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6 죽이기로 작정된 사도, 미말에 둔 구경거리, 만물의 찌끼 (고전 4; 9-13)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전 4; 6- 8)
고린도 전서 2025 2026. 8. 15. 15:58
25-025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고전 4; 6- 8)

〈고린도전서 4; 9-13, 개역한글 신약성경 267쪽〉

(고전 4:9, 개역)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 4:10, 개역)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고전 4:11, 개역)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고전 4:12, 개역)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고전 4:13, 개역)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고전 4:9, 현대어) 때때로 나는 이어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곧 사형당할 죄인같이 여기시고 그들 가운데서도 맨 끝에 끌어내 세상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고전 4:10, 현대어) 그리스도가 우리를 어리석은 자로 만들었다고 여러분은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여러분이야 물론 매우 현명하고 지각이 있는 그리스도인이겠지요! 우리는 약하지만 여러분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판이 좋지만 우리는 조롱거리에 불과합니다.
(고전 4:11, 현대어) 바로 이 시간에도 우리는 굶주리고 목마르며 몸을 따뜻하게 해줄 옷조차 없습니다. 우리들은 집도 없이 어디를 가나 냉대만을 받고
(고전 4:12, 현대어) 먹고 살고자 지치도록 일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였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에게는 인내로 대하였으며
(고전 4:13, 현대어) 비방하는 자들에게는 조용히 타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바로 이 순간에도 발밑의 먼지나 쓰레기 같은 취급을 당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2026.05.07 아무것도 아닌 바울과 아볼로,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고전 3; 6- 9)

어머니께서 먼저 식사하신 후 나중에 식사하는 중에
그 전날에 들었던 말씀이 이해가 안 되어서
갑자기 너는 이단이다 
왜 우연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 우연이라고 하느냐

뭐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

어머니 덕분에 로또 당첨 1등 2000원 이라는 브루스올마이티
다 너희 것이다 라는 것을 알았듯이
또 어머니 덕분에 남아도는 잉여 라는 우연을 더 깊게 알게 되니

어머니는 그 후에 자꾸 미안하다 라고 우시던데
아닙니다 어머니 덕분에 퍼도 퍼도 남아도는 나누어질 수 없는 잔여금이라는
속건제 20%라는 성령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라고
제가 어무이께 일만달란트 탕감의 100조의 20프로인
(지금은 백조가 있어도 기후이상으로 네팔사태처럼 생명 하나 살릴수도 없다 말이죠
앞으로도 계속 무너지거든요) 
20조를 어무이께 또 빚졌습니다 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놈들은 어무이 죽으라고 염불을 외우더라 말이죠
도로 20억 내놔라고 협박하더라 말이죠
이젠 아예 무서워서 피하기나 하고요

그러나 어무이는 주님께 감사하다고 기뻐 노래 하시더라 말이죠

2026.05.07 아무것도 아닌 바울과 아볼로,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고전 3; 6- 9)

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 우연이다 라는 겁니다
필연이나 절대성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게 개인구원이요 개인도덕인 개인주관적인 해석
곧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겁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버린 것이지요

아니 세 번 부인한다 하면 세 번 부인 할 것이지
왜 자꾸 세 번 부인 안한다 장 지지겠다 끝까지 따라 가겠다 십자가에 함께 죽겠다

그게 바로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자기를 주장하는 겁니다

아 그럼 나는 우연이 되고 예수님은 절대적이게 되도록
절대성을 예수님에게 넘기면 되겠군요

아니요

내가 우연이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요
그러니 주님께 넘긴다 라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 하지요
이미 절대적인 분 한테 절대성을 넘긴다 라고 해서
그렇게 절대성이 되는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절대성을 넘겼는데 어라 안 받아주네
임금 삼고자 그렇게 따라 갔는데
어라 임금 되시지 않고자 도망 치시네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찾는
내 마당만 밟는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그런 인간이 어딜 가겠습니까?

그카이 인간을 상대 하지 않으시고자
베드로나 바울을 상대 하지 않고자
그들이 말하는 절대성 곧 절대적인 자리에 앉은
마치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린 바리새인과 같은 그들의 아비
마귀를 끌어오시는 겁니다

베드로에게 사탄에게 잡혀오라고 라고 세 번 부인토록
바울에게 사탄의 가시를 풀 찔러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록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시는 우연으로 만드심이다 말이죠
안그러면 자꾸 필연적으로 자꾸 절대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말이죠

나도 나를 판단치 않노라
나도 너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치 않겠노라
주님 본인도 절대적인 자리에 안 앉아버리십니다

우리가 에스겔 지난 주에 하면서 뭘 봤습니까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하나님과 우상을 섞었다 말이죠
이스라엘이 절대적인 우상을 구하니
그래 우상 구한 대로 우상에게 망하도록 하셨다 말이죠
그게 곡과 마곡입니다
그들의 원조가
애굽왕 바로왕과 애굽 군사들이니
그들로부터 영광 받으셨다 말이죠

