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쪼개지는 고린도 교회 (고전 1; 1- 3)
25-001 십자가로 쪼개지는 고린도 교회 (고전 1; 1- 3)
2025. 4.27
누가 지혜로 깨달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겠느냐 (호 14, 4- 9)
호세아 2023 2025. 4. 5. 15:37
23-33 누가 지혜로 깨달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겠느냐 (호 14, 4- 9)
〈고린도전서 1; 1- 3,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찬송가 033장 새 069 온 천하 만물 우러러, 찬송가 087장 새 087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찬송가 033장 온 천하 만물 우러러, 새찬송가 069장〉
1. 온 천하 만물 우러러 다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금빛나는 밝은 해 저 은빛나는 밝은 달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2. 힘차게 부는 바람아 떠가는 묘한 구름아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돋는 장한 아침해 저 지는 고운 저녁 놀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3. 저 흘러가는 맑은 물 다 주를 노래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조화 많은 밝은 불 그 빛과 열을 내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4. 저 귀한 땅은 날마다 한 없는 복을 펼치어 할렐루야 할렐루야
땅 위의 꽃과 열매들 주 영광 나타내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5. 7에 70 용서받아라 주님 대신 죽으셨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고통과 슬픔 지닌 자 네 근심 주께 맡겨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6. 주 은혜 받은 만민아 다 끓어 경배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십자가 달린 주님께 존귀와 영광 돌려라 주를 찬양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 멘
〈찬송가 0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새찬송가 087장〉
1.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을 참 아름다워라, 그 향기 내 맘에 사무쳐 내 기쁨되도다
시온성보다 더 찬란한 저 천성 떠나서, 이 천한 세상 오신 주 참 내 구주님
2. 내 주는 쓰라린 고통을 다 체험하셨다, 주 지신 십자가 대할 때 나 눈물 흘리네
시온성보다 더 찬란한 저 천성 떠나서, 이 천한 세상 오신 주 참 내 구주님
3. 내 주님 입으신 귀한 옷 나 만져 봤도다, 내 발이 죄악에 빠질 때 주 나를 붙드네
시온성보다 더 찬란한 저 천성 떠나서, 이 천한 세상 오신 주 참 내 구주님
4. 내 주님 영광의 옷 입고 문 열어 주실 때, 나 주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겠네
시온성보다 더 찬란한 저 천성 떠나서, 이 천한 세상 오신 주 참 내 구주님
〈고린도전서 1; 1- 3,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고전 1:1, 개역)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2, 개역)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3, 개역)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 1:1, 현대어) [인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과 믿음의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2, 현대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지고 하나님께 용납을 받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분과 각처에 흩어져 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주님이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주님이십니다.
(고전 1:3, 현대어)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크나큰 복과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고전 1:1, 현대어) [인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과 믿음의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10, 현대어)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고전 1:18, 현대어)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리석게 들리는가를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고전 1:1, 쉬운) <인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4, 쉬운) <바울의 감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전 1:10, 쉬운) <교회 안에 일고 있는 파벌>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모두 의견을 합하고 여러분 사이에 편을 나누지 마십시오.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가 되십시오.
(고전 1:18, 쉬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떤 목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부활신앙을 가져야지
더 이상 십자가 라는 부정적인 신앙은 한번으로 족하지 자꾸 십자가 십자가 고만 카라
이제 제발 부활 부활 캐라 말이죠
살 생각 해야지 왜 자꾸 죽음을 자꾸 말하느냐 고만 캐라
그런데 그 목사는 부활신앙이 바로 십자가 신앙임에도 불구하고
구지 부활신앙과 십자가신앙을 따로 구분짖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부활신앙이 아닌 십자가신앙으로 교회에 폐해를 끼치는 사건들이 벌어지다 보니
교회에 더 이상 도움이 안된다 라고 덕이 안되니
짜증을 내면서 둘로 나누어 구분지으면서 한 쪽은 버려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오로지 부활 신앙만이 교회가 추구해야할 신앙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이 목사는 신약 때 라고 시간을 신약 곧 새언약이라고 언급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옛시대의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
헌술 헌 부대 말이죠
그러다 보니 시간을 자기의 시간으로 보기에
공간 곧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도
인간의 손으로 잘 세우고 잘 인도하고 잘 가르쳐야 한다 라고 본 거지요
언뜻 듣기에는 좋은 의미가 다 나오다 보니 그럴 듯 하지만
이 사람은 새언약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새언약 곧 신약의 시대에는 종말의 신앙으로써
이제 나의 시간과 나의 몸으로 하는 신앙은 없다 라는 겁니다
오로지 종말의 영으로써 곧 성령으로써 오로지 완료만을 누리는 겁니다
더 이상 할게 없어요
교회에 나오는 것도 실천을 하는 행함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그카이 십자가 고만 캐라 라는 거지요
교회 가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즐기러 누리러 가는 겁니다
즉 말려도 오는 겁니다
누가 밥을 먹을때에 행함으로 먹는자 봤습니까?
소풍 가서 밥 도시락 까먹을때에 행하자 지키자 실천하자 라고 하는 자 봤습니까?
그런 자 일꺼면 말리면 말려지는 겁니다
못 말리는 자는 즐기는 자입니다 감사해야지 해서 감사가 나오는게 아니라
감사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감사가 철철철 넘쳐서 감사가 저절로 나와 감사를 즐기는 겁니다
그 정도로 밥이 너무 너무 맛있으니까 그 정도로 감사의 영이 넘쳐 흐르다 보니 말이죠
그 완료가 바로 고린도 교회를 태어나게 한 겁니다
고린도 교회가 감사를 실천해서가 아닌
감사의 영이 수고함으로 잉태해서 낳은 그 결과물이 고린도 교회라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외치는데 어라 고린도 교회 속에서
십자가로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
이 십자가 고만 캐라 라고 반드시 거부히는 짓을 하도록 되어 있는
땅의 계집종 하갈의 짓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 완료는 그 완료 곧 다 이루심의 증상물로써 고린도 교회를 고린도 교회 답게 하시는
성령 곧 십자가의 영으로써 어떻게 치리 곧 다스림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으로써 고린도 교회를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누가? 섬기는 영을 받은 섬기는 자 사도 바울이 말이죠
즉 이 말은 다른 계통은 섬기는 자가 아니다 라면 반드시 양의 탈을 쓴 늑대로써
자기 유익을 구하도록 독촉하겠끔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방해꾼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아까 말한 그 목사와 같은 사고방식의 사람들
곧 사람이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가고 바르게 세우는가 하는 자들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자로써 등장하도록 되어 있는 거지요
에이 그럼 고린도교회는 미완성품이네
저런 방해꾼들이 다 사라져야 비로소 고린도 교회가 고린도 교회 답게 되는 것이네
제대로 된 완성품 완성된 교회가 될려면 한 참 남았겠네 아직 멀었네 라고
시간도 공간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결단코 아닙니다
이미 완성이 되었기에
완료된 입장에서 저런 방해꾼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자들을 붙이심으로써
이미 하나님의 깊이가 떳기에 사탄의 깊이를 두 언약의 한 세트로 구성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자 그래서 혹독한 매질을 고린도교회는 그 지역사회를 대표해서 죄악을 지적 받고
찢겨지고 또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보여주는
불의한 죄인으로 부름을 받는 겁니다
환자 만이 의사를 외치는 의사에 기능에 딱 맞는 자 이니까 말이죠
건강한 자는 쓸데 없는 겁니다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피입니다 동네사람들 이라고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처럼 외치라고 이 십자가만 자랑하라고 말이죠
그런데 십자가 아닌 것을 자랑하는 자들이 반드시 생김으로써
육의 자랑과 반드시 대조 시키시는 겁니다
끊임없이 후패 되어야 할 것과
날로 새로운 것을 대조 시켜주는
이 간섭 이 잔소리 이 사건들 곧 십자가의 사건을 끊임없이 유발케 하심으로써
고린도 교회는 교회의 모델
견본 본보기가 되는 겁니다
계시록 일곱 교회의 모습들을 다 지적 받듯이 말이죠
지독스럽게 간섭당하고 지적받고 징게받는 이 사랑의 관계를
거두지 않는 징계의 몽둥이를 항상 두시는 교회로써 끊임없이 패신다 라는 겁니다
그게 일곱 교회인데
어떤 무식한 목사는 단 하나도 지적 받지 않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목적으로 삼아서
이단 짓을 하다가 딱 걸려서
이제는 또 정통 교파에 들어가겠다고 법궤 뒤에 숨듯이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말이죠
여전히 자기 유익만을 쫓아 이리저리 정치짓을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 몽둥이의 기능 때문에
수술칼의 기능은 오로지 병마에게만 해당되는 기술인데
마치 의사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끊임없이 환자로 죄인으로 고아 과부 나그네로 들통당해야만 하듯이 말이죠
그게 호세아서 라고 했지요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말하기 위해서
호세아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망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요
치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호세아는 새언약 곧 다윗언약을 외치는 겁니다
그렇게 북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이 다윗언약을 거부하고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주장하는
그 똥고집을 절대로 못 버림으로써
망함으로써 다윗언약으로 들어오게 되는
이제 북이스라엘이고 뭐고 다 날라간 그 심판의 자리 곧
내 백성 아니다
내 사랑 아니다
내 자녀 내 싸앗 아니다 라는 그 자리에서
내 백성 맞다
내 사랑 맞다
내 자녀 맞다 라고 하시는 그 완료를 누리도록 하시는 겁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는 안 이루어 집니다
