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가복음 5 : 새 지옥 만들기

김 대식 2010. 9. 6. 10:57

마가복음 5 : 새 지옥 만들기


2010년 9월 5일 일요일 오후 1:23:46   김대식


(막 2:10, 개역)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 1:40, 개역)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막 1:41, 개역)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막 1:42, 개역)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막 1:43, 개역)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막 1:44, 개역)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막 1:45, 개역)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2:1, 개역)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막 2:2, 개역)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막 2:3, 개역)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막 2:4, 개역)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막 2:5, 개역)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6, 개역)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막 2:7, 개역)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8, 개역)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막 2:9, 개역)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막 2:10, 개역)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막 2:11, 개역)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 2:12, 개역)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지옥을 새롭게 깔고서 예수님의 복음은 시작이 됩니다.
없던 지옥도 새로 깔아야
그래야 복음이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이라는 민망스러움을 참혹스럽게도 느낍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감각 합니다.
상대적으로 인간이 감각화 하는 것은
바로 예민할 정도로 예민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예민합니다.

이 믿음에 의해서 유대사회가 좌우 되기에
더더욱 인간의 믿음이란 서열 아닌 서열로써 재고 또 재는 분위기입니다.

서열이 아닌 이유는
그것 마저도 깨는 개혁적인 무리가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입니다.

마귀들입니다.

지금 본문 1장 2장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 바로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은 가만히 멀쩡하게 있을 뿐입니다.

어느 지역이나 문둥병자든 병자든 다들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찍었다는 겁니다.
기적을 베푸는 것에 의한 반응으로써
한 지역을 지목해 버렸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그런 지역으로써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벌리시는 일의 마당터가 된 겁니다.

어떤 마당터?

지옥입니다.

지옥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예수님께서 어떤 누구도 본적 없는 장소로써 만듭니다.
처음 지옥입니다.
처음 지옥을 가시화 시킨 곳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훨씬 가벼운 편이고 가버나움이 더 심하다 라는 겁니다.

(마 10:15,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0:16, 개역)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7, 개역)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8, 개역)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 11:20, 개역)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마 11:21, 개역)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2,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개역)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눅 10:12,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눅 10:1, 개역)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눅 10:2, 개역)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눅 10:3, 개역)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눅 10:4, 개역)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눅 10:5, 개역)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눅 10:6, 개역) 『막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눅 10:7, 개역)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눅 10:8, 개역)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눅 10:9, 개역)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눅 10:10, 개역)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눅 10:11, 개역)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눅 10:12,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눅 10:13, 개역)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눅 10:14, 개역)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눅 10:15,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눅 10:16, 개역)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눅 10:17, 개역)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8,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9, 개역)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20, 개역)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21, 개역)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 10:22,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눅 10:23, 개역)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눅 10: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 10:15, 공동) 『나는 분명히 말한다. 심판 날이 오면 소돔과 고모라 땅이 오히려 그 도시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마 10:15, 현대어)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심판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악한 성이 오히려 그 마을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아니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안하던 행동들이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 갑자가 많이 펼쳐집니다.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적이란
지옥을 지옥 답게 나누고
동시에 천국을 천국답게 나누는 식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전혀 소용없는 기적인 셈이요
예수님 입장에서는 지옥과 천국을 규정하는 기적 곧 나누임,
흔적으로 흡집을 내어서 두 패로 나누이는 갈라짐입니다.
무엇과 무엇의 갈라짐입니까?

지옥과 천국의 갈라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 생전처음으로

지옥이 구체화 되고

그 지옥을 깔고서 천국의 소리를 증거 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 나라인데
없던 지옥을 만들지 않으면
그 지옥을 카페트로 깔고서
등장하는 복음이 무의미 합니다.

무의미 하다고 하니 지옥만드는 것이 무슨 공로가 되느냐 ?
그럼 지옥 만들지 뭐 지옥 되어 주지 뭐 라고 하지만
지옥은 지금 예수님 혼자 그 참혹함과
민망함을 느낍니다.

인간은 그저 병들었을 뿐이고
약먹고 고치는 식
그런 방식 뿐이지만

예수님만은 그것이 그냥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입니다. 참혹스럽기 짝이 없는 살벌한 지옥입니다.

이 살벌한 지옥을 깔고서

살벌한 천국을 증거 합니다.


