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 (롬 9, 1- 5)
22-052 저주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바울의 큰 근심과 끝없는 고통) (롬 9, 1- 5)
2025. 1.19.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롬 8,35-39)
로마서 2022 2024. 12. 27. 18:31
22-051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화목제)에서 끊으리요 (롬 8,35-39)
〈롬 9, 1- 5, 개역한글, 신약성경 251쪽, 찬송가 431장 새 549 내 주여 뜻대로, 찬송가 222장 새 235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새찬송가 549장〉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중에도 낙심케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찬송가 222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새찬송가 235장〉
1.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2. 앞서간 우리의 친구들 광명한 그 집에 올라가
거룩한 주님의 보좌 앞 찬미로 밤낮을 즐기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찬미로 밤낮을 즐기네
3.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4. 우리의 일생이 끝나면 영원히 즐거운 곳에서
거룩한 아버지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롬 9, 1- 5, 개역한글, 신약성경 251쪽〉
(롬 9:1, 개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2, 개역) [1절과 같음]
(롬 9:3, 개역)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4, 개역)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롬 9:5, 개역)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1, 새번역)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롬 9:2, 새번역)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롬 9:3, 새번역)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그, '내 형제들'
(롬 9:4, 새번역)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 ㉡그, '내 형제들' ㉢그, '아들의 신분' 또는 '아들 됨'
(롬 9:5, 새번역)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만물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 ㉣또는 '메시아'
로마서 9장 3절이 문해력이 떨어지는 저로써는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다른 번역을 살펴봤습니다
(롬 9:3, 개역)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 새번역)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그, '내 형제들'
(롬 9:3, 공동)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롬 9:3, 쉬운) 나는 내 동포, 내 동족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롬 9:3, 킹흠정) 육체에 따른 내 형제, 내 친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
(롬 9:3, 한글킹) 육신에 따른 내 형제들,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랐노라.
(롬 9:3, 현대인) 만일 내 동족이 구원만 얻는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롬 9:3, 현대어) (1절과 같음)
어 현대어는 2절에 나오겠네요 그래서 2절을 검색했는데
실수로 앞의 3을 못 지우고 오타를 쳐서 32절을 검색결과로 보게 되었는데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2, 현대어)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매달리지 않고, 단지 율법을 지키는 선량한 인간만 되면 다 구원을 얻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라는 큰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럼 2절의 현대어번역은? 2절도 1절과 같음 그래서 1절을 보니
(롬 9:1, 현대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나의 겨레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나의 동족 유대인들이여!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 때문에 밤낮 마음이 무겁고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만일 나의 영원한 파멸이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그 편을 택할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아시고 성령께서도 아십니다.
(롬 9:2, 현대어) (1절과 같음)
(롬 9:3, 현대어) (1절과 같음)
아니 앞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라고 해놓고서는
왜 육신을 위한 유대인을 위해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기를 바란다? 문자적으로 보면 저만그런가요?
오해 할 수가 있는데
맥락을 보니, 더군다나 실수로 보게된 32절을 보니
행함의 언어가 아닌
믿음의 언어로 곧 사랑의 언어로 십자가의 언어로 보니
이게 바로 사랑인 화목제물을 아는 지식이 있는 자의 표현이다 라는 거지요
그런데 행함의 언어인 선악의 언어는 오히려 이런 표현이 더 오해하기 쉬운
뭐 우상적인 육신이 구원이 되기를 바라고 정작 본인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저주를 받겠다 라고? 이건 선악의 언어에서는 우상적인 육신의 생각인 유대인인 나를 선하게 만들고자
자기를 악마의 길로 가겠다 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오히려 이것이 거리끼는 걸림돌식의 표현이 되는 겁니다
나를 선하게 만들려고 사도바울 자기는 악의 길로 가겠다 라고?
마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 라는 식처럼
가만히 듣자하니까 내가 선하지 않다 선함을 목표로 사는 자가 아니다 라고
속된 요즘 말로 은근히 까는 말로 들리는 겁니다
얼마나 나를 악마로 봤으면 날 선하게 개선시킬려고 본인이 대신 악마의 길로 가겠다 라고 듣끼니까 이건 뭐 은근히 맥이는 맥이다? 먹이다? 한방의 주먹 오 함마 망치를 먹이는 소리가 아니고 뭐냐 말이지요
이게 바로 성령을 부음 받은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행동과 말투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든 말투가 다 그런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의 육의 소욕에 반대하는 식이다는 거죠
성령을 부으니까
종이 주인을 먹여살리고 (주인이 종을 살리는게 아니라)
남자가 아닌 여자가 남자를 구원하는 반대의 기능이 되고
반대는 남자는 자기가 남자임을 우기는 여자는 땅 남자는 하늘이라고만
존재만을 주구장창 주장하고
늙은이는 젊은이처럼 꿈을 꾸고
반대로 젊은이는 늙은이처럼 환상을 보고
환상을 본다 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다 라는 종말을 추구한다 라는 겁니다
늙은이가 환상을 봐야 정상인데 그러면 이해가 되는데
젊은이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맨발로 돌아다녀보세요
미친놈이라고 취급할 것 아니겠습니까?
앞길 창창한 젊은이가 그렇게 되면 인생 쫑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오늘닐 목사들 보세요 인생 쫑난 길을 가는 종말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 사람 보다 더한 돈에 미친 자가 되고파 안달이 나있더라 말이죠
마치 돈에 한을 품은 자 같아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고 말이죠
(행 2:17,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개역)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9, 개역)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 2:20, 개역)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행 2:18, 새번역)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행 2:19, 새번역)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행 2:20, 새번역)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행 2:21, 새번역)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2:17, 공동)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요엘 3:1-5.
(행 2:18, 공동) 그 때에는 나의 남종에게도 여종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
(행 2:19, 공동) 나는 하늘 높은 곳에서 표징을 보이며 땅에서 기적을 행하리니 피와 불과 짙은 연기가 일고
(행 2:20, 공동) 해는 빛을 잃어 어두워지고 달은 피와 같이 붉어져 마침내 크고 영광스러운 주의 날이 오리라.
(행 2:21, 공동) 그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행 2:16, 현대어) 오늘 아침에 여러분이 보신 이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것입니다.
(행 2:17, 현대어) ㄱ)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 나의 비를 부어 준 다음에, 너희 모두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을 할 것이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여러 가지 꿈을 꿀 것이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온갖 환상을 볼 것이다. (ㄱ. 70인역 욜3:1-5)
(행 2:18, 현대어) 또 그날이 오면 너희의 남녀 노예들에게도 똑같이 나의 영을 부어 주고
(행 2:19, 현대어) 땅과 하늘에서 이상한 상징들, 곧 피와 불과 버섯 연기들을 보여주겠다.
(행 2:20, 현대어) 여호와의 그 위대하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캄캄해지고 달은 피같이 붉어질 것이다.
(행 2:21, 현대어) 그날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 약속하신 것과 똑같이 시온산과 예루살렘 도성에서 구원을 받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불러내시는 자들은 살아 남을 것이다.‘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21, 새번역)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2:21, 쉬운)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2:21, 한글킹)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행 2:21, 현대인)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의 행동 곧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
곧 부정적인 저주를 굳이 썩어가면서 하는 표현이 있는 성령의 소욕으로써의 믿음의 언어를 보니
누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고 하니
요셉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파서 파 묻었잖아요
그때 나이가 17살 정도였고 베냐민은 태어난지 얼마 안된
나이차이가 15살 정도였다고 하니
요셉이 비슷한 연년생에서는 제일 막내인 거지요
이 막내 하나 죽일려고 다 달려드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요셉은 형들을 살릴려고
제발 지옥가지 말라고 볼모작전으로 뺑뺑이 세 번 돌리지요
그렇게 거리끼는 걸림돌로써의 간극을 벌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바울이 유대인 살릴려고
자기는 저주 받아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뺑뺑이 돌리는 베냐민을 볼모로 잡은 사건으로 반드시
때려죽어도 안 데리고 올 아버지 야곱을
지팡이를 의지하는 그 야곱을 이주 이동 광야로 이주 시켰듯이
말이 애굽이지 요셉에게서는 광야입니다
그 광야에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성령의 소욕을
에덴동산 같았던 그 애굽 보란 듯이 육의 소욕이 보란 듯이
이스라엘의 기능인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를 이루시는 겁니다
결국 에덴동산 같았던 그 애굽 잔칫집은 교만한 부자처럼
남의 것을 뺴앗아서 된 우상이였던 겁니다
그 우상을 거쳐서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나의 우상됨 곧 자기를 위한 신 이라는 우상을 거치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 리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유대인일지라도 하나님을 대따 많이 아는 유대인 말이죠
알고보니 하나님을 몰라서 망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른채로 하나님을 아니까 그게 가짜 하나님이였던 거죠
바로 이 과정을 사도바울 본인이 너무 너무 자기자신을 잘 알게 된 겁니다
주님이 알려주신 나 바울과
내가 나 바울을 아는 바울과
완전 정반대였던 겁니다
내가 나 바울을 아는 바물은
죄인 중의 괴수가 아니였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산 적이 없는
오히려 의인 중의 의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이였다 말이죠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주님이 아는 바울 그때는 사울이였죠
마귀 중의 마귀 였다 라는 겁니다
그런 마귀 중의 마귀인
죄인 중의 괴수 요즘 자주 나오는 수괴!!! 우두머리 내란죄 우두머리 수괴
이 용어를 아예 대 놓고서 설명을 하더군요
우두머리라는 용어가 있는데 왜 저런 듣기 거북한 용어를 쓰는지 말이죠
수괴라는 용어가 법에도 나와있고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라고
법정에도 자주 쓴다 라고 설명을 굳이 하더군요
그 죄인 중의 괴수 수괴인 그 바울을 살릴려고
나 예수 너 바울 수괴 살릴려고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했듯이
이 화목제인 십자가 곧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거죠
모든 사람들은 유대교든 기독교든 다들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든 십자가를 이용하든 다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식으로 십자가를 기적으로 이용하는데 있어서
주님은 그 반대인 내 죽으마 너 살라 라고
말도 안되는 그것도 죄인 중의 수괴 만들어서
십자가에 걸맞는 수괴
화목제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드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건 뭐 한 방 맥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를 죄인 중의 수괴로 만드시는 거죠
다윗이 왕이 되면 뭐합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 되면 뭐합니까? 똥이나 쳐 바르고 있는데
아사리 그냥 똥덩어리 배설물 수괴로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즉각 사형깜이다 라는 거죠
주께만 범죄한 자 이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의식(원수 중의 원수인 사망의 몸 지옥의 몸 심판 받아 마땅한 몸)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바라 볼 때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볼때에
바로 그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고 끊어지는 방식인
십자가 곧 화목제 라는 사랑으로 인해서
바울에게 청년 사울에게 접근하였듯이
바울 너가 핍박하는 나사렛 이단 예수이다 라고 말이죠
바울 또한 그런 식으로 저주받고 끊어질지라도
이 십자가를 그런 사고방식인 사랑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그 당시 유대인 유대교나 오늘날 기독교나 모든 종교의 믿음이나
무신론자의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 곧 행함의 실천이나 모조리 다 복수심에서 움직인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믿음 모든 행동은 곧 복수심인 겁니다 인정투쟁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그 복수심에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의 사랑이니까 유대인들이 그렇게 죽이고자 했던
나사렛 이단 예수를 믿는 바울이 이단의 자리에서 유대인을 위하여
이단 예수로부터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라고 표현하면 유대인들이 고마워 할까요?