즉 이스라엘을 아무것도 아니게
우연으로 만들어야
부르짖거든요

마귀를 강퍅케 하지 않으면 안 부르짖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사탄의 가시를 푹 찌르는 겁니다

우연으로 만들어 버릴려고
주님이 우연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 필연의 절대적인 자리에서 만날려고 하니
어라 예수님은 하늘 영광 버리고
낮고 낮은 죄인의 자리에서
죽기까지 복종 하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는커녕
도로 마귀를 만나더라 말이죠

다들 누가 크냐 싸우고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파당 짓고
우상에게 바친 고기
시장에서 파는 것 사다 먹는 나는 장성한자
너는 이거 못 먹는 채소 식물만 먹는 비건 어린성도
이런 분류로 거룩을 운운하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누가 크냐 싸우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고난의 잔을 마시기로 되어 있단다
끝을 종말을 끌어와 보니
다 우연인데
누가 크냐 라는 그 큰 자리 라는 절대성을 추구하니
부끄 부끄가 되고

오늘 바울은 엉터리 분류작업으로 거룩을 운운할 때
사도들 너희들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라고 나누는 그 분류를

도리어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사도들인 바울 아볼로 게바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도 모잘라 미말에 둔 구경거리 라고 했습니다

네 맞아요 베드로의 상황이 베드로로 끝나는게 아니라
너희들에게도 벌어진다 라는 겁니다

나는 저 바울 모른다 알면 장지진다 라고 세 번 부인한다 라는 겁니다
나도 저 베드로 모른다 알면 장지진다 라고 세 번 부인한다 말이죠

그게 에스겔 지난 주 곡과 마곡이라는 사탄의 가시를 푹 찌르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곡과 마곡이 이 사탄의 가시가 또 까불어서 절대적인 자리
하나님의 보좌인 거룩의 자리에 앉을려고 하겠지요

거기서 거룩이라는 분류 구분 구별이 벌어지는 겁니다

괜히 선악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쫄딱 미끄러져서 망하는 겁니다
괜히 선악의 자리인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거룩을 앉아 버리는 바람에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자리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말이죠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자기가 도로 누워서 심판 받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는 누워서 침 뱉기 하는 겁니다

그것을 목격하도록 절대적인 선민의 자리가 아닌
잃어버린 자리에서 목격하게 함으로써
모욕적인 긍휼을 통해서
저들 절대적인 자리에 앉은 속이는 자 꾀는 자의 손에서 건지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모든 육체를 못 박는
나 절대적이다 선악 알아요를 다 못 박는

아무것도 아닌
우연입니다 라고 만드는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정 그러면 또렷하게 밝히 보이기나 해 보라 말이죠

늘 의문의 반복이요 흐릿하고 모호하고 완료도 없고
마침도 없고
기초만 짖고 46년째 완공도 못하고 말이죠

우연히 굴러들어온 뜨인 돌리 그 미완료이면서 절대적이라고 우기는
모든 신상들을 다 다리 걸어 넘어뜨리더라 말이죠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즉 예수님이 우연이 되어버리시니까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해 버렸으니까

누가 크냐
바울파 아볼로 파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리니까

다 다리 걸려 넘어지는 우연이 되어버리니까
실족케 되는 겁니다

그 실족의 자리가 우리의 원래 자리입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바로 나를 절대적으로 만들어 버리니

아니 나는 포로 된적도 갇힌적도 억눌린적도
눈 먼 적도 병든적도 앉은뱅이 된 적도 없는데

예수 니가 뭔데 우리는 포로됨에서 자유케 한다는 둥
나는 절대적인 선민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니가 뭔데 자꾸 일으켜준다는 둥 하느냐
어디서 굴러 들어온 우연한 돌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박힌 돌을 절대적인 아브라함 자손인 우리 박힌 돌을 뽑을려고 하느냐

그래서 요나의 표적이라는 선지자 자리 그 절대적인 자리가
절망의 큰 물고기 뱃속이라는 스올 지옥의 자리인
아무것도 아닌 자리인 우연의 자리에 갔을때에
비로소 주여 도대체 당신 누구십니까 라고

이 지옥까지 낮아지셔서 찾아와주신
예수님의 하늘 영광 버리시고 낮아지신
이 십자가가 고마워서
십자가만 알기로 하였다 라고 바울이
죽이시기로 작정이 되었고
그것도 모잘라 미말에 둔 구경꺼리 웃싸꺼리
또 그것도 모잘라 만물의 쓰레기 취급 받을 것을
영광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아무것도 아닌 마른 뼈, 마지막 웃음꺼리, 모든 만물 중에 쓰레기 취급 받으신 분이