미완

다시 시작

2010년 9월 7일 화요일 오후 1:59:06


그래서 마가복음을 출애굽기와 연관시켜 보면

멀쩡한 애굽나라를 강퍅케 만듭니다.
물론 그 이전에 요셉을 알지 못한다 라는 새로운 왕을 세움으로써
은혜를 무시하는 상황을 맹글어 놓고서
없던 지옥을 만들 듯이 없던 강퍅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없던 부르짖음을 새로 만듭니다. 기도죠
그리고 그 부르짖음을 유발케 해서
없던 기적이 베풀어 집니다.

자 이것은 마치 창조란 과거의 한번 시작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로만 인간들은 믿음으로 창조의 세계를 잇는다고 신앙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기입니다.

이미 시간적으로 이후에서 믿기 때문에 도리어 믿음으로 복수심을 펼친다고 했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어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겠습니까?
(니고데모와의 대화)
(결국 잉여의 세계가 다시 지금 펼쳐져야 합니다. 마치 여인에게서 아기가 태어나듯 그 아기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말이죠. 그런데 무슨 수로 어린아이와 같이 됩니까? 무슨 수로 창조를 보겠습니까? 무슨 수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또 되어봤자 소용없습니다. 기적이 소용이 없습니다. 나 라는 자아에 대해서 눈떠 버리고, 선악에 대해서 눈떠 버리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백날해도 창조를 대상으로 봐버리면 믿을려고 달려들지, 도리어 창조의 대상인 피조물은 백날해도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언어도 종교도 착문도 다 사기술로써 그져 [하는 척] 해 주는 겁니다.
[믿는 척] 해 주는 겁니다.

제가 영화 평 하나를 올렸지요? 맨 프롬 어스 (The Man from Earth).2007
http://crosslamb.tistory.com/1002

사람들은 거짓을 믿습니다. 허구를 믿습니다. 자기가 투시한 자기믿음을 믿습니다.
거기에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써 예수도 끌어오고 부처도 끌어오고 다 끌어옵니다.
행함을 끌어옵니다. 자신이 믿어주는 공적을 쌓은 대상물을 끌어옵니다. 그것이 학문이 됩니다.

그런데 그 학문을 한순간에 쳐 버리니까 와르르 무너져버립니다. 얼마나 허술한지 반석은커녕 종이조각이였습니다.
어제 피라냐 영화를 보니 그렇게 자기신체를 믿고 마음껏 천국을 누렸는데 얼마나 천국이 허술한지
종이조각처럼 찢어지는 그 육체 쪼가리를 믿고 신처럼 행세하는 것이 웃겼습니다.

그래놓고 하라 하지말라는 지키겠다고? 의문의 증서를 지키겠다고?
지키면 더더욱 의문스러워 져서
그 비밀의 은밀성이 더더욱 감추어지는데?
마귀성이 빨리 들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깊숙이 숨어버리는데?

그래서 그 영화(맨포롬어스)의 주인공 주변인들이 한순간에 자신들의 신념들이 무너지니까
주인공에게 애걸복걸 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 거짓말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 다오


저는
여기서 진리를 봤습니다.

인간이 왜 교회에 오는지?

거짓말 해 다오 라고 오는 겁니다.
목사는 그 대중에게 거짓말 해주면 되는 겁니다.

거짓말 좀 해 다오

이것이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입니다.

평생 거짓으로만 살겠다고

물론 진리를 말해 줘도 소용 없습니다.
원하는 거짓말로 바꿔버릴테니 말이죠.

그래서 반대의 반대로 와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거짓말에
제대로 된 거짓말로 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검은 인자 라고 자주 표현 했습니다.
검은 새카만 인자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인자

아무리 봐도 신학자도 성경박사가 봐도
예수는 마귀의 대왕 바알세불 걸린 귀신들린자 외에는 달리 다른 해석이 나올수 없도록만
오시는 예수님이 저들에게 제대로 된 걸림돌인 예수인 겁니다.

참 희한하지요
원래 거짓말인 인간인데
거짓인 인간인데 (거짓인간)
거짓말을 해 다오 라고 애걸 복걸 요청하는 것이 인간임을 그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

원래 지옥인데
원래 죄 인데

말이죠.

자 출애굽 당시에 애굽을 초토화 시켜서 지옥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마치 한국사람이 북한을 적으로 남한을 아군으로 교육받아서
그 둘로 나누는 방식은 누구든지 다 합니다.

