을떄도 잘 죽고
그 자식들은 번창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재산을 빼앗음에도 말이지요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본인을 그렇게 욕하고 거부하는 자인데도 불구하고
왜 영광스럽게 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삽이 낙담이 되어서 밥도 먹기 싫고 다 헛되다 라고 죽기 직전까지 가더라 말이죠
(시 73:1, 개역)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 73:2, 개역)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시 73:3, 개역)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4, 개역)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 73:5, 개역)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 73:6, 개역)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 73:7, 개역)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 73:8, 개역)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 73:9, 개역)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 73:10, 개역)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 73:11, 개역)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 73:12, 개역)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 73:13, 개역)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 73:14, 개역)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 73:15, 개역)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시 73:16, 개역)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4, 개역)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이건 뭐 개인의 한계치를 넘어서 민족의 한계치 인간의 한계치에 놓여진 겁니다
하하하 종일을 제가 난독증이라 종말 로 잘못 봐서 좋다 싶어서 복사 했더니만
종일 이네요 컨트롤 + C 괜히 했어 괜히 했어 흑흑흑
오히려 잘 되었네요 아삽의 그 마음을 알수 없는 저 로써는
그 하루 종일 당하는 재앙 저주 그 죽음을 무슨 수로 그 모든 인간의 한계점인 그 죽음 속에 놓여지지 않는 입장에서 그것을 제대로 체험 할 수 있겠습니까?
체험한다고 손 치더라도 또 다 잊어버리고 그 낙담케 만든 그 악인의 형통을 오히려 부러워 할꺼 뻔한데 말이죠
그런데 반전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시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 73:21, 개역)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시 73:22, 개역)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시 73:23, 개역)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개역)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5, 개역)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73:26, 개역)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7, 개역)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 73:28, 개역)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즉 이 반전이 인간의 소망 곧 보이는 소망에 따라서 벌어지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아들의 형상을 말하기 위해서
저들의 짐승 형상을 일부러 돋보이도록 했다 라는 겁니다
저들의 결국은 끝은 저주이기 떄문에 말이죠
(시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일장춘몽 하루 아침에 깬 꿈처럼 신기루 같이 다 헛되듯이 사라지는 형상들이었다 말이죠
여기도 형상이 나오네요 괜히 형상이 아니라 얼굴인데
얼굴을 지 따나 자기 따나 멋들어진 얼굴 그려 놓고 그 얼굴에 끼어 맞추기를 했는데
어라 이미 딴 얼굴이 이미 다 이룬 상태로 맞추어져 있응께
백날 그린 그 그림의 얼굴 곧 형상이 일장춘몽 로봇태권브이 실컷 그리다 다 불타 사라졌다 라는 겁니다
그게 아까 창세가 6장 시작 자체가 영웅의 얼굴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 맨 가면 이 일장춘몽이었고
정작 성소에 들어가 보니 저들의 결국 끝 결과는 짐승이였고
살아있는 진짜 형상은 그 동암 보이지 않던 아들의 형상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선배들이 거기서 다 찍혀나왔던 얼굴이였다 말이죠
은혜의 얼굴
이 은혜의 얼굴이 꼭 이 노아홍수심판을 거쳐서 나왔기에
반드시 저들 엉터리 형상을 거쳐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저 아삽의 시만 생각하면 다니엘의 세 친구 불속이 주님과 함께 춤추는 바로 성소였음을 보게 되는 겁니다
불 속이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춤추느냐 라는 거죠
아니 허깨비와 춤춰서 뭐하게요
사라질 안개와 춤출수 있겠냐 말이죠
진짜 살아있는 생명과 맞추 보면서 춤 춰야 할 것 아닙니까
무엇이 진짜냐 말이죠
광야에 꾀어 내어 개유하여서 결혼 하시겠다 라고
이 둘이 하나가 되는 사귐이 있는데
잔칫집에서는 사귐이 없어요
사귐이 없기에
누구를 따라간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것이고
누구를 사랑하기에 누구와 함께 춤 춘다 라는 것 조차도 말도 안되는 것이다 말이죠
잔칫집은 그저 허구를 먹고 마실 뿐입니다
넷플릭스가 구호가 뭡니까?