더 약올리는 표현으로만 들낄까요 자 이러니 더더욱 간극이 벌려지는 겁니다
복음은 그 어떤 이유로도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가 먹혀들지를 않는 겁니다
오죽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 예수님요 바리새인들이 그 말듣고 저들이 얼마나 격분한지 아십니까? 이제 우리까지 다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원망하잖아요
간극을 좁히는 전도 따위는 없어요 더 더 더 벌어진 그 간극에서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는‘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그 간극에서 성령으로 태어나는 겁니다)
(마 15:12, 새번역)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마 15:12, 공동) 그 때에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마 15:1, 개역)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 15:3,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 15:4, 개역)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마 15:5, 개역)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마 15:6, 개역)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 15:7, 개역)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마 15:8, 개역)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10, 개역)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1, 개역)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5:14, 개역)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마 15:15, 개역)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마 15:16,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마 15:17, 개역)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마 15:18, 개역)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 15:19, 개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 15:20, 개역)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율법의 행함의 방식이 아닌 32절?
믿음의 사랑의 방식인 화목제물 되심으로 말이지요
말도 안되는 절대저주인 삼일의 간극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것도 인간의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절대죽음인 그 삼일의 간극에서 나온 믿음으로 말이암아 말이죠
그것이 새마음 새영 곧 성령인 십자가의 영 곧 정직한 영 즉 중심입니다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중심(시온)이 없어서 지옥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발 지옥가지 말고 제발 저주의 길 가지 말고
생명의 길을 가라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구약 전체가 하라 하지말라가 목적이 아닌
그런 선악이 목적이 아닌
그런 선악 때문에 예수님을 멀리 멀리 떨어뜨리고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버리고자
반드시 끊어내고자 했던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바로 이분이시다 라고
모든 구약이 증거하는 분인 바로 이분이란다
이분만이 생명의 길이란다
안그러면 이러다 다 지옥간다니깐 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징어게임 다시 참가해서 이정재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볼려고
이러다 다 죽습니다 여러분 이라고 외치는 그 심정이다 라는 거지요
물론 그건 쉽들러 리스트처럼 이정재가 인간의 연민 때문에 제발 죽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죽어서 단 한명을 대신 살릴수가 없어요
하는데 까지 해 보는 식인 그 역시나 의문의 반복이지만
사도바울은 개인의 행동이 아닌
성령이 부어져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도라는 기능 곧 은사는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로써
이런 사고방식에서 사도의 피 위애 교회가 세워지는 겁니다
율법의 행함으로써는 원수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율법의 행함은 막힌 담을 더더욱 견고하게 높이 세워 트럼프처럼 담벼락을 더더욱 세워서
너 와 나를 제대로 구분하는 경계선을 더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너는 너고 나는 나 이다 라는 둘 로 나누어짐이 더더욱 또렷하다 말이지요
그렇게 유대인들은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짓기를 실천함으로써
율법의 행함으로써 저 원수 같은 사마리아 더러운 자들과 자신들들 구분짓기를 했다 말이져
더더욱 부자청년처럼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키기를 소망하면서 부자가 되기를 바랬다 말이죠
이게 바로 저주 이다 라는 겁니다
반대로 율법의 행함이 아닌
오로지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만을 쳐다봄으로써 낫게 되는
다들 비웃은 그 믿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말이지요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을 선물 받으니까
저절로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만들 수 없는 그 불가능함이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시고도 남으시니 말이지요
환자와 의사가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상극도 너무 너무 상극인 그 간극의 벌어짐인데
어떻게 지옥의 몸 사망의 몸이 하늘의 영광과 한 몸을 이루겠습니까?
그저 화로자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그 간극의 더 벌어짐민 또렷함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한 몸이 되다니요? 그건 주님의 작업이지
내가 한게 없어요 도리어 지옥의 몸 사망의 몸으로 드러날 뿐이지요
그런 죄인을 섬기시는 구원자
그런 환자를 병을 대신 짊어지는 의사
이건 행함이 아닌 율법의 행함으로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사랑 뿐이다 라는 겁니다
우상적인 유대인에게서까지 한 몸이 되시고자 저들의 죄악을 짊어졌잖아요
그 당사자가 유대인 바울 본인 아닙니까 우상숭배자 바울 말이죠
우상조각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만드시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는 것은 유대인 사고방식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의 사도로써
더럽고 우상숭배적이고 개같은 이방인에게 까지 예수님은 이방인의 빛으로 구원자로
한 몸을 이루었듯이 말이지요
유대인의 하나님에게서는 말도 안되죠
솔로몬처럼 그저 이방인 이용해먹듯이 (성전 건립을 위해)
오늘날 유대인도 마찬가지 검은 유대인 에디오피아인을 이용해먹을려고 수용해줄 뿐이지
여전히 경계선은 막힌 담을 못 허무는 겁니다
요셉 본인을 죽일려고 땅에 파묻은 그 형들을 그냥 무조건 용서하는게 아니라
그랬다면 배려가 자주되면 당연한 권리
그 유명한 영화 부당거래의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히 누리는 권리인줄 안다는 뜻의 대사가 나오듯이
당연한게 아니기 떄문에
의도적으로 뺑뺑이 세 번을 돌리는 겁니다
절대단절 절대저주 절대심판 말이지요
요셉이 그 깊이 파 묻힌 구덩이에 3일동안 단절 되었듯이 말이지요
이 간극으로써의 십자가가 아니면
그 마음에 찔림이 없으면
도저히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행함이 먹혀들지 않아서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도록 하시지
안그러면 당연한 권리인줄 알 듯이 말이죠
그러니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줄 알기 때문에
그런 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이미 망한자 이기 때문에
괜히 천국에 들여보냈다가는 심심하면 데모하는 운동 시위하는
데모크라시 democracy 민주주의를 운운할 놈이니 미리 걸러내서 지옥으로 보내는 겁니다
(데모 곧 민중 그리고 크라시 곧 권력, 지배, 통치죠
여기에 무슨 놈의 두려움과 떨림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절대저주 절대죽음 절대심판 앞에서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어요
오토크라시 Autocracy 데모크라시의 반대말이지요 절대왕권입니다 독재죠 독재
정녕죽으리라를 홀로 다 이루셨다 말이죠 그 외에는 죽음도 아닙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 말이죠 이게 망상입니다
허구 허상이다 말이죠
이 안 보이는 의문의 반복인 미완료를 자본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이 받쳐주는 겁니다
악마 라는 돈과 곧 우상과 허무한 안개인 인간이 만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다고 반드시 멀리 떨어지겠다 라고 결심하고 결심하는 겁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거죠 손도 없는 돈이라는 우상에게 자기를 일으켜 달라고 말이죠
요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종교인 과학에서 자아 라는 것도 없다 라고 주장하잖아요
자기들도 알아요 자아 또 뭐 영혼 영 이런 것들은 없다 라고 모든 것이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이다 라고 ~~~)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알테니 말이죠 그것도 없는 자아가 그렇게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니 저주는 저주도 아니다 라고
절대저주 절대죽음 절대심판 속으로 집어넣어서 구원하시는 겁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니까 절대 미움 속에 절대버림받은
절대 싫어버린 바 됨‘속에
절대 흠모할 모양 없음 속에 집어넣어서 흠모 사모 소망하는
보이지 않는 소망을 선물로 믿음을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선물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내부에서 만들어낼수가 없습니다
곧 인간에게서는 믿음이 애초부터 없었던 겁니다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었듯이 말이죠)
그 죽음의 자리 라는 처음 자리
첫사랑을 만난 조우한 그 자리에 놓이고자 하기 위해서
삼일 동안 죽음 속이라는 그 단절 속에 그 간극 속에 놓여졌듯이
잃어버린 동전처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처럼 말이지요 그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는 당연한 권리이니까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 번 씩이나 뺑뺑이 돌리는 겁니다
그 단절의 죽음의 자리에서 출발하도록 말이지요
(유다가 며느리 다말 덕분에
이 요셉의 세 번 간첩몰아가기 시험에서 벗어납니다
아니 벗어남이 아니라 그 삼일의 간극인 십자가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영광인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인 그 십자가가 말이지요
죽음이라는 절대저주 속에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자식을 이 죽음에 놓겠다 라고 함으로써 말이지요 유다가 불에 태워 죽이고자 했던 그 며느리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비로소 그 죽음에 죽음으로써 단절을 당해야 할 지옥의 몸임을 알고서 회개하는 마음으로써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모습으로써 이 단절의 단절로써 간극을 더더더 벌림으로써
그 죽음 속에 들어감으로써 초과잉현실인 화목제 십자가인 예수님의 죽음을 만남으로써 말이죠)
거기서만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는 겁니다
그 공백의 자리에서 십자가라는 태에서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즉 사랑만 아는 겁니다
그런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의 표현이 누가 봐도 부정적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이 또렷한 십자가의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고요
마치 7에 70번 도리어 용서받는 그 사랑이 또렷하게 말이지요
(그러나 그 반대인 남을 7번 용서한 자들에게서는
이 7에 70번의 도로 남으로부터 용서받는 것은 그야말로 모욕 중의 모욕입니다
수치를 자기가 알아서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러주는 모욕적인 구원을 받으면 안된다 라고 말이조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나를 대신 해서 지면 안된다
자기의 죄는 자기가 알아서 벌받자 라는 의식에서는
이 십자가는 그야말로 거리끼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자꾸 모욕의 길로만 인도할테니 누가 감사함이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한 자가 나옴으로써 더더욱 그 간극이 벌어짐에 있어서
간극을 좁혔다 라고 자부하는 남을 7번 용서는 희미한 의문의 반복이 되고
또렷한 7에 70번 용서 앞에서 뻔데기 앞에서 네 가닥? 일곱가닥 주름 밖에 안되는 겁니다
