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할 것 없게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전 1; 6- 9)
25-003 책망할 것 없게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미쁘심; 믿음직스럽고 흔들림 없이 든든함) (고전 1; 6- 9)
2025. 6. 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교회 (고전 1; 4- 7)
고린도 전서 2025 2025. 5. 17. 22:21
25-00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교회 (고전 1; 4- 7)
〈고린도전서 1; 6- 9,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찬송가 247장 새 209 이 세상 풍파 심하고, 찬송가 274장 새 497 주 예수 넓은 사랑〉
〈찬송가 247장 이 세상 풍파 심하고, 새찬송가 209장〉
1. 이 세상 풍파 심하고, 또 환난 질고 많으나
나 편히 쉬게 될 곳은, 주 예비하신 시은소
2. 그 향기로운 기름을, 주 내게 부어 주셔서
내 기쁨 더해 주는 곳, 주 피로 사신 시은소
3. 주 믿는 형제 자매들, 그 몸은 떠나 있으나
주 앞에 기도 드릴 곳, 다 함께 모일 시은소
4. 내 손과 혀가 굳어도, 내 몸의 피가 식어도
나 영영 잊지 못할 곳, 은혜의 보좌 시은소 아멘
〈찬송가 281장 아무 흠도 없고, 새찬송가 229장〉
1. 아무 흠도 없고,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네
2. 이는 나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사 깨뜨리신, 주님의 몸일세
3. 이는 나 위하여, 형벌을 받으사, 주가 친히 대신 흘린, 주의 보혈일세
4. 이는 주가 지금, 나에게 주시는, 영생하는 양식이요, 마시는 잔일세
5. 심히 사모하는 떠나셨던 주님, 속히 세상 다시 올 때, 반가이 뵙겠네
6.우리 그 때 까지, 십자가를 지고, 주의 자비함과 은혜, 널리 전파하세
〈찬송가 274장 주 예수 넓은 사랑, 새찬송가 497장〉
1. 주 예수 넓은 사랑 그 크신 은혜를, 나 힘써 전파함은 참 기쁜 일일세
주 예수 복된 말씀 생명과 진리요, 내 맘의 갈급함을 다 채워 주시네
예부터 전한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나 항상 전파하기 참 좋아하도다
2. 이 말씀 전할 때에 내 맘이 기쁘고, 그 말씀 전할수록 새 기쁨 넘치네
구원의 복된 말씀 못 들은 사람이, 세상에 많으므로 힘써서 전하세
예부터 전한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나 항상 전파하기 참 좋아하도다
3. 이 말씀들은 사람 또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그 말씀 진리라
그 나라 영광 중에 나 부를 새노래, 예부터 좋아하던 이 말씀 뿐일세
예부터 전한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나 항상 전파하기 참 좋아하도다
〈고린도전서 1; 6- 9,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고전 1:6, 개역)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고전 1:7, 개역)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전 1:8, 개역)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전 1:9, 개역)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6, 현대어) 전에 내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말한 그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전 1:7, 현대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동안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의 선물과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고전 1:8, 현대어) 그리고 주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이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주십니다.
(고전 1:9,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귈 수 있도록 불러 주신 것입니다.
견고함과 미쁘심을 다른 번역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겠습니다
(고전 1:6, 새번역)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고전 1:8, 새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고전 1:9, 새번역)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새번역은 견고함을 튼튼히 세우심 이라고 했고 미쁘심을 신실함 이라고 했군요
(고전 1:6, 공동)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에 깊은 확신을 가졌으며
(고전 1:8, 공동) 주께서도 여러분이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끝까지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고전 1:9, 공동)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공동은 깊은 확신 이라고 했고 미쁘심을 진실로 표현했습니다
소제목이 딸려 있는 쉬운번역은 어떤지 볼까요
(고전 1:1, 쉬운) <인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4, 쉬운) <바울의 감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고전 1:6, 쉬운)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한 것이 여러분 안에서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고전 1:8, 쉬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세상 끝날까지 굳세게 지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고전 1:9, 쉬운)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고전 1:10, 쉬운) <교회 안에 일고 있는 파벌>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모두 의견을 합하고 여러분 사이에 편을 나누지 마십시오.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가 되십시오.
견고함을 확고함으로 8절의 견고함은 굳세게 라고 했구요
미쁘심을 9절에 신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10절 소제목까지 올렸는데
아니 이렇게도 견고하고 미쁘시고 확고 굳세고 신실하고 튼튼한데
10절은 바로 초반부터 파벌 분열이 교회에 나타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견고함과 미쁘심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태이다 라는 것이지요
좀 역설적이지요
완료를 줘 놓고서 그 완료 때문에 결핍이라는 문제아 탕자의 모습들을 들통당하는 겁니다
완료 때문에 전혀 흠없고 들통당할 것 없는 것이 교회 속에 가득차는 것이 아니라
그래 되면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주장이 맞아요
그들의 성령론은 밧데리 곧 자기따나 자기가 할 숙제는 끝가지 하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성령의 밧데리 도움으로 보충해 나가서
거룩이라는 완벽을 추구하게 된다는 식 말이죠
그러나 그것은 또 의문의 반복이고
정작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완료가 덮쳐졌다 라는 이유로 말이지요 이미 먼저 벌써 말이죠
그렇게 남은자가 새로 창조 맹글어 지듯이 그 완료에서 나온 증상물로 말이죠 그게 교회죠
마치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미 인자의 날이 떳기에 말이죠
이것이 인간의 견고함과 주님의 견고함 곧 종말에만 나타나는 모습인 교회의 진정한 종말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것은 다음 번에 좀더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요
소제목이 1장에 하나 더 나옵니다
(고전 1:18, 쉬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되신 그리스도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마치 지혜자 덕분에 천한 계집이 왕비에 자리에 높이시는 그 신부자리에 놓여지듯이
탕자 같은 죄인이 예수님이라는 의사에게 딱 맞는 환자로써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복종케 되는
이 십자가의 지혜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물로써 교회가
이 고린도 교회가 종말에 나타나는 겁니다
종말 곧 끝에서 죄인으로써 나타난다는 거죠
이게 비유 비밀 비밀속 예수안이다 라고 예수 밖 비밀 밖과의 차이를 투셔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인간의 숙제로 나타나면 종말이 아닌 끝이 아닌 다 이루심이 아닌
또 이미와 아직이라느 말 장난처럼 또 미완료와 의문의 반복으로 맴돌기만 할 뿐인 겁니다
이미와 아직의 중간상태 라고 그거 빵구멍 내겠다는 것인데 그 중간상태에 있는 나 라고
또 자기에게로 늘 회귀하지
주님이 숙제는 안 쳐다보겠다는 것이겠죠 늘 자기를 점검
그거 북한에서 하는 짓 뭐였죠 자기심판? 자기검열 같은 것 뭐죠?
완전 완벽주의자 정신병자로 다 만들어 놓아요 글쎄
자기만의 역사 자기만의 몸 공간이 여전히 있으니
그 의문의 반복을 가지고 승부를 걸겠다 라는 식이니
고린도 전서 1장 초반부터 나타나는 분열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고전 1:28, 쉬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선택하여 유력한 것들을 멸하셨습니다.
천한 것을 택해서 세상이 견디지 못하게 하고 격동케 하는 지혜자의 마귀만을 상대하시는 모습이
저들 성화론자들의 교회관에서는 자기들까리만 깨끗하면 그만이다는 식이 되는 거죠
그러니 죄인 환자가 되면 큰일 납니다 의인 건강한 자가 되어야만 하는
마치 결백증 환자처럼 말이죠 열린교회 반대해서 닫힌교회를 추구하겠따나?
아니 서울의 어떤 큰 이단들이 추구하는 열린교회 사상을 반대함으로 그 반대되는 닫힌교회를 실천하면 그럼 그게 바르게 되는 겁니까? 마치 결백증환자 같아요
유부남이 ~~ 유부남이 ~~ 라고 노래 부르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플렌?
검색하니
[영화 플랜맨 OST] 유부남! 듣기/가사/사진/뮤비(한지민 노래)
그거 바람피는 음란한 이스라엘과 같은 겁니다 북이스라엘 호세아서 말이죠
자기 숙제로 이 결핍을 이 분열을 이 불륜 바람피는 것을 해결할려고 할 겁니다
그건 주님의 숙제가 없어요 글쎄
더 심한 주님의 바람피는 불륜이 아니면 그 호세아 마누라 고멜의 음란을 무슨 수로 덮습니까?
주님의 바람피시는 그 불륜인 십자가 스켄달이 아니면 말이죠
그래서 어떤 놈이 댓글로 너는 내로남불 만 주장하는 놈이다 라고 비꼬길래
멍청아 그 반대야 복음은 십자가는 스캔들이야
내불남로 야 멍청아 이게 주님의 숙제야 라고
할 말 없으니 다시는 얼씬하지 않더라 말이죠
마치 윤리적이면 옳은 줄 알아요
도로 율법의 올무에 걸려드는 줄 모르고 말이죠
주님이 마귀에게 붙잡힌 자를 건져내시는 구원의 기능은
일방적인 편파용서가 아니면 맏아들이 반발하지 않는 겁니다
마귀가 반발해야 그게 구원 맞아요
그것은 십자가 라는 불륜 스캔들
아무리 봐도 불의한 하나님이다 라는 그 시선 밖에 없어요
그것이 원수의 목전에서 마귀 보란 듯이 펼쳐지는 사랑이니까 말이죠
곧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입혀줄 기능을 그 의사의 수술의 기능을
저들은 건강한 자가 되어버려서
의인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정작 무게를 재면 어차피 무게 모자라는 짐승 666인데
지들끼리 서로 가스라이팅 시키다 보니 서로 거룩하데 글쎄 ㅋㅋㅋㅋ
성하 되었데 지금 주님은 마귀만 상대하시는데
그런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더라 말이죠
사탕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거 하는 자 구나
지금 주님의 숙제를 볼 생각지 않고 자기 숙제만 하겠다 라고 마이죠
주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양이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남은자가 없어요 자기 죄로 우는 자가 없어요
자기가 먼저 있고 그 다음 죄 짓는 그 죄가 아닌
그래서 의에 대해서도 모르고 죄에 대해서도 모르고 심판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심판질 해 대는 그 심판을 심판 그 의를 심판 그 죄를 심판하시는 겁니다
자기 죄로 운다는 것은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고 우는 겁니다
남겨둔 한 씨가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우시는 그 눈물 덕분에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 이전 49일 까지는 때려죽어도 안 웁니다 뭐 윤리적이거나 비슷한 도덕 말이죠
그리고 양심에 반한 짓을 해서 그런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그것은 도리어 불뱀에게 물려 죽게되었다 라고 약달라 눈물달라 회개 달라고 하는
여전히 하나님 원망해서 불뱀에 물려 죽는다는 사고방식이지 그래서 다시는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그거 또 자기 숙제요 완악한 수건 덧때워 쓰기이지
아니 세 번 부인 안하면 그 다음날 마귀가 가만 있습니까?