우리의 적은 잠이다 라고 하잖아요
잠을 주면 돈을 못 번다 라는 겁니다
사랑을 주면 돈을 못 번데요 글쎄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닌데
잠이 필요가 없데요 글쎄
이미 죽은 거죠 시체가 넷플릭스를 보는 겁니다
자기가 보는 줄 알아요 그 반대로 시선은 권력이거든요
넷플릭스가 그 사람을 보는 겁니다 넌 시체야 그런데 권력
앗수르의 영광을 받은 척 살아라
꿈에서 깨니까 다 사라지는 겁니다
하루 아침에 말이죠
어떤 광고는 아예 종교적으로 대 놓고 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노래 합니다
주로 보험회사 던가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빨리 돈 안 주면 미워할겁니다 라는 소리인 거죠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라고 서울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잠을 잘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더욱 그 결핍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편안한 잠 한번 자 볼려고
잔칫집 앗수르의 영광인 부자를 꿈꾸는 겁니다
예수 안이라는 성소 곧 하나님의 품이 아니라
더더욱 결핍의 미완료를 메꾸어 넣을려고 말이죠
평안은커녕 잠 한 숨도 잘 수 없고
심지어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곳 하나 없습니다
손을 떼어 낼 수가 없어요 손 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니까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다 이미 완료된 것을 누려야 손 놓고 잡을 잘 수가 이쓴데
책임 질 것이 없는 세상에서
자꾸 책임 질 것이 있으면
무슨 수로 두 손 두 발 뻗고 마음 껏 잠 잘수가 있겠습니까?
자기 목숨 하나 걸 곳도 없지 그렇다고 책임 질 것은 많지
그러니 마음 놓고 잘 수가 없어요
그카이 서로가 서로에게 짐을 잔뜩 짊어지우고
지도 천국 안 갈라고 하고 남도 천국 못 가도록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어내어 바람을 먹고 마시는 겁니다
헛배 헛된 제사와 번제가 자기를 먹여 살리는 줄 알고 말이죠
이게다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앗수르의 영광을 또 누가 맛 봤냐 하면
우리가 얼마전에 벤하닷과 아합왕 전투를 잠깐 나누었잖아요
그 속에서 두 선지자 친구 사이에 날 패라 안 팰란다 나는 너의 친구인데 왜 패냐 라고 해서
그 친구가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갈기 갈기 찢어죽였잖아요
어딜 하나님의 일이 먼저 있는데 인간의 사소한 정으로 사람의 일을 우선시 하냐 라고
그래서 다른 선지자를 통해서 얼굴에 상처 내고 붕대 감아서
아합왕에게 가서 여차저차 해서 도망갔다 우짜면 좋노 아합왕아
그럼 너가 죽어야지 뭐
그래
그래서 하나님이 아합 왕 너 죽이시겠단다 라고 예언을 하잖아요
이스라엘은 오로지 예언에서 시작해서 예언으로 끝나는 예언으로 사는 나라 이다 말이죠
언약 말씀 말이죠
그렇게 북이스라엘과 아람나라가 싸우다가 (그 이전에도 동맹한 적도 있음)
이제 130-140년 쯤 뒤에 이사야 때 이니까 남유다 아하스 왕 때에
엘리야가 아합왕 때 이니까 130-140 여년 정도 차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호세아 순으로 북이스라엘 선지자로
남유다는 북처럼 많이 생략하고 이사야를 바로 언급하면
아모스와 호세아 사이 그 때 이사야 로 출발하면 위의 시대는 생략해서 말이죠
이사야 스가랴 오뎃 스바냐 예레미야 나훔 하박국 자 이렇게 남유다이고
포로 후 다니엘 에스겔
귀환 때 에스라 느헤미야
귀환 후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되는데
엘리야 아합왕과 이사야 아하스 왕 130년 정도 차이나는데
이 아하스 왕 때에 북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을 맺고 있으니까
남 유다 아하스 왕도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자
다메섹 다마스커스를 거쳐서 오르락 내리락 한더라 말이죠
다메섹이 아람 나라의 수도였는데 그 때 앗수르가 쳐들어가서 박살을 냈고
그 다메섹에 앗스르가 커다란 제단과 우상을 세운 것을
다메섹에 동맹 맺으러 간 아하스가 보고 뿅가서
그거대로 따라한다 라고 성전에 앗수르 제단을 세운다 말이죠
그때 우리가 아는 우리야 장군과 이름이 같은 우리야 제사장이 그 일을 명 받아서 우상을 세운다 말이죠
그때 이미 우상이 꽉 차 있는 아하스 왕에게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이사야가 백날 해 본들 소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시는 이유는
이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 라는 말은 이 세 아기
스알야숩 남은 자만 돌아온다
마헬살랄 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지 않고 우리와 함꼐 하신다
