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9

에덴동산 나뭇가지들도 다 투기하는 앗수르의 영광 (겔 31, 1- 9)

김 대식 2024. 11. 22. 20:14

21-085 에덴동산 나뭇가지들도 다 투기하는 앗수르의 영광 (겔 31, 1- 9).mp3
7.85MB

21-085 에덴동산 나뭇가지들도 다 투기하는 앗수르의 영광 (겔 31, 1- 9)
2024.11.24.

솔로몬의 영광이냐? VS 내일 아궁이에 던질 광야 사막 들판에 핀 백합화냐?
솔로몬의 입은 옷도 이 꽃만 못하였네  새찬송가 588장(통307)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백합화   새찬송가 478장(통78) 참 아름다워라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어 주지 않으심 (겔 30,20-26)
에스겔 2019 2024. 11. 2. 18:27
21-084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주지 않으심 (겔 30,20-26)

〈에스겔 31, 1-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8쪽, 찬송가 78장 새 478 참 아름다와라, 찬송가 307장 새 588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새찬송가 478장(통78) 참 아름다워라
새찬송가 588장(통307)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찬송가 078장 참 아름다와라, 새찬송가 478장〉

1.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3.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들리니 
   주 하나님 큰 뜻을 내 알듯하도다.  아멘


〈찬송가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새찬송가 478장〉

1. 공중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할 것 무어냐

2.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수고 안해도 
   솔로몬의 입은 옷도 이 꽃만 못하였네 
   아궁속에 던질 풀도 귀히 입히시거든 
   사랑하는 자녀들을  입히시지 않으랴

3. 너희들은 세상에서 무엇 먹고 마시며 
   무슨 옷을 입고 살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는 이방 사람들이 간구하는 것이요 
   너희 하늘 아버지는 너희 쓸 것 아신다

4. 너는 먼저 주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 
   내일 일을 위하여 미리 염려말지니 
   내일 염려 내일하라 오늘 고생 족하다


〈에스겔 31, 1-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8쪽〉

(겔 31:1, 개역) 제십일년 삼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1:2, 개역)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뉘게 비하랴
(겔 31:3, 개역)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겔 31:4, 개역)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겔 31:5, 개역)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
(겔 31:6, 개역)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겔 31:7, 개역) 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겔 31:8, 개역) 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우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아무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겔 31:9, 개역) 내가 그 가지로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지가 다 투기하였느니라

(겔 31:1, 새번역) 제 십일년 셋째 달 초하루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31: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이집트 왕 바로와 그의 무리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위엄찬 모습을 누구와 비할 수 있겠느냐?
(겔 31:3, 새번역) 앗시리아는 한 때 레바논의 백향목이었다. 그 가지가 아름답고, 그 그늘도 숲의 그늘과 같았다. 그 나무의 키가 크고, 그 꼭대기는 구름 속으로 뻗어 있었다.
(겔 31:4, 새번역) 너는 물을 넉넉히 먹고 큰 나무가 되었다. 깊은 물줄기에서 물을 빨며 크게 자랐다. 네가 서 있는 사방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개울물이 흘러, 들의 모든 나무가 물을 마셨다.
(겔 31:5, 새번역) 너는 들의 모든 나무보다 더 높게 자랐다. 흐르는 물이 넉넉하여 굵은 가지도 무수하게 많아지고, 가는 가지도 길게 뻗어 나갔다.
(겔 31:6, 새번역) 너의 큰 가지 속에서는 공중의 모든 새가 보금자리를 만들고, 가는 가지 밑에서는 들의 모든 짐승이 새끼를 낳고, 그 나무의 그늘 밑에서는 모든 큰 민족이 자리잡고 살았다.
(겔 31:7, 새번역) 네가 크게 자라서 아름다워지고, 그 가지들이 길게 자라 뻗친 것은, 네가 물 많은 곳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겔 31:8, 새번역)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백향목들도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잣나무들도 네 굵은 가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단풍나무들도 네 가는 가지들만 못하다.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도 너처럼 아름답지는 못하였다.
(겔 31:9, 새번역) 내가 네 가지들을 많게 하고, 너를 아름답게 키웠더니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이 모두 너를 부러워하였다.


자 이전에 했던 내용들의 제목을 나열하면서 요약을 해 봅시다
19장부터 시작해 보면 

2023.02.11 [사자의 애가] 비유(수수께끼) (겔 19, 1-14) 1

에스겔 19장에 마지막 남 유다 네 마리 사자 곧 남유다 마지막 네 명의 왕 그 왕들의 죽음을 예언하심으로써 이제 20장부터 이스라엘의 심판을 본격적으로 실행하십니다 곧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입니다
왜?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처음자리 곧 다시 처음 자리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 20장의 여호와의 날 첫맹세의 날입니다

2023.03.03 옛날에, 애굽의 종에서 택하여 맹세한 그날에 (겔 20, 1-12)
2023.03.25 내 안식일을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으로 삼았었노라 (겔 20,12-26)
2023.04.15 열조의 풍속(장로의 유전)을 따라 스스로 더럽히며 (겔 20,24-36) 1
2023.05.06 막대기와 언약의 줄로 심판 속에서 여호와를 알게하심 (겔 20,37-39) 1
2023.06.17 거룩함(상 주심)을 열국(원수)의 목전에서 ; 은혜로만 들어가는 중심 (겔 20,40-44)
2023.07.08 불 지르러 온 여호와와 비유로만 외치는 인자야 또 너냐? (겔 20,45-49)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듯이 애굽화 된 이스라엘로부터 출이스라엘 출교회 출세상 하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날이 먼저 떳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에스겔 20장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됨의 스타트입니다 시작 입니다

정년이 버전 국악풍으로
 
아니 찢어졌어야 다시 싸매어 주실꺼 아닌겨라우
이것이 여호와의 맹세 이니께잉 암 그렇구 말구지

2023.07.29 의인과 악인을 살륙하는 여호와의 칼이여 칼이여 (겔 21, 1-17)
2023.08.19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하심 (겔 21,18-23)
2023.09.09 왕관을 제거하고 면류관 벗겨 낮은자 높이고 높은 자 낮춰라 (겔 21,23-27)
2023.09.30 암몬의 구원의 날이 곧 암몬의 심판의 날 (겔 21,28-32) 1

에스겔 21장은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함으로써 이방인도 이 심판 속에 들어가야 함을 끄트머리에 보여주심으로써
제일 먼저 의인인 하나님의 자녀의 심판이 시작 되고 악인인 이방인의 심판이 암몬으로 확대됩니다

이 여호와의 날이 먼저 떳기에 이스라엘을 모조리 실패케 만드시고자
철저하게 그들이 죄악을 낱낱이 들추어내십니다
여호와의 날 곧 칼이지요
지금 우리가 여호와의 뿔에 대해서 요즘은 언급하듯이 이제 또 여호와의 팔에 대해서 언급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징계의 매 인 겁니다. 이것이 첫사랑이니까 이 첫사랑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처음자리이 이스라엘의 본래자리를 주님이 마련하시는 겁니다
여호와의 팔이 떳응께잉 암 고로케 허야지

이것이 암몬 심판 개시 전인 24장까지 예루살렘의 죄악이 나열이 됩니다

2023.10.20 부모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해쳐 피 흘린 예루살렘의 죄악을 국문하라 (겔 22, 1-12)
2023.11.11 지옥된 세상과 수치를 당함 (겔 22,13-16) 1
2023.12.02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과 풀무불 심판 (겔 22,17-31) 4
2023.12.22 두 음녀 오홀라 오홀리바 (겔 23, 1-10)
2024.01.11 그 형보다 더 부패한 오홀리바 (겔 23,11-24) 1
2024.02.02 다시는 애굽(인간구원) 기억 못하게 예수님만 구원하는 이름전쟁 (겔 23,25-27) 2
2024.02.24 음란죄 살인죄를 담당할지라 (겔 23,45-49) 1
2024.03.16 녹슨 가마솥 비유 (겔 24, 1-14)
2024.04.06 인자 에스겔 아내의 죽음 (겔 24,15-27) 1

자 25장 부터는 이방나라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의 멸망입니다

암몬부터 시작 해서 모압 그리고 에돔 시날 그리고 두로와 시돈 심판 입니다

2024.04.27 암몬족속을 향한 심판 예언 (겔 25, 1- 7) 3
2024.05.18 이스라엘 특이성 오독으로 저주 받는 모압 (겔 25, 8-11) 2
2024.06.08 에돔의 복수심, 원수갚는 범죄를 심판 (겔 25,12-17) 1
2024.06.29 두로 심판과 언약이라는 진짜현실 (겔 26, 1- 7, 26장- 27장) 1
2024.07.20 나는 신이다 내가 하나님이다 라는 두로 왕의 교만 (겔 28, 1-10, 28장) 1

암몬의 죄악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점괘에 맞게 심판 당하니까
자동적으로 자기들의 구원이라고 본 그것이 도리어 죄악이 됨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의 죄악의 속성을 이스라엘부터 이방나라의 죄악까지 들추어내시면서 심판하심으로써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이런 것들이 심판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겁니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는 의미 인데
성화론자들은 또 그것을 가려내어서 심판 안 받는 조건을 갖추겠다 라고 하니
이것이 암몬 족속의 자기가치가 높아졌다 라는 것을
저 이스라엘의 심판을 보고 졸지에 남의 멸망은 곧 나의 기쁨이 되는 이 보편적인 인간의 속물근성이 다 내재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뭘 해도 지옥의 몸 맞음을 말이지요

자기의 가치를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 라는 안정감을 꼭 남이 못 되는 상황 속에서만 발견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 라는 것이 특히 한국인의 속성이요
이것이 다른 민족에게서는 없는 주변 강대국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력이다 라고 역사가가 말하더군요 (딴지일보 기자 출신인 작가 홍대선이 인문학 컨텐츠에 나와 자주 주장하더군요 인간의 사상은 다 개인 주체 확립입니다 특히 동양의 집단주의에서는 더더욱 강조해야 할 사상이 된 거죠, 딴지 일보라 ㅋㅋㅋ 그카이 겸손은 힘든거죠 개인이 주체가 될려면 겸손 때문에 한 없에 보류하고 뒤로 미루어야 항께롱 없는 자아를 구름 먹듯이 바람 먹듯이 해야하는게 더 급한디 겸손은 힘들다꼬 트릭을 쓰는 거죠 가스라이팅하는 겁니다 힘든 정도가 아니까 거부하는 마음을 거부감 안들겠끔 트릭으로 말이죠 적개심을 들통당하면 바로 적개심을 받으니까 말이죠)

유럽인이 한국인을 이해할려면 라고 눈치를 잘 이해 해야 한다 라고 그런 책이 유행한다더군요
그러데 유럽인 치고 눈치 보는 자가 없거든요 그러니 눈치가 뭔지를 이해를 잘 못하다 보니 이런 책들이 필요한 거죠

진짜 배려해야만 하기 위함이 아닌 남의 눈을 의식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니까 보상의 힘을 믿는
결국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서양버전의 느린 버전인 대기만성 버전

성질 급한 자는 안되니까 경상도는 바로 정치로 빠지듯이 말이죠

눈치

그 다음 모압의 죄는 세일 나라 세일 족속의 죄는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 심판 받는지에 대한 그 이유를 몰라서 망하는 겁니다
마치 망하는 이유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망하는 것처럼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분명한 이유를 보여줘도 못 알아먹는
심판 자체도 비유 이니까 말이죠
아니 자기 민족의 신인 여호와가 자기 나라 백성을 심판해서 모조리 다 없애 버리면
그 신은 도대체 누구를 통해서 증거되느냐 말이죠
그러니 도저히 이해가 안되면
보편적진리를 도입해 옵니다 소위 요즘식으로 말하면 통계학 이것도 점괘 토정비결인거죠
빅데이터로 자료를 수집해서 패턴을 읽고 해석하는 거죠
그 상가에 누가 어떤 직업군이 몇시에 얼마나 물건을 사가는지 통계를 내어서
거기에 맞는 상품을 파는 이런 데이터 분석을 하는 겁니다
주로 여자들이 점괘를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정치적인 분석을 평상시 잘 안하거든요
주식하는 분들 중에 여자분들 요즘에 남녀구분이 없어서 그렇지
10년 전만 해도 잘 없었으니 그 이전에는 거의 없는 이유죠
이런 토정비결이나 데이터분석은 남들 하는치 만치 하는 것 뿐이지
더 할것이 없습니다 점쟁이 본인이 고만 고만한 장사로 먹고사니까요
으리 으리한 점쟁이 집에 가는 놈이 없잖아요 다 고만 고만한 잔챙이들 뿐이지
교회 삯꾼목사도 마찬가지 다 서민들만 등쳐먹고 사는 것들인 겁니다
그카이 예기치 못한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이익은 보장되는 거죠
바로 이런 분석이 일반이라 라는 표현으로
딴나라 이방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뭐 똑같네 하나님 믿어본들 믄 소용이고 망하는 것은 역시나 같은 죄로 망하는데 뭘 이라는 일반 동질화로 해석했다 라는 이유로 망하는 겁니다
특별하게 망하는 것으로는 해석이 안되니까 말이죠 해석 못한다 라는 평가를 내린 그 평가로
즉 자기 죄로 망하는 겁니다 너도 그 일반 평가 속에 집어넣을께 라고 말이죠
참 말도 안되는 식으로 뒤짚어 씌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맞습니다 뒤짚어 씌우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지옥 보내는 겁니다
이유 있는 지옥 보냄이 아닌 거죠
이유 없이 지옥 가는 겁니다
나중에 그 원인을 뒤짚어 씌우는 거죠 평가 엉터리 했응께 라고

자 그렇게 모압과 세일이 망하고

그 다음 에돔족속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 답게
그 아비에 그 자식 답게 복수심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아니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족속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됐거든요
누가 이것을 수용하겠습니까?
애굽나라 바로왕이 아무리 모든 사람이 다 부러워 하는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살기좋은 나라 우리 힘으로 만드세 라고 살기좋은 나라 만들어도
오늘 본문 앗수르 나라 영광스럽게 만들어 버리면 갑자기 불행해 지는 겁니다
못 사는게 됩니다 세계 1등이 못 되는 이상 말이죠
다른 나라야 2등도 살기 좋은 나라 아니냐 라고 해도
1등을 맛보다가 2등으로 내려오면 그거 억울해서 못 사는 겁니다
그렇기 떄문에 망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라는 겁니다
결국 자기의 특이성만 되기를 바랬지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일반으로 보는 해석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망함을 반드시 이스라엘에게 뒤짚어 씌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심뽀로 태어났기에
자기 눈을 자기가 찌르는 식으로 가는 거죠 
그카이 이스라엘 망하는 것에 누가 더더욱 즐거워 하겠습니까?
당연히 천년 이상 그것도 2 천년 가깝게 복수심으로 가득차 있는데
망하니까 그 누구 보다 더 기뻐하겠지요
그 복수심이 너 에돔을 망하게 하고
그 기쁨이 너 에돔을 망하게 한다 라는 겁니다
다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인 겁니다

어딜 이 십자가 라는 예언의 언약이 있는데 어딜 사람의 뜻 일로 취급하느냐 말이죠
도리어 미끼를 물어 버린 것이여가 되는 거죠 공포영화처럼
그리고 블레셋 또한 에스겔 25장 15절에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으로 망한다 라고 하십니다

에돔과 같은 이유인 거죠 자 이렇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축복하심을 이스라엘이 망할때에 그 기능이 발휘가 됩니다
살아 있을때에는 안나타나는 기능이
존재가 상실 되었을때에 비로소 그 복의 근원이 됨의 기능이 말이지요

사실은 그것은 그림자 이고 실상은 예수님이 바로 복의 근원으로써
이스라엘을 통해서 미리 맛배기 샘플로 보여주신 겁니다
이스라엘은 때려죽어도 동의를 안하지만 말이지만 말이죠 ㅋㅋㅋ

