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7 복음이 낳은 자식과 아비 (스승은 많되 아비는 적다) (고전 4;14-17)

죽이기로 작정된 사도, 미말에 둔 구경거리, 만물의 찌끼 (고전 4; 9-13)
고린도 전서 2025 2026. 9. 5. 22:39
25-026 죽이기로 작정된 사도, 미말에 둔 구경거리, 만물의 찌끼 (고전 4; 9-13)

〈고린도전서 4;14-17, 개역한글 신약성경 267쪽〉

(고전 4:14, 개역)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전 4:15, 개역)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전 4:16,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4:17, 개역)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전 4:14, 현대어)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내 사랑하는 자녀로 여기고 타일러 바른 길로 가게 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고전 4:15, 현대어) 교사는 여러 명이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단 한 사람이듯이 비록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1만명이 넘는다고 해도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여러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새로 태어나게 한 사람은 나뿐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고전 4:16, 현대어) 그러므로 나를 본받고 내가 행한 대로 따르십시오.
(고전 4:17, 현대어) 내가 디모데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도 바로 이 점을 알려 여러분을 돕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께 인도한 사람입니다. 또한 주님 안에서 사랑과 믿음으로 맺어진 내 아들입니다. 그는 내가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고 실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줄 것입니다.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는 선지자의 외침을 들으면 우리는 부끄겁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못 산다 라고 여기니 머리에 숯불 머리처럼 부끄 부끄가 되겠지요

나의 유익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누어지고 있는데
한 몸을 외치면서 죽으러 온 사도들을 줄 세우고 있으니
그런 정치짓 얼라짓에 정작 예수님을 죽으시러 왔다 앞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부끄럽게 만들려고 사도바울이 외치는게 아니라
이것이 바로 얼마든지 우리에게 벌어지는 상황이기에
사랑으로 인도하는 사도들의 기능이기에
우리는 이런 징계의 매를 맞아서라도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라는 겁니다

온 천하 만국을 줄테니 나에게 절하라 라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들은
우리가 죽을 때 까지 따라오는 시험입니다

유혹에 넘어갔다 라고 해서 낙망할 필요도 없고
시험을 이겼다 라고 해서 교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되면 언제든지 바뀌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선 줄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넘어질 수 밖에 없기에
이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사랑이라는 의미로써
스승이 아닌 아비로써 너희를 낳았다 라고 합니다

스승은 우리를 자식으로써 낳을 수 없기에
십자가에 죽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아비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대신 매 맞는 것이 아비 아버지 부모라는 비존재입니다

이것이 스승과 아비의 차이입니다

스승은 소위 천재와 같은 기능입니다
네 맞아요 지젝이 말한 천재와 사도의 차이에서 따와서 제가 알게 된 겁니다

바울파는 성경지식의 끝판왕 천재로써 줄을 서서 정치 파당을 지을려고 했고
아볼로파는 온유함의 끝판왕 천재로써 우리들의 결핍을 채워줄 자로 보입니다
그리고 게바파는 가장 일반적인 가장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해 줄 것 같아서 줄을 서겠지요

그러나 그런 존재들은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얼마든지 찾으면 찾아낼수가 있는 가능성의 존재들입니다

정작 아비가 될 만한 자는 적다 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목사들 중에 아비라는 기능을 하는 비존재성이 있을까요?
만나면 참 좋겠지요
거의 불가능 합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그저 학원 수준 밖에 안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체험한 어떤 교회의 목사는
아예 대 놓고서 스승도 아닌 아비의 모습이라고 대 놓고서 주장하더라 말이죠
물론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어도
정작 제 눈에는 택도 없더라 말이죠

더 웃낀 것은 그 목사의 부모 조차도 아들 목사를 영적인 부모처럼 생각한다는 점에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30년 전 쯤에 고신 쪽에서 유망주 목사였거든요
유명 교수의 수제자 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런 천재가 과연 아비의 기능을 하던가?
전혀 아니올시다 라는 생각이였죠

그 사람의 사상을 보게 됨으로써
왠만한 목사들은 다 가짜로 보이더라 말이죠
큰 놈 하나가 순가짜 엉터리 임을 대 놓고 보여주니 말이죠

스승은 언제든지 도덕질 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그 말을 배우는 학생의 목숨을 도둑질 할 수가 있거든요

(롬 2:21, 개역)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어린 학생이 누가 더 큰 스승이지 정치적으로 다가와서 취사선택했기에
언제든지 스승 또한 자기유익을 위해서 어린학생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스승은 이 앞뒤 모순된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어요

사도바울 본인이 살인하지 말라 라는 계명을 가르치는 유대인 선생 바리새인으로써
스데반 집사를 대 놓고서 살인했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이제 복음을 알았다면
그런 제사와 번제가 아닌
더 나은 제사를 증거하는 퍼도 퍼도 줄지 않는 산제사인 십자가의 새영을 외친다 라면
이제 스승이 아닌 아비로써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는
선지자 곧 사도로써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구약의 네 부모를 존경하라 라를 말씀이 다 이루어진 상태이다 라는 것이죠

그냘 부모가 아닙니다

어버이날 어버이 주일 때가 되면 가슴에 카네이션 달아주는 그런 행사로
설교때 부모를 존경하라 라는 유교와 기독교를 혼합시킨 그런 내용으로써의 부모가 아니라

구약의 부모는 딱 하나입니다

홍해와 요단강을 건넌 자를 선지자로써의 부모로 존경하라 라는 겁니다

결국 홍행와 요단강을 건넌 경험이 없는 부모가 아니면
존경할 이유가 없고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선지자의 기능이 아니면 부모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더군다가 선지자로써의 부모는
홍해와 요단강을 건넌 자 이기에
그 사건인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줌을 당한 하나님의 의가 덮쳐진 자가 부모인데