즉 이 말은 너 죽었다 라는 겁니다 아까 엘리야 때 아합왕에게 나타난 선지자와 같은 메시지입니다
십잗가의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카이 거짓선지자는 사람을 기쁘게 할 수 밖에 없는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외치고
반대로 참 선지자는 항상 삐딱하게 너 이제 끝났다 죽었다 라고만 외치니
다들 싫어할 수 밖에요 아무도 환영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제대로 죽이는 자를 누가 영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앗수르와 손잡은 아하스가 뿅이 갈 수 밖에 없도록
앗수르의 영광을 에덴동산 나뭇잎들이 다 시기하고 부러워 할 수 밖에 없도록 그렇게 어마무시하게 웅장한 신전과 제단의 우상을 어마 어마하게 보여줘 놓고서
이 솔로몬의 영광과 들에 핀 백합화 곧 광야의 죽음을 대조 하니
누가 힘센 국가의 무기를 제공받고파 하지
누가 젖먹이 아기 힘도 없는 아기를 최전방에 보내고자 하겠냐 말이죠
죽을거 뻔한데 가자 마자 말이죠
아마 근처에서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꺼니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구하지 않겠노라 하시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나는 나의 죽음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앗수르의 영광 솔로몬의 영광
부자 되세요를 구하겠습니다 라고 하지
나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지 않겠습니다
난 절대로 안 죽을꺼예요
반드시 앗수르와 동맹을 맺어서
무기 지원 700조 선진국 천조국 미국으로부터 지원 받아서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꺼예요
라고 해야 그게 대통령 답지
누가 나는 지구상 나라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라고 울면서
남은자만 돌아온다 라고 스알야숩을 구하겠으며
어서 어서 심판해 달라고 마헬살랄 하스바스를 구할것이며
이러 죄인도 용서하시는 죄인을 부르시러 오신 임마누엘 함께 해주시는 분입니다 라고
누가 저 들에 핀 백합화 내일 아궁이에 던질 그 백합화를 구하겠습니까
자기의 끝 죽음을 봐도 못 구하는 판국에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서도 그저 내 구원 내 구원을 외칠 뿐이지
내 죽음도 아닌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나의 실상 실체는 지옥의 몸이다 라고 누가 울겠습니까
다들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못먹어도 고 앗수르의 영광
지옥 가든지 말든지 솔로몬의 영광을 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그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베드로를 탈탈 털어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임마누엘을 구할 수가 없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기도는 오히려 망해도 싼
누가 봐도 망해야 할 자 매국노 세리가 하고
난 십일조 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기에 생략된 것이 뭡니까
그러니까 저 구원받을 자격 갖춘 것 맞지요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셔야죠
저에게 솔로몬의 영광을 줘야 당신은 진짜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다들 이런 식입니다
우리는 저 매국노 세리 속에 속할 수가 없어요
그건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만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죽음이 입혀진 자에게만 해당 됩니다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겁니다
자기 죄로 우는 남은 자
스알야숩
누가 아기를 최전방에 보냅니까
어서 죽어주소서 누가 그렇게 기도하는 자 어디 있습니까
다윗이 정직한 영이 없음을 알고 비로소 구하게 되었지
자기 따나 나 의로운 구석 많지는 않아도 조금이라고 있다 라고 여기지
단 하나도 없는 지옥의 몸이라고 우는 자는 없다 말이죠
또 없다 손 치더라도 아니 임마누엘 아기를 최전방에 보내야 하느냐 말이죠
마치 갓 나은 아기를 유순한 엄마가 스멀 스멀 올라오는 배고픔의 지옥이 올라올 때
아무것도 먹을게 없을때에 이 아기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수 있겠냐 말이죠
안 먹을 정도로 참는다 굽쇼? 배부른 소리인 거죠
오죽하면 유순한 엄마가 남편 먼저 먹으라 라고 해 놓고서는
조금 많이 먹으니까 바로 화를 내었다 라고
성경은 우리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안 그런다 굽쇼?