그리고 단락 끊어서 올린 구절의 마지막 두로와 시돈
이 두로는 특이하게도 이스라엘이 특이성을 눈치챘다 말이죠
그리고 그 혜택도 누렸다 말이죠
그렇다고 이 두로가 주변의 더 큰 나라의 활동에 다 같이 왕따 시키고 있는데 있어서
가만히 있겠냐 말이죠
자진해서 알아서 나서서 왕따 시키는 겁니다
그 작은 나라가 말이죠
그렇게 과거에 히람 왕이 다윗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살려줌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 성전 짓는데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장 좋게 성경이 취급했는데
그 백향목을 성전 짓는데 사용했으니
이제 그 성전 내놔라 라고
물에 떠내려가는 놈 살려 줬더니만 이제는 보따리 도로 내놔라 라고 강도로 변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다른 이방나라의 멸망과 달리 길게 석 장 씩이나 할애하면서까지
이 두로 나라의 교만과 그 심판에 대해서 나열하십니다
부자도 아니면서 교만하고 가난한 자라서 도둑질 할까봐 걱정이라서
중간치 하고 있는데 정작 부자 아니면서 늘 부자 같이 꿈꾸다 보니 교만하게
세상의 중심 시온의 예루살렘을 차지 했다 라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니까 내가 신이다 라고
저쪽 사자도 가만히 있는데
조그마한 여우 주제에 자기가 사자 노릇하면서 다른 들 짐승의 삥을 뜯어내는 식이다 라는거죠
오늘날 교회들이 얼마나 그러 정치 짓을 하는지 말이죠
부자 앞에서는 아부하고 가난한자는 등쳐먹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이카니까 자기는 중간치 하겠데요 글쎄
중간치 하는 놈이 더 해요 그 놈이 두로 왕이다 말이죠
이 놈은 숨어서 하는 놈이기 떄문에 더더욱 세세히 기록하면서
아예 아작 아작 잘근 잘근 작살을 내시는 겁니다

2024.08.10 큰 악어 애굽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겔 29, 1- 7)
2024.08.30 애굽과 이스라엘의 두 언약의 푯대(위치, 입장) (겔 29,12-16) 1
2024.09.19 이스라엘에게서 난 한 뿔 (겔 29,17-21) 4
2024.10.12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애굽나라 (모든나라 애굽화) (겔 30, 1-21) 5
2024.11.02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어 주지 않으심 (겔 30,20-26)

자 그리고 이제 삼인방 애굽 앗수르 바벨론 남았지요
애굽은 지난번까지 다루었구요

생략하고요

이들 3인방은 저들 잔챙이를 흡수통합하면서 그들의 죄악의 속성을 다 담음과 동시에
그들만의 죄악성을 더 깊게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물론 그 원조는 애굽이고 그 원조는 바벨탑 구원의 탑(꿈의 실현잉께 그래요 난 꿈이있어요 ? 거위의 꿈 그려 비록 내가 정년이 미운오리 새끼이지만 반드시 거위가 될꺼랑께!!) 이였듯이 말이죠
(그래서 영적으로는 애굽이다 라고 표현했더군요 그 당시 애굽나라는 잔챙이에 불과했으니 말이죠 바로왕떄가 진짜 애굽잉께)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겠다 이것이 노아방주 홍수심판의 잔상으로 남았으니

더더욱 저런 강대국 요즘으로 치면 선진국을 더더욱 꿈꿀꺼 아니겠습니까?

트럼프 누구나 다 아는 똘아이 정신병자를 왜 뽑겠습니까?
미국 민주당은 백성들 배 곪는 것 그것이 우선이 아니라
자기들 위선을 즉 자기들 가치를 먼저 우선시 하거든요

그런데 배고프면 그것도 말짱 도루묵 아니냐 말이죠
남의 나라 전쟁에 왜 700조 가까이나 퍼 주고 있냐 말이죠
아무리 바이든이 공산당 하면 치를 떤다 라고 해도
지금 시대에 그런 냉전시대를 다시 불러 일으키느냐 말이죠
다 자기 개인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그 선함을 위한 것에
왜 우리가 함께 배고파 가며 동참하느냐 라는 거죠
(그래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독립운동하는 이런 위선자들은
성경대로 따지면 이런 아비아달 제사장 그리고 다윗의 조카 요압장군 이런 명분 찾는 것들은
하나님의 원수 라고 다 죽이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독재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자동적으로 선함이 되느냐 말이죠?
주님은 빌라도 에게 이런 민주주의도 아니요 독재도 아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라고 하시거든요 인간의 나라 이제 물 건너 간 겁니다 허깨비 바람 같은 안개를 왜 꿈꾸냐 말이죠 헛바람 집어넣는 것들을 하나님의 원수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시편에서 나오는 해석 불가의 원수 곧 다윗 자기자신 인 거죠 그 망상에서 주님이 다윗을 건져주시는 겁니다
솔로몬 이후로 헛도다 라고 이스라엘 철거 작업을 하시지 않으면 솔로몬은 건짐 못 받는 겁니다 솔로몬 영광에서 정작 솔로몬을 구출해서 들에 핀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로 만드셔서 구원했거든요 새로 아들의 영광으로 붕어빵을 찍어낸 겁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결국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음을 아는 겁니다 그래 다행이다 알아서 이제 그 화 불에 타야 할 것들인 솔로몬의 영광을 철거할게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게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요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심입니다
오늘 앗수르의 영광은 하루 아침에 망했건만 다시는 싸매어 주지 않는다는 것 이제 미움받기로 작정 됨이다 라는 거죠 오늘 말할 것 미리 다 말해버렷네요 이놈의 성질 급한 성질 으이구 ㅋㅋㅋㅋ)

우리 똘아이 무당 통도 대리 전쟁하겠다고 라고 나서니
아직도 배불러 터진 거죠

남들 다 발 뺄려고 하는데 지 혼자 돌격 앞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죠

자 이렇게 다들 꿈꾸는데 일반화 동질화 된 앗수르 선진문명을 꿈꾸지
누가 저 배고픈 가난한 나라를 꿈꾸겠냐 말이죠
이스라엘도 이런 판국에 쫄딱 망했는데
망해도 못 먹어도 고 라고 외치고 먹고 떠블로 가 라고 하는 판국에

누가 들에 핀 백합화를 꿈꾸냐 말이죠
그것도 내일 아궁이에 던져서 죽이시겠다 라는데

모두다 꿈꾸는 것은 앗수르입니다
대 환영을 받고 다들 그런 나라가 되고자 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바람을 우상을 잔뜩 심었기에
안 꿈 꿀수가 없는 겁니다
자 그렇게 다들 실패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자에게만 말이죠
실패 없는 성공의 집인 잔칫집에 있으면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인생을 의지하기 마련이니
누가 예언을 환영하겠습니까?

다리 걸어 족족 넘어지게 실패케 만드시는 이 예언을 말이죠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교회 다니고 모태 신앙이라고 우겨도
모 태태태태태태태태태태태 신앙이라고 우겨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은 이유인 겁니다
예수님을 다들 싫어버린바 되었다 라고 다들 고개 돌렸거든요
즉 이 말은 반대로 앗수르는 환영했습니다
왜 솔로몬의 영광처럼 영광 스럽거든요
그러니 더더욱 완악한 수건을 못 벗는 거죠

이들 이방나라 또한 국가를 바벨탑은 구원의 성전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국가가 망한다 라는 것은 그야말로 치욕스럽기 짝이 없는 실패 땡 실패입니다
그 수치를 누가 싸매어주느냐로 달려있기에

잔칫집에서는 이 싸매어주심 자체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죠
광야에서 초상집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야히로의 딸을 단순히 맛배기로 그녀의 죽음을 되살린 것이 아닙니다
개인 구원으로 개인 목숨 끊어진 것 되살린 것이 아니라
나사로의 죽음 또한 말이죠

사망 권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사망권세 멸하심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인간들은 바벨탑 곧 자기들의 구원장치가 이미 있는데
그게 바벨밥이자 국가죠
유대인들은 국가를 비록 망해서 다른나라에 빼앗긴 치욕스러운 포로 상태요
국치(나라의 치욕) 상태라 어서 어서 자주 독립을 해야 하는 판국에
이 국가정신을 대변해 주는 이 성전이 있거든요 그것이 국가를 대신해 줌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다 말이죠

그런데 로마 국가도 무너뜨리시겠다 라고 하구요
유대인의 성전도 무너뜨리시겠다 라고 하면

(요 2:1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마 26:61, 개역)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마 27:40, 개역)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막 15:29, 개역)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아니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냐 말이죠이 황금소 금송아지 라는 국가 라는 짐승 곧 우상은 누가 키우냐 말이죠

이런 판국에 성전을 헐라??
아따 이 양반 한 국가의 민족을 말살하는거나 마찬가지인 위험한 발언을 허시네~~~~~~~~유
(뭐든지 유 만 붙이면 돼~~유??? 아 이건 충청도지유 아따 참내 전라도는 뭐여~~~) 

어 그럼 3일만에 다시 싸매어주신다는 그 말 같지도 않은 말 믿고
다 디지면 책임질꺼유???

이 책임이라는 말이 웃끼는게
산 자 만이 책임을 지고 있지

살아있지도 않은 자는 책임 질 것이 없쥬
그렇쥬

이젠 쥬만 붙이면 다 돼쥬

그래서 인간은 책임 질 것이 없다 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태어나야만 한 거쥬

즉 인간은 자기 살아 있다에서 출발하기에
그것이 먼저 우선시 되기에 (인간 자기 일이 먼저이기에)
이것이 사람의 일이기에

예언(하나님의 언약 곧 새언약인 십자가 그 당시는 곧 다윗언약)을 무시하는데

정작 예언은 인간은 살아있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죄 아래 곧 이미 시체이다를 말하기 위해서 태어나야만 했다 라는 겁니다
왜? 선악과를 따먹었응께
곧 가짜 하나님이 된 인간 자기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그 죽음을 거치지 않았기에
어서어서 자기의 한계인 그 죽음을 거쳐서
그카이 왕은 나라와 백성의 대표로써 왕의 실패로 국가의 실패로
이 죽음 속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요나의 표적 곧 절망이라는 그 실패 속에서
결국 실패가 아니면 더 이상 내부에서 끊어지는 그 단절성을 못 느끼겠지요
실패 만이 드디어 율법 외에 한 의 라는
외부의 작업을 비로소 보는 겁니다
그렇기에 처음자리인 본향의 이름인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 새롭게 출발하는 그 의로 다시 싸매어주느냐 아니냐 로 달린 겁니다
달음박질 함으로도 아니요
원함으로도 아닌
긍휼히 여기실 자를 여기시는 주님의 죽음으로 달린 문제이다 라는 거죠 주님의 숙제 말이죠

근데 어라 안 디졌뿟네
사람의 일의 실패와 자기 자신의 한계인 그 죽음을 거치지 않게 되니
육의 생각 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이 반영이 되어서
어라 부활까지 장자까지 새끼를 낳는 겁니다 실패는커녕
오히려 생육하고 번성하라 다스리고 출만하라 가 졸지에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로써 혼합물 오예물 찌기로써 확장 되는
자식이라는 부활이 우상화 되는 겁니다 
새끼까고 새끼까고 쑥국 쑥국 쑥쑥국 쑥구 쑥쑥 잘도 낳네 그려 라고

장자만 있으면 매번 부활하는디?
그런데 말라꼬 이 모세언약만으로도 충분한디
말라꼬 멋땀시 다윗언약까정 필요하당게~~~~~~~~~~

(창 6:8, 개역)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 언약 필요 없당께

창조 언약으로도 충분하당께롱

(창 6:1, 개역)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 6:2, 개역)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 6:3,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4, 개역)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 6:5, 개역)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6, 개역)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7, 개역)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은혜 라는 의미가 처음 나오는데 곧 심판하시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심판 곧 처음 나오는 의미인 거죠

(창 6:8, 개역)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 언약은 그래서 첫아담의 형상을 곧 육의 소욕을 모두다 십자가에 못 박고자
모든 육체를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 다 이루심이다 말이죠
무슨 수로 인간이 인간 스스로가 자기 인간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 따르겠다 하면서 육을 심판하겠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겠습니까? 그건 육이 육을 심판하는 짓이니 역시나 육의 일인데

누가 자기 스스로 노아언약을 이루고자
함 땅 애굽 땅에서 탈출해서 가나안 족속을 곧 우상숭배자들을 다 몰아내고 그들의 우상을 헐고 삼일만에 다시 아들의 형상을 세울수 있겠습니까?
출애굽도 할 줄 모르는 판국에
음부의 권세 곧 사망의 권세를 무슨 수로 멸하겠습니까?
불치병 고치고자 의사가 되면 사망 권세 이길수 있겠냐 말이죠?
아니면 유전자를 조작해서 젊은 세포 곧 늙지 않는 세포로 만들면
그것이 사망 권세를 이길수 있겠냐 말이죠
어떤 영화를 보면 영생을 줘도 못 먹을 정도로
심심해서 자살하는 미래사회를 그리던데 말이죠
다 해보다 해보니 죽음이 궁금해서 마지막 권태로움 속에서 죽음이 졸지에
영생을 줘도 죽음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니 그 정도로 헛되고 헛된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인간은 가치가 있어야 뭐 영생을 하든 말든 의미가 있을 건데
껍데기 백날 천년 만년 영생을 해 본들 그 자체가 지옥이다 라는 겁니다
그 지옥 무슨 수로 이길거냐 말이죠
이미 벌써 시체로 취급하는 외부의 시선이 덮쳐졌는데 말이죠
그카이 이 언약 곧 예언의 말씀을 싫은 겁니다
가장 싫어하는 자들이 역설적이게도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다 말이죠
믿고픈 하나님 보고픈 것만 보는 성경구절
그것 골라 골라 먹고 있는데
예수님이 와서 모조리 다 환전상 엎어버리듯이
닭 새들 비둘기 양들 소 다 회초리 들고 쫓아내시듯이
뒤짚어 엎어 밭갈이 기경을 해 버리시는데 말이죠
이런 주님은 아무도 좋아라 하지 않습니다
다들 싫어해요
걸림돌 나타났다 라고 다들 고개를 돌린다 말이죠
누가 아들의 형상을 원하겠습니까? 흠모할 모양 이미지 형상이 없다니깐요
아름다움도 고운모양도 없이 그저 병들어 있어요
우리의 죄악을 모두다 담은 얼굴이라서
아무도 안 쳐다 보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봐야 허는디
눈을 마주쳐야 허는디
다들 눈을 피하고 고개를 돌리기 바쁠정도로
그 정도로 싫어버린 바 되었어요

즉 이 말은 안 싫은 것이 있기에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렇거든요 
그게 바로 첫아담의 형상이다 말이죠
말이 하나님의 형상 회복 운동이지 결국 첫아담 형상 회복 운동인거죠
이거 찢어지지 않는 이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 이상 자기 한계치가 아직 다다르지 않았다고
여전히 활개를 칠꺼다 말이죠
그러니 다 망하고 난 다음에
죽은 다음이 이런 에스겔을 통해서 하시는 예언이
비유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죽었는데 들려주심은
들을 귀가 있어야 하는데
다 죽어서 들을수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 말이죠

한계치를 꼭 넘어서 이야기 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내 열심히 특심일 때 카셔야징
내 귀가 죽어 귀머거리가 되었는데 무슨 수로 듣냐 말이죠
그카이 쓸데 없는 짓으로 취급하는 겁니다

또 살아있으면 살아있다는 이유로 모세언약으로 충분하다 라고
내가 알아서 할꺼당 이라고 하고
죽으면 죽은 뒤에 믄 소용인가 라고 또 거부를 하는
이 육의 일 소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라는 거지요

그래서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모두 다 못 박겠??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말은 인간의 언어 곧 선악체제에서는 무슨 소리인지 말도 안되는 소리일 뿐이고

노아가 은혜를 외부에서 주어셔서 받음을 당하니까
아 죽으라는 소리이군요 라고 이 죽음을 미리 종말을 미리 준비하는 방주를 시작하는 겁니다
말이 방주이지 죽음을 끝을 땡기는 반대인 거죠

