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찬양을 받아내는 하나님의 일
엽기적인 신부
사람의 일과 마귀의 찬양을 받아내는 하나님의 일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오후 3:12:57 김대식
(출 14:4, 개역)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보통 찬양이라는 것이 자신의 기쁨을 토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방금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가지고
다시 정립할려고 한다.
찬양이란 배 아파서 나오는 것이다.
또 무슨 소리를 할려고 저러나 싶겠지만
사실이다.
어머니에게 강이아빠에게 했던 이야기를 했다.
솔로몬왕이 술람미 여인을 자신의 특이성을 심어서
왕비로 만들어 버리니
다들 배 아파 죽는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찬양이다. 합창이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얼마나 배가 아픈지
우리가 여자로써 여자 취급도 안했던 여자가 왕비가 되었네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차이는 이것이다.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금 출애굽기를 보는데 사람의 하나님 이라고 했다 라고
그래서 지금 검색해 보니
(출 3:18, 개역)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
(출 7:16, 개역)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출 9:1,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 9:13,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 10:3, 개역)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치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이다 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거 검색하기 전에 이렇게 설명했다.
아닙니다. 사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짜 하나님입니다.
얼굴이 동그랗게 또 너 딴 소리 하네 내가 방금 분명히 봤는데
볼래 볼래 출애굽기에서 내가 분명히 봤다.
네네 봤겠지요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방금 어무이 말대로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캐놓고
그 사람을 하나님 본인이 억수로 만들어 놓고
그런 사람을 쫘악 깔아 놓고
또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케 해 놓고서는
하나님 자신이 사람으로 그 쫘악 깔아놓은 사람 속에 집어 넣습니다.
숨어서 온 겁니다.
마치 모래 억수로 깔아 놓고 하나님 자신이 한 알갱이의 모래로 숨어 온 겁니다.
그래놓고 사람들이 사람의 하나님 이라고 말할 때 마다
아니거든
나는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거든
이라고 말 합니다.
참 나 웃기죠.
그럼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면 뭔데?
약속의 하나님 여호와 이거든
바로 여기서 애굽 왕 바로가 여호와가 누구관대?
라는 것이 튀어 나오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여호와든 예수님이든
마귀를 거쳐서 언급해 보라는 겁니다.
언약이란 곧 약속이란 비언약과 언약의 차이성과 분리성을 담고서 증거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를 거쳐서 예수님을 언급하고
비언약을 거쳐서 언약을 보라는 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신의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안 보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니까 자신의 선택권에 의해
버릴 수도 있고, 찾을 수도 있고
가로 막아서 예수님이 죽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막아서는 겁니다.
그것이 전부 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사탄아 라고 합니다.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뭔데요
바로 너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마귀로부터 영광을 받는 일입니다.
받으실려면 인간으로부터 받아야지 왜 마귀로부터 받으실려고 합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거든
그래서 마귀 보란 듯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
그런데 마귀도 못 보는 주제에
마귀도 못 막는 주제에
꼴에 예수님은 자신의 눈에 보이니
안 막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일이다.
왜 이 이야기를 했는고 하니
성경에 자꾸 하라 하지마라 라는 명령어가 나오니까
인간은 자꾸 개입 할려고 한다.
그래 좋다. 개입한다 치자
그렇다면 문자를 읽을 줄 알고
해석할줄 알고
볼줄 알고
행할 줄 아니까 개입 하겠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아니다.
빼버릴려고 하라 하지말라를 언급 하신 것이다.
소외 시킬려는 것이다.
왜 소외 시키는가?
하나님의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이 뭔데?
하라 하지말라
그러니까 하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 아닌가?
아니다.
그것은 마귀 보란 듯이
마귀를 겨냥한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 스스로가 말씀을 이루는 식이 하라 하지말라 이다.
마귀 보란 듯이
그런데 인간이 덮썩 물어버린다.
괜히 물었어 괜히 물었어 어떻게 어떻게
뾰로롱
빼버리면 됩니다.
삭제 시키면 된다.
누구냐 너? 그 영화 뭐였더라?
아 올드맨 맞나? 특이한 음악
근친상간을 다루었다 라면 인간은 도저히 넘어설수 없는 종 땡 쳐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아주 간단하게 최면으로 ? 암시로? 과거를 삭제 시켜 버린다.
괜히 심각했던 것이다.
자기 스스로는 못 지운다.
외부의 돕는자 이다.
그 외부란 나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상대적인 적을 의식 해서이다.
얼마나 간단하지 않은가?