자기 죄로 운다는 것은 정작 내 눈물 흘려야 하느냐 라는 자기 숙제가 아니라
그런 자기 숙제 단 하나도 없도록
남겨둔 한 씨가 대신 눈물 다 흘려버린 그 눈물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카이 무슨수로 들어가냐 말이죠 성령의 놀라운 탄식이라는 숙제
성령의 숙제 뿐이지요 그래서 50일 째가 되니까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어찌할꼬 라고 우는 겁니다
네 맞아요 남은자란 원인 없이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미 다 이루었다가 떳기에
이것을 마귀들은 어떻게 해서든 인간의 숙제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말이죠
그래서 십자가의 숙제로부터 멀어지도록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로 멀어지도록
그래서 그 결핍만을 채우는 그 의문의 반복에 빠지도록
다람쥐 챗바퀴에 말이죠
사탄아 썩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곧 주님이 손수 직접 바련하신 화목제를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히기 때문인 거지요
아무튼 계속해서 다른 번역도 보겠습니다
다른 번역들 다 비슷비슷하게 견고함을 굳게하심으로 미쁘심을 진실이나 신실 주로 신실하심으로 표현허고 있습니다
(고전 1:8, 현대인) 그분은 재림하시는 날에 여러분이 흠 없는 자가 되도록 끝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견고함을 지켜주심 으로도 표현했네요
현대어는 책임져주심으로
이 보세요 전부다 주님의 숙제로 보고 있는데
어떻게해서든 바리새인 같은 위선자 성화론자들은
인간의 숙제로 돌려버려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쭉정이의 숙제로 돌려버려요
아니 자기 믿음 자기 행함에 맨날 속아도 왜 자꾸 그러죠
자기 따나 남들이 인정한 그 인정투쟁에 뭐하나 건지니까
그 성공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가 사람을 인정한 그 순간 무지 위험하다 말이죠
누가 선줄로 알거든 넘어질까 두려워 하라 라는 말씀을 지킬수 있겠습니까?
빨리 넘어지는 것만이 살길이지요
왜? 책임져주심의 숙제에게 맡겨야하는 겁니다
남이 해주는 숙제 그 모욕적인 구원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고전 1:8, 현대어) 그리고 주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이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주십니다.
(고전 1:9,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귈 수 있도록 불러 주신 것입니다.
(고전 1:10, 현대어)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자 [미쁘심]을 반드시 그대로 실천하신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완벽하게 완료로
인간이 숙제 해 봤자 심승의 수 무게가 모자랄 뿐입니다
결국 다 이루어진 상태이기에 반드시 찢으신다 라는 것이겠지요
아니 누가 자기자신을 찢고자 하는 자가 회개 말이죠
아무 죄 없는 옷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라고 해도
사람들 시선에 옷 찢는 회개의 달인이 되어버렸기에
마음을 무슨 수로 붙잡아서 확 찢겠습니까?
마음 찢는 회개 하는 자 없고요
옷 잘 찢는 달인의 회개자는 넘쳐나요~~~~
그렇게 빵구멍 내어서 다시 싸매어 주시겠다 라고 반드시 실천하신다 라고
미쁘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왼료가 덮쳐졌기에 마음 찢는 일이 벌어지고 다시 싸매어주심이 벌어지는 거죠
그카이 교회는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벌어짐으로써 채를 걸러내듯이 걸러내시는 겁니다
그게 광야에서 벌어지는 O X 퀴즈로 자꾸 아니 퀴즈 아닌 사건으로 자꾸 자꾸 작은 수로 추려내시는 방식처럼 말이죠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다 뽑히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도록 말이죠
또 그카이 또 토기장이 비유 사건이 반복이 되는 거죠
왜 추려내느냐 라고 따지고 힐문하는 그카이 모세가 목자가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면 지적할수록 목숨의 위협을 격는 겁니다 그카이 예수님까지 하나님까지 죽이고야 마는 것 까지 가는 거죠
이런 죄 까지 가는 것이 죄에 대한 의미를 아는 것인데
겨우 하는 짓꺼리가 실로암 소경 앉혀놓고
부모죄냐 자기죄냐 그것으로 박사논문 딸려는
종교교리 하니 생성해 놓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워 할꺼 아니냐 말이죠
대대로 존경받는 뛰어난 신학교리 말이죠
바로 그런 자기유익만을 챙기는 그 죄는 왜 안 캐내느냐 말이죠
오늘날 목사들 거짓 목자들 다 이런 식입니다
그카이 분열이 벌어져야만 하는 거지요
다 이루심 완료 앞에서 들통당해야 합니다
불뱀에게 물려야 하고요 다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봐야 합니다
여기서 다 갈려지는 겁니다 O X 로 나누어 중간에 줄을 그어서 말이죠
주님의 구분작업 알곡과 가리지 분별작업이 벌어지는 겁니다
완료를 누리는 자와 결핍을 채울려는 자
즉 우리가 로마서 최근에 다루어서 방금 지나간 부분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나누시는
토기장이의 비유 말이죠
왜 자꾸 OX 사건 왜 자꾸 유월절 어린양의 피 사건을 펼치느냐?
목이 곧은 백성이거든
고린도 교회 역시나 목이 곧은 백성
교만한 부자 이거든요 우리가 다 이래요
토기장이가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사건이 벌어지고 나타나는 거지요
그대로 적용하면 오늘 고린도전서 본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미쁘심이요 건고하심 즉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 라는 거지요
추려내고 추려내고 추려내는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반드시 뽑아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우와 전능자께서 날 괴롭히신다 라는 괴롭히는 하나님이
전능자 즉 전쟁을 손수 직접 하신다 무조건 이긴 전쟁을 말이죠
주님 혼자 이기는 전쟁을 말이죠 마귀는 이미 진 상태로 전쟁에 놓여지고요
욥기처럼
우리는 욥처럼 고린도 교회가 욥처럼 중간에 낑겨서 애매한 고난을 받는 겁니다
왜? 이미 다 이겼기에 다 완료했기에 그 십자가의 피 용서의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에이 난 안 즐길래 라고 하는 자 추려내시고
우와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시다니요 라고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에게는 이 십자가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영광
징계의 매가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아니고 뭐냐 라고
하나님의 영광이요
능력 곧 지혜이다 라고 모든 인간의 지혜 심지어 마귀의 꾀 속임수 마저도
너끈히 이기신 지혜이다 라고 욥기 보세요 마귀랑 장기내기 게임 지혜 게임을 하잖아요
우리는 중간에 낑긴 욥처럼 말이죠 그게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하니
에이 반발하는 그카이 토기장이 완료의 비유가 이미 떳기에 그런 증상으로써
두 언약이 나오는 겁니다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
토기장이는 그저 불가마 속에 집어넣는 기능입니다
전능자 께서 날 괴롭혔다 괴롭히는 기능이다 말이죠
그래야 혼합물 찌기 오예물 불순물이 쫘악 빠져서
정금 같이 남은자가 그릇 토기로 나오는 겁니다
진노 심판 속에서 불가마 속에서 말이죠
자기 죄에 대해서 모르는 자는 바리새인처럼 실로암 소경의 죄나 찾아내는 겁니다
그것을 교리화 해서 야들아 이것 피하면 된다 라고 학원 시험 문제 내어서 돈 벌어먹는 겁니다
교회가 이런 장사를 해 강도의 짓꺼리 하는 거죠
중간에 가로막아서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게 가로 막아서 삥이나 뜯어내는 강도 짓 말이죠 완전 순 양아치 깡패 조폭들입니다
깡패들은 그저 마귀 눈치만을 보거든요 강도 두목 말이죠
자 이렇게 불순물 걸러내는 불가마에 집어넣는
괴롭히는 하나님 토기장이 비유 비밀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추려내시는 겁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까 말이죠
이 적다를 또 성화론자들은 미쳐 버립니다 또 자기 숙제로 OX 사건 문제 풀겠데요 글쎄
적다가 아니라 없어요
그래서 다 없애 놓고 남겨둔 한 씨의 눈물로 그 눈물로 인해 새로 맹글어 냄을 당하는 자가
남은 자 곧 잃어버림의 경험을 가진 잃어버린 양입니다 쫓겨난 경험자 만이 되찾음이라는
모욕적인 사건에 의해 다시 싸매어주심이라는 또 완료의 사건으로 새로 태어나지
패자 부활전이 아니다는 겁니다 포로잡혀간자들 또한 다 죽고 70년 만에 쫓겨난 자가 돌아와요
육체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70년 다 지다고 난 뒤가 아니라
다 죽고 난 뒤가 아니라
그 칠이 모욕적인 심판 속입니다 행운의 럭키 세분이 아니다 말이죠
제대로 된 심판입니다 그 제대로 된 심판만이 제대로 된 구원을 거룩을 입히시는 거죠
다 죽여놓고서 겨우 남은 아직 덜죽은 아주 작은 겨우 몇 남은 노인들로? 아니면 딸랑 한 명일수도 있고요 그렇게 눈물 흘리게 해서 돌아오는 되찾으시는 겁니다
새로 태어난 새세대는 모르는 거죠 뭐 왜 눈물 흘리는지를 말이죠
아무리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니까 말이죠
돌아온다 라는 말은 그 전에는 쫓겨났다 포로 잡혀갔다 잃어버림을 당했다 라는 의미가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그 빵구멍 난 그 공백에 오로지 예수님의 눈물만을 채워서 말이죠
주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듯이
다윗의 개인 눈물이 아닙니다
이미 주의 눈물이 먼저 떳기에 주의 눈물 흘리심을 보고자
요셉처럼 착고에 차이는 그 잃어버림 버림받는 경험을 다윗도 하는 거죠
심심하면 아들 압살롬이 죽일려고 달려드는
아니 아버지로써 암논과 다말의 사건을 보고서도 그거 내버려 뒀으니
그 복수심이 얼마나 강합니까
사실은 그게 압살롬의 죄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버지의 자리를 살인의 자리로 노리고자 그거 꼬투리 명분으로 삼은거죠
당신은 내려 와야 한다 라고 그 자리에 앉을 자격 없다고
이게 토기장이 비유랑 같아요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 라고 힐문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겁니다 그게 마귀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두 언약 두 그릇으로 나눈다는 자체가 불의하다는 겁니다
마귀가 첫 번째 창조물 그릇으로써 누구보다 그 불의함을 체험했으니까 말이죠
그키이 주님의 눈물 속에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더더더더한 그 눈물 편파용서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거죠
탕자 용서에 맏아들의 반발은 첫피조물인 마귀의 소원이니까 말이죠
이 나 보다 먼저 있었던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그 사망권세의 심판을 모르면
또 자기 숙제로 죄를 없앨려고 하는 그 양탈무리 사모처럼 뻘건 글씨로 거룩 거룩 점점크게
여고괴담을 귀신놀이를 하는 겁니다 종교게임에 중독된 자들입니다 서로 모세의 자리에 앉을려고
정작 모세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십자가의 눈물 속에 들어가버림을 당했는데 말이죠
그것이 변화산에 있었던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가 계시록에서 빵구멍 당한 배에
굵은 베옷으로 가리움을 당한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이지요
아니 죽음을 안 봤던 엘리야가 왜 말라꼬 내려와서 빵구멍 당하는 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그건은 주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고자 한 기능이지
자기 개인의 승천 그런 개인 구원 없다 말이죠
그카이 개인 시선의 죄 의 심판 그게 유대교 아닙니까 그거 불교 따라하기 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 불교 따라하기 이다 말이죠 개미 한 마리 안 죽이고자 빗자루 들고 다니는
더 심한 브라만 교 였던 가요 최상위 애들은 아예 무소유로써 팬티도 안 입고 돌아다녀요
어딜 3년 반동안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이사야 앞에서 무소유라는 무욕심 무자아 라는 사기술로 꾀고 속이는 짓 할려느냐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말이죠
종교오락은 그 짓 안하면 미쳐버리거든요 중독이다 말이죠
바로 그런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것이 고린도 교회 또한 그게 부러우니까