어라 홍해를 건넌 자는 많아도 요단강을 건넌 자는 거의 없다 시피 되었다 라는 점에서
놀랍게도 부모가 없는 셈이 된 겁니다

심지어 모세 조차도 부모로써는 자격 미달로써 탈락입니다 땡 탈락
존재로써는 땡탈락입니다 바위 두 번 쳤기에 말이죠

아바림 골짜기 통로에서 본향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몬곡 골짜기의 곡과 마곡 무리들의 매장지에 함께 묻히는 신세나 다를바 없게 됩니다

졸지에 이스라엘은 고아와 나그네와 과부로써 아버지 남편 임금인 목자를 잃어버린 상태가 된 것이지요

자식이 부모인 모세를 죽일려고 했기에 졸지에 고아가 되었고
아내가 온유한 남편인 모세를 죽일려고 했기에 졸지에 과부가 되었고
백성이 목자인 모세를 죽일려고 했기에 졸지에 임금 없이 떠돌이가 된 나구네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결국 모세 또한 진짜 부모가 아닌 임시직으로써의 부모인 셈이였지요
그 임시직에 대타로 여호수아가 들어가고
여호수아가 죽으니 사사들이 그 대타에 대타에 대타로 들어갑니다
물론 사사 때는 더더욱 그들의 어중이 떠중이 모습에 더더욱 반발하지요
겁쟁이 기도온, 왼손잡이 에훗, 여자로써의 드보라, 산적 두목 입다, 기생오라비 삼손, 등등)나머지 사사들에 대해서 물어 봤지요----

어중이 떠중이 사사들 겁쟁이 기드온, 왼손잡이 ?, 여자로서의 드보라, 산적 두목 입다, 기생오라비 삼손, 나머지 사사들 ?

질문하신 부분은 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의 특징을 해학적이거나 인간적인 약점을 강조하여 표현한 것 같네요.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사사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왼손잡이 에훗
나머지 사사들: 옷니엘, 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

?? 사사들의 특징 요약

사사기에 등장하는 주요 사사들은 완벽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저마다 하나씩 결함이나 사회적 약점을 안고 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왼손잡이 에훗: 당시 고대 사회에서 '왼손잡이'는 신체적 제약이나 약점으로 여겨졌으나, 에훗은 이를 이용해 모압 왕 에글론을 방심하게 만들고 암살에 성공했습니다.

여자로서의 드보라: 가부장적인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군사·정치적 리더가 되어 가나안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산적 두목 입다: 서자 출신으로 집안에서 쫓겨난 후 잡류(산적 떼)의 우두머리로 지내다가, 기생의 아들이라는 멸시를 극복하고 사사가 되었습니다.

삼손: 나실인이었으나 이방 여인(들릴라 등)과 정욕에 눈이 멀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흔히 말하는 '기생오라비'나 '난봉꾼' 같은 면모를 보여준 인물입니다.

나머지 사사들(옷니엘, 삼갈 등)의 구체적인 업적이나 사사기 전체의 핵심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가요?

AI 대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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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니엘, 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 은 어떤 특징이 있나?

질문하신 사사들은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을 제외하고 모두 '소사사(小士師)'로 분류되는 인물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분량이 매우 짧지만, 이전 질문의 흐름(인간적 약점, 해학적 특징)에 맞춰 이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평범함의 극치, 혹은 권력과 재물에 집착한 세속적인 사사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각 사사의 구체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옷니엘: '엄친아' 정통 영웅특징: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라는 화려한 가문 출신입니다.

의미: 사사기 전체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정통적인 영웅입니다. 다른 사사들처럼 성격적 결함이나 사회적 약점이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첫 번째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표준형 사사'입니다.

2. 삼갈: 소 모는 막대기를 든 농부특징: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소 모는 막대기' 하나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쳐 죽였습니다.

의미: 군인이나 장수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농부 출신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무기가 없어도 하나님이 쓰시면 강력한 구원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돌라: 아비멜렉의 깽판을 치운 '설거지' 사사

특징: 기드온의 악한 아들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죽은 직후 등장하여, 23년 동안 나라를 평온하게 진정시켰습니다.

의미: 성경에 구체적인 전쟁 기록이나 영웅적 활약은 전혀 없지만, 난세 이후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한 묵묵한 행정가형 사사입니다.

4. 야일: 나귀 30마리를 굴린 '부자 사사’

특징: 아들 30명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어린 나귀 30마리를 탔고 성읍 30개를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미: 당시 나귀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사사로서 백성을 구원한 업적보다는, 자기 자식들에게 막대한 재산과 성읍(하봇야일)을 물려준 부유한 족장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5. 입산: 자녀 60명을 정략결혼 시킨 '정치 사사’

특징: 아들 30명과 딸 30명을 두었는데, 딸들은 모두 타국(외인)으로 시집보내고 며느리들도 타국에서 데려왔습니다.

의미: 60명의 자녀를 이용해 사방으로 '정략결혼 동맹'을 맺으며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 사사입니다.

6. 엘론: 분량 실종, '존재감 제로' 사사

특징: 사사기에서 가장 기록이 짧은 사사입니다. "10년 동안 다스리다가 죽어 장사되었다"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의미: 아무런 업적도, 특징도, 심지어 독특한 약점조차 기록되지 않아 가장 존재감이 없는 사사로 꼽힙니다.

7. 압돈: 손자까지 고급 자가용(나귀)을 태운 '재벌 3세 사사’

특징: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있었으며, 이들 70명이 모두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의미: 야일보다 한술 더 떠서, 아들을 넘어 손자들까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게 한 인물입니다. 사사라는 직책을 가문의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수단으로 삼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 요약하자면초기 사사들(옷니엘, 에훗, 삼갈)은 평범하거나 약점이 있어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 나라를 구원했지만, 후기 소사사들(야일, 입산, 압돈)로 갈수록 나라를 구원했다는 기록은 사라지고 "자식이 몇 명이고, 재산이 얼마나 많았고, 정략결혼을 어떻게 시켰는지" 같은 세속적이고 왕처럼 군림하려 했던 야망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가 뒤로 갈수록 이스라엘 사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하고 세속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 외에 사사기에서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입다의 서원 이야기나, 사사기의 핵심 결론인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는 구절의 의미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볼까요?