베드로 평생 70년 동안 겨우 남 7번 정도 밖에 안되는
그 공든 탑의 시 공간의 세월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일장춘몽의 모래성일 뿐입니다
미쁘신 믿음직스러운 바위가 아닌 후 하고 불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 자체가
이미 유대사회에 만연해 있는 거짓선지자의 표현 곧 평강이다 평강이다
부정적인 표현 하나도 없어요
뭐 저주 라는 표현이라든지
끊어질지라도 라는 표현이라든지
근심 그냥 근심도 아닌 큰 근심 크다큰 근심
고통 이거 다 부정적인 표현 아닙니까 그것도 부정의 부정입니다
그냥 고통이 아닌 그치지 않는 고통
곧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통이다는 겁니다
십자가만 알기로 한 자 답게
이 십자가가 제대로 된 하나님의 저주이니까 말이죠
매일 매일 죽음에 그리스도의 죽음에 넘기움을 당하는 겁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지시는 풀과 같다는 겁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영광 보다 더 영광이다 라고 말이죠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카이 이 거리끼는 걸림돌의 언어로 어떻게 사랑이 나오겠냐 말이죠 곧 선이 나오냐 말이죠
그저 율법 안에서만 선을 추구할려고 하지
법 바깥에서는 선을 추구 안합니다 말라꼬 법 바깥에서 선을 행하냐 말이죠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롬 3:8, 개역)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 3:9, 개역)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롬 3:12, 개역)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거짓선지자와 같은 바리새인에게서는 나올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오늘날 종교꾼들의 표현에서는 안 나오겠지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긍정적인 표현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본인이 그런 거짓선지자의 거짓영 거짓복음의 가짜 하나님이 퍼져 있다 라는 것을 알기 떄문에
심지어 본인이 바로 그런 과거의 제일 압장선 선봉자 였기에
그런 환경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 곧 돌 떡, 성전 두손 기적, 온천하 정치가
유대인을 다 장악했기에 그 포로됨 속에서
구원의 빛이 떳기에
거짓선지자와의 반대인 메시지를 담고서
자신도 예수님을 곡해 했듯이
이해를 아예 바라는 마음 추호도 없이
사람을 기쁘게 할 마음이 없이
그야말로 성령으로서 이런 표현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단절적인 표현으로 듣기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고 저래 증거하면 누가 듣겠노
요즘 교회처럼 어린아이 다루듯이
초코파이 주고 연필 공책 주고 살살 달래가면서 해아지 라고 안쓰럽다 라고
혀를 쯧쯧 차도록 만들지만
바로 이것이 오히려 살살 달래고 타이르는 개유
권고입니다
(광야의 언어와 잔칫집 궁궐의 언어 차이입니다 진칫집에서 부정적이고 삐딱한 소리를 할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선지자는 궁궐에 없습니다 아무리 궁궐 바깥에서 찾는?? 해도 줄리는 무당만 찾을 뿐입니다
광야에 왜 갔더냐? 선지자를 보러 함이더냐? 옳도다 좋은 옷을 입은 자는 궁궐에 있다 말이죠)
(호 2:13, 개역)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호 2:15, 개역)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 2:16, 개역)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호 2:19, 개역)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호 2:20, 개역)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마 11:7, 개역)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개역)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마 11:10,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개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광야에서 사랑을 비로소 알고 광야에서 개유 권고 하고
광야에서 그 잃어버린 자리 그 처음자리 그 첫사랑의 자리가
바로 결혼할 자리 한 몸 되는 자리이니까 말이죠
안그러면 여전히 두 몸으로써 살려고
남편이용해 머고
아내 이용해 먹기위한
그것을 노리는 것이 마귀가 베드로 잡아서 잘 보일려고 음녀가 자기가 사랑하는 방식인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를 어기는 방식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이라고 다른 신을 의식한다 라고 과학하고 앉아있네가 비꼬았지만
그 다른 신이 바로 그 둘로 나누어진 그 막힌 담을 그대로 두는
각자의 몸인 둘로 나누어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자 라는
그 우상이 바로
다른 신 곧 나를 그대로 유지하겠다 라는 사고방식입니다
그게 선악이다 말이지요
무조건 자기가 선이고요
그 선을 방해하는 남의 몸이 악이 되는 거지요
인간의 악은 유일하게 딱 하나 뿐입니다 예수님입니다
그것을 가룟유다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말이죠
자기가 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바울이 과거의 그런 모습이 바로 저주였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저주 속에 아무리 들어가본들
그 거주는 저주 축에도
자신의 근심은
고통은
끊어짐은
주님의 끊어짐인 이 십자가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껏 외칠수가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유대인은 오히려 더더더 거부감과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자기가 했던 짓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니다 한 적 없다 라고 밀어낼려고
아무리 건축자들이 버려도
또 그 다음날 떡 머릿돌로 떼굴 떼굴 뗴굴 뜨인돌로써 머릿돌로 서는 겁니다
아무리 버려도 안되는 겁니다 그 사실은
먼저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집은 이스라엘이 먼저 심판을 받으면서도
마치 나는 심판 받지 않았다
저주 받지 않았다 라고 아무리 우겨도
거봐 거봐 심판 받았네
아니 난 안 받았다니깐
어쭈 오냐 남방 여봥이 외서 심판하고
니느웨백성이 와서 심판해도
다들 심판 받았네 말 안 듣다가 심판 당했구만 이라고 해도
자기들은 아니다 심판 안 받았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바로 그런 우기고 뻐티고 하는 모습이 바로
나는 율법이 있기 때문에 너거들처럼 망할 자가 아니다 라는 모습 자체가
바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은 모습으로써 버텼던
이게 바로 사도바울 본인이였었기 때문에
그 저주에서 벗어나라 라고
본인이 잘 알지오 귓귀멍으로도 안 들을꺼라고
그래도 듣기는 들어도 꺠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도록 하는 이 비유 비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는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또 너냐
유대인을 괴롭히는 자여 바울 또 너냐 라는 그 비아냥을 아예 듣고파 하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증거하는 이유는
이것이 비유이지
맹탕의 듣기 좋으라 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 본인이 이사야처럼 성령을 받아서 외치기 때문에
3년 동안 발가벗고 맨발로 거울 비추듯이 외쳤던 것처럼
오늘 이렇게 증거하지 않으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아니 얻든지
외쳐라
파수꾼 너가 안 외치면 그 죄가를 너에게 묻겠다 라고 에스겔에게 하셨듯이
바울은 지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근심과 고통으로
그냥 근심이 아닙니다
큰 근심
그리고 그치지 않는 고통입니다
이거 오바 아닙니까
오바 오버 초과잉은
무의식 속에서 지금 초과적으로 넘치기 때문에
아니 증거하고는 못 배기는 당위이기 때문에
기능이기 때문에
은사 이기 떄문에 성령의 소욕이기 때문에
존재가 못 따라오는 겁니다
육의 소욕일 것 같으면 사람의 기쁨을 구하기 떄문에
사람 없는 광야에서는 때려죽어도 안 외치고 포기할 겁니다
존재는 늘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존재가 아닌 기능은 초과잉이기에
초과잉만이 진리입니다
(존재한 적이 없는 초과잉실재인 자아 보다
그 그림자 허상인 자아를 더더더 없애버리는 십자가에 모든 육체를 못 박는
이 참실상인 더더더 초초초과잉 실재인 또렷한 십자가만이 진리이다는 겁니다
십자가 나무 짝대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만이 말이죠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이 또렷한 실상인 사랑만이 말이지요
철학자들이 말하는 사랑 아닙니다 그거 거짓선지들 초등학문입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인 십자가사건 말이지요)
광야 아무도 없는 곳에
듣는자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는데도 외치는 겁니다
아 듣는자 없어도 깨닫는자 없어도 열심히 하는 그 열성 열정 패션을 보여주고자 함이겠군요?
아닙니다 그것 또한 존재입니다
기능은 그 반대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꺠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도록
혹시나 듣고 꺠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싶어서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겁니다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마 13:13,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 13:14, 개역)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막 4:12, 개역)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행 28:26, 개역)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겔 2:5, 개역)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겔 2:7, 개역)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겔 3:11, 개역)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딤후 4:2, 개역)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즉 들으면 안될텐데 라고 외치는 거죠
깨달으면 안될텐데 라고 외치는 겁니다
그래서 못 듣도록
못 보도록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잃어버린 자리에서
그 처음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또렷한 첫사랑을 말이지요
(행 28:25, 개역)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행 28:26, 개역)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개역)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정작 유대인은 안 듣고요
반대로 이방인은 들으리라 라고 되어 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들어야 할 유대인은 귀머거리가 되고
정작 못 듣도록 되어 있는 이방인 귀머거리들인 이방인이 도리어 듣더라 말이죠
역전현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동시에 정반대인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 곧 이방인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겁니다
오직 미련하고 어리석은 죄인임을 아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인 부르심을 보라 약한 것 지혜없고 능한 자 없고 문벌없고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것으로써 부르심을 받았다 왜? 상대적인 자들과 대조를 이루고자)
이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요 영광입니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많이 있는 잔칫집 또는 궁궐에서 외치는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는 겁니다
에이 그러면 아예 말을 안하고 안 외치면 되잖아 라고
아니요 말 안하고 안 외치면
증인이 아닌게 되는 거지요
증인이기 때문에 외치긴 외치는 겁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다 말이지요
그러니 주님의 뜻에 충족 시키기 위함이지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으는 식이 아닌 거지요
어차피 그래 되면 어차피 걸러내면 다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애초부터 떨어져 나갈놈을 미리 내치는 식으로 걸러내면서 증거하는 겁니다
이것이 굳이 구약처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은
광야를 거쳐서 들어가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그래서 이 놈들이 선지서를 증거하지 않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처럼 너무 어렵거든요
어렵다? 그럼 양자컴퓨터 집어 넣어서 계산해서 천년 걸릴 수학 난제 문제를
몇초 만에 풀면 되겠네
라는 그런 어려움이 아니라
비유 비밀 자체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기에
접근 자체가 안되는 단절이기 떄문입니다
오로지 죽은 자 만이 접근가능하다 말이지요
에이 죽으면 이미 끝났는데 죽은 자가 산자처럼 접근 자체가 우찌 되노?