이미 다 이루어진 현실은 종말에서 누리는 겁니다
이 종말이 내 시간 내 공간이라는 역사가 아닌
오히려 그런 내 시간 내 공간이 다 날라가버린 묵시
곧 종말이라는 끝에서 완료에서 누리는 겁니다
끝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뒤 돌아 보면
(시 23: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었음을 보게 되는 겁니다
왜? 내가 부활신앙이든 십자가 신앙이든
종말 신앙 또는 뭐 묵시신앙이든 그 어떤 용어를 가지고 와서
그렇게 바르게 바른 신앙을 내가 지켜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윗처럼 나는 빠지고 다윗은 빠지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는 그 이유만으로
다윗은
곧 나는 아무리 악한 자이어도
아무리 다윗이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나서
주의 목전에 항상
간음죄 살인죄 인구 조사죄를 그때만이 아니라
늘 항상 날 때부터 저지를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태어났어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여호와는 나의 의사 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 완료 하나 만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 부족함을 느끼라고
의사의 의술 암덩어리 제거 수술의 기능을 느끼라고
우리를 수시로 빵구멍 내시는 그 수술칼 솜씨
그 다 이루셨다 라는 완료의 솜씨
성령의 솜씨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십자가의 피 용서의 솜씨를
아 내가 죄인 맞지
아 내가 환자 맞지 라고
죄인 환자 됨을 잊어버릴 때 마다
수시로 수셔대는 그 부족함 없는 몽둥이 빵구멍 내심
혹독한 수술칼로
나 의인 되고 말꼬야
나 건강한 자 되고 말꼬야 라는 그 의문의 반복이라는
그 암덩어리를 늘 수시로 제거하심으로써
고린도 교회를 빳따 맞는 매 맞는 1번 타자 본보기로 삼아서 보여준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는 늘 수시로 이 완료와 미완료의 싸움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는
하나는 땅의 계집종 하갈과 또 하나는 하늘의 예루살렘 자유하는 여자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이 두 언약의 충돌이 고린도 교회 안에서도
지금 현재의 2025년 각자의 교회 안에서도
교회 안다녀도 소용이 없어요
몸이라는 공간이 있고 시간이라는 역사가 있는 이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상관없이
두 패로 나누셔서 싸움을 벌리시는 겁니다
십지어 가장 기초 단위라고 할수 있는 가정 이라고 하는 그 최소의 기본 집단
기초조직인 가정 안에서도
사람의 원수는 자기 집안 식구 라고
몸 곧 공간이 있는 이상
이 십자가의 사건을 늘 수시로 벌어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하나 라고 우기는 남녀 한 몸된 결혼 사이 일지라도
십자가가 누구신가 의사 맞는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혼을 하든 다시 결합을 하든 이 의사를 말하고자
싸움이 벌어지도록 하신다 라는 거죠
아브라함이 지금 언급이 되잖아요
다 한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 자손이다 라고 우겨도 소용이 없어요
나는 아브라함 자손인데
누구한데 포로 당한적이 없는데
니가 뭔데 구원하겠다 포로에서 자유케 하겠다 라고 주장하느냐
포로된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 자손은 포로로 잡혀야 한다 라는 거죠
북이스라엘 호세아 때처럼 쫄딱 망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아니다 우리가 알아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하겠다
교회를 교회 답게 바른 교회로 하겠다 라고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이스라엘 처음자리
교회의 저음자리와의 간극의 갭을 좁히기는커녕 더더더더 벌리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아까처럼 나는 아브라함 자손인데 남에게 포로 당한 적이 없는데
니가 뭔데 자유케 하겠다 라고 주장하느녀 라고 하듯이
굳이 예수님의 죽음이 필요 없는 자들과
아닙니다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주소서 라고
예수님의 죽음을 필요로 하는 환자로 나누시는 겁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처럼
모든 교회는 의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자와
환자 죄인입니다 고쳐주소서 라고 주장하는 자를 대립시키는
이 두 언약의 한 세트 됨을 통해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모든 허물을 다 덮은 완료가 떳기에
그 증상물로
우리가 지금 로마서도 하잖아요
똑같이
진노의 그릇 즉 가짜교회와
긍휼의 그릇 즉 진짜교회가
이 완료의 증상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아예 한 쪽으로 다 기울어져서 더 이상 이 두 언약의 충돌이 없는 교회는
그냥 종교시설일 뿐인 무당의 집이요 강도의 소굴일 뿐인
장사하는 곳일 뿐인거죠 헌금받고 종교애서 하는
무당이 복빌어주는 그거 뭐죠 아 부적 써주듯이 저주 피하라고 써주는
뭐 이미 모든 교호가 이미 다 부적 장사하는 입장에서
굳이 이런 소리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지만
어차피 비밀이요 비유이기에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으로 나누는 토기장이 비유처럼
교회란 어차피 비밀 비유이기에
눈에 보이는 교회나 그런 조직들은 이미 벌써 배제 시킨 입장에서
고린도 교회를 언급하시는 겁니다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교회를 염두하고서 볼 필요가 없어요
아에 기대를 하시지 마시고
오히려 주님의 몸으로써의 교회는
이 비유 이 비밀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꾸 눈에 보이는 교회랑 비교를 해서 낙심하는 자들이 많은데
자꾸 기대를 해서 그런 겁니다
아예 기대를 하시지 마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곧 완료를 누리는 교회는 이 고린도 교회처럼
어떻게 혹독하게 지적을 받고
징계의 매를 맞는
아버지의 간섭이 있는지를
사생아에게는 아예 매가 있을 이유도 없기에
왜 이렇게 사랑하셔서
종말 끝에서 성령에서 골인한 그 끝지점에서 달려온 지난 일들이
왜 부족함이 없었는지를 그 끝을 누리는
새마음 새영 성령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누리는
그래서 교회는 이 완료를 누리고자
실컷 매맞는 곳으로써 두 언약의 충돌이 맹렬하게 벌어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미 다 이루었기에
왜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은혜라 ~~~~~~~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저 하늘 높이 곳까지 두루마리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허다한 허물을 덮고 덮고 또 덮고
이렇게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케 하시는데
이 놈의 교회들이 자꾸 탕감받은게 적은
부끄러운 구원 받으면 안된다 라고 가르치는 자들이나
그걸 또 수준 낮은 성화론이다 라고 하는 놈들이나
어차피 멋들어진 구원을 추구함에 있어서
그거 박살 내시고자
또 이래 말하면 방종이다는 둥
또 뭐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 짓자 라는 둥
그래서 그 반발을 미리 기록했다 말이죠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의 선이 드러나겠넹 에라이 사도바울아 라고
인간의 한계이다 말이죠
탕자를 용서하신 아버지의 마음 보다
맏아들의 심정이냐
탕자의 심정이냐
탕자는 아무리 봐도 아니니까
결국 남은 것은 맏아들이 맞잖아 라고 나온다 말이죠
둘다 아니다 라고 사도바울이 말하는데
둘다 어떤 놈도 기준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비유 아닙니까 비밀
토기장이가 기준이다 말이죠
그 토기장이가 얼마나 인간의 이해에 맞는거 하나도 없었으면
다들 힐문하고 반발하겠냐 말이죠
긍휼의 그릇 이라고 하는 자도
진노 속에서 뽑는 식이니
아무리 봐도 모무다 심판 뿐인데
왜 안 보이는 내 몰래 감춘 그 긍휼의 그릇을 따로 꼬불쳐 놓느냐
그러니 둘로 나눈다는 자체가 부당하다는 겁니다
그게 지난 주 악인이 돌이키고 의인이 범죄 한 날로써
인자의 날 여호와의 날이 떳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반응은 아마 2주 뒤에 올라올 글이지만 말이죠
아니다 3주 뒤에 올라올 글이 뭔고 하니
21-093 착각 ;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착각 (겔 33,24-26)
2025. 5.11. (4월 1?일 녹음)
지금 현재도 보세요 이스라엘 가자지구 전쟁 황무지가 맞잖아요
말씀 대로 맞다니깐요
그런데 그것을 또 미국이 견디지 못해서 오아이스 관광지가 될 것이다
파라다이스 천국이 될 것이다 라고 하잖아요 트럼프가
ㅋㅋㅋㅋ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죠
사생아에게 없는 매
이 매가 없는 곳은 다 이렇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지들끼리 둘로 나누어도 이건 두 언약의 한세트가 아닙니다
이 충돌 초차도 비밀입니다
주께만 범죄한 자에게만 있는 곳에 벌어지는 간극이요 공백인 십자가이지
우상숭배자들끼리 싸우는 것은 힘과시일 뿐인 정치적 서열다툼이다 말이죠
딴나라당과 민주당 이 놈들 서열싸움이지
두 언약의 한 세트가 아닙니다
이 두 마귀들끼리의 서열 싸움에 말라꼬 말려드냐 말이죠
서울에 어떤 교회는 교회가 반쪽이 나서 경상도파 전라도파
언제적 싸움을 아직도 하는지
김대중 파와 박정희 파 그 짓을 아직도 하고 있어요 글쎄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그런 빌라도와 바리새인의 손에 반드시 죽으시는 겁니다
교회도 똑같아요
(겔 33:25, 개역)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피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겔 33:26, 개역)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고
(겔 33:27, 개역) 너는 그들에게 또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온역에 죽게 하리라
(겔 33:30, 개역)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겔 33:31, 개역)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인자의 날에 악인이 돌이킬때에
도리어 의인은 어쭈 여호와 입에서 무슨말 나오는가 보자
아이고 내 이욕이 되는 소리는 단 하나도 없네
그렇게 입으로는 축복하지만 속으로는 저주만이 가득하는 거죠
누구 말 마따나 주변을 환하게 밝게 해야지
마음도 밝아진다 라고 이런 처세술이 교회에서 먹혀들정도로
그렇게 입으로 사랑 사랑 그렇게 외치는 아예 도배를 했는데
그 마음은 온갖 더러운 저주 저주 저주로만 까까득 차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의인이라는 껍데기 왜? 이익이 된다고 본 거죠
그러나 악인은 죄인은 아버지의 몽둥이라는 인자의 날 덕분에
돌이키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이 손 댈수 없는 의인과 악인의 팔 어긋맞게 하심입니다
자 그렇듯이
그럼 우리가 호세아의 연장선에서 고린도교회를 보고 있듯이
호세아도 몽둥이를 대서 아예 북이스라엘 자체가 공중분대가 되어서 해체다 되었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이 아 이제야 여호와께로 돌아왔군 이라고 주님이 말하신다면
우리는 에이 그게 무슨 돌아온겁니까 라고 전혀 비밀 비유가 아닌
보이는대로만 말 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 본인이 혼자 돌아욌다 드디어 돌아왔다 라고 박수치면서 노래하면서
예례미야처럼 드디어 돌아왔다 라고
지금 남은자만 돌아오리라를 이루시고자 돌아온자는
울기 바빠요
그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 그 황금성전은 다 사라지고 무너지고
그 초라하기 짝이 없는 깡통으로 모아서 지은 성전을 보고 안 울고는 못 배기도록
마치 49일 째 까지도 죽어도 안 울던 자들이
성령으로 주 안에 돌아오니까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울게 되듯이 말이죠
아것은 인자의 날 성령의 날 곧 날이 끝난 지점인 종말에서
묵시에서 이루어지는 비밀 비유로써의 인자의 날을 말하고자 나타나는 증상물 교회
종말 때에만 나타나는 교회인데
반대로 그 반대인 땅의 계집종 교회는 인자의 날을 거부하고자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교회이기에
그들 또한 비유 비밀로써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라고
교회에 와서도 자기 유익만을 쫓는 우상숭배를 퍼트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제 왠만한 교회는 그 메시지를 통해서 아 이곳은 강도의 소굴이구나 라고
이 두언약의 충돌이 없으면 파악이 가능하겠지만
이 충돌 자체도 비유 비밀로써 벌어지기 때문에
누가 지혜로 꺠닫고 누가 총명으로 알겠습니까?
