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장이 비유와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 (롬 9,19-23)
22-055 토기장이 비유와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 (롬 9,19-23)
2025. 3. 23.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주의 날과 애굽 왕의 악한 날) (롬 9,13-18)
로마서 2022 2025. 3. 1. 14:08
22-054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애굽 바로 왕의 악한 날과 주의 날) (롬 9,13-18)
〈롬 9,19-2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찬송가 199장 새 265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찬송가 403장 새 303 날 위하여 십자가의〉
〈찬송가 199장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새찬송가 265장〉
1.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 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2. 흉악한 죄인 괴수라도 예수는 능히 구원하네
온 몸을 피에 잠글 때에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3. 심판할 때에 모든 백성 행한 일대로 보응받네
죄 있는 자는 죄를 믿게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4. 구주의 사랑 크신 은혜 보혈의 능력 의지하세
심판의 불이 내릴 때에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찬송가 403장 날 위하여 십자가의, 새찬송가 303장〉
1.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2.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한량없이 즐겁고 / 주 성령의 위로함이 마음속에 차도다
천국 음악 소리 같은 은혜로운 그 말씀 / 끊임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3. 이 세상의 모진 풍파 쉬지 않고 불어도 / 주님 안에 보호받은 우리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 주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 안할까
〈롬 9,19-2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개역)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개역)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개역)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19, 새번역) 그러면 ㉪그대는 내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실제의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임
(롬 9:20, 새번역)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 ㉫실제의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임 ㉬사 29:16; 45:9
(롬 9:21, 새번역)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롬 9:22, 새번역)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보이시고 권능을 알리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대상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롬 9:23, 새번역)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앞서 하나님이 불의 하시뇨 라는 말씀을 대했습니다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그 앞서서도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했을때에
역시나 인간의 머리에서는 반발성이 드러났습니다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5, 새번역)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본 것입니다.)
그래서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이 연장선상에서 오늘 본문도 인간이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것을 익히 알고서
하나님이 불의하시뇨처럼 하나님이 허물이 있으시뇨 라고 또 역시나 반발성을 전재하고서 증거하십니다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즉 아무리 봐도 허물 덩어리 이고 모순적이다는 거죠
그렇기에 인간은 반드시 대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대적 안하고파도 대적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앞서 살펴봤지요
(롬 8:31, 개역)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1, 개역)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2, 개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개역)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개역)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개역)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개역)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대적 송사 정죄에 주님은 상대적인 두 언약의 한세트로써
대적 에 대해서는 성령의 은사를
송사 에 대해서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곧 우리가
바로 지난 주
23-32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후견인에게 걸맞는 고아라는 불쏘시개) (호 14, 1- 3)
2025. 3.16.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곧 고엘 즉 후견인이 되신다 라는 겁니다
고아란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받아줄수 없는 버림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다들 송사 하기 딱 좋아요 무조건 뒤짚어 씌워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도
아무도 모르는 자 이다는 겁니다 즉 보호자가 없으니까요