AI 대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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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세가 존재가 아닌 필연이 아닌
비존재의 우연으로써 모세의 자리를 대신하는 여호수아를 세움으로써
모세의 선지자 기능은 계속 되고
스승이 아닌 부모로써의 기능은 계속 되더라 말이죠 선지자 이니까 말이죠
(참 신기하게도 광야생활 때에는 그렇게 원망함으로써 모세가 늘 타켓이 되어 죽일려고 했는데, 내부전쟁이지요.
어라 가나안 땅 들어가서는 여호수아 때는 일체 원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육체의 한계는 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는 외부의 전쟁에서는 역시나 실패합니다
더 나아가 사사 시대때는 저런 어중이 떠중이 부모 기능은 더더욱 신뢰감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아닌 기느은 부모로서 자식을 살려내는 기능을 수행하더라 말이죠
마치 잠언 30장의 지혜처럼 임금이 없어도 임금이 있는냥 무리를 지어 가는 메뚜기처럼 말이죠
그런 성령을 부음 받은 선지자를 부모로써 존경하며 따라가는 겁니다 임시직 임의로 부는 바람 같은 비록 비정규직 임시직 부모로써 기능이 우연의 비존재로써 작용하는 겁니다)

심지어 모세를 변화산에서 반칙으로 다시 살려서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외침으로써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부모의 기능을 한다 라는 겁니다
실상인 그 멜기세덱이 바로 참 부모 되신 예수님이니까 말이죠
다른 하나님이 없어요

거룩 즉 하나님의 의란
바로 이런 잃어버림의 경험이 있는 자가 부모라는 거룩이다 라는 겁니다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만 나오는 것이지
(왜 굳이 백성으로 남겨두지 않고 기여이 양자로 삼으시느냐? 
바로 아버지를 부각 시키기 위함이다 말이죠 죽은 하나님 죽는 아버지 기능 말이죠
그카이 내가 언제 십자가 졌더냐 라고 바울이 안타까워 하는 겁니다
출처가 없는 원인 없는 결과인데 그 빈자리에 엉뚱한 것들을 채워 넣으니 말이죠)

(롬 8:15, 개역)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건 법이요 행함이요 지키는 행위이지
은혜라는 모욕적인 긍휼이 아니다 말이죠
그 모욕적인 부끄러운 십자가는 
아버지만이 언제든지 자식을 위해서 뒤짚어 쓸 수가 있는 겁니다


(마 23:9, 개역)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 23:8, 개역)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1, 개역)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마 23:2, 개역)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3, 개역)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 23:4, 개역)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5, 개역)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마 23:6, 개역)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마 23:7, 개역)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8, 개역)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9, 개역)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 23:10, 개역)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 23:11, 개역)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5절 경문?

(마 23:5, 새번역)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 ㉠성경구절이 들어 있는 곽으로서 이마나 팔에 달고 다님


심지어 땅의 스승도 땅의 부모도 결국 다 너희의 것이니 같은 형제요 동무이다 라는 거죠
딱 한분 선생도 딱 한 분 부모도 예수님 뿐이다 라는 겁니다
즉 상대적인 스승과 부모의 자리에 앉은 바리새인이 그 자리에 앉아 있기에 하시는 소리입니다

마찬가지 너 마음에 도대체 누가 스승이고 누가 부모냐 라는 겁니다

다 그림자 인데

그런데 사도바울 또한 그림자 이지만
그림자 주제에 너희들 부끄럽게 할려고 이런 소리 하는게 아니라
실상이 덮쳐지면 부모의 기능인 나 죽을께 너 살아라 가 된다 라는 겁니다
성령이 그렇게 하시니까 말이죠 잠깐 임시적인 우연으로 말이죠 임의로 부는 바람잉께
문제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절대화가 문제이다 말이죠
심판을 하는게 그들의 목적이지 살리는게 목적이 아니니까 말이죠
강도요 도적이다 말이죠 도적질이 목적인 거죠

저 어중이 떠중이 같은 사사들이 성령을 받아 사사의 기능으로써
부모가 자식을 살릴려고 더러움에 뛰어들 듯이
누구든지 성령을 받은 자는

저런 대접 받을려고 백성 등쳐먹는 바리새인 같은 선생이나 부모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써 이스라엘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죽는자 이다 라는 겁니다
(행함이 아닌 그 믿음 때문에 이제 자식이 부모를 위해 죽는 이삭의 희생제물 됨처럼
입다의 딸이 이름도 심지어 없어요 비존재로써 우연으로써 죽는 겁니다
인신제사이다 라고 말이 많지만 또 이것을 반대고 너 죽으라 나 살게 로 이용해 먹지만
인자 라는 비밀 비유 수수께끼로써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은 분류작업에 들어가는 겁니다)

물론 저런 말씀은 집단구원이라는 이스라엘 사회나
교회라는 성령의 전인 신부들에게만 해당 되지

개인 구원을 추구하는 바리새인 집단같은 자들에게는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비유입니다
하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전체가 이미 마귀에게 포로된 개인구원을 추구한 상태이어도
주님은 그 구약의 모든 약속을 다 성취 하시는데 있어서
남아도는 사랑을 다 이루시니까 말이죠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실패의 자리에서 출발했으니까
실패니 성공이니 그런 거 없습니다 무조건 예 뿐이지 아니오 함이 없습니다

자 그렇기에 부모라는 의미는 자식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하나 된 한 몸에게만 해당되지
둘로 나누어진 경계선인 쳐져 있는 자들에게는 해당 안 되지요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라는 관계에서는 해당 안 됩니다

그저 바리새인처럼 개인구원이라는 필연적인 절대성(모세의 자리)만 추구할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부모로써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강도요 도둑이라고 합니다

(요 10:7, 개역)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8, 개역)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10:9, 개역)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10, 개역)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1, 개역)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2, 개역)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자 그렇기에 오늘날 목사들이 아무리 하나님 까불면 죽어 라는 이 명언
속내를 이 놈이 대변해 줬거든요

