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 먹고 마시는게 아닌 하나님 나라 (롬 14;17-21)
사랑으로 행치 아니한 형제판단 (롬 14;10-16)
로마서 2022 2026. 8. 21. 21:22
22-081 사랑으로 행치 아니한 형제판단 (롬 14;10-16)
〈로마서 14;17-21, 개역한글, 신약성경 259쪽〉
(롬 14:17, 개역)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 14:18, 개역)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롬 14:19, 개역)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 14:20, 개역)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롬 14:21, 개역)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롬 14:17, 새번역)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롬 14:18, 새번역)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롬 14:19, 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씁시다.
(롬 14:20, 새번역) ㉨하나님이 이룩해 놓으신 것을 음식 때문에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먹음으로써 남을 넘어지게 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해롭습니다. / ㉨그, '하나님의 작품'. 곧 교회 공동체를 가리킴
(롬 14:21, 새번역) 고기를 먹는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그 밖에 무엇이든지, ㉩형제나 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그, '형제'
먼저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합니다
아니 이건 당연한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당연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지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데 있어서
이 먹고 마시는 문제가 가장 먼저 부딧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앞의 구절에서 먹고 마시는 문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네 맞아요 돈 문제죠
경제 문제 떡을 먹는 문제입니다
마귀가 첫 번째 시험으로 예수님에게
메시아가 맞다면 돌을 떡 덩어리 만들어서 경제문제 해결 하라 라는 겁니다
둘째는 종교문제이지요 남들은 다 버려도 나는 예수님을 절대로 안 버리겠다
그러니 나만큼은 구원 받게 해 달라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두 발이 상하지 않게 천사를 보내 두 손으로 받쳐서 상하지 않는 사랑받는자로 인정해 달라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
예수님은 도망치시고
물 위를 걸은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저기 풍랑이 일어났다 라고
보자 마자 물에 깔아 앉아 죽게 만드시는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은 정치 문제입니다
온천하 만국을 줄테니 내게 절하라
가룟유다가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안된다 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팔아 버립니다
빌라도가 너는 유대인의 왕 아니냐
맞다 유대인의 왕 맞다
그런데 너의 백성은 너를 죽일려고 하는 구나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않았고 만약 속했다면 내 나라 백성이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요 18:31, 개역)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요 18:32, 개역)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 18:33, 개역)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요 18:3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요 18:35, 개역)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7, 개역)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요 18:38, 개역)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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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재판에서 몇번씩이나 오락가락 했는지 재판과정은?
AI 개요
복음서에 기록된 빌라도의 재판 과정을 보면,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공회의 압박과 폭동 우려 때문에 공식적으로만 최소 3번 이상 무죄를 선언하며 석방하려다 결국 사형 판결을 내리는 등 극심하게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오락가락했던 재판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차 심문과 첫 번째 무죄 선언 (관정 안팎을 오락가락)
상황: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반역죄(자칭 왕)로 고발하며 빌라도에게 데려왔습니다. 유대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이방인의 관정(재판정) 안에 들어가지 않았고, 빌라도는 관정 안에서 예수를 심문한 뒤 밖으로 나와 유대인들과 협상하는 등 장소부터 안팎을 분주하게 오락가락했습니다.
결과: 빌라도는 예수와 대화한 후 정치적 반란의 의도가 없음을 간파하고 관정 밖으로 나가 유대인들에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노라" 하며 첫 번째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2. 책임 회피를 위한 '헤롯 안티파스'에게 이송
상황: 유대인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당시 예루살렘에 와 있던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재판 책임을 떠넘기며 예수를 보냈습니다.
결과: 하지만 헤롯 역시 예수에게서 별다른 혐의를 찾지 못하고 조롱만 한 뒤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빌라도의 꼼수가 실패한 것입니다.
3. 유월절 특사와 채찍질 타협 (두 번째, 세 번째 무죄 선언)
상황: 예수를 다시 돌려받은 빌라도는 어떻게든 처형만은 면하게 하려고 꼼수를 씁니다. 명절 특사 제도를 이용해 흉악범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풀어줄지 군중에게 묻습니다.
결과: 군중들이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폭동을 일으킬 듯 소리치자, 빌라도는 또다시 두 번째, 세 번째로 "그는 죽일 죄를 짓지 않았다"고 무죄를 선언합니다. 그러고는 군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죄가 없다면서도 예수에게 참혹한 채찍질을 가하고 가시관을 씌우는 모순된 행동을 합니다. 피투성이가 된 예수를 보여주면 군중이 동정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한 나약한 타협안이었습니다.