먼저 예수님이 그렇게 격었으니까
그 우연의 자리에 동참 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서
영광입니다 라고 외치는 겁니다

그 모욕적인 긍휼 앞에서
멋들어진 구원은 그야말로 부끄 부끄가 되겠지요

긍휼이 뭡니까 거룩이 뭡니까 20% 더 얹어주는 속건제물이 뭡니까

대신 심판 받으심 아닙니까

긍휼 곧 자궁인데 음부의 권세죠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이라는 스올 곧 지옥에 들어간 겁니다
그런 언니 사마리아 오홀라의 우상숭배 앗수르를 사모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욕했던
여동생 예루살렘 오홀리바가 정작 본인은 더 큰 꼬추 남근인 큰성바벨론을 사모했다 말이죠

그런 더러운 예루살렘의 음부의 권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세워버렸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시고자
하늘 영광 그 절대적인 자리 버리시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구할려고
그 간음한 여자 보다 더한 십자가의 저주인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자
율법을 쥔 자들에게 돌삐 맞아죽는
음부 속에 저주 받는 자로 오시지 않으면
그 어떤 누구도 구원 될 자 없도록 하셨다 말이죠

아니 거룩한 율법을 쥔 자들이
바로 이런 더럽기 짝이 없는
음부 속의 음부
저주 속의 저주
세리 강도 죄인의 친구가 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으라굽쇼?

그 어떤 믿음의 달인 회개의 달인 금식의 달인 기도의 달인 눈물의 달인
방언의 달인 은사의 달인 조차도
거리끼는 걸림돌이 된 십자가는 저주 속에 저주로 들어가기에

믿을 수 없고

마치 누가 높고자 하는 경쟁에 누가 낮고자 하는 경쟁을 추구할 수 없듯이

그래서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더러움 속에 눅가 들어가냐 말이죠
깨끗한 거룩을 추구하는 손 씻는 것 까지 예민한 육체로 만들었는데

또 지혜를 추구하는 헬리인들에게는
이런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인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아니 누가 죽이시기로 작정된 길로 가고
미말에 인싸 인플룬서 유행을 선도하는 자가 되어야지
뭐 웃싸꺼리 구경꺼리 조롱꺼리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만물의 찌끼 쓰레기 취급 받아야 한다 라고???

아무리 같은 교회 다녀도 이런 취급 받지 않으면
가짜 그리스도인 이라고?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취급받고자
마치 순교 한다는 식으로 하는 것 조차도 절대성이지
임의로 부는 바람인 성령으로 인한 우연이 아니다 말이죠

우연을 우리가 실천 할 수가 없어요
이것을 모르니 성화론자들이 교인들을 위선적으로 만드는 것이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 가게 삥이나 뜯어먹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더라 말이죠

강도 이야기 나온 김에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 라고 했을때에

주님은 인간을 딱 두 부류로 분류 하셨다 말이죠

강도와 이웃

이것도 우연입니다 필연 절대적임이 아닙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 두 부류를 의식해서 분리 분류 거룩 구별하면
바리새인처럼 되는 것이고
주님의 처분에 맡기면 이 비유라는 비밀이 이해가 됩니다


즉 강도와 이웃으로 나눈다 라는 말은
인간에게는 가족이 없다 라는 겁니다
가족은 원수지간이거든요

가족을 둘로 나눕니다 창세기부터 그래왔어요
그래서 율법 십계명도 큰 계명 신명기 두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이웃이라고 합니다

가족을 사랑이 아니 이웃이래요
가족이면 개인구원 개인도덕이라는 절대성이 맞아요
그건 이방 나라에는 해당 되겠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웃이라는 집단구원 집단윤리라는 우연성이
그들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입니다
곧 잃어버림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고아 과부 나그네를 환대 하라 라고 합니다
약자보호법 이웃환대법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섬기고 돈이 많아 지면
약자를 더욱더 보호하고 이웃을 더더욱 환대 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받은 것 더 받을려고 누가 크냐 이니까
반드시 약자를 등쳐먹도록 되어 있어요 반드시 맞물리는 겁니다
절대성 손씻고 먹는 거룩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이런 약자들 이런 이웃인 고아 과부 나그네의 꼬투리를 잡도록 되어 있어요
법을 쥐면 마귀가 되는 이유입니다

그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이웃환대법에 의해서
며느리 다말이 이방여자로써 약속의 가문에 들어왔는데
어라 절대적인 약속의 민족이라는 이유로
자기 자식들 잘못을 이 약자에게 뒤집워 씌우는 겁니다
반드시 절대적인 강자의 필연성에 즉 육의 소욕에
성령의 소욕이 반드시 맞물리도록 하셨다 말이죠
그래서 이 며느리 다말은 오로지 약속의 가문을 잇고자 하는
이 긍휼이라는 모욕적인 심판속의 구원을 통해서
불 속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그렇게 심판의 불 속에 낳은 자녀들입니다