종명은 결국 성령으로 짐승의 수를 보겠냐 말이죠
맹렬하게 고린도 교회처럼 고린도 교회 속에서 맹렬허게 두 언약의 충돌이 벌어짐을 말이죠
다들 좋은게 좋은거다 라고
그냥 자기 유익을 따라 각기 제 길로 가는 양 같을 뿐인데
그러든 말든 때를 얻는지 말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인자의 날이 떳기에
이 두 패는 어차피 그 몽둥이 심판 속에서 하루 만에 등장하도록 되어 있는 증상물로써
주님 본인의 말씀이 옳았다를 나타내심에 있어서
우리는 그저 장기알로 배치 당할 뿐이다 말이죠
여기에 무슨 원함으로도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 함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이 비밀의 증상물됨으로써
주님의 하시는 일에 방해꾼이 되는지
주님의 하시는 일에 돌이켜 돌아오는지
토기장이 마음대로 이다 말이죠
그 변덕스러운 신의 자기 마음대로 함 앞에
누가 바짝 엎드려서 제발 살려달라고 우는 자가 되겠습니까?
환자 밖에 없는 거죠
귀신 들린 딸의 어미가
지금 죽어가는 자녀를 위해서 우는 그 마음을
누가 그 마음을 새로 만들었겠습니까?
갑작스레 두 기생이 잠을 자다가 아이가 깔려 죽자
서로 남은 아이를 두고 내 자식이다 아니다 내 자식이다 싸움이 벌어지는
그 상황이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터질지 모르는 상황을 누가 벌리시겠느냐 말이죠
지혜자가 자신의 지혜를 말하고자 벌리심 앞에서
그저 울 수밖에 없는 심판받아 마땅한 자인 몸이지
거기에 무슨 유익 따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주제에 무슨 ~~~~~~~
이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예수님의 죽음의 출발이 종말
곧 나의 끝으로써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 돌이켜 보세요
부족했던 것 있었는가?
너무 너무 풍족했던 그 사랑의 매 아니였냐 말이죠
그러니 이 매가 고린도 교회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즉 십자가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이 십자가 라는 완료가 떳다면
우리의 미완료는 늘 등통당하면서 지적 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십자가로 빵구멍 내시는 이 하나님의 일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데
교회에서 사람의 일을 하게 되면
자기 유익 말고 구할게 뭐 있겠습니까
그래서 칼 곧 권력을 의지하게 되니
결국 누구를 죽이게 되는
그것이 우상숭배와 연관이 되는
자 그렇게 호세아 서에 펼쳐졌던 내용들을 반복하게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미완료의 반복을 왜 하시게 하느냐
호세아 서가 멈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전후서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 완악한 수건을 겹겹이 쓰는 그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고 해도
주님은 의문의 증서가 아닌
십자가로 다 이룬 주님의 도를 반드시 밀어붙이겠다 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저 완악한 수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 임을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성령을 집어넣어서라고 그 돌이키심을 받아내시는 겁니다
이 7에 70번의 용서가 먼저 떳기에 말이죠
그래서 끝에서 거꾸로 과거를 삭제 시키는 식입니다
고린도전후서가 호세아서의 미완료를 완료로 바꿔치기 하는 반칙을 벌리더라 말이죠
이 완료를 누리게 하고자
모조리 쫄딱 망하게 하시는 빈손 빈공백으로 빵구멍 뚫는
탈탈탈 빈털러리 만드시는 거죠
주님이 드디어 박수치면서 뛰면서 노래하면서
드디어 돌아왔구나 라고
이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를 인간의 손에 맡기는 법이 없어요
성령으로 늘 수시로 이 다 이루었다 라는 십자가로 늘 수시로 수셔대면서 깨뜨리시고
쪼개시고 밭갈이 기경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70년 만에 돌아오면 결국 수 많은 자는 못 돌아온 죽은자 가 되는거 아니가
네 맞다니깐요 그러니 개인 구원은 없어요
세대가 다 물갈이가 되었겠죠
그러나 몇몇 노인은 살아서 돌아와 울도록 하심으로써
주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인간 지만 자기 유익 챙길려다가 개인 구원 따지다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다 놓치는 겁니다
아무리 때려부어 줘도 못 먹는데 우짭니까
줘도 못 먹습니다 주여 먹여주세요 라고 우는 것도 아니니 말이죠
두 손 두 발 두 눈 다 고장이 나서 먹을수도 마실수도 없는
지옥의 몸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긍휼을 베풀어 주조서 라고 할 정도면
지옥의 몸임을 직시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임을 직시해야 하는데
누가 지혜가 있어서 나 두 손 있으니 제가 알아서 떠 먹을께요
내가 두 발이 있으니 내가 알아서 냉장고에 꺼내 먹을께요 라고
누가 총명을 알겠습니까
두 손 두 발 두 눈을 가지고 태어난 줄로 착각할 뿐인데
정작 성령이라는 총명을 부어주심을 받은 자는
비로소 웁니다
두 손 두 발 두 눈이 없음을
이 범죄한 손 범죄한 발 범죄한 두 눈이
아무 쓸모 짝이 없는 짓만 하고 있다 라는 것을
그래서 고쳐달라고 우는 겁니다
이 완료 앞에서
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 앞에서
미완료는 지옥의 몸임을 지적 당하는 겁니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나는 성화된 교회요
바른 교회요 참된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령의 전으로써 과연 신랑의 마음을 아느냐 말이죠
입으로는 찬양하나 사랑하나
마음으로는 늘 저주 뿐이요 자기 유익만 챙길 뿐인
울리는 꽹과리 일 뿐인데 말이죠
그래서 지적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너가 너 자신을 손댈 필요가 없이
주님이 하시겠다 라고
니가 손 대면 손 댈수록 의인이 될려고 하는 그 탐심 때문에
도리어 매국노 세리를 정죄하게 된다 라고 말이죠
누가 누구를 지적하느냐 말이죠
자기 코가 석자인줄도 모르기에 배불러 터져서 교만할 뿐이다 말이죠
자기 눈의 대들보를 못 보면서 남이 눈의 티를 캘려고
얼마나 꼬투리를 잡는지
이게 자기 유익이요
울리는 꽹과리인 거죠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율법 지킨 자기 육을 자랑하고자
남을 올무에 걸려들게 하는
자기 육을 우상화 하는 이 의문의 법을
그 의문의 증서와 그것을 지킨 의문의 육체 몸뚱아리를
그 딱딱한 지옥의 몸을 남 7번 용서 했다 라고 날 알아달라고
그 인정욕구 투쟁을 무슨 수로 멈추냐 말이죠
그것이 바로 도리어 7에 70번의 용서를 받는 그 모욕적인 구원으로
밭갈이 딱딱한 땅을 기경 당하는
의문의 증서의 몸 뚱아리 찢어주심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다 말이죠
즉 우는 자로써 남은자만 돌아오는 그 남은자가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 반대 운동 동성애 반대 운동 백날 해도
지옥의 몸이다 말이죠
자 이렇게 십자가의 피 위에 세워진 고린도 교회이기에
십자가의 도가 떳기에 나타났기에
그 증상물로 등장한 고린도 교회는 어떤 징계의 매를 맞는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이 매를 먼저 맞는 1번 타자 고린도 교회를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 넓이 높이 길리를 더더욱 깊게 알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신납니까?
아버지를 모르는 것보다 답답함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왜 내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셔야만 했는지
얼마나 답답했으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도대체 이분
이사야 53장의 이 고난 받는 종이 누구신가를 알고싶어서
찾아왔듯이
우리 또한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랑하셔서 고린도 교회처럼 때리시는지
그 사랑의 깊이 넓이 높이 길이를
고린도 교회처럼 누리고자
이 다 이루심을 누리고자 말이죠
더 이상 미완료가 없음을 즐기시면 되는 겁니다
뭐 남들 보다 더 7번 8번 용서 하느냐 라는 그 의문의 헛짓
교회 사람들이 속이는 그 짓에 말려들지 마시고
도리어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지금 창녀 마리아는 발에 뽀뽀 그 더러운 발에 말이죠
좋아서 기쁜데
저 바리새인은 속으로 이 여자 창녀인 것 동네가 다 아는데
선지자 맞기는 맞어 라는 언제까지 자를 제기 바쁘냐 말이죠
그 저울
그 줄자
제대로 된 줄자 맞기는 맞냐 말이죠
그 저울로 얼마나 사기를 쳤겠냐 말이죠
나를 대신 해서 죽으신 분은 줄자도 저울도 그 어떤 윤리 도덕 양심 종교 이념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꾀임 속임수 였음을
이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십자가의 완료로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그딴 눈에 보이는 교회 버리시고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린도 교회를 세운 십자가의 피를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만을 따라가시길 바랍니다
교회 조차도 혜택은 입은 자들이지
그들이 십자가를 대신 진 적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너희들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은 적 없다
도리어 사도바울 조차도 그 십자가의 혜택을 누리는 자로써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고 있지
오늘날 목사들처럼 자기 알아달라고 징징 거리거나
제발 믿어달라고 징징 거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 같으면 언제든지 떠나라 라는 식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거짓선지자요 거짓복음 다른 복음이니
떠나라 라고 합니다
장사꾼 목사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바른 교회 세우겠다 라는 선화론자들과도 차원이 틀립니다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는 것은
모든 것을 끝에서 종말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그 종말이 종말의 영 성령에서 출발
즉 육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건전하고 경건한 육이 아닌
아예 육 자체는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라고 했으니
십자가 라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이 아닌 것은 모두다 육일 뿐입니다
그 끝에서 우리는 태어난 겁니다
그리고 다시 과거를 삭제하듯이
먼저 있었던 미래 완료로 과거를 수정해 나가는 겁니다
부족함이 없었다고
그래서 감사 아니하고는 못 베기고
기뻐 아니 하고는 못 배기고
기도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기도를 대화라고 하잖아요 성령의 탄식이다고 하잖아요
또 나를 위해 탄식하십니까 제발 악인의 꾀에서 건져주소서
저에게서 저를 건져주소서 라고 말이죠
그 건져주심 앞에서 안 기쁘고 감사 하다 말 안하고
조잘 조잘 말 안하고플 리가 없을 겁니다
이미 다 이룬 그 완료가 떳기에
부족함이 없이 넉넉히 다 이기었기에 말이죠
즉 여호와가 목자라는 기능을 펼치시고자 목자가 떳다는 이유로
단 한번도 이긴적 승리한 적도 없던 자가
목자의 믿음 떨어지지 말라는 그 기도 덕분에
그 반칙 부조리 스캔들 불륜 덕분에
또 이 불륜 카니까 어떤 무식한 놈이 내로남불 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댓글을 달았는데
얼마나 무식한지 내불 남로가 구원인줄도 모르고 그저 멋들어진 구원이면 천국인줄 알아요
그 심뽀 자체가 지옥이니 지옥 짓을 하는 거지요
사실 남은자만 돌아온다 즉 자기 죄로 우는 자가 돌아온다 라고 했는데
자기 죄를 알아야 울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반칙을 벌리신 겁니다 불륜
자기 죄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기 죄로 울어서 돌아올까요
네 성령의 놀라운 탄식 맞아요
그 성령 그 새마음 곧 새언약에서만 나오는 결과물
원인 없는 결과 이거든요
그런데 다들 모세언약 지키기 바쁜데 즉 모세언약 지키면 의로운게 아니라
더더욱 범죄하도록 되어 있어요 간극을 좁히겠다 라는 자체가 범죄이니까
아브라함 딸랑 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은 것을 믿으니까 받았응께
나도 우리도 이 수 많은 더 많은 무리 중다한 자들도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
그란데 포로 되기는 고아 되기를 싫다 그 카이 황무지가 되는 겁니다
먹고 배불러서 임금 삼고자 했는데
약속을 믿어 줬는데
약속이 도리어 도망치듯이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자기 죄로 웁니까
바로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우시는 예수님의 눈물을 봐 버렸기 때문입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봐 버렸기 때문이지요
사실 3분의 1 예루살렘 성전 안에 터래기 뿌리고
3분의 1 성전 테두리에 뿌리고
3분의 1 성전 바깥에 뿌려서 아무리 도망쳐도 칼 날려서 다 죽이는
그 살육의 현장에서
말도 안되게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 곧 우시는 분이 계셨던 겁니다
그 믿음의 기도를 따라간 겁니다 남은자가 말이죠
에스겔이 이러다 다 죽어요 주님