이 지옥의 몸 죽음의 몸 이라는 실상 앞에서
멋들어진 구원 뭐 성화론 완전히 웃끼는 개소리입니다
진짜 복음의 소리는
이 지옥이 올라오는 이 실상의 현실 앞에서
이 뱃구멍을 뻥 뚫어버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음이다 말이죠
안 그러면 또 다른 자식 잡아먹고
부모 잡아먹고 심지어 가까운 자들을 잡아먹어도 여전히 또 배고픈 겁니다
멀리 있으면 싸움만 더 커지니까 힘들죠 가까워야 쉽게 쉽게
결국 이 몸뚱아리는 철저하게 지옥의 몸임을 들추임 당하지 않는 이상
이 사탄의 깊이를 당하지 않는 이상
모든 허물을 덮는 하나님의 깊이를 알 길이 없는 겁니다
그 카이 중간치 하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학다
새언약
다윗언약
십자가의 언약까지 깊이 들어가게 되면
너무 너무 극단적이게 된다 라고
그래? 그럼 주님꼐서 앗수르에게 영광을 부어서
모조리 다 빼앗아 버리는 겁니다
너 그 임마누엘 구하지 않는
숨겨놓은 앗수르제단 구하는 믿는 구석 그거 손탈탈탈 털어버리겠끔
내가 앗수르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유는
너가 안 부러워 하고는 못 배기도록 뿅가게 해서
너가 사모하는 그 앗수르에게 망하도록 하겠다 라고
몽둥이로 삼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바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의 종
나의 종 나의 종 느부갓네살 왕아 라고 하시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영광을 부어서 몽둥이로 삼고자
안 부러워 하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엉터리 신앙임을 들추어내시고자 말이죠
아 그럼 나는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고자
막살지 않고 바르게 살꼬야
노노노
그렇게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건 여전히 모세언약에 머물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겠다 라는 또 자기 숙제이다는 거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 떠 버린 이상
우리는 원수의 자리에 놓여지게 되고
그 원수의 자리에서 하나님 이겨 먹었다 라고 야곱이 좋아라 하다가
주님이 빵구멍 내시는 이 화목제물이라는 여호와의 뿔에
쩔뚝쩔뚝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뱃구멍이 뻥 허리가 박살난 상태에서
비로소 임마누엘 마헬살랄 하스바스 스알야숩을 구하는 자로 만드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또 의문의 반복으로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장지지겟다는 둥
십자가에 함께 죽겠다는 둥
이거 중심이 있어서 나온게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나온 연기이기 때문에
사랑이 아닌 겁니다
오히려 음녀처럼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서 결혼하겠다 라는 심뽀인 거죠
섬기는 자가 직접 하시겠다는데
그 섬김에 섬김을 당하는
기뻐하심을 입어야 하는데
자기 숙제로 기쁨을 억지로 연기를 할려고 하니
죽음 앞에서 다 무너지는 자기 한계를 못 넘어서는 겁니다
내 개인의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슈퍼맨 영웅이 되어서 뭐하게요?