애굽을 초토화 시켜 지옥 만들었으면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은(여기서 이스라엘은 아직 형성이 안됩니다. 이스라엘은 원망 속에서
죽음속에서 지옥속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누구든지 다 알아먹는 애굽 지옥 말고
새로운 지옥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히브리 잡족일 뿐입니다.)
본인들이 원치도 않는 천국을 말해야 합니다.

약속의 나라를 말해야 할 의무가 졸지에 생겨버렸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치 않는 겁니다.
자기가 원치도 않는 숙제 아닌 숙제가 숙제처럼 이스라엘이라는 기능 때문에 생겨버린 겁니다.
본인들은 아직 이스라엘도 아닙니다. 그저 노예입니다.
노예 잡족입니다. 히브리 일 뿐입니다. 노예

그 노예의 자리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십계명 전문에 애굽의 종 애굽의 노예 되었던 애굽의 히브리 였던 너희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접붙임이 시작 됩니다. 마치 애굽의 자궁에서 빼어내어 초토화 시켜서
광야라는 죽은태에 다시 집어넣어서 약속을 쳐다보라고 합니다.

참희한하죠 니고데모에게 말했던 이스라엘이란 이런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선생이면서도 처음출발 자체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자나 목사나 다 모르는 겁니다.
처음도 모르는데 우찌 복음을 믿겠습니까?

또 처음 알려주면 싫어합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하고 거짓말만 해다오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영문 안에 있는 자들은 다 가짜 라는 겁니다.
영문 밖에서 성도를 찾아야 할 판국입니다.
99마리 양은 가짜입니다.
잃어버린 양은 태로 결정 됩니다
어머니가 다릅니다.

그 태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죽은태로 보이는 그 어리석은 태가
진짜 태요
살아있다고 우기는 태가 가짜입니다.

(눅 23:26, 개역)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눅 23:27, 개역)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8, 개역)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30, 개역)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눅 23:31, 개역)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종말의 때 즉 성령이 활동하는 시대에는 이 태가 교체되는 방식입니다.

순풍 태가 지옥이 되고
죽은 태가 천국 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것 까지는 니고데모가 눈치를 채지만
문제는 그 태가 아무리 눈에 들따봐도 니고데모의 눈에는 안 보입니다.
보여주질 않으니 못 보죠
바로 코 앞에 있습니다.
십자가로 가시겠다는 예수님입니다.
봐도 못 봅니다.
줘도 못 먹습니다.
손에 잡아줘도 못 잡습니다.

왜? 손이 마른자입니다 라고 자신이 죄인입니다 라는 것을 모르기에
하라 하지말라를 이용해서 
의에 의를 더할려고
지식에 지식을 더할려고
성경학문에 성경학문을 더할려고 다가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소요 당할려고 하지 않고
그저 대상으로 본 겁니다.
그러니 이용꺼리 밖에 안 됩니다.

자신이 거짓인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이
거짓인 부대에 아무리 담아도 찢어지는 겁니다.

참 어제? 아니지 이틀 전에 오목사님이 참 제대로된 예를 들었습니다.
거룩을 아무리 담아봤자
그 종이푸대는 찢어집니다.
그릇은 깨어집니다.

그래서 부러운 깨진 그릇입니다.
제대로 된 거룩을 만났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안 깨어졌다고 자부하니까 웃끼는 겁니다.
실로암 소경을 보고 비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 보다 못하니까 말이죠.
아무리 봐도 자신들은 선을 소유한 위치자리이고 즉 천국자리이고
실로암소경은 죽은태 곧 악의 위치자리 죄의 자리라고 본 겁니다.

누구 죄이냐 라고 상극의 자리에서 판단한 겁니다.


아니 자꾸 말이 길어지는데 정작 말할려고 하는게 이겁니다.

마가복음과 출애굽기를 통해서
가버나움이라는 장소는 광야 곧 새로운 죽은태로써 새롭게 형성 됩니다.

기적이란 광야에서 그냥 안 줍니다.
반드시 죽음을 거쳐서 줍니다.
죽었구나 라는 자에게만 기적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물 없는 곳
마실 물 있어도 소용없는 일부러 썩은 물로 만들어서 자꾸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록 기적을 베풉니다.

자 여기서 기적이란 자꾸 살아 있다고 여기는
광야이스라엘을 자꾸 죽이는 방식으로 동원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기능 때문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 라는 죽은태를 외치는
약속의 기능을 외치도록 하기 위함인데

인간은 자꾸 믿음
신앙
신념

그 따위 허구를 더욱더 잡습니다.