실제로 요즘 아니 10 년 전부터 들었던 소식인데
미국 부자들이 이제 할 짓 꺼리가 없다 보니
불교가 유행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돈 억수로 들여서 불교 개인 선생을 집에 들여서
개인 교습을 받는다 라고 말이죠
안그러면 미쳐 버리거든요 이 권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이것 저것 다 해보고 불교를 해 보는 겁니다
불교 뭐 돈 벌었지요 기독교는 억울하다 라고 그 돈 내껀데 라고 주먹으로 치는 거죠 후회하는 겁니다 회개랍시고 ㅋㅋㅋ
자 그렇게 이 남은자만이 자기 죄로 우는 자 만이 돌아오고
이 남은자가 아니면 아무리 건강하고 깨끗한 의인이라고 해도
소돔과 고모라 이다 라고 의인이 하루 아침에 범죄게 되도록 만들어 버리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니까 말이죠 부딧히는 돌이요 거치는 반석이니까 말이죠
그 반석이 든든하고 미쁘시다 라는 겁니다
얼마나 제대로 다리 걸어 넘어뜨리시는지 안 넘어가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믿음직스럽고 마음이 든든할 정도로 마음놓고 맡길수가 있다는 겁니다
다리 제대로 걸어버리심에 맡기는 겁니다 불순물 제대로 걸러내시니 말이죠
이것이 완료 앞에서 들추어짐을 당해야 할 것들이니까 말이죠
사생아가 아니다 라는 이유로 내버려두시지 않는 겁니다
어떻개 해서든 괴롭히시는 겁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걸러내시는 겁니다
자 그러고 보니 진실 신실 이라는 표현 보다 미쁘심이 정말 딱 맞는 표현입니다
아니 시편에서 밤마다 주의 신실하심을 배울 때 우리가 그것 또한 딱 맞다 라고 했는데
밤에 그 애굽이라는 잔칫집 제대로 밟아
빰 빠빠빠 빰 발라버려 빰 밟아버려 제대로 밟히이니까 신실하심 맞지요
우리한테 좋으라 라는 의미의 신실이 아닙니다
마귀를 제대로 밟는다는 의미의 신실입니다
그 어두움을 뚫고서 아침에 인자심으로 새벽을 깨우는 겁니다
제대로 찢어서 제대로 밟아버려서 제대로 싸매워 주신다는 거죠
제대로 다리 걸어 넘어뜨리시겠다 그 신실하심을 보고 얼마나 미쁘신지 믿음직 스러운지 그 완료를 누리는 거죠 오죽하면 미리암이 모세의 노래 안 부르고는 못배길 정도로 마구 마구 찬양이 나오는 겁니다 얼마나 미뻣으면 저절로 막 튀어나와요 내가 노래하는게 아니라
미리암이 노래 하는게 아니라 노래가 찬송이 기쁨이 내 속에서 나를 뚫고서 마구 마구 튀어나는 겁니다 세례요한이 피리를 부니까 어린아이들이 막 뛰어나와서 춤 추듯이 말이죠
제대로 빵구멍 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출 15:19, 개역)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출 15:20, 개역)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출 15:21, 개역)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회답이 뭡니까 저쪽에서의 찬양을 듣고 그 찬양에 답가로 대답하는 노래 아닙니까
여호와의 찬송에 화답하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지으신 이유입니다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주님 집에 거하는 자들아
예수 안에 비밀 안에서
죽음을 깨드린 것을 목격했으니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안나오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 죄를 깨뜨리는 의를 제대로 봤으니
그 죽음이라는 심판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찬송을 들었으니 안 따라부르고 배기겠냐 말이죠
인간이 생각하는 미쁘심 견고함이랑은 완전 정반대입니다
뉴스만 나오는 프로그램에 심심하면 나오는 광고 중에
신용을 강조하는 광고가 있더라구요
아 그것도 한참 유행 지난 광고이라서 이제 검색에 최근 기간에는 안 나오네요
요즘은 암 치매 보험으로 도배가 된 듯 한데
아무튼 신용이 뭡니까 믿음 아닙니까
마침 그 광고가 생각난 것이
우와 신용은 돈이 된다면 저절로 생깁니다
돈 떨어지면 신용 곧 믿음은 사라지죠
이것이 고병권 책에서 말하는 자본주의 강의이거든요 칼 막스 즉 마르크스 자본론이다 말이죠
돈이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되는 돈이 곧 신이다 라고
그런데 바로 이런 주장이 오믈날 교회에 적용해 보면 딱 맞아요
그들은 돈만이 든든하게 자기를 견고케 해 준다 라고 믿거든요
돈 아니면 믿음 따위는 없는 거지요
돈은 신입니다
가장 최고의 노예가 가장 최고의 주인으로 자리잡아 버렸습니다
그 부자교회 고린도 교회가 이 돈을 안 섬기겠습니까?
이 죄가 인간 보다 먼저 있었는데 말이죠
그럼 주님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몽둥이 대시는 거죠
괜히 예수님께서 부자에게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라고 부자를 걸고 넘어지는가 하면
이미 인간의 마음은 재물에 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믿음이요 견고함이요 미쁘심이요
재물이 신이기 때문에 두 주인을 못 섬긴다 라고
아예 인간은 마귀의 시선처럼 똑같이 취급해 버리시는 겁니다
(마 6:21, 공동)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눅 12:34, 공동)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마음에 있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를 드러내는 겁니다 내뱉도록 말이죠
아니 그렇게 인간에게 견고하게 자리잡은 믿음인 돈이,
그 돈이 신이 된 곳에
바로 고린도 부자 교회죠
이미 자리잡고 있어서 주님의 십자가의 도가 들어갈 틈이 없는
그 불가능한 견고한 성 가나안 땅 여리고성 난공불락의 요새에
주님은 이미 승리햇다 완료했다 라고 뿌뿌뿌 나팔을 불어 선언하시면서 쳐들어가시는
침노 침략을 펼치시고 있는 거지요 주님 혼자 신 났어요
고람도 교회 너 죽었다 기다려봐 ~~~~~~~~
지금 고린도교회를 쳐들어가고 있다 라는 겁니다
천국은 침략하는 자의 것이니까 말이죠
주님 혼자 신났어요
우리는 이제 포로 잡혀가서 빵구멍 나는 사건을 당해야 할 판국에 놓여지게 되고요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 혼자 신아서 박수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스라엘 백성 포로 잡혀 가는 것을 아주 신나게 좋아라 하듯이
곧 십자가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교회를 보고 신나하는 겁니다
포로잡혀갈때에 표시 해 놓아라 다시 되돌아 올테니까 말이죠
예레미야 혼자 그 완료를 막 신나게 누리는 겁니다 막 춤 춰요
돌아오는 남은자 만이 그 춤에 그 막추는 막사는 즐거움을 뒤 늦게 누리겠지만 말이죠
이것은 마치 다윗 개인이 격었던 사건을 이스라엘 전체가 다 격어야 함처럼
예수님 개인의 죽음 없습니다 전제 집단의 고난
심지어 모든 피조물도 다 동참 참예하는 그 십자가의 죽음처럼 말이죠
그래서 포로 잡혀가고 그것을 비웃는 무리 사울왕의 무리처럼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포로잡혀가는 자를 비웃음을 그 비아냥을 들어가면서
그 모욕적인 십자가를 누리는 검니다
한 개인이 격었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시키듯이
고린도 교회가 그것도 부자 교회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예수님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과 가장 멀어보이는 부자가
아니 이 십자가의 죽음에 같이 함께 동행속에 놓여진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주님의 미쁘심을 펼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물론 단 한명도 남지 않고 다 공중분해 해체가 되었던
구약의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처럼
고린도교회가 그렇게 될 지라도
이미 예수 안에 다 이루어진 상태이기에
예수 안과 밖
주님이 손수 직접 고린도교회를 다루심과
인간의 숙제로 교회를 견고케 만듬의 그 차이를
점점점 간극을 더 벌리시겠다 라는 취지로써
모든 은사 모든 지식의 풍족함 즉 부족함없이 넉넉함
(고전 1:5, 개역)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모든 구변 말주변 언변 말재주
이 [모든]이 개인이 아닌 집단적으로 펼쳐진다 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세계는 이미 부도 났어요 없어요 허구 허상입니다
집단으로 다루시는 그 실상만이 있을 뿐이다 말이죠
그렇게 넉넉히 지근 지근 밟아버리시겠다 라고
밟아버려 빰 빠빠 바 빰
발라버려 연고를 피를 발라버리시는 겁니다
넉넉히 죽이시겠다 라는 그런 의미로 미쁘심이다는 것이다 말이죠
그래 그래 예수님처럼 죽여줄게 그렇게 해야
인간의 숙제로 예수님과 함께 죽기가 아니라 (다시 살기가 없죠 원인을 갖추니까 모순된 그 반대가 없는 겁니다 다시 살려줌이, 그카이 독립운동하겠다고 한 놈들 법원을 부수고 했던 놈들 마약 먹고 붙잡혀 깜빵에 가는 겁니다)
성령의 숙제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기를 펼치시겠다(주님의 숙제만이 앞뒤 모순된 불의한 불륜을 저지르시는 겁니다 십자가라는 스캔들이 아니면 우리를 벌써 소돔 저런 깜빵갈 자 였기에)
그러니 부족함 없이 지근지근 밟아서 죽여죽게 넉넉히 말이죠
시편 23편 1절 부족함이 없다 라고 했는데
(시 23: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돈이나 먹을 양식이 아니지요
주님의 사랑인 징계의 몽둥이가 부족함이 없다 라는 겁니다
얼마나 모든 허물을 다 덮는
세상에 물이 바다를 다 덮는데요 글쎄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하박국 2:14)
그 물은 물두멍의 물인가? 아니면 에스겔 새성전에서 출처도 없이 나오는 물인가?
처음 물두멍의 물 (출애굽기 30장 등)
성막/성전 안에 있는 대야(물두멍)에서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기 위해 사용한 물
그 큰 대야의 물이
점점점 점진적으로 그 그림자의 흐릿함이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는 실상을 향해 갈때에
에스겔의 새 성전에서 출처도 없이 원인도 없이 나오는 그 물이 (에스겔 47장)
모든 죽은 강 바다 까지 다 살리는 생수의 강으로써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 개역)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개역)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 7:38, 현대어)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ㄱ) 그 속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 나올 것이다.' (ㄱ. 잠18:4)
에스겔 47장의 세성전에서 나오는 물이다 말이죠
요한계시록 22장의 생명수의 강이다 말이죠
(계 22:1, 개역)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개역)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3, 개역)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4, 개역)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5, 개역)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사망권세인 그 풍랑도 잠잠케 하지 않으면
그 바다도 다 덮지 않으면 미리암의 찬양
모세의 노래가 나올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계 15:3, 개역)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요 4:9, 개역)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요 4:10,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1,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 4:12, 개역)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요 4:1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개역)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5,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 4:16, 개역)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요 4:17, 개역)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 4:18, 개역)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 4:19,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물가의 여인이 전남편들 그 우상들 제대로 죽이시는 주님 아니였다면 동네사람들 나의 죄악들을 다 덮는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겠다 라는 진짜 남편이 나타났다 라고
물바가지 집어던지면서 찬양이 저절로 나오는 겁니다
이게 북이스라엘 호세아서 내용 아닙니까?
