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9

한 선지자가 있었던 줄을 알리라 (겔 33,28-33)

김 대식 2025. 5. 3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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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4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있었던 줄을 알리라 (겔 33,28-33)
2025. 6. 1.

착각 ;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착각 (겔 33,24-27)
에스겔 2019 2025. 5. 10. 17:17
21-093 착각 ;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착각 (겔 33,24-27)

〈에스겔 33,28-3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3쪽, 찬송가 144장 새 144 예수 나를 위하여, 찬송가 260장 새 496 새벽부터 우리〉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새찬송가 144장〉 

1.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2.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아 죽였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3.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되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4.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 받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아멘


〈찬송가 260장 새벽부터 우리, 새찬송가 496장〉 

1.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2.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 봅시다 
   일을 마쳐 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3.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에스겔 33,28-3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3쪽〉

(겔 33:28, 개역)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겔 33:29, 개역) 내가 그들의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면 그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
(겔 33:30, 개역)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겔 33:31, 개역)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겔 33:32, 개역)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겔 33:33, 개역)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겔 33:28, 새번역) 내가 그 땅을 황무지와 폐허로 만들어 놓으면, 그 거만하던 권세도 끝장이 날 것이고, 이스라엘의 모든 산은 메말라서, 사람이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겔 33:29, 새번역) 그들이 저지른 그 모든 역겨운 일 때문에, 내가 그 땅을 황무지와 폐허로 만들어 놓으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33:30, 새번역) "너 사람아, 네 민족의 자손 모두가 담 밑이나 집 문간에서 네 이야기를 하며, 자기들끼리 서로 말하기를 '어서 가서, 주님께서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들어나 보자' 하면서,
(겔 33:31, 새번역) 마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를 보러 오듯이 너에게 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네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그 말에 복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는 달갑게 여기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들의 욕심을 따르기 때문이다.
(겔 33:32, 새번역) 그들은 너를, 악기를 잘 다루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나 부르는 가수쯤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네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그 말에 복종하지는 않는다. / ㉠히, '사랑의 노래쯤으로'
(겔 33:33, 새번역) 그러나 내가 너에게 시켜서 한 그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말씀이 이루어지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이 신앙 곧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하나님이라는 것이 가짜인 이유가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 유익을 위한 행동이요 믿음이기에
그 믿음의 대상 인 하나님 조차도 가짜인 겁니다
자기가 믿고픈 것만 골라서 투사 투시 투영 반영을 시킨
결국 자기자신의 투영인 하나님 곧 자기자신이지
진짜가 아닌 거죠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하나님을 믿지
다른 존재를 믿을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최고의 대상물로써 결핍을 채우는데 이용하는 믿음이다는 거죠
고로 인간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복수심이다는 겁니다
결핍 채워서 뭐하느냐? 복수하는 거죠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무시했어도 나 봐라 극복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 여호와 인줄 알리라 라고 했다면
이 진짜 하나님의 등장으로 인해서
바로 저런 가짜 하나님 뿐만 아니라
나 라는 자아 이것도 허상 허구 가짜이기는 맹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괜히 십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고 우상을 언급한게 아닙니다
나 라는 자아를 우상으로써 투영했기에 그러니 인간이 말하는 모든 종교의 신은
우상인 거죠 자기의 탐심 자기의 유익이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 다 마찬가지 인데
지들도 다 알아요 종교란 그저 자기유익으로 마음의 안정을 위한 불안제거용인 필터일 뿐이지
진리는 아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니까
어리석은 민중은 의지할 곳에 필요하다 보니 말이죠

저들은 이것이 진리입니다 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속으로는 진리란 없어 진리에 다다른 인간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 이데아로 남았기에
진리를 외치는 종교사업은 꺼지지 않는 돈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픈 그 결핍이 있는 이상 말이죠
특히 가난한 자 무식한 자 등쳐먹기 딱 좋은 겁니다
그러니 종교라는 우상은 절대로 타파 하면 안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만 성전을 뿌수겠다 라는 발언은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한 겁니다
성전을 건드린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허물어 버렸으니
인간이라는 신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폭력이 아니면 더 나은 폭력이 나올수 없지요
인간의 유일한 무기인 살인 조차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천주교 신부가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왜 당신들은 마리아 상을 만들어 왜 자꾸 우상화 합니까
그 신부가 말하기를 네네 마리아 우상 맞아요 그러나 대중은 뭐든지 믿고파 합니다
마음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무슨 수로 그 결핍이라는 음부 지옥을 채우겠습니까?
대중에게 종교가 토착화 할려면 저런 과정도 다 필요합니다
바로 원액(딱딱한 음식)을 그대로 먹으면 배탈 나기 마련이겠지요
시간이 다 지나가다 보면 저런 어린아이 짓도 장성하면 다 졸업한다고 말이죠

개신교의 지독스러운 마리아 우상문제에 대한 공격에
아주 유연하게 대처를 하면서 별거 아닌 문제로 취급했는데
어라 오히려 개신교의 목사 우상숭배는 마리아 보다 더 심각하다는 거죠
둘다 도진개진인 거지요 목사숭배 교회숭배 역시나 눈에 보이는 대상물을 줘 버렸으니 말이죠

주님께서 나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 라고 했다는 말은
그 어떤 인간의 신앙도 바른 인간이 없기에
아니 아예 인간 손에 안 맞기겠다고
손수 직접 나서서 개입해 버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성전을 헐라 라는 의미는 인간의 모든 믿음을 거부하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라가 먼저 떴다면
우리는 순 엉터리 신앙을 해 왔다 라는 지적을 받는 사건이 벌어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 첫내용을 십자가가 먼저 떳기에
무조건 우리를 엉터리 교회상을 염두한 입장에서
몽둥이 맞는 주님의 손수 직접 간섭을 나열하고 있다 라고 했잖아요
왜 자꾸 고린도전서 첫 내용을 자꾸 언급하느냐 하면
참으로 누가 그렇게 시작하는 교회가 어디 있겠냐 싶어서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 그 자체이 집착하면서 교회를 시작하지
누가 십자가로 시작하고
그 십자가에 매 맞는 교회로 시작하는 교회를 우리는 본적도
격어본적도 없는 그저 종교시설 밖에 안되거든요
그런 눈에 보이는 교회를 체험해 봤지
말씀 자체가 고린도 교회를 다루심에 있어서
성경말씀에는 나와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교회를 우리는 경험한 적이 없어요
그저 어릴적 교회처럼 그저 오락시설 종교오락 레크레이션 웃음치료사 교실처럼
그저 긍정적으로 남은 기억과 앞으로도 그렇게 남기를 바라고 있지
누가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짖겠다 로 시작하는 교회를 체험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껍데기 속에 들어가서 만족하는 이유는
뭐 떡하나 꽁꼬물이라도 바라는
자기 유익 특히 내 신앙에 뭔가 유익이라도 될까 싶으니까
그런 껍데기 속이라도 들어가는 거다 말이죠
오히려 진짜가 실상이 나타나면 곤란해 지니까 말이죠
그저 그저 그림자 놀이로만 족하는 겁니다
이것이 기계죠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무한반복의 기계
곧 마침이 없는 겁니다 완료가 없이 그저 밑빠진 장독대에 물 붓기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믿음 곧 결핍 채우기입니다 이유도 몰라요
그저 타인의 욕망을 따라갈 뿐입니다
애굽이 지하로 내려갈 때 주변의 나라의 여자들이 그 지옥으로 같이 따라가듯이 말이죠

자 그런다고 말씀이 안 움직이느냐 인간의 움직임을 거부하고
이런 유익꺼리 몽땅 다 제거하고
바로 십자가가 먼저 떳다 라는 이유로
신앙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온갖 개입의 잔소리로 이래라 저래라 하게 되면
그 노예 취급받는 것을 요즘 같은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좋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주변에서 다들 피해라 라고 충고해 줄 정도이다 말이죠
오죽 미친놈들이 한 둘이가 아니게 날 뛰니까 말이죠
그카이 직장 생활도 아닌데
교회까지도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기 바쁘더라 말이죠
그게 무슨 놈의 교회인지

재수 없는 놈 꼴 당하지 않을려면 교회 속에서 조차도 줄을 잘 서는
이런 정치술이 빨라야지 느릿 느릿했다가는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상활 뿐이다는 겁니다
쥐박이 보세요 교회 주차장 안내를 아무리 대통령 출신이라고 해도 해야하는 겁니다
그러니 사기를 칠수 있거든요

이것이 바로 내가 먼저 있고
구원은 곧 하나님의 일은 나중에 있어서
그 하나님의 일을 내가 곧 사람의 일로 해야지만 구원을 따 낼수 있는
나의 일로 보는 겁니다 내가 먼저 있었으니까
아 네네네 물론 하나님이 먼저 있었지요 그러나 그 하나님을 인식할려면
내가 먼저 있어야 내가 믿든지 말든지 하지
나로 부터의 출발이 없다면 이건 내 숙제가 더 이상 아니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실용주의라고 했지요
하나님의 일도 내 일로 못 보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려 하는 구나
너는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다 라고 말이죠
바로 이런 지적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다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모른다는 겁니다 배제당하는 겁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자기자신 사이에
예수님이 있음을 간과 곧 누락 시키는 겁니다
본인이 누락 되어야 할 자리인데
반대로 예수님 곧 한 선지자를 누락 시켜 버리니까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자가 없다
하나님의 일을 할 자가 없다 인데
바로 자기의 일을 해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 곧 중간에 끼여 있는 중보자 너 빠져
베드로 내가 바로 하나님 상대할 꺼야 라고 말이죠
자기로부터 먼저 출발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한 선지자가 나오는데 제 3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제 3자가 끼어든다 라는 것을 인간은 허용할 수가 없어요
목사가 중간에 끼여서 자꾸 하나님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자꾸 가려서 못 보게 한다면
어이 목사 그 머리 좀 치워주시지? 라고 할 정도로
누가 끼어든다? 용납 못하는 거죠