모세가 이러다 다 죽습니다 아니 만방에 자기 백성을 애굽 지옥에서 끄집어 내놓고서
광야에서 다 죽였다 라는 소리가 만방에 퍼지길 원하십니까
주여 제발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그 모세의 온유의 기도 라는 반칙 덕분에 살았던
그 카는 모세도 모세언약 못 지켰지만
악의 위력을 비로소 본 겁니다
행위로는 의에 이르지 못함을
그래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사랑의 위력을 보여달라고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 울음에 주님이 동참하신 겁니다
이러다 다 죽어 라고 비로소 우는 자가 떳기에
우리는 뭐 자기 죄도 모르니 울 줄도 모르는
새언약의 새 영 새 마음
정직한 영이 없기에 말이죠
그 정직한 영을 반칙으로 주시는 겁니다
대신 우신 분 때문에
베드로야 제발 믿음 떨어지지 말아라 라고 기도하신 분 우신 분 덕분에 말이죠
그 온유로 다시 싸매어 주신 겁니다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말이죠
인자 에스겔도 울었고
선지자 모세도 울었기에
십자가(불륜)의 다 이룸이 떳기에
남겨둔 한 씨 덕분에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니까 비로소 열매를 맺는
그 피 위에 세워진 고린도 교회이기에
그 피를 첫사랑으로 외치는 처음자리인 교회이기에
언제든지 매 맞아도 상관 없고
죽어도 상관 없는
율법과 선지자는 이 징계의 사랑이 매로 우리를 늘 불도져로 밀어버리듯이
바짝 다리미질 기경 밭갈이를 하심으로 부들 부들 하게 하시는 겁니다
미말에 둔 구껑꺼리 찌끼 쓰레기가 되어도
주님께서 내 죄를 대신해서 흘리신 그 피가
취소 되는 법이 없으니까
이 사랑의 법(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 권력 위력에서 해방케 하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죽음의 권력 위력 조차도
더 강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의 위력으로 말이죠
이 사랑의 폭력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음을
이 내용 그대로 고린도 교회에 사랑의 매로
혹독한 매질로
늘 십자가로 쪼개고 쪼개시는 겁니다
간극을 좁힐려는 헛짓을 반복할 때 마다
도리어 그 반대로 늘 수시로 쪼개어져 떨어져 나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는 주님 곧 목자가
있다 나타났다 먼저 계신다 라는 그 이유로
부족함이 없음을 누리는 겁니다
아무리 부자 교회여도 그 헛된 부요함 앞에 바로 배불러 교만함으로
쫄딱 망하는 호세아서의 상황이더라도
이미 고린도 교회는 주님이 목자되신 이유로
모조리 다 탈탈탈 털리는 빈손 빈공백이 됨에 있어서
비로소 고아의 자리에서
고엘 후견인 키다리 아조씨 덕분에 부족함이 없지
돈 물질이 아님을 돈이 많은 부자 동네 속에서
유일하게 얻어터지는 그 간섭 덕분에
없는 자 같으나 부요한 자로써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로써
주님의 승리는 누리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 부족함이 없음을
죽은 자 같은 자의 자리에서
고아의 자리에서
고엘 곧 목자를 누리는 겁니다
이미 고린도 전후서 결론까지 다 말해 버렸네용 ㅋㅋㅋ
이 결과를 이제 적용하시는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 라는 반칙을 말이죠
이제 이 정답은 문제아를 찾아나서는 겁니다
잃어버린 자를 말이죠
고아에게 걸맞는 후견인이 떳다 라는 이유로 말이죠
주께만 범죄한 자를 찾습니다
막사는 자를 찾습니다
죄인 환자를 부르러 오신 겁니다
지가 지 스스로 죄악을 가려버리는 결핍을 채워버리고
자기가 승리를 다 이루었다고 해 버리면
주님이 그 눈물을 씻겨주심이 먼저 떳고
수치를 가려주시는 십자가의 죽음 곧 새언약이 먼저 떳음이 뭐가 되느냐 말이죠
의사가 쓸데 없이 되기에
반드시 실패케 만드시는 겁니다
자아가 성공해 버리면 그 우상성은 무슨 수로 해결하냐 말이죠
동맹 맺고 동일시 해 버리는 자기 숙제로 충분한데
말라꼬 십자가의 죽음 그 쓸데 없이 죽기까지 복종한 하나님의 의가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성령의 단절이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인간 숙제로 충분히 연합할 수가 있는데
자기의 의를 쌓아서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충분한데 말라꼬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필요하며
창조주가 누군지 여호와가 누군지 그 마음을 알 필요가 뭐가 잇냐 말이죠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신 그 종말의 인물인 인자가
그 남겨둔 한 씨가 말라꼬 필요하냐 말이죠
의사에게는 건간한 자 의인이 필요가 없기에 말이죠
내 백성 아니다 라는 그 자리에서 우는 자
내 사랑 아니다 라는 그 자리에서 우는 자를 말이죠
그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99마리 양 버리고
찾아헤매시는
목자가 떳기에 말이죠 부족함이 없어요
몽둥이 사랑의 매가 얼마나 부족함이 없는지 ~~~~~~
넉넉히 죽이시리라
넉넉히 쪼개시리라
넉넉히 빵구멍 내시리라 ~~~~~~~~
왜? 목자가 이미 떳기에 ~~~~~~
================================================================================
22-057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그리고 남겨둔 한 씨(스알야숩, 마헬살랄하스바스, 임마누엘) (롬 9,29-33)
2025. 5. 4. (4월 11일 녹음)
(사 8:14, 개역)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사 8:14, 새번역) 그는 성소도 되시지만, 이스라엘의 두 집안에게는 거치는 돌도 되시고 걸리는 바위도 되시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가미도 되신다.
남겨둔 한 씨와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롬 9,24-29)
로마서 2022 2025. 4. 12. 21:35
22-056 남겨둔 한 씨와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롬 9,24-29)
〈롬 9,29-3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찬송가 384장 새 585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가 424장 새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새찬송가 585장〉
새찬송가 54장(통61) 주여 복을 구하오니
048 322
새찬송가 220장(통278) 사랑하는 주님 앞에
502 986
통합찬송가 (성자:생애) 127장 예수님의 귀한 사랑, 새찬송가 없음 새찬송가 210장(통245) 시온성과 같은 교회
106 47 063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5, 새번역)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 ㉭호 2:23
(호 2:23, 개역)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호 2:23, 새번역)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을 이 땅에 심어서 ㉤나의 백성으로 키우고, 로루하마를 사랑하여 루하마가 되게 할 것이다. 로암미에게 '이제 너는 암미다!' 하고 내가 말하면, 그가 나에게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히, '암미'
(롬 9:26, 새번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 ㉠호 1:10 ㉡그, '아들들’
(호 1:10,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호 1:10, 새번역)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져서,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되어 보거나 세어 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이 너희를 로암미라고 부른 땅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를 것이다.
(롬 9:27, 새번역)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사 10:22; 23
(롬 9:28, 새번역) 주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실 것이다.“
(사 10:20, 개역)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사 10:21, 개역)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 10:22, 개역)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사 10:23, 개역)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사 10:20, 새번역) 그 날이 오면, 이스라엘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과 야곱 겨레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시는 그들을 친 자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주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할 것이다.
(사 10:21, 새번역)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 ㉢히, '스알야숩'
(사 10:22, 새번역) 이스라엘아,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여도, 그들 가운데서 오직 ㉣남은 사람들만이 돌아올 것이다. 너의 파멸이 공의로운 판결에 따라서 이미 결정되었다. / ㉣히, '스알야숩'
(사 10:23, 새번역) 파멸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주님, 곧 만군의 주님께서 온 땅 안에서 심판을 강행하실 것이다.
(롬 9:29, 새번역) 그것은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1:9(칠십인역)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 1:9, 새번역)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될 뻔하였다.
(롬 9:30,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의를 추구하지 않은 이방 사람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난 의입니다.
(롬 9:31, 새번역)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롬 9:32, 새번역)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롬 9:33, 새번역) 그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사 8:14; 28:16(칠십인역) ㉥또는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 8:14, 개역)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사 8:14, 새번역) 그는 성소도 되시지만, 이스라엘의 두 집안에게는 거치는 돌도 되시고 걸리는 바위도 되시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가미도 되신다.
(사 28:16, 개역)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사 28:16, 새번역)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얼마나 견고한지 시험하여 본 돌이다. 이 귀한 돌을 모퉁이에 놓아서,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번에 로마서 9장 25절에 호세아서를 인용해서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으로
사랑받지 않는 자는 사랑 받는 자로 만드시겠다 라고 했을때에
이것이 남은자 라고 했을때에
우리는 오늘날 엉터리 남은자 운동 주로 젊은대학부나 청년부에서 이런 운동을 하지요
마치 우리가 이 남은자 개념을 이해하고 수용해서 연결하겠다 라고 결심하고 실천하면 될 수 있는냥 착각하지만 오히려 그런 운동들이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남은 자 라는 의미 자체가 그 어떤 연겸 연합 동질성 개방성을 허용치 않는
오로지 성령으로만 난 자 이다 라고 오히려 단절성이 더 부각이 됩니다
그러니 호세아서의 늘 난해하다 싶어서 늘 궁금했던 부분인데
이거 심각하게 묻는 자들이 별로 없더라구요
난해 구절인 갑따 하고 분류해 놓고서는
남은자와 직결된 문제인데 억수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없어요
목사는 그래도 좀 나을줄 알았는데 이 놈들은 더 생각을 안해
아하 그래서 남은자 개념이 옳았구나 싶더라구요
왕 5명을 통해서 목사를 통해서 말씀이 내려오지 않고
저 변두리 호세아를 통해서 내려오니 말이죠
그 호세아는 창녀 고멜의 남편이요
부정한 자식 이스르엘 내 씨(자식)가 아니다
로루하마 내 사랑 아니다
로암미 내 백성 아니다
바로 이것이 철저한 단절성 3일의 간극이요 빵구멍 지옥의 세 구덩이다 라고 했다 말이죠
(호 2:23, 새번역)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을 이 땅에 심어서 ㉤나의 백성으로 키우고, 로루하마를 사랑하여 루하마가 되게 할 것이다. 로암미에게 '이제 너는 암미다!' 하고 내가 말하면, 그가 나에게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히, '암미’
어릴적부터 난독증이 있다 보니 자꾸 너는 암미다 라고 안 보이고
너는 임마다 ㅋㅋㅋ 자꾸 욕으로 보이네요 ㅋㅋㅋ
기존의 알던 단어로 자꾸 보이고
생전 처음 단어는 낯설게 보이니 미리 알던 문자로 교체가 되어서 보이는 거죠
그러니 기억은 늘 왜곡 되기 마련입니다
보고픈 것만 보고싶고 믿고픈 것만 믿고픈 확증편향이라는 정신병 즉 우상숭배이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가 저에게 많다보니 혹 오타가 많더라도 이해하시길
신체에 장애가 많으면 이런 식인데 어떻게 행함을 강조하는지?
