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022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주의 날과 애굽 왕의 악한 날) (롬 9,13-18)

김 대식 2025. 3. 1. 14:08

22-054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애굽 바로 왕의 악한 날과 주의 날) (롬 9,13-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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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4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애굽 바로 왕의 악한 날과 주의 날) (롬 9,13-18)
2025. 3. 2.

(잠 16:4, 개역)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출 14:13, 개역)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4,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8, 개역)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아브라함 씨 아닌 오직 이삭 씨만이 약속의 자녀(큰자가 어린자를 섬김) (롬 9, 6-13)
로마서 2022 2025. 2. 7. 18:56
22-053 아브라함 씨 아닌 오직 이삭 씨만이 약속의 자녀(큰자가 어린자를 섬김) (롬 9, 6-13)

〈롬 9,13-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가스펠; 베드로의 고백, 찬송가 359장 새 325 예수가 함께 계시니〉

〈찬송가 006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새찬송가 002장〉

1.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신께 
   영세 무궁하기까지 영광을 돌리세 영광을 돌리세.


〈가스펠; 베드로의 고백, 김석균 작사 작곡〉

1. 사랑하는 주님 내게 다가와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네가 나를 버리리라 하실 때 왜 그리 섭섭하던지
   주님과 함께 죽을지라도 배반하지는 않겠다 했던
   믿음 없는 나의 헛된 맹세 주님 마음 울렸었네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부인하고 돌아서서 한없이 울었었네
   내가 주를 잊고 방황했듯 주는 나를 잃고 슬퍼했네
   하지만 나의 눈물보다 주님의 눈물 뜨거웠네

2. 멀리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 나의 영혼 잠 깨웠네
   잊어버렸던 지난 슬픈 고백 왜 그리 부끄러운지
   이 세상 어디 숨을 곳 있나 
   닭 울음소리 들릴 때마다
   사랑하는 나의 주님 모습 스치고 또 스쳐가네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부인하고 돌아서서 한없이 울었었네
   주님오실 기약 어찌 잊고 맡긴 사명 모두 잊었던가
   지금도 새벽 닭 울 때면 참회의 눈물로 회개하네

(추가 ; 말만 회개한다고 하고서는 그 회개의 내용이 없음 그래서 추가함 윗가사는 회개가 아니라 반성임 성령의 탄식이 아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기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님께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시네 모든 죄 사하셨네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오 오 자유 라는 곡 아니면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 같이 라는 곳을 합치면 됨 칙칙한 노래(강퍅한 미완료) 물리치고 신나는(빨래 끝~~~) 곡으로 ㅋㅋㅋㅋ


〈찬송가 359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새찬송가 325장〉

1.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2. 이 세상사는 동안에 주 이름 증거 하면서 
   무한한 복락 주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3. 이 세상 친구 없어도 예수는 나의 친구니 
   불의한 일을 버리고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4. 주께서 심판하실 때 잘 했다 칭찬하리니 
   이러한 상급 받도록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롬 9,13-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2, 새번역) 또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셨습니다. / ㉦창 25:23
(롬 9:13, 새번역)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 ㉧말 1:2; 3
(롬 9:14,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롬 9:15, 새번역)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 하셨습니다. / ㉨출 33:19
(롬 9:16, 새번역)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롬 9:17, 새번역) 그래서 성경에 바로를 두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너를 세웠다.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 ㉩출 9:16(칠십인역)
(롬 9:18, 새번역)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잠 16:4, 개역)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 16:4, 새번역)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니, 악인은 재앙의 날에 쓰일 것이다.
(잠 16:4, 공동) 야훼께서는 모든 것을 각각 쓰임에 맞게 만드셨으니 불의한 사람은 재앙이 내리는 날에 재앙받을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다.
(잠 16:4, 쉬운)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자기 목적대로 지으셨나니, 악인이 받을 재앙도 만드셨다.
(잠 16:4, 킹흠정) 주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드셨나니 참으로 사악한 자도 악한 날을 위하여 만드셨느니라.
(잠 16:4, 한글킹) 주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지으셨으니, 정녕, 악한 날을 위하여 지으신 악인까지라.
(잠 16:4, 현대인)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자기 목적에 맞도록 만드셨으므로 악인들도 재앙의 날을 위해 존재한다.
(잠 16:4, 현대어) 여호와께서 그렇게 지어내셨으니,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쓸데가 있는 법이다. 못된 짓만 벌이면서 살아가는 자들도 재앙이 내리는 날 살아온 대로 벌하시려고 그냥 놔두셨다.
(잠 16:4, 가톨릭)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 목적대로 만드셨으니 악인까지도 재앙의 날을 위하여 만드셨다.

(출 14:10, 개역) 바로가 가까워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 14:11, 개역)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출 14:12, 개역)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4:13, 개역)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4,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5,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출 14:16, 개역)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 14:17, 개역)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출 14:18, 개역)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흔히 믿음을 이야기 할때에 역시나 우리 버릇대로
좋은 것만 골라서 믿고파 하는 확증편향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서로 서로를 속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들은 다 속여도 난 안 속일 거야 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상호인정 상호기대 상호기만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란 사기입니다 마약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요즘 마약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 마약 보다 더 무서운게 종교입니다
그래서 난 교회 안 가잖아 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무종교도 자기를 사랑하는 그 종교성 지독한 자기애는 말릴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죽을때까지 자기에게 중독되어 살뿐입니다 그 지옥의 몸이 뭐그리 대단하다고 평생중독되는지 빠져나올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무신론 무종교자들 또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역시나 마약중독처럼 더 추구하도록 자기중독 되어 있습니다 없는 자아에 말아죠 우상인 자아에 말이죠

이 자본을 만든 인간이 신이 된 입장에서 
동시에 그 자본을 신으로 추앙하면서 졸지에 빠져나올수 없는 중독이 된
뫼비우스 띠처럼 그 의문의 반복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법이요 질서요 신이 된 거죠

자본을 감싸는 그 포장을 민주주의 로 해서 돈을 보호하던가
아니면 공산주의나 독재로 포장지를 씌워서 돈을 숭배하던가 할 뿐이지
역시나 종교든 국가든 이념 사상이든 모든 인간은 결국은 돈을 사수하는데 동원이 되는 소모품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노예를 졸지에 최고의 신으로 숭배한 꼴이 된 겁니다
인간 본인들이 피조물이였는데 졸지에 신이 되어버려서자기 눈을 자기 스스로 찌르게 된 겁니다
그 불안한 마음이 우상숭배로 나타나는 거죠
정작 사자 앞애서는 비둘기처럼 두렵고 떨리지 않고
우상 앞에서 두려워 떨고
하나님의 저주인 심판 앞에서는 마음껏 못 박으라 외치면서
하하 하하 비웃고 비아냥 거리고 마음껏 발로 차고 침뱉고 뺨때렸듯이 멀이죠
주객이 전도된 입장인 것을 까발리는 것이 거리끼는 걸림돌인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겸손 만이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심 만이
모든 인간의 교만을 꺽는 겁니다
자칭 하나님께 대한 열심인 자기 의를 쌓는 것을 구멍 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의인 십자가입니다
십지가는 그 어떤 인간과 타협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조건 뚫어버려서 죄인만을 찾습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강퍅한 지옥의 몸이구나 라고 우는 자를 말이죠

아니 돈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돈을 사수하고자 거꾸로 인간이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돈의 숙주가 우상의 숙주가 마귀의 죄악의 숙주일 뿐인 감염된 인간에게
그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상처내는 그 수술칼만이 빵구멍 내는 그 여호와의 뿔인 십자가만이
유일하게 치료하는 뿔입니다

이 자본주의가 모든 종교 모든 국가 모든 이념을 초월해서 믿음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믿는 것을 돈입니다 돈 뿐입니다
오로지 돈 만이 인간의 마음에 가득차 있기에
주님의 마음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깨뜨려야 합니다 마음판을 확 찢어버려서 새로 창조해야 합니다
돈 에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곧 본인이 무소불의의 권력을 쥔 돈이 되고픈 겁니다
인간 자체가 돈 이 된 겁니다 우상이 하나님이 되었기에
답이 없습니다 무조건 멸망 심판 저주만이 살 길입니다

그것이 함축된 자가 바로 왕이다 라고 했지요
신의 대리자 신이 세운 구원자
그러나 그 기대치는 결국 노예로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사망의 종 노릇
왕의 노예일 뿐입니다
오늘날 목사 보세요 자기 노예가 늘어났다고
빨대 꽂아 피 빨아 먹을수 있는 노예들이 늘어났다고 희죽 희죽 거리고 있습니다
노후 보장을 해준 것에 대해서 마치 자기잘남인냥 자랑하더라 말이죠
이 봐라 교회 잘 운영하니까 노후보장까지 해 주잖아
부럽제 대식아???