보호자 전쟁 아시죠? 갈렙이 열명의 정탐꾼의 주장인 우리는 메뚜기이다 라는 주장에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왜?? 저들은 보호자 곧 후견인이 없으니까
이게 보호자 전쟁이다 라고 했잖아요
(민 14:9, 개역)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그 갈렙이 바로 고아 출신이거든요 즉 이방인 출신인데 유다지파로 편입이 되었다 말이죠
정작 본 자식 혈통 따지는 자들은 보호자를 안 믿는데 말이죠
자 그리도 마지막 세 번째
대적 송사 그 다음 정죄에 대한 주님이 준비하신 언약은 약속은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 예수 곧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가 즉 심판주 이다는 거죠
친히 간구하신다 라는 겁니다
심판 주가 곧 구원 주가 되셔서 말이죠
그것도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이기에
죽음이라는 사망의 권세가 이미 무용지물이 된 판국이다는 겁니다
그래놓고 사망아 누구를 쏘느냐 말이죠
그 죽음이 허구였다는 것을 밝힌 분이 친히 간구하셨다
베드로야 믿음 떨어지지 말라꼬 말이죠
베드로는 마치 구약의 출애굽 사건처럼
이스라엘이 애굽 군사로 인해서 죽음으로 몰렸을때에
모세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라 했던 것처럼
베드로가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라는 겁니다
이미 믿음 다 탈탈탈 털려서 다 떨어진 자에게 말이죠
즉 주님의 믿음으로 밀어붙이심 만이
마귀의 베드로 잡았다 라고 밀까부듯이 정죄하는 그 정죄를 이기는
이 사망 권세를 이기신 믿음은 예수님의 믿음으로 친히 간구하심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다 라는 거죠
즉 이 말은 세상은 어떻게해서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려고 발작 하도록 되어 있고
우리는 그로 인해 죽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오로지 다시 사는 것은 예수님의 믿음으로 친히 간구하심이지
인간의 믿음은 죽음 속으로 몰아갈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왜? 우상의 실체가 드러나면 안되니까 말이죠
그리고 그 죽음 속에서 다시 사는 실상인 믿음을 나타낼수가 없는
믿음의 껍데기 모양 흉내만을 내는 행항 밖에 안나온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믿음만이 그 허상인 죽음의 실체를 까발리시고자
죽음으로 몰아가서 그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시는
믿음이라는 실상을 나타내는 겁니다
인간은 행함 밖에 안나오고 즉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는 거죠
자기 정당성을 확보 할려는 빈칸에 답 적기 라는 미완료로
그 그림자를 추구하지 허구죠 허구 죽음 아래에서 말이죠
살싱인 믿음 곧 보이지 않는 증거를 나타낼수가 없는 겁니다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즉 인간은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 라는 것은
타인이 볼 수 있는 것 까지만 의식해서 그 조건을 갖추는 겁니다
필요충분조건처럼 말이죠
결국 죽은 뒤에는 볼수가 없고 볼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안 보이는 보이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원함으로도 달음박질 함으로도 안되는 아무리 바라고 바래도 그 타인도 죽은 자가 사라진 입장에서 무슨 수로 볼 수 있으며 타인 역시나 죽음 뒤에 사라지기 때문에
한계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은 살아있을 동안만이다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죠
자 그런 입장에서 인간은 자기 있음 살아있음에서만 한계가 쳐져 있는 상황에서 보는 겁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은 안 보이는 거죠
그래서 말할 수가 없어요 비트겐 슈타인 철학자 말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런 행함 곧 인간이
먼저 있엇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있었기에
그런 인간의 논리에 즉 시공간에 안 맞춰주신다는 겁니다
우주에는 시간이 없어요 인간이 자기 편리하기 위헤서 나온 우상 개념 곧 허구 개념입니다
주님의 시공간이 있어요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만든 시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공간을 인간이 자기 유익에 도움 되고자 주님의 시공간 개념을 끌어와서
동맹 동질성 합일성 연합 합체 시켜버립니다 마치 성령론의 개방성처럼 말이죠
아니 임의로 부는 바람을 아무리 합체 시키고 연합 동맹 시킨다 라고 해서
바람이 인간 뜻대로 불어줄까요?
결국 인간 자체가 우상이다는 겁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것을
과학하고 앉아있네가 지금은 삭제 했지만 그때 비판할때에
하나님 스스로가 다른 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 보니까
나 외에 신이 없다 라는 것은 잘못된 거다
본인 스스로가 모순 된 것을 인정하는 거다 라고
철학자들이 말 꼬리 잡고서 따지는 것처럼
논리의 모순점을 찾았는냥 기고만장하던데
바로 그 자체가 증거가 된 거죠
신약에서의 우상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이다 라고 했거든요
(골 3:5,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건 단순히 경건주의자가 되어라가 아니라
오히려 경건주의자들이 우상숭배자이다는 겁니다
껍데기로써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으니까 말이죠
아무튼 탐심 곧 하나님의 모순점을 찾겠다 라는 것 자체가 탐심
곧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겟다 라는
새벽별 계명성 교만한 왕과 같다는 거죠
심지어 저런 것을 떠벌리기 까지 하잖아요
거봐라 하나님의 모순점 이 십계명의 모순점을 내가 증명했다 라고
내가 가 먼저 되었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자기에게 도움 안 되는 그런 미신적인 요소가 안되면 이제
신을 인간 스스로가 심판하는 겁니다 물론 그런 신도 자기 투사로 만들어낸 허구이지만 말이죠
인간 자체가 허구이기에 신을 맨날 만들어내는 겁니다
호모 데우스 즉 자기자신을 만들어 내어요
교만한 바벨론 왕처럼 말이죠
자 아무튼 진짜 믿음은 바로 이런 허상인 죽음 속으로 몰아가서
믿음이라는 실상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에게서는 믿음이 있을 수가 없어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결국 오늘 본문으로 치면
진짜 죽음이라는 절대 죽음을 퍼붓는 자가 누구인가?