너의 전남편 우상 바알을 반드시 죽여서 장가가겠다 라고
이 사망 권세를 죽이지 못하는 남편은 가짜 이니까 말이죠
제대로 망가지게 만들어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된 다윗이 개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 시키겠다
그래서 개인구원이 아닌 집단 구원
그런 표현이 모든 은사 모든 언변 모든 일 모든 모든 모든 이라고 계속 나오는 겁니다
니 죽음은 니 죽음이고 내 죽음은 내 죽음 따로 따로 따로국밥이 아니라
예수님 죽음 속에 다 집어넣겠다 라고 하시고
예수님의 다시 사심 속에 다 집어넣겠다 라는 겁니다
어딜 되도 않는 가짜 죽음이 번데기 진짜 죽음 앞에 주름살 자랑하느냐 라고
사망 권세를 먼저 있었던 죄악 그 죄의 소원을
아들의 소원이 깨뜨리시는
이 혼인잔치를 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혼인잔치 계시록이다 말이죠
그 즐거움을 종말의 공포로 다 해석해 버렸으니
미친놈들이 유트브에 종말의 대비하라 라고 막 올리더라 말이죠
여기에 무슨 놈의 사적인 지식쌓기 개인적인 종말 대비
성화 의로움 쌓기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 크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교회가 오히려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이 더 많더라 말이죠
아니 그것 밖에 없어도 목사는 미쳐 죽습니다 그것 보다 재미난 것 없으니까 말이죠
그래? 아 그게 고린도 교회라는 말이지
그래 그 부자 부요함이 주님의 부요함과 족히 비교가 되는지
몽둥이의 부요함 부족함이 없음을 펼치시겠다 라고
세상이 보란 듯이 찢으시는 겁니다
요즘 날씨를 보세요 그냥 과거의 적당량은 이제 없습니다
더위로 말라 죽이는 것도 초과잉적이고
비도 그냥 안 옵니다 마치 노아홍수처럼 마지막 때에도 그렇게 하시겠다 라고
그냥 퍼붓듯이 비가 오는 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믿음도 말라 죽이시겠다 라는 식으로 퍼붓는 식입니다
모든게 극과 극으로 치닫는 거죠
요즘 정치 보세요 다들 미쳤어요 정치보다 종교적인게 없으니까 말이죠
태극기 시위 정신병자들이나 촛불시위 정신병자들이나 중도의 소극적인 샤이 숨은 유권자
뭐든지 초과잉이 된 입장에서 진짜 진리는 타이타닉 가라앉는 배에서
서로 자기가 옳았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 뿐이니까
제대로 지근 지근 밟아서 가라앉는 판국에 그게 뭐그리 심각한 것이라고
어차피 어미 뱃 속에서 뻐득 나올 생각이 없는 어리석은 왕들은
다 지옥으로 가도록 되어 있는데
같이 따라 지옥가겠다 라고 미쳐들 있으니 말이죠
선거 때만 되면 사람들 눈 빛이 다 미쳐 있어요
뻘건 눈으로 다 귀신 씌인 것 같아 원래 그랬지만 그때는 대 놓고 그러더라 말이죠
끝나면 안그랬다는 둥 다시 연기를 시작하고요~~~
그러니 부자 교회가 단순히 그 부자 됨으로 과연 버틸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부자야 어서 값없이 돈 주고 불에 타지 않는 옷을 사라 라고 하시듯이
불에 심판에 타지 않는 옷 곧 믿음의 옷 아니면 반드시 다 죽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거짓선지자 목자에 그 거짓 양들 뿐이니
참된 목자가 괜히 잃어버린 양 찾는게 아니니까 말이죠
그러니 부자교회 고린도교회가 잃어버린 양으로써의 증상을 누릴려며는 얼마나 깍여야 할 것이 많겠냐 말이죠
제일 많이 얻어터지는 부자교회이니까 말이죠
마치 수체자 라는 이유로 제일 많이 베드로가 지적받고 박상이 나야 하니까
밭갈이 기경 그 딱딱함이 계속 부서지는 겁니다
더 이상 육의 자랑거리가 나올게 없도록 말이죠
돈 부자 라는 그 믿음 조차도 허무하게 무너지도록 압도적인 심판이 바로
모든 일 모든 은사 모든 부요함 곧 몽둥이 퍼붓기입니다
그게 다윗 아닙니까
왕이니까 한 나라의 제일 부자인 셈이지요
이 부자에게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하시는지
완전히 발가 벗겨도 너무 너무 발가벗기시듯이 구원하시는 겁니다
맨날 도망 다녀요
다들 죽이도록 달려들게끔 했으니
하루 하루가 지옥이니
안 부르짖고 배기겠습니까?
주의 부르심 속에 넣고자 내가 너를 불렀다 가 먼저 떳기에
바로왕을 강퍅케 해서 부르짖듯이
사울왕을 이스라엘 전체를 강퍅케 해서
다윗을 부르짖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래놓고 다시 이스라엘 전체를 이 다윗의 부르짖음 속에
쫓겨나고 도망치는 그 잃어버린 속에 집어넣어서
되찾는 누가 왕이고 누가 목자인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제 다윗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새것으로만 사는 완료를 누리게 되어있지
자신의 손으로 이룬 의로움 부요함 따위는 비할바가 못 되도록
후 불면 다 날라가는 그따위 겨 그 따위 쭉정이와 비할가 못되는
든든한 바위
흔들림 없는 미쁘기 짝이 없는 견고한 세성전 3일만에 다시 지은
죽음의 그 간극 그 심판을 통과한 그 새성전만이
그 새마음 그 새영을 부어주심으로써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도록 하시고자
제일 높은 왕의 자리에서
제일 낮은 죄인 중의 괴수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지옥 백성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게 되면
또 사울왕처럼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겠다 라고
이스라엘 왕 다움을 보이겠다 라고 자기 숙제에 미쳐버립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 곧 성령
성령으로 인한 새마음 새영으로 인한 선물이 없기에
척박한 땅에서 하루 하루 활과 화살이 없이는 못사는 자처럼
오늘 또 하루를 배고픔이라는 그 결핍을 채우고자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우고자
척박한 땅에서 숙제를 해야 하는 겁니다
아니 이방인의 땅도 아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말이죠
피를 흘렸으니 더더욱 율법대로 더 철두철미하게 피 값을 치르는 그 속에서
점점더 간극을 좁히는 피 흘리기를 멈추는게 아니라
더더욱 피 흘리기는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음을 멈추기는커녕 더더욱 확대케 되더라 말이죠
자기 의를 세우고자 말이죠
그게 돈이고 신용이고 믿음이니
그 모래위에 지은 집이 과연 징계의 매 몽둥이 앞에서도
과연 든든한지 미쁨이 되는지 보자 말이죠
그렇게 용광로 심판 속에 집어넣었다가
순금 몇 프로가 나오는지 보자 말이죠
단 한 개도 안나오는 불순물 혼합물 찌끼로만 가득차 있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말이죠
오죽 사랑하셨으면 끝까지 매를 대시겠다 라고
끝까지 섬기시는 전능자 괴롭히는 자로써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이 부족함 없는 넉넉한 사랑을 또렷히 밝히 명료하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얼마나 사기치는 그 미완료와 대조 차이를 통해서 더더욱 선명하게
넉넉히 다 이긴 그 완료의 사랑의 매를 말이죠
예수님이 좋아하는 십자가 게임
게임 스타트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제대로 밟아 버리시겠다 라고 피 발라 주시겠다 라고
인간의 숙제 게임 중독에 더더더 더 심한 더 부정적인 십자가 게임 ~~~~~~~~
그저 부서지는 것 외에는 누릴것이 없는 부서짐을 누리는 영광을 즐기는 겁니다
부자야 너의 눈에 연고 안약을 제대로 발라주마 라고 말이죠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 미쁘신 믿음을 선물 받은 고린도교회입니다
곧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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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9 믿음의 말씀이냐 라는 실상 ( VS 행함의 율법이냐 라는 그림자) (롬 10, 4-10)
2025. 6. 15. (5월 21, 22일 녹음)
율법의 마침으로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심 (롬 10, 1- 4)
로마서 2022 2025. 5. 24. 18:38
22-058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고자 율법의 마침 되심 (롬 10, 1- 4)
2025. 5. 25.