심지어 자기 자식이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면 더더욱 7에 70번 용서를 갈구하는
귀신 들린 딸의 어미의 심정이어야 할 텐데
거꾸로 저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지지 말라고 왕의 지혜에 동의한다고 동일시 하지만
정작 그 심판의 죽음에는 죽어도 동참하지 못하고
끝까지 결핍을 채울려고 하니 법 곧 행위를 의지 할려고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과연 사망이 사망 답게 누구를 쏠수나 있을까요?
재앙이 도대체 어디 있어서 재앙을 실제화 시킬수 있을까요?
제대로 살릴수 있는 생명도 없는 주제에 무슨 수로 제대로 재앙을 내릴수 있을까요
그저 자기 건드리면 다 죽일려고 달려들지만 그 자기 라는 것도 다 과거의 허상일 뿐
지금 여기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죠
즉 과거는 결국은 없다 라는 거죠 지금 현재 과거를 재 해석해서 기억을 왜곡 시키는 거죠
(과거는 미래완료가 오지 않으면 삭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거가 없으면 역사도 없으니
그 빈칸을 다시 재조립해서 과거를 현재가 조작해 버립니다 자지숙제로 여백을 채우는 거죠이렇게 정답이 찾아내는 잃어버린 이스라엘이 아닌 인간숙제로 아무리 남을 7번 용서해도
남은자가 아니라 도리어 남 7번 용서한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한 가버나움이기는 맹 마찬가지인 겁니다)
결국은 여기 있는 내가 먼저 있다 이지
과거의 나도 이제는 없는 겁니다
어릴적 나를 지금의 나에게서 찾아보세요 있나? 없지요 그래서 과거는 있기는 있어야 겠고
그래서 조작해 내는 겁니다
어떤 인문학자가 남은자랑 비슷하게 보이는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고아 과부 나그네 개념을 들고나왔는데
아마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신학자에 가까운 자 인 듯 합니다만
뭐 지젝도 무신론자 신학자이긴 하지만 학문 자체가 탈 포스트화 되었으니 말이죠
포스트 post 라는 후기 뒤에 이후 라는 의미인데
아 넘어선다 라는 그 표현이 생각이 안나네요 탈 근대 탈 국가 탈 종교처럼
아 메타 ?? 맞지 싶은데 약간 갸우뚱한 느낌이네요 ㅋㅋ
메타인지 메타사고 메타교회 교회를 넘어서는 교회처럼 말이죠
인지의 출처를 무의식에서까지 파 헤쳐보는 자기검열 검증 뭐 그런거
아무튼 고아 과부 나그네와 비슷한 호모사케르 벌거벗은 생명
어디에도 소속될수 없는 비문서증자 주민등록증과 같은 시민권이 없는 자
배제된자 제외된자 문서없는 자
추방된자 쫓겨난자 언제든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대상
이것이 지금 현재의 나와 이 개념이 연결이 되어버리면 남은자가 되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오늘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내 쪽에서 두 언약의 한 세트인
진노의 그릇 소돔과 고모라와
긍휼의 그릇 남은자를 내가 해석해서
내가 소돔과 고모라 될려고 하는 자 없기에
당연히 남은자 될려고 하다 보니
어라 아무리 해도 단절이요
오히려 호모 사케르 이기는커녕 오히려 남은자를 핍박하는 소돔과 고모라 짓만 하는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과 같다는 겁니다
바리새인이 로마 입장에서는 호모 사케르 일지 몰라도
바리새인이 미워하는 개같은 이방인이요 사마리아인
그리고 매국노 세리에게서는 도리어 이들 바리새인이 소돔과 고모라인 셈인 거지요
결국 예수님이라는 거치는 반석과 부딧히는 돌이 기준으로 등장하니까
높은 산 깍고 낮은 웅덩이 매꾸어 넣으니까
졸지에 바리새인이 이 부딧히는 돌에 넘어진 소돔과 고모라 였고
바리새인이 그렇게도 죽어라 미워했던 더러운 개같은 이방인과 매국노 세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남은자가 되버리더라 말이죠
그러니 남은자는 존재가 될 수 없어요 비존재입니다
그런데 존재가 기여이 될려고 하다 보니
기준이 된 남겨둔 한 씨 라는 기준이 없이
자기가 알아서 남은자 존재가 되다 보니
보이지 않는 비존재 자기들이 무시했던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이 임마누엘을 못 넘어서고
스알야숩 남은자만 돌아오리라를 못 넘어서고
마헬살랄 하스바스 노략이 급하리라 이 심판을 못 넘어서다 보니
이 보이지 않던 3일을 단절이 보이는 실상이 되고
반대로 보이는 존재로써 출발한 자신들의 존재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그림자 껍데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비존재는 고때만 잠깐 존재라고 우기는 놈들에게 한 세트가 되어주고자 잠깐 등장 하는 겁니다 이 우연성이 존재의 필연성을 깨뜨리는 겁니다
예수님의 잠깐 33년의 무시받는 비존재성의 등장은
기존의 역사와 공간을 나 차지 했었노라 라고 무덤까지 만들어 내려오는 그 시공간을 깨뜨리시고자
무덤도 없이 ~~~ 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까
그러나 돌아갈 본향이 없는 자는 아무리 예루살렘에 미리 무덤을 사서
이방인 나그네로 떠돌아 다니다니는 디아스포라처럼 살다가
무덤 만큼만은 사서 막벨라 굴에 묻히겠다 라는
그 보이는 것을 쫏아서 성경을 흉내내어도
역시나 돌아갈 곳이 없는
기준이 되시는 예수님과의 한 몸이 없는 겁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예수님 곧 임마누엘을 구할 리가 없지만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만지지 말라 하십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 라고 말이죠
(요 20:17,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요 20:17, 쉬운)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계속 붙잡고 있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다만 너는 나의 형제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여라. ‘나는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돌아간다 라는 번역은 쉬운성경 밖에 없네요
즉 하나이다 라는 한 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존재구원은 없어요
비존재구원 밖에 없어요
그냥 비존재 단독 개념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라는 존재구원을 외치는 놈들과의 상대적인 비존재로써의 남은자 이니까 말이죠
존재구원은 한 몸에 관심이 없어요 개인구원으로서의 개인 천국이니까
여전히 개인이 개인 아파트 집을 천국에 마련해서 살꺼다 라고 우기고 있는 겁니다
마귀가 한 몸은 관심이 없으면서 한 몸된 신부의 자리를 탐하고 싶고
그렇다고 결혼은 하고 싶은데 한 몸 되기를 싫은 두 집 살림살이 하고 싶고
이게 무슨 한 몸입니까 사랑이 아닌거지요
그러니 주님이 이거 깨뜨려주지 않는 이상 한 몸이 아닌 거죠
그러니 반드시 존재를 깨뜨리는
이 부딧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나를 빵구멍 뚫어서 내 존재를 삭제시켜주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남은자가 아니면 다 소돔과 고모라이다 말이죠
가버나움 보세요 평벙하기 짝이 없는 도시일 뿐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예수님이 은혜를 베풀어도
그래 받아주마 라고 냉큼 먹기만 할 뿐이지 빠이 빠이야 잘 가자제잉 라고
한 몸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한 심판을 예수님이 저주를 퍼 붓는 겁니다
자기들만의 공간 자기들만의 역사가 있으면 족하다 라는 식이지요
정작 예수님은 인간의 공간 인간의 시간을 다 불질러 태워버리시겠다 라고
성전을 헐라 라고 하셨는데 말이지요
불 타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주시겠다 라고 말이죠
실컷 맛배기용 시음용 상품만 받아 먹고
정품을 사지 않는 겁니다 실상은 사지 않고 그림자만 사는 겁니다
계시록에 부자야 불에 타지 않는 옷을 값없이 돈 주고 사라 라고 했거든요
사고 싶어도 못사요 값없다 라는 그 비밀을 못 넘어서고 부딧히는 돌에 부딧혔거든요
헹함으로 할 수 있다 라는 것 자체가 부딧히는 돌에 부딧힌 겁니다
비밀이 없으면 비유가 없으면 무조건 다 행함이다는 소돔과 고모라인 겁니다
자기숙제로 보는 거지 예수님의 숙제인 믿음으로 안 보이는 겁니다
기여이 빈칸을 채울려는 행함으로 보이는 인간의 숙제인 믿음은 역시나 복수심입니다
그래서 그 가버나움을 저주해 버리셨다 말이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 그림자만 냉큼 먹고
실상인 믿음은 안 먹고 살과 피는 안 먹고
주님과 나는 상관 없습니다 빠이 빵이 잘 가세요 라고 장난 치는 겁니다
이게 오늘날 소돔과 고모라 교회입니다
강도의 소굴로써 장난이나 치고 있어요
지난 주 고린도교회를 이런 식으로 두 패로 두 조각내시는 겁니다
이런 언약의 코스 자체가 없다면 징계의 매가 없다면
사랑도 없는 울리는 괭과리 밖에 없는 빈깡통 빈수레만 요란한 교회인 거죠
교황 죽었다 라고 얼마나 요란한지
소돔과 고모라의 수장이 죽었다고 생난리입니다
도대체 뉴스에 몇 번이나 며칠 동안이나 나오는지
엠비씨 이 놈들 과거 2-30년 전 피디수첩 때부터 천주교 냄새가 얼마나 강하던지
자기들이 정의 사제 구현단 운동가인 줄 ~~~~
기상 캐스터 죽은 사건이나 정의사제구현단처럼 파 재끼기를 하던가 ~~~`
주님은 목숨 걸어서 한 몸 되시고자 왔는데
다들 결혼하는 신부의 자리만 탐 낼 뿐이지
한 몸 되고파 하는 자들은 없어요
다들 예수 안이 아닌 예수 바깥
비밀 바깥에 자기 살림을 따로 채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건강한 자, 의인이 되겠다고 빈칸을 채워요 자기 의 살림을 채워요
그게 소돔과 고모라이다 말이죠
그러니 돌아갈 곳이 없는 겁니다
그카이 이 땅에서 이 장소에서 승부를 걸겠다 라는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 국가 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탈려는
음녀 유대교 유대인과 똑같은 놈들이다 말이죠
사탄의 회 말이죠
오늘날 기독교가 다 그런 짓해요
아니 천주교가 그런 사탄의 회 라고 그렇게 욕하고 나와 놓고서는
맹 똑같이 그런 짓을 하는 겁니다
그카이 그것을 감출려고 동성애 반대 운동 하고 낙태반대 운동하고
뭐 생명을 경시 여긴다고 반대 운동하고
사실은 그들이 더 생명을 경시하고 있는데 말이죠
동성애 반대 운동 하는 놈들이 소돔과 고모라 이다 말이죠
동성애자나 그 반대를 하는 자나 역시나 빈칸을 채우는 겁니다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를 자기 숙제로 채울려는 정신병이다는 거죠
남은자 운동을 하는 놈들이 곧 소돔과 고모라 이다 말이죠
가버나움이다 말이죠
반작용 한풀이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세상의 악한 부조리에 맞서서 건전하고 올바른 성경적인 공동체를 이루자 라고 만든
저 두레마을 같은 자들 바로 이들이 소돔과 고모라 이다는 겁니다
정통 정통 이라고 우기는 저 북이스라엘도 아닌
심지어 남유다 의 왕인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을 구하라 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외쳐도
미쳤습니까? 임마누엘을 구하게???