허구인 죽음이라는 사망권세인가
아니면 심판 주 이신가 라는 점에서
사망권세인 죽음이라는 허구처럼 주님이 허물하신가?
불의하신가?
아니면 그 어떤 인간도 예외 없이 다 죽어 마땅한 진노의 그릇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심 즉 용서해주심으로써
도저히 돌아올수 없는 탕자를
돌아오겠끔 하신 이 제대로 찢으심 곧 죽이시는 심판 주 되심이
나 보다 옳았다 라는 것인가 라는 점에서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딱 한 분 남겨둔 한 씨 예수님 뿐이고
모든 인간은 이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하나님이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아들이다 라는 이 분을 죽여버린
그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됨을 유감없이 드러낸
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진노의 대상으로 까발려 졌다 말이죠
그 속에서 우리 손에 죽임을 당하신 분이
친히 간구하심으로써
먼저 토기장이 되심으로써
즉 그릇이 먼저 됨이 아닌
토기장이 되심이 먼저 되심으로써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의사를 말하기 위한 환자 라는 그릇을 만드심으로써
즉 죄 짓는 죄인은 그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의가 곧 찢으심과 다시 싸매시는 심판주가 토기장이가 만들어내었다 라는 겁니다
주께만 범죄한 자는 토기장이가 만들었어요
그카이 사도바울이 자기가 죄 지은게 아니라 자기 속에 죄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속을 필요가 없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즉 미리 마귀가 덮쳐져서 예수님울 세 번 부인한다 라는 것을 미리 아시고
마귀에게 포로 잡혀 와서
십자가에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할 줄 아시고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나타나는 마귀에게 사로잡힐 줄 아시고
미리 죄 값을 치르시는
이 은혜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함을 이루시고자 말이죠
그렇다고 또 잔머리 굴려서 아 은혜를 더 할려면 우리가 죄 일부러 지어야 겠넹
또 이래 나오는 놈 반드시 있다 라는 것을 아시기에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놈들이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사랑 없는 울리는 꽹과리 이다 말이죠
의사를 말하기 위해서 성령으로 인해서 환자가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성령을 대적하는 환자가 되겠다 라고 하니까
이들은 화로다 나여 나는 지옥의 몸 죽음에 이르는 병든 몸이구나가 아니라
나는 니 보다 잘났지롱 이라는
결국 자기 의를 쌓는 놈이지
하나님의 의를 의사되심을 나타내는 찢겨졌다가 다시 싸매주심을 받는 환자가 아니다 라는 거죠
그레서 오래 참았다 관용하셨다 라는 것은
지금 당장 죽여도 시원찮을
그런 심판주 앞에서 벌벌벌 떠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심판 주 앞에 서는
사자 앞에 비둘기 이어야 하는데
아니 이놈들은 간땡이가 부었나
너는 죄인 될 줄 모르지
나는 죄인 될 줄 안다 라고
자기를 증거하고 있지
벌벌 떨면서 주님을 나타내고 있지 않더라 말이죠
아니 심판주를 나타내어야 할 자는 두려워서 벌벌 떠는 자 인데
뭐 이딴 놈들은 지 잘났다 라고 역시나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겉모양만 갖추는 그 행함이
과연 믿음이라는 실상 앞에서 무사 할수 있겠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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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에 의해서 즉 십자가에 의해서 모든 육체는 발가벗겨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로 지난 주 말씀처럼 고아 라는 것이 들통나도록 되어 있어요
그 고아란 후견인이 손수 직접 마련한 피 보혈의 피 곧 인애와 자비에 걸맞는 고아 만들기 인데
이것들은 나는 부모 보호자 잔소리하는 사랑의 매 없는 징계 없는 사생아 고아 이다 라고
너는 멋대로 사는 고아 될 줄 모르지
나는 고아 될 줄 알아서 마음대로 살지 라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오래참고 관용하시는 분을 드러낼 마음이 없는
보호자를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그야 말로 징계가 없는 사생아 이다는 거죠
그카이 진노 당하는 너는 진노의 그릇
나는 징계가 없는 긍휼의 그릇이라고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할때에
아니 그럼 토기장이가 먼저 있으면 뭐 합니까
토기장이가 나중에 이렇게 징계없는 자신을 긍휼의 그릇 삼아주는 시다바리가 되어주고 있는데 말이죠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이미 토기장이가 먼저 떳기에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흥함과 패함의 기준인 토기장이의 오래참으심과 관용하심
즉 제대로 죽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결국 이것은 이미 인간이 선택과 버림
구원과 심판은 이미 자기들끼리 추구하는 상황에서
탕자는 심판 받았고
맏아들 본인은 이미 구원되었다 라는 그 의식 자체가
토기장이 비유가 놀랍게도 다리 걸어서 그런 사고방식에 거리끼는 걸림돌로 실족케 만들어버린다 라는 겁니다
누가 봐도 악한 놈 탕자 이 놈은 누가 봐도 진노의 그릇
누가 봐도 선한 자 맏아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누가 봐도 긍흉의 그릇을