이런 와중에 내가 너를 낳았다 라고
아버지가 자식을 낳았다 라는 표현을 쓴다 라는 자체가

예수님이 유대사회에서 죽을려고 환장한 모습과 마찬가지인
충격적인 표현인 셈입니다

아니 마땅하고 당연한데
그 당시 고린도교회 꼬라지나
오늘날 교회 꼬라지 보세요
정치짓 뿐이다 말이죠

그저 사도 곧 성령 부음 받은 사도가 있어서 유지하는 셈이지
돈으로 유지 될꺼면 이미 벌써 강도의 소굴이요 소돔과 고모라 인 것이지요

그런 사도가 내가 너희를 낳았다
심지어 다른 구절에서는 잉태하는 수고를 했다 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런 목사들 없지요
그런데 왜 목사를 할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은

그저 자기 자식 유학 보낼 궁리 밖에 없잖아요

정작 바울이 낳은 자식 디모데를
물론 친 자식 아닙니다
복음으로 낳은 자식입니다

스승은 그저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일 뿐
아이를 해산하는 고통의 수고를 할 수가 없어요
그저 아주 가깝게 시도를 한다 라고 해서
소크라테스는 산파로써 등에 노릇만 할 뿐이지
부모 해산하는 고통을 질수가 없다 라고 합니다

해산하는 고통이라는 그 죽음에 뛰어드는 자는 스승이 아니라 부모 뿐입니다
이것이 천재 소크라테스와 사도의 차이입니다
하나는 개인역량을 키워줄 뿐이지
그래서 양성된 자들이 맏아들이나 부자청년 바리새인 같은 독사의 자식이지
집단윤리의 진리를 그들은 가르칠수가 없어요
진리는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는 사랑 뿐이거든요

그 죽음이 그 죽이시길 작정됨이 마땅하다 라는 겁니다
마땅한 우연의 예로들고자 동원이 되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가
복음으로 낳은 자식인 디모데로써 다 너희것이다처럼 너희에게 준다 라고

디모데를 유학 보내는게 아니라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선지자의 기능을 하도록 내어주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화목제물로 내어줌 같이
디모데를 준다 라고 합니다

어라 이제 고린도 교회 골치 아파 지겠네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로 모잘라 이제는 디모데 파가 새로 생겨날 판국이니까 말이죠

물론 아닙니다 아들을 디모데를 준다는 말은 마치 이삭 제물처럼
어중이 떠중이에게 입다의 딸 이름없는 딸을 주듯이

이 성령을 부음 받은 부모의 기능은 바로 그런 경계선 선 긋기를
다 지워버리는 지우개로 주는 겁니다

누가 스승이 되고 누가 종이 되고 그런 선 긋고 판단하는 그 경계선 다 지우겠다 라는 겁니다

이미 우리는 판단의 주 심판의 주가 있고
이미 우리는 종으로써 이미 실패한 자들입니다
뭘 또 거기서 도토리 키 재기 하듯이 누가 더 큰 종이냐 작은 종이냐
니 옳니 내 옳니
그거 다 안개요 부질없는 것인데
인간이 계급이 없으면 정치가 없으면 자기의 존재감이 없거든요

정치를 공부해 볼려고 수 많은 미디어 정치시사를 듣고 해 보니
결론은 딱 하나입니다

나 알아도

민주당 지들끼리 싸우잖아요 서로 윤석땡 같은 내란세력들이다 라고

원래 좌파의 성향은 분열 이다 말이죠
절대로 하나 될 수가 없어요

다양성을 추구한다 라고 마치 고상한 척 하지만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칼로 돌아온다 말이죠

보세요 고린도 교회도 그런 식입니다 
뭐 민주주의입니까 교회까지 그런 짓 하게
모조리 죽이시기로 작정이 되어버리면
입 싹 다 다물게 되지요

좌파 바리새인 집단
우파 빌라도 로마 집단
그 속에서 자기 자리 가질려고 한다는 자체가

아들 디모데까지 죽이시기로 작정된 이 기능에 비교하면
저들 둘은 사생아로 남겠다 라고 떼 쓰는 겁니다

부모를 원치 않아요

고아 과부 나그네 안 되겠다 라며 바알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여자처럼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라고 예외가 될 수가 없어요

그런 상황에 바울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를 투입 시킴으로써

이 섬기는 자들이 아니면
부모 못 알아보는 호로자식으로
사생아로 남겨두지 않겠다 라는

주님의 다짐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호프를 봤는데
갑자기 안 보이던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단어가 눈에 꼿혔다 말이죠

증거

믿음을 우리는 당연히 가능한 것으로 보는데
아닙니다 믿음 불가능 해요

인간의 믿음은 행하이지 법적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내 죽을께 너 살아라가 아닙니다
그게 안 되니까 성령을 약속해서 주신 겁니다

믿음을 당연히 여기고 들어가니 그 동안 안 보였는데
오히려 증거 라는 단어가 확 들어오더라 말이죠
그 영화 때문에 말이죠

증거는 실상이다 말이죠
그럼 뭐가 증거냐

희망이 일체 없는 것이 증거이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희망이 없으면 죽는다 라는 믿음이 깔려 있어요
물론 마귀가 심은 선악의 사고방식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희망이 없으니까 비로소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증거 표적이 뭐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또는 표적 또는 증거는
나에게 희망을 걸수 있는 것들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막상 주 앞에서 죽은 소망이더라 말이죠

산 소망은 그럼 뭐냐
요나의 표적
퍼도 퍼도 줄지 않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것인데

졸지에 희망이 다 날라가버린 것이 바로 그 증거요 그 표적
곧 요나의 표적이다 라는 겁니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 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합 3:17, 개역)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개역)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모든 소유가 끊어지면 절망이지 희망 따위는 없는데
어라 출처도 없는 생명의 물이 흘러 흘러 넘치는
부족함이 없음을 누리더라 말이죠

그게 증거로 실상으로 덮쳐지니까 저절로 믿겨 지고
그 믿음이라는 선물로 퍼도 퍼도 줄지 않는
나누어지지 않는 넉넉한 사랑을 우리는 그 증거로 이미 받았는데