나는 때려 죽어도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겁니다
임마누엘이 뭔데요?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부정적입니까
남자 없이 아이를 낳는 그 처녀가 낳은 아이를 구하라 라 굽쇼 ~~~~~~~~~
상스럽기 짝이 없는데 어떻게 구하냐 말이죠 처녀가 남자 없이 아이를 낳는 것을 그 비밀 그 비유를 무슨 수로 구합니까
이것이 끝에서 종말에서 내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라는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구하는 죄인만이 환자만이 구하는 의사요 구원자 인
이 비밀을 이 비유를 무슨 수로 구합니까
그래서 비밀 바깥
예수 바깥에 있는 자는 구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정통 정통 우려먹는 북이스라엘이다 라고 우겨도 안 되고
심지어 남유다 만큼만은 몽둥이 징계의 매를 대셔라도 돌아오겠끔 하겠다 라는
임마누엘 까지 줘도
줘도 못 먹는 이 비밀을 줘도 못 먹는
여전히 비밀 바깥에 놓여지는 겁니다
누가 부딧히는 돌에 넘어져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라고 여깁니까
이 부딧히는 돌 곧 임마누엘을 구하는 자가 누가 있겠냐 말이죠
제대로 된 심판 절대저주 절대심판 절대사망을 본 자만이
우는 자로써 자기 죄로 우는 그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겁니다
제대로 부딧히는 돌에 부딧힌 겁니다
이 임마누엘을 구하라
즉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을 구하라
이 단절을 종말의 영 새영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만이
정직한 영 곧 예수의 마음을 구하라 말이죠
원인 없는 결과를 구하라 굽쇼?
과거 없는 미래를 구하라 굽쇼 ~~~ 선물을 구하라 굽쇼
무슨 염치로~~~ 쪽팔려서 성화론을 주장해야 하듯이
그런 염치 없는 짓 안하겠다 나는 반드시 빈칸에 정답을 반드시 써넣는 정성을 반드시 넣겠다
자 이것이 바로 왕이 없어서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자들의 특징은
(왜냐하면 모세언약은 행함의 영역입니다 자기 손을 댈수가 있지만
다윗언약을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는 행함 아닌 믿음의 영역인 예수님의 숙제이니
사람의 손으로 지을 수가 없다 보니 어쩔수 없이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끝까지 자기 숙제를 포기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니 예수님의 숙제를 무슨 수로 자기 숙제화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되면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 임을 스스로 고백하게 되는데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넘어지는 그런 어리석고 미련한 짓을 왜허느냐 라고 자기검열할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숙제를 하든 말든 나는 내 숙제 하겠다 라는 식으로
따로 국밥 따로 살림을 차리는 겁니다 그 오예물을 혼합물을 자랑인냥 육의 자랑으로 말이죠
이런 인정 욕구 없으면 인간은 하루도 못 버티니까요)
바로 임마누엘을 아무리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는 겁니다
아니 죽으면 끝인데 삼일 만에 살아난다 라고?
안 살려주면 그럼 우짜노 ~~~~~~~~~
죽음이 먼저 있고 그 다음 다시 살려주심이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일 만에 다시 살려주시는 이 사랑이 먼저 있기에
이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임마누엘을 못 구하는 겁니다
삼일의 간극의 죽음을 구한다는 자체가 나는 이미 살아있는 상태이다고 본 거죠
아닙니다 이미 죽은 자 임을 아는 자 만이
어서 죽어주소서 임마누엘을 구하지
자기 살아 있는데 삼일의 간극을 구한다? 그 역시나 빈칸 그 간극을 자기 숙제로 구하는
이 육의 숙제 밖에 안나오는 이 인간의 한계를 보고 직시하는 정직한 영 없음이 아니라
나는 살아있는데 라고 출발하니 내 죽음만 심각하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하나도 중요해 질 수가 없는 겁니다
왜 죽지? 난 아직 살아있는데?
왜 해방케 한다 하시지? 아는 아브라함 자손으로써 남에게 포로 된 적이 없는데?
모든 것이 비밀 비유로 다가오는데
그 비밀 안에 들어갈수 없는 자기 한계가 자기 죄가 안 보이느
울수도 없고 구할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는 겁니다
오로지 정직한 영 새영 성령이 와야 비로소 구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숙제가 아니면 성령이 올수가 없죠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가 오지 않으면
정답이 오지 않으면
정답이 찾아내는 탕자 문제아가 아니고
내가 정답을 반드시 빈캄에 채우겠다 라고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소돔과 고모라만 의문의 반복만 적어내는 겁니다
율법의 마침은 없고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 안되겠다 라는 그 완악한 수건만 더 겹겹이 머리에 쓰는 겁니다 모자를 일곱 개를 겹쳐서 쓰는 겁니다 조선 왕비가 그 무거운 머리 장식을 더더더 무겁게 해서 자기 의로움을 과시하지 않으면 언제 그 자리에서 짤릴지 모르니 말이죠
모세의 온유가 아닌 성화 스펙을 쌓겠다 라고 노예 자격증을 따서 머리에 장식하는 겁니다)
단절의 3일이라는 그 간극 그 임마누엘이라는 징조 그 비유 그 비밀이라는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거죠
즉 한 몸이 아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식의 이름도 이스라엘 내 씨앗이 아니다
로루하마 내 긍휼 내 사랑이 아니다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그 자리에서
내 씨 아니다 하신 그 자리에서 내 남겨둔 한 씨 맞다
내 사랑 아냐 하신 그 자리에서 내 사랑이 맞다
내 백성 아닌데 !!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찾으러 왔는데
개같은 이방인 구하러 온게 아닌데 하신 그 자리에서 내 백성 맞다
맞습니다 맞고요 저 개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먹지 않습니까 라고 우는 그 귀신 들린 딸의 어미
긍휼을 구하는 자기 백성을 찾았다 라고 비로소 믿음을 피를 바른 자 남은 자를 찾으시는 겁니다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1, 현대어) [가나안 여자의 믿음;막7:24-30] 예수께서는 그 지방을 떠나 두로와 시돈으로 가셨다.
(마 15:22, 현대어) 그곳에 사는 가나안 여자가 예수께 와서 큰소리로 간청하였다. `주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 딸이 귀신 들려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 15:23, 현대어) 그러나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시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성가시게 하고 있습니다.'
(마 15:24, 현대어)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즉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지 이방인들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다.'
(마 15:25, 현대어)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께 엎드려 절하며 `선생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마 15:26, 현대어) 예수께서 `자녀들이 먹을 떡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시자
(마 15:27, 현대어) 그 여자가 말하였다. `예,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질 않습니까?'
(마 15:28, 현대어) 그때 예수께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막 7:26, 개역)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27,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8, 개역)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4, 현대어) [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마15:21-28]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거기 계시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려 하셨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문이 금방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막 7:25, 현대어) 바로 그때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든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자마자 달려와서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막 7:26, 현대어)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 여자는 업신여김을 받는 헬라인으로 수로보니게 태생이었다.
(막 7:27, 현대어)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먼저 내 식구들인 유대인들부터 돌봐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음식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막 7:28, 현대어)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흘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질 않습니까?'
(막 7:29, 현대어)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훌륭한 대답이다. 내가 네 어린 딸을 고쳐 주겠다. 집으로 돌아가라. 귀신이 벌써 네 딸에게서 떠나갔다.'
(막 7:30, 현대어) 그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보니 어린 딸은 조용히 자리에 누워 있었고 귀신은 떠나가고 없었다.
(막 7:31, 현대어)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치시다] 예수께서 두로 지방을 떠나 시돈에 가셨다가 데가볼리 지방을 거쳐 갈릴리 호수로 돌아오셨다.
즉 이 남갸둔 한 씨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이 남겨둔 한 씨가 먼저 있었다를 외치기 위해서
우리를 부정적인 자리에 놓았는데
그것이 처음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이스라엘 자리 인데
그 반대로 내가 먼저 있고 내 신랑이 뒤에 있다 보니
다들 고아 과부 나그네 처음자리가 아닌 모세의 자리에 다 앉다 보니
나는 더러운 자가 되면 안된다 막살면 안된다 라고
그 카이 임마누엘을 못 구하는 겁니다
그러든 말든 주님은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로 밀어붙이심으로써
나 보다 먼저 된 남겨둔 한 씨가 먼저 있었음을 나타내시도록 하신다 말이죠
이것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사랑이다는 겁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나 아닌 나 보다 먼저 있었던 사랑을, 정직한 영, 새 영 새 마음 새언약을 말하기 위해서
나는 뭘 해도 원수인 자리에 놓으셨던 겁니다
그런데 원수이면서도 난 아직 원수 아니다
원수 덜 되었다
원수 되면 안된다
그 모욕적인 구원 싫다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멋들어진 구원 곧 의인 남을 7번 용서하는 건강한 자의 자리에서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교회를 교회답게
남은자를 남은자 답게 할란다 라고 하는 짓이
더더욱 소돔과 고모라, 가버나움, 강도의 소굴로 만들더라 말이죠
그카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임마누엘 스알야숩 마헬살랄 하스바스는 원수들이나 하는 짓들꺼리이다
누가 자기 자식 이름을 저렇게 부딧히는 돌처럼 짓고
누가 자기 자식 이름을
이스르엘 내 씨 아님
로루하마 내 사랑 내 긍휼 아닙
로암미 내 백성 아닌 라고 거치는 반석으로 이름 짓는 자들이 세상에 어디 있나?