바로 그겁니다
죽은 자가 안된 자가 저주 받은 자 이다 라는 식으로
본인은 그런 죽음도 죽음 축에도 못 드는 더더더 더한 절대 죽음
절대 저주
절대 단절인 절대 끊어짐인 이것만이 절대용서인 사랑이다 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끊어져도 저주 받아도 상관 없다 라는 식으로
유대인에게 외치는 겁니다
유대인은 오히려 그것이 더더더 기분 나쁜
그야말로 목에 탁 걸린 까시처럼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말은 다 그런 식입니다
바울 뿐만 아니지요
사도들의 외침이 다 그래요
뭐 성격마다 다 틀릴끼다? 아닙니다
기능은 똑같습니다
다 삐딱해요
사람을 좋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다 똑같은 한 몸입니다
모든 기능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엡 4:5, 개역)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엡 4:1, 개역)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2, 개역)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3, 개역)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4, 개역)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엡 4:5, 개역)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엡 4:6, 개역)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7, 개역)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 4:8, 개역)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엡 4:9, 개역)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엡 4:10, 개역)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엡 4:11, 개역)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2, 개역)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3, 개역)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 개역)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 개역)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6, 개역)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카이 구약처럼 광야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이미 약속의 땅에서 광야처럼 목이 곧은 백성임을 들추어내시는
이 거울
발가벗은 몸
바로 사도바울의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써
내 친족 골육에게 외친다 라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육의 혈통을 쫓고있네 라고 왜 욕 먹는 짓을 하지가 아니라
에이 바울이 미련을 가지고 있네
저 유대인들 사탄의 회 인데 아직도 옛날 지나간 것 이전 것이 안 지나가고
새롭게 된게 아니네 라가 아니라
한 몸으로써 그리스도 곧 머리를 향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유대인은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지만
완악한 수건을 안 벗고 우기지만
원래 구약 전체 조차도 예수님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야 이 놈의 유대인아 머리 되신 예수님과 한 몸
한 친족 한 골육이 못 되면 너거 진짜 이러다 다 죽어
그러다 다 저주 받아
그러다 다 끊어진다 이 놈들아 라고 외치는 겁니다
오징어 게임 이러다 다 죽는다 말이죠
그카이 발가벗겨진들 3년 동안 맨 몸 알몸 맨발로 다닌다 라고 손가락질 받아본들
미말에 둔 구경꺼리 웃싸꺼리 조롱꺼리
예수님의 죽음에 매일 매일 넘겨져 본들
오히려 그것이 나 바울에게는 더 영광이란다
그거 땜에 사도라는 기능
곧 은사는 그 기능을 하라고 너희에게 주어진 거야
이방인의 사도 라메? 듣기 싫으니까
더러운 이방놈에게나 전해라
나 못 간다고 전해라 ~~~~
이게 이방에게 증거하는 거야
너희들 유대인들도 처음자리는 이방이였거든
아이 시끄럽고 더 이상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말아라 라고 내침을 받는 겁니다
내침을 받지 않는 말을 충분히 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목사들이 그렇게 밥 빌어먹고 살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지 구지 굳이
반드시 내 침을 받는 단절된 말
발가벗겨진 알 몸으로 거울 비춰주듯이 꼭 비밀로 꼭 해야 겠냐 ~~~~~~ 라는 소리를 꼭 들는
이 단절성으로써
저주 받고
끊어짐을 받고
큰 근심 속에 놓이고
그치지 않는 멈추지 않는 고통을 꼭 받드시 입음으로써 외치는 바는
내가 예수님의 그런 모습 덕분에 내 살아났단다
그래서 너거들 살아나라고 이래 외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사람 좋게가 아니라
복음의 기능이다 라는 겁니다
존재 좋으라고 하는게 아니라
기능은 오히려 원수 웬수 만들어서 말이죠
아 그럼 지금 그 소리는 너 바울이 우리 손에 죽는 소리만 해야 한다는 소리네
바로 그겁니다
그래야 우리는 나도 몰랐던 내 속의 저주
내 속의 끊어짐
내 속의 우상
바로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인 이 죄악을 건드리시는 그 섬김과 만나는 겁니다
그러니 바울은 유대인이 하나님 잘 알 거야
왜 먼저 되었으니까 라는
먼저 됨을 선행학습처럼 무슨 특권으로 구약처럼 그렇게 보는게 아니라
그래봤자 존재로 빠지면 말짤 도루묵이니까
기능은 아예 유대인이면 유대인 일수록
더더욱 예수님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이 저주를 거쳐서 보자 라는 겁니다
왜 나는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황비홍 누구라꼬 ~~~~~~~ 라고 비웃는
애굽왕 바로왕을 떠나서
광야라는 저주 속에서
광야
광야 3일 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왜 만나야 했느냐 말이지요
왜 화로다 화로다 나느 망하게 된 지옥의 몸이구나 라고
지옥의 몸으로써 주님을 만나야 하느냐 말이지요
의인의 몸
건강한 몸
약속의 땅에서
잔칫집에서 만나는게 아니라
왜 광야에서 만나느냐 말이죠
그래서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저주
끊어진 자로써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줄려고 하느냐 말이죠
우리가 지옥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광야에서 죽는게 아니라
비록 광야 일 지라도
무화과 나뭇 잎이 마르고
포도 나무 열매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리라
세상에 이 보다 더 부정적인 노래가 없어요
모조리 없데 글쎄
아무것도 없는데
기쁘데
세상에 이런 기쁜 노래도 없어요
아니 학부모들 도끼가 나무에 이런 노래는 못 부르도록 만들면서
더 부정적인 이 노래는 또 마지막에는 기쁘네 이것 때문에
못 부르게는 하지 않네
왠일이니 왠일이니 ~~~~~
자기자식 왕의 유전자라서 온갖 부정적인 것 말릴적에는 언제고
이것은 부정적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말이지요
하여튼 아무것도 없데요
그리고 감람나무 소출 그쳤데요
끊어졌데요
단절 되었데요
그래도 기쁘데요
왜?
머리를 향했기에
머리가 있으니까
이것이 은사 이다 라는 겁니다
각자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따로 노는 둘이 된 분리된 몸이 아니라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향한 한 몸 말이지요
다른 신 이 된 인간 그 자체가 우상이 되었기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향한 은사 곧 성령의 소욕은
육의 소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말이지요
원수된 생각인 육의 소욕이
존재는 오로지 자기 존재 밖에 모릅니다
자기한데 이롭다 여겨지는
자기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자를 옆에 둘려고 하는 정치나 하고 있지
그게 바로 태극기 부대이고 역시나 촛불부대 아닙니까
둘다 마귀들이다 말이죠
다 양쪽 다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있지
누가 머리를 향하고 있겠냐 말이죠
은사가 아니면 안되는 겁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나 라는 존재에서는 나올수가 없어요
그래서 바울은 반대로 저주 속으로
끊어짐 속으로
큰 근심 속으로
그치지 않는 고통 속으로
아에 일상으로 매일 매일 당하면서도 그 속에서 외치고 있더라 말이죠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 벗어날려고 할 텐데
더더욱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지요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는 속으로
그 광야 속으로 말이지요
저희의 부요 함에 되고자 말이죠
(롬 11:12, 개역)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계 2:9, 개역)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 후서 6장은 오늘 본문과 같죠 8장도 마찬가지
(고후 8:9,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오히려 이 반대의 육의 소욕의 대표자 부자청년처럼
항상 구원받은자 또는 선민 선택된 자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부자를
오히려 정반대로 언급하시고 있습니다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아무것도 없는 자 라고
그카이 사도의 기능은 거울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자꾸 머리 되신 예수님으로 향하도록 방향 키를 돌리는 겁니다
그가 찔림으로 우라가 나음을 입었듯이
자꾸 주님의 찔리심 속으로 화목제 속으로 방향을 잡도록
사도 자신의 몸에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저주
끊어짐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누가봐도 큰 근심이 없었던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떤 때
배부르고 근심의 반대말이 뭡니까 기쁨이 넘치고
저 예수 하나 때문에 이단 사상 막고자 쓸데 없이 스데반과 같은 예수쟁이 다 죽이고 돌아다녔던 그래서 이단 하나 제거 한 것에 기쁨을 누렸던 그 만족감이 오히러 저주 였다고
그러니 그 저주 속에 놓여진 유대인과 친족들 골육들 보면
바울은 안타깝기 그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끊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 덕분에
마음껏 끊어져도 상관이 없는 저주 속으로
끊어임 속으로
큰 근심이 있는 곳으로
그지치 않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마치 며느리 다말 같아요
유대인 곧 유다 시아버지 유다가 약속을 자기의 유익대로 우상 믿듯이 믿는
손해 보는 것 하나 없이 말이지요
그카이 요셉을 죽였던 것 아닙니까 나머지 형제들과 함께 막내 요셉을 죽이고자 안달이 났었다 말이죠
그런데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며느리 다말 하나 못 죽여서 안달이 나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 ~~~~
남들의 시선에서 얼마나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이 못된 며느리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말이죠
그렇게 불 속으로 집어넣고자 했는데 즉 마음을 이미 먹었기에
불 속에 집어넣은 것이나 마찬가지 이지요
며느리 다말은 여자로써 큰 근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을 시아버지로부터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겠냐 말이죠
시아버지 유다는 도리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라는 식으로
나를 괴롭히는 여자라고 뒤짚어 씌우는 거죠
그래서 불 속에 집어넣고자 끝없이 그치지 않는 고통 불이 온 살갓을 태우고자
그 뜨거운 불이 붙으면 최고의 고통 아닙니까
그야말로 저주가 따로 없지요
불 속에 집어넣는 길 만이 제대로 끊어지도록 만드는
저 지긋지긋한 이방여자 며느리 드디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구나 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제대로 된 단절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끊어짐이 아니예요
진짜 큰 근심 그치지 않는 고통 그리고 저주 그리고 제대로 된 끊어짐인 절대단절은
바로 며느리 다말이 내미는 세가지 물건입니다
이것만이 제대로 된 간극입니다
십자가만이 제대로 된 죽음이다 말이죠
도장 도장끈 지팡이 말이지요
이것만이 시아버지 다말을 제대로 구원하는 수술칼입니다
비로소 그 수술칼 곧 의사의 칼 앞에서
나는 환??입니다 라고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나를 제대로 고치는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영이 부어졌던 며느리 다말처럼
시아버지 유다 곧 유대인을 향한
사도바울의 외침은
성령을 부음 받은 며느리 다말의 외침과 같습니다
무엇이 진짜 저주요 진짜 끊어짐 입니까?