4. 권력 위협 앞에서의 최종 굴복 (손 씻기 쇼)
상황: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습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가이사(로마 황제)의 충신이 아닙니다"라며 빌라도를 정치적으로 압박했습니다. 당시 황제의 신임이 두텁지 못했던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나 로마 정부에 보고될까 봐 극도로 두려워졌습니다.
결과: 결국 자신의 안위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저버리고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합니다. 그러면서도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해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며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하고 오락가락하는 태도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1] [2] [3] [4]
즉, 빌라도는 재판 내내 "예수의 무죄(양심)"와 "유대인 군중의 압박(정치적 안위)" 사이에서 무려 3번 이상 석방을 시도하며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법적인 사형을 집행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1] [2] [3]
빌라도 재판 과정 중 특정 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에만 기록된 세부 사건이나, 빌라도가 고민했던 로마법상의 구체적인 배경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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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11, 개역)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눅 23:12, 개역)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빌라도 헤롯 원수지간인 헤롯은 유대인인가?
AI 개요
헤롯은 혈통적으로 유대인이 아니며,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에돔) 사람입니다. 다만 그의 조상들이 유대교로 강제 개종당했기 때문에, 종교·문화적으로는 명목상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본디오 빌라도 총독과 원수지간이었다가 예수님의 재판을 계기로 친구가 된 인물은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헤롯 안티파스) 분봉왕입니다.
1. 헤롯의 혈통과 신분
혈통적 배경: 헤롯 가문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 즉 이두매(에돔) 혈통입니다.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외국인'에 불과했습니다.
종교적 배경: 과거 하스몬 왕조가 이두매 지역을 정복했을 당시 헤롯의 선조들이 유대교로 강제 개종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종교적으로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증오: 정통성이 없던 헤롯 가문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증축하고 유대교 왕가의 공주와 결혼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펼쳤지만, 평생 유대 백성들에게 배척과 증오를 받았습니다.
2. 빌라도와 원수지간이었던 '헤롯'은 누구인가?
성경(누가복음 23장)에서 빌라도와 적대 관계였다가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연합하게 된 인물은 헤롯 안디바입니다.
원수가 된 이유: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 총독 빌라도와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는 관할권과 정치적 주도권을 두고 늘 갈등했습니다. 특히 빌라도가 성전 안에서 헤롯 관할인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했던 사건 등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친구가 된 계기: 빌라도가 갈릴리 출신인 예수의 처분을 헤롯 안디바에게 미루며 그의 권위를 세워주자, 두 사람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급격히 가까워졌습니다.
헤롯 가문은 성경에 여러 명(헤롯 대왕, 안디바, 아그립바 등) 등장하여 혼동하기 쉽습니다. 혹시 세례 요한을 죽이거나 예수님의 탄생 때 아기들을 학살한 헤롯 등 특정 인물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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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물었을때 예수님은 왜 답을 안 했나
AI 개요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대답하지 않으신 것은, 빌라도가 진리를 진심으로 알려고 한 것이 아니라 냉소적이거나 회의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졌고, 이미 예수님 자신 앞에 진리(그분 자신)가 서 있었음에도 이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신학적 해석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리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 빌라도는 진리를 찾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나 갈급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질문을 던진 후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미 답이 주어짐: 예수님은 직전 대화에서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다"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그분이 곧 진리이셨으므로, 말로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속적 권력관: 빌라도는 힘과 권력이 지배하는 로마적 관점에서 세속적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았습니다. 영적이고 거룩한 진리는 그의 당시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이 내용과 관련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요한복음 18장의 전반적인 재판 배경
빌라도의 정치적 입장과 심리