속으로 말이 성화론이지 마귀새끼 구나 에라이 소경아 니 혼자 지옥가지
지도 안하고 남고 못가도록 중간에 삥뜯고 가로막는구나

이것이 돈을 더 모으지 못해서 안달이 난 믿음인 복수심입니다
그 놈의 노후보장이 돈이 아니고 뭡니까
그래놓고 헌금 강조 안하는 교회라고 엉뚱한 자랑이 퍼지고 있으니
복음 자랑은 언제 나오는지 원 ~~~~~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의 자랑
분명 하나님의 의인데 의가 아닌 불의처럼 보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없는 불의인 듯 불의아닌 불의 같은
이 십자가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복종이기에
오로지 예수님만이 이루시는 그래서 불의라고
왜 우리는 못 하냐 라고 따지는 힐문하는
이런 완악함까지 악하고 게으름까지 까발리는
그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는 저주요 자주인지 그 3분의 2 마저도 비로소 먹는
이 입에는 다나 배에는 쓴 배가 빵구멍 날 수밖에 없는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 까지 먹어야 한다 라는 거죠

보세요 악한 날에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악한 강퍅함 조차도 너끈히 이기는
주의 날이 먼저 떳기에 말이죠
물론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일이 먼저 떳기에
사람의 일 곧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구나 라는
소리까지 그 쓰디쓴 소리까지 욕 먹어 마땅한 자리 그 처음자리에 놓여지는
왜 나는 강퍅한 자인지 왜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지
바리새인 보다 더한 죄인 중의 괴수인지를 

주의 은혜의 날이 먼저 떳기에
주의 오른 팔이 먼저 떳기에

우리는 그 은혜에 상대적인 완악한 강퍅함이 우리의 악함이
이 의사로부터 까발려져서 지옥의 몸으로 강퍅한 몸으로 들추어져야
그렇게 청진기를 대시는 의사로부터 진단받아야 고치시는
이 주의 팔이 주의 뿔이 고맙게 여기는 겁니다

만약 이 강퍅함이 들추어지지 않으면
또 자기 잘났다 라고 아무도 이 완악함을 해결해 줄 자 없는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고 그게 더 지옥갈 짓 밖에 안되는 거죠

왜 이 미움의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그 믿음의 내용을 통해서 자본이 신으로 자리 잡은 이유이듯이
돈처럼 나 라는 자아도 신의 자리에 앉아버린
그 병을 그 죄악을 그 내 속의 애굽 왕의 강퍅함을 지적받아야 하는 겁니다
고때만 십자가에 못 박으라 입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치는 겁니까
그러니 이 얼마나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 입니까
그래놓고 무슨 염치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고 외치냐 말이죠
아무리 가스펠 당신은 사랑받기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 부르고
상대방을 향해서 노래 불러 줘도
사실은 당신은 미움받기로 태어난 사람이다 라고 노래부르는 것과 같아요
사랑이 없는데 사랑 주는 척 노래 부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미움을 퍼 붓고 있는 겁니까
차라리 솔직하게 우리는 날때부터 예수님을 미워하기로 태어난 자 이다 라고
울어야 한다 라고 삐딱한 노래를 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CCM 순위로 올라가기는커녕 수거대상
자폭 쪼끼로 철거대상이 되는 거죠 앨범 다 수거하고
저 아무도 모르는 섬에 가두어서 식품에 독을 타서 제거하도록
이런 무당들의 계획 수첩이 우리가 예수님을 죽이고자
날 때부터 적어왔던 수첩이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믿음인 돈을 더 많이 가지느냐 이것이 믿음 좋은 부자이고
돈을 적게 가지느냐 이것이 믿음이 없는 가난한 자 라는
인간의 믿음의 내용에

죽어 마땅한 날 때부터 무당으로 태어난 자신을 도리어 살리고자
마땅히 살아야 할 의인 되신 예수님을 죽이는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무당의 모습 오로지 자기를 살리고자 말이죠
500명 수거 대상 그것으로 안 끝나죠 의문의 반복입니다
5천명 5만명 5억명 5조명 5경명 5해명 절대로 만족함이 없는
바닥 없는 지옥구멍이니까 말이죠
오로지 자기 하나 살려고 모든 것을 다 죽야도 만족함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받기로 작정됨과 반대로 
그 믿음의 내용물을 미움받기로 작정됨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인 미움인 십자가로 채우시는 겁니다
인간의 사랑이냐(선이냐) 미움이냐(악이냐) 라는 인간 숙제의 빈칸 채우기가 아닌

예수님의 숙제로만 답을 쓰시는데 있어서 우리와 반대로
축복산에 가시는게 아니라 저주산 미움박기로 작정이 된 에발산 저주산에 가시는 겁니다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왜 우리는 안되고 왜 우리는 미움받기러 작정이 되었고
그 미움을 왜 대신 받으시는가 라는 내용으로
저런 무당들의 수첩을 빵구멍 뚫으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돈 권력에 대한 믿음 곧 인간 자기 숙제에 대한 믿음
결국 무당의 모습인거죠 걍퍅함

모세가 왜 완악한 수건을 안 벗을려고 했습니까
그것 벗었다가는 돌삐 맞아 죽거든요
모세 본인도 이혼증서 안 써주는 자 모세 본인도 돌삐 쳐 죽일려고 하는 마음은 맹 마찬가지이니

행함 곧 자기 숙제로 빈캄 채우기는 그 의문의 반복은
누위서 침 뱉는 속임수 일 뿐입니다
어딜 십자가 앞에서 속임수 인간의 꾀를 무당의 자기는 안 죽이고 의인을 죽이는
그 되도 않는 저주를 펼치느냐 누가 꾀냐 말이죠

돈 없어봐 자식이든 부모이든 친구이든 사회이든 사회 악인 미움받는 자이고
에라이 죽어라 자식이든 부모든 코로나 걸려 왜 안 죽느냐 라는 식입니다

돈이 있어봐 어디를 가든 사랑 받지
그렇기에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 일을 하느냐 인생역전을 이루느냐 로
이 자유경쟁체제에서의 현실이다 라고 말이죠
소유의 넉넉함으로 생명이다 라고 우기는데
그거 생명 아닙니다
뭘 해도 저주요 걍퍅함 뿐이데 강퍅하니까 생명이라고 우기는 식인 거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즉 제대로 사랑받기로 작정됨을 알려면
제대로 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거 우리가 앞에서 야곱의 장자권 빼앗는 모습을 통해서
야곱은 비로소 제대로 미움받아야 할 죄인임을 아는
아니 알려주시는 이 요셉의 미움받음을 통해서 비로소 구멍 뚫히는 겁니다
요셉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육으로 난 자일 뿐입니다
약속으로 난 자 만이 이 제대로 미움받는 이 십자가의 다 이루셨다 라는 언약을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입니다

보고 싶다고 아무나 고개 돌려 볼수 있는게 아닙니다
혹시나 듣고 깨달을까봐 못 보도록 고개 못 돌리도록 막는 주님의 손까지 다 봐야 합니다
혹시나 고침을 받을까봐 걱정 하셨던 그 예수님의 마음
니 숙제 아니고 이놈아 내 숙제이다 제발 율법 어겨라 너는 강퍅한 놈으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놈이야
그 미움맏기로 작정이 된 자 임을 알아야 
내 쪽에서 마련할 수 없는 이 화목제의 고마움을 비로소 보여주시는
이 주님 쪽에서의 숙제인 화목제로 기뻐하는 겁니다
꺽으신 뼈로만 새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가르치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그 새노래를 말이죠

결국 믿음의 내용인 사랑과 미움을 
태어나기도 전에 라고 규정해 버렸다 라는 것 자체도
우리들에게 싫어버린 바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취급받은 내 손에 죽는 자만이
이룰 숙제인데 언 놈 치고 이 숙제를 예수님에게 맡기는 자 있겠느냐 말이죠

그것도 자본에 대한 믿음과 똑같이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데
내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는 그 출생의 비밀을 이룰수 있다는데
언 놈이 이 숙제를 포기 할자 있겠느냐 말이죠
국가는 개인 회생제도를 도입해서라도 제발 너의 숙제를 포기 하지 말아라 라고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고 (지성이면 감천이다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
이런 사상이 한강의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라는 사상에 깔려 있는 겁니다
(원래 살아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죽음 같지도 않을 것을 죽음이라고 우기고
그 엉터리 죽음에서 나온 가짜 생명을 생명이라고 우긴다는 자체가
이미 죽은 세상의 시선에서 나오는 겁니자 이것이 다음주의 할례없는 자
곧 부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절의 빈공백을 도리어 빈칸에 답을 써넣을려고
가짜 죽음을 빈칸에 채워넣어서 가짜생명을 도출해 내는 방식입니다 반작용 곧 한풀이인 거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고 선악은 주님만 아셔야 하는데 지가 지 멋대로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다 라고 지가 지 멋대로 이것은 밝음이고 저것은 어두움이다 라고 우기듯이
죽음도 생명도 모르면서 이걱은 생명 저것은 죽음이라고 규정한다는 자체가
바로 할례없는 자들 단절이 없는 자들 제대로 된 죽음이 없는 자들의
빈칸 채우기라는 미완료를 추구하는 자 들입니다
있는 자 곧 완료는 더 받고 여기서 완료란 외부에서 주어진 생명입니다
도리어 나는 죽음 뿐인 화로다 사망의 몸이다 라고 해야할 판국입니다
없는 자 곧 미완료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되는
나중 된 자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완료를 누리고
먼저 된 자는 빈칸 채우기라는 의문의 반복 완악한 수건 안 벗는
바로 악한 날을 채우는 강퍅함 복수심 완악함이라는 딱딱함을 펼치는 겁니다
부드러운 마음인 새 영이라는 그리스도의 할례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딱딱한 빈칸에 답을 적고자 미완료를 반복할 뿐입니다 이미 다 이루어졌는데 아직 덜 이루어 졌다고 행함(미완료)를 추구하고
그 행함을 안 알아준다 라고 그 행함에 따른 보상을 안 해준다고 징징 거립니다
완료는 그저 나누어주기 바쁜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사적인 소원인 보이는 소망이 없기에
부드러운 그리스도의 마음을 나누기 바빠요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 용서 그 모욕적인 7에 70번의 용서를 퍼 나르기 바쁜 겁니다
댓글 부대처럼 도배하기 바빠요)
(이 한강에 대한 평을 이번 월말 김어준에서 다루었는데 
https://youtu.be/eY8X2CS4dwk전체내용 공유받고프니 제 메일로 공유해주세요 비밀로 댓글달아주세요)

요즘은 아버지 재력으로도 안돼
할아버지의 재력에 달려있을 정도로
아버지의 성공으로는 이 자본주의에서는 버티기 힘들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재력을 봐야한다 라고 말이죠
그게 트럼프가 추구하는 사상인 거죠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를 받아주니까 경제가 파괴되는 겁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서 전 세계 정치가 극우로 돌아서는 거죠 악한데 착한 척 하고 있으니 웃끼는 거죠
바보 노무현 되었다가는 나라 망한다 말이죠
젊은 남성이 전세계적으로 꼰대가 되는 이유도 다 돈 때문이였지요
아무리 쥐박이가 젊은 애들 때문에 뽑혔던 그 과거의 실수를 거쳐도
어차피 또 반복하는 겁니다