예수님의 절대저주인 이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것이 진짜 저주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온통 나의 가치를 꾸미는데 평생 헛 짓 하는 저주 속에서
지옥이 끌어당기는 대로 살다가 지옥에 가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고자
자기 숙제 속에 살다가 예수님의 숙제인
다 이루셨다를 못 보고
미완료인 의문의 반복만 하다가 지옥갈 뿐입니다
바울의 눈에는 그것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대산 저주 받고
대신 끊어진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외치고 싶은 겁니다
참됨은 오로지 예수님 뿐이기에
자신은 언제든지 저주의 거짓됨 속에 놓여지든 말든 말이지요
다말이 더러운 창녀 짓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저 약속의 가문을 살리고자 죽음 속으로 들어감을 당하든지 말든지처럼 말이죠
참된 이스라엘은 곧 신약으로 치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미 예수 안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를 교회 답게 만들고자 하는 그 의도 속에는
자신의 개인 구원을 추구하고자 하는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늘 내재되어 있기에
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됨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자기 숙제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교회를 교회 답게 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먹혀드는 가짜복음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삼 분의 2 인 저주와 삼판은 은근쓸적 발로 밀쳐낼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미 저주의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아니 누가 복의 길을 마다하고 저주의 길로 가고자 하겠습니까?
누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박난 인기있는 핫 프레이스 hot place 넓은 길 잔칫집에 가기를 원하지
누가 초상집 저주의 길 좁은 길로 가고자 하겠느냐 말이죠
그러나 다들 인식하는 그 솔로몬이 입은 영광의 옷은 사실은 저주의 길이다 라는 겁니다
솔로몬이 입은 옷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인데
이 타인을 의식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고 흉내내고 따르면서 결집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 이다는 겁니다
우상이 우상을 따라하는 식이니까요
그 예가 바로 사회적 두뇌로싸의 왕이
그것도 유대인 남유다의 왕이 둘로 나누어 집니다
하나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왕 구실을 할 수 없는 입장인
어린아이 여고냐입니다
네 맞아요 어린나이에 어떤 곳은 8살에 어떤 곳은 18살에 왕이 되었는데
아무튼 아동입니다 그런데 왕이 된지 100일만에 포로 잡혀 갑니다 바벨론으로 말이죠
누가 봐도 저주 받았죠
사회적인 두뇌 구실을 못하는 겁니다 즉 결집 단결을 못하는 겁니다
혼자 못하는 인간은 결집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왕 되자 마자 포로 잡혀 가니
이 수뇌부가 수갑에 채워져서 포로 잡혀가야 한다니 누가 그것을 보고 축복이라고 보겠습니까
인간이란 본능상 그것을 보고 저주로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남유다 왕 자리가 빈자리가 되니까 여고냐의 삼촌인 시드기야가 바로 왕이 됩니다
그리고 왕 이 왕 답게 처신하고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남유다를 남 유다 답게 만들고자 결집을 시도합니다 결집이 되어야
전쟁을 할 수 있고 전쟁에서 이기고자 해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바로 이 모습을 성경은 저주 받은 무화과 나무 비유로써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고냐는 좋은 무화과 나무로 증거하고 있고요
이것을 흉내내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흉내 내고 싶어도 그것으로는 결집 단결이 안되고
수뇌부가 될 수가 없어요
그 흉내 조차도 못 내는 것이 도리어 축복의 나무라고 하니
기가찰 노릇입니다
아니 내일 아궁이에 던질 풀도 귀히 입히신다 라고
들에 핀 백합화가 솔로몬이 입은 영광 보다 더 낫다 라고 하시니
인간의 선악 곧 축복과 저주의 인시이 예수님의 앞에서는 판단불가 포착불가가 되는 겁니다
흉내 자체를 낼수 없는 가능성 제로의 불가능성만 제시하니까 말이지요
이것이 이미 다 이룬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에 딱 부합된다 라고 하시니 말이죠
더 이상 결핍을 채우고자 나를 나 답게 만들고자하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고자 하는 저런 사회적 두뇌인 시드기야 왕의 행동이
누가 봐도 독립운동을 칭찬하고 복된 일이다 라고 하는게 아니라
정반대로 저주의 길로 간 자이다 라고 하고
누가 봐도 포로 잡혀가는 여고냐는 좋은 무화과 나무이다 라고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의 포로 됨 갇혀있음 억눌린 자
바로 이런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기쁜소식이 딱 맞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포로 된 적도 없는 우리 아브라함 자손을 예수 니가 뭔데 자유케 만드냐 라고
아쉬울 것이 없는 건강하다고 하는 자
의인이다고 하는 자에게는 예수님 곧 의사 구원자가 없다 라는 이유로 저주 받은 자 이고
정작 포로된 여고냐처럼 고아 과부 나그네에만 필요한 예수님이
환자에게만 필요한 의사처럼
죄인에게만 필요한 구원자 곧 변호사처럼
이 예수님이 있다 라는 이유로 좋은 무화과 나무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오히려 소유의 넉넉함이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눅 12:19, 개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2, 개역)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24, 개역)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렘 24:1, 개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렘 24:2, 개역)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렘 24:3,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라
(렘 24:4,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렘 24:5, 개역)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렘 24:6, 개역)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렘 24:7, 개역)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렘 24:8,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이 버리되
(렘 24:9, 개역)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케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렘 24:10, 개역)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렘 22:24, 새번역)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한다. 여호야김의 아들 유다 왕 ㉢고니야야, 네가 내 오른손에 낀 옥새 가락지라고 하더라도, 내가 너를 거기에서 빼버리겠다. / ㉢일명 '여호야긴'(왕하 24:6;8에서도) 또는 '여고냐'(대상 3:16; 렘 24:1에서도)
(렘 22:28, 새번역) 이 사람 ㉣고니야는 깨져서 버려진 항아리인가? 아무도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 질그릇인가? 어찌하여 그는 자신도 모르는 낯선 땅으로 가족과 함께 쫓겨나서, 멀리 끌려가게 되었는가? / ㉣일명 '여호야긴'(왕하 24:6;8에서도) 또는 '여고냐'(대상 3:16; 렘 24:1에서도)
가룟유다도 독립운동하고 있지만
베드로는 다 이루신 십자가 덕분에 손 탈탈탈 털리는 빈손으로써 고아의 자리
죄인의 자리에서 용서를 보게 되는 겁니다 다 이루셨는데
자기 숙제 곧 절대로 부인하지 않겟다는 둥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장지지겠다는 둥 십자가에 같이 죽겠다는 둥
그 전갈 독으로 자신을 똥으로 포장할떄에 사탕아 라는 욕 먹고
다 손 털고 다 이루신 완료를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그 결핍채은 그 미완료를 언제까지 의문의 반복 할꺼냐 말이죠
그것이 가룟유다가 간 길 아닌니까 저주의 길
언제까지 서울의 봄을 바랄꺼냐 말이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안옵니다 그 의문의 반복 손뗴시고요
이미 다 이룬 7천명 남겨놨다 라는 세상을 이미 전복시킨
다 뒤집어 버린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보라 말이죠
그카이 사도바울이 저 미완료의 의문의 반복의 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보고
저주의 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보고 얼마나 안탑깝겠습니까?
이런 사도처럼 오늘날 교회 목사가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과 저주 그리고 끊어짐을 당함의 속에 놓여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저 직업으로써의 자영업자로싸 돈 외에는 재물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거죠
실제로 제가 느끼고 경험해 본 모든 목사는
무엇을 근심하는 가를 보고 알수 있었습니다
다들 돈 때문에 근심한 모습을 보였지
다 이루심을 못 누리는 것을 보고 근심하는 목사를 본 적이 없어요
그 카이 저주 고통 끊어짐 큰근심을 하는 자를 못 봤어요
그저 축복 축복 거리면서 희죽 희죽 평강이다 평강이다 외치면서
얄팍한 근심인 돈 때문에 징징 거릴뿐
그런 교회는 다른 목사를 섬기는 자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미 다 완료된 것을 누리는 목사이기에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목사는 딴데 신경쓰는 자 곧 보이는 것만 쫓는 자 일 것입니다
당장 쫓아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뭔가 부족하다 라고 채워달라고 하는 자들은
복음에 관심이 없고 눈에 보이는 교회를 우상화 할 뿐이기에
늘 징징거리면서 결핍을 채워달라고 거릴 뿐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여줄 턱이 없으니까 말이죠
악한 무화과 나무 일 뿐입니다
매일 매일 죽음에 넘겨졌던 바울처럼
마치 희생제물이 된 이삭처럼 말이지요
아니 그럼 목사가 죽으면 우두머리가 없으면 안되니까 또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바로 그겁니다
목사를 죽도록 만들지 못하면 도리어 목사가 교인들 피 빨아먹는 흡혈귀에게 등쳐먹힘 당하는 겁니다
우두머리가 없어도
마치 우두머리가 있는냥 예수님의 뒤를 졸졸졸 따라가는
이미 다 완료된 교회를
악마들은 이 지혜가 다 이룬 교회를 대적 송사 정죄하는 겁니다
(잠 30:27, 개역)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2, 개역)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잠 30:24, 개역)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잠 30:25, 개역)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잠 30:26, 개역)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잠 30:27, 개역)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잠 30:28, 개역) 손에 잡힐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잠 6:7, 새번역) 개미는 우두머리도 없고 지휘관도 없고 통치자도 없지만,
(잠 6:7, 개역)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잠 6:8, 개역)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 6:9, 개역)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나
언제든지 해체 되고 다시 모였다가 또 해체되는
다이나믹한 역동적인 종말의 교회를 다 이루신 예수님을 증거치 않는 자는
빨리 내쳐 버리도록 함으로써
(네 맞습니다 잠언 6장의 개미와 30장의 네 가지 피조물은 종말이라는 심판 속의 구원을 보여주는 겁니다 마치 좋은 무화과 나무인 여고냐처럼
마치 마태복음 25장의 종말의 비유 3종 세트처럼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 비유, 일명 열처녀 비유 두 부류로 나누어야지 한데 다 묶어버리면 잘 모르죠 심판을 본 자는 완료를 다 봤기 때문에 손 놓습니다 자신은 뭘 해도 저주 받아 마땅한 자 라고 안 그러면 또 자기의 가능을 보고 자기 숙제를 해 대는 겁니다
그리고 일명 열달란트 비유인데 한데 묶지 말고 악한 종과 충성된 좋은 종 비유
예레미야 24장 두 무화과 나무 비유와 같죠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5장 종말의 비유 3종 세트 마지막 비유인
양과 염소의 비유 누가 봐도 양처럼 보였던 시드기야 가룟유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독립운동하는 촛불시위자 민주주의 사수하는 자
성전 사수하는 자들인 양이 오히려 염소였고
누가 봐도 염소같이 보였던 자들인 세 번 부인한 베드로 포로 잡혀간 여고냐가
도리어 양이였다 라는 팔을 어긋맞게 한 역전현상
결국 있는 자는 더 받고 즉 다 이루심을 누리게 하시고자 십자가의 피에 걸맞는
죄인 중의 괴수인 주께만 범죄한 자가 좋은 무화과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결핍을 채우고자 협심하고 단결하고
성전을 사수하고 독랍운동 해방 운동하고
난 절대로 포로 된 적 없어 라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다 이룬 것을 거부하기에 없는 그 결핍 속에서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그 의문의 반복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하는 그 저주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방치가 저주이다는 겁니다