알고 싶은 부분을 말씀해 주시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AI 답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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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세 번째 시험이 정치적 문제라 좀 길게 적었습니다 검색한 내용이기도 하구요
즉 진리란 인간들의 선악 곧 옳고 그름이라는 재판에서 가려지지 않습니다
초과잉적인 잉여 이기에
이 땅에 속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인간은 그런 진리에 대해서 관심을 둘 수가 없는 겁니다
철학이 진리를 추구한다 라고 하지만
자기의 지혜를 추구하는 자기를 집어넣었기에
남아도는 잉여인 진리가 될 수가 없어서
처세술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은 기적을 바라는데 십자가는 정반대로 기적을 구원을 없애는 방향이니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하나님 나라 회복인 독립운동인데 어라 죽으러 왔으니
자기를 집어넣은 하나님나라 독립운동에 안 맞는 예수님은 가룟유다처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겁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이유인 것이지요
결국 구약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여호와를 믿은 적이 없었다 라는 거죠
믿었다면 유대인들 손에 넘기지 않았겠죠 빌라도와 같은 놈들이다는 겁니다
또 헬라인은 진리가 무엇이냐에 관심없어요
지혜를 추구하는 자기자신에게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하나님과 같이 된
선악을 아는 자기자신이라는 우상에게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의미가 없는 십자가 곧 진리이다 보니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겁니다 지혜의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말이지요
자 그럼 오늘 본문의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는 그럼 뭡니까
먹는 주체 마시는 주체에 내가 들어가 있는데
먹고 마셨으니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90년대 제 때만 하더라도 하나님나라 운동이 유행했다 말이죠
이단 운동만 골라서 해요 글쎄
이제는 극우냐 좌파냐 운동으로 대립된 세대입니다
이들 악한 세대에 누가 옳냐 그르냐 따지는 재판의 법적 용어에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개입을 빼버립니다
먹고 마시는 주체인 내가 들어가서 하는 하나님 나라는 없다 라는 겁니다
이 땅에 속하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진리는 하나님 나라는 초과잉적인 잉여로써
우연의 생명이 흘러 넘쳐나는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저절로 우연히 많은 열매를 맺는 겁니다
시골의사가 에베소서 1장을 백번 읽어도 도통 믄 소리인지 모르겠다 라고 하던데
기존의 이 땅에 속한 찬송과
즉 자기가 부르는 것이지요
성경 에베소서의 찬송이 달라서 그런 겁니다
친송을 부르게 할려고 우리를 지으셨다
즉 찬송은 기쁨인 초과잉적 진리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필연의 법이 아니라 우연의 남아도는 사랑인 진리이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축복 곧 복음이다 말이죠
복음은 역으로 아무리 밟아도 밟아도 밟히지 않고
죽지 않고 도리어 생명의 초과잉인
더 나은 제사
네 맞아요 바로 화목제물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입니다
속건제물이 딸려오죠 성령이라는 초광잉 배상금 20% 곧 남아도는 생명이다는 겁니다
십자가의 저주와 죽음을 보고 누가 생명의 과잉인 진리라고 보겠습니까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요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인데
즉 헬라인 우상을 추구하는 손발 그려서 만져달라 눈 그려서 봐달라 라고 하는 자들에게
십자가가 도리어 우상이라고 본 겁니다
즉 안 만져주고 안 안아주고 안 업어줘서 안 달리는 다리 없고 손 없고 눈 없는
그러니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지요
이 대립 속에서 진리가 더 나은 제사로 증명이 되는 겁니다
그들의 결망을 보고 말이죠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사랑이 없어서 망했지요 진리가 아닌 나는 옳다 그거만 따진 겁니다
내 개인 구원 말이죠
그리고 헬라인은 우상을 자기들이 섬겨놓고 지혜 더 달라고 신에게 빌 잖아요
그런데 죽는 신을 외치니 어리석고 미련하다 라고 우상이라고 공격하지요
적반하장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결말 또한 앗수르 바벨론 그들의 원조 애굽을 통해서 이미 봤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삽의 시에서 시편 73편 그들의 결망을 성소 예수 안에 들어가 보니
다니엘의 세 친구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 보니
이미 불 바깥이 생명이 없는 곳이고
불 속의 예수님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
이 땅에 속하지 않은 남아도는 우연의 잉여의 세계인
찬송의 세계입니다
가르쳐 주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이유 없는 찬송과 기쁨의 초과잉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 이다 라는 겁니다
자기를 빼 버리니까 말이죠
그럼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땅에 속한 나라는 요구를 하는 겁니다
그 강요된 선택에 맞게 그 요구를 충족 시켜주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탈락 한다 라는 것이
이 땅에 속한 자들인 우상나라의 주장입니다
보세요
마귀도 요구 합니다
유대인들도 요구 합니다 조건을 갖추어야 하니까 말이죠
빌라도 지혜자들인 헬라인도 요구합니다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유지하는 조건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인 진리는 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왜 저는 처음 본문을 접했을 때에
예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로마서에 하나님 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겁니다
행함을 추구하는 유대인에게 대조를 이룰려며는
믿음을 추구하는 은혜인 복음은 오히려 예수님 나라 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그런데 더 나은 제사 라는 잉여는
예수님 자신을 집어 넣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꾸 예수님은 자신을 빼버린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자들이 그럼 뭐가 됩니까?