아니 그 속성이
숨어있던 속성이 다 드러납니다.
씨앗을 뿌리니까 그 땅의 속성이 드러나듯이 말이죠.(씨뿌리는 비유)그러니 때려죽어도 약속의 땅에 그런 인간 배제 시키겠다고
뺑뺑이 돌립니다.

끝까지 나는 죽은 죄인입니다 라고 죽은자로 만들고(이스라엘의 특이성인 잃어버린자)
이 말귀를 못알아먹는 인간은 그래 믿어줄깨 믿어줄깨 고만좀 하자 그만좀 농락하자 라는 식으로 자꾸 믿을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감추는 식 빢에 안되는 겁니다.
정작 죽은자 되면 믿음도 소용없는데

믿는다고 하니까 믿겠다고 하니까 웃끼죠.

결국 [제발! 거짓말이다! 라고 해 다오! 제발! 제발!] 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 비켜 갑니다.
왜 비켜 갈까요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여호와의 믿음으로만 몰아갑니다.
죽음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심은 약속이라는 특이성을 기여이 뽑아내겠다는 겁니다.
거기에 집안의 가장 60만명이 청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여이 자신이 심은 약속이라는 특이성을 뽑아내는데
잃어버렸던 동전을 찾아낸 것은 한 마리 양 이였습니다. 한 드라크마입니다.

가버나움을 새로운 지옥으로 만드는데 있어서
그 지옥을 깔고서 약속 곧 하나님나라가 그 위를 즈려밟고 옵니다.

기적은 죽은자를 찾는 방식입니다.

가버나움은 아무리 기적을 베풀고 눈에 가시적인 실제적인 복된 기적
눈에 잡히는 병고침이 다가와도
죽은자는 없었습니다.
도리어 이용해 먹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돌아갈려고 못갔던 힘만 예수님을 이용해서
다시 건강하다고 보이는 세계에
애굽에 들어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겁니다.

십자가 라는 죽은태에 딱 맞는
특이성
특이한 약속이라는 자식은 없었습니다.

그러든 말든 주님은 이 죽은태 처음자리를 마련하고자 밀어붙입니다.
직행 합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믿음 뿐입니다.


결국 기존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옥은 출애굽기에서는 애굽나라 일테고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로마 일겁니다.
대한제국 초창기는 일체 치하 이기에 일본제국일 테고
지금 한국의 국가적인 적은 북한이며 지금 북한의 상황은 지옥일 겁니다.

그러나 그런 자신들 나름대로의 지옥이 형성 되어 있고
또 상대적인 천국 곧 거룩한 곳, 영역이 설정이 되어 있는 상황에

예수님은 새로운 영역을 버립니다.
새로운 지옥 영역입니다.
새로운 천국 영역입니다.

여기에 모든 인간들은 반발 합니다.
(어제 강이아빠랑 파라냐 영화를 보고난 뒤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무덤 가에 귀신들린 청년이 있는데 그 영역만을 피해가버리면 인간은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고 난뒤에 일이 복잡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귀신들인 자에게서 귀신이 나가면서 이런 소리를 외칩니다. 왜 시간도 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왔냐구 말이죠.
적어도 천상회의에서 계획된 상황은 예정된 상황은 지금 올 시간이 아닌데 말이죠. 이것이 마귀가 시간 마저도 자신이 할당받은 시간 영역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웃끼죠.
주인이 오면 시간이든 뭐든 다 날라갈 판국인데 그게 무슨 주장이 됩니까? 그런데 법 지키라고 예수는 반칙이다 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입다물게 해 버립니다.
그리고 돼지 떼 속에 들어가 버릴 것을 허락 합니다.

문제는 이제 영역의 금기구역의 울타리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 마귀의 사고방식이 돼지축산업으로 경제생활을 하는 동네사람들의 속성으로써 드러납니다.

왜 영역을 쳐 놓았는데 예수 당신은 그 영역을 무너뜨리느냐 라는 겁니다.

인간이 교회에 가는 이유는 이겁니다.
교회 라는 당신의 영역에 가 줄테니
나머지 6일의 나의 공간 나의 시간 나의 범주에는 오지말라 라는 겁니다.

그 서로의 경계선을 넘지 말자 라고

그래서 하라 하지말라를 지키는 겁니다.

그럼 하라 하지말라를 깨 버리고
의문의 증서를 깨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법이 날라가 버리고

반칙 만이 은혜로 자리 잡습니다.