〈로마서 10, 4-1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찬송가 305장 새 559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찬송가 348장 새 213 나의 생명 드리니〉
〈찬송가 305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새찬송가 559장〉
〈로마서 10, 4-1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5, 개역)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9, 개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개역)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4, 새번역)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
(롬 10:5, 새번역) 모세는 율법에 근거한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 ㉡레 18:5
(롬 10:6, 새번역) 그러나 믿음에 근거한 의를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 ㉢신 30:12
(롬 10:7, 새번역) 또 ㉣'누가 ㉤지옥에 내려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도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 ㉣신 30:13 ㉤또는 '깊은 곳'
(롬 10:8, 새번역)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 ㉥신 30:14
(롬 10:9, 새번역)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롬 10:10, 새번역)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구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말씀을 지켜서 의에 이르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복을 타내고자 의를 쌓고 그 의를 쌓는 고생을 함으로써 그 보상으로 천국에 간다 라는 원칙으로 꽉꽉 차 있다 보니
예수님이 오셔도 예수님의 새언약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빽빽하게 꽉 채워버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자가 바로 부자청년입니다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복 받은자 맞다 라고 본으로 삼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앞에서도 겸손하게 무엇을 하면 구원을 받느냐 라고
백성의 관원 지도자 답게 요즘으로 치면 국회의원입니다 어린나이에 국회의원이 될 정도로
사람들이 뭘 좋아라 하는지 그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데 정치꾼 보다 달인들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렇게 겸손하게 무엇을 하면 구원을 얻는지
지금 당장 말씀만 하시면 부족한 부분 당장 채우듯이
지금 당장 그 의로운 말씀을 지키고 의를 행해서 사람들의 기대치에 맞게
구원받은 자의 삶을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겠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예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자란 교만한 자이다 라는 것을 먼저 들추어내시는데 있어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렵다 라고
부자가 천국가겠다는 그 열심에 그 열성에 동조해 줄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런 부자가 천국 가겠다는 것에
천국을 어떻게 하면 저 부자랑 단절 시키느냐 라는 것에만 관심을 두시고
부자가 바로 그런 겸손 떠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모습인지를
고생도 마다 하겠습니다 라고 고난 속에 들어가겠다 라는 다짐
베드로가 생각나지요 십자가에 죽기까지 같이 따라 죽겠다 라고
이 사탕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구나
어이구 배불러 터지셨셨셨 었었었어요
사람의 일로는 배가 빽빽하게 배불둑 빵빵하게 배터질 듯이 만삭의 임신부처럼 배불러 있지만
하나님의 일은 단 하나도 없어서 빵구멍 뻥뚫린 것처럼 텅텅 비어 있구나
에라이 더 단절 더 간극 더 공백 더 빵구멍이나 나 버려라 라고
천국을 보호할려고
너희가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기념 이름을 보호하실려고
도저히 인간으로써는 할 수 없는 전 재산을 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16,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6:17, 개역)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겔 36:18, 개역)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겔 36:19, 개역)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겔 36:20, 개역)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가난한 자에게서 나온 돈이다는 거죠
원주인에게 주어라 라는 겁니다
소자 하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라고
작은 자 딱 한 사람
너희 가운데 있었던 한 선지자
그 소자에게 한 것이
이게 비유 비밀이라서 행함으로 지킴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싫어버린 바 된 비유 비밀인 한 선지자 이기 때문에
같이 싫어버린 바 될까봐
같이 흠모할 모양이 없고 고운 모양도 없고
도리어 타인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다 보니
남의 병듬을 짊어지니 병든 얼굴 태양 빛에 새까맣게 된 질고를 아는자
병든 자 취급 받는다 라는 겁니다
코로나때 미국에서 마스크 쓰면 병든자 취급받고 왕따 받을까봐
발가벗고 3년 반? 3년? 절대단절 절대저주의 모습을 받은 자 취급당할까봐
아니 다들 아름다운 모양 흠모할 모양 이게 부자 아닙니까
이게 구원받은 자 모습 아닙니까
병든 모습 되어 보세요
다들 떨어져 나가서 고립이 되어서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게 되면 썩게 된다 말이죠
그 썩은 물이 누구 때문에 된 거냐 말이죠
썩어버린 우상의 모습이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어서 발가벗고 다니느냐 말이죠
이게 비밀 비유 거울이다 말이죠
남의 허물을 거울로 비추고자 누가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냐 말이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친놈이다 너는 발가벗었다 라고 정죄하게 바쁘다 말이죠
아니 발가벗고 싸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되냐 말이죠
바로 이것이 초과잉적 비정상행동인 바로 진리이다 말이죠
초과잉적 제스처 보편적 진리를 전복시키는 구체적 보편적진리
묻고 떠불러 가 이것이 진리이다는 겁니다
즉 발가벗은 이 십자가의 저주가
사실은 너희들이 발가벗었고
너희들이 하나님이 저주 받았구나 라고 했듯이 도로 거울로 반사 시켜서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이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부자청년이 개인 부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염원하는 부자요 그 복된 복받은 자로써의 구원을 염두한 그 벡성들의 염원이 들어간 입장에서의 대표성으로써의 부자이기 때문에
가장 천국에 가장 접근한 자 로써의 부자가 도리어 가장 멀리 단절된
입장에 놓여지도록
부자의 겸손이 부자의 교만한 자로써의 대표로써 주님은 복음증거에 활용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로소 사람들의 제대로 된 반응이 나타나는 겁니다
아니 부자가 구원 못 받으면 도대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쫓여난 경험 잃어버림의 경험을 가진 심판 속에서 자기 죄로 우는
남은자가 구원받는다 라는 의식은 유대인 아니 그 당시 사람이나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다 없다?
없다 라는 겁니다
그저 아니 부자가 천국 못 가면 누가 천국 갈수 있겠노 그것만 심각할 뿐이다는 거죠
요즘식으로 하면 그저 눈에 보이는 목사 하나 기대 걸고 교회 다녔는데
목사가 천국 들어가는 것이 바능구멍 통과하는 것 보다 어려우면
다들 교회사람들 반응이 아니 그럼 누가 천국 갈수 있다는 말인가?
바로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단절 입니다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린느 또 부자청년처럼 예수님 이용할려고 다가가 접근하지
그 접근하는 겸손을 가장 경멸하면서 떨어뜨리시고자 차단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면
격는다는 우리는 그것보다 충격 멘탈이 아닌게 없을 겁니다
이것을 뭐라고 하더라? 책 제목이 생각이 안나 쳇GPT 에게 물어봤는데 한참을 돌아서 알았다 말이죠
그때 4월 초에 물어봤는데 기억이 안나 한참을 돌아 돌아서 제목만 알아냈는데
각인의 이론 이라고
즉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내가 주체인데
반대로 내 주체성을 오히려 빗금쳐버림 당한 삭제 배제 제외 당해버리는
빵구멍 난 홈패임 흔적 스티그마가 되어버리면
아무리 머리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홈패임 시키는 외부의 대상물로써 작동하게 됨어서
내부로 끌어당기는 세계가 아닌
그 반대인 홈패어버리는 그 외부의 세계를 비로소 경험케 되는
그 카이 철학책 하나 읽을려면 몇 년을 끙끙대는게 내가 책을 읽는게 아니라
이놈의 책들이 나를 난도질 해 버리니까 몸이 안아프겠냐 말이죠
간따나 난독증 문해력 제로인데 좀 알기 쉽게 해주기는커녕
일부러 억수로 어렵게 적다 보니 믄말인가 싶어 자료 찾다 볼일 다 보는
어니 이런 사탄의 깊이도 이런 판국인데
내가 말씀을 보는게 아니라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상대로 구원 어떻게 받냐 라고 보세요 지가 뭔데 자꾸 상대할려고 해요
그런데 정작 말씀이 나를 보게 되니
예수님이 부자를 상대하게 되니
부자가 완전 난도질을 당해서 완전히 발가벗겨 지는 겁니다
다시는 주님 앞에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이것이 대표성으로써의 부자이니까
모든 인간들은 예수님 앞에서 십자가에 낱낱이 못 박히는 난도질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도 잃어버림 당한 자 로써 다가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 앞에서 누가 크냐 누가 높냐 누가 더 구원 받을 가치가 있느냐 라는
그런 육의 것을 가지고와서 자랑할려고
하나님과 원수 된 육의 생각만 가지고 올 뿐이지
믿음의 말씀을 가지고 오는 자는 없습니다
도리어 믿음의 말씀이 난도질 해서 잃어버림 당하도록 만들어서
말씀이 우리를 짏질질 끌고 예수 앞에 나오게 하는 겁니다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저 풍랑을 일으켜서 저는 난도질 해서
이 죽음의 바다
그 깊은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시는 당신 도대체 누구시오
욥은 그 애매한 고난 속에서 그 괴롭히는 하나님 속에서 비로소 믿음의 말씀을 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제물이 된 그 상한마음 속에서
자기 죄로 우는 그 남은자의 자리에서 남겨둔 한 씨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치시는 정직한 영을 비로소 보고
기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내 때를 보고 기뻐하셨다처럼 말이죠
부자청년은 이 언약의 코스를 밟지 않고
바로 하나님을 대할려고 하다가
타 죽어야 할 판국에 놓여진 겁니다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손 깨끗한 자
바로 봤다가는 다 죽는데 말이죠
온 몸에 피를 발라야 한다 말이죠
그 정도로 더럽기 짝이 없기에
누가 외부에서 피 흘려주지 않는 새것이 오지 않으면
세 언약 새 마음 새 영이 주어지지 않으면
기존의 것
옛 언약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그 부자청년의 사고방식으로 갔다가는 타 죽는다 말이죠
그 정도로 심각한 죄를 우리는
내가 죄 보다 먼저 있다
나 있음 이라는 이 절대우상성이 파괴 되지 않는 이상
거기에다가 덧 떼우기하듯이 말씀 지켰다
이럴적부터 다 지켰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이딴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너 보다 먼저 있었던 죄륵 향한 대신 매 맞으심인데
죄의 소원을 겨냥한 사망 권세를 향한 것인데
이런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따위로
이게 성화론 아닙니까
이게 개혁주의 아니고 뭐냐 말이죠
하나님 나라 운동하겠다는 가룟유다나
독립운동 하겠다 라는 남은자 운동하는 놈들이니
그런데 다들 왜 잃어버림 양 되기는 아무도 안하는 것일까요?
저 위의 것들은 사람들이 인정해 줘요
멋들어져 보여요 가치가 있어요 보상도 있어 보여요
그런데 잃어버린 양 싫어버림 자 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익할 뿐이니
이건 뭐 진짜로 외부에게 불쌍히 여겨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고도리의 쓰리박 피박 광박 고박 절대심판 절대저주 절대단절이다 말이죠
그 속에서라야 비로소 원수가 등장합니다 자기가 이겼다고
그 원수 보란 듯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마귀만 상대하시는 반칙 스캔들 불륜 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그때서야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저 원수 마귀가 나와 똑같은 사고방식이였음을
이 지옥의 몸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비로소 잃어버림 속에서
남은자 자기 죄로 우는자
비로소 장대 높이 달린 인자에게 딱 맞는 죄인 환자가 되는 겁니다
즉 내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나를 상대하실려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에게 걸맞는 환자 죄인 잃어버린 자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가 될려고 하는 자가 없으니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1, 현대어) [가나안 여자의 믿음;막7:24-30] 예수께서는 그 지방을 떠나 두로와 시돈으로 가셨다.
(막 7:24, 현대어) [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마15:21-28]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거기 계시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으려 하셨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문이 금방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요 6:39, 개역)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눅 19:10, 개역)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8, 현대어) 삭개오는 주님 앞에 일어서서 말하였다. `선생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세금을 누구에게 더 부과한 것이 발견되면 제 돈으로 네 배를 갚겠습니다.'
(눅 19:9, 현대어)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이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잃어버렸던 아브라함의 자손중의 하나이다. 나, 인자는 이와 같은 이들을 찾아서 구원하러 왔다.'
(눅 19:10, 현대어) (9절과 같음)
(눅 19:11, 현대어) [금화의 비유;마25:14-3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자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잘대 높이 달린 인자 쳐다보는 것 뭐가 어렵겠습니까? 고개만 돌려 높은 위치를 시선 높여 쳐다보기만 하면 낫는데 그게 뭐가 어렵냐 말이죠
그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되는
고개 못 돌리도록 누가 고개 안 돌아가도록 담걸어버리는 식입니다
반대로 나는 안되고
반대로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나를 억지로 억지로 잃어버린 자 만들어서
저 보새요 매국노 세라장 삭개오 만들었지요
귀신들린 딸의 어미로 그것도 개같은 이방여자
예수님도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 라고 하시잖아요
그 정도로 단절 외부에서 주지 않으면 새것으로 살 자는 없다는 겁니다
(막 7:25, 개역)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막 7:26, 개역)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27,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8, 개역)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막 7:29,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막 7:30, 개역)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막 7:31, 개역)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막 7:32, 개역)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33, 개역)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막 7:34, 개역)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 7:35, 개역)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막 7:36,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막 7:37, 개역)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단절 막힘 차단을 거쳐서 막인 담 둘로 나누어진 경계선 담을 허무시는 둘이 하나가 되는 뚫어 뻥 잔탁 십이지장충 회충 요충 단 번에 탁 ~~~ 뚫어버리시는 겁니다 여기에 상대적인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대조되는 두 언약으로써 나오니까 나는 뭘 해도 가짜인 거죠)
그럼 유대인은 과연 새것으로 사는 자일까요? 헌 것으로 사는 자일까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에서 살려주시는 그 섬김으로 사는게 아니라
부자청년처럼 자기 숙제로 말씀 지켜 의를 행해서 살려고 하는 그 교만
그 우상 숭배 빵구멍 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아이고 주님 그런다고 바리새인이 아 잘못 생각했구나 라고 거침이 되는 줄 아십니까?