사실 진짜 옳음을 붙잡은 것이 다 소용이 없다 라는 거죠
즉 먹고 마시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겁니다
솔로몬의 영광이 소용이 없다 라는 겁닏다
그들의 구원받은자
곧 복 박은 자ㅢ 기준인 부자도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 해결한 부자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의미가 없다 라는 겁니다
부자청년 보세요 자기를 옳게 즉 구원얻은 자 답게 조건 갖출려고 하는데
주님은 전재산 다 가난한 자에게 주어라 즉 남을 살려라
그냥? 아니지요 자기를 죽여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말이죠
그럼 부자청년은 또는 부자 창고를 늘린 부자는
먹고 마시는 것 신경쓰는 자는
진리에 관심 없다 라는 겁니다
빌라도와 다를바 없고
가룟유다와 다를바 없어요
그들은 남에게 조건을 충족 시켜라 라고 주장할려면
자신도 그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하기에
진리에 관심 둘 이유가 없습니다
그 조건 갖추는 것만 따지면 되거든요
그런데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어라
죽은 자를 살려라
그것이 바로 우연의 잉여입니다 남아도는 생명의 초과잉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나는 사랑입니다
부자청년이 이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이 여호와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야다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 마시는 것 조건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무할례처럼
도로 하나님 나라로부터 무 이유 무 의미 무 조건 무 필연 처럼
이유 없이 사랑받는 도리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할 판국인
죽음 속에서 모든 허다한 허물을 다 덮고도 남는
이유 없는 무조건 무필연의 우얀의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요구치 않는다는 겁니다
요구하는게 없어요
돌을 떡 덩이 되게 하라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 즉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산다 라는 겁니다
그래야 이유 없는 찬송 이유 없는 복됨의 잉여를 퍼도 퍼도 줄지 않는
생명의 초과잉을 누릴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 받은 자의 행복에 대해서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다윗을 이어서 예를 들고
본인 바울도 그렇게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과거에는 흔할 수가 없었어요
인간의 태생 자체가 고통 속에서 뒹굴다 고통받다 죽는 것을 당연시 했다 말이죠
늘 떠돌이에다가 전쟁 속에서 피할 바위 찾는게 인생의 전부였는데
아 그런데 판이 뒤집어 진 겁니다
다윗언약에서 말이죠 새언약은 바로 그 행복을
그 이유 없는 행복을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음을 주셨다 라는 겁니다
퍼도 퍼도 줄지 않는 잉여의 세계를
필연의 법 세계 속에서 우연의 초과잉적 잉여인 진리를
그 복음을 드디어 듣게 해 주시니
찬양 안 나오고 베기겠냐 말이죠
기쁨이 덮쳐졌는데 안 기쁘고 베기겠냐 말이죠
여디디야 여디디야 여디디야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이 사랑이 주님으로 왔으니 안 사랑하고 베기겠습니까 라고 화답하더라 말이죠
씹고 뜯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춤 안 췄다 라고 어머니께서 또 조건을 달았는데
왜 자꾸 보태지도 뺘지도 말라 더하지도 감하지도 말라 라고 했는데
왜 너는 그라노?