그 반칙이 십자가입니다.

가버나움은 일반 대도시처럼 타락했다 라는 소리를 듣는 동네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일반적인 그런 동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손을 대 버립니다.
인간의 선 과 악의 영역을 구축하여서
선을 소유하고 악의 구역을 피해 버리는 그 자신들이 충분히 실천할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예수님은 그 경계와 금기영역과 사람들이 선을 그어버린 그 주차선을
마음대로 바꿔 버립니다.

아무리 법을 지켜도 주차선 휙 바꿔 버립니다.(오목사님의 예가 아주 적절했습니다. 사건을 격어 보니 알게 된 거죠)

난 지옥 안될꺼야?

소용 없습니다. 기여이 지옥 만들어 버립니다.

죽은 몸 만들어 버립니다.

불뱀 물린 몸 만들어서

그 지옥의 참혹함을

신체 속에서 담아버립니다.


새로운 지옥입니다.

애굽나라가 지옥 아닙니다.
타락한 예루살렘이 지옥 아닙니다.

가버나움 멀쩡한 동네를 새롭게 지옥 만들어 버리듯이

우리 육체를 지옥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 지옥의 참혹성을 민망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그 지옥의 몸을 못 박고자 오신 겁니다.
이것이 짤려버린 메시아 로써 인간의 거짓몸이 요구하는 메시아를 비켜가면서
소용도 없는 기적을 (걸려 넘어지도록 하고)
자신만의 기적으로써 죽은 자를 찾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기적을 베풉니다.


원망 안해야지 소용 없습니다.

그 신체성에 실컷 속아봐라 라고
원망안해야지 카자마자 원망하도록 만들어서(속도록 만들어서)
그 신체 위에 그 원망한 몸을 언약궤 약속궤에 담아 위에 피 뿌립니다.
예수님의 몸이 박힌 십자가에 담아서 두 몸을 교체 시켜버립니다. 다른 몸 맹글어 버립니다.

우리는 가버나움이 소돔 보다 더 악한 지옥과 같은 저주받아 마땅한 동네되는 것을 보고
(멀쩡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함과 같음, 대도 되지도 않았는데 열매 내라고 하니 말이 안되는 불가능성)

바로 그런 죽은육체임을 지적 받는 것이 부러운 복입니다.
그리고 진짜 몸 예수님의 몸으로 교체 당해야 함을 보여주는 다른 몸을 쳐다보라는 취지로써

새 지옥 만들고
새 죄 만들고
새 죄인 만들어 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바닥의 바닥을 치라는 겁니다.

너희가 설정한 죄
지옥
그것도 엉터리이겠지만

새 지옥도 감당 불가
새 죄도 감당 불가
새 죄인 도 감당 불가이면서도

이것 때문에 새 천국
새 의
새 몸을 쳐다보도록 하기 위함임을

그래서 예수님은 마땅히 죽으시러 가야함을

기쁘게 창녀 마리아는 미리 앞당겨 장례식을 치르는 겁니다.

우리는 깨어져야 합니다 기쁘게 깨뜨립니다.

새 몸 , 다른 몸이 있기에 지금 우리끼리 되도 않는 신체로 재고 재는 거짓몸은
깨어져야 한다고 신나게 깨뜨립니다.

새 죄 만든 예수님의 솜씨입니다.

이것을 제자들은 화를 내는 겁니다.

도통 이해 안가죠.

향유를 깨드린 여인은 마치 말라죽은 저주받은 무화과 나무처럼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겁니다. 무엇을? 종말을? 몸의 종말을?
왜? 새 몸 이 떳기에
어떤 몸? 십자가에 죽으러 가실 몸

(막 11:11, 개역)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막 11:12, 개역)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막 11:13, 개역)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막 11:14, 개역)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막 11:15, 개역)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막 11:16, 개역)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막 11:17, 개역)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 11:18, 개역)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막 11:19, 개역)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더라』
(막 11:20, 개역)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막 11:21, 개역)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막 11:22,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막 11:23,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3:4, 개역)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막 13:5,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막 13:6, 개역)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막 13:7, 개역)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막 13:8, 개역)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막 13:9, 개역)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막 13:10, 개역)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막 13:11, 개역)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 13:12, 개역)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막 13:13, 개역)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막 13:14, 개역)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막 13:15, 개역)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막 13:16, 개역)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막 13:17, 개역)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막 13:18, 개역)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막 13:19, 개역)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막 13:20, 개역)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막 13:21, 개역)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막 13:22, 개역)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막 13:23, 개역)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막 13:24, 개역)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막 13:25, 개역)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막 13:26, 개역)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 13:27, 개역)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막 13:28, 개역)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막 13:29, 개역)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막 13:30,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막 13:31, 개역)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 13:32, 개역)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3, 개역)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눅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눅 13: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3,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6, 개역)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눅 13:7, 개역)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눅 13:8, 개역)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눅 13:9, 개역)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제가 위에서 나열한 말씀은 무화과 나무와 연관된 종말의 상황입니다.