사생아는 매를 대실 아버지가 없어서 이미 망한 자이고
사랑하는 자에게는 매가 있기 때문에 그 징계라는 사랑으로 이 완료를 누리는 겁니다)
(마 25:28, 개역)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30, 개역)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오로지 눈에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안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만 산 소망으로 두는 증인으로써
그 큰 근심 위에 교회를 세우셨음을 누리는 겁니다
그 그치지 않는 고통 위에 교회를 세우셨음을 누리는 겁니다
이미 다 이룬
그 사도바울의 저주 받음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 사도바울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 위에 교회를 새우셨음을 누리는 겁니다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 위에 세워진 교회야 말로 끊어지지 않는 실상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곧 예수님의 피 흘리힘
곧 저주 받으심이요
대신 매 맞고 미움받고 죽임을 당하심 이라는
중심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다 울리는 꽹과리 똥덩어리 배설물
헛 짓인 지옥 행 뿐입니다
제발 지옥 가지 말라고 대신 매 맞으심인 절대저주 속에 들어가심입니다
그 마음 그 새 영 새 마음을 받은 사도바울이기에
다 내어주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얼마나 충만 했으면 말이지요
그 간절함이
오죽 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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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8 그물에 걸린 큰 악어(애굽)의 눈물(곡소리, 곡성 ; 애가) (겔 32, 1- 4)
2025. 1.26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장)와 슬피 울리라 (아브라함 품의 거지 나사로와 지옥의 부자)
(마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마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가는 할례 받지 못하 자들 (겔 31,15-18)
에스겔 2019 2025. 1. 3. 19:33
21-087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가는 애굽, 할례 받지 못하 자들(중심 없는자) (겔 31,15-18)
〈에스겔 32, 1- 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9쪽, 찬송가 168장 새 180 하나님의 나팔 소리, 찬송가 271장 새 495 익은 곡식 거둘 자가〉
167, 523 애굽의 심판
105 바로와 패망에 대한 애가
새찬송가 180장(통168) 하나님의 나팔 소리
찬미예수 2000 - No.335 전능하신 주께서 다스리네
찬미예수 2000 - No.1179 오 주없인 살 수 없네
새찬송가 246장(통221) 나 가난복지 귀한성에
새찬송가 564장(통299) 예수께서 오실 때에
새찬송가 495장(통271)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찬미예수 2000 - No.355 재대신 화관을
찬미예수 2000 - No.513 내손을 주께 높이
〈찬송가 168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새찬송가 180장〉
〈찬송가 271장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새찬송가 495장〉
〈가스펠; 내손을 주께 높이 No.513 찬미예수 2000〉
내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재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내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사 61:1, 개역)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가스펠; 재대신 화관을 No.355 찬미예수 2000〉
재대신 화관을 내게 슬픔대신 희락을
근심대신 찬송의 옷을 입히사
우리로 여호와의 지으신 의의 나무되어
주께 영광 돌리라
〈가스펠; 오 주없인 살 수 없네 No.1179 찬미예수 2000〉
내 맘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네
주님은 내맘의 구주 되셨네 오 주없인 살 수 없네
오 주없인 살 수 없네 오직 주께만 구원있네
주님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없인 살 수 없네
평화 없는 세상 고통과 싸움뿐 사람들은 무서워떠네
평화의 왕이 다시 올 때까지 죄와 전쟁은 끝이 없네
오 주없인 살 수 없네 오직 주께만 구원있네
주님 없는 세상 평화 없네 오 주없인 살 수 없네
〈가스펠; 전능하신 주께서 다스리네 No.335 찬미예수 2000〉
할렐루야 전능하신 주께서 다스리네
할렐루야 전능하신 주께서 다스리네
모두함께 기뻐해 주님께 모든영광 돌리세
할렐루야 전능하신 주께서 다스리네
(계 19:6, 개역)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 19:7, 개역)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19:8, 개역)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에스겔 32, 1- 4,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9쪽〉
(겔 32:1, 개역) 제십이년 십이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2:2, 개역)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에 대하여 애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열국에서 젊은 사자에 비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 큰 악어라 강에서 뛰어 일어나 발로 물을 요동하여 그 강을 더럽혔도다
(겔 32:3, 개역) 나 주 여호와의 말이여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 오리로다
(겔 32:4, 개역) 내가 너를 뭍에 버리며 들에 던져 공중의 새들로 네 위에 앉게 할 것임이여 온 땅의 짐승으로 너를 먹어 배부르게 하리로다
(겔 32:1, 새번역) 제 십이년 열두째 달 초하루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32: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이집트 왕 바로를 두고 애가를 불러라. 너는 그에게 알려 주어라. '너는 스스로 네가 만방의 사자라고 생각하지만, 너는 나일 강 속에 있는 악어이다. 뾰족한 코로 강물을 흩뿌리고 발로 강물을 휘저으면서 강물을 더럽혔다.
(겔 32:3,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많은 백성을 불러와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물을 던져 너를 잡고, 예인망으로 너를 끌어올려서,
(겔 32:4, 새번역) 땅바닥에 내던지고 들판에 내동댕이치겠다. 공중의 새를 데려다가 네 몸 위에 내려앉게 하며, 온 땅의 들짐승들이 너를 뜯어먹고 배부르게 하겠다.
(마 22: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 22:2, 개역)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22:3, 개역)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마 22:4,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마 22:5, 개역)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마 22:6, 개역)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마 22:7, 개역)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 22:8, 개역)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마 22:9, 개역)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 22:10, 개역)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마 22:11, 개역)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마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5, 개역)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마 22:16, 개역)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마 22:17, 개역)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마 22:18, 개역)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마 22:19, 개역)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마 22:20, 개역)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마 22:21, 개역)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 22:22, 개역)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계 19:1, 개역)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계 19:2, 개역)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계 19:3, 개역)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계 19:4, 개역)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 19:5, 개역)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계 19:6, 개역)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 19:7, 개역)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19:8, 개역)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9, 개역)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10, 개역)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계 19:11, 개역)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 19:12, 개역)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계 19:13, 개역)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계 19:14, 개역)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계 19:15, 개역)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 19:16, 개역)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 19:17, 개역)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계 19:18, 개역)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계 19:19, 개역)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계 19:20, 개역)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 19:21, 개역)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오늘 내용은 애굽에 대한 최후심판입니다
단순히 애굽심판이 아니라
출애굽 당시의 그 애굽이요 그 애굽왕 바로왕입니다
에스겔 당시의 애굽나라 아닙니다
두 언약에 딱 맞는 한 세트로써의 출애굽 당시의 애굽왕 입니다
괜히 애굽왕 바로왕을 900년만에 지옥에서 불러낸 것이 아닙니다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 대표성으로써의 애굽을 불러내신 것은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곧 이 심판은 상대적으로 한 세트가 되는 사랑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지옥에서 불러내신 겁니다
곧 결혼입니다 즉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사랑한다 라는 사랑의 극대화 힙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로마서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다움은 이 사랑이라는 결혼 즉 화목제물이지 이스라엘이 스스로 이스라엘 답게 함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함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하고 오로지 호세아가 고멜을 찾아나서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책임지심이라는 그 죽기까지 복종하신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사랑으로 다 이루심을 완료하시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미완료라는 의문의 반복인 결핍으로써 십자가에 맞서서 속임수를 펼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속임수의 원조가 바로 애굽입니다
이 애굽에 대한 미움을 구체화 함으로써 사랑하기로 작정이 된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또렷히 하시는 겁니다 저런 마귀의 깊이를 거쳐서 즉 십자가에 대한 거부반응 거리끼는 걸림돌 제거하는 그 결핍채우기에
율법의 완성인 원수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원수의 자리 고멜의 자리 처음자리 라는 그 잃어버린 자리에서 첫사랑을
첫맹세 첫언약을 완성하시는 겁니다
그 완성에 동원되는 두 언약의 한세트 됨에 이 애굽은 반드시 동원이 되는 겁니다
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지를 구체화 되지 않으면
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지도 모호해 지는 겁니다
사랑 안에는 흐릿함이 없습니다 또렷하게 그 간극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먼저 심판하셨던 겁니다
애굽과 다를바 없어야
자신의 구원이 당연한 줄 아는 그 우상숭배라는 구원의 탐심이
주의 나라에서는 안 통한다 라는 그 데모 크라시 민주주의는