인간은 모든 날은 악한 날이 되도록 몰아가십니다

그래서 빈칸 채우겠다 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자기 숙제에 미쳐있기에
결국은 사랑도 미움도 내 하기 나름이다 라고
자기 하기에 따라 사랑 받고
자기 하기에 따라 미움 받을 수 있다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런데 이게 놀랍게도 제가 교회를 그 동안 살펴보니까 다 이런 식입니다
세상의 믿음 기준이나 교회의 믿음 기준이나 역시나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는 식이다는 것에
똑같은 주장이니 교회가 다 사기치는 강도의 소굴이다는 거죠
특히 성화론 주장하는 교회는 더 심해요 개혁주의 이런 놈들 말이죠

그렇게 되면 믿음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 되는 이유가 오늘 본문에

원함으로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니다 라고 했는데
목사 놈 치고 이 본문을 수긍하는 놈들을 본적이 없어요
다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고 미움받는 짓 하지 말고
사랑받는 짓을 하라는 겁니다
이게 성화론인거죠

곧 행함만 외치는 놈들 뿐이지 이게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 신학 아닙니까
믿음을 외치는 목사놈들을 본 적이 없어요
아니 외칠수가 없어요
육으로 난 자가 무슨 수로 약속으로 난 믿음을 외칠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외칠수가 없기에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운
사람들이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 삼은 가짜 예수를 채워야만
육체를 채우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은 없고 믿음을 흉내내기는 해야하겠고
그 믿음을 종교성이라는 처세술을 빈칸에 채우는 겁니다
웃음치료사 레크레이션을 교회에서 하듯이
거기서 나오는 말 마음이 밝을려면 주변을 밝게 해야 한다
어둡게 지내면 마음도 어둡다 라는 이따위 처세술이 교회에서 증거되고 있으니 말이죠
이런 육으로 난 것이 약속을 따라 난 믿음을 죽여버린 사건이 십자가 사건 아니냐 말이죠

결국 믿음은 이 십자가의 사건을 무한반복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반대로 행함은 십자가 고만 캐라 마이무따 아이가 라고 징징거립니다

그 믿음의 내용에
사랑받는 것만 챙길려고 하지 3분의 1 말이죠
미움받는 것도 3분의 2도 다 받아 먹어야 하는데
그 내용을 말하는 놈이 없어요
그래서 구약의 선지서에 가면 반대로 다 증거하니까
들통날까봐 아예 선지서를 묵시서를 다루지를 않을려고 해요
했다가는 교인들에게 미움받아 쫓겨날수가 있으니까 말이죠

그 미운받는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다루는데 있어서
벌써 인간들의 반응은 

하나님이 불의하다 불공평 부조리 하다 라는 반응이다 라는 겁니다

아니 날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기로 작정됨과
미움 받기로 작정됨 이라는 이 편파 부조리가 왜 생겨야 하느냐 라는 겁니다

출발선이 이미 틀리면 그거 달리기 경주 해 봤자 소용없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카는 소리 아닙니까
달음발직 하여도 소용없고 원함도 소용이 없다고

여기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종교꾼들의 방책이
이 불공정한 불의에
하나님의 불의에 마음을 어둡게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마음을 밝게 할려면 주변을 밝게 하면 되듯이
맞네 미움을 받으면 그렇겠구나
그럼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되면 되겠구나 라고
괜히 답도 없는 그런 싸움 할 빠에
그냥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러 살면 간단하다 말이죠

목사도 교회 나오는 자들에게 모두 이런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인정해 주면
말라꼬 이런 쓸데없는 힐문과 반발을 할 필요성이 뭐가 있겠느냐 말이죠
모조리 다
경상도 마카다 커피처럼
마카다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면 되는 걸 말라꼬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느냐 말이죠

목사 본인이 나서서 행동해 버리면 교인 중에 힐문할 자가 아무도 없게 되는 겁니다
괜히 힐문해 버리면 왕따 당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을
우리가 먹지 못하면
삼분의 1만 딸랑 먹는다고 해서
모든 목사가 구라를 치면서 천국간다고 해도

성령께서는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그거 짐승의 수를 셀줄 모르는 총명한 영을 받은 자가 아닌 거죠

바로 저런 목사들이 짐승의 짓을 하는 줄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겨우 말 안 듣는 교인 겁줄려고 계시록을 운운할 뿐이지
이 계시록이 얼마나 사랑의 하이라이트 곧 결혼식을 보여주는데 말이죠
그럼 계시록에 해당되는 구약의 선지서 곧 묵시서는
이 사랑의 하이라이트를 모조리 다 땅에 파묻어 감추는 식과 같다 말이죠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 당신은 무서운 자니까
나는 안 잃어버릴려며는 그냥 땅에 파 묻어서 원금 그대로 줄란다
안 잃어버리고 남긴 것도 없지만 잃어버린 것도 없이 말이죠

놀랍게도 원금을 까먹고 잃어버린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하고 게으른 종을 새롭게 탄생 시키십니다
아니 분명 원금을 깍아먹은 것이 없는데 말이죠

빈칸 없이 그대로 채웠다 말이죠
(잉여란 저절로 남기는 돈이 돈을 낳는 식이듯이 잉여라는 선물이 선물을 남기는데
이것이 사적인 욕심 곧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되니까 안남기고 안까먹고 원금 그대로
빈캄 채우기라는 미완료를 게으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게으름이란 느려터진것인데 여기서 게으름은 악함의 이중반복인
악하고 악하다 라는 겁니다 미완료의 공명 짝꿍인 미완료의 미완료 곧 미완료의 이중반족인거죠 오히려 악인은 피 흘리는게 초스피드 빨라요
정작 주님의 자녀는 반대로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느려 터집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대로 표현하실까요?
상대적인 두 언약의 한세트 구성 떄문입니다
그 느려터진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롭다 똑똑하다 라는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 주무시지도 쉬지도 않고 일하시는 부지런한 성질 급한 주님이시다는 겁니다
한국사람의 빨리 빨리 문화도 이 주님의 급히 속히 이루어지리라는 못따라 옵니다
뻔데기 앞에 주름일 뿐입니다
이에 상대적인 악한 날 곧 강퍅한 바로 왕은 아무리 부지런히 뒷쫓아와서
이스라엘을 죽일려고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고 애굽군사를 몰고 말과 병거를 부지런히 쫓아와도 느려 느려 느리다니깐 느려터지는 겁니다 여호와의 불과 구름을 통과를 못해요
어떻게든 미완료를 채울려고 하고 어떻게든 빈칸을 채워넣을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채워넣을수 없기에 게으르다 라고 아예 단절시켜버리는 겁니다
마치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것처럼
태어나기도 전에 게으리기로 작정이 된
악하기로 작정읻 된 것처럼 그들은 무당들처럼 죽은 자신과 죽은 자들을 살리고자 지옥에 갈자를 말이죠 산 자를 죽이기에 바쁜 피 흘리기에 억수로 바쁩니다
노상원 무당의 500명 명단에 어준이 천명 만명이 들어가도 그거 죽은거 아닙니다
이미 죽은 자인데 죽었다 라고 할 수 없지요 살아있었던 적이 없는데
산 성도만이 그 수첩에 들어가 죽임을 당하는 그 피 흘리는데 억수로 부지런해요
밤 잠도 안 자고 말이죠 인연 끊겠다 단절 시키겠다 라고 자기들이 단절 되었으니까 그 반작용인 복수심 적개심 살인의지를 펼치는 겁니다 사적인 소원은 다 그런 식입니다
그 사적인 소원이 바로 빈칸 채우고 미완료를 추구하는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라는 무당의 언어인 거죠
그 무당의 언어를 가지고 언약의 언어 약속의 언어인 주의 날을 악한 날과 한 세트를 구성하시는 겁니다)

(마 25:24, 개역)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개역)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 개역)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개역)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개역)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흔히 달란트 비유를 아까 말한 처세술로 이야기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거 엉터리 이다 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다들 행함(미완료 빈칸 채우기 반작용 복수심 한풀이)으로 이야기하지 
재능 탈랜트 라고 그 재능이 처세술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 숙제로 만들어 놓으면 그 강요된 선택을 주입시킨 목사놈은 억수로 좋아라 합니다 미완료 채우기라는 의문의 반복을 시켜 놓았으니 말이죠 성화론자들 다 이런 무당들이죠
정작 완료로써의 믿음(예수님의 숙제)으로 이야기 하는 놈들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다 이루었다 라는 예수님의 숙제로 빵구멍 뚫혀야 비로소 수고하고 무거운 짐 내려놓는
자기 숙제를 손 놓는 겁니다 빵구멍 뚫혔으니까 그 뱃돼지를 채울 필요가 없어요
새는 바가지에 물 퍼 담는 자가 비로소 없게 되는 겁니다

행함으로만 이야기 하다 보니
다들 빈칸을 채우기 하는 겁니다

바로 그놈이 한 달란트 받은 놈인 겁니다
주인의 돈이예요
자기 돈이 아니라
자기 돈이면 이해가 되지요
그런데 자기 돈 치고 뿔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지
가만히 원금 그대로 땅에 파 묻을려고 하는 자는 없다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믿음이란 생동력이 있어요
사랑은 저절로 남는 잉여입니다
은행에 넣어도 이자가 붙으니까 말이죠
잉여 스스로가 말이죠 주인의 돈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행함은 그저 빈칸 채우기 밖에 안되니까
겉으로는 생동감 있는 기존의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보편적 진리로 보이지만
사실은 땅에 파묻은 죽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인 거죠