은혜란 결국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게 아니라
죽기 위해서 태어났음을 보여줌에 있어서
그 죽음에 그 찢으심에 누구의 죽음이 덧 입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 내가 왜 안 죽고 주님이 내 땜에 왜 죽지 라고
내 죽음의 심각성이 아닌 주님의 죽음의 심각성을
죽음 속에서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스올 무저갱 지옥 죽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 지옥의 몸에서
죽기 위해서 태어난 몸에서 느끼는 겁니다
내 죽음 보다 예수님의 죽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은혜가
바로 육의 소욕 사람의 일의 반대인 성령의 소욕 곧 하나님의 일이다 말이죠

아니 말라꼬 하나님 형상인 첫아담의 형상으로도 충분헌디
말라꼬 아들의 형상인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까정 필요한닷께요잉

쓸데없는 소리 말라꼬랑 헌번만 더 씨부리싸면 디질줄 알어 ~~~~~~~
알어 몰러 ~~~~~

그렇게 인간은 성전을 교회를 종교를 구원의 장치를 국가를 우상을 사수하기 위해서
곧 자기 자신이지요 10가지 신들이 보디가드로 보호 캐어하고 있는 장자
곧 첫아담의 형상을 잇고자 태어난 장자를 깨뜨리는

다른 아들 곧 아들의 형상 그것도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
맞아요 안 보이도록 죽여버렸어요
어라 그런데 다시 살았데요 글쎄
이제 안 보이는 놈은 지옥이고
믿음으로 보이는 자는 천국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 아들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이 니고데모야
종교선생이니까 얼마나 성경지식이 박사급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소리 인줄 몰라요

지식도 내가 있어야 쌓든지 말든지 내 하기 나름인데
내 숙제에서 벗어나서 외부에서 다 이루어서 벌어진 사태를 믿으라고 하니
내 믿음은 행위에서 났기에 도저히 그 비밀 솏에 못 들어가는 겁니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합니까 라고

나 있음에서 다시 있음으로 외에는 방법이 없다 라고 보는 거죠

성령으로 거듭난다 라는 은혜의 의미는
노아가 이 종말 곧 자기 한계치인 인간의 한계치인 자기 죽음을 미리 앞당겨 누리는 겁니다
아 그럼 자살하라굽쇼? 아닙니다
인간이 이미 가족도 있고 자식도 있는 이상 종말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이 육의 단절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비로소
지옥의 몸인줄 알지 죄인인줄 알지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비로소 보게 되지

자살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 놈의 더러운 세상 날 안 알아주네 아닙니까
결국은 자아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자살하는거다 말이죠
믿는 구석이 있는 거죠 즉 날 알아주는 세계를 희망하면서 말이죠
자살할 자격 조차도 없다 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마치 자격이 생생하게 있다는 냥 적개심에 복수심으로 가득차서
이게 한풀이 아닙니까 인간의 믿음은 한 풀이입니다
모든 종교는 한 풀이 이다 말이죠
내 이렇게 까지 했는데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는데
좋은데 안 보내주기만 해 봐라 콱 죽여버리겠다 아니면 콱 디질뿔랑께 라고
자기 아니면 남을 보이는 족족 다 죽이겠다 라는 살인의지인 겁니다

거 보세요 굳이 목숨이 끊어지는 상태가 되어야 죽음이라고 명명하는게 아니라
이미 인간은 죽은 시체로 좀비처럼 살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하루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공기를 마셔야 하는지
왜 어제 저녁에 잠을 잤는지 왜 또 오늘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지

마침 과학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간이 왜 잠을 자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아직까지도 못 풀었다 라고 하더군요https://youtu.be/F3F3TtEBuyY
과학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선악의 언어로 구성이 된 논리쳬계 아니냐 말이죠
원인을 모르면 결과를 알아낼수가 없어요
성경은 그 반대입니다 원인 없이 결과를 누리느 겁니다
왜? 그것이 사랑이니까요
즉 이유 없이 사랑하니까요
이유 없이 무조건 원인도 없이 결과적으로 누리는 사랑이다는 겁니다
사랑이 만약에 이유가 있으면 그것은 언제든지 변하는 것이 되겠지요

자 그렇게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나왔지만 
사랑의 언어가 아닌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시지만)
선악의 언어에서는 보통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 (감추어진 비유 비밀 숨겨진 언어)
무지 무지 어려운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랑 안에서는 어린아이도 다 알아먹을 정도로 너무 너무 쉬워요
누리기만 할 뿐이거든요
사랑은 누리는 거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알아내서 찾아내는 것 하나 없어요

(시 127:2, 개역)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아니 사랑과 잠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백날 연구해 보세요 답이 나오나

더군다나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 주심이 상대적인 비언약인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고 수고의 떡음 먹음이 헛됨 이다는 것의 상대적인 의미로써
두 언약으로써의 차이로 사랑하는 자는 잠 이기에

왜 아침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고 수고의 떡 먹음이 왜 헛된 것인지 이거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해 답을 내어 보라 말이죠 이게 안 풀리면 사랑하??? 자에게 잠도 안 풀리는 겁니다

위의 눕는거랑
아래의 잠자는 거랑도 다르게 했지요

어쩌면 둘다 잠으로 볼수 있는데 일부러 구분 구별 차이를 내시면서 간극 벌리시는 겁니다
결국 사랑은 이 죽음을 종말을 미리 앞 당겨버리는 겁니다

죽음을 넘어서보는 자 만이 제대로 잠을 잘 거 아니냐, 참안식을 누릴 것 아니냐 말이죠
죽음 아래에서 애굽 포로 속에서 백날 먹고 자고 아침일찍 깨어 일어나는 것이 무슨 의미 가 있겠느냐 종살이일 뿐인데

그카이 과학적인 시선 자체가 아예 들어갈 틈이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과학 철학 이런 이성의 논리체계라는 선악의 언어로 사고방식이 갖추어진
육에게 이런 사랑의 언어인 성경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까가득 차 있는 겁니다

자기가 우선이 되어 있는데 무슨 수로 말이지요
아무리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우선시 하겠노라 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원함도 아니되고 달음박질 해도 아니되는

주님 본인이 사랑해서 피 흘려서 쳐들어와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박아버린 믿음을 심어서 벌리시기 때문에
그 분의 손에 달린 문제이니까 말이죠

이미 십자가에서 죽엇거든요 그것도 2천년 전에
그런데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그가 살아서 아직도 살아서 나에게 자신의 죽음으로 출발하는 믿음을 박아버리겠느냐 말이죠

그러니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닌 그건 사람의 손으로 만든 만들어진 신이고
그 2천년이라는 인간의 숫자 개념이 하루 아침에 날라가 버리는
그 살아있는 양반이
보이지 않는 아들의 형상으로써 찍어버리니까
붕어빵 찍혀 나오듯이 찍혔뿡승께
이것을 무슨 수로 말로 표현하겠느냐 말이죠

지금 너튜브에서 신앙을 말이 되겠끔 좀 이해가 되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하는데
그것을 맞차줄려고 설명하는 자들과
아예 개 구라 사기 이다 라는 컨텐츠와
또 그것을 둘다 반박하는 교회의 몸부림을 볼때에
워낙 시청 횟수가 많다 보니 말이죠

그거 다 헛 짓 헛 헛 헛 짓 쑥쑥꾹 쑥꾹

아니 주님의 숙제에 왠 인간들의 숙제들이 난무하는지 말이죠

뭘 해도 가짜요
뭘해도 실패 일 뿐인 겁니다

왜? 누가 자기의 죽음을 끌어당기는 그 종말의 성령의 일을 할 수 있겠냐 말이죠
성령의 일은 성령 본인이 하시겠다 라고 모조리 다 차단 단절 시키는데

그 단절을 당하는 그 실패 속에 놓여지면 또 몰라

저들 컨텐츠 다 배불러서 나오는 호기심일 뿐인 초등학문이다 말이죠

날과 절기를 지키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왜?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는 거지요
내가 살아야 말씀을 듣든 말든 내가 있어야 믿든지 말든지 하지 이게 미국의 실용주의 아닙니까 미쿡 청교도

그런 배부른 소리에 주님은 아예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겁니다
유대교는 오늘날 우리들의 욕망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써 돈을 가치 있게 보는데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다?
돈 문제 건드리니까 성전세금과 가이사 세금 문제로 십자가에 매 달아 죽였다 말이죠

(마 22:17, 개역)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마 22:21, 개역)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아니 성전에 그 성전 그 자체로 기도하면 그 성전 무슨 수로 유지를 할수 있느냐 말이죠
성전에 그냥 기도하지 말고 금을 돈을 바쳐야 속히 이루어 진다 말이죠
다 돈 문제 아닙니까?

자 그렇다고 광야에 자기가 모든 일을 만사 제쳐 놓고 광야로 그 죽음의 사막으로 갈 자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본심은 그저 내 살아 있음이 우선인데 생존 생존

누가 선지자를 볼려고 광야에 가겠습니까?
궁궐에 있어야 자극을 받아서 자기를 때리며서 조금이라고 계급을 올리고자 달음박질 할거 아니냐 말이죠

저 아무도 없는 광야에 누가 가며
누가 선지자의 말 듣겠노라 라고 누가 가겠습니까?
아무도 없잖아요

우리의 본색은 나 자신이 복권에 당첨이 되든 행운이 덮치든 오로지 부자 되는 것이다 말이죠
비록 가난해도 부자가 나타나서 교회의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면
그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기지

누가 바리새인은 돈을 사랑하는 자라 라고 옆에서 초 치는 이 말씀을 귀히 여길자가 누가 있겠냐 말이죠
그러니 이 사랑의 언어는 죽음이 아니면 들을수가 없는
한계치를 넘어선 자들에게만 들리는 소리이고

선악의 언어에선는 그저 나의 숙제로 하라 하지 말라 라고 밖에만 안 들리는 겁니다
백날 해 봐도 저 유대인 유대교처럼
살인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학생의 목숨을 도덕질하는 이 간극을 좁힐 수가 없듯이
돈을 사랑하지 말라 일만악의 뿌리 이다 라고 유대교의 배경에서 나온 그 바리새인을 향한 말씀은 아무리 돈을 안 사랑할꼬야 라고 나는 절대로 유대교도 아니고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처럼 안 살꼬야 백날 해도
주변 환경이 모조리 다 그렇게 깔려버린 이상
돈을 안 사랑하고서는 하루도 못 버티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오히려 나는 돈에 목숨 걸 정도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자 이군요 라는
자기의 한계치를 격도록 하시는 것이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이겠지요

자 그렇게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은 이 실패 속에
죽음 속에
포로 속에 놓여지면서

왜 남의 나라 부요함을 왜 봐야 하는지를 주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 그래 나 돈에 미쳤다 우짤낀데 라고 씩씩 거리지 마시고
왜 주님은 이 앗수르를 에덴동산 보다 더 부요케 만들고
모든 세들이 그 앗수르 나무에 기댈정도로 풍요롭게 하시는지에 대한 그 이유가 나오는 겁니다

아니 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자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죽을떄도 잘 죽고
그 자식들은 번창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재산을 빼앗음에도 말이지요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자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본인을 그렇게 욕하고 거부하는 자인데도 불구하고
왜 영광스럽게 하시느냐 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삽이 낙담이 되어서 밥도 먹기 싫고 다 헛되다 라고 죽기 직전까지 가더라 말이죠

(시 73:1, 개역)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 73:2, 개역)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시 73:3, 개역)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4, 개역)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 73:5, 개역)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 73:6, 개역)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 73:7, 개역)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 73:8, 개역)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 73:9, 개역)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 73:10, 개역)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 73:11, 개역)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 73:12, 개역)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 73:13, 개역)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 73:14, 개역)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 73:15, 개역)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시 73:16, 개역)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4, 개역)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이건 뭐 개인의 한계치를 넘어서 민족의 한계치 인간의 한계치에 놓여진 겁니다
하하하 종일을 제가 난독증이라 종말 로 잘못 봐서 좋다 싶어서 복사 했더니만
종일 이네요 컨트롤 + C 괜히 했어 괜히 했어 흑흑흑

오히려 잘 되었네요 아삽의 그 마음을 알수 없는 저 로써는
그 하루 종일 당하는 재앙 저주 그 죽음을 무슨 수로 그 모든 인간의 한계점인 그 죽음 속에 놓여지지 않는 입장에서 그것을 제대로 체험 할 수 있겠습니까?
체험한다고 손 치더라도 또 다 잊어버리고 그 낙담케 만든 그 악인의 형통을 오히려 부러워 할꺼 뻔한데 말이죠

그런데 반전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시 73:17, 개역)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 개역)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 개역)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시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 73:21, 개역)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시 73:22, 개역)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시 73:23, 개역)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24, 개역)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5, 개역)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73:26, 개역)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7, 개역)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 73:28, 개역)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즉 이 반전이 인간의 소망 곧 보이는 소망에 따라서 벌어지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아들의 형상을 말하기 위해서
저들의 짐승 형상을 일부러 돋보이도록 했다 라는 겁니다
저들의 결국은 끝은 저주이기 떄문에 말이죠

(시 73:20, 개역)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일장춘몽 하루 아침에 깬 꿈처럼 신기루 같이 다 헛되듯이 사라지는 형상들이었다 말이죠
여기도 형상이 나오네요 괜히 형상이 아니라 얼굴인데
얼굴을 지 따나 자기 따나 멋들어진 얼굴 그려 놓고 그 얼굴에 끼어 맞추기를 했는데
어라 이미 딴 얼굴이 이미 다 이룬 상태로 맞추어져 있응께
백날 그린 그 그림의 얼굴 곧 형상이 일장춘몽 로봇태권브이 실컷 그리다 다 불타 사라졌다 라는 겁니다
그게 아까 창세가 6장 시작 자체가 영웅의 얼굴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 맨 가면 이 일장춘몽이었고
정작 성소에 들어가 보니 저들의 결국 끝 결과는 짐승이였고
살아있는 진짜 형상은 그 동암 보이지 않던 아들의 형상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선배들이 거기서 다 찍혀나왔던 얼굴이였다 말이죠
은혜의 얼굴

이 은혜의 얼굴이 꼭 이 노아홍수심판을 거쳐서 나왔기에
반드시 저들 엉터리 형상을 거쳐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저 아삽의 시만 생각하면 다니엘의 세 친구 불속이 주님과 함께 춤추는 바로 성소였음을 보게 되는 겁니다

불 속이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춤추느냐 라는 거죠
아니 허깨비와 춤춰서 뭐하게요 
사라질 안개와 춤출수 있겠냐 말이죠

진짜 살아있는 생명과 맞추 보면서 춤 춰야 할 것 아닙니까
무엇이 진짜냐 말이죠

광야에 꾀어 내어 개유하여서 결혼 하시겠다 라고
이 둘이 하나가 되는 사귐이 있는데

잔칫집에서는 사귐이 없어요
사귐이 없기에
누구를 따라간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것이고
누구를 사랑하기에 누구와 함께 춤 춘다 라는 것 조차도 말도 안되는 것이다 말이죠

잔칫집은 그저 허구를 먹고 마실 뿐입니다
넷플릭스가 구호가 뭡니까?
우리의 적은 잠이다 라고 하잖아요

잠을 주면 돈을 못 번다 라는 겁니다
사랑을 주면 돈을 못 번데요 글쎄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닌데
잠이 필요가 없데요 글쎄
이미 죽은 거죠 시체가 넷플릭스를 보는 겁니다
자기가 보는 줄 알아요 그 반대로 시선은 권력이거든요
넷플릭스가 그 사람을 보는 겁니다 넌 시체야 그런데 권력
앗수르의 영광을 받은 척 살아라
꿈에서 깨니까 다 사라지는 겁니다

하루 아침에 말이죠

어떤 광고는 아예 종교적으로 대 놓고 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노래 합니다
주로 보험회사 던가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빨리 돈 안 주면 미워할겁니다 라는 소리인 거죠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라고 서울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잠을 잘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더욱 그 결핍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편안한 잠 한번 자 볼려고
잔칫집 앗수르의 영광인 부자를 꿈꾸는 겁니다

예수 안이라는 성소 곧 하나님의 품이 아니라
더더욱 결핍의 미완료를 메꾸어 넣을려고 말이죠

평안은커녕 잠 한 숨도 잘 수 없고
심지어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곳 하나 없습니다