괜히 건드려서 우리까지 위태롭게 되었잖아요
(마침 마태복음 15장 24절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그 윗구절에
(마 15:12, 개역)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들에게 안 가고, 보내심을 받지 않고, 임금 삼을려고 아무리 쫓아와도 도망치고 반대로 거룩측량 성전측량 보내심을 받음은 반대로 저 제일 끄트머리 제일 끝에 있는 자를 찾으러 오셨다 말이죠 부자랑 정반대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집중된 그 꼭지점의 정 반대의 지점에 주님은 보내심을 받았다 말이죠
매국노 세리장 삭개오 에게 말이죠
)
바로 이겁니다 오늘날 교회 교인 교역자 건드리면 지구 끝까지 따라와서 복수하겠다는 놈들 뿐이다 말이죠 다들 걸림이 되는 줄 아느냐? 괜히 건드리면 목사 건드리면 7대가 망한다 라고
자기 숙제의 달인들이 되다 보니 지구 끝까지 따라와 죽이겠다 라고
사도바울을 목 죽이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겠다 라고 하잖아요
주님은 주님 자신의 숙제 속에 놓으실려고 계속해서 잃어버림 속에 놓는 겁니다
그래야 다윗이 울고 그 눈물을 주의 눈물로 주의 병에 담는다 라고 하잖아요
비로소 주님의 눈물을 보게 되니까 마링죠 그것이 바로 의사가 찾아내시고야 마는 환자 아닙니까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들려고
하나님의 의의 숙제 곧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의 숙제에 걸맞는 환자 죄인 만드시고자
자기 의에 열심인 자기 숙제에 미쳐있는 죄 아래 갇힌 자를 손 털게 빈손 만드시는 겁니다
빵구멍 뻥 뚫혀야 잃어버림 당해 바벨론 포로 당해야
어 주님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죄지
안그러면 자꾸 점쟁이 찾듯이 하니까 말이죠
우리나라 치고로 성화되었다 라는 그 자들과 함께 어울려 봣다 말이죠
자기들따나는 저 수준낮은 성화 박영선 목사들 보다 더 수준 높은 성화론자들이라고 우겨도
맹 점쟁이 찾듯이 하는 모습은 맹 같은 소돔과 고모라 였지
아무도 자신을 잃어버림 당한자 라는 남은자로 여기지 않아요
남은자 맞다면 남겨둔 한 씨가 이러다 다 죽습니다 라고 우는 그 울음에 비로소
49일째까지 안 울어도 50일 째야 비로소 칠칠이 49 철저한 단절 버림 버림 잃어버림 속에서
그 심판 그 저주 속에서 비로소 울게 되지
그 안백성 안자녀 안긍휼의 자리에서
백성 맞다 자녀 맞다 긍휼 오냐 불쌓이 여겨주마 라는 피흘리심만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자기 의 조금 이라고 쌓았다고 여겨 보세요
피 흘리심이 보이는가?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겠는가 말이죠
자기 숙제한 것만 자기 공로만 언젠가는 앞장 세울려고 하는
바로 이 버릇
사탄아 썩 물러가라 이 사람의 일 버릇
이 계집종 하갈의 가정부 버릇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버릇 뿐이지
누가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의 그 자유
얼마나 자유로우면 불임여성인데 하늘의 자녀가 많테요 글쎄
이 비밀의 간극을 무슨 수로 매꾸냐 말이죠 앞뒤 모순 되는 비밀인데
아무것도 없는 자 인데 모든 것을 다 가진자래요 글쎄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레요 글쎄
이것이 풍요래요 글쎄 눈에 보이는 것 하나 없는데 풍요이고
오히려 자식이 눈에 그렇게 많은 실제로 보이는데
하늘에 자식이 단 하나도 없는 다 지옥
하나도 없게 되더라 말이죠
이 얼마나 무시 무시 하냐 말이죠
자 그래서 본문으로 돌아와서 오늘 본문
(롬 10:6, 새번역) 그러나 믿음에 근거한 의를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 ㉢신 30:12
(롬 10:7, 새번역) 또 ㉣'누가 ㉤지옥에 내려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도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 ㉣신 30:13 ㉤또는 '깊은 곳'
(롬 10:8, 새번역)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 ㉥신 30:14
6절 7절 8절에 구약에 인용된 말씀이 나오네요 신명기 30장 이라고
(신 30:12, 개역)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신 30:13, 개역)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신 30:14, 개역)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똑같은 유대인이면서도 불구하고 사도바울는 같은 구약을 봐도
유대인과 다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아니 보여주셨다 라는 겁니다
말씀을 지키는 주체가 행하는 자를 염두한 것이 유대인의 시선인 반면에
사도바울은 말씀을 지키는 주체가 그리스도 임을 증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런데 구약을 아무리 때려죽어도 봐도 예수님이 주체가 될수 있는 그 어떤 의미의 단어나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들이 있는가 말이죠
없어요
네 맞습니다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도바울은 본인도 과거에 그렇게 해석해 왔기 때문에
그런 유대인의 속성을 잘 알기에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거을 알면서도 왜 역설적으로 주장하느냐 라는 겁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쫓아 새언약의 사도로써
새롭게 말씀을 받아서 증거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달라졌어요가 되어버립니다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마 5:1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신 30:12, 개역)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신 30:13, 개역)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신 30:14, 개역)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를 나로 규정하시는게 아니라
그리스도로 바꿔 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8절은 그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이 곧 믿음의 말씀이 이 말씀을 이룬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위의 구절
(롬 10:5, 새번역) 모세는 율법에 근거한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 ㉡레 18:5
(레 18:5, 개역)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부분만 보먼 주님이 비밀로써 개인경험이나 마찬가지인 경험을 해 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양탈무리의 사모가 뻘건 글씨로 내기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라 그 시뻘건 글씨를 점점점 여고괴담의 클로즈업 같은 귀신장면처럼
(레 11:44, 개역)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 11:45, 개역)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 1:16, 개역)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얼마나 복수심에 쩔어 있는지
우리가 다 그런 복수심에 가득차 있는 가짜임을 보게 된 거죠
믿음이 졸지에 행함이 되니 인간의 믿음은 예수님 제자들처럼 허구헌날 누가 크냐 라는 복수심 밖에 없어요 그 싸움뿐이다 말이죠 부자청년 등돌리고 가는 이유는 복수심 이게 보상을 바라는 이유인 것이거든요
가정부의 마인드 계집종 하갈의 마음입니다
날 건드리면 벌이 77배 이다 라는 라멕의 찬양 아닙니까 이것이 인간이라는 바벨탑이라는 몸뚱아리 이다 말이죠 지옥이 늘 스멀 스멀 올라오고 있지
주님의 불쌍히 여겨주심이 올라오지 않아요
(신 30:14, 개역)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자 보세요 핵심입니다
(롬 10:8, 개역)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 14절 끝이
로마서 10장 8절 끝이 잘 나가다가 끝이 달라요 뭐 이단 입니까 끝이 달라졌어요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이 부분으로 바뀌었어요
자 사도바울이 왜 이렇게 기록하라고 성령부음 받은 겁니까?
이거 중요합니다
로마서가 먼저 있었습니까?
신명기가 먼저 있었습니까?
실체가 먼저 입니까 그림자가 먼저 입니까
실체가 있는데 빛이 비춰져서 그림자가 길게 늘여져 있는데
우리 인간의 공간과 시간에서는 그 그림자를 먼저 접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그 몽학선생 그림자는 실체에게서 나왔기에
화살표로 실상을 가리키는 손가락 인데
달 실체를 안 쳐다보고 손가락만을 쳐다보면 되겠냐 말이죠
바울이 본인이 과거에 그랬다 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 미래완료라는 원인 없는 결과가 나타남으로써
과거를 삭제 해 버리는 겁니다
원인이 생겨버리면 실상은 없어요 그림자 뿐입니다 실상 보이지 않는 소망은 없고
그저 보이는 의문의 반복만 그 그림자만 따라갈 뿐이다 말이다 썩은 동앗줄이다 말이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긴다 이게 과학이지요
과학은 이제 종교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알쓸잡 최근꺼? 지난주? 지지난주? 아무튼 대학이 처음나오는 그 사회적 배경을 듣고 보니
이 안다 라는 지식 이 진리를 사랑하겠다 목숨 걸겠다 라는 실천력들이 왠지 허무하게 보이고 느려터져 보입니다 어미 뱃 속에서 느릿 느릿 나오듯 말이죠 주님의 나라는 단 하루만에 세워지는데 이 놈의 나라는 인간들 손에서 지어진 것들은 느려 터져요 그래서 기초만 세우고 완공은 46년이 지나도 미완공인 그래서 다 치시겠다 죽이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왕들을 말이죠 결국은 학문자들도 마찬가지 남 등쳐먹는데 빠르지 정작 공의 정의는 세월아 네월아 이다는 겁니다)
행해야 천국 간다 구원 받는다 이게 종교이고 과학이다 말이죠
과학이 종교가 되었다 라는 주장은 철학자들이 자주 주장합니다
저는 지젝의 주장을 들었는데
인공지능 검색하니 많이 나오네요
행해야 구원된다 이게 유대인의 구약을 보는 시선인데
바울이 그 반대인 믿음으로만 구원 된다 라고
믿음의 주로
주체를 믿음 되신 주님을 (인간의 믿음 아닙니다 결국 행함이기에 복수심 일 뿐입니다 누가 크냐 싸움 뿐이다 말이죠)
[우리가 행하는] 그 자리 그 문구를 뒤 바꿔 치기 한다 말이죠
말이 뒤 바꿔 치기이지
모세 오경 신명기 기록자 모세 보다 먼저 계신 이가 누굽니까?
누굽 니까 안 철수 철수를 다 했는데 혼자 철수 안하더라 말이죠
누굽 ~~~~ 뉘 까 ~~~~~~ 그 표정이 왠지 히틀러처럼 보이던데 ㅋㅋㅋ
모세 보다 먼저 계신 이
바로 예수님을 집어 넗으면
의도 죄도 심판도 다 달라집니다
우리가 의라고 여겼던 것이 죄고
우리가 죄 라고 여겼던 것이 의로 뒤 바꿔지고
우리가 생각한 심판이 긍휼이 되고
정작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 심판할려고 하니까 주님은 뒤 바꿔치기 긍휼로 바꿔 버리고
‘우리가 남을 7번 용서한 그 긍휼은 뒤바꿔치기로 진노로 어딜 7에 70번 용서
번데기 앞에서 되도않는 주름 일곱가닥을 용서라고 긍휼이라고 여기느냐
후 라고 부니까 바람에 나는 겨 쭉정이처럼 날라가버리는 어라 진짜로 심판이네 가 되더라 말이죠
주의 날에 인자의 날에 악인은 돌이키고 의인은 범죄케 되는
악인과 의인의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주의 날을 말하고자
인간의 몸 공간 그리고 시간 역사를 모조리 밭갈이 해 버리시는
이 반칙 앞에서
이 반칙이 아니면 이 불륜 부조리 이 불의가 아니면
십자가의 강도가 무슨 수로 주여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용서를 비는 겁니까
의가
죄가
심판이
심판 받는 밭이 갈아엎어지는
의가 심판받고 보자 진짜 의인이 용광로 주님의 의의 영광 십자가 속에 집어넣었다 빼 보자
어라 순금이 단 하나도 안 나와요 100 % 백프로 혼합물 찌기 불순물 주제에
이래 이야기 해도 이미 몸에 편하게 자리 잡은 것이 성화론이라서
절대로 이거 못 버립니다
육의 자랑을 할 데가 없으니까 말이죠
거 보세요 부자청년의 그 사고방식 질문하는 내용들 모조리 다
성화론자들 주장과 틀린거 하나 있던가요 딱딱 맞아요
죄 보다 자기가 먼저 있엇거든요
죄는 언제든지 자기가 그것도 먼저 있는 자기가 다스리니까
어라 죄도 다스리니까 다스려지네?