바로 이런 행함 곧 사람의 일인 빈칸 채우기를
믿음은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하나님의 일로써 빵구멍 내는
미운받는 짓만 골라 하는 식입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남긴 것이 없으니
사랑도 미움도 아무 소용 없네 나는 삼포로 가야지 ~~~~~ 가 아니라

바로 이런 악하고 게으름을 동시에 들추어내는 것이 잉여증폭기 달란트 주의 믿음인 은사이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있는 자는 더 받고 사랑이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미움 받는 자는 빼앗기는 거죠

결국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미움받는 것이 뭔지를 간극을 벌리는
이 빵구멍 내는 여호와의 날 주의 날이 떳기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 드러나야 하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다들 기뻐할까요? 택도 없지요
바로 튀어나오는 것이 하나님은 불공평 하다는 겁니다

아니 출발점 자체가 같은 선에서 출발이 아니게 되면
그건 뭐 아무리 논리와 합리와 모든 법칙을 끌어와도
말도 안되는 불공정 불정의 부조리 불의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다 이런 식입니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사랑은 저절로 잉여적이고 반대로 미움을 행함은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으심
싫어허삼 미워하심은 무조건 빼앗기는 거다 라고

예수님 말씀하시는 비유가 다 이래요
다 부조리 해요
이 부조리가 아니면 구원이 없어요
이 불의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면 구원이 없는 겁니다
그 불의에 주님은 충성하셨다 말이죠 곧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에 말이죠
인애와 자비는 그 심판에 뛰어들었거든요 이게 사랑입니다

보세요

(마 20:8, 개역)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마 20:9, 개역)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마 20:10, 개역)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마 20:11, 개역)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마 20:12, 개역)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3, 개역)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 20:14, 개역)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15, 개역)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 20:16, 개역)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번제와 제사라는 행함을 뽑아내는게 아니라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없으면 무조건 미움받아 마땅한 지옥의 몸인데
누가 자기자신을 미움 받아 마땅한 자로 보겠느냐 말이죠
그래서 사랑이 없음을 이 주인의 사랑을 본게 아니라
주인의 부조리 불공평한 행함을 보고 법적으로 따지는 겁니다
법이라는 선악은 이미 나의 정당성응 확보한 입장에서 선이 되었기에
아무리 주인이라고 해도 나의 선 됨에 부합되지 않으면
나의 선에 맞지 않으면 저절로 악이 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시선이 주님의 시선과 안 맞다 라는 취지로써
성경 전체가 외침에 있어서
그것을 악으로 본다는 취지에서
이미 나 자신을 선으로 규정해서 빼돌린다는 점에서
그것 마저도 악으로 본다는 사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십자가의 저주에 왜 달려 죽으시러 왔겠냐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로 보는 겁니다
출발선이 같은 선에서 출발한게 아니다 라고 말이죠


출발선을 공평은커녕 아예 빵구멍 내신다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 출발선이 틀리다 라는 그 부조리만의 의삭한다는 자체에서
내가 선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된 입장에서
아 나와의 동질성이 없다 없음에 있어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러
빵구멍 내러 오셨다 이 미움을 제대로 먹어라
싫다 니나 먹으라 라고 벌어진 사건이 십자가이니까 말이죠
기승전결 모조리 십자가 라는 빵구멍이 하나님의 의로써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수 없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육으로 난 자임을 들통당하는 겁니다

정작 그 십자가 라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는
자신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사망의 몸임을

뭐 스스로 깨닫거나 해탈해서가 아니라
또렷한 저 십자가에 달리신 인자를 쳐다봄으로 오는
주님의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그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나온 믿음으로 보게 되는거지
지가 지 스스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임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는 겁니다
누가 대신 죽어야 한다 라는 거지요
그래야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상대적인 두 언약의 한 세트를 구성하는 겁니다
오직 그 분만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됨이 마땅하지
나는 그 사랑받리고 작정이 됨에 끼여들 틈이 없어요
야곱은 스스로 복의 근원이 될려고 했었고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답게 될려고 했듯이
장자권을 빼앗아 본인이 큰 자가 될려고 했던 것도 다 그런 식이였다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을 사울 이라는 큰 자에서 작은 자(바울)로 목을 꺽었다 말이죠
(웃기는 여담으로 채팅을 군복무 대신에 하는 후배땜에 자주 하게 되었는데
청년 중에서 자꾸 나에게 이름을 바꿔달라는 친구가 있었다
육의 이름에서 영의 이름으로 바뀐 사례를 성경에서 발견하고서는
그렇게 해 달라고 말이다 아니 이름 문자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될일인가?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런 자기 가치 자기 유일을 구하는게 아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저절로 살도록 되어 있는 종말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도 옛말!!! 이제는 아예 관심 조차도 없는 세대요 시대이다)

그래서 일까요? 인간은 믿음 보다 행함을 우선시 해결할려고 달려 들 수밖에 없다 라는 사실

어서 어서 빈칸부터 먼저 채워넣는 것을 자유의지로 택했다 라고 보는 거죠
그게 원함도 달음박질함도 아닌데
그게 미움받음에 의해 강요된선택인데
뭘해도 미움받아 마땅한 지옥의 몸인데
졸지에 할 줄 아는 것은 빈칸 써 넣기 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선택한 길에 정당성을 부여할려며는

사랑받기로 작정됨의 조건 갖추기 빈칸채우기에 몰두 할 수 밖에 없는

자기 의를 쌓는 것 뿐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수가 없어요
했다가는 그 동안 사랑받기로 작정된 그 의 쌓은 것 그 공든 탑 다 날리게 되니까 말이죠

바로 이것이 육으로 난 것인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거다 말이죠

아브라함 아무리 아이를 낳아도 육으로 난 것은 다 육입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는

바로 이런 아브라함이 육을 따라 난, 이미 죽은 자이듯이
악하고 게으른 악한 종인 이스마엘을 거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약속 스스로가 저절로
사랑 스스로가 저절로
믿음 스스로가 저절로 믿음으로 다시 살듯이
있는 자는 더 받는


(마 20:16, 개역)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보세요 나중 된 자 먼저 된 자 라는 기준은 결국은 주님 손에 달린 문제인데
어떻게든 내 손에 의해서 빈캄 채우듯이 내 숙제로
선함도 내 손
먼저 됨도 내 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됨도 내 손

지난 번 로마서 말씀 오늘 본문의 앞 내용처럼
큰 자 됨도 내 손
이스라엘 됨도 내 손
구원 받은도 내 손으로 답을 자꾸 채워 넣을려고 하다 보니
문제는 그 반대인 미움 받음에 놀랍게도 예수님을 죽이도록 되어 있다 라는 사실로써
정작 나는 지옥의 몸으로 들통난다 라는 겁니다

포도원 주인의 품삯 계산 법이 얼마나 불공정하면 악하다 라고 볼 수 밖에 없냐 말이죠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
불의한 재판관도 마찬가지

나를 선으로 돌리는 순간
주님이 선해 지는게 아니라
주님이 악해 진다는 것

네 맞습니다 눈치 채셨군요
오늘 본문도 결국은 그렇지요
우리는 결과적으로 나를 원인으로 삼아버린 이상
결과가 내가 원하는대로 안 나오게 되니까
저절로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볼 수 밖에 없는
예수님의 비유와 일맥상통한 결과로써의 반응을 우리는 나타낼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네네네 맞습니다
또 나 자신을 나 있다 라고 나를 인간으로 출발해서 행동하다 보니
결국은 예수님을 악으로 몰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결국은 십자가의 사건이 또 벌어지는
두 번 바위를 치는 셈이 되는 겁니다
그 정도로 사랑이 없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을려는 모세와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거죠

나 자신을 죄인으로 출발하게 되면
저절로 주님의 사랑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
나의 정당성이 아닌
나 같은 이런 악한 자에게도 왠 용서를 베푸시는지
비로소 이 십자가의 저주가 감사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치는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 곧 심판을 나타내는 겁니다

왜 우리는 뭘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사망의 몸이기에
그런 사망의 몸에게 뛰어드신 그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아니까 말이죠
앞의 사망의 몸은 개인적으로 볼수도 있지만
뒤의 소돔과 고모라는 아예 집단적인 판데기 구조 판 이다 말이죠
그러니 개인이 무슨 수로 그 집단에서 빠져나올수 있겠습니까?
권세요 환경인데 ~~~~~~~~~~~

그러니 내가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임을 모르는 자는
그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나에게 뛰어두시는
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시나 나 처럼 빈칸에 정답 써 넣는 자로 행함으로 육으로 난 자
곧 요셉 목수의 아들 아니냐 라고 뭐 나와의 동질성으로
숙제 열심히 할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말이죠

그럴 것 같으면 말라꼬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느냐 말이죠
나와 똑 같은 일을 하니
내 숙제만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그것에만 몰두 해야지
예수님의 숙제를 말라꼬 보느냐 말이죠
같은 문제지에 같이 정답을 맞출려고 애쓰는 자 일 뿐인데

자기 숙제를 손 떼지 않는 이상 주님의 숙제를 볼 턱이 없다 말이죠
이 율법은 우리 지키라고 주신 숙제가 아니다 말이죠
이 말 떄문에 제가 교회에서 대부분 쫓겨났고
많은 장로들에게 무율법주의자 라고 공격을 받았다 말이죠
놀랍게도 목사들은 저보고 율법폐기론자 라고 저런 장로들처럼 공격하는 자는 없어요
그래도 쪼매 공부했다고 장로보다는 좀 낫지만
목사들은 저를 억수로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모습이 더 노골적인 이유가
저런 장로들 보다 고단수로 악한 자들인 이유는
율법폐기론자 라고 공격은 안 했다 뿐이지
아이고 그래가 교회가 장사 될 턱이 있냐 라고 늘 비아냥 거리면서 비웃는다 라는 겁니다
아직도 철이 없어서 정치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억수로 불쌍하다는 듯이 비꼬아요 글쎄