목사는 그림자 주제에 끼여드는 것도 못 마땅한데
실상 되신 예수님이 곧 한 선지자가 끼어든다?
그것도 성령 곧 예수님의 영이 들어간 참선지자인지?
악령이 들어간 거짓선지자인지?
무슨 수로 알수가 있는지
배제된 입장이나 말이죠

어쩔수 없어요 둘 다 격을 수 밖에 없는 길 밖에요
그것도 성령으로 인해서 격지
이런 일 격지도 못 하는 자는 영원히 배제될 수 밖에요

그러니 저런 거짓선지자를 격어서 참선지자 곧 한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알수 밖에요

그런데 음녀가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는자 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인간이 찾아봤자 자기숙제를 해 봤자
거짓선지자만 찾을 수 밖에 없고
설사 우연히 참선지자를 만났다 해도
자기 유익에 안 맞으니까 자기 일로 나의 일로 출발해버렸으니
맞을 리가 없으니 바로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음녀는 무당의 짓 곧 살자를 죽이고 죽어야 할 자기자신은 살리는 방향으로 살 수 밖에요

이런 식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죽였거든요
지옥의 몸 아닌 자 있나요?
의인은 없는데
뭘 해도 우리는 거짓선지자를 원하고 있지
우상을 섬기고자 하지
누가 참선지자를 원하겠습니까?
정작 그 참선지자는 나를 어떻게든 죽일려고 달려드는데 말이죠

오늘날 아무리 인공지능 그리고 휴먼 로봇이 발달해도
결국은 다 사람의 일 
나 인간의 일을 유익하게 만들고자 함이지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인공지능 초초초 슈퍼지능과 그런 로봇을 만들고자 합니까
꼭 자기와 같은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겁니다
밑도 끝도 없는 마침 없는 자기와 같은 기계를 만드는 겁니다
그 완악함을 더더욱 극대화 하는 겁니다
교회 아무리 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일을 자기 유익을 극대화 하기 위한 노림수일 뿐인 사람의 일이지
하나님의 일일 이유 자체가 없어요
누가 교회에서 자기 유익을 구하지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혹 그런 자가 나타나면
목사가 말려요 말려
못 말릴 정도가 되면 그 사람 짤라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요염 전염 시키게 되니까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런 성령의 기도를 하는 자 없어요
먼저 자기의 나라 자기의 의를 구하는 자 뿐입니다
혹시나 잠깐 생기는 경우는 잠깐 짖밟힌 경우 뿐이지
또 배부르면 언제 내가 그런 기도를 했지? 내가 미쳤군
내 유익을 먼저 구하지 않다니
성화론자들 기도가 그저 자기 의로움을 더 확장 시키기 위함이지
주님의 의를 구하는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 본 적이 없어요
그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영적으로 확장케 바란다 라고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의 기도와 뭐가 다를까요

한 선지자 라는 제 3자의 개입은 단순히 나의 신앙생활을 돕고자
아 그 쪽 아닙니다 이쪽으로 가셔야 합니다 라는 안내양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가 그 동안 쌓아 올린 신앙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60년 120년
그 공든 탑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매우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항상 남들이 보기에 멋들어진 신앙을 하고픈 것이 인간의 종교심인데
멋들어지기는커녕 아주 아주 모욕적인 상황으로 몰아버리게 되니
예수님이 왜 그것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신앙 좋은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셨는지가 이해가 되는 겁니다
오죽 하면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아이고 주님 아이고 시어머니
그런 소리 한다고 바리새인이 마음 고쳐서 예수님의 충고를 받아들일줄 아십니까
도리어 괜히 바리새인 건드리는 바람에 우리까지 죽게 될 정도인 상황을
인식 못하십니까 아이고 이 눈치 없는 양반아 벌집을 괜히 건드렸어 괜히 건드렸어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2, 개역)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 15:3,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 15:4, 개역)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마 15:5, 개역)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마 15:6, 개역)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 15:7, 개역)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마 15:8, 개역)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9, 개역)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10, 개역)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1, 개역)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 15:14, 개역)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율법 곧 십계명 해석을 지금 뒤짚어 엎어버리시는 겁니다
그카이 바로 제자가 눈치를 채는 겁니다
아이고 주님 그거 건드리면 우리까지 죽습니다
예수님 죽는거야 뭐 어쩔수 본인이 죽겠다고 하시니 어쩔수 없지만
그거 건드리면 우리까지 죽는다니깐요
왜 예수님은 예수님 본인만 생각하십니까? 우리 죽어도 상관 없다는 겁니까

자 그 정도로 예수님이 인간의 중심을 제대로 건드린 겁니다
이건 종교 그것도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전
그 수천년된 종교를 하루 아침에 무너뜨릴 정도로

신학 교리를 무너뜨리면 종교 자체가 하루 아침에 날라가는 식으로
제대로 건드렸다 라는 겁니다

교회 백년 이상 되었다고 자랑하는 심지어 이름까지 100년 교회
천년교회 만년교회 라고 지을 정도로
북이스라엘이 나라 이름을 정통 정통 정통 우려먹듯이 국명도 그랬듯이
실로암 소경 앞에 너는 겨우 3년 짜리 예수 제자?
난 1300년 묵은 모세 제자

이것이 모조리 누가 크냐 라는 제자들의 싸움처럼
자기 유익을 따라 나온 겁니다
수천년 믿어도 결과는 자기 의를 자기 유익을 따른 결국 우상숭배였다는 거죠

그러니 이 우상 수천년동안 내려오는 그 우상을 헐라
3일 만에 짖겠다 라고 하셨으니
제자들이 아이고 우리 까지 죽습니다
혼자 죽으세요 왜 우리 까지 죽이실려고 합니까 라고

제대로 건드리신 거죠
이것이

한 선지자가 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이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자기의 나라와 자기의 의가 허구 허상 우상이라는 것을 들통당하고
들통 당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밭갈이 기경 전복 파괴 침노 침략 당하지 않는 이상
음녀가 하는 일의 반대죠
주님 쪽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거짓선지자만을 쫓을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한 선지자의 등장이 아니면 이런 인식 자체가 있을 수가 없겠지요

그 한 선지자는 나 와의 접촉점이 일체 없어요
단 한 군데도 나랑 맞는 구석이 없다니깐요

나는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사는데
그 한 선지자는 어떻게 해서든 죽고자 하니까 말이죠

자살요? 아니지요 자살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를 긍정하고자
가룟유다처럼 오염된 자기의 실수 부분을 자기 스스로 제거하고자 하는
자존심 지키기입니다 우상 지키기입니다
내가 실수해 오염된 부분 내가 스스로 제거하겠다 라는 끝까지 복수심이다는 거죠
역시나 개인 구원을 노리는 겁니다
멋듯어진 구원 왜 할복자살하는 그런 놈들의 사고방식과 같아요
내 잘못은 내가 처리하겠다? 웃끼는 소리죠
죄가 지 보다 먼저 있다는 것을 절대로 허용 못하겠다는 똥고집입니다

한 선지자는 왜 자꾸 죽고자 하느냐?
이 세상이 죽음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그 시스템 그 구조에 폭탄설치하는 자 이다는 겁니다

우상을 파괴하고자 성전 예루살렘에 가서 폭탄 설치하고 성전을 헐겠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교회에 갈때에 누가 폭탄 설치하고자 가는 자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도리어 어떻게 해서근 교회를 통해서 복 받고자 가고 있지

저 우상이 된 교회를 허물고자 폭탄 설치할려고 가는 자 없지요
지만 죽나요? 자기를 따르는 제자도 죽고
가족들 다 죽지요

20살 때 성추행 당한 국회의원비서가 29살에 9년 뒤에 사건을 폭로한 이유가
의원이 권력이 가족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을 다치게 하니까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 제자가 아이고 주님 바리새인 건드리지 마세요
목사 건드리지 마세요
교회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 가족까지 다 죽습니다
괜히 하는 말 아닙니다

제대로 건드렸다 라는 겁니다
우상을 말이죠

그러니 포로 잡혀 갈수 밖에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안 하니까
안 하기는커녕 아예 우상으로 예루살렘을 시온산을 도배를 해 버리니까
포로 잡혀 가서 우상을 건드리는 겁니다
포로 잡혀 가서
마귀 본부에 포로 잡혀 가서
마치 삼손처럼 포로 잡혀가서 말이죠

머리카락이 힘의 원천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그런 멋들어진 힘의 원천 마리카락이 아니라
모욕적인 대머리 빡빡 포로 당함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구원 받고자 했습니까?
삼손 지 혼자가 그런 일을 격는 겁니다
힘이 아닌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고자 말이죠
이게 비밀 안
수수께까 안에 들어가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에스겔 선지자를 이스라엘 중에 집어넣는 것은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이 다 가짜임을 들추어내시고자 보내시는 겁니다
그렇게 들통당하는 모습이 드러났을때에
아이고 우리는 엉터리 였군요 라고 수용하는게 아니라
비로소 본심이 드러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에스겔 선지자를 죽일꼬 라고 말이죠
네 맞아요 실상인 예수님이 격었던 일들을 미리 맛배기로
샘플로 먼저 보여주시는 겁니다