존재가 되어버리고 필연이 되고 절대적으로 되어버리면
경계선을 긋게 되니
증거가 없고 실상이 없고
허깨비만 잔뜩 창조를 늘려 가면서 까지 다 담는 겁니다

부자야 오늘밤 내 영혼아 편히 쉬자 했는데
정작 오늘 밤 니 영혼 취하면
그렇게 땀 뻘뻘 흘리면서 모아둔 창고의 것들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땔깜으로 7년 동안 써도 써도 모자람이 없도록
남 좋게 할려고 그렇게 했었었었~~~었나 보다
그 활과 화살 이라는 군자금 모을려고 얼마나 노력했냐 말이죠
창고를 늘리고 늘리고 또 늘리고

잃어버림이 그 증거
십자가의 흔적 홈패임 이것이 실상이다 라는 겁니다

즉 증상물이 그 원인 없는 결과로써
출처 없이 새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죽은 바다를 살리는
이것이 생명의 물의 증상
곧 배가 빵구멍 난 증거가 믿음이라는 실상이 왔다 라는 겁니다

감기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들어오면
증상 곧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
콧 물이 나고 기침 가래 열 심징어 죽기까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청혼 하는 이유는
꽁깍지 씌인 바로 사랑이 들어와 버렸으니 상사병을 앓는 거죠

그것을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탕감이라는 죄사함 때문에 안 믿고는 못 배기는

아무 일도 않했는데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겼다 말이죠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1, 개역)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개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개역)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개역)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9, 개역)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롬 4:10, 개역)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일을 안했다 라는 것은 희망이 없다 라는 절망 상태 이다는 겁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을 인간이 없어요
가만히 누워 티비만 보고 있어도 그 티비 요금을 내고자
어떻게 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롬 4:4, 개역)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그러나 그것은 행함 곧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빚진 관계입니다
아무리 스승이 제자에게 공짜로 다 해줘도 
제자는 그런 스승에게 빚진자로써 은혜를 갚으면 된다 라고 보는 거죠
그들 세계에서는 그것이 은혜요 믿음이라는 신뢰성이지요

그러나 사랑의 관계 즉 진짜 은혜는 아닙니다
사실이요 옳고 선하고 뭐 그런 개인도덕이지
집단구원이 아닙니다
진리는 사랑 관계 곧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에서만 나옵니다
즉 돈으로 행함으로 갚을 수 있으면 그것은 법적인 관계이지
언제든지 안 행하고 돈 안 갚으면 언제든지 은혜를 저 버렸다 라고
배신자의 관계로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관계이지

확정적인 사랑이 아니다 말이죠
주님 쪽에서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를 고린도교회에게 주듯이
예수님도 바울을 우리에게 죽이시기로 작정된 자로 아들을 아비에게
아비가 아들에게 자기 목숨을 서로 서로 주듯이 하더라 말이죠

이거 제가 이렇게 말했다 라고 해서
실천할려고 하지 마세요
우연히 임의로 부는 바람처럼 벌어지도록 되어 있지
억지로 하면 또 절대화 되는 우상 딱딱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목사에게 기대할 것도 없이 생각해야지
우리도 못하면서 목사에게 바라면 안되는 것이지요

다만 어린성도를 먹여야 한다면서 등쳐먹는 부모이다라고 우기는 목사에게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사랑으로 하시면 된다 말이죠
안 통하면 뭐 할 수 없죠 누가 말리겠습니까

이 땅에 부모도 선생도 목자도 목사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이 땅에 소망이 다 날라갈때에
비로소 산 소망이 부어지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산 자의 하나님 이라는 뜻은
그들은 죽음이라는 잃어버림을 거쳤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비유 탕자 비유에서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 라는
알수 없는 비밀의 표현이
흔적
증거
홈패임으로써 
더 나은 제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맏아들은 그저 저 탕자 놈 보다 내가 뭐가 부족했느냐 라고만
팩트 사실 일의 량 크기 넓이 시간 이런 것들을 따지게 되니
그런 절대성이 이 우연성이라는 더 나은 제사 앞에서 다 무너지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이 편들어 줄 줄 이 반칙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리요??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의사는 당연히 자기 기능이 환자에게만 나타나지
건강한 자에게는 없다 말이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하나님의 의는
죽은 자에게 나타나는
죽은 자를 찾는 겁니다

산 자를 찾는게 아니라

그것이 산 자의 하나님

즉 호프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찾는 겁니다 아브라함 무정자 이걸 뭐라 하죠? 아 고자
그 다음 이삭 이삭은 아예 불 속에 제물로 바쳐진 겁니다
그 다음 죽은 자 야곱 야곱은 아예 허리를 박살 냅니다

좀 웃끼는게 생식 기능을 주로 다 치시는데
이미 12 아들 다 낳고서 생식기 치면 이거 반칙 아닙니까
그것도 두 명의 부인에 각각 첩까지 딸려 네 명의 여자에게서 자식을 낳았으니
적게 낳은 것이다 라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낳은 자식 요셉이 죽는다 라는 비밀 비유가 박혀 있다 라는 겁니다

출생의 비밀처럼

그러니 그 동안 자식들 낳아도 다 소용 없는 것이지요
요셉이 죽으면 나도 죽을래 가 되는 것이 야곱의 죽은자 된 모습이지요

이런 절망 속에서 산 자이 하나님을 증거 하시겠다 라고 
몸에 흔적이 증거가 남는 겁니다

이것이 법제화 되는 할례가 되면 사랑이 넘치고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죽는 선지자의 모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정반대죠
어서 어서 모세에게 닦달내어서 더러운 여자랑 살기 싫다
깨끗한 여자랑 살겠다 라고 이혼증서를 요구하잖아요