주님은 우상이 된 인간 보란 듯이 마귀보란듯처럼
팔을 어긋맞게 하신다 라는 거죠
왜냐하면 구원을 선택을 인간들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취급하고 있지
정작 심판 주의 취지는 전혀 모르니까 말이죠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까지 했던 십자가의 사건 자체가 증거
또렷한 증거로써
인간은 쥐 뿔도 아는 것이 없는데
무슨 진노를 알며
무슨 긍휼을 알겠습니까
뭘 해도 인간은 강퍅만 할 뿐인
완악한 수건만 더더욱 겹겹이 쓸뿐이지
그것을 도로 자랑만 할 뿐이더라 말이죠
마치 스펙 쌓기처럼 말이죠
한번은 미국인인데 미국에 한국어 마을을 세워서 홍보하는 분인데
이 분이 한국에 오면 한국인들이 자기들 곧 미국인 들과 이야기 할때에 한국말을 가급적이면 안할려고 하고 영어로만 말 할려고 한다고 하더라 말이죠
그 속내에 영어만이 고급 언어이고 한글은 마치 자기 스스로 천시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라고
엘리트 의식을 꼬집더라 말이죠
https://youtu.be/qbqll3_VZ44 29분 전부터 30분 쯤에 나옴
아무튼 우리는 진노냐 긍휼이냐 에 전혀 절대로 관여할수 없는
오로지 처분 대상일 뿐이지
그래서 토기장이 비유를 말씀 하시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더더욱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야말로 강요된 선택이지요)
더더욱 자본주의 시장 자유 시대에서
누가 처분을 받는 자리에 놓여지는 입장을 바라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오로지 못 먹어도 고 라고 우리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세대 그런 시대상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갇혔다 말이죠 강요당하고 있어요
그러니 자기를 우선시 하는 이런 우상사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상황인거 뻔히 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첫 맹세대로 밀어붙이심으로써
돌아올자 없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자 새로 만드심 앞에서
비로소 주께만 범죄한 새로운 죄인 만들기 앞에서
곧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라는 이 새로운 태에서
의의 그릇과
불의의 그릇이
이 십자가라는 가마에서 토기가 구어지는 겁니다
새로운 의 새로운 불의는 기존의 의와 불의가 통하지 않는
십자가로 갈라지는 겁니다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이 십자가만이 완료를 다 이루시지
나를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찢겨버리지 못하는 것은
삼일만에 다시 사는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긍휼을 알길이 없는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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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 파수꾼의 나팔 경고 (겔 33, 1- 6)
2025. 3.30.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애굽과 열국의 여자들 (겔 32,17-21)
에스겔 2019 2025. 3. 7. 22:53
21-090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애굽과 애굽동맹국 열국의 여자들 (겔 32,17-21)
〈에스겔 33,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2쪽, 찬송가 168장 새 180 하나님의 나팔 소리, 찬송가 102장 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새찬송가 180장(통168) 하나님의 나팔 소리
새찬송가 495장(통271)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새찬송가 94장(통102)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가 168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새찬송가 180장〉
1.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 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2. 무덤 속에 잠자던 자 그 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 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3.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 서도록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찬송가 102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 없네, 새찬송가 94장〉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2.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3.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에스겔 33,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2쪽〉