손을 떼어 낼 수가 없어요 손 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니까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다 이미 완료된 것을 누려야 손 놓고 잡을 잘 수가 이쓴데
책임 질 것이 없는 세상에서
자꾸 책임 질 것이 있으면
무슨 수로 두 손 두 발 뻗고 마음 껏 잠 잘수가 있겠습니까?
자기 목숨 하나 걸 곳도 없지 그렇다고 책임 질 것은 많지
그러니 마음 놓고 잘 수가 없어요
그카이 서로가 서로에게 짐을 잔뜩 짊어지우고
지도 천국 안 갈라고 하고 남도 천국 못 가도록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어내어 바람을 먹고 마시는 겁니다
헛배 헛된 제사와 번제가 자기를 먹여 살리는 줄 알고 말이죠
이게다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앗수르의 영광을 또 누가 맛 봤냐 하면

우리가 얼마전에 벤하닷과 아합왕 전투를 잠깐 나누었잖아요
그 속에서 두 선지자 친구 사이에 날 패라 안 팰란다 나는 너의 친구인데 왜 패냐 라고 해서
그 친구가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서 갈기 갈기 찢어죽였잖아요
어딜 하나님의 일이 먼저 있는데 인간의 사소한 정으로 사람의 일을 우선시 하냐 라고
그래서 다른 선지자를 통해서 얼굴에 상처 내고 붕대 감아서
아합왕에게 가서 여차저차 해서 도망갔다 우짜면 좋노 아합왕아
그럼 너가 죽어야지 뭐 
그래
그래서 하나님이 아합 왕 너 죽이시겠단다 라고 예언을 하잖아요
이스라엘은 오로지 예언에서 시작해서 예언으로 끝나는 예언으로 사는 나라 이다 말이죠

언약 말씀 말이죠

그렇게 북이스라엘과 아람나라가 싸우다가 (그 이전에도 동맹한 적도 있음)
이제 130-140년 쯤 뒤에 이사야 때 이니까 남유다 아하스 왕 때에

엘리야가 아합왕 때 이니까 130-140 여년 정도 차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호세아 순으로 북이스라엘 선지자로
남유다는 북처럼 많이 생략하고 이사야를 바로 언급하면
아모스와 호세아 사이 그 때 이사야 로 출발하면 위의 시대는 생략해서 말이죠

이사야 스가랴 오뎃 스바냐 예레미야 나훔 하박국 자 이렇게 남유다이고
포로 후 다니엘 에스겔
귀환 때 에스라 느헤미야
귀환 후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되는데

엘리야 아합왕과 이사야 아하스 왕 130년 정도 차이나는데
이 아하스 왕 때에 북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을 맺고 있으니까
남 유다 아하스 왕도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자
다메섹 다마스커스를 거쳐서 오르락 내리락 한더라 말이죠

다메섹이 아람 나라의 수도였는데 그 때 앗수르가 쳐들어가서 박살을 냈고
그 다메섹에 앗스르가 커다란 제단과 우상을 세운 것을
다메섹에 동맹 맺으러 간 아하스가 보고 뿅가서
그거대로 따라한다 라고 성전에 앗수르 제단을 세운다 말이죠

그때 우리가 아는 우리야 장군과 이름이 같은 우리야 제사장이 그 일을 명 받아서 우상을 세운다 말이죠

그때 이미 우상이 꽉 차 있는 아하스 왕에게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이사야가 백날 해 본들 소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시는 이유는

이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 라는 말은 이 세 아기
스알야숩 남은 자만 돌아온다
마헬살랄 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지 않고 우리와 함꼐 하신다

즉 이 말은 너 죽었다 라는 겁니다 아까 엘리야 때 아합왕에게 나타난 선지자와 같은 메시지입니다
십잗가의 죽음은 인간의 한계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카이 거짓선지자는 사람을 기쁘게 할 수 밖에 없는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외치고
반대로 참 선지자는 항상 삐딱하게 너 이제 끝났다 죽었다 라고만 외치니
다들 싫어할 수 밖에요 아무도 환영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제대로 죽이는 자를 누가 영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앗수르와 손잡은 아하스가 뿅이 갈 수 밖에 없도록
앗수르의 영광을 에덴동산 나뭇잎들이 다 시기하고 부러워 할 수 밖에 없도록 그렇게 어마무시하게 웅장한 신전과 제단의 우상을 어마 어마하게 보여줘 놓고서

이 솔로몬의 영광과 들에 핀 백합화 곧 광야의 죽음을 대조 하니

누가 힘센 국가의 무기를 제공받고파 하지
누가 젖먹이 아기 힘도 없는 아기를 최전방에 보내고자 하겠냐 말이죠
죽을거 뻔한데 가자 마자 말이죠
아마 근처에서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꺼니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구하지 않겠노라 하시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나는 나의 죽음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앗수르의 영광 솔로몬의 영광
부자 되세요를 구하겠습니다 라고 하지

나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지 않겠습니다
난 절대로 안 죽을꺼예요
반드시 앗수르와 동맹을 맺어서
무기 지원 700조 선진국 천조국 미국으로부터 지원 받아서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꺼예요
라고 해야 그게 대통령 답지

누가 나는 지구상 나라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라고 울면서
남은자만 돌아온다 라고 스알야숩을 구하겠으며
어서 어서 심판해 달라고 마헬살랄 하스바스를 구할것이며
이러 죄인도 용서하시는 죄인을 부르시러 오신 임마누엘 함께 해주시는 분입니다 라고
누가 저 들에 핀 백합화 내일 아궁이에 던질 그 백합화를 구하겠습니까

자기의 끝 죽음을 봐도 못 구하는 판국에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서도 그저 내 구원 내 구원을 외칠 뿐이지
내 죽음도 아닌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나의 실상 실체는 지옥의 몸이다 라고 누가 울겠습니까

다들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못먹어도 고 앗수르의 영광
지옥 가든지 말든지 솔로몬의 영광을 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그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베드로를 탈탈 털어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기도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임마누엘을 구할 수가 없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기도는 오히려 망해도 싼
누가 봐도 망해야 할 자 매국노 세리가 하고

난 십일조 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기에 생략된 것이 뭡니까
그러니까 저 구원받을 자격 갖춘 것 맞지요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셔야죠
저에게 솔로몬의 영광을 줘야 당신은 진짜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다들 이런 식입니다

우리는 저 매국노 세리 속에 속할 수가 없어요
그건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만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죽음이 입혀진 자에게만 해당 됩니다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겁니다
자기 죄로 우는 남은 자 
스알야숩
누가 아기를 최전방에 보냅니까
어서 죽어주소서 누가 그렇게 기도하는 자 어디 있습니까
다윗이 정직한 영이 없음을 알고 비로소 구하게 되었지
자기 따나 나 의로운 구석 많지는 않아도 조금이라고 있다 라고 여기지
단 하나도 없는 지옥의 몸이라고 우는 자는 없다 말이죠

또 없다 손 치더라도 아니 임마누엘 아기를 최전방에 보내야 하느냐 말이죠
마치 갓 나은 아기를 유순한 엄마가 스멀 스멀 올라오는 배고픔의 지옥이 올라올 때
아무것도 먹을게 없을때에 이 아기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수 있겠냐 말이죠
안 먹을 정도로 참는다 굽쇼? 배부른 소리인 거죠
오죽하면 유순한 엄마가 남편 먼저 먹으라 라고 해 놓고서는
조금 많이 먹으니까 바로 화를 내었다 라고
성경은 우리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안 그런다 굽쇼?
이 지옥의 몸 죽음의 몸 이라는 실상 앞에서
멋들어진 구원 뭐 성화론 완전히 웃끼는 개소리입니다
진짜 복음의 소리는 
이 지옥이 올라오는 이 실상의 현실 앞에서
이 뱃구멍을 뻥 뚫어버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음이다 말이죠
안 그러면 또 다른 자식 잡아먹고
부모 잡아먹고 심지어 가까운 자들을 잡아먹어도 여전히 또 배고픈 겁니다
멀리 있으면 싸움만 더 커지니까 힘들죠 가까워야 쉽게 쉽게

결국 이 몸뚱아리는 철저하게 지옥의 몸임을 들추임 당하지 않는 이상
이 사탄의 깊이를 당하지 않는 이상
모든 허물을 덮는 하나님의 깊이를 알 길이 없는 겁니다
그 카이 중간치 하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학다

새언약
다윗언약
십자가의 언약까지 깊이 들어가게 되면
너무 너무 극단적이게 된다 라고

그래? 그럼 주님꼐서 앗수르에게 영광을 부어서
모조리 다 빼앗아 버리는 겁니다

너 그 임마누엘 구하지 않는
숨겨놓은 앗수르제단 구하는 믿는 구석 그거 손탈탈탈 털어버리겠끔
내가 앗수르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유는
너가 안 부러워 하고는 못 배기도록 뿅가게 해서
너가 사모하는 그 앗수르에게 망하도록 하겠다 라고
몽둥이로 삼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바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의 종
나의 종 나의 종 느부갓네살 왕아 라고 하시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영광을 부어서 몽둥이로 삼고자
안 부러워 하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엉터리 신앙임을 들추어내시고자 말이죠

아 그럼 나는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고자
막살지 않고 바르게 살꼬야

노노노
그렇게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건 여전히 모세언약에 머물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겠다 라는 또 자기 숙제이다는 거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 떠 버린 이상
우리는 원수의 자리에 놓여지게 되고
그 원수의 자리에서 하나님 이겨 먹었다 라고 야곱이 좋아라 하다가
주님이 빵구멍 내시는 이 화목제물이라는 여호와의 뿔에
쩔뚝쩔뚝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뱃구멍이 뻥 허리가 박살난 상태에서
비로소 임마누엘 마헬살랄 하스바스 스알야숩을 구하는 자로 만드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또 의문의 반복으로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장지지겟다는 둥
십자가에 함께 죽겠다는 둥
이거 중심이 있어서 나온게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나온 연기이기 때문에
사랑이 아닌 겁니다
오히려 음녀처럼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서 결혼하겠다 라는 심뽀인 거죠

섬기는 자가 직접 하시겠다는데
그 섬김에 섬김을 당하는
기뻐하심을 입어야 하는데

자기 숙제로 기쁨을 억지로 연기를 할려고 하니
죽음 앞에서 다 무너지는 자기 한계를 못 넘어서는 겁니다

내 개인의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슈퍼맨 영웅이 되어서 뭐하게요?
니체는 자꾸 초인이 되라고 겸손한자 되라고 사기를 치는데
그럼 니가 한번 해 보시라 말이죠
지도 못하는 것을 왜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냐 말이죠
지도 못하면서

실천력을 강조하는 철학자들이 다 사기꾼인 이유는
자꾸 사람을 기쁘게 할려는데 있다는 겁니다
현실을 못 보여주는 겁니다
지옥의 몸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 지옥을 거치지도 않고 바로 구원의 몸 사랑의 몸을 증거할려고 하니
예수님이 필요가 없어요
다들 의인이다 건강한 자다
그것을 향해서 가야 한다 라고 하니
의사가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들의 목적은 딱 하나입니다
악항 영을 받았기에
예수 필요 없다입니다
이 짓을 오늘날 교회들이 외치고 있어요
니체 사상을 욕하면서도 자기들 숙제로 꽉꽉 채우는
바리새인들 독사의 자식들처럼
지도 천국 안하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숙제나 자뜩 시켜서
삥이나 뜯어내는

아무리 고상하게 보여도
아무리 바른 복음을 증거한다 라고 해도
결국은 장사꾼들입니다

그래서 미리 이스라엘을 쫄딱 망하게 한 뒤에
망하게 전에 오시던가?
아니요 그때 와도 듣지도 않았어요
망하고 실패하고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지옥 승올 무젓갱이라는
절망의 깊은 바다 어둠 속에서

지옥의 몸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그 지옥 속에
왠 은혜인지 왜 이 죽음 속에 뛰어드신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 어린양의 살과 피를 먹고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라는 사실에
안 노래하고 베기겠습니까?

주님은 자꾸 모든 인간의 실패 곧 죽음에 자신의 죽음을 덧 씌우기 위해서 오셨는데
아직도 배불러 터져서 나는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뭐 내가 식인종이가 사람의 살과 피를 뜯어먹게

너는 식인종 보다 더 더러운 더 악마같은
똥물에 일곱 번 담궈야할 죄인 중의 괴수야

아냐 아냐 나는 그 정도로 악마는 아니야
나는 양심대로 살아갈 거야

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라고
아이구 이놈 아직도 여유를 부리고 있네
오냐 내가 앗수르의 영광 곧 몽둥이를 주변사람들에게 깔아서
어린 계집 아이 앞에서도 과연 나를 안다 라고 하는지 함 보다

아니 예수님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 편입니다 선을 행할려는 마음을 편들어주지 않고
도리어 악마짓을 권장하고 있고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 라고 장담하시는 겁니까

나는 너를 상대로 하는게 아니라 니 뱃속에 있는 우상
선악을 아는 가짜 하나님 그거 상대하고 있거든
그 암덩어리가 너를 장악해서
아무리 선함을 갖출려고 해도 내 앞에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구나

나의 완료가 된 십자가의 피 용서가 있는데
뭐 너의 선함으로 따라오겠다 라고 에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구나

아따 이 양반 내가 다리를 걸은 적도 없는데 왜 비틀 비틀 거리면서 넘어지는 척 하십니까
아이고 환장허겄네 사람 팍 돌게 하시는 제주가 있는 가벼
제발 좀 날 미치도록 만드시지 마시고
함 보소 과연 내가 세 번 부인하는지 안하는지
함 보시랑께 두고 보쇼

아따 축복을 주실생각 안하고
격려를 해 주실 생각은 안코
왜 자꾸 안된다만 하시는겨
사람 미치겄네


이 죽음이
이 몽둥이가
우리의 본 모습을
예수님의 예언 보다 내 고집으로 기여이 이겨먹겠다 라고
그러나 비로소 우는 겁니다
이겼는줄 알았는디
아따 빵구멍 제대로 뚫혀버리니
한순간에 앗수르의 영광처럼 그 멋들어진 맹세 다 허벌나게 다 사라지고
남은 것은 들에 핀 다 말라 비틀어진 풀 밖에 없스랴~~~~~~

그것도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지옥의 몸으로
사망의 몸으로 들추임 당한 몸으로 드러났어라 ~~~~

주님은 이제야 좋다 라고 내가 사랑의 주틀로
아들의 형상으로 이제 찍었뿌겠당께

드뎌 짐승의 형상이 날라가 빈털터리가 됐응께
이제 내 형상으로 사랑이 형상으로
잠을 평안을 쉼을 주시는 형상으로 찍어뿔랑께
싸게 싸게 오너라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암유 지가유 뻔뻔스럽게 이 꺽으신 뼈를 노래하구만유

요한의 아들 시몬아 
아들아
이제야 너가 출애굽 했구나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암유 지가유 아들되신 예수님의 형상에 찍어나왔기에
이제야 편히 두 발 뻗고 잘수 있구만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 이제 선악에서 탈출해서 사랑으로 들어왔제
암유 그렇구 말구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줄 주께서 더 잘 아시잖아유
주님이 손수 직접 찍어 만드신 아들의 형상 작품 1호 이잖아유

비로소 밭이 갈려서 기경 당해서 부들 부들한 아브라함 품에 안김으로 잠을 자는 겁니다

인간들이 만든 종교의 품 우상의 품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품 모조리 딱딱해서 잠을 잘수가 없어요

모조리 등쳐먹고자 딱딱한 돌에다가 잠깐의 속임수만 덧입혔다 말이죠
그 앗수르의 영광을 사모하다가 앗수르에게 망하는

자기 꾀에 자기가 누워서 침뱉기 했다 말이죠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또렷한 사랑이 밝히 보이는데

뭐 목사가 삯꾼처럼 제발 믿어다오 라고 징징 거리냐 말이죠
먼저 본으로 죽어주지 못할망정
무슨 앵벌이도 아니고 말이죠

차라리 나 거지요 라고 하면 누가 도와주기라고 할 것인데
온갖 멋들어진 모습 갖추어 놓고서
삥을 뜯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말이죠