맞습니다 교회는 정치 뿐이예요
성화론도 실은 정치다 말이죠
교리도 다 정치예요
그래야 끼리 끼리 유유상종 모이는 겁니다
심심하면 하는 소리가 있지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라고
이건 뭐 협박도 아니고 심심하면 염불 외우듯이 주절주절 거려요
제발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꼬 ㅋㅋㅋㅋ

제가 워낙 눈치가 없다 보니
나가 달라는 말인줄도 모르고 염치 없이 있었다 말이죠

유유상종의 소속감에 안 맞는 놈은 제발 꺼져주세요인데
워낙 눈치 없어서 ㅋㅋㅋ

뭐 말이 장로회 침례회 감리회 고신측 합동측 통합측 뭐 이런 소리 하지
사실은 다 정치이다 말이죠
어디 천국에도 없는 것들은 맹글어서 정치게임이나 하고 말이죠
그렇다고 초교파주의를 하면 될 것 같은가? 아니지요 초교파 때려죽어도 인간은 안 됩니다

아니 절대저주 절대미움받음 앞에서 그따위 감투들이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배설물 똥덩어리 더 하다 추가로 쳐바를뿐인데
주렁 주렁 더 매달고 있을 뿐인데

자기가 왜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인줄 성령을 통해서 알려주심을 받지 않으면
섬김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악으로 몰았던 그 천국의 비유들 속의
자칭 하나님의 자녀 자칭 빛의 자녀이다 라고 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을 악으로 몰아버리는

아니 왜?
정작 예수님은
자칭 빛의 아들들 이라고 우기는 우리에게는 보냄을 받지 않고

불의한 청지기
나중 된 먼저 된 자
주인의 돈을 잃어버릴 걱정도 않고 막 장사를 해 대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말이죠
겁도 없이 장사를 하느냐 말이죠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망하면 우짤려고 
무슨 수로 원금을 갚냐 말이죠

한 달란트가 16년 한 푼도 쓰지 않고 일해서 모아야 하는 돈이니까
각자 여러분의 연봉을 계산 하면 됩니다
보통 생활비 빼면 2-30%만 저축할 정도이니 곱하면 3하면 한 달란트에 48년???? ㅋㅋㅋ
일만달란트가 그래서 16만년 이라는 계산이 나오는가 봅니다

자 이렇게 돈도 못 갚는 빚진자를 누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보겠냐 말이죠
아주 아주 당연히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밖에만 볼 수 없잖아요

그런 자에게만 오늘 본문이 이해가 된다고 하니
그럼 착실하게 잘 하고 있는 자에게는 전혀 안 보이는 말씀이겠네? 라고 따질 수밖에 없도록

주님이 우리 속을 박박 긁어 대신다니깐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은 불의하다 라는 소리가 안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안 나오고는 부정
못 배기는 겁니다 부정
부정의 부정인 거죠

우리를 무조건 부정의 자리에 놓아버리는 것이 목적인데
우리는 무조건 긍정의ㅏ 자리에 자신을 놓아버리니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요 부딧하는 바위가 될 수 밖에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거지요

누가 이 십자가의 저주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보겠느냐 말이죠

그런 자를 들어서 지혜롭다는 자를 꺽으시니까

이게 기드온 전쟁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칼이여 아닙니까

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칼 보다 더 모조리 무릎 꿇게 해서 승리하는
지혜가 없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택해서 지혜롭다 라는 자를 꺽으시는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의 없는 의로 곧 불의로 모든 의롭다 라고 자칭하는 가짜 의를 무너뜨리시는 겁니다
마치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짓겠다처럼
거룩할 성
거룩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룩한 전이라고 우기는 그 거룩을 깨뜨리는
말도 안되는 삼일만에 세우는 절대저주인 삼을 그 간극을 이중반복을 거치는
이 불의만이 나 보다 옳았다
분명 개같은 이방여자인데
심지어 남의 아이까지 임신한 부정한 여인인데
그 다섯 여자 에게서
예수님의 족보가

이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통해서
지혜롭다 라고 우기는 자 곧 선악은 내가 더 철저히 지킬줄 알아
니 보다 숙제를 더 많이 한 남 7번 용서한
이 자기 의를 쌓은 것을

아무런 의 쌓은 것 없는
도리어 이방여자
더러운 여자
어리석고 미련한 약한 자가

가짜 거룩을 무너뜨리듯이

삼일 만에 짓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성전이라고 이름까지 적었으니 그 이름 값 하도록
얼마나 모든 인간들이 그 곳에 거룩을 쏟아 부었겠습니까?

교회를 세우는 이유인 겁니다
그야 말로 보이는 산 소망이 된 거죠
그 탐심의 바벨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산 소망인
예수님의 숙제가 보일 턱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뭘 해도 내 숙제를 완악하고 강퍅함으로 몰아가는
나 보다 옳았다 라는 이 십자가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그 믿음
예수님의 숙제가 아니면

나의 행함 곧 내 숙제가 나의 강퍅함이 들추어지지 않는 겁니다

이 강퍅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는 겁니다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느뇨
네 냅니다
하나님의 의인 심판이 이 절대저주인 삼일만에 허무는 성전이 먼저 떳기에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가짜 거룩으로 채워진 성전은 허물어 빵구멍이 나아해는 겁니다

부동산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구석 구석 모든 생각 모든 방향 목표도
모조리 다 불 태우시는, 기경!!! 밭갈이 하시는 이유입니다

이 주님의 겸손이 먼저 떳기에
이 경건의 능력이 먼저 떳기에

우리의 경건의 모양 껍데기가 까발려지는 이 기쁨을 
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무슨 죄악들을 용서받았는지 그 강퍅한 내용물 하나 하나를 말이죠

그 죄를 실컷 누리고 그 죄 씻음을 실컷 누리는 겁니다
이 간극을 도저히 좁힐 수 없도록 더더더더 벌리시면서 말이죠

주의 은혜의 날이 먼저 떳기에
우리의 악함을 모은 강퍅함으로 도배된 악한 날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애굽의 바로 왕과 애굽 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듯이
심판 주의 여호와의 팔이 떳기에
짤려야만 하는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애굽의 팔이

두언약의 한 세트를 구성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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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열국의 여자들 (겔 32,17-21)
2025. 3. 9.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모든 인간을 멸하리로다 (겔 32,11-16)
에스겔 2019 2025. 2. 15. 14:42
21-089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겔 32,11-16)

〈에스겔 32,17-2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0쪽, 찬송가 230장 새 239 저 뵈는 본향 집, 가스펠; Happy Day 〉

새찬송가 276장(통334) 아버지여 이 죄인을
새찬송가 521장(통253) 구원으로 인도하는
새찬송가 369장(통487)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찬미예수 2000 - No.1065 우물가의 여인처럼 (채워주소서)
가시나무 ; 하덕규 15years-15songs


찬미예수 2000 - No.1065 우물가의 여인처럼 (채워주소서)

1.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2.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안에 감추인 보배 세상것과 난 비길 수 없네

3. 내 친구여 거기서 돌아오라 내 주의 넓은 품으로
우리 주님 너를 반겨 그 넓은 품에 안아주시리

(후렴)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가시나무
하덕규 15years-15songs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도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자리를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날아온 어린새들도 가시에 찔려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와 슬픈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없네


〈에스겔 32,17-2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0쪽〉

(겔 32:17, 개역) 제십이년 어느 달 십오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2:18, 개역)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겔 32:19, 개역)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지나가는고 너는 내려가서 할례 받지 않은 자와 함께 뉘울지어다
(겔 32:20, 개역) 그들이 살륙 당한 자 중에 엎드러질 것임이여 그는 칼에 붙인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지어다
(겔 32:21, 개역) 용사 중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음부 가운데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륙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겔 32:17, 새번역) 제 십이년 ㉢첫째 달 십오일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 ㉢칠십인역을 따름. 히브리어 본문에는 '첫째 달'이 없음
(겔 32:18, 새번역) "사람아, 너는 이집트의 무리를 애도하여 슬피 울고, 이집트와 열강의 딸들을, 깊은 구덩이로 내려가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로 보내면서 일러라.
(겔 32:19, 새번역) '도대체 네가 누구보다 더 아름답다는 거냐? 너는 아래로 내려가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누워라' 하여라.
(겔 32:20, 새번역) 그들은 칼에 찔려 죽은 사람들 한가운데로 떨어질 것이다. 칼이 이미 이집트의 목을 겨누고 있으니, 이집트와 그의 온 군대를 지하로 내려보내라.
(겔 32:21, 새번역) 그러면 스올에 있는 강한 용사들이 부하들과 함께 바로의 무리에게 이르기를 '저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 저 칼에 찔려 죽은 자들이, 이 곳 아래로 떨어져 눕는다' 할 것이다.