니체는 자꾸 초인이 되라고 겸손한자 되라고 사기를 치는데
그럼 니가 한번 해 보시라 말이죠
지도 못하는 것을 왜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냐 말이죠
지도 못하면서
실천력을 강조하는 철학자들이 다 사기꾼인 이유는
자꾸 사람을 기쁘게 할려는데 있다는 겁니다
현실을 못 보여주는 겁니다
지옥의 몸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 지옥을 거치지도 않고 바로 구원의 몸 사랑의 몸을 증거할려고 하니
예수님이 필요가 없어요
다들 의인이다 건강한 자다
그것을 향해서 가야 한다 라고 하니
의사가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들의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악항 영을 받았기에
예수 필요 없다입니다
이 짓을 오늘날 교회들이 외치고 있어요
니체 사상을 욕하면서도 자기들 숙제로 꽉꽉 채우는
바리새인들 독사의 자식들처럼
지도 천국 안하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숙제나 자뜩 시켜서
삥이나 뜯어내는
아무리 고상하게 보여도
아무리 바른 복음을 증거한다 라고 해도
결국은 장사꾼들입니다
그래서 미리 이스라엘을 쫄딱 망하게 한 뒤에
망하게 전에 오시던가?
아니요 그때 와도 듣지도 않았어요
망하고 실패하고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지옥 승올 무젓갱이라는
절망의 깊은 바다 어둠 속에서
지옥의 몸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그 지옥 속에
왠 은혜인지 왜 이 죽음 속에 뛰어드신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 어린양의 살과 피를 먹고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라는 사실에
안 노래하고 베기겠습니까?
주님은 자꾸 모든 인간의 실패 곧 죽음에 자신의 죽음을 덧 씌우기 위해서 오셨는데
아직도 배불러 터져서 나는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뭐 내가 식인종이가 사람의 살과 피를 뜯어먹게
너는 식인종 보다 더 더러운 더 악마같은
똥물에 일곱 번 담궈야할 죄인 중의 괴수야
아냐 아냐 나는 그 정도로 악마는 아니야
나는 양심대로 살아갈 거야
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라고
아이구 이놈 아직도 여유를 부리고 있네
오냐 내가 앗수르의 영광 곧 몽둥이를 주변사람들에게 깔아서
어린 계집 아이 앞에서도 과연 나를 안다 라고 하는지 함 보다
아니 예수님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 편입니다 선을 행할려는 마음을 편들어주지 않고
도리어 악마짓을 권장하고 있고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 라고 장담하시는 겁니까
나는 너를 상대로 하는게 아니라 니 뱃속에 있는 우상
선악을 아는 가짜 하나님 그거 상대하고 있거든
그 암덩어리가 너를 장악해서
아무리 선함을 갖출려고 해도 내 앞에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구나
나의 완료가 된 십자가의 피 용서가 있는데
뭐 너의 선함으로 따라오겠다 라고 에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구나
아따 이 양반 내가 다리를 걸은 적도 없는데 왜 비틀 비틀 거리면서 넘어지는 척 하십니까
아이고 환장허겄네 사람 팍 돌게 하시는 제주가 있는 가벼
제발 좀 날 미치도록 만드시지 마시고
함 보소 과연 내가 세 번 부인하는지 안하는지
함 보시랑께 두고 보쇼
아따 축복을 주실생각 안하고
격려를 해 주실 생각은 안코
왜 자꾸 안된다만 하시는겨
사람 미치겄네
이 죽음이
이 몽둥이가
우리의 본 모습을
예수님의 예언 보다 내 고집으로 기여이 이겨먹겠다 라고
그러나 비로소 우는 겁니다
이겼는줄 알았는디
아따 빵구멍 제대로 뚫혀버리니
한순간에 앗수르의 영광처럼 그 멋들어진 맹세 다 허벌나게 다 사라지고
남은 것은 들에 핀 다 말라 비틀어진 풀 밖에 없스랴~~~~~~
그것도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지옥의 몸으로
사망의 몸으로 들추임 당한 몸으로 드러났어라 ~~~~
주님은 이제야 좋다 라고 내가 사랑의 주틀로
아들의 형상으로 이제 찍었뿌겠당께
드뎌 짐승의 형상이 날라가 빈털터리가 됐응께
이제 내 형상으로 사랑이 형상으로