성경박사들 바리새인이 그래서 사람들의 구미에 딱 맞는 인간이 된 겁니다
그런 자들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을 죽은 자로 보겠냐 말이죠
지옥의 몸
사망의 몸
독사의 새끼 라고 보겠냐 말이죠
고쳐달라고 할 이유가 없는데
도리어 고치겠다 라고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는데

아무도 자신을 죽은 자로 보는 자가 없어서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하는 자가 없더라 말이죠

이 다시 싸매어주시는 아들의 형상이 없어서 망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바로 저런 헛깨비 앗수르의 영광을 솔로몬의 영광을
에덴동산 같았더라 애굽의 영광을 꿈꾸는 자들에게
무슨 놈의 아들의 덧씌우는 출애굽한 어린양 유월절의 피 형상을 덧 씌울수 있단 말이죠

다들 싫어하고 고개를 돌리는디
환영은 무슨 개코

아이고 도련님 이제 망했구만유
이 몰골이 뭐여 뭐여
무슨 수로 감옥에 있는 예루살렘 아씨를 구할수 있당께요

살려 주이소 ~~~~~~~~ 살려 ~~~~~~~ 주이소

어서 죽어주이소  죽어 ~~~~ 주이소

이 구원은 너무 너무 초라한 구원이요 모욕적인 구원이요
초상집에서만 광야 사막에서만 펼쳐지는 십자가의 수치 능욕의 구원이다 말이죠

성도는 아무리 잔칫집에 설사 가 있어도
그 시공간은 여전히 광야와 같은 주님의 죽음이 있는 곳이다 말이죠
내 머리 계산기로 부자냐 가난한 자냐 는 이제 의미가 없다 말이죠

멋들어진 구원은 허구이다 라는 겁니다
어떻게 그 모욕적인 치욕의 십자가가 어떻게 영광으로 보이냐 말이죠
보이지 않는 소망이기 떄문입니다 아들이 소원이지 내 소원 아니거든요
내 소원은 볼 줄 아는 내 눈이 포착한 보이는 소망으로 계산할 뿌이다 말이죠

솔로몬의 영광 못 먹어도 고 
묻고 떠블로 가
앗수르의 영광
바벨탑의 멋들어진 대 환영받는 구원

이 완악한 수건을 벗고 싶어도 벗었다가는 다 죽여버리겠다 라는
이 주변의 환경 떄문에 그 동질성 그 일반화 땜시
벗아날수가 없도록 갇혀버렸다 라는 겁니다
아브라함 조카 롯처럼 말이죠

무슨 수로 말이죠

그래서 인간 쪽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다 갖추어도 딱 하나 빠졌다 라는 겁니다
뭔디요?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즉 인간의 모든 번제와 제사를 마귀를 상대할 수가 없어요

오로지 마귀만을 상대로 한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만든 가죽옷 아니면
인간들은 또 허물어지는 무화과 나뭇잎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 의문의 반복 오래 가지도 않아요
또 갈아야 하고 또 갈아야 하고
도대체 몇 번을 용서 해야 한다께?

아니 하지마 용서 하지마 도로 너는 용서 받아야 혀 ~~~~~~
7에 70번이나
그래서 새언약 다윗언약은 우리를 죄인 중에 괴수로 만드시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을 생각을 안해요
왜? 안 보이거든요
보이는 것들만 찾아요 짐승의 형상
사람에게 잘 보일려고 인정받고파서 말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걸맞는 피 신부를 주님이 손수 직접 찾으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늘 헛발질만 하도록 되어 있는 거죠
계속 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인지
다리 몽둥이 뿌사서 다시 싸매어 주실 것인지
이것은 주님의 몫일 뿐입니다

다른 놈들에게 양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인 자기 자신한테도 말이죠

포로된 자 갇힌자 억눌린자
눈먼자 앉은뱅이
고아 과부 나그네

이들은 자기 한계에 부딧혀서 더 이상 스스로 일어설수가 없는 그야 말로 앉은 뱅이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자 흑암의 백성이요 개같은 이방인입니다
거룩이라고는 눈꼽 만치도 없는 덜럽기 짝이 없는 죄인들이다 말이죠
지옥의 몸 그 자체 입니다

이들을 싸매어주시고자 무엇으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애굽한 아들의 형상으로 싸매어주시고자 말이죠

모든 허물
허다한 죄를
다 덮고도 남는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로써 말이죠

이 화목제물을 외친다고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7에 70번 용서를 외치고자
가짜 언약인 남 용서 7번이라는 사탄의 깊이와 대조해서
두 언약을 외친다 라고

교회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예수님 역시나 죽음으로 오셨습니다
오히려 더 또렷한 십자가의 죽음이었고

남 7번 용서 하라 라는 그 의문의 반복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못 보게 하는
사탄의 일
사람의 일
사람을 좋게 하고자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위선이였음을
문제는 그거 그럼 하지 말라는 말이가 가 아니라
그 미완료는 그 어떤 누구도 구원해 낼수 없는
사람의 영광이다 라는 것을

이 또렷한 십자가의 밝히 보이는 사랑 앞에서만
그것이 미완료요 의문이요 흐릿하고 모호한 것이였음을 

이 또렷한 밝히 보이는 완료 앞에서
왜 그 의문의 반복에 아무도 살릴수 없는
행위로는 의에 이를수 없는데 말이죠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개역)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개역)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개역)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갈 2:20, 개역)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1, 개역)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이 주님이 홀로 이루신 믿음으로만
우리는 저 몽둥이 앗수르의 영광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겁니다
탈탈탈 털리도록 말이지요
이 징계의 매가 아니면 아들이 아니니깐요

앗수르로 몽둥이 삼아 나를 치시는 겁니다
인간으로 인간을 치십니다
나를 내 욕심으로 치시는 겁니다
그렇게 찢으셨다가
때리시는 그 아버지의 눈물 그 아픔을 보고
비로소 야곱은 우는 겁니다
나 같은 사기꾼을 저들 사기꾼들을 사용해서 말이죠

두 손에 가득 쥔 내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나는 사람도 이겼다 라는 그 딱딱한 육의 자랑거리는 비로소 눈 녹듯이 사르르 녹이시는
주님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이 사랑이 아니면 그저 딱딱하게 약속의 땅 마저도 울퉁불퉁 첩경으로 만드는
그 척박한 내 마음을

주님의 아픔인 그 눈물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골고루 평평하게 손 놔 손 놓으라 라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시면서 맞는 우리 보다
때리시는 그 상한마음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찢겨짐 속에 들어오시는 겁니다

이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시끄러운 울리는 꽹과리요
디른 거룩의 모양 경건의 껍데기는 독이요 전갈일 뿐입니다








==========================================================================================


23-27 에브라임에게 치욕 당한 여호와, 그 수치를 되갚는 모욕적인 구원 (부정의 부정) (호 12, 7-14)
2024.12. 1. 

야곱을 쳐서 울게 만든 여호와 기념 칭호 (호 12, 1- 6)
호세아 2023 2024. 11. 9. 16:52
23-26 야곱을 쳐서 울게 만든 여호와 기념칭호 (호 12, 1- 6)

〈호세아 12, 7-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7쪽, 찬송가 510장 새 457 겟세마네 동산의, 찬송가 338장 새 280 천부여 의지 없어서〉 

찬미예수 2000 - No.902 그 때 그 무리들이
334 420
새찬송가 276장(통334) 아버지여 이 죄인을
새찬송가 372장(통420)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새찬송가 280장(통338) 천부여 의지 없어서
새찬송가 213장(통348) 나의 생명 드리니
새찬송가 549장(통431) 내 주여 뜻대로
새찬송가 382장(통432)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찬송가 457장(통510) 겟세마네 동산의
새찬송가 535장(통325) 주 예수 대문 밖에


〈찬송가 510장 겟세마네 동산의, 새찬송가 457장〉 

1.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강할 때에 
   근심이나 걱정을 사양할 수 있을까 
   나를 항상 버리고 주를 따라 가겠네

2. 빌라도의 뜰에선 주를 생각할 때에 
   수치됨과 아픈 것 못견딜 수 있을까 
   길이 참고 묵묵히 주를 따라 가겠네

3. 갈보리산 올라간 주를 생각할 때에 
   나의 받는 괴롬을 비교할 수 없으리 
   십자가를 짐으로 주를 따라 가겠네

4. 무덤에서 부활한 주를 생각할 때에 
   환난이나 죽음도 두려울 것 없으리 
   승전가를 부르며 주를 따라 가겠네


〈가스펠; 그 때 그 무리들이 No.902 찬미예수 2000〉

그 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눈물로 기도했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비웃는 그 무리들 주의 옷 벗긴후에 주님 몸 깊이 찔렀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그 때 구원을 이루셨네
마지막 피 한방울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찬송가 338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새찬송가 280장〉 

1.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2.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영혼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 없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3. 나 예수 의지하므로 큰 권능 받아서 주 앞에 구한 모든것 늘 얻겠습니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


〈호세아 12, 7-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7쪽〉 

(호 12:7, 개역) 저는 상고여늘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하는도다
(호 12:8, 개역)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죄라 할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호 12:9, 개역) 내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일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호 12:10, 개역)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호 12:11, 개역)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저희는 과연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호 12:12, 개역) 옛적에 야곱이 아람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호 12:13, 개역)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선지자로 저를 보호하셨거늘
(호 12:14, 개역) 에브라임이 격노케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 주께서 그 피로 그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저의 수치를 저에게 돌리시리라

(호 12:7, 현대어) [가나안에서 장사꾼 정신을 배웠다] 내 백성이 가나안의 베니게 상인들처럼 저마다 손에 거짓 저울을 들고 다니며, 남의 눈을 속이기를 좋아하고 있다.
(호 12:8, 현대어) 그러면서도 에브라임은 '나는 남부러울 게 없는 부자가 되었다. 내가 떳떳이 일해서 벌어 모았으니 누가 나를 이득이나 챙기는 자라고 손가락질하랴' 하고 큰소리친다
(호 12:9, 현대어) [광야 시대로 되돌아가라] 내가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너희를 구해 준 바로 그날부터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이제 나는 너희를 다시 천막에서 살게 하되, 우리가 광야시대에 만나서 축제를 벌이던 것처럼 살게 하겠다.
(호 12:10, 현대어) 내가 일찍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너희에게 많은 환상과 꿈과 비유로 내 뜻을 알려 준 대로 하겠다.'
(호 12:11, 현대어) [농경 문화가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길르앗에서는 끔찍한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다. 어찌 그 백성들이 멸절되지 않으랴! 길갈에서는 농경신들에게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고 있다. 어찌 그 제단들이 밭고랑의 돌더미들처럼 무너지지 않으랴!
(호 12:12, 현대어) [죄는 해방자에 대한 반역이다] 야곱은 아람 들녘으로 도망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머슴을 살았고, 아내 한 사람을 얻으려고 양 떼를 지켜 주었으나
(호 12:13, 현대어) 여호와께서는 한 예언자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고, 그 예언자를 시켜서 그들을 지켜 주셨다.
(호 12:14, 현대어) 그런데도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혀 드렸다. 그들이 지은 피의 죄값을 이제 주께서 그들에게 되돌려 갚으시고, 그들에게 받은 수치를 그들에게 되돌려 주실 것이다.


먼저 소제목이 달린 다른 번역서를 보겠습니다
현대어와 현대인의 성경은 같은 소제목을 4개 달았네요

(호 12:7, 현대어) [가나안에서 장사꾼 정신을 배웠다] 내 백성이 가나안의 베니게 상인들처럼 저마다 손에 거짓 저울을 들고 다니며, 남의 눈을 속이기를 좋아하고 있다.
(호 12:9, 현대어) [광야 시대로 되돌아가라] 내가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너희를 구해 준 바로 그날부터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이제 나는 너희를 다시 천막에서 살게 하되, 우리가 광야시대에 만나서 축제를 벌이던 것처럼 살게 하겠다.
(호 12:11, 현대어) [농경 문화가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길르앗에서는 끔찍한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다. 어찌 그 백성들이 멸절되지 않으랴! 길갈에서는 농경신들에게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고 있다. 어찌 그 제단들이 밭고랑의 돌더미들처럼 무너지지 않으랴!
(호 12:12, 현대어) [죄는 해방자에 대한 반역이다] 야곱은 아람 들녘으로 도망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머슴을 살았고, 아내 한 사람을 얻으려고 양 떼를 지켜 주었으나


표준 새번역과 표준 새번역 개정은 같은 제목으로 두 개를 달았구요

표준 새번역 개정

호 11:12 [이스라엘과 유다가 규탄을 받다] 에브라임은\거짓말로 나를 에워싸며,\이스라엘 가문은\온갖 음모로 나를 옥죄고 있다.\유다 족속도\신실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거역하고 있다.\
호 12:7 [에브라임의 사회 경제적인 범죄] "에브라임은,\거짓 저울을 손에 든\장사꾼이 되어서,\사람 속이기를 좋아한다.\


마침 오늘 본문은 현대어 소제목처럼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호 12:7, 현대어) [가나안에서 장사꾼 정신을 배웠다] 
(호 12:9, 현대어) [광야 시대로 되돌아가라] 
(호 12:11, 현대어) [농경 문화가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호 12:12, 현대어) [죄는 해방자에 대한 반역이다] 

첫 번째의 주제는 이스라엘 곧 에브라힘이 돈을 너무 밝힌다 라는 겁니다
상고 여늘 상고 이거늘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낯선 표현입니다만
상인 곧 장삿꾼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돈 맛을 봐 버렸으니까
장삿꾼이다 보니 거짓을 기본으로 장착할 수 밖에 없고
또 거짓 저울으로 이윤을 남기는 그 재미에 빠져 돈 중독의 부자가 졸지에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사취 라는 용어도 좀 자주 안 쓰는데 비슷한 의미로 이런 용어를 자주 쓰지요

갈취 =강도 =공갈(겁을 주어)남의물건을 빼앗는 것
절취 =절도 =남의물건을 몰래 뺏어가는 것
편취 =사기 =남을 속여 재물이나 이익을 빼앗는것
강취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 것

사취는 위의 세 번째 편취 사기쳐서 빼앗는 것에 해당됩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애 의해
마귀에게 장악된 포로된 모습이다 라는 것이지요

경제적으로 부자가 목적이다 보니 사기를 칠수 밖에요
이것은 다른 이방나라 사람들의 목적이지 이스라엘의 목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처음자리인 이스라엘로 되돌리고자
부자 잔칫집 궁궐에 반대되는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의 외침에서 다시 시작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광야에서 빈손이 되게 처음자리인 공백이 되게 탈탈탈 털어버리시겠다 라고 말이죠

이것은 곧 약속의 땅에 안 맞는 인간이 되었기에 약속의 땅이 뱉어버리는 식입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자들이
출애굽 한 자들인데 그것이 아들 인데
그 반대로 애굽 속의 장자처럼 되었기에
졸지에 심지도 거두지도 않았던 그 약속의 땅이 척박한 땅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 만들고자 다시 출애굽을 실시 하시겠다 라고 선지자와 이상 그리고 비유가 동원이 되었듯이 동원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상 환상 등등은 보이는 것들을 소망치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케 함이기에
이런 부자 되는 것 자체를 단절 시키는 겁니다 무효화 시키는 거죠
그리고 인간에게서는 보편적 진리인 속담이 있다 말이죠 명언 격언 가훈과 같은 교훈이 있다 말이죠 교휸이 교육 아닙니까 무엇을 선 도덕과 윤리 사회규범과 법 말이지요
이런 모세언약으로 충분한데 왜 다윗언약이라는 새 언약이 필요하냐 말이죠
바로 이런 것들과 단절이 된 구체적 보편적 진리 즉 구체적이라는 말은
저런 보편적 진리 즉 다수가 수용하는 그런 진리가 아닌
또 그렇다고 소수만이 누리는 진리인가도 아닌
인간의 진리인 선악 도덕 윤리로는 구원할 수 없기에 그것을 단절 시키고서 나오는
구체적보편적 진리 오로지 이스라엘 집단에게만 베푸시는 언약으로써만 진리를 이루시겟다 라는 겁니다 저런 것을 무효화 의문화 거짓으로 규정시키면서 말이지요
아니 약속의 땅에 소위 미리 누리는 천국에 무슨 놈의 부자가 필요하겠습니까
평준화 된 높은 산도 깍도 움푹 파인 웅덩이도 매꾸어서 평평하게 평준화 되었는데
거기에 무슨 놈의 선과 악이 있냐 말이죠 따로 국밥처럼 부자를 선으로 구성하겠다 라는 것 자체가 약속의 정신과 안 맞기에 이 경제 문제를 아작 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주제는 길갈 이라는 장소과 연관 된 겁니다