앞으로 오실 예수님이 그림자 에스겔로 이런 일 격는데
실상이신 예수님이 이런 일을 당한다 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거울로써 말이죠
이게 비유 비밀 수수께끼이니

이스라엘이 알 턱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죽여라 라고 외쳤던 유대인과 똑같은 속셈을 대 놓고서 드러낼수 밖에요

입으로는 찬송하나 속으로는 저주가 가득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에스겔 선지자를 대하는 이스라엘의 마음이다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구요
그렇다면 오늘날도 똑같다는 겁니다

(겔 33:31, 개역)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잠 26:24, 개역) 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잠언서는 율법서에 해당되는 지혜서입니다
즉 이미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규정해 버렸다 라는 겁니다
시편도 율법서에 해당 되구요 실상이 오지 않는 이상 의문의 증서의 반복이다는 겁니다
율법의 마침이 없다는 겁니다 정답이 와야 풀린다는 겁니다
유대인은 어릴적부터 시편만큼은 다 외웠습니다 외우면 뭐 합니까
찬송하면 뭐 합니까 시편대로 오셔서 시편대로 행하셔도 결국은 죽였으니까 말이죠

(사 29:13,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마 15:8, 개역)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 7:6, 개역)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약 3:9, 개역)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 3:10, 개역)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신약에서 인간을 이렇게 규정했다 라는 것은 그 어떤 누구도 예외가 안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멋들어진 구원은 없어요
하나님과 나와 그 사이에 제 3자가 끼여드는 그 모욕성 아니면 구원 없는 겁니다
온갖 잔소리로 이래라 저래라 라고 내가 뭐 했따 하면은 무조건 다 틀렸다 라고 지적해 버리니 말이죠
성화론자들을 보면 그 제 3자가 없어요
바로 주님을 상대하니까 그저 목사라는 돕는 학원샘 찾듯이 할 뿐이지
역시나 자기 숙제 절대로 포기 못하는 거죠
성화론자는 그 자기 숙제를 돕고 돈 받아 먹는 학원 샘으로 지기 유익을 자기 생존만을 유지할 뿐이지
죽고자 하는 자 아닙니다 죽고자 한다면 그런 학원 교육 시스템을 붕괴 시켜야지요
강난 학군 요즘은 대치동

아니 하버드 나와서 기껏 한국으로 돌아와서 학원강사 밖에 안하는 것 보고
학무에 목숨 건 자가 아니구나 임을 보게 되더라 말이죠

안전빵인 환경으로 되돌아 온다? 대우 받는 곳에 돌아온다?

본문으로 다시 되돌아 와서
아니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찾는 자들에게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시면
그 선지자가 외치는 하나님의 일이 아무리 들어도
천재 중에 천재 조차도 아무리 들어도 모르는
비유 비밀 수수께끼를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아냥만 날리도록 되어 있지

무슨 수로 파수꾼의 나팔 경고의 내용 곧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라는
미래의 예언을 무슨 수로 받아들일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성정에 금을 바쳐야 기도가 이루어진다 라는
그 마귀의 속담이 교회에 가득한 입장에서 그 짓 하기 바쁜데
꼭 성화론자들의 주장과 같아요
마귀 속담을 퍼트리고 있어요
성화가 되어야 천국간다 구원받는다 라고
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교회 안에 마귀의 속담이 대대로 내려와서
그것만 교회에서 믿어요
금을 바쳐야 맹세가 이루어진다
말씀을 지키고 행해야 구원받는다 라고

아니 율법을 따라 행함을 쫓은 유대인은 의에 이르지 못했다 라고 했잖아요
눈에 보이는 실적이 있어야 구원된다 라던 유대인은 의에 못 이루고

눈에 보이는 실적 따위 하나도 없던 이방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의에 이르렀다 라고

토기장이의 비유 비밀을 펼쳐버리니

때린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고 예수님에게 따지는 겁니다
불의하다고

네 맞아요 이 불의 라는 이 모욕성이 부정성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겁니다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 2:16, 개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21, 개역)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3:5, 개역)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갈 3:10, 개역)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1, 개역)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 3:12, 개역)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 3:13, 개역)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7, 개역)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 3:18, 개역)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즉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찬송을 입술에 하면 할수록
속 마음은 저주로 가득하다 라는 것을
한 선지자 곧 하나님만 상대하고픈 나 그 중간 사이에 낑긴 자가
들추어내지 않는 이상은

우리는 도리어 그 중매자 중보자를 나를 응원해주고 뭐든지 긍정해 주고
잘못가고 있으면 바르게 인도해주는 그런 중보자를 학원샘처럼 원했는데
그 학원샘을 내 개인은 관심 없고
자꾸 학원 시스템 교육시스템 전체를 상대하고 막 죽을려고 환장하듯이
아이고 학원샘 그런다고 바리새인에게 걸림이 되는 줄 아십니까?
부딧히는 돌이 되는 줄 아십니까?
저들의 시스템 안 무너집니다 1300년 묵은 모세 시스템 안 무너집니다
바위에 계란 치기입니다

도로 우리가 걸려 넘어집니다 고만 카이소 마 ~~~~~~

예수님 제자가 이럴 정도면
오늘날 목사 보세요 다 넘어간 겁니다
그래서 한 선지자를 보내신 겁니다
걸림돌 되어야 합니다
부딧히는 돌 되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음부의 권세 시스템
권세란 시스템 구조가 되었다는 겁니다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의 부끄러움을 수치를 가려줄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시는 겁니다

마음 속에 저주가 가득함을
이것만 하면 안됩니다
겉으로는 입술로는 찬송을 하고 있다 라는
거 보세요 우리는 거짓선지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 태어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것을 한 선지자
한 아기
꺽으신 뼈가 죽음으로써 들추어내지 아니하면
이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삼손의 껍데기 머리카락 힘 그런 멋들어진 구원
멋들어진 성화만을 쫓도록 되어 있습니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부담 스럽게 죽는 그런 일
싫다는 겁니다
하나님이란 죽음이 없으니 바로 상대하고픈데
그런 하나님 가짜 라는 겁니다

하늘 영광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한
우리의 범죄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신
하늘 영광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한 그 죽는 하나님만이 진짜입니다
그 한선지자만이
남겨둔 한 씨 만이
오죽 하면 남겨둔 한 씨 란 말을 그 정도로 모욕적이다는 거죠

너희가 더럽히지 못한 남겨둔 아껴둔 기념 이름 만이

그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데 있어서 우리는 특화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 이름 더럽히는 일만 골라서 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성화론자들은 더더욱 가릴려고 한다는 거죠
그러면 그럴수록 살인의지를 예수님에게 퍼붓는데 열심히였다 말이죠
그 사람이 남 이야기 하듯이 보이는게 아니라
엘리야는 요나는 결국 자기의 모습으로 들통당하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의 곧
내 속의 가짜 하나님을 찢고
다시 내 속의 진짜 하나님을 싸매어 주심으로써
이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일만
사도바울이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고 했듯이
외칠때에

우리는 그 앞에서 입술로만 찬송했고 마음으로 저주한 것이 들통당함으로써
그 한 선지자를 죽일려고 했던 정직한 영이 없음을 드러내는 겁니다

이런 내 속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선지자는 가짜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 하면 무슨 소리인줄 모르게 되는 거죠
아니 누가 그런 일을 그런 마음으로 한다는 말이냐

그러니 비밀 수수께끼
삼손의 개인만의 경험 곧 사자 속에 꿀이 있는 그 개인경험이
삼손 본인의 개인 경험이 찢어져야 개인구원이 박살이 나야
집단구원인 사랑이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겁니다
백날 해도 삼손은 성화론자처럼 부자청년처럼 개인구원용으로 자기 유익으로만
그 힘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남 7번 용서는 그렇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거 모욕적으로 찢는 겁니다 사자 찢고 그 꿀만 캐내는 겁니다
삼손 찢고 삼손이 사사로써의 기능인 구원자의 기능
의사의 기능 곧 환자만 찾고
잃어버린 자를 찾는
남을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 율법의 마침을 보여주고 있고
여전히 머리카락 힘이 짤리지 않는다면 율법의 미완성만이 반복될 뿐인
자기 유익이라는 우상만 쫏는 겁니다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찾는 겁니다

그 의문 찢는 겁니다
삼손도 찢고 한 선지자도 찢고 

찢어서 우리가 나음을 입는 그 모욕적인 구원
멋들어진 구원이라는 개인 숙제 따위는 없는

집단구원이라는 모욕적인 구원 화목제만 밀어붙이시고자
한 선지자를 투입시켜서
바위를 그 딱딱한 마음을 계란으로 치시는 겁니다

(갈 3:19, 개역)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은 죄를 더하기 위해서 가입이 되었기에
예수님의 죽음 
한선지자의 죽음이 오기까지는 임시직
비정규직
그림자
의문의 반복으로만 작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왜 우리는 예수님 곧 한 선지자
에스겔 같은 참 선지자를 왜 죽일 수 밖에 없는
입술로는 찬송하나 속으로는 저주하는 이 살인의지를
꽁꽁 숨기고 있다가
왜 한 선지자의 등장 때에만 드러나는지를