(겔 33: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3:2, 개역)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겔 33:3, 개역)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겔 33:4, 개역)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겔 33:5, 개역)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33:6, 개역)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겔 33: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33:2, 새번역) "사람아, 너는 네 민족의 자손 모두에게 전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만일 내가 어떤 나라에 전쟁이 이르게 할 때에, 그 나라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뽑아서,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자.
(겔 33:3, 새번역) 이 파수꾼은 자기 나라로 적군이 접근하여 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 자기 백성에게 경고를 하였는데도
(겔 33:4, 새번역) 어떤 사람이 그 나팔 소리를 분명히 듣고서도 경고를 무시해서, 적군이 이르러 그를 덮치면, 그가 죽은 것은 자기 탓이다.
(겔 33:5, 새번역) 그는 나팔 소리를 듣고서도 그 경고를 무시하였으니, 죽어도 자기 탓인 것이다. 그러나 파수꾼의 나팔 소리를 듣고서 경고를 받아들인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건질 것이다.
(겔 33:6, 새번역) 그러나 만일 그 파수꾼이, 적군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서도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하고, 적군이 이르러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을 덮쳤다면,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파수꾼에게 묻겠다.
파수꾼과 경비원은 전쟁의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기능입니다
결국 전쟁이란 적과 아군이 둘로 나누어진 상황에서의 싸움이 되는 거죠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아군으로써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파수꾼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팔 곧 경고 나팔을 불었고
그 경고 나팔 소리를 듣고서 경비원은 전쟁 준비를 하고자 겅계태세에 돌입함으로써
쳐들어 오는 적들과의 전쟁을 할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전쟁을 대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이미 전쟁에서 패 해서 포로된 입장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팔을 부는 파수꾼이 등장했다 라는 것은
전쟁이 터진다 라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이미 포로 된 입장에서
무슨 놈의 전쟁을 할 수가 있으며
포로가 이미 되었는데 경비원을 세워서 국가와 민족을 지킬수 있는
경계 경비를 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말이죠
이미 소를 잃고 양을 잃어버렸는데
외양간 고치면 뭐 하냐 다 잃어버렸는데 말이죠
잃어버리기 전애
포로가 되기 전에 했어야지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에게 파수꾼이 있다 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이시다 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어버렸기에
저쪽 적군의 편 즉 포로가 되었으니까
이 파수꾼의 나팔소리가 아무 쓸모 짝도 없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저 동화 책에 나오는 늑대가 나타났다 라고 외치는 거짓말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양치기 소년의 경고 외침 밖에 안되는 거죠 거짓말이다 말이죠
아니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평강이다 그것은 끝까지 믿어버려서 쫄딱 망해놓고서는
이제는 소 잃고 양 잃어버린 뒤에 외양간 고치는 짓 하지 않겠다 라고
청개구리에게 산에다 묻지 말고 개울가에 묻어달라고 하니까
뭐든지 반대로만 행동하는 이 청개구리가
그건 또 말을 곧이곧대로 하더라 말이죠
즉 바로 그런 식으로 이스라엘이 주님이 보내신 파수꾼을 대한다 라는 겁니다
아니 만약 파수꾼 너가 경고 나팔을 불지 않아서 저들이 경비하지 못해 죽게 되면
그 죄를 파수꾼 너 에스겔에세 묻겠다 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미 이스라엘이 그 청개구리 아들처럼
엄마 말 안 듣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개울가에 묻어달라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편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적으로써 간주를 하고서 나팡을 분다 라는 겁니다
그럼 파수꾼 지 혼자 그 나팔을 불고 지 혼자 경계를 서는 거죠
자 이런 식이다 보니
모든 행동 모든 말이 다 비유가 되니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아니 말귀 알아 먹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통되는 말을 해야
‘동질성 합일성 연합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건 같은 나라 말을 써도 서로 단절된 비유로만 말하고 잇으니
언어를 말라꼬 말하느냐
서로 소통하지 않을 꺼면 왜 말하느냐 말이죠
나팔 소리 자체도 경고로 들려와야 하는데
거꾸로 적군이 나타났다 적군이 나타났다
어디 어디? 이스라엘 너희들이 하나님의 적들이다 라고 뿌뿌뿌 나팔을 불면
이건 뭐 그 나팔을 부는 파수꾼을 가만히 두면 될까요 안될까요?