라고 죄가 속이니까 그 속에서
그 죄의 소원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거지요
주님이 그럼 말라꼬 십자가에 달려 죽는 화목제를 왜 굳이 왜 굳이 보여주져야만 했나요
뭐 그리 할 짓이 없어서 그것도 하늘 영광 다 버리고
하나님의 자리 버리고 말이죠
죄인 그것도 제일 비천한 자리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 말이죠
이게 비밀 비유 아닙니까
비밀 속으로 못 들어오겠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 대로만
즉 여기에 인간의 소망 소원 그건 뭘 해도 보이는 소망이기에
보이지 않는 이 아버지와 아들의 소망은 안 보인다는 이유로 아예 소망 자체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선물로 주어진 성령으로 인해 믿음을 받아야만 비로소 믿음의 산 소망이지
인간들의 소망은 기껏 해 봐야 성화 많이 되게 해 달라는 역시나 죽은 소망
누가 크냐 그것 뿐이다 말이죠 어떻게 하면 자기자신을 더더욱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비종재인데 왜 자꾸 존재가 될려고 하는지
미말에 둔 찌기 인데
역사 한참 중간에 가장 왕성한 찬란찬 시기 그 중간 중앙에 종말과는 멀리 떨어진 기간에
찌기 구경꺼리 웃싸꺼리가 아닌 핫플레이스(번화가,유행) 한
관종이 되기를 바라는
인플루언서가 구독자가 많다 보니 광고판이다 말이죠 결국
관종 부끄러워도 관종이 안되면 돈이 안되거든요
그야말로 누가 크냐 라는 결정판 나만 바라봐 ~~~~~~~~~~ 애정결핍의 관종
구독과 좋아요 아람서쩡 감사합니다 박가네 일본 아내의 그 멘트가 정말 딱 귀에 박히죠
캄 사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왜 같이 섬기는 겁니까?
결국 누가 크냐 라는 이 없는 자아에 대한 자아 의식이다는 거죠
자아가 있는 이상 우리는 이 복수심에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오죽하면 니체가 예수님을 흉내내면서 예수님을 끝까지 복수하고자 하는 경쟁자로 삼았을까요
그런 무신ㄹㄴ자 니체를 욕하는 놈들 특히 성화론자 특히 신학자들 이 놈들 예수님을 경쟁자로 삼은 복수심에 들 끓는 놈들 대부분입니다 니체를 욕하면서도 니체의 길을 가고 있어요
아니 철학책을 보면은 그렇게 중독 안되는게 도리어 신기해
그 깐족깐족 유땡민 마치 자신은 안그런냥 높은 자리 앉으면 변한다 라고
이 놈이 글쎄 기독교가 아닌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아예 공인으로써 대 놓고 해 댔거든요
아는 사람 다 알지만 그게 철학하는 놈들 다 그래요
지가 죄 깃고 안 짓고가 아니라 설난땡이 변하고 안 변하고가 아니라
철학사상이 그렇게 만들어요
인간이 책을 읽는게 아니라 책이 인간을 읽어버리니까 말이죠
이것이 예수님의 시선이다고 했지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다
독수리가 있는 곳에 주검 시체가 있다
주님은 그 독수리 시선처럼 모든 인간을 마귀가 시체로 밥으로 보듯이
그래서 사자는 양을 미워하는게 아니라 사랑하지요
목사들이 지도자들이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합니까
자기 밥이니까
빨때만 꽃아서 피 빨아먹는 찰거머리처럼 말이죠
어차피 개 돼지들은 금방 다 잊어버리니까 말이죠
설난땡만 거짓 되냐? 유땡밍도 거직이기는 맹 마찬가지인데
너거들은 둘 외에는 선택이 없겠으나
우리는 바로 그런 느릿 느릿 민주주의 건설하겠다
아직도 기초만 짓고 완공은 46년 동안 지어도 미완공
에라이 성정을 헐라 3일 마에 짖겠다
왜? 처음부터 있었던 성전 곧 단 하루 만에 짖는 성전이니까
인간은 10달 배 아파하면서 그것도 느릿 느릿 태어나지만
주님은 아들로써 아픔도 없이 단 하루만에 해산하는 고통도 없이 태어나셨시에
단 하루 만에 나라가 세워지는 겁니다
이게요 제가 직접 체험 한 건데요
수년째 믿어오던 애들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런데
아니 제가 고3 들어갈려는 그 순간에 갑자기 믿게 되니까
기독교 애들 천주교 애들 갑자기 다 덤벼들 듯이 미워하더라 말이죠
그 이전에는 개들의 종교도 몰랐고 아무런 시비도 없었는데 갑자기 말이죠
그게 어떤 교회를 가도 마찬가지이더라 말이죠
목사놈들은 더더욱 어떤 성경 구절의 의미를 알아서 기쁘게 여기면
이 놈의 목사들은 그것을 막 시기해요 글쎄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모양이라 ㅋㅋㅋ
지들은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공부해서 그 긴 시간을 투자해서 겨우 겨우 알아냈는데
머리도 나쁜 놈이 아주 쉽게 낼름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언 듯이 낼림 알아버리니
실제로 그래요 지금 얼마나 목사들 공부해도 공부해도 엉터리 공부에 빠져서 바른길 가고 싶어도
이 놈의 신학들이 얼마나 느릿 느릿 합니까
죄악은 더 깊어가는데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겟냐 말이죠
그런데 교히나 신학이 이런 죄악의 깊이에 못 따라가니
이건 뭐 탕자 새끼 하나 와서 그냥 딸랑 30분 일하고 품삯 하루 일당치 다 받아가버리면
이건 뭐 때려죽이고 싶지 않냐 말이죠
그 카이 교회야 말로 행함이 집합체 복수심의 집합체 누가 크냐 싸움 밖에 없는 정치판
벌써 쫓겨나고도 남았는데 다 누리게 해 주시니 부족함이 없으니
죽일 듯이 미워해요 글쎄
아 더 빨리 주님 품에 가게 되면 저들은 아마 미쳐버릴겁니다 ㅋㅋㅋㅋ
어머니 말 마따나 빨리 데려가 주이소
아무튼 주님이 먼저 인데
주님이 먼저 있음을 말하는 교회를 목사를 본적이 없어요
막상 격어 보면
자기를 자꾸 알아달라고 징징 거려요
제발 자기를 믿어 달라고 얼마나 징징 거리는지
무시하면 바로 보복 미사일 핵탄두 레이져 눈 빔이 막 날라오죠
얼른 도망쳐야죠
다들 목사 눈치 보며 사는 놈들 뿐이지
그렇게 성화되었다고 하는 놈들도 말이죠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아내로써의 교회는 없고
다들 서로 서로가 계집종 하갈 땅의 계집종 하녀 가정부로써
그냥 서로 서로 월글 주고 받고 돈으로만 맺어지자
딴거로 맺어지면 안돼 라고 다짐의 다짐의 다집을 하는
반드시 보험 꼭 챙겨주고 ㅋㅋㅋㅋㅋ
내 죽으면 내 가족 누가 챙겨주냐고
여기도 징징 저기도 징징
신명기 보다 로마서 곧 예수님이 먼저 있었고
교회 보다
율법 보다
선지자 보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의 나라 그냥 나라가 아닌 단 하루 만에
인간들이 예수님 나라 세우겠다 라는 꼬라지는 느릿 느릿 46년 동안 해도 미완공인
그래서 아예 인간의 손에 짓지 않은 성전으로써 성령의 전인 교회를
바로 우리를 세우니까
이 가짜들이 이 참된 주의 피로 세운 교회를 가짜교회가 무너뜨릴려고 발악을 해요
유땡민 같은 저런 가짜 정의 가짜 공의를 세우는 자들이 말이죠
아니 그런 자들이 무슨 정의나 공의가 단 하나라도 있더냐 말이죠
다들 허사를 경영하는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을 대조하니까 남의 눈의 대들보 떼낸다고 자기 눈의 기둥을 못 빼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먼저 나신 이를 대조하면
그래야 미친 놈 소리 듣는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는 비유 비밀을 외칠 것 아닙니까
그들은 비밀 안에 못 들어옵니다
거짓 인도자 이니까 들을 필요가 없다 말이죠
둘다 똑같은 놈들끼리 서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 뿐이다 말이죠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느릿 느릿 겨우 민주주의 한 번 해 보겠다 라고 당선 되어서 할라 칼라 칼라 칼라 하는 순간
주님께서 행성 보내 지구를 종말 때리면 ㅋㅋㅋㅋ
아직도 기억 납니다
어릴적 일요일 아침에 느긋하고 나른한 12시 가까워지면 외화 외국 영화를 하는데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런데 하도 특이해서 각인이 된게 뭔고 하니
천주교 사제 신부가 골프를 좋아라 하다 보니
골프를 칠려고 하니까 마침 비가 와서
비 그칠 때 까지 기다리는데
마침 기다린 보람이 있게 비가 그쳐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드디어 칠려고 하는데 또 비가 오더라 말이죠 지나가는 비라서 또 기다렸지요
그렇게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시간도 되고 해서 말이죠
아직은 남았는지 몇 번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이제 다 지나갔겠지 라고 드디어 마지막이다 싶어서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막 칠려는 순간 또 비가 오니까
그 신부 사제가 그것도 나이 많은 늙은 신부다 말이죠
도자히 못 참아서 참다 참다 못 참아서 골프채를 듣고 하늘에 삿대질을 하는데
어라 갑자기 번개가 쳐 버리니까 그 신부를 날려 버리니
그 자리에서 없어져 버렸다 말이죠
방금 내려 꽂은 번재로 인해 금방 타다 꺼져버린 연기만 조금 날리고 바닥만 작은 동그라미로 검게 타버린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는냥 말이죠
그것을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쯤 이사 오기 전이니까 3 학년 4학년 때 봤으니까
뭐 저런 지겨운 영화가 다 있나 싶어서 아마 가족 중 누가 보고 있는 것
들락 날락 하다가 저 혼자 그 장면을 보게 되었지 싶은
그 마지막 장면에 갑자기 머리가 쭈뼛 쭈뼛 소름이 쫘악 올라오더라 말이죠
번개가 쳐서 사람이 날라가버린 그 장면은 금방 지나가서 그때도 안면인식 장애라 전자기기는 좀 나았지만 작은 티비 때라 잘 안느껴졌는데
뭐가 무서웠느냐 하면
그 신부가 그렇게 천사처럼 참고 참고 또 감사하고 감사하고 부드러운 모습과 인자한 모습 온갖 광명한 천사 모습을 해 놓고서는
갑자기 화를 낼 때 그 모습
그야말로 화가 끝까지 나서 왜 살인자가 사람을 죽일때에 온 얼굴을 다 있는대로 다 펴서 얼려서 살인하는 장면처럼 하늘에 골프채를 삿대질 하면서
하나님 까불면 죽어 라고 외치는냥 거의 대사도 없어욧
그 화내는 모습으로 팔을 올렸다 내렸다 삿대질 하는
그런데 제가 만나본 목사들 놈들 안 그러는 놈이 없을 정도로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하더라 말이죠
아니 처음부터 참지를 말던가
아니 저거들이 잘못한 것을 내 한테 뒤집워 씌우면서
아니 그래 율법 네 배나 갚으세요 라고 부들 부들 천사처럼 이이갸 하겠습니까?