이 사랑의 독재 앞에서는 안 통하는 겁니다
정 그러면 애굽을 통과 해 보시던가
애굽도 탈출 못 하면서 말이죠
사망의 권세도 못 통과 하면서 무슨 수로 남을 구원하는 사랑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마침 지난 주에 사도바울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언급하면서
사랑을 주님의 사랑의 애달은 마음을 증거하고 있다 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진 적도 없는 사도바울이 무슨 수로 사랑을 펼칠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은혜로 예수님이 대신 죽음을 통과 하셨기에
그 죽음을 따라 죽이시기로 작정된 자가 되어서
죽음으로써 이 십자가의 피용서인 화목제를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정작 골육인 유대인들은 가장 듣기 싫은 거리끼는 걸림돌인 십자가를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옥에 가는 꼴을 못 보겠다 라는 마음이 생명의 밧줄을 던지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더럽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 사람으로써
이사야가 죄인 중의 괴수로써 제가 가겠습니다 라고 죽으러 가듯이 말이지요
모세도 그랬구요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1, 개역)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6:2, 개역)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 6:3, 개역)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4, 개역)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11, 개역)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 6:12, 개역)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래서 지난 주 그 바울의 아픈 마음을 나누고 난 뒤에
가만히 보니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호세아서처럼
또 마지막장 14장에 나타나는 마지막 당부처럼
호세아서 전체가 고멜을 끝까지 책임지라 라고 호세아를 실제상황으로써 보여줬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고멜과 호세아를 통해서 화목제라는 새언약이 떳기에
이 종말성 곧 새마음 새영이라는 사랑의 완료 다 이루심을 보여줬듯이
사도바울이 이 사랑이라는 다 이루심 완료가 옳았다를 외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에스겔 또한 그러하다 라는 겁니다
묵시에서만 즉 다 이루었다 에서만 나타나는 이 두 언약의 한 세트가 됨
결국 성경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혼인 잔치 이거든요
화목제가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게 아니라 (그것은 의문의 반복인 미완료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또력한 밝히 보이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이 죽음 보다 강한 사랑 곧 죽음이라는 사망의 권세
음부의 권세를 들추어내지 않고 대충 대충 고쳐서
완료됨 없이 또 미완료로 찝찝하게 또 의문의 반복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죽음에 대한 심판이 또렷함으로써 혼인 잔치
즉 한 몸이 된
둘로 나누어진 원수 된 관계를 해결 하지 못하게 된 경계선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은 바로 이 원수 된 둘로 나누어진 것을 해결하는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해서 베푼 혼인잔치라는 이 종말성
다 이루심
다 완료됨을 통해서
무엇이 의문의 반복으로써 이 십자가의 사랑이 또렷함에도 불구하고
완료됨에도 불구하고
미완료의 결핍을 채울려고 하듯이 의문의 반복인 이 사기성
누가 꾀는지
바로 그 속임수인 애굽왕의 속성 마저도
사탄의 깊이 마저도
죽음의 깊이 마저도
이 하나님의 깊이 앞에서 드러내시고자
지옥에서 900년 만에 에스겔 당시로
지옥에서 1300년 만에 예수님 당시
오늘날 우리들에게 지옥에서 3300년 만에 또 또렷하게 보여주심으로써
이 사랑의 확정인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써의 피신랑을 위한 혼인잔치를 펼치시는 겁니다
하루 하루가 혼인잔치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구원이 아닙니다 한 몸입니다
그 한 몸 속에서 비로소 의문의 반복인 없는 자아라는 허구 허상이
녹아져서 예수 안에 하나요 몸도 하나요 성령도 곧 마음도 하나도
한 몸됨이라는 다 이루심을 누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이 또렷하다면 매일 매일의 구원이 사랑이 또렷하다면
매일 매일의 죽음 곧 사탄의 깊이
애굽왕 바로 왕의 헛된 우상짓이
날마다 날마다 매일 매일 홰 후패하는지를 왜 심판 받아야 하는 지를
이 심판 속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사는 한 몸을 날로 날로 새로움을 누리도록 하시는 겁니다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3, 개역)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4, 개역)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 4:15, 개역)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7, 개역)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비록 사도바울처럼 저주 받는 한 이 있더라도
비록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이 얼마나 역설입니다
너무 너무 또렷하기에 다 이루어졌기에
나의 잘잘못으로 인해서 끊어지고 사라지고 저주가 된다로 해도
이미 다 이루어졌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다 이루심에 누리고자
오늘 본문도 울어라 라고 하는 겁니다
앞에 에스겔 30장에 이스라엘이 심판을 먼저 받습니다
자녀된 특권입니다
이 징계가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자 맞게 되면
바로 튀어나오는 것이 악마들의 비웃음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니까
너 자신은 왜 구원 못하냐 라고 비아냥 거렸지요
미끼를 제대로 문 겁니다
이 심판을 저들은 해석을 못하는 겁니다
절대저주를 누구 때문에 지는지를
사도성이라는 은사가 왜 바울을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과 저주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 곧 버림받은처럼 보이는 미말에 둔 찌기 구경꺼리
죽이시기로 작정됨 여러번 매 맞고
40에 하나 감하는 매 39번의 매를 다섯 번 사 오 이십 200번 빼기 5 곧 195번
이거는 거의 죽음입니다 저주입니다 심판입니다
이것이 사도라는 은사 라고 사도됨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조선시대와는 곤장이 다르겠지만 100대 맞으면 불구가 될 가능성이 높고요
세종대왕의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곤장 80대 맞고 죽었다 말이죠
얼마전 일본인이 싱가폴에서 성폭행으로 태형인지 곤장인지 20대 맞아서
똑바로 누워 잠 못 잔다고 했듯이 말이죠
https://youtu.be/gauHsnQy-FM
처음 뉴스 나왔을때에 아직도 이런게 있나 싶어서 우와 했는데
지금에 다시 보니 사도바울이 당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뻔데기 앞의 주름이였다 말이죠
바울은 오죽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당한 절대저주 앞에서 바울 자신도 뻔데기일 뿐인
무익한 종일 뿐이라고 할 뿐이다 말이죠
아무튼 오늘본문으로 돌아와서
이 묵시적인 새언약 곧 다윗언약을 다 이루시고자
자신의 신부를 자기자신 본인의 피신랑에 걸맞는 피 신부로 만드시고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드시고자
이스라엘 본인이 자기 스스로 이스라엘 답게 만들려고 하는
그 의문의 반복을 미리 심판하시고
원가지도 아끼지 않고 짤라버리셨듯이
접붙임 받은 가지처럼 그 처음자리에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첫사랑 첫맹세대로 밀어붙이시고자
그 첫맹세때의 애굽을 지옥에서 불러와서
이 혼인잔치라는 묵시성 완료성 마침성 종말성을 펼치심으로써
사랑을 확정
다 이루심으로서 역사를 종식시키시는 겁니다
결국 아무리 혈통적인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이 다 이루심의 완료의 세계를 떠날 마음이 없다 라면
이 땅에서 이스라엘로써 이스라엘 답게 만들고자 한다면
이 지옥에서 불어낸 애굽왕 바로왕을 못 넘어설 뿐만 아니라
본인들 하나 하나가 바로왕이 되어서
사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구축한 이 섹계를 떠날 마음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를 철거하는 이 묵시성에 반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집이 철거대상으로써 너도 어서 떠나야지?
본향을 향해 가야지 라고 해도
정작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도리어 떠날 마음이 없기에
이 마귀를 풀어서 이 땅의 척박함을 못 넘어서도록 만드시는 겁니다
떠날 마음이 없는데 본향이 없으니
이 장착한 세계에서 승부를 걸려고 하니 그물에 걸린 큰 악어 애굽이 아니고 뭡니까
애굽을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었던 자들이 모세 당시의 이스라엘이였듯이 말이죠
바로왕을 강퍅케 해야 비로소 떠날 마음이 주어지는 겁니다
성령의 부으심 없이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성령의 소욕과 육의 소욕의 전쟁입니다
즉 전쟁이 아니면 절대로 떠날 마음이 없도록 되어 있다는 증거죠
그래서 큰 악어 그것도 그물에 걸려든 올무에 건려든 악어 이전에
뭐하고 표현햤냐 라고 하면
젊은 사자 그것도 열국의 젊은 사자 라고
이 땅에서의 영광을 누렸다 라고 합니다
왕 중의 왕이였다 라는 거죠 모든 동물의 왕 아닙니까 라이온 킹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은 가면이였고
모두가 우러러 보고 부러워 하는 영웅은 가짜였던 가면의 탈이였고
실상은 바다의 큰 악어
악마가 광명한 천사의 탈을 쓰다가 벗겨지니까 도리어 모든 짐승들이 갈기 갈기 찢어버리더라 라는 거죠
그카이 이 애굽이 이를 갈면서 슬피 울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이 심판을 미리 앞당겨서 미리 울어라 라고
우는 자가 복 되도다 라고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보는데
애굽처럼 젊은 사자의 영웅됨만 누리다가
구원 선택받은 자 모든 짐승의 왕 됨을 누리다가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내려가는
구원 속에서의 심판을 이 애굽을 보고 꺠달아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젊은 사자의 애가를 보니까 누가 생각납니까>?
우리가 몇 년전에 살펴본
남유다 마지막 네 왕들이 생각나지요
에스겔 19장입니다
(겔 19:1, 현대어) [사자의 비유] 너는 이스라엘 왕들의 죽음을 탄식하는 노래를 이렇게 지어 불러라.
(겔 19:10, 현대어) [포도나무 가지 비유] 슬프다, 너희 왕들아! 너희 어머니는 물가에 서 있는 포도나무와 같았다. 물이 넉넉한 곳에 심어져서 햇가지가 무성하고 많은 열매가 열렸다.
표준새번역
겔 19:1 [애가] "너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불러 줄 애가를 지어라.
(겔 19:5, 개역)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
(겔 19:6, 개역)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 왕래하며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겔 19:7, 개역)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니 그 우는 소리로 인하여 땅과 그 가득한 것이 황무한지라
(겔 19:8, 개역)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겔 19:9, 개역)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서 그 소리로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겔 19:10, 개역) 네 피의 어미는 물 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겔 19:11, 개역)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서 뛰어나서 보이다가
(겔 19:12, 개역)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 그 견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겔 19:13, 개역)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바 되고
(겔 19:14, 개역)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서 그 실과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홀이 될만한 견강한 가지가 없도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자 이렇게 모세가 이스라엘을 광야 광야 3일길 어린양의 죽음 속으로 들어갈려고 할때에
애굽왕 바로왕이 말립니다 아니 이 에덴동산과 같은 애굽을 유지할려면
저 노동력이 필요한데 다 데리고 나가면 무슨 수로 유지를 하냐 말이지요
그래서 말립니다 나는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니까
그리고 나갔다 하면 죽는다 백성들을 다 죽일셈이냐 말이지요
이 심판 속에서의 구언인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고자
광야로 죽음속으로 심판 속으로 저주 속으로 들어간다고?
미친거 아니니 ~~~ 허풍으로 취급하더라 말이죠
그렇게 이스라엘을 심판 속에서 어린양의 죽음을 보게하시고자 함에 있어서
큰 악어 애굽은 비로소 젊은 사자의 가면이 벗겨지고 올무에 걸려들어서
그 본모습이 역사가 철거당함에 있어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겁니다
가만히 놔두어도 이미 철거된 역사라는 가면속에서는
저주 받기로 작정이 된 거죠
그것도 모르고 젊은 사자의 영광을 누렸으니
거기에 이스라엘도 다 부러워 함에 빠쟜다가 빼내심을 당하는데 있어서
심판 속으로 광야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광야에 왜 갔더냐? 선지자를 보러 함이더냐?