그래서 참 선지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그것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이다 라고 우기는 그 이스라엘로부터 말이죠
참선지자는 다 죽암을 당해요
즉 이 말은 반대로 누구는 다 살려둔다? 거짓선지자들은 다 살려두죠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다 라는 말은
마치 무당의 운명과 같습니다 곧 음녀죠
죽어야 할 본인들 무당들은 다 살려주고 거짓선지자 말이죠
즉 이 말은 반대로 반드시 그들이 죽이는 자들이 있는데
바로 산 자 반드시 살아야 할 의인들은 다 죽이는 겁니다
참선지자는 다 죽여요
구약때나 신약때나 오늘날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죠
오늘날 까지도 말이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언제까지 내 백성을 다 죽일래 라고
예수님이 우셨듯이 말이죠
세상을 향해 울지 않는 교회이다 보니
거꾸로 교회를 보고 예수님이 우시는 겁니다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말이죠
파수꾼을 등장은 지금도 주님이 싸우신다 라는 겁니다
물론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라 악한 영에 대한 전쟁을 말이죠
당연히 완료가 다 된 입장에서 말이죠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위하여 싸워달라고 뿌뿌뿌 나팔을 불었던 그 이스라엘이
오늘날 교회가
민수기 때처럼
(민 10:9, 개역)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민 10:9, 새번역) 너희의 땅에서 너희를 공격해 온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전쟁에 나설 때에는, 나팔을 짧게 급히 불어라. 그러면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 원수들에게서 너희를 구해 줄 것이다.
(민 10:9, 현대어) 이다음에 너희가 약속한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적들이 쳐들어와 그들을 치러 나갈 경우에도 나팔로 짧게 비상 나팔을 불어라. 그러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를 잊지 않고 생각하여 적들에게서 너희를 구해 주리라.