잠을 평안을 쉼을 주시는 형상으로 찍어뿔랑께
싸게 싸게 오너라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암유 지가유 뻔뻔스럽게 이 꺽으신 뼈를 노래하구만유
요한의 아들 시몬아
아들아
이제야 너가 출애굽 했구나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암유 지가유 아들되신 예수님의 형상에 찍어나왔기에
이제야 편히 두 발 뻗고 잘수 있구만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이제 선악에서 탈출해서 사랑으로 들어왔제
암유 그렇구 말구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줄 주께서 더 잘 아시잖아유
주님이 손수 직접 찍어 만드신 아들의 형상 작품 1호 이잖아유
비로소 밭이 갈려서 기경 당해서 부들 부들한 아브라함 품에 안김으로 잠을 자는 겁니다
인간들이 만든 종교의 품 우상의 품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품 모조리 딱딱해서 잠을 잘수가 없어요
모조리 등쳐먹고자 딱딱한 돌에다가 잠깐의 속임수만 덧입혔다 말이죠
그 앗수르의 영광을 사모하다가 앗수르에게 망하는
자기 꾀에 자기가 누워서 침뱉기 했다 말이죠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또렷한 사랑이 밝히 보이는데
뭐 목사가 삯꾼처럼 제발 믿어다오 라고 징징 거리냐 말이죠
먼저 본으로 죽어주지 못할망정
무슨 앵벌이도 아니고 말이죠
차라리 나 거지요 라고 하면 누가 도와주기라고 할 것인데
온갖 멋들어진 모습 갖추어 놓고서
삥을 뜯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말이죠
성경박사들 바리새인이 그래서 사람들의 구미에 딱 맞는 인간이 된 겁니다
그런 자들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을 죽은 자로 보겠냐 말이죠
지옥의 몸
사망의 몸
독사의 새끼 라고 보겠냐 말이죠
고쳐달라고 할 이유가 없는데
도리어 고치겠다 라고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는데
아무도 자신을 죽은 자로 보는 자가 없어서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하는 자가 없더라 말이죠
이 다시 싸매어주시는 아들의 형상이 없어서 망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바로 저런 헛깨비 앗수르의 영광을 솔로몬의 영광을
에덴동산 같았더라 애굽의 영광을 꿈꾸는 자들에게
무슨 놈의 아들의 덧씌우는 출애굽한 어린양 유월절의 피 형상을 덧 씌울수 있단 말이죠
다들 싫어하고 고개를 돌리는디
환영은 무슨 개코
아이고 도련님 이제 망했구만유
이 몰골이 뭐여 뭐여
무슨 수로 감옥에 있는 예루살렘 아씨를 구할수 있당께요
살려 주이소 ~~~~~~~~ 살려 ~~~~~~~ 주이소
어서 죽어주이소 죽어 ~~~~ 주이소
이 구원은 너무 너무 초라한 구원이요 모욕적인 구원이요
초상집에서만 광야 사막에서만 펼쳐지는 십자가의 수치 능욕의 구원이다 말이죠
성도는 아무리 잔칫집에 설사 가 있어도
그 시공간은 여전히 광야와 같은 주님의 죽음이 있는 곳이다 말이죠
내 머리 계산기로 부자냐 가난한 자냐 는 이제 의미가 없다 말이죠
멋들어진 구원은 허구이다 라는 겁니다
어떻게 그 모욕적인 치욕의 십자가가 어떻게 영광으로 보이냐 말이죠
보이지 않는 소망이기 떄문입니다 아들이 소원이지 내 소원 아니거든요
내 소원은 볼 줄 아는 내 눈이 포착한 보이는 소망으로 계산할 뿌이다 말이죠
솔로몬의 영광 못 먹어도 고
묻고 떠블로 가
앗수르의 영광
바벨탑의 멋들어진 대 환영받는 구원
이 완악한 수건을 벗고 싶어도 벗었다가는 다 죽여버리겠다 라는
이 주변의 환경 떄문에 그 동질성 그 일반화 땜시
벗아날수가 없도록 갇혀버렸다 라는 겁니다
아브라함 조카 롯처럼 말이죠
무슨 수로 말이죠
그래서 인간 쪽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다 갖추어도 딱 하나 빠졌다 라는 겁니다
뭔디요?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즉 인간의 모든 번제와 제사를 마귀를 상대할 수가 없어요
오로지 마귀만을 상대로 한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만든 가죽옷 아니면
인간들은 또 허물어지는 무화과 나뭇잎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 의문의 반복 오래 가지도 않아요
또 갈아야 하고 또 갈아야 하고
도대체 몇 번을 용서 해야 한다께?