자 그렇게 자기 유익이 바로 사람의 일 사탄아 썩 물러가라
사탄의 일이였다 라는 겁니다

오직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이 화목제
이 모욕적인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이 부딧히는 돌
이 거리끼를 걸림돌에 넘여져 가루가 되어서
비로소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을 말이죠
불순물 찌기 혼합물이 낑긴 그 불순물을
하나님의 의 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 빼내어야
비로소 정금 같이 나오는
주님의 공로만 나오는

그래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아신다 라고

믿음을 쫓아 의에 이르는 이방인처럼

즉 유대인처럼 율법의 법을 쫓아 행위를 행함으로는 의에 못 이룬다 라는 것이 분명해 졌음을 말이죠 그런 멋들어진 구원이 없는 겁니다

이방인의 자리 부정한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일을 한 선지자는 외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처음 시작하자마자 사도바울이
십자가가 떳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는데 있어서
고린도교회는 징계를 받더라 말이죠

즉 멋들어짐이 가득한 이 부자 교회가
어떻게 모욕적인 십자가의 교회로 부서지면서
개인 구원이 아닌
집단구원 둘이 하나가 되는 한 몸
곧 십자가로만 하나가 되는 그 한 몸인
모욕적인 구원을 고린도교회에서 뽑아내사는지
늘 쪼개시면서 정금같이 나오는 겁니다
심심하면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 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불순물을 분리시켜 빼내시는 ~~~~

이 심판 속에서의 구원 곧 모욕적인 구원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나를 위해 지셨음을 펼치시는 겁니다

왜 우리는 참선지자를 죽일 수밖에 없는
장로의 유전을 따를 수밖에 없는지
이 육의 한계에 부딧힘으로써 말이죠

아무리 그 당시로 되돌아 가면 우리는 절대로 참선지자를 죽이지 않겟다 라고
다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지적하신 예수님을 역시나 죽이고야 마는
그 당시의 너희 조상
장도들도 너희 조상도 똑같은 소리를 했단다

이게 그만 아 그렇군요가 아닌
왜 자존심을 긁어버리는 아 그럼 내가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말입니까?
아니

휴 다행이다 살인자의 자식 아니다는 거죠

아니
그럼 뭐여 ~~~~~~

독사의 자식
너희 아비는 마귀

그 자리에 까지 가야
이 십자가라를 비밀을 펼쳐지는 겁니다
비로소 나누어지는 겁니다
인간의 행함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
토기장이의 비밀 비유가

이 비방받는 표적으로 인해
흥함 곧 긍휼의 그릇과
패람 곧 진노의 그릇으로 말이죠

이 하나님의 일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할 수 조차 없는 비밀이기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조차도 없고

그것을 있는척 하고자
사람의 일로 바꾸어서
교회 안에 마귀의 속담이나 퍼트리는
그야말로 우상의 도성
강도의 소굴
마귀의 본부로써 사람의 일만 까까득 채워서
하나님의 일이 끼여들 틈이 없도록
예루살렘은 선지자를 죽이는데 1등 본부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말이죠

바로 이것이 이 세상의 시스템
죄가 왕노릇함이 인간이 있기 전에 먼저 됨을 보여주심으로써

주님 또한 이 세상을 진노와 심판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
자꾸 내 복 개인의 복 개인의 구원해 달라는 것 자체가
이미 죄 아래 갇혀있는 죽음 속에 있다는 겁니다

십자가란 이 토록 하너님의 진노 심판 앞에서
마땅히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이 세상의 죽음의 시스템 구조 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자 임을 보여주는 겁니다

오직 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의 만이
나 보다 옳았음만을 외치는 것이

한 선지자 앞에서
남겨둔 한 씨 앞에서

자기 죄로 우는 자 곧 남은자 이다는 겁니다

즉 소돔과 고모라 벌써 되고도 남는
저런 죄악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죄인
입술로는 찬송하나 속으로는 저주가 가득한 이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포로된 자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심이 아니면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면 벗어날 수 없는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
사탕의 몸임을

화목제만을 봄으로써 비로소 인정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원망해서 10번 14번 이상이고 그것을 10번이라고 완벽하게
원망밖에 없다 라고 했고
그 심판성을 담은 3가지 물건
십계명 깨어진 두 돌판 왜 깨어졌습니까 모세가 화가 나서요
우상 금송아지를 하나님의 이름까지 새겼으니까 말이죠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것은 니만 지도자냐 나도 하자 민주주의 투표로 하자 라는 겁니다
입술로는 민주주의 이지만 속으로는 살인 밖에 없는 세상이다는 겁니다
누가 이웃이 되겠습니까? 그것도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말이죠
제사장도 레위인도 다 피해가는 판국인데 피 만지면 더러워 지거든요
자기가 더러워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부정성에 뛰어드는 자 없어요
다들 자기 육의 자랑을 염두하고 남 7번 용서하지 강도만난자의 이웃은 못 되는 겁니다
같은 강도 취급 받아요 제자의 말처럼 걸림이 되는 줄 아십니까 라고 
이미 자기유익을 무의식적으로 염두하고 나오는 행위이니까
의에 이를수 없죠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어딜 사기를 치냐 말이죠
그게 속으로는 저주이고 겉으오는 찬송이다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만나는 담은 항아리
정작 만나는 없어요
줘도 못 먹는 겁니다
다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니 결핍이 오히려 더 해 집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심각한 중독처럼
그 결핍 채우기로 나오는 것이 율법 지키기 이지
완료가 안되는 겁니다
더더욱 결핍이 될 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가 오기 전까지는 안되는 겁니다

이 단절의 세가지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와야
그 허물을 다시는 보시지 않겠다 라는 시은소 뚜껑을 덮는 겁니다

사랑이 와야하지
율법의 완성이 아니면
율법의 마침이 아니면

율법의 미완성은 허물을 덮어주지 않습니다
더더욱 캐내는 거지요

그 마귀의 시선을 따라
주님의 캐내심을 통한 율법으로 인해
죄인임을 알고
몽학선생이 가리키는
모세가 장대 높이 달아 높이 든
그 화목제물이 오기 전까지는

마침이
완성이
사랑이 없는 겁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면 너도 나도 마귀도 늘 뚜껑열어서

정죄하기 바쁩니다
자기자신도 자기자신을 못 살게 굴어서 가룟유다가 자살했듯이 말이죠

그렇게 완악한 수건을 못 벗는 겁니다

불쌍히 여겨주신 이 십자가의 죽음
어서 죽어주소서 가 아니면
율법의 대표자 모세 조차도 외친 주여 주소서
참선지자 대표자 엘리야 조차도 외친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라는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지 않는 의 거룩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이미 소돔과 고모라 인 겁니다

이 남겨운 한 씨 덕분에
한 선지자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자기 죄로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러다 다 죽어 라고 한 선지자의 눈물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신 그 예수님의 눈물이 아니였으면
베드로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던 겁니다

모든 허물을 다 덮는
다시는 보시지 않겠다 라는

이 율법의 마침이 
한 선지자가 죽어가면서 다 이룬 약속이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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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3 책망할 것 없게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미쁘심; 믿음직스럽고 흔들림 없이 든든함) (고전 1; 6- 9)
2025. 6. 8. (5월 18일 녹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교회 (고전 1; 4- 7)
고린도 전서 2025 2025. 5. 17. 22:21
25-00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교회 (고전 1; 4- 7)
2025. 5.18.

십자가로 쪼개지는 고린도 교회 (고전 1; 1- 3)
고린도 전서 2025 2025. 4. 26. 16:12
25-001 십자가로 쪼개지는 고린도 교회 (고전 1; 1- 3)

〈고린도전서 1; 6- 9 ,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찬송가 200장 새 266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찬송가 319장 새 529 온유한 주님의 음성〉 

〈찬송가 200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새찬송가 266장〉  


(고전 1:6, 개역)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고전 1:7, 개역)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 1:8, 개역)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전 1:9, 개역)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6, 현대어) 전에 내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말한 그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전 1:7, 현대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동안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의 선물과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고전 1:8, 현대어) 그리고 주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이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주십니다.
(고전 1:9,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귈 수 있도록 불러 주신 것입니다.



견고함과 미쁘심을 다른 번역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겠습니다

(고전 1:6, 새번역)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고전 1:8, 새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고전 1:9, 새번역)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새번역은 견고함을 튼튼히 세우심 이라고 했고 미쁘심을 신실함 이라고 했군요


(고전 1:6, 공동)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에 깊은 확신을 가졌으며
(고전 1:8, 공동) 주께서도 여러분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끝까지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고전 1:9, 공동)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공동은 깊은 확신 이라고 했고 미쁘심을 진실로 표현했습니다



소제목이 딸려 있는 쉬운번역은 어떤지 볼까요


(고전 1:1, 쉬운) <인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4, 쉬운) <바울의 감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고전 1:6, 쉬운)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한 것이 여러분 안에서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고전 1:8, 쉬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세상 끝날까지 굳세게 지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고전 1:9, 쉬운)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고전 1:10, 쉬운) <교회 안에 일고 있는 파벌>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모두 의견을 합하고 여러분 사이에 편을 나누지 마십시오.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가 되십시오.