왜냐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적은 곧 하나님의 적이였다 말이죠
그런데 그 약속의 땅을 다른 이방인도 아닌
이스라엘이 더럽히고 애굽의 사고방식으로 도배를 해서
이젠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애굽화가 된
척박한 땅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러니 파수꾼을 줘도 이 이스라엘이
자기 배를 위한 우상숭배 용도로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삼고자 임금 삼고자 할때에
예수님이 도망 치셨듯이
파수꾼도 자기 배를 위한 자기 재산 자기 가치를 높이는데 이용하는 용도로 활용을 하다 보니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는 올무에 걸려들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먼저 있고 그 뒤에 왕이 있어서 내 도움을 위해 뽑듯이
어라 나중에는 이 임금이 백성을 등쳐먹더라 말이죠
그런식으로 내 도움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듯이
파수꾼도 그런식으로 자기를 위해 두었는데
파수꾼과 연합이 되기는커녕 단절이 되는
도리어 그 간극이 점점점 더 벌어지는
도저히 안 죽이고서는 안되는 판국의 단절성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목사
신학지식 성경지식
심지어 성령도 십자가의 영도
다 자기를 위해 내 도움이 되고자 옆에 두었는데
어라 도리어 거치는 반석이 되더라 말이죠
만수기 때처럼 동행했을때가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멸망후 이기에
더 이상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애굽화 되어버렸거든요
우상화 말이죠
그래서 파수꾼을 준 것을 도리어 자기 꾀로 옆에 둘려고 하니까
도리어 파수꾼에 의해서 부셔져야 할 판국에 놓여진
하나님의 원수로만 취급 당함을 보게 되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몽학선생으로써 저분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데
원수를 사랑하는 남을 용서하는 사랑의 완성 율법의 완성자를 가치키고 있는데
율법이라는 몽학선생을 옆에 둠으로써
껍데기 곧 번제와 제사만 할 줄 알았지
인애와 자비는 안 쳐다 보더라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보더라
즉 이 말은
불뱀 아직 안 물렷따 라는 배불러 터진 의식이다는 겁니다
아직도 자기 숙제로 빈캄에 여백을 채울수 있다 라는 가능성을 보더라 말이죠
배불러 터진 겁니다
파수꾼은 미래에 예언 곧 모조리 다 하나님의 원수이 자리에 놓이시는
이 새언약을 외치는데 다윗언약을 외치는데
아직도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고
북이스라엘이 망했던 그 코스대로 고대로 가는 겁니다
원수의 자리가 아니면 그 처음자리가 아니면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는 줄도 모르는
그 정도로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모르는 겁니다
파수꾼의 나팔경고를 의식하고 아 적이 나타났군요
이제 우리 힘으로 그 적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를 경비를 구축하겠습니다 라고
방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라는 차원에서 파수꾼을 준게 아니라
율법을 준게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적으로써 놓여졌기에 포로 잡혀왔다 라고
왜 포로 잡혀왔고 왜 쫄딱 망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파수꾼입니다
여지없이 인자 에스겔이라는 파수꾼을 죽일려고 하듯이
예수님도 파수꾼 되심으로써
자기 편이 안 되어 준다고 여지없이 죽이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 보세요 정치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자기 편 안 들어주면 복수를 하는 겁니다
빤스랑 세이브랑 고려측이랑
돈 때문에 서로 원수 지간 되잖아요
돈만 들이대면 서로 원수 되었다가
서로 돈되는 유익이 되면 또 언제 그랬냐 라듯이 우리가 남이가 하고 나오는 겁니다
네 맞아요 오늘날 교회는 정치집단일 뿐입니다
자 이렇게 모조리 다 하나님의 원수가 된 입장에서 뭐 만이 정답입니까?
절대심판만이 유일한 산 소망이 되는 겁니다
그 징계의 몽둥잉가 아니면 다 죽은 겁니다
파수꾼을 이 징계의 몽둥이를 외치는 겁니다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다 라는 거죠
이미 망한 멸망한 자리인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네 맞아요 율법이 우리를 죄 아래로
바벨론 포로 아래로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그 어둡고 캄캄한 깊은 바닷속 아래로
그 애굽의 영광이 하루 아침에 지하로 내려가는 모든 열국의 여자들과 함께 내려가는 그 아래에서
누구를 보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
세상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
우리는 이 멸망의 자리에서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이 어린양이 먼저 떳다 라는 이유로
이 화목제
이 꺽으신 뼈가 먼저 떳다 라는 이유로