화를 내면서 골프채 들고 하늘에 삿대질 처음에는 골프복처럼 온통 하얀 옷 하얀 바지라서 신부 사체인줄 몰랐는데
목에 로만 칼라 그것만 달라서 신부인줄 그것도 로만 칼라 이게 뭔지 모를때인데도 그게 기억이 난 것 보니 얼마나 각인이 되었는지
그 천사가 한 순간에 악마로 ㅋㅋㅋㅋ
결국 그 동안 목회 한 것 뭐냐 말이죠 사제도 목회 라고 표현 하나요? 봉헌 이라고 하남~~~~
결국 인간들이 하는 모든 예배 찬양 기도 이거 딱 하나로 결론 지어집니다
하나님 까불면 너 죽을줄 알아
우와 이거 명언입니다
다른 메시지가 인간들 교역자에게서 나온 적이 없어요
그래서 신명기가 율법이 모세 언약이 먼저 되면 큰일 납니다
그림자가 먼저 있으면 큰일 나요
결국 그림자만 섬긴 자들은 실체 되신 예수님을 죽일 수 박에 없어요
그림자만 섬겨왔기에
실상이 오면 미워 죽어요
야들아 내가 이 그림자의 실상이란다 라고 하니까
자꾸 인간들이 유대인들이 오늘날 교회사람들이 꺼져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의 영을 받은 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꺼져
바로 너희들이 꺼져 라고 외친 그 분은
사도바울은 신명기 끝 부분은
반대로 인간 꺼져 라고 하고
인간들이 꺼져 라고 했던 그 버림받은 분을 반대로 집어넣고
행함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말씀은 행함이라는 인간과 붙이는게 아니라 그건 그림자 이고
반대로 그림자로 꺼져 라고 취급받았던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은 주의 자리에
이 믿음을 앉히시고 행해서 이룬게 아니라 믿음 자체가 이룬채로 내려오셨기에
10달 배아파서 낳은게 아니라
하루 만에 아픔 없이 다 이룬채로 믿음이 먼저 있었기에
보라 이 새일을 다 이루었다 라고
이게 성경 구절 있어요
이사야 마지막 부분 66절 이전 65잘 이지 싶은데
즉 하나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가 아니면
그 어떤 인간의 완벽하게 갖춘 제물 제사 라 하여도
주님은 돼지 부정한 우상숭배의 제사상으로 취급하겠다 라고
두 언약으로 대조해 한 세트로 보시는 겁니다
(사 65:4, 개역)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 66:3, 개역)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사 66:17, 개역)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즉 십자가라는 화목제 아니면
남은자 아니면 모조리 다 소돔과 고모라 이듯이
화목제 아니면 모조리 다 우상숭배의 제사로 보신다
미완료만 반복하고 결피을 채울려는 버밸론 여자들의 바알숭배와 같이 보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돼지로 검색하니까 저렇게 나오고
단 하루 만에 로 검색하면
(사 66:8, 개역)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캬 드디어 다시 봅니다 이 말씀
아 구로치 못한 자여
잉태치 못한 자여 라고 저는 불임여성으로만 봤는데
그게 아니라 상대적이니까 대조되는 저쪽이 순픙임신여인이라면 그런데
그것 뿐만 아니라
구로 하기도 전에 하루 만에 퍼뜩 나와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급하다 말이죠
그렇게 낳은 자식이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10달 만에 아니 10가지 재앙 만에 나왔는데
어라 이스라엘 본인들이 애굽이 되어버렸네
그래서 갈아엎어버리고 이스라엘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새로 갱신하고 인간들은 모조리 탈락 시키고 새이스라엘 개념으로써
이제는 10가지 재앙도 필요없이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키는 주틀이 되고 그 붕어빵 주틀에 하루 만에 새로운 민족이 생기는
그카이 개같은 이방인이 애굽이 된 이스라엘 앞에서 하루만에 막 태어나니까
우물가의 여인처럼
불의한 청지가처럼
탕자처럼
귀신들린 딸의 어미처럼
매국노 세리처럼
한쪽 강도처럼
마구 마구 하루 만에 예수님 만나자 마자 막 태어나는
예수님 따라 부활의 첫열매 뒤로 줄줄이 소세지처럼
단 하루 만에 말이죠
과거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규격화 되고 그런거 없어요 주님이 규격 그 자체가 돈 채로 다 이루셨기에
333 333 333 333 동서남북 열 맞추어서 사열대 의식 훈련
이것을 제식 훈련이라고 허지요 오래 지났지만 동원예비군 훈련 4박 5일 동안 아니
제식 훈련만 하다가 끝났다 말이죠 그것도 앞에 눈에 띄이는 자들만 고생이고 뒤에 보이지도 않는 자들은 썰렁 썰렁
아니 왜 이것만 하지? 내가 동원예비군 맞이할때에는 이 놈들 기여이 보금창고 문 따서 총검을 훔치는 바람에 생고생 했는데 행정병이라서 말이죠
후방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열 맞추고 뭐 그런거 없어요
주님이 이미 다 이룬채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그런 눈도창 하나 필요 없이
관종될 필요가 없이
완벽한 사랑의 시스템
오죽하면 7에 70번의 용서이겠습니까?
이게 333 333 333 333 14만 4천 이라는 동서남북 온 우주에까지
부족함 없이 다 완료된 채로 뻗어있는 화목제의 왼성의 완료의 영광성인 반면에
상대적인 짐슴은 사람의 수가 6이 아무리 꽉꽉 그 빈칸을 세 번 채우고 채우고 채워도
모잘라 모잘하 함량 미달 무게가 안 차는 겁니다
의가 모자르다 라는 거지요
정의로 의 곧 거룩도
즉 애초부터 없었다 라는 겁니다
저들은 애초부터 없었던 자리에서 주님 홀로 꽉꽉 채운 그 주님의 보혈의 피로 거룩을 채우심에
아무거소 한 것이 없이 이 십자가의 화목제에 복종했을 뿐이고
복종했으니까 행한거 아니냐가 아니라
주님이 일방적으로 편파편애 무시험 합격
시험 친적도 없는데 합격
일방적으로 퍼 부어버렸고
반대로 함량미달은 그 밑빠진 독에 아무리 넣고 넣고 넣다가 다 소진이 되니까
하늘의 여신에게 바치지 않아서 망했다 라고
계속래서 이젠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서 잔칫집 유지하겠노라고 등쳐 먹는
결국 풍요했다가 가난해져서 망한게 아니라
애초부터 없는 나를 채워버렸기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리가 없었던 처음부터 쭉정이 바람에 나는 겨 였다 말이죠
그러나 의인 되신 예수님이 이 심판을 이 죽음을 통과하심으로써
홍해를 건넌 그 그림자 그 이스라엘의 실상
아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구나 이 실상으로
이제 우리가 실패하던 성공하던 상관 없이
이미 다 이룬채로 주님 가신 길에 동참하고 동행할 뿐
누가 성공했니 누가 실패했니는 아무런 의미 없고
이미 주님이 넉넉히 이겨버린 이 사랑 안에서
뭐든지 누리는 겁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바로 이것이 믿음의 말씀이 먼저 떳기에
그 완료를 우리는 증상으로써 누리는 겁니다
인간의 행함에서 나오는 믿음인 복수심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이 용서했냐 너는 6번? 나는 7번 이런 복수심이 아니라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께서 나 보다 먼저 있었던 죄를
나 보다 먼저 계신 주님이
또 그런 죄 보다 먼저 게신 주님의 약속이 사랑이
먼저 있었기에
넉넉히 이김이요 부족함 없음이지
그 주님의 숙제를 주서 먹기도 바쁜데
줘도 못 먹는
내 숙제에 이제 미련 떨쳐버리고
이 다 이룬 완료의 믿음나
나 보다 먼저 되신 믿음만 외치시면 됩니다
저들이 아무리 부요해봤자 다 약탈한 것이요 후 불면 다 날라가지만
주님은 미쁘시사 든든한 바위라고 견고함 흔들리지 않습니다
송명희 작사로 제가 작곡한 노래
다들 비웃었지만
또 어떤 교회에서는 또 너무 지나치게 좋아라 해서 양가적인 반응에 아주 아주 낯설으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얼마든지 나는 변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나니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 힘입어 나도 변치 않으리라
얼마든지 나는 변할수 있어도 얼마든지 나는 거짓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은 거짓 모르시 나니 하나님의 진실하힘을 덧 입어 나도 진실 원하리라
우와 30년 만에 1절 가사 겨우 그것도 생각이 나넹 ㅋㅋㅋ
딱 두 곡 지었지요 왕이신 하나님 송축하라 시편 145편과
얼마든지 송명희 시를 허락도 안 받고 그 20대 때에 뭘알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좋아서 막 한 것 뿐이지요
그냥 신나게 주님의 용서를 누리기 바빴을 뿐인데 말이죠
그걸 또 시기하는 놈들은 늘 눈에서 레이져를 쏘기 바빳고요 ㅋㅋㅋㅋㅋ
바로 이 완료
다 이루심
부족한 없으신
이 믿음의 말씀을 바울은 신명기 보다 로마서가 먼저 있었다 라고
저 미완료 그림자 보다
(그렇다고 구약 그림자 버리자가 아니라
율법을 몰라도 되는 이방인을 율법을 알게 하시는 이유는 율법 지키라고 하고자 함이 아니라
저들의 넘어짐으로 빈자리가 생겼을 뿐 잘나서가 아님을 오히러 주님의 그 사랑의 높이 깊이 넓이 길이는 심판의 자리에서 더 누릴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말이죠
(롬 11:12, 개역)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4:4, 킹흠정) 다른 사람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의 서거나 넘어짐이 그의 주인에게 달려 있은즉 참으로 그가 세워지리니 하나님은 능히 그를 서게 하실 수 있느니라.
악인 의인 언제든지 팔을 어긋맞게 하실수 있다 그러니 토기장이 비유는 그 누구도 예외가 될수 없는 반발성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유 비밀이지 오늘 내가 비일 속에 들어갔다고 내일 비밀 속에 들어갈 보장이 없다 말이죠 내 위주는 애초부터 없었다니깐 유대인처럼 선줄로 알면 언제든지 넘어질까 조심 그러니 원가지도 안 아끼는 판국에 죽은가지 접붙인 가지 언제든지 버릴수도 있다 말이죠 그러니 내 좋으라고 주어지는 것 하나도 없다는 거죠 모든게 주님 좋으라고 그 주님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겁니다)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완료인 실체가 먼저 있었음을 유대인들에게 맞아 죽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넉넉히 누리면서 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