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만에 구원, 그리고 말도 안되는 지옥

 


1초가 없어서 지옥에 간 사람이 있고

또 반대편에는 단 1초만에 구원 되는 자가 있다.

 

정말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말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십자가 상의 두 강도와 그 둘 사이의 예수님 때문이다.

 

물론 교회사람들도 거부하는 구원이다.

듣기 싫어하는 구원이 있다.

불편하기 떄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사람은 이 [1초만에 구원][구원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외친다.

복음의 정수다.

 

더 쪼갤까? 0.003??

 

뇌가 인식하기 전에 이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0.003초 라나?

 

어떤 이는 롯(아브라함 조카)도 구원이 되냐고 질문해 온다.

아무리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어도 소용이 없다.

 

얼마나 불가능한 구원이였으면

교회가 거부하는 구원이니, 부끄러운 구원이니 할 정도이다.

 

누구 덕분에 하루 종일 영원이라는 시간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정작 영원함이라는 시간 보다

지옥은 단 1초가 없어서 지옥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마치 지옥은 단 한 방울의 물이 없어서 지옥이듯이 말이다.

 

(16:20, 개역)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16:21, 개역)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6:22, 개역)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16:23, 개역)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6:24, 개역)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16:25, 개역)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16:26, 개역)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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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인식하는 바람에 부분이 아닌 전체를 탐하기 시작한다.

곧 영원이다.

 

영생의 영원한 불멸성을 작은 부분의 시간을 맛봄으로써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집착케 된다.

 

그러나 정작 영원함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단 1초 속에 다 있다.

 

영원함을 탐해도, 1초를 탐하는 사람이 없듯이

 

1초만을 소망하는 자도 없다.

 

이미 1초는 아쉽게도 벌써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생각할 틈도 주지 않는

영원이라는 불가능성 보다 더 불가능함이다.

 

영원 보다 더 영원함을 보여준다.

 

도저히 잡을 수 없도록 말이다.

 

1

 

오늘 밤!! 단 1초만에 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2, 개역)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 23:43,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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