(호 12:11, 현대어) [농경 문화가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소제목은 농경문화가 타락했다 라고 보고 있는데 아닙니다
농경 문화 자체가 우상적일 수밖에 없기에 아무리 선할려고 해도
정착문화이기 때문에 비 안오면 기우제를 드릴 수밖에 없다 말이죠
대만 보세요 반도체 1위 국가 답게 반도체 열을 씻길수 있는 또 순수 액이 필요하기에
마실 물도 모자르니까 심심하면 무당 불러서 기우제를 드린다 말이죠 사면이 바다인 섬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우리나라도 반도체 국가라서 언제 그런짓 안하고는 못 배기겠지요
다행히 바이든에게 반도체 다 빼앗길 판국에다가
트럼프 이 장삿꾼에게 변호사에게서 안 지는 법을 배우다 보니
이제 반도체 분야 뿐만 아니라 조선업 까지 다 빼앗길 판국이다 말이죠
날 도둑놈들이 따로 없지요 다 선진국에게서 배운 기술이니 말이죠
배운 그대로 당하는 겁니다 말이 자유경쟁자본주의이지
무한 자유 경쟁이라는 말은 결국 이 의문의 반복 헛 배
지난 번에 호세아 12장 첫 절 바람을 먹는다 라고 했잖아요
다 허사를 경영하는 겁니다

(호 12:1, 개역)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지혜서인 전도서에서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김뱀용이라고 하네요 ㅋㅋㅋ

(전 1:14, 새번역)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보니 그 모두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 ㉥히, '해 아래'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전 2:11, 새번역) 그러나 내 손으로 성취한 모든 일과 이루려고 애쓴 나의 수고를 돌이켜보니, 참으로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고,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었다. / ㉠히, '해 아래'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전 2:17, 새번역)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 / ㉢히, '해 아래'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전 2:26, 새번역) 하나님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슬기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고, 눈 밖에 난 죄인에게는 모아서 쌓는 수고를 시켜서, 그 모은 재산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시니, 죄인의 수고도 헛되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전 4:4, 새번역) 온갖 노력과 성취는 바로 사람끼리 갖는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이 수고도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전 4:6, 새번역) 적게 가지고 편안한 것이, 많이 가지려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낫다. /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전 4:16, 새번역) 한 왕이 다스리는 백성의 수가 셀 수 없이 많다 하여도, 그가 물러나면 어느 누구도 그의 업적을 찬양하지 않으니, 왕으로서 통치하는 것도 헛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전 6:9, 새번역) 이것 또한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욕심에 사로잡혀서 헤매는 것보다 낫다. / ㉡또는 '바람을 먹고 사는 것과 같다'(호 12:1을 볼 것)


자 이렇듯 농경문화 자체가 정착민 자체가 허사를 경영할 수 밖에 없기에
길갈과 상관없는 농경문화의 타락으로 잘 못 본 겁니다
너무 좁게 본 겁니다
그럼 유목 문화는 그럼 괜찮은가?
그건 더 좁게 보는 거죠
농경문화든 유목문화든 심지어 아바타 2 처럼 어촌 문화이든
뭘 해도 다 범죄로 보시는 시선이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가죽옷 사건인데
이 네가지 주제를 하나로 꼬치처럼 꼿아서 뚫어버리는 겁니다
소세지 떡가래 소떡 소떡을 꼬치로 꼿듯이 말이죠

길르앗에서 길갈로 들어가잖아요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드디어 길르앗에서 출발해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첫 발을 딛은 곳이 길갈입니다
그래서 열두 돌을 기념비로 길갈에 세우잖아요

(수 4:20, 개역)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수 4:7, 개역)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수 4:7, 현대인) 여러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여호와의 법궤가 요단강을 건널 때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멈추었단다. 그래서 이 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놀라운 기적을 영원히 상기시켜 주는 기념비와도 같은 것이란다.‘

언약궤를 앞장 세우니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다 보니 강물이 세다 말이죠
그런데 언약궤가 막상 그 물 요단강을 건너니까 그 흐르던 물이 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목 까지 차오를 정도로 개헤엄을 쳐야하는데 갑자기 물이 빠지니
밑바닥이 다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열 두 돌을 취할 수 있었던 겁니다

길르잇 요단강 동편이고요
길갈은 요단강 서편입니다

그러니 더러운 속된 곳에서 약속의 땅으로 드디어 들어감에 있어서
거룩 속에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죽음을 건너서 천국에 입성했다 라는 겁니다

길갈의 뜻이 굴러가다 곧 수치가 굴러갔다 라는 뜻입니다
12 돌 기념비를 세우고 할례까정 하면서 수치를 굴러가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꼬추를 그렇게 짤랐는데
언약정신을 무시하니까 가죽옷을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라는 피 옷을 무시하니까
도로 짜른 꼬추를 붙이게 되니
그 꼬추가 살아서 굴러가게 한 수치가 도로 활동하듯이
자기 자식을 불 위로 걷게 하는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농경문화랑 아무 상관이 없구요
유목문화는 아무리 떠돌이 나그네로써 본향을 향하는 모습이다 라고 해도
정착해버린 이상 유목민 저 몽골 보세요 본향이 있던가요? 
말이 유목민 노마디즘이지
정착민이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자체가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됨에 꽃혀서 정착이 되었는데 말이죠
아무리 노마드 노마드(유목민) 이라고 우겨도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주님이 만드신 환자 죄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마드를 자랑꺼리로 삼을 뿐인 육의 자랑이 된 거죠
그것도 이제는 몽골초원이 먹을 풀 하나 나지 않는 이상고온 기후 때문에
유목민들이 전부 도시로 이주하다 보니
그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라고
그런 건강했던 유목문화도 다 사라질 판국에 놓여진 겁니다

사실은 야생동물이 노마드이지 방임형으로 방목형으로 말이죠 진정한 막살기인 거죠
농경은 일일이 사료를 사야 하니까 저들 노마드 입잡에서는 비경제적인 것으로 보이지요
방목하면 지들이 알아서 뜯어먹잖아요 그래서 자꾸 옮겨다니는 거지요
결국 진정한 노마드는 없는 겁니다 아무리 객끼가 있어서 한 군데 못 붙어 있어서
역마살이 끼여있다고 해도 결국은 무덤에 정착하는 거지요

무덤이 없는 자가 진정한 노마드 인데
뭐 대단한 것인냥 용어 단어로 또 속이다 보니
광고에까지 속임수를 펼쳐보지만 정작 결과는 우상숭배요 육의 자랑일 뿐이더라 말이죠
인간이 손 대면 다 그래요

아무리 역마살이 끼여도 비로소 정착을 해야 저축이 가능하고 부자가 창고를 늘릴수 있고
자식을 낳아서 불 위로 걷는 구원자 답제 라고 육을 자랑할 수 있으니
자본주의가 탄생하는 거지요 막살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게 된다 말이죠

자 그래서 길갈은 첫 문인 셈입니다 천국의 문처럼 말이지요
그 길갈에 열두 비석을 세운다 라는 것은
약속이 벌리는 사건 곧 언약궤가 물을 끊어버린 사건처럼
약속이 벌리는 사건 사건 마다 열두지파 이스라엘은 그 사건을 기억하고
그 사건의 증인으로 세워진 자들입니다 라는 고백의 차원에서
이스라엘에게 벌리신 사건 하나 하나는 길갈에 기념비 세우듯이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교회 오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라고
이 새언약의 정신을 노래하는 겁니다

마침 누구랑 복음을 나누면서 갑자기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습니다
개역한글 번역서에는 행복이 딱 한 군데 나옵니다

마침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라는 의미와 함께 말이지요

어 막상 찾아보니 두 군데 이네요 ㅋㅋㅋ 그 동안 신약만 검색하다 보니


(신 10:13, 개역)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33:29, 개역)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9, 개역)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신명기와 로마서 두 군데 나옵니다

아무튼 같은 의미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죠

그런데 행복을 나누면서 말이 행복이지
정작 다윗은 하나도 안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바랬던 행복이 따로 있었는데
그 행복이 정작 박살이 나니까 진짜 행복이 쳐들어 와서 강제 행복이 된 거다 라고
결국 누가 행복하냐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행복을 박살낸 주님의 행복을 로마서는 기록한 것이다 라고 말이죠 정작 다윗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된 거지요 아주 지근 지근 밟혔다 라고

주님 혼자 신났지요
인간이 바라는 행복은 결핍 채우기 용인 여전히 미완료이고 의문의 반복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행복은 완료를 누리기 밖에 없기에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종말을 즐기는 겁니다
뭐든지 다 뿌쑤는 겁니다 인간의 행복은 반대로 세우기인데 말이죠
세워봤자 길갈처럼 수치를 물러가게 굴러가게 하기는커녕 도리어 수치를 더덕 더덕
그 의문의 반복을 완악한 수건을 안 벗을려고 더덕 더덕 더 붙이기만 할 뿐입니다
주님은 반대로 수치를 짤라내시는데 말이죠 이것이 진정한 수치를 가리우심 인 겁니다
근본적인 것은 안 짜르고 자꾸 자기 의로움을 세울려고 하니 반대의 반대에
부정의 부정에 딱 걸려든 거죠
뭣이 중헌디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 인거죠

아따 오랜만에 이사야 이오팔

(사 25:7, 개역)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9, 개역)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휘장을 제거 한다 말이죠 막힌 담 경계선을 허문다 말이죠
반대로 유대인들은 저 우상숭배 더러운 이방인과 함께 할수 없다 라고
도리어 막힌 담을 그 경계선을 더더욱 높이 세우지요
그래서 완악한 수건을 제거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안 벗을려고 발악을 하지요
얼굴에 수치가 가득하고 사망의 권세가 살인의지가 더더욱 가득 가득 높이 세워지는 겁니다
마음판의 할례로 수치를 굴러가게 하는게 아니라
나는 할례하는 의인 너는 할례 할 수 없는 죄인 이라고 더더욱 경계선을 긋고 막힌 담을 세우는
둘로 나누는 원수지간을 유지할려고 완악함을 펼치지요
행복을 자기 스스로 갖추고자 수치를 자기 스스로 가리울려고 하니까
도리어 다윗은 박살이 나야 하는 겁니다
주님 혼자 신났죠 죄악을 제거하는 수술로 자신의 의사됨을 펼치시니
이 처음자리가 아니면 첫사랑을 알길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도 그렇다 라고 했습니다 기쁜소식 곧 복음은
우리가 하나도 안 기뻐요
오히려 우리게에는 나쁜소식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쩨쩨하게 복수하고 되갚겠다 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나쁜 하나님이 진짜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가짜 좋으신 하나님만 인간들이 자기 수치를 자기 스스로 가리울려고
우상화 한 겁니다 성경에도 없는 언약이 아닌
언약과 아무런 상관 없는 믿고픈 것만 믿고 보고픈 것만 보고 듣고픈 것만 듣는
그런 가짜 하나님을 세워 놓고서는 말이죠

즉 누구만 기쁘다? 주님 혼자 신났어
그 주님의 신남이 졸지에 쳐들어와서 내 마음 중심 가운데 빵구멍 뚫고서 자리 잡아 앉아버리니까
저절로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길갈의 의미도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천국 들어갈 마음
약속의 땅에 들어갈 마음 추호도 없는 자들에게
졸지에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이 되어야 하듯이
기쁨이 복음이 말씀이 쳐들어와서 이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인생은 끝
말씀이 주인공이 되다 보니
내가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 모조리 다 박살내는 복음 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수치를 굴러가게 하시는 겁니다
약속하심을 입은 자들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입은 자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것은 끝났고
약속이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라는 거죠
아무리 그 길갈을 우상숭배로 터로 다시 바꿔놓아도
아이구 그랬었었어요 오냐 다시 출애굽
다시 요단강 도하 다시 12돌 기념비 안세우고는 못 배기도록
아주 아주 박살을 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모욕적인 구원을 당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짤라낸 수치 도로 붙이고 난리인 저런 성화론자들의 의문의 반복만 할 테니까요

그것도 그냥 천국 안 들어가는게 아니라 
약속의 땅 안 들어가는게 아니라
아예 여호와로부터 멀리 떨어지겠다 라고 결심에 결심까지 하면서 말이죠
꼭 자기의 죽음은 저는 이미 물 속에 가라앉은 열두 돌과 같습니다
이 죽음이라는 수치 발가벗었다 라는 수치
아무리 서로 서로 가려줄려고 무화과 나뭇잎을 만들어 가려줘도
그저 일회용 요실금 기저귀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랬던 그 수치 속에 그 죽음이라는 사망 권세
우상숭배 속에 있던 불 위를 건너는 자들에게
그런 물 속에 있는 자를 언약이 세워주심으로 인해
죽은 자가 산 자가 된 것은 바로 이 언약궤 덕분입니다 라고
더러운 수치에서 거룩한 신부로 옮기는
길르앗에서 길갈로 말이죠
요단강의 죽음이 가로막았는데 그 죽음을 그 수치를 끊어 굴러가게 했다 말이죠
첫 가나안 입성으로 그 첫 문에 열 두 비석 기념비를 세우는 겁니다
여기에 딱 하나의 지파도 빠지면 안됩니다
유대인은 다른 지파 빠져도 상관 없다 라고 지금까지도 우기지만 말이지요
팔레스타인 속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막 죽여요
결국 자기 얼굴에 누워서 침 뱉는 겁니다
그 다음 차례 자기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그런 길갈이 졸지에 우상을 깨뜨리는 장소 곧 자기자신을 깨뜨려서 들어가는
더러운 죄악 더러운 속된 것을 거룩으로 옮기는 첫 장소 였는데
이제는 도로 자기자신인 우상을 세우게 되었으니
우상을 깨뜨린 약속의 의미가 무효화가 되어버린 길르앗 우상의 장소와 다를바 없게 된 겁니다
아마 이것을 농경문화의 타락으로 본 것 같은데 근원적인 죄악은
농경이든 유목이든 약속이 아니면 이 죄악을 이 우상을 건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 약속의 정신을 무시하니까 
약속을 모욕한 그 죄를 자기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르게 되는 겁니다

그 카이 출애굽을 다시 해야 하고
또 다시 요단강을 다시 건너게 되는 이 번거로운 일들을 또 해야 하는데
주님은 또 신났다 말이죠 주님 혼자 신났어요
아예 작살낼 생각을 하시니까 좋으신 것인지
아니지요 죄 악의 깊이가 그 동안 애굽 당시와 달라졌을꺼 아닙니까
더 깊어졌으니까 이런 깊어진 죄악까지 박살을 내심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이 광경을 목격하는 증인으로 삼으셨다 라는 것에 신나신 거지요
이미 다 이룬 완료를 이제 누리기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영화보듯이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체험으로써
본인들이 짖밟히는 과정을 격는 겁니다


자 그다음 세 번째 주제가 뭔고 하니
야곱이 아내를 얻고자 사람에게 충성했다 라는 겁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40년 동안 충성했다 곧 평생을 말이죠

자기가 그 야곱 이라는 그대로 사기를 치다 보니
도로 사기를 당하는데 있어서 평생을 당하는 겁니다
그렇게 얻은 사랑인데 그 사랑 다움을 자기 힘으로 유지하고자 
얼마나 진심을 부을려고 하지 않겠느냐 말이죠
그러나 그 진심 조차도 정직한 영이 없이
중심 없이 가운데 중앙에 화목제물이 없이
자기가 자기를 끌어올려서 사랑한 헛된
그림자 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실상의 사랑이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다 라는 거지요
창녀 음녀 고멜의 남자버전인 야곱의 사랑인 겁니다
도로 용서 받아야 할 판국인 가죽옷의 기능을 거부하고서 말이죠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라는 사도바울의 외침이 생각납니다