에스겔서를 묵시서로 신학자들이 분류를 하는데
묵시란 보이는 현실과 다른 보이지 않는 환상 이상 속에서의 내용이다는 겁니다
결국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에 해석 자체가 난해하기 짝이 없다 라고 보는 겁니다

보이는 현실을 마다하고 보이지 않는 환상의 세계 이상의 세계인 묵시를 현실로 보게 된다면
오늘 본문은 남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 자체가 묵시이기에 좋은 것을 뽑아 먹을려고 한다고 하지만
정작 함께 같이 딸려 먹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되는 거죠

마치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 전에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는 장면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입니다
그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 모든 인간을 장악한 내용일 지라도
심지어 그것도 모른채 열심히 예배 드리고
말씀실천하는 유대인인지라고
예수님이 마주한 진짜 현실은
모든 인간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장악당한 채 포로된채로
예배드리고 십계명 지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을 보듯이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괜히 예수님께서 이미 지옥에 가 있는 애굽왕 바로 왕을 1300년 만에 소환해서
굳이 또 애굽의 팔을 짜르고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에스겔 당시는 900년 만에 애굽을 지옥에서 불러서
다시 애굽왕 바로왕을 지옥으로 내려 보내버리시는 겁니다

그 당시 애굽나라가 있었지만 이미 쇠약한 나라인데
그 애굽이 아니라 900년 전의 애굽을 지옥에서 불러낸 바로왕 때의 애굽이다는 거죠

그렇다면 예수님이 모세를 소환해서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율법의 대표자를 불러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이루어주소서
원수를 용서해 주소서 라고 했듯이

에스겔을 통해서 원수 애굽을 멸하심으로써 언약의 완성을 보여주소서를 이루시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애굽이 없어요
그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는 바벨론입니다

그러나 그 바벨론이 아무리 신생국으로 등장을 해도
그 원조는 그 모태는 바로 애굽이다는 거죠

애굽의 팔을 바벨론이 꺽고
바벨론을 메대 파사가
메대 파사를 헬라가
헬라를 로마가
로마는 열국이 꺽음에 있어서

우리가 눈으로 볼수 있는 현실은 겨우 100년도 아닌 상황에
이런 역사가 1000년을 넘어서 버리는 상황을 오늘 본문에서 한꺼번에 다 보여주면
과연 다 볼수가 있겠느냐 라는 겁니다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과거의 역사를 천년 이천년 삼천년 넘는 역사를 다 외운다 하고 해도
정작 과거가 아닌 미래의 역사를 다 담기에는 우리의 그릇이 다 깨어질 판국이 되는 겁니다
과거는 취사선택해서 골라먹기를 해 버리지만
미래는 무엇이 중헌디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과거처럼 숨겨진 내용을 다 삭제 시킬수가 없겠지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 묵시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사건이 되어서 기록이 될지 모르는 판국에
이 묵시는 이 미래는 그야말로 빈칸에 정답을 적는 인간의 숙제를 요구하는 방식이 아닌
그냥 정답이 쳐들어와서 일방적으로 이렇게 이루어진다 라는 완료를 부여받게 되는 식입니다
이 완료를 무슨 수로 우리 뱃속에 채울수가 잇겠습니까
그저 뱃구멍이 뚫혀버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 되는 식입니다

자 그래서 애굽을 원조로 하는 나라들이, 그 열국들이 나타나도록 하신다 라는 것은
바로 다윗언약의 나라가 이미 떳기에 그 새언약의 나라가 완성 완료가 되었기에
두 언약의 한 세트로써 등장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즉 지하로 지옥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 나라로써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해야할 현실로써 오늘 본문을 에스겔이 누려야 하듯이 우리도 누리도록
이 말씀이 조성한 현실을 맞딱들이게 되는 겁니다

이런 현실을 인간은 만들어 낼수가 없습니다
그저 인간은 빈칸 채우는 문제풀이 숙제를 함에 있어서
도움을 되는 것과 연맹 동맹 동질화를 맺어서
난관을 해쳐 나감으로써 미래를 꾸려 나갈려고 합니다

지난 주였나요 최근의 말씀에 우리가 어린아이가 칼에 부서지고
임신한 여인의 배가 갈라지고 라는 내용을 나누었고

또 오늘 본문의 바로 앞인 에스겔서

(겔 32:15, 개역)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로다
(겔 32:16, 개역) 이는 슬피 부를 애가니 열국 여자들이 이것을 슬피 부름이여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피 부르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하라

여기서도 오늘 본문이 연장선에서 나열되듯이
여기서도 여자들이 나오는데요

여자와 아이들은 잉여물입니다 선물입니다
특히 아이는 부활을 의미라하는 열매를 의미하는 미래성을 보여줍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처럼 선물 개념이지요
전쟁에서는 전리품이듯이 말이죠 보물입니다

그런 열국의 여자들이 애곡한다? 여성은 약자인데
애굽의 영광으로 그 혜택을 약자인 여성이 그 동안 누렸다 라는 것은
보편적인 소망이 되었다 라는 거죠
그 익숙한 보편적 진리가 된 애굽의 영광이 하루 아침에 다 무너지게 되면
약자인 여성이 어디에 소망을 두겠느냐 밀이죠
그야말로 애곡이지요
애곡

눈물 이라고 하니까 생각하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지고 가고 있을때에
아낙네들이 울면서 아이고 예수님

(눅 23:26, 개역)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눅 23:27, 개역)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8, 개역)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30, 개역)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눅 23:31, 개역)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눅 23:26, 현대어) [십자가에 못박히시다;마27:32-44,막15:21-32,요19:17-27]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끌고 가던 그들은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메고 뒤따르게 하였다.
(눅 23:30, 현대어) ㄱ) 그때 사람들은 산을 향하여 자기들 위에 무너지라고 하며 언덕을 향하여 자기들을 묻어 달라고 할 것이다. (ㄱ. 호10:8)

(호 10:8, 개역) 이스라엘의 죄 된 아웬의 산당은 패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저희가 산더러 우리를 가리우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호 10:8, 새번역) 이제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 올라서 그 제단들을 뒤덮을 것이다. 그 때에 백성들은 산들을 보고 "우리를 숨겨 다오!" 또 언덕들을 보고 "우리를 덮어 다오!" 하고 호소할 것이다.
(호 10:8, 공동) 이스라엘의 죄악인 베다웬 산당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을 덮으리라.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산더러 묻어달라, 언덕더러 무너져 덮어달라고 애원하리라.

사 복음서에서 누가복음에만 여인네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말라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호세아 10장처럼 심판의 날이 얼마나 무서우면 차라리 산에 묻혀 죽는 것이 나을정도로 고통스럽다 라는 거죠
그러니 예수님을 위해서 우는 것은 어쩌면 배부른 상황이다는 겁니다
예수님 보다 본인들의 자녀

또 자녀 곧 미래가 나오지요
자녀를 위해서 울어라 그 정도로 절대심판이 얼마나 심각한데
한가하게 날 위해서 울어야 할 판국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두 패로 나누는 화목제를 이루시고자 가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처럼 묵시라는 진짜 현실을 보여주는 애굽심판을 통한
인자의 나라를 이루심인데

다들 자기의 숙제로 예수님을 측은히 여기는 동일성 연합성 연맹의 마음으로
빈칸을 채우는데 있어서 안타까운 죽음에 걱정을 하고 있는데

정작 예수님은 날 걱정할게 아니라 너와 너 자식에게 이 심판이 떨어진다 라고
간극을 좁힐려는 동맹심 마음을 합심하는 연합적인 마음을
확 깨듯이
야 정신 안차려? 지금 너에게 불 떨어져 라고
확 깨는 단절의 말씀을 간극을 벌리시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진짜 현실은 내가 아니라 너가 지금 죽게 된 입장이다는 거죠

그래서 그 유명한 구절 이사야서를 인용한 갈라디아서 
두 언약 두 여자의 두 아들 언약에서 나오는
수태치 못하는 자가 복되도다 라는 말씀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사 54:1, 개역)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런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의의 증상물로써
화목제 곧 예수님의 숙제에 혜택을 입는 자가 되고

반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우는 자는
마치 빈칸을 채우듯이 예수님을 자기 숙제로 임금삼듯이
연민의 마음 동질성 연합성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오히려 종말때에 주께만 범죄한 자가 아닌
건강한 자 의인이라고 우기게 되는
화목제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왜 달려 죽으시는
하나님의 저주
하나님의 심판을 왜 받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동질성 합일성 연합성의 마음으로 이미 자기 숙제로 연밍으로 채워 버렸기에
빈칸에 자기 답변을 적어버렸기에

이 빵구멍 뚫어서 예수님의 숙제를 완료로 이루시는 이 진짜 현실을 못 보는 거죠
오히려 수태치 못한 자가 빵구멍 뚫힌자로써
죄인으로써
환자로써 의사의 의술의 기능의 혜택을 보게 되니
이 십자가의 죽음의 혜택을 모르는 겁니다
모세가 왜 어서 죽어주소서 별세해 주세요 라고 
변화산에서 1300년만에 나타나
900년 만에 나타난 엘리야와 함께 왜 이것이 진짜 현실인지를 모르는 식이다는 거죠

십자가의 다 이루심 완료로 구멍 뚫혀져야 하는 판국에
자신은 아직 살아있어서 빈칸에 자기 숙제를 채우는 기회가 있지만
예수님은 이런 현실을 못 누리고 그만 가는 구나 안타깝다
계속 살아있으면 숙제를 계속해서 빈캄에 답을 적는 말씀 실천 하기를
스탬프 도장 참 잘 했어요 도장 받으면서 살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젊은이 쯧쯧쯧

그래서 주님이 도로 반대로 쯧쯧쯧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라는 겁니다

열국의 여자들이 왜 애굽의 심판을 복 우는 것일까요?
보이는 소망이 무너지니까요 동질을 마음
동맹의 마음
연합 합일 동질성을 부여했는데
무너지니 자기도 무너지는 겁니다
나와 같은 동맹이 말이죠

결국 이 말은 보이지 않는 산 소망에게는 소망을 둘 수 없다 라는 거죠

고때만 애굽이 망하는 가짜소망인 절망일까요?
그 열국의 여자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애굽은 망하기로 작정이 된
죽은 소망을 그 동안 사모하고 소망해 왔던 거죠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을 섬기느냐

우리가 자주 접한 구절이지요

이사야 사칠팔 아래 위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오늘 본문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사야 47장 전체를 다 올려보면