안 물어요 안 죽어요
불에 타지 않아요
예수님이 먼저 보여주셨지요
먼저 고난의 잔을 마셨다 말이죠

그러니 다 너희의 것인데
죽음도 생명도 다 너희의 것인데
왜 니가 옳니 내가 옳니 라는 선악의 법을 쥐고서
남을 정죄해야 자기가 그 높은 자리에 앉느냐 말이죠

바로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진짜 아무것도 아닌
그 높은 자리 하루 아침에 망하는
앗수리 바벨론 다 보여줬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먹음직 돌을 떡 되게 하라 라는 경제문제 해결하는 메시아가 되어다오

아니 죽으러 왔다니깐 사람은 떡으로 안 살고 말씀으로 산다니딴

보암직 나 종교의 세계에서 신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적의 선민이 되는
멋들어진 구원받는자 되게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천사들이 두손으로 받쳐서 상하지 않는
기적의 거룩한 인간 되게 보암직 하게 해 달라
다들 우러러 보는 거룩한 자
물 위를 걷는 베드로처럼

안 돼 베드로야 저기 봐라 풍랑을 보자 마자 꼬르르 잠기는
아니 풍랑이 아직 덮치지도 않았는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꼬르르르 물에 잠기는

물에 빠진 너 아무것도 아닌 너 주님이 건져주셨을때에
물 위를 걸은 예수님 그 멋들어진 거룩한 예수님이 아니라

물에 빠진 나를 건지시는 우연적인 예수님
아니 이미 지옥간 저를 왜 건지시냐 말이죠
이 낮고 낮은 대신 죽는 우연히 만난
전혀 보암직 없는 다들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흠모할 모양 없고 고운 모양도 없고 아름다운 픙채도 없고
태양빛에 그을려 새까만 얼굴도 모잘라 
질고 즉 질병으로 고생한 모든 사람의 질병인 죽음에 이르는 병인 죄를 대신 진 얼굴도
구경꺼리 웃싸꺼리 얼굴에 다들 침 뱉는 쓰레기 취급받으신 그 분이

도대체 왜 물에 빠진 나를 건지시는 당신 도대체 누구시냐 말이죠

그냥 지나가도 상관 없는 분 아닙니까

누가 강도 곧 풍랑 만난자의 이웃이냐 말이죠
네팔 사태 보세요 아무도 이웃이 안되어 주잖아요
돈이 수천 경의 경경경이 있어도
이웃이 없어요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는 이웃을 종말에 만들잖아요

모든 인간이 이 마귀에게 포로 잡혀 있는데 누가
저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그 절대적인 거룩에서 건져줄
거룩한 성전을 마귀들이 다 차지해서 강도의 소굴로 만든 판국에서

진짜 거룩인 우연의 거룩으로 이웃이 되어주겠습니까

이 보암직 함에서 건져줄자 누구냐 말이죠

그 다음 세 번쩨 시험이 지혜 아닙니까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탐스러움

지혜는 공의라는 집단적 윤리를 이루는 정치의 영역입니다

국가 라는 짐승의 정치와
음녀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는 음녀의 정치는
권력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지혜는 그 반대입니다

바로 저런 원수들의 손에서
비천한 계집을 신부의 자리에 앉혔을때에
세상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합니다

바로 마귀만을 상대로 하는 지혜입니다
즉 세상 지혜를 어리석다 라고 무의미하게 지워버리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지혜인 십자가의 지혜만을 남기시고자

죽이시러 오신 예수님에게
온 천하 만국을 줄테니 절하라 라는 소리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이죠

자기 의에 복종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라 말이죠

바로 이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고
자기 의 곧 교만한 바벨론 왕처럼 하나님의 자리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그 계명성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거룩에 반대인
하나님의 의 곧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이 십자가의 죽음에 복종하심을 거부하니까 망하더라 말이죠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자 그럼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바울파 아볼로파 파파파 나누는 모습을 보고
사도들이 오늘날 목사들처럼
그래 서로 경쟁을 붙여놓으니
교회에 열심을 내는 자가 된다 라고
성화론자들처럼 흐뭇해 해야 합니까 

아니면

오늘 본문 바울처럼 울어야 합니까
고린도 교회여 제발 망하는 길로 가지 말아라

아니 십자가 라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영광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의의 길 거룩한 길
우연의 길이 있는데

왜 망하는 절대적인 길로 가려느냐 라고

제발 지옥 가지 말라고 이런 소리 하는 겁니까

왜 아무것도 아닌 사라지는 우연을 붙잡고 절대 절대 절대를 왜 외치냐 말이죠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유대인이 아 이거다 싶어서
임금 삼고자 따라다니기 시작하는데
예수님은 자꾸 도망치신다 말이죠
삼일길이라는 절대단절의 우연의 삼일이 지나서야
겨우 따라 잡아서 