옳도다 좋은 옷 입은 자들은 궁궐에나 있다 라고
선지자 라는 묵시를 증거하는 역사를 철거하고
가면을 벗겨버리는 자인 성령받은 자
복음을 증거하는 자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외침으로써
모든 역사라는 가면을 벗겨버리는 자 이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는 가면을 벗겨버리는 묵시적 기능을 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애굽왕 바로왕처럼 가면을 도로 덧 씌우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자 발악하는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는 강도의 소굴이 된 이유는
광야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떠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향을 사모하는게 아니라
믿는척 하면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하겠다 라고 하니까
바울의 사도의 기능은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마음의 고통으로 작동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저주 속으로 더더욱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 저런 육의 소욕인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하겠다 라는 자기 의 쌓기에 열심인 것에
충돌케 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뢰치는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
곧 주님의 공로이지
오로지 화목제 되심이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햐서 독생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이다 말이죠
이것이 애굽왕 바로왕의 자기 의 쌓기와 어린양의 죽음의 한 세트인
두 언약이다 말이죠
하나는 계집종 하갈 다른 하나는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이다 말이죠
자 이렇게 하나님의 집이 먼저 심판 속에 들어감으로써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둘째아들인 이방인이 심판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구원을 얻는데
맏아들처럼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아서 원 가지도 짤리듯이
이방인에게도 원가지처럼 아끼지 않고 짜르듯
이 하목제 라는 광야 광야3일길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구체화 함으로써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음으로써 망하게 하시는 겁니다
다른 의는 없습니다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 둘로 나누어진 원수 관계를 하나로 묶는
막힌 담을 허무는 이 한 몸 이루심이라는 묵시 앞에서
역사는 무너지도록 되어 있음으로써
본향을 이루시는 겁니다
본래 본 남편 되심을 이루시는 겁니다
자 그렇기에 딴 남자 다른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구체화 하시고자
이 바로왕을 지옥에서 불러내심에 있어서
모든 인간이 이 애굽왕 바로왕을 추구하는 모습으로써
심판받아 아땅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탄의 깊이를 거치지 않고서는
애 심판 받아야 하는 지를 모르는
사망의 몸이 아니다 라고만 우길 뿐입니다
사망의 몸 사망의 땅에서 떠날 마음이 없는
이 땅에 만족하는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 보다 이 승이 낫다 라는 식이다 라는 거죠
그건 이 땅에 속한 자 인데
하늘에 속한 자 라고 우기면서도 하늘로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라는 점
향수 병이 없다는 점
결국 이 땅에 믿을 구석이 많은 이유인 겁니다
그래서 이 땅을 애굽왕 바로왕 걍퍅케 하셔서
큰 악어를 풀어서 아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 부르짖음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그 이름을 외치도록 말이지요
결국 이스라엘이란 출애굽 애굽탈출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민족이듯이
이 땅에서 떠나는 탈출하는 자들이 바로 세이스라엘이기에
이 땅에 애굽왕 바로왕 큰 악어를 풀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들로 부터의 탈출이 바로 새이스라엘의 의미이시니까 말이지요
이것이 자기 신부를 신부답게 만드심입니다
음부의 권세 곧 애굽왕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곧 신부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미 망하기로 작정이 된 입장이고
신부 된 교회는 사랑하기로 작정이 된 입장이기에
이 두 언약을 구체화 하시는 겁니다
그 마귀 보란 듯이 펼쳐지는 혼인잔치 곧 종말의 잔치이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도리어 교회가 유대인이 이스라엘이 피 신랑을 따라갈 마음이 없고
도리어 짐승처럼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탈려고 하는 음녀 짓을 하는
강도의 소굴 곧 빼앗고 약탈하는 온상이 되어버렸다 말이지여
심판 속에서 나온 교회가 아니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닌 겁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이 아니라
보이는 소망을 쫓은 저 유대인 사탄의 회를 따라하더라 말이죠
왜냐하면 자신의 신체와 가치를 중심으로 구축할려는 이 땅의 나를 위한 예수가 아니면
언제든지 저항하고 거부할려는 저 애굽왕과 다를바 없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따라오는 이유는
자기 배를 위하여 먹고 배불러서 그런 자아를 구축하고 더더욱 견고하게 해 주는데
도움이 되기에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할때에
정작 예수님은 바로 그런 바로왕의 사고방식에서 떠나서
본향을 향해서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떠날 마음이 없다 라는 거죠
부자처럼 창고를 늘리듯이 재산도 자신의 가치도 점점 늘려서
오늘밤 내 영혼아 편히 쉬자 라고 할때에
떠날 마음이 없는 자에게 무게가 모자르다 라고
겨우 남 7번 용서로 쉬다니?
7에 70번 용서하시는 분도 안쉬시고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고
여전히 계속해서 용서하시러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
뭐 오늘 밤 편히 쉬자 ~~~~~~~~ 소는 누가 키우냐 말이죠
잃어버린 자는 누가 찾냐 말이죠
예수님의 기적 조차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니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는 겁니다 곧 우상숭배죠
열명의 문둥병자 중에 아홉은 유대인 요즘으로 치면 교회다니는 사람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마리아인 더러운 이방인 곧 세상사람 심지어 세리 강도 창녀이다 말이지요
문둥병자 10명을 고쳐도 9명은 그 기적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이용해서
다시 교회로 갑니다 그 동안의 결핍을 다시 채울려고 말이지요
그러나 나머지 잉여 한 명은 예수님에게로 갑니다
같이 떠날 마음이 생긴 겁니다 본향의 본래남편에게로 말이죠
나머지 아홉은 바알신을 애굽의 10가지 신을 다시 세워서 복을 빌러 교회가듯이 말이지요
이것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곧 이 땅을 떠날마음이 없도록 만드는 기적을 찾는 겁니다
이 세상은 심판이 펼쳐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애가 슬픔의 노래로 채워져야 함을 보는 겁니다
예수님을 붙잡고 이 땅에서 잘 살고 잘 믿고 잘잘법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떠날 마음을 부은 것은 믿음의 주 덕분 입니다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습니다
즉 요나처럼 물에 빠뜨려
이 사망의 권세에 직면 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 애굽왕을 어떻게 멸망시키시는지를 보여주시고자
그 포로딤에서 빼내시는 자유 구원을 보여주시고자
애굽왕에게 포로 되게 하시는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
네 맞습니다 큰 악어 애굽의 악어 입속 캄캄한 깊은 어두운 바다 깊은 그 스올
그 지옥 그 사망 속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겁니다
비로소 본래의 남편을 통해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되는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왜? 눈물을 씻겨주시는 남편이 생겼고
수치를 가려주는 절대수치를 당하신 분이 생겼기에
눈물 대신 희락을
재 댜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입혀주시는 겁니다
그 심판 속에서 큰 악어 입속에서 부르짖게 만드심으로써
그 죽음 속에 뛰어드신 더 심각한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이 애굽에서 탈출
이 세상에서 탈출
슬픔 애신 희락으로 슬픔 탈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움을 당하는 탈출
떠나는
본향을 사모케 함으로써
떠나는 마음을 부어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 없어도
난 여호와 구원의 이름으로 기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이 땅이 좋은 자는 애굽 뿐입니다
애굽이 전부이기에 애굽에서 승패를 봐야겠지요
이 땅이 싫고 주님의 나라가 좋은 자는
애굽을 심판하신 그 여호와의 이름만 듣고도
간담이 40년 동안 녹아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심판 속에서 구원을 이루는 이 주의 나라를 사모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던 겁니다
어서 떠나고픈 마음 뿐인
본향을 사모할 뿐입니다
보이는 것은 다 허상이기에
세상이 백날 계엄이 터지든 말든
멧돼지를 잡든 말든
하나도 의미 없는
어차피 역사는 찢겨져서 철거되어야할 대상으로써의
묵시가 혼인잔치 종말잔치가 벌어지기는 소망할 뿐입니다
어서 이 의문의 반복을 찢어달라고 역사를 찢어달라고 부르짖도록 만드시고자
애굽왕 큰 악어를 풀어서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이 애굽에게 올인 몰빵함에 있어서
어서 어서 자기들의 한계치에 부딧쳐서 이 땅의 한계를 보도록 말이지요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에서 어서 어서 큰 악어로 한 군데로 다 몰리도록 하는
그래서 어서 큰 악어 리바이던이 하늘에 대들도록 함으로써
어차피 지는 전쟁 빨리 끝내도록
이미 다 이룬 완성을 되도 않는 완악함으로 이미 망한 것을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모습을 나타낼 수밖에 없기에
역사는 빨리 모든 힘을 하나로 결집해서
하늘에 전쟁을 펼쳐야
역사는 찢어지는 겁니다
이미 찢어졌지만 말이지요
마지악 여부스 땅이 발악을 함으로써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으로써
시온이 세상의 중심인 시온에 성전이 세워짐으로써 온천하는 잠잠케 모든 입을 다물게 하시는 겁니다
모든 무릎이 꿇어서 경배하고
모든 입술이 찬양케 되기에 말이죠
이미 그 시온에서 율법이 나옴으로써 모든 나라는 심판 받고
예루살렘이라는 심판의 자리에사 다시 싸매어 주시는 말씀이 옴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미 예수님이 시온에서 다 이루셨기에
그 증상을 우리는 누리는 겁니다
다 이루심을 말이지요
이젠 더 이상 결핍을 채울 필요가 없기에
저런 애굽의 멸망을 우리는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때려죽어도 애굽을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는 우리에게
강제로 빼내셔서
광야에서 꼬셔서 개유하고
권고하여서
결혼 하시고자
애굽에 여전히 마음을 두고 있기에
그 애굽을 다 멸망 시키심으로써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갈수 없도록
전남편 바알과 같은 남정네들을 우상들을 다 모조리 죽이시는 겁니다
그러니 슬픔으로 가득하지요
그 슬픔의 노래가 퍼질때에
옆에서는 약올리듯이 신나는 기쁨의 혼인잔치를 벌리시는 겁니다
정작 잔칫집이 초상집이 되고
초상집인 광야에서 혼인잔치를 벌리시는 겁니다
저들 애굽과 같이 그물에 걸려 멸망하든지
아니면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 같이
자유를 누리는 탈출 매일 매일 날로 날로 새로움을 누리든지
이 두 언약으로
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와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와
어차피 꺽이움을 당하는 팔 애굽의 팔인지
아니면 다시 싸매어 주시는 여호와의 팔인지
누구에게 어떤 팔이 나타나는지를
우리는 그 증상물로써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애굽을 괴롭히는 자 모세 또 너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 비유로 말하는 자 또 너냐?
이 이 땅의 심판을 이 세상의 심판을 외치는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 곧 은혜 입은 자 만이
떠나는 마음으로 가득찬 즐거움을 누리는 자입니다
본향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얼마나 신나는지
군 제대 할 때 그 지긋 지긋한 군대에사
다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빨리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에 가득차 있듯이
보고픈 분을 마음 껏 보고픈 마음에 그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겠느냐 말이죠
그카이
이 땅을 떠나는 마음 보다 즐거움이 없는 겁니다
드디어 자유
눈 먼 자에게 보게 함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억눌린 자에게 놓여짐을
이 자유를 누리도록 하시는 겁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요 8:32, 개역)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 61:1, 개역)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2, 개역)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3, 개역)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 11:5, 공동)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 ㉠이사 61:1.
(눅 4:18, 공동)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 ㉠칠십인역 이사 61:1-2(58:6 참조).
(벧전 2:9, 공동)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 ㉠신명 7:6, 10:15; 이사 43:20. ㉡출애 19:5-6; 이사 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