(사 47:1, 공동) 처녀야, 딸 바빌론아, 땅바닥에 내려앉아라. 딸 갈대아야, 용상에서 내려와 땅에 앉아라. 누가 다시 너를 다정다감하고 애교가 넘치는 여인이라 하랴?
(사 47:2, 공동) 맷돌이나 잡고 밀이나 갈아라. 너울을 벗고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강물을 건너라.
(사 47:3, 공동) 홀랑 벗기어 속살까지 드러내어라. 내가 원수를 갚는데 누가 막으랴?"
(사 47:4, 공동) 우리의 구세주, 그 이름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서 말씀하신다.
(사 47:5, 공동) "딸 갈대아야, 말문이 막혀 그냥 앉았다가 어둠 속으로 꺼져라. 누가 다시 너를 만방의 여왕이라 부르랴?
(사 47:6, 공동) 내가 나의 백성에게 진노하여 그들, 나의 유산을 천대하여 네 손에 넘겼는데 너는 그들을 가엾게 보기는커녕 노인들에게 묵직한 멍에마저 씌웠다.
(사 47:7, 공동) '언제까지나 내가 여왕이다.' 하고 흥얼거리다 보니, 이런 일은 염두에도 두지 아니하였고 너의 장래를 걱정하지도 않았었지.
(사 47:8, 공동) 이제 내 말을 들어라. 마음놓고 향략을 누리는 여인아, 너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내가 과부 신세가 되다니, 내가 자식을 여의다니, 어림도 없다.'고 했었지.
(사 47:9, 공동) 그러나 너는 하루 아침에 이 두 가지 변을 당하리라. 자식을 여의고, 남편을 잃는 쓰라림이 한꺼번에 닥치리라. 재간껏 마술을 부려보아라. 힘껏 요술을 부려보아라. 모두 쓸데없으리라.
(사 47:10, 공동) 네가 실컷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나를 감시할 눈이 없다.' 하고 자신만만이구나. 너는 지혜로운 체, 세상 일을 다 아는 체하며 '이 세상엔 나밖에 없다.'고 하다가 제 꾀에 넘어가리라.
(사 47:11, 공동) 이제 불행이 덮쳐오는데 무슨 마술을 써서 네가 그것을 막아내랴? 이제 재난이 떨어지는데 무슨 방법을 써서 네가 그것을 물리치랴? 헤아려 미리 알 수 없는 재난이 갑자기 너에게 닥치리라.
(사 47:12, 공동) 네 재주껏 요술과 마술을 부려 맞서보아라. 네가 젊어서부터 애써 익힌 것들이 아니냐? 덕이라도 입게 될는지 혹시 아느냐? 상대편을 위압하게 될는지 혹시 아느냐?
(사 47:13, 공동) 너는 그 많은 참모들에 지쳤다. 그러나 하늘을 살피고, 별들을 보며 점치는 점성가들, 매달 네가 당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점쟁이들, 그들이라도 나서서 너를 구원하라고 하여라.
(사 47:14, 공동) 그러나 보아라, 그들은 검불처럼 불에 타리라. 불길에 휩싸이리라. 빵을 구울 숯불도 아니요 앉아서 쬘 아궁이불도 아닌 불길에 휩싸이리니 목숨을 건질 길 없으리라.
(사 47:15, 공동) 네가 젊어서부터 지치도록 위하던 마술사들이 이 모양이 되리라. 저마다 도망칠 판인데 그 누가 과연 너를 구해 주랴!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9, 개역)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전히 네게 임하리라


주모와 동일시 하겠다 이 말은 과부가 안 되겠다
자녀를 잃어버릴 일이 없겠다 이 말은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록 하는 그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에
우상과 일치 합일 연합 동질성을 추구하는 바벨론 여자 자체가 우상과 한 몸이 된
우상 그 자체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이 바벨론 여자들이 보는 시선에서
수태치 못한자
아이를 밴 적 없는 자

가 누가 봐도 저주 받은 자 인데
종말에는 이것을 팔을 어긎맞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화목제라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뒤 바뀌는 판국인데
누가 이 십자가라는 현실을
곧 예수님의 숙제를 보겠냐 말이죠

오로지 자기 숙제만을 보면서
자기 숙제로 타인과 함께 도움을 주고 동맹 연맹을 이루어 미래를 꾸려나갈려고 하지
누가 이 현실을 마다하고 대신 절대심판 절대저주를 받는 이 예수님의 숙제인
십자가를 현실로 받아들이겠느냐 말이죠
본다고 해도 자기 유익이 없기에
바로 뒤 돌아서지
누가 화로다 화로다 나는 예수님의 숙제로 빵구멍 뻥 뚫힌 저주받아 마땅한 자 이구나 라고
동질성을 마다하고 간극 좁히기를 마다하고
누가 간극이 벌어진 그 절대저주인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자기와 자기 자녀를 위해서 우는 자가 되겠습니까?

솔로몬의 재판으로 빵구멍이 뻥 뚫힌 진짜 어미의 마음은
자기자식을 위해 울어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겁니다
절대심판이라는 완료가 예수님의 숙제로
지혜자의 숙제로 그 죽음에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긍휼함을 입었습니다

가짜 엄마는 그 저주에 박수를 치면서 우는 모습이 없는
그저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는 자기 숙제만을 빈칸에 채우고자 할 뿐입니다
죄인으로 들통당하지 않고 의인으로 드러남으로
진짜 아기 엄마를 죄인으로 몰아버리는데 성공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일 벌어질때마다 계속 그 지옥이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을
자기 손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열국의 여자들이 애굽이라는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잔칫집에 마음을 두었다 말이죠
연맹 동맹을 맺었습니까
국가간에도 동맹을 맺을때에 이익의 차원에서 동맹을 맺지
손해 볼 것 같으면 동맹을 맺을 이유가 없지요

자 이렇게 자기 배를 채우고자 임금과 동맹을 맺고 세우지만
인간 왕은 섬기는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처럼 사제들처럼 단물 빨아먹고 뱉어버린다 말이죠
경건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입니다

(딤후 3:5, 개역)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 개역)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개역)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개역)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 3:4, 개역)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개역)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후 11:1, 개역)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고후 11:2, 개역)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3, 개역)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4, 개역)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13, 개역)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 11:14, 개역)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5, 개역)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런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자기유익을 구하는
철저하게 이익 계산을 따져서 행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도로 임금의 노예로 삼는 것에 잘도 용납하는 구나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게 애굽이 하루 아침에 망하게 되니까
열국의 여자들이 다 웁니다 애곡 합니다
자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게 되는 겁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즉 그 동안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애굽이
그 잔칫집이 그 동안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빈칸 채우기 라는 인간숙제로 서로 서로 돕고 동맹을 맺는 마음으로
그런 소속감으로 그 동안 올라오는 지옥을 배고픔을 가리울수가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 수치를 가려줄 자가 없게 되니
애곡을 할 수 밖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겠다 마음에 두기 싫다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겠노라 라고 해 놓고서는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누가 나를 일으켜 주지 라고
역시나 스멀 스멀 올라오는 외로움 아픔 배고픔을 가리우고자

우상에게 손 그려서 자기를 일으켜 달라
우상에게 얼굴 그려서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 로 날 좀 봐 달라
위로해 달라 믿어 달라 라고 징징 거리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인간의 눈물을 보시고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겁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아니 지금 남 걱정 할 때냐
그 다음 니 차례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종말이 닥치는데
시간적? 공간적? 그렇게 볼 수 있는 종말이 아니라

너와 너 자식이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상황에
오늘 귀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 남의 죽음 취급하면서 배불러서 울고 있더라 말이죠

애굽이 망하는 것을 보고 울어야 할 판국이냐 말이죠
너도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데
도대체 뭘 그 동안 보고 살았냐
어차피 지하로 지옥으로 내려가는 그런 애굽을 소망하고
보이는 것을 소망하고 살아왔으니

그 보이는 것이 지하로 내려가면
더 이상 소망 없이 애굽과 같이 지하로 내려갈려느냐

오냐 처음부터 지하로 내려가기를 바란다면 얼른 내려가거라

너의 눈물을 씻겨주고
너의 수치를 가려줄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외부에서 선물로 매일 매일 주어지는 이 새 마음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기존의 마음으로 백날 버텨본들 소용이 없는
헛된 우상 허구 안개만을 그 미완료만을 배에 까가득 채워버렸구나

자 이렇게 인간의 숙제로 아무리 빈칸을 채워넣는 결핍 여백을 채워본들
다 헛된 헛짓일 뿐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몸에 언약을 새겨주심이 없으면

그 처음자리에서 곧 죄인의 자리 고아의 자리
내 자식은 고아가 안되게 하리라 라는 바벨론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도로 고아의 자리에서 후견인이 되시는 그 첫사랑만으로만
몸에 이 첫맹세를 새기시는 것이 할례이다 말이죠

아까말한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는 것을
다른 복음으로 대체하며 자기 배에 채우는 것이 뭔고 하니
하나님 사랑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들이다 말이죠

(딤후 3:1, 개역)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개역)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개역)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 3:4, 개역)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개역)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런데 이런 주님의 뿔로 빵구멍 뚫는 것을
인간은 또 자기 숙제로 손할례로 빈캄의 채워버리니
그래서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오늘날 성화론자들이지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예수의 흔적 곧 십자가의 흔적
그리고 골로세서에서는 그리스도의 할례 라고 표현했다 말이죠

(갈 6:17, 개역)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골 2:11, 개역)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갈 6:12, 개역)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갈 6:13, 개역)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갈 6:14, 개역)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5, 개역)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갈 6:16, 개역)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 6:17, 개역)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 6:18, 개역)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골 2:1, 개역)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골 2:2, 개역)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 2:3, 개역)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 2:4, 개역)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골 2:5, 개역)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골 2:6,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골 2:7, 개역)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8, 개역)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9, 개역)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10, 개역)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 2:11, 개역)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2, 개역)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3, 개역)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8, 개역)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 2:19, 개역)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20, 개역)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골 2:21, 개역)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 2:22, 개역)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 2:23, 개역)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결국 예수의 흔적은 상대적인 껍데기 모양 갖추기 라는 인간의 숙제냐 빈칸채우기냐
십자가의 능력은 반대로 육의 모양이라면 육의 자랑이 되는데
도리어 미움받는 고난 속에 들어감에 있어서 도리어 능력을 받더라 말이죠
그 사람이 그리스도가 당한 능욕을 억수로 잘 참는 성격이라서 능력이 아니라
절대로 못 참는데도 불구하고 옆에서 그를 붙잡아 주시는 분을 보여주는 누락됨을 보여준다 말이죠 분명 고아인데 고아가 안넘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고아의 숙제가 아닌 후견인 고엘이 옆이서 일으켜주는 그 능력을 누락됨으로써 보여주더라 말이죠 이게 포착불가의 비유 비밀이다 말이죠
어 분명 넘어졌는데 일어날 힘도 없어 보이고 어 어떻게 일어났지
오뚜기처럼 그 사람 속에 자석이 있는가? 아니다 말이죠
그 뒤에서 오뚜기 되신 주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게 일으켜줬다 말이죠