아니 하지마 용서 하지마 도로 너는 용서 받아야 혀 ~~~~~~
7에 70번이나
그래서 새언약 다윗언약은 우리를 죄인 중에 괴수로 만드시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을 생각을 안해요
왜? 안 보이거든요
보이는 것들만 찾아요 짐승의 형상
사람에게 잘 보일려고 인정받고파서 말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걸맞는 피 신부를 주님이 손수 직접 찾으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늘 헛발질만 하도록 되어 있는 거죠
계속 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인지
다리 몽둥이 뿌사서 다시 싸매어 주실 것인지
이것은 주님의 몫일 뿐입니다
다른 놈들에게 양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인 자기 자신한테도 말이죠
포로된 자 갇힌자 억눌린자
눈먼자 앉은뱅이
고아 과부 나그네
이들은 자기 한계에 부딧혀서 더 이상 스스로 일어설수가 없는 그야 말로 앉은 뱅이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자 흑암의 백성이요 개같은 이방인입니다
거룩이라고는 눈꼽 만치도 없는 덜럽기 짝이 없는 죄인들이다 말이죠
지옥의 몸 그 자체 입니다
이들을 싸매어주시고자 무엇으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애굽한 아들의 형상으로 싸매어주시고자 말이죠
모든 허물
허다한 죄를
다 덮고도 남는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로써 말이죠
이 화목제물을 외친다고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7에 70번 용서를 외치고자
가짜 언약인 남 용서 7번이라는 사탄의 깊이와 대조해서
두 언약을 외친다 라고
교회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예수님 역시나 죽음으로 오셨습니다
오히려 더 또렷한 십자가의 죽음이었고
남 7번 용서 하라 라는 그 의문의 반복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못 보게 하는
사탄의 일
사람의 일
사람을 좋게 하고자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위선이였음을
문제는 그거 그럼 하지 말라는 말이가 가 아니라
그 미완료는 그 어떤 누구도 구원해 낼수 없는
사람의 영광이다 라는 것을
이 또렷한 십자가의 밝히 보이는 사랑 앞에서만
그것이 미완료요 의문이요 흐릿하고 모호한 것이였음을
이 또렷한 밝히 보이는 완료 앞에서
왜 그 의문의 반복에 아무도 살릴수 없는
행위로는 의에 이를수 없는데 말이죠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개역)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개역)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개역)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 2:20, 개역)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1, 개역)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이 주님이 홀로 이루신 믿음으로만
우리는 저 몽둥이 앗수르의 영광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겁니다
탈탈탈 털리도록 말이지요
이 징계의 매가 아니면 아들이 아니니깐요
앗수르로 몽둥이 삼아 나를 치시는 겁니다
인간으로 인간을 치십니다
나를 내 욕심으로 치시는 겁니다
그렇게 찢으셨다가
때리시는 그 아버지의 눈물 그 아픔을 보고
비로소 야곱은 우는 겁니다
나 같은 사기꾼을 저들 사기꾼들을 사용해서 말이죠
두 손에 가득 쥔 내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나는 사람도 이겼다 라는 그 딱딱한 육의 자랑거리는 비로소 눈 녹듯이 사르르 녹이시는
주님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이 사랑이 아니면 그저 딱딱하게 약속의 땅 마저도 울퉁불퉁 첩경으로 만드는
그 척박한 내 마음을
주님의 아픔인 그 눈물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골고루 평평하게 손 놔 손 놓으라 라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시면서 맞는 우리 보다
때리시는 그 상한마음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찢겨짐 속에 들어오시는 겁니다
이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시끄러운 울리는 꽹과리요
디른 거룩의 모양 경건의 껍데기는 독이요 전갈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