견고함을 확고함으로 8절의 견고함은 굳세게 라고 했구요
미쁘심을 9절에 신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10절 소제목까지 올렸는데
아니 이렇게도 견고하고 미쁘시고 확고 굳세고 신실하고 튼튼한데
10절은 바로 초반부터 파벌 분열이 교회에 나타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견고함과 미쁘심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이다 라는 것이지요
좀 역설적이지요
완료를 줘 놓고서 그 완료 때문에 결핍이라는 문제아 탕자의 모습들을 들통당하는 겁니다
완료 때문에 전혀 흠없고 들통당할 것 없는 것이 교회 속에 가득차는 것이 아니라
그래 되면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주장이 맞아요
그들의 성령론은 밧데리 곧 자기따나 자기가 할 숙제는 끝가지 하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성령의 밧데리 도움으로 보충해 나가서
거룩이라는 완벽을 추구하게 된다는 식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또 의문의 반복이고
정작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완료가 덮쳐졌다 라는 이유로 말이지요 이미 먼저 벌써 말이죠
그렇게 남은자가 새로 창조 맹글어 지듯이 그 완료에서 나온 증상물로 말이죠 그게 교회죠
마치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미 인자의 날이 떳기에 말이죠

이것이 인간의 견고함과 주님의 견고함 곧 종말에만 나타나는 모습인 교회의 진정한 종말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것은 다음 번에 좀더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요

소제목이 1장에 하나 더 나옵니다
(고전 1:18, 쉬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되신 그리스도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마치 지혜자 덕분에 천한 계집이 왕비에 자리에 높이시는 그 신부자리에 놓여지듯이
탕자 같은 죄인이 예수님이라는 의사에게 딱 맞는 환자로써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복종케 되는 
이 십자가의 지혜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물로써 교회가 
이 고린도 교회가 종말에 나타나는 겁니다 
종말 곧 끝에서 죄인으로써 나타난다는 거죠
이게 비유 비밀 비밀속 예수안이다 라고 예수 밖 비밀 밖과의 차이를 투셔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인간의 숙제로 나타나면 종말이 아닌 끝이 아닌 다 이루심이 아닌
또 이미와 아직이라느 말 장난처럼 또 미완료와 의문의 반복으로 맴돌기만 할 뿐인 겁니다
이미와 아직의 중간상태 라고 그거 빵구멍 내겠다는 것인데 그 중간상태에 있는 나 라고
또 자기에게로 늘 회귀하지
주님이 숙제는 안 쳐다보겠다는 것이겠죠 늘 자기를 점검
그거 북한에서 하는 짓 뭐였죠 자기심판? 자기검열 같은 것 뭐죠?
완전 완벽주의자 정신병자로 다 만들어 놓아요 글쎄
자기만의 역사 자기만의 몸 공간이 여전히 있으니 
그 의문의 반복을 가지고 승부를 걸겠다 라는 식이니
고린도 전서 1장 초반부터 나타나는 분열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고전 1:28, 쉬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선택하여 유력한 것들을 멸하셨습니다.

천한 것을 택해서 세상이 견디지 못하게 하고 격동케 하는 지혜자의 마귀만을 상대하시는 모습이

저들 성화론자들의 교회관에서는 자기들까리만 깨끗하면 그만이다는 식이 되는 거죠
그러니 죄인 환자가 되면 큰일 납니다 의인 건강한 자가 되어야만 하는
마치 결백증 환자처럼 말이죠 열린교회 반대해서 닫힌교회를 추구하겠따나?
아니 서울의 어떤 큰 이단들이 추구하는 열린교회 사상을 반대함으로 그 반대되는 닫힌교회를 실천하면 그럼 그게 바르게 되는 겁니까? 마치 결백증환자 같아요
유부남이 ~~ 유부남이 ~~ 라고 노래 부르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플렌?
검색하니
[영화 플랜맨 OST] 유부남! 듣기/가사/사진/뮤비(한지민 노래)

그거 바람피는 음란한 이스라엘과 같은 겁니다 북이스라엘 호세아서 말이죠

자기 숙제로 이 결핍을 이 분열을 이 불륜 바람피는 것을 해결할려고 할 겁니다

그건 주님의 숙제가 없어요 글쎄

더 심한 주님의 바람피는 불륜이 아니면 그 호세아 마누라 고멜의 음란을 무슨 수로 덮습니까?
주님의 바람피시는 그 불륜인 십자가 스켄달이 아니면 말이죠

그래서 어떤 놈이 댓글로 너는 내로남불 만 주장하는 놈이다 라고 비꼬길래
멍청아 그 반대야 복음은 십자가는 스캔들이야
내불남로 야 멍청아 이게 주님의 숙제야 라고
할 말 없으니 다시는 얼씬하지 않더라 말이죠
마치 윤리적이면 옳은 줄 알아요
도로 율법의 올무에 걸려드는 줄 모르고 말이죠

주님이 마귀에게 붙잡힌 자를 건져내시는 구원의 기능은
일방적인 편파용서가 아니면 맏아들이 반발하지 않는 겁니다
마귀가 반발해야 그게 구원 맞아요
그것은 십자가 라는 불륜 스캔들
아무리 봐도 불의한 하나님이다 라는 그 시선 밖에 없어요
그것이 원수의 목전에서 마귀 보란 듯이 펼쳐지는 사랑이니까 말이죠

곧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입혀줄 기능을 그 의사의 수술의 기능을
저들은 건강한 자가 되어버려서
의인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정작 무게를 재면 어차피 무게 모자라는 짐승 666인데
지들끼리 서로 가스라이팅 시키다 보니 서로 거룩하데 글쎄 ㅋㅋㅋㅋ
성하 되었데 지금 주님은 마귀만 상대하시는데
그런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더라 말이죠
사탕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거 하는 자 구나
지금 주님의 숙제를 볼 생각지 않고 자기 숙제만 하겠다 라고 마이죠
주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양이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남은자가 없어요 자기 죄로 우는 자가 없어요
자기가 먼저 있고 그 다음 죄 짓는 그 죄가 아닌
그래서 의에 대해서도 모르고 죄에 대해서도 모르고 심판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심판질 해 대는 그 심판을 심판 그 의를 심판 그 죄를 심판하시는 겁니다
자기 죄로 운다는 것은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고 우는 겁니다
남겨둔 한 씨가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우시는 그 눈물 덕분에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 이전 49일 까지는 때려죽어도 안 웁니다 뭐 윤리적이거나 비슷한 도덕 말이죠
그리고 양심에 반한 짓을 해서 그런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그것은 도리어 불뱀에게 물려 죽게되었다 라고 약달라 눈물달라 회개 달라고 하는
여전히 하나님 원망해서 불뱀에 물려 죽는다는 사고방식이지 그래서 다시는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그거 또 자기 숙제요 완악한 수건 덧때워 쓰기이지
아니 세 번 부인 안하면 그 다음날 마귀가 가만 있습니까?
자기 죄로 운다는 것은 정작 내 눈물 흘려야 하느냐 라는 자기 숙제가 아니라
그런 자기 숙제 단 하나도 없도록 
남겨둔 한 씨가 대신 눈물 다 흘려버린 그 눈물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카이 무슨수로 들어가냐 말이죠 성령의 놀라운 탄식이라는 숙제
성령의 숙제 뿐이지요 그래서 50일 째가 되니까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어찌할꼬 라고 우는 겁니다
네 맞아요 남은자란 원인 없이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미 다 이루었다가 떳기에
이것을 마귀들은 어떻게 해서든 인간의 숙제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말이죠
그래서 십자가의 숙제로부터 멀어지도록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로 멀어지도록
그래서 그 결핍만을 채우는 그 의문의 반복에 빠지도록
다람쥐 챗바퀴에 말이죠

사탄아 썩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곧 주님이 손수 직접 바련하신 화목제를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히기 때문인 거지요

아무튼 계속해서 다른 번역도 보겠습니다

다른 번역들 다 비슷비슷하게 견고함을 굳게하심으로 미쁘심을 진실이나 신실 주로 신실하심으로 표현허고 있습니다

(고전 1:8, 현대인) 그분은 재림하시는 날에 여러분이 흠 없는 자가 되도록 끝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견고함을 지켜주심 으로도 표현했네요

현대어는 책임져주심으로
이 보세요 전부다 주님의 숙제로 보고 있는데
어떻게해서든 바리새인 같은 위선자 성화론자들은
인간의 숙제로 돌려버려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쭉정이의 숙제로 돌려버려요
아니 자기 믿음 자기 행함에 맨날 속아도 왜 자꾸 그러죠
자기 따나 남들이 인정한 그 인정투쟁에 뭐하나 건지니까
그 성공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사람을 인정한 그 순간 무지 위험하다 말이죠
누가 선줄로 알거든 넘어질까 두려워 하라 라는 말씀을 지킬수 있겠습니까?
빨리 넘어지는 것만이 살길이지요
왜? 책임져주심의 숙제에게 맡겨야하는 겁니다
남이 해주는 숙제 그 모욕적인 구원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고전 1:8, 현대어) 그리고 주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이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주십니다.