그러니 우리의 불의함이 즉 고아 됨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더라
후견인 고엘을 나타내더라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하더라 라는 겁니다
은혜가 먼저 떳기에

이것을 비웃던 
바울의 복음을 거짓으로 몰던 자들은
자기들이 그 동안 자기 숙제로 해 왔듯이 뭐 눈에 뭐 눈만 보인다 라고
내가 불의한 숙제를 하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내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난다 라고
그카이 너는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아니 그것 잘못 좀 알았다 라고 제대로 좀 이해 되게 말해주면 어때
바로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해 버리니
이것은 동맹의 마음 일치성 합일성 연합성이 일체 없어요
오히려 성령은 단절성입니다 심판성입니다
그 심판성이 바로 하나님의 의 인데
내가 생각하는 의
내가 생각하는 선으로 보고 있으니 이게 다른 복음
거짓사도
경건의 모양이다는 거죠
사기치는 겁니다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 하시는 겁니다
의도 죄도 심판도 용광로 속에 집어 넣었다 빼 보니
불순물 찌기 혼합물을 다 빼서 보니

우리가 알던 그런 의 아닙니다
우리가 알던 그런 죄 아니다 말이죠
그럴 것 같으면 열국의 여자들이
모든 나라의 여자들이 애곡을 할 리가 없지요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는 자들을 보고 주님께서 민망해서 우십니다
즉 인간의 울음은 거짓되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겁니다
우리가 우는 이유와 전혀 안 맞아요

오늘날 교회를 보고 우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천국을 보내는 일을 하는 교회가 예루살렘이
지옥을 보내는 일로 하는 강도의 소굴이 됨을 보고 우시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볼수 있겠습니까?

가장 경건의 모양을 갖추었는데
누가 그것을 깨고서 반대로 볼수 있겠냐 말이죠

다들 애굽이 잔칫집 같고
에덴동산 같은데
같다 라는 말은 다들 동의를 하고 그 잔칫집 건설에 에덴동산 같은 곳 건설에
너도 나도 동참을 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하로 내려 보내시겠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즉 그리스도의 할례 곧 연합 한 몸 됨을 누린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되지 못하는 것들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닌 것들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골 2:8, 개역)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11, 개역)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2, 개역)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8, 개역)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 2:19, 개역)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20, 개역)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골 2:21, 개역)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 2:22, 개역)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 2:23, 개역)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이상하죠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닌 것이 뭔고 하니
손할례를 지키는 자들의 율법지키기 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이래요
왜? 의문의 증서에 쓴 것들이기 때문에
백날 해도 의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문의 반복이다 라는 빈칸 채우기라는 미완료 이다는 겁니다
즉 그림자 이다는 거죠

이미 완료가 있는데
이 완료를 못 누린다 라면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닌
손할례이고 여전히 그림자를 쫏고
여전히 초등학문으로
그리스도를 쫓아서 난 것이 아니다
헌 술 헌 부대이다 라는 겁니다

자 이래 말하니까 방종이라는 인간의 윤리 도덕에서 나오는
도덕 질서의 반대 개념을 가지고 와서 교리화 신학화 하더라 말이죠

자 그러면 그들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한다 라는 말씀을 이해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 하겠느냐 라고 미리 이야기 함에도 불구하고
또 초등학문화 즉 빈캄 채우기
그림자 취급해 버리는 겁니다

죄도 모르는 거죠
의도 모르는 것이고요

죄란 반성할 수 있는 것이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아닙니다
내가 언제든지 유턴해서 돌아설수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라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의도 주님의 선하심도 우리의 선이 아니라
상대방 곧 죄인이요 원수죠 그 원수의 죄악을 제대로 심판하고서
다시 싸매어 주는 겁니다

우리는 암덩어리를 제거 할수 있는 의사의 기능도 없을뿐더러
그래서 대충 대충 고치는 평강이요 평강이요 라고 
긍적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웃음치료 레크레이션과 같은 그런 짓만 할 뿐이다 말이죠
이게 교회에서 유행했지요 요즘도 여전하죠 그거 주님께서 상을 엎어버려서
다 쫓아내시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인간의 의를 쫓아내지 않으면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일 생각지 않는다 라고 하시지 않으면

즉 내 속에 의가 없습니다 정직한 영이 없습니다 라고 고하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앞뒤 모순된 간극 벌리기
공백 빵구멍 뻥 뚫으심이 아니면

하나님의 의도 모르고
즉 하나님이 누구신지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는 거죠

아니 이스라엘이 창조주가 누군지 모를까봐
네 몰라요

오죽하면 이스라엘이 망하니까
하는 소리가
안 망하도록
제물을 제대로 바쳤으면 안 망했을텐데
양식 떨어졌다고 그만 바치지 않으니까 그래서 망했다 라고

오늘날 목사들이 망해도 계속 헌금을 멈추지 말라 라고 사기치는 것과 같다 말이죠
신앙상담을 방송국에서 할 때 부동의 1위가 십일조 이다 말이죠
제 블로그 시작때부터 부동의 검색어 1위가 십일조 였는데

최근 10년 안에 싹 다 사라졌다 말이죠
내기 싫으면서 왜 억지로 내냐 말이죠
주님은 주시는 분이지 받는 분이 아니다 말이죠
그래서 제발 십일조 받으세요 라고 하니까

이놈의 목사사모 전도사사모 채팅모임에서 발악을 해요
과연 지금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발악해야 할까요

얼마나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으면
인간에게 손 벌리는 겁니까
무슨 앵벌이 땅거지 입니까
궁금하면 오백원 ~~~~~~~~~~ 궁금하면 십일조 꽃거지 이냐 말이죠

얼마나 후견인이 없었으면
얼마나 용서함을 받지 못했으면
죄 사람을 받지 못했으면

인간 숙제로 빈칸 채우기 라는 그 미완료
그 그림자를 쫓고 있으냐 말이죠

이 다른 복음과 대비해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외치듯이

할례 없는 자들은 이미 지하로 지옥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것은

이미 완료가
이미 주의 팔이
구원의 뿔이 떳기에

우리가 먼저 빵구멍 뚫히는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일어나고

저들의 끝을 보는 겁니다

우리가 잘나서
내 숙제를 제대로 단 한 개라도 한 것이 잇어서가 어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저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 덕분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 그리스도의 할례 덕분에

우리가 무할례자 임에도 불구하고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 탄식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겁니다

이미 나음을 입었기에
완료가 덮쳤기에
이제 왜 용서 받았는가 라는 과정을
이미 무시험 합격 해 놓고서
다시 문제 하나 하나 어떻게 주님 홀로 정답을 풀었는지
숙제를 완료 했는지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 그래서 나는 틀리고 싶어도 틀릴수가 없군요
주님이 반칙으로 대신 시험 쳤으니
이 완료가 덮쳐버린 이상 말이죠

어떤 무식한 놈이
생각만 해도 얼마나 무식한지
자꾸 내로 남불 자기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는 불륜 이라고
자기 따나 공격한다 라고 나대던데

무식한 놈  이거 코메디에서 자주 봤죠 맹구였나 ㅋㅋㅋ

나의 불륜이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더라 말이죠
이게 말이 안되어야
자기 꾀에 자기가 속도록
저 따위 소리를 하게 되는 겁니다

은혜가 더 
로 검색응 하니
새로운 것이 보였습니다

(롬 11:6, 킹흠정)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찾는 구절은 이건데 말이죠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0, 새번역)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킹제임스 번역 별로 안 좋아라 하는데
왠일로 도움이 되네요

[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


행함 곧 인간 숙제로 된 것은 은혜가 될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 다른 번역 봅시다


(롬 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6, 새번역)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다음 내용이 더 첨가되어 있음.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은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위는 이미 행위가 아닙니다'


그 은혜가 바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환자 쪽에서 할 수 없는게 뭡니까 의사의 기능이다 말이죠 네네네 미국처럼 의료보험이 너무 커서 자기 스스로 째고 자기 스스로 꿔맨다 라고 해도 그거 의술이라고 하지 않지요 땜빵이 무슨 병고치는 겁니까 수술입니까? 대충 대충 이지요
은혜란 행위 밖에서 오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이지요

환자에게 돈 수천억은 선물 압니다
수천억이 새로 생겨도 오늘 밤 암으로 떠나면 그 돈 누구것이 되겠습니까?
환자에게서의 은혜란 오로지 의사입니다
가짜 의사도 있겠지요 돈 밝히는 의사는 대충 고쳐서 돈만 뜯어가겠지요
그러나 진짜 의사는 자기 목숨을 살과 피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섬기는 자 이겠지요

바로 할례없는 자
언약을 마음 판에 새겨주지 않는 자

찢으셨으나 싸매어 주시지 않는 자란

이 화목제가 없는 자입니다
이 완료가 아니면
미완료의 반복만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그림자만 쫓을 뿐입니다

이 할례 없음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할례가
그 완료 다 이루었다가 덮쳐지지 않기 때문에
할례없음이 뭔지도 모르고 할례 지키기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나 이군요 임을 모르는 자는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예수님 뿐인지 모르기에

또 의문의 반복의 자기 숙제릏 할 뿐입니다
곧 할례 없는 자와 함께 지옥으로 내려가는
열국의 여자
바알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여자와 같습니다

나는 주모가 되리라
내 자식은 고아가 되지 않으니라

나는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되리라 라는 이 그림자를 쫓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