내 죽을께 너 살아라가 아니라

내 살란다 너 좀 제발 죽어라 라고

남을 등쳐 먹는 부모 아비 자녀 아들 스승 제자
서로가 서로에게 강도 도둑질 하더라 말이죠

그런 교회가 99.9999999999999999 ~~~ % 이지요
강도의 소굴 뿐이니 희망 호프 가지지 마세요
호프 라는 이름의 교회도 있을텐데

아뇨 없습니다

부모 아버지가 없는 이상 없어요

다행이 우리 마음에 아버지가 딱 한 분 계십니다
이미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증거가 있고
그 증거물이 우리가 성령의 전으로써 교회가 태어난 겁니다
양자가 되었다 말이죠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는 뭐가 잘 못 되었는지도 모르는 가르쳐 주고 안내해 주는 자도 없어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가장 엉터리 상태를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지요

아버지로써 내 아들 구원 받도록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 선생으로 두어서
내 아들 반드시 구원 받도록 하겠다 라고

이게 바로 자기 자식 죽이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 말이죠

산 자의 하나님 이라면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너의 아버지 다움을 박살 내고자
나 여호와 하나님 너의 자식 반드시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옥 보내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놀래서 아이고 왜 카시노

노아 다니엘 욥 이라는 선지자 곧 부모는
그렇게 안 가르치거든요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사랑을 죽음이라는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보여주고 있는데

부모라는 자가 자식 지옥 보낼려고
개인구원용으로 노아 다니엘 욥을 선생으로 두겠다 라고 한다 말이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모와 선생 개념 둘 다 나오죠

아니 누가 자식이 뱀 달라고 해서 뱀 주는 부모 어디있고
전갈 달라고 해서 전갈 주는 부모 어디 있고
독 달라고 해서 독 주는 부모 어디 있냐 말이죠

그런데 있다 말이죠
모든 부모 위의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 선생으로 붙이겠다 라는 그 부모
내 아들 고아 안 만들겠다 내 남편 나그네 안 만들겠다 나는 과부 안 되겠다
바로 그런 바벨론 여자들

모든 부모 안 그러는 부모가 없다 말이죠
벗어날 수가 없어요

아냐 다른 부모는 다 그래도 나는 내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부모가 될 거야

개인? 소용 없습니다 집단이 아니면 안 받아줘요

그래서 성령을 주신 겁니다

안했는데 했다고 쳐 주시는 성령이
예수님이라는 아버지가 했다 라고
너도 한 것이다 라고 일방적으로 편파 판정해 버리십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예가
구약에서는 안 그랬는데
신약에서는 했다 라고 일방적인 해석으로 뒤짚어 씌웁니다
모세 도망 갔는데 도망 안 갔데요

그리고 그 증거로 도망을 갔으면 누구로부터 도망을 쳐야 하는데

도망을 쳤는데 그 누구 라는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다 없에 버렸으니

누구로부터 도망 쳤다 가 성립이 안되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반칙 반칙 반칙

반칙 맞아요 그런데 애굽왕이 없어져 버렸는데 도망 친 것이 성립이 안되어 버린
원인 없는 결과가 되어 버렸으니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냐 말이죠

성경은 이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것 밖에 없어요
그것을 보이지 않는 것
안 보이는데 실상이래

실상 자체가 보여야 증거물로 체택이 되는데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은 증거물로 하나도 체택 안하시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뭘로 증명할래? 실상이 안되는데?
믿음

이 믿음은 경계선이 그어진 타인과에서는 형성하는게 불가능하고 언제든지 깨어지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는 깨고 싶어도 안 깨어지는

아예 처음부터 타고난 것이다 라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무엇으로 증명 하는가?

이것은 증명 할려고 하는 놈이 사생아 이다는 거죠

남을 7번 용서 한다는 둥 이런 놈들
아버지 말씀을 단 한 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둥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는 둥

증명 하겠다 라는 자체가 사생아 이다는 겁니다

증명 하지 않아도
안 보여도
그 어떤 증명 꺼리가 없어도

전혀 없다 라는 것이 증명이다 말이죠

증명할 필요가 없어요 둘 만의 비밀인데 비유인데 풀려고 하면 비유가 아니지요

통합찬송가 344장 새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이 맘에 의심없이 살아 갈 때에 우리 소원 주 안에서 이루리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주님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나는 아버지 아들 맞습니다 보세요 그 증거입니다
이레에 두 번 금식 십의 이조 등등등

썩 물렀거라 독사의 자식입니다

둘 만의 비밀인데 왜 남들에게 증명할려고 애써요 대머리 감출려고 애써요
청바자 입고서

즉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나오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아니잖아요?
남들 눈에 내 아들이다 라고 자랑하고파서 아들을 내세우는게 아니잖아요
그런다고 더더욱 돈덕해 진다거나 내 아들 답다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내 아들이 된다 가 되는 겁니까? 그게 인증샷 찍는 겁니까?

아들을 내 세울때는 항상 죽음을 내 세웁니다
죽음 통과입니다
아버지가 그랬거든요
징계의 매를 왜 대십니까
사생아에게 없는 징계를 왜?
죽음 통과 하라는 겁니다

무슨 수로?
아버지와 아들의 믿음 관계로
아버지가 통과 하셨거든요
아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거든요
그래서 죽이시기로 작정 된 자로서
바울 본인도 죽이시기로 작정이 되었지만
복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도 유학 보내는게 아니라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로 고린도교회에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습니다
자기 친 자식도 아닌데 허락도 받은 것도 아닌데???

디모데를 복음으로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각 곳 교회를 위해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아들로
교회에 보내는 겁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바울처럼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도 없을뿐더러
그 목사의 아들이나 부교역자 들 등등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자로 보내는게 아니라
자영업자로써 같이 돈 버는 동업자일 뿐

먹고 마시는 것을 우선시 할 뿐이지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 없다 말이죠

자기도 안 죽을려고 하니까
동업자들도 먹고 마실려고 노회 교단 등등을 만들어서
목사 연합 협회 일 뿐이지

그 정도로 외롭다 라는 것이죠
같은 돈에, 먹고 마시는 것에 걱정하는 자들의 모임
단 목사 자격증 있는 사람끼리 연합회를 구성하는 겁니다
그래야 이념 이데올로기를 형성한다 말이죠