종말을 무슨 날씨나?
정치적 환경적? 경제적?
특히 종교적? 신앙적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노골적으로 탁 깨놓고 종말의 영 곧 성령의 활동은

우리 신체를 가지고서 종말을 외치는 겁니다.

그러니 여인은 예수님이라는 진짜 몸 새 몸을 보고
자신은 가짜 몸이니 빨리 교체시켜달라고
자신의 거짓몸을 바닥치는 종말의 특이성의 행동을 하니
제자들이 알길이 없습니다. 윤리적으로 보면 반대행동일 뿐이니 말이죠.
종교적으로 보면 걸림돌 행동 뿐이고
일반지혜의 시각으로 보면 미련하고 어리석음 뿐입니다.

이것이 종말에 상황에 나타나는 종말인간의 특이성입니다.

그러니 반대를 위한 반대, 무조건 반대의 모습 뿐이니까 걸림돌 거치는 실족케 하는 겁니다.

가버나움이 새로운 지옥으로 만들어 지는 것을 보고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도 저렇게 되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할게 아니라.
그 뒤에 오실 새 천국을 아주 아주 낯선 천국을 비로소 생전처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기존의 것으로 끌어모아서 조작한 천국이나? 겁주어 자기들 말에 순종케 할려는 지옥으로 협박하던 그런 조작된 지옥이 아닌

예수님에 의해서 생생하게 처음만난 지옥과 종말을 통해서

제대로 된 교체성
헌부대 새부대의 교체성을 비로소 생전처음 보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땅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가버나움에서 벌리시니
누가 눈치채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다 하셔놓고 이래도 발뺌하겠는가?
라고

말도 안되는 어거지로

어떤 빌미 꺼리도 허용치 않는 겁니다.

전 지옥 본적 없는데요?
전 천국 본적 없는데요?

핑계치 못합니다.

놀랍게도 지금도 이 두 영역은 지금도 펼쳐집니다.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 저주를 보고 우리는 배울 기회를 얻게 된 겁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몰래 벌려놓고 가버린 그 상황이
우리에게도 실제로 눈에 펼쳐진 기회를 얻었습니다.

반칙 뿐인 사랑이 우리를 지적해 줍니다.
법에서 손 때라고

즉 법 만 찾는 그 신체 포기하라 라는 겁니다.

그리고 비록 불뱀 물린 몸이지만
법 안 쳐다보고
대신 나무에 달리신 신체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 그래서 우리는 불뱀에게 물려야만 했던 겁니다.

그것도 광야에서 말이죠.
그것도 원망 하기 싫어도 원망 할 수밖에 없는 신체임을 지적 받으면서 말이죠.

가버나움이 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왜 애곡하여도 울지않는 동네임을

그것도 기적을 퍼부었으면서도 이런 지적을 하시는 겁니까?


너희는 망대 무너져 죽은 사람 보다 나은줄 아느냐?

그 다음 차례 너거 차례다 라는 겁니다.

창녀 마리아는 향유를 깨뜨리면서 저 몸이 진짜다
우리 몸 향유병 깨어지듯이 깨어져야만 한다는 겁니다.

미래 완료가 덮쳐졌기에
더 이상 이 몸에 이 가짜 몸에 기대하지 말자 라고
여인은 외친 겁니다.

저 몸 갈아 타자 라는 겁니다.

아들만이 받는 징계
우리는 이 지옥(죄)을 새로 만드시는 주님을 통해서
(새 지옥, 새 죄를 새롭게 만드시는 수고와 섬기심 때문에)
주님이 왜 지옥으로 인해 상한심령이 되셨는지
그 상한심령을 새 지옥을 만드시는 주님을 통해서
그 몸
그 새 몸
그 상하게 된 몸을 미리 격어 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