(고전 1:9,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귈 수 있도록 불러 주신 것입니다.
(고전 1:10, 현대어)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자 [미쁘심]을 반드시 그대로 실천하신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완벽하게 완료로
인간이 숙제 해 봤자 심승의 수 무게가 모자랄 뿐입니다
결국 다 이루어진 상태이기에 반드시 찢으신다 라는 것이겠지요 
아니 누가 자기자신을 찢고자 하는 자가 회개 말이죠
아무 죄 없는 옷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라고 해도
사람들 시선에 옷 찢는 회개의 달인이 되어버렸기에
마음을 무슨 수로 붙잡아서 확 찢겠습니까?
마음 찢는 회개 하는 자 없고요
옷 잘 찢는 달인의 회개자는 넘쳐나요~~~~

그렇게 빵구멍 내어서 다시 싸매어 주시겠다 라고 반드시 실천하신다 라고 
미쁘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왼료가 덮쳐졌기에 마음 찢는 일이 벌어지고 다시 싸매어주심이 벌어지는 거죠
그카이 교회는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벌어짐으로써 채를 걸러내듯이 걸러내시는 겁니다
그게 광야에서 벌어지는 O X 퀴즈로 자꾸 아니 퀴즈 아닌 사건으로 자꾸 자꾸 작은 수로 추려내시는 방식처럼 말이죠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다 뽑히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도록 말이죠
또 그카이 또 토기장이 비유 사건이 반복이 되는 거죠
왜 추려내느냐 라고 따지고 힐문하는 그카이 모세가 목자가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면 지적할수록 목숨의 위협을 격는 겁니다 그카이 예수님까지 하나님까지 죽이고야 마는 것 까지 가는 거죠

이런 죄 까지 가는 것이 죄에 대한 의미를 아는 것인데
겨우 하는 짓꺼리가 실로암 소경 앉혀놓고 
부모죄냐 자기죄냐 그것으로 박사논문 딸려는
종교교리 하니 생성해 놓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워 할꺼 아니냐 말이죠
대대로 존경받는 뛰어난 신학교리 말이죠
바로 그런 자기유익만을 챙기는 그 죄는 왜 안 캐내느냐 말이죠
오늘날 목사들 거짓 목자들 다 이런 식입니다

그카이 분열이 벌어져야만 하는 거지요
다 이루심 완료 앞에서 들통당해야 합니다
불뱀에게 물려야 하고요 다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봐야 합니다
여기서 다 갈려지는 겁니다 O X 로 나누어 중간에 줄을 그어서 말이죠
주님의 구분작업 알곡과 가리지 분별작업이 벌어지는 겁니다
완료를 누리는 자와 결핍을 채울려는 자
즉 우리가 로마서 최근에 다루어서 방금 지나간 부분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나누시는
토기장이의 비유 말이죠
왜 자꾸 OX 사건 왜 자꾸 유월절 어린양의 피 사건을 펼치느냐?
목이 곧은 백성이거든
고린도 교회 역시나 목이 곧은 백성
교만한 부자 이거든요 우리가 다 이래요
토기장이가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사건이 벌어지고 나타나는 거지요
그대로 적용하면 오늘 고린도전서 본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미쁘심이요 건고하심 즉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 라는 거지요
추려내고 추려내고 추려내는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반드시 뽑아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우와 전능자께서 날 괴롭히신다 라는 괴롭히는 하나님이
전능자 즉 전쟁을 손수 직접 하신다 무조건 이긴 전쟁을 말이죠
주님 혼자 이기는 전쟁을 말이죠 마귀는 이미 진 상태로 전쟁에 놓여지고요
욥기처럼
우리는 욥처럼 고린도 교회가 욥처럼 중간에 낑겨서 애매한 고난을 받는 겁니다
왜? 이미 다 이겼기에 다 완료했기에 그 십자가의 피 용서의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에이 난 안 즐길래 라고 하는 자 추려내시고
우와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시다니요 라고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에게는 이 십자가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영광 
징계의 매가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아니고 뭐냐 라고
하나님의 영광이요
능력 곧 지혜이다 라고 모든 인간의 지혜 심지어 마귀의 꾀 속임수 마저도
너끈히 이기신 지혜이다 라고 욥기 보세요 마귀랑 장기내기 게임 지혜 게임을 하잖아요
우리는 중간에 낑긴 욥처럼 말이죠 그게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하니
에이 반발하는 그카이 토기장이 완료의 비유가 이미 떳기에 그런 증상으로써
두 언약이 나오는 겁니다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
토기장이는 그저 불가마 속에 집어넣는 기능입니다
전능자 께서 날 괴롭혔다 괴롭히는 기능이다 말이죠
그래야 혼합물 찌기 오예물 불순물이 쫘악 빠져서
정금 같이 남은자가 그릇 토기로 나오는 겁니다
진노 심판 속에서 불가마 속에서 말이죠

자기 죄에 대해서 모르는 자는 바리새인처럼 실로암 소경의 죄나 찾아내는 겁니다
그것을 교리화 해서 야들아 이것 피하면 된다 라고 학원 시험 문제 내어서 돈 벌어먹는 겁니다
교회가 이런 장사를 해 강도의 짓꺼리 하는 거죠
중간에 가로막아서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게 가로 막아서 삥이나 뜯어내는 강도 짓 말이죠 완전 순 양아치 깡패 조폭들입니다
깡패들은 그저 마귀 눈치만을 보거든요 강도 두목 말이죠

자 이렇게 불순물 걸러내는 불가마에 집어넣는
괴롭히는 하나님 토기장이 비유 비밀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추려내시는 겁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까 말이죠
이 적다를 또 성화론자들은 미쳐 버립니다 또 자기 숙제로 OX 사건 문제 풀겠데요 글쎄
적다가 아니라 없어요
그래서 다 없애 놓고 남겨둔 한 씨의 눈물로 그 눈물로 인해 새로 맹글어 냄을 당하는 자가
남은 자 곧 잃어버림의 경험을 가진 잃어버린 양입니다 쫓겨난 경험자 만이 되찾음이라는
모욕적인 사건에 의해 다시 싸매어주심이라는 또 완료의 사건으로 새로 태어나지
패자 부활전이 아니다는 겁니다 포로잡혀간자들 또한 다 죽고 70년 만에 쫓겨난 자가 돌아와요
육체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70년 다 지다고 난 뒤가 아니라
다 죽고 난 뒤가 아니라
그 칠이 모욕적인 심판 속입니다 행운의 럭키 세분이 아니다 말이죠
제대로 된 심판입니다 그 제대로 된 심판만이 제대로 된 구원을 거룩을 입히시는 거죠
다 죽여놓고서 겨우 남은 아직 덜죽은 아주 작은 겨우 몇 남은 노인들로? 아니면 딸랑 한 명일수도 있고요 그렇게 눈물 흘리게 해서 돌아오는 되찾으시는 겁니다
새로 태어난 새세대는 모르는 거죠 뭐 왜 눈물 흘리는지를 말이죠

아무리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니까 말이죠

돌아온다 라는 말은 그 전에는 쫓겨났다 포로 잡혀갔다 잃어버림을 당했다 라는 의미가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그 빵구멍 난 그 공백에 오로지 예수님의 눈물만을 채워서 말이죠
주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듯이
다윗의 개인 눈물이 아닙니다
이미 주의 눈물이 먼저 떳기에 주의 눈물 흘리심을 보고자
요셉처럼 착고에 차이는 그 잃어버림 버림받는 경험을 다윗도 하는 거죠
심심하면 아들 압살롬이 죽일려고 달려드는
아니 아버지로써 암논과 다말의 사건을 보고서도 그거 내버려 뒀으니
그 복수심이 얼마나 강합니까
사실은 그게 압살롬의 죄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살인의 자리로 노리고자 그거 꼬투리 명분으로 삼은거죠
당신은 내려 와야 한다 라고 그 자리에 앉을 자격 없다고
이게 토기장이 비유랑 같아요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 라고 힐문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겁니다 그게 마귀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두 언약 두 그릇으로 나눈다는 자체가 불의하다는 겁니다
마귀가 첫 번째 창조물 그릇으로써 누구보다 그 불의함을 체험했으니까 말이죠
그키이 주님의 눈물 속에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더더더더한 그 눈물 편파용서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거죠
탕자 용서에 맏아들의 반발은 첫피조물인 마귀의 소원이니까 말이죠
이 나 보다 먼저 있었던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그 사망권세의 심판을 모르면
또 자기 숙제로 죄를 없앨려고 하는 그 양탈무리 사모처럼 뻘건 글씨로 거룩 거룩 점점크게
여고괴담을 귀신놀이를 하는 겁니다 종교게임에 중독된 자들입니다 서로 모세의 자리에 앉을려고
정작 모세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십자가의 눈물 속에 들어가버림을 당했는데 말이죠

그것이 변화산에 있었던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가 계시록에서 빵구멍 당한 배에
굵은 베옷으로 가리움을 당한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이지요
아니 죽음을 안 봤던 엘리야가 왜 말라꼬 내려와서 빵구멍 당하는 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그건은 주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고자 한 기능이지
자기 개인의 승천 그런 개인 구원 없다 말이죠
그카이 개인 시선의 죄 의 심판 그게 유대교 아닙니까 그거 불교 따라하기 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 불교 따라하기 이다 말이죠 개미 한 마리 안 죽이고자 빗자루 들고 다니는
더 심한 브라만 교 였던 가요 최상위 애들은 아예 무소유로써 팬티도 안 입고 돌아다녀요
어딜 3년 반동안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이사야 앞에서 무소유라는 무욕심 무자아 라는 사기술로 꾀고 속이는 짓 할려느냐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종교오락은 그 짓 안하면 미쳐버리거든요 중독이다 말이죠
바로 그런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것이 고린도 교회 또한 그게 부러우니까
실제로 요즘 아니 10 년 전부터 들었던 소식인데
미국 부자들이 이제 할 짓 꺼리가 없다 보니
불교가 유행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돈 억수로 들여서 불교 개인 선생을 집에 들여서
개인 교습을 받는다 라고 말이죠
안그러면 미쳐 버리거든요 이 권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이것 저것 다 해보고 불교를 해 보는 겁니다