박진영 이단 문제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는데
미루다 미루다 밥 그릇에 위협이 되는
첫열매들 지부가 퍼지니까 이제 와서야
골치 아픈 삼위일체 연구로 이단 시비를 가려내겠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우상 숭배자들의 특징입니다
미루다 미루다 드디어 교인 빼앗길 판국이 되면
그제서야 부랴 부랴 움직이는 척 할 뿐이지
이미 늦은 것이지요

신천지 때에도 그랬거든요
똑같은 같은 패거리 이기 때문인
강도요 도적이기 떄문입니다

정치권까지 손잡았기 때문에
기존 정통 교단들이 더더욱 미루고 미룰수 밖에요
다 돈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말이죠
상납금 바쳐야 하니 말이죠

바로 이런 자기를 우상화는 모든 교회의 우상숭배에서 빼내시는 것이 바로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복음으로 태어난 자입니다
박진영? 다행히도 복음으로 태어난 자는 아니니
퍼지고 퍼지고 퍼져서 지옥을 꽉꽉 채우도록 하시니
제발 냅 뚜라 말이죠 
가룟유다처럼 자기가 맡은 일을 하도록
하나님 나라 운동 하도록 냅 뚜라 말이죠

어차피 더 나은 제사는 아니니까 말이죠

복음으로 낳았다 라는 것은
그 전에는 죽었다 라는 겁니다
육의 소욕이라는 자기를 위한 우상의 세계
이 땅의 권세에서 죽었다 라는 것이 전제가 된 죽음을 깔고 있습니다

그 죽음을 거쳐서 낳았다 태어났다 라는 겁니다
이전에는 죽었는데 세상권세에 속해서
자기를 섬기는 우상세계에 속했는데
거기서 죽고
새로 태어났다 라는 겁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하늘에서 오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벌릴수 없다 라고
바리새인에 속하면서 바리새인을 피해서 밤에 몰래 찾아왔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자들이 이런 사고방식이 많습니다
그 정도로 확정적이지 않으니까
신학이나 교리로도 부족함을 느끼는 자들이 많았다 라는 것이지요
지금도 유대교에서 해석이 아직까지 계속 되는 이유가 뭡니까
결국 해석 싸움이다는 것이죠

그러나 해석 할 권리가 없다 라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선생으로써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라는 말을 모른다 것이
바로 가장 기본이요 기초요 뿌리 자체가 잘 못인 줄 모른다 라는 겁니다
첫 단추부터

자기 죽음을 통한 시작인데

아니 내가 죽는데 어떻게 시작 하냐 라는 식으로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생각으로 어떻게 해서든
자기 행위로 실천할 려고 한다 라는 겁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 라는 것은
즉 복음으로 낳았다 라는 것은

자기가 왜 죽어야 할 죄인인줄 아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우물가의 여인은 예수님의 일방적 조치로 인해
다시는 목 마르지 않는 부족함 없는 퍼도 퍼도 줄지 않는 생명수를 누리는 겁니다
그 생명수가 야곱의 우물이냐 예루살렘이냐 라고 장소를 따질때에
영적전쟁은 죄인 하나 우물가의 여인 하나 건지는 이 사랑이지
장소 문제가 아니다 라고 영적 예배 성령의 때가 옴으로 다 이루었다를 누리게 된다 하셨다 말이죠

즉 자기의 죽음을 거쳐서 복음으로 낳았다 성령으로 거듭났다 가 되는 겁니다

덜 죽거나 대충 대충 죽는게 아닙니다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죽였다가 다시 살림도 그러하구요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로 살립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북이스라엘을 바알신앙으로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요나의 표적으로 그들의 신앙을 깨부수고 있는 식으로 진행 됩니다

부자청년의 신앙을 깨부수시는 이유는 
그 당시 유대인의 신앙이 바알신앙과 다를바 없는 마귀신앙이니까
특히 바리새인을 집중 공격하시며 깨뜨리시고자
너희 아비는 마귀다 라고 그 반대인 우물가의 여인에게 가시는 겁니다
사마리아 구역이라 삥 들러 가시지 않으시고 말이죠

악한 세대가 표적을 왜 구할까요
자기 숭배의 곤고함 절대화 필연성 거기에 성령론 구원론 다 동원이 되는 겁니다 교회론도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줄 표적인 요나의 표적 뿐이다 라고 하시죠
왜? 너가 안 죽는 이상 아무리 덕지 덕지 붙여도
자기 숭배 자기 배를 위한 우상만 더 해지는 겁니다

유대교 유대인이 가룟유다가 그랬음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성경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이스라엘도 지금도 보여주고 있잖아요

박진영 하나로 인해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이 되어버리면 그게 무슨 복음입니까
돈 때문에 무너질까봐 돈을 사수하고자 돈과 싸울 뿐인 얼라짓 정치짓일 뿐인 거죠
이데올로기로 싸우는 발람의 무리들일 뿐입니다

복음으로 낳은 자들이 아니라
완악한 수건을 쓴 독사의 자식들이다 말이죠
그들이 세상을 지금 움직이고 있으니까 말이죠

세상은 장악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기들 생존이 위협됨을 아니까 말이죠
인간을 상대로 해서? 아닙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한 행동 하나 하나 사고방식 하나 하나 이기에

이들의 의문의 반복은 멈출 수가 없는 겁니다

그들에게서는 다 이루었다
복음으로 낳았다
성령으로 거듭났다 가 없어요

어머니 뱃속에서 들어갔다 나오는
세상을 장악하는
음녀 짓
제사장 딸이 국가 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타는 것이 목적이다 말이죠

가룟유다가 그랬잖아요

다 이루었는데
말라꼬
첫열매들 지부를 확장 시키냐 말이죠

그것을 또 시기 해서 교인들 빼앗긴다 라고
이제야 미루다 미루다 바쁜척 할 뿐이지
돈이 안되는 것에는 절대로 부지런 할 수가 없거든요

내 죽을게 너 살아라 라고 세워진 첫열매들 지부가 아니니까 말이지요
서로 돈으로 공격 마케팅에 서로 돈으로 방어 마케팅으로 하는
정치짓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나가 되자 라고 요즘 또 WCC 가입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처음부터 돈 장사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사람 다 망치고 있는 겁니다