아니 태어날 때부터 고아 내 씨 아님
과부 내 사랑 아님
나그네 임금 없는 떠돌이 내 백성 아님이라고 이름 짓는
그런 부정적인 행함인 단절의 비유 단절의 비밀을 짖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자기 자식은 곧 자기의 미래요 부활인데
누가 자기 구원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자가 세상에 어더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삼신할매든 무당이든 어떤 신이든 모든 신을 다 동원해서
왕의 족보 왕의 DNA을 가진 내 자녀의 이름을 작명해 달라고
천지신명 다 동원해서 이름 짖지
내 아들 솔로몬 이라고 이름 짖고 싶어 하지
누가 내 아들을 고아 라고 이름 짖냐 말이죠 버림받은 자 라고 누가 누가?
그래서 모든 인간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구합니다
즉 임마누엘을 절대로 구할 리가 없습니다
심판 속에서의 남겨둔 한 씨를 구할리도 없고 또 남은자도 남겨둔 한 씨도 구할 리가 없습니다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치는 인자의 온유를 구하는 자 아무도 없어요
그럼에도 남은자 운동을 하는 이유는
가룟유다처럼 먹고 배부른 까닭 곧 자기가 먼저 있어서 임금삼고자 찾기놀이를 하는 겁니다
수건찾기 종교오락을 하는 겁니다 그 의문의 반복 오락에서 멈출 방법이 없어요
즉 심판 속에서의 남은자가 아닌
심판을 빼 버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입니다
기적중독이다는 거죠
미래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곧 미래중독이다 라는 것은
과거에 중독 되었다 라는 거죠 빈칸 채워넣기 중독이다는 겁니다
자기 숙제 중독 바르게 살기 중독인 거죠 의문의 반복 중독 게임인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랑 없는 그림자 헛깨비 우상에 추호도 양보가 없으십니다
반드시 깨뜨리시고자 꽝 하고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가루로 만드시고자 일체 양보없이 쳐들어 오십니다 천국은 침노 침략하는 자의 것이니까 말이죠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 폭력적인 사랑
우상에게 양보치 않는 사랑
죽음이라는 허께비 보다 강한 사랑이 시기와 질투의 사랑입니다
흔히 시기와 질투는 사랑이 없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사랑이 먼저 있지 않는 사랑 없는 윤리요 도덕이요 법인
남의 눈을 의식한 멋들어져 보이는 껍데기 곧 육입니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누나가 남의 사랑에 기여이 간섭합니다
모세야 그거 사랑아니다 그거 결혼 아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를 업어서 키웠는데 어떻게 저런 제일 핫바지 구스여인이랑 결혼하려느냐
그거 동정이지 사랑 아니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사랑하고자 할 때 모든 주변의 사람들이 다 반대 합니다
진짜 사랑이다는 증거죠
다들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할때에
그 죽음 그 사망 그 소돔과 고모라 속에서
이러다 다 죽어 라는 구스여인과의 결혼을 하시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는 겁니다
아니 자식을 독을 달라고 하고 어디선가 남들이 주는 독을 전갈을 먹을때에
우싱을 먹을때에
그때 우리가 바로 앞서 배운 호세아서의 북이스라엘이 죽으라고 해대는 짓 아닙니까
그카이 남유다는 그들을 욕하면서도 역시나 했다 말이죠 더 했으면 더 했지
죽으라고 우상을 먹을 때 전갈을 먹을때에
그 행동 주님이 좋아하고 사랑하셔야 합니까
아니면 죽으라고 미워 하셔야 합니까
시기와 질투로 우리 손 모가지 짤라서라도 미워하십니다
그렇게 짤라서 없애 버리시고
자신의 손모가지 짤라서 붙이시는
이 과정
이 과정이 이 언약의 코스가 먼저 있었다 말이죠
왜? 마귀를 죄를 이길자 없으니까 말이죠
그리고 자신의 몸을 다 우리에게 녹아 없애버리셨습니다
아 그럼 우리 불의한 몸이 이제 다시 살아나서 죄악을 더 저지르겠네요?
천만의 말씀 이제 죄를 짓고 싶어도 못 짓습니다
용서가 다 덮어버렸기에
모든 허물을 다 덮어버렸기에
마귀만이 자꾸 들쳐볼려고 하지 주님은 모든 허물 다 덮어버렸습니다
이 용서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죄가 없어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정죄함이 없는데 왜 말라꼬 마귀말 듣나요
오히려 육의 한계에 부딧혀서 내가 아닌 마귀가 내 속에서 모든 허물을 들추어내고자 할때에
오히려 주님의 사랑의 깊이 높이를 매 맞고 징계를 통해서 더 깊게 아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마귀에게 넘어가도 걱정 마세요
주님이 단번에 그 지옥에 뛰어드셔서 끄집어낸 화목제이기에
오히려 그 화목제의 그 깊이의 십자가의 지혜를 더욱더 새록 새록 알게 하시는 겁니다
이 관계를 주님이 먼저 맺으시고자 자기 목숨을 다 버린 사랑인데
언 놈이 끊겠습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우리를 끊으리요
끊고 싶어도 끊어지고 싶어도
이미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다 이루어졌고
다 완료가 되어서 게임 오버가 되어버렸기에
다시 되감기 되돌리기를 할 수가 없어요
다시 미완료 미결론 상태로 되돌릴수가 없게 된 겁니다
그저 다 이루었다 라는 결과만을 우리는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왜 나는 왜 안되는지 신약의 다 이루심이라는 비밀이 먼저 뜨지 않으면
왜 구약의 미완료에 머뭇 머뭇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지 않고 머뭇 머뭇하는
어리석게 태어난 모든 임금 모든 권력자의 속임수에 속지 않는
이 십자가의 또렷한 다 이루심 앞에서
누가 도대체 어떻게 왜 믄 이유로 왜 속일려고 하는지
그 사탄의 깊이를
하나님의 깊이인 십자가의 다 이루심 덕분에 알게 하시는 겁니다
부딧히는 돌을 시온에 두셔서 모든 인간을 다 넘어뜨리는
이 뜨인 돌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처음자리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인 그 처음자리에 갈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첫사랑을 못 보는 겁니다
뜨인 돌 부딕히는 돌 덕분에 내 의는 그 되도 않는 자기 의
사실은 의로움이 아니라 의도 모르면서 남 7번 용서가 의인줄 착각한
똥덩어리 배설물인 소돔과 고모라인 줄 모르는
그런 내 손에서 만들어낸 가짜 의를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박살이 나서 가루가 되어야
다시는 손 안 댈꺼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계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박살을 내어서 가루로 만들어야
비로소 주님이 손 수 지은 3일만에서 지은 걸어다니는 성전
그 비밀을
아무리 봐도 버림받은 자요 죽은자요 없는자요 무태한 자요 무명한 자인데
예수 안에서는 이 이스라엘이라는 처음자리가
첫사랑에 딱 맞는
남은 자 자기 죄로 우는 자가 남겨둔 한 씨에 딱 맞는
신랑이 찾아낸 신부 비밀 신부인 겁니다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는 지혜라는 인물이 찾아낸 자이다는 겁니다
음녀는 그 반대로 음녀가 찾아낸 신랑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다 라고 우기기에
화목제와 비밀 비유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 오에물 혼합물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가
불순물을 다 갈라내신
이 삼일의 간극 절대저주 절대심판 절대죽음 속에 집어 넣었다가 빼내심으로써
부들 부들 밭갈이 기경을 통해서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이 다가오시는
첫사랑이 찾아내시는 고아 과부 나그에 인 겁니다
그러니 이 용광로 불순물 제거하는 이 몽둥이 징계의 사랑이 아니였다면
이 부딧히는 돌에 넘어뜨리시고 자빠뜨리시는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짓겠다 라신
그 시온에서 나온 부딧히는 돌
죄 아래에 가두시는 율법과 선지자가 아니였다면
울게 하소서 자기 죄로 울게 하시는
라샤 ~~~~~~~~~~ 끼오 삐앙까 ~~~ 미아 끄루다 소르떼 ~~~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을 것이다
이렇게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우리를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서 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넘어뜨리는 겁니다
어딜 감히 율법의 완성인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가짜 사랑
가짜 남 7번 용서
가짜 의로움을 가지고 사기를 쳤던고
진짜 실상
나같은 그림자가 이룬 가짜들
자기 숙제로 빈칸이나 허덕 허덕 거리면서 겨우 남 7번 용서를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내 밀었으니
얼마나 똥덩어리 냄새 오염물 배설물 악취를 풍겼는지
7에 70번 십자가의 죽음이 또렷한데 이 다 이루심 완료 앞에서
미완료를 들이내밀었으니 얼마나 머리에 숯불 얻은 듯이 부끄 부끄냐 말이죠
일곱이란 도리어 단절의 절대저주 절대심판 절대죽음만 가득했음도 모르고
이 죄도 모르면서 어떻게 의를 제대로 알아서 의를 행했다고 우기는지
심판의 자리에 와 놓고서는
부딧히는 돌 넘어뜨리는 돌 가루로 만드는 그 돌 앞에서
자기 의를 쌓은 그 열심을 자랑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의에 복종 안한 티를 팍팍 낼 정도로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모르고
자기의 지혜 자기의 총명을 내세우는지
인간의 지혜 인간의 총명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어리석고 미련한 이 십자가의 지혜
인간 지혜를 폐하고 인간 총명을 폐하는 총명을 못 알아보고
짐승의 수를 사람의 수를 들이내밀고 있으니
하나님과 원수된 육의 생각을 들이내밀고 있으니 말이죠
뭘 해도 죄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이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그 찢으심 앞에 밭갈이 당함으로써
가루가 되어 부들 부들한 땅이 되어
그 처음자리에 첫사랑의 씨앗
남겨둔 한 씨를 뿌려야
부활 곧 한 알의 밀알이 뿌려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이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비로소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다시 싸메어 주시는
이 긍휼을 다 이루시는 겁니다
모세의 온유가 아니였더면
모세의 말 대로 이러다 다 죽었습니다
에스겔 인자의 말 대로 이러다 다 죽었습니다
남겨둔 한 씨 임마누엘 징조 구하는 성령의 탄식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우시는 예수님의 기도 아니였다면
베드로는 마귀의 송사에 벌써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한 알 한 씨 라고
딱 하나를 강조하는 이유는
반대로 인간은 자꾸 다중 많다를 강조함에 있어서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는 겁니다
(겔 33:24, 개역)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이거 지난 주에 했나요?