아니 왜 주님 자꾸 도망 치십니까
제가 절대적인 임금의 자리에 앉혀 드릴려고 하는데 왜 도망치세요

너가 나를 임금 삼는 이유는 비밀을 본 까닭이 아니요
우연의 수수께끼 요나의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먹고 배불러 터져서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 곧 절대적인 우상으로 삼고자 함이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임의로 부는 바람과 같은 우연을 잡아서
필연적인 절대권력인 임금을 삼아야
자기도 절대 구원이 될 텐테

도저히 포착 할수 없는 손에 잡았다 미끄러져 빠져나가버리는
우연으로 남아버리니

믿고싶어도 못 믿는 확증편향에 안 잡히시는 겁니다

이 우연이야 말로 어머니 덕분에 파도 파도 아무리 퍼 날라도
계속해서 남아도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 나는
초과잉적인 잉여 곧 우연입니다

잉 남을 잉
여 남을 여  여유 할 때 남아도는 시간
즉 찌끄래기 잉여물 잔여물 잔금 남았니

남는 것
이것이 생명이지

원본 원자금 그대로 남겼습니다 라는 그 원자금은 잉여가 아닙니다
절대이지
남아도는 생명이 아닌 겁니다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물리쳤나이다
이건 남아도는게 아닙니다

남 7번 용서는 우연이 아니라 절대화 된 것이지
남아도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남아도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믿음으로 다시 사는
믿음이 잉여이지
행함은 잉여가 못 되고 법이 됩니다
법은 남을 살릴수 없어요
도리어 죽이고자 하는
자기 안 알아준다고 징징 거리는 복수심일 뿐입니다

심판은 주님께 있는데
법 좀 지켰다 라고 막 정죄하고 다닌다 말이죠

그러니 개인도덕을 추구하는 개인구원이라는 절대성은
남을 7번 용서했느냐 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려는
인정 투쟁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카이 사다리 걷어 찰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집단윤리인 하나님의 의인 거룩은
도리어 7에 70번 용서 받아야 하는 퍼도 퍼도 줄지않는
남아도는 사랑으로 인해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이 사랑을 외치는 겁니다

정의가 하수 같이 흘러 흘러 넘쳐서
심지어 죽은 바다 까지 다 살려내는 겁니다

절대적인 46년까지 지어도 못 짓는 의문의 성전이 아닌

우연적인 단 삼일만에 짖는자여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시지 라는
그 참성전 되시는 예수님이
우연히 죽은 바다까지 생명수가 넘치도록

나누어지지 않는 잉여를 이루어 내십니다

어머니께서 우연을 처음 접해서 반드시 오독을 거쳐서 정독을 하셨듯이

또 새로운 용어 바닥 이라는 용어로 창조를 설명해야 겠네요

또 이단이구나 라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기분 좋아요

바닥 즉 더 이상 바닥을 칠때가 없을때까지
바닥을 쳐야

비로소 창조가 드러나는 겁니다 생명이
남아도는 잉여가 말이죠

그러니 창세기의 창조만 믿는 자들은 유대교처럼 됩니다
하나님만 창조주 이데요
그러면 창조주를 왜 믿느냐 라고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다구치지 않았죠
내가 누구인지 알리라 라고 다구치지 않았죠

아무리 창조주 믿는다 아무리 여호와가 누군지 안다 라고 이스라엘이 우겨도
당사자 본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너 이스라엘은 나 창조주를 단 한 번도 믿은적 없다
여호와가 누군지 안 적이 없다
그래서 망한다
그래서 망했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창조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말이죠
예수님이 창조주로써 말이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지 않는 자는 창조주가 예수님인지 모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 7:38, 개역)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왜 배 입니까 사람의 중심인 배
즉 마음판의 할례처럼 그 배가 중심이 되겠지요

즉 상대적인 자기 배를 위한 우상의 중심도 배 이니까요
그 중심인 배를 탈환하고자 하는 천국되신 예수님의 침략이다 라는 겁니다

그 배를 빵구멍 내시는 구원의 뿔로 돌파 하심으로써
굵은베옷을 입은 빵구멍난 배로 인해서

그 배에서 흘러 흘러 넘쳐 넘쳐 나는 생명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니 빵구멍 난 배가 되었는데
정작 안 죽고 도로 흘러 흘러 넘쳐나는

남아도는 생명이 된 거죠?
죽은게 아니라 말이죠

믿음으로 산다 라는 말이 그런 의미이다 말이죠

떡으로 살면 배가 빵구멍 나면 안되는 절대적인 배가 되어야 하는데

우연적인 배로써 빵구멍 났기에 이제 배가 없어요
기드온의 칼이여 칼이여 칼이여
칼이 없어요
그런데 없는 배 인데도 불구하고
생명수가 도리어 흘러 넘쳐 남아 돌구요