불교 뭐 돈 벌었지요 기독교는 억울하다 라고 그 돈 내껀데 라고 주먹으로 치는 거죠 후회하는 겁니다 회개랍시고 ㅋㅋㅋ

자 그렇게 이 남은자만이 자기 죄로 우는 자 만이 돌아오고
이 남은자가 아니면 아무리 건강하고 깨끗한 의인이라고 해도
소돔과 고모라 이다 라고 의인이 하루 아침에 범죄게 되도록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니까 말이죠 부딧히는 돌이요 거치는 반석이니까 말이죠
그 반석이 든든하고 미쁘시다 라는 겁니다
얼마나 제대로 다리 걸어 넘어뜨리시는지 안 넘어가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믿음직스럽고 마음이 든든할 정도로 마음놓고 맡길수가 있다는 겁니다
다리 제대로 걸어버리심에 맡기는 겁니다 불순물 제대로 걸러내시니 말이죠
이것이 완료 앞에서 들추어짐을 당해야 할 것들이니까 말이죠
사생아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내버려두시지 않는 겁니다
어떻개 해서든 괴롭히시는 겁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걸러내시는 겁니다

자 그러고 보니 진실 신실 이라는 표현 보다 미쁘심이 정말 딱 맞는 표현입니다
아니 시편에서 밤마다 주의 신실하심을 배울 때 우리가 그것 또한 딱 맞다 라고 했는데
밤에 그 애굽이라는 잔칫집 제대로 밟아
빰 빠빠빠 빰 발라버려 빰 밟아버려 제대로 밟히이니까 신실하심 맞지요

우리한테 좋으라 라는 의미의 신실이 아닙니다
마귀를 제대로 밟는다는 의미의 신실입니다
그 어두움을 뚫고서 아침에 인자심으로 새벽을 깨우는 겁니다
제대로 찢어서 제대로 밟아버려서 제대로 싸매워 주신다는 거죠

제대로 다리 걸어 넘어뜨리시겠다 그 신실하심을 보고 얼마나 미쁘신지 믿음직 스러운지 그 완료를 누리는 거죠 오죽하면 미리암이 모세의 노래 안 부르고는 못배길 정도로 마구 마구 찬양이 나오는 겁니다 얼마나 미뻣으면 저절로 막 튀어나와요 내가 노래하는게 아니라
미리암이 노래 하는게 아니라 노래가 찬송이 기쁨이 내 속에서 나를 뚫고서 마구 마구 튀어나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피리를 부니까 어린아이들이 막 뛰어나와서 춤 추듯이 말이죠
제대로 빵구멍 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출 15:19, 개역)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출 15:20, 개역)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출 15:21, 개역)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회답이 뭡니까 저쪽에서의 찬양을 듣고 그 찬양에 답가로 대답하는 노래 아닙니까
여호와의 찬송에 화답하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지으신 이유입니다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주님 집에 거하는 자들아
예수 안에 비밀 안에서
죽음을 깨드린 것을 목격했으니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안나오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 죄를 깨뜨리는 의를 제대로 봤으니
그 죽음이라는 심판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찬송을 들었으니 안 따라부르고 배기겠냐 말이죠

인간이 생각하는 미쁘심 견고함이랑은 완전 정반대입니다
뉴스만 나오는 프로그램에 심심하면 나오는 광고 중에
신용을 강조하는 광고가 있더라구요

아 그것도 한참 유행 지난 광고이라서 이제 검색에 최근 기간에는 안 나오네요 
요즘은 암 치매 보험으로 도배가 된 듯 한데
아무튼 신용이 뭡니까 믿음 아닙니까
마침 그 광고가 생각난 것이
우와 신용은 돈이 된다면 저절로 생깁니다
돈 떨어지면 신용 곧 믿음은 사라지죠
이것이 고병권 책에서 말하는 자본주의 강의이거든요 칼 막스 즉 마르크스 자본론이다 말이죠
돈이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되는 돈이 곧 신이다 라고

그런데 바로 이런 주장이 오믈날 교회에 적용해 보면 딱 맞아요
그들은 돈만이 든든하게 자기를 견고케 해 준다 라고 믿거든요
돈 아니면 믿음 따위는 없는 거지요

돈은 신입니다 
가장 최고의 노예가 가장 최고의 주인으로 자리잡아 버렸습니다
그 부자교회 고린도 교회가 이 돈을 안 섬기겠습니까?
이 죄가 인간 보다 먼저 있었는데 말이죠
그럼 주님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몽둥이 대시는 거죠

괜히 예수님께서 부자에게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라고 부자를 걸고 넘어지는가 하면
이미 인간의 마음은 재물에 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믿음이요 견고함이요 미쁘심이요 
재물이 신이기 때문에 두 주인을 못 섬긴다 라고
아예 인간은 마귀의 시선처럼 똑같이 취급해 버리시는 겁니다

(마 6:21, 공동)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눅 12:34, 공동)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마음에 있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를 드러내는 겁니다 내뱉도록 말이죠

아니 그렇게 인간에게 견고하게 자리잡은 믿음인 돈이,
그 돈이 신이 된 곳에
바로 고린도 부자 교회죠

이미 자리잡고 있어서 주님의 십자가의 도가 들어갈 틈이 없는
그 불가능한 견고한 성 가나안 땅 여리고성 난공불락의 요새에
주님은 이미 승리햇다 완료했다 라고 뿌뿌뿌 나팔을 불어 선언하시면서 쳐들어가시는 
침노 침략을 펼치시고 있는 거지요 주님 혼자 신 났어요
고람도 교회 너 죽었다 기다려봐 ~~~~~~~~
지금 고린도교회를 쳐들어가고 있다 라는 겁니다
천국은 침략하는 자의 것이니까 말이죠

주님 혼자 신났어요
우리는 이제 포로 잡혀가서 빵구멍 나는 사건을 당해야 할 판국에 놓여지게 되고요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 혼자 신아서 박수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스라엘 백성 포로 잡혀 가는 것을 아주 신나게 좋아라 하듯이
곧 십자가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교회를 보고 신나하는 겁니다

포로잡혀갈때에 표시 해 놓아라 다시 되돌아 올테니까 말이죠
예레미야 혼자 그 완료를 막 신나게 누리는 겁니다 막 춤 춰요
돌아오는 남은자 만이 그 춤에 그 막추는 막사는 즐거움을 뒤 늦게 누리겠지만 말이죠

이것은 마치 다윗 개인이 격었던 사건을 이스라엘 전체가 다 격어야 함처럼
예수님 개인의 죽음 없습니다 전제 집단의 고난
심지어 모든 피조물도 다 동참 참예하는 그 십자가의 죽음처럼 말이죠

그래서 포로 잡혀가고 그것을 비웃는 무리 사울왕의 무리처럼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포로잡혀가는 자를 비웃음을 그 비아냥을 들어가면서
그 모욕적인 십자가를 누리는 검니다
한 개인이 격었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시키듯이

고린도 교회가 그것도 부자 교회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예수님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과 가장 멀어보이는 부자가
아니 이 십자가의 죽음에 같이 함께 동행속에 놓여진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주님의 미쁘심을 펼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물론 단 한명도 남지 않고 다 공중분해 해체가 되었던 
구약의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처럼
고린도교회가 그렇게 될 지라도
이미 예수 안에 다 이루어진 상태이기에
예수 안과 밖
주님이 손수 직접 고린도교회를 다루심과
인간의 숙제로 교회를 견고케 만듬의 그 차이를
점점점 간극을 더 벌리시겠다 라는 취지로써

모든 은사 모든 지식의 풍족함 즉 부족함없이 넉넉함

(고전 1:5, 개역)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모든 구변 말주변 언변 말재주

이 [모든]이 개인이 아닌 집단적으로 펼쳐진다 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세계는 이미 부도 났어요 없어요 허구 허상입니다
집단으로 다루시는 그 실상만이 있을 뿐이다 말이죠
그렇게 넉넉히 지근 지근 밟아버리시겠다 라고
밟아버려 빰 빠빠 바 빰
발라버려 연고를 피를 발라버리시는 겁니다
넉넉히 죽이시겠다 라는 그런 의미로 미쁘심이다는 것이다 말이죠

그래 그래 예수님처럼 죽여줄게 그렇게 해야
인간의 숙제로 예수님과 함께 죽기가 아니라 (다시 살기가 없죠 원인을 갖추니까 모순된 그 반대가 없는 겁니다 다시 살려줌이, 그카이 독립운동하겠다고 한 놈들 법원을 부수고 했던 놈들 마약 먹고 붙잡혀 깜빵에 가는 겁니다)
성령의 숙제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기를 펼치시겠다(주님의 숙제만이 앞뒤 모순된 불의한 불륜을 저지르시는 겁니다 십자가라는 스캔들이 아니면 우리를 벌써 소돔 저런 깜빵갈 자 였기에)
그러니 부족함 없이 지근지근 밟아서 죽여죽게 넉넉히 말이죠

시편 23편 1절 부족함이 없다 라고 했는데

(시 23: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돈이나 먹을 양식이 아니지요
주님의 사랑인 징계의 몽둥이가 부족함이 없다 라는 겁니다

얼마나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세상에 물이 바다를 다 덮는데요 글쎄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하박국 2:14)

그 물은 물두멍의 물인가? 아니면 에스겔 새성전에서 출처도 없이 나오는 물인가?