초과잉의 우연으로 임의로 부는 바람에 의해서 춤이 저절로 나오니까 말이죠
행복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무행동 무조건에서 믿음과 결부되어
나오는 단어는 여기 뿐일 정도 이니까
안 행복하고 안 춤 추고 베기겠냐 말이죠
자 그럼 오늘 본문이 먼저 있었습니까
아니면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과의 충돌 사건이 먼저 있었습니까
당연히 후자 곧 우연이 먼저 있었습니다
우연은 당위라고 해서 기능입니다
존재 라는 필연 보다 먼저 앞서 있는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늘 필연을 앞세웁니다
자기가 포함이 되었으니까 말이죠
아니 우리는 포로 된 적이 없는 자유하는 아브라함 자손이거늘
예수 니가 뭔데 우리를 포로됨에서 자유케 하고 눈먼 소경 됨에서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이냐
이렇게 잘만 보이는데 너 도대체 뭐냐
진리이거든요
자기를 포함한 아브라함자손을 챙기니까 존재가 되었지
이스라엘이라는 기능은 모르는 겁니다
당위 곧 우연이라는 진리는 빌라도처럼 관심이 없어요
유대사회에서 얼마나 소경이 많을 것이고
문둥병자 앉은뱅이 소위 하나님의 저주 받은자 얼마나 많냐 말이죠
그런데 자기만 아니면 그만이다는 겁니다
자기만 옳으면 건강하면 의인이면 그만이다는 겁니다
그 필연의 법을 존재를
우얀이라는 기능이 당위가 깨뜨리는
초과잉적 생명수 죽은 바다를 다 살리고도 남는
희년의 복음을 그 진리를
이스라엘이다 라고 하면서 남는 12 광주리 라고 하면서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하면서 믿음이라는 초과잉 진리
의인은 죽어도 사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겁니다
복종 하는 것 아예 바라지도 않아요
아예 죽여 버립니다
마치 오늘날 예수 믿는 다는 교회들이
예수님을 돈과 맞바꾸는 식과 같아요
자기를 옳게 여기게 할려면
돈이 옳았다 라는 선악의 신의 세계에서
진리는 개나 줘버려 라는
반드시 맞물리는 십자가 사건이 벌어지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결국 오늘날 교회 내에서의 모든 사건은 결국 돈 문제입니다
먹고 마시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조건이 되어버린 이상
사랑받느냐 못 받느냐 라는 종교문제와
온 천하 만국을 줄테니 절하라 라는 정치문제는
바로 동시다발로 터지는 문제로써 벌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 어떤 누구도 마귀의 손 아귀에서 단 한발짝도 벗어날 자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필연의 법 세계에 갇혀 버렸습니다
그 필연의 세계에 구멍 뚫고 나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럼 하나님 나라는
이 먹고 마시는 문제에 갇혀 버린 인간세계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과거 한국 70년 대처럼 전도사가 자기 아들을 아브라함처럼 바치겠다 라고 제물로 바친 사건이나
그것을 또 보고 절대로 그 부분을 교인들이 따라할까봐
목사의 책임감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목사나
지금 아프리카 목사들 중에 홍해처럼 가른다 라고 하다가
도리어 풍랑에 얻어터지는 경우나
10년전? 좀 더 되었죠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시험 받고자 40일 금식하다가
죽게된 그 아프리카 목사나
다들 한결같이 진리에는 관심없고
자기가 옳아야 한다 가짜가 되면 안된다 라는 그런 정신병적인 강박증으로
자꾸 자기 개입으로 행하냐 마느냐 로 승부를 건다 라는 점에서
뭘 해도 다 가짜임을 모르는 것과 같더라 말이죠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런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데
그 어떤 조건도 없어요
진리에는 관심 없다 라고 하니까 아 그럼 나는 진리에 관심 두어야지?!
안 됩니다
남아돌지가 않아요
원금 그대로 파 묻었다가 원금 그대로 주는
악하고 게으른 종일 뿐입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어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입닏다
그냥 진리로부터 용서 받기나 하세요
남 용서할 생각 말고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기에
사랑 받기나 하세요
그게 아무것도 한 것이 용서 받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 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쓸 것을 더하여 주신다
즉 남아도는 잉여를 부어준다 라는 겁니다
내가 쓸 것이 아니라
너희 라는 집단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몸이 쓸 것입니다
그러니 내 이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이웃으로부터 20% 더 받는
강도 만난 자의 위치가 우리의 자리이다 라는 겁니다
지난 주 고린도전서 4장의 사도의 자리는
이 우리의 이웃 되어주신 예수님의 자리에
사도들이 우연히 뽑혀서
그리스도와 연고 연관된 노선으로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나는 매 맞을께 너희는 상장 받아라
우리 사도들은 저주 받을께 너희 그리스도의 몸은 축복받아라 라고
이런 식으로 초과잉적 진리인 사랑을 그 우연의 잉여를
그 남아도는 생명을 전한다 말이죠
그렇게 받은 자들이 나중에 그 사도들의 뒤를 이을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을 줄 아는
자유하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얽매여 있는 채소만 먹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얼라 같다고 자신들은 장성한 자 라고
막 심판하고 정죄한다면