반대로 절대적인 배인 우상이 된 배는 
남아돌기는커녕 있던 생명도 다 잡아죽이더라 말이죠
오로지 복수의 화신이 된 배가 된 겁니다 중심이 되었다 말이죠

(요 7:38, 개역)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구약 해당 구절 다 찾아달라고 물어봤죠
 
AI 개요        
요한복음 7장 38절의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구약 성경의 한 구절을 그대로 옮긴 직접 인용문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특정 구절 하나를 지목하기보다, 구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성전과 메시아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 성령의 약속’이라는 종합적인 주제를 요약해 인용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사야 12장 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사야 44장 3절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이사야 58장 11절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에스겔 47장 1-12절
(겔 47:1, 개역)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요엘 2장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스가랴 14장 8절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흘러나올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리하리라”

잠언 18장 4절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솟아나는 시내 같으니 지혜의 샘과 같으니라” (칠십인역 그리스어 번역 등과 연관 짓기도 함)


--

예수님은 중심이 되는 배 같이
임금 삼아달라고 하시는게 아니라
영원한 다윗왕처럼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인 세상의 중심인 시온을 탈환하고자
도리어 인간들의 중심인 뱃구멍을 빵구멍 내시고 다니시면서
예루살렘을 침략하고 돌아다니시는 겁니다

계시록에 소돔과 고모라요 애굽이며 큰 성 바벨론인
이 예루살렘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신 곳을
침략함으로써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다 이루심으로써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비로소 주인을 결박하고 세간을 빼앗아 전리품으로 삼는
약속하신 성령을 주신다 말이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
죽은 바다를 살리는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른다 말이죠

퍼도 퍼도 바닥치지 않는 다시 사는
그래서 죽음도 다 너희 것
생명도 다 너희 것
왜? 너희는 주의 것이기에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에

바닥 치는 이 창조를 지금 성령을 통해서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속건제물 초막절에서 물 뿌리는
새성전에서 출처도 없이 나오는 물이
즉 우연적인
임의로 부는 바람 같은 성령을 부어 주신다 말이죠

절대적이면 출처가 있고
그 출처를 인간들이 알면 자기들이 그 절대적인 것을 차지 할수 있으니까 말이죠
이 유업을 물려받을 상속자 아들을 죽이면 이 유산을 차지 할 수 있다 라고

(마 21:38, 개역)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막 12:7, 개역)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눅 20:14, 개역)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마 21:33, 개역)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마 21:34, 개역)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마 21:35, 개역)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마 21:36, 개역)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마 21:37, 개역)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마 21:38, 개역)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마 21:39, 개역)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마 21:40, 개역)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마 21:41, 개역)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마 21:42,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 21:43,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 21:44, 개역)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마 21:45, 개역)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마 21:46, 개역)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마지마 때에 부어지는 종말의 영인 성령을 부어주시면
바로 이런 육체의 소욕을 들추어 내시면서 부어주신다 말이죠


퍼도 퍼도 남아도는 성령의 열매를 개인 사유화 할려는 자기 영역을 따로 챙기겠다 라는 자체가
생명의 우연성인 남아도는 잉여를
그 반대로 생명을 법적으로 자기 개인 구원의 절대화로 개인도덕인 법제화 할려는
도리어 남에게 생명을 부어주는 죽은 바다를 살리는게 아니라
살아있는 자를 도리어 잡아 죽이는
남을 7번 용서 하는 절대화 할려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다들 나쁜 뜻으로 하는 행동들이 아니다 말이죠
진짜이고 가짜가 아니고
사실이고 거짓이 아니다 말이죠
아무리 좋은 의도로 떨어지는 법궤를 잡았다 하더라도
거룩치 않은 손으로 만졌기에 즉사 한다 말이죠

절대적인 진리를 우리를 잡을 수 없어요
잡았다가는 타 죽어요
진리가 안 타죽도록 화목제물이 되고 속죄제물이 되고
심지어 그의 영혼인 그리스도의 마음인 성령을
속건제물로 약속하셔서 주시기 전 까지는
이 거룩 만졌다가는
봤다가는 타 죽습니다
제발 안 타죽으라 라고 주님 쪽에서 직접 손수 마련한 조치를 따르라 말이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부어주니까
오벧에돔이 바짝 엎드려서 
나는 죄인 중의 괴수로써이다 라고 
법궤에 꿰인 채를 어깨에 메고 안치함으로써
3개월 동안 진노치 않고 복을 주심으로써 
 비로소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옮긴다 말이죠
바지가 벗겨질정도로 파도 파도 남아도는 잉여로 인해