(갈 1:10, 개역)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것을 또 번역서 소제목은 어떻게 했는고 하니

(호 12:12, 현대어) [죄는 해방자에 대한 반역이다] 야곱은 아람 들녘으로 도망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머슴을 살았고, 아내 한 사람을 얻으려고 양 떼를 지켜 주었으나

배배배배 배신이야 배신

배신이 바로 죄다 라고 했다 말이죠
그럼 아내 사랑만 밝히는 것이 죄가 되면
죄 아닌 것이 없게 되겠지요
맞습니다 죄 맞아요
뭐? 인간의 인격을 너무 무시한다
아내 사랑도 죄로 보고 있으니 말이죠
죄란 죄를 지어서 죄가 아니라
죄가 인간을 다스리고 있다 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죄가 되는 겁니다
자 그러니 물에 빠진 놈 건져주면 뭐합니까
자기 쪽에서 사랑을 펼치고 그것을 받아주는 것 있으면
그것을 구원으로 보니까 말이죠
이것은 음녀의 남자 버전인 셈인거죠
사실은 이것은 원천적으로 자기의 수치를 스스로 가리우고자 하는 행위인 겁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두 발이 상치 않게 천사를 보내어서 두 손으로 받쳐 줄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이 마귀에게 장악된 모습이다 라고
모든 인간의 대표성으로써 마귀에게 장악된 인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즉 두 번째 시험은 종교 곧 사랑에 대한 겁니다
기적을 통해서 자기의 수치를 스스로 가리우고자 하는
이런 인정욕구 사랑받고픈 욕구
내가 너를 사랑했고 인정했으니 너도 나를 인정해 달라 라는 조건을 갖추는
결국 사랑을 추구한다 라는 것이 사실은 사랑이 없는 겁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사랑이 없기에
암논 왕자는 다말 공주를 사랑을 나누고 난 뒤에 바로 버려버리는 겁니다
결핍을 채우고 난 뒤에 바로 버리는
이 지옥의 몸을 감추고자 자기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행동은 사랑받고파 그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행동 뿐이지
완료에서 진짜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말이죠
아내를 책임지지 않고 아내에게 모든 핑계를 뒤짚어 씌운 첫아담보다 나은 것 아니냐
아닙니다 맹 첫아담의 속성인 첫아담의 형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이 반대되는 행동이지 오히려 두 겹으로 더더욱 감추인 자기 스스로 수치를 가리우고자 한 겁니다

특히 네 번째 주제인 아들을 불 위로 걷도록 하는 우상숭배의 행위는
너가 사랑받는 자 라는 것을 보여줘 라고
부모는 자식 사랑을 위해서 뭐든지 한다 라고 하지만
그래서 너의 자식에게 노아 욥 다니엘을 가정교사로 붙여서 신앙의 선행학습을 시키겠다 라고
자식 구원을 위해서라면 부모 자기 목숨을 걸겠다 라고 하지만
이 정치적인 보편성 곧 부활 열매는 열매는 자식 아닙니까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인 온천하를 줄테니 절하라 라는
인간 구원을 목적으로 한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겁니다
정치란 선택 곧 간택의 문제인 구원문제이거든요
섬기는 왕 하나만 있으면 다 된다 라는 겁니다
그 왕 그 정치를 마귀가 주겠다
그러면 너는 왕 답다 메시아 답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부모 왕 메시아는
부활을 이루는 것이다 정치적인 열매를 구성하라 라는 거죠

이것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곧 사랑이다 말이죠
아내사랑에만 몰두함에 있어서 40년 평생을 사람에게 충성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사망의 몸 곧 주검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듯이
지옥의 몸인 증거이다 라는 겁니다
인정투쟁인 거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 라는 이 정치싸움 다툼
누가 누가 더 사랑받냐 사랑받을 자격 조건을 갖추냐
목사가 이런 싸움을 교인들에게 붙이면 뒤에서 흐뭇해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충성하는 모습은
가죽옷 곧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안 맞는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거부하는 식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의 죄악을 수치를 가리우고자 하는 행위인 거죠
건강한 자 의인은 자기 의를 쌓는 이유인 겁니다
그럼 의사가 필요가 없고
구원자 곧 화목제물 즉 하나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 필요가 없으니
이런 자들에게는 사랑이 필요가 없는 거죠 지가 알아서 사랑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이런 배 불러 터진 모습을 빵구멍 배 자기 배를 위하여 우상숭배하는 것을 빵구멍 내시는 분이 진짜 예수님인데 예수도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삼고자 우상화 하는 찌끼를 혼합 시키는 겁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 5:12, 개역)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사 5:12, 새번역)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거문고와 소구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주님께서 손수 이루시는 일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제가 어떤 여성분과 대화를 하는데
기도원에서 살다 싶이 하는데
자기는 혼자 살꺼다 라며 사도바울이 그렇게 했다 라고 하던데
저 보다 한 참 많은 10년 이상의 사람이였는데 
그렇게 남을 용서하면서 사는 삶이 좋다고 하길래
제가 그럼 당신이 남을 용서할려는 삶을 살고자 함 때문에
당신에게 억지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망가져야 하는지 아느냐 라고
그 다음부터 다시는 상종치 않게 되었다 말이죠

이것이 오히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이것이 오히려 농촌문화처럼 정착민 같이 남 7번 용서하는 삶으로 정착하겠다 라는
이거 우상숭배 아니냐 말이죠

뭘 그것 가지고 우상숭배까지 확대해석을 하느냐
인간의 모든 행동은 결국 우상사랑과 연관이 되었고
이 말은 반드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살인의지에 까지 연관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너는 죽은 자 시체야 라는 주님의 시선을 거부하고
또 자기 스스로 수치를 가리우고자 인정투쟁을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아까 말한 아무것도 한 것이 용서받은 것을 믿는 그 행복과 완전 정반대 이다 말이죠

신약에 딱 한 군데 구약에 딱 한 군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받음

그런데 도로 용서하면서 살겠데요 글쎄
그런 자들한테서 쫓겨난 거나 마찬가지인 거부당한 십자가에 달림 당한 예수님은
왜 성화론자들은 
죄인 아닌 의인들은
환자 아닌 건강한자 곧 남 7번 용서하는 자는 왜 용서치 않고 십자가에 매 달았을까요
오히려 선을 갖춘 것이 악이 되는
이 모순된 간극을 인간 쪽에서 좁힐수 있다 라는
그 수치를 죄악을 가리우고자 하는 행동 그 자체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 곧 가죽옷과 반대의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음을
십자가가 아니면 또렷히 밝혀 낼 수가 없는 겁니다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 라고 그렇게 주장하면서 말이지요
아 그냥 이단 사상을 배격해야 자기조직이 물들지 않는다 라고
성경은 한 쪽으로만 치우쳐져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양면성을 다 갖추고 있다 라고 핑계 대지만
그게 선악 아닙니까
하라 하지말라

모든 성경은 가죽옷 언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라는 사랑의 언어로 되어 있는데
선악의 언어인 하라 하지말라 라는 법 언어로 해석을 하게 되니까
나도 언어를 해석할 줄 안다 라고 말이죠
그 카이 모든 것을 수치를 스스로 가리우는 언어로 본 겁니다
그냥 고쳐달라고 하면 되는데
왜? 소경 곧 환자이니까 말이죠
나도 볼 줄 안다 라고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까
이 사랑 문제 자기가 해결하는 숙제로 아내사랑에 몰두하는 겁니다
그 아내는 자식사랑 곧 모성적초자아는 아들을 불 위로 걷도록 하는데 까지 몰아가는 겁니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로 가스라이팅 하는 거죠
그게 자식 잡아먹는 거죠

아무리 양면성을 균형있게 올바르게 골고루 갖추어도
맹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은 죄 아래 갇힌 사망의 몸인데
그런 사망의 몸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해 봐야
구원은커녕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 가게 가로막아서 삥이나 뜯어내는
인정투쟁으로 바리새인은 나 봐라 구원받은 자 답지 라고 
구원받은 자로 인정해 다오 라고 징징거리는 겁니다

진짜 사랑은 거부하고 그냥 거부도 아닌 악을 쓰고 거부하고
가짜 사랑인 우상숭배는 눈을 그려서 봐달라 하고
손을 그려서 날 만져달라 하고
팔을 그려서 넘어진 나를 일으켜 달라고 하는 겁니다
정작 하나님을 멀리 하기로 결심하면서 자기 믿는 구석을 표출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럼 진짜 사랑은 그렇게 도망간다고 놔주는 하나님이냐?
오늘 본문 내용은 가만히 두질 않겠다 라는 진짜 사랑의 매 징계 아닙니까
주님이 손수 이스라엘의 기능을 만들어내시지 창조하시지
인간이 알아서 이스라엘의 기능은 아무리 해도 안된다 라는 거죠
환자가 자기 병을 스스로 배 째고 수술해서 암 덩어리 제거하겠다굽쇼?????
아무리 의사 교육 받아서 평생을 의사 명의 라는 명성을 얻어도
자기 병은 못 고치는 겁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말이지요

다윗도 그랬어요
마치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 보겠다 라고
지 병도 못 고치면서 남의 병 고치겠데요
지가 뭐 의사인줄 알아요
죄인인 주제에 환자 주제에 ~~~~~

나 봐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단다 라고
나 수고한 것 인정해 달라 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것 조차도 헛 수고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정작 그 아이를 살려내는 능력은 없으면서
살려내는 척 하는 경건의 모양만 갖추는 겁니다

살려내지 못하면 아무리 회개 눈물 금식 기도하는 몸이라고 우겨도
맹 지옥의 몸
사망의 몸입니다

지금 누가 누구를 살려달라고 해야 하느냐 말이죠
누가 누구를 사랑하느냐 해야 하느냐 말이죠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겠다 라고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장 지지겟다는 둥
정 그렇게 못 믿겠으면 같이 따라 십자가에 함께 죽겠다 라는 둥 백날 혀도

사람에게 충성하듯이 하는 그거 음녀가 자기 쪽애서 사랑하겠다 라고
신랑을 찾아서 골라 골라 결혼하겠다 라는 심뽀다 말이죠

너가 사랑할 생각 말고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이 화목제 예수를 아끼지 않고 목숨 내어주었다 라는
이 사랑을 받기나 혀 라는 겁니다

너희가 날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 라는 겁니다

그래야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는 그 저주를 피할수 있다 말이죠

내가 준 사랑으로만 사랑하라
너가 나를 사랑하지 말고
왜? 새로움이 없거든요
자기 한계가 부딧히면 언제든지 또 의문의 반복으로 나 애굽으로 나 돌아갈래 박하사탕이 되는 겁니다

만약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다윗이 그 아기를 살려냈다~~~
그렇게 되면 또 그 다음날 또 아기를 또 살려내어야 한다 말이죠
그 의문의 반복 무슨 수로 멈춥니까

또 이렇게 말 하니까 그럼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다시는 안할끼다 
대식이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라고 또 저를 핑계 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이죠
안하겠다 라고 다짐한다고 안 할 인간이 있던가요?

아내 사랑 안하고 사람을 안 기쁘게 하며 살끼다 그것 조차도 위선입니다
아내 사랑하세요
제발 지금까지 막 살아와 놓고서 새삼스럼게 이제부터는 막 살지 않겠다 라고 결심해도
3초 뒤엔 무너집니다

이 말은 주님은 우리는 상대하시는게 아니라
마귀만을 상대로 하시고 죄악만을 상대로 하신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이 네가지를 언급하시는 이유는
마귀에게 장악당한 유대인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인간이 죄 짓는게 아니라 죄악이 인간을 다루는데 있어서
이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이 죄악에서 빼내시는 이 기념 칭호의 기능을 말하고자 함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네 번째 주제를 그럼 말해야 겠지요

길갈이라는 첫 발 딛인 약속의 땅 입성의 기념비를
그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천국에 입성한 그 기념이름을
졸지에 이제 스스로 더럽혀서 우상의 장소로 만들어 버리는

(호 12:11, 개역)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저희는 과연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수송아지를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는 우상숭배의 제단을 세우더라 말이죠

마귀는 결국 하나님이 세운 것을 엎어버리고
결국 자기를 세우고자 인간들을 유혹했던 겁니다

(겔 16:20, 개역)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겔 16:21, 개역)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주님이 주신 선물 곧 기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받았기에 선물인데
그런 선물 하나 하나를 모조리 우상에게 바치더라 말이죠 인신제사죠

(렘 19:5, 개역)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렘 19:5, 새번역) 그리고 그들은 제 자식들을 바알에게 번제물로 불살라 바치려고, 바알의 산당들을 세움으로써, 내가 그들에게 명한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는, 내가 상상조차도 하여 본 적이 없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렘 19:5, 공동) 바알에게 제단을 쌓고 저희 자식들을 불에 살라 번제로 바친 죄벌이다. 이런 일은 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 그런 일을 내가 생각인들 하여보았겠느냐?

아 남유다 아하스 왕도 자기 아들을 불 위로 걸어가게 했군요
뭐 어떤 이들은 성인식과 똑같은 것이다 라고 우길수도 있겠네요잉

아 이때 다메섹의 우상을 보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그대로 예루살렘이 지으라고 명했군요

(왕하 16:3, 개역)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왕하 16:1, 개역)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칠년에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왕하 16:2, 개역)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왕하 16:3, 개역)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왕하 16:4, 개역)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왕하 16:5, 개역) 이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니라
(왕하 16:6, 개역) 당시에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왕하 16:7, 개역)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왕하 16:8, 개역)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왕하 16:9, 개역)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왕하 16:10, 개역)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왕하 16:11, 개역)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왕하 16:12, 개역)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왕하 16:13, 개역)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
(왕하 16:14, 개역) 또 여호와의 앞 곧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기되 새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 북편에 두니라
(왕하 16:15, 개역)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고 오직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
(왕하 16:16, 개역)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제가 제목을 되갚는다 라고 하니까 다들 부정적으로 보겠지만
이미 성경에 수차례 나옴에 있어서 그때는 또 당연히 받아들인다 말이죠
뉘앙스의 차이인줄 모르겠지만 당연히 받아들이는 그런 긍정적인 태도야 말로
자신을 속이는 거죠

뭐 되갚아? 우와 뒤 끝 작렬이네 무슨 쫌생이도 아니고 복수를 하다니
치사하다 치사해 라고 강한 부정이 나와야
이 말씀이 제대로 들어간 겁니다
반발하지 않는다면 내 속의 죄가 또 나를 속이는데 있어서
다른데 이미 관심이 눈이 돌아간 상태인 거죠
그 카이 찔림이 될 리가 없는 겁니다
왜? 나는 소중하니까 자기자신은 소중하다는 겁니다

찌르기는커녕 밭을 기경 뒤엎어버리기는커녕
사생아처럼 매를 단 하나도 허용치 않는 거죠

그런데 우짭니까 바로 이렇게
이 네가지 주제를 하나로 꼬치 꼬챙이처럼 찔러서 하나로 묶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창세가 3장에 나오는 가죽옷입니다
신약에서는 십자가라는 꼬챙이 인거죠

이들 네가지는 약속의 땅 마저도 더립히니
뭐 여호와 이름도 더럽히는 마당에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닌거지요
그카이 아껴둔 내 기념 이름을 아껴둠으로써 이제 마음껏
행한대로 갚는다 라고 하시듯이

니가 니 스스로 행함의 법칙 곧 선악의 법칙
행위의 책 대로 원했듯이 그래 행한대로 갚으마 라고 하신다 말이죠

행위를 따라서는 그 어떤 누구도 의에 거룩에 이르지 못해요
성화론자들이 이거 하나 믿다가 다 지옥가는 겁니다
의를 많이 행하면 의를 행한대로 갚으신다 라고 했으니까 많이 많이 쌓아야지