그거 과거의 유대인들 모습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사랑으로 하지 않는 판단은 결국 완악한 수건을 쓴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과 뭐 다를바 있냐 말이죠
그카이 이 하나님 나라가 우연히 먼저 떳고
그 다음에 이런 우상고기 먹니 마니 니가 옳니 그르니 라는 사건이
뒤에 터져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신체라는 육의 기준인 시간에서는 그 반대의 시간으로 벌어지겠지만
종말이라는 성령이 벌리신 사건은
바로 이런 과거를 삭제 하기 위한
미래완료의 쳐들어온 사건이니
무조건
이유 없이
기쁨의 찬송으로 뭐든지 예가 될 수 밖에 없는 믿음의 세계요
남아도는 잉여의 생명수의 충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고린도 전서 초반의 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로 나누어진
정치적 문제들은 이미 십자가의 도 즉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성령의 소욕이 먼저 떳기에
이들이 왜 성령의 소욕에 무너져야 할 것들인가에 존재물로써 동원이 되어서
그것 마저도 너끈히 이기는 십자가의 도를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악역 안 할꺼다 라고 하면서도
뭘 해도 악역으로 동원이 되어서
용서를 받는 은혜를 알게 되는 우연의 잉여를 누리지
나는 절대로 파당 안 만들 거야
나는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자유자가 되어도 채소 먹는 자 판단 안하고
채소 먹는 우상고기 안 먹어서 막사는 자유자 함부로 내 기준으로 판단 안 할 거야 라고
자꾸 그런 다짐을 굳게 세워도
하루 아침에 작심3초 만들어서
그 어떤 조건을 갖추어서 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게 아니라
뭘 해도 엉터리요 뭘 해도 망치는 자 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 용서해 주시는
무조건적인 이유 없는 사랑 앞에서
즉 먹고 마시는 조건이 아닌 하나님 나라 앞에서
다 무너지도록 사도들이 죽기로 작정이 되었듯이
다만 하나님만 섬기라 앞에서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코자
죽으시러 오심 앞에서
그딴 조건들이 하등 의미가 없도록 하셨다 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치 않는다는 겁니다
늘 수시로 나오는 죄를 지금까지도 늘 사해주시는 그 은혜 뿐이지
뭐 하겠다 라고 나서는 순간
자기가 개입이 된 순간
반드시 실패케 하시지
내어버려 두신 자라면
성공케 만들어서 그 반대 급부인 실패한 자의 등을 쳐 먹도록
고아 과부 나그네를 압제 하도록 만드시는
뒤집워 씌우면 우짤려고요
맏아들이 뭐 나쁜짓 해서 악한 겁니까
아니지요 자꾸 자기는 옳다 사실이요 진짜다
네 맞아요 예수님도 사실로 옳음으로 진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 속한 이 세상의 나라이지
하나님 나라 아닙니다
남아도는 잉여의 우연의 진리는
도리어 탕자에게 죽었다 다시 살아난
이 잉여의 세계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맏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행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탕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믿은 겁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라고 하니까
아 그럼 내가 주의 이름 불러 주마 자 불렀제 나는 이제 구원이네
세상 사람도 아닌 교회사람들이 비아냥 거리면서 비웃더라 말이죠
익명성이 보장되니 속마음이 다 나오는 거죠
죽이시기로 작정 된 자 앞에서는 그 속내가 다 드러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죽으니까 말이죠
아무것도 아닌 우연이니까 말이죠
필연의 법 앞에서느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그런 속 마음을 감추지 않으면
자기가 살수가 없고
먹고 마시는 조건들을 누릴수가 없게 되니까 말이죠
우리가 다 이렇게 맏아들과 같은 조건 갖추기에
평생 미쳐 있습니다
진리는 그런 세상에 빵구멍을 냅니다
탈출케 하시고자
희년을 복음을 선포 했어요
아무도 탈출할 마음도 없고
떠나고픈 마음도 없는데
주님 혼자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진리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외치고 있습ㄴ니다
본래 본향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들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 떡으로 사는 자는
관심 갖고파도
안 맞으니까 의미 없어요
그러나 본향을 사모하는 자는
이 하나님 나라가 고맙기 짝이 없고
다윗처럼 씹고 뜯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이 기쁨의 초과잉이 덮쳐짐으로써
동네 사람들 동네 사람들
내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 나라가 떳다 라고
우물가의 여인에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겁니다
조건을 갖출려는 니고데모 바리새인은
할수만 있다면 어머니 뱃속에서 들어갔다 나오고픈데
행함의 범위에서 벗어나니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자기 개입의 밖의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겁니다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먹고 마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기를 관심에 두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라는 말씀을 거부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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