안 그러면 다 타 죽어요

거룩을 소유할게 아니라
소유 당하는 바짝 엎드린 우연이 되어야 하는데
즉 건강한 자 의인 이라는 절대적인 자가 아닌
죄인 환자 라는 우연물이 되어야 하는데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 곧 아무것도 아닌 우연물 말이죠

반대로 거룩을 만질수 있는 절대적인 깨끗한 자가 될려고 하니
바지 벗겨졌다 라고 비웃는 사울의 딸 미갈처럼
절대적인 왕 꼬라지가 저게 뭐꼬 라고 하다가
절대적인 왕비의 자리가 없어져
첫 번째 부인이지만 첫 번째 부인 자리에서 빠진
부인 인 듯 부인 아닌 부인 같은 도리어 우연물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절대적인 왕이 바지 벗겨진 우연적인 왕이 되어버려서
왕이시여 체통을 지키소서 남사쓰럽습니다 라고 우연물 취급하다가
본인이 우연물이 되어버린 개인도덕이 자기를 스스로 정죄하는
누워서 침뱉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말이죠

그카이 생명을 잉태해야 할 여성의 몸이
남자의 절대적인 몸처럼 아이를 가질 수가 없는 겁니다

상징계 법에서는 생명이 안 나오거든요
우연물인 실재계에서 생명이 흘러 흘러 넘쳐나는 겁니다

잉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하늘에서 자식이 많음이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꼭 대조 하기를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다 라고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대조 합니다

즉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가 다 그러하다 라는 겁니다

(요 1:13, 개역)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바로 예수님이 낳은 자녀들은 성령으로 난 자들이다는 겁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아니라 말이죠

그러니 마른 뼈 메마른 광야
불임여성의 자리에서
불 속에서 다말이 낳았듯이
광야에서 낳은 자식이

궁궐에서 낳은 자식 보다 많다 라는 것이지요

진리된 생명은 바로 그렇게 죽음을 이긴 생명인 사랑이지
죽음 보다 강한 사랑 말이죠

죽음을 갇다 대면 바로 죽는
그런 부자의 넉넉한 소유같은 것은 생명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자에게 딱 하나 빠졌다
불에 타지 않는 옷을 돈 주고 값없이 사라 라는 겁니다

다 가져 본들 뭐 하노 죽는데
부자야 오늘 잠 니 영혼 취하면
저 창고를 늘리자 라고 하는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고 모든 소유를 타인에게 다 나누어 주면 뉘 것이 되겠느냐 말이죠

(눅 12:14, 개역)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16, 개역)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 12:17, 개역)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 12:18, 개역)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 12:19, 개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라고 절대적인 것에 없어요
우연에 있다 말이죠 생명이 말이죠

자기 배에 있지 않다 말이죠
도리어 빵구멍 난 배 곧 우연에 있어요 생명이 말이죠
퍼도 퍼도 나누어 주어도 줄지 않는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이라는 어린이 찬양이 여기서 빛을 바라네요
어린아이는 알아먹는데 어른은 못 알아먹어요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웅켜 잡으면 없어지고 부자 절대적 아간의 범죄 
없어져요 사라지죠
어 그런데 쓰고 빌려주면 오히려 풍성해져
땅 위에 가득하다네요

그게 사랑이라는 퍼도 퍼도 남아도는 잉여이다는 우연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법이라는 절대성에서는 우연이 있을 수 없지요
그런 법을 원했으니 법대로 망할 수 밖에요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땅 위에가득하네 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자 내일 걱정일랑 버리고 모든 염려 주님께 맡겨요 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싹트네 싹터요 내마음에 사랑이
싹트네 싹터요 내마음에 사랑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내마음에 사랑이
싹트네 싹터요 내마음에 사랑이

한 알의 밀알이 떨여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즉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열매를 맺는다 라는 겁니다

성령의 은사는 열매라는 생명의 태어남이기에
상대적인 세상의 모든 것은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라는 것이 되는 거죠

그러니 성령을 부음 받지 않으면 생명이 없어요

즉 강도들 뿐이다 라는 겁니다

이웃으로 삼아 주지 않는
이웃이 나타나주지 않으면
강도 만난 자가 될 뿐이다 라느 겁니다

강도는 없고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 라는 비유에서
예수님이 아니면 다 강도일 뿐이며

예수님 보다 먼저 온 자는 다 강도이다 라는 겁니다

(요 10:8, 개역)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절도자 곧 도둑놈과 강도들이 그 말을 듣고
비로소 달려 듭니다