다윗이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로써
이 사망의 몸에서 건재달라고 우는자로 만드신 겁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기생 라합은
자기 나라를 쳐들어 온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듣고 간담이 40년 동안 녹아버렸다 말이죠
자기와의 동질성 합일성이 있는 자기 민족 자기 나라 자기 신을 냅다 갖다바쳐버리고 말이죠
종말을 본 겁니다 이미 다 타버릴 것을
그 타버릴 지옥에서
이 지옥의 몸 건져 달라고
그 여호와의 이름이 곧 경고 나팔로써 간담이 녹았다 말이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자의 팔
곧 찢으셧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그 팔을 그 하나님의 의를 구했고
주의 나라 곧 이스라엘 나라를 구했다 말이죠
아니 적국인데
자기 나라를 멸망시킬 나라인데 말이죠
일만 군사를 이만 군사가 쳐들어 오는 것을 보고 화친을 청했는데
그 나라 임금도 아닌 기생 라합이 화친을 청했으니
기생 라합만이 구원을 얻는 겁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세계
그리스도의 몸만 구원 되는 동행인데
나 이스라엘이다
내 옆에 파수꾼 있다 라고 내 편 만들었다 라고 한 그 꾀가
그 노림수가 도리어 올무가 되어서
자기 꾀에 자기가 누워서 침뱉기 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내 유익에 이용해 먹을려다가 도로
거리끼는 걸림돌에 넘어지는 겁니다
아니 안 그런 놈이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징계의 매를 대시는 그 사랑이 먼저 떳기에
그 사랑이 무조건 옳았고
나는 뭘 해도 무조건 틀리도록 하셨기에
이 하나님의 이 곧 나를 제대로 찢으시는 분만이 나를 제대로 싸매어 주시는 분으로써
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고 그의 나라를 구하라 이 말은
이제 내가 의지할 눈에 보이는 국가는 없는 겁니다
그러면 기생라합처럼 냅따 팔아벌이는 것들 뿐이다는 거죠
그카이 장부조작까지 하는 이 불의한 청지기가 옳았던 것이 맞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했던 자칭 빛의 자녀들 보다 백배 천배 나은 자가
불의한 청지기 곧 기생라합이니까 말이죠
이런 매국노 세리가
주의 이름에 딱 맞는 겁니다
간담이 녹아 40년 동안 벌벌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하나님의 의에 벌벌벌 떨었으니 말이죠
도리어 십일조 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매국노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았구요 라고 자기 의를 네세우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는 겁니다
7에 70번의 용서만이 우리를 간담이 녹게 만드시는 주의 이름이니까 말이죠
남 7번 용서한 자기 의를 쌓는 자는 주의 이름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겁니다
아주 아주 멋들어진 구원 따낼려고
그 이름을 망령되게 일컷는 겁니다
자기 배를 위하여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말이죠
파수꾼은 바로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의 적으로써 예언하고 있습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안되는 원수임을
그 원수의 자리에서
주의 이름을 보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봄으로써 벌벌 떨라 라고 말이죠
이 심판의 경고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이였기에 말이죠
그러니 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질 필요가 없는 겁니다
‘곧 사랑의 빚은 뭡니까
파수꾼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적됨을 고발 당해
모조리 탈탈탈 다 부서지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로 만드시게 했던 그 사랑의 빚처럼
우리도 파수꾼으로부터 가루가 되었듯이
우리 또한 이 사랑의 빚을 퍼붓는 겁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외에는 구하지 않도록 가루로 만듬으로써
하나님의 적의 자리에서 용서받도록
이 십자가의 용서에 모조리 가루로 만드는 탈탈 털어버리는 빈공백 이 간극
이 빵구멍 내도록 말이죠
그 카이 먼저 빵구멍 당하는 겁니다
요나도
엘리야도 내 열심히 특심이라는 것이 빵구멍 당해야
이제 남들에게도 이 십자가의 용서를 불의한 청지기처럼
하나님의 의를 구하겠끔
삼년반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했듯이
아주 아주 빵구멍 제대로 다~~ 가 되도록 말이죠
마구 마구 빵구멍 내는
십자가로 막 수셔대는 자로써 말이죠
바로 이 전쟁을 하는 겁니다
이미 다 완료가 되었기에
택배가 도착 완료 되었기에
이제 사용후기를 누리는 겁니다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미완료가 아니라
다 이룬 완료로써 다시보기를 하면서 감격을 누리는 겁니다
그 징휴를 즐기는 겁니다
이미 감사가 떳기에
예 뿐이요 아니요 함이 없음을 다 이루었기에
그 증상을 예 로써만 누리는 겁니다
뭐든지 십자가의 다 이루심 뿐이기에
그 피 흘리심 뿐임을 누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