아 아직 안했구나 미리 녹음해놔서리
앞으로 오는 주에 2주 더 뒤에 올라올 내용에 있습니다
자꾸 많이 했다 라고 우겨요 즉 자기 숙제를 했다 라는 겁니다
주님은 너 숙제 한거 없는데 라고 하시는데 말이죠
배설물 똥덩어리만 잔뜩 모았네 라고 하시는데
성화론자들은 서로 배설물 누가 많이 쌓기 하는가를 목사놈들이 싸움을 경쟁을 붙여요
목사 배불리는 짓만 골라해요 글쎄
그렇게 세워진 바벨탑 강도의 탑 해골언덕이 바로 바티칸 교황 아닙니까
소돔과 고모라 따로 없어요
그짓을 부러워서 똥 배설물 부러워서 개신교가 다 따라해요
성화론자들은 미친 듯이 하고 있고요
이단들 신천지 이런 놈들은 어떻게 해서든 정통 속에 들어가고자
돈 로비를 하는 겁니다 순복음처럼 정치꾼들과 손 잡을려고 하는 거죠
순복음이 언제 슬쩍 정통이 되어버렸넹 축하혀요 배설물 똥덜어리 버릴 지옥 쓰레기 된 것을
다윗 보세요
자기 의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인 자기 의로
그 꺽으신 뼈
자기(다윗) 죄로 우는, 피 흘리는
지기(다윗) 죄 때문에 죽는
그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기여이 자기 회개 눈물 금식 기도 이 4종 세트를 기여이
그 뻔데기 앞에 주름을 들이내 밀려고
그 오예물 혼합물 그 배설뭉을 들이내밀려고 합니까
그래 그래 한 번 살려보라 말이죠
모세처럼 어서 죽어주소서 별세해 주소서 라고 임마누엘을 구하는지
아니면 아하스 왕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지
절대로 다윗은 임마누엘 구할 마음이 없어요
그럼 다윗 너의 의로움으로 아이를 살려보라 말이죠
과연 이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한 화목제
십자가의 죽음
꺽으신 뼈가 너 보나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너 뒤에 있었는지
함 해 보라 말이죠
과연 살려 낼수 있었는지
다윗은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비로소 넘어져 가루가 되니까
자기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날때부터 주의 목전
눈 앞에서 항상 저질러 왔음을
그것을 보시고도 오래 참으시고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관용 겨우 7번 정도가 아니라 7에 70번 용서 즉
이것은 반드시 너의 죄악을 용광로 속에서 찌꺼기를 분리 시키겠다
그런데 죄가 뭔지 몰라요
남을 7번 용서하겠다가 죄인 줄 몰라요
그 찌기를 분리시키고
반대로 의가 뭔지 몰라요 모욕적인 7에 70번 용서
안 구할란다 라고 하는 그 7에 70번 용서가 하나님의 의
곧 관용 오래 오래 한 두 번도 아닌 일곱 번도 아닌
7에 70번의 50살 평생 겨우 남 7번 용서가 아닌
일만달란트 16만년 동안의 용서를 베푸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진리는 항상 오바 액션입니다 오바 하고 있어요
왜? 다 이루었기에 남아도는 겁니다
완료이거든요 항상 넘쳐요
진리는 넘치는 잉여 속에 있습니다
과잉 과하게 넘쳐서 남아도는 겁니다
반대로 거짓은 늘 결핍입니다 항상 모잘라 모잘라
함량 미달입니다
무게가 모잘라 메네 메네 데갈 우바르신 ~~~~~~
그래서 늘 그 결핍을 채울려고 항상 빈칸에 정답 써넣는
땅의 계집종 하갈과 같아요
사람의 수 짐승의 수 666입니다
우리는 이 비밀의 성도
비밀 안에서는 동서 남북 쭈욱 뻗어가는
동 333
서 333
남 333
북 333
초과잉적인 넘쳐나는 퍼도 퍼도 줄지 않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왜? 단절의 절대죽음을 넘어섰기에 말이죠
단절의 3을 그것도 세 번 씩이나
그것도 7번 씩이나
우리가 잘나서? 아니지요
절대더러움을 절대거룩으로 옮기는
걸어다니는 성전의 5대 제사 일곱절기를 다 이루신
친히 화목제 되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이 비밀의 온유를 몰라보고
모세 누나 미리암은 비밀 바깥
곧 이스라엘 진영 바깥에 있다가
구스 여인에게 베푼 그 모세의 온유의 기도 덕분에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친히 기도하신 그 온유 그 긍휼
인애와 자비 덕분에
번제와 제사를 주장한 미리암 바깥으로 쭃겨났다가
다시 온유의 기도 덕분에
비밀 안으로
예수 안으로 들어와서 문둥병이 고침을 받은 겁니다
이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에
이 비유의 기도 비밀의 기도 온유의 기도 안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이러다 다 죽어 라는 남겨둔 한 씨의 죽음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딱딱한 땅에 그 딱딱한 마음 그대로 내어버려두사를 당하는 겁니다
알쓸신잡 새 버전이 또 방영하던데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그 장면을
건축가가 도시 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시골 같으면 누가 누구인지 다 알기에 익명성이 보장 못 받는다 말이죠
그런데 도시라는 공간은 익명성이 보장이 되니까
저절로 도덕성이 높다 라고 공간 자체가 사람을 가스라이팅 세뇌를 시키더라 말이죠
그래서 마녀사냥하기 악플달기가 참 좋은 겁니다
더더욱 자기의 이름을 숨길수 있는 가상공간 인터넷 공간 속으로 들어갈수가 있다는 거죠
그것을 눈치 없는 부딧히는 돌인 예수님이
땅에 공간에 돌들이 소리 지르도록
저 돌삐 든 남자들 간밤에 이런 죄를 저질렀드래요 라고 고자질 하게 하니까
냅따 손에 든 돌을 놓고 냅따 도망을 치더라 말이죠
공간이 생각을 만든다 라고 무당 굿판 하는 장소로 옮기니까
맨날 무당 짓만 골라하는 겁니다
돈에 미친 놈들 다 한 패거리가 되는 거죠
돈에 미친 교회
선 줄로 아는 교회가 뭐? 구국 장로회! 였던가요?
소돔과 고모라 아닌 곳이 없어요
그래도 교회는 괜찮겠지 하고
전쟁이 나서 교회 속에 다 들어갔는데
오히려 주님은 옳치 더 잘 되었구나
일일이 찾아가서 죽일 필요가 없이
한꺼번에 다들 그 썩어빠진진
아무리 아무리 놋슨 가마를 온갖 세제 다 동원해도 안 지워지는
녹슨 가마솥 비유 (겔 24, 1-14)
에스겔 2019 2024. 3. 16. 21:28
21-073 살인자의 성읍아, 녹슨 가마솥아, 화 있을진저 (겔 24, 1-14)
https://crosslamb.tistory.com/2653
그 가마솥에 다 모였구나 하고
한꺼번에 한 방에 잔 탁 ~~~~~~
기생충 십이지장충 단 한번에 ~
이 광고 너무 오래전이라 검색이 안되네용 ㅋㅋ
자 그렇기에 시온에서 나온 뜨인돌에 의해서 율법의 목적은 우리를 가루
깨뜨리고자 밭갈이 기경을 통해서 부들 부들하게 만들고자
그 완악한 마음 곧 율법 지켰잖아 라는 그 자기 의 쌓는
그 딱딱한 마음을 부딧히는 돌에 의해 부딧혀 가루가 되는
깨뜨리시는 더 나은 제사인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우리는 자기 의로움세 속고 마는 겁니다
즉 십자가가 또렷히 있는데
십자가 아닌 이상 모조리 다 속고 속이는 꾀임이다는 거죠
나를 제대로 깨뜨리시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자유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그 넘쳐나는 퍼도 퍼도 줄지 않는 그 생명으로 모르고
늘 자기 한계치에서 빈 칸에 결핍 채우듯이 의문의 반복만하다가 지옥가는 겁니다
죽음 조차도 이기지 못하는 그 되도 않는 자기 의를 포기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외부에서
즉 비밀 안에서 나오는 그 비유로 그 믿음으로
인간 내부에서는 정직한 영도 없고
의도 없으면서도 의를 쌓았다고 그러나 배설물 뿐인
그거 믿지 마시고 내 믿음도 속임수일 뿐이니
내 믿음도 믿지 마시고
오로지
꺽으신 뼈에서 나온 믿음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제대로 나의 마음을 그 딱딱한 마음을 제대로 죽이시고 심판하시고
밭갈이 하시는 제대로 깨뜨리시는 그 사랑 앞에서
모조리 다 거짓으로 들통당함으로써
부들 부들한 그 새마음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새로 생겨난 남은자로써
주여 이 소돔과 고모라 지옥의 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자입니다 라고
자기 죄로 우는 이 심판받아 마땅한 몸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 에 복종하는
새 마음 성령을 주셔서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의 친히 손수 만드신 화목제만을 쳐다봄으로써
왜 화목제 입니까
둘로 나누어졌다는 것이 전제된 겁니다
그 둘로 나누어진 원수 관계를 피가 한 몸 되게 하셨다 라는 거죠
그 카이 이 죄 이 의도 모른채로 심판해대고 다녔으니
얼마나 우리가 순 엉터리 아니고 뭡니까
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익명성 보장되고 익명성 높은 그 모제의 자리가 아닌
고아의 자리에서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만을 다시 기억하도록
이 부딧히는 돌에 어서 어서 가루가 되도록 깨뜨려주소서
아 남겨둔 한 씨 아니면 우리 이러다 다 죽습니다
주여 제발 불쌍히 여겨주소서
자 이렇게 누구 누구의 이름을 부른다 라는 것은
이제 도시라는 공간 장소가 자기의 익명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닌
도리어 까발려져서 더 이상 익명성이 보장이 안되는
경계선 담벼락 높이 쌓을 필요가 없이
막힌 담을 쌓기는커녕 도리어
막힌 담을 허물어 버리는
이제 내 이름 삭제 당한 상태인 뭘 해도 그저 죄인
뭘 해도 그저 환자의 자리
그 고아의 자리에서
그딴 죽음의 이름이 아닌
이제 생명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써
내 이름을 지옥의 이름으로 판명이 났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써
격계선 긋는 도시 라는 공간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돌삐 빨간 벽돌 하나 하나에 교인들 이름 새겨주겠다 라는 그 사기 꾀임에 더 이상 속지 않는
제대로 된 지우개로 나의 이름을 제대로 지우시는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는
제대로 발가벗기시는 그 십자가 앞에서의 부끄 부끄 머리에 돌을 얹은 듯이
얼굴이 달아 올라서 부끄 부끄한
어찌할꼬 어찌할꼬 우는 그 약속한 성령 그 부드러운 새 마음이 오심으로써
비로소 우는
죽어도 49일 까지도 울지도 않던 자가
50일 약속한 성령이 오신 날에
그 인자의 날에
악인인 우리를 비로소 돌이키심으로 말미암아
주께로 돌아오는 자 만드심 앞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는 겁니다
그 주의 이름만이 높이 세우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