(요 10:9, 개역)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10, 개역)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1, 개역)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2, 개역)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3, 개역)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요 10:14, 개역)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6, 개역)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7, 개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8, 개역)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 10:19, 개역)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요 10:20, 개역)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요 10:21, 개역)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요 10:22, 개역)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요 10:23, 개역)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요 10:24, 개역)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요 10:2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요 10:26, 개역)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 10:27, 개역)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8, 개역)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9, 개역)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30, 개역)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10:31, 개역)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요 10:32,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요 10:33, 개역)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 10:3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 10:35, 개역)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 10:36, 개역)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요 10:37, 개역)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요 10:38, 개역)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요 10:39, 개역)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요 10:40, 개역)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요 10:41, 개역)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참이라 하더라
(요 10:42, 개역)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그러나 생명을 퍼도 퍼도 남아도는 생명을 막을 길이 그들 강도들에게는 없었다 말이죠

처음부터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생명을 맺기에
죽으시러 오신 예수님의 생명수로 죽은 바다를 살리는 길을
인간도
마귀도 
죽음도 사망 권세도 못 막고
도로 막을려다가 도로 잡혀 멸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그게 지난 주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써
그들이 멸망함으로 퍼도 퍼도 줄지 않는
도로 땔감이 되는 식이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거룩성을 생명성을
그 우연성을
절대성을 잡을려는 자들이 도리어 보여주는 꼴로 그들 기능이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는 그 미말의 구경꺼리 웃싸꺼리 조롱꺼리로 만들고자 하는 속셈들이
도리어 반대가 되도록 말이지요

그러니 우연의 자리에 심지어 예수님 본인도 하늘 보좌 그 영광의 절대자리를 버리시고
우연의 낮고 낮은 아무것도 아닌 자리에 놓으심으로써

도리어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는

생명수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 임을 말이지요

아니 끝까지 싸워서 어벤져스 복수자들처럼
끝까지 심판하셔야지
딸랑 죽어버리시면 우짭니까

그런데 어라 도로 생명이 흘러 넘치는 겁니다

도로 어벤져스 같은 슈퍼영웅들이 자기 안 알아준다 라고
심판자의 자리 절대자의 자리에 앉아서 
약자를 등쳐먹는 짓을 하더라 말이죠
본인이 슈퍼능력 버리고
그 약자에게 슈퍼능력 줘 보세요
부자청년아 전재산 다 가난한 자에게 다 주고
너가 가난한 자가 되어 보라 말이죠

안 하죠

자기가 주인공인 절대자가 되어야 하는데
안 믿겨지는 겁니다
그 동안 내어준 것 없으니까 말이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 것이 없으니까 말이죠

다 조건을 달아버린 절대화 시킨 것들 뿐이니까요

그런 시도를 고린도 교회가 할려고 하니까

바울이 아니 내가 십자가 졌더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우연물이다

바울도 니꺼 아볼로도 니꺼 다 니낀데
왜 파당을 지어 절대화 시켜
누가 크냐 라고 하느냐
그거 생명 맞냐

도로 죽이는거 아니냐

우리 사도들은 죽이시기로 작정 되었다

생명이 넘쳐 흐르니까
미말에 둔 구경꺼리 조롱꺼리 되었다

생명을 퍼도 퍼도 줄지 않고 남아도니까

만물의 찌끼 부스래기 쓰레기가 되었다

왜?

남아도니까 부요하시니까
그 부스래기로 먹고 사는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쓰래기로
생명을 받았기에 얼마나 넘치는 은혜 이냐 말이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시리로다

부족함이 없데요 글쎄
다 너희의 것이데요 글쎄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왜 써도 써도 도리어 풍성해 지니까

그 풍성함에 동참이 되었으니
그 고난의 잔에
죽이시기로 작정함에
미말에 구경꺼리 조롱꺼리 웃싸꺼리 됨에
만물의 찌끼 쓰레기 센척 하는 겁쟁이 루저 양아치 속에 넣어도

흘러 흘러 넘치는 생명을 감당할 길이 없도록
사막에 꽃이 허드러지게 피는 겁니다
사막에 물이 콸콸콸 그 성우의 기가막힌 생동감 넘치는 콸콸콸 QHEEK
벙어리가 외치는 콸콸콸 이라는 시원한 사이다 외침처럼

흘러 흘러 넘치는 겁니다

벙어리가 골방에서 외치는 기도가 우주 끝까지 흘러 흘러 넘치고
대제사장이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대로에서 외치는 기도 보다 더 낫다 라고

더 나은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이미 바닥을 쳤거든요
올라갈 일 밖에 없어요

그 사랑을 부족함 없이 지금까지 주셨듯이
앞으로도 부족함 없이 흘러 넘치도록 주십니다

이것을 저 부자교회인 소유의 넉넉함으로
배불러 터진 소리나 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게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또력한 사랑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부족함 없는 징계의 사랑이 아니였으면
고린도 교회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었다 말이죠
수 많은 부자 도시들이 소돔과 고모라 라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우연적으로 생명의 말씀이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우찌 되었을까요
그건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뻔한 절대적인 결론이니까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