복음으로 낳지 않은 자들끼리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독사의 자식들끼리
정치 싸움 파당 싸움 돈 권세 싸움 하도록 내어버려두어야

말씀이 이루어 지는 다 이루었다를  누린다 말이죠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게 아니니까
요구하는게 없어요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행하라가 아니라 지키라 마음 속에 니 받은 것
고이 고이 간직하래이 빼앗기지 말아라 라는 겁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실패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자리에서
출발 했기에

이제 더 이상 실패 자체가 없는 겁니다

매일 매일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우리의 엉터리 기도를 삭제 당함으로써

오로지 다 이루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는 성령의 기도를 부어짐을 매일 매일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 브로큰애로우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퍼부어 달라고 영적전쟁을 요청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 죽을께 너 살아라

우리 사도들은 저주 받을께 너희들은 축복 받아라 라고
죽음을 깔고
항상 복음으로 낳은 태어남을
성령으로 거듭남을 새로태어남을
항상 주장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내용이지요
1년 내내 하는 설교가 박진영이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어요

부자청년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주어라 라고 하니까
박진영이 어라 그 수 많은 비용을 가난한 자가에게 주더라?
거기서 다 속아 버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부러워 한다 라는 겁니다

부자청년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주어라 하신 이유는
복음으로 새로 태어 나라
성령으로 거듭나라

그래서 자기숭배 라는 없는 자기 목숨을 건드리신 겁니다

자기 목숨 안 건드리는 것이다 라는 입장에서는
자꾸 훈련하면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 자주 하면
그게 가룟유다요 바리새인이요 박진영 아닙니까

근심하고 등 돌릴 정도로 부자의 생존을 흔들어 버리는 죽음을 펼치시는 것이 바로
복음으로 낳았다 성령으로만 거듭난다 라는 의미이거든요

자기에게 가능한 행위이니 언제든지 취사선택하는 겁니다
요나의 표적은 자기에게서 출발하는 것 모조리 다 죽여서
절망 속에서 집어넣는 겁니다

오로지 외부에서 주어진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는 그 성령의 일
더 나은 제사로 거듭나고 복음으로 낳게 되지

박진영이나 과거 다락방처럼
기존의 세력에 권태로움을 깨우는 활력소나
(다행히 대구에 살다 보니 권태로운 대구에서 순복음이 나타나더니 교인들 다 빼앗기는 상황을 봤다 말이죠
또 몇 년 안되어서 다락방으로 신학생들이 자기 열정페이노동을 바칠데가 없어서 방황하다가
다락방 나타나니 다 휩쓸려가는 그런 유행을 목격했다 말이죠
친구들 선배들 막 넘어가는 모습을 격었으니 말이죠)

그 잠자는 영을 깨운다 라고 나올뿐이지
왜 JMS 정명석 집단의 행동파들도 그렇게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머리 좋은 놈들이
행동대장으로 나서게 되었잖아요

기존교단들이 말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아서 미루던 것을
말해주니 건지러운 부분
알고픈 호기심 그거 해결해 주니 다 넘어갔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삼위일체 믿지도 않으면서 제1 교리로 자리 잡고 있으니
그거 건드리는 겁니다

아무도 해석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믿으라고만 하니
더군다나 성경에 없네
이 성경에 없다 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이 작동하는 겁니다

그거 해결하면서 세력확장 하는 거죠

이거 늘 이단들의 법칙이고
정동 교단들의 방어입니다

둘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아닌
그저 철통밥통 사수 싸움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러 온 거다 말이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으니 말이죠

아 그럼 예수님처럼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공격해서
예수님처럼 죽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아니지요
이제 더 이상 행할 것 없습니다
다 이루었다를 퍼부어주는 것이 더 나은 제사 잉여 남아도는 겁니다

그 남아도는 퍼도 퍼도 줄지 않는 넉넉한 사랑은
바로 출처가 없는

없음 이라는 죽음에서 나온 겁니다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오는 것은 가인의 제사요 사망일 뿐입니다

사망을 넉넉히 이기는 것이 더 나은 제사입니다
죽음이 아니면 우리가 나음을 입지 못한 것이기에

죽음 보다 강한 사랑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복음이 낳은 자식과 아비이기에
아비를 본 받으라 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냥 단순히 본받아 존경하라가 아니라
개인도덕이 아니라
집단윤리인 우연으로써
한 세트 즉 저쪽 마귀세계가 그 아비에 그 자식이듯이
애굽왕과 애굽군사로 짝꿍을 이루듯이 한 몸 말이죠
바리새인 너거 아비는 마귀 이다고 하셨듯이

주님 또한 성령의 소욕으로 한 몸인 사랑의 몸으로
복음이 낳은 자식과 아비로 한 몸을 형성하십니다
신부된 교회와 신랑 되신 예수님의 한 몸처럼
두 증인 짝꿍처럼 아비와 자식이 한 몸으로써 말이지요

요즘 시대에는 어떤 부모도 자식에게 아비를 본 받으라 라고 할 수 없는 
악한 세대의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모 개인 잘못도 아니요
자식 개인 잘못도 아닌
이 시대의 흐름 자체가 그 환경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말이죠

미래를 알 수 없는 육의 부모에 비해
자식들은 앞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많이 접해져서 적응할 뿐이지만)
아무리 후 세대가 과학의 발전으로 생명의 부요함을 누린다 해 본들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사랑이 없어서 매말라 가는 황폐함은 당연합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 앞에서
부모도 자신이 없어서 자식에게 나를 본 받으라 라고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종말에
이 세상 끝에

믿는 이가 없는 때에
사랑이 없어서 다 죽어가는 때에

이 사랑을 본 받으라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는 겁니다
사도 본인이 성령받은 스데반으로부터 살려줌을 받았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음을 받았기에

기꺼이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우리는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비천한 자가 되어도
너희를 존귀케 하시고자 이 사랑은
더 나은 제사로써 죽음에 기꺼이 내어주도록 되어 있는 운명에
감사함과 넘치는 사랑으로 사도바울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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