처음 물두멍의 물 (출애굽기 30장 등)
성막/성전 안에 있는 대야(물두멍)에서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기 위해 사용한 물
그 큰 대야의 물이

점점점 점진적으로 그 그림자의 흐릿함이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는 실상을 향해 갈때에
에스겔의 새 성전에서 출처도 없이 원인도 없이 나오는 그 물이 (에스겔 47장)
모든 죽은 강 바다 까지 다 살리는 생수의 강으로써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 개역)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개역)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 7:38, 현대어)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ㄱ) 그 속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 나올 것이다.' (ㄱ. 잠18:4)

에스겔 47장의 세성전에서 나오는 물이다 말이죠

요한계시록 22장의 생명수의 강이다 말이죠

(계 22:1, 개역)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개역)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3, 개역)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개역)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5, 개역)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사망권세인 그 풍랑도 잠잠케 하지 않으면 
그 바다도 다 덮지 않으면 미리암의 찬양
모세의 노래가 나올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계 15:3, 개역)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요 4:9, 개역)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요 4:10,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1,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 4:12, 개역)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요 4: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개역)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5,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 4:16, 개역)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요 4:17, 개역)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 4:18, 개역)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 4:19,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물가의 여인이 전남편들 그 우상들 제대로 죽이시는 주님 아니였다면 동네사람들 나의 죄악들을 다 덮는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겠다 라는 진짜 남편이 나타났다 라고
물바가지 집어던지면서 찬양이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이게 북이스라엘 호세아서 내용 아닙니까?

너의 전남편 우상 바알을 반드시 죽여서 장가가겠다 라고
이 사망 권세를 죽이지 못하는 남편은 가짜 이니까 말이죠

제대로 망가지게 만들어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된 다윗이 개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 시키겠다
그래서 개인구원이 아닌 집단 구원
그런 표현이 모든 은사 모든 언변 모든 일 모든 모든 모든 이라고 계속 나오는 겁니다

니 죽음은 니 죽음이고 내 죽음은 내 죽음 따로 따로 따로국밥이 아니라
예수님 죽음 속에 다 집어넣겠다 라고 하시고
예수님의 다시 사심 속에 다 집어넣겠다 라는 겁니다
어딜 되도 않는 가짜 죽음이 번데기 진짜 죽음 앞에 주름살 자랑하느냐 라고
사망 권세를 먼저 있었던 죄악 그 죄의 소원을
아들의 소원이 깨뜨리시는
이 혼인잔치를 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혼인잔치 계시록이다 말이죠
그 즐거움을 종말의 공포로 다 해석해 버렸으니
미친놈들이 유트브에 종말의 대비하라 라고 막 올리더라 말이죠

여기에 무슨 놈의 사적인 지식쌓기 개인적인 종말 대비
성화 의로움 쌓기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 크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교회가 오히려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이 더 많더라 말이죠
아니 그것 밖에 없어도 목사는 미쳐 죽습니다 그것 보다 재미난 것 없으니까 말이죠
그래? 아 그게 고린도 교회라는 말이지
그래 그 부자 부요함이 주님의 부요함과 족히 비교가 되는지
몽둥이의 부요함 부족함이 없음을 펼치시겠다 라고
세상이 보란 듯이 찢으시는 겁니다
요즘 날씨를 보세요 그냥 과거의 적당량은 이제 없습니다
더위로 말라 죽이는 것도 초과잉적이고
비도 그냥 안 옵니다 마치 노아홍수처럼 마지막 때에도 그렇게 하시겠다 라고
그냥 퍼붓듯이 비가 오는 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믿음도 말라 죽이시겠다 라는 식으로 퍼붓는 식입니다
모든게 극과 극으로 치닫는 거죠

요즘 정치 보세요 다들 미쳤어요 정치보다 종교적인게 없으니까 말이죠
태극기 시위 정신병자들이나 촛불시위 정신병자들이나 중도의 소극적인 샤이 숨은 유권자
뭐든지 초과잉이 된 입장에서 진짜 진리는 타이타닉 가라앉는 배에서
서로 자기가 옳았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 뿐이니까
제대로 지근 지근 밟아서 가라앉는 판국에 그게 뭐그리 심각한 것이라고
어차피 어미 뱃 속에서 뻐득 나올 생각이 없는 어리석은 왕들은
다 지옥으로 가도록 되어 있는데
같이 따라 지옥가겠다 라고 미쳐들 있으니 말이죠
선거 때만 되면 사람들 눈 빛이 다 미쳐 있어요
뻘건 눈으로 다 귀신 씌인 것 같아 원래 그랬지만 그때는 대 놓고 그러더라 말이죠
끝나면 안그랬다는 둥 다시 연기를 시작하고요~~~

그러니 부자 교회가 단순히 그 부자 됨으로 과연 버틸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부자야 어서 값없이 돈 주고 불에 타지 않는 옷을 사라 라고 하시듯이
불에 심판에 타지 않는 옷 곧 믿음의 옷 아니면 반드시 다 죽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거짓선지자 목자에 그 거짓 양들 뿐이니
참된 목자가 괜히 잃어버린 양 찾는게 아니니까 말이죠
그러니 부자교회 고린도교회가 잃어버린 양으로써의 증상을 누릴려며는 얼마나 깍여야 할 것이 많겠냐 말이죠
제일 많이 얻어터지는 부자교회이니까 말이죠
마치 수체자 라는 이유로 제일 많이 베드로가 지적받고 박상이 나야 하니까
밭갈이 기경 그 딱딱함이 계속 부서지는 겁니다

더 이상 육의 자랑거리가 나올게 없도록 말이죠
돈 부자 라는 그 믿음 조차도 허무하게 무너지도록 압도적인 심판이 바로
모든 일 모든 은사 모든 부요함 곧 몽둥이 퍼붓기입니다
그게 다윗 아닙니까
왕이니까 한 나라의 제일 부자인 셈이지요
이 부자에게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하시는지
완전히 발가 벗겨도 너무 너무 발가벗기시듯이 구원하시는 겁니다

맨날 도망 다녀요
다들 죽이도록 달려들게끔 했으니
하루 하루가 지옥이니
안 부르짖고 배기겠습니까?
주의 부르심 속에 넣고자 내가 너를 불렀다 가 먼저 떳기에
바로왕을 강퍅케 해서 부르짖듯이
사울왕을 이스라엘 전체를 강퍅케 해서
다윗을 부르짖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래놓고 다시 이스라엘 전체를 이 다윗의 부르짖음 속에
쫓겨나고 도망치는 그 잃어버린 속에 집어넣어서
되찾는 누가 왕이고 누가 목자인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제 다윗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새것으로만 사는 완료를 누리게 되어있지
자신의 손으로 이룬 의로움 부요함 따위는 비할바가 못 되도록
후 불면 다 날라가는 그따위 겨 그 따위 쭉정이와 비할가 못되는
든든한 바위
흔들림 없는 미쁘기 짝이 없는 견고한 세성전 3일만에 다시 지은
죽음의 그 간극 그 심판을 통과한 그 새성전만이
그 새마음 그 새영을 부어주심으로써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도록 하시고자
제일 높은 왕의 자리에서
제일 낮은 죄인 중의 괴수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지옥 백성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게 되면
또 사울왕처럼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겠다 라고
이스라엘 왕 다움을 보이겠다 라고 자기 숙제에 미쳐버립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 곧 성령 
성령으로 인한 새마음 새영으로 인한 선물이 없기에
척박한 땅에서 하루 하루 활과 화살이 없이는 못사는 자처럼
오늘 또 하루를 배고픔이라는 그 결핍을 채우고자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우고자
척박한 땅에서 숙제를 해야 하는 겁니다
아니 이방인의 땅도 아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말이죠
피를 흘렸으니 더더욱 율법대로 더 철두철미하게 피 값을 치르는 그 속에서
점점더 간극을 좁히는 피 흘리기를 멈추는게 아니라
더더욱 피 흘리기는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음을 멈추기는커녕 더더욱 확대케 되더라 말이죠
자기 의를 세우고자 말이죠
그게 돈이고 신용이고 믿음이니
그 모래위에 지은 집이 과연 징계의 매 몽둥이 앞에서도
과연 든든한지 미쁨이 되는지 보자 말이죠

그렇게 용광로 심판 속에 집어넣었다가
순금 몇 프로가 나오는지 보자 말이죠
단 한 개도 안나오는 불순물 혼합물 찌끼로만 가득차 있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말이죠

오죽 사랑하셨으면 끝까지 매를 대시겠다 라고
끝까지 섬기시는 전능자 괴롭히는 자로써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이 부족함 없는 넉넉한 사랑을 또렷히 밝히 명료하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얼마나 사기치는 그 미완료와 대조 차이를 통해서 더더욱 선명하게

넉넉히 다 이긴 그 완료의 사랑의 매를 말이죠

예수님이 좋아하는 십자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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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제대로 밟아 버리시겠다 라고 피 발라 주시겠다 라고 

인간의 숙제 게임 중독에 더더더 더 심한 더 부정적인 십자가 게임 ~~~~~~~~
그저 부서지는 것 외에는 누릴것이 없는 부서짐을 누리는 영광을 즐기는 겁니다

부자야 너의 눈에 연고 안약을 제대로 발라주마 라고 말이죠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 미쁘신 믿음을 선물 받은 고린도교회입니다
곧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