네 맞아요 자기 따나 자기 의 이랍시고 열심일 수 밖에 없어요
부자가 괜히 부자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의를 행한만큼이나 뒤로 몰래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라는 것을 인간들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모른다 라는 사실 조차도 새까맣게 잊어버리도록 마귀가 죄가 만드니까 말이죠
안그러면 죄책감에 단 하루도 살수 없어요
잠을 못 자요 잠을
그래서 거짓 저울로 속이는 그 맛에 빠지도록 해야
그 재미로 더더욱 살고요 그것으로 부자가 안 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이게 자기 열심에 자기 의로움에 중독된 자들입니다
그 만큼 뒤로는 몰래 그에 상당한 죄도 짖기 마련이거든요

안 지으면 될 꺼 아니가
문제는 도적질 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내 양심이 도로 도둑질 안하고는 못 배기도록
양심이 부추기는 겁니다 이 간극을 인간 쪽에서는 좁힐 방법이 없어요

이미 고장난 하나님의 형상인 첫아담의 형상이거든요
그래서 깨어진 밑바닥 깨진 장독대를 아예 강물에 빠뜨리면
채우는 자기 수고 없이
자기 의로움 하나 없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 나는 겁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졌고요
이 반대로 인간은 성화가 된 멋들어진 자기의 형상을 성화된 형상을 보이도록 만들고파 하는데
그런 방식인 이미 철거 당한 겁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이미 완료 되었다 말이죠
바로 생명의 강입니다
그 속에 빠져버림을 당하게 되면
깨어진 장독대를 찾을수가 없어요
꼬로록 생명수에 잠겨서 자아는 상실 된채로 흘러 흘러 넘쳐나는 겁니다
자아가 없어요

결국 자기 의를 쌓는 열심히 주를 삼키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기여이 하나님의 의 이라는 생명수 강물에 끝까지 나 라는 밑바닥 깨아진 장독대에
내가 내 스스로 이룬 의로 장독대 채우겠다 라는 식인
여전히 행함의 책을 주장한다 말이죠

행함의 법칙이 아닌
생명수의 법칙은 그 반대의 법칙이 작동 되는 겁니다
아무리 죽어도 생명수가 계속해서 생명수에 꼬로록 잠겨진 그 장독대 사이 사이 구석 구석 사이로
생명수가 흐르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 께서 산 것이다 말이죠

(갈 2:20, 공동)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함의 법칙이 들어갈 틈이 어디있습니까
모조리 믿음의 법칙 뿐인 선물인데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죠
괜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라고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반드시 믿음은 이 행함과 한 세트가 되는 두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념 선물인 보이지 않는 믿음이 상실 되면
눈에 보이는 소망으로써 행함을 꽉꽉 채울 수밖에 없다 말이죠
그게 성화론자들의 주장입니다
남들에게 납득이 되게 할려고 주장하고프니까
보이지 않는 소망인 믿음을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 카이 보이는 것을 던져줘야 상대방을 납득 시키는 겁니다
말이 납득이지 가스라이팅으로 자기 밑으로 굴복 시키는 이기기 위한 복수심인 거지요
그래야 결핍을 채우니까요 백날 채워보세요 밑 빠진 장독대 라니깐 ~~~

그들이 또 괜히 야고보서를 운운하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외치는게 아닙니다
꼭 저 다락방 이단이나 신천지 이단 같아요 그럴 때 보면 말이죠
지들도 저들의 행함에 못 따라가면서 말이지요

행함이 있는 믿음과 행함이 없는 믿음을 두 언약으로 한 세트를 구성했는데
그냥 행함이 있는 믿음의 행함이 아니라

부정적인 행함 즉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행함이다 라는 겁니다
즉 남들 다 알아먹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행함이 아니라
그 반대죠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아냥 거림을 받는 행동들

심지어 본인 자신도 비아냥 거리는 행동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의 행함이다 말이죠

자기가 자신의 그런 행동을 비아냥 거릴 것인데
과연 하겠느냐 말이지요

그게 바로 아브라함이 비웃었던 그 읏음을 제물로 바치는 겁니다

또 기생 라합의 속임수 곧 거짓말이 참말로써 나오는 행함이 있는 믿음인데
정작 이스라엘은 에이 거짓말 이라고 비아냥 거린
가나안 정탐이였다 라는 거지요
정작 아이러니 하게도 역설적이게 가나안 여자 라합은 정작 믿었는데
다들 거짓말이라고 10명의 정탐꾼이 갈렙과 여호수아 그리고 모세까지 다 죽일려고 했던
그 비아냥을 담고서 나오는 기생 라합의 거짓말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름붙이기를 부정적인 행함이라고 해야
인간들이 반발하는 믿음이지
인 그러면 다들 수긍하는 척 또 연기를 해야 한다 말이죠

아니 하도 목사가 교인들이 교회 청소 조차도 안할려고 하니까
협박하는 차원에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라고 우기는 식이니 말이죠
그럴려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기록한게 아니거든오
그런데 알고보면 성화론자들의 주장이 바로 저런 내막의 확대인 겁니다
목사가 왜 답답해 할까요
자기를 목사 자기를 안 기쁘게 해 주니까 답답해 하는 겁니다

그런 목사를 보고 답답해 해야 한다 말이죠
제발 복음 외에는 관심 두지 말라꼬 왜 쓸데 없이 교회를 신경 쓰느냐 라고
백날 바른 교회 만들어 봐라 다 바람 같다 말이죠

결국 그게 우상숭배요 자기 자녀를 불 위로 걸어가게 하는
눈에 보이는 어떤 자극을 주겠다 라는 심뽀이다 말이죠

복에 복을 더하사 라는 이 단어로 가스펠 노레까정 지어가면서
사기를 사취 치면 뜯어내는 겁니다
독사의 자식 너희 아비는 마귀다 라는 바리새인 뺨 치는 거죠
바리새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인 겁니다
백 배나 지옥자식이 아닌 천 배나 지옥자식을 만들고 있어요
가버나움은 소돔 고모라 저리가라인 겁니다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동성연애 하나 없고 지극히 평범한 이 사람 보통 사람 보통의 동네 도시인데 말이죠

서울의 유명 강사들이 대구에 오면 심심하면 하는 거짓말이 있어요
대구는 제 2의 예루살렘 이다 라고
서울은 제 1의 예루살렘 인 셈인거죠
아닌데 들을 때 마다 제 2의 소돔과 고모라 예요
서울은 제 1의 소돔과 고모라 곧 강도의 소굴이구요

왜 그렇게 삐딱하냐 라고 하는데
아니 유명 찬양 집회 목사가 젊은 아이들에게 하는 그 사탕발린 소리를
나이든 부흥강사 역시나 똑같은 멘트를 하길래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하는지 하도 신기해서 말이죠
새것이 안 나오면 목사를 그 만 두던가
작년에도 같은 말
그 전전에도 같은 말
올해도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중언부언이 따로 없다 말이죠
그저 목사인 자기를 알아달라고 또 징징 거리는 것 뿐이다 말이죠

또 다들 기우제를 드리듯 무당을 안 찾는 대신
목사를 찾아서 기도 부탁하잖아요
그런데 엘리야는 그 반대로 물 붓고 하듯이
비오지 않기를 그것도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게 기도하면
과연 추구감사절에 수확물도 없는데 무슨 수로 헌금을 내겠으며
헌금을 안 내면 무슨 수로 교회를 유지 할 수 있겠냐 라며
아예 목사 옷 벗어던지고 무당 옷을 입을 지언정
반드시 기우제를 드리고자 할 꺼다 말이죠

그럴줄 알고 일부러 반대로 기도하는 겁니다
교회야 사라지든 말든 오늘 본문 네 가지 주제를 하나로 꼬치 꼬챙이 꼿아서
하나로 묶어서 나오는 이 가죽옷과 같은
이 십자가의 피 옷과 같은 이 피 옷만
이 복음 주님 혼자 기쁜소식인
우리에게는 하나도 안 기쁜 
삼년 반의 비오지 않음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추구 할 수 있겠냐 말이죠
다들 죽일려고 달려들 것인데 말이죠
아마 교회가 제일 먼저 엘리야를 죽일려고 할꺼다 말이죠
북이스라엘 이세벨처럼 말이지요

엘리야는 말만 하고 자기는 배부름 속에 있는 겁니까?
아니지요 1260일 동안 광야 속으로 보이지 않는 소망 속으로 도망가지요

1000일이 넘어요 묵시의 세계에 들어간 겁니다

천은 단절을 말하는 겁니다 육의 차단인 겁니다
이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전쟁이 벌어졌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자가 선지자 아닙니까

교회 청소 안한다고 운운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아닌 겁니다
교회 헌금 내라고 운운하는 행함이 아니예요
그 반대이지요 과부의 두 렙돈 6원 6원 12원으로 성전의 아름다운 벽돌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로 만드는 과부의 헌금인 종말의 헌금으로써의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라는 겁니다
어딜 보이는 교회를 소망하느냐 말이죠

뿌쌌뿌야지

신땡지 이 놈들 뭐 지신밟기 라고 불상 목을 치던데
똑가은 식으로 자기들 교회도 불 태워 버려야 한다 말이죠

곧 자기자신의 모가지도 짤라야 한다 말이죠

둘다 우상인데 

자꾸 보이는 것을 실현함으로써 보이는 자기 육의 자랑
자기는 행했다 너는 왜 안 행하니 라는 그 따위
바람 같은 것 세울려고
우상을 세울려고

보이고자 불 위로 걸어가게 하는 그 따위 기적
지성이면 감천을 왜 하느냐 말이죠
지성이면 감천은 모든 이방의 우상제사인데

그 반대를 보여줘야지요
보여주면 맞아 죽거든요
예수님이 괜히 금식 회개 눈물 기도하는 자들 옆에

라마단 기간처럼 금식 지키고 있는데
옆에서 치킨 맥주를 배달 시켜서 선풍기까지 틀고
냄새를 날릴때에
미워 죽을꺼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반드시 먹보에 술꾼에 세리외 죄인의 친구로다 라는 별명 까지 얻어내시는 것까지
이게 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라는 겁니다

저들의 교리를 박살 내는 거죠
저런 별명을 붙임으로써 왕따 시키겠다는데 뭐 같이 어울리겠다 라고
그러면 너도 같은 별명에 같은 왕따 시키겠다 라고
사회적으로 매장 시키겠다 라는 암묵적인 사형 선고 경고인 거죠

우리 무리 속에 들어올수 없다 라고 경계선 긋는 겁니다

그 경계선을 주님은 깨뜨리시고자
막힌 담을 허무시는데
인간은 다시 주어 담아서 경계선을 긋고 막힌 담을
가자지구 담 벼락을 높이 높이 세우는 겁니다

그렇게 땅굴 지하 속에 살게 해 놓고서
자기들은 지하에 안 살고 뭍에서 산다 라고 우기는 거죠
누가 과연 지하에 사는 것일까요
누가 눈 어두운 소경인 겁니까?
소경 아니다 볼 줄 안다 라는 자들이 소경인 겁니다

자 이렇게 가죽 옷이 먼저 떳기에
십자가의 피 옷이 먼저 떳기에

거기에 걸맞은 죄악들이 꼬치 꼬챙이에 꽃히고자 드러나야 하는 겁니다

나는 저런 죄악 안 저지를 거야?

택도 없습니다
신명기 율법은 너희들은 뭘 해도 자식 잡아먹고 불에 지나가게 하고

즉 내 아들 고아 안 만들겠다 왕의 DNA를 가진 아들이다 라고 하지만
출애굽 하지 않은 아들이기에
이미 죽은 시체를 왕 만들겠다 라고

이게 바알을 숭배하는 여자들의 공통된 목적이다 말이죠

신명기 율법은 이미 너희들은 그렇게 자식 잡아먹고 부모 잡아먹는
부모란 성경에서 홍해를 건넌 출애굽한 자를 부모라고 했지요
그게 선지자 이다 말이죠 그냥 부모가 아닙니다
어버이 주일에 카네이션 달고 효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유교와 혼합된 기독교 이고요

홍해를 건넌 선지자로써의 부모이다 말이죠
죽음을 건넌 자인 거죠

그러니 그런 선지자 부모는 자식들에게 잡아먹힐 소리만 할 뿐인 겁니다
이상 곧 환상을 말하고요 곧 언약이지요
그리고 비유로 말하지요 못 알아먹는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기는 기도하는 그런 엘리야 선지자처럼 부모란 그런 선지자의 기능을 하는데 있어서
자식들은 그런 부모인 선지자릉 반드시 안 죽이고는 못 배기는
듣기 싫은 소리만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고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보이지 않는 소망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만을 외치는 겁니다


결국 남들은 다 안 들어도 나는 반드시 들을꼬야
남들은 다 못 보아도 나는 반드시 보고야 말꼬야 가 아니라

그런 조건 이나 원인이나 문제 의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정답이 떳기에
선지자들을 죽이시기로 작정 되었기에
너희 입 속에 먹히기로 되어 있기에

이런 죄악들을 들추시는 이 사랑만이 옳았음을
너희들을 그 정답에 맞는 문제아로써

원인 없는 결과의 증상물로써 반드시 내 너에게 장가 들고야 말겠다 라는

이 화목제
이 가죽옷의 가치를

저 무화과 나뭇잎으로 대충 대충 평강이다 라고
자기 스스로 올라오는 그 지옥의 스멀 스멀 죄악들을 가리우는
그 짓꺼리는 손 땍지 라고

가죽옷이 가려주셔야 제대로 가리움을 받는
이 모욕적인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다 라는 증인으로 삼으시겠다 라는 겁니다

달음박질 함도 아니요 원함도 아닌
오로지 이 십자가의 피에 걸맞는 환자로써

세 번 원망항 자로써
그 원망 안하는 자가 아닌
원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 부인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끈히 다 용서하시는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이 피에 걸맞는 피신부로써의
피 신랑이 찾아낸 주께만 범죄한 피 신부 곧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주님은 반드시 세우시겠다 라고 다 이루신 그 결과물을 우리는 누리는 겁니다

우리는 저런 네 가지 일을 실수한 고때만 튀어나온게 아니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에
날 때부터 늘 수시로 해 왔던 죄악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죽옷에 걸맞게 무화과 나뭇잎으로 되도않게 가린
일회용 기저귀는 한 번 요실금으로 인해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일회용이라는
자기 한계가 있지만

주님의 가죽옷 곧 십자가의 피 옷은
7에 70번 용서 490번의 다회용 기저귀 라는 뜻이 아니라
무한대로 싸도 요실금으로 줄줄 세는 오줌을 다 막아주면서 동시에
심지어 뽀송 뽀송 까지 한 늘 새로움을 준다 라는 사실을 누리도록 하는 겁니다

어디 오줌 뿐이겠습니까? 지옥의 썩은 내가 스멀 스멀 올라오는 똥도 배고픔도
땀에 젖은 암내도 모조리 다 생명수 강물에 빠뜨려

뚜껍아 뚜겁아 헌집 줄게 새 집 아들의 형상 으로 새로 지어달라고 우는 자에게
새로 주신다 라는 이 약속에 의해서 새로 찍혀 나오는 겁니다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지어 놓고도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의로움을 단 하나도 행한 적도 없는
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다윗에게

모든 허물을 다 덮어서 가리워 주는
이 주님 홀로 당하신 이 수치 앞에서

내가 내 자신의 수치를 가리우는 행동들이야 말로
주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를 모독하고 있다 라는 사실

도리어 도리어 감사하면서 울면서 뺑뺑이 도는 것이
나를 제대로 허물어 버리는
여리고성 허물기 나 자신 허물이 라는

오로지 주님의 피 용서의 사랑의 가리움 만이
나 라는 우상을 허물지
내가 남을 7번 용서하겠다는 둥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둥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이런 땅의 계집종 하갈과 그 소생 이스마엘의 언약이
바로 땅에서 출발한 보이는 소망들이고

하늘에서 출발한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난
하늘에서 출발한 보이지 않는 소망 곧 아들의 형상만이
나 라는 우상을 제대로 심판 하시는

주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그 죄를 제대로 심판하시는
이 모욕적인 구원인 이 십자가의 피 옷만이

새신부에게 입히실 그리스도의 옷임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
출애굽하신 아들의 형상임을

우리는 늘 날마다 새롭게 새롭게 아들의 형상으로 지으셨음을 마음껏 누리도록
제발 내가 내 수치를 가리우는 그 헛짓 그 의문의 반복으로
세월 허송 하지 않도록 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