참 쉽 죠 잉?~~~~~~~~~~~
인간은 마귀를 볼 수도
마귀에 대해서도 알 수도
마귀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전혀 모른다.
그런데 말씀은 보인다.
이 말씀이 자신을 겨냥하는 줄 착각한다.
말씀을 보고 읽고 듣고
해석하고
큐티하고
실천하고
행하고
감사하고
그러나 다 땡 틀렸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그래서
인간에게 말씀으로 읽혀짐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에게 말씀으로 보여짐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에게 말씀으로 듣겨짐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도리어
마귀를 보고
마귀를 읽고
마귀 발자취만을 듣고 실행 하신다.
이것이 말씀이다.
말씀은 마귀 잡을려고 주어진 것이다.
이런식으로 예수님 자신의 숙제를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로부터 반드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애굽왕과 애굽 군사로 인해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
마귀와 마귀새끼로부터 찬양 받으시는 하나님
아이고 배 아파 라는 소리 기여이 듣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그런 마귀도 볼 줄도 모르면서
예수님은 당장 눈에 보인다고
십자가에 죽으시면 안됩니다 라고 덮썩 붙잡아 버리니
사탄아 소리 들을만 한 것이다.
너가 사람의 일만 생각 하는 구나
하나님의 일은 전혀 생각지 않는구나
솔로몬 왕이 자신의 특이성을 술람미 여인에게 심어서
단순히 왕비 삼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못생긴 왕비를
쭉쭉 빵빵 S 라인 동네여인들에게,
그동안 술람미 여인을 무시했던
큰 가슴의 여인들에게
내 여자 이쁘지 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자랑 한다.
문제는 그 자랑이 맞다.
이뻐서 이쁜 것이 아니라
사랑 받으니 얼마나 이쁜지?
초코렛 복근 백트럭 갖다줘도
왕의 여자가 못 된 이상
배아파 죽는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이 아이고 배야 배 아파 죽겠네 라는 찬양을 반드시 받아 내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니까
애굽 왕의 손으로부터 구원 받았다고 그렇게 찬양을 외쳐댔던 모세 누나 미리암이
찬양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줄려고
방금 한 입으로 했던 찬양을
다시 그 한 입에서 시기와 저주가 나오도록 하신다.
(약 3:10, 개역)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렘 9:8, 개역)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도다』
(시 28:3, 개역)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이것은 인간의 찬양도 안 받고 인간의 찬양은 그저 사람의 일 뿐이고
바로 한 입에서 두 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추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으로부터 지적 받는 것이지
마귀로부터 말씀을 쥔 마귀로부터 송사 받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지적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
주님으로부터 굴욕 당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왜? 왜? 사생아가 아니요
또 가장 중요한 것? 마귀 보란 듯이 때문이다.
주님은 마귀만 의식 하신다.
그래서 모든 말씀은 마귀 보란 듯이 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해 놓고서도 방금 좀전에 말해 놓고서도
무슨 의미 인줄 모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위해
물 위에서 말했던 것을 본인도 모르니
물 속에 빠뜨려서 굴욕을 당함으로써 그 차이 곧 분리 곧 거룩을 심으신다.
마귀말로 막을려고 한 것이 왜 사탄인지
왜 사람의 일인지
당해 봐야 아는 것이다.
주님은 마귀 보란 듯이 십자가를 지러 가신 것이다.
마귀도 못 보는 베드로가(물론 안 보여주셨다,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맡기고 빠져야 한다. 소외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이는 이상, 죽으러 가겠다 라고 귀로 듣겨 버린 이상, 그리고 실제로 죽을려는 분위기가 쫘악 깔려버린 이상. 절대로 소외 되면 안된다. 기여이 붙잡아야 한다. 붙잡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이 사람의 일이 와장창창 깨어지는 것이다.)
붙잡아야 한다는 자아의 의식이 강하지
마귀 생각 할 틈이 어디있겠는가?
그래서 소외는커녕 자꾸 개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소외 시켜야 한다.
동시에 마귀를 개입 시켜서 반드시 영광 받으셔야 한다.
바쁘다 바빠
베드로 인간은 눈에 보이니 자꾸 개입할려고 할 때 소외 시켜야 하고
반대로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자꾸 숨어서 사람들을 속이니
그 빠져 있다고 여겨지는 마귀는 자꾸 개입 시켜서 마귀 보란 듯이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것이다.
양발 차기 참 바쁘시다.
술람미 여인 왕비 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찬양을 받아 내고야 마는 것이다. 아이고 배 아파
구스 여인을 아내로 삼는 긍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긍휼이 긍휼 값을 하기 위해
반드시 찬양을 받아내는데
바로 진노의 그릇들의 울부짖음이다.
그럴 수는 없도다 라는 반발성을 받아 냈다면
일을 참 제대로 한 것이다.
마귀가 시기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일을 제대로 한 게 아니다.
마귀가 안색을 붉혔다면 그것이야 말로 일을 제대로 한 것이다.
그냥 제사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더 나은 제사야 말로
제사 드린 본인이 안색이 변하게 하는
참 제대로 된 제사 이다.
흉내 불가 이기 때문이다.
아벨의 제사는 어떤 누구도 흉내 불가 이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지나개나 소나 줘 버릴 수도 있는
누구나 가능한 제사 이다.
구스 여인이 참 모세의 긍휼 다운 이유는
그것을 시기 하는 자가 나타났기에
참 제대로 된 긍휼 곧 완료이다.
행함이란 자신이 행하고서도 자신의 행한 것을 안 쳐다 볼 수 있는 것이 행함이다.
그런데 그런 행함은 없다.
그래서 외부에서 행하시고 다 니 했뿌라 라고 자신은 죽어버리는 그 행함만이 믿음이다.
그 행함을 덮침 받은 자들은
반드시 그렇지 못한 자기 행함 보고 자기 행함쳐다보면서 남들도 내 행함 쳐다봐달라고 다가오는 자들로부터
밉상을 받는다.
즉 찬양을 받는다.
아이고 배 아파라 배 아퍼
탕자에게 부어지는 아버지의 사랑은 반드시 맏아들의 저주찬양을 받는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이 얼마나 못때 빠졌는지?
이미 지옥 가버려서
고통 받고 있는데
그 지옥 가 있는 부자를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받고자
찬양을 받고자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또 괴롭힌다.
가지고 농락 한다.
평땅에 있을때에 개도 헌대를 혀로 햩을 정도로 무시 당하는 거지나사로가
천국에서 아브라함 품에 있는 것을
하필이면 부자 땅에서 부요함을 누리던 그 부자의 눈에 띄이게 한다.
도저히 고통 스러워서 물한방울 좀 달라고
거시나사로를 시켜서 달라 라고 하니
얼마나 지옥 간 티가 나는지
그러니까 넌 마땅히 간게 맞다 라는 식으로
이미 지옥에 왔는데 뭘 또 조롱하는지 원 ㅋㅋㅋ
그 지옥 보내신 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찬양을 받는다.
맞군요 맞군요 날 참 제대로 보내셨군요 찬양 합니다 찬양합니다.
보통 성화론자나 개혁주의 외치는 사기꾼들이
또 특히 행함을 외치는 놈들의 주장이
지옥 간자들로부터 찬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한다.
마치 지옥 안 갈거 같은자처럼 말이다.
아니 표정들이 왜 그래요? 지옥 안 갈거 같이 말하시네요?
그러나 이미 지옥 사람이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여전히 땅에 있을 적에 나사로로 보듯이
자기 수하에 부려먹을려는 식이다.
또 그리고 선지자를 보내서 자기 가족 만큼은 여기 오지 않도록 해 달라라고
특별 속보 택배로 선지자를 보내 달라고 한다.
지옥 가고 안 가고를 선지자를 보내면 되고 선지자 안보내면 안되고 라는 식이다.
얼마나 성화론자 다운지
원인 결과를 여전히 인간 개입이다.
마귀 보란 듯이 이루어 지는 하나님의 일을
여전히 마귀 빼버린 사람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지옥 인간 맞는 것이다.
본인이 마귀인줄도 모르고 마귀를 자꾸 빼 버리니
그러니 베드로에게 사탄아 라고 알려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참 다행스로러운 지적인가?
지옥으로 미끄러질뻔 한 것이다.
휴 간담이 서늘 했을 것이다.
때려죽어도 소외는커녕
자아 개입
자기 참여
자기 집어 넣기
자아 자아 자아
끝까지 자기자신을 포기 못하겠다는 것에
주님은 베드로를 휙 빼 버린다.
그리고 마귀를 개입 시킨다.
얼마나 감사한가?
마귀를 개입 시켜서
마귀 보란 듯이 이루어진 십자가다
그래서 십자가는 아무도 못 믿는다.
반대로 십자가가 우리를 구스 여인으로 삼아서
마귀 보란 듯이 찬양을 받아낸다.
아이고 배 아파 배 아파
우리가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다.
이 찬양을 늘 지옥으로부터 듣고 기뻐하는
함께 기뻐하는 자가 신부다.
참 엽기적인 신랑